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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는 이배용 총장(사진)이 11일 미국 플로리다 주 탬파에서 사우스플로리다대가 주는 ‘글로벌리더십상’을 수상했다고 18일 밝혔다. 이 상은 2006년 제정됐으며 그동안 국제협력 분야에서 리더십을 보인 인물에게 주어졌다. 이 총장은 현지에서 수상 소감을 겸한 강연을 통해 “창립 이후 이화여대가 추구한 평화 노력을 인정받은 것으로 알고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고려대 문과대교우회는 2010년 ‘자랑스러운 고대 문과대학인상’에 김진호 전 합참의장, 김우룡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박준구 ㈜우신컴텍 대표이사 등 3명을 선정했다고 18일 밝혔다. 시상식은 23일 오후 7시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엘타워에서 열린다.}

지청 고려대 경영대 명예교수(70·사진)가 17일 고려대 발전기금으로 1억 원을 쾌척했다. 지 교수는 이날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본관에서 열린 기부식에서 “40년을 근무하며 좋은 연구 환경을 만들어 준 학교에 감사한다”며 “제자들이 공부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지 교수는 고려대 경영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모두 받았으며 1969년부터 2005년까지 이 대학 교수로 근무했다. 지 교수는 1954년 아버지를 여읜 뒤 서울 덕수상고 야간 과정을 다녔다. 낮에는 고려대에서 수업 시작과 끝을 알리는 종을 치고 칠판을 정리하는 사환으로 일하는 등 ‘주경야독(晝耕夜讀)’을 한 끝에 고려대에 입학했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장하다, 우리 아들. 생일선물로 엄마한테 너무나 멋진 걸 줬어.”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금메달을 따낸 모태범(21)이 16일 오후 3시 반경 경기 포천시 소흘읍 자택에 전화를 걸어오자 집 안은 다시 한 번 ‘만세’ 환호성으로 떠나갈 듯했다. 어머니 정연화 씨(49)는 “태범이가 평소에 ‘500m 훈련을 많이 못했다’고 해서 큰 기대를 걸지 않았는데 금메달을 따서 놀랍고 기쁘다”고 말했다. 이날 모태범의 집은 ‘깜짝’ 금메달 획득 소식 이후 찾아온 20여 명의 취재진과 친척, 이웃들로 하루 종일 북적거렸다. 아버지 모영열 씨(51)는 “출전하는 스케이트 대회마다 상을 타 오던 아들이 이번엔 정말로 큰일을 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모태범은 서울 은석초등학교 때 처음 스케이트에 입문했다. 우연히 찾아간 서울어린이대공원 스케이트장에서 처음 타 본 스케이트 자세를 보고 곁에 있던 코치가 “이 아이는 꼭 운동을 시켜야 한다”고 권유하면서부터다. 그 후 서울 경희중과 잠실고, 한국체대를 거치며 10년 동안 스피드스케이팅 한 종목에 집중했다. 한국 선수들이 강한 쇼트트랙 쪽으로 바꿔볼 생각은 없었을까. 어머니 정 씨는 “연습경기 때 쇼트트랙도 몇 번 탔는데 몸싸움이 약해 바꾸지 않았다”며 “지금은 그게 오히려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며 웃었다.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중 간판인 이규혁 이강석의 그늘에 가려 있던 설움도 이번에 완전히 털었다. 아버지 모 씨는 “올림픽이 시작된 이후에도 언론에서 태범이에 관한 언급이나 관심은 거의 없었다”며 “솔직히 ‘우리 아들 한번 지켜보라’는 심정으로 경기를 봤다”고 전했다. 모 씨는 플라스틱제조공장을 운영하며 아들을 뒷바라지했다. 가족들은 앞으로 있을 1000m와 1500m 경기에 더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모태범 스스로도 가족에게 ‘컨디션이 좋다’고 말했을 뿐 아니라 그동안 가장 많이 훈련한 종목이기 때문이다. 어머니 정 씨는 “어젯밤 태범이 아버지와 내가 둘 다 ‘길몽’을 꿨다”며 “올림픽 경기가 최종적으로 모두 끝나고 나면 꿈 내용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포천=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설 연휴 직전인 9일 찾아간 경기 안산시 선부동 권지은(가명·21·여) 씨 집은 어두컴컴했다. 오후 3시,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모여 있는 권 씨 가족 중 누구도 형광등 버튼에 손을 내밀지 않았다. “애 아빠가 그렇게 가고 나서…. 이젠 누군가가 밖에서 우리 집을 본다는 것 자체가 무서워요. 어두워져도 불 끄고 있는 날들이 더 많아요.” 권 씨의 어머니 신모 씨(48·여)가 설명했다. 신 씨는 이미 1일 이후 몇 번이고 실신했다 깨어나는 일을 거듭했다. 그만큼 정신적 충격이 컸다. 권 씨의 아버지 권모 씨(50)는 지난달 31일 출근하던 길에 같은 아파트 주민인 박모 씨(45)와 지하주차장에서 마주쳤다. 박 씨는 다짜고짜 가지고 있던 공기총으로 권 씨 머리를 쐈다. 그동안 같은 아파트에서 살았지만 마주친 적도 없었다. 다만 화가 나자 공기총을 들고 ‘아무에게나’ 총을 쐈고, 그 대상이 출근하는 권 씨가 됐다. 아버지는 병원으로 바로 이송됐지만 다음 날 새벽 결국 숨졌다. 지은 씨는 “심한 충격을 받은 어머니 대신 경찰서 전화를 받는 등 외부 일은 내가 처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안산 공기총 살인사건’이었지만 관심은 그만큼 빠르게 식었다. 설날인 14일 이 가족은 사건이 일어난 후 처음으로 아버지의 유해가 안장된 충북 청주시의 한 납골당을 찾았다. 안장된 아버지 유골함 앞에 권 씨와 여동생, 남동생이 급하게 마련한 스티커 사진을 붙였다. 스티커 사진을 붙이며 일가족은 다시 한 번 오열했다. 지은 씨는 “우리 가족은 범인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어떻게 조사받고 있는지도 모른다”며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건에도 피해자 인권보다는 피의자 인권이 우선시되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며 울먹였다. 이 가족에 대한 보상도 현재까지는 명확하지 않다. 가족들은 지금까지 사건을 조사하는 안산 단원경찰서 형사들을 제외하고는 보상과 관련된 논의를 한 적이 없다. 또 위와 같은 ‘공기총 살인’의 경우 우발적인 범죄에 의한 ‘과실’로 인정될 가능성도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대검찰청 피해자지원연합회 관계자는 “안산 사건처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일어난 살인 사건도 ‘과실’로 판단될 경우 보상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며 “주먹으로 때려서 살인이 일어나면 명확히 보상받을 수 있지만 총기 사고는 보상이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2008년까지 국내에 보급된 공기총의 수량은 16만8000정에 이른다. 그리고 매년 10건의 공기총 사고가 일어나고 있다.안산=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1960년 4월 19일. 엄청난 규모의 시위대가 서울 시내에 모였다. 이들은 어떠한 정치세력에도 속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목소리를 냈다. 독재정권의 총과 몽둥이도 이들의 분노를 막지 못했다. 이날의 분노는 하루아침에 폭발하지 않았다. 그해 2월 28일 대구 경북지역의 고교생들이 대정부 시위에 나선 것이다. 이후 50여 일 동안 부산, 대전, 마산을 거쳐 4월 19일 서울에서 절정에 달했다. 동아일보는 4·19혁명 50주년을 맞아 대구에서 시작해 서울로 이어진 ‘4·19 루트’를 다시 찾아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참가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도화선 된 대구 2·28] 8개 고교 민주화 시위… 동아일보 보도로 전국에 알려 “2·28민주운동은 대구 시민정신을 드러낸 자랑스러운 역사입니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지만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뿌리입니다.” 지난달 29일 오후 4시 대구 중구 2·28중앙기념공원 입구. 최용호 2·28민주운동 기념사업회 고문(66)은 “50년 전 대구 도심에 있는 이 공원 부근의 길을 메우고 거리행진을 벌였다”고 회상했다. 당시 대구에선 경북고를 시작으로 8개 고등학교 학생들이 잇달아 가두시위를 벌였다. 경북대 사대부고 학생회 부의장이었던 그는 이 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자유당 정권은 학생들이 야당의 선거유세장에 몰리는 사태를 막기 위해 일요일 등교를 강행하는 등 무리수를 뒀습니다. 그러자 학생들이 들고 일어났죠. ‘학원을 정치도구화하지 말라’는 등의 구호를 외쳤어요.” 그는 “당시 경북대 사대부고 학생 3명이 ‘유정천리’라는 유행가 가사를 고(故) 조병옥 박사의 추모곡으로 바꿔 부른 ‘노가바(노래가사 바꿔 부르기) 사건’이 있었다”며 “2·28민주운동의 서막인 이 사건은 동아일보에 보도돼 전국에 알려졌다”고 회고했다.대구=정용균 기자 cavatina@donga.com [교량 역할 대전 3·8]2·28 대구 시위 소식 듣고 대전고 1000여명 거리시위 “시민들의 반응은 대단했어요. 박수를 쳐주고 물을 떠다 줬죠. 하지만 숨어서 했어요. 그때만 해도 성공하리란 확신이 없었습니다.” 15일 오전 대전 중구 대흥동 대전고 정문. 1960년 3월 8일 대전고 시위를 주도한 4·19혁명유공자 박제구 씨(71)는 그날의 함성이 들리는 듯 감회에 젖었다. 공공연한 부정선거에 국민 모두가 분개하던 때였다. 학도호국단 대대장이었던 박 씨는 호국단 간부들과 구체적인 시위 계획을 세웠다. “민주당 선거유세가 열리는 3월 8일을 ‘D데이’로 잡았어요. 거사 전날 저녁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 학우 10여 명이 모였습니다.” 8일이 되자 일부 교사들은 시위를 철회하라고 설득하며 학생들을 감시했다. 그러나 오후 2시쯤 술렁이던 학생들이 일제히 몰려 나왔다. “시위자는 1000명이었지만 대부분의 신문은 300명 정도로 줄여 썼습니다. 일부 사이비 신문은 ‘내가 간첩 사주를 받았다’고 보도하기도 했어요. 동아일보가 가장 정확하고 상세했죠.” 졸업 후 인쇄업을 해온 박 씨는 “정의를 위해 안위를 내던졌던 사실을 후배들이 잘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대전=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기폭제 된 마산 3·15]부정선거 규탄 시위… 김주열 군 시신 발견 뒤 2차 의거 1960년 3·15의거 당시 경남 마산상고(현 용마고) 1학년이던 고 김주열 군의 동기생인 김재철 마산시의원(66)은 지난달 27일 김 군의 시신을 수습했던 마산 중앙부두 앞바다를 찾아 50년 전을 회고했다. “시신이 마산 앞바다에 떠올랐다는 소문이 나돈 직후, 3학년 선배들을 따라 학교에서 시신이 임시로 안치된 도립마산병원까지 행진을 했습니다. 2차 의거의 기폭제였죠.” 김 의원은 김 군과 함께 공부할 기회는 없었다. 김 군이 마산 친척집에서 입학식(4월 초)을 기다리다 희생됐기 때문. 3·15의거 기념사업회 이사를 지낸 김 의원은 “무엇보다 김 군에게 명예졸업장을 안긴 것이 큰 보람”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교와 교육당국을 끈질기게 설득해 명예졸업장 수여를 성사시켰다. 1995년 4월 11일 중앙부두 앞에서 진행된 마산상고 사상 첫 명예졸업장 수여식에서 그는 유족을 대신해 졸업장을 받았다. 김 의원은 최근 3·15의거를 국가기념일로 제정하려는 움직임과 관련해 “일부에서는 3·15의거와 4·19혁명을 한 묶음으로 해석하지만 각각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며 “의거 50주년을 앞두고 하루빨리 기념일이 제정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마산=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민심 분출 서울 4·19]‘고대생 피습’ 다음날 분노 폭발… 경무대 앞 군중집회 “4·19는 특정 정치세력에 휘둘리지 않고, 비폭력 정신을 지켰다는 점에서 세계 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순수한 혁명입니다.” 김한섭 소헌한의원 원장(72·전 4·19민주혁명회 회장)은 3일 4·19의 현장인 당시 국회(현 서울시의회)와 경무대(현 청와대) 앞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21층에서 50년 전을 회고했다. 경희대 학생위원회 대의원이었던 그는 4월 초부터 서울 시내 다른 대학들과 연락하며 시위를 모의했다. 4월 2, 16일 몇 차례 예정했던 시위가 지연됐다. 그러던 중 18일 고려대 학생들의 피습사건이 터졌다. 김주열 군의 사망 등으로 쌓였던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국회와 경무대 앞으로 엄청난 군중이 모였다. 김 원장은 경무대 앞 시위에 앞장섰다가 곤봉으로 머리를 맞고, 왼쪽 머리와 등 부위에 총상을 입었다. 그는 “당시 급박했던 상황에서도 학생들은 무기를 들어선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광화문 앞을 지날 때마다 50년 전 역사의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며 “그러나 4·19 현장에 기념 상징물이 하나도 없어 항상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용석 기자 nex@donga.com ■ 4·19혁명은 자유당 정권 선거부정에 항의… 이승만 하야 이끌어4·19혁명은 장기집권을 하며 10년 넘게 부정부패를 저지른 자유당 정권을 종식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된 학생·시민들의 반정부 항쟁으로 1960년 4월 19일 절정을 이뤘다. 혁명의 시작은 대구에서 일어난 2·28민주운동이다. ‘선거의 해’였던 1960년 3월 15일 정·부통령 선거에서 자유당 정권은 장면 민주당 부통령 후보의 대구 유세 참석을 막기 위해 학생들의 일요일 등교를 지시했다. 대구 지역 고교생들은 이에 반발해 집회를 가졌는데 이것이 2·28민주운동이다. 이 시위를 시작으로 4·19까지 전국 고등학생들의 반정부 집회가 계속 이어졌다. 하지만 선거는 결국 부정선거를 통한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경남 마산에서도 개표 직후 ‘선거 무효’를 외치는 시민과 학생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이 시위에 참여한 마산상고 김주열 군은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최루탄이 얼굴에 박힌 채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당시 김 군의 사진이 도화선이 되어 2차 마산 시위가 벌어지면서 반정부 투쟁이 4월 전국으로 확산됐다. 18일에는 고려대 학생들이 서울지역 대학생 중 처음으로 행진에 나섰다. 고려대생 3000여 명은 이날 학교에 모였다가 ‘민주 역적 몰아내자’ 등 플래카드를 들고 서울 중구 태평로 국회의사당(현 서울시의회)까지 행진하며 부정선거 사과를 요구했다. 이 학생들이 돌아오다 흉기로 무장한 정치깡패들의 습격을 받자 서울시내 주요 대학은 물론 고교 학생들까지 다음 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19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경무대(현 청와대) 앞에 집결한 군중은 10만여 명에 달했다. 경찰이 발포하기 시작했지만 시위대는 세종로를 점거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오후 3시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하고서야 오후 5시 시위대를 해산시킬 수 있었다. 4·19 당일에만 104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이승만 대통령은 20일 바로 대국민담화를 발표했지만 민심은 수습되지 않았다. 전국 각지에서 소요가 계속되던 25일 서울의 대학교수들도 시위에 나섰다. 대학교수 258명은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 사퇴 압박을 견디지 못한 이승만 대통령은 26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고 28일 부정선거로 부통령에 당선됐던 이기붕 씨 일가가 자살하면서 긴박했던 4·19혁명은 일단락됐다. 이승만 대통령은 5월 29일 미국 하와이로 망명을 떠났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설 연휴를 하루 앞둔 12일 오후부터 본격적인 귀성이 시작되면서 일부 구간이 정체 현상을 빚는 등 고속도로 곳곳이 귀성 몸살을 앓았다. 국토해양부는 이날부터 연휴 다음 날인 16일까지 지난해보다 10.1% 많은 2546만 명이 이동할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도로공사는 오후 8시 현재 서울∼부산 하행은 7시간 반(톨게이트 기준), 상행은 5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서울∼대구는 상·하행 각각 5시간, 서울∼대전은 하행 4시간 20분, 상행 1시간 40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광주 하행은 6시간 40분, 상행 4시간, 서울∼강릉 하행 4시간 10분, 상행 3시간이 각각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목포는 하행 6시간 10분, 상행 4시간 10분으로 각각 예상됐다. 12일 오후 3시 기준으로 국내 전체 고속도로 구간 3402km 중 158km에서 정체 현상을 빚었지만 오후 6시에는 220km, 오후 7시에는 229km까지 정체 구간이 꾸준히 늘어났다. 구간별로는 경부고속도로 부산 방향이 서울 요금소에서 오산 나들목까지 25.11km 구간에서 지·정체가 빚어졌다. 중부고속도로도 통영 방향으로 하남 분기점에서 하남 나들목 2.44km 구간에서 차량이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도로공사는 “13일 오전까지 일부 지역에 눈이 더 내릴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일부 국도 구간에는 결빙 지역도 있어 차량이 제 속도를 내지 못한다”며 “가장 많은 귀성객이 몰릴 것으로 보이는 13일 오전에는 예상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도로공사는 귀성길은 설 전날인 13일 오전, 귀경길은 설 당일 오후가 가장 혼잡할 것으로 내다봤다. 코레일은 연휴 기간을 포함해 12∼16일 모두 215만2000여 명이 철도를 이용할 것으로 보고 열차 운행을 지난해 같은 기간 2784회에서 207회 늘려 KTX는 887회, 일반열차(새마을호, 무궁화호 등)는 2104회 각각 증편 운행할 예정이다. 한편 기상청은 강원 영동, 경북 동해안(이상 대설특보 지역), 중부 및 전북 내륙 지역에서 13일 오전까지 눈(1∼10cm) 또는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했다. 그러나 오후부터는 고기압의 영향으로 전국적으로 맑은 날씨를 보일 것으로 내다봤다. 12일 오후 8시 현재 적설량은 서울 6.0cm, 문산 6.6cm, 인천 8.8cm, 대관령 84.0cm, 강릉 64.0cm, 속초 43.2cm, 동해 51.5cm 등이다. 기상청은 “강원도 산지와 강원도 영동, 경북 동북 산간에는 13일까지도 많은 눈이 이어지면서 비닐하우스 등 시설물 피해가 예상된다”며 “다른 지역의 경우 많은 양은 아니지만 눈이 얼어 곳곳에 빙판길이 예상되는 만큼 안전 운전에 각별히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비행기를 타면 몇 시간 걸리지도 않는데, 저는 여기 오기까지 6년이 걸렸네요.” 8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남북 청소년들이 이야기하는 북한인권과 통일’ 강연회에는 ‘청소년’으로 보기에 나이가 많은 청년 한 명이 앉아 있었다.이날 강연자로 나선 백강운 씨(가명·26)의 목소리는 낮고 담담했다. 백 씨는 2003년 탈북한 지 6년이 된 지난해 한국에 들어왔다. 그가 한국으로 오기 위해 거쳤던 나라만 중국, 베트남, 러시아, 독일 등 4개국. 백 씨는 25일 한국외국어대에 입학해 새내기가 된다.“일곱 살 때 공개처형하는 모습을 처음 봤어요. 한 사람당 총을 세 발씩 쐈는데 바로 앞에서 피를 쏟으면서 쓰러지더군요. 그 이후 하루 종일 밥을 못 먹었습니다. 스무 살 때까지 그런 공개처형을 세 번 봤습니다.” 북한에서는 청소년들도 ‘총살 공지’가 나오면 공개처형을 봐야 했다. 봄과 가을이 되면 농촌에서 농사일을 했다. 겨울엔 더 자를 나무도 없는 민둥산에 올라가 배정된 땔감을 찾아다녔다. “처음에는 그게 열악한 환경인지 몰랐죠. 그러다 열네 살 때 남한 라디오를 몰래 들었어요. 그제서야 ‘밖은 자유롭구나’란 생각이 들더군요.”스무 살 겨울, 백 씨는 꽁꽁 언 두만강을 건넜다. 군대를 탈영한 후 대책 없는 탈북이었다. 어설픈 탈북자는 일주일 만에 북한 보안당국에 잡혔다.백 씨는 수용소에 있던 2003년 6월 다시 탈북에 나섰다. 이번엔 거의 산에서 살다시피 하며 사람들을 피했다. 중국어를 배운 다음 다롄(大連), 상하이(上海) 등 중국 대도시로 숨었다. 그러다 탈북자들이 동남아 국가에서 한국으로 송환되는 경우가 많다는 기사를 읽었다.가족들을 놔둔 채 홀로 탈북에 성공한 백 씨는 바로 배를 타고 베트남으로 밀항했다. 2005년 여름 하노이 주재 한국대사관까지 갔지만 거기서 베트남 경찰에 붙잡혔다. ‘나는 한국인’이라고 말하며 한국대사관 관계자를 만났지만 정작 대사관 측은 “우리는 책임질 수 없다”는 말만 했다. 백 씨는 다시 중국으로 송환됐다. 그는 “대사관 안으로 데리고 가 주기만 하면 되는데, 그때는 죽고 싶을 만큼 절망스러웠다”고 말했다. 백 씨는 이후 러시아와 독일을 거쳐서야 국제난민 지위를 인정받고 한국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6년 동안 외국을 떠돈 백 씨가 느낀 남북한의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그는 이날 토론회에서 “대학 입학이 결정되면서 가입한 한 북한 관련 동아리에서 남한 학생들이 ‘북한의 최대 명절은 설’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며 “북한의 최대 명절은 김정일과 김일성 생일인데 지금 한국 학생들은 그런 부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할 만큼 남북한이 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동영상 = 탈북청소년들의 창작 연극}

고려대 언론인교우회는 ‘제16회 장한 고대언론인상’ 수상자로 송영승 경향신문 사장(55)과 김세형 매일경제신문 이사(54), 이영돈 KBS 기획제작국장(54) 등 3명을 선정했다고 10일 밝혔다. 송 사장은 지난해 경향신문 사장으로 선출된 이후 지면 쇄신과 경쟁력 강화를 위해 노력한 점을 인정받았다. 김 이사는 국내외 경제현안에 대한 정론 제시, 이 국장은 소비자 권익 보호에 기여한 점이 높게 평가됐다. 시상식은 24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다.}
이용훈 대법원장의 출근 차에 계란을 던졌던 보수단체 회원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지난달 2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한남초등학교 인근 육교 위에서 대법원장의 차에 계란을 던진 혐의(폭력행위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로 추모 씨(52)와 김모 씨(62)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9일 밝혔다. 이들은 보수단체인 어버이연합회 소속으로 국회 폭력 혐의로 기소된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가 무죄 판결을 받자 ‘사법부, 법원 정상화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출근하던 이 대법원장의 차에 계란 4개를 던졌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고려대 법대 교우회(회장 주선회 전 헌법재판소 재판관)는 2010년 ‘자랑스러운 고대 법대인상’에 송정호 전 법무부 장관과 이팔성 우리금융그룹 회장을 선정했다고 9일 밝혔다. 송 전 장관은 현재 이명박 대통령이 사재를 출연한 재단법인 청계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회장은 우리증권 사장,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이사 등을 거쳐 2008년 우리금융그룹 회장에 취임했다. 시상식은 2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열린다.}
경찰이 서울 종로구청과 중구청을 압수수색했다. 서울 성북경찰서는 불법노점상의 과태료를 착복한 의혹과 관련해 5일 종로구청 건설관리과 등을 압수수색해 과태료징수대장 등을 압수했다고 8일 밝혔다. 경찰은 단속에 적발된 불법노점상에 과태료를 부과하는 구청 건설관리과에서 과태료를 가로챘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서울 중부경찰서는 이날 정동일 중구청장의 사전 선거운동 의혹과 관련해 중구청장 집무실과 비서실을 압수수색했다. 정 구청장은 지난해 11월 10일 지역구민 2만5000여 명에게 자신의 치적을 홍보하는 내용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낸 혐의를 받고 있다.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지난해 4월 서울중앙지법 소속 판사(39)가 서른 살 많은 원고에게 “버릇없다”고 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이후 판사들의 법정 ‘막말’이 문제가 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매년 발표하는 ‘인권상담 사례집’에는 판사들의 법정 언행이 지나치게 위압적이고 모욕적이라는 일반 시민들의 불만이 많이 나와 있다. 사례집에 따르면 2007년 8월 한 지방법원에 출석한 피고인은 법원장에게 “90도로 인사 못해요”라며 서너 차례 정중한 인사를 강요받은 사실을 토로했다. 이 피고인은 “심한 인격적 모욕감을 느꼈다”며 “법원장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며 인권위에 진정을 냈다. 이혼한 남편과 자녀 양육권 재판을 받던 한 여성은 매달 25만 원을 양육비로 내라는 판결을 받자 “학원비, 의복비, 교육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이라고 항의했다. 그러자 판사는 이 여성에게 “(아이들) 학원도 보내지 말고 옷도 입히지 말고 학교도 보내지 마라”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고등법원에 출석한 피고인은 담당 판사에게 “당신 직업이 뭔데 준비 서면만 제출해” “오늘 나한테 혼 좀 나야 해” 등 협박에 가까운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한편 대법원은 법관들의 고압적인 법정 언행으로 재판 당사자들의 불만이 자주 제기되자 지난해 7월 외부 전문가들에게 판사들의 법정 발언을 모니터링 하도록 했다.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비상임위원 임기가 7일로 만료되는 법안 스님의 후임으로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검증위원을 맡았던 보광스님이 내정된 것으로 3일 알려졌다. 법안 스님은 비교적 진보적인 성향으로 분류돼 왔으나 보광 스님은 중도보수에 가까운 인사여서 앞으로 인권위의 중요 결정에 변화가 있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현재 인권위 최종 권고를 내리는 전원위원회에 참여하는 사람은 현병철 위원장과 상임위원 3명, 비상임위원 7명을 합쳐 모두 11명. 그동안 진보 대 보수 숫자가 '6대5'로 비교적 진보적인 권고를 많이 내렸지만, 비상임위원 1명의 교체로 기존의 인권위 전원위원회 구도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현 위원장은 "진보나 보수 등 개인 성향과 관계없이 인권만 생각하는 것이 인권위의 역할"이라며 "아직 보광 스님이 정식으로 임명되지도 않았는데 인권위 성향이 바뀐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말했다.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영화배우 이병헌이 출연한 뮤직비디오가 화면에 나오자 베트남 소녀들의 눈이 일제히 한곳에 집중됐다. “와, 이병헌이다.” 노래를 같이 흥얼거리는 학생도 있었다.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한 장면을 보여 주자 누가 일러 주지 않았는데도 ‘김범’ ‘이민호’ 등 한국 배우들의 이름이 강의실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한류 스타 팬모임이 아니라 서울 용산구 청파동 숙명여대에서 진행되고 있는 베트남 여학생들의 ‘한국문화체험캠프’ 첫날 모습이다. 숙명여대는 1일 국내에서 처음으로 베트남 여고생 20명을 초청해 해외학생 면접을 겸한 한국 체험캠프를 열었다. 베트남 할롱베이 영재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 20명이 참여했다. 할롱베이 영재고등학교는 한국의 특수목적고와 비슷한 고등학교로 지역의 우수 학생이 몰리는 곳이다. 안민호 숙명여대 한국문화교류원장은 2일 “한국과 베트남 사이의 문화교류를 이끌 차세대 리더를 양성하기 위해 베트남 여학생들을 초청했다”며 “앞으로 점점 확대될 아시아 시장에서 활동할 주역을 미리 뽑는다는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외국인 특별전형의 최종 선발 인원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합격과 불합격이 갈리게 되는 면접 과정이지만 학생들은 마냥 신이 났다. 드라마나 영화, 대중음악으로 친숙한 한국이라는 나라에 처음 와 봤기 때문이다. 응우옌티뚜옹비 양(18·여)은 좋아하는 한국 가수가 있느냐는 질문에 ‘빅뱅’을 외쳤다. 응우옌은 “대장금과 주몽 같은 한국 사극을 무척 좋아해 이번에 한복을 꼭 입어볼 것”이라고 말했다. 초청된 여학생들은 베트남에서 손꼽히는 인재들이다. 이들을 인솔하고 한국에 온 베트남 끄엉닌 성(省) 쭈옹꾸옥쭝 교육국장은 “성에서 가장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해 왔으며 이들이 베트남을 대표한다고 해도 손색이 없는 여성 인재들”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문화에 열광하는 철없는 여고생들 같지만 한국에서 이룰 ‘꿈’에 대해서는 무척이나 진지하다. 응우옌타오히엔 양(18·여)은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기업에 입사하는 것이 꿈이다. 그는 “드라마에서만 봤던 ‘한류’를 직접 체험해 보고 나중에는 오히려 한국에서 ‘베트남류’를 일으켜 보겠다”고 말했다. 최종 면접시험은 3일 치르지만 이들은 6일까지 한국에 머문다. 이 기간에 ‘눈썰매장 체험’ 등도 준비돼 있다. 숙명여대 측은 “이들을 선발해 결과가 좋을 경우 중국 윈난 성이나 세네갈 등 다른 해외 우수 학생 유치에도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이명박 대통령의 첫째 누나인 이귀선 씨가 29일 오전 1시 20분경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80세. 고인은 2008년 3월 뇌중풍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한 뒤 대장암 등으로 투병생활을 해왔다. 유족으로는 아들 김동석 동혁 씨와 딸 보영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월 1일 오전 6시 반.}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 문제지 유출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서울 강남의 R어학원이 이번에는 ‘SAT 전문 스타 강사’를 납치해 재계약을 강요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다.서울지방경찰청 형사과는 SAT 전문강사 손모 씨(38)를 승용차로 납치해 강제로 재계약을 맺도록 강요한 혐의로 SAT 전문 R어학원 대표 박모 씨(40) 등을 수사하고 있다고 29일 밝혔다. 손 씨는 다른 학원으로 옮기겠다는 뜻을 R어학원 측에 밝힌 뒤인 지난해 12월 21일 밤 경기 가평군의 한 개인별장으로 납치됐다. 이곳에서 박 씨를 비롯한 R어학원 관계자들과 아직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사람 등 모두 9명에게 폭행을 당했다.경찰은 사건 직후 이 같은 첩보를 입수하고 지난해 12월 말경 손 씨를 불러 조사했으며, 손 씨는 “밤새 주먹으로 수차례 폭행당한 것은 물론이고 칼로 ‘죽이겠다’는 위협까지 당했다”고 진술했다. 손 씨는 당시 학원 관계자로부터 “납치 사실을 알리면 땅에 묻어버리겠다”는 협박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아직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사람들이 조직폭력배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 씨는 R어학원에서 계속 일하겠다는 재계약 서류에 날인을 한 뒤에야 풀려났다고 경찰은 밝혔다. 납치 과정에서 큰 충격을 받은 손 씨는 병원 치료를 받아오다 최근 미국으로 출국했다.손 씨가 일하는 R어학원은 최근 잇따르고 있는 ‘SAT 문제 유출사건’의 진원지다. 손 씨와 함께 강남구 신사동 R어학원에서 일하던 김모 씨(37)가 태국에서 시험지를 빼돌린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으며, 23일에는 같은 학원 대치점 강사 장모 씨(36)도 경기 가평 시험장에서 시험문제를 빼돌리다 구속됐다. 한 SAT 강사는 “이 학원은 자유로운 재계약이 불가능해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힘든 곳으로 알려졌다”고 말했다. R어학원이 소속 강사를 납치해 폭행까지 하는 등 무리수를 써가며 재계약을 하려 한 것은 그만큼 SAT 학원계가 스타강사 한두 명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특히 손 씨는 국내 SAT 수강생들 사이에서 명강사로 손꼽혔다. 손 씨는 스타강사의 필수 조건인 ‘시험문제 확보’에도 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학부모는 “2년 전 설명회에서 손 씨가 이제 막 시험을 보고 와 따끈따끈한 문제를 다 알고 있다고 해 다 같이 박수를 쳤다”고 전했다. 서울 강남의 한 SAT 강사는 “손 강사는 SAT 작문(writing) 분야 최고의 강사인 만큼 한 달에 1억 원 이상의 수입을 올렸을 것”이라고 말했다.R어학원 대치점을 다니는 이모 양(18)은 “갑자기 손 선생님이 사라졌다는 소문에 R어학원을 그만두는 학생들도 있다”며 “이달 초부터 갑자기 학원에 나오지 않아 자기 학원을 차린다는 소문이 많았다”고 전했다. E 어학원장은 “족집게 강사라고 소문이 나면 각 학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와 결국 20∼30%의 연봉을 올린 다음 옮겨간다”며 “불구속 입건된 강사 김 씨도 우리 학원과 2012년까지 계약이 돼 있었는데 R어학원이 연봉을 30% 올린 다음 데려갔다”고 전했다.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불법 연행과 고문에 의한 허위자백으로 장기간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김우철 이철 형제간첩 사건’ 당사자들이 35년 만에, 그것도 둘 다 세상을 등진 뒤 이뤄진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광주고법 제3형사부(부장판사 장병우)는 28일 국가보안법 및 반공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돼 유죄가 확정된 김 씨 형제의 유족이 청구한 재심에서 “간첩 혐의를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며 김 씨 형제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1975년 당시 경찰수사관들이 김 씨 형제를 영장도 없이 강제연행한 뒤 16일간 불법감금 상태에서 수사했을 뿐만 아니라 고문과 폭행, 협박 등 가혹행위를 한 점이 충분히 인정된다”며 “원심은 증거능력 또는 신빙성 없는 증거를 기초로 유죄를 인정하는 잘못을 범했다”고 밝혔다. 유족 측은 지난해 3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 조사 결과 등에 따라 불법 연행과 고문, 가혹행위를 통해 간첩죄가 조작된 사실이 드러났다”며 재심을 청구했다. 김우철 형제간첩 사건은 1947년 일본으로 건너가 자수성가한 재일동포 김우철 씨(당시 58세)가 1975년 2월 동생 김이철 씨(당시 51세)와 함께 경찰에 끌려가 고문과 협박 끝에 허위자백해 간첩으로 몰린 사건이다. 김 씨 형제는 당시 “고문 때문에 허위자백을 했다”고 항변했지만 1심에서 징역 12년과 징역 4년을 각각 선고받은 뒤 항소해 징역 10년과 징역 3년 6개월의 형이 확정돼 만기복역 후 출소했다. 이후 두 사람은 고문 후유증으로 병원을 전전하다 김우철 씨는 1999년에, 동생 김이철 씨는 2002년에 각각 숨졌다.광주=김권 기자 goqud@donga.com■ 진실화해위 “1983년 납북어부 사건도 조작”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군사정부 시절 납북됐다가 귀환한 어부들이 간첩으로 처벌된 2건의 사건을 조사한 결과 정부의 왜곡과 조작이 확인됐다고 28일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이들에 대한 국가의 공식적인 사과와 확정판결 재심을 권고했다. 진실화해위는 1983년 수감된 ‘이상철 씨 간첩조작 사건’이 대표적인 왜곡사건이라고 밝혔다. 위원회에 따르면 어부였던 이 씨는 1971년 울릉도 근해에서 풍랑을 만나 북한까지 올라갔다. 1972년 7·4 남북공동선언 직후 귀환했지만 1970년대 내내 경찰의 관리를 받았다. 경찰 수사관이 신원을 보증해 거제도의 한 조선소에 취직했지만 그게 오히려 화근이 됐다. 1983년 국가보안사령부는 이 씨를 연행해 잠을 재우지 않거나 성기에 전기고문을 하는 등 가혹행위를 하여 “고정간첩으로 활동했다”는 진술을 얻어내 14년형을 받게 했다. 조선소와 같은 특수시설에 침투했다는 혐의였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당시 수사관도 가혹행위 사실을 인정했다”며 “이 씨는 2006년 출소한 직후부터 위원회에 조사를 요청했지만 2007년 별세했다”고 말했다. 또 진실화해위는 최만춘 씨 등 전북지역 어부 9명이 1969년 경찰에 구속영장 없이 무단 억류돼 구타와 고문을 당한 사건 역시 정부 당국의 ‘각본 수사’로 보고 국가 사과를 권고했다. 위원회 관계자는 “당시에는 정부가 정치적 필요성에 의해 납북어부들을 간첩으로 몰았다”며 “현재까지 위원회가 접수한 납북어부 간첩사건 9건 모두가 국가 조작 사실이 확인됐다”고 말했다.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물이 끓는 온도는 100도다. 그렇다면 ‘사랑’이 끓기 시작하는 온도는 몇 도일까? 국내의 대표적인 이웃사랑 지표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사랑의 온도계’가 도입 11년 만에 처음으로 100도에 못 미칠 위기에 처했다. 그 내막을 알아봤다.[관련기사] ■ “김정일, 당뇨 합병증으로 정기 인공투석”최근 왕성하게 대외활동을 하고 있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당뇨 합병증에 따른 신부전증으로 정기적인 인공투석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의 회담 일정이 늦어진 것도 투석 일정을 잡지 못했기 때문이라는데….[관련기사] ■ 18세기 조선의 민얼굴은 어땠을까‘중인은 높고 양반은 낮다’는 의미의 동요가 유행하고 친구끼리도 당쟁으로 원수가 되던 시대…. 당대의 문인부터 기생과 칼 만드는 장인까지, 18세기 조선을 살핀 책 ‘송천필담’이 완역됐다. 당시 조선의 민얼굴을 들여다본다.[관련기사] ■ 중장년층 ‘스마트폰 스트레스’젊은층에선 스마트폰 열풍이 불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만만찮은 스마트폰 ‘진입 장벽’에 가로막힌 어른들도 있다. 업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스마트폰을 사용하더라도 일반 휴대전화를 같이 사용하는 경우까지 있다. 스마트폰을 안 쓰면 ‘뒤처진 사람’ 취급을 받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라는데….[관련기사]}

‘사랑이 끓는 점 100도를 지켜라.’ 사회복지공동모금회(공동모금회) 직원들이 ‘비상 상황’에 직면했다. 이곳에서 매년 발표하는 국내의 대표적인 기부 지표인 ‘사랑의 온도계’가 1999년 설치된 이후 11년 만에 처음으로 100도 아래로 떨어질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직원들이 매일 전국 공동모금회 지부에서 기부 상황을 체크하고 있지만 올해는 비관적이라고 예상했다. 공동모금회 측은 “올해 접수한 이웃돕기 기부액이 목표치인 2212억6000만 원에 못 미치는 2075억 원에 머물고 있다”며 “현재의 모금 추이로 볼 때 100% 모금 달성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28일 밝혔다. 공동모금회는 11년째 모금 목표를 정하고 여기에 맞는 ‘기부 온도’를 발표해 왔다. 매년 12월 1일부터 1월 31일까지 각 지역 공동모금회 등에서 모인 이웃돕기 성금 액수를 온도로 나타낸다. 목표치의 1%를 달성할 때마다 1도씩 올라가며 서울 광화문에 설치된 사랑의 온도계에 눈금으로도 표시한다. 올해는 28일 현재 93.8도를 나타내고 있다. 행사 진행 후 가장 ‘사랑 온도’가 높았던 2001년에는 온도계가 148.5도까지 올랐다. 지난해에는 시민들이 조금씩 기부한 동전까지 모아 간신히 100.5도를 넘었다. 역대 최저온도는 2000년의 100.1도다. 올해 모금 액수가 예상을 밑돌게 된 것은 예년에 비해 기업 기부가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기업 모금액은 1183억 원이 목표였으나 28일까지 1166억 원이 들어왔다. 특히 지난해부터 시작된 미국발 금융위기에 영향을 받은 조선 금융 업종 등에서 기부액을 줄였다. 2008년 말 공동모금회에 30억 원을 쾌척했던 한 조선 관련 대기업은 지난해 말 20억 원을 기부해 한 해 사이 기부액이 지난해보다 30% 이상 줄어들었다. 공동모금회 관계자는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기업들이 이웃돕기에 나선다는 것 자체가 고마운 일이지만 최근 중견기업들의 이웃돕기 기부가 유독 감소해 고민”이라고 말했다. 공동모금회는 지난해와 비슷한 상황이 또 한 번 재현되기를 바라고 있다. 지난해에는 일반 시민들의 개인 기부가 막판에 대거 들어와 ‘이웃사랑 100도’를 지켰다. 지난해 개인들의 기부금은 전년 대비 10.6% 늘었다. 공동모금회 김효진 실장은 “기부라는 게 누가 언제 얼마나 낼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며 “올해도 개인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이웃사랑 100도를 넘어서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