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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란과 거래하는 모든 국가에 25%의 관세를 즉시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28일부터 반(反)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대폭 강화하며 시위대를 유혈 진압 중인 이란 당국에 경고를 보낸 것이다. 노르웨이 기반의 국제 인권단체인 이란인권(IHR)에 따르면 시위 발발 뒤 이날까지 최소 648명이 숨졌고 일각에선 6000명 이상 사망을 거론한다. 이에 미국 국무부는 이란에 거주하는 자국민에게 “즉시 이란을 떠나라. 미국 정부의 지원에 의존하지 않는 자체적인 출국 계획을 마련하라”고 공지했다. 관세 부과 발표는 이란의 핵 개발 의혹에 따른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이란산 원유를 대거 수입하는 중국을 겨냥한 조치로 풀이된다. 국제 정보조사업체 트레이드아이멕스에 따르면 중국은 2024∼2025년 325억 배럴의 이란산 원유를 수입했다. 이란 전체 원유 수출량의 90.8%에 달한다. 다만 한국 기업은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이란 제재를 단행한 2018년 뒤 이란 관련 교역이 거의 없어 큰 타격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 美, 이란-중국 동시 옥죄기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번 관세가 “즉시 효력을 발휘한다. 최종적이며 변경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이란산 원유·천연가스·각종 상품을 수입하거나 이란 기업과 거래하는 기업이 미국과도 거래한다면 25%의 추가 관세를 물리겠다는 뜻이다. 관세로 이란이 원유 수출 대금을 미국 달러로 회수하는 일은 더 어려워졌다. 달러 유입이 줄면서 그렇지 않아도 연일 사상 최저치인 이란 리얄화 가치는 더욱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강문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란은 외환 보유액도 매우 부족해 당국이 느끼는 어려움이 계속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제재는 미국과 패권 갈등 중인 중국을 겨냥한 측면도 크다. 중국은 미국과 갈등을 빚는 이란, 베네수엘라 등에서 원유를 대거 수입했기에 이번 제재가 중국의 원유 확보 전략에 부담을 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앞서 3일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축출하며 세계 1위 원유 보유국인 베네수엘라 원유 시장을 사실상 장악했다. 중국은 이번 관세가 “불법 제재”라며 반발했다. 미국 국무부는 이란 내 도로 폐쇄, 대중교통 운행 차질, 인터넷 제한 등을 거론하며 “이란을 떠나 이웃 튀르키예나 아르메니아로 가라”고 권고했다. 이란은 1979년 11월∼1981년 1월 444일간 52명의 미국인을 인질로 삼았다. 이후 미국은 이란과 단교했고 현재 이란 수도 테헤란에는 주미국 대사관이 없다. 미국 국무부가 사이버 대사관만 운영 중이다. ● 트럼프, 군사 개입 가능성 여전히 검토 중 한편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12일 이란 공습 또한 미국 군통수권자(대통령)가 “선택 가능한 많은 옵션 중 하나”라고 밝혔다. 그는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군사 옵션을 쓰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란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군사 공격을 승인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 있다고 전했다. 다만 J D 밴스 부통령을 포함한 일부 고위 참모들은 “미국이 반정부 시위대를 부추긴다”고 주장하는 이란 당국에 유혈 진압의 빌미를 줄 수 있다며 외교 해법을 선호한다. 또 이란의 중동 지역 내 영향력과 군사력 등을 감안할 때 군사 개입의 부작용이 클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WSJ는 트럼프 대통령이 13일 외교안보 참모진과 회의를 한 후 군사 개입 가능성을 결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공습, 사이버 공격, 추가 제재, 반정부 성향 단체 지원 등이 거론된다고 덧붙였다.파리=유근형 특파원 noel@donga.com워싱턴=신진우 특파원 niceshin@donga.com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란과 거래하는 모든 국가에 25%의 관세를 즉시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28일부터 반(反)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를 대폭 강화하며 시위대를 유혈 진압 중인 이란 당국에 경고를 보낸 것이다. 영국에 본부를 둔 이란 관련 매체 ‘이란인터내셔널’은 13일 “8, 9일 이틀에 걸쳐 이란 현대사에서 가장 대규모의 학살이 자행됐다. 최소 1만2000명이 죽었다”고 주장했다. 희생자 대부분이 ‘정부 위의 정부’로 불리는 이란 혁명수비대, 바시즈 민병대 대원들의 총격으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신정일치 국가 이란의 최고지도자이며 시위대로부터 거센 퇴진 요구를 받고 있는 알리 하메네이가 발포 명령을 내렸다고 덧붙였다.이 발표는 외부 검증을 거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이란 현지에서 실제로 대규모 사상자가 나왔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노르웨이 기반의 국제 인권단체 이란인권(IHR)또한 시위 발발 뒤 12일까지 최소 648명이 숨졌다고 보도했다. 이에 미국 국무부는 이란에 거주하는 자국민에게 “즉시 이란을 떠나라. 미국 정부의 지원에 의존하지 않는 자체적인 출국 계획을 마련하라”고 공지했다. 관세 부과 발표는 이란의 핵 개발 의혹에 따른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이란산 원유를 대거 수입하는 중국을 겨냥한 조치로 풀이된다. 국제 정보조사업체 트레이드아이멕스에 따르면 중국은 2024~2025년 325억 배럴의 이란산 원유를 수입했다. 이란 전체 원유 수출량의 90.8%에 달한다. 다만 한국 기업은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이란 제재를 단행한 2018년 뒤 이란 관련 교역이 거의 없어 큰 타격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 美, 이란-중국 동시 옥죄기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번 관세가 “즉시 효력을 발휘한다. 최종적이며 변경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이란산 원유·천연가스·각종 상품을 수입하거나 이란 기업과 거래하는 기업이 미국과도 거래한다면 25%의 추가 관세를 물리겠다는 뜻이다.관세로 이란이 원유 수출 대금을 미국 달러로 회수하는 일은 더 어려워졌다. 달러 유입이 줄면서 그렇지 않아도 연일 사상 최저치인 이란 리얄화 가치는 더욱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강문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란은 외환 보유액도 매우 부족해 당국이 느끼는 어려움이 계속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이번 제재는 미국과 패권 갈등 중인 중국을 겨냥한 측면도 크다. 중국은 미국과 갈등을 빚는 이란, 베네수엘라 등에서 원유를 대거 수입했기에 이번 제재가 중국의 원유 확보 전략에 부담을 줄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앞서 3일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축출하며 세계 1위 원유 보유국인 베네수엘라 원유 시장을 사실상 장악했다. 중국은 이번 관세가 “불법 제재”라며 반발했다.미국 국무부는 이란 내 도로 폐쇄, 대중교통 운행 차질, 인터넷 제한 등을 거론하며 “이란을 떠나 이웃 튀르키예나 아르메니아로 가라”고 권고했다. 이란은 1979년 11월~1981년 1월 444일간 52명의 미국인을 인질로 삼았다. 이후 미국은 이란과 단교했고 현재 이란 수도 테헤란에는 주미국 대사관이 없다. 미국 국무부가 사이버 대사관만 운영 중이다. ● 트럼프, 군사 개입 가능성 여전히 검토 중한편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12일 이란 공습 또한 미국 군통수권자(대통령)가 “선택 가능한 많은 옵션 중 하나”라고 밝혔다. 그는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군사 옵션을 쓰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이란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군사 공격을 승인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 있다고 전했다. 다만 J D 밴스 부통령을 포함한 일부 고위 참모들은 “미국이 반정부 시위대를 부추긴다”고 주장하는 이란 당국에 유혈 진압의 빌미를 줄 수 있다며 외교 해법을 선호한다. 또 이란의 중동 지역 내 영향력과 군사력 등을 감안할 때 군사 개입의 부작용이 클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WSJ는 트럼프 대통령이 13일 외교안보 참모진과 회의를 한 후 군사 개입 가능성을 결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공습, 사이버 공격, 추가 제재, 반정부 성향 단체 지원 등이 거론된다고 덧붙였다.파리=유근형 특파원 noel@donga.com워싱턴=신진우 특파원 niceshin@donga.com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지난해 12월 28일 시작된 이란 반(反)정부 시위가 격화되면서 11일(현지 시간) 현재까지 최소 500명, 최대 2000여 명이 사망했다는 외신과 인권단체들의 발표가 잇따르고 있다. 이란 수도 테헤란 등 주요 도시 곳곳에 시신들이 겹겹이 쌓인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이란 정부가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친위대 격이며 신정일치 체제 수호가 핵심 임무인 최정예 군대 혁명수비대를 투입하며 유혈 사태가 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몇몇 강력한 선택지를 고민하고 있다”며 군사 개입 가능성을 다시 한번 시사했다.● 경제난과 무너진 하메네이 권위가 시위 키워 미국에서 활동 중인 인권단체 인권운동가통신(HRANA)은 이란 반정부 시위 여파로 민간인 496명, 보안요원 48명 등 최소 544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전날 116명에서 5배 가까이로 급증한 수치다. 노르웨이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이란인권(IHR)은 최소 192명의 사망을 확인했고, 실제 사망자 수는 2000명 이상일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이란 안팎에선 8일 이란 정부가 인터넷과 국제전화를 끊은 뒤 강경 진압이 본격화됐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1일 이란의 28세 여성 기자인 마흐사가 8일 “시위대 얼굴에 조준 사격을 가하고 있다. 거리는 피로 가득하고 엄청난 수의 사망자가 속출해 두렵다”고 말한 뒤 전화가 끊겼다고 전했다. 이번 반정부 시위는 미국과 서방의 경제 제재로 인한 사상 최악의 경제난과 하메네이가 이끄는 신정일치 체제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폭발한 결과다. 이란 경제가 붕괴되면서 리알화 가치는 역대 최저 수준이다. 9일 기준 달러당 99만4055리알로 2015년 이란이 서방 5개국과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맺었을 때(당시 달러당 3만2000리알)보다 약 31배 치솟았다. 식료품 물가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60% 이상 올라 중산층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수준이다. 이란 국민의 30% 이상이 빈곤 상태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체제 순응적이었던 상인과 중산층이 시위에 대거 참여하고 있다. 이스라엘, 미국과의 전쟁을 거치며 ‘중동 맹주’를 자처하는 하메네이 체제의 권위가 무너진 것도 시위를 키운 요인이다. 이란은 지난해 이스라엘-미국과 치른 ‘12일 전쟁’에서 핵시설 등이 대거 파괴되며 사실상 참패했다. 최근 시위대는 ‘왕정 복귀’ ‘하메네이에 대한 죽음’ ‘주변국 개입 중단’ 등 사실상 현 체제를 부정하는 내용의 구호를 많이 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메네이, 트럼프에 “당신도 몰락할 것”미국은 이란 사태를 면밀히 주시하며 군사 개입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대통령 전용기에서 “우리는 한 시간마다 (이란) 상황을 보고받고 있다. 몇몇 강력한 선택지들을 살펴보고 있고, 결정을 곧 내릴 것”이라고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13일 대이란 공격에 대한 세부 방안을 보고받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정부가 미국에 협상을 제안한 사실을 밝히며 대화 가능성도 거론했다. 트럼프는 “그들은 협상을 원하고 있고, 미국에 계속 두들겨 맞는 데 지친 것 같다”며 “우리가 먼저 행동할 수도 있지만 회담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메네이는 12일 X에 트럼프 대통령이 새겨진 고대 이집트 석관이 무너지는 사진을 게시하며 “세상 독재자들의 교만이 극에 달했을 때 몰락했는데, 저자 또한 무너질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장관은 “우리는 전쟁에 대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화에도 임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군사 개입 가능성을 놓고 미국 정치권에선 부정적인 반응도 나온다. 랜드 폴 공화당 상원의원은 ABC방송에 “폭격은 해결책이 아니고, 대통령이 내키는대로 폭격하도록 헌법이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메네이 체제 붕괴로 이어질진 미지수 반정부 시위가 거세지만 하메네이 체제 붕괴로 이어질진 미지수라는 전망이 많다. 혁명수비대를 중심으로 군부가 하메네이 체제를 떠받치고 있고, 맞설 정치적 대안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지역연구센터장은 “미국 군사 개입 등 외부로부터의 변화가 있을지 여부에 따라 하메네이 체제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파리=유근형 특파원 noel@donga.com김윤진 기자 kyj@donga.com}

지난해 12월 28일 시작된 이란 반(反)정부 시위가 격화되면서 11일(현지 시간) 현재까지 최소 500명, 최대 2000여 명이 사망했다는 외신과 인권단체들의 발표가 잇따르고 있다. 이란 수도 테헤란 등 주요 도시 곳곳에 시신들이 겹겹이 쌓인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이란 정부가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직속기관으로 신정일치 체제 수호가 핵심 임무인 최정예 군대 혁명수비대를 투입하며 유혈 사태가 격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몇몇 강력한 선택지를 고민하고 있다”며 군사 개입 가능성을 다시 한번 시사했다.● “시위대 얼굴에 조준 사격, 거리에 피 가득”미국에서 활동 중인 인권단체 인권운동가통신(HRANA)은 이란 반정부 시위 여파로 민간인 496명, 보안요원 48명 등 최소 544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전날 116명에서 5배 가까이로 급증한 수치다. 노르웨이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이란인권(IHR)은 최소 192명의 사망을 확인했고, 실제 사망자 수는 2000명 이상일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이란 안팎에선 8일 이란 정부가 인터넷과 국제전화를 끊은 뒤 강경 진압이 본격화됐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란의 28세 여성 기자인 마흐사가 8일 “시위대 얼굴에 조준 사격을 가하고 있다. 거리는 피로 가득하고 엄청난 수의 사망자가 속출해 두렵다”고 말한 뒤 전화가 끊겼다고 전했다. 또 저격수들이 투입됐단 주장도 나온다.이번 반정부 시위는 사상 최악으로 치닫는 경제난과 하메네이가 이끄는 신정일치 체제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폭발한 결과다. 이란 경제가 붕괴되면서 리알화 가치는 역대 최저 수준이다. 9일 기준 달러당 99만4055리알로 2015년 이란이 서방 5개국과 핵 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맺었을 때(당시 달러당 3만2000리알)보다 약 31배 치솟았다. 식료품 물가는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60% 이상 올라 중산층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수준이다. 이란 국민의 30% 이상이 빈곤 상태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대학생과 진보 지식인뿐 아니라, 체제 순응적이었던 상인과 중산층이 시위에 대거 참여하고 있다.이스라엘, 미국과의 전쟁을 거치며 ‘중동 맹주’를 자처하는 하메네이 체제의 권위가 무너진 것도 시위를 키운 요인이다. 이란은 지난해 이스라엘-미국과 치른 ‘12일 전쟁’에서 핵시설 등이 대거 파괴됐다. 또 군지도자와 핵과학자들도 상당수 표적 공습으로 암살당했다.최근 시위대들은 ‘왕정 복귀’ ‘하메네이에 대한 죽음’ ‘주변국 개입 중단’ 등 사실상 현 체제를 부정하는 내용의 구호를 많이 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군사 개입 강력한 선택지” vs 이란 외무 “전쟁과 대화 모두 준비”미국은 이란 사태를 면밀히 주시하며 군사 개입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 대통령 전용기에서 “우리는 한 시간마다 (이란) 상황을 보고받고 있다. 몇몇 강력한 선택지들을 살펴보고 있고, 결정을 곧 내릴 것”이라고 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13일 안보 당국자들로부터 대이란 공격 선택지에 대한 세부 방안을 보고받을 예정이라고 전했다.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정부가 미국에 협상을 제안한 사실을 밝히며 대화 가능성도 거론했다. 트럼프는 “그들은 협상을 원하고 있고, 미국에 계속 두들겨 맞는 데 지친 것 같다”며 “우리가 먼저 행동할 수도 있지만 회담도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바스 아라크치 이란 외무장관은 “우리는 전쟁에 대비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대화에도 임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다.트럼프 행정부의 군사 개입 가능성을 놓고 미국 정치권에선 부정적인 반응도 나온다. 랜드 폴 공화당 상원의원은 ABC방송에 “폭격은 해결책이 아니고, 대통령이 내키는대로 폭격하도록 헌법이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메네이 체제 붕괴로 이어질진 미지수이란 반정부 시위가 하메네이 체제 붕괴로 이어질진 미지수라는 전망이 많다. 혁명수비대를 중심으로 군부가 하메네이 체제를 떠받치고 있고, 시민들의 분노를 대표해 맞설 정치적 대안 세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란은 2009년 대선 부정선거 시위, 2022년 히잡 착용 반대 시위를 겪었지만 하메네이 체제는 건재했다.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지역연구센터장은 “미국 군사 개입 등 외부로부터의 변화가 있을지, 이 경우 이란 엘리트와 혁명수비대가 어떤 입장에 서는지에 따라 하메네이 체제의 미래가 결정될 것”이라고”이라고 전망했다.파리=유근형 특파원 noel@donga.com김윤진 기자 kyj@donga.com}

지난해 12월 28일 시작된 이란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면서 최소 116명, 최대 2000여 명이 사망했을 수도 있다는 외신 보도와 인권단체의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 이란 정부가 인터넷과 국제전화 등 외부 연결을 차단한 뒤 강경 진압에 나서면서 사상자 수가 계속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미국은 (시위대를) 도울 준비가 됐다”며 개입 가능성을 시사했다. 심각한 경제난에 미국의 개입 가능성까지 더해지며 이슬람교 시아파 성직자인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이끄는 이란의 신정일치 체제가 47년 만에 최대 위기에 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 검찰총장 “시위 참여하면 사형 혐의”미국 인권단체 인권운동가통신(HRANA)은 이란 반정부 시위로 인한 사망자가 민간인 78명, 보안군 38명 등 최소 116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란 당국의 강경 진압이 본격화되면서 전날 기준 65명에서 사망자가 약 2배로 급증한 것. 시위로 인해 체포되거나 구금된 사람도 2600명을 넘어섰다. 이란 정부가 8일부터 국제전화와 인터넷을 차단해 내부 상황이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 점을 고려하면 시위 중 죽거나 다친 사람은 더 많을 수도 있다. 실제로 미 주간지 타임은 이란 병원 6곳에서만 최소 217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미국에서 활동 중인 시민단체인 이란인권센터(CHRI)는 이란에서 수백 명의 시위대가 사망했다는 목격자 증언과 보고를 접수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에 밝혔다. 노르웨이에서 활동 중인 이란휴먼라이츠(IHR)는 “일부 소식통은 2000명 이상 사망 가능성도 제기하지만 인터넷 차단 등으로 검증은 어려운 상태”라고 전했다.CNN, BBC 등이 입수한 영상을 보면 이란 당국과 시위대의 충돌이 격화되는 양상이다. 의료체계가 마비되고 영안실 수용 공간이 부족해 수도 테헤란 동부의 한 병원에선 시신들이 겹쳐 쌓여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관공서, 차량, 모스크 등이 불타기도 했다. 이란 시민들은 인터넷 차단 우회 가상사설망(VPN)을 통해 시위대 진압 참상을 전하고 있다. 국제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AI)는 “당국이 치명적인 무력 사용을 강화하고 있다는 참담한 보고를 분석 중”이라고 했다. 2003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이란의 인권운동가 시린 에바디는 당국의 인터넷 차단을 겨냥해 “학살을 준비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이란 국영 매체들은 일부 시위대의 무장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이란 관영 타스님 통신은 당국이 총기, 수류탄, 휘발유 폭탄 등을 소지한 시위대 약 200명을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또 모하마드 모바헤디아자드 이란 검찰총장은 “시위에 참여하면 누구든 신의 적으로 간주한다. 이는 사형에 해당하는 혐의”라고 경고했다.● 美, 이란 공습 예비검토 착수 미국은 이란 사태에 개입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트루스소셜에 “이란은 어쩌면 과거 어느 때보다 자유를 바라보고 있다. 미국은 도울 준비가 됐다”고 썼다. 그는 전날 백악관 행사에서도 “미국이 개입해 이란의 아픈 곳을 매우 세게 때리겠다”며 군사 개입 가능성을 내비쳤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뉴욕타임스(NYT) 등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미 대규모 공습 등 군사 개입 옵션에 대해 보고받고 실행 여부를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이날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대이란 군사작전에 대해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외신들은 이란의 신정일치 체제가 한계에 이르렀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하메네이는 이란을 ‘중동의 맹주’로 이끄는 지도자로 자신을 포장해 왔지만, 지난해 이스라엘-미국과 치른 12일 전쟁에 참패하면서 권위가 크게 실추됐다. 또 오랜 기간 지속된 경제난이 이젠 중산층조차 버티기 힘들 정도로 악화되면서 친정부 성향이었던 상인들마저 시위에 나서고 있다. 중동 소식통에 따르면 시위 참가자들 사이에선 “막대한 원유와 천연가스, 비옥한 농업지대, 풍부한 문화유산을 가진 나라에서 왜 이렇게 가난하게 살아야 하느냐”는 분노가 터져 나오고 있다. 또 시위대는 ‘팔레비 왕조 복귀’, ‘하메네이에게 죽음을’ 같이 현 체제를 부정하는 구호도 외친다. 다만, 하메네이 체제가 당장 붕괴될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란 안보와 치안을 떠받치며, 다양한 공기업을 운영해 경제력도 막강한 혁명수비대 등 군부가 하메네이에 대한 충성을 유지하고 있어서다. 파리=유근형 특파원 noel@donga.com이지윤 기자 asap@donga.com}

지난해 12월 11일(현지 시간) 미국 매사추세츠주(州) 서머빌시. ‘미국 바이오산업의 실리콘 밸리’, ‘지구에서 가장 혁신적인 1제곱 마일’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케임브리지시 켄들 스퀘어와 함께 바이오산업 혁신 벨트를 형성하고 있는 이곳에 ‘아프리오리 바이오(Apriori Bio·이하 아프리오리)’사가 있었다. 아프리오리는 인공지능(AI), 머신러닝으로 바이러스의 미래 변이를 예측하고, 그에 맞는 효과적 백신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바이오 벤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모더나’를 탄생시켜 글로벌 바이오 업계에서 유명한 벤처캐피털(VC) ‘플래그십 파이어니어링(Flagship Pioneering·이하 플래그십)’이 창업을 이끌었다.이날 찾은 아프리오리 입주 건물에서는 뜻밖에도 아프리오리 외에 플래그십이 창업시킨 바이오 벤처 회사 5곳을 한 층에서 볼 수 있었다. 이곳은 플래그십이 유망한 신생 기업들을 모아 무럭무럭 키우는 거대한 인큐베이터인 셈이었다. 첨단 스타트업에 적극 투자하는 ‘혁신 금융’ 플래그십은 씨앗 기업들을 집적해 창업 시너지를 배가시키고 있었다.● 대형 VC가 마련한 바이오 창업 단지기업들은 넓은 한 층 공간을 각각 구역을 나눠 쓰고 있었다. 가벽 하나 세워져 있지 않은 개방된 공간이라 겉보기에는 마치 한 회사의 거대한 연구실처럼 보였다.연구실에서 만난 아프리오리 관계자는 “우리 회사는 직원이 20여 명이라 딱 스타트업 규모지만 우리가 누리는 자원은 일반 스타트업은 누릴 수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플래그십이 투자한 여러 분야 바이오 벤처가 한 공간에서 협업하고 자원을 공유하기 때문에 AI 전문가부터 계산 생물학, 데이터 분석, 실험 연구자 등 전문 인재가 풍부하고 수십억 달러 규모의 첨단 장비를 쓸 수 있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이날 돌아본 플래그십 창업 벤처 연구 공간에는 세포 배양과 분석부터 차세대 유전자를 읽는 기술 딥 시퀀싱에 이르기까지 직원 수십 명이 수일, 수십 일 동안 해도 해내지 못할 연구를 하루나 몇 시간 만에 처리하는 첨단 장비가 가득했다. 바이러스 시료 수십 종을 자동판매기처럼 자동으로 보관하고 출고해 주는 장비도 있었다. 아프리오리 관계자는 “이런 투자와 장비 덕분에 우리는 그 시간에 더 좋은 논문을 읽고 더 지적인 질문들을 할 수 있다”며 “플래그십 안에서 이뤄지는 투자, 협업을 통해 우리는 과학 기술 최전선에서 최대한 혁신적으로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 VC가 투자뿐 아니라 창업 과정에 참여연구 현장에서 만난 플래그십 출신 크레이그 윌리엄스 아프리오리 최고경영자(CEO)는 “이 모든 건 플래그십만의 독특한 벤처 투자 프로세스가 있기에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플래그십은 단순히 유망 벤처에 투자하고 이익을 얻는 일반 VC들과 달리 고유한 ‘창업(origination)’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플래그십은 매년 사내 전담 조직을 통해 100여 개의 ‘만약 ∼라면(What if?)’이라는 질문을 도출한다. 그런 뒤 사내 200여 명의 과학자들이 가능성 없는 질문을 제거해 나간다. 이때 중요한 것은 ‘기술 하나에서 여러 방향의 혁신 기회가 나올 수 있는가’이다. 이 과정을 통해 플래그십이 정말 투자를 통해 회사로 만들 만한 가치가 있는 3∼4개의 최종 질문을 찾아낸다. 윌리엄스 CEO는 “플래그십은 아무도 모르는, 그래서 진짜 혁신이 나올 수 있는 ‘불확실성(uncertainty)의 영역’에 투자하길 원한다”며 “하지만 리스크는 줄여야 하므로 끝까지 살아남은, 검증된 아이디어에 대해 투자를 진행하는 이런 방식이 엄청난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플래그십이 투자를 결정했다고 바로 회사가 되는 건 아니다. 처음엔 회사 이름 없이 프로젝트 숫자만 부여된다. 윌리엄스 CEO는 “아프리오리도 처음엔 그저 ‘FL(Flagship Lab) 77’이었다”며 “질문에 대한 플랫폼이 실제로 작동한다는 게 입증되기 전에는 회사라는 생각에 너무 매달리지 말고 자유롭게 새로운 영역을 탐색하자는 취지”라고 말했다.덕분에 플래그십이 투자하고 창업을 이끈 바이오 회사는 각 전문 분야에서 빠르고 혁신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윌리엄스 CEO는 “플래그십은 화이자, 노보 노디스크, GSK와 같은 글로벌 제약사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일종의 빅파마(대형 제약사) 연구개발(R&D) 엔진 역할을 하고 있다”며 “투자자로서는 이 같은 혁신 ‘원천’에 가까워질수록 훨씬 더 큰 수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플래그십 투자 열기가 뜨거울 수밖에 없다”고 평가했다.● 플래그십, 25년간 118곳 창업 지원플래그십은 3년마다 글로벌 펀드를 조성해 바이오 벤처 투자를 진행한다. 가장 최근 펀드 규모는 36억 달러(약 5조2000억 원), 그 전 펀드는 33억 달러 규모였다. 모더나부터 아프리오리까지 이런 방식으로 플래그십이 창업을 이끈 기업은 25년간 118개에 달한다. 플래그십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략 고문인 안드레 안도니안 아태 지역 의장은 “플래그십은 VC가 아니라 기업 창조자(company creater)”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스스로 아이디어를 만들고, 창업가를 키우고, 자금을 대고, 회사를 운영하고 확장하는 모든 것을 한 지붕 아래에서 한다”며 “켄들 스퀘어 연구실 면적의 25%가 플래그십과 관련돼 있고 이를 통해 1만 명의 고용을 창출해 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안도니안 의장은 “혁신 측면에서 VC와 스타트업은 아주 큰 역할을 한다”며 “우리가 ‘파일럿’이 아니라 미지의 영역으로 갈 ‘우주 비행사’에게 투자하길 원하는 이유”라고 말했다.““반도체보다 큰 1000조 시장… 韓 스타트업, 큰 시장에 나와야”빅5 병원 데이터-우수 인력 강점보스턴 큰손 플래그십도 韓 개척“반도체가 400조 원 규모라고 하면 신약시장은 1000조 원이 넘습니다. 연간 성장률도 12%에 달하니 바이오에 베팅을 안 할 수가 없죠.”(이성환 SV인베스트먼트 이사)미국 바이오 산업 메카인 보스턴과 케임브리지에서 만난 한국 벤처캐피털(VC)들은 입을 모아 더 많은 한국의 VC와 바이오 기업이 이 시장에 뛰어들고 해외로 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2014년 보스턴에 진출해 올해로 현지 바이오 벤처 투자 13년 차를 맞는 솔라스타벤처스 윤동민 대표는 “바이오 투자야말로 현지에 나와 실시간으로 동향을 느끼고 중요 기업인과 네트워킹하며 독점 개발 정보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며 “글로벌 빅파마 연구개발(R&D) 헤드와 바이오 벤처 수백 개가 모인 이곳은 벤치마킹할 수 있는 데이터들이 굉장히 많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이 이사는 “한국에서는 바이오벤처가 초기 투자를 받은 뒤 상장하지 않으면 중간에 가치를 인정받을 길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미국에서는 중간에 빅파마와 손을 잡거나 라이선스를 팔거나,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엑시트할 다양한 기회가 있고, 많은 경우 한국보다 4∼5배 높은 가치 평가를 받는다”고 강조했다.한국 VC 가운데 보스턴 현지에 사무실을 내고 본격 진출한 곳은 다섯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적다. 이 이사는 “한국에서 나오는 정책자금만 운용하거나 코스닥에만 상장시켜도 VC들이 먹고사는 데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이라며 “한국 VC와 기업이 자꾸 더 큰 시장에 나오고 한미 산업의 가교 역할을 하며 성공 케이스를 만들어야 바이오산업의 발전을 이끌 수 있다”고 역설했다.한편 이들은 “2, 3년 전부터 보스턴 VC 사이에서 한국 바이오 시장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추세”라며 “한국의 우수한 인력, 세계 어디서도 찾기 힘든 빅5 병원 환자 규모와 데이터, 시장 자금력 등 여러 면에서 한국 바이오산업에 큰 매력을 느끼고 있다”고 진단했다.실제로 미국 대표 바이오 VC인 플래그십 파이어니어링도 2년 전 싱가포르에 지사를 내 한국과 일본 등 3개국 시장을 개척 중이다. 안드레 안도니안 플래그십 아태지역 의장은 “아시아는 혁신 원천이자 가장 큰 시장”이라며 “기회가 너무 많아 어디에 시간과 노력의 우선순위를 둘지가 가장 큰 고민일 정도”라고 말했다.특별취재팀▽팀장 조은아 경제부 차장 achim@donga.com▽싱가포르=강우석, 스톡홀름=김수현 기자실리콘밸리=신진우, 보스턴=임우선, 런던=유근형 특파원서울=전주영 신무경 주현우 최미송 기자}

“3, 2, 1! 자, 배가 물 위로 올라갑니다! 배 뒤에 생기던 파도가 사라졌어요.” 지난해 12월 17일(현지 시간)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 동부 항구지역인 프리함넨 인근 해역. 전기 수중익(水中翼·선체 밑에 설치된 날개) 선박을 운항하는 ‘칸델라’ 직원 토드 링엔홀 씨가 이같이 외쳤다. 2014년 설립한 스웨덴 스타트업 칸델라는 세계 최초로 전기 수중익 선박을 개발하고 상용화한 기업이다. 기자가 칸델라가 개발한 2세대 전기 수중익 선박 ‘C-8’의 데모 버전에서 ‘수중익’ 기어를 위로 올리자 선체 앞부분부터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선체 뒤로 10m가량 길게 퍼지던 파도는 수중익 모드로 전환한 지 10초도 안 돼 잠잠해졌다. 스톡홀름에서는 2024년 칸델라가 개발한 세계 최초의 전기 수중익 여객선 ‘P-12 노바(Nova)’ 운항을 시작했다. 100% 전기로 움직여 ‘조선업의 테슬라’라고 불린다. 노바의 최대 장점은 속도다. 노바는 파도를 만들지 않아 기존 선박보다 약 2배로 빠른 시속 46km로 달린다. 노바 이용객이기도 한 링엔홀 씨는 “50분 이상 걸리던 출퇴근이 30분 가까이로 줄었다”며 웃었다. 혁신 기업이 시민의 출퇴근 시간을 줄이면서 환경 오염도 방지하고 있는 셈이다. 칸델라의 전기 수중익선은 올해 사우디아라비아, 인도, 호주 등으로 수출을 앞두고 있다.● 인구 감소한 스웨덴, 수출 키워줄 ‘혁신 산업’ 키운다스웨덴은 시민들 삶의 질을 높여 주는 혁신 기업을 성장시켜 수출 엔진을 키우고 있다. 한국에 앞서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 문제를 절감하며 사업 초기부터 내수가 아닌 해외 시장을 겨냥한 수출 강소기업이 늘어야 경제가 성장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스톡홀름의 무인(無人) 전기 운반 트럭 ‘엔라이드’도 세계 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이 무인 전기 트럭은 레이저로 주변 장애물을 감지하고 위험 정도를 판단해 대응할 수 있다. 엔라이드는 세계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해 5월 미국 아이온큐와 자율주행·물류 최적화 영역에서 3년간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양자컴퓨팅 상용화를 시도한 세계 최초 사례다. 지난해 엔라이드가 아이온큐를 포함해 국내외 투자자로부터 유치한 투자금은 약 1억 달러(약 1452억 원)에 달한다.이들 기업 창업자는 모두 스웨덴의 민간 벤처캐피털(VC)이 성장하는 힘이 됐다고 입을 모은다. 구스타브 하셀스코그 칸델라 대표는 “(칸델라와 같은) 하드웨어 기업은 창업 이후 제품을 실제 판매하기까지 ‘죽음의 계곡’ 시간이 치명적”이라며 “이큐티(EQT) 벤처와 같은 스웨덴 대형 민간 VC가 우리에 대한 투자를 약속하자 이를 신뢰의 증표로 본 다른 자본들도 유치됐다”고 설명했다. 로베르트 팔크 엔라이드 대표도 “스웨덴 VC 시장은 추후 글로벌 자본까지 이어지는 일종의 허브”라며 “글로벌 자본을 향한 개방성이 성공을 이끌었다”고 전했다.● 창업 선배가 VC로 활약하는 ‘인재 선순환’스웨덴의 스타트업 생태계 핵심은 민간 주도 혁신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스웨덴 국내총생산(GDP) 대비 VC 투자 비율은 0.11%로 추정된다. 유럽연합(EU) 회원국 평균(0.05%)보다 두 배 이상으로 높다. 1인당 VC 투자액은 2020∼2024년 누적액 기준 EU 회원국 중 1위다. 인구 100만 명당 2400유로로 추정된다.스웨덴 내 스타트업 VC 관계자들은 혁신의 키워드로 ‘선순환’을 꼽았다. 과거 스타트업의 성공을 이끌었던 창업자가 기술력은 있지만 자금이 부족한 초기 스타트업의 에인절 투자자로 변신하는 것이다. 전환의 핵심에는 민간 VC가 있다. 성공 경험이 있는 창업자를 VC 내부 파트너로 영입하거나 미래 세대 스타트업 이사회 핵심 멤버로 연결하는 플랫폼 기능을 한다. 스웨덴 스타트업의 신화로 꼽히는 스포티파이와 유럽 최대 사모펀드 EQT가 대표적인 사례다. 2018년 스포티파이 기업공개(IPO) 이후 초기 임원진 다수가 에인절 투자자 또는 VC 파트너로 영입됐다. 이들은 이후 엔라이드, 클라르나 등 자국 스타트업의 초기 투자자로 활동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스포티파이가 스톡홀름 테크 생태계에 ‘재능·자본 재활용 기계’로 변모했다”고 평가했다. 정부도 스웨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파일럿 소비자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스웨덴 내 혁신조달 제도를 통해 정부나 지자체가 파일럿 사업의 형태로 스타트업의 고객이 된다.● AI가 ‘숨은 챔피언’을 찾아낸다 벤처 투자자들은 성장 잠재력이 높은 미래의 혁신 기업을 찾아내는 데 인공지능(AI)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초기 기업에 투자하는 EQT 벤처는 AI에 기반한 마더브레인 시스템을 통해 지난 10년간 투자처를 발굴했다. 마더브레인은 창업 초기 단계에서부터 잠재력이 높은 창업자와 스타트업을 식별한다. 매출, 영업이익 같은 재무적 지표가 아니라 기업의 채용 속도, 기술 활동, 창업 생태계 내 참여도, 초기 고객 수요, 창업자의 위기 대응 능력 등 맨파워를 따져 투자 가치가 높은 기업을 선별한다. 빅토르 엥레손 EQT 파트너 겸 초기 단계 기술 부문 총괄은 “투자처를 선정할 때 핵심은 창업자의 야망과 문제에 대한 통찰력 및 위기 회복력”이라고 설명했다. 韓 은행들 혁신기업 찾는 ‘AI 헤드헌터’ 도입… “기술력은 갈 길 멀어”국내 은행, 올해 AI로 우량기업 선별AI가 은행의 대출 심사 기간 줄여줄 듯“AI의 기업대출 기능, 아직은 보조적”인공지능(AI)으로 혁신 기업을 선별해 자원을 집중하려는 시도는 한국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혁신 기업을 발굴해 내기 위해 AI를 기업대출 심사에 활용하는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올해부터 AI가 적극 개입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연내 소규모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예측모델을 AI 기반 기업대출 자동심사 시스템 ‘빅스(Bics)’에 반영할 계획이다. 빅스는 AI가 각종 정보를 분석해 상대적으로 신용 위험이 낮은 대출에 대한 판정 결과를 기업대출 심사 담당자에게 제공한다. 신속한 심사를 도울 뿐 아니라 우량기업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 기업을 선별할 수 있다. AI가 심사관뿐 아니라 일종의 헤드헌터 역할도 맡게 되는 것이다. 신한은행 역시 심사 업무를 돕는 자체 AI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해당 시스템은 심사의견서 작성에 필요한 재무 분석, 사업 역량, 기술 경쟁력, 업종 분석 등을 포함한 참고 자료를 제공한다. 이르면 3월 도입될 예정이다. 하나은행 역시 이달부터 AI가 기업대출 심사보고서 초안을 자동으로 생성해주는 시스템을 도입한다. 자동심사 지원 시스템을 통해 우량기업을 선별하고, 재무 정보와 산업 전망 등을 종합해 보고서를 작성한다. 우리은행도 기업대출 업무에 AI 에이전트를 도입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심사 지원, 서류 진위 및 정보 검수, 대출 사후 관리 등 기업대출 과정 전반에 AI 기능을 적용할 계획이다. 통상 소득과 신용도를 중심으로 판단하는 가계대출과 달리 기업대출은 기업 재무제표와 사업 역량, 업황 등 검토 요소가 많아 심사가 더 오래 걸린다. AI가 먼저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참고 자료를 제공하면 은행 담당자가 심사 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AI가 주도적으로 기업대출 심사와 혁신 기업 선별을 맡기에는 기술력에선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지적도 나온다. 은행권 관계자는 “잘못된 판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AI에 심사를 맡기기에는 리스크가 있다”며 “우선 심사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고도화하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고 했다.특별취재팀▽팀장 조은아 경제부 차장 achim@donga.com▽싱가포르=강우석, 스톡홀름=김수현 기자실리콘밸리=신진우, 보스턴=임우선, 런던=유근형 특파원서울=전주영 신무경 주현우 최미송 기자}
경제난에 항의하는 이란의 반정부 시위가 열흘 넘게 이어지면서 7일 현재 최소 38명이 숨졌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전했다.외신들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시작한 반정부 시위는 이란 전역으로 격화되면서 7일 하루만 이란 남부 도시 야수즈에서만 19명이 체포됐다. 이란 남서부 도시 로르데간에서는 상인 약 300명 가게를 닫고 거리에 모여 시위를 펼치는 과정에서 여러 종류의 무기를 든 시위대가 발포해 경찰관 2명이 숨지고 30명이 다쳤다고 이란 관영 파르스 통신이 전했다. 특히 말렉샤히 지역에서 열린 시위 사망자의 장례식 후 100여 명의 조문객들이 거리로 나가 은행 세 곳을 파괴하기도 했다.이란 정부는 시위로 인한 사망자 추계를 하지 않고 있다. 다만 미국 기반 인권운동가 네트워크(HRANA)는 이란 반정부 시위 11일 동안 최소 38명이 사망하고 최소 2076명이 체포됐다고 밝혔다. 사망자 중에는 시위에 참가한 시민 29명, 경찰과 보안요원 4명이 포함됐고, 18세 미만 어린이 청소년도 5명 숨졌다고 전해진다.시위가 격화되면서 세계 각국 정부는 이란에 체류 중인 자국민에게 가능한 빨리 출국하라고 권고했다. 호주 외교통상부(DFAT)는 이날 여행경보를 내고 “전국적으로 폭력적인 시위가 계속되고 있으며 예고 없이 추가로 격화할 수 있다”며 출국을 경고했다.이란 정부는 강경 대응을 계속하고 있다. 이란 사법부 수장인 골람호세인 모흐세니 에제이 대법원장은 이날 시위대에게 “이슬람 공화국에 대항하는 적을 돕는 자들에게는 어떠한 관용도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시위대를 지원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에제이 대법원장은 “미국과 이슬람이 혼합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며 “이슬람 공화국과 국민의 평화를 해치는 적을 돕는 자는 누구든 용납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위대가 보안군에 발포하면 지원에 나서겠다”며 시위대를 옹호하자 이에 반박한 것이다.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면서 신정일치 국가 이란의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87)가 시위 진압 실패에 대비해 러시아 등으로의 망명을 준비하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고령의 하메네이는 시위 발발 후 “적에게 굴복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1989년 집권 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파리=유근형 특파원 noel@donga.com}

영국, 프랑스, 우크라이나 정상이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뒤 다국적군을 배치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6·25전쟁 뒤 한반도에 배치된 유엔군사령부와 유사한 형태의 다국적군을 우크라이나에 주둔시키겠다는 것이다. 실제 군대 구성과 운영은 유럽 주요국이 주도하고 미국은 후방에서 무기와 재정 지원에 나서는 형태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다만 러시아는 전후 서방 군대의 우크라이나 주둔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실제 추진 시 난항이 예상된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6일 파리 엘리제궁(대통령궁)에서 열린 ‘의지의 연합’ 정상회의를 마친 뒤 전후 다국적군을 배치하는 내용의 의향서에 서명했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35개국과 2개 국제기구가 참여한 ‘의지의 연합’은 다국적군 배치를 통해 러시아의 재침공을 막고, 재건을 지원할 방침이다. 또 유럽, 미국, 우크라이나 간 협력을 조정할 기구도 공식화할 계획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휴전 후 감시 메커니즘을 구축할 것”이라며 “특히 미국이 전선 감시 측면에서 참여 의사를 명확히 했고, 후방 지원도 약속했다”고 밝혔다. 특히 프랑스와 영국은 세부 파병 계획도 공개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수천 명 규모의 병력을 파견할 수 있다”며 “이들은 최전방이 아닌 후방에서 휴전 뒤 안전 보장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타머 총리도 “휴전 이후 영국과 프랑스는 우크라이나 전역에 군사 거점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파병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온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도 이날 파병 가능성을 시사했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에 따르면 이날 메르츠 총리는 “독일은 우크라이나 직접 주둔이나 인접 국가들에 추가로 군대를 파견하는 방안 모두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우크라이나에 파병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의지의 연합’ 정상회의에는 미국 측에선 스티브 윗코프 백악관 중동특사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맏사위인 재러드 쿠슈너가 참석했다. 윗코프 특사는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위해선 지속 가능한 안전 보장이 꼭 필요하다는 점에 연합국과 의견을 같이한다”고 밝혔다.파리=유근형 특파원 noel@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참모진과 덴마크령 그린란드 합병을 논의 중이며 이를 위해 미군을 활용하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백악관이 6일(현지 시간) 밝혔다. 4일 트럼프 대통령이 “안보를 위해 그린란드가 꼭 필요하다”며 합병 의지를 강조한 지 이틀 만에 구체적인 실행 계획까지 공개한 것이다. 서반구에서 미국 패권 강화를 위해 3일 군사 작전을 통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축출한 트럼프 행정부가 다음 목표로 그린란드를 노리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백악관은 이날 언론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그린란드 획득이 미국 국가안보의 우선 과제라는 점을 분명히 해 왔다”며 “북극 지역에서 우리의 적들을 억제하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합병 추진 이유를 밝혔다. 이어 “대통령과 그의 팀은 이 중요한 외교정책 목표를 추진하기 위한 다양한 선택지를 논의하고 있다”며 그린란드 합병을 위한 미군 활용 방안 또한 “최고사령관(대통령)의 권한하에 언제나 가능한 선택지”라고 주장했다. 로이터통신은 백악관 참모진이 미국이 그린란드를 ‘완전 매입’하는 방식이나 미국과 ‘자유연합협정(Compact of Free Association·COFA)’을 체결하는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도 같은 날 의회 군사·외교 상임위원회 소속 의원들을 대상으로 한 비공개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침공(invade)’하기보단 덴마크로부터 ‘매입(buy)’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고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했다. 또 트럼프 대통령이 보좌진에게 그린란드를 얻기 위한 최신 계획을 제출하라고 지시했다고도 덧붙였다. 유럽 주요국은 거세게 반발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폴란드, 스페인, 덴마크 등 유럽 7개국은 같은 날 공동 성명에서 “그린란드 문제를 결정하는 주체는 오직 덴마크와 그린란드뿐”이라며 미국의 그린란드 합병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워싱턴=신진우 특파원 niceshin@donga.com파리=유근형 특파원 noel@donga.com}

영국, 프랑스, 우크라이나 정상이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뒤 다국적군을 배치하는 방안에 합의했다. 6·25 전쟁 뒤 한반도에 배치된 유엔군사령부와 유사한 형태의 다국적군을 우크라이나에 주둔시키겠다는 것이다. 실제 군대 구성과 운영은 유럽 주요국이 주도하고 미국은 후방에서 무기와 재정 지원에 나서는 형태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다만 러시아는 전후 서방 군대의 우크라이나 주둔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실제 추진시 난항이 예상된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6일 파리 엘리제궁(대통령궁)에서 열린 ‘의지의 연합’ 정상회의를 마친 뒤 전후 다국적군을 배치하는 내용의 의향서에 서명했다.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35개국과 2개 국제기구가 참여한 ‘의지의 연합’은 다국적군 배치를 통해 러시아의 재침공을 막고, 재건을 지원할 방침이다. 또 유럽, 미국, 우크라이나 간 협력을 조정할 기구도 공식화할 계획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휴전 후 감시 메커니즘을 구축할 것”이라며 “특히 미국이 전선 감시 측면에서 참여 의사를 명확히 했고, 후방 지원도 약속했다”고 밝혔다.특히 프랑스와 영국은 세부 파병 계획도 공개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수천 명 규모의 병력을 파견할 수 있다”며 “이들은 최전방이 아닌 후방에서 휴전 뒤 안전보장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스타머 총리도 “휴전 이후 영국과 프랑스는 우크라이나 전역에 군사 거점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파병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여온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도 이날 파병 가능성을 시사했다.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에 따르면 이날 메르츠 총리는 “독일은 우크라이나 직접 주둔이나 인접 국가들에 추가로 군대를 파견하는 방안 모두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우크라이나에 파병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이날 ‘의지의 연합’ 정상회의에는 미국 측에선 스티브 위트코프 백악관 중동특사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맏사위인 재러드 쿠슈너가 참석했다. 위트코프 특사는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위해선 지속가능한 안전보장이 꼭 필요하단 점에 연합국과 의견을 같이한다”고 밝혔다. 파리=유근형 특파원 noel@donga.com}

독일 수도 베를린에서 3일부터 정전이 발생해 주민들이 극심한 피해를 겪고 있다. 6일 기준 온도가 영하 10도까지 떨어진 가운데 최소 2만4700가구, 상점 1120곳이 정전 피해를 겪고 있는 것이다. 당국은 정전을 야기한 것으로 추정되는 좌익 극단주의 단체 ‘불칸그루페’를 테러 혐의로 수사하기로 했다.슈피겔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독일 연방검찰은 6일(현지 시간) 신원을 알 수 없는 방화 용의자에게 테러단체 가입과 반헌법적 사보타주, 공공시설 교란 혐의를 적용해 수사하기로 했다. 베를린 검찰이 조사하던 사건을 넘겨받아 수사를 확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불칸그루페는 3일 베를린 남서부 리히터펠데 열병합발전소 인근 고압 송전 케이블에서 화재가 발생한 뒤 자신들이 방화 사실을 직접 밝혔다. 이들은 “ 정전이 아닌 화석연료 경제가 이번 행동의 목표”라며 “가스발전소 공격은 정당방위이자 지구와 생명을 보호하는 모든 이들에 대한 국제적 연대”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부촌인 베를린 남서부를 겨냥했다는 사실도 밝혔다.불칸그루페는 2011년 첫 방화 이후 베를린과 인근 지역의 철로와 송전설비 등 공공시설에 열두 차례 불을 질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특히 2024년 베를린 근교 테슬라 공장 인근 송전탑을 공격해 공장 가동이 일주일간 멈췄다. 당시 불칸그루페는 좌파 성향 인터넷 매체를 통해 범행을 자백하면서 반자본·반기술·반제국주의 메시지를 발표했다.독일 정치권 일각에선 러시아의 공작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로데리히 키제베터 기독민주당(CDU) 의원은 “성명을 러시아어로 다시 번역하면 어색한 (원문) 독일어보다 훨씬 자연스럽다”며 “이 극좌단체는 독일어를 제대로 못하거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지시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현재 정전 중인 지역에서는 대부분 휴대전화까지 먹통인 상태다. 시 당국은 시민들에게 숙박비를 지원하고 응급 발전기를 투입하는 등 복구 작업을 진행 중이다.파리=유근형 특파원 noel@donga.com}

《2일 정오경(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 앞 상업지구의 한식당을 찾았다. 한국의 거리 음식을 판다는 홍보 문구를 내세운 곳이었다. 가게 앞에 비치된 메뉴판에는 비빔밥, 불고기, 닭갈비 등 한국 음식들이 파리지앵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영락없는 한국 식당이었다. 하지만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분위기는 180도 달라졌다. 한국 스타일을 연상하고 가게에 들어섰지만 일본풍 인테리어 소품들이 가득했다.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 후지산이 그려진 대형 벽지가 가게를 장식했다.》메뉴판도 달랐다. 첫 페이지에는 한국 음식들이 나열돼 있었지만, 두 번째 페이지부터는 일본식 라멘, 튀김 등 다른 나라 음식이 많았다. 일본을 중심으로 다양한 아시아 나라 음식을 팔다가 한식을 끼워 넣은 듯한 인상이 강하게 풍겼다.● 단무지 오이 들어간 비빔밥 파는 가짜 한식당 맛은 더욱 심각했다. 15유로(약 2만5000원) 하는 한국 대표 메뉴 비빔밥을 시켰는데, 고추장 대신 동남아풍 스리라차 소스를 줬다. “고추장 없느냐”고 물으니 티베트 출신 지배인은 “그게 뭔가?”라고 되물었다. 비빔밥 위에는 단무지, 오이, 두부 튀김 등 통상 비빔밥에 얹히는 재료가 아닌 것들이 즐비했다. 숟가락 없이 젓가락만 준 것도 한국 스타일과 거리가 있었다. 비빔밥을 어떻게 먹는지 기본조차 모르는 눈치였다. 한국 드라마를 통해 유명해진 K치킨도 상상하던 맛이 아니었다. 시큼한 향이 강한 중국풍 튀김에 가까워 보였다. 분명 한식당에 왔는데, 한식이 아닌 음식들만 먹을 수밖에 없는 환경. 식사를 하고 나온 한 프랑스 부부에게 “이곳의 음식이 한식이 아니란 걸 아느냐”고 물으니 “전혀 몰랐다. 다음엔 좀 더 전통적인 한식당을 찾아가야겠다”며 놀랐다.파리 13구에 위치한 다른 한식당도 마찬가지였다. ‘매우 맛있다’를 의미하는 비속어(JMT)를 가게 이름으로 내세운 이곳은 외관만 보면 한식당처럼 보였다. 실내에 ‘어서 오십시오’ 같은 한국식 네온사인도 달려 있어, 겉모습만 보면 외국인이 많이 찾는 서울 명동의 한 식당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주문한 음식들은 한식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수준이었다. 김치찌개는 뜨거운 물에 생김치를 담근 듯한 맛이 났다. 자장면에는 생경한 닭고기가 토핑으로 들어 있고, 국물이 흥건했다. 춘장의 비린 맛이 여전할 정도로 조리가 100% 되지 않았다. 파리에서 활동하는 유승희 셰프는 “파리지앵들은 이 같은 음식이 한식인지 아닌지 알기 어렵다”며 “프랑스 미식 시장에서 한번 형성된 이미지는 쉽게 수정되지 않는데,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인 종업원 내세운 중국계 한식당도 등장 한류 여파로 한식에 대한 관심이 유럽 대륙을 강타하고 있다. 2010년대 수십 곳에 불과했던 파리 내 한식당은 최근 400여 곳까지 늘었다. 유럽 전체로 넓히면 한식당은 2000곳 이상일 것으로 추산된다. 한식에 대한 관심은 K푸드 수출로 이어지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4년 K푸드 관련 수출은 130억 달러(약 18조 원)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지난해에도 1∼10월 112억 달러(약 16조2000억 원)를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5.7% 성장했다.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 시장은 전체 수출 성장세보다 가파른 11%대 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류 콘텐츠의 확산과 맞물려 ‘건강하고 트렌디한 음식’으로 인식되면서 유럽 외식 식품 문화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한식 시장의 양극화다. 양적 성장을 거듭하고 있지만 맛과 품질이 수준 이하인 ‘짝퉁 한식당’이 너무 빨리 늘고 있다. 단기간에 창업된 한식당들이 기본적인 조리 표준, 재료 이해, 위생 관리에서 한계를 드러내며 유럽 시장에 왜곡된 한식 이미지를 남기고 있다. 한식 붐이 일시적 유행에 그치고, 나아가 한식 브랜드 가치의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짝퉁 한식당들은 점차 진화하고 있다. 한국인 중간 매니저를 내세우거나, 기존 한식당을 인수한 중국 자본의 식당까지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파리의 중국계 한식당들은 우버이츠, 딜리버루 등 애플리케이션을 적극 활용해 배달 영업을 공격적으로 펼치고 있다. 마르세유, 리옹, 니스 등 프랑스 지방 도시나 독일 프랑크푸르트, 영국 런던 등 유럽 대도시도 비슷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기존 한식당을 운영하던 한인들은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중국계 등 외국인이 운영하는 한식당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면서 기존 한인 식당들이 매출 감소 피해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운영한다는 인증 스티커를 자체적으로 부착하는 등 각종 대책을 짜내고 있지만 역부족인 상황이다. 파리 한국인 밀집 지역인 15구에서 한식당을 운영 중인 한 교민은 “지난해 파리 시위 과정에서 한식당이 불타 국내 언론의 주목을 받았는데, 실제로는 중국인이 운영하는 곳”이라며 “한식 특수를 교민들은 보지 못하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한식 전문화 고급화 전략 필요 K푸드 붐을 지속 가능한 성장동력으로 만들기 위해선 전문화 고급화 등 차별화된 전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뉴욕 시장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지난해 12월 파리에 진출한 돼지국밥 전문점 ‘옥동식’이 대표적이다. 국밥 메뉴에 집중하는 옥동식의 파리 지점에는 2일 영업 시작 1시간 전인 오전 10시 반부터 대기줄이 서기 시작했다. 점심 영업을 시작할 무렵에는 대기자가 105명을 넘었다. 옥동식 셰프는 “한식당들이 메뉴 가짓수를 줄이고 한식 본연의 맛에 더 집중한다면 유럽 미식계가 조금 더 자연스럽게 한식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식자재 시장이 더 커져야 정통에 가까운 한식이 유럽에 소개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파리, 런던의 유명 한식당들은 고추장 참기름 간장 등 고급 식재료를 2∼3주에 한번 지인을 통해 핸드캐리로 공수하는 곳이 적지 않다. 한식과 프랑스 음식을 결합한 퓨전 음식을 하는 용석원 셰프는 “한식 재료가 부족해 한계를 느낄 때가 많다”며 “중식 일식처럼 양질의 식재료가 풍부해져야 정통에 더 가까운 한식을 유럽에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증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파리, 런던, 베를린 등 거점 도시를 중심으로 민관 공동의 한식 맛 평가를 진행하고 맛집 리스트를 발표하거나, 공인 식당을 지정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태국 정부는 2000년대 초 ‘타이 셀렉트(Thai Select)’ 인증을 도입해 해외 태국 음식점의 맛, 재료, 조리 기준을 관리했다. 인증 식당은 공신력을 얻으며 수준 이하 업장은 자연스럽게 도태됐다. 일본도 프랑스 미국 등지에서 일본요리사협회 중심으로 품질 관리를 진행했다. 현지 셰프들을 대상으로 하는 김치, 장류, 육수 등의 단기 요리 클래스를 정례화하는 것도 현실적인 대안이다. 유 셰프는 “사실상 파리 한식당계는 품질 관리를 방치하고 있다. 이제 규모에 맞게 정부와 민간이 함께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유근형 파리 특파원 noel@donga.com}

극심한 경제난에 항의하는 이란의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면서 4일 현재 최소 16명이 숨졌다고 이란 인터내셔널, 영국 일간 가디언, AP통신 등이 전했다.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시위대를 ‘폭도’라 규정하며 강경 진압을 예고했다. 외신들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8일 시작된 이란의 대정부 시위가 2일 현재 전체 31개 주 가운데 25개 주의 60여 개 도시로 확산되고 있다. 시위대 15명, 보안군 1명 등 최소 16명이 숨지고 최소 44명이 총에 맞아 부상을 입었다. 또 최소 119명이 시위 참여 혐의로 체포됐다고 현지 인권 운동가들이 전했다. 2022년 히잡 착용을 거부한 22세 마사 아미니가 경찰 구금 중 사망하면서 촉발된 ‘히잡 반대’ 시위 이후 최대 규모 시위로 번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이란 서부 말렉샤히에서는 무장 시위대가 경찰서에 진입하려다 보안군 1명과 시위대 2명이 사망했다. 시위대가 모스크를 공격한 사례도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이번 시위는 이란 리얄화 가치가 지난 6개월 사이 50% 이상 하락하는 등 심각한 경제 침체 여파로 지난해 12월 28일 시작됐다. 상인들이 주도한 이번 시위는 대학생 등이 동참하면서 점차 확대됐다. 또 반정부 메시지도 강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독재자에게 죽음을’같이 하메네이를 직접 겨냥한 구호까지 등장했다.하메네이는 시위 발생 6일 만인 3일 이란 국영 방송에 처음 등장해 강경 진압을 시사했다. 하메네이는 “우리는 시위대와 대화해야 하지만 폭도들과 대화하는 것은 이득이 없다”며 “우리는 적에게 굴복하지 않을 것이고 폭동을 일으킨 자들은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적에게 선동되거나 고용된 사람들이 이러한 상인들 뒤에서 이란 정부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고 주장했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일 “이란 정부가 평화 시위대에 발포해 폭력적으로 살해할 경우 미국은 그들을 구출하러 나설 것”이라며 개입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이에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시위를 부추기고 있다. 중동에 주둔하는 미군을 공격하겠다”고 반박했다.파리=유근형 특파원 noel@donga.com}

극심한 경제난에 항의하는 이란의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면서 4일 현재 최소 16명이 숨졌다고 이란 인터내셔널, 영국 일간 가디언, AP통신 등이 전했다.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시위대를 ‘폭도’라 규정하며 강경 진압을 예고했다. 외신들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시작된 이란의 대정부 시위가 2일 현재 전체 31개 주 가운데 25개 주의 60여개 도시로 확산되고 있다. 시위대 15명, 보안군 1명 등 최소 16명이 숨지고 최소 44명이 총에 맞아 부상을 입었다. 또 최소 119명이 시위 참여 혐의로 체포됐다고 현지 인권 운동가들이 전했다. 2022년 히잡 착용을 거부한 22세 마흐사 아미니가 경찰 구금 중 사망하면서 촉발된 ‘히잡 반대’ 시위 이후 최대 규모 시위로 번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이란 서부 말렉샤히에서는 무장 시위대가 경찰서에 진입하려다 보안군 1명과 시위대 2명이 사망했다. 시위대가 모스크를 공격한 사례도 있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이번 시위는 이란 리얄화 가치가 지난 6개월 사이 50% 이상 하락하는 등 심각한 경제 침체 여파로 지난달 28일 시작됐다. 상인들이 주도해 이번 시위는 대학생 등이 동참하면서 점차 확대됐다. 또 반정부 메시지도 강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독재자에게 죽음을’ 같이 하메네이를 직접 겨냥한 구호까지 등장했다. 시위대 일부는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으로 축출된 팔레비 왕조의 귀환을 바라는 구호도 외치고 있다.하메네이는 시위 발생 6일 만인 3일 이란 국영 방송에 처음 등장해 강경 진압을 시사했다. 하메네이는 “우리는 시위대와 대화해야 하지만 폭도들과 대화하는 것은 이득이 없다”며 “우리는 적에게 굴복하지 않을 것이고 폭동을 일으킨 자들은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적에게 선동되거나 고용된 사람들이 이러한 상인들 뒤에서 이란 정부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고 주장했다.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일 “이란 정부가 평화 시위대에 발포해 폭력적으로 살해할 경우 미국은 그들을 구출하러 나설 것”이라며 개입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이에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시위를 부추기고 있다. 중동에 주둔한 미군을 공격하겠다”고 반박했다. 파리=유근형 특파원 noel@donga.com}

지난해 12월 16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 마운틴뷰에 있는 로봇 스타트업 ‘더스티 로보틱스’. 이곳에서는 청소기처럼 생긴 작은 로봇이 흰 바닥 위를 분주히 누비고 있었다. 로봇이 지나간 자리 바닥에는 건물의 외형, 배관 위치 등이 담긴 설계도가 그려졌고 그 위로 영어, 스페인어, 한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 된 시공 안내문이 새겨졌다. 다양한 국적의 현장 작업자들은 언어 장벽과 상관없이 일을 할 수 있었다. 이 로봇은 미국의 대형 건설사, 데이터센터, 아파트 등에서 쓰인다. 건설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탄생한 이 기술은 사람이 직접 설계도를 그리던 기존 방식보다 업무 효율을 수 배 높였다. 잭 라이스 데이비스 수석 디렉터는 “로봇이 설계도를 정확히 그려주면 사람들은 시공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건설 로봇 기술이 빛을 발하기까지는 실리콘밸리 특유의 ‘혁신 금융’이 든든한 연료가 됐다. 이곳 창업자들은 “투자자들은 창업 초기 2, 3년간은 수익을 안 따지고 밀어준다”고 입을 모았다. 실리콘밸리 금융 생태계에는 ‘홈런 한 번을 위해 99번의 실패를 포용한다’는 문화가 진작에 뿌리내렸다. 혁신 금융의 토양에서 성장한 구글, 애플 등 빅테크 기업은 미국 증시를 떠받치는 기둥이 됐다. 최근 미 증시가 3년 연속 20%대 상승을 이어가며 견고하게 성장하는 비결 역시 혁신 금융이 키워낸 혁신 기업의 활약에서 찾을 수 있다. 반면 혁신 금융 기반이 약한 국내에서는 한계를 느낀 창업가는 물론이고 투자처를 찾으려는 금융사들까지 실리콘밸리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이제는 혁신금융 전쟁] 〈2〉 실패해도 투자하는 실리콘밸리기술 결함 겪었던 美 로봇 스타트업실패에도 재도약 할 수 있던 비결로 벤처캐피털 꾸준한 투자 기반 꼽아유행 테마산업에 쏠리는 韓과 달리 실리콘밸리선 기업 잠재력 우선시“B급 사업도 A급 맨파워면 선택”“첫 투자자는 우리와 커피를 몇 번 마신 뒤 투자를 결정했어요.”미국 실리콘밸리 로봇 스타트업 ‘더스티 로보틱스’의 테사 라우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2월 16일(현지 시간) 첫 투자 유치 순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2018년 창업한 라우 CEO는 창업 초기 첫 투자자와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커피를 마시며 건설 산업에 대해 새로 배운 점과 사업 아이디어를 소개했다. 그는 “투자자들은 시간이 가면서 우리가 점점 발전한 점을 높게 평가했다”고 말했다. 당시 더스티 로보틱스는 신생 기업이라서 뚜렷한 성과는 없었지만 투자자들은 전진하고 있는 점에 주목했다. 수익성 있는 기업으로 클 수 있겠다고 본 것이다. 라우 CEO는 과거 창업에 실패했던 쓰라린 경험이 있다. 실패해도 투자 기회를 주는 ‘혁신 금융’의 힘이 더스티 로보틱스를 키운 셈이다. 덕분에 이 기업은 7년간 약 7000만 달러(약 1011억 원) 투자를 모을 수 있었다. 미국 경제전문지 ‘패스트컴퍼니’가 2024년 선정한 ‘가장 혁신적인 기업’에도 꼽혔다. 실리콘밸리 기업가들은 혁신 금융가들이 스타트업 실패를 이해해주고 실패를 통한 학습을 가치 있게 여긴다고 소개했다.● “여러 실패가 기업을 성장시켜” 라우 CEO는 이미 한 번 사업을 접고 더스티 로보틱스를 창업했지만 또 다른 위기를 맞았다. 초창기에 샌프란시스코의 한 건설사가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로봇을 쓰다가 반품시켰다. 작동 오류로 바닥에 설계도를 직선이 아닌 곡선으로 그렸기 때문이다. 곧바로 문제점을 찾기 시작했다. 로봇을 실시간으로 제어할 때 와이파이 무선 인터넷이 적합하지 않다는 문제를 발견했다. 이후 제품을 재설계했다. 기술이 개선됐고 당시 로봇을 퇴출시켰던 아파트 건설사를 다시 고객으로 돌렸다. 라우 CEO는 “우리의 역사는 많은 실패로 가득 차 있고 그 실패가 우리를 성장시켰다”고 회고했다. 더스티 로보틱스가 실패에도 버텨내고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은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털(VC) 생태계 역할이 컸다. 투자자들은 단기적 사업 완성도나 손익보다, 이 기술이 실패를 거쳐 얼마나 빠르게 진화하고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본다. 99번 실패하더라도 1번의 성공을 기다려준다는 뜻이다. 이 회사의 잭 라이스 데이비스 수석 마케팅 디렉터는 “투자자들은 늘 ‘이 산업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회사들을 찾는다”고 말했다. 미국 대형 벤처캐피털들은 투자 초기 2, 3년간 수익화 여부를 묻지 않는다. 안준영 롯데벤처스 미국 지사장은 “벤처 펀딩은 육아와 비슷해서 4, 5년 만에 크길 바라는 건 큰 욕심”이라고 말했다.● “맨파워, B급 사업도 A+급으로 키운다” 데이터 분석업체 ‘디맨드세이지’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4∼6월) 미국 전역엔 114만80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운영되고 있다. 이 중 상당수가 실리콘밸리에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기업 가치 10억 달러(약 1조4455억 원) 이상인 유니콘 기업은 105개다. 반면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한국 전체 유니콘 기업은 13개였다. 실리콘밸리 지역 유니콘 기업이 한국 전체의 8배다. 실리콘밸리가 유니콘 기업을 활발하게 배출할 수 있는 비결은 ‘혁신 금융’의 투자 공식이다. 혁신 투자자는 사업 자체의 우수성보다 창업 멤버 역량을 본다. 세계적인 벤처캐피털 세쿼이아는 한번 검증한 창업가를 ‘세쿼이아 패밀리’로 본다. 세쿼이아 투자를 받은 유전자 치료제 개발 기업 ‘진에딧’ 박효민 대표는 “세쿼이아는 사업보다는 사람을 검증하고, (검증된 사람들인) ‘세쿼이아 패밀리’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며 “우리에게 ‘망하더라도 다음 창업 때 우리에게 제일 먼저 오라’고 말한다”고 했다. 일리야 스트레불라예프 미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전설적인 한 벤처캐피털 투자자는 ‘나는 A급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B급 팀보다, B급 아이디어를 추구하는 A급 팀에 투자하겠다. 왜냐하면 A급 팀은 B급 아이디어의 한계를 빠르게 파악하고, 방향을 바꿔 A+급 아이디어로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고 소개했다. 반면 한국 금융권은 사람의 역량이나 기업의 가능성 대신 그때그때 유행하는 테마에 집중하는 경향이 크다.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은 “인공지능(AI) 등 테마 분야가 아닌 플랫폼에 대한 투자는 얼어붙었다”면서 “특히 내수 산업을 하는 스타트업은 투자를 받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수익에 ‘0’ 하나 더 붙어” 실리콘밸리에 韓벤처 지원 조직 러시‘IBK창공’, 韓 스타트업 美진출 지원HD현대-중기부도 현지 거점 마련“장기적 안목으로 투자 방식 바꿔야”국내서도 창업 생태계 강화 목소리“미국에서 창업에 성공하면 한국보다 수익 뒷자리에 ‘0’이 하나 더 붙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에서 한국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을 돕는 ‘IBK창공’ 관계자는 실리콘밸리에 진출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기관은 IBK기업은행 창업 육성 조직이다. 미국에서 창업에 성공하면 한국에서보다 더 큰 투자를 유치하고 수익을 높일 수 있다는 얘기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실리콘밸리에선 한 번 투자 기회가 올 때 규모가 크다”며 “이곳에서 조금이라도 투자를 받으면 실패하더라도 좋은 경력으로 남는다. 이를 기반으로 다른 국가에서 재창업하기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한국 스타트업은 물론이고 한국 은행과 대기업도 실리콘밸리에 스타트업 지원 조직을 마련하고 있다. 이들이 실리콘밸리로 향하는 이유는 혁신 자금이 풍부하고, 해외 판로를 개척할 기회가 더 다양하기 때문이다. 한국산업은행은 2021년 KDB실리콘밸리를 설립했다. 창업가가 자연스럽게 투자자를 만날 수 있는 투자 네트워킹 행사 ‘넥스트라운드’를 매년 실리콘밸리에서 연다. HD현대 공익재단인 아산나눔재단은 지난해 1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머테이오에 스타트업 지원 공간 ‘마루SF’를 열었다. 미국 시장에 진출한 지 얼마 안 된 창업가들에게 주거와 커뮤니티 공간을 제공한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이달 개소를 목표로 실리콘밸리 멘로파크에 스타트업·벤처캠퍼스(SVC)를 조성하고 있다. SVC는 2013년부터 운영되고 있던 중기부 산하 한국벤처투자(KVIC) 실리콘밸리 사무소를 확장해 마련한다. 정부와 기업, 은행이 한국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을 돕는 건 장려할 일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도 혁신 금융을 키워 국내 창업 생태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를 위해 기업과 은행들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투자한 스타트업이 빨리 성과를 내지 못해도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해야 한다는 얘기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단기적 성과가 중요한 국내 금융권에서 오랜 시간을 투입해야 수익을 거둘 수 있는 벤처 투자는 외면받기 쉽다”고 말했다.특별취재팀▽팀장 조은아 경제부 차장 achim@donga.com▽싱가포르=강우석, 스톡홀름=김수현 기자▽실리콘밸리=신진우, 보스턴=임우선,▽런던=유근형 특파원▽서울=전주영, 신무경, 주현우, 최미송 기자조은아 경제부 차장 achim@donga.com싱가포르=강우석 기자 wskang@donga.com스톡홀름=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실리콘밸리=신진우 특파원 niceshin@donga.com보스턴=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런던=유근형 특파원 noel@donga.com서울=전주영 기자 aimhigh@donga.com서울=신무경 기자 yes@donga.com서울=주현우 기자 woojoo@donga.com서울=최미송 기자 cms@donga.com}

새해 첫날 스위스 남부 스키 휴양지인 크랑몬타나의 리조트 내 술집에서 화재가 발생해 수십 명이 숨졌다. 화재 원인이 아직 규명되지 않은 가운데 스위스 당국은 “테러 가능성은 낮다”고 밝혔다. 스위스 일간지 르누벨리스트,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스위스 남서부 크랑몬타나에 있는 스키 리조트 내 술집에서 1일 오전 1시 30분경 폭발로 인한 화재가 발생했다. 최소 40명이 숨지고, 100여 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화상으로 인한 중상자가 많아 사망자는 더 늘어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습된 시신들도 화상 정도가 심해 신원 확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스위스 당국은 밝혔다. 사고 발생 초기 신년 축하 공연 중 불꽃놀이로 인한 폭발 또는 방화 가능성 등이 현지 언론을 통해 제기됐다. 하지만 경찰 대변인은 “폭발 원인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테러리스트의 소행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고 AFP에 전했다. 크랑몬타나가 속한 발레주의 베아트리스 필루드 검찰총장은 “희생자 가족 등을 고려해 정확한 원인을 밝힐 순 없지만, 현재로선 단순 화재일 가능성이 높고 누군가의 공격에 의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술집 내 샴페인 병에 꽂아둔 생일 축하 촛불이 화재 원인이라는 목격자 증언이 나왔다. 한 목격자는 “높은 탁자 위에 놓인 샴페인 병에 초가 있었는데, 초에 불을 붙이는 순간 천장으로 불길이 붙으면서 순식간에 확산됐다”고 프랑스 방송 BFMTV에 전했다. 크랑몬타나는 고급 스키 리조트가 밀집한 스위스 알프스의 중심 도시다. 알프스 산맥의 대표 명소인 마터호른에서 북쪽으로 약 40km 떨어진 도시다. 유럽뿐 아니라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전 세계 스키어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로 유명하다. 사고 당시 술집에는 수백 명의 관광객이 새해를 축하하기 위해 모여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중에는 10대 청소년과 20대 청년 약 200명도 포함돼 있었다. 이곳은 최대 수용 인원이 300명에 이르고, 테라스에서 별도로 40명이 식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큰 규모다. 폭발이 일어난 직후 불길이 순식간에 술집을 뒤덮었고, 관광객들은 어둠 속에서 이곳을 빠져나오며 비명을 질렀다고 생존자들은 전했다. 화재가 발생한 지 몇 시간이 지난 뒤에도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고 한다. 스위스 당국은 헬리콥터 10대, 구급차 40대, 대응 요원 150명을 출동시켜 구조 작업을 벌이는 한편으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파리=유근형 특파원 noel@donga.com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

“보통 광섬유 랜을 설치하려면 1년이 걸리지만, 이 장치를 쓰면 2∼3시간 만에 통신이 연결됩니다.” 지난해 12월 15일(현지 시간) 싱가포르 창이공항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위치한 게일랑 지역에 들어선 스타트업 ‘트랜스셀레스티얼’을 찾았다. 이 회사의 모하마드 다네시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신속하고 저렴하게 통신을 연결할 수 있는 장비를 설치하고 있었다. 다네시 CTO는 “광섬유 랜을 설치하려면 인허가, 땅 매립 등 복잡하고 어려운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이 장비로 하면 레이저를 사용한 무선이라 간편하다”고 소개했다. 이 스타트업의 통신 기술은 싱가포르뿐 아니라 일본, 인도, 호주 등 세계 곳곳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첨단 기술 하나만으로 세계 자금을 싱가포르로 끌어들인 것이다. 싱가포르가 스타트업 기술의 수혜를 누리고 세계의 투자금을 끌어모은 건 혁신 금융 덕분이었다.● “벤처투자사 밀집한 싱가포르에서 사업해 성공”트랜스셀레스티얼은 ‘디지털 격차를 줄이고 싶다’는 청사진을 품고 있다. 유엔 산하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은 지난해 인터넷을 사용하지 못하는 인구를 22억 명 정도로 추산했다.다네시 CTO는 “레이저 통신 기술로 세계 누구든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밝혔다. 2016년 설립된 이 회사는 싱가포르로 글로벌 자금을 끌어모았다. 인도, 일본, 말레이시아, 필리핀, 호주 등 여러 국가의 통신사들과 협업 중이다. 지난해 11월엔 일본 최대 통신 회사 NTT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일본은 지진, 지진해일(쓰나미), 태풍이 잦아 통신망을 빠르게 복구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 스타트업에 투자한 엠파워파트너스의 캐시 마쓰이 파트너는 “지진과 태풍으로 인해 통신 네트워크가 끊겨도 이 회사의 제품을 이용하면 불과 몇 시간 만에 복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스타트업을 창업한 다네시 CTO는 이란 국적이지만 싱가포르에 회사를 세웠다. 싱가포르에 혁신 산업을 수혈해 주는 ‘혁신 금융’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 사업은) 수백 곳의 벤처캐피털이 밀집한 싱가포르에서 사업했으니 가능했던 일”이라고 자평했다.싱가포르에서 스마트팜 사업에 뛰어든 ‘아치센’도 성장 잠재력을 인정받고 세계 곳곳과 협업하고 있다. 지난해 7월 말레이시아 디지털 농식품 기업 ‘팜바이트’와 조인트 벤처를 세웠다. 이를 통해 말레이시아 국경 부근의 조호르-싱가포르 경제특구(JS-SEZ)에 스마트팜도 지었다. ‘제2의 딥시크’인 중국 인공지능(AI) 기업 마누스는 지난해 싱가포르로 본사를 옮긴 뒤, 페이스북·인스타그램 운영사 메타에 2조 원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고 인수됐다.● 세제 혜택, ‘혁신금융’ 유입 촉진싱가포르가 아시아 스타트업 요람으로 정착한 가장 큰 이유는 ‘혁신금융’이 강하기 때문이다. 싱가포르 정부에 따르면 2023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주요국 6곳(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의 전체 벤처캐피털 투자 금액 중 싱가포르 점유율은 73.3%이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싱가포르에서 창업한 엄모 씨(48)는 “다양한 투자 회사들이 있어 운영 자금을 마련할 기회가 많다”고 설명했다. 싱가포르에 상속·증여세, 양도·배당소득세가 없는 점도 수많은 혁신 금융이 유입되는 배경으로 보인다. 인도네시아 소재 한 벤처캐피털의 대표는 “투자 환경이 자유로운 데다 세대 간 자산 이전도 용이해 북미권, 유럽 투자사, 기관이 싱가포르를 아시아 진출 교두보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전통 은행들 일찍이 ‘체질 변신’ 싱가포르의 강점으로 꼽히는 ‘전통 은행의 체질 변신’은 한국 금융권이 배워야 할 과제로 꼽힌다. 싱가포르 은행인 DBS, UOB, OCBC는 가계대출 영업에서 벗어나 스타트업들이 차별화된 아이디어만으로 사업에 도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책을 내놨다. 싱가포르 최대 은행 DBS는 아시아권 스타트업에 대출해 주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OCBC는 창업 후 6개월∼2년가량 된 초기 스타트업에 최대 10만 싱가포르달러(약 1억1225만 원)를 빌려주는 ‘비즈니스 퍼스트 론’을 도입했다. UOB는 스타트업 해외 확장과 기술을 지원하는 ‘핀랩(Finlab)’을 별도로 만들어 운영 중이다.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 자회사 버텍스홀딩스의 추아 키 록 대표이사는 “싱가포르 정부는 은행이 스타트업 투자로 본 손실의 일부를 보전해주는 파격적인 정책을 시행했다. 은행들이 그 과정에서 투자 노하우를 익혔다”고 말했다.특별취재팀▽팀장 조은아 경제부 차장 achim@donga.com▽싱가포르=강우석, 스톡홀름=김수현 기자실리콘밸리=신진우, 보스턴=임우선, 런던=유근형 특파원서울=전주영 신무경 주현우 최미송 기자}

싱가포르 등 아시아 금융 강국과 미국 실리콘밸리 등에서는 금융회사들이 혁신 기업들의 자금줄이 되고 있지만, 한국 금융권은 여전히 부동산 대출 중심 영업 관행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담보 없이도 기술력만 있으면 자금을 받을 수 있게 하겠다’며 나서고 있지만, 국내 은행권 대출에서 주택담보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6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부와 기업이 아무리 인공지능(AI) 등 첨단 산업 육성에 나선다고 해도, 금융사들이 자금의 물꼬를 혁신 산업으로 돌리지 않으면 혁신 산업 육성은 물론 1%대 저성장을 벗어나기도 어렵다.● 30년째 안 바뀌는 ‘손 쉬운 영업’1일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 자료(분기별)에 따르면 2025년 9월 말 국내 은행권(시중·지방·인터넷전문·특수은행)의 주담대는 767조786억 원으로 전체 원화대출금(2466조1660억 원)의 31.1%를 차지했다. 9월 말 기준으로 2019년(31.3%) 이후 가장 높다. 국내 은행들이 이처럼 부동산 대출에 치중하는 이유는 기업 대출에 비해 개별 대출 규모가 작아 손실을 피하기 쉽기 때문이다. 또 한국 부동산 특성상 담보가 확실해 은행이 돈을 떼일 가능성이 매우 낮다. 그만큼 은행 수익률은 높아진다. 돈을 빌린 사람이 빚을 갚지 못하면 은행은 담보로 잡은 부동산을 경매에 부쳐 손실을 곧바로 메울 수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 연쇄 부도에 이은 금융권 줄도산 이후 국내 은행들은 개인 부동산 담보 대출 영업에 주력해 왔다. 이런 영업 관행이 약 30년간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다. 은행 자금의 부동산 쏠림 현상은 한국 경제에 다양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스타트업 등 부가가치가 높은 부문으로 자금이 좀처럼 향하지 않다 보니 국가 전체 성장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 부동산 담보대출은 당장은 안전해 보이지만, 경제 위기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 금융 시스템 전반에 위기가 된다. 담보가치 하락으로 돈을 빌린 사람들이 빚을 못 갚고, 금융기관 건전성이 악화될 수 있다. 추명삼 한국은행 금융시장연구팀 차장은 “(부동산 가격 하락기에) 은행 대출 여력이 줄면 전체 신용 공급이 줄어 가계와 기업의 소비와 투자가 위축된다”고 말했다. ● 벤처 집중 투자하는 VC마저 자금 회수한 건축 플랫폼 스타트업은 사업 악화로 2024년 1월 법원으로부터 회생 개시 결정을 받았다. 그러자 투자사는 ‘회생절차가 시작되면 투자자가 이해관계인(대표)에게 주식매수를 청구할 수 있다’는 계약서를 근거로 풋옵션(특정 가격에 주식을 팔 권리)을 행사했다. 스타트업은 “조금만 기다려 주면 이자라도 갚겠다”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2025년 7월 법원은 투자사의 손을 들어줬다. 이 사건 이후 스타트업 업계는 얼어붙었다. 창업자가 사업에 삐끗하면 언제라도 개인 자산을 날릴 수 있는 선례가 됐기 때문이다. 벤처캐피털(VC)들은 업황이 어려워지면서 투자한 스타트업으로부터 돈을 회수하는 분위기다. 기업공개(IPO)나 인수합병(M&A) 등 회수 시장이 막히면서 투자 실적이 없는 이른바 ‘깡통 VC’도 등장하고 있다. 벤처투자회사 전자공시에 따르면 2025년 1∼11월 투자 실적이 ‘0원’인 VC는 36곳에 달한다. 전체 등록 벤처투자사(384개)의 약 9.4%가 소위 깡통 투자사인 셈이다. 2020년에는 깡통 투자사가 11곳(전체의 5.6%)에 불과했는데, 5년 새 분위기가 바뀌었다. 대형 은행은 가계 대출 중심의 영업 관행을 바꾸지 않고, VC마저 자금줄이 막히면서 스타트업 업계에서는 “한국에서 토스, 배달의민족 같은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 원 이상 기업)이 안 나온 지 오래됐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효석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VC와 사모펀드(PE), 금융회사가 각각 역할별로 창업 생애주기 전체에서 초기 스케일업부터 인수합병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해 회수가 용이한 자본시장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동산에 치중된 자금 물꼬를 혁신 산업으로 돌려야 한국 경제의 고질적인 부동산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준서 동국대 경영대 교수는 “은행권이 그동안 부동산 담보 대출로 돈을 많이 벌었으니, 이제는 그 돈을 기업의 가치를 높이고 경제 성장을 높일 수 있는 생산적 금융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특별취재팀▽팀장 조은아 경제부 차장 achim@donga.com▽싱가포르=강우석, 스톡홀름=김수현 기자실리콘밸리=신진우, 보스턴=임우선, 런던=유근형 특파원서울=전주영 신무경 주현우 최미송 기자}

지난해 12월 16일 싱가포르 서부 주롱 지역. 금융 중심지인 ‘래플스 플레이스’에서 차로 30분가량 떨어진 이곳에 7층짜리 회색 건물이 서 있다. 물류 창고, 자동차 부품 센터 등이 에워싸고 있는 스마트팩토리 건물에 들어서니 벽면을 따라 5m 높이 거치대에 촘촘하게 심어진 푸른 채소들이 자라고 있었다. 벽을 따라 조성된 ‘수직 스마트팜’이다. 상추, 케일, 근대 등 9개 종 식물이 밭이 아닌 인공 시설에서 자란다. 이곳 담당 직원 에릭 치아 씨는 “로봇이 농작물 방제, 운반, 점검 등을 모두 진행한다”고 소개했다. 빌딩 안 수직 농장은 2015년 싱가포르에서 창업한 스마트팜 기업 ‘아치센’이 관리한다. 식물 영양분과 산성 농도를 자동으로 확인하고 조절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빈센트 웨이 아치센 대표는 “싱가포르 국토에서 경작지 비중은 고작 1%”라며 “식량 자급률을 높이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아치센은 도시 국가 특성상 식량 자급자족이 어려운 싱가포르 경제 모델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다. 싱가포르 국토에서 나는 채소는 이 나라 전체 채소 소비량의 4%에 불과하다.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때는 수입이 안 돼 가격이 치솟았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 9만 달러 부국(富國)의 약한 고리가 드러났다. 아치센이 무모해 보이는 도전에 나설 수 있었던 배경에는 신산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혁신 금융’이 있다. 스마트팜 사업은 설비투자, 전기료 등 비용 부담이 커서 수익성을 장담하기 어렵다. 하지만 혁신성을 일찌감치 알아본 싱가포르는 물론 한국 벤처캐피털(VC)과 말레이시아 식품 기업 등이 800만 달러(약 116억 원)를 투자했다.세계 최대 창업 강국인 미국 등 주요 선진국들은 혁신 산업을 키우는 ‘혁신 금융’을 놓고 전쟁에 버금가는 치열한 경쟁 중이다. 싱가포르 벤처투자 시장의 외국인 투자 비중은 84%에 달한다. 반면 한국의 금융은 여전히 주택담보대출이 큰 비중을 차지하며 옛 방식에 머무르고 있다. 글로벌 혁신 금융 전쟁에서 뒤처진 한국이 지금이라도 더 과감히 나서야 혁신 산업을 일으키고 저성장 터널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은행이 혁신 기업을 적극 발굴해 자금을 지원하면 유망 기업에 투자할 투자자들이 해외에서 몰려올 것”이라며 “정부와 금융권이 부동산에서 혁신 기업으로 돈의 물꼬를 틀어야 한다”고 말했다.특별취재팀▽팀장 조은아 경제부 차장 achim@donga.com▽싱가포르=강우석, 스톡홀름=김수현 기자실리콘밸리=신진우, 보스턴=임우선, 런던=유근형 특파원서울=전주영 신무경 주현우 최미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