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한국어는 길고, 중국어는 짧아요. ‘안녕하세요’도 중국어로는 ‘니 하오’죠. 그럼 더빙번역일 경우 입 모양이 안 맞아요. 그러니 ‘니 하오’ 대신 글자 수에 맞게 ‘칭 톈 하오’(‘날씨가 좋다’는 뜻의 인사말)라고 번역을 해야 하죠.” ‘명성황후’ ‘대장금’ ‘장희빈’ ‘황진이’ ‘풀하우스’ ‘상두야 학교가자’ ‘커피프린스 1호점’…. 이 모든 드라마를 중국어로 번역해 중화권에 소개한 사람은 단 한 명, 바로 대만 출신의 둥원쥔(董文君·50) 씨다. 10여 년간 80편이 넘는 드라마를 번역했다. 둥 씨는 22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논문 ‘한국드라마의 중국어 번역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는다. “번역은 문화의 매개자”라는 그는 “한국 문화와 역사를 완전히 이해해야 좋은 번역이 나온다는 생각에 2006년부터 한국에 와 공부를 했다”고 말했다. 둥 씨는 한국 고전소설을 전공했다. ‘커피프린스 1호점’을 번역할 때는 고전소설 속에도 남장 여자가 자주 등장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가문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옛 여인들을 그린 고전소설도 읽었다. 그는 “이런 강인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사극으로 만들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한국 드라마, 고전소설을 통틀어 한국 여성들이 강인하게 그려지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한국 드라마의 강점은 흡인력 있는 대사예요. 제대로 번역을 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드라마라도 중화권 시청자들의 마음을 끌기 힘들죠.” 둥 씨는 한국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다닌 뒤 대만정치대로 진학했다. 대학을 나온 뒤 한국 기업의 대만지사에서 근무하다 1990년대 말부터 드라마 번역을 시작했다. 그는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2006년에 유학을 와서 공부를 하기 전까지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잘 몰랐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번역에 실수를 한 적도 있다. “‘대장금’(2004년) 중에 연생이가 ‘우리 마마님은 소리도 하셔’라고 말하는 대사가 있어요. 그 ‘소리’가 판소리라는 것을 몰라 다른 말로 대체했던 부끄러운 기억도 있어요.” 의학드라마 ‘뉴하트’를 번역할 때는 의학 용어가 모두 영어로 나와 고생했다. 한국식으로 발음하는 영어 단어의 정확한 표기를 찾고 다시 중국어 음역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둥 씨는 “70분짜리 드라마 번역에 7시간 정도 걸리는데 외래어가 많으면 하루 한 편 끝내기가 벅찰 때도 많다”고 말했다. ‘방심’ ‘심각’처럼 똑같은 한자어인데 중국어와 한국어의 뜻이 다른 경우도 주의해야 한다. 그는 인터뷰 중간에 “한국 드라마가 해외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번역의 질도 관리해야 한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방송국들이 판권을 판 뒤에는 현지에서 어떻게 번역하고 방영하는지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둥 씨는 이달 말 학위 수여식을 마친 뒤 대만으로 돌아가 번역 일을 계속 할 계획이다. 그는 “한국의 좋은 드라마나 영화는 물론이고 대만 대학생들이 한국 문화와 역사를 배울 때 유용한 책도 번역하고 싶다”고 말했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아이를 가지는 대신 발레단을 만들었다. 애지중지 키워온 자식이 고등학교 입학할 나이가 됐다. 부모는 “풍요롭게 키웠다면 오히려 이런 기분을 몰랐을 수도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 키우다 보니 더 애정이 가고 뿌듯하다”고 했다. 19일로 창단 15주년을 맞는 서울발레시어터(SBT)의 김인희 단장과 상임안무가 제임스 전 씨(한국체육대 교수) 부부의 말이다. 이들을 16일 오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만났다.》 15년이 지났지만 이들 부부는 발레단에 정성을 쏟고 있다. 전 씨는 이날 국립발레단에서 ‘코펠리아’ 공연에 관한 회의를 마치고 오는 길이었다. 전 씨가 2007년 처음 선보인 가족발레 ‘코펠리아’는 국립발레단의 해설이 있는 발레 공연으로 4월 무대에 오른다. 국립발레단은 이 작품에 로열티를 지불한다. 국립발레단이 국내 안무가의 전막 발레에 로열티를 지불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 단장은 “올해는 후원 모임인 ‘아이 러브 SBT’를 좀 더 확대해 ‘SBT 서포터스’를 꾸려볼 생각으로 이리저리 뛰고 있다”고 말했다. 특정 재단의 후원을 받지 않는 민간단체로서의 자유로움과 긴장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안정적인 환경을 마련하기 위한 방책이다. 많을 때는 한 해 80회에 이르렀던 공연 횟수가 지난해 금융위기로 약 40회에 그쳤다. 하지만 국립발레단 10분의 1 수준의 예산(한 해 10억∼12억 원)으로 이뤄낸 ‘성과’이기도 하다. 7월의 15주년 기념공연인 모던발레 갈라와 8월의 ‘2010 모던 프로젝트’는 서울발레시어터의 개성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공연이다. 서울발레시어터는 고전발레 위주였단 창단 당시부터 다양한 모던발레 작품을 선보여 왔다. 전 씨는 “머리 크고 몸 안 예뻐도 춤만 잘추면 된다. 개성과 창의성이 중요한 게 모던 발레”라며 “발레학교도 없는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고전발레로 외국과 경쟁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998년 초연하며 화제를 모았던 록 발레 ‘현존’이나 해외로 수출된 ‘Line of Life’ ‘Inner Moves’ ‘Variations for 12’ 등은 이 같은 전 씨의 생각과 목표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특히 ‘2010 모던 프로젝트’는 안성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전 씨가 함께 무대에 올리는 공연이다. 외부 안무가와 서울발레시어터를 연결해주는 작업이기도 한 것. 전 씨는 “요리학원 나온다고 다 요리사가 아니듯 좋은 안무가가 되기 위해서는 프로 발레단과 작업해보는 경험이 많아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안무가 지원이 일회성에 그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이제 5년 뒤를 준비하고 있다. 서울발레시어터가 20주년, 바로 성인이 되는 해에 발레단을 떠날 계획이다. “그 뒤에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열 생각”이라는 답이 이어졌다. 그런 만큼 걱정은 더 많아졌다. 떠나기 전에 후배들에게 안정된 환경을 마련해줘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다. 김 단장은 “직장으로서의 무용단체가 적다 보니 요즘 무용 전공자가 자꾸 줄어들고 있다”며 “서울발레시어터가 성공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했다. 전 씨는 인터뷰가 끝날 무렵 “15주년을 맞아 ‘깜짝 이벤트’를 한다”고 귀띔했다. 10주년 때의 ‘작은 기다림’ 공연처럼 김 단장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구상하고 있다는 것. “그럼 살을 10kg은 빼야 한다”는 김 단장에게 전 씨는 “티켓 팔려면 김 단장이 무대에 올라야지”라고 응수했다. 늘 자식을 걱정하면서도 그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 평범한 부모의 모습 그대로였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이번 번역사업에는 옛사람들의 중요한 문집이 모두 포함됐죠. 실록과 보완관계에 있는 여러 문집이 번역되면 역사를 공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날 겁니다.” 신봉승 추계예술대 석좌교수(77·사진)는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 ‘찬란한 여명’, 소설 ‘한명회’ ‘왕건’, 역사서 ‘조선 정치의 꽃 정쟁’ ‘조선도 몰랐던 조선’ 등 역사를 소재로 활발한 창작활동을 해온 작가다. 고전을 활용해 아이디어와 콘텐츠를 얻는 데는 ‘달인’이다. 신 교수에게 고전을 읽고 활용하는 방법을 들어봤다.○ 국사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갖춰라 신 교수는 “기본적인 역사 지식이 없으면 단어가 걸리고 눈에 잘 안 들어온다”며 “조선이 어떤 나라였고 당시 사회는 어땠는지 기본적인 역사인식은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고전에 도전하기 전 관련 역사를 미리 공부하는 성의를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최근 많이 출판되고 있는 한두 권짜리 요약된 책으로도 충분하다”고 조언했다.○ 쉬운 책으로 시작해라 신 교수는 조선왕조실록을 두고 “국역본을 읽어도 가장 재미없고 가장 어려운 책”이라고 말했다. 대신 ‘연려실기술’ ‘대동야승’ 등은 내용도 재미있고 쉽게 읽힌다. 신 교수 역시 초기에 역사드라마를 집필할 때는 ‘연려실기술’을 주로 참고했다. 신 교수는 “대신 ‘연려실기술’ 같은 야사집에는 부정확한 내용이 많다는 점은 꼭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키워드 검색’은 위험하다 “데이터베이스에서 ‘코끼리’를 치면 관련 기록 목록이 나오죠. 사람들은 보통 목록에 나온 내용만 읽고 관둡니다. 하지만 그건 앞뒤 맥락을 모른 채 그냥 넘어가는 겁니다.” 신 교수는 키워드 검색은 단순 사실을 확인할 때는 활용하기 좋지만 역사를 제대로 알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몇 년도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외우는 건 역사 공부라고 하기 힘들다”며 “사람들이 역사를 그저 ‘나름대로 안다’고 생각하지 말고 직접 읽어보고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수필집 읽듯이 읽어라 박제가의 ‘북학의’나 최익현의 ‘면암집’ 등 당대 문집은 지금으로 치면 수필집에 해당한다. 신 교수는 “이런 문집 속에는 사람이 변변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국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등이 담겨 있다”며 “수필집을 읽는다는 생각으로 편하게 읽고 교훈을 얻으면 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처음 드라마 집필을 시작하며 조선왕조실록을 읽을 때 밑줄 그은 부분과 40여 년이 지나 요즘 실록을 읽을 때 중요하다고 눈여겨보는 부분이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당대의 여러 고전을 읽으며 역사를 보는 시각이 좀 더 넓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처음 조선왕조실록을 읽을 때는 완역이 안 돼 한학자를 찾아다니며 읽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제는 당대의 문집까지 번역이 되니 역사를 통해 삶의 지혜를 얻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기를 바랍니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SBS가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 중계를 당초보다 약 22시간 늘려 모두 218시간 편성하기로 했다고 16일 밝혔다. SBS는 “대회 초반 한국 선수들의 선전이 이어짐에 따라 전체 편성시간을 당초 197시간에서 218시간으로 늘린다”고 밝혔다. 한편 KBS와 MBC는 밴쿠버 올림픽 관련 뉴스를 단신으로 내보내다 이날부터 SBS가 제공하는 영상을 사용해 보도했다. KBS와 MBC는 이날 메인뉴스에서 모태범 선수가 금메달을 딴 소식을 SBS 영상과 함께 톱뉴스로 보도했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대학로 히트작 7년만에 다시 무대에현실풍자는 관객 눈높이에 못맞춘듯공연장에 들어서면 배우들이 우측통행을 요구하며 관객을 자리로 안내한다. ‘내복을 착용하면 저탄소 녹색성장 사회를 앞당길 수 있습니다’를 외치며 배우들이 국민체조를 하기도 한다. 조명이 꺼지자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상쾌하게 울린다. 막이 오르면, 그곳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마음껏 배설하고 가는 ‘변소’다. 1996년 초연과 재공연, 2003년 재공연 모두 객석점유율 100%를 넘기며 대학로 히트작 반열에 올랐던 극단 차이무의 ‘비언소(蜚言所)’가 ‘B언소’로 돌아왔다. 뜻도 줄거리도 없는 각 장면이 언뜻 유언비어(流言蜚語) 같지만 그 속에 뼈가 있다. 욕설과 속어 등 ‘B’급 언어가 등장하지만 현실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힘이 있다. 변소를 지나치는 인간군상을 그리며 사회의 치부를 드러내는 극의 얼개는 그대로다. 대신 세태 변화에 맞춰 전체 27장면 중 14장면을 개작하며 각 에피소드를 새로 가다듬었다. 계속되는 암전이 혼란스럽지만 처음과 끝, 그리고 극 중간중간 등장하는 비언소여왕(오유진)과 걱정남자(박원상)가 극의 메시지를 분명히 한다. 비언소여왕은 가래침과 쓰레기 범벅인 화장실을 청소하며 ‘드럽다 드러워 드러운 놈들아/드러운 놈들아 버리지 좀 말아라’라고 노래를 부른다. 대통령, 성직자, 노숙자, 예술가, 세상 모든 사람이 화장실을 거치니 ‘모두가 드러운 세상’인 셈이다. 걱정남자는 세상 모든 것을 아는 ‘아는남자’(이희준)에게 의문을 제기하다 ‘저런 사람 때문에 세상이 혼란스러운 겁니다’라는 말에 변소로 조용히 사라진다. 그의 ‘나는 좌로 가야 하나요? 우로 가야 하나요?’라는 질문 역시 ‘집에나 가라’는 핀잔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요즘 인터넷 게시판에서 ‘더 센’ 풍자와 비판이 등장한다는 점이 이 연극의 걸림돌이다. 배설의 쾌감을 이 작품이 아닌 다른 매체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래서인지 비밀경찰이 등장해 관객을 수색하는 초연 때의 마지막 장면은 스님이 천수경을 외는 다소 밋밋한 장면으로 바뀌었다. 결국 ‘끝장’을 보지 못한 듯한 찝찝함이 아쉬움을 남긴다. 2만5000원. 5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트원 씨어터 차이무 극장. 02-747-1010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집중력의 탄생/매기 잭슨 지음·왕수민 옮김/500쪽·2만5000원·다산초당“언젠가는 우리가 두 손을 꼭 잡을 수 있는 날이 올 겁니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통신으로 영혼의 두 손만 맞잡고 있지만요. 우리 지금 두 손을 잡은 거 맞죠?” 1880년에 나온 소설 ‘사랑은 전선을 타고’는 두 젊은 전화교환원이 사랑에 빠져 약혼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다뤘다. 이들이 나누는 대화로 알 수 있듯 인터넷 채팅으로 사랑에 빠지는 요즘 연애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렇게 먼 거리의 사람들이 얼굴도 보지 않은 채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건 동시에 두 장소에 존재할 수 있는 통신 기술, 즉 ‘동시성의 기술’이 발달한 덕분. 그러나 저자는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이 같은 기술의 발달이 오히려 인간의 집중력을 저하시키고 비인간성을 부추겨 사회적 쇠퇴를 낳는다고 지적한다. 특히 디지털 인터넷 관련 기술의 다양한 발달이 집중력 저하의 주범이라고 본다. 인터넷의 가상현실은 사람들이 현실 속에서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거나 감정을 조절하는 것을 지연시킨다. 저자는 인터넷 추모에서 이 같은 현상을 읽어낸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 세계에서 죽음이나 슬픔의 유통기한은 굉장히 짧아졌다. 대신 사람들은 죽은 이의 e메일로 편지를 띄우거나, 개인 홈페이지에 글을 남기며 죽은 이를 추모한다. 분노나 슬픔 등의 감정을 실제로 살아가며 겪어내기보다는 웹이라는 가상현실 속에 표출한 뒤 잊어버리는 쪽을 택한 것이다. 기술로 인한 집중력 분산은 인간관계를 단편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가상현실 속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이 존재한다. 필요나 흥미에 따라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질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인 중 속마음을 터놓을 절친한 친구가 하나도 없다고 하는 이가 4분의 1에 이른다. 1985년에 비해 2배 늘어난 수치다.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 수백 명의 친구가 있지만 한 사람과의 관계에 집중하는 능력은 저하된 것이다. 집중력 분산은 지적 능력이나 업무 효율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2006년 미국의 학자 글로리아 마크는 2006년경 첨단 기술 회사 두 곳의 근로자 1000명을 대상으로 1년간 조사한 결과 프로젝트에 실제로 연속해서 할애하는 시간은 11분에 불과했다. 프로젝트에 집중한다고 해도 불필요한 e메일 보내기 등 3분마다 한 번씩은 엉뚱한 일을 한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른바 ‘멀티태스킹’ 풍조의 부작용이다. 저자는 또 멀티태스킹은 수많은 정보를 단편적으로 훑을 뿐 실제로 집중력을 발휘해 지식을 쌓는 일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본다. 언제든지 손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환경 역시 깊이 읽고 사고하는 능력을 저하시킨다. 그러나 저자는 집중력을 스스로 향상시킬 수 있다는 점을 역설한다. 명상이나 간단한 훈련만으로도 자제력과 의지력 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책 말미에서 “지금 우리 손에는 집중력을 알고, 만들고, 한껏 활용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며 “그러지 못하면 우리는 어느덧 쉽게 산만해지고 주변을 쉽게 외면해 버리고 마는 무감각한 시대에 살 수도 있다”고 말한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한옥에 유리문을 덧댄 건물, 안방과 사랑방이 한 건물 안에 대청으로 연결된 가정집, 2층짜리 한옥 상가…. 모두 1876년 강화도조약 이후 서양식, 일본식 주거 형태가 유입되면서 나타난 변형된 주택 양식들이다. 박용환 한양대 건축학과 교수가 2월 정년퇴임을 앞두고 한국 근대 주거 형태의 변천사를 각종 사진과 도면, 현장조사를 통해 집약한 ‘한국근대주거론’(기문당)을 출간했다. 19세기 말 부산 인천 등 개항장과 조계지(租界地·개항장 내의 외국인 치외법권 지역)의 건축부터 1960년대 공영주택까지 각 주거 형태가 사회 변화와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통사적으로 정리했다. 개항장과 조계지는 한국에서 서양식 주거 형태가 처음 등장한 곳이었다. 개항기의 가장 큰 변화는 2층 한옥 상가가 등장했다는 점이다. 목조 골격에 벽돌로 벽을 쌓고 한식 기와를 얹었다. 일본식 주택의 경우 서양식 주택이 한국 기후에 더 적합하다고 인식해 평면구성과 외관에서 서양식을 따르는 경우가 많았다. 전통주택은 응접실 또는 서재만을 서양식으로 꾸미는 등 제한적인 변화만 나타났다. 1920년대부터는 위생과 생활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전통가옥 개량이 본격적으로 시도됐다. 당시엔 △안채와 사랑채가 다른 건물로 나뉘어 있는 구조를 한 건물 안으로 집약 △화장실과 부엌의 효율적이고 청결한 활용 △온돌식 난방의 단점 개선 등이 목표였다. 1937년 4월에 실시된 조선풍 주택설계도안 현상모집에서 1등을 수상한 오영섭의 도면은 안방과 건넌방이 마주 보는 전통 구조를 지키되 안방과 사랑방, 현관 등을 복도로 연결하고 있다. 박 교수는 책 서문에서 “통사적 맥락에서 본 주거 연구는 매우 빈약했고 무엇보다도 근대 주거사 부분은 마치 사라진 역사처럼 취급되어 왔다”며 “우리들의 주거가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가 보는 것은 그 모습을 이해하는 가장 현명한 일”이라고 말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학생 회원만 110만 명. 입소문을 탄 유명 인기 강사만 99명. 하루 평균 접속자 수 10만 명. 온라인강의업체 1위 부럽지 않은 ‘강남인터넷수능방송(강남인강)’의 화려한 성적표다. 가입비 2만∼3만 원이면 유명 강사의 강의를 들을 수 있어 특히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인기다. 명문대 의예과 합격생까지 거침없이 배출하는 강남인강의 ‘대박 비결’을 살펴봤다. ■ “밥이 하늘” 총리가 보낸 ‘세종시 편지’정운찬 국무총리가 설을 맞아 충남 공주시와 연기군 주민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밥이 하늘’이라는 세종대왕의 가르침과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는 그의 감성 편지가 아직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는 여론이 적지 않은 고향의 민심을 얼마나 되돌릴 수 있을까. ■ 압바스 팔레스타인 수반 첫 방한팔레스타인 최고 지도자로서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한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수반을 10일 만났다. 그는 역경을 딛고 기적을 이룬 한국과 한국 국민이 팔레스타인의 롤모델이라고 했다. 1년 넘게 답보상태에 있는 이스라엘과의 중동평화협상에 대해서도 구체적 대안을 제시했는데…. ■ 최대 위기 맞은 오바마식 초당적 협력보건의료개혁, 일자리 창출 등 산적한 현안 앞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초당적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워싱턴 의회는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9일 초당적 협력을 위해 백악관에 모인 양당 지도부 사이에는 어떤 말들이 오갔을까. ■ 펑키 같은데 판소리? ‘난감하네’펑키 리듬에 판소리를 싣고, 살랑살랑 봄바람 같은 국악기 선율에 보사노바 리듬을 입힌다. 작곡부터 연주, 사운드 믹싱까지 팀 멤버 10명이 다해낸다. 에스닉 팝 그룹 ‘프로젝트 락’이다. 간판곡 ‘난감하네’는 케이블 음악채널에서 뮤직비디오로 방영돼 눈길을 끌었다. ■ 과거사 반성 않는 日, 천황제 때문?1985년 패전 40주년 당시, 서독 대통령은 전쟁 책임에 대해 사죄했지만 일본 총리는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국가 권위 회복과 정치대국, 군사대국으로의 변신을 선언했다. 일본과 독일 양국의 과거사 인식이 이토록 차이 나는 이유는 뭘까. 이를 분석한 논문이 나왔다. ■ 다시 불붙은 통신시장 보조금 경쟁통신사 최고경영자(CEO)들은 최근 앞 다퉈 보조금 경쟁을 줄이고 아낀 금액을 ‘충성 고객’들에게 돌려주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뒤에선 보조금 경쟁이 여전하다. 급기야 “경쟁사가 지나친 보조금을 쓴다”며 이를 ‘고자질’하는 통신사가 나왔다. 통신사들이 출혈 경쟁을 멈출 방법은 없는 걸까.}

“공연을 보고 나오는데 내 앞날이 환히 비치는 것 같았지. 이제부터 이쪽(공연 무대)에서 일해야겠다고 결심했어. 그러고 나서 단 한 번도 흔들림이 없었어.” 1966년 실험극장의 ‘화니’로 시작해 지금도 무대의상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최보경 씨(73)는 처음 연극을 봤던 순간을 이렇게 회상한다. 1965년 서울 명동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순교자’였다. 18일 오후 7시, 최 씨는 45년 전 그 자리 서울 명동예술극장에 ‘최보경 무대의상 45년 전’을 올린다. 국수호무용단의 ‘명성황후’, 안은미 무용단의 ‘심포카 바리-저승편’과 함께 명동예술극장 재개관 1주년 기념공연 ‘명인열전’의 일환이다. 최 씨가 무대의상을 제작하는 것은 물론이고 작품(‘들소’ ‘돈키호테’ ‘카르멘’ 등)과 출연진(정동환 송승환 씨 등)을 직접 캐스팅하고 무대 세트까지 만들었다. 말 그대로 ‘45년간 꿈꿔온 공연’인 셈이다. 연극 5편, 오페라 5편의 일부분을 공연하는 갈라 형식이다. 9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의 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최 씨는 스태프 회의를 마치고 오는 길이었다. “처음 ‘화니’의 의상 디자인을 부탁받았을 때는 ‘내가 여기서 청소만 할 수 있어도 정말 행복하겠다’고 생각했다”는 최 씨는 그 뒤 공연 200여 편의 의상을 제작했다. 물자가 부족해 속치마 옷감으로 드레스를 만들던 시절에도 수입원단을 구해 더 좋은 의상을 제작하려 애썼다고 한다. 석 달 동안 350여 벌을 만들기도 했다(2005년 글로리아 오페라단 ‘투란도트’ 공연). 밤을 새우거나 작업실에서 새우잠을 자는 일은 다반사였다. 그런데도 “힘들었던 적은 없다”고 했다. 각 공연의 모든 연습을 지켜보며 작품을 분석한 덕분에 참여했던 공연의 대사를 줄줄 외울 정도다. 지금도 의상을 맡으면 최소 열 번 이상 연습을 참관한다. 이번 공연에서 최 씨는 첫 번째 작품으로 이문열 원작의 연극 ‘들소’를 택했다. ‘권력에 지지 않는 예술의 영원성을 상징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무대의상 디자이너로 활동하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1967년 연극 ‘돈키호테’를 맡았을 때로 기억한다. 대사가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에 의상을 제작하면서도 즐거웠단다. “극 중에 나오는 ‘불가능한 꿈’이란 노래가사는 ‘기사의 사명과 특권/이룰 수 없는 꿈 꾸네/견딜 수 없는 슬픔 참네…’ 그랬어. 너무 아름답지?” 오현경 이순재 씨 등 지금은 원로가 된 배우들의 젊은 시절도 기억한다. 오현경 씨는 손수건 하나까지 꼼꼼히 챙길 정도로 공연을 철저히 준비했다. 이순재 씨는 단 한마디로도 공연의 핵심을 파악하고 전달할 줄 아는 배우였다고 회상했다. 최 씨는 좋은 무대의상을 “극중 인물의 영혼을 드러내는 의상”으로 정의했다. “나이 든 사람은 옷깃도 내리고 주머니도 약간 내려 달지. 인생의 여유를 표현하는 거야. 같은 유니폼도 그렇게 조금씩 다르게 만들어야 해.” 그는 “요즘 무대의상들은 다 웬만큼은 하는데 치밀함이 부족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바늘이 마음보다 빨리 가는 것이 싫어서’ 재봉틀 사용법을 익히지 않은 최 씨는 요즘도 직접 손바느질로 장식을 달고 스티치를 넣는다. “인생을 돌아보면 ‘무대의상을 만들며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말하고 싶어. 4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좋은 작품을 보면 욕심이 생기지.” 최 씨는 올해 12월 실험극장의 연극 ‘피가로의 결혼’에서 또 한번 의상을 맡는다. S석 4만 원, R석 5만 원. 1644-2003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1985년, 패전 40주년 행사가 열린 서독과 일본에서는 상반된 풍경이 펼쳐졌다.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당시 서독 대통령은 “과거에 눈을 감는 자는 현재에도 맹목이 된다”며 전쟁 책임에 대해 깊이 사죄했다. 그러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당시 일본 총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고 국가 권위 회복과 정치대국, 군사대국으로의 변신을 추구하는 등 ‘전후(戰後) 정치 종식’을 선언했다. 이 같은 일본과 독일의 과거사 인식 차이는 왜 발생한 것일까. 당시 일본 정치체제와 미국의 전후처리 정책 등을 통해 분석한 논문이 나왔다. ‘세종정책연구’ 2010년 제6권 1호에 실린 강명세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의 ‘일본은 왜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가?’. 강 위원은 우선 “일본 과거사 반성 문제의 핵심은 히로히토(裕仁) 일왕에게 부여된 면죄부”라고 말했다. 유엔 산하 런던 전범위원회는 1945년 항복선언 당시 일왕을 전범 명단에 포함시켰다. 그러나 미국은 이에 대한 결정을 유보하다 결국 효율적인 점령정책 수행을 위해 도쿄전범재판 피고인 명단에 일왕의 이름을 넣지 않았다. 피고인 명단에 오른 약 2만 명을 제외한 나머지 일본인도 이때 면죄부를 얻었다. 강 위원은 “천황제의 유지는 일본 국가적 전통의 보전을 의미한다”며 “1990년대 부상한 (일본의) 민족주의는 천황제를 일본의 전통으로 부활시켜 사회통합을 실현할 것을 강조해왔다”고 지적했다. 전쟁의 책임은 일본 정부가 아니라 군부에 돌아갔다. 강 위원은 “1949년 이후 냉전이 본격화하면서 미국은 더글라스 맥아더 사령관에게 (일본) 개혁의 방향을 보수파 제거에서 좌파 제거로 이동하도록 압력을 넣었다”고 설명했다. 대신 일본의 관료와 정치 엘리트는 그대로 남아 현재까지 그 세력을 이어오고 있다. 나치 정부 전체가 전쟁 책임을 지고 정부 자체가 교체됐던 독일과 다른 점이다. 미국은 독일에서 18세 이상 성인에게 전쟁 중 행적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할 정도로 철저한 탈나치화 정책을 펼쳤지만 일본에서 이 같은 조치가 이뤄진 적은 없다. 미국이 전후 일본 내에서 독점적 지위를 유지한 것도 독일과의 차이점이다. 독일은 영국, 소련, 미국 등 여러 국가의 이해관계가 작용하면서 분단이라는 대가를 치렀다. 일본의 경우 소련을 의식한 미국이 상대적으로 관대한 정책을 펼치며 일본 정치체제의 개혁보다는 경제 지원에 초점을 맞췄다. 독일이 연방하원 선거를 1949년에야 실시할 수 있었던 것에 비해 일본은 하원인 중의원 선거가 1946년에 실시된 게 단적인 증거다. 강 위원은 이외에도 반나치 세력이나 나치 체제에 비협조적이었던 종교계 등이 전후 정치세력화하며 정부의 보수화를 막은 독일과 달리 일본은 이 같은 기능을 하는 집단이 없었다는 점도 양국의 과거사 인식에 차이를 낳은 배경으로 지적했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이번 공연에서는 춤이 주인공이 되는 셈이죠.” 7일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에 오른 뮤지컬 ‘올댓재즈’의 주인공 안무가 유태민(문종원)의 대사다. 자신의 안무세계를 집대성한 작품 ‘올댓재즈’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극 속의 ‘올댓재즈’와 현실의 뮤지컬 ‘올댓재즈’는 그렇게 겹친다. 줄거리는 단순하다. 케이블 방송국의 PD인 서유라(전수미)는 미국 뉴욕의 세계적인 안무가 유태민을 인터뷰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유라와 태민은 옛 연인 사이. 뉴욕으로 떠난 태민이 5년 전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으며 둘은 헤어진 상태다. ‘올댓재즈’는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아가씨와 건달들’ 등 100편이 넘는 뮤지컬의 안무를 맡아온 서병구 씨의 연출 데뷔작이다. 서 씨는 이 작품에서 자신의 안무세계를 마음껏 보여준다. 태민의 대사대로 ‘춤이 주인공이 된 공연’인 셈. 눈이 즐겁다. “고등학생 시절 밥 포시의 자서전적 뮤지컬 영화 ‘올댓재즈’를 보고 전율을 느꼈다”는 그의 말대로 밥 포시를 연상시키는 재즈댄스가 중심이 되고 여기에 경쾌함과 유머를 더했다. 서 씨는 1987년부터 MBC 무용단 상임 안무자로 활동하며 소방차, 김완선, 바다 등 여러 가수의 안무를 하기도 했다. 유라가 “말도 안 돼!”를 외치는 장면에서 원더걸스의 ‘아이러니’ 안무가 갑작스레 튀어나오는 장면은 그의 다양한 안무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태민과 유라의 듀엣에서는 탱고가 등장하기도 한다. 조명과 소품을 효율적으로 사용해 소극장 무대를 화려한 뮤지컬 무대로 탈바꿈시킨 데서는 서 씨의 연출 역량이 돋보인다. 무대 위 네 개의 거울은 연습실에서 공항 검색대로, 다시 호텔 바로 바뀐다. 때로는 등장인물의 내면을 비추고, 등장인물이 거울 뒤를 지나며 현재와 과거를 오가기도 한다. 그러나 상투적인 줄거리는 경쾌한 춤과 연출의 발목을 잡는다. 헤어진 연인이 다시 만나 오해를 풀고 사랑을 이룬다는 줄거리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수없이 반복돼 온 것. 태민이 교통사고를 당해 춤을 출 수 없게 됐다는 반전도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을 자아낸다. S석 3만5000원, R석 4만5000원. 4월 25일까지. 02-3141-3025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지금은 ‘스케이트’라면 얼음 지치는 것으로 알지만 그만해도 ‘호랑이 담배 먹든 녯날’ 이십 오년 전의 일이다. 이 때에는 ‘스케이트’가 무엇인지 얼음지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든 을사년이다. 그 당시 미국으로 돌아가는 선교사 ‘찔레트’ 씨의 가구를 판매할 때에 그저 준대도 무엇하는 것인지를 몰라서 아모도 사는 사람이 업는 물건이었으니….” ―동아일보 1929년 1월 1일자》이 땅에 서양식 스케이트가 처음 도입된 것은 1894년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한국에 머물렀던 영국인 이사벨라 버드 비숍 여사는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에서 고종 황제와 명성황후가 경복궁 향원정으로 사람들을 초대해 ‘스케이트 파티’를 열었다고 기록했다. 한국인이 언제 처음으로 서양식 스케이트를 탔는지에 대한 기록은 동아일보 1929년 신년호 특집 ‘조선 체육계의 과거 10년 회고’에 등장한다. 1904년 인천에 살던 현동순 씨가 미국으로 돌아가는 선교사 질레트 씨 내외의 스케이트를 15전에 구입했다는 것. 이 기사는 ‘몃 번 지처 보앗스나 나아가지를 안해 고심한 끄테 필경(畢竟)에는 성공을 하얏다… 이것이 조선에 ‘스케이트’를 신어대고 얼음 지첫다는 것의 시초이엇다’고 전하고 있다. 이후 스케이팅은 대표적인 겨울 스포츠가 됐다. 동아일보는 1923년 1월 12일자에 ‘평양 대동강에서 동아일보 평양지국이 빙상운동대회를 연다’고 알리기도 했다. “이즈음 평양 대동강에는 매일 수백의 청년들이 ‘스켓트’로써 어름 우의 운동을 하는대 본사 평양지국에서는 이 긔회를 리용하야 청년의 장쾌한 긔상을 장려하기 위하야 오는 이십일 오전 아홉시 대동강 상에서 빙상운동대회를 주최하기로 하얏는대….” 1927년은 스피드스케이팅 위주였던 조선에 피겨스케이팅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해다. 이일, 연학년 등 5, 6명이 모여 ‘서울 피겨스케이팅 구락부’를 조직했다. 서울스케잇팅클럽에서도 스피드부 외에 피겨부를 신설하는 등 피겨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당시 피겨부 부원 중에 여자는 없었으나 이들은 페어, 아이스댄싱 등도 시도했다. 스케이트가 보급되면서 한국 빙상 선수들의 실력도 급성장했다. 1936년 독일에서 열린 제4회 겨울올림픽에 김정연, 이성덕, 장우식 선수가 태극기 대신 일장기를 단 채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겨울올림픽에 출전했다. 동아일보는 ‘은반의 우리 자랑 분설(粉雪) 맞으며 활약!’(1936년 2월 13일) 등의 기사로 이들의 소식을 전했다. 당시 김정연 선수는 스피드스케이팅 1만 m 종목에서 18분2초의 일본 신기록을 세우며 13위에 오르기도 했다. 이후 한국은 쇼트트랙과 스피드스케이팅에서 수많은 스타 선수를 배출했다. 이에 힘입어 16∼18회 겨울올림픽에서는 3회 연속 세계 10위권 달성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최근에는 불모지였던 피겨스케이팅에도 김연아 선수가 등장해 여러 세계대회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올리며 밴쿠버 겨울올림픽 금메달 획득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일본 사상을 만나다/임태홍 지음/400쪽·2만5000원·성균관대출판부일본 밀교의 창시자 구카이(空海), 나무아미타불 여섯 글자만 외우면 극락왕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던 잇펜(一遍), 양학의 선구자로 불렸던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근대 일본철학을 낳은 니시다 기타로(西田幾多郞) 등 일본 사상가 15인을 통해 일본 사상의 변천사를 짚어본 책이다. 니시다는 단순히 서양의 철학사상이나 철학사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서양철학적 방법론을 직접 실천한 학자였다. 그의 사상 속에는 일본 문화의 내부에서 고유의 것을 찾아 세계적인 보편성을 갖추도록 하려는 모습과 동서양 사이에서 생존하고 확장하기 위해 천황제를 주창해야 했던 중간자의 모습이 겹쳐진다. 일본이 근대를 거치며 보여줬던 양면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동아시아 근대사상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일본인, 일본문화, 일본사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한국인, 한국문화, 한국사상을 알기 위해서 필요한 거울”이라고 말한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분홍구두/조양희 지음/408쪽·1만2000원·마음의숲1932년 4월, 열아홉 살 소녀 장준주는 부산항에서 일본으로 가는 연락선에 오른다. 산부인과 의사가 되겠다는 꿈을 품은 그는 일본의 한 대학에 진학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렵게 학업을 이어간다.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하며 독립운동을 펼치는 준주의 사촌오빠 장진석, 준주와 같은 대학 건축부에 다니며 사랑에 빠지는 일본인 도오루, 개코라 불리는 일본인 형사 모리, 일본 최고의 여가수가 되는 준주의 고향 친구 나행자 등 다양한 인물이 그의 삶에 얽힌다.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 당선되며 등단한 작가가 10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이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은 내 외가 어르신들의 이야기”라며 “전쟁 속에 살면서도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뜨거운 삶이 절절하게 아름다웠다던 어머니의 말씀을 이제야 깨닫고 있다”고 말했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영국인 발견/케이트 폭스 지음·권석하 옮김/604쪽·2만5000원·학고재“두 영국인이 만나면 첫 대화는 날씨로 시작한다.” 200여 년 전, 영어사전을 처음으로 만든 영국 작가 새뮤얼 존슨이 한 말이다. 영국인은 대체 왜 이렇게 날씨 이야기에 집착할까? 문화인류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이런 ‘영국인다움’의 법칙을 밝히고 그 근원과 이유를 탐구했다. 저자는 영국인의 날씨 이야기가 일종의 ‘안면 트기 대화’라고 말한다. 단순한 인사를 나눌 때나 어색한 순간에 늘 날씨 이야기를 꺼내고 상대의 맞장구를 유도한다는 것. 영국인 특유의 내성적 성향과 자기억제를 극복하기 위한 한 방편이다. 영국인의 또 다른 특징은 바로 유머다. 저자는 영국인의 대화에서 ‘진지하지 않기’ ‘낮추어 말하기’ ‘유머러스한 자기비하’ 등의 규칙을 발견한다. 남극의 추위를 ‘조금 춥다’고 표현하고, 사하라 사막을 ‘내 취향에는 조금 덥다’고 표현하는 식이다. 이 유머 속에는 냉소주의, 빈정거리는 듯한 초연함, 미사여구에 대한 반감, 거만과 오만에 대한 거부 등 영국인의 특성이 녹아 있다. 언어 속에서도 영국인다움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언어만으로도 대화하는 이의 계급이 구별된다는 것. 사소한 발음이나 표현 하나가 그 사람이 상류층인지 하류층인지를 결정한다. 저녁식사는 상류계급에게는 ‘디너(dinner)’가 아니라 ‘서퍼(supper)’다. 화장실은 ‘토일릿(toilet)’이 아니라 ‘루(loo)’ 혹은 ‘래버토리(lavatory)’다. 모음을 절반 이상 생략하며 발음한다는 것 역시 중상류층 이상의 특징이다. 저자는 이 속에서 영국이 언어 중심 문화를 가졌으며 능력 위주의 사회가 아니라는 점, 그런데도 평등한 사회인 척하는 위선을 지닌 사회라는 점을 읽어낸다. 이 같은 참여관찰을 통해 저자가 도출해낸 영국인다움의 핵심은 바로 ‘사교불편증’. 내성적이면서도 때때로 난동을 피우는 영국인의 모습이 여기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제시한 답이 “누구나 판독하고 적용할 수 있는 영국인다움에 대한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낭비와 욕망/수전 스트레서 지음·김승진 옮김/480쪽·2만1000원·이후 《잘 사용하던 물건이 쓰레기로 변하는 경우는 두 가지다. 상하거나 깨져서 못 쓰는 물건이 됐을 때, 그리고 너무 많아서 남아돌 때. 현대 사회에서는 한 가지가 더 추가됐다. 바로 ‘이건 이제 쓰기 싫어졌어’라는 이유로, 지겨워졌거나 취향이 변했기 때문에 물건을 버리는 경우다. 저자는 미국의 소비문화를 연구해온 역사학자다.이 책에서는 미국 사회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버려왔는가를 탐구함으로써 현대 사회 소비문화의 단면을 드러낸다.》‘실이나 끈 조각을 모아둘 바구니를 마련하면 쓸모가 있을 것이다. 낡은 단추도 주머니나 함을 마련해 모아두면 필요할 때 그게 어디 있나 헤매지 않고 찾기 쉽다.’ 1829년 출판된 ‘알뜰한 미국 가정주부’의 한 구절이다. 이 책은 출간 뒤 3년 새 7판까지 인쇄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이 같은 가사지침서는 남은 음식을 이용해 만드는 ‘완벽한 변신요리’나 ‘헌옷 변신시키기’에 대한 다양한 방법을 제안한다. 당시까지만 해도 절약은 일상이고 낭비는 무지의 결과였다. 하지만 대량생산된 포장 제품의 판매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버리는 일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늘 새로운 것, 깔끔한 것을 추구하는 현대적 삶의 방식이 정착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대표적인 상품이 바로 여성들의 생리대였다. ‘횃불 대신 전등, 손으로 쓴 양피지 대신 인쇄된 책, 여성들에게 고등교육을 금지하던 것 대신 권장하는 것… 습관과 전통은 바뀐다. 삶의 조건은 향상된다.’ 1920년에 미국에서 처음으로 출시된 일회용 생리대 ‘코텍스’가 1922년 선보인 광고의 문구다. 코텍스의 경쟁 상대는 집에서 만든 생리대. 이에 맞서 코텍스는 빠는 대신 버릴 수 있는 현대적 제품이라는 점을 적극 홍보했다. ‘생리대는 현대적인 태도와 습관을 상징했고, 또 현대적인 태도와 습관 덕분에 만들어질 수 있었다… 버리는 것이 나쁜 일이 아닐 뿐 아니라 삶의 질에 기여하는 일이기도 하다는 사고방식이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더라면 생리대는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미국에서는 전국적인 폐품 모으기 운동이 벌어졌다. 정부는 물자절약을 위해 헌 물건을 고쳐 쓰도록 권장했다. 그러나 이는 ‘필요한 것 외에는 모두 (폐품으로) 버리는’ 습관을 더 강화했다. 게다가 전쟁 기간에 억눌렸던 소비욕구는 전쟁이 끝나자마자 분출했다. 소비주의가 번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계획적 구식화’는 이 같은 소비주의를 요약한 단어다. 새로운 기술, 새로운 디자인이 등장하면서 아직도 멀쩡한 물건을 구닥다리로 만들어버리는 현상을 가리킨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때도 맵시 있게!’ 1994년 어느 잡지의 쓰레기봉투 광고에 등장한 문구다. 이 광고의 할머니는 분홍색에 포푸리 향이 나는 쓰레기봉투를 들고 있다. 쓰레기봉투의 일회성은 편리함과 자유를 상징한다. 예쁜 색깔의 향기로운 쓰레기봉투에 쓰레기를 넣은 뒤에는 더럽고 냄새나는 쓰레기에 대해 더는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은연중에 ‘버리는 일’이 옳은 일임을 암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낭비와 소비주의에 대한 비판이 증가했다. 이제 사람들은 환경보호라는 도덕적 가치를 위해 분리수거와 재활용이라는 새로운 ‘쓰레기 버리는 방식’을 받아들인다. 이처럼 그동안 쓰레기를 대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극적으로 변화해왔다. 저자는 여기서 현대 사회의 환경오염과 소비주의를 극복할 단초를 찾는다. ‘우리는 산업화 이전의 생활 방식, 즉 사물을 끝까지 살피는 태도로 되돌아가지는 않겠지만 그 대신 지구와 자연 자원을 끝까지 살피는 태도에 기초한 새로운 도덕, 새로운 상식, 그리고 노동 가치와 효용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가지고 아마도 소비문화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낙타와 국민연금(김상균 지음·학지사)=재정불안 등의 문제를 안고 폐지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는 한국의 국민연금제도. 하지만 국민연금 없이 노후생활을 할 수 있는 국민은 소수다. 사회복지학자인 저자가 이 역설적 현상의 원인을 짚어보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1만5000원.◇중국신화사 상, 하(위안커 지음·웅진지식하우스)=신화학자인 저자가 원시신화부터 소수민족 신화까지 중국신화의 발전 및 전승과 변천을 서술한 책. ‘산해경’은 물론 ‘시경’ ‘사기’ ‘장자’ 등 각종 문헌에서 신화에 관한 기록을 찾고 신화연구의 역사까지 담았다. 각 권 3만2000원.◇유용화의 생활정치 이야기(유용화 지음·민중출판사)=방송 진행자와 시사평론가로 활동하고 국회 정책연구위원 등을 지낸 저자가 재개발 문제, 환경 문제, 교육 문제 등 각종 현안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 1만 원.◇평민 김정호의 꿈(이기봉 지음·새문사)=고지도와 지리지 연구자인 저자가 김정호의 일생을 소설 형식으로 풀어냈다. 평민인 그가 신분의 제약을 극복하고 주변의 도움을 받아 조선의 지도를 완성하기까지를 그렸다. 1만2000원.◇예수평전(조철수 지음·김영사)=수메르어와 아시리아학 전공자인 저자가 유대교 랍비들의 어록, 유대인들의 법규, 초기 유대교 문헌 등 각종 히브리어 원전을 바탕으로 예수의 일생을 재구성했다. 3만 원.◇오페라의 두 번째 죽음(슬라보예 지젝, 믈라덴 돌라르 지음·민음사)=근대적 주체가 탄생하던 시기에 오페라 역시 탄생했다. 모차르트와 바그너의 오페라를 중심으로 근대적 공동체와 주체성의 탄생을 추적한다. 2만3000원.◇딸꾹, 끝나지 않은 이야기(이윤택 지음·도요)=‘문화게릴라’ 이윤택 씨가 황지우 이창동 원일 임진택 안숙선 전인권 등 6명의 예술가와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나눈 대담집. 1999∼2005년 발간된 계간지 ‘관점21, 게릴라’에 수록됐던 글을 모았다. 1만1000원.◇2010 이상문학상 작품집(박민규 외 지음·문학사상)=올해 대상 수상작인 박민규의 ‘아침의 문’ 이외에 편혜영의 ‘통조림 공장’, 김애란의 ‘그곳에 밤 여기의 노래’ 등 우수작들이 수록됐다. 1만2000원. ◇캔들 플라워(김선우 지음·예담)=캐나다 오지마을에서 자유분방하게 지내온 다문화 소녀 지오가 2008년 봄 한국에 들어온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가 한창일 무렵이다. 김선우 시인이 시의성 높은 소재로 두 번째 장편소설을 펴냈다. 1만2000원.}
◇독서국민의 탄생/나가미네 시게토시 지음·다지마 데쓰오, 송태욱 옮김/332쪽·1만5000원·푸른역사1898∼1900년 일본의 문학 투고 잡지 ‘분코(文庫)’에는 ‘지방 독서계’라는 제목의 독자 투고 시리즈가 실렸다. 전국 각지의 독자가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의 독서 상황을 상세하게 적어 투고한 시리즈였다. 이 시기 일본에서 ‘독서’란 이미 전국적인 현상이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때를 근대 일본의 ‘독서국민’, 즉 신문이나 잡지, 소설 등 활자미디어를 일상적으로 읽는 습관이 몸에 밴 국민이 형성되기 시작한 시기로 보고 그 과정과 원동력을 분석한다. 철도망이 확대되면서 도쿄 중심의 활자 유통망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신문이나 잡지의 연재소설이 인기를 끌면서 중앙의 활자미디어를 모여서 읽는 지방의 독서회도 활발하게 운영되기 시작했다. 같은 내용을 거의 동시에 읽는 ‘전국 독서권’이 형성된 것이다. 철도는 만화잡지, 신문 등 다양한 읽을거리를 차 내에서 소리 내지 않고 읽는 또 다른 ‘근대적 독서’풍경을 낳았다. 정부 역시 지역에 ‘국민 교화’를 목적으로 도서관을 설치하며 독서국민의 탄생을 촉진했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짝퉁미술사/토머스 호빙 지음·이정연 옮김/736쪽·2만8000원·이마고미술 감정가가 쓴 전문 위조의 수법과 역사“탐욕 존재하는 한 위조품도 사라지지 않아” “미술품 위조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으며, 인류가 지속되는 한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위조품 중 최고(最古)의 위조품은 무엇일까. 바로 19세기경 이탈리아 로마 외곽의 한 도시에서 발견된 테라코타 사발이다. 이 사발은 고대 이집트 양식을 띠었지만 페니키아어로 소유주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처음에는 이집트 미술품이 이탈리아로 수입됐다는 증거로 여겨졌지만 곧 진실이 드러났다. 사발의 조각은 엉성한 데다 해독이 불가능한 엉터리 상형문자만 잔뜩 새겨져 있었다. 당시 페니키아 미술상이나 상인이 진짜 이집트산 미술품인 양 속여 팔았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책의 저자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장을 지낸 전문 미술품 감정가. 그는 미술품 위조의 역사는 물론 직접 만난 미술품 전문 위조꾼, 자신이 속아서 샀던 위작들까지 미술품 위작의 세계를 흥미진진하게 펼쳐놓는다. ‘성공적인’ 위조품을 만들어 내기 위한 위조꾼들의 방법은 기상천외하다. 원작의 제작방식을 탐구해 재현하고, 오래된 것처럼 보이도록 교묘하게 흠집을 낸다. 가장 어려운 일은 수집가가 믿을 만한 ‘출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전 주로 활동했던 네덜란드의 판 메이헤른은 이 모두를 완벽하게 성공하는 데 상당히 근접했던 위조꾼이었다. 메이헤른은 어릴 때부터 남의 작품을 복제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였다. 그는 베르메르의 작품을 면밀히 관찰한 뒤 여러 그림을 뒤섞어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냈다. 베르메르가 썼던 방식 그대로 안료를 갈아서 사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베르메르가 작품 활동을 쉬었던 약 10년간의 공백기, 이른바 ‘잃어버린 시기’에 그려진 그림이라고 출처를 밝혔다. 그는 이렇게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메이헤른은 곧 덜미를 잡혔다. 위조품이라는 것이 들통 나서가 아니었다. 당시 베르메르의 작품으로 알려진 자신의 위작 ‘간음한 여인’을 나치에 넘겼다는 혐의를 받게 된 것이다. 그는 나치에 협조했다는 혐의를 피하기 위해 위조꾼이라는 사실을 자백했다. 그는 나치가 약탈하려던 다른 네덜란드 회화와 맞바꾸기 위해 일부러 위작을 만들었다고 변명했다. 저자는 직접 위조 전문 화가의 작업을 지켜보기도 했다. 미술사를 공부하던 대학생 시절 만난 프랭크 켈리가 그 주인공이다. 켈리는 당시 18, 19세기 초에 그려진 장식용 회화를 복원하는 일을 했다. 그와 친했던 저자는 작업실에서 ‘그리다 만’ 모네의 작품들을 발견한다. 실은 인상주의 화가의 작품을 위조해 파는 위조 전문 화가였던 것이다. 켈리는 저자에게 △위작은 항상 원작보다 예쁘고 매력적이고 에너지가 넘치고 조금 더 오래돼 보인다 △과학적 분석은 항상 상충되는 증거를 제시하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을 가장 중시해야 한다 등의 원칙을 들며 위작을 가려내는 비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로마인들은 그리스 문화에 대한 애정 때문에 각종 그리스 미술품을 위조했다. 중세 베네치아는 나라의 권위를 더하기 위해 도시의 건물을 고대 로마 건물처럼 만들었다. 위대한 미술품을 통해 권위와 부를 얻으려는 인간의 욕망이 있는 곳에는 언제나 위조품도 함께 있었다. 저자는 사람들이 수준 낮은 위조품에조차 쉽게 속는 이유를 지나친 욕심과 성급함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욕구와 긴박함과 탐욕에 흔들리지 않는 것, 무엇보다도 작품에 대한 순수한 사랑만이 미술품을 수집하는 정당한 동기로 작용해야 할 것”이라고 ‘짝퉁’을 피하는 방법을 제시한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꽃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을까?/윌리엄 C. 버거 지음·채수문 옮김/391쪽·1만6000원·바이북스인류 번성 일등공신은 꽃 전 지구상에 살고 있는 육상식물은 약 30만 종에 이른다. 이 중 꽃을 피우는 식물은 약 87%를 차지한다. 꽃을 피우는 식물은 사막이나 툰드라 지대, 호수, 열대우림 등 장소나 기후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종류가 자란다. 언뜻 연약하고 아름다워 보이기만 하는 꽃이 실은 어떤 생물 종 못지않게 강력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식물학자인 저자는 꽃의 정의와 분류, 진화과정과 기능 등은 물론 꽃이 어떻게 인류와 세상을 바꿨는지를 설명하며 꽃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꽃을 피우는 속씨식물은 그렇지 않은 식물에 비해 훨씬 더 종이 다양하고 개체 수도 많다. 이는 수정에 성공하고 난 뒤 씨앗 내부에 영양분을 비축하기 시작하는 중복수정 덕분이다. 수정이 일어나기도 전에 에너지부터 비축해두는 겉씨식물과는 달리 훨씬 효율적으로 짧은 시간 내에 꽃을 피우고 번식할 수 있다. 화려한 꽃을 피우는 데도 당연히 이유가 있다. 꽃이 화려한 경우 대부분 곤충을 비롯한 동물을 유혹해 꽃가루를 수정한다. 이 경우 지역의 종의 다양성이 현저히 높아진다. 바람으로 수정할 경우 바람이 닿는 지역 내에 비슷한 식물만이 살게 되지만 더 먼 거리를 산발적으로 이동하는 동물을 통해 수정하면 한 지역에도 다양한 식물이 자라게 된다. 인간의 팔은 어깨를 중심으로 자유자재로 돌아간다. 저자는 이것이 결국 꽃 덕분이라고 설명한다. 나무 위에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면서, 또 꽃에서 사는 곤충이 몰리면서 식량을 얻기 위해 영장류가 나무를 타는 생활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유연한 팔과 손가락 힘, 열매의 색을 판별하는 색깔인지세포, 나무와 나무 사이의 거리를 계산하기 위한 3차원 시각이 이로써 발달했다. 상록수림이 줄어들면서 초원지대로 이주하게 된 인류는 본격적으로 직립보행을 시작했다. 시야는 넓어지고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게 됐다. 나무를 타며 발달된 팔과 손의 기능과 시각은 인류의 번성에 원동력이 됐다. 숲과 초원을 풍요롭게 하고 농업을 발달시키는 데도 꽃의 역할은 컸다. 꽃을 피우는 식물은 대부분 빨리 죽고 빨리 썩는다. 순환이 빠른 만큼 토양도 비옥해진다. 각종 곡물이나 고구마, 감자 등도 꽃을 피우는 식물에 포함된다. 우리가 섭취하는 칼로리의 90% 이상을 꽃 피우는 식물이 제공한다. 책 말미에서 저자는 도시가 확대되면서 수목이 파괴되는 현상을 우려한다. 6500만 년 전의 대멸종 때도 꽃을 피우는 식물은 생존해 식생을 다양화하고 동물들의 먹이가 됐다. 하지만 인류가 지구의 지배자가 된 뒤에는 식물 역시 위기를 맞고 있다. 저자가 인류는 “생태계의 위대한 정원사”가 돼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꽃을 피우는 식물은 인간 문명의 발전에 강력한 추진력을 부여함으로써 그 이전의 어떤 다른 생태적 변화보다도 더 세상을 깊숙하게 변화시켜 왔다.…이제 우리 인간의 공격에 생태계 전체가 비틀거리고 있다.”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