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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모두 일어나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합시다!”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18일 거행된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마지막 식순으로 ‘임을…’ 합창 순서가 다가오자 누군가 이같이 외쳤다. 그러자 참석자 4000여 명 대부분이 일제히 일어나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20대 총선 당선자 161명 가운데 100여 명이 참석한 야권은 물론이고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도 동참했다. 전날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결정한 ‘셀프 제창’ 방침에 여야 모두 공조한 형국이 됐다. 반면 정부 측 인사인 황교안 국무총리, 현기환 대통령정무수석,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 등은 입을 굳게 닫고 있었다. 보훈단체 관계자 50여 명은 집단 퇴장했다. 제창 불허 결정을 한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기념식에 참석조차 못했다. 박 처장은 행사 시작에 맞춰 입장하려 했으나 “여기가 어디라고 오느냐”며 항의하는 5·18 희생자 유가족 등 20여 명과 몸싸움을 벌이다 발길을 돌렸다. 국론 분열을 우려해 기존 ‘합창’ 방식을 고수한 박 처장은 퇴장하며 “참석하지 못하게 한 건 대단히 유감”이라면서 “국민의 의견을 들어 결정한 것이지, 개인의 독단적 결정이 아니다”고 항변했다. 보훈처는 행사 후 “국민들이 일부는 노래를 부르고 일부는 부르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정부가 왜 ‘임을…’ 기념곡 지정·제창 결정이 어려운지 확인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라고 입장을 냈다. 황 총리도 기념사에서 “5·18 정신을 대화합의 에너지로 승화시켜 더욱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이뤄 나가겠다”고 했지만 이날 기념식은 국론 분열을 고스란히 노출시킨 ‘반쪽짜리’ 행사로 끝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3년만 참석한 뒤 이후 3년째 불참했다. 광주에 집결한 야권 지도부는 정부의 제창 불허 방침에 비판 목소리를 높였다. 더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행사 직후 “정부가 옹졸하고 아집에 사로잡힌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전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오늘은 ‘임을…’을 당당하게 부르고 다음에 저희가 지정곡으로 하겠다”며 “합창은 되고 제창은 안 된다는 게 도대체 무슨 논리인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는 “사회통합을 위해 제창돼야 한다”고 했고, 박지원 원내대표는 “박 처장의 작태에 모든 국민이 분노한다”고 했다. 하지만 야권 역시 매서운 질타의 대상이 됐다. 한 5·18 유가족은 기념식이 끝나자 안 대표에게 다가가 “광주를 두 쪽으로 만들었는데 지켜보겠다”고 소리쳤다. 한 5·18 단체 관계자는 “더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와 (국민의당) 박 원내대표에게도 (결정을 막지 못한 책임을) 묻는다”며 항의했다. 지난주 광주를 찾아 “역사의 부름 앞에 더 행동하겠다”고 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날 서울광장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임을…’조차 부를 수 없는 현실에 저항하고 분노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시가 주최한 기념식에서는 ‘임을…’을 합창단 없이 참석자들이 제창했다.광주=차길호 kilo@donga.com·이형주 /송충현 기자}
야권의 전통적인 ‘텃밭’인 호남을 놓고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지도부가 광주에 총출동했다. 정부의 ‘임을 위한 행진곡’ 기념곡 지정과 제창 불허 결정 논란 와중에 17일 열린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전야제는 두 야당의 ‘야성(野性)’ 각축장이 됐다. 4·13총선 직전 광주에서 “호남이 지지를 거두면 정치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던 더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도 참석했다. 더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이날 광주 동구 민주광장에서 열린 전야제 직후 기자들과 만나 “박근혜 대통령은 협치를 강조하면서도 3당 원내대표들과 맺은 첫 약속을 어겼다”며 “내일 ‘임을…’ 제창이 이뤄지지 않으면 더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합창이 진행될 때 다같이 일어나 스스로 제창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 총선 당선자 38명 가운데 30명이 참석한 국민의당은 ‘임을…’을 완창할 수 있도록 ‘사전 교습’까지 했다고 한다. 더민주당은 당선자 123명 중 32명이 참석했다. 양당은 행사 막바지인 오후 10시경까지 행사장을 지켰다. 전야제에 참석한 야권 인사 중 이번 총선에서 광주 8석을 모두 석권한 국민의당 소속 인사들이 맨 앞에 자리했다. 이어 더민주당 정의당 순으로 자리했다. 하지만 더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도착하자마자 정치인 대열과 떨어져 5·18단체장 등이 위치한 앞 열에 자리를 잡았다. 더민주당 우 원내대표 측이 문 전 대표 측근을 통해 함께 앉을 것을 여러 차례 권했지만 문 전 대표는 거절했다고 한다. 문 전 대표가 정치인 대열에 서지 않으면서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와의 5개월여 만의 조우는 불발됐다. 지난해 전야제에서는 시민들로부터 야유를 받으며 불청객 취급을 받았던 문 전 대표는 이날 행진 도중 “박근혜 정권과 열심히 싸우고 계신 분”이라는 행사 관계자의 소개에 일부 시민들로부터 박수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행사장 통제가 어려울 정도로 지지자가 몰린 안 대표의 인기에는 못 미쳤다. 문 전 대표는 전야제에 앞서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PK(부산경남) 지역과 광주 지역 낙선자들을 연이어 만나 만찬을 함께했다. 당 일각에선 “더민주당이 호남에선 참패했지만 전국에서 승리한 점은 문 전 대표의 공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친문(친문재인) 측 주장을 부각시키려는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더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이날 전야제에는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했지만 18일 기념식 본행사에는 참석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본행사장에는 야권 전·현직 지도부 3인과 안희정 충남지사 등 야권의 대권 잠룡들이 대부분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전야제에서는 시작부터 끝까지 ‘임을…’이 울려 펴졌다. 참석한 시민 5000명(경찰 추산)은 정부의 제창 불허 결정에 항의하듯 목소리를 높여 노래를 불렀다. 전야제 첫 행사와 끝 행사로 광주지역 노래패 회원 21명이 ‘임을…’을 부르고, 시민들은 손을 쥐고 흔들며 제창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남편을 잃은 윤삼례 씨(73)는 “정부가 제창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18일 기념식에서도 시민 모두가 목청껏 노래를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 5·18민주화운동 36주년을 맞아 광주는 이날 저녁 추모 분위기가 절정에 달했다.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는 올 1월부터 이날까지 총 30만3845명이 참배했다.광주=차길호 기자 kilo@donga.com·이형주 기자}

‘임을 위한 행진곡’이 해외에서 처음 불린 것은 1982년 홍콩이었으며 이후 세계 각국에서 34년간 애창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13일 전남대에서 열린 ‘5·18민중항쟁 제36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임을 위한 행진곡의 세계화: 홍콩 대만 중국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통해 1982년 해외에서는 처음으로 홍콩에서 노래가 불러졌다고 17일 밝혔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1982년 4월 광주에서 작곡된 것을 감안하면 작곡 반년도 되지 않아 노래에 영감을 받은 홍콩 시민들이 애창을 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현재 임을 위한 행진곡 악보를 자기 나라에 맞게 만들어 부르는 나라는 홍콩, 대만, 중국, 캄보디아, 태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7개국이며 애창하는 국가도 10여 개국이나 된다고 덧붙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2년 4월 말 5·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옛 전남도청을 지키다 진압군의 총탄에 맞아 숨진 윤상원 씨와 1979년 노동 현장에서 숨진 박기순 씨(여)의 영혼결혼식을 위해 만들어졌다. 노래는 소설가 황석영 씨(73)의 광주 집에 모인 김종률 씨(58) 등이 만들어 불렀다. 김 씨는 1983년 3월 군에서 첫 휴가를 나와 자신이 만든 ‘임을 위한 행진곡’이 서울에서 불리는 것을 처음 들었다. 광주에서는 5·18유족회가 1983년 광주 북구 망월동 옛 묘역에서 열린 추모식에서 처음 불렀다. 홍콩 시민들은 1982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어떻게 부를 수 있었을까. 정 교수는 학생운동과 관련된 국제협력모임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홍콩에 전파했다고 설명했다. 홍콩중문대 앤절라 윙 교수는 1981년 학생 시절 홍콩에서 활발하게 펼쳐진 기독학생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1982년 YMCA와 한국기독학생회가 서울에서 주최한 청년훈련 프로그램에 참석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처음 들었다. 참석자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것에 큰 영감을 느꼈고 이후 홍콩으로 돌아와 노래를 전파했다. 그는 1984년부터 홍콩 노동자 모임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가 중국어로 번역된 것을 계기로 악보가 널리 배포됐다고 논문을 통해 밝혔다. 노래 제목은 ‘애적정전(March for love)’, 원작자는 남한 학생으로 표기됐다. 홍콩에 이어 임을 위한 행진곡이 두 번째로 전파된 곳은 대만이었다. 대만 노동자 왕리샤(汪立峽) 등은 1988년 가을 한국에서 열린 아시아노동자대회에 참석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처음 들었다. 이들은 귀국한 후 임을 위한 행진곡을 현지 노동운동의 맥락에 맞게 ‘노동자전가’라는 노래로 만들어 부르기 시작해 지금까지 애창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농민들의 노래로 알려져 있다. 중국 대학생들도 농민운동을 하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정 교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세계화는 한국 학생 노동운동의 역동성이 각 국가 상황에 맞게 확산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 교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한국 시민단체에 의해 세계에 퍼진 것이 아니라 영감을 받은 외국인들이 스스로 불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 노래가 1994년 북한 영화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것을 두고 폄훼하고 있는데 현재 북한은 오히려 이 노래가 체제 위협이 될 것이라고 두려워하며 부르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임을 위한 행진곡을 26년간 부른 홍콩 가수 홍판퀑 씨(52·사진)가 18일 5·18기념재단에서 열리는 2016광주인권상 시상식에서 축하공연을 한다. 홍 씨의 축하공연 노래는 역시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홍 씨는 17일 5·18기념재단에서 진행된 2016광주아시아포럼 해외 5·18기록물 기증자 회의에 참석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26년간 애창한 사연을 소개했다. 그는 “1990∼1991년 사이 대학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처음 접한 뒤 계속 부르고 있다”며 “노래는 노동자 권리주장 현장에서 널리 애창되고 있다”고 말했다. 홍콩에서 민주화운동이 있었는데 참석자들이 현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애창하게 된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2000년 태국 방콕에서 열린 세계 노동자 예술축제에서 현지 여성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춤을 춰 아시아 곳곳으로 확산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베이징, 상하이 등 중국 전역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홍 씨는 “임을 위한 행진곡은 친구들과 항상 불러도 감동을 준다”며 “노래를 부르면 민주와 인권 등을 결의에 차게 생각할 수 있어 좋다”며 말을 마쳤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박근혜 대통령과 야당 간 협치(協治)의 첫 과제로 떠올랐던 ‘임을 위한 행진곡’의 5·18민주화운동 기념식 제창 여부는 결국 박 대통령의 부담으로 돌아오게 됐다. 13일 박 대통령과 3당 원내지도부 간 회동에서 합의한 사안들까지 불과 사흘 만에 이행 여부가 불투명해졌다. ○ 검토 지시에서 원점으로 왜? 박 대통령과 3당 원내지도부의 회동 이후 청와대는 국가보훈처에 5·18 기념식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는 것에 대해 검토를 지시했다. 이어 지난 주말 동안 보훈처는 보훈·안보단체 중심으로, 청와대는 정치권 위주로 의견을 수렴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당초 ‘제창 허용’ 쪽에 무게를 뒀다. 15일 낮까지만 해도 복수의 청와대 및 여권 관계자들은 “대통령이 야당 원내대표들 앞에서 ‘검토 지시’를 약속한 만큼 기념곡 지정은 어렵더라도 제창에 대해선 유연한 태도를 보일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공식적으로 이 노래를 제창했던 2006년 5·18 기념식에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은 제창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야당과의 관계를 고려해 중립적 태도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의 한 참모는 “박 대통령은 방향을 미리 정하지 않고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해 보자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돌고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셈. 여권의 한 관계자는 “보훈처에서 ‘보훈단체들은 제창을 하면 일제히 일어서서 나가겠다고 한다’ 등의 의견을 강력하게 청와대에 전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청와대 참모진은 15일 늦은 밤까지 대책회의를 하면서 해법을 고민했지만 결국 보훈처의 의견을 수용했다는 후문이다. 정치권 일부에선 박 대통령의 결심이나 총리실 등과의 협의 없이 보훈처가 단독으로 결정하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본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보훈처에서 여러 경로로 의견을 듣고 종합해 결정한 것으로 안다. 박승춘 보훈처장이 혼자 결정했겠느냐”고 했다. 결국 보수와 진보를 모두 만족시킬 묘책이 없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정치적 선택을 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또 다른 청와대 참모는 “대통령은 야당에 정치적인 고려를 하려는 마음이 있었겠지만 그것만으로 풀 수 없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야당은 “협치 불가”를 선언하고 나섰고, 야당의 협조를 얻어 노동개혁 등 국정 현안을 풀어 나가려 했던 박 대통령의 정국 구상은 타격을 받게 됐다. 여권 내에서는 “박 대통령과 3당 지도부가 합의했던 3당 대표 회동과 민생경제 현안 점검회의가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 강경한 보훈처… 5·18 단체 반발 보훈처는 이날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기념곡 지정·제창의 찬성 논리는 6줄에 걸쳐 평이한 글씨체로 소개한 반면 반대 논리는 20여 줄에 걸쳐 굵은 글씨로 조목조목 적시했다. 예비역 중장인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앞으로 군 통수권자가 5·18 기념식에 참석해 이 노래를 제창한다면 국가정체성과 안보의식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는 우려를 청와대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원내대변인은 “제창을 피하기 위한 핑계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5·18 관련 단체들은 정부의 결정에 “오월정신과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며 “정부가 국론분열 중심에 있다”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제36주년 5·18민중항쟁 기념행사위원회는 이날 오후 옛 전남도청 앞 5·18민주광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거부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후식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 회장(74)은 “청와대가 두 야당 원내대표에게 보훈처 핑계를 대는 것을 보고 말장난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다만 이들 단체는 “5·18기념식장 좌석을 가짜 유족들이 채우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며 올해는 기념식에 참석할 방침이다. 5·18 관련 단체는 2014년 기념식에 불참했고, 지난해에는 옛 전남도청에서 별도로 기념식을 열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1981년 5·18광주민주화운동 1주년을 기념해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전남도청 진압작전 때 희생된 윤상원 씨와 1978년 노동운동을 하다 숨진 박기순 씨의 영혼결혼식에 헌정된 곡이다. 소설가 황석영 씨가 시민사회운동가 백기완 선생의 옥중시 ‘묏비나리’의 일부를 차용해 가사를 썼고, 당시 전남대를 다니던 김종률 씨가 작곡했다. 장택동 will71@donga.com /광주=이형주 기자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16일 오후 3시 전남 고흥군 고흥문화회관에서 명예군민증을 받은 마리아네 스퇴거 수녀(82)는 미소를 띠며 이런 짧은 소감을 밝혔다. 또 소록도성당 김연준 신부가 오스트리아 요양원에 입원 중인 마르그레트 피사레크 수녀(81)를 대신해 명예군민증을 받았다. 소록도 천사 할매로 불리는 두 수녀는 오스트리아 간호대학을 졸업한 뒤 1962년 소록도에 들어와 43년간 한센병 환자들을 보살폈다. 두 수녀는 2005년 ‘건강이 악화돼 환자들을 돌볼 수 없어 부담만 주는 것이 미안하다’는 내용이 적힌 편지를 남겨놓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고흥군은 이날 명예군민증 수여식에서 스퇴거 수녀에게 ‘소록도에 머물러 달라’고 요청했으나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여전히 ‘소록도에 짐이 되기 싫다’는 표정이었다. 고흥군은 17일 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에 맞춰 소록도 천사 할매 수녀 2명을 비롯해 4명에게 명예군민증을 수여했다. 김혜심 원불교 교무와 설영흥 전 현대자동차 부회장도 명예군민증을 받았다. 김 교무는 1970년대부터 소록도병원 약무사로 일하며 장학회를 설립해 한센인 자녀들의 학자금을 지원했다. 그는 현재는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설 부회장은 대학 1학년 때부터 소록도 간척사업과 허드렛일을 하며 봉사활동을 했다. 고흥군은 명예군민 4명에게 소록도병원 개원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기념우표 100장과 증정패를 전달했다. 명예군민은 지역발전에 공로가 인정된 타 지역 출신사람들에게 주는 것으로 고흥군의 문화·관광시설 방문 때 각종 편의제공은 물론 행사 때 정중한 예우를 받는다. 박병종 고흥군수는 “인간성이 쇠퇴해 가는 요즘 세태에 비춰 봉사정신의 고귀함은 인류의 자산”이라며 “소록도가 지난 100년간 애환의 섬이었다면 앞으로 100년은 희망과 치유의 공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소록도에서는 국립소록도병원 100주년을 기념해 16일부터 18일까지 국제학술심포지엄을 비롯해 다채로운 행사가 열린다. 고흥=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어버이의 날인 8일 아버지(76)를 잔혹하게 살해한 문모 씨(47·여) 남매를 수사하고 있는 경찰이 이들이 “학대를 받아 살인했다”는 주장과 달리 돈을 노리고 범죄를 저지른 정황을 포착했다. 광주 북부경찰서는 문 씨 남매가 돈을 노려 존속살인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관련 증거를 찾아내는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15일 확인됐다. 경찰은 14일 문 씨와 문 씨의 동생(43)을 참석시킨 가운데 피해자가 살았던 광주 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현장검증을 했다. 경찰은 이 과정에서 거실 가죽소파 밑에 실로 묶은 통장 3개와 아파트 등기권리증을 발견했다. 이를 본 남매는 “참, 끈으로 묶어 거기다 감춰놓았네”라고 중얼거리며 흥분했다. 검증을 마친 뒤 동생은 경찰관에게 “잘 찾았어. (현장검증은) 돈이 목적이구만”이라며 화를 내기도 했다. 경찰은 남매가 범행 직후 뭔가를 찾기 위해 열쇠로 잠근 장롱을 부수는 등 집 곳곳을 뒤진 흔적도 확인했다. 경찰은 평소 남매가 아버지에게 금품을 요구했고, 피해자는 이를 피하기 위해 재산을 숨겼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경찰에 따르면 남매는 지난달 아버지에게 시가 1억 원 상당의 아파트를 넘길 것을 종용했는데 피해자는 친척들에게 “무섭다”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자는 매달 36만 원을 받는 기초생활수급비를 모아 친척, 지인 3명의 통장에 5400만 원을 저축해놓고 있었다. 남매는 구속된 뒤에도 뉘우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2011년 사망한 어머니가 생전 교통사고를 당해 받은 보험금과 누나 문 씨의 퇴직금 등을 은행에 정기예금으로 맡기면서 생활비 조로 따로 떼어둔 320만 원을 “사식(私食) 등에 쓰겠다”며 경찰에 찾아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남매는 경찰에서 살인을 인정했지만 “돈을 노린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어머니와 우리들에게 각종 학대를 저질렀기 때문”이라며 떳떳하게 진술했다. 하지만 그의 친척들은 “피해자가 가정폭력으로 처벌받은 사실이 있지만 딸이 허위로 신고한 것이다. 남매는 돈을 노려 부친을 살해했다”고 증언했다. 경찰은 남매가 범행 직후 뉴질랜드로 달아나려했던 사실도 확인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일제강점기 일본 미쓰비시(三菱) 중공업에 근로정신대로 끌려갔던 양금덕 할머니(85)가 배우 송혜교(34)에게 편지를 썼다. 송혜교가 미쓰비시 자동차의 광고 제의를 거절한 데 대한 고마움의 뜻이다. 최근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출연해 주가가 높아진 송혜교는 지난달 미쓰비시 자동차가 중국에 선보일 자사 광고의 모델 계약을 제의했지만 거절해 화제가 됐다. 거절 이유는 미쓰비시가 2차 세계대전 당시 한국인 등을 강제노역 시켰기 때문이다. 미쓰비시 측은 지난해 강제노역에 동원한 중국인에게 보상금을 제공했고 미국과 영국 등을 방문해 사과했지만 한국인 피해자는 보상과 사과 대상에서 제외했다. 양 할머니는 편지에 “송혜교가 광고를 거절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눈물이 나고 가슴에 박힌 대못이 빠져나간 듯이 기뻤다”고 적었다. 이어 “너무도 장한 결심을 해줘 감사하다. 우리는 돈이 문제가 아니고 일본 아베 총리와 미쓰비시 측의 사죄를 받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사죄를 받아야 저 세상 가더라도 눈을 감을 수 같다. 목숨 다할 때까지 싸워 이기겠다”고 적었다. 15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 따르면 양 할머니는 전남 나주초교 6학년에 재학하던 1944년 5월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좋은 공부도 시켜준다. 중학교도 갈수 있다”는 일본인 교장의 말에 속아 미쓰비시 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로 끌려갔다. 그는 8개월여 동안 강제노동에 시달리며 갖은 고초를 겪었으나 임금을 한 푼 받지 못했다. 양 할머니는 1999년 일본정부와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2008년 최고재판소에서 패소했다. 그는 이후 광주지법에 소송을 제기해 2013년 1심 승소, 지난해 광주고법에서 2심 승소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미쓰비시 측의 상고로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뒤로 숨지 않고 역사의 대열에 앞장서겠다.” 13일 광주 북구 전남대에서 열린 박원순 서울시장의 특강은 흡사 대선 출사표를 방불케 했다. 야권의 유력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박 시장은 그간 정치 현안에 대해 비교적 신중한 태도를 보였지만, 이날은 자신의 생각을 소상히 밝혔다. 전날 광주를 찾은 박 시장은 14일까지 광주에 머물며 더불어민주당 내에선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된 호남 잡기 행보를 계속한다.○ 朴, 소통-협치-경청 강조 ‘1980년 5월 광주가 2016년 5월 광주에게―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보내는 시그널’이라는 주제로 진행된 이날 강연에는 학생, 교직원, 시민 등 400여 명이 참석했다. 박 시장은 이날 민생의 어려움을 언급하며 “천하가 고통과 절망 속에 잠겨 있어 아직도 저는 편히 잠들 수 없다”며 “서울시장으로서 최선을 다한 것으로 책임을 모면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역사의 부름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더 행동하겠다”고도 했다. ‘역사의 부름’을 전제로 더 큰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정부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도 쏟아냈다. 그는 세월호 참사, 역사교과서 국정화, 한일 위안부 협약, 개성공단 폐쇄,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건 등을 언급한 뒤 “역사의 후퇴는 멈추지 않고 있다”며 “도대체 국가란 무엇이란 말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총선 결과에 대해서도 “호남에서는 더민주당에 대한 심판이었다고 생각한다”며 “4·13총선은 ‘반란’이 아니라 ‘혁명’이다”라고 했다. 박 시장은 소통, 협치, 경청을 강조했다.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낸 기동민 당선자는 “소통과 협치는 박 시장의 일관된 정치 철학이자 신조”라며 “대선과 관련해 ‘스스로 뛰어들지 않겠지만, 역사와 시민이 부른다면 마다하지 않겠다’는 뜻을 재차 밝힌 것”이라고 했다. 박 시장 측 관계자는 “그동안 ‘행정’에 더 치중했던 박 시장의 발언과 행보가 광주 방문을 기점으로 더 ‘정치적’으로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 쟁탈전 본격화 박 시장의 강연에 대해 더민주당 관계자는 “장소로 광주를 택한 점은 야권의 심장이지만, 뚜렷한 맹주가 없는 호남을 껴안으려는 의도”라고 했다. 더민주당은 광주에서 단 한 석도 건지지 못할 만큼 참패했지만, 당내에서는 호남을 대표할 만한 대선 주자를 꼽기 어려운 실정이다. 박 시장의 잠재적 경쟁자인 문재인 전 대표도 운신의 폭이 넓지 않은 상황이다. 박 시장은 광주와의 인연을 강조하며 ‘호남 껴안기’에 나섰다. 그는 5·18민주화운동을 언급하며 “(1980년) 광주 5월의 이야기는 같은 시절 경주마처럼 성공만을 좇았던 제 삶에 대한 부끄러움”이라며 “광주 정신은 평범하게 살 뻔한 박원순의 인생을 바꿔 놨다”고 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늘 이곳 광주에서 정치적 대전환의 중대한 기회를 맞이했다”고 말했다. 자신의 향후 정치적 비전과 목표를 광주에서 내놓은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박 시장은 이날 광주 시의원들과 만나서도 ‘큰 뜻’을 감추지 않았다. 한 시의원이 “총선 과정에서 존재감이 미흡했다”고 하자 박 시장은 “시정에 전념하다 보니 한계가 있었지만 앞으로 존재감이 드러나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참석자는 “박 시장의 대선 도전에 대해 참석한 시의원들 대부분이 굉장히 좋은 평가를 내렸다”고 했다. 박 시장을 시작으로 5·18을 전후로 주요 대권 주자들의 ‘광주행’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인다. 호남에서 압승을 거둔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공동대표는 17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광주 전남 전북을 찾을 예정이다. 같은 기간 문 전 대표도 4·13총선 이후 세 번째 호남 방문에 나선다.한상준 alwaysj@donga.com·황태호 /광주=이형주 기자}
공무원 50여명의 근무성적평정 순위를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박철환 전남 해남군수(57)가 검찰에 구속됐다. 광주지검 특별수사부(부장 노만석)는 공무원 근무성적평정 순위를 조작한 혐의(직권남용) 등으로 박 군수를 구속했다고 13일 밝혔다. 검찰은 또 건설업자에게 수백만 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해남군 비서실장(57)도 구속했다. 검찰에 따르면 박 군수는 2011년부터 2015년까지 A 씨 등 공무원 51명의 근무평가를 올리거나 내리는 등 근무성적평정을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일년에 두 차례 실시되는 근무성적평정은 공무원들이 얼마나 일을 잘하는지 기록하고 활용해 인사에 반영하는 제도다. 박 군수는 또 2012년 대통령선거 당시 비서실장이 준 2000여만 원을 모 대선후보 펀드에 투자했다가 돌려받았으나 비서실장에게 되돌려주지 않은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은 박 군수가 근무성적평정을 조작한 정확한 이유 등에 대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해남군 공무원 수가 700여명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51명 근무성적평정 조작은 정상적인 조직운영에 차질을 빚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해남 지역에서는 박 군수가 말을 듣지 않는 공무원들의 군기잡기 등의 목적으로 근무성적평정을 조작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일부에서는 학교 동창인 비서실장이 많은 권한을 행사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한편 검찰은 지난해 10월 감사원이 해남군 근무성적평정 순위 조작사실을 적발해 담당자 등에게 주의처분과 징계를 권고한 뒤 수사를 의뢰하자 조사에 착수했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광주지역 첨단산업 기업의 기술 혁신을 이끌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이노비즈센터가 문을 열었다. 광주시와 미래창조과학부는 12일 중소기업에 기술 이전 및 판매와 창업 지원을 하는 대학이나 연구소 기업들이 한곳에 둥지를 튼 이노비즈센터를 개관했다. 광주 북구 월출동에 들어선 이노비즈센터는 전국에서 두 번째로 문을 열었다. 예산 347억 원이 투입된 광주 이노비즈센터는 지하 1층 지상 10층, 총면적 1만4768m² 규모로 지어졌다. 광주 이노비즈센터는 올해 한국발명진흥회 광주지회, 전남대 기술 지주회사 등 20여 곳이 입주한다. 광주 첨단산업단지 등을 중심으로 조성된 광주연구개발특구(18.5km²)는 광산업, 전기, 친환경자동차, 의료소재산업이 주력을 이루고 있다. 광주연구개발특구는 2011년 지정 이후 입주 기업이 415개에서 764개로 84% 증가했다. 기업 기술 이전 건수는 117건에서 310건으로, 일자리는 1만3000개가 늘었다. 광주연구개발특구는 그동안 연구기관, 대학 연구소, 연구소 기업 등이 분산돼 있어 중소기업들이 체계적인 기술 지원 서비스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광주 이노비즈센터 개관에 따라 체계적인 기술 지원이 가능해졌다. 광주 이노비즈센터는 일자리를 창출하고 기업 현장 규제, 애로 사항 등을 해소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 산학연 협력을 통해 기술 이전, 마케팅, 연구개발 활성화를 이끌 것으로 예상된다. 박동희 광주시 미래산업정책관은 “2018년까지 연구소 40여 곳이 입주하는 이노비즈센터는 광주특구 육성을 종합 지원하는 거점 역할을 함으로써 다양한 기술 사업화와 청년 일자리 창출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박원순 서울시장이 12일 국립5·18민주묘지 참배를 시작으로 2박 3일 일정의 광주 방문을 시작했다. 박 시장은 이날 5·18민주묘지에서 기자들과 만나 4·13총선 결과에 대해 “국민이 엄중한 심판을 내린 것 같다”며 “여당은 대패했고 야당도 결코 승리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대권 행보의 시작’ 여부를 묻자 “과거부터 늘 광주정신과 연결돼 살아왔다. 앞으로도 그렇게 할 생각”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참배 뒤엔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 대동사상이라는 광주정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윤장현 광주시장과 문화관광 활성화를 위한 교류협력 협약을 맺었다. 박 시장은 “윤 시장과는 5·18민주화운동 진상 규명과 추모 등을 함께한 형제관계”라고 했다. 윤 시장은 “미래 세대를 위해 문화교류 등으로 활발하게 소통하자”며 ‘광주를 자주 찾아 달라’는 의미로 검은색 운동화를 선물했다. 박 시장은 이어 광주전남지역 언론사 편집국장단과 만찬을 했다. 오후 9시 40분경에는 더불어민주당 당선자 워크숍이 열린 김대중컨벤션센터를 찾아 강연했다. 박 시장은 당선자들에게 “총선에서 우리 더민주당이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래도 이 자리에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건 잘했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13일 전남대에서 ‘80년 5월 광주가 2016년 5월의 광주에게’를 주제로 특강을 한다. 이어 광주트라우마센터를 방문하고 5월 단체, 광주시의원, 송정시장 청년상인 등을 만날 계획이다. 김민 kimmin@donga.com / 광주=이형주 기자}

영산강변에 들어서는 광주 광산구 쌍암동 힐스테이트 리버파크(조감도)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11일 금융결제원과 지역 건설업계에 따르면 힐스테이트 리버파크 아파트 1순위 청약을 받은 결과 810가구 모집에 3만7133명이 몰려 평균 45.8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현대건설은 전용면적 74∼178m²의 아파트를 공급한다. 입주는 2019년 2월 예정이다. 이 아파트는 영산강 옆에 위치해 조망권이 좋다. 교통이 편리한데다 인근에 어린이교통공원, 첨단근린공원이 있어 주거환경이 쾌적하다. 아파트 단지 지척에 대형마트, 극장, 병원 등 편의시설이 있는 것도 장점이다. 밖에서 스마트폰을 활용해 조명, 가스, 난방시설을 제어하는 첨단 사물인터넷 시스템도 갖췄다. 현대건설은 오피스텔 152실(74∼84m²)도 17∼19일 분양한다. 힐스테이트 리버파크 모델하우스는 광주 광산구 장덕동에 있다. 문의 062-941-1000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어버이의 날 아버지를 살해한 문모 씨(47·여) 남매의 잔인한 범행은 과거 가정폭력으로 인한 증오 범죄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문 씨 남매는 경찰 조사에서 묵비권을 주장하는 뻔뻔함을 보이다 어머니 이야기만 나오면 눈물을 흘렸다. 11일 경찰에 따르면 누나 문 씨는 2010~2011년 거동을 못하는 어머니 간병문제로 아버지와 다투다 네 차례 폭행을 당해 112에 신고했다. 아버지의 접근을 막아달라며 법원에 두 차례 가처분도 신청했다. 문 씨가 신고했던 첫 번째 사건은 2010년 1월 7일 낮 12시 반 광주 북구의 한 아파트 거실에서 어머니의 재활운동 문제로 아버지와 다툰 일이다. 당시 아버지는 문 씨를 강제로 앉힌 뒤 밥상 위에 흉기 두 자루를 올려놓고 철심이 박힌 등산용 지팡이를 목에 들이대며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했다. 문 씨는 이때 수차례 주먹으로 맞아 전치 2주의 상처를 입었다. 문 씨 남매는 10일 경찰 체포 당시부터 “묵비권을 행사하겠다”고 말했다. 이후 조사 과정에서도 범행에 대해 물으면 “모르는 일”이라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그러나 2011년 9월 숨진 어머니 이야기만 하면 눈물을 훔치는 등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 문 씨 남매는 “아버지가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데다 어머니 앞으로 나오는 기초생활수급비를 가로채 다른 여자를 만났다”고 주장하며 증오심을 보이고 있다. 광주 북부경찰서는 11일 문 씨 남매에 대해 존속살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한편 연고자가 없는 아버지의 장례는 문 씨가 다녔던 옛 직장 사람들이 치러줄 것으로 알려졌다.광주=이형주 기자peneye09@donga.com}
6일 오후 5시경 광주 남구의 한 생활용품점. 문모 씨(47·여)와 그의 남동생(43)은 이곳에서 플라스틱 끈과 청테이프, 본드를 구입했다. 집으로 돌아간 문 씨 남매는 이날 오후 11시경 10km가량 떨어진 광주 북구의 아버지(76) 아파트를 찾았다. 집이 빈 것을 확인한 남매는 7일 새벽 한 차례 더 찾았지만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 남매가 아버지를 만난 건 어버이날인 8일 오전 8시 10분경. 아버지는 지인 A 씨(75·여)를 만난 뒤 막 귀가하던 길이었다. 아버지를 맞닥뜨린 남매는 준비한 3, 4종의 흉기와 둔기를 무차별적으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머리와 목 가슴 팔 심지어 성기까지 10여 차례나 찔려 잠시 뒤 숨졌다. 아버지를 끔찍하게 살해한 남매는 시신을 고무대야에 넣고 락스를 뿌린 뒤 이불로 덮었다. 이어 오전 9시 9분 아파트를 빠져나와 광주 남구 원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도주를 위해 이삿짐을 싸고 흉기에 묻은 혈흔을 지웠다. 경찰은 9일 A 씨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신고하자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이어 아파트 안방에서 시신을 발견하고 폐쇄회로(CC)TV 등을 분석해 문 씨 남매를 붙잡았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문 씨 남매는 아버지를 향한 극도의 증오심을 표출했다. 문 씨는 2010∼2011년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던 어머니 간병 문제로 아버지와 다투다 폭행을 당했다며 4차례나 신고한 적이 있다. 또 법원에 아버지의 접근을 막아 달라는 신청도 2차례 했다. 2011년 9월 숨진 어머니 장례식에도 아버지를 부르지 않을 정도였다. 돈 문제도 원인으로 보인다. 남매는 문 씨가 2011년 9월 직장을 그만두고 받은 퇴직금으로 5년간 생활했다. 문 씨의 동생은 서울 모 대학 석사과정을 마친 뒤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고 최근에는 컴퓨터 게임에만 몰두했다. 동생은 지난달 아버지를 찾아가 “1억 원짜리 아파트를 내게 달라”며 말다툼을 벌였다. 동생은 “아버지는 사람도 아니며 사이코패스다. 어릴 때 많이 때렸고 모멸감을 줬다”고 주장했다. 또 “장애가 있는 어머니 명의의 기초수급비를 가로채 여자들을 만나는 데 쓰면서 학대했다”고 덧붙였다. 문 씨 남매는 경찰서에서 얼굴과 이름을 공개해 달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경찰은 문 씨 남매가 철저하게 살인을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범행 직전 해외여행 등을 문의하고 집주인에게 원룸 전세보증금 200만 원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광주 북부경찰서는 존속살인 혐의로 문 씨 남매의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라고 10일 밝혔다.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광주시는 2019광주세계수영선수권 대회를 지난해 치른 유니버시아드 대회처럼 저비용 고효율 국제 행사로 개최하기로 했다. 광주시와 국제수영연맹(FINA)은 2019년 7, 8월 개최되는 2019광주세계수영선수권 대회 주경기장을 남부대 수영장으로 결정했다고 10일 밝혔다. 국제수영연맹 대표단은 9∼11일 경기장 시설 방문 등으로 대회 준비 상황을 점검한다. 남부대 수영장은 지난해 광주유니버시아드 경기가 열린 곳이다. 남부대 수영장은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연면적은 1만9398m²이다. 관람석은 3293석이며 경영, 다이빙, 연습 공간 등 풀 4곳이 있다. 광주세계수영선수권 대회 종목은 경영, 다이빙,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수구, 하이다이빙, 바다마라톤(오픈워터) 등 6개다. 남부대 수영장에서는 경영, 다이빙 경기가 진행될 예정이다. 광주세계수영선수권 대회 참가자 대부분이 경영 선수들인 것을 감안하면 남부대 수영장을 가장 많이 이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광주시는 기존 남부대 수영장 옆에 관람석 8000석을 추가로 설치해 전체 관람석을 1만 1000석으로 늘리기로 했다. 남부대 축구장에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 임시수조를 설치해 치르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수구는 광주 남구 진월테니스장 임시수조에서, 하이다이빙은 광주시청 문화광장 임시수조에서 여는 것을 검토 중이다. 바다마라톤은 전남 장성호 또는 나주호에서 개최될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훈련장은 남부대 수영장 연습 풀, 광주체고와 전남체고 수영장, 염주체육관 수용장이 활용될 예정이다. 광주세계수영선수권 대회 개최 비용은 다음 달 용역 결과 발표 이후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송승종 광주시 수영대회지원단장은 “임시수조 등을 활용함으로써 대회 비용을 줄이고 참가자 만족도 등 효율을 높이는 행사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6일 오후 5시경 광주 남구의 한 생활용품점. 문모 씨(47·여)와 그의 남동생(43)은 이곳에서 플라스틱 끈과 청테이프, 본드를 구입했다. 집으로 돌아간 문 씨 남매는 이날 오후 11시경 10㎞가량 떨어진 광주 북구의 아버지(76) 아파트를 찾았다. 집이 빈 것을 확인한 남매는 7일 새벽 한 차례 더 찾았지만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 남매가 아버지를 만난 건 어버이날인 8일 오전 8시 10분경. 아버지는 지인 A 씨(75·여)을 만난 뒤 막 귀가하던 길이었다. 아버지를 맞닥뜨린 남매는 준비한 3, 4종의 흉기와 둔기를 무차별 휘두르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머리와 목 가슴 팔 심지어 성기까지 10여 차례나 찔려 잠시 뒤 숨졌다. 아버지를 끔찍하게 살해한 남매는 시신을 고무대야에 넣고 락스를 뿌린 뒤 이불로 덮었다. 이어 오전 9시 9분 아파트를 빠져나와 광주 남구 원룸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도주를 위해 이삿짐을 싸고 흉기에 묻었던 혈흔을 지웠다. 경찰은 9일 A 씨가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신고하자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이어 아파트 안방에서 시신을 발견하고 폐쇄회로(CC)TV 등을 분석해 문 씨 남매를 붙잡았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문 씨 남매가 아버지를 향한 극도의 증오심을 표출했다. 문 씨는 2010~2011년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던 어머니 간병문제로 아버지와 다투다 폭행을 당했다며 4차례나 신고한 적이 있다. 또 법원에 아버지 접근을 막아달라는 신청도 2차례 했다. 2011년 9월 숨진 어머니 장례식에도 아버지를 부르지 않을 정도였다. 돈 문제도 원인으로 보인다. 남매는 문 씨가 2011년 9월 직장을 그만두고 받은 퇴직금으로 5년간 생활했다. 문 씨의 동생은 서울 모 대학 석사과정을 마친 뒤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고 최근에는 컴퓨터 게임만 몰두했다. 동생은 지난달 아버지를 찾아가 “1억 원짜리 아파트를 자신에게 달라”며 말다툼을 벌였다. 동생은 “아버지는 사람도 아니며 사이코패스다. 어릴 때 많이 맞았고 모멸감을 줬다”고 주장했다. 또 “장애가 있는 어머니 명의의 기초수급비를 가로채 여자들을 만나는데 쓰면서 학대했다”고 덧붙였다. 문 씨는 남매는 경찰서에서 얼굴과 이름을 공개해달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경찰은 문 씨 남매가 철저하게 살인을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범행 직전 해외여행 등을 문의하고 집주인에게 원룸 전세보증금 200만 원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광주 북부경찰서는 존속살인 혐의로 문 씨 남매의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라고 10일 밝혔다.광주=이형주 기자peneye09@donga.com}
3월 9일 오전 7시경 광주 서구의 한 원룸 분리수거함. 정모 씨(49)는 누군가 버린 온수기, 히터, 밥통을 수거했다. 정 씨가 고철을 손수레에 싣고 가는 것을 본 신모 씨(58)는 “내가 모은 가전제품을 훔쳤다. 500만 원을 주지 않으면 신고 하겠다”고 정 씨를 협박했다. 겁을 먹은 정 씨는 그가 시키는 대로 8일 동안 고물을 수거했다. 정 씨는 강제노역이 싫어 휴대전화를 받지 않자 그의 손수레를 뺏거나 때렸다. 정 씨가 날품팔이로 생계를 잇기 위해 노역을 거부하자 신 씨는 보복성 허위신고를 했다. 신 씨는 3월 17일 “정 씨가 온수기, 히터, 밥통 등 50만 원 상당의 전자제품을 훔쳤다”며 112신고를 했다. 시가 3000원에 불과한 고철을 50만 원 상당의 전자제품으로 둔갑시켜 허위 신고한 것이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신 씨가 허위 신고 등으로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동네 조폭이라고 의심했다. 허위 112신고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신 씨가 고물 수집상, 영세상인 등 8명을 상대로 공갈, 폭행, 사기 등을 일삼은 것을 확인했다. 고물수집상 1명은 신 씨의 행패가 두려워 피해 진술을 하지 않을 정도였다. 광주 서부경찰서는 신 씨를 공갈 등 혐의로 구속했다고 9일 밝혔다. 전과 20범인 신 씨는 올해 1월 광주지법 순천지원에서 사기죄로 기소돼 징역 6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상태에서 범죄를 저질렀다. 경찰 관계자는 “신 씨의 행패대상은 지적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였다”고 말했다.광주=이형주 기자peneye09@donga.com}
박선홍 이사장은 원조 무등산 지킴이다. ‘광주 1백년’과 함께 그의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책 ‘무등산’은 1976년 발간됐다. 무등산은 그가 저술한 1000여 권의 책 가운데 첫 작품이다. “1970년대 당시 무등산에는 표지판이 하나도 없어 관광객에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호남의 진산 무등산을 시민들과 함께 보호하기 위해 책을 썼다.” 박 이사장이 무등산을 쓴 계기는 의외로 간단하고 명료했다. 일일이 발품을 팔아 무등산의 속살을 담았다. 광주의 시민운동가들은 2013년 국립공원이 된 무등산을 지키고 제 모습을 찾게 된 일등공신으로 박 이사장을 꼽는다. 1955년 전남산악회를, 1969년에는 전남산악연맹 창설을 주도하며 무등산 지킴이로 변신했다. 1989년에는 무등산보호단체협의회를 창설하고 2001년부터 무등산 공유화 운동을 펼쳐 난개발을 막은 이도 박 이사장이다. 박 이사장은 “의향과 예향으로 불리는 광주의 기백은 무등산 기운을 받은 것”이라며 “시민 모두가 소중한 자산인 무등산 지킴이로 나섰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도시는 흔히 생성되고 발전하다 쇠퇴하는 살아 있는 생명체로 비유된다. 광주는 면적 501km², 인구 147만 명으로 호남 최대 도시다. 광주는 백제 땐 무진주(武珍州), 통일신라시대에는 무주(武州)로 불렸다. 고려 태조(940년) 때 광주로 개칭된 2000년 유구한 역사를 지녔다. 시민들은 대부분은 도시 속에 스며든 생명력이나 애환, 낭만에 대해 잘 모른다. 박선홍 광주효성청소년문화재단 이사장(90)은 광주의 산증인이자 터줏대감으로 불린다. 광주의 삶과 감춰진 역사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평생 광주에 관련된 자료를 모으고 각종 서적 1000여 권을 펴낸 그는 “책을 발간할 때면 아이를 낳는 것 같은 희열을 느낀다”며 “살아 있는 동안 책을 계속 펴내고 싶다”고 말했다. 구순의 나이에도 식지 않는 향토사랑의 열정이 느껴졌다.○애향심 하나로 광주를 지킨 어른 4일 오전 9시 박 이사장은 광주 동구 금남로 전일빌딩 6층 광주효성청소년문화재단 사무실로 출근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신문, 잡지, 각종 서적 등을 뒤적였다. 오후 6시 귀가하기 전까지 그는 광주와 관련된 자료를 꼼꼼히 챙겼다. 돋보기를 쓰고 8시간 넘게 의자에 앉아 있는 꼿꼿함에서 과거와 현재를 알아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는 그의 신념이 느껴졌다. 박 이사장이 1994년 쓴 ‘광주 1백년’은 개화기 이후 광주의 모든 분야를 총망라한 책이다. 유적과 유물, 풍속, 사건과 사람을 씨줄과 날줄로 촘촘히 엮어낸 그의 대표작이다. 2012년 ‘광주 1백년’의 지식재산권을 광주문화재단에 넘기고 내용을 보강해 지난해 12월 재발간했다. “‘광주 1백년’을 썼다고 일부에서는 (나를) 향토사학자라고 하는데 과찬입니다. 고향 광주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책을 썼고 시민에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근대 광주 이야기를 모두 담고 있어 광주학 백과사전 또는 총서로 불리는 ‘광주 1백년’을 쓸 수 있었던 저력은 뭘까. 바로 애향심이었다. 그는 1926년 광주 동구 충장로 5가의 한 주택에서 태어났다. 당시 충장로 1∼2가에는 일본인이, 충장로 4∼5가에는 조선인이 살았다. 충장로 3가는 일본인과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 포목 장사를 하던 아버지는 어린 시절 그에게 충장로에 나가면 가게 이름을 적어오도록 했다. 수창초등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수학여행을 갈 때도 광주에서 서울까지 철도역을 모두 기록하도록 했다. 아버지는 그렇게 기록하는 습관을 길러줬다. 그는 아버지의 ‘기묘한 교육’이 싫지 않았다. 이런 메모 습관은 평생 향토 사료를 모으고 분류하는 힘이 됐다. 1945년 광복이 됐을 때 광주시청 산업과 직원으로 첫 직장생활을 했다. 민립 대학으로 설립된 조선대의 첫 입학생이 됐다. 낮에는 공무원으로, 밤에는 경제학도로 주경야독했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광주상공회의소 사무국장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이후 42년간 광주상공회의소에서 지역경제를 챙겼으니 평생직장이나 다름없다. 보이스카우트 창립에 참여해 청소년 교육에 힘쓰고 광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만들어 소외계층 돕기에 앞장섰다. 1994년부터 1999년까지 조선대 이사장으로 재임하면서 학교 정상화에도 힘을 보탰다. 그가 ‘광주의 어른’으로 불리는 이유다.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면서 접했던 기록과 경험을 꼼꼼히 챙긴 것이 ‘광주 1백년’이라는 책이 세상의 빛을 보는 계기가 됐다. “광주는 사계절 기후가 뚜렷하고 어머니 품 같은 무등산이 있지요. 광주의 자랑스러운 것을 알리기 위해 ‘광주 1백년’을 썼지요.”○ ‘광주 1백년’은 따뜻한 광주 이야기 세 권으로 구성된 ‘광주 1백년’은 총 1000쪽에 달하는 방대한 기록이다. 1권은 1896년 광주읍성이 행정구역 개편으로 전남도청 소재지가 되면서 도시화가 시작됐다는 것을 보여준다. 1990년 광주읍성의 인구가 1만 명이었고, 현재 광주 동구 구시청(남문), 동부경찰서(동문), 학생회관(서문), 충장로 파출소(북문) 주변에 4대문이 있었다는 것도 알려준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일본인이 대거 유입되면서 광주읍성은 철거됐지만 흔적은 남아 있다. 광주읍성 활터가 있던 사정리(射亭里)는 현재 광주 동구 궁동(弓洞)이라는 지명으로 불린다. 박 이사장은 옛 도시의 특성이 유전자처럼 곳곳에서 흐르고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책을 뒤적이면 광주 송정리역에 1913년 호남선 철도가 처음 통과하고 1951년 미군 공병대가 광주 서구 상무지구에 훈련장을 지어 장교양성 기관인 상무대가 들어선 역사적 기록도 알 수 있다. 박 이사장은 “1960년대 일신방직, 전남방직 여공들이 외출해 충장로에 나오면 조용했던 상가에 활기가 돌았다”며 당시 방적산업의 역할도 전하고 있다. 2권은 광주의 풍류, 문화, 체육 등을 다루고 있다. 1908년 건립된 광주 최초의 공연장인 양명사가 현재 충장로 3가 중간에 있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당시 양명사에서는 국악인들이 춘향전, 심청전, 흥부전, 삼국지를 공연했다고 한다. 기생들이 1917년 광주에서 기생조합을 결성한 사실도 전하고 있다. 당시 기생조합은 단순한 향락문화의 공간이 아닌 기생 양성소인 동시에 전통예술 교육기관이었다. 일부 기생이 예술인이 되고 일부는 물산장려운동 등 애국운동에 많은 기부금을 냈다는 사실도 새롭게 조명했다. 3권은 광주 동구 계림동 옛 광주시청 자리에 있던 경양방죽을 태봉산 흙으로 메운 이야기나 광주고 앞에 있었던 운천저수지 매립 반대 운동이 벌어진 사연을 적고 있다. 광주인권운동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백정들의 신분 해방 활동인 형평사운동과 ‘고아의 어머니’로 불리던 박순이 충현원 원장, 향토기업인 금호그룹의 고 박인천 회장 등의 일화도 소개하고 있다. 박 이사장은 그동안 생명력 넘치는 광주의 발전과 변화를 지켜보면서 그 속살을 경험했다. 그는 광주가 호남의 중심 도시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앞으로의 100년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를 관통하는 키워드로 교육 경쟁력을 꼽았다. “1900년대 초반 인구가 1만 명에 불과하던 광주가 150만 대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대학 등 교육기관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앞으로의 100년은 교육도시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