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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을 콧구멍에 밀어 넣는 건 애교에 불과합니다. 게슴츠레 뜬 눈에 우악스럽게 입을 벌리는 표정도 이젠 흔합니다. 최대한 턱을 몸쪽으로 끌어당겨 턱살이라도 접히게끔 연출해야 그나마 곁에 둘 만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하나, 둘, 셋’ 하고 스마트폰 카메라 셔터가 눌릴 때까지 주인공(?)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절대 일그러진 얼굴 표정을 원상 복구해서는 안 됩니다. 카메라 앞에서 최대한 못난 모습을 연출해야 본인의 차례 때 몇 배로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간에서 번지는 ‘외모 몰아주기’ 놀이에 대한 설명입니다. ‘몰아주기’ 또는 ‘얼굴 몰아주기’로도 불리는 이 놀이는 단체 셀프카메라에서 한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이 얼굴을 최대한 일그러뜨려 그 사람이 돋보이도록 하는 식입니다. 사진 속 주인공이 최대한 예쁘고 멋지게 보일 수 있도록 들러리 역할을 자처하는 겁니다. 물론 본인의 차례가 돌아오면 누구보다 빛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12일 오후 3시 현재 인스타그램에서만 ‘몰아주기’라는 해시태그(단어 앞에 ‘#’을 붙여 특정 주제를 다루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로 총 5042개의 게시물이 검색되고 있습니다. 최근 한 TV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는 몰아주기를 주제로 한 코너가 생겼을 정도입니다. 처음에 단순 재미로 시작했던 이 놀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생일 취업 등을 기념하는 소소한 이벤트로 한 걸음 나아갔습니다. 그저 한 명씩 ‘돌아가며 멋져 보이기 위해’ 하던 얼굴 몰아주기가 상대방을 멋지게 만들어주기 위한 놀이가 됐습니다. 다만 SNS상에서 제 살을 좀 깎아먹는 건 감수해야 할 부분이겠죠. 삐친 여자친구 달래주기, 직업실습에 지친 친구 응원하기 등 각각 다양한 몰아주기가 SNS를 뒤덮었습니다. 졸업시즌이 몰린 이번 달에는 졸업식에서 기꺼이 얼굴을 구긴 고등학생들의 단체사진이 여러 장 올라왔습니다. 전망이 좋은 바다 앞에서도, 축구 응원 중에도 몰아주기는 이어졌습니다. 어머니의 생일을 맞아 기꺼이 어머니 옆에서 인상을 찌푸리며 효녀 노릇을 자처한 한 여성의 사진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친구들은 “어머니가 점점 미인이 되어 간다”, “나도 몰아주기를 해야겠다” 등의 댓글을 달며 친구의 게시물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한 남성 아이돌 그룹은 새 드라마 촬영에 들어간 멤버를 응원하기 위해 카메라 앞에서 망가진 표정을 연출해 화제가 됐습니다. 굴욕사진에 민감한 아이돌 멤버마저도 기꺼이 카메라 앞에서 얼굴을 찡그리는 모습에 그룹 이름도 채 모르는 저마저도 그들의 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문득 ‘얼짱 각도’(얼굴이 가장 예쁘고 작게 비치는 카메라의 촬영 각도), ‘사기샷’(사진 속 인물의 생김새가 실물과 달라 마치 사기 같다는 의미)이라는 단어로 대변되던 과거의 SNS 사진 문화가 떠올랐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자신을 빛나 보이게끔 과도하게 연출하는 이 문화는 기대와는 달리 우울한 이슈를 여럿 만들어 냈습니다. 최근 국제적인 이슈가 됐던 한 중국 남성의 이야기도 그중 한 사례일 겁니다. 이 남성은 온라인에서 알게 된 여성의 사진만 믿고 그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로 다섯 시간 거리를 날아갔다가 사진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 실망한 나머지 여성을 때려 이슈가 됐습니다. 현실과 온라인 세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던 사람들의 바람이 만들어낸 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아닐까요. 그런 의미에서 최근의 외모 몰아주기는 SNS가 점차 우리의 삶 속에 깊이 뿌리 내리면서 생겨난 자연스러운 문화가 아닐까 합니다. 비록 사진 속 모습이 제 성에는 덜 찬다 할지라도 좀 더 자연스럽게 웃고 서로를 위할 수 있는 일. 제가 SNS 세계에 기대하는 모습입니다. 오늘 여러분도 기꺼이 가족, 친구, 직장동료와 함께 얼굴 몰아주기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얼굴을 잔뜩 찡그린 만큼 미소가 돌아온다는 걸 금세 느낄 수 있을 겁니다.강홍구 사회부 기자 windup@donga.com}
지난달 29일 서울 중랑구의 한 편의점에 검은 마스크를 쓴 유모 씨(24)가 나타나 아르바이트생 A 씨에게 소주 한 상자를 사겠다고 했다. A 씨가 소주를 꺼내러 창고로 들어간 사이 유 씨는 주변을 살피고는 카운터에 놓인 2000원짜리 즉석복권 46장을 급히 재킷 안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이어 아르바이트생이 창고에 있는 틈을 타 유유히 편의점을 빠져나갔다. 소주 한 상자를 사겠다고 한 건 복권을 훔치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유 씨의 범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특별한 거주지 없이 PC방, 찜질방 등을 전전하며 생활하던 그는 지난해 10월부터 이달까지 서울, 인천, 경기도 등의 편의점을 돌며 총 35차례 500만 원 어치의 즉석복권을 훔쳤다. 편의점 종업원에게 창고에 있을 법한 물건들을 꺼내달라고 요청한 뒤 그 틈을 타 복권을 훔치는 수법을 되풀이했다. 당첨되면 현금화하기 좋다는 생각에 즉석복권을 훔쳤지만 기대만큼의 쏠쏠한 재미를 거두진 못했다. 500만 원 어치 복권을 긁었지만 가장 큰 당첨금액은 10만 원 수준이었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를 분석해 유 씨를 추적한 끝에 8일 서울 용산구의 한 PC방에 있던 그를 검거했다. 서울 중랑경찰서는 상습절도 혐의로 유 씨를 구속했다고 11일 밝혔다.강홍구기자 windup@donga.com}
《 6일 오후 4시 30분 서울 종로구 돈화문로 서울극장 뒷골목의 한 모텔. 짙게 화장한 50대 후반의 한 여성이 불룩한 가방을 한 손에 든 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뒤 중절모를 쓰고 오른손에 지팡이를 쥔 70대 남성이 모텔에서 나오자 여성이 다가갔다. 자연스럽게 팔짱을 낀 그녀는 “연애(성매매를 이르는 말)는 괜찮았지? 저녁 먹으러 어디로 갈까?”라며 애교를 부렸다. 누가 들어도 중국동포 말씨가 강하게 배어 있는 목소리였다. 》○ 박카스 아줌마, 절반 이상이 중국동포 2000년대 초반부터 서울 종로구 종묘공원, 탑골공원 일대에서 노인을 대상으로 성매매를 해온 일명 ‘박카스 아줌마’가 중국동포로 대거 대체되고 있다. 성매매를 하면서 음료수도 함께 판다고 해서 이 같은 이름이 붙었다. 8년 넘게 종묘광장에서 근무해온 김진수 종묘광장관리사무소 반장은 “전체 박카스 아줌마가 265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그 절반이 넘는 150여 명이 중국동포로 바뀐 상황”이라며 “화대가 1만∼3만 원대로 저렴해 노인들이 많이 찾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서울 종로구 일대에서는 중국동포 박카스 아줌마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이들의 주요 활동 무대로 알려진 한 모텔에서 취재진은 방문을 열고 나온 60대 남성에게 한 50대 여성이 중국동포 말씨로 쪽문의 위치를 알려주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인근 다른 모텔, 여관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익숙하게 남성 노인들을 이끌었고 모텔 주인과는 중국동포 말투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친분을 드러냈다. 2011년 박카스 아줌마 실태조사 논문을 쓴 이호선 서울벤처대학원대 교수는 “거주지가 마땅치 않은 중국동포 박카스 아줌마들이 종묘공원, 동대문 일대의 여관 등에서 합숙하고 있다”며 “함께 사는 동료 한 명이 노인을 데려오면 나머지 사람들이 자리를 비켜주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일자리 줄면서 엇나간 ‘코리안 드림’ 중국동포 박카스 아줌마가 급증한 것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국내로 들어온 중국동포 수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노동력 공급이 늘다보니 임금 등 근무환경이 열악해져 결국 중국동포들이 박카스 아줌마로 나서게 됐다는 분석이다. 실제 법무부 출입국 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국내에 체류 중인 중국 국적 동포는 2008년 29만4344명에서 지난해 60만6694명으로 갑절가량으로 늘었다. 내수시장 불황으로 중국동포들이 주로 진출한 식당, 병원, 숙박시설 서비스 업종이 쇠퇴한 것도 악재로 작용했다. 종묘공원에서 만난 한 중국동포 박카스 아줌마 A 씨는 “1년만 열심히 일하면 (중국에서) 아파트 살 돈을 번다는 말만 믿고 한국으로 넘어왔는데, 턱도 없는 상황이라 이 일에 나섰다”고 하소연했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식당에서 일했던 그는 “그래도 (박카스 아줌마) 일을 하며 매달 100만 원을 꼬박꼬박 고국에 송금하고 있다”며 “낮에는 생업에 종사하고 밤에만 이 일을 하는 30대 후반 동료도 적지 않다”고 했다. 김영란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의 급격한 고령화와 중국동포들의 일자리난이 겹친 기현상”이라며 “노인 성매매에 무관심했던 한국 사회의 빈 곳을 중국동포 여성들이 파고든 것”이라고 말했다.김재형 monami@donga.com·강홍구 기자}

학사모에 졸업 가운을 두른 두 여대생은 15분 뒤 흰 셔츠에 청반바지를 맞춰 입고 다시 카메라 앞에 섰다. 옷이 달라져도 촬영 기사의 주문은 한결같았다. 억지로 포즈를 연출하지 말고 평소처럼 자연스럽게 장난을 치라고 당부했다.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아는 스튜디오’에서는 동국대 법학과 09학번 동기인 대학생 김지혜 씨(26·여)와 남효정 씨(26·여)의 졸업앨범 사진 촬영이 진행됐다. 2시간여 사진을 찍는 동안 캠퍼스 졸업 사진 촬영 특유의 경직된 분위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흡사 오랜만에 학교에서 만난 듯 두 사람이 자연스레 웃고 떠드는 동안 사진사가 카메라 셔터를 끊임없이 눌렸다. 대학에서 만드는 판박이 졸업 앨범 대신 사설 촬영 스튜디오의 ‘사제 졸업 앨범’을 선호하는 대학생이 늘어나고 있다. 2, 3년 전 이화여대 등 일부 여대를 중심으로 시작된 사제 앨범 문화가 점차 확산되면서 홍대앞, 강남 일대에도 이를 전문으로 하는 스튜디오가 늘어나는 추세다. 대학 졸업식이 몰려 있는 2월 현재 주말에는 3주를 기다려야 촬영을 할 수 있을 정도다. 대학생들이 이처럼 사제 졸업 앨범을 선호하게 된 이유 중 하나로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졸업 시점을 예측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학생들은 가능하면 취업을 확정 지은 뒤 졸업을 결심하고, 앨범 촬영에 참여하지만 언제 졸업할지 기약이 없다 보니 앨범 촬영도 한없이 밀린다는 것. 갑자기 취업에 성공해도 사제 앨범을 선택하면 친구들과 편하게 촬영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공기업 취업을 준비하는 남 씨는 “취업이 되면 사진을 찍겠다는 생각에 (앨범 촬영) 타이밍을 여러 번 놓쳤다”며 “더 늦어지면 친구들과 함께 찍을 수 없다는 생각에 사설 스튜디오 촬영을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학과 소속감이 약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과 활동에 주력했던 과거와 달리 학생들이 인턴 활동, 공모전 참여 등 외부 활동에 활발히 참여하면서 과에 대한 뿌리 의식이 희미해진 상황. 지난해 서울 마포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다른 과 학생들과 함께 졸업 사진을 찍은 김지수 씨(24·여·명지대 경영학과 졸업)는 “얼굴도 모르는 과 동기들과 어색하게 사진을 찍는 대신 대학 생활을 함께 즐긴 이들과의 추억을 남기자는 생각에서 (사제 졸업 앨범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김영란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새로운 커뮤니티가 중시되는 현상이 졸업 앨범 촬영에 반영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모나 교수와 졸업 사진을 찍거나 캠퍼스 커플이 둘만의 졸업 앨범을 만드는 사례도 적지 않다. 형식의 자유로움도 사제 졸업 앨범의 장점으로 꼽힌다. 졸업 가운, 정장을 입은 천편일률적인 사진 외에도 다양한 의상, 소품을 활용해 다양한 콘셉트로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 짧은 시간에 ‘찍고 넘어가는’ 대학 졸업 앨범과 달리 스튜디오 앨범은 2, 3시간 공을 들이는 데다 사진 보정 작업에도 개입할 수 있어 사진 만족도 또한 높은 편이다. 대학 오리엔테이션, MT 등 재학 시절 사진을 앨범에 추가하는 서비스도 가능하다.윤수민 soom@donga.com·강홍구 기자}

노무현 정부 시절 정치권 인사들이 자주 찾았던 청와대 인근 횟집 ‘섬마을’에서 불이 나 건물 절반 이상이 탔다. 서울 종로소방서는 8일 오전 4시 6분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 한옥 건물 섬마을 횟집에서 화재가 발생해 1시간여 만에 진화됐다고 밝혔다. 이번 화재로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건물 187m² 중 110m²가 불에 타고 나머지는 그을려 소방서 추산 3200여만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이 횟집은 2006년 개업 때 이강철 전 대통령정무특보가 지분 참여를 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로 불렸던 이 전 특보는 2006년 4월 초등학교 동창 정모 씨의 식당을 리모델링한 뒤 정 씨 60%, 본인 40%로 수익을 나누는 식으로 새로 횟집을 열었다. 청와대에서 800여 m 떨어진 곳에 이 전 특보가 횟집을 내면서 당시 한나라당(지금 새누리당)은 그를 공무원 행동강령 위반으로 국가청렴위원회(현 국민권익위원회)에 고발하는 등 논란이 일었다. 이 전 특보는 2006년 11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부인 명의로 같은 이름의 횟집을 내고 이곳의 지분은 정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방당국은 홀 가운데에서 불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원인을 조사 중이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동국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부정 의혹이 제기된 총장후보자 보광스님의 논문 30편을 조사한 결과 그 중 18편에서 표절, 중복게재 사실이 드러났다고 6일 밝혔다. 나머지 논문 12편도 작성 당시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현재 기준으로는 중복게재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연구윤리위는 학교 총 동창회원들로 구성된 동국대 살리기 비상대책위의 제보로 이번 조사를 시작했다. 법인 측은 11일 예정된 이사회에서 총장후보자의 거취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전망이라고 밝혔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공중화장실에 가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문구다. 함께 사용하는 공간이니 더 깨끗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사회적 약속을 지켜달라는 의미다. 그러나 막상 공중화장실에서 ‘아름다운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공중화장실의 이미지를 묻는 질문에 시민들은 ‘악취, 더러움, 충격’ 등 연거푸 부정적인 단어를 나열했다. 변기 밖으로 잘못 조준된 용변과 바닥에 방치된 토사물. 공중화장실 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미지다. 남들과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내 것처럼 사용하자’는 사회적 약속이 더욱 잘 지켜져야 하는 공간이 바로 공중화장실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본보 취재팀이 둘러본 서울 곳곳의 공중화장실에선 ‘사회적 약속’이 지켜졌다는 물증을 찾기 어려웠다. 1일 오후 11시경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의 한 상가 화장실은 입구에서부터 코를 찌르는 소변 냄새가 진동했다. 차례를 기다리던 일부 시민이 잠깐을 참지 못하고 건물 계단에 노상방뇨를 한 탓이었다. 화장실 내부도 마찬가지였다. 물을 내리지 않아 변기에는 소변이 차 있었고 휴지통에도 소변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자정 무렵 서울 마포구 신촌역에서는 역무원이 코를 움켜쥔 채 화장실 맨 오른쪽 칸에서 빠져나왔다. 해당 칸에는 누군가 구토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화장실에 들어서던 대학생 이모 씨(22)는 “한두 번 보는 게 아니다. 뒤처리라도 제대로 하면 불쾌감이 덜할 텐데”라고 말했다. 술집이 밀집된 지역에서만 이런 문제가 일어나는 건 아니었다. 2일 새벽 서울 성북구 한 대학 열람실 화장실에는 휴지더미가 흡사 돌무덤처럼 아슬아슬하게 쌓여 있었다. 제때 치우지 않은 탓이겠지만 휴지통이 넘칠 정도가 되면 쓰레기를 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상식이 이곳에선 통하지 않았다. 학생들은 이런 현상이 익숙하다는 듯 쓰레기더미 옆에서 양치를 한 뒤 밤샘공부를 하러 화장실을 빠져나갔다.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의 한 상가 공중화장실에는 ‘화장실 쓰레기통에 음식쓰레기를 버리지 말라‘는 황당한 문구가 붙어 있었다. 주변 상가 이용객 일부가 음식물쓰레기 처리가 번거롭다며 화장실 변기에 버리고 가는 일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었다. 건물 경비원 이병록 씨(68)는 “당구장 손님이 자장면을 시켜먹고 남은 음식을 변기에 버리는 일이 허다하다”며 혀를 찼다. 공중화장실의 문을 걸어 잠그면 해결될까. 이태원역 부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윤용옥 씨(72·여)는 “한때 화장실 문에 자물쇠를 걸어놨는데 결국 문이며 자물쇠까지 박살나는 것을 보고 포기했다”며 “공중화장실을 자기 집 화장실이라 여기면 문제가 쉽게 해결될 텐데”라고 말했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선 공공재를 소중히 다루자는 사회적 약속을 잘 지키도록 해야 한다”며 “공중화장실의 가치를 일깨우기 위해 유료화하는 등의 대책도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강홍구 windup@donga.com·김재형 기자◇우리 사회에서 지켜지지 않는 ‘약속’을 change2015@donga.com으로 보내주세요.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 사례나 사진, 동영상을 보내주시면 본보 지면과 동아닷컴에 소개하겠습니다.}
실업계고 출신의 장애인 A 씨(29)는 지난해 여름 온라인 광고를 보고 알게 된 이모 씨(28)에게 인문계고 생활기록부를 건네받았다. 지인의 생활기록부에 A 씨 자신의 사진과 이름을 입힌 가짜 생활기록부였다. 대기업 특별전형 취업을 노리던 그가 지원 과정에서 인문계고 졸업 경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문서 위조를 직업으로 삼은 이 씨에게 작업을 의뢰한 것이었다. 가짜 생활기록부를 구한 A 씨는 결국 본인이 원하던 대기업에 취업했다. 이 씨의 실력발휘를 원한 건 A 씨 뿐만이 아니었다. 초졸 학력이 콤플렉스였던 정모 씨(52·여)는 고교 졸업증서, 낮은 학점이 고민이던 대학생 정모 씨(28)는 성적증명서 위조를 이 씨에게 의뢰했다. 예비군 훈련을 미루려고 가짜 진단서를 원한 사람도 있었다. 건당 30만~50만 원을 받으며 이 씨는 지난해 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총 증명서 93개를 위조해 2500여만 원을 챙겼다. ‘밀항, 3국 신분 작업’ 등 거창한 표현을 쓰며 위조전문가라고 자처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인터넷을 통해 익힌 간단한 포토샵 작업만으로 그는 일반인이 식별하기 힘든 정교한 위조문서를 만들어냈다. 경찰 조사 결과 이 씨는 2년간 인력파견 업체를 운영하다 사업이 망해 수천 만 원의 빚에 시달리면서 이 같은 범행을 계획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 종암경찰서는 공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이 씨를 구속하고 위조를 의뢰한 A씨 등 8명을 불구속입건했다고 3일 밝혔다.강홍구기자 windup@donga.com}

아침 출근 때마다 신목동역에서 국회의사당역까지 서울지하철 9호선을 타는 직장인 최이석 씨(27·여)는 2일 오전 회사생활 3년 만에 처음으로 역 승강장에 도착한 지하철을 그대로 보내야 했다. 오전 7시 40분경 신목동역에 도착한 지하철 객차 안엔 이미 승객으로 가득 차 한 발도 들이밀 수 없었다. 최 씨는 “일반열차는 급행열차에 비해 사람이 적은 편인데도 오늘따라 유독 사람이 많았다”며 “월요일 아침 출근길부터 힘을 뺐다. 내일부터는 한 시간 일찍 집을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같은 시간 노량진역으로 가는 급행열차를 탄 직장인 김무건 씨(29)도 낯선 장면을 목격했다. 평소의 1.5배 정도 되는 많은 승객이 승강장에 들어차 있었던 것. 김 씨는 “내가 내린 출입문에서만 10여 명이 타지 못했다”며 “(승객이 많은) 여의도, 노량진역에서는 일부 승객들이 무리하게 지하철 진입을 시도하다 출발이 늦어지면서 안쪽 승객과 고성, 욕설이 오가기도 했다”고 상황을 전했다. 이날 두 사람이 전에 없던 경험을 한 이유는 달라진 9호선 지하철 배차 방식 때문이었다. 올해 3월 28일 2단계 구간(신논현역∼종합운동장역 4.5km 구간) 운행을 앞둔 9호선 측은 지난달 31일부터 확대구간 시험운행을 위해 일부 배차간격을 조정했다. 평일 출근시간대 6∼7분 정도였던 배차간격을 7∼8분으로 조정했다. 기존 2 대 1이던 일반열차 대 급행열차 비율도 일 대 일로 바꿨다. 배차간격이 바뀐 후 첫 업무일인 2일부터 파급력은 컸다. 이날 지하철 역사에서는 1, 2분이 아쉬운 마음에 지하철을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구르는 직장인들이 여럿 목격됐다. 직장인 윤현호 씨(29)는 “매일 일정한 시간에 지하철을 탔는데 (변경 후) 배차간격이 달라지고 사람도 많아져 내일부터 버스를 타고 출근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바뀐 방침이 제대로 공지되지 않은 것도 출근길 혼란을 가중시키는 데 한몫했다. 본보 취재팀이 2일 인터뷰한 9호선 승객 10명 중 배차시간 변경 사실을 알고 있는 이는 단 한 명이었다. 9호선 측이 1주일 전부터 역사와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를 했지만 효과가 크지 않았던 것이다. 실제로 이날 오전 염창역에서는 승강장 벽면에 붙은 ‘열차운행 시각표’를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하기 위해 승객들이 줄을 서기도 했다. 9호선 출근길 혼란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9호선 측은 3월 2단계 구간이 개통된 이후에도 현재 배차간격을 유지할 방침이다. 근본적 해결 방안인 열차 증차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배차간격만 조정해선 일평균 38만 명(지난해 기준)의 9호선 승객 수요를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시 교통정책과 관계자는 “승객 수요를 지속적으로 살펴 혼잡 구간인 김포공항∼여의도 구간에 버스 노선을 신설하거나 조정하는 방안 등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1일 오후 5시 2분경 경기 양주시 부흥로의 한 마트에서 불이 나 김모 씨(50·여)가 숨지고 점장 송모 씨(47)는 부상을 입어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김 씨는 남편 이모 씨(53)가 마트 사장 김모 씨(52)와 체결한 매매계약을 취소하고 계약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던 중 자신의 몸에 인화성 물질을 뿌리고 불을 붙인 것으로 전해졌다. 목격자들과 소방 당국에 따르면 김 씨는 화재가 나기 1시간여 전 마트에 찾아와 마트 사장 김 씨와 말다툼을 벌였다. 마트 내에서 정육점을 운영하는 박현종 씨(37)는 “사장이 언쟁 끝에 사무실을 나오자 김 씨가 문을 걸어 잠갔다”며 “그 직후 시너로 추정되는 인화성 물질 냄새가 났고 얼마 뒤 불길이 일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남편 이 씨는 “지난해 12월 6억5000만 원에 마트를 인수하기로 하고 계약금 5000만 원을 내면 은행대출을 받아 잔금을 치를 수 있도록 돕겠다고 했는데 (마트사장 김 씨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씨는 “잔금을 치르지 않아 소유권을 넘기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씨 등이 큰소리로 다툼을 벌이고 경찰까지 출동하자 손님과 점원 등 40여 명은 미리 건물 밖으로 대피해 인명 피해가 커지는 것은 피할 수 있었다. 이날 불이 난 마트는 지난달 13일 화재로 남매가 숨진 아파트와 인접해 있다. 이 때문에 소방당국에는 놀란 주민들의 신고·문의 전화가 빗발치기도 했다.양주=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1일 오후 5시 20분 경 경기 양주시 만송동 모 마트에서 ‘펑’하는 폭발음과 함께 화재가 발생했다. 이 화재로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여성 1명이 숨졌고 직원과 손님 일부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목격자들은 한 여성이 몸에 인화물질을 뿌리고 내부에 들어간 직후 화재가 발생했다고 전했다. 이 여성이 어떤 이유로 인화물질을 뿌렸는지는 아직까지 전해지지 않았고 이 여성이 사망자인지도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6시 20분 현재 큰 불길은 잡혔고 연기도 거의 멎은 상태다. 경찰은 화재가 진압 되는대로 마트 직원을 불러 화재 원인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양주=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12월 말 경남 창원 본사와 서울사무소에서 근무하는 52세 이상 사무직 450여 명 가운데 200여 명을 희망퇴직으로 내보냈다. 두산중공업은 근속연수에 따라 최대 2년 치 통상임금을 위로금으로 지급하고, 대학생 자녀에게는 1년 치 등록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NH농협은행은 올 초 270여 명의 명예퇴직을 확정했다. 대상자는 대부분 정년(현재 만 58세)을 코앞에 둔 직원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3분기까지 3조2772억 원의 적자를 낸 현대중공업은 14일 사무직 과장급 이상 1500명을 대상으로 한 희망퇴직 계획을 밝혔다. 기업들의 ‘희망퇴직’이 줄을 잇고 있다. 경기 침체로 저(低)성장 국면이 장기화하고, 통상임금 재산정에 따른 인건비 증가에 부담을 느낀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는 것이다. 특히 최근 진행되는 대규모 구조조정은 내년 300명 이상 사업장부터 실시되는 정년연장법(만 58세→만 60세, 300명 미만은 2017년부터)을 앞두고, 아직 정년에 도달하지 않은 50대 근로자들을 희망퇴직이나 명예퇴직 등으로 사실상 해고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법 시행 전 정년 연장 대상자들을 최소화해 인건비를 줄이겠다는 의도다. 이 같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고 있는 주 연령층은 50세를 넘긴 ‘베이비부머’다. 베이비부머는 전쟁 직후 사회적, 경제적 안정에 따른 높은 출산율로 형성된 세대로 생산가능인구를 대거 공급하며 경제성장을 이끄는 특징을 보인다. 한국의 경우는 1955∼1963년 출생한 사람들로, 통계청이 추산한 올해 인구는 약 709만 명이고, 이 중 312만 명 정도가 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1955∼1957년생(만 60∼58세)은 이미 정년이 넘어 회사를 떠났거나 올해 정년을 맞은 세대이기 때문에 퇴출과는 상관이 없다. 베이비부머 중 아직 정년이 되지 않은 1958∼1963년생(현재 만 57∼52세) 근로자들이 퇴출의 ‘타깃’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특히 1958년생 개띠들이 대표적인 ‘낀 세대’로 정년 연장의 최대 피해자”라는 얘기가 나온다. 이들은 기존 제도하에서는 내년에 만 58세 정년이 돼 퇴장해야 하지만 내년부터 정년이 2년 연장되는 바람에 혜택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건비 상승을 우려한 기업들의 조기 희망퇴직 러시로 오히려 올해 회사에서 퇴출되는 비애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 “24년 동안 몰랐다, 회사 공기가 그렇게 차가운지…” ▼1955∼63년생 베이비붐 세대의 비애24년간 근무했던 직장이었다. 겨울마다 여의도를 휘감던 쌀쌀한 칼바람도, 출근 생각만 하면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A 씨(52)에게 여의도는 ‘또 하나의 가정’이었기 때문이다. ‘직원은 ○○증권의 가족’ 1989년 서울의 한 사립대를 졸업하고 가족들의 축하를 받으며 입사한 증권사 입구에서 처음 마주한 문구다. 정말 그랬다. A 씨와 회사는 진짜 가족처럼 서로를 챙겼다. A 씨는 회사에 열심히 ‘효도’했고, 회사도 A 씨를 세세히 챙겼다. 회사가 준 일을 소중히 여기며 성실히 조직생활을 하는 게 미덕이었던 시대. 베이비붐 세대인 A 씨도 그 시대의 교훈을 그대로 따랐다. 그러나 그 교훈을 충실히 지킨 결과는 ‘해피 엔딩’이 아니었다.정년 연장 앞두고 ‘퇴출 프로그램’ 가동 2013년 12월 23일. 마지막으로 퇴근 도장을 찍고 여의도 거리로 나왔다. A 씨는 “여의도 겨울바람이 그렇게 살을 엘 정도로 차가운지 그때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앞만 보고 달린 지 24년이지만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회사를 떠나야만 했다. 회사를 부모처럼 여기고, 정열도 바쳤지만 A 씨를 내보낼 때는 매몰찼다. 퇴직 7개월 전인 2013년 5월 정년 60세 연장법이 개정됐지만 이 제도는 ‘그림의 떡’이었다. “나이 많고, 직급 높은 직원들은 무조건 퇴출 프로그램에 가야 한다던데?” 2013년 7월 여느 날처럼 출근해 업무 준비를 하던 A 씨는 동료들이 수군거리는 얘기를 들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퇴출 프로그램은 희망퇴직을 실시할 때 주는 1억∼2억 원을 아끼기 위해 회사가 직원에게 스스로 사직서를 내도록 종용하는 제도였다. A 씨를 포함해 퇴출 프로그램 대상자는 모두 20명. 그들이 모두 처음 만난 날, 다들 죄수처럼 고개를 숙인 채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매일 아침 오늘은 어떻게 영업할 건지 보고서를 내야 했다. 일종의 반성문이었다. “계좌유치 등으로 월 2000만 원씩 수익실적을 올려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목표량도 떨어졌다. 퇴출 프로그램 책임자는 “성과를 내지 못하면 야근이라도 하라”며 오후 10시까지 A 씨를 사무실에 남겼다. “이를 악물고 버텼죠. 정년퇴직은 바라지도 않았어요. 다만 애들 대학등록금 때문에라도 최소 3, 4년은 더 일을 하고 싶었어요. 날마다 사표를 쓰고 싶었지만 그렇게 버텼어요.” 끝까지 버틴 직원에게는 ‘최후통첩’이 떨어졌다. 2주마다 지점을 옮겨 다니도록 한 것. 여기서 나가떨어진 직원에게는 대기발령을 냈고, 책상을 없애고 직위도 박탈했다. 결국 A 씨도 2013년 12월 스스로 사직서를 냈다. 물론 명예퇴직금도 받지 못했다. 퇴직 이후 평생 몸을 바친 직장에서 버림받았다는 배신감에 뒷목이 땅기고 하루 종일 머리가 멍했다. 요즘도 소화제를 끼고 산다. 악몽도 많이 꾼다. 스트레스가 겹쳐 고혈압 판정까지 받아 약도 먹고 있다. 하지만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장남인 그는 주저앉을 여유도 없었다. 보험설계사로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지만 한 달에 150만 원을 벌기도 벅차다. 월급이 증권사를 다닐 때의 4분의 1도 되지 않지만 아이들 학자금을 대려면 어쩔 수 없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몰아치는 지금도 그는 보험상품을 팔기 위해 거리를 걷고 또 걷는다.“사장이 빗자루질 하면 해고 신호” 경기 구리시의 한 중소유통업체서 일하는 이모 씨(52)는 하루하루 해고의 불안 속에서 일한다. 한때 가구점을 운영하며 잘나가는 ‘사장님’으로 불렸던 이 씨는 사업이 기울면서 10년 전부터 이곳에서 일을 해왔다. 당시 중고등학생이었던 두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선 일자리를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전체 직원 수가 10명인 이 씨의 회사는 2017년부터 정년연장법이 적용된다. 그러나 고참급인 이 씨는 늘 정리해고의 부담에 시달린다고 했다. 회사 규모가 작다 보니 사업실적에 따라 한두 명은 쉽게 해고하고 또 새로 채용하는 탓이다. “근속 연수가 길다 보니 월급을 많이 받는 내가 늘 정리해고 우선순위에 오르는 거죠.” 사장의 ‘빗자루질’ 하나 예삿일로 보이지 않는다. 직원을 자를 일이 있으면 사장이 작업장에서 빗자루질을 시작하기 때문. 이때는 모든 직원이 하던 일을 멈추고 같이 청소를 해야 한다. 해고의 신호라는 것을 모두가 알고 긴장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다. 해고 압박을 견뎌내는 방법은 일평생을 그래왔듯 그저 열심히 일하며 버티는 것뿐이다. 비교적 나이가 젊은 직원들은 손쉽게 일을 그만두기도 하지만 두 아들과 아내를 책임져야 하는 이 씨에게는 그런 생각조차 사치다. 눈칫밥 먹는 생활이 쉽지만은 않지만 이 씨는 “그저 5년만 더 회사에 다니는 것이 바람”이라고 했다. 두 아들이 장가갈 때 각각 작은 전셋집 마련할 목돈이라도 쥐여 보내기 위해서다.‘철밥통 교직원’도 이제는 옛말 고용 안정성이 높아 ‘철밥통’에 비유되는 교직원 사회에서도 베이비부머들은 코너에 몰려 있다. 서울의 한 사립대 교직원으로 28년째 근무 중인 김모 씨(53)는 “정년 연장 시행이 다가오면서 학교 측이 다양한 수단으로 퇴직을 종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학교를 떠난 교직원 8명은 모두 김 씨와 같은 베이비부머였다. ‘팀장’이라는 직급을 주고 소속 팀원을 주지 않는 식으로 퇴출됐다. 김 씨는 “젊은 직원들이 윗사람에게 대놓고 나가라고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했다. 청년 일자리만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어떨 때는 나이 많은 사람은 나가라는 압박처럼 느껴졌다. 전문가들은 베이비붐 세대를 ‘샌드위치 세대’라고 표현한다. 이병훈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베이비부머는 여전히 부모를 부양하면서 자녀까지 책임져야 하는 세대”라며 “나이가 들어도 쉬지 못하고, 모은 돈이 없어 생활이 어려우니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 사회문제화될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베이비붐 세대들은 오늘도 어쩔 수 없이 달리고 있다. 이제 ‘산업화의 주역’은 아닐지라도, 한 가정의 주역으로 버텨내기 위해서…. ▼ 재취업해도 절반이 임시직… 다듬고 나누고 보듬어야 ▼1985년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 입사해 경기도의 한 연수원에서 신입 연수를 마친 정모 씨(56)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공식 출근은 오전 8시까지였지만 모든 사원이 더 일찍 나와 일했고, 밤 늦게까지 일할 때가 많았다. ‘회사가 잘되는 것이 곧 내가 잘되는 것’이라는 생각에 회사일이 늘 1순위였다. 하지만 28년 후인 2013년 말 정 씨도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나왔다.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자기 퇴직한 정 씨는 1년여간 구직 활동을 했지만 아직도 새 직장을 찾지 못했다. 그는 여전히 일거리를 찾아 서울 곳곳을 헤매고 있다. 1980년대에 이미 노동시장 구조 개혁을 끝낸 네덜란드 등 선진국들은 베이비붐 세대들의 퇴직 러시를 예상하고 △일자리 나누기 △사회안전망 확충 등을 통해 충분한 대비를 갖췄다. 그러나 한국의 베이비붐 세대들은 노후 대비는커녕 일자리를 구하는 것조차 힘들다. 전문가들은 임금체계 개편을 통해 60세 정년을 연착륙시키는 한편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장년 일자리의 질도 획기적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장년층 재취업자 10명 절반은 임시·일용직 11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베이비부머가 포함된 장년(50∼64세) 고용률은 69.9%(지난해 상반기 기준)에 이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인 55∼64세 고용률(64.3%)도 한국은 34개 회원국 가운데 8위를 차지할 정도로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일자리의 질로 따져보면 장년층의 ‘고용 위기’는 심각한 상황이다. 평균 퇴직연령은 53세, 정년까지 일한 비율은 7.6%로 10명 중 1명꼴도 되지 않는다. 반면에 권고사직, 명예퇴직 등에 따른 조기 퇴직 비율은 16.9%에 이를 정도로 높다. 특히 고용부 추산 결과 2021년까지 연평균 20만 명 정도의 베이비부머가 직장을 잃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베이비부머는 퇴직 후 어렵게 재취업을 한다고 해도 질 낮은 일자리로 갈 개연성이 높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직장에서 퇴직한 뒤 다시 일자리를 얻은 장년층 199만8000명 가운데 임시·일용직으로 재취업한 비율은 45.6%였다. 퇴직자 4명 중 1명(26.7%)은 자영업자로 나섰다. 재취업자의 월평균 임금도 184만 원으로 20년 이상 장기 근속한 근로자의 평균임금(593만 원)의 3분의 1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중소기업 사무직으로 20년 넘게 근무하다가 지난해 3월 퇴직한 김모 씨(54)는 마땅한 직업을 찾지 못하고 지난해 여름부터 택시 운전을 시작했다. 매주 6일씩 하루 12시간 이상 운전을 하지만 한 달 순소득은 150만 원 정도다. 김 씨는 “중장년 일자리 박람회도 다니고 상담도 받아봤지만 다른 일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며 “월급도 월급이지만 택시 운전사를 ‘하인’ 취급하는 손님을 태울 때가 가장 힘들다”고 토로했다. 정부는 지난해 9월 장년고용대책을 통해 △임금피크제 정부 지원 확대(1인당 연간 1080만 원) △장년층 근로시간 단축 허용 △공공일자리 확충 등을 내놨다. 그러나 장년층 일자리의 질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대기업 생산직종은 이미 임금피크제 도입이나 정년 연장에 합의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무직이나 중소업체에 근무하는 베이비부머들은 별다른 대책 없이 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이미 기업들이 정년에 가까운 근로자들 구조조정에 대거 나서고 있어 이들이 갑자기 쏟아져 나오면 사회 문제가 될 가능성도 있다. 이수영 고용부 고령사회인력심의관은 “장년층 일자리의 질을 높이려면 이들을 사회적 비용의 대상으로 보는 시선을 버려야 한다”며 “장년층도 사회적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일자리 나누기를 통해 시간제 일자리 등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임금피크제 도입과 임금체계 개편이 해답 전문가들은 정년 연장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근로자들의 고용 안정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임금피크제 도입과 임금체계 개편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아무 준비 없이 정년만 늘어난다면 고령자 고용 부담은 물론이고 청년 일자리까지 줄어들 수 있어서다. 특히 경영계는 현재 노사 자율에 맡겨져 있는 임금피크제를 법제화하는 작업 역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임금피크제 도입을 노사 자율에 맡기면 임금 삭감을 우려한 노조의 강한 반발로 합의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동욱 한국경영자총협회 기획홍보본부장은 “임금 감액률에 대한 노사 합의가 쉽지 않으므로 정부가 객관적으로 조사해 생산성과 임금에 대한 표준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더라도 기업의 부담이 크게 줄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연세대 이지만 교수(경영학)가 60세 정년 연장 시대의 기업 부담 증가율을 시뮬레이션한 결과 정년 연장이 시행되면 기업 인건비가 현재보다 평균 25% 증가했고, 호봉제에 따른 자동인상분까지 반영될 경우 37.5%나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더라도 17.5%를 추가로 부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피크제 도입에 따른 인건비 감소 효과가 7.5%포인트에 불과한 것. 결국 임금피크제는 물론이고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를 직무성과급 중심으로 동시에 개편해야 정년 연장에 대비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장기화된 저성장 국면까지 감안하면 기업 입장에서는 인건비 증가율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임금체계 개편은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60세 정년 안착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정부, 기업, 개인이 철저히 준비해야 국가공무원으로 20년 이상 근무하다가 2000년대 중반 명예퇴직한 윤모 씨(60)는 공무원연금을 일시불로 받아 주식 투자와 자영업을 했다가 수억 원을 날렸고, 빚까지 졌다. 윤 씨는 “연금을 일시불로 받아 투자를 하는 건 정말 위험하다. 지금까지도 후회하고 있다”며 “매달 나눠서 조금씩 받으며 생활하는 게 합리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정년 연장은 불가피하다. 장년, 노년층도 지속적으로 생산 활동에 참여해야 노동력 부족 현상을 해결할 수 있다. 특히 60세 정년 시대가 안착하려면 정부는 물론이고 개인과 기업도 각자 분야에서 일찌감치 대비책을 마련하고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개인은 정부와 기업에만 의존하지 말고 은퇴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일단 퇴직 시점을 가정했을 때의 재무 상태를 미리 파악하고, 생소한 분야에 대한 투자는 자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병을 치료할 때 진단을 먼저 한 뒤 처방을 받는 것처럼 가계의 수입과 지출을 자세하게 파악해놔야 구체적인 은퇴 계획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퇴직금 같은 목돈이 생겼을 때 주식, 위험 상품에 투자를 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벌이는 것은 특히 경계해야 한다. 류재광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많은 은퇴자가 자녀 학자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 고위험 고수익 투자를 하다가 실패한다”며 “목돈을 가지고 뭘 한다는 생각보다는 지속적인 노후자금으로 활용한다는 인식을 갖는 게 좋다”고 말했다. 정부 역시 노동시장 구조 개선 논의에서 더 강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네덜란드 노동시장 구조 개혁의 단초가 된 1982년 바세나르 협약(임금 동결, 노동시간 단축, 시간제 고용 확대를 통한 일자리 나누기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노사정 대타협)도 뤼돌퓌스 뤼버르스 총리의 강한 리더십과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경영계가 정년 연장을 앞둔 장년층들을 무조건 해고해버리는 관행 또한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무작정 해고를 하기보다는 그들의 경험과 숙련도를 폭넓게 활용할 방안을 찾는 게 먼저라는 것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기업들도 장년층이 지속적으로 성과를 내며 일을 할 수 있는 인사관리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며 “특히 장년층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을 대폭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유성열 ryu@donga.com·백연상·강홍구 기자}
경기 의정부 아파트 화재 사고 수습을 총괄하는 의정부시 재난종합상황실 전화 시스템이 국민안전처 장관 방문으로 한때 먹통이 됐다. ‘의전’ 때문에 ‘안전’이 뒷전으로 밀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3일 오후 3시 50분경 본보 취재팀은 의정부시 종합상황실에 전화를 걸었다. 사고 관련 문의를 위해 전화를 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통화 상대방은 급한 일이 있는 듯 수화기를 들었다가 바로 내려놨다. 이런 상황은 오후 4시 10분경까지 20여 분 동안 총 13차례나 반복됐다. 9번은 수화기를 들었다가 바로 끊었고, 4번은 통화음이 연결되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안내 문구가 나왔다. 20여 분간의 상황실 전화 ‘먹통’은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이 참석한 대책회의 때문이었다. 박 장관은 사고 발생 나흘째인 이날 의정부시 화재 현장, 이재민 대피소 등을 둘러본 뒤 오후 3시 25분경 종합상황실을 찾았다. 이곳에서 약 45분 동안 사고 수습 과정을 보고받고 대책을 논의했다. 회의에는 안병용 의정부시장, 김희겸 경기도 행정2부지사 등도 참석했다. 전화 연결은 박 장관이 종합상황실을 빠져나간 뒤인 4시 15분경 재개됐다. 상황실 담당자에게 전화 연결이 안 된 이유를 묻자 “장관이 참석한 회의가 열려 전화를 다른 부서로 돌려서 처리했다”고 답했다. 14번의 통화 시도 중 딱 한 차례 다른 부서로 전화가 연결됐지만 해당 공무원은 사고 관련 질문에 “소관 업무가 아니라 모른다. 회의가 끝난 뒤 종합상황실에 문의하라”고 답했다. 조원철 연세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명예교수는 “상급자 보고만큼이나 현장과 24시간 연결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종합상황실의 중요한 역할”이라며 “보고 때문에 현장과 연락이 끊겼다는 건 끔찍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의정부시 관계자는 14일 “일부러 전화를 받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해해 달라”고 해명했다.의정부=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10일 발생한 경기 의정부시 아파트 화재 때 홀로 네 살 아들을 키우던 20대 여성이 중화상을 입어 사경을 헤매고 있다. 엄마 품에 안겨 탈출한 아들은 무사했지만 갈 곳이 없어 보호기관에 머물고 있다. 13일 의정부시 등에 따르면 처음 불이 난 대봉그린아파트 4층에 살던 나모 씨(23·여)는 불이 난 뒤 대피하는 과정에서 온몸에 화상을 입었다. 함께 탈출한 아들은 다행히 가벼운 부상만 입었다. 그러나 나 씨는 사고 나흘째인 13일 현재까지 서울의 한 화상전문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고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졸지에 모자가 생이별을 했지만 어린 아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보육원에서 자란 나 씨는 가끔 떨어져 사는 아버지를 만나는 것 말고 다른 가족과 왕래가 없던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나 씨의 아들은 의정부의 한 아동보호기관에 맡겨졌다. 나 씨 모자의 사연은 그의 한 친구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알리면서 전해졌다. 해당 게시물에는 “아이를 위해 꼭 일어나세요” “기적이 일어나길” 등 나 씨의 쾌유를 비는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한편 화재 원인을 수사 중인 의정부경찰서는 “최초 발화 지점인 4륜 오토바이 운전자 김모 씨(53)를 추가로 조사할 방침”이라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정 결과를 종합해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의정부=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국민안전처가 지난해 11월 출범 이후 겪은 첫 대형 재난인 경기 의정부 아파트 화재에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한 정황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안전처를 ‘재난 대응의 컨트롤타워’로 평가했지만 첫 ‘실전’인 이번 사고에서는 지난해 4월 세월호 침몰 때와 마찬가지로 대응 기관별 혼선이 여전했다. 국민안전처는 화재 발생 직후인 10일 오전 10시 40분경 중앙긴급구조통제단을 꾸렸다. 화재 진압 및 정확한 사고 조사를 위해서였다. 하지만 국민안전처의 역할은 거기까지였다. 통제단은 화재 이틀이 지난 12일까지 경찰, 의정부시 등 재난 대응 유관기관과 대책회의조차 열지 않았다. 세월호 사고 당시 기관마다 피해자 수가 엇갈려 여론의 질타를 받은 ‘엉터리 집계’는 이번 사고에서도 바뀌지 않았다. 11일 오전 11시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가 배포한 화재 발생 보고서를 보면 처음 불이 난 대봉그린아파트는 총 95가구, 불이 번진 드림타운아파트와 해뜨는마을은 각각 95가구와 74가구로 돼 있다. 하지만 의정부시 자료에 따르면 각각 92가구, 93가구, 70가구다. 북부소방재난본부는 “(자료를) 의정부시에서 받았다”고 말했다가 “소방서는 진화만 담당하는 곳”이라며 답변을 피했다. 본보 취재 결과 해당 보고는 현장 소방관들이 자체적으로 파악한 숫자로 작성됐다. 재난 대응에 나선 기관끼리 사고 수습의 기본인 피해 규모도 공유하지 않은 것이다. 사실을 정확하게 알리기보다는 책임질 일이 생기지나 않을까 몸을 사리는 모습도 여전했다. ‘소방차 출동 시 불법 주차 때문에 초기 화재 진압에 어려움을 겪지 않았나’라는 질문에 의정부소방서 관계자는 “현장에 도착한 지 1분 만인 9시 34분에 진화작업을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취재팀이 당시 현장에 있던 시민을 통해 확인한 결과 도로에 불법 주차된 차량들을 견인하느라 10여 분간 진화작업이 지연됐다.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이 사고 이틀이 지나도록 의정부 화재 현장을 찾지 않은 것도 재난 대응 부처의 수장으로서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화재로 사상자 130명에 300명 가까운 이재민이 발생했다. 국민안전처는 “(박 장관이) 사고 당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내) 상황실에 나와 전체 상황을 총괄했다”고 밝혔다. 김근영 강남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국민안전처 출범 이후에도 위기대응 능력이 나아지지 않았다는 게 드러났다”며 “재난 총괄 부처가 출범했지만 꾸준한 소통과 훈련을 반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의정부=강홍구 windup@donga.com·김재형 기자}

대한민국 안전 수준의 맨얼굴을 고스란히 드러낸 화재였다. 10일 경기 의정부시에서 발생한 화재는 지난해 발생한 수많은 재난의 ‘복사판’이었다. 제도의 허점이 고스란히 노출됐고 시민들의 안전의식 수준도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와 사회가 수없이 ‘안전 강화’를 외쳤지만 달라진 건 없었다.① 없어도 되는 스프링클러 인근 오피스텔, 주차타워, 단독주택 등 건물 6개 동을 삼킨 대형 화재는 10일 오전 9시 15분경 대봉그린아파트 1층 주차장에 있던 4륜 오토바이 안장에서 시작됐다. 문제는 초기 진화에 효과적인 스프링클러가 발화 지점인 대봉그린아파트에 단 한 대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봉그린아파트와 1.7m 간격으로 붙어 있는 드림타운아파트도 마찬가지였다. 현행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11층 이상인 특정소방대상물에는 모든 층에 스프링클러를 설치해야 한다. 두 건물은 모두 10층이라 법적으로는 설치 의무가 없다. 92가구가 모여 사는 공간이란 점을 법규정이 무시했다는 비판이 나온다.② 방화벽 없는 건물 사이 좁은 건물 간격은 불길을 키운 원인이다. 이번에 불이 붙은 주요 건물 간격은 2m가 채 되지 않았다. 불길을 피해 옥상으로 대피한 거주민들이 쉽게 옆 건물로 옮겨갈 수 있을 정도였다. 대봉그린아파트와 드림타운아파트의 간격은 1.7m, 드림타운아파트와 해뜨는마을아파트 주차센터의 간격은 1.8m였다. 사고 발생 지역은 상업 지역이라 건물 간격이 최소 0.5m 이상만 되면 건축허가를 받을 수 있다. 윤용균 세명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안전을 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건물 자체의 미관이나 편의성만 고려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건물 간격은 좁은데 방화벽이나 방염처리 의무는 없어 화재에 취약한 드라이비트 시공을 한 것도 악재였다. 건물 외벽에 스티로폼 단열재를 붙이다 보니 불길이 쉽게 위층으로, 옆 건물로 번졌다. 주거 공간과 분리되는 지하주차장을 만들지 않아도 되는 것도 화재를 키운 원인으로 꼽힌다. 지상 1층 주차장에서 난 불이 아파트 입구를 막아 버려 대피와 화재 진압을 어렵게 만들었다. 자동차엔 연료가 있는 데다 페인트 성분이 칠해져 있어 유독가스가 많이 발생하고 불을 끄기도 어렵다.③ 화재 경보에도 태연 부족한 안전의식 문제도 되풀이됐다. 화재 발생 당시 건물 내에서는 화재경보기가 울렸지만 이를 무시한 주민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대봉그린아파트 주민 강명숙 씨(43·여)는 “화재경보기가 10∼15분 울렸는데 상당수가 대피하지 않았다”며 “최근 몇 차례 경보기가 오작동한 적이 있어 주민 대부분이 별일 아닌 걸로 오판했다. 그 때문에 피해가 커진 것 같다”고 말했다. 같은 건물에 사는 A 씨는 “집 밖에서 ‘불이야’ ‘살려 달라’는 소리가 들렸지만 장난인 줄로만 알고 넘기려다 간신히 빠져나왔다”고 말했다.④ 소방차 가로막는 불법주차 이번에도 불법주차가 소방차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취재팀이 당시 화재 현장에 있었던 주민들에게 확인한 결과 진입로 입구에는 승용차 여러 대가 불법주차 중이었다. 이 때문에 견인차가 차를 빼고 주민들이 일일이 전화를 걸어 이동시킨 후에야 소방차가 화재현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주민 김모 씨(59)는 “1초가 아까운데 차들을 옮기느라 적어도 10분은 허비했을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소방차 진로를 가로막거나 소방도로에 불법주차하면 2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실제 화재 현장에서 별 효과가 없었다.⑤ 건물 내 하나뿐인 대피 계단 화재가 발생한 아파트의 계단이 하나다 보니 화재 진압 및 주민들의 대피가 쉽지 않았다. 오히려 계단을 통해 유독가스가 건물 위쪽으로 급속하게 이동하는 결과만 불러왔다. 화재 당시 4층 집에서 자고 있던 송태환 씨(23)는 “연기가 자욱해 앞을 볼 수 없었고 계단 손잡이가 뜨거워 쉽게 나아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송 씨는 소방관의 도움으로 몸에 밧줄을 묶은 뒤 가스 배관을 붙잡고 밖으로 탈출했다. 내부 대피로가 막힌 상태로 화재가 발생했을 때 건물 밖으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비상 사다리, 완강기, 방독면, 비상 플래시 등을 추가 설치할 필요가 있다.의정부=강홍구 windup@donga.com·김재형 / 이건혁 기자}
소형 주택이다 보니 20, 30대 젊은층의 피해가 컸다. 소방당국은 이번 화재로 90억 원의 재산피해가 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의정부시가 피해 주민에게 긴급 생계비 명목으로 지원할 금액은 가구당 63만여 원에서 최대 154만 원(6명 기준)에 불과하다. 또 의정부시는 경기도를 통해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정부에 건의할 방침이라고 11일 밝혔다. 당장 수백 명이 거리에 내몰렸는데도 행정 절차를 밟아야 지원 폭이 커지는 행정편의주의 역시 고쳐지지 않았다. 화재 원인 수사를 담당하는 경기 의정부경찰서는 폐쇄회로(CC)TV 분석을 통해 최초 발화 지점을 확인한 뒤 정확한 화재 원인을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처음 불이 붙은 4륜 오토바이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내 감식을 의뢰했다. 내부 전기장치의 누전이나 실화, 방화 등 모든 가능성을 수사하고 있다. 경찰은 10일 불이 난 오토바이를 빌려 탄 김모 씨(53)와 대봉그린아파트 건물주 권모 씨(63), 관리인 윤모 씨(48·여)를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한 데 이어 11일 김 씨가 탄 오토바이의 소유주 정모 씨(61)를 불러 조사했다. CCTV 화면상 오토바이 앞에서 1분여 머물렀던 것에 대해 김 씨는 경찰 조사에서 “겨울철이라 열쇠가 잘 빠지지 않아 빼려고 그랬던 것”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순간에 보금자리를 잃은 이재민 중 70여 가구는 원인 규명, 임시 거처, 보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의정부=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소화기 한 개면 충분히 끌 수 있었던 경미한 화재가 130명의 사상자를 내는 참사로 이어졌다. 짓는 데에만 신경 쓴 도시형 생활주택의 허술한 소방 안전 관리 체계와 좁은 골목길 불법 주차가 불러온 인재(人災)다. 10일 오전 9시 15분 경기 의정부시 평화로 대봉그린아파트 1층 주차장에서 발생한 화재가 바로 옆 건물로 번지기까지는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사고가 난 도시형 생활주택은 동 사이의 거리가 최소 1.5m에 불과했다. 일반 아파트의 최소 동간 거리(6m)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좁은 건물 간격은 화염이 올라가는 ‘굴뚝’ 역할을 하면서 피해를 키웠다. 정부는 2009년 5월 서민 주거 해결 목적으로 도시형 생활주택을 도입하면서 안전 규제를 대거 풀었다. 동 사이의 거리 축소는 물론이고 건물 안전을 점검하는 관리사무소를 설치하지 않아도 됐다. 심지어 공사 감리 없이 건축 허가를 받을 수 있게 했다. 이렇게 ‘화마(火魔)’에 취약한 도시형 생활주택은 전국에 32만8000채가 지어졌고, 그중 61%가 서울 등 수도권에 몰려 있다. 발화 지점인 대봉그린아파트는 건물 전체에 스프링클러가 1대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김석원 의정부소방서장은 “화재가 난 건물 중 두 곳이 10층 이하라 소방법상 스프링클러 설치 대상이 아니었다”라고 밝혔다. 92가구가 몰려 사는 공동주택인데도 생명을 지켜 줄 안전장치는 의무가 아니었다. 건물 내에 하나뿐인 계단도 화재를 키웠다. 한 개의 통로에서 소방관들의 진화 작업과 주민 대피가 동시에 이뤄지다 보니 진화와 대피 어느 하나도 쉽지 않았다. 오히려 계단을 통해 유독가스가 건물 위로 빠르게 퍼져 인명 피해가 커졌다. 국민 안전 의식도 세월호 참사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본보 취재 결과 일부 주민은 “화재경보기가 평소 고장 나 있는 경우가 많아 경보음이 울려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건물 앞 불법 주차 때문에 소방차는 견인차를 앞세우고 차량을 끌어낸 뒤에야 현장에 접근할 수 있었다. 11일 오후 11시 현재 안현순(68·여), 이광혁(43), 윤효정(29·여), 한경진 씨(27·여) 등 4명이 사망했고 126명이 부상했다. 전신 화상 등 중상자가 11명이어서 추가 사망자가 나올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재민은 296명이 발생했다.의정부=강홍구 windup@donga.com·김재형 / 홍수영 기자}

남편이 돌아오지 못한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지난해 7월 25일, 충남 아산경찰서에 “아파트에서 시비가 있다”는 신고가 접수된 날이었다. 아산서 배방지구대 소속 경찰관 남편은 순찰을 돌다 현장에 출동했다. 난동을 부린 취객을 상대로 음주측정을 했더니 혈중 알코올농도는 0.310%로 만취 상태였다. 취객은 갑자기 남편의 뒤에 다가가 흉기로 오른쪽 목을 찔렀다. 곧이어 남편의 동료 경찰관을 향해 달려들었다. 남편은 피를 흘리면서도 취객의 팔을 잡고 막아섰다. 이 과정에서 얼굴도 흉기에 맞았다. 고(故) 박세현 경위(순직 당시 46세)의 부인 성주희 씨(46)는 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4회 영예로운 제복상 시상식’에 참석해 남편을 떠올리며 흐느꼈다. 이날 박 경위를 포함해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온몸을 바쳐 일하다 순직한 경찰관 3명에게 ‘위민경찰관상’이 수여됐다. 순직 경찰관 가족들은 고인을 떠올리며 시상식 내내 눈물을 흘렸다. 서울 은평경찰서 교통안전계 팀장 고 박경균 경감(순직 당시 52세). 2013년 11월 팀원을 대신해 교통단속에 나섰다 오토바이에 치여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를 대신해 시상식에 참석한 딸 미희 씨(25)는 한때 ‘아버지 같은 경찰관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미희 씨는 “돌아가신 뒤에야 아버지가 힘들게 일하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렇게 위험한 일인지 생각도 못했어요. 아버지께 죄송하고, 고맙고….” 지난해 세월호 실종자 수색작업을 마치고 복귀하다가 헬기 추락사고로 숨진 강원도소방본부 특수구조단 소속 소방관 5명의 유족도 참석했다. 순직 소방관을 기리는 영상이 상영되자 고 이은교 소방교(순직 당시 31세)의 홀어머니 최경례 씨(57)는 아들을 떠올리며 통곡했다. 최 씨는 “아직도 너무 보고 싶고 미안하다. 지금까지 (아들 생각에) 두 시간마다 잠에서 깰 정도로 제대로 못 자고 있다”고 했다. 고 정성철 소방령(순직 당시 52세)의 외아들 비담 씨(25)는 아버지의 제복을 입고 시상식장에 왔다. 정 씨는 “상은 제가 아니라 아버지가 받기 때문에 제복을 입고 왔다. 아버지가 입었던 제복을 수선해서 맞춰 입었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제복 공무원 가족으로서의 긍지를 잃지 않았다. 고 신영룡 소방장(순직 당시 42세)의 부친 신부섭 씨(71)는 “아들이 국가와 민족의 부름에 따라 떳떳하게 갔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고 박인돈 소방경(순직 당시 50세)의 부인 김영희 씨(48)는 “아들(25)이 아빠를 자랑스러워하고 세상에서 가장 존경한다”고 했다. 행사 진행을 맡은 채널A 김태욱, 황수민 아나운서는 순서마다 “고맙습니다, 존경합니다”를 외쳤다. 시상식에 앞서 이날 수상 경찰관 2명에 대한 특별승진 임용식도 진행됐다. 김용서 대전지방경찰청 둔산경찰서 유성지구대 경사(46)와 김도정 부산지방경찰청 형사과 경위(48)는 각각 경위와 경감으로 특진했다. 강신명 경찰청장과 승진자 부인이 두 사람의 어깨에 새 계급장을 달아줬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여러분의 희생과 헌신은 언제나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은 “우리가 공기처럼 느끼고 있는 이 자유가, 사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하고 있는, 제복 입은 용사들 덕분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 고맙다”고 말했다. 수상자들은 상금 중 일부를 기부할 뜻을 비치기도 했다. 한승현 제주해양경비안전본부 항공단 경장(34)은 상금 전액을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김도정 경감은 상금 중 절반 정도를, 김용서 경위는 300만 원을 불우이웃을 돕는 데 쓰겠다고 전했다. 정지곤 해군작전사령부 특수전전단 제1특전대대 상사(42), 박현만 육군 제6군단 사령부 인사참모처 중령(48)도 상금을 형편이 어려운 부대원들을 위해 쓰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김재호 동아일보·채널A 사장, 김무성 대표, 문희상 위원장, 한민구 국방부 장관,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 강신명 경찰청장 등 내외빈과 수상자 가족, 동료들이 참석했다.◇ 대상수상자 없음◇ 우수상정지곤 상사(해군작전사령부 특수전전단 제1특전대대)박현만 중령(육군 제6군단 사령부 인사참모처)김도정 경감(부산지방경찰청 형사과)한승현 경장(제주해양경비안전본부 항공단)김재원 지방소방장(창원소방안전본부 마산소방서)◇ 특별상강원소방본부 특수구조단 (고 정성철 지방소방령, 고 박인돈 지방소방경, 고 안병국 지방소방위, 고 신영룡 지방소방장, 고 이은교 지방소방교)김용서 경위(대전지방경찰청 둔산경찰서 유성지구대)◇ 위민경찰관상고 박세현 경위(충남지방경찰청 아산경찰서)고 박경균 경감(서울지방경찰청 은평경찰서)고 배문수 경감(전남지방경찰청 구례경찰서)◇ 위민소방관상박석기 지방소방장(충북소방안전본부)김남길 지방소방위(전남소방본부 영광소방서)홍성용 지방소방장(인천소방안전본부 남부소방서) ▼ 박근혜 대통령 축사 전문 “제복의 헌신으로 광복 70년 발전 이뤄” ▼‘제4회 영예로운 제복상’ 시상식 개최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국가와 국민에 대한 헌신으로 소중한 상을 받으신 수상자와 유가족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특별상을 수상하신 고 정성철 소방령, 박인돈 소방경, 안병국 소방위, 신영룡 소방장, 이은교 소방교께서 보여주신 헌신에 깊은 애도와 경의를 표합니다. 또한 지금 이 시간에도 국토 수호와 국민 안전을 위해 땀 흘리고 있는 국군 장병들과 소방관, 경찰, 해양경비안전본부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인데, 나라와 국민을 위해 헌신해 오신 제복 공무원 여러분이 있었기에 국민들이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었고, 대한민국이 오늘의 발전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정부는 여러분의 노고가 헛되지 않도록, 안전하고 깨끗하고 신뢰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 갈 것입니다. 공직자 여러분의 명예를 높이고 처우를 개선하는 일에도 지속적으로 노력해 나갈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제4회 영예로운 제복상’ 시상식을 축하드립니다. 을미년 새해, 여러분 모두 건강하시고 가정과 하시는 일에 축복이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 심사위원단 “살신성인 무게 비교할수 없어 大賞 못뽑아”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영예로운 제복상’에서는 대상 수상자가 뽑히지 않았다. 물망에 오른 제복 공무원들의 사명의식이 뛰어나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심사위원들은 형식에 맞춰 수상자를 정하기보다 상의 진정한 의미를 기리자는 취지에서 대상 수상자를 정하지 않는 대신 지난해 7월 세월호 실종자 수색작업을 마치고 복귀하다 헬기가 추락해 사망한 강원소방본부 특수구조단원들을 특별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4회째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상명 전 검찰총장은 8일 시상식에서 “지난해는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각종 크고 작은 안전사고가 발생하면서 제복 공무원들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그들의 사기가 위축됐던 한 해”였다고 평가했다. 이어 그는 “그럴 때일수록 숭고한 희생정신을 가진 제복 공무원들의 사기를 북돋아 주는 것이 국민들이 안전을 느낄 수 있는 길”이라며 “영예로운 제복상이 제복 공무원들이 국민들로부터 감사와 존경을 받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 전 총장은 “현재 국방부, 경찰청, 국민안전처의 해양경비안전본부와 중앙소방본부의 추천을 받아 수상자를 뽑고 있는데 앞으로는 시민단체, 일반인 등으로 추천 통로를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심사위원회는 앞으로도 봉사활동 같은 직무 외의 활동보다 직무의 기본과 원칙을 지킨 이들을 보다 높게 평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정상명 전 검찰총장(심사위원장)이현옥 상훈유통 대표(보훈처 심사위원)정호승 시인김진국 강남밝은세상안과 원장(보훈처 심사위원)임태희 119안전재단 이사장한성동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임규진 동아일보 편집국 부국장서영아 채널A 보도본부 부본부장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남편이 돌아오지 못한 날을 생생히 기억한다. 지난해 7월 25일, 충남 아산경찰서에 “아파트에서 시비가 있다”는 신고가 접수된 날이었다. 아산서 배방지구대 소속 경찰관 남편은 순찰을 돌다 현장에 출동했다. 난동을 부린 취객을 상대로 음주측정을 했더니 혈중 알코올농도는 0.310%로 만취 상태였다. 취객은 갑자기 남편의 뒤에 다가가 흉기로 오른쪽 목을 찔렀다. 곧이어 남편의 동료 경찰관을 향해 달려들었다. 남편은 피를 흘리면서도 취객의 팔을 잡고 막아섰다. 이 과정에서 얼굴도 흉기에 맞았다. 고(故) 박세현 경위(순직 당시 46세)의 부인 성주희 씨(46)는 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4회 영예로운 제복상 시상식’에 참석해 남편을 떠올리며 흐느꼈다. 이날 고 박 경위를 포함해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온 몸을 바쳐 일하다 순직한 경찰관 3명에게 ‘위민경찰관상’이 수여됐다. 순직 경찰관 가족들은 고인을 떠올리며 시상식 내내 눈물을 흘렸다. 서울 은평경찰서 교통안전계 팀장 고 박경균 경감(순직 당시 52세). 2013년 11월 팀원을 대신해 교통단속에 나섰다 오토바이에 치여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를 대신해 시상식에 참석한 딸 미희 씨(25)는 한때 ‘아버지 같은 경찰관이 되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미희 씨는 “돌아가신 뒤에야 아버지가 힘들게 일하셨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렇게 위험한 일인지 생각도 못했어요. 아버지께 죄송하고, 고맙고….” 지난해 세월호 실종자 수색작업을 마치고 복귀하다가 헬기 추락사고로 숨진 강원도소방본부 특수구조단 소속 소방관 5명의 유족도 참석했다. 순직 소방관을 기리는 영상이 상영되자 고 이은교 소방교(순직 당시 31세)의 홀어머니 최경례 씨(57)는 아들을 떠올리며 통곡했다. 최 씨는 “아직도 너무 보고 싶고 미안하다. 지금까지 (아들 생각에) 두 시간마다 잠에서 깰 정도로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다”고 했다. 고 정성철 소방령(순직 당시 52세)의 외아들 비담 씨(25)는 아버지의 제복을 입고 시상식장에 왔다. 정 씨는 “상은 제가 아니라 아버지가 받기 때문에 제복을 입고 왔다. 아버지가 입었던 제복을 수선해서 맞춰 입었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제복 공무원 가족으로서의 긍지를 잃지 않았다. 고 신영룡 소방장(순직 당시 42세)의 부친 신부섭 씨(71)는 “아들이 국가와 민족의 부름에 따라 떳떳하게 갔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고 박인돈 소방경(순직 당시 50세)의 부인 김영희 씨(48·여)는 “아들(25)이 아빠를 자랑스러워하고 세상에서 가장 존경한다”고 했다. 행사 진행을 맡은 채널A 김태욱, 황수민 아나운서는 매 순서마다 “고맙습니다, 존경합니다”를 외쳤다. 시상식에 앞서 이날 수상 경찰관 2명에 대한 특별승진 임용식도 진행됐다. 김용서 대전지방경찰청 둔산경찰서 유성지구대 경사(46)와 김도정 부산지방경찰청 형사과 경위(48)는 각각 경위와 경감으로 특진했다. 강신명 경찰청장과 승진자 부인이 두 사람의 어깨에 새 계급장을 달아줬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여러분의 희생과 헌신은 언제나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은 “우리가 공기처럼 느끼고 있는 이 자유가, 사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하고 있는, 제복입은 용사들 덕분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 고맙다”고 말했다. 수상자들은 상금 중 일부를 기부할 뜻을 비치기도 했다. 한승현 제주해양경비안전본부 항공단 경장(34)은 상금 전액을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김도정 경위는 상금 중 절반 정도를, 김용서 경사는 300만 원을 불우이웃을 돕는 데 쓰겠다고 전했다. 정지곤 해군작전사령부 특수전전단 제1특전대대 상사(42), 박현만 육군 제6군단 사령부 인사참모처 중령(48)도 상금을 형편이 어려운 부대원들을 위해 쓰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김재호 동아일보·채널A 사장,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장, 한민구 국방부 장관,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 박승춘 국가보훈처장님, 강신명 경찰청장 등이 참석했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이샘물 기자 ev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