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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된 공연계가 가을을 겨냥해 대형 공연 축제를 잇따라 선보이며 활로 모색에 나선다. 9월 1일∼10월 30일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을 시작으로 서울연극올림픽(9월 24일∼11월 7일), 서울국제공연예술제(10월 2일∼11월 14일) 등이 줄줄이 관객을 찾는다. 서울연극올림픽의 키워드가 ‘국내외 거장 연출가’라면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창작품을 들고 나와 해외 진출을 타진하는 젊은 국내 연출가들이 주목할 포인트다. 평소 보기 힘들었던 해외 국립극장의 작품을 접하는 국립극장페스티벌까지, 골라보는 재미도 크다. 이들 축제의 조직위가 25일 함께 설명회를 열고 축제 알리기에 나섰다.》○ 세계적 연극계 거장 한자리 1995년 해외 유수의 연극 연출가와 배우들이 그리스 아테네에 모였다. 점차 관객들의 외면을 받는 연극계의 활로를 모색하고 관객들과 소통하기 위한 자리였다. ‘비극’을 주제로 7개국 9개 작품이 실험적 연극을 선보이며 호평을 받았다. 이렇게 시작된 ‘연극올림픽’이 1994년 일본 시즈오카(20개국 42개 작품), 2001년 러시아 모스크바(32개국 97개 작품), 2006년 터키 이스탄불(13개국 38개 작품)을 거쳐 우리나라에서 5회 대회를 연다. 최정일 서울연극올림픽 집행위원장은 “연극의 세계적 흐름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말했다. 이번 서울연극올림픽에서는 ‘사랑(러브 앤드 휴머니티)’을 주제로 13개국 48편의 연극이 관객을 찾는다. 미국의 로버트 윌슨은 부조리 극작가로 유명한 사뮈엘 베케트 원작의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를 국내 초연한다. 윌슨은 조명과 무대 디자인, 음악 등 시청각적 요소를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이미지 연극’의 거장으로 예순아홉의 나이에 1인극을 선보인다. 일본 대표 연출가로 꼽히는 스즈키 다다시의 대표작 ‘디오니소스’도 관심을 끈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와 일본의 전통예술인 ‘노(能)’를 결합한 이 작품은 1991년 초연 이후 세계 각국의 공연에서 호평을 받았고 역시 국내 초연작이다. 국내 작품으로는 이윤택의 ‘바보각시’, 손진책의 ‘적도 아래의 맥베스’, 임영웅의 ‘고도를 기다리며’, 오태석의 ‘분장실+순풍의 처’가 무대에 오른다. ○ 해외 공동 제작으로 세계화 나선다 올해 10주년을 맞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해외 연출가와 손잡고 국내 공연의 해외 진출 프로젝트를 세웠다. 예년에는 40여 편을 올렸지만 올해는 8개국 28편만 선보인다. 한정된 예산으로 공동 제작을 추진하다 보니 작품 수가 줄어든 것. 김철리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예술감독은 “국내 공연이 세계를 바라보기만 했는데 이제는 세계로 본격 진출하기 위한 전략을 세운 것”이라고 말했다. 주최 측은 이번 축제의 대표작으로 이오네스코 원작의 ‘코뿔소’를 꼽았다. 프랑스 연출가 알랭 티마르와 한국 배우들이 호흡을 맞춘 이 작품은 프랑스의 아비뇽 할 극장, 안산문화예술의전당, 주프랑스한국문화원 등이 참여하는 한-프랑스 합작 연극이다. 한 마을에 코뿔소가 등장한 이후 마을사람들이 코뿔소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리면서 인간성에 대한 고찰을 담아낸 이 작품은 7월 프랑스 아비뇽페스티벌 무대에 올라 호평을 받았다. 서 발레단의 ‘아따블르’를 비롯한 국내 공동 제작 작품 8편도 첫선을 보인다. 올해 4회를 맞은 세계국립국장페스티벌에서는 헝가리 빅신하즈 국립극장의 연극 ‘오델로’, 독일 칼스루에 국립극장의 발레 ‘한여름 밤의 꿈’ 등 8개국 국립극장의 8개 작품이 한국을 찾는다. 이 밖에 올가을엔 대학로 일대 소극장들이 중심이 돼 20편의 작품을 선보이는 대학로소극장축제(10월 11일∼11월 7일), 국내 공연들의 해외 진출을 돕는 ‘서울아트마켓’(10월 11∼15일)도 열린다. 최치림 서울연극올림픽 예술감독은 “올가을에는 서울이 공연 축제로 물들 것 같다”고 기대했다. 각 축제는 통합 마케팅 전략에 따라 통합 할인 카드 ‘가을애’를 발급하기로 했다. 위에 소개한 축제의 모든 공연을 20∼30% 할인받을 수 있다. 카드는 인터파크 등 인터넷 티켓 예매처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1544-1555, 1588-7890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24일 국회 인사청문회 초반부터 최문순 민주당 의원에게 “이 자리에 와서는 안 되는 분이다. 즉각 사퇴해 달라”는 가시 돋친 말을 들었다. 세간에서 ‘까칠 재민’이라고 불리는 신 후보자지만 이날 야당 의원들의 거센 공세에는 아예 응답하지 않거나 답답한 듯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신 후보자는 “법을 어긴 사실이 없다”는 답변을 주무기로 난처한 순간을 비껴갔다. 최 의원은 특히 신 후보자의 의혹을 열거하면서 “전부 조직폭력배들이 하는 행동이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항의한다. 지금 조폭 중간 보스를 뽑는 것이냐”며 “한나라당 내에 ‘김신조’라는 말이 있다. 김태호 총리 후보자, 신 후보자,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는 안 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조진형 한나라당 의원은 “임명권자가 범법자, 조폭을 추천했겠느냐. 대통령에 대한 모독이다”며 항의했고, 한선교 의원은 “국민이 보고 있는데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의혹 백화점…대부분 인정 안해여야 의원들은 이날 신 후보자에 대해 △부동산 투기 △양도세 탈루 △주소지 위장전입 5건 △배우자의 위장 취업 △차량 스폰서 △증여세 탈루 △과다한 특수활동비 사용 등 ‘의혹 백화점’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다양한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신 후보자는 위장전입과 차량 스폰서 관련 의혹에 대해서만 자신의 과오를 인정했다. 나머지 대부분의 의혹에 대해선 “실정법을 위반한 사례가 없다”며 단호하게 반박했다. 최 의원은 이날 신 후보자가 차관 재직 시절 문화부의 특수활동비를 과다하게 사용한 사실을 거론했다. 최 의원은 “특수활동비는 주요 국정과제와 국정홍보, 여론 수렴 등에 사용하는 것인데 신 후보자는 유흥, 골프접대비로 13개월간 1억1900만 원을 지출했다. 유인촌 전 장관에게 지적까지 받았다”고 주장했다. 신 후보자는 “법이 정한 바에 따라 썼다”며 노무현 정부 때는 연간 특수활동비 액수가 2억 원 정도 됐다고 답했다.○ 위장전입 사과하며 ‘父情’에 호소 신 후보자는 5차례에 걸친 주소지 위장전입 의혹에 대해선 “큰딸이 목동에서 일산으로 이사한 후 학교에서 소위 ‘왕따’를 당했다. 정말 고민하다가 아버지의 정에 의해 어쩔 수 없었다”며 동정론에 호소했다. 신 후보자는 김부겸 민주당 의원이 ‘장상 총리 후보자가 위장전입으로 낙마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3초 정도 침묵을 지키다 “기자로 일하면서 남을 비판하는 데 주력했지만 제 자신을 돌보는 데는 소홀했던 것 같다.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배우자가 한 기업체의 비상임 감사로 등재하는 등 2차례 위장취업을 했다는 의혹에 대해선 “중학교 동창인 기업체 대표가 비상임 감사를 맡아주지 않겠냐고 연락이 왔다”며 “평생 다니던 직장을 잃어 친구가 배려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취업 절차는 합법적이었다고 해도 일한 만큼 보수를 받았냐는 것에는 떳떳하지 않았다. 작은 욕심을 부리지 않았나 싶다”면서도 “위장취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차량 스폰서 사실 인정 장병완 민주당 의원은 이날 신 후보자가 2007년 이명박 대통령 후보자의 캠프에서 일할 당시 한 기업체에서 무상으로 차량을 지원받은 사실을 폭로했다. 장 의원은 “신 후보자가 제공받은 차량은 2005년식 그랜저TG 차량으로 리스 비용은 월132만 원”이라며 “신 후보자가 2007년 5월∼2008년 3월 10개월 동안 차량을 리스 형태로 사용했다고 신고했으나 실제론 2007년 1월부터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신 후보자는 “(기업체에서 도움을 받아) 2, 3개월 차량을 사용했다”고 시인했다. 장 의원은 신 후보자가 차량 리스 관련 국회 제출 서류에서 차량 스폰서를 받았다는 사실을 숨기려고 임차인 명의가 신 후보자로 바뀐 뒤인 2007년 5월 이후의 서류를 제출했다고 지적했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신 후보자가 대선 후보 캠프에 있었으므로 사실상 정치인 신분이었는데, 차량 스폰서를 받았다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해당한다”고 말했다.이유종 기자 pen@donga.com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투기다” vs “아니다” 팽팽한 설전 ▼17년간 부동산 거래 17건… 野 “양평 땅은 명백한 투기”신 “법 어긴적 없어… 살던 집 가격 오른게 투기냐”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야당 의원들은 신 후보자와 부인 윤모 씨가 1993년 12월부터 올해 7월까지 아파트, 오피스텔, 토지 등의 부동산을 17차례 매매한 사실을 적시하며 부동산 투기 의혹을 집중 제기했다. 특히 야당 의원들은 신 후보자 부부의 부동산 거래 중에 매입한 지 3년도 안 돼 매도한 ‘단타 거래’가 적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신 후보자는 경기 고양시 B아파트를 1999년 11월에 사서 2001년 5월에 팔았고, 2003년 7월 경기 용인시 D아파트의 분양권을 매입해(신 후보자는 미분양 아파트 구입이라고 해명) 2005년 4월에 매도했다. 신 후보자는 “결혼생활 28년 동안 살았던 집을 (서류로) 뽑아보면 8∼9번 (바뀌었고), 분양권을 샀던 것은 3, 4번이었다”며 “그냥 더해보면 숫자가 많기 때문에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부동산 거래과정에서 한 번도 법을 어긴 적이 없다”고 답했다. 그는 “살던 집이 가격이 올라가면서 집 가격이 오른 것까지 부동산 투기라고 하면 안 된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부인 명의의 경기 양평 땅 구입에 대해 야당 의원들은 “후보자는 전원주택용으로 샀다고 주장하지만 그 땅은 한화리조트 지역과 지척이다. 명백히 투기용이다. 그러다 장관이 될 것 같으니 서둘러 판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이에 신 후보자는 “지난해에 이미 매도하려고 했다”고 해명했다. 창조한국당 이용경 의원은 신 후보자가 2006년에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 내 오피스텔을 팔면서 양도세를 회피하기 위해 매매계약 체결 시점부터 8개월 11일이 지난 시점에 등기를 했다는 의혹을 거듭 제기했다. 신 후보자는 “부동산을 거래할 때 한 번도 탈루하지 않았다. 매수자는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며 강하게 부인했다. 이와 관련해 해당 오피스텔 매매를 중개한 공인중개사는 최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매수자가 일단 매매계약을 체결하고 나중에 등기를 하자고 해서 내가 그렇게 주선했다. 신 씨 가족이 등기 시점까지 해당 오피스텔에 거주한 게 맞다”고 말했다.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 “기자 시절엔 투기 질타하더니…” ▼과거에 쓴 기사 들이대자 신, 고개 숙이며 묵묵부답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24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1993년 한국일보 기자 시절 ‘고위 공직자 투기 문제’를 꼬집은 자신의 기사 얘기가 나오자 곤혹스러워했다. 민주당 최문순 의원은 이날 청문회에서 “신 후보자가 1993년 3월 23일 기사에서 ‘사회적 병폐를 치유하는 데 앞장서야 할 인사들이 부동산 투기 붐에 의해 부를 축적했다는 대목에서는 우리 사회의 지배엘리트들에 대한 도덕성이 의문시된다’고 지적했다”며 “이렇게 스스로 말해놓고 (장관으로서) 자격이 있느냐”고 질타했다.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신 후보자는 고개를 숙이며 별다른 답변을 하지 못했다. 신 후보자는 한국일보 논설위원으로 재직하던 2002년 7월 칼럼에서는 “개각 때마다 전력 시비 등 구설수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니 혹시 청와대마저도 뒷조사를 꺼려 마땅히 할 일을 안 하고 있는지 의심이 든다”며 철저한 검증을 청와대에 주문하기도 했다.하지만 신 후보자는 24일 청문회에서 청와대 인사 검증 부실을 꼬집는 질문에 “제 입으로 말씀드리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동아일보 이종승 기자}
민주당 장병완 의원은 22일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의 부인 윤모 씨가 2004년 전자부품회사에 비상임 감사로 취업한 사실이 확인됐다”며 “아나운서 출신인 윤 씨가 회계나 경영에 전문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위장취업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앞서 윤 씨는 2007년 신 후보자가 이명박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일하며 급여가 없었을 때 신 후보자의 중학교 동창이 대표로 있는 한 설계감리회사에서 급여를 받아 위장취업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장 의원이 4대 보험 납부현황을 확인한 결과 1987년 방송사 아나운서를 그만둔 윤 씨는 17년 뒤인 2004년 2∼11월 전자부품 회사인 A사에 비상임 감사로 취업했다. 국민연금 납부금액을 토대로 환산한 윤 씨의 11개월 치 급여는 3000여만 원으로 같은 기간 회사 임원들의 평균 급여와 비슷했다. 회사의 2004년 주총 공시자료엔 다른 비상임 감사 3명은 등재돼 있었지만 윤 씨의 이름은 없었다. 당시 회사 공동대표였던 B 씨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다른 비상임 감사는 기억하지만 윤 씨는 전혀 모르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신 후보자 측은 “소기업의 비상임 감사는 보통 비등기 형태로 운영한다”고 해명했다. 한편 신 후보자가 부인 명의로 2003년 7월 매입(5억2000만 원)한 경기 용인시의 아파트를 2년 뒤 같은 값에 되팔아 양도세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힌 것과 관련해 민주당 최문순 의원은 “양도세 탈루를 위해 ‘다운계약서’를 작성한 게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민주당 서갑원 의원은 “현재 문화부 차관인 신 후보자가 2007년 1월 15일 이후 지금까지 한나라당 당적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정당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신 후보자 측은 “정당법과 달리 공무원법에는 차관의 당적 보유를 허용하고 있다”고 해명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는 20일 국회 환경노동위 인사청문회에서 민주당 이미경 의원이 ‘고혈압’을 이유로 보충역 판정을 받은 것과 관련해 ‘병역 기피’ 의혹을 제기하자 “병무청 판단에 따라 병역 의무를 완수했기 때문에 병역 기피는 아니다. 그런 논리라면 나 같은 사유로 보충역을 받은 사람 모두가 병역 기피자가 되는 것”이라며 강하게 반박했다. 박 후보자는 “어릴 때 여러 차례 경기(驚氣)를 일으켰고 그 과정에서 몸에 큰 흉터가 생겼다”며 “신체검사 때 군의관이 ‘왜 흉터가 났냐’고 물어 설명했더니 정밀검사를 권했고 부산 국군통합병원에서 정밀검사 결과 격한 운동이나 훈련을 받으면 (고혈압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해 보충역 판정을 받았다”고 해명했다. 위장전입 의혹과 관련해서는 “결과적으로 주민등록법을 위반하게 됐다. 주민등록 정리를 늦게 한 것은 불찰”이라면서도 “위장전입은 아니다. 자녀교육이나 탈세, 금융 소득공제 등의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1992∼1993년 논문 이중게재 의혹에 대해서도 “영문과 국문으로 각각 게재됐는데 같은 논문이라도 이중 언어로 된 논문은 출간이 가능하다는 학회장의 서명을 받았다”며 “참여정부 때 낙마한 분과 저는 경우가 다르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이 “2007년 국고에서 510만 원을 대여받았는데 배우자가 친언니에게 4000만 원을 빌려 골프장 회원권 2개를 6600만 원에 샀다”고 추궁하자 박 후보자는 “사려 깊지 못했고 두 개 중 한 개는 처분하겠다”고 몸을 낮췄다. 박 후보자는 ‘세종시 수정안 부결’ ‘4대강 사업 반발’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충분한 대국민 설득이 부족했고 홍보가 부족하기도 했다”며 말을 아꼈다. 박 후보자는 노조 전임자수를 법으로 제한하는 유급근로시간면제제도(타임오프제) 시행을 둘러싼 혼선과 관련해서는 “최대한 노사자율 교섭에 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각종 의혹을 받고 있는 일부 장관 내정자가 수년 전 했던 발언과 행적이 부메랑처럼 돌아와 주인의 어깨를 무겁게 하고 있다. ○ “철저 검증” 촉구했던 신재민 내정자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내정자는 한국일보 논설위원으로 재직하던 2002년 7월 ‘FBI 요원의 방문’이란 칼럼에서 미국의 꼼꼼한 공직자 검증 시스템을 소개했다. 신 내정자는 “개각 때마다 전력 시비 등 구설수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니 혹시 청와대마저도 뒷조사를 꺼려 마땅히 할 일을 안 하고 있는지 의심이 든다”며 철저한 검증을 청와대에 주문했다.이에 앞서 그해 3월엔 ‘둘째 딸 이야기’란 제목의 칼럼에서 “경기 일산에서 (학원의) 좋은 반에 들여보내려고 과외를 시키는 부모도 있다”고 꼬집은 뒤 “나도 언제까지 둘째 딸을 학원에 안 보내는 만용을 부려야 할지 모르겠다”고 썼다. 신 내정자는 세 딸의 교육을 위해 1995년부터 2003년까지 일산에서 다섯 차례 위장전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 말(言)이 짐 된 진수희, 박재완 내정자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는 지난해 백용호 국세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 당시 야당 의원들이 백 후보자의 ‘다운계약서’ 작성 사실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자 “(1996년 12월 서울 대치동의 아파트를 사면서)나도 다운계약서를 쓴 적이 있다”고 말했다. 양심고백인 동시에 여당의원으로서 백 후보자를 옹호하려는 의도였다.그러나 본인이 입 밖에 내지 않았으면 웬만해선 탄로 나지 않았을 다운계약서 작성 사실은 이번 청문회에서 민주당에 공격 빌미를 제공했다.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 내정자는 2006년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노무현 정부가 위장전입 의혹을 받던 장관 내정자들의 임명을 강행한 것을 놓고 “윤리불감증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그 중심에는 위정자를 비롯한 지도층의 표리부동한 위선이 자리를 잡고 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가 위장전입 의혹을 받고 있다.○ 청문회 확대의 주역 이재오 내정자2000년 6월 국회인사청문제도가 도입될 당시 국무총리, 감사원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대법관, 헌법재판소 재판관 등으로 한정됐던 인사청문 대상자가 2005년 모든 국무위원(장관)으로까지 확대된 데는 이재오 특임장관 내정자의 역할이 컸다. 이 내정자는 한발 더 나아가 2006년 2월 “장관 내정자에 대해 부적격 평가를 내려도 장관 임명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법을 바꾸겠다고 밝히기도 했다.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황인찬 기자 hic@donga.com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동영상=˝방위 복무는 병역회피가 아닙니다˝ 청문회 나선 박재완 장관 후부}

6·25전쟁 당시 국군과 북한군이 사용한 실제 총기들이 뮤지컬 무대에 오른다. 21일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생명의 항해’에서 출연자들은 한 회 공연에 100발이 넘는 공포탄을 쏘며 치열했던 전장의 모습을 재현한다. 국내 공연무대에 실제 사용한 총기가 오르고 공포탄까지 쏘는 일은 처음이다. 지금까지 공연 속 총격 장면은 수입하거나 자체 제작한 모형 총에 화약을 터뜨려 효과를 냈으나 국방부와 한국뮤지컬협회가 6·25 60주년을 맞아 제작한 이번 공연에서는 국방부가 발 벗고 나서 무대에 총기가 오를 수 있게 됐다. ‘생명의 항해’는 1950년 12월 미군과 중공군이 혈전을 벌인 장진호 전투와 북한 주민 1만4000명을 배에 태워 구출한 흥남 철수작전을 그린 뮤지컬. 이준기 이병과 주지훈 일병 등 연예활동을 하다가 입대한 군인들이 주연을 맡았다. 프로듀서를 맡은 이영노 중령은 “군이 참여한 만큼 기존에는 보기 힘들었던 전투장면을 보는 재미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무대에 오르는 총기는 6·25 당시 국군이 사용했던 M1 개런드 소총(5정), M1 카빈 소총(10정), 북한군과 중공군이 사용했던 기관단총 PPSH41(10정), PPSH43(20정) 등 45정. 국방부는 M1용 공포탄 2000발을 지원했고 회당(총14회) 140여 발의 공포탄을 쏘아 장진호 전투 등을 재현할 예정이다. 무대 바닥에는 고압 공기장치 16개를 설치해 연기와 함께 폭탄이 터지는 모습을 매회 50여 차례씩 펼치고 포신이 돌아가는 소련제 T-34 탱크 모형도 만들어 전투 장면의 사실감을 높였다. 1만 명이 넘는 북한 주민을 구출했던 미국 화물선 ‘메러디스빅토리호’는 길이 18m, 높이 6m의 세트로 재현했다. 29일까지. 3만3000∼6만6000원. 1544-1555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광복 직후 한반도 전역은 새로운 나라를 앞두고 좌·우익의 정치 공방이 격렬한 혼돈의 시기였다. 양측은 남·북한에 진주한 미국과 소련의 영향을 피할 수 없었고 그로 인해 대립은 더욱 격심해졌다. 일제강점기 강제 폐간된 지 5년여 만인 1945년 12월 1일 복간된 동아일보에도 당시 혼란스럽던 사회상이 투영돼 있다. 동아일보는 광복 직후 좌익 언론의 주장이 봇물처럼 쏟아지는 상황에서 민족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켜내며 대한민국의 토대를 닦는 데 큰 역할을 했다. ○ 반탁 운동의 전면에 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전한 연합국이 한반도 신탁통치를 구상하고 있다는 소식은 1945년 10월부터 국내에 전해졌다.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3상회의)에서 한반도 신탁통치안이 합의되었다는 소식이 그해 12월 30일 보도된 뒤 좌익이나 우익 진영은 일제히 반탁 운동에 나섰다. 또다시 다른 나라의 신탁통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국민들에게 모욕이자 충격이었다. 동아일보는 12월 30일자 ‘와전(瓦全)보다 옥쇄(玉碎)로’라는 사설에서 반탁을 명료하게 밝히며 전국적인 반탁 운동을 촉구했다. “도대체 ‘탁치(託治)’의 주창자는 어느 나라의 그 누구이냐? 미국 영국 소련 3국의 어느 나라가 우리에게 불공대천(不共戴天)할 이 치명적 모욕을 던지려 하였느냐?… 탁치정권에 부딪쳐 보자! 빛은 동방에서! 정의의 승리는 필경 우리에게 있으리라.” 당초 우익과 함께 신탁통치를 반대하던 좌익 진영은 신탁통치가 알려진 사흘 뒤인 1946년 1월 2일 돌연 입장을 바꿨으며 3일에는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 절대지지’를 외치며 거리시위를 벌였다. 이로 인해 남한 전역은 신탁통치를 둘러싸고 반탁(우익)과 찬탁(좌익) 진영의 갈등이 격화됐다. 좌익 진영이 돌변한 이유는 정황상 소련의 ‘협조 요청 혹은 권고’ 때문이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다. 동아일보는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1946년 5월 6일 결렬되자 같은 달 11일자 사설 ‘미소공위 결렬’에서 다시 반탁을 강조했다. 이완범 한국학중앙연구원 세종리더십연구소장(한국정치 전공)은 “당시 반탁 운동은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상식적인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남한 단독 정부를 지지 이런 상황 속에서 민족 진영의 지도자들은 새 정부 수립에 대한 노선를 두고 대립하기 시작했다. 이승만의 ‘자율정부 즉시수립운동’, 김구의 ‘반탁통일운동 강화’, 미군정의 권고에 따른 김규식의 ‘좌우합작운동’이 그것이다. 당시 한반도 북쪽에서는 소련 군정의 주도 아래 ‘북한만의 정권’이 출범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소련 군정은 한반도 문제를 논의할 미소공위가 열리기 3개월 전인 1946년 2월 북한 전역에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설치했으며 토지개혁을 단행토록 했다. 남한의 이승만은 1946년 6월 3일 전북 정읍에서 ‘남한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해야 한다’며 처음으로 남한 자율 정부의 수립 의사를 표했다. 동아일보는 이를 지지했다. 김용직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상임위원(성신여대 교수·정치학)은 “단독정부 수립에 관한 찬반이 무성할 때 동아일보는 군정을 철폐하고 대외적으로 발언권을 갖는 독립정부 수립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1948년 2월 3일자 ‘총선거를 단행하라’는 사설에서 남한만의 총선이 불가피한 이유를 천명했다. “통일조선을 거부한 것은 38선을 철막화한 소련이다. 남북요인회담이 가능할진대 미소공위가 두 번이나 실패할 리가 없고 정부수립 전에 양군 철퇴는 혼란을 초래할 뿐이며 폭동화를 꾀하는 공산파 이외에 무슨 이익이 있는가…우심해 가는 남한의 민생 도탄은 급속한 정부수립을 절실히 요청하고 있으매…우리는 이 이상 군정을 원치 않는다.”○ 좌익에 맞서 자유민주주의를 주창 일제강점기 통제됐던 언론과 출판의 자유는 광복 직후 미군정이 들어서며 제약을 받지 않았다. 미군이 서울에 진주하기 하루 전인 1945년 9월 8일 총독부 기관지였던 경성일보를 모태로 좌익 성향의 ‘조선인민보’가 창간됐다. 이후 3개월여간 ‘해방일보’ ‘신조선보’ 등 10여 개의 신문이 앞다퉈 나왔는데 대부분이 좌익 진영의 주장을 담은 신문이었다. 여운형의 인민당과 박헌영의 조선공산당은 광복 직후 일제가 남기고 간 인쇄시설을 접수해 대대적인 선전공세를 펼쳤다. 좌익이 출판 인쇄 시설을 대부분 접수함에 따라 우익 진영의 신문들은 인쇄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 때문에 동아일보의 복간이 지연되기도 했다. 미군정은 조선공산당 기관지 ‘해방일보’를 인쇄하던 조선정판사에서 위조지폐를 대량으로 찍은 사건을 계기로 1946년 5월 18일 해방일보에 발행정지처분을 내렸다. 29일에는 신문과 정기간행물 창간을 허가제로 바꾸었다. 좌익 신문의 파괴 선동과 허위 보도로 인한 사회 혼란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언론계에서도 좌·우익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동아일보는 좌익 테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총선을 이틀 앞둔 1948년 5월 8일 좌익 세력의 방화로 사옥이 불에 타면서 창간 이후 모아둔 자료 사진 등이 대거 소실됐다. 총선일을 포함해 5개월 동안 동아일보는 조선일보 매일신보 한국일보 등에서 신문을 제작해야 했다. 또 동아일보를 필두로 민중일보 현대일보 등 7개 신문사 기자들은 좌익 기자들이 주도하는 기존 조선신문기자회에 대항해 1947년 8월 ‘조선신문기자협회’를 결성하기도 했다.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 강제 폐간 5년-광복 3개월만에 東亞복간 ▼민족-민주-문화 3대 主旨 재천명… 김구 선생 ‘경세목탁’ 휘호 “천도(天道) 무심치 않아 이 강토에 해방의 서기(瑞氣)를 베푸시고 성조(聖祖)의 신의(神意) 무궁하시어 이 천민(天民)에게 자유의 활력을 다시 주시니, 이는 오로지 국사(國事)에 순절한 선열의 공덕을 갸륵타 하심이요, 동아에 빛난 십자군의 무훈을 거룩타 하심이라. 세계사적 변국(變局)의 필연적 일면이라 한들 이 하등의 감격이며 이 하등의 홍복(鴻福)인가?” 1945년 12월 1일 동아일보가 다시 세상에 나왔다. 광복 3개월 반, 일제의 억압으로 강제 폐간된 지 5년 4개월이 지나서였다. 주간 설의식은 중간사(重刊辭)로 쓴 ‘주지(主旨)를 선명(宣明)함’을 통해 1920년 창간 때 내세웠던 3대 주지를 다시 천명했다. “민족의 표현기관으로 자임하노라. 민주주의를 지지하노라. 문화주의를 제창하노라. 여기에 현 국면에 처한 우리의 주지를 구체적으로 부연한다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로 민족 문화의 완성을 돕는다. 둘째로 민주주의에 의한 여론정치를 지지한다. 셋째로 근로대중의 행복을 보장하는 사회정의의 구현을 기약한다. 넷째로 국력의 강약 등에 따른 차별을 초월한 국제민주주의의 확립에 기여하고자 한다.” 1면 중앙에는 김구 임시정부 주석이 ‘경세목탁(警世木鐸)’이라 손수 써 보낸 축하 휘호를 게재했다. 맑고 깊은 소리를 울려 세상을 널리 깨치는 목탁과 같은 신문을 만들어 달라는 메시지였다. 김구 주석은 4면에 기고한 글 ‘최대 직능 발휘하라’에서 “과도기의 혼란은 의례히 있는 법이다. 이 과정을 밟아야만 보다 완전한 질서와 단결을 얻을 것”이라고 국민을 격려했다. 동아일보는 2면 칼럼 ‘최고 유일의 정부’, 3면 ‘우리 임시정부 본격적으로 활동’ 기사를 통해 임정 지지 의사를 밝혔다. 미군사령관 존 하지 중장, 민정장관 로런스 시크 준장도 축사를 전했다. 군정장관 아치볼드 아널드 소장은 “동아일보가 조선에 있어서 석일(昔日)의 위대한 영향력을 다시 발휘하리라고 믿는다”고 축하했다. 이승만 박사가 ‘지도 기관 되어라’라는 제목으로 보낸 축사도 1면 하단에 실렸다.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 본보 송진우 사장 1945년 12월 30일 피살 ▼“반탁” 주장에 찬탁파 추정세력 6명 범행 1945년 12월 27일 소련 모스크바에서 열린 미국 영국 소련 3개국 외상(外相)회의에서 광복 조선에 대한 미·영·중·소 4개국의 신탁통치안이 채택됐다. 이 소식이 국내에 전해지자 통일 조국을 기대했던 조선인들의 실망과 울분은 컸다. 그러나 신탁통치를 두고 좌우익이 찬반으로 갈렸고, 반탁을 주장하는 민족진영 내부에서도 그 방법론을 놓고 의견이 분분해 정국은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이런 가운데 그해 12월 30일 새벽 동아일보 송진우 사장이 서울 종로구 원서동 자택에서 피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한현우 등 6명이었고 탄환 13발 중 6발이 명중했다. 범행 배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찬탁파가 영향력을 끼쳤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송 사장은 3·1운동을 이끈 48인 가운데 한 명으로 활동하다 투옥됐다. 일제강점기 동아일보 사장과 중앙학교 교장을 거쳤고 광복 후에는 반탁 입장을 분명히 했다. 동아일보는 31일 광복 후 첫 송년호에서 광복의 기쁨을 맞은 지 5개월도 못 돼 암살된 송 사장을 애도하는 사설 ‘한 기둥을 잃다’를 실었다. “하수인이 누구인가를 조사할 필요가 없으리라. 암살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를 따져볼 필요도 없으리라. 다만 민족의 갱생을 위해 진군하는 우리의 도정(道程)에 피를 보았다 그만일 것이다…민족적 정기를 다시 다듬어 권토중래의 진운(進運)을 계속한다면 선생의 죽음은 비보(悲報)가 아니라 경보(警報)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아주 오래전부터 바다에 기대어 살았던 사람들은 조석 현상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조석을 이용해서 배를 띄우고, 먹을거리를 얻고, 꿈을 키워 왔다. 하물며 바닷가에 사는 작은 생물들도 본능적으로 조류에 맞추어 이동을 하며 알을 낳고 살아간다.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지만 일상생활의 많은 것들이 조석과 관련돼 있다.”》 조석(潮汐)은 바닷물이 주기적으로 움직이는 현상으로, 근래에는 대체에너지의 하나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조석 에너지를 이용한 발전 방법에는 조류가 아주 강한 해역에 수차를 설치해 전기를 생산하는 조류발전, 바다에 연결된 강에 방조제를 쌓아 바닷물을 가둔 뒤 낙차를 이용해 발전을 하는 조력발전 등이 있다. 이들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원이다. 저자는 “조석은 미래의 무한한 에너지원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다른 해양과학 분야에 비해 일반적인 이해는 충분치 않다”고 지적한다. 해양학 분야의 전문가인 저자들은 방학을 맞아 서해안에 있는 외갓집에 놀러 간 초등학생의 눈을 통해 조석에 관한 의문점을 제시하고, 이를 대학원에서 해양학을 공부한 이모가 대답해주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주인공 신우는 아침을 먹고 바다에 나갔다가 특이한 경험을 했다. 전날까지 바다였던 곳이 갯벌로 변해버린 것. 신우는 바닷물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궁금했다. 이모는 이것을 ‘조석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바닷물이 가장 높이 찼을 때인 고조(만조)부터 다음 고조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나 바닷물이 가장 낮은 때인 저조(간조)부터 다음 저조까지 걸리는 시간이 조석 주기다. 서해는 조석 주기가 12시간을 약간 넘는다. 저조와 고조 사이에 바닷물의 높이가 점점 높아지는 것을 창조(漲潮)라고 하고, 보통 창조 동안에 먼바다의 물이 육지 쪽으로 흐르는 것이 밀물이다. 반대로 고조에서 저조 사이에 바닷물의 높이가 점점 내려가는 것이 낙조(落潮)이고 이때 육지 쪽의 물이 먼바다로 물러나는 것을 썰물이라고 한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밀물과 썰물을 합쳐 조류라고 부른다. 이 책에서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에서 조류의 흐름을 전투에 활용한 것을 대승의 원인이라고 설명한다. 충무공은 진도와 육지 사이의 좁은 수로인 명량수로를 결전의 장소로 정한 뒤, 먼저 강한 밀물을 타고 수로로 들어와 닻을 내리고 왜군 함대를 기다렸다. 이 수로는 폭이 좁아 모든 함대가 한꺼번에 통과할 수 없었고, 게다가 왜군은 통과 당시 강한 조류를 만나 큰 피해를 입었다. 물때가 바뀌어 썰물이 됐을 때 충무공은 닻을 올리고 허둥대는 왜군 함대를 향해 돌격해 대승을 거둔다. 이 책에는 다양한 해양 지식도 담겨 있다. 우리나라에서 조차가 가장 큰 곳은 인천 앞바다로 해수면의 높이차가 최고 9m 이상이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해수면 차는 작아져 목포는 약 3m, 부산은 1m이고, 가장 차이가 작은 포항은 20cm도 안 된다. 갯벌은 해양생태계의 보고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서해안 갯벌은 북해 연안, 캐나다 동부 연안, 미국 동부 조지아 연안, 아마존 하구 갯벌과 함께 세계 5개 갯벌로 꼽힌다. 북해 연안 갯벌의 3분의 2가 위치한 독일은 모든 갯벌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엄격하게 보호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8년 현재 전남 무안과 진도, 순천만, 보성 벌교, 인천 옹진 장봉, 전북 부안 줄포만 갯벌 등 6군데를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초반 30분 동안은 내내 웃음이 흘러나왔다. ‘대박이다’ 싶었다. 소심하다 못해 ‘찌질’한 도연(최재웅 강지후)의 비굴한 연기는 압권이었다. 하지만 중반 이후 비슷한 개그가 반복되자 슬슬 지루해졌고, 막판에는 조금은 질렸다. TV 공개 개그프로의 한 코너가 무한 반복되면서 100분을 채우는 듯한 느낌이었다. 지난달 27일 막을 올린 뮤지컬 ‘트라이앵글’(연출 홍기유)은 ‘연극열전 3’의 일곱 번째 작품. 1974년 일본에서 초연됐고 이번이 국내 첫 무대다. 다소 연식(年式)이 있는 공연이지만 달콤 발칙한 설정은 요즘 유행과 잘 맞는다. 5년째 습작을 끼적거리지만 등단을 못하는 작가지망생 ‘도연’, 옆집 살던 가수지망생 ‘경민’(김승대), 그리고 경민을 쫓아다니는 ‘스토커녀’인 ‘영이’(안유진). 경민이 영이를 피해 도연의 집에 숨어들고, 영이도 도연의 집에 아예 눌러앉으면서 한 여자와 두 남자가 한지붕 아래 사는 기묘한 상황이 연출된다. 이런 설정 때문에 드라마와 연극으로 만들어진 ‘옥탑방 고양이’와 같은 발랄한 코미디를 기대하기 쉽다. 하지만 이 작품에선 세 사람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찾아보기 어렵고, 한집에 살면서 일어날 수 있는 소소한 잔재미도 부족하다. 포스터는 로맨틱 코미디 분위기를 풍기지만 사실 ‘3인조 개그쇼’에 가깝다. 웃음은 초반에 폭발한다. 별안간 집에 불청객들을 들이게 된 도연이 특유의 소심한 성격 때문에 안절부절못하거나, 경민이 영이를 따돌리기 위해 동성애자임을 자청하고 바닥에 누워 도연에게 “너를 정말 사랑해” 하며 절규할 때 객석은 뒤집어진다. 하지만 세 사람이 아동복을 입거나 선글라스를 끼고 코믹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은 기시감이 드는 데다 억지스럽다. 도연이 신춘문예에 낙방한 뒤 갑자기 거친 욕설을 내뱉거나, 경민이 신성우의 ‘꿈이라는 건’을 부르면서 눈물을 글썽거릴 때는 당황스러웠다. 다소 밋밋한 원작에 한국적인 갈등 요소를 추가했다지만 매끄럽지 못해 보였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i: 4만 원. 9월 26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문화공간 이다2관. 02-766-6007}

화가 한스 홀바인 2세가 그린 ‘밀라노 공작부인 크리스티나’에는 별다른 배경 그림이 없다. 여기에는 나름의 사정이 있다. 모델이었던 크리스티나는 네 번째 왕비를 구하고 있던 헨리 8세의 신부 후보였고, 신붓감의 미모가 궁금했던 헨리 8세는 홀바인을 보내 초상화를 그려오게 했다. 배경이 없는 까닭은 홀바인이 화급히 그림을 완성해 돌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내셔널 갤러리, 코톨드 갤러리, 국립 초상화 미술관, 테이트 브리튼, 테이트 모던 등 영국 런던의 미술관들에 있는 명화 80여 점에 얽인 뒷얘기를 감상평과 함께 정리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근 40년 만에 함께 연극 무대에 오르니 설레고 행복합니다.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기분이에요.” 배우 신구(74) 손숙 씨(66)는 5일 서울 중구 메트로호텔에서 열린 연극 ‘드라이빙 미스데이지’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20일부터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국내 초연으로 막을 올리는 이번 작품에서 신 씨는 흑인 운전사 ‘호크’로, 손 씨는 깐깐한 백인 주인할머니 ‘데이지’로 출연한다. 두 사람이 함께 호흡을 맞춘 것은 1971년 연극 ‘달집’ 이후 39년 만으로, 연극배우였던 신 씨가 TV로 주 무대를 옮기면서 마주칠 기회가 없었다. 손 씨는 “늘 같이 공연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와서 정말 기쁘다. 나이가 적지 않은 배우들인 만큼 어쩌면 함께 작품을 하는 게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연극은 1987년 미국에서 초연된 뒤 1989년 동명 영화로 만들어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1990년), 베를린 국제영화제 은곰상(1990년)을 받았다. 72세 고령의 여주인과 10여 년 연하의 흑인 운전사가 인종, 성별, 나이 차를 넘어 30년 동안 쌓은 우정을 잔잔히 그렸다. 신 씨는 “노인들이 주연인 작품이지만 정치, 문화, 종교 등 다양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에 세대 구분 없이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두 배우는 대본을 일주일 만에 다 외울 정도로 작품에 공을 들이고 있다. 최근 공연계에는 배우들의 겹치기 출연이 문제가 되고 있지만 신 씨는 다른 활동 제의를 마다하고 이 작품 연습에만 몰두하고 있다. 윤호진 연출가는 “오랜 경륜이 쌓인 배우들이 선보이는 명연기의 하모니를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일∼9월 12일 명동예술극장. 2만∼5만 원. 1644-2003황인찬 기자 hic@donga.com}

“6·25전쟁 참전 용사들의 평균연령이 현재 80세 정도인데 10년, 20년 뒤에는 곁에 없을 수도 있다. 헌정 공연을 하는 마음으로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 배우로 5월 현역 입대한 이준기 이병(28·국방홍보원·사진)은 2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동숭아트센터에서 열린 뮤지컬 ‘생명의 항해’ 제작발표회에서 “이번 공연을 통해 6·25전쟁 참전 용사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젊은 세대에게는 잊혀져가는 전쟁의 의미를 알리고 싶다”고 밝혔다. 이 작품은 국방부와 한국뮤지컬협회가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제작하는 것으로 1950년 12월 미군과 중공군이 혈전을 벌인 장진호 전투와 북한 주민 1만4000명을 배에 태워 구출한 흥남 철수작전을 그렸다. 그는 북에 있는 가족을 구출하는 육군 소위 해강 역을 맡았다. 입대 100일도 안 된 그는 사회자가 앉아서 인사하라고 했지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거수경례를 했고, 인터뷰 순서에 대해서도 “계급 순으로 말하면 좋겠다”고 했다. 2001년 광고 모델로 데뷔한 뒤 2005년 영화 ‘왕의 남자’로 스타덤에 오른 그는 이번이 첫 뮤지컬 도전이다. 그는 “참여한 장병들 가운데 가장 계급이 낮다”며 “하지만 주변에서 많이 도와줘 큰 어려움은 없다”고 밝혔다. 그를 포함한 배우와 스태프로 참여하고 있는 장병 80여 명이 경기 광주시의 한 특전사 부대에서 숙식하며 연습하고 있다. 8월 21∼29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3만3000∼6만6000원. 1544-1555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원로 수필가 벽강(璧江) 전숙희 씨(사진)가 1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1세. 강원 통천군에서 태어나 1938년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39년 단편소설 ‘시골로 가는 노파’로 등단한 후 ‘탕자의 변’ ‘PEN 이야기’ 등 여러 권의 수필집을 냈다. 2007년 자전에세이 ‘가족과 문우 속에서 나의 삶은 따뜻했네’를 출간하는 등 최근까지 작품활동을 해왔다. 전쟁으로 인한 인간성 파괴, 가치관의 혼란, 가난으로 초래된 비극 등을 쉽고 간결한 문체에 담았다. 1983∼1991년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회장을 지냈으며 1988년에는 동서 진영의 작가들을 초청해 서울에서 국제펜대회를 개최했다. 동생인 고 전락원 전 파라다이스그룹 회장과 함께 계원학원을 이끌며 계원예술고교, 계원디자인예술대 등을 설립했다. 1991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국제펜중앙위원회에서 종신 부회장에 선임됐으며, 독일 괴테문화훈장, 러시아 푸시킨 문화훈장,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소설가이자 파라다이스문화재단 이사장인 김주영 씨는 “매우 활동적인 분으로 가난한 후배 문학인들을 돕는 데도 정성을 아끼지 않았다”며 “다소 소외돼 있던 한국 수필을 문학의 한 영역으로 끌어올린 분”이라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강영국(재미 사업가) 영진 씨(한국현대문학관 관장), 딸 은엽(미술가) 은영 씨(미술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5일 오전 8시. 영결식은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계원예고에서 5일 오전 10시에 문인장으로 열린다. 02-3010-2230황인찬 기자 hic@donga.com}

22회 거창국제연극제 15일까지 찌는 듯한 더위도 해가 지자 한풀 꺾였다. 계곡(경남 거창군 수승대)을 따라 양옆에 들어선 야외극장의 불이 하나둘 켜지자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의 관객들이 극장에 몰려들었다. 숲 속에 있는 야외극장 곳곳에선 경쾌한 음악과 관객들의 웃음소리가 어우러졌다. 연극과 함께하는 여름밤이 깊어갈수록 피서객들의 소중한 추억은 쌓이는 듯했다. 제22회 거창국제연극제가 지난달 30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8월 15일까지 17일간의 일정에 들어갔다. 올해는 10개국 45개 단체가 참가해 모두 205회의 야외 공연을 선보인다. 행사장은 낙동강의 지류인 위천천이 기괴한 암반 위로 흐르는 계곡으로 연극과 함께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다. ○ 야외 연극으로 달아오른 여름밤 지난달 30일 축제극장에서는 서울예술단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개막작으로 올랐다. 아이를 업고 온 어머니부터 손을 꼭 잡고 온 연인, 그리고 노부부까지 남녀노소 다양한 관객들이 공연장을 찾았다. 800석이 가득 차 계단에 앉거나 객석 맨 뒤에 서서 공연을 보는 관객들도 있을 만큼 열기가 뜨거웠다. 연극은 익숙한 스토리였지만 극장 분위기 덕분에 색다른 매력이 풍겼다. 막은 오후 8시가 넘은 시간에 올랐지만 아직 공기는 후덥지근했다. 관객들은 연방 부채질을 했고 무대 위 조명 주위에는 풀벌레가 날아다녔다. 극장 밖 소음은 그대로 전해졌고, 극 중간에 한 할머니가 “미란아, 미란아”라고 부르거나 한 아이가 “까르르” 크게 웃는 바람에 객석에서는 덩달아 웃음이 터졌다. 다소 산만했지만 오히려 정겨웠다. 마치 옛날 집 앞마당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 흑백 TV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오후 10시에 시작한 극단 호모루덴스의 ‘오늘 같은 날’은 야외 천막극장인 ‘태양극장’에서 공연됐다. 노인 문제를 다룬 가면극으로 대사는 거의 없었지만 섬세하게 표현된 노인들의 가면과 적절한 상황 묘사로 의미를 전달했다. 객석은 정원의 절반가량인 200여 석이 찼다. 천장이 없는 이 극장은 고개를 들면 밤하늘의 별이 보였고, 숲이 무대 배경이 돼 낭만적인 분위기를 선사했다. 이종일 거창국제연극제 집행위원장은 “거창국제연극제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는 연극제”라며 “평소 보기 힘들었던 야외 연극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100억 원 넘는 경제효과 창출 거창군은 인구 6만4000명의 작은 군이다. 하지만 매년 여름 이곳에서 열리는 거창국제연극제는 전국 최대 규모의 연극 축제다. 1989년 시월연극제로 시작한 거창연극제는 1993년 해외단체가 참가하고 1998년 시즌을 여름으로 바꾸고 수승대로 무대를 옮기며 본격적인 야외 연극제 시대를 열었다. 수승대 계곡 인근 야외무대 헝가리 등 10개국 45개 팀 참여 수승대를 찾은 피서객(관객)들을 찾아가 공연한다는 전략은 적중했다. 2003년 6만3711명이었던 관람객은 2004년 11만3024명, 2005년 15만4823명, 2006년 17만423명, 2007년 15만941명, 2008년 15만6374명을 기록했다. 신종 인플루엔자 때문에 취소됐던 지난해를 빼면 최근 5년 동안 꾸준히 15만 명 이상의 관객을 모은 것이다. 경남발전연구원과 국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거창국제연극제의 지역경제 파급 효과는 2006년 133억5000만 원, 2007년 119억9000만 원, 2008년 166억8000만 원 등 100억 원을 꾸준히 넘고 있다.○ 기대작은 예매 필수 거창국제연극제에서는 유료와 무료 공연이 함께 열린다. 보통 낮에 열리는 거리 공연은 무료이고, 저녁에 오르는 극장 공연은 유료다. 지난달 31일 유료 공연인 ‘로미오와 줄리엣’, 국악뮤지컬집단 타루의 ‘애플그린을 먹다’는 매진이 됐다. 관심 있는 공연은 예약하고 가는 게 좋다. 구약성서 ‘욥기’ 등의 이야기를 다룬 일본 극단 고로루의 ‘이대로, 그대로, 저대로의 신’, 어린이와 청소년 공연 전문 극단인 세르비아 극단 두스코라도비치의 ‘폭신폭신 베개 속 이야기’, 이솝 우화를 그린 슬로바키아 슬로바크 체임버극단의 ‘이상한 이야기’ 등이 기대작으로 꼽힌다.객석 소음 그대로 전달 장터 공연 같은 정겨움도 야외극장은 관객이 밀집된 까닭에 무덥고, 플라스틱으로 만든 좌석은 딱딱하다. 부채나 휴대용 방석을 챙겨 가면 좋다. 작품에 상관없이 입장료는 성인 1만5000원, 학생은 1만 원. 055-943-4152, 3거창=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한여름 밤 서울 도심의 고즈넉한 한옥 안마당에서 흥겨운 국악을 들으며 막걸리를 마실 수 있는 이색 콘서트가 열린다. 서울남산국악당은 8월 2∼6일 오후 8시 국악당 마당에서 막걸리와 함께 국악 공연을 즐기는 ‘별빛 달빛 콘서트’를 연다. 서울 중구 필동 남산한옥마을 안에 위치한 남산국악당은 서울에서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는 대표적 장소로 꼽힌다. 막걸리를 마시며 1시간 반 동안 공연을 즐길 수 있는 입장료는 단돈 1000원. 막걸리회사 ‘참살이탁주’가 하루 막걸리 100병(500mL들이)씩 모두 500병을 협찬했다. 프랜차이즈업체 ‘종로빈대떡’이 제공하는 빈대떡은 한 장에 3000원씩을 별도로 받는다. 남산국악당 관계자는 “막걸리는 제한 없이 드릴 생각”이라며 “준비한 500병이 2, 3일이면 떨어질 것 같아 다른 양조장의 협조를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무용과 판소리 등을 선보이는 서울시청년예술단(2, 4일), 국악에 도시적인 느낌을 첨가한 ‘키네틱국악그룹 옌’(3일), 타악 위주의 퓨전국악그룹 ‘이스터녹스’(5일), 가야금과 베이스기타 등의 기악연주(6일)가 무대에 오른다. 마당이 협소해 하루 관객은 200명만 받는다. 02-2261-0513∼5황인찬 기자 hic@donga.com}

《국내 뮤지컬계에서 7, 8월 여름 시즌은 연말과 함께 시장이 달아오르는 호황기로 꼽혀 왔다. 그러나 올해는 여건이 나은 대형 뮤지컬조차 고전을 면치 못하는 등 뮤지컬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내년 초 무대에 오르려던 한 대형 뮤지컬은 제작이 무산될 것으로 알려져 제작자들의 불안은 한층 커지고 있다.》○ 하반기 기대작 주춤, 내년 기대작은 좌초 올 하반기 가장 기대를 모은 뮤지컬은 8월 13일부터 LG아트센터에서 국내 초연되는 ‘빌리 엘리어트’다. 1980년대 영국 북부 탄광촌을 배경으로 광원 아버지를 둔 11세 소년 빌리가 발레리노가 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2005년 영국에서 초연됐고, 2008년 미국 브로드웨이로 건너가 지난해 토니상 10개 부문을 석권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개막을 2주가량 앞둔 이 작품에 대한 국내 반응은 기대에 못 미친다. 28일 인터넷 예매사이트 인터파크의 주간랭킹에서 전체 공연 가운데 26위에 그치고 있다. 제작기간 3년에 제작비 135억 원(무대제작비 25억 원)이란 규모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이다. 뮤지컬계에서는 ‘빌리 엘리어트’가 침체된 뮤지컬 시장의 활로를 뚫어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현재로선 그 가능성이 낮은 셈이다. 메인투자사인 인터파크INT의 홍승희 공연사업본부팀장은 “티켓 판매율이 걱정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작품성이 높기 때문에 개막 후 상황이 좋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내년 1월 18일∼2월 27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국내 초연될 예정이었던 뮤지컬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최근 제작 철수를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연에 참여한 한 공연관계자는 “뮤지컬 시장이 극심한 침체를 겪고 있어 ‘흥행성이 없다’는 최종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2008년 영국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현지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한 데다 4시간 가까이 되는 긴 공연 시간도 국내 현실에 맞지 않아 흥행성에 의문이 제기돼 왔다. 마케팅 효과를 높이기 위해 주연에 톱스타를 캐스팅하려 했으나 실패하는 등 캐스팅에도 난항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예매 상위 작품들도 눈에 띄는 ‘빈자리’ 예매 순위 상위를 기록한 작품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 예매순위가 높은 경우도 매출에 실질적 도움을 주는 객석점유율은 지난해보다 떨어졌기 때문이다. 9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키스 미 케이트’는 평일 전체 객석(1494석)의 절반가량인 600∼800석만을 채운 채 공연되고 있다. 20억 원의 제작비에 뮤지컬 스타인 최정원 남경주 씨가 출연하지만 고전하는 셈이다. 제작사인 신시컴퍼니의 최승희 홍보팀장은 “지난해 같은 시기, 같은 장소에서 공연했던 뮤지컬 ‘맘마미아’보다 30% 정도 관객이 적다”고 말했다. 5월 14일부터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미스 사이공’은 70%를 약간 웃도는 객석 점유율을 나타내고 있다. 2006년 국내 초연 당시에는 대부분 만원 관객을 기록했다. 지난해 9월 23일 샤롯데씨어터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도 상황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제작사 설앤컴퍼니는 9월 11일 폐막 때까지 객석점유율 75%를 목표로 세웠지만 올해 들어 관객이 급감해 목표 달성이 힘든 상황이다. 설앤컴퍼니의 신정아 홍보팀장은 “현재 총관객 30만 명에 근접했지만 대규모 제작비(250억 원)를 들인 만큼 큰 수익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한국편집기자협회(회장 이혁찬)는 제106회 이달의 편집상 수상작으로 동아일보 하승희 기자의 ‘단일화가 참 좋은데…내가 그만둘 순 없고…’(9일자 A8면·종합 부문) 등 4편을 선정했다고 26일 밝혔다. 시상식은 협회 홈페이지(www.edit.or.kr)를 통해 추후 공지한다.}

막대기 끝에 올려져 돌아가는 대접 모양의 버나가 아슬아슬하다. 버나가 올려진 막대기의 좁은 밑동을 배우가 다른 막대기로 들어 올리자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서커스 같은 공연은 1시간 반 내내 이어졌고, 공연장은 유쾌했다. 22∼25일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무대에 오른 광대놀음극 ‘아비 찾아 뱅뱅 돌아’는 기예 종합 세트를 보는 듯한 공연이었다. 잊혀져 가는 전통놀이인 버나놀이를 주축으로 저글링, 수피댄스(제자리에서 도는 이집트 전통춤), 상모돌리기 등 ‘뱅뱅 도는’ 것들이 한데 집합했다. 걷어 올린 한복 바지 밑단(의상 조성미)이 경쾌한 느낌을 주었고, 거미줄로 만든 대나무 숲을 연상시키는 공간(무대 김려원)도 신화적인 이야기와 잘 어울렸다. 이 작품은 5월 의정부 음악극축제에 초청됐고 이달 말엔 밀양여름공연축제에서 공연된다. ‘버나놀이를 좋아해서 극을 기획했다’는 제작진의 말처럼 공연의 중심은 남사당놀이의 여섯 종목 가운데 하나인 버나놀이다. 첫 장면부터 돌기 시작한 버나는 막이 내릴 때까지 돌고 돈다. 배우들이 버나를 공중으로 던져서 주고받거나(던질사위), 다리 사이로 버나를 넣거나(다리사위), 등 뒤로 버나를 돌리는(단발령넘는사위) 등 각종 버나놀이의 기술을 극에 녹였다. 큰 막대기로 지름 2m의 대형 버나를 돌리는 장면도 일품이다. 버나를 어린아이로 표현하거나 상모의 길이를 오줌발의 세기로 표현한 것도 재치 있었다. 여든 살 넘은 점쟁이 할머니가 뒤늦게 낳은 아들 ‘붉은 점’이 숲 속에서 짐승처럼 홀로 자라다가 세 아버지를 찾아가 인간성도 사랑도 찾는다는 줄거리 구조는 흥미롭다. 반면 그 얘기를 풀어가는 세부 과정이 다소 거칠었다. ‘속 타 죽고, 골치 아파 죽고, 기운 빠져 죽은’ 세 아버지의 사고사(事故死) 에피소드는 억지스러웠고, 밋밋한 결말 탓에 커튼콜이 시작된 뒤에야 뒤늦게 박수를 치는 관객도 적지 않았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i: 1만∼2만 원. 7월 31일, 8월 1일 오후 8시 밀양여름공연축제 숲의극장. 055-355-1945∼6}

“돌아보면 내가 살아낸 세상은 연륜으로도, 머리로도, 사랑으로도, 상식으로도 이해 못할 것 천지였다.”(박완서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 노(老)작가가 보기에 세상은 과연 그러하다. 소설가 박완서 씨(사진)의 새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현대문학)에는 그 이해 못할 세상에 대한 날선 비난이 서려 있다. 2008년 소설집 ‘친절한 복희씨’뿐만 아니라 지난해에는 짧은 산문 모음 ‘세 가지 소원’과 동화집 ‘나 어릴 적에’를 내는 등 활발한 글쓰기를 계속해 온 그다. 올해 팔순을 맞은 박 씨는 “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남아 있어서 행복하다”면서 “쓰는 일은 어려울 때마다 엄습하는 자폐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구하고, 내가 사는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속시켜 주었다”고 털어놓는다. 6·25전쟁 60주년에 이르도록 그해의 나이인 스무 살에 영혼의 성장이 멈췄다고 말하는 작가는 산문집에서 1·4후퇴 당시의 추위를 잊을 수 없다고 고백한다. 군부대의 오발로 다리에 총상을 입은 오빠를 손수레에 싣고 가느라 고생하던 차에, 수레바퀴가 빠져버려서 인근의 빈집에 숨은 채 혹독한 추위를 겪어야 했던 것이다. 박 씨는 “이념이라면 넌더리가 난다. 좌도 싫고 우도 싫다. 진보도 보수도 안 믿는다”며 이념 충돌이 낳은 비극의 무자비함을 성토한다. 그래서 천안함 사건에서도 작가는 전쟁의 비극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그 사건에 낀 우리의 입장, 주변국과 강대국의 태도, 북에 대한 의구심과 적개심, 그 정당한 분노조차 자제해야 할 것 같은 그래도 전쟁만은 피해야지 하는 마지막 평화주의.” 작가는 그 평화주의가 “진상(眞相)까지도 피해가고 싶을 만큼 비겁한 것”이라고 덧붙임으로써 전쟁의 공포를 역설적으로 강조한다.6·25때 겪은 전쟁의 공포 ‘천안함’에서 다시 떠올라황금만능주의 길들여진 우리의 얼굴에 소름끼쳐 2008년 숭례문 방화사건을 대하는 심경도 참담하다. “집을 철거당하고 그 보상금이 터무니없이 낮아서 분풀이로 불을 질렀다고 너무도 태연하게 말하는 그의 뻔뻔스러움에는 소름이 끼쳤다. 결국은 돈이었다.” 우리 사회에 드리워진 금전만능주의를, 자신의 일까지 돌이켜 반성하면서, 작가는 맹렬하게 비판한다. “책임져야 할 고위층이 다같이 형식적인 사죄 끝에 입에 올린 약속도 돈,… 돈자루를 틀어쥔 이들의 또 하나의 파렴치, 재건축 아파트를 사고팔아 막대한 이익을 올리고 그게 한 번도 불로소득이란 생각을 안 해본 나의 뻔뻔함. 그러고 더 많이 벌어 흥청망청 쓰는 사람만 보면 이놈의 세상을 송두리째 깽판 치고 싶다는 열화 같은 정의감의 그 못 말리는 뻔뻔스러움.” 작가는 “내가 소름끼쳤던 것은 아무리 정권이 바뀌어도 변함없이 받들어온 경제 제일주의가 길들인 너와 나의 얼굴, 그 황폐한 인간성에 대해서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산문집에는 그간 읽은 책에 대한 생각과 함께 김수환 추기경, 소설가 박경리 선생 등 세상을 떠난 이들에 대한 추모글도 묶었다.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일제 총독부는 1919년 서울 남산에 조선신사를 짓고 조선인들에게 일왕 숭배를 강요했다. 일왕가를 상징하는 거울 구슬 칼 등 3종의 신기(神器)를 신사에 두고 절을 하게 했다. 동아일보가 1920년 9월 25일자 사설에서 이를 꼬집었다. “경(鏡)으로 혹은 주옥(珠玉)으로, 혹은 검(劍)으로, 기타 하등 모양으로든지 물형(物形)을 작하야 혹처(或處)에 봉치(奉置)하고 신(神)이 자(玆)에 재(在)하며 혹 영(靈)이 자(玆)에 재(在)하다 하야 이에 대하여 숭배하며, 혹 기도함은 우상의 숭배라 할 것이다.” 이 사설은 일제가 우리 민족의 조상 숭배를 미신으로 몰고 단속하는 데 대한 반론으로 일왕가의 상징물을 우상 숭배로 비판한 것이다. 일제 당국은 이 사설이 나간 당일 동아일보에 첫 무기정간 처분을 내렸고, 정간은 이듬해 1월 10일까지 108일간 이어졌다. 1920년 4월 1일 창간한 뒤 반년도 안 돼 당한 무기정간 조치로 동아일보는 타격을 입었다. 재정이 악화돼 인쇄공 상당수가 회사를 떠났고, 어렵게 마련한 지방의 지국망들도 흔들렸다. 정간은 석 달 반 만에 풀렸지만 곧장 신문을 발행할 여건이 못돼 다시 신문을 내기까지 한 달 열흘이 더 걸렸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1921년 2월 21일 속간(續刊)호에서 일제의 탄압에 한 치의 뜻도 굽히지 않겠다고 다시 한 번 천명했다. “우리가 어찌 홀로 탄탄하길 바라며 안이한 걸음을 바랐으리오. 본보의 주지(主旨)에 어찌 일 점 변경이 있을 수 있으리오. 민중의 표현기관으로 민주주의 문화주의를 지지하는 본보의 주지에는 추호의 동요도 없을 것임을 천명하노라.” 속간 이후 동아일보는 1923년 1월 조선물산장려회가 토산품(국산품) 애용 운동인 물산장려운동을 시작하자 이를 상세히 보도했으며, 교육을 통한 민족운동 추진을 위해 1923년 3월 민립대학 설립을 위한 ‘민립대학 기성회’가 창립되자 발기인 전체 명단을 게재해 적극적으로 이를 알렸다. 1924년 10월 4일에는 회사 정관에 ‘주주는 조선인에 한한다’는 조항을 삽입하며 민족 언론의 길을 거듭 다짐했다. 김용직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3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동아일보는 창간 후 사회 공론의 장이 됐으며 일제에 대한 비판 기능도 충실히 해나갔다. 물산장려운동, 민립대학 설립운동 등을 추진한 것도 문화운동을 넘어선 정치적 항거였다”고 말했다. 일제는 1926년 3월 6일 2차 무기정간을 내려 다시 동아일보 탄압에 들어갔다. 소련의 국제농민본부가 보내온 3·1운동 7주년 기념 메시지를 실었다는 게 이유였다. 송진우 주필과 김철중 편집인 겸 발행인이 각각 보안법과 신문지법 위반으로 기소돼 징역 6개월과 금고 4개월의 판결을 받았다. 1930년 4월 16일엔 미국 ‘네이션’의 빌라즈 주필이 보낸 창간 10주년 기념사 게재건으로 3차 무기정간을 받아 138일간 발행이 금지됐다. 1936년 8월 25일엔 11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孫基禎) 선수의 시상식 사진에서 일장기를 삭제해 게재했다.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으로 현진건 사회부장 등이 구속됐고 4차 무기정간을 당했다. 9개월여가 지난 1937년 6월 3일에야 속간됐다. 네 차례 무기정간 외에 판매금지와 압수도 빈번했다. 1920년 4월 15일자의 ‘평양에서 만세소요’라는 제목으로 평양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상세히 전했다가 첫 판매금지 및 압수 조치를 받았다. 이후 폐간 때까지 20년 동안 판매금지는 63회, 압수는 489회에 이르렀다. 기사가 삭제된 것은 2434회나 됐다. 일제는 1937년 7월 중일전쟁을 일으킨 뒤 국내 언론에 대한 통제 수위를 한층 높였다. 일제는 1938년 도(道) 경찰부장 회의에서 “전시체제 아래 언론기관의 국가적 책무가 무거운 이유를 설명하고 지도단속에 만전을 기하라”며, 1939년 회의에서는 “성전(聖戰)의 목적 달성에 매진하는 실상을 내외에 선전토록 할 것”이라며 언론 통제의 고삐를 죄었다. 1939년 9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일제는 본격적으로 조선인의 황민화(皇民化) 정책에 착수했다. 1939년 11월 조선민족 고유의 성명제를 폐지하고 일본식 씨명제를 강압적으로 따르게 하는 ‘창씨개명’도 실시했다. 일제 총독부는 11월 하순부터 동아일보의 자진 폐간을 종용했다. 1940년 6월 초엔 “신문지 파지를 식당에서 구입했다”며 트집을 잡아 ‘(전시) 배급물자 불법처분’의 구실로 경리장부를 압수하고 김동섭 당시 경리부장을 구속했다. 폐간 구실을 찾던 일제는 동아일보가 송진우 고문 명의로 수만 원을 은행에 저금했고, 보성전문에 유휴자금 2만 원을 빌려주고 있는 점을 들어 당시 임정엽 상무와 국태일 영업국장을 구속했다. 예금은 사옥 신축 기금이었고 대여금은 이자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문제가 될 사안은 아니었다. 하지만 일제는 대여금을 문제 삼아 김성수 보성전문 교장을 배임횡령으로 몰아 그해 7월 중순부터 경찰에서 연일 심문했다. 송진우 명의의 예금은 독립운동 자금이었다는 혐의를 만들어 백관수 사장 이하 간부를 대거 구속했다. 종로경찰서 사찰과장실에 수감된 동아일보 중역들은 강제로 폐간계 제출을 강요받았지만 백 사장은 이를 거부했다. 일제는 발행인 겸 편집인 명의를 중병을 앓던 임 상무로 변경하도록 강요한 뒤 임 상무 명의로 폐간계를 내게 만들어 눈엣가시 같았던 동아일보의 입을 틀어막았다. 이로써 동아일보는 창간 20년 만인 1940년 8월 10일 강제 폐간됐다. 동아일보는 1940년 8월 11일자에 실은 폐간사에서 “한번 뿌려진 씨앗인지라 오늘 이후에도 싹 밑엔 또 새싹이 트고 꽃 위엔 또 새 꽃이 필 것을 의심치 않는 바이다”라며 굽히지 않는 언론의 정도를 이어갈 의지를 밝혔다. 동아일보는 5년 뒤인 1945년 12월 1일 복간돼 해방 조국에서 이 약속을 지켰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손기정 일장기’ 지워 줄줄이 연행▼사장-주필 사직… ‘신동아’ 폐간 ‘聖戰(성전)의 最高峯征服(최고봉정복) 待望(대망)의 올림픽마라손 世界(세계)의 視聽(시청) 集中裏(집중리) 堂堂(당당) 孫基禎君優勝(손기정군우승), 南君(남군)도 三着堂堂入賞(삼착당당입상)’(1936년 8월 10일자 동아일보 호외) 1936년 8월 9일, 오후 11시(한국 시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이 시작됐다. 이튿날인 10일 새벽 2시간29분19초2의 기록으로 손기정 선수가 1위로 골인했다는 소식이 들어오자 동아일보는 호외로 쾌거를 알렸다. 또 동아일보는 ‘올림픽 세계 제패의 노래’를 공모했고 대회 기록 영화를 입수해 경성부민관(현 서울시의회 본관)에서 9차례 공개 상영하며 민족의 자긍심을 높였다. 보름이 지난 8월 25일자 동아일보 석간 2면에는 월계관을 쓰고 수상대에 오른 손 선수의 사진이 실렸다. 일본 주간지 ‘아사히 스포츠’에 실린 사진을 복사해 실은 것이지만 손 선수의 가슴 부위에 있던 일장기는 지워져 있었다. 당시 체육부 이길용 기자와 이상범 화백이 주도한 일장기 말소였다. 26일 부임한 미나미 지로 조선총독은 이를 보고 29일자로 동아일보 무기정간 처분을 내렸다. 이 기자와 이 화백을 비롯해 현진건 사회부장과 신낙균 사진과장, 백운선 서영호 기자, 편집자 장용서 임병철 기자가 연행됐다. 같은 사진을 월간지 신동아에 게재한 최승만 잡지부장과 잡지 사진부의 송덕수도 연행됐다. 이 중 이길용 이상범 백운선 서영호 신낙균 장용서 현진건 최승만 등 8명은 40일간 구속됐고 이길용 현진건 최승만 신낙균 서영호 5명은 일제 강압에 의해 ‘언론기관에는 일절 참여하지 못 한다’는 서약서에 서명하고 동아일보를 떠나야 했다. 그해 말까지 동아일보사 송진우 사장과 장덕수 부사장, 김준연 주필, 설의식 편집국장도 신문사를 떠났고 인촌 김성수는 소유 주식을 모두 내놓아야 했다. 신동아와 신가정 등 동아일보에서 내던 두 잡지는 강제 폐간됐다. 광복 이후 1945년 12월 1일자로 동아일보가 중간(重刊)되면서 일장기 말소사건으로 강제퇴직했던 사람 중 희망자는 모두 복직했다. 이길용 기자는 사업부장으로, 백운선 사진반원은 사진부장으로 복직해 활동하다 6·25전쟁 때 납북됐고 설의식 편집국장은 주간 및 편집인으로, 장덕수 김준연은 1947년 2월 이사로 복직했다.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총독은 뱀의 혀로 조선인을 기만치 말라”▼■ 東亞에 실렸던 항일 표현들 “재등 총독이여, 당국 제공(諸公)이여, 그 태도와 정책을 명백히 하고 가식과 허위로 무차별이니 일시동인(一視同仁)이니 선정덕정(善政德政)이니 하는 사(蛇)의 설(舌)을 농(弄)하야 조선인을 기만치 말지어다.” 1920년 7월 22일 동아일보 1면 사설 일부다. 나흘 전 일본 경찰이 경성(서울) 단성사에서 열린 일본동경유학생 학우회 주최 순회강연을 중단시키고 해산시킨 것을 비판한 사설이다. 당시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齋藤實)의 실명을 거론하며 ‘뱀의 혀를 놀리지 말라’고 썼다. 일제강점기 때 사설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노골적인 항일표현이다. 창간 직후인 1920년 4월 9일 1면 기명 논설에선 이 같은 강력한 항일논조의 씨앗이 보인다. 추송(秋松)이란 필명으로 발표된 이 논설은 “조선인의 독립사상과 애국정신은 조선인의 혈액과 뇌수(腦髓)에 의하야 발생하는 자(者)”라며 “여하(如何)히 선각자와 유식자를 억압 취체(取締)할지라도 조선혼(朝鮮魂)과 독립사상은 추호도 타격을 수(受)할 바이 무(無)하리로다”라고 천명했다. 1922년 2월 7일 ‘전제정치를 타파하라’는 1면 사설도 이에 못잖다. “조선인이 실로 행복을 기망(企望)하고 발달을 요구할진대…그 전제제도를 타파함이 가(可)하도다”라고 일제 통치를 정면 비판했다. 1922년 9월 16일 2면 ‘횡설수설(橫說竪說)’난은 일본에서 발간된 잡지의 논문을 인용해 “일선(日鮮)융화는 역사상으로 보아 도저히 불가능한 바”라며 “민족자결주의는 세계의 대세가 되야 애란(愛蘭·아일랜드)이 자유국이 되고 애급(埃及·이집트)이 보호령의 기반(羈絆·굴레)을 탈(脫)한 금일에 조선을 독립케 함은 당연한 일일 뿐 아니라 일본의 장래를 위하야 이익”이라고 과감히 조선의 독립을 주장했다. 서슬 퍼런 일경을 향해 “저능하다”고 몰아붙이기도 했다. 1926년 7월 21일 1면 사설은 세계평화와 인류의 자유 증진을 내세운 아세아민족회의의 일본 나가사키 개최를 허용하면서 정작 조선인의 관련 집회를 금지한 일본 당국을 비판했다. 사설은 “경찰 행정이 저능이요 몰상식”이라며 “그 추잡한 권력자 등의 궤책(詭策·간사한 책략)에 붓을 더하고저 아니 한다”고 질타했다. 일제의 빈번한 집회금지를 비판한 1927년 10월 25일 1면 사설은 세간의 말을 간접 인용하는 방식으로 일제의 실정을 우회 비판했다. “조선 사람은 하등의 자유가 업다. 그뿐 아니라 대부분의 조선 사람들은 먹을 것 업시 방황하는 중이다. 이와 가튼 현상에 잇서서는 차라리 감옥 생활하는 것이 나흘 것이다.”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