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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춘천교구장을 지낸 장익 주교가 5일 오후 숙환으로 선종(善終)했다. 향년 87세. 1933년 서울에서 장면 전 총리의 7남매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난 고인은 경기고와 서울 성신대학(현 가톨릭대), 미국 메리놀대 인문학과를 졸업한 뒤 벨기에 루뱅대에서 철학박사,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대에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3년 사제품을 받고 김수환 추기경이 교구장이던 서울대교구의 비서실장 겸 공보실장을 거쳐 1980년 서강대 교수로 재직했다. 서울 정릉과 세종로 천주교회 주임신부를 거치고 1994년 12월 주교품을 받은 뒤 춘천교구장을 지냈다. 2005년에는 함흥교구장 서리에 임명됐다. 2010년 1월 춘천교구장에서 물러난 뒤 춘천 실레마을 공소에서 지냈다. 고인은 교황청 종교대화평의회 의원과 천주교주교회의 의장 등을 지내면서 가톨릭의 심장부인 교황청과 대화가 가능한 외교적 채널이기도 했다. 특히 1984년 방한을 앞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장 주교에게 40여 차례나 한국어 수업을 받으며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으로 전해진다. 장 주교는 언어뿐 아니라 한국의 사회상 전반에 대한 예습 자료를 전달했다고 한다. 1984년 5월 3일 서울 김포공항에 내린 요한 바오로 2세는 방한 일성(一聲)으로 “벗이 있어 먼 데서 찾아오면 이 또한 기쁨이 아닌가”라는 논어 구절을 또렷한 한국어로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고인은 남북 화해와 종교간 대화에서도 크게 기여했다. 1988년 교황 특사 자격으로 평양 장충성당을 방문해 첫 미사를 봉헌했다. 김수환 추기경의 길상사 개원 법회 참석과 법정 스님의 명동대성당 방문으로 꽃피운 종교계 거인들의 교류 과정에서 다리를 놓기도 했다. 천주교 주교로서는 이례적으로 법정 스님의 ‘맑고 향기롭게’ 활동에도 참여했다. 2010년 입적한 법정 스님과는 30년 가깝게 종교를 초월한 우정을 쌓기도 했다. 불교계 매체에 기고한 ‘스님 고맙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는 “어렵고 어지러운 시대를 사는 이들이 참다운 깨달음을 찾아 모두가 함께 하는 맑고 향기로운 삶의 길에 눈뜨게 해 주셨다”고 했다. 고인은 고위 성직자이면서도 격식을 지키기보다는 열려 있고, 따뜻한 유머로 주변을 위로하는 품성의 소유자였다. 2014년 불교계 베스트셀러 저자인 정목 스님, 영화 ‘길 위에서’를 연출한 이창재 감독과 만난 자리에서 정목 스님이 장 주교의 회색 옷을 언급하며 “절집의 큰 어른 스님 같다”고 하자 고인은 “오늘 스님들과 옷 색깔 좀 맞췄다”고 화답했다. 빈소는 춘천교구 죽림동 주교좌성당에 마련됐으며 장례미사는 8일 오전 10시 반 같은 장소에서 봉헌한다.김갑식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수도원스테이가 시작된다. 경남 고성군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대수도원장 유덕현 아빠스)는 8월 8일부터 12월까지 1박 2일 일정으로 수도원스테이를 진행한다. 가톨릭에서 수도원은 은둔의 공간으로 알려져 있어 이례적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시작한 불교계의 템플스테이는 지난해 기준 이용자가 53만 명에 이르는 대표적인 문화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이 수도원은 약 37만 m² 대지에 피정 시설은 물론이고 산책하고 묵상하기에 뛰어난 생태 환경을 갖춘 것이 특징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지쳐 있는 현대인들이 자연 속에서 고요히 쉬고 수도자들의 기도 생활과 영적 체험을 공유하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기획했다는 게 수도원 측 설명이다. 참가자들은 매일 오전 유덕현 아빠스와 수도회 사제들 주례로 미사를 봉헌할 수 있으며 봉쇄구역을 제외한 수도원 곳곳에서 수도 생활을 체험할 수 있다. 하루 중 언제든 들어가 기도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이 수도회는 1988년 고성으로 이전했으며 지난해 ‘아빠스좌(座)’(대수도원장좌)로 승격됐다. 수사들과 함께하는 식탁에서는 친환경 먹거리도 맛볼 수 있다. 이곳 수도자들은 한 번도 농약이나 화학 비료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유 아빠스는 “하느님만을 찾는 생활을 하는 수도자들은 이곳 수도원을 찾는 모든 이들을 그리스도처럼 환대하고 우리의 작은 기도 체험들을 아낌없이 나눌 것”이라며 “수도원스테이를 통해 자신을 보고 하느님을 느끼고 일상으로 돌아가 더욱 행복하게 살아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성인 남녀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으며 단체도 가능하다. 1인당 5만5000원. 문의 손님 담당 수도자, 가톨릭신문사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출가자의 가사(袈裟)는 계(戒)를 받는 수계법회 등 공식 행사에 사용하는 법의(法衣)다. 조각을 붙여 만든 것이 밭 모양을 닮았고, 가사를 짓는 공덕이 곡식을 가꾸는 것처럼 복밭이 된다고 해서 복전의(福田衣)로도 불린다. 최근 서울 강남구 법룡사 내의 가사원(袈裟院)을 찾았다. 2006년 설립된 이곳은 대한불교조계종 스님들에게 지급하는 가사를 한 해 1500∼2000벌 제작한다. 재단을 맡은 조래창 씨를 포함해 6, 7명이 가사를 제작하느라 바쁘게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가사는 조각 수에 따라 5조(條)부터 25조 가사까지 나뉜다. 종단에서 인정받는 법계(法階)에 따라 입을 수 있는 가사가 정해져 있는데 최고 법계인 대종사는 25조 가사를 입는다. 사미, 사미니는 조가 없는 만의(만衣)을 입는다. 이곳에는 스님들의 키와 체중 같은 기본적인 수치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해 놓았다. 가사 크기는 대중소로 나뉘는데, 대략 폭은 230∼280cm이고 길이는 키에서 30cm를 줄인다. 원단에는 조계종을 상징하는 삼보륜(三寶輪) 문양이 들어가 있다. 개인 체형에 맞춰 재단된 천 조각들을 서로 덧대 1개의 조를 만든 뒤 이를 여러 차례 이어 붙이기를 반복한다. 그 테두리에 천을 붙여 다듬는, 이른바 ‘난치기’라 불리는 작업이 끝나면 연봉(연꽃모양의 단추)과 고리가 달린다. 빳빳이 풀을 먹인 법명과 법계가 새겨진 명찰을 새기면 한 벌의 가사가 완성된다. 가사 만들기의 핵심은 조와 체형에 맞춰 정확하게 천을 잘라내는 일이다. 한 치의 오차도 허락하지 않는 세밀함과 꼼꼼함이 요구된다. 재단을 맡은 조 씨는 10대 시설 양복점에서 일을 배워 양복재단사가 됐다. 어머니의 영향으로 불교와 인연이 깊었던 그는 승복(僧服) 가게에서 일하다 2008년 이곳으로 옮겼다. 그는 “가사는 스님들의 상징이기 때문에 천을 자르거나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하는 순간 신중할 수밖에 없다”며 “가사가 몸에 딱 맞는다는 말을 들을 때가 가장 보람된 순간”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스님들이 가사를 제작하거나, 보살(여성 신도)들이 가사를 지어 보시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흔치 않은 일이 됐다. 대신 통도사 등 큰 사찰에서는 가사의 참된 의미를 전하는 ‘가사불사(袈裟佛事)’를 진행한다. 가사원 운영국장인 돈오 스님은 “출가자의 가사는 곧 법(法)을 상징하는 만큼 가사의 의미를 알리고 제작 기법도 전해져야 한다”며 “가사 전시회도 개최하고 ‘가사박물관’ 건립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야만적인 금광업계 거물들은 금을 탐사하지도 않았고 금을 가공하지도 않았는데, 무슨 희한한 연금술인지 금은 전부 그들의 수중에 들어갔다.” 책의 도입부에 실린, 1929년 미국 최초의 산별노조를 설립한 빅 빌 헤이우드의 말이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 교수이자 ‘혁신 및 공공목적연구소’ 소장인 저자 마리아나 마추카토는 이 말을 인용하며 오늘날에도 비슷한 질문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한다. 그의 문제의식은 헤이우드의 언급처럼 신체와 정신의 노동을 쏟아붓는 노동자들은 형편없이 적게 벌고, 자본을 소유한 사람들과 시장에서 금을 사고파는 것 말고는 하는 게 없는 사람들이 많은 돈을 버는가 하는 것이다. 책의 원제는 ‘The Value of Everything: Making and Taking in the Global Economy’. 제목처럼 저자는 그 연금술의 비밀을 가치 창조와 가치 착취에서 찾았다. 그렇다고 좌파 경제학의 옛 논리를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21세기에 벌어지고 있는 각종 경제 현상을 중심으로 주류 경제학에 대한 비판적 고찰을 담았다. 총 9장으로 구성된 책의 구성은 논리적이다. 1, 2장은 중상주의와 중농주의, 고전경제학, 마르크스경제학, 신고전파 경제학 등을 섭렵하며 가치이론의 역사와 쟁점을, 3장에서는 국부(國富)로도 불리는 국내총생산(GDP) 시스템의 문제점을 살핀다. 저자에 따르면 가치 창조는 새로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해 다양한 자원이 동원돼 상호 작용하는 과정이다. 반면 가치 착취는 기존에 존재하는 자원과 산출물을 이리저리 돌림으로써 발생하는 거래를 통해 부당하게 높은 이득을 올리는 것이다. 특히 노동에 따른 가치가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격이 가치를 결정한다는 논리가 경제학과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자리 잡으면서 가치 창조와 가치 착취를 구별할 수 없게 됐다고 주장한다. 4∼6장은 은행을 비롯한 이른바 ‘금융 거인들’의 가치 착취 논리와 실태에 대한 비판, 7장은 애플과 구글 등으로 상징되는 혁신 경제에서조차 가치 착취가 이뤄지고 있는 현실을 다뤘다. 8장은 저자의 화제작 ‘기업가형 국가’(2013년)의 연장선으로 국가를 비롯한 공공부문의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했다. 이 책의 장점은 원론적인 관점을 제시하면서도 가계대출, 사모펀드와 헤지펀드 같은 자산 운용업, 자사주 매입, 특허를 통한 가치 독점 등 세상의 관심사도 키워드로 다뤘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러 차례 “일부를 착취자라고 비난하고, 일부를 창조자라고 찬양하는 것은 핵심이 아니다”라면서 경제학에서 ‘죽어버린’ 가치 논쟁의 부활을 주장하고 있다. 가치 착취가 아닌 공생의 경제생태계를 이끌 수 있는 시발점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어쩌란 말인가. 이미 돌아갈 수 없는 먼 길을 떠난 배의 공허함이 남는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무너진 집터에는 주춧돌 서너 개만 남아 있을 뿐 아무런 흔적도 없었는데 그것은 분명히 경허가 홀로 머무르던, 지장암(地藏庵)이라고 불려지던 토굴의 옛 자리임이 분명하였다.’ 우리나라 선(禪)불교의 중흥조로 불리는 경허 스님(1849∼1912)의 삶을 다룬 최인호의 소설 ‘길 없는 길’의 한 대목이다. 이처럼 책과 구전으로 전해지던 충남 서산 천장사 지장암이 최근 복원됐다. 암자는 건평 60m², 주변까지 합하면 331m²에 이른다. 지장암을 복원한 천장사 회주(會主) 옹산 스님(전 수덕사 주지)은 “(지장암) 주변 연암산은 높이가 해발 441m로 높지는 않지만 산세가 험해 쉽지 않은 불사(佛事)였다”며 “천장사가 신도가 없는 사찰이라 여러 스님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지장암 복원은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장암은 토굴로 불리던 작은 암자였지만 경허 스님에 얽힌 일화들을 간직하고 있어 한국 불교사의 기념비적 공간이다. ‘길 없는 길’에 따르면 이곳에서 겨울 엄동설한을 지내며 정진하기로 결심한 경허 스님은 비바람이 들이치는 토굴을 수리한다. ‘화엄경’ ‘법화경’ ‘법구경’ 등 경전들을 뜯어내 낡은 토굴의 문과 벽을 도배했다. 제자들이 깜짝 놀라 “저 성스러운 부처님의 말씀으로 이렇게 벽과 바닥을 발라 도배 장판하여도 된단 말입니까”라고 물었다. 거리낌 없는 무애행(無애行)으로 잘 알려진 스님의 파격이 이어진다. “어디에 부처님의 말씀이 있단 말이냐. 더 남은 부처님의 말씀이 있으면 가져오너라. 종이가 모자라 아직 바르지 못한 벽이 많이 남아 있다.” 세상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옹산 스님은 역병과 관련한 경허 스님의 일화도 들려줬다. 경허 스님은 젊은 시절 충남 천안의 한 헛간에서 발심(發心)했다고 한다. 역병(疫病)으로 주변에 시신이 즐비한 모습을 보면서 ‘내가 이론적으로는 생사(生死)가 둘이 아니라고 가르쳤지만 모두 소용없다’며 한탄했다. 가던 길을 돌아간 스님은 강원(講院)을 해체한 뒤 문을 걸어 잠그고 화두에 몰두했다는 것이다. 옹산 스님은 “(경허) 선사는 이곳에서 비지떡 같은 이들이 득실거려도 전혀 개의치 않고 용맹정진했다”며 “선사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지장암 복원은 우리 불교계의 소중한 정신적 유산을 되살린다는 의미도 있다”고 했다.서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배우 목사와 ‘마당발’ 신부가 만났다. 연극 ‘레미제라블’(예술감독 윤여성)의 미리엘 주교 역에 캐스팅된 임동진 목사(76)와 홍창진 신부(60·천주교수원교구 기산성당)다. ‘레미제라블’은 다음 달 7∼16일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된다. 배우로 잘 알려진 임 목사는 2000년 갑상샘 암 수술 후 급성 뇌경색으로 반신불수 판정을 받았다. 뒤늦게 루터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뒤 2016년까지 10년간 경기 용인시 열린문교회 담임목사를 맡았다. 그의 아들 영희 씨는 미국 한인교회 목회자, 딸 유진과 예원 씨는 연기자로 활동 중이다. 홍 신부는 천주교주교회의 종교 간 대화위원회 총무로 북한을 수십 차례 방문한 통일문제 전문가이자 장애인 어린이 합창단 ‘에반젤리’ 대표다. tvN 종교인 토크쇼 ‘오 마이 갓!’의 단골 멤버였고 영화와 TV, 연극에 ‘잠깐 배우’로 곧잘 등장했다. 21일 예술의전당의 카페에서 무대와 종교, 삶을 키워드로 대화를 나눴다. ○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햄릿 ▽임동진(이하 임)=미리엘 주교는 잠깐 등장하지만 장발장의 인생을 바꿔놓는 인물이죠. 분노와 저주의 수렁에 빠져 있던 그를 건져내는데, 그 힘은 사랑입니다. 지금 시대는 사랑이 고갈된 시대죠. 소탈한 홍 신부님과 함께 무대에 서는 게 편해요. ▽홍창진(이하 홍)=토월극장에서 선생님과 같은 배역으로 선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죠. 클래식 연주자가 미국 카네기홀에 서는 게 꿈인 것처럼 토월 무대는 연기자의 꿈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신자들의 성당과 교회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상황인데 미리엘 주교를 통해 메시지를 주는 느낌입니다. ▽임=제 연기는 무대의 틀에서 훈련된 것인데, 요즘은 자연스러운 연기를 요구해요. 홍 신부님을 보면 ‘맞아, 저렇게 생활처럼 하는 거야’라는 말이 저절로 나와요. ▽홍=저야 사제복 입으면 자연스러워져요. 저는 느낌대로 연기합니다. 하지만 저는 대사를 잊지 말아야지 하는데, 임 선생님은 상대 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게 보여요. ▽임=홍 신부님은 캐릭터가 강하지만 악역은 안 어울릴 것 같아요. 예쁜 배우들이 악역을 맡는 게 요즘 추세거든요(웃음). 아흔 살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아직도 현역으로 뛰고 있어요. 저도 무대에서 인생을 마치고 싶습니다. ▽홍=언젠가 인간의 양면성이 드러나는 ‘햄릿’ 같은 역할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 은퇴하면 본격적으로 연기를 해보고 싶네요(웃음). ○ 오 마이 갓! ▽임=아들은 목회자, 두 딸은 연기자인데 제 뜻대로 한 게 아닙니다. 신부님 옆에 계시지만 인간은 자기 길을 쉽게 걸을 수 없어요. 하나님 섭리에 순종하는 자세로 살아야죠. ▽홍=저처럼 ‘날라리’가 아직도 사제복을 입고 있는 걸 보면 신기한 일이죠. 평생 교회를 지킬 것 같던 신학생 시절 친구는 다른 길을 걷고 있고요. 그분의 뜻이 무엇인가 기도하게 됩니다. ▽임=지금도 좌측 소뇌의 70%는 기능이 없어요. 뇌수술 뒤 사흘 안에 세상을 뜬다며 장례 준비하라고 했답니다. 하나님이 붙들어 주신 거죠. ▽홍=하느님을 만났네요.(개신교 표기는 하나님, 가톨릭은 하느님이다.) ▽임=그때 제가 죽지 않았으니까, 이유가 있다고 믿었죠. 수술 뒤 저는 부축을 받지 않았어요. 집사람에게 평생 부축할 거냐며 엉금엉금 기어서라도 제가 움직였어요.○ 군종 목사와 군종 신부 ▽임=‘레미제라블’은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묻는 작품입니다. 모두 미리엘 주교 같은 사랑으로 남의 잘못을 보듬어주길 바랍니다. ▽홍=코로나 시대의 고립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입니다. 하지만 나만 아픈 게 아니라 이웃도 아픈 것이죠. 자기 안으로만 가면 극복이 어렵습니다. ▽임=여러 직함이 있지만 누가 ‘목사님!’ 하고 불러줄 때 마음이 정리돼요. 세상의 것에 묻혀 있을 때 누가 건져내주는 듯한 느낌이죠. 루터 교단이 70세면 정년인데 목회를 하면서도 연극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지 않더군요. 무대에 복귀하면서 눈물과 감동이 쏟아졌어요. ▽홍=지금은 은퇴라는 말의 의미가 없는 세상입니다. 한번 목사는 영원한 목사죠. 신부도 그렇고요. 공연장은 배우들이 전투를 벌이는 무대더군요. 저희는 그 긴장과 고독 속에 싸우는, 배우를 위한 군종 목사와 군종 신부인 셈이죠.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배우 목사와 ‘마당발’ 신부가 만났다. 연극 ‘레미제라블’(이성구 연출)의 미리엘 주교 역에 캐스팅된 임동진(76) 목사와 홍창진 신부(60·천주교수원교구 기산성당)다. ‘레미제라블’은 다음달 7~16일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된다. 배우로 잘 알려진 임 목사는 2000년 갑상선 암 수술 후 급성 뇌경색으로 반신불수 판정을 받았다. 뒤늦게 루터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뒤 2016년까지 10년 간 경기 용인시 열린문교회 담임목사를 맡았다. 그의 아들 영희 씨는 미국 한인교회 목회자, 딸 유진과 예원 씨는 연기자로 활동 중이다. 홍 신부는 천주교주교회의 종교 간 대화위원회 총무로 북한을 수십 차례 방문한 통일문제 전문가이자 장애인 어린이 합창단 ‘에반젤리’ 대표다. tvN 종교인 토크쇼 ‘오 마이 갓!’의 단골 멤버였고 영화와 TV, 연극에 ‘잠깐 배우’로 곧잘 등장했다. 21일 예술의전당의 카페에서 무대와 종교, 삶을 키워드로 대화를 나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햄릿▽임동진(이하 임)=미리엘 주교는 잠깐 등장하지만 장발장의 인생을 바꿔놓는 인물이죠. 분노와 저주의 수렁에 빠져있던 그를 건져내는데, 그 힘은 사랑입니다. 지금 시대는 사랑이 고갈된 시대죠. 소탈한 홍 신부님과 함께 무대에 서는 게 편해요. ▽홍창진(이하 홍)=토월극장에서 선생님과 같은 배역으로 선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죠. 클래식 연주자가 미국 카네기홀에 서는 게 꿈인 것처럼 토월 무대는 연기자의 꿈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신자들의 성당과 교회 출입이 자유롭지 않은 상황인데 미리엘 주교를 통해 메시지를 주는 느낌입니다. ▽임=제 연기는 무대의 틀에서 훈련된 것인데, 요즘은 자연스러운 연기를 요구해요. 홍 신부님 보면 ‘맞아, 저렇게 생활처럼 하는 거야’라는 말이 저절로 나와요. ▽홍=저야 사제복 입으면 자연스러워져요. 저는 느낌대로 연기합니다. 하지만 저는 대사를 잊지 말아야지 하는데, 임 선생님은 상대 배우와 호흡을 맞추는 게 보여요. ▽임=홍 신부님은 악역이 잘 안 어울릴 것 같아요(웃음). 아흔 살인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아직도 현역으로 뛰고 있어요. 저도 무대에서 인생을 마치고 싶습니다. ▽홍=신부들은 70세에 은퇴하면 사제관서 함께 생활하는데 건강해도 할 일이 많지 않아요. 은퇴하면 본격적으로 연기해 봐야죠. 인간의 양면성이 드러나는 ‘햄릿’ 같은 역할입니다. ● 오 마이 갓!▽임=아들은 목회자, 두 딸은 연기자인데 제 뜻대로 한 게 아닙니다. 신부님 옆에 계시지만 인간은 자기 길을 쉽게 걸을 수 없어요. 하나님 섭리에 순종하는 자세로 살아야죠. ▽홍=저처럼 ‘날라리’가 아직도 사제복을 입고 있는 걸 보면 신기한 일이죠. 평생 교회를 지킬 것 같던 신학생 시절 친구는 다른 길을 걷고 있고요. 시간을 돌이켜 보면 그분의 뜻이 무엇인가 기도하게 됩니다. ▽임=지금도 좌측 소뇌의 70%는 기능이 없어요. 뇌수술 뒤 사흘 안에 세상을 뜬다며 장례 준비하라고 했답니다. 하나님이 붙들어 주신 거죠. ▽홍=하느님을 만났네요.(개신교 표기는 하나님, 가톨릭은 하느님이다) ▽임=그때 제가 죽지 않았으니까, 이유가 있다고 믿었죠. 수술 뒤 저는 부축을 받지 않았어요. 집사람에게 평생 부축할 거냐며 엉금엉금 기어서라도 제가 움직였어요.● 군종 목사와 군종 신부▽임=‘레미제라블’은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묻는 작품입니다. 모두 미리엘 주교 같은 사랑으로 남의 잘못을 보듬어주길 바랍니다. ▽홍=코로나 시대의 고립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입니다. 하지만 나만 아픈 게 아니라 이웃도 아픈 것이죠. 자기 안으로만 가면 극복이 어렵습니다. ▽임=여러 직함이 있지만 누가 ‘목사님!’ 하고 불러줄 때 마음이 정리돼요. 세상의 것에 묻혀 있을 때 누가 건져내주는 듯한 느낌이죠. 루터 교단이 70세면 정년인데 목회를 하면서도 연극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지 않더군요. 무대에 복귀하면서 눈물과 감동이 쏟아졌어요. ▽홍=지금은 은퇴라는 말의 의미가 없는 세상입니다. 한 번 목사는 영원한 목사죠. 신부도 그렇고요. 공연장은 배우들이 전투를 벌이는 무대더군요. 저희는 그 긴장과 고독 속에 싸우는, 배우를 위한 군종 목사와 군종 신부인 셈이죠.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10억 시간 전 인류가 지구에 등장했고, 10억 분 전 기독교가 등장했고, 10억 초 전 비틀스가 음악을 다시 썼고, 10억 병 전의 콜라, 어제 아침에 마셨다.’ 코카콜라의 전설적인 최고경영자(CEO)였던 로베르토 고이수에타의 말이다. 톡 쏘는 맛과 특유의 병 디자인으로 유명한 코카콜라는 청량음료 이상의 그 무엇이었다. 지금은 과장처럼 들리지만 냉전 시기 코카콜라는 풍요로운 미국식 자본주의와 자유의 상징이었다. 코카콜라의 전설이 쉽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코카콜라는 1911년 성적인 범죄를 충동질하는 카페인 성분이 들어 있고, 특히 이 성분이 아이들에게 유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정에 섰다. 법원은 회사 측 손을 들어줬지만 법정 밖에서 카페인 분량을 반으로 줄이는 데 합의했다. 아이들이 광고에 등장하지 않도록 약속한 정책은 1986년까지 유지됐다고 한다. 1930년대는 금주법(禁酒法)의 종언, 대공황, 경쟁자인 펩시콜라의 도전에 맞서야 했다. 미국이 세계 각지로 병력을 파병하자 코카콜라도 그들을 따라갔다. 콜라의 맛과 시설을 담당하는 직원들은 기술감독관으로 대우를 받았고 ‘코카콜라 대령’으로 불렸다. 책은 코카콜라의 마케팅 신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다. 이 음료가 커피에 버금가는 지배적 음료로 자리 잡기까지의 역사, 문화적 고찰이 주제다. 고립주의에서 벗어나 세계의 경찰이 된 미국의 부상,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 등 세계사의 격류가 작은 콜라병을 자유의 상징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콜라에 앞서 400년 전인 1511년 메카에서는 커피가 재판에 회부됐다. 당시 이슬람 세계에서는 커피가 선지자 모하메드가 금한 와인이나 다른 알코올의 대체재로 인기를 끌었다. 일부 이슬람 지도자들이 커피의 중독성을 이유로 판매와 소비를 금지해야 한다고 나선 것. 이 주장이 받아들여져 커피는 압수돼 길거리에서 불태워졌다. 하지만 카이로의 상급 기관은 이 판결을 뒤집었고, 커피는 더욱 대중적으로 소비되기 시작했다. 책은 코카콜라와 커피를 포함해 맥주, 와인, 럼과 위스키 같은 증류주, 차를 세계사를 바꾼 6가지 음료로 꼽았다. 그들의 탄생부터 사회의 지배적 음료로 자리 잡기까지의 성장과 투쟁, 음료 패권을 둘러싼 세계사적 관점의 접근이 흥미롭다. ‘음료의 거인’이 탄생한 배경은 물의 오염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도시로 상징되는 문명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식수원은 잘 오염됐고, 사람들은 물을 매개로 한 여러 질병에 시달렸다. 이 6가지 음료는 인류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미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유력한 후보는 물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원점으로의 회귀다. “6가지 음료를 입술에 댈 때 그것들이 공간과 시간을 넘어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를 생각해보라. 그것은 단순한 알코올이나 카페인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10억 시간 전 인류가 지구에 등장했고, 10억 분 전 기독교가 등장했고, 10억 초 전 비틀즈가 음악을 다시 썼고, 10억 병 전의 콜라, 어제 아침에 마셨다.’ 코카콜라의 전설적인 최고경영자(CEO)였던 로베르토 고이주에타의 말이다. 톡 쏘는 맛과 특유의 병 디자인으로 유명한 코카콜라는 청량음료 이상의 그 무엇이었다. 지금은 과장처럼 들리지만 냉전시기 코카콜라는 풍요로운 미국식 자본주의와 자유의 상징이었다. 코카콜라의 전설이 쉽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코카콜라는 1911년 성적인 범죄를 충동질하는 카페인 성분이 들어 있고, 특히 이 성분이 아이들에게 유해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정에 섰다. 법원은 회사 측 손을 들어줬지만 법정 밖에서 카페인 분량을 반으로 줄이는 데 합의했다. 아이들이 광고에 등장하지 않도록 약속한 정책은 1986년까지 유지됐다. 1930년대는 금주법(禁酒法)의 종언, 대공황, 경쟁자인 펩시콜라의 도전에 맞서야 했다. 미국이 세계 각지로 병력을 파병하자 코카콜라도 그들을 따라갔다. 콜라의 맛과 시설을 담당하는 직원들은 기술감독관으로 대우를 받았고 ‘코카콜라 대령’으로 불렸다. 책은 코카콜라의 마케팅 신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다. 코카콜라가 커피에 버금가는 지배적 음료로 자리 잡기까지 역사, 문화적 고찰이 주제다. 고립주의에서 벗어나 세계의 경찰이 된 미국의 부상,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 등 세계사의 격류가 작은 콜라병을 자유의 상징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콜라에 앞서 400년 전인 1511년 메카에서는 커피가 재판에 회부됐다. 당시 이슬람 세계에서는 커피는 선지자 모하메드가 금한 와인이나 다른 알코올의 대체재로 인기를 끌었다. 그러자 일부 이슬람 지도자들이 커피의 중독성을 이유로 판매와 소비 금지를 주장했다. 이것이 받아들여져 커피는 압수됐고, 길거리에서 불태워졌다. 하지만 이집트 카이로의 상급 기관은 이 결정을 뒤집었고, 커피는 대중 속으로 더욱 확산되기 시작했다. 책은 코카콜라와 커피를 포함해 맥주, 와인, 럼과 위스키 같은 증류주, 차를 세계사를 바꾼 6가지 음료로 꼽았다. 그들의 탄생부터 사회의 지배적 음료로 자리 잡기까지의 성장과 투쟁, 음료 패권을 둘러싼 세계사적 관점의 접근이 흥미롭다. ‘음료의 거인’이 탄생한 배경은 물의 오염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도시로 상징되는 문명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식수원은 잘 오염됐고, 사람들은 물을 매개로 한 질병에 시달렸다. 지금까지 6가지 음료가 인류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미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유력한 후보는 물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원점으로의 회귀다. “6가지 음료를 입술에 댈 때 그것들이 공간과 시간을 넘어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를 생각해보라. 그것은 단순한 알코올이나 카페인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 음료의 소용돌이치는 심연 속에 길고 긴 역사가 침전돼 있다.”김갑식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청량 징관(淸凉 澄觀·738∼839)은 중국 당나라 시절 선교(禪敎)를 겸비한 고승이었다. 그의 ‘화엄경수소연의초(華嚴經隨>演義초)’는 화엄경 해석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공부하는 스님이라면 한 번 오르고 싶은 산이다. 23년 동안 첩첩산중에 도전해 고승과의 대화를 끝낸 학승(學僧)이 있다. 경남 양산 원각사 주지인 반산(盤山·61) 스님이다. 청량 국사의 해석을 우리말로 최초로 번역해 ‘화엄경청량소(華嚴經淸凉>·이하 청량소·담앤북스)’ 총 34권으로 최근 완간한 반산 스님을 15일 원각사에서 만났다.》 ―완간 소감은 어떤가. “정상을 못 보면 그곳은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는다. 이제 산에 올라 아래를 굽어볼 수 있다는 느낌이다. 화엄경 일부와 전체를 보는 것은 다르다.” ―번역은 어떻게 시작했나. “출가 직후 가끔 청량소를 접했지만 제대로 공부하기가 쉽지 않았다. 1997년 원문을 전산 입력하기 시작하면서 이번 생(生)에 완역하자는 뜻을 세웠다.” ―청량 국사는 어떤 분인가. “7세에 출가한 국사는 100세 이상 장수하며 화엄종의 꽃을 피운 분이다. 국사가 청량소 집필을 결심했을 때 이미 큰스님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교 교리만으로 집필이 어렵다고 여겨 세속으로 나가 노장 사상을 비롯한 다양한 학문을 익힌 뒤 책을 쓰기 시작했다.” ―번역 중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나. “무엇보다 화엄경의 방대함이다. 화엄경이 80권, 경(經)을 해석한 소(>)가 60권, 다시 소를 풀이한 초(초)가 90권에 이른다. 컴퓨터 작업을 오래 하다 보니 망막에 혈흔이 생기고 모기가 날아다니는 것 같은 비문증(飛蚊症)까지 생겼다. 최초의 한글 번역이라 참고할 자료가 부족했다는 것도 어려움을 더했다.” ―화엄경의 매력은 무엇인가. “모든 것을 편안하게 하는 화합의 이치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경전부터 조사 어록까지 담아낸 ‘백과사전’으로 화엄경으로 공부하고 수행하면 불교가 가깝고 쉬워진다.” 이야기를 듣다 스님의 예사롭지 않은 법명으로 화제가 옮겨졌다. 반산 스님의 원래 법명은 춘우(春雨)였다. 우리 불교의 고승으로 꼽히는 경봉 스님(1892∼1982)이 “봄에 출가했으니 봄비처럼 만물을 성장하게 하라”며 지어준 것. 하지만 어감이 부담스럽고, 봉암사 수좌였던 적명 스님은 “봄비? 법명으로는 힘이 없어 ‘파이’”라고 했다. 10년 정도 쓰다 은사인 명정 스님에게 다시 받은 법명이 반산이다. “법명을 받고 돌아서는데 ‘온산 아니라 반(半)산이라 미안하다’며 껄껄 웃으시더군요. 지난해 입적한 은사의 평소 거리낌 없던 그 농담이 그립네요.” ―경봉 스님은 어떤 분이었나. “경봉 스님은 은사의 은사이니 할아버지뻘이 된다. 경봉 스님이 1927년 시작한 화엄산림법회는 화엄경을 전하면서 생활이 어려운 이들을 모아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자비의 자리였다. 경봉 스님 법문을 들으면 어제 출가한 사람조차 불교를 다 아는 것으로 느껴질 정도로 쉽게 법문했다.” ―요즘 스님들 공부 분위기는 어떤가. “잔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스님들 공부하기 싫어한다. 어렵게 공부해야 쉽게 법문하는데…. 상대방 귀에 무언가를 넣어주려면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 ―앞으로의 계획은…. “화엄경을 어렵지 않게 3권 정도로 만들어 전하고 싶다.” ―화엄경 구절 중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모든 것은 마음 하기에 달려 있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와 관련한 대목이다. 화가의 비유가 있다. ‘심여공화사 능화제세간(心如工畵師 能畵諸世間)’, 마음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같아 능히 세상사를 다 그려낸다.”양산=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한국종교연합(상임대표 박경조 성공회 주교)은 21일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대한성공회 대학로교회에서 ‘코로나 이후의 종교문화생활의 변화와 그 대응’이란 주제의 포럼을 개최한다. 주제 발표는 불교는 무원 스님(천태종 광수사 주지), 가톨릭은 김홍진 신부(천주교 서울대교구 명동대성당), 유교는 이상호 유교신문 대표가 맡았다. 토론자는 성공회 이우송 신부, 개신교 진방주 목사, 천도교 주선원 선도사가 나선다. 발표와 토론의 좌장은 원불교 김대선 교무(원다문화센터 원장)가 맡았다. 상임대표인 박 주교는 포럼에 앞서 “종교인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지, 함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종교적 지혜는 무엇인지 묻고 답하는 시간이 될 것”이라며 “코로나19 이후 종교문화의 변화에 대응하는 차원을 넘어 각 종교의 지혜를 공유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 행사는 발표자와 토론자만 참석하며 한국종교연합 유튜브로 생중계한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대전 서구 대덕대로 새로남교회의 비전센터 맨 위층인 10층에는 카페가 있다. 10일 찾은 이 카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지난주부터 문을 닫았지만 평소 주변이 한눈에 보이는 지역 명소다. 교회는 카페 수익금 등 19억 원을 지난해 지역사회에 기부했다. 2013년 문을 연 대안학교 새로남기독학교에는 초중등생 500여 명이 다닌다. 교회 워십센터 지하 체육관에서는 청소년 농구대회가 열린다. 개척교회 목사였던 부친과 서울 서초구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와 함께 ‘3부자 목회자’로 알려진 새로남교회 오정호 목사(63)를 만났다.》 ―카페는 지역사회와의 공생을 위한 노력인가. “경주 최 부자 집에는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가르침이 있다고 한다. 교회가 지역과 함께하는 것은 당연하다. 교회 덕분에 웃을 일 많아지고, 교회가 있어 고맙다는 말을 들었으면 좋겠다.” ―6·25전쟁 참전용사를 기리는 현수막이 보인다. 3·1운동 100주년이던 지난해는 전시관과 체험관을 운영했다. “어려서 가정예배를 드릴 때마다 아버지는 북한과 사할린 억류 동포를 위해 기도했다. 역사에 대한 기억과 우리가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는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 매년 3월 첫 주와 8월 광복절 기념주간에는 예배 뒤 태극기를 각자 손에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친다.” ―거부감은 없나. “다행히 없다. 하나님이 ‘콜링(소명)’을 주셔서 저를 대한민국에 파송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 땅에 침을 뱉지 않는다. 하나님이 마련하신 삼천리금수강산에 어떻게 침을 뱉나.” ―미래목회포럼 이사장, 충청지역 기독교총연합회 대표 회장 등을 맡고 있다. 교계 분열은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리더는 짐을 지는 자다. 기독교적으로는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책임은 리더에게, 축하와 공은 다른 분들에게 돌아가도록 하면 된다.” ―코로나19 시대 목회자상은 무엇인가. “순금인지 도금인지 불에 넣어보면 안다. 교회의 사이즈는 중요하지 않다. 이런 환난을 만났을 때 그리스도인의 삶을 지키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성경 가르침은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것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본질에 충실한 ‘진짜 목사’가 돼야 한다.” ―최근 방역 당국이 예배를 제외한 교회 모임과 활동을 금지했다. “신자 중 확진자가 나왔다고 해서 교회가 진원지는 아니다. 교회는 어렵지만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예수 믿는 사람도 국민이다. 최근 논란인 ‘차별금지법’에도 문제가 많다. 교회로서는 동성애를 옹호하는 이 법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 많은 목회자를 범법자로 만드는 법이 될 것이다.” ―형제의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형님은 천재형이고 개척자로 무브먼트(운동)를 일으키는 스타일이다. 주님이 주신 은사(恩賜)도 특별하다.” ―사랑의교회를 둘러싼 논란 와중에 어떤 조언을 했나. “무엇보다 정도(正道)를 걸으라고 했다.” ―마음에 새기는 목회관은…. “목회자는 성도(신자)를 자기 공 쌓거나 이름 내는 수단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 평소 적당히 살다 ‘삼각산 능력봉 앞에’ 엎드려 기도하면 (성령의) 불을 받는 게 아니다. 넓이보다는 깊이의 목회가 필요하다. 강단에서 설교 못하는 목사가 어디 있나. 영원한 멘토인 옥한흠 목사님의 10주기가 다가온다. 그분에게는 하나님 말씀을 삶으로 이뤄내겠다는 치열함이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은…. “마태복음 6장 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첫 단추를 잘 채우고 본질에 충실하게 살면 다른 문제는 주님이 모두 해결해준다는 의미다. 능력보다는 화목이 더 중요하다. 초기 교회 중 에베소교회는 하나를 잃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다. 바로 주님에 대한 첫사랑이다. 교회도 사회도 리더가 신뢰를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대전=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대에는 안식(安息)의 의미를 되살릴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가 급하게 달려 왔는데, 이때 여유를 찾으면서 심신의 건강을 회복하고 자연과의 공생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기성) 총회장 한기채 목사(61·사진)는 8일 기자간담회에서 “코로나19로 언택트(untact·비대면) 문화가 확산되면서 교회와 목사 중심의 목회는 끝난 것 같다”며 “가정예배와 현장, 온라인 예배의 조화 속에 깊이 있게 만나는 ‘딥택트(deeptact)’ 목회를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수적 성향의 교단인 성결교는 국내에 교회 3000여 곳에 신자 54만여 명이 있다. 서울 종로구 중앙성결교회 담임목사인 한 목사는 최근 한국성결교회연합회 대표회장으로 취임했다. 이 단체 정회원으로는 기성, 예수교대한성결교회(예성), 대한기독교나사렛성결회가 있다. 한 목사는 “지금 교회가 세상의 죄로 고통당하는 게 아니라 세상이 교회의 죄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며 “연합회 내에 사회책임위원회를 설치하고 목회윤리규정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는 영적 남용과 공교회의 사유화, 무례한 기독교 등을 한국 교회가 회개해야 할 7가지 죄악으로 꼽았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불교는 깨달음이라는 높은 목적지만 바라보는 종교가 아니다. 수행자라면 부처의 진정한 가르침인 중도(中道)와 연기(緣起·인과 법칙)를 일상의 삶에서 실천해야 한다.” 6일 ‘붓다, 중도로 살다’ 출간 간담회에 참석한 도법 스님(71·왼쪽 사진)의 말이다. 스님은 불교가 일반인은 물론이고 수행자에게조차 어렵게 여겨지는 현실을 떠올리며 책을 썼다고 했다. 책은 ‘역사의 붓다, 그는 어떻게 살았는가’ ‘붓다의 눈으로 본 불교의 핵심 키워드’ ‘본래붓다 불교의 총론’ ‘21세기 시민붓다의 불교’ 등 네 장으로 구성돼 있다. 스님은 “불교의 시작인 역사적 붓다의 삶 자체를 들여다봤다”며 “생명평화의 삶과 세상을 열어가는 것이 21세기 시민붓다로 상징되는 불교의 미래가 될 것”이라고 했다. 1966년 금산사에서 출가한 스님은 선원에서 수행하다 1990년 개혁승가 결사체인 선우도량을 결성했고 1994년 종단 개혁을 이끌었다. 이후 실상사를 중심으로 생명평화운동을 벌였고 2010년부터 조계종 화쟁위원장 등을 지냈다. 도법 스님은 “코로나19를 계기로 미혹의 문명에서 깨달음의 문명으로 가야 한다”며 “지리산 1000일 결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실상사 내의 1000일 수행과 기도, 지리산 53개 도량 순례 등을 통해 코로나19 시대에 대한 불교적 진단과 대안을 찾자는 취지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요술램프를 문지르면 ‘짠’ 하고 나오는 지니 같은 하느님은 없어요.”2일 충남 홍성군 광천성당에서 만난 한광석 신부(51)는 최근 출간한 책 ‘그런 하느님은 원래 없다’(가톨릭출판사·사진)를 언급하다 이런 말을 던졌다. 그럼 어떤 하느님이 계신 걸까?》 한 신부는 책에서 무신론과 악, 기도와 돈, 성(性)과 과학 등을 키워드로 다뤘다. 무거운 신학 서적이 아니라 쉬운 사례를 중심으로 고민을 풀어주는 책이다. 1998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천주교대전교구 홍보국장을 오래 지내며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때 실무를 담당했다. ―책 제목이 도발적이다. “도전적인 제목과 노란 표지 색깔에 승부를 걸었다(웃음). 교회를 떠나는 젊은 신자와 신앙생활 중 상처받거나 마음을 닫은 신자들에게 다가서고 싶었다.” ―머리말에 ‘삼촌의 마음’으로 책을 썼다고 했다. “벌써 10년 정도 지난 얘기다. 신학생 때 만난 초등학생이 미국으로 이민 간 뒤 여대생이 됐다. 그 여대생은 ‘신(神)은 없는데, 왜 신부 하세요’라고 했다. 말문이 막혀 제대로 답을 못 했다. 주변에 그런 젊은이들이 많아 지난해부터 글을 모아 늦은 숙제를 한 셈이다.” ―“하느님의 존재를 느끼지 못했다”는 마더 테레사 수녀(1910∼1997)의 고백을 담은 비밀편지가 2007년 공개돼 논란이 됐다. 이른바 ‘영혼의 어두운 밤’은 일반적인가. “그 어두운 밤은 하느님의 존재를 쉽게 느낄 수 있는 인간적인 방법이 아니라 부정적인 방법을 통한 체험이다. 하느님 안에 깊이 들어간 분들이 겪는 고통일 수도 있다. 사제뿐 아니라 신자들도 세례받은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기도가 잘되고 하느님이 느껴지는데 점점 그런 체험이 없어지기도 한다. 그때 하느님이 자신에게서 떠난 것 같다고 느껴진다. 이유식은 달고 맛있지만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거친 음식이 필요하다. 신앙의 성장 과정도 그런 것 아닌가 싶다.” ―신부님은 어떤가. “저도 그 과정 속에 있다. 이 책, 제 얘기이기도 하다. 신학생 때 마당에 나와 하느님 계시면 나와 보라고 여러 번 소리쳤었다. 그런데 개인들이 믿고 싶어 하는 그런 하느님은 없다. 물질적인 부(富)를 주거나 램프를 문지르면 지니처럼 ‘짠’ 하고 나타나는 하느님은 동화나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구체적 악(惡)이나 엄청난 재해를 목격할 때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하게 된다.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악은 불교의 업처럼 인간의 잘못에 의한 것과 그런 인과율을 넘어선 것도 얼마든지 있다. 요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중세에는 흑사병이 극심했다. 흑사병과 코로나19로 인한 고통은 하느님의 벌이 아니라 인간 중심의 환경 파괴로 자초한 일은 아닌지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악의 문제는 어떤가. “선과 악, 빛과 어둠, 말하자면 아수라 백작과 같은 이원론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밤이 왜 있나? 그것은 밤이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빛으로부터 멀어져 있기 때문이다. 악도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선(善)이 약해진 것이다. 나쁜 짓 하는 이와 나는 몇 %밖에 차이가 없는 것이다.” ―선한 비(非)신자는 가능한가. “독일 신학자 카를 라너가 말한 ‘익명의 그리스도인’일 수 있다. 가톨릭교회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가르침은 하느님은 교회 안에 계시지만 교회를 넘어서는 더 큰 분, 교회 안에만 갇혀 계실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늘 양심 안에서 올바르게 살아가려고 하는 분들을 구원할 것이다. 신앙인은 특권적 존재가 아니기에 더욱 겸손해야 한다.”홍성=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당신은 방(房)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이 책의 송곳 질문처럼 들린다. 보면 볼수록 잘 몰랐다는 말이 나오게 하는 책이다. 변명하자면 익숙한 것은 궁금하지 않고, 몰라도 사는 데 큰 어려움은 없으니까. 하지만 이 책은 방을 ‘인문학의 보석상자’로 탈바꿈시켜 이런 변명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역사와 문학, 건축, 회화, 풍속, 언어학…. ‘한국18세기학회’에 속한 전문가 27명이 전하는 상식과 분석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18세기의 맛―취향의 탄생과 혀끝의 인문학’ ‘18세기 도시―교류의 시작과 장소의 역사’에 이은 세 번째 책이다. 책은 ‘여성의 방’ ‘응접실, 거실’ ‘부엌과 화장실’ ‘가구와 사물’ ‘패브릭’ ‘식물과 동물, 정원’ ‘책과 서재’ 등 7부로 구성돼 있다. 귀부인의 화장방(化粧房)은 매우 흥미로운 공간이었다. 귀부인의 아침 접견을 묘사한 그림들에는 애인과 물건을 팔러온 상인,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화장대에 앉아 머리 손질을 받고 있는 귀부인의 어깨에는 천이 둘러져 있다. 책에 따르면 프랑스어로 작은 천이라는 뜻의 투알레트(toilette)가 머리 손질과 화장, 화장 도구, 화장대 전체, 나아가 화장방을 가리키는 단어로 의미가 확장됐다. 이 단어가 영어화한 것이 화장실(toilet)이다. 화장방에는 실내용 변기를 보이지 않도록 둘 수 있는 캐비닛 또는 테이블 모양의 가구가 있었다. 영국의 인도 지배라는 역사의 한 단면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거실 풍경도 있다. 인도 화가가 그린 ‘살림을 감독하는 임피 부인’에는 백인 여성을 중심으로 백인 집사 1명과 모자 상인, 그리고 16명의 인도 남성이 묘사돼 있다. 하지만 거실과 서재, 책상은 누구에게나 허락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성과 감성’ ‘오만과 편견’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작가 제인 오스틴은 자신의 방에서 글을 쓸 수 없었다. 목사의 딸로 태어나 그리 부유하지 않은 가정 형편 탓에 오스틴은 응접실 한쪽에서 글을 썼다고 한다. 오스틴 자택 박물관에는 그가 썼던 호두나무 탁자와 아버지가 선물한 글쓰기 상자가 있다. 책상에도 젠더(gender)적 의미가 숨겨져 있었다. 무겁고 큰 남성용 책상은 공간의 지배자, 여러 소품을 담을 수 있는 수납공간에 초점을 둔 여성용은 개인비서 역할을 하는 일종의 조력자로 인식됐다는 것이다. 저자들이 전하는 ‘방구석 스토리’는 다큐멘터리를 연상시킬 정도로 다양하고 섬세하다. 그들의 카메라는 거실과 서재, 식당, 정원을 디테일하게 응시하다 어느새 동서양을 오간다. 책에 등장하는 그림과 사진도 풍부하고, 해석도 깔끔하다. 불가피하게, 각 글의 호흡이 짧은 점은 아쉽다. 그럼 왜 18세기일까? 책에 따르면 17세기까지 침실과 침대도 공용일 정도로 사람들은 혼자 지내지 않았다고 한다. 18세기 들어 방이 사생활을 상징하는 개인 공간으로 다시 탄생하면서 건축과 인테리어 등 여러 면의 근본적인 변화가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우리는 방에서 태어나고 자라며 결국 방에서 죽는다. 우리 존재의 기본 배경이자 무대인 방. 미셸 페로는 ‘방의 역사’에서 개인적이고 은밀한 방은 근대에 만들어진 경험과 사유의 단위라고 했다.” 책의 머리말 일부다. 허투루 들을 얘기는 아니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어제의 그리움은 시냇물이고, 오늘의 그리움은 강물이고, 내일의 그리움은 마침내 큰 바다로 이어지겠지? 너를 사랑한다, 친구야.’ 우정을 주제로 한 이해인 수녀(75)의 글을 모은 ‘친구에게’(샘터·사진)가 최근 출간됐다. 그의 산문 가운데 소개하고 싶은 우정에 관한 구절을 가다듬고 일부 새롭게 쓴 글을 추가해 엮었다. 어린 시절 골목길 동무와 학창 시절 친구들, 수녀원 입회 뒤 만난 동료와 사제들, 여러 책을 쓰면서 인연을 맺은 독자 등을 떠올리며 썼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해인 수녀 특유의, 마음속에 쉽게 다가서는 문체와 이규태 화가의 파스텔 톤 삽화가 어우러졌다. 특히 나이 들면서 더 기대게 되는 느티나무 같은 우정의 힘과 아쉬움이 짙게 배어 있다. ‘너는 늘 미안하다 미안하다 하고, 나는 늘 괜찮다 괜찮다 하고, 그러는 동안 시간은 잘도 흐르는구나. 세월과 함께 우리도 조금씩 늙어가는구나.’ 이해인 수녀는 머리말에서 “코로나19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기, 서로가 서로에게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존재임을 깊이 절감하는 날들”이라며 “내가 누군가의 친구가 되고, 또 누군가 나의 친구가 되는 기쁨이야말로 살아서 누리는 가장 아름다운 축복일 것”이라고 말했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지난해 12월 강원 평창군 오대산 월정사 산중총회는 정념 스님(64)을 만장일치로 주지 후보로 추대했다. 2004년 첫 주지를 맡은 정념 스님이 4년 임기의 주지 5연임에 성공한 것. 1962년 대한불교조계종이라는 통합 종단이 출범한 뒤 본사 주지의 5연임은 처음이다. 월정사는 조계종 내에서 산중 사찰을 유지하면서도 대중과 호흡하는 ‘열린 불교’의 상징으로 꼽힌다. 월정사가 2004년 시작한 단기 출가학교는 연등회, 템플스테이와 함께 불교계 3대 히트 상품으로 유명하다. 삭발하고 1개월간 출가자처럼 생활하는 출가학교는 3000여 명의 수료자를 배출했고, 이 중 300여 명이 출가했다. 일주문부터 이어지는 전나무 숲,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9km 길이의 선재길은 대표적인 힐링 코스다. 사찰 내 여러 선원(禪院)이 복원 또는 개원했고, 2018년 월정사 인근에 오대산 자연명상마을이 들어섰다. 월정사에서 정념 스님을 25일 만났다. 1980년 희찬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스님은 올해 출가 40주년을 맞는다. ―20일 선재길 명상 축제가 열렸다. “산중이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방역 수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치렀다. 올해 17회째를 맞았는데 비가 오락가락하는데도 1000여 명이 참석했다. 걷기와 명상, 음악, 영화가 어우러지는 행사였다.” ―단기출가학교, 문화축제, 자연명상마을 등 획기적인 시도가 많았다. “시대가 바뀌면서 사찰이 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월정사와 선원, 자연명상마을, 성보박물관 등이 일종의 문화 타운이 돼야 한다. 단기출가학교와 각종 문화행사, 복지 시설 운영은 핵심 콘텐츠라고 할 수 있다.” ―월정사의 변화, 자평한다면 몇 점인가?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방향은 맞지 않았나 싶다. 낙제는 면해 70점 정도….(웃음)” ―다섯 번 연임이 화제다. “그동안 해 왔던 불사(佛事)를 좀 더 완성하라는 교구 스님들의 요청이 아닐까 싶다. 공동체의 뜻을 모아 산중 사찰의 미래를 열어가고 싶다.” ―중앙종회 의원과 본사주지협의회장 등 종단의 주요 소임을 두루 경험했다. 불교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을 것 같다. “불교는 다른 종교와 비교할 때 큰 장점이 있다. 화엄사상은 미래와 디지털 사회, 정보문명, 우주적 거시까지 품어낼 수 있다. 소통의 문화를 뒷받침할 수 있는 사상성도 있다. 현대인들이 디지털과 사이버 문화 속에서 살아가지만 완전한 인간 행복을 느낄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명상과 수행 문화가 필요하다. 코로나19 이후 개인은 물론 국가와 국가가 닫히는 ‘신(新)내셔널리즘’과 장벽 쌓기가 전망된다. 불교의 상생과 공존의 문화가 더욱 필요한 시대다.” ―신도가 크게 줄고, 종단과 출가자에 대한 신뢰도도 떨어졌다.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1차적으로 스님들 책임이다. 그것도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 공업(共業)의 소산이다. 시대를 견인할 수 있는 새로운 불교를 만들지 못했다. 아니, 따라가기에도 급급했다.” ―종단의 백년대계본부장도 맡고 있다. 백년대계, 그 출발점은 무엇인가. “새로운 시대에 맞는 혁명적 전환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종단 정체성, 교학과 수행 체계, 총무원과 본사의 역할…. 미래를 위한 ‘그랜드 디자인’이 나와야 한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종단 구성원들의 원만한 합의다.” ―40년 전 삭발한 날의 기억이 생생한가. “시절 인연으로 주지를 맡았는데 전생에 빚이 많은 것 아닌가 싶다. 경허 스님 행장을 보면서 출가하면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삶을 살고 싶었지, 엄격한 중노릇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선사들의 자유자재한 모습, 그게 나의 로망이었다.” ―좋아하는 경구를 들려준다면…? “‘증도가’ 중 재욕행선지견력 화중생련종불괴(在欲行禪知見力 火中生蓮終不壞)라는 구절이 있다. ‘욕망 속에서 참선하는 지견의 힘이여, 불 속에서 연꽃이 피니 끝내 시들지 않는다’는 의미다. 현실은 우리들 삶의 현장이다. 이것을 버리고 다른 곳에서 진정한 무언가를 구현할 수 없다.” ―코로나19 이후 세상에 대한 걱정이 많다. “지금의 위기는 임기응변으로 해결할 수 없다. 정보화 시대에선 휴대전화로 들어가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휴대전화가 소통이니까. 오장육부(五臟六腑)는 이제 휴대전화를 포함해 오장칠부, 육장육부로 바뀌었다. 문명의 전환기다. 불교를 포함한 모든 주체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그럭저럭 당장의 위기는 모면해도 결국 화석이 될 것이다.”○ 정념 스님은…△1980년 오대산 월정사에서 희찬 스님을 은사로 출가△1987년 중앙승가대 졸업△1992년 오대산 상원사 주지△2004년∼ 월정사 주지△2012년 조선왕조실록과 의궤 환수에 기여해 국민훈장 동백장△2015년 조계종 교구본사주지협의회장△2018년 오대산 자연명상마을 건립△2019년 조계종 백년대계본부장△상원사 청량선원 복원, 월정사 만월선원과 북대 상왕선원 개원평창=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의료인과 방역 관계자에 이어 소상공인 및 자영업자 등을 위한 휴식형 템플스테이가 무료로 진행된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단장 원경 스님)은 22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여행업계 관계자들이 전국 사찰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템플스테이인 ‘쓰담쓰담 템플스테이’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쓰담쓰담 템플스테이는 10월까지 전국 80개 사찰에서 운영되며 신청자 및 함께 오는 1인까지 1박 2일을 무료로 머물 수 있다. 올 3월부터 코로나19 대응 의료진과 방역 관계자 등을 대상으로 진행하고 있는 ‘토닥토닥 템플스테이’도 기간과 사찰을 늘려 시행한다. 신청자와 동반 1인까지 최장 3박 4일 일정이며 참여 사찰도 기존 16곳에서 79곳으로 늘렸다. 원경 스님은 “코로나19 장기화로 침체된 사회를 위로하고 템플스테이를 통해서나마 사회에 공헌하기 위해 지원 대상과 사찰을 확대했다”며 “어려움에 처한 많은 분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희망을 얻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쓰담쓰담 및 토닥토닥 템플스테이 참여 사찰 확인과 참가 신청은 템플스테이 예약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

《어느 날 성당을 방문한 김수환 추기경(1922∼2009)은 미사를 돕던 복사(服事)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실하게 생겼다. 나중 꼭 신부가 되어야 해”라고 했다. 그 아이는 김 추기경의 바람처럼 사제가 됐다. 생명 존중과 나눔 실천을 위해 설립된 천주교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One-Body One-Spirit) 본부장을 맡고 있는 김정환 신부(51)다. 김 추기경과 김 신부의 인연은 이 단체를 통해 다시 이어졌다. 추기경은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를 한 해 앞둔 1988년 이 단체를 설립해 초대 이사장을 지냈다. 선종 당시 각막 기증으로 장기기증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됐다. 18일 서울 중구 가톨릭회관에서 이 본부의 유튜브 라이브 방송 ‘오보스(Oh!boss)’ 촬영을 준비 중이던 김 신부를 만났다.》―김 추기경과 묘한 인연이다. 다른 사연은 없나. “추기경께 부제(副祭) 품을 받았다. 신학생 시절 추기경께서 한 특강 내용이 기억난다. 말씀 중 ‘통일이 어떻게 될 수 있을 것 같아? 이 시대의 양심이 되고자 하는 사제로 통일을 위해 뭘 준비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모두 머뭇거리고 있는데 추기경께서 ‘서로 사랑해라, 옆에 있는 사람도 사랑 못 하고 지역으로 나뉘는데 무슨 남북통일이냐. 가까운 이부터 사랑하고 나누는 게 통일의 시작’이라고 하시더라.” ―5월 명동에서 진행한 헌혈 캠페인이 9월까지 이어졌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혈액 수급에 비상이 걸려 헌혈 캠페인을 펼쳤다. 6월 확진자가 다시 늘어나 헌혈 여건이 매우 나쁜 상황이다. 여러 본당이 단체로 참여하고 있는데 9월까지 계속 캠페인을 벌일 생각이다.” ―코로나19와 관련해 해외 지역을 돕기 위한 모금 성과는 어떤가. “모금 목표가 5000만 원이었는데 약 3억 원이 모였다. 우리는 불편한 수준이지만 해외 지역은 굶어 죽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필리핀 미얀마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등 그동안 본부가 연계해 온 지역을 중심으로 식량과 위생 키트를 지원했다.” ―장기기증 활성화는 우리 사회의 오랜 숙제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이 더 커졌는가. “현재 장기기증 희망자 수는 올해 목표의 35% 수준이다. 정부 통계를 보면 3만5000명이 장기 이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한 해 450명 정도만 이식을 받고 있는 상태다. 기다리다 안타깝게 생명을 잃는 분이 하루 평균 5.2명이라고 한다. 유럽 지역 많은 선진국의 경우 장기기증을 안 하겠다는 말을 하지 않으면 당연히 장기기증을 하는 것으로 돼 있다. 우리도 제도적 개선과 함께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김 신부가 지난해 9월 시작한 유튜브 방송도 화제다. 18일에는 ‘고부갈등만큼 견디기 힘든 주보갈등’이 주제였다. 주보는 본당의 주임과 보좌 신부를 가리킨다. 이 방송은 6월 민주항쟁과 5·18민주화운동은 물론 사제의 성(性) 추문을 다루기도 했다. ―‘오보스’는 무슨 뜻인가. “우리 단체의 영문 표기인 ‘One-Body One-Spirit’의 약칭이고, 까칠한 보스라는 의미도 있다.(웃음) 후원회원용 회보를 발행하고 있지만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요즘 남녀노소 유튜브를 보고 계시더라. 방송을 통해 그분들 요구에 맞는 정보를 주면서 예우를 하고 싶었다.” ―사회적 이슈와 교계에서 민감한 주제도 있다. “6월 민주항쟁, 세월호 참사, 5·18민주화운동은 인간생명 존엄의 관점에서 아직 해결되지 못한 부분이 무엇인가를 다뤘다. 성 추문은 자극적으로 얘기하자는 게 아니라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예방하고 극복하자는 취지였다. ‘물어보스’ 코너에서는 ‘사제들 월급은 얼마나 받나’ ‘미사 중 화장실 가고 싶으면 어떻게 하나’, 이런 얘기도 나눴다.” ―김 추기경은 이 단체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사제가 된 지 20여 년 만에 이 단체에 왔으니, 어떤 섭리 같은 게 느껴졌다. 1998년 추기경께서 사제 서품에 앞서 피정 중인 부제들에게 하신 말씀이 있다. ‘여러분이 받게 되는 사제직을 보증수표로 생각하지 말라. 그것은 완성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머릿속에서 종이 울리는 듯한 말씀이었고, 지금도 가슴에 새기고 있는 가르침이다.”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