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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Oppa), 누나(Noona), 언니(Unnie) 애교(Aegyo)…. 해외에서 K팝과 드라마, 영화에 대한 인기가 갈수록 치솟으면서 우리말을 그대로 영어로 표기해 사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이란 신조어인 최애(Choeae), ‘볼수록 매력 있다’는 말을 축약한 볼매(Bolmae) 등의 표현도 그대로 쓴다. 아이돌 그룹의 해외 팬들은 영어 대신 국내 팬들이 쓰는 말을 사용한다. 그룹에서 가장 어린 멤버를 ‘더 영기스트 멤버(The youngest member)’ 대신 ‘막내(Maknae)’라고 부르는 게 대표적이다. 해외 팬들의 소셜미디어에는 덕후가 된다는 뜻의 ‘입덕(Ipdeok)’과 그 반대인 ‘탈덕(Taldeok)’이라는 표현도 많이 나온다. 아마존닷컴에서는 호미(HoMi)와 갓(Gat), 포대기(Podaegi) 등 영어로 번역하기 어려운 단어는 한글 이름을 달고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이처럼 한국어를 소리 나는 대로 알파벳으로 표기한 것을 ‘돌민정음(아이돌+훈민정음)’이라고 부른다. 우리말을 배우려는 열기도 뜨겁다. 지난해 한국어능력시험(TOPIK) 접수자는 37만 명을 넘었다. 76개 나라 213곳에 설치돼 우리말과 문화를 알리는 세종학당을 찾는 외국인도 많다. 올해 세종학당 신규 지정 공모에는 50개국 101개 기관이 신청해 역대 가장 많았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어의 세계화를 위한 3대 추진전략과 9대 과제를 담은 한국어 확산 계획 ‘한국어, 세계를 잇다’를 지난달 발표하고 한국어 사업의 전문화, 맞춤화, 다양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우리말과 우리글의 확산은 대중문화를 넘어 외국인의 생활 속으로 파고들면서 신한류의 동력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답답할 때는 셀러리 양상추 피망처럼 씹을 때 소리가 크게 나는 채소를 가볍게 드레싱해서 드세요. 청량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머리가 멍할 때는 향이 강렬한 방아, 고수, 박하를 드시면 정신이 확 듭니다.” ‘방랑식객’ 임지호 자연요리연구가(64)는 코로나19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권하는 음식을 묻자 거침없이 말을 이어갔다. 면역력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은 요즘, 그가 들풀과 꽃, 뿌리채소로 만든 84가지 요리법을 담아 ‘임지호의 밥 땅으로부터’(궁편책)를 출간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28일 그를 만났다. 책은 식재료의 효능은 물론이고 그에 얽힌 추억도 에세이처럼 썼다. 만능간장과 레드와인 소스를 만드는 비결도 처음 공개했다. “제가 터득한 걸 나누기 위해 썼습니다. 이렇게 옷을 한 겹씩 벗어내면 또 나아갈 수 있겠죠.” 눈에 띄는 음식은 비트 카나페, 사자발쑥 만두, 벼룩나무 쌈밥 등이다. 강한 항산화 성분을 지녀 몸의 저항력을 높여주는 비트는 통째로 2시간 구워 껍질을 벗긴 뒤 얇게 썬다. 그 위에 소금에 볶은 은행과 갈아놓은 비트를 넣어 돌돌 말아 반으로 자르면 비트 카나페가 된다. 몸을 따뜻하게 데워줘 면역력을 높이는 쑥을 다져 만든 만두피에 감칠맛 나는 새우를 잘게 썰어 넣은 소로 만두를 빚으면 쑥 냄새를 싫어하는 아이도 잘 먹는다. 가을걷이를 마친 논두렁에 솜뭉치처럼 새싹을 틔우는 벼룩나물은 장을 비우는 데 좋다. 밥에 단촛물과 참기름, 생된장을 넣고 동그랗게 빚은 뒤 벼룩나물과 말린 크랜베리를 얹으면 쌈밥이 된다. 요리법은 굽거나 삶고, 찌고 튀기는 정도다. 복잡하지 않다. “재료가 지닌 본연의 성질을 살리는 게 중요합니다. 단순한 데 길이 있죠.” 소스와 양념가루, 들풀 등 재료의 용량은 표기하지 않았다. “재료는 취향에 따라 양을 조절하면 됩니다. 틀은 있으되 틀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롭게 넘나드는 게 한국 음식이거든요. 요리 초보자라도 일단 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책에는 요리별로 그가 직접 그린 색색의 드로잉을 배치해 화보를 보는 것 같다. “재료의 성질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표현했어요. 이 음식을 먹은 사람의 기운 역시 이처럼 변한다는 의미를 담은 이정표이기도 하고요.” 폐와 기관지를 튼튼하게 해주는 머위로 쌈밥을 만든 페이지에는 빨강 파랑 노랑 초록의 작은 사각형이 촘촘히 모인 드로잉이 있다. “머위는 몸을 깨끗하게 하고 새로운 세포가 돋아나게 합니다. 세포 하나하나를 온전하게 지키는 몸이 되는 거죠.” 책을 만들 때 하루에 20시간 넘게 요리하는 날이 이어졌지만 끄떡없었다. “제 체력은 모두 들풀에서 나왔어요. 앞으로 코로나19보다 심각한 바이러스들이 생길 거예요. 자연을 망각했을 때 깊은 병이 찾아옵니다. 도시에 살아도 시간을 내 들로 나가 들풀을 찾아 드세요. 들풀은 땅이 생명에게 주는 축복입니다.” 그는 섬 산 바다 강에서 나는 재료로 만드는 요리책을 계속 낼 예정이다. 그의 한식당이 있는 강화도는 육지, 바다가 내어주는 재료를 모두 구하기에 좋다. 그는 이번 책이 사람을 자연으로 안내하는 ‘열린 문’이 되길 희망했다. 다음 달 7일에는 10여 년간 그의 여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밥정’이 개봉된다. 낳아준 어머니, 키워준 어머니, 길 위에서 만난 어머니까지. 그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전국을 하염없이 누볐다. “생명으로 가득 찬 세상 모두가 어머니라는 사실을 예순이 넘어서야 깨달았어요. 아픔을 치유하고 어루만지는 밥상을 차리는 사람이 되는 꿈을 꿉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벼 베기, 콩 타작으로 모두가 분주한 가운데 가을이 무르익어간다. 깊은 밤 할머니는 마루에 앉아 꾸벅꾸벅 졸면서도 일을 놓지 못한다. 이모 집에 보낼 마늘 껍질을 까고 삼촌 집에 줄 검정콩을 골라낸다. 머리가 바닥까지 떨어지지만 애써 버틴다. “어서 드가 이불 펴고 자그라”라는 할아버지 말에 “울 막둥이 아직 안 왔는데 우째 자노”라고 답한다. 시골 외딴집을 잘 찾아오라고 노란 등을 밝힌 채 막내를 기다린다. 등대처럼. 자식에게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 싶어 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얼룩 강아지는 콩 타작을 하고 지붕 아래 벽에 마늘을 걸어놓는 할머니 곁을 쫄랑쫄랑 따라다닌다. 마루에는 인삼주, 시내로 나가는 버스 시간표를 적은 종이가 있다. 세밀하게 담아낸 시골 풍경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코로나19로 고향을 찾지 못하는 이들이 많지만 서로를 챙기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집에서 주로 생활해야 하고 지인들을 만나기도 쉽지 않은 코로나19 시대. 답답한데다 자주 우울해진다고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람들로 붐비지 않으면서도 바람을 쐬고 산책하며 자연 속에서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곳이 없을까. 한국관광공사와 7개 지역관광공사(RTO)가 선정한 ‘언택트 관광지 100선’을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기존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거나, 혼자 혹은 가족 단위로 여행하기에 적합하고 야외인데다 입장객수 제한을 통해 거리 두기 여행을 할 수 있는 곳 중에서 선정했다. 강원 삼척시 이사부길은 삼척항과 삼척해수욕장을 잇는 해안도로다. 기암괴석에 소나무숲이 우거져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신라장군 이사부 이름을 딴 이 길은 해안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하다. 삼척항에서 삼척해변까지 이어지는 4.8km 길은 달리는 순간순간마다 다양한 정취를 선사한다는 평을 받는다. 경기 김포시 평화누리길 1코스는 근사한 해안 풍경을 바라보며 재래식 포구의 정취를 느끼며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14km로 4시간 정도 걸린다. 바다 건너 강화도를 바라보며 덕포진과 부래도, 염하강을 따라 걷는 구간으로 가족과 함께 하기에 좋다. 짭조름한 바다 내음이 코끝에 와 닿는다. 이미 다녀온 이들이 많이 추천하는 곳은 인천 계양구 계양산 둘레길이다. 솔밭, 숲 탐방로가 있어 삼림욕을 즐길 수 있다. 코스가 다양한 것도 장점이다. 산을 오르면 영종도, 강화도를 비롯해 크고 작은 섬을 내려다볼 수 있다. 인천 옹진군 신도, 시도, 모도는 3개의 섬이 다리로 연결돼 있어 자전거 타기는 물론 트레킹을 즐기는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풍광이 빼어나고 즐길 거리도 많아 가을에 찾으면 더 매력적이다. 신도에서는 바다를 바라보며 구봉산 섬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시도에는 수기해수욕장이, 모도에는 배미꾸미 해변이 있다. 경기 포천시 한탄강주상절리길은 시원한 전망과 색다른 풍경을 자랑한다. 협곡 사이에 난 다리를 건너보며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가평군 잣향기푸른숲은 80년 이상 된 잣나무숲이 국내 최대 규모로 분포해 산림욕을 하며 휴식을 하기에 좋은 곳이다. 육지와 불과 700m 떨어져 있는 조용한 섬으로 갯벌이 펼쳐져 있는 충남 서산시 웅도도 가 볼 만하다. 섬 모양이 곰을 닮았다고 해서 웅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바다 옆으로 덱 길이 있어 천천히 걸으며 멋진 풍광을 감상하기에 좋다. 한적한 분위기에서 여유롭게 즐기며 추억을 만들어 보자. 부산 해운대구 장산은 정상에 오르면 해운대 마린시티와 광안대교가 한눈에 펼쳐진다. 다양한 등산 코스가 있어 취향에 맞춰 선택하면 된다. 바위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중봉은 사진 찍기에 좋다. 억새밭에서는 무르익어가는 가을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울산 남구 선암호수공원은 도심에서 자연을 즐길 수 있는 공원이다. 선암댐과 저수지 주변의 자연 경관을 활용해 조성했다. 탐방로와 꽃단지, 생태습지원, 연꽃군락지 등이 있다. 호수가 드넓게 자리 잡고 있어 보기만 해도 마음이 탁 트인다. 천천히 산책을 즐기고 포토존에서 이색 사진을 찍다보면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경북 상주시 경청대전망대는 울창한 노송 숲을 걸으며 주변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울진군 등기산스카이워크는 탁 트인 바다와 시원한 파도 소리가 몸과 마음을 씻어준다. 제주 서귀포시 고살리 숲길은 제주 곶자왈 숲을 온전히 보여주는 곳으로 조용하고 여유롭게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자연의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어 제주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다. 한라산 천아숲길은 돌오름에서 천아수원지까지 이어진 구간으로 노로오름, 천아오름 등이 있다. 무릉자전거도로는 해안도로에서 송악산까지 다채롭고 아름다운 제주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전북 완주군 고산창포마을은 우리 창포를 집단으로 재배하는 곳이다. 전남 목포시 시화마을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보리마당에서는 항구와 바다, 마을의 경관을 볼 수 있다. 영화‘1987’을 촬영한 연희네 슈퍼가 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햄릿은 죽느냐 사느냐를 고민했지만 이 시대 청년들은 별다른 선택지도 없고 삶 자체가 너무 힘듭니다. 이들을 위로해 주고 싶어요.” 창작발레 ‘햄릿의 방’에 햄릿 역으로 출연하는 조기숙 이화여대 무용과 교수(61·사진)가 말했다. 서울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에서 26일 오후 8시 공연하는 이 작품은 그의 제자인 한혜주의 장편 안무작이다. 햄릿을 현대의 청년으로 설정해 갖은 폭력으로 고통스러워하지만 유령의 목소리를 듣고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차츰 삶에 대한 감각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스승이 제자의 공연에 출연하는 경우는 드물다. 조 교수는 이전에도 제자의 무대에 섰다. “스승과 제자는 같이 춤추는 관계예요. 제자들, 그러니까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고민하는 게 제가 할 일이고요.” 그는 청년들이 코로나19로 더 힘들어졌다며 안타까워했다. “청년들은 갈 곳도 없고, 원하는 걸 하기도 어렵습니다. 전염병은 저를 포함해 기성세대가 지구와 동식물에게 가한 잘못의 결과라고 생각해요.” 이번 공연도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았다. 공연장은 400석이지만 무용수와 스태프를 포함해 모두 50명만 들어갈 수 있어 관람은 30명만 가능하다. 이 때문에 관객을 초대해 열게 됐다. 그래도 그는 희망을 얘기했다. “아프다는 건 살려고 몸부림치는 과정이잖아요. 지구가 제 목소리를 들어 달라고 절규하는 거니까요. 생명을 살리겠다는 간절한 염원을 무대를 통해 전하고 싶습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겐이치의 돼지 저금통이 사라졌다. 경찰 아저씨가 배에 겐이치 이름과 집주소가 쓰여 있는 돼지를 데리고 왔다. 겐이치가 쓴 건 맞는데, 저금통이 살아 움직이다니! 필통만 하던 크기도 베개만큼 커졌다. 가출한 건 세계 일주를 하기 위해서란다. 실은 겐이치도 세계 여행을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저금통에 든 돈으로 세계 여행은 어림도 없다. 마침 할머니 댁에 놀러가려던 겐이치는 돼지 저금통과 함께 기차를 탄다. 가까이 있던 물건이 생명을 가진 존재가 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깜찍하게 그렸다. 기차 타기, 도시락 사 먹기, 온천에 간 듯 따뜻한 물에 목욕하기를 통해 여행하는 기분을 내는 겐이치와 돼지 저금통.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작은 즐거움과 설렘을 통통 튀게 전한다. ‘냉장고의 여름방학’ ‘책가방의 봄 소풍’ 등 물건에도 마음이 있다고 상상한 ‘제멋대로 휴가시리즈’의 6번째 책이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시각장애인 학생들, 저는 이들을 ‘아마추어 예술가’라고 부릅니다. 이들과 24년째 예술 활동을 함께하며 서로 다른 눈을 통해 세상을 보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화가 엄정순 씨는 14일 제5회 국제예술교육실천가대회(ITAC5)에서 ‘어쩌다 리더가 된 예술가’를 주제로 한 기조발제에서 말했다. 세계 문화예술 교육가들이 참여하는 이 행사는 2012년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개최된 후 호주, 영국, 미국에서 격년으로 열렸다.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으로 한국에서 14∼17일 열리게 됐는데 코로나19로 온라인으로 진행 중이다. ‘예술은 어떻게 세상의 눈을 바꾸어 가는가’를 주제로 19개국 64명의 발제자가 참여한 가운데 국내외 문화예술인과 교육가 350여명을 비롯해 모두 1000여명이 온라인으로 만나고 있다. 행사는 ITAC 국제운영위원회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원장 이규석)이 주관한다. 엄 씨는 1996년부터 시각장애인 학생들과 미술 수업을 하고 있다. 사물을 손으로 만져보고 그 느낌을 표현한다. 코끼리를 만져본 후 이를 조형물로 표현하는 ‘코끼리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엄 씨는 “점 네 개를 찍어 포크를 표현하는 등 제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이미지를 만들어내 영감을 많이 받고 있다”며 “예술의 사회 참여는 서로가 함께 예술화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 가운데는 미대로 진학한 경우도 있다. 시각장애가 있어도 미술을 할 수 있음을 증명해 낸 것이다. 필리핀 산아구스틴대의 로살리에 제루도 교수는 빈곤, 재난에 시달리는 이들의 상처를 예술로 치료하고 있다. 제루도 교수는 “함께 문을 만들어 바닷가, 계곡 등에 설치하는 작업을 통해 미래로 나아가는 문을 열자는 의미를 담았다”고 말했다. 억울하게 수감된 난민 여성들을 만나 상처를 치유하는 프로젝트도 실시했다. 그는 “여성들이 인형을 직접 만들면서 자아를 회복하고 정신적으로 자유를 느끼며 조금씩 활기를 찾았다”고 말했다. 멕시코계 캐나다 미디어 아티스트인 라파엘 로사노에메르는 미국과 멕시코 국경 지대에서 빛으로 다리를 만든 ‘경계 조율(border Tuner)’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그는 “미국, 멕시코 양쪽에서 쏘아올린 빛은 사람의 말에 반응하도록 설계해 빛이 맞닿으면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다”며 “두 나라 사이의 장벽도 생각과 교류는 막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2주간 수만 명이 참여한 이 프로젝트에서 마이크를 통해 대화하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김자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교육기반본부장은 “아시아에서 예술교육 활동을 공유하고 고민하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만들어 내고 싶다”며 “코로나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예술가의 상상력과 시도, 예술에 대한 욕구를 펼치고 공유할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선배님 방은 한의원 같아요. 한의사가 환자들에게 ‘어디가 아파서 오셨나요?’라고 묻는 것처럼 조사받는 이들을 대하시더라고요.” 양중진 춘천지방검찰청 강릉지청장(52·사진)이 후배 검사에게서 들은 말이다. 양 지청장은 말한다. “수사를 하려면 잘 들어야 한다. 질문은 잘 듣기 위한 보조 수단이다.” 그가 오감으로 소통한 경험을 담은 ‘검사의 대화법’(미래의 창·1만4800원)을 출간했다. ‘검사의 삼국지’ ‘검사의 스포츠’에 이은 세 번째 책이다.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사에서 6일 그를 만났다. “말이 없는 편인데 그걸 포장하다 보니 잘 듣는다고 한 거예요.(웃음) 초임 때는 언성을 높이며 추궁했는데, 3학년(세 번째 임지에서 근무하는 검사) 정도 되니까 이래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때로 짜증이 치솟기도 하지만 일단 참고 귀를 기울인 뒤 질문을 구체적으로 했다. 사기죄 피의자에게는 ‘약속대로 이자나 원금을 모두 갚았는지’ ‘○월 ○일까지 돈을 갚기 위한 실현 가능한 계획이 있었는지’를 묻는 식이다. 그는 듣기 내공(?)으로 상습 고소인으로 유명한 할아버지의 사건도 해결했다.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눈을 감은 채 쉬지 않고 욕을 섞어 말을 쏟아내는 할아버지를 보다가 속기사에게 그대로 받아치게 한 것. 10주에 걸쳐 무려 500쪽이 넘는 분량의 고소장이 작성됐고 결국 피고소인은 위증죄 판결을 받았다. “다른 상습 고소인과 달리 그분의 말을 들어 보니 허무맹랑하지 않고 팩트가 있더라고요. 불기소 처분을 내렸으면 고소장에 제 이름도 추가될 것 같았고요.”(웃음) 생활인으로서 검사의 모습도 비춘다. 검사들끼리 승부차기가 평등의 원칙에 맞는지 논쟁하던 중 한 선배가 “세계적인 스트라이커 로베르토 바조도 2006년 월드컵 결승 승부차기에서 심리적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공을 허공으로 날려버렸다”고 말했다. 한 후배가 “2006년이 아니라 1994년이었죠”라고 지적하자 돌아온 선배의 반응. “역시 이 검사는 내 말을 완벽하게 완성해 주는군!” 재치 있게 후배의 체면을 살려주고 스스로도 무안해지지 않게 만든 선배의 말에 가슴속에서 진심 어린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접촉 사고를 낸 아내의 호소에 판사, 검사, 변호사 남편이 각각 다르게 대꾸하는 이야기, 점심을 먹으러 갈 때 판사들은 2열 종대형으로, 검사들은 이순신 장군이 사용한 학익진 대형(학이 날개를 편 듯 둘러싸는 진법)으로, 변호사들은 자유분방형으로 이동하는 이유를 소개하는 등 깨알 재미도 선사한다. 시선과 침묵, 헛기침, 손의 움직임 등 말로 하지 않는 것에도 의미가 담겨 있음을 찬찬히 일러준다. 그는 검사 후배, 나아가 사회생활을 하는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책에 담았다고 했다. “메신저가 활성화되면서 직접 만나는 일이 줄어들었어요.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알게 됩니다. 식사도 혼자 하는 경우가 많은데 같이 밥 먹으며 선배에게 물어보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마리를 얻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가 책 속지에 사인과 함께 글귀를 써서 건넸다. ‘겸손, 배려, 경청, 손효림 님의 향기입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언덕 위 빼곡한 집들. 꼬불꼬불 난 수많은 계단을 오르면 아주 작은 집이 나타난다. 그리고 전병호 시인의 ‘우리 집 하늘’이 흐른다. ‘우리 집 하늘은/반 평이다.//처마와/담 사이에서/네모난 하늘.//고개를 삐끔 내밀다/해가/그냥 가더니//달도/한 걸음에/건너가 버린다.//옥상에 오르면/아무도 가지지 않은/수천 개의 별은 모두/내 차지다.//우리 집 하늘은/억만 평이다.’ 비 온 뒤 물웅덩이에 금붕어가 놀고 아이는 어느새 거북이, 물고기들과 유영한다. 홍학, 공작새가 머무는 숲으로도 간다. 노란 달 위에 모여 앉은 아이와 새들. 온기가 돈다. 아이 곁에 늘 함께하는 검은 고양이는 단짝 친구다. 네모난 하늘을 보며 넓은 세상을 향해 마음껏 뻗어가는 상상의 힘을 몽환적인 그림에 담았다. 시어가 노래처럼 귓가에 들리는 듯 고운 시그림책이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1. “너 같은 거 꼴도 보기 싫어!” 친구의 말에 미운 마음이 싹튼 아이. 한데 목에 생선 가시가 걸린 것 같고 발목에 무거운 족쇄를 찬 듯하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 이상해. 싫은 사람을 자꾸 떠올리면서 괴로워해’라고 깨달은 아이는 미워하는 걸 그만둔다. 그리고 자유로워진다. 조원희 작가의 그림책 ‘미움’(만만한책방)의 내용이다. #2. 체육 시간에 바지에 구멍이 난 그린이. 휴대전화도 잃어버려 엄마 아빠에게 꾸중을 듣는다. 그린이는 휴대전화를 또 잃어버릴까, 학교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면 냄새가 날까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걱정이 괴물처럼 달라붙는다고 털어놓자 할머니는 아파트 나무에 걱정괴물을 걸어두라고 알려주고 그린이는 비로소 걱정에서 벗어난다. 김영진 작가의 그림책 ‘걱정이 너무 많아’(길벗어린이)다. 감정, 자아를 찬찬히 들여다보는 그림책들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어린이는 물론 어른도 위안을 받았다는 이가 많다. 지난달 나온 ‘걱정이 너무 많아’는 한 달 만에 5000권이 판매됐고 ‘미움’은 올해 7월 출간된 후 두 달 만에 5000권 가까이 팔렸다. 성인용 책을 포함해 그림책 시장에서 이 같은 판매량은 이례적이다. 교보문고, 예스24의 홈페이지에는 “미움이란 감정을 사실적이고 공감 가게 표현했다”, “걱정이 많던 내게 아이보다 더 필요한 책”이라는 독자들의 글이 올라왔다. ‘미움’을 낸 전소현 만만한책방 대표는 “책을 보다 울었다는 독자도 있는 등 예상보다 뜨거운 반응에 놀랐다”고 말했다. ‘걱정이 너무 많아’를 낸 길벗어린이의 최은영 편집자는 “나무에 걱정을 걸어놓는 방법을 나도 한 번 시도해봐야겠다는 독자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마음여행’(오올)에서는 어느 날 아이의 가슴에 구멍이 동그랗게 뻥 뚫리며 마음이 데굴데굴 굴러서 도망가 버린다. 그날 이후 갖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없어져 버렸다. 아이는 마음을 찾아 먼 길을 나서고, 포기하고 싶을 때 마음을 찾는다. 그리고 구멍 난 가슴에는 마음씨앗이 ‘뾰롱’ 싹을 틔운다. 온라인 서점에는 “왜 이렇게 의욕이 없는지 내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먹먹했다”, “나를 들여다보고 나의 마음을 채워가고 싶다”는 글이 줄을 이었다. 김유강 작가는 “마음을 꿈으로 바꿔 읽어도 된다. 꿈을 포함해 모든 걸 담을 수 있는 게 마음이기에 이를 찾아보자는 뜻에서 책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기린 작가의 ‘요술더듬이’(파란자전거)에서는 친구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요술 더듬이를 가진 아이가 친구들의 기분에 맞춰주려 애쓴다. 친구들을 기쁘게 해주고 싶었는데 요술 더듬이가 자랄수록 아이는 점점 힘들어지고 자신이 사라져 버린 것 같다. 한참 동안 울다 어디선가 들려온 작은 목소리와 이야기를 나눈 아이는 모두 즐겁게 지내려면 자기 마음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다른 이와 비교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라고 찬찬히 짚어주기도 한다. ‘작고 하얀 펭귄’(와다 히로미 글·미우라 나오코 그림·북뱅크)에는 온 몸이 새하얀 펭귄이 회색과 까만색이 섞인 다른 펭귄들과 다르게 생긴 데다 달리기도 잘 못해 고민한다. 그때 엄마 펭귄의 목소리가 들리며 “숨바꼭질할 때 눈 속에 숨으면 감쪽같고 달릴 때 맨 뒤에 가다가 누군가 넘어지면 일으켜 줄 수 있다”고 말해준다. 이들 그림책이 큰 사랑을 받는 건 직관적인 그림과 구체적인 문장으로 독자들이 평소 느끼고 생각한 바를 명료하게 표현해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김혜진 그림책보다연구소장은 “아이의 감정, 친구 관계, 자아에 대한 고민에 관심을 갖는 부모가 많고 책을 통해 위로를 얻으려는 성인 독자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그림책은 한눈에 들어오는 이미지와 짧게 응축된 문장으로 구성돼 독자에게 강렬하게 와닿는 힘을 지녔다”고 말했다. ‘그림책은 평생 세 번 읽는 책’이라는 말이 있다. 어릴 때, 부모가 됐을 때, 손주가 생겼을 때 읽는다는 것. 김 소장은 “자녀가 없는 20, 30대도 그림책을 즐기는 경우가 많아 그림책 독자층은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시인은/어느 누구에게도 영혼 팔지 말고/권리 못지않게 의무 행하며/생명의 존엄/도도하게 노래하라 해야 한다”(‘시인1’) “…세상에는 결론이 없다/우주 그 어디에도 결론은 없다/결론은 삼라만상의 끝을 의미하고/만물은 상극의 긴장 속에서 존재한다…”(‘모순’) 우리말로 또박또박 흘러나오는 박경리 선생의 시. 낭송하는 이들은 푸른 눈에 금발, 검은색 커다란 눈에 콧날이 오뚝한 러시아 학생들이었다. 지난달 21일 온라인으로 열린 제2회 박경리문학제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국립대 모스크바국립외국어대 학생과 교수들은 러시아에서, 한국 작가와 교수 등은 한국에서 4시간 동안 논의를 이어갔다. 한국과 러시아가 분야별로 포괄적으로 소통하고 교류하기 위해 만든 한러대화(KRD)에서 마련한 행사였다. 한국학, 한국어를 전공하는 러시아 학생들은 시의 의미를 음미하며 한 단어 한 단어 정확하게 발음했다. ‘토지’를 읽고 연구한 러시아 측 참석자들은 “토지에는 모두 700여 명의 인물이 나온다고 하는데, 인물 한 명 한 명이 생생하게 살아 숨쉰다. 작품에 흐르는 강한 생명력도 놀랍다”고 했다. ‘육룡이 나르샤’, ‘녹두꽃’을 연출한 신경수 PD는 SBS 드라마 ‘토지’의 조연출을 맡았던 때를 떠올리며 “배우들이 열연할 때 카메라 뒤에서 소리 없이 눈물을 닦는 스태프가 많았다. ‘토지’는 마음을 울리는 장면이 가득한 작품이라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박경리 선생의 외손자인 김세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은 “할머니를 떠올리면 어머니 같은 느낌이 든다. 어머니가 따로 계시지만 제게 할머니는 그런 분이다”라고 했다. 지난달 출간된 ‘서로 다른 기념일’은 청각장애를 지닌 일본인 부부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아이를 낳아 기른 경험을 담은 책이다. 저자인 사진가 아빠 사이토 하루미치는 아이가 자다 깨는 걸 알아차리기 위해 오른손을 아이 가슴 위에 올려놓고 잔다. 아이는 울어도 엄마 아빠가 듣지 못하는 걸 직감으로 알았는지 배가 고프면 엄마의 손을 잡거나 꼬집는다. 그래도 엄마가 잠에서 깨지 못하면 작은 손으로 엄마의 머리카락을 돌돌 말아 쥐고는 “악”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잡아당긴다. 자랄 때 발음 훈련을 받은 사이토 씨는 자신의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수화를 선호했지만 아이가 태어나자 천천히 “너, 의, 이, 름, 은, 이, 쓰, 키”라고 소리 내 말해준다. 이쓰키는 원하는 게 있으면 온몸을 버둥대고, 엄마 아빠와 눈을 맞추기 위해 애쓴다. 부부는 듣고 말할 수 있는 다른 가족과 이쓰키가 함께 시간을 보내게 하며 아이가 언어도 익히도록 한다. 박경리 선생과 그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려는 열망은 언어와 장소를 넘어 활발한 논의를 이끌어 냈다. 사이토 씨 가족 역시 각자 다른 몸을 지녔지만 모든 감각을 활짝 열어 의사를 주고받는다. 서로의 간극을 메우는 건 지혜와 용기, 그리고 노력이었다. 이를 보며 깨닫는다. 소통을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서로에게 다가가려는 간절함이라는 것을. 손효림 문화부 차장 aryssong@donga.com}

동생이 열나고 아프다. 함께 가던 학교를 혼자 간다. 터덜터덜 걷다 이런, 껌을 밟았다. 학교에선 크레파스가 똑 부러져 거의 다 그린 그림에 선이 죽 그어졌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나니 아뿔싸, 휴지가 없다. 날아온 공은 얼굴을 때린다. 집에 가는 길, 비까지 내린다.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온다. 그때 들린 목소리. “형아!” 동생이 우산을 들고 마중 나왔다! 낭패를 겪을 때면 아이의 얼굴과 몸은 블루베리 멜론 레몬 오렌지 딸기로 바뀐다. 아이가 느낀 감정의 색깔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신선한 묘사에 감탄이 나온다. 동생을 향해 달려가자 서러움도 날아가고, 딸기였던 아이는 차츰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다. 나란히 쓴 우산 아래서 쿡쿡 웃는 둘. 정겨움이 담뿍 묻어나온다. 책에 나온 글은 ‘형아!’뿐이다. 그림으로 충분히, 아니 더 풍부하고 사랑스럽게 이야기와 마음을 담아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전업주부로 딸 셋을 키우고 46세에 동화작가가 됐다. 50세 기념 적금을 부으며 뭘 할지 즐거운 상상을 하다가 우리 나이로 50세를 맞았다. 한데 덜컥 찾아온 건 갱년기 우울증. 과자, 초콜릿을 달고 살았다. 순식간에 10kg이 늘어 체중계는 64kg을 가리켰다. 견딜 수 없어 시작한 운동. 삶이 바뀌었다. 46kg 근육질 몸매로 피트니스 대회에 나갔다. 채널A ‘TV 주치의 닥터 지바고’를 비롯해 방송 출연 요청이 이어졌고 포털 사이트 메인 화면에 올랐다. 올해 7월 출간한 ‘50, 우아한 근육’(사진)은 한 달 만에 초판 2000권이 다 팔렸다. ‘운동하는 동화작가’ 이민숙 씨(50) 이야기다. 이 작가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2일 만났다. 키 164.5cm로, 초록색 체크무늬 원피스를 입은 그에게서 경쾌한 에너지가 흘렀다. 그는 “저질체력이던 내가 이렇게 바뀔 줄 몰랐다”며 웃었다. 그가 운동을 하게 된 건 보디빌딩 대회에서 2위를 한 75세 임종소 할머니의 TV 인터뷰를 우연히 본 게 계기가 됐다. “처음에는 아파트 계단을 오르내렸어요. 그러다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에 지난해 가을 피트니스센터를 찾았죠. 트레이너 선생님이 피트니스 대회 출전을 권했어요.” 피트니스 대회에 나가려면 100일 정도 준비해야 하는데 당시 대회까지는 60일밖에 남지 않았다. 트레이너는 2020년 봄 대회를 목표로 하라고 했지만 그는 2019년을 고집했다. “50세가 지나기 전에 뭔가 꼭 이루고 싶었어요. 한데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어요.” 하루 네 끼 닭가슴살, 고구마, 채소만 먹었다. 그렇게 채소를 많이 먹은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매일 무게를 늘려가며 덤벨을 들어올릴 때면 지옥이 따로 없었다.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을까. “갱년기 증상을 빨리 극복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갑자기 화가 치솟고 등이 화끈거리면서 땀으로 흠뻑 젖고…. 계속 그렇게 지내기 싫었어요. 독박육아로 애 셋을 키우다 보니 의지력도 생긴 것 같고요.(웃음)” 식단을 바꿔 규칙적으로 먹고 운동하니 몸에서 독소가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처음으로 자신의 11자 복근도 만났다. “가족들 뒷바라지를 하다가 나에게만 집중하는 게 참 좋았어요. 몸은 정직해요. 내가 하는 만큼 결과가 나오니까요. 무기력증도 사라졌고요.” 가족의 응원 속에 굽 15cm 하이힐을 신고 피트니스 대회 무대에 선 날, 떨면서도 1분 20초간 무사히 해냈다. 건강한 몸을 만들자 자신감도 생겼다. 이 경험을 담은 에세이 ‘50, 우아한 근육’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단순히 운동법과 식단만 정리한 건 아니다. 먹는 게 왜 중요한지, 근육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몸이 바뀌면 정신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등을 자신의 경험과 함께 여러 전문 서적을 인용해 설득력 있게 썼다. 책을 읽다 보면 자신의 몸을 돌아보고 생활 방식과 식습관을 하나하나 따져보게 된다. 독자들은 “갱년기를 먼저 경험한 옆집 언니가 대비 방법을 도란도란 얘기해주는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요즘 채소, 단백질 중심으로 하루 세 끼를 먹고 일주일에 한 번 원하는 음식을 마음껏 즐긴다. 운동은 일주일에 세 번, 산책은 한 번 한다. 운동과 산책하는 시간은 각각 한 시간 반 정도다. 일상에서도 몸을 많이 움직인다. 에스컬레이터는 타지 않는다. 지하철 환승역의 계단이 아무리 많아도 걸어서 올라간다. “나를 운동시켜주는구나”라고 반기면서. “스쾃은 매일 200번 해요. 엉덩이가 커서 콤플렉스였는데 운동을 하니까 엉덩이가 위로 올라가 이른바 ‘애플 힙’이 됐어요. 다리도 길어 보이고요. 열심히 유지해야죠.(웃음)” 그는 뼈를 붙들고 있는 근육이 튼튼해야 뼈도 튼튼하고 체력도 근육에서 나오기에 재테크를 하듯이 근육을 키우는 ‘근육 테크’를 하라고 강조했다. 50세를 위해 3년간 부은 적금을 운동에 썼던 그는 60세를 위한 적금도 붓고 있다. 영어 배우기, K팝 댄스 등 새로운 분야를 떠올리면 가슴이 뛴다. “50대는 나에게 집중할 수 있어서 도전하기 좋은 나이예요. 물론 어려운 시기도 중요한 삶의 조각들이고요. 인생은 즐거웠던 순간, 괴로웠던 순간의 그 모든 퍼즐이 없으면 완성되지 않는 것 같아요. 힘든 때가 오거나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운동을 해보세요. 생각이 바뀌고 일도 더 몰입해서 할 수 있답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한국기원이 서울 성동구에서 경기 의정부시로 이전한다.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서 1994년 성동구로 옮긴 한국기원은 시설이 노후화되고 공간이 부족해 새 부지를 물색해 왔다. 의정부에는 국내 첫 바둑 전용 경기장도 들어선다. 임채정 한국기원 총재와 이재명 경기도지사, 안병용 의정부시장은 3일 경기도청에서 ‘한국기원 이전 및 바둑전용경기장 건립 협약’을 체결했다. 바둑경기장 건립에는 400억 원이 투입돼 2022년 말 준공될 예정이다. 의정부시는 부지 제공과 건축을 맡고, 경기도가 재정 및 행정을 지원할 예정이다. 의정부시 호원동 옛 기무부대 터에 들어서는 바둑전용경기장은 지하 1층, 지상 4층으로 면적은 1만2597m²(약 3810평)이다. 대국장과 관람실, 교육장과 전시실, 대국 중계 미디어실로 구성된다. 안 시장은 “중국, 일본의 프로기사들이 방한하면 한국기원이 아닌 호텔에서 바둑을 둘 만큼 시설이 열악하다는 얘기를 듣고 본원 유치를 추진했다”며 “한국 바둑의 얼과 기가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고종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며 1904년 경북 의성 고운사 경내에 지은 연수전(사진)이 보물 제2078호로 지정됐다고 문화재청이 31일 밝혔다. 경북 유형문화재에서 보물로 승격된 의성 고운사 연수전은 고종이 1902년 기로소(耆老所)에 입소하자 지어졌다. 기로소는 70세가 넘은 정2품 이상 문관의 친목 및 예우를 위해 설치한 기구로, 왕은 60세가 넘으면 들어갈 수 있었다. 조선 시대 기로소에 입소한 왕은 태조 숙종 영조 고종이다. 고운사는 신라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연수전은 솟을삼문 정문과 담장이 있어 사찰 내 다른 건물과 구분된다. 본전 건물은 3단 석축 위에 있다. 중앙 칸에 생년월일, 아호 등을 쓴 어첩(御帖) 봉안실이 있다. 문화재청은 “규모는 작지만 황실에 어울리는 격식을 갖췄고 기능과 건축 형식이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아침에 거울을 본 꼬질이. 이가 몽땅 빠져 입이 쭈글쭈글해졌다. 울음이 터져 나온다. 엄마와 함께 치과에 가지만 의사 선생님은 이유를 알 수 없어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몬스터 치과병원에 가 보렴.” 몬스터 치과의사는 꼬질이의 엄지손가락 굳은살을 보고 손가락 빠는 버릇을 간파한다. “손가락을 빨면 세균이 들어가 앞니가 도망간 것”이라고 말한다. 꼬질이 옷에 붙은 밥알, 주머니에 가득한 사탕을 확인하고는 “음식을 오래 물고 다녀 송곳니가 도망갔고, 사탕을 많이 먹고 이를 잘 닦지 않아 어금니가 도망갔다”고 설명한다. 몬스터 의사와 꼬질이는 용, 두꺼비와 함께 이들을 찾기 위한 모험에 나서는데…. 치과의사인 저자가 어린이의 치아 관리를 위해 쓴 동화다. 치실 사용법(2권), 치아에 좋은 음식(3권), 올바른 양치질 방법(4권)도 담았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머리에 정보가 쏙쏙 들어온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자녀가 게임 때문에 공부를 안 한다고 속상해하는 부모가 많은데요,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성적, 가정·친구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를 푸는 수단이 게임일 뿐이에요. 공부나 인간관계에서 못 느낀 성취감을 게임에서는 맛볼 수 있으니까요.” 방승호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관(59)은 게임에 대한 오해가 크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충정로의 한 카페에서 최근 만난 그는 “아이들이 게임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뭔지 들여다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지난달 온라인으로 개최한 2020 게임문화포럼 관련 회의에서 ‘게임에 빠진 아이 마음 들여다보기’를 주제로 발표했다. 모험놀이로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일선 고교에서 교감, 교장으로 재직하며 학교에 PC방을 만들고 e스포츠학과를 개설했다. 게임 과몰입 치유 프로그램도 운영했다. “게임 과몰입을 치유할 때는 우선 게임을 잘할 수 있게 해줍니다. 그리고 챔피언, 닉네임 등 게임에서 쓰는 영어를 가르쳐요. 골드 실버 브론즈를 올림픽의 금·은·동메달과 연결해 인문학 수업을 하고 글쓰기도 했어요. 게임에서 장애물을 어떤 방식으로 극복했는지 신나게 쓰던 아이들이 인생에서 고비가 닥치면 어떻게 할지 생각하기 시작하더군요.” 프로게이머도 만나게 했다. 게임을 하는 아이들 상당수는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는 꿈을 꾼다. 하지만 막상 프로게이머와 겨뤄보면 자신의 실력이 한참 부족하다는 걸 깨닫고 취미로 즐기겠다고 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게임 중독 척도에 따라 △고위험 사용자군 △잠재적 위험사용자군 △일반 사용자군으로 나누는데, 9회 차 교육을 마친 후 고위험 사용자군의 90% 이상이 일반 사용자군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그는 “일선 학교, 교육청에서 게임 과몰입 치유 프로그램을 적극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가정에서는 부모가 게임의 규칙과 캐릭터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아이가 게임하는 것을 함께 보면서 이기면 잘한다고 칭찬해주세요. 그러다 보면 게임할 때 기분이 어떤지, 왜 게임을 하는지 대화를 할 수 있어요.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다면 인정해주시고요. 단, 직업으로 게임을 할 실력을 갖춘 사람은 전체 지원자의 0.001%도 안 됩니다.” 게임하며 욕하는 아이가 많은데 부모가 “우리 ○○이, 욕도 잘하네”라고 농담처럼 말하면 쑥스러워서 점점 안 하게 된다고 한다. “물론 이런 과정이 순조롭지는 않습니다. 부모는 인내하며 자녀를 이해하려 노력해야 합니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공감해주고 속내를 털어놓게 만드는 질문에 답을 하면서 신기하게도 스스로 길을 찾습니다. 실제 이런 학생을 많이 봤어요.” 그는 사춘기 아이들도 부모와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영화를 같이 보거나 가고 싶은 곳을 여행하며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게임은 몰입도가 정말 큽니다. 게임 회사들이 게임 스토리나 캐릭터를 교과 내용과 연계해 만들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교육 역시 게임의 순기능을 활용해 아이들의 역량을 키우도록 해야 합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아이들은 게임을 통해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박성옥 대전대 아동교육상담학과 교수게임문화에 대한 세대 간 인식 차이는 소통과 공감을 매우 어렵게 한다. ‘게임중독’으로 인한 갈등의 근원과 해결 방법에 대한 고민은 교육과 상담 현장에서 자주 마주하는 화두다. 이런 현상은 세대 간 문화 감수성 차이로 인한 것이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고 고민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게임은 성공의 결과만을 중시하지 않는다. 실패 속에서 즐거움을 얻고, 성공의 보상 속에서 보람을 얻는 심리적 역동에 초점을 둬야 한다. 필자는 임상게임놀이학회를 통해 게임의 치료적 효과를 강조해 왔다. 게임 활동은 비관적인 무능력감으로 힘겨워하는 사람이 낙관적 유능감을 키울 수 있는 치료법이라고 생각한다. 통제와 자율 사이에서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성장해야 하는 청소년에게 게임 문화가 미치는 영향은 특히 크다. 디지털 미디어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강화된 현 시점에 창의적 상상력, 융합적 문제 해결력, 감각적 사고력, 소통과 공감 같은 게임의 긍정적 가치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 미국 미래연구소 수석 디자이너이자 게임 프로듀서인 제인 맥고니걸은 “게임에 몰입해 긍정적인 가치를 배우고 이를 활용할 때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이 재미 이상을 제공해 준 사례는 많다. 3차원(3D)으로 재현된 실제 단백질 분자 구조를 조작해 과제를 달성하는 게임 ‘폴드 잇’은 10여 년간 학계가 풀어내지 못한 단백질 구조를 게임 이용자들이 3주 만에 해결해 불치병 완치에 큰 기여를 했다. 북극곰의 생태 위기를 게임으로 구현해 기후변화와 환경오염 문제를 환기시킨 ‘북극곰을 부탁해’, 기근에 시달리는 나라에 식량을 지원하는 ‘푸드 포스’ 같은 게임 역시 우리가 보다 나은 세상을 꿈꾸게 만드는 데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강가 느티나무 아래 앉아/땅에 떨어진 나뭇가지를/톡톡 분질러 던지며 놀았다/소낙비가 쏟아졌다/커다란 나뭇가지 아래 서서/비를 피했다/혼자다.’ 김용택 시인(72)의 새 동시집 ‘은하수를 건넜다’(창비)에 실린 시 ‘혼자였다’다. 코로나19로 사람들과 가까이 하지 못하는 지금, 가슴에 더 와 닿는 시들이 많다. 절판된 시집 ‘내 똥 내 밥’에서 시 여러 편을 가져와 새로 써서 담았다. 김 시인은 머리말에서 “내가 사는 산골 마을에 어린이가 사라진 지 오래됐다. 어린이가 없는 마을은 정말 심심하다. 그 심심함이 시가 됐다”고 말했다. 이어 “2020년은 지구와 자연, 그리고 생산과 소비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특별한 해”라며 “작고 낮고 느리게 살게 하는 농사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시인은 산골에서 달팽이를 내려다보며 앉아 있기도 하고 참새들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혼자 논다. 외로움보다는 자연 속에서 혼자 놀기에 단련된 느긋함, 옛 기억을 떠올리는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별을 보러/마당에 나갔다./은하수가 길게 흐른다./양말을 벗고/바지를 걷어 올리고/신발을 벗어 들고/은하수를 건너갔다가/다시 건너왔다./첨벙첨벙 은하수 물은/얕았다.’ 표제작 ‘은하수를 건넜다’는 하얀 은하수를 하염없이 올려다보며 맑은 밤공기를 한껏 들이마신 후 쏟아낸 듯하다. 향토어로 나눈 대화를 실감나게 담은 ‘장날’, 논두렁을 따라 집에 가다 만난 개구리들을 묘사한 ‘개구리’, 같이 일하고 먹고 놀며 거짓말 하지 않고 살았던 시절을 노래한 ‘옛 마을’ 등 자연과 사람살이를 편안한 언어로 해사하게 그렸다. 수명 작가가 연필로 그린 그림은 수묵화처럼 은은한 여운을 남긴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J K 롤링이 코로나19 사태로 실의에 빠진 어린이들에게 선사한 소설 ‘이카보그’가 18일부터 한국어판 공식 홈페이지에서 무료 연재를 시작한다. 문학수첩은 ‘이카보그’ 연재는 10월 2일까지 하며, 10월 9일까지 모든 연재물을 읽을 수 있다고 16일 밝혔다. 64챕터로 구성된 ‘이카보그’는 평일에 하루 2, 3챕터씩 연재한다. ‘이카보그’는 10년 전 롤링이 잠자리에 든 자녀들을 위해 쓴 이야기로, ‘코르누코피아’라는 왕국을 배경으로 ‘이카보그’라는 전설 속 동물을 둘러싸고 펼쳐지는 모험을 그렸다. 연재가 끝나면 올해 안에 단행본과 전자책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이카보그 일러스트 공모전’도 18일부터 10월 9일까지 열린다. 자세한 내용은 공모전 홈페이지와 문학수첩리틀북 SNS를 참조하면 된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개미에게는 요술 더듬이가 있다. 친구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것. 릴라와 놀던 개미는 아지가 릴라와 놀고 싶어하는 마음을 알고는 자리를 비켜준다. 아지가 릴라의 인형을 망가뜨리자 개미는 이를 고쳐준다. 툭하면 소리 지르는 아지도 달래고, 같이 놀자는 악어도 외면할 수 없다. 친구들을 즐겁게 해 주려 노력할수록 더듬이도 쑥쑥 자란다. 한데 이상하다. 어떻게 말해야 친구들이 행복해할까 고민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눈물만 자꾸 나올 뿐이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맞춰 주려 애쓰다 자신을 챙기지 못하는 아이에게 모두가 즐거우려면 자기의 마음에 먼저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해준다. 울고 있던 개미는 낯설고 반가운 목소리와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눈 후 이를 알게 된다. 내 감정을 표현해도 괜찮다. 아니, 그래야 괜찮아진다. 그리고 친구의 마음도 헤아리면서 함께 어울리는 게 진짜 괜찮은 거라는 걸 공감 속에 깨닫게 된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