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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노을여가센터를 찾은 어린이들이 ‘맛있는 생태요리방’에 들어서며 외쳤다. “개구리다!” 요리교실 선생님 임효정 씨(30·여)는 “개구리가 아니라 월드컵공원에 살고 있는 맹꽁이예요”라고 바로잡았다. 월드컵공원을 가족과 자주 찾았다는 노하준 군(6)이 “저도 ‘맹꽁이차’ 타봤어요”라고 반갑게 이야기했다. 자리에 앉은 어린이 16명은 곧 임 씨의 설명에 따라 ‘상투과자’를 만드는 데 빠져들었다. 상투과자는 강낭콩 앙금에 녹차 백련초 아몬드 단호박 가루로 색을 내고 상투 모양으로 만들어 구운 달콤한 쿠키다. 노을여가센터는 3개월 전만 해도 방치된 골프장 클럽하우스였다. 난지도 골프장이 운영될 때 매점과 샤워실로 이용되던 공간이지만 2008년 녹지를 시민에게 돌려달라는 여론에 따라 공원화되면서 쓸모가 없어졌다. 이후 건물 일부만이 공원 내 이동수단인 ‘맹꽁이차’ 차량 기지 및 사무실로 이용됐다. 그런 클럽하우스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2014년. 방치된 공간을 ‘베를린 여가·휴가센터(FEZ)’와 같은 휴식공간으로 만들자는 의견에 따라 리모델링이 시작됐다. 수차례의 자문회의를 거쳐 난지도 위에 세워진 월드컵공원이 생태복원의 상징인 만큼 ‘생태교육’과 ‘오감체험공간’으로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매점은 요리체험 공간으로, 탈의실과 샤워실은 비누와 향초를 만드는 환경공방으로 탈바꿈했다. 평일 오전 1회, 주말 오전·오후 2회에 걸쳐 생태요리교실과 환경공방이 지난해 12월 29일부터 시범 운영되고 있다. 생태요리교실은 공원에서 자란 농작물과 지역 농산물을 이용해 ‘피자, 상투과자, 컵떡 만들기’가 번갈아 진행된다. 환경공방에서는 공원에서 나오는 나뭇가지와 열매를 활용해 책상 스탠드와 천연 비누, 화장품, 양초를 만든다. 센터 관계자는 “2주 전부터 예약이 되는데 주말은 1월 둘째 주까지 꽉 찼다. 인근 지역뿐 아니라 강남에서도 가족 단위로 찾아오고 아이를 데려오는 아빠들도 많다”고 했다. 고사리손으로 만든 갖가지 모양의 상투과자를 든 어린이들은 신나서 재잘대며 노을여가센터를 나섰다. 과자를 맛보라는 선생님의 말에 남혜리 양(6)은 “집에 가져가서 엄마랑 나눠 먹을래요”라고 했다. 이옥영 공덕삼성어린이집 원장(56·여)은 “같은 프로그램을 사설 업체에서 하면 1인당 1만원인 데 비해 훨씬 저렴하고 손으로 직접 만드는 체험활동이라 아이들의 집중도가 높았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센터 관계자는 “앞으로는 어린이뿐 아니라 노인이나 장애인 복지관에서도 단체로 찾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며 “2월부터는 성인도 즐길 수 있는 명상 프로그램이 추가로 운영된다”고 밝혔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014년 서울 지하철 7호선 논현역 8번 출구 근처에 서점이 문을 열었다. 강남구에 서점이 새로 들어서기는 20년 만에 처음이다. 서점의 이름은 ‘북티크’. 책만 파는 곳이 아니다. 특이하게 이곳에서는 술도 판매한다. 또 금요일마다 ‘불금 심야 서점’이 열려 책 읽기 행사도 진행된다. 은평구의 ‘프레드릭 맛있는 그림 레스토랑’은 식당이 아니다. 이곳은 그림책 전문 서점이다. 또 마포구의 ‘프렌테’는 음반과 함께 음악 관련 서적을 파는 곳이다. 이처럼 톡톡 튀는 개성을 가진 동네 서점이 조금씩 늘고 있다. 그러나 별다른 광고도 없어 개인 블로그의 후기나 입소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동네 서점 지도’가 등장하면서 동네 서점을 찾는 이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다. 이는 정보기술(IT) 업체인 퍼니플랜이 지난해 8월 선보인 정보 서비스다. ‘함께 만드는 #동네서점지도’라는 제목의 서비스는 서울시내 동네 서점 50여 곳의 위치 정보를 구글 지도에 옮긴 것이다. 동네 서점 애호가들의 참여가 이어지면서 현재는 전국 서점 100여 곳의 정보가 수록돼 있다. 동네 서점의 특색을 살려 술을 판매하는 북티크는 와인잔으로, 그림책 전문 서점인 프레드릭은 팔레트로, 프렌테는 음표로 각각 지도에 표시된다. 임시로 문을 닫은 서점은 느낌표가 그려진 빨간 삼각형으로 표시된다. 정보 제공 대상은 독립 출판물을 판매하거나 지역적 특색을 살린 동네 서점만 해당된다. 대형 서점은 제외된다. 남창우 퍼니플랜 대표(43)는 “‘서울의 동네 서점을 찾을 수 있는 지도가 있느냐’는 일본 독립 출판물 관계자의 질문에 말문이 막혀 지도를 개발했다”며 “외국인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구글 지도를 활용했다”고 말했다. 박종원 북티크 대표(33)는 “처음 심야 서점을 기획했을 때 사람이 얼마나 올지 걱정했는데 20명 가까이 모여 놀랐다”며 “동네 서점 지도를 통해 더 다양한 사람이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퍼니플랜은 지난해 12월부터 포털사이트에 동네 서점 이야기를 연재하며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제작을 위한 비용을 크라우드 펀딩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남 대표는 “지도를 제작하면서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느꼈다”며 “앱을 통해 서울뿐 아니라 전국의 애서가들이 동네 서점을 손쉽게 찾도록 만들고 싶다”고 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붉은 원숭이의 해가 밝았다. ‘붉은색은 행운과 부를 상징한다’거나 ‘원숭이는 재치와 지혜를 상징한다’는 등의 갖가지 해석이 쏟아진다. 하지만 달력 한 장이 넘어간다고, 하루가 지났다고 갑자기 큰 변화가 일어나진 않을 것이다. 거창한 의미 부여 대신 새해를 맞은 원숭이띠들의 소망을 들어봤다. ‘좋아하는 친구와 같은 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초등학생부터 ‘30년간 운영해 온 정육점을 계속하고 싶다’는 60대까지. ‘소확행(小確幸)’,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이야기하는 원숭이띠들의 마음이 이미 2016년 새해를 가슴 뛰고 설레는 날로 만들고 있다. 올해로 학교에서 가장 높은 학년이 되는 경기 군포 태을초등학교 5학년 1반 어린이 20명의 새해 소망을 들어봤다. 담임 정철수 선생님이 나눠준 종이에 어린이들은 또박또박 소망을 적어 나갔다. ‘시험을 잘 봤으면 좋겠다’는 모범 답안부터 ‘인피니트 콘서트 티켓을 갖고 싶다’는 대답까지. 20가지의 다양한 소망들이 쏟아진 가운데 정서현 양(12)은 “공부를 열심히 해서 ‘올백’을 맞고 싶다”고 하면서도 마지막에는 “아이스크림을 배터지게 먹어보고 싶다”고 했다. 새해 만나게 될 선생님과 친구들에 대한 소망을 이야기한 어린이도 많았다. 이윤서 양(12)은 “좋아하는 친구와 6학년 때 같은 반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적었다. “무서운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한 어린이도 있었다. 조예원 양은 “우리 가족과 내 친구들이 모두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해 선생님을 감동시켰다. 사회인이 되기 위한 마무리 과정을 밟고 있는 20대들은 ‘도전’이 잘되길 바랐다. 한양대 경영학과 4학년인 김대원 씨(24)는 올해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나 인턴을 가려고 계획 중이다. 김 씨는 “인생의 큰 도전이어서 낯설다”면서도 “농구를 좋아해 미국프로농구(NBA) 경기를 꼭 직접 관람하고 싶다”고 했다. 취업준비생인 정새미 씨(24·여)는 2015년 인턴을 하면서 체력의 한계를 느껴 시작하게 된 수영을 더 잘하고 싶다고 했다. 정 씨는 “2016년에 아마추어 수영대회를 나가는 게 목표”라고 했다. 위성주 씨(24)는 “진로, 가족, 연애 이 세 가지만 잘됐으면 좋겠다”며 “대학원 입학시험을 잘 치렀으면 좋겠고 지난주 입대한 동생이 훈련을 씩씩하게 마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30대 후반으로 접어드는 1980년생 원숭이띠들은 어린 자녀들을 두고 있거나 출산을 계획하고 있어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올해로 결혼 3년 차를 맞는 장경희 씨(36)는 “저와 같은 원숭이띠의 건강한 아이가 태어나길 기대한다”고 했다. 이혜진 씨(36·여)는 네 살배기 아들과 두 살배기 딸을 돌보기 위해 신청한 육아휴직이 끝나 올해 복직하게 된다. 이 씨는 “비록 일을 쉬었지만 업무 공백 없이 잘 적응하는 것이 첫 번째 소원이지만 가끔은 가족과 함께 여행도 다닐 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고 했다. LG전자의 모바일 기획 분야에서 근무하는 곽윤선 씨(36·여)는 진급을 새해 소망으로 꼽았다. 곽 씨는 “모바일과 웹 분야는 계속해서 발전해가는 만큼 뒤처지지 않도록 공부해서 일로 성공을 거두고 싶다”고 했다. 1968년생 원숭이띠들은 최근 화제가 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직접 겪은 세대다. 홍승준 씨(48)는 “요즘 TV에 나오는 1988년 풍경에 무척 공감한다. 그때 내가 사는 울산에서도 노동운동이 가장 활발했다”며 “이제는 한국 사회의 정치·경제 시스템이 세련된 만큼 ‘나’를 찾는 것에 좀 더 집중하고 싶다”고 했다. 홍 씨는 평소 커피 제조와 사진 촬영, 시 쓰기를 취미로 하고 있다고 했다. 홍 씨는 “중학교 2학년인 작은딸이 ‘반에서 1등하면 담배를 끊어 달라’며 압박이 심해 지난해 초부터 담배를 끊었다. 오래전 금연 실패 경험이 있는데 올해는 부디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조용민 씨(48·여)는 자신이 조직한 협동조합 동아리의 수익 창출을 새해 소망으로 꼽았다. 조 씨는 “청소년 진로교육 강사로 활동하는 주부들과 조직한 ‘북서울신협 협동조합교육 동아리’에서 올해부터 도봉구의 청소년들에게 직접 진로 교육을 해줄 계획”이라며 “우리 조직이 수익도 내고 경력단절여성의 일자리를 더 창출하는 곳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올해로 환갑을 맞는 1956년생들은 자녀의 취업과 결혼 걱정이 앞섰다. 박상호 씨(60)는 “무엇보다 경제가 좋아져서 자식들의 취업이 잘되고 또 결혼하는 데도 어려움이 없었으면 좋겠다. 요즘 세대들은 고생 없이 자랐는데 미래가 암울하다는 말이 많아 걱정스럽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의 도심인생이모작센터에서 자서전 쓰기 강의를 하는 장영희 씨(60·여)는 “올해 두 번째 책을 내고 싶다”고 했다. 장 씨는 지난해 11월 24일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으로 또래 베이비부머 17명과 함께 책을 만들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4일 오전 11시경 서울 도봉구 창북중학교 근처 골목. 쓰레기 무단투기를 막기 위한 ‘스마트 경고판’에 취재진이 접근하자 “폐쇄회로(CC)TV 녹화 중입니다. 쓰레기를 다시 가져가세요. 무단투기 적발 시 10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라는 음성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지나던 주민까지 소리를 듣고 경고판을 바라봤다. 불과 수개월 전만 해도 이곳은 쓰레기로 몸살을 앓았다. 하지만 지금은 쓰레기 흔적을 찾기 힘들 정도로 깨끗해졌다. 도봉구 관계자는 “올해 8월부터 스마트 경고판 10대를 설치했는데 단순 촬영만 하는 CCTV보다 효과가 좋다”고 했다. 서울 중구도 47곳에 스마트 경고판을 운영 중이다. 회현동 주택가의 한 슈퍼마켓 앞도 쓰레기 무단투기가 심각했다. 주민 임미자 씨(52·여)는 “누군가 박스를 버리면 그 위에 또 다른 사람이 쓰레기를 버리고, 그러다 폐지 수집하는 분들이 박스만 가져가면 쓰레기가 여기저기 떨어져 지저분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경고판 근처만 가도 소리가 나니까 쓰레기를 거의 버리지 않는다”고 했다. 스마트 경고판 설치 외에도 벽화를 그리거나 전봇대 옆 그물망을 설치하는 등 각 지자체는 쓰레기 무단투기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스마트 경고판 설치비용은 하나에 약 200만 원. 하지만 중구의 한 주민은 “경고판이 설치된 곳은 쓰레기가 없지만 인적이 드문 뒷골목에는 여전히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감시나 단속보다 ‘시민 의식 개선’을 통해 무단투기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체면을 중시하는 한국인들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할 때만 공공질서를 지키는 태도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박희봉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동체의 이익이 곧 나의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성숙한 시민의식”이라며 “그런 의식이 우리 사회에 퍼져 있다면 쓰레기 투기가 곧 나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이라고 생각해 스스로 자제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CCTV나 경고판 설치가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는 있지만 우리가 왜 세금을 들여 이런 것을 설치하는지에 대해 토론하고 시민의식 교육도 병행해야 지속 가능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억 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의 1000번째 회원이 탄생했다. ‘사랑의 열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이심 대한노인회장(76·사진)이 서울 중구 모금회 사무실에서 5년 내 1억 원 기부를 약정해 아너 소사이어티 1000호로 등록됐다고 29일 밝혔다. 이 회장은 이날 약정식에서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시니어, 세대 갈등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책임을 다하는 노인의 모습을 보여 주고 어려운 시기를 살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용기를 전하고 싶어 가입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기부금은 모금회를 통해 미래 세대 육성 및 노인 의료 취약 계층 지원 사업에 절반씩 사용될 예정이다. 아너 소사이어티는 2007년 12월 시작해 올해 팝페라 테너 임형주 씨가 800호 회원, 길광준 미8군 제1지역 사령부 민사처장이 900호 회원으로 가입했다. 2008년에는 가입자가 6명에 그쳤지만 2012년 126명, 작년 272명, 올해 290명이 가입해 8년 만에 1000호 회원을 맞았다. 현재까지 모금회의 누적 기부 금액은 1087억 원이다. 허동수 공동모금회장은 “이번 1000호 회원 가입이 우리 사회가 더 밝은 미래로 나아가는 계기이자 추운 겨울 푸근한 선물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흙이 우수수 떨어질 것 같았다. 흙벽 위로 벽지를 발랐지만, 벽지까지도 빛바래 찢겨 나간 곳이 많았다. 28일 김현석 부평역사박물관 학술조사전문위원과 함께 찾은 인천 부평구 부평2동. 1940년대에는 ‘미쓰비시(三菱) 마을’ 또는 ‘삼릉’(미쓰비시를 한자 음으로 읽은 것)이라 불린 사택(社宅) 일부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미쓰비시는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 동원 피해 조사 및 국외 강제 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공식 확인한 일본 전범 기업 103곳 중 하나다. 사택들은 한 채, 한 채 독립적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일곱 채가 나란히 벽을 맞대고 있었다. 지붕 하나가 일곱 채 위에 얹혀 있는 형태였다. 그 끝에는 공용으로 쓰는 화장실이 붙어 있지만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을씨년스러운 모습이었다. 현재 이곳에 남아 있는 사택은 총 87채. 일본이 군수물자를 한창 만들어 내던 1940년대와 비교하면 10% 정도만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미쓰비시에는 조선인 1000여 명이 근무한 것으로 보인다. 안에 들어가 보니 성인 걸음으로 다섯 걸음이면 방 끝에서 끝까지 다다랐다. 노동자 4, 5명이 모여 살기에는 너무 비좁아 보였다. 현 주민들은 동네 이름을 여전히 ‘삼릉’이라고 불렀지만, 어떤 용도로 이 사택이 생겼는지 잘 몰랐다. 주민도 20여 명밖에 남지 않았다. 6·25전쟁 때 북에서 내려와 이곳에서 60여 년을 살아온 박모 씨(87·여)는 “옛날에 여기 살던 사람들은 다 사라졌는데 일본말을 많이 썼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사택에 살진 않았지만 남편이 미쓰비시에서 2년간 일했다고 밝힌 장가란 씨(86·여)는 “공장 노동자들은 오전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했는데 1년 내내 휴가란 건 없었다”고 회고했다. 김 전문위원은 “일단 공장에 들어오면 자발적으로 그만둘 수 없었고,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사택은 올해 3월 부평구 주거 개선 프로젝트 대상으로 선정됐다. 정혜경 강제동원피해조사위원회 조사1과장은 “한 채만이라도 상징적 의미로 남기거나 표지를 세워서 이 장소의 의미를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식민지 조선 청년들은 중국과 인접한 데다 항만 시설까지 갖춘 인천으로 끌려와 군수물자 생산에 동원됐다. 1939년 인천에는 남한 최대 군수공장인 인천육군조병창이 들어서기도 했다. 김 연구위원은 “밥 세 끼를 먹을 수 있는 등 해외로 끌려간 사람들보다는 나은 대우를 받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일본군 위안부나 해외 강제 징용을 피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설명했다. 삼릉 근처 소화여학교에 다니던 조선인 여학생들은 1940년부터는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미쓰비시나 조병창에 취업했다는 증언이 나온다. 조병창은 1953년 이후 미군 군수지원사령부(일명 캠프마켓)로 바뀌었다. 이날 찾은 충북 영동군 매천리 역시 과거에는 탄약을 저장한 땅굴이었다. 장시용 매천리 이장은 “매천리에는 167개 이상의 토굴이 있었지만 무너져 막힌 것을 제외하면 100여 개가 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 동굴은 와인 저장고로 사용되면서 코레일이 운영하는 와인 열차 관광 코스가 됐다. 폭 3∼4m, 길이 56m로 굽은 동굴에 와인 약 5만 병과 와인 오크통 35개가 보관돼 있다. 장 씨는 “우리 할아버지도 토굴 만드는 데 끌려갔는데 영동체육관 앞쪽 공터에 집단 주거지가 형성돼 그곳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토굴을 만들었다고 했다”고 증언했다. 1999년 이곳에 일제강점기에 강제 동원된 사실을 적은 표지판을 세웠지만, 관광객들의 관심은 아무래도 와인에 더 쏠렸다. 그나마 남아 있는 매천리 동굴은 다행스러운 편이다. 서울 강서구 가양동 ‘궁산터널’은 1940년대 굴착한 군사 시설물이지만 역사공원을 조성하겠다는 이유로 지방자치단체가 원형을 심하게 훼손했다. 그마저도 개장이 여의치 않자 2010년 결국 폐쇄했다.인천=김재형 monami@donga.com / 영동=김민 기자}
28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서소문별관에서 시청 공무원이 추락해 사망했다. 성탄절을 하루 앞둔 24일 서울시청 직원이 투신한 데 이어 4일 만이다. 남대문경찰서에 따르면 28일 오후 4시경 서울시 7급 직원 이모 씨(40)가 서소문청사 1동과 3동 사이 바닥에서 발견됐다. 청원경찰 신고로 119구급차가 출동해 병원으로 옮겼지만 숨졌다. 경찰이 폐쇄회로(CC)TV를 확인한 결과 이 씨가 사무실에서 비상구로 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주변에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유서 등 사망 원인을 밝힐만한 단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 씨는 올 1월 채용된 신입 직원이다. 급여 관련 업무를 맡다가 최근 계약부서로 업무 변경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전 인사담당자와의 상담에서 부서 변경에 대한 긍정적인 답변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평소 말이 없는 성격이었지만 오늘도 직원들과 점심을 먹는 등 자살 징후라고 볼만한 행동은 없었다”며 “가족과 불화나 직원간 불화에 대해서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앞서 24일에는 역시 서소문별관에서 대기관리과 직원 A 씨(48)가 사무실에서 떨어져 숨졌다. A 씨 유족은 사망 원인으로 인사이동에 따른 스트레스를 제기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이철호 기자 irontiger@donga.com}

《 노인 세대 대상 심층 인터뷰를 통해 ‘매너 노인’에 대한 솔직한 생각을 들었다. 마음은 매너를 지키고 싶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하소연이 많았다. 81세 할머니는 “다리가 아픈 우리는 뿌리 없는 나무다. 잠시라도 앉지 않으면 힘들다”고, 팔순 할아버지는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목소리를 크게 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장유유서가 제1의 가치인 줄만 알았지 21세기 ‘매너 노인’ 교육은 생각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노인층도 변화하는 사회 흐름에 맞춰야겠지만 젊은 세대도 노인 세대를 이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진단이다. 》 10월 9일 오후 7시 서울 종로에서 경기 의정부시로 향하는 지하철 1호선 열차. 노약자석이 가득 찬 상태에서 한 노인이 일반석에 앉은 20대 남성의 머리를 우산으로 내리쳤다. 머리를 맞은 최모 씨(22)는 그 자리에서 노인 이모 씨(73)를 경찰에 신고했고 이 씨는 동묘앞 역에서 붙잡혔다. 경찰 조사에서 이 씨는 “자리를 양보 안 하는 젊은것이 싸가지가 없어 때렸다”고 진술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씨는 지하철에 “어른이 서 있으면 자리를 양보해야지”라고 고함치다 최 씨가 쳐다보자 “뭘 째려보느냐”며 우산으로 때렸다. 최 씨는 이런 이 씨의 폭행에 대응하지 않고 바로 신고했고 합의도 해주지 않았다. 결국 이 씨는 폭행 혐의로 벌금 50만 원을 선고받았다. 이는 ‘싸가지 없는 젊은것은 때려도 된다’고 보는 노인 세대의 가치관과 오히려 이런 생각이 문제라고 보는 젊은 세대의 가치관 갈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본보 취재진은 노인과 전문가에게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노인들은 매너 교육은 받아본 적이 없고 살아온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전문가들은 연령이 권위를 갖는 시대가 지났는데도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인식이 갈등을 만들고 있다며 젊은 세대도 노인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몸이 말을 안 들어서 그렇다니까…”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관악구 강남구 일대에서 노인 35명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어봤다. 대부분 매너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어 낯설다고 털어놓았다. 이기범 씨(77)는 “어른들을 공경하라는 말만 들었지 줄서기처럼 서양식 교육은 따로 받아본 적이 없다”며 “할아버지들은 밖에 많이 나갈 일도 없으니 배울 필요를 못 느낀다”고 했다. 손인철 씨(80)는 “예전 교육에선 윗사람이 항상 먼저였는데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노인들은 배려하지 않고 다 일렬로 서 버리는 게 질서라고 한다. 평생 장유유서로 예절교육을 배운 노인들에겐 그런 게 와 닿지 않는다”고 했다. 신체적 제약 때문에 젊은이들을 배려할 여유를 갖지 못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김모 씨(81·여)는 “우리들은 뿌리 없는 나무다. 할머니들 중에 다리수술 안 한 사람이 있나.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서 있으면 쓰러질 것 같아 두렵다”고 했다. 김옥심 씨(84·여)도 “내가 봐도 할머니들이 막 제치고 앞서 나가려 할 땐 민망하지만 나이가 들면 나도 모르게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고 했다. 공공장소에서 큰소리로 말을 한다는 지적에 대해 김형인 씨(80)는 “귀가 먹어 이야기를 크게 할 수밖에 없는데 젊은 사람들이 핀잔을 주는 것 같아 슬프다”고 했다. “물건을 사러 가도 잘 설명해주지 않고 자기들 하는 식으로 해버리니까 자책감과 소외감이 든다”고 덧붙였다. 살아온 환경이 달라 젊은이들의 생각을 이해하기 힘들다는 의견도 있었다. 박영숙 씨(81·여)는 “옛날엔 못 먹고 살았으니 무조건 빨리 가야 먹을 것도 가져올 수 있었다. 전쟁을 겪은 세대는 ‘빨리빨리’ 근성이 남아 있다”고 했다. 박면종 씨(77)도 “전쟁 때 애를 많이 낳아 형제가 많다 보니 뺏기는 걸 싫어한다”며 “그러다 보니 행동도 빨라지고 자리 하나라도 남으면 먼저 앉으려고 한다”고 했다. 굴곡진 현대사를 겪은 노인들이 보상심리 때문에 난폭한 행동을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양현규 씨(85)는 “6·25전쟁, 월남전에 다 참전하고 대동아전쟁까지 겪었다”며 “내가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건국한 국가유공자”라고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며 “그것만으로 예우를 받으려는 노인들이 젊은이들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 같다”고 했다. 노인부터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이용혁 씨(75)는 예의범절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며 “요즘 시대에 줄을 서서 공공장소에 들어가는 게 예의라면 따라야 한다. 노인들도 젊은 시절이 있지 않았나”라고 했다. ○ 부모와 생활한 젊은 세대… 노인 이해 노력해야 전문가들은 핵가족화로 젊은 세대가 개인주의적 성향을 갖게 됐지만 노인들은 주로 대가족을 이루며 살아왔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조부모와 떨어져 생활한 젊은 세대들이 노인의 가치관을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동아일보와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의 여론조사에서도 가족 구성이 2대인 응답자의 58%가 우리 사회의 노인 세대에 대한 인식을 부정적으로 본 반면 3대 이상이 함께 사는 대가족 구성원은 52.2%가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본인의 능력과 역량으로 개인적 가치관이 중시되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나이가 많든 적든 그 자체로 존중해야 하는 존재”라고 했다. 이는 사회가 진보하면서 당연히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노인들은 나이를 기준으로 무조건 복종하라고 하고, 젊은 세대는 이를 이해하기 전에 반발심을 앞세운다는 것이다. 존댓말이 없는 영어에 익숙한 젊은 세대일수록 연장자를 불편하게 바라보는 경향도 있다. 서양처럼 나이에 상관없이 동등하게 대화하고 싶지만 단어 하나만 잘못 써도 “어른 앞에서 말버르장머리하고는…”이란 말을 쉽게 듣는 풍조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 이런 시대적 변화 속에서 과거의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는 노인들은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김형래 시니어 파트너즈 상무는 “이 세대를 자기가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이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일부 노인들이 권위적 행동으로 보상받으려고 한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의 결론은 세대 간 서로를 이해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자는 것이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대중교통 노약자석을 젊은 세대는 ‘사회적인 선의’라고 생각하지만 노인들은 ‘당위’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사회질서에 대해 세대 간 합의가 없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경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고령사회연구센터장은 “젊은 세대가 다른 연령보다 유독 노인이 튀는 행동을 했을 때 부정적 태도를 갖는 측면이 있다”며 “시니어 매너 교육도 좋은 시도지만 젊은 세대에도 노인에 대해 이해를 증진시키는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김민 kimmin@donga.com·박훈상 기자}

“가끔 보면 나이가 벼슬인 줄 아는 어른이 있어요. 사회에서 만나면 그냥 개인 대 개인일 뿐이죠. 서로 존중할 필요가 있는데 나이 든 분이 초면인데도 함부로 대하고 반말하고. 꼰대가 아닌 어른이 필요한 사회입니다.”(한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글) 동아일보는 10월부터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와 함께 젊은 세대가 노인 세대를 바라보는 시각과 그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빅데이터를 분석했다. 메조미디어는 젊은 세대가 주로 쓰는 다음아고라, 오늘의유머 등 11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게시글 151만5243건을 분석하고 할머니, 늙은이, 꼰대, 노슬아치(노인+벼슬아치) 등 노인 세대를 지칭하는 키워드 34개를 선정했다. 이를 이용해 노인 세대에 대한 생각을 밝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게시글 83만3374건을 통해 젊은 세대의 생각을 들여다봤다. 빅데이터 분석 결과 노인 세대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 표출이 45%로 긍정적인 의견(16%)보다 많았다. 노인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은 대중교통과 관련된 내용이 가장 많았다.○ 세대 간 전쟁터 ‘지하철 1호선’ 대중교통 중에서도 서울 지하철 1호선을 언급한 것이 가장 많았다. 올해 지하철 1호선 노인(65세 이상) 승차 비율은 19%로 다른 노선(8∼13%)보다 높았다. SNS에서 1호선은 ‘노인전용선’ ‘어르신 천국’ ‘앉을 확률 0%’ ‘헬게이트’ 등으로 불린다. “1호선을 타보면 어르신 보는 눈이 달라진다. 노인 세대에 대한 혐오가 생길 정도”라는 글도 자주 올라온다. 3일 하루 지하철 1호선을 타보니 다른 승객을 배려하지 않는 노인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이날 오후 2시경 청량리역을 출발한 지하철 객차 안은 파 냄새가 진동했다. 노약자석에 앉은 70대 할머니 2명은 커다란 검은 봉지에서 대파를 꺼내 다듬기 시작했다. 대파에서 떨어진 흙 때문에 바닥이 더러워졌다. 젊은 승객이 할머니를 향해 코를 막고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할머니는 “뭐 할머니들이 잠깐 그럴 수도 있지”라며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날 오전 10시 반경 서울역을 출발한 지하철 안에선 여기저기 신발을 벗고 있는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노약자석에서 등산복 차림의 70대 할아버지는 “발이 시리다”며 등산화를 벗고 다리를 쭉 펴고 앉아 있었다. 맞은편에 앉은 비슷한 연령의 노인도 마찬가지였다. 이 모습을 본 임신 3개월 차 김모 씨(32)는 “공공장소에서 신발 벗고 있는 모습이 불편하다”며 일반석 쪽으로 옮겨가 서 있었다. 지하철 1호선을 담당하는 한 보안관은 “장애인 휠체어 구역에서 돗자리를 펴고 여럿이 술을 마시고, 다짜고짜 젊은 세대에게 욕하는 노인도 있다”며 “이런 행동을 제지하면 ‘내 나이가 지금 몇 살인데’ 하며 화만 낼 뿐 고치려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특히 자리 양보 문제는 1호선의 갈등 요인이다. SNS에서 언급된 갈등 요인 중 33.9%가 자리 양보로 일어난 문제였다. 젊은 세대의 머릿속은 “노약자석이 아니면 자리를 양보해야 할 의무가 없다. 노약자석도 노인만 앉는 자리가 아니라 임산부, 환자, 어린이 같은 약자도 함께 앉는 자리다”란 생각이 지배적이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나이에 따른 위계질서 중심의 농촌공동체를 기억하는 노인 세대와 공공질서를 중시하며 도시에서 자란 젊은 세대 간의 생애경험이 극단적으로 갈리면서 충돌이 벌어진다”며 “압축성장 속에 급속히 가치관이 변하며 세대 간 접점이 벌어진 것이 그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이심 대한노인회 회장(76)은 자리 양보 문제를 풀 해법을 노인 세대에 제시했다. 일반석뿐 아니라 노약자석에 젊은 세대가 앉아 있더라도 그들도 속사정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해하려는 노력부터 하라는 것이다. “젊은이의 눈을 마주 보고 양보를 강요하면 젊은 세대는 무시하듯 눈을 감아요. 이러면 노인 세대는 눈을 뜨라고 손이나 발로 툭 치는데 이러면서 갈등이 커집니다. 이젠 노인 세대도 젊은 세대의 처지를 먼저 잘 헤아리고 존중해야 대접받을 수 있어요. 나이만 먹었다고 어른 대접받던 시대는 끝났습니다.”○ 존댓말 쓰는 노인에게 감동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주변의 한 패스트푸드점. 이곳은 커피나 식사를 싸게 즐기려는 노인이 많이 찾아 ‘도심 경로당’으로 불린다. 그 시간 패스트푸드점을 찾은 손님 44명 중 33명이 노인 세대였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젊은 세대인 아르바이트생에게 존댓말을 쓰는 노인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계산대에서 주문하는 노인 30명 중 23명이 반말로 주문했다. “콜라 석 잔 줘” “물 좀 줘” “커피 한 개” 등 명령하듯 반말로 주문했다. 아르바이트생에게 반말은 일상이 됐다. 현장에서 만난 아르바이트생들은 “‘야야’ ‘어이’라고 불러 가보면 테이블 좀 치우라는 명령이 가장 많다”고 전했다. SNS에서도 “노인은 왜 반말이 자동탑재인가” “초면인데도 반말하고 ‘어이’ ‘이봐’라고 부르는 진상 노인이 많다”는 글이 자주 올라온다. 실제로 노인 세대의 대화법에 대한 SNS 게시글 중 반말(74.7%)이 존댓말(25.3%)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명령조의 반말을 고집하는 대다수 노인 사이에서 존댓말 쓰는 노인을 바라보는 젊은 세대의 존경심은 매우 컸다. 패스트푸드점에서 만난 김모 씨는 “존댓말로 메뉴를 주문하는 노인을 만나면 존중받는 기분이 들어서 무척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SNS에서도 “알바하면서 존댓말을 쓰던 어르신을 딱 한 분 만났는데 고마워서 잊을 수 없다” “나이 어리다고 다짜고짜 반말 듣는 게 너무 당연했는데, 존댓말로 길을 묻는 할아버지를 만난 일은 감동으로 남았다”는 글이 올라온다. 패스트푸드점에서 존댓말로 메뉴를 주문한 이모 씨(76·여)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은 예의다. 대접을 받고 못 받고는 어른 하기 나름이다”고 말했다. 젊은 세대와 노인 세대 간 갈등 해결의 실마리로는 존댓말이 꼽힌다. 설득커뮤니케이션 전문가인 김영석 연세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요즘 젊은 세대는 초면에 반말 듣는 일을 싫어해 세대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며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존댓말을 써 준다면 노인 세대가 젊은 세대와 충분히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인사회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오영환 대한노인회 정책이사(55)는 “노인 세대는 존중받아야 할 우리 사회의 어르신이지만 이젠 젊은 세대도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하고 존중해줘야 한다. 젊은 세대가 나이를 근거로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가장 싫어한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 노인의 기준, 법으론 65세 국민은 “67세” ▼ “70~74세” 44%로 가장 많아… ‘60대=노인’ 지칭 갈수록 줄어 한국인은 몇 살부터 노인이라고 생각할까. 대통령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 결과의 평균치는 67세 이상을 노인으로 보고 있어, 사회적인 인식 연령이 행정적 기준보다 더 높았다. 법적으로 각종 경로 우대 혜택이 제공되는 나이는 만 65세다. 대표적 혜택인 대중교통 무임승차도 만 65세부터 혜택이 주어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고령사회를 분류하는 기준도 65세. 하지만 대한노인회가 5월 정기이사회에서 노인 기준연령을 70세로 올리자는 안건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뒤부터 사회적 논의가 활발해졌다. 이번 여론조사에서도 만 13세 이상 국민 1000명 중 70∼74세가 노인의 기준이라고 답한 사람이 44%로 가장 많았다. 65∼69세라고 답한 의견이 30.3%로 그 뒤를 이었다. 온라인 빅데이터 분석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노인을 언급한 83만3374건의 글에서 노인을 ‘60대’라고 지칭하는 사례는 줄어드는 반면 ‘70대 노인’이라고 언급하는 것은 점점 늘어났다. 2013년 게시글 중 60대를 노인이라 표현한 것은 48.6%, 70대는 20.1%였다. 하지만 이 비중은 2014년 42.1% 대 31%로, 70대가 노인이라는 비중이 10%포인트 이상 증가했다. SNS 분석을 통해 드러난 노인의 외모는 ‘흰머리’에 ‘등산복’이나 ‘정장’을 입고 ‘지팡이’를 짚은 모습이었다. 외모에 대해 언급할 때 자주 등장한 단어는 흰머리(25%) 등산복(16.4%) 지팡이(15.4%) 정장(15.1%) 주름 한복 순. “머리가 희끗한 노부부가 손을 꼭 붙잡고 있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거나 “정장을 잘 차려입은 노인의 모습이 정말 멋있다”는 의견을 SNS에서 자주 볼 수 있었다.박훈상 tigermask@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9일 제3차 민중총궐기 대회가 서울 도심에서 경찰과의 충돌 없이 문화제 형식으로 열렸다. 하지만 경찰은 문화제가 아닌 사실상의 ‘미신고 불법집회’였다고 보고 주최 측 관계자들을 형사입건할 방침이다. 당초 주최 측은 서울역광장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신고했지만, 보수단체의 다른 집회와 시간과 장소가 겹쳐 경찰이 금지를 통고했다. 이에 ‘소요 문화제’를 열겠다며 광화문광장 사용을 신청했고 서울시가 이를 받아들였다. 주최 측에 따르면 ‘소요 문화제’는 ‘소란스럽고 요란스러운 문화제’의 줄임말로 14일 열린 1차 민중총궐기 주최 측에 소요죄 적용을 검토하는 경찰에 반발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19일 오후 3시부터 열린 문화제에는 투쟁본부 소속 수천 명(경찰 추산 2500명, 주최 측 추산 8000명)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부부젤라(아프리카 응원 도구) 탬버린 호루라기 등을 갖고 집결했다. 최종진 민노총 수석부위원장은 대표 발언에서 “국회의장 직권상정 강요하고 비상사태 운운하는 정권이 미쳤다”며 “이 땅의 저항의 구심인 민노총을 와해하려는 정권을 향해 국민에게 호소한다. 민노총 투쟁에 끝까지 함께해 달라”고 밝혔다. 참가자들은 오후 4시 45분부터 광화문광장에서 청계광장 무교로를 거쳐 1차 총궐기대회에서 다친 농민 백남기 씨(69)가 입원한 서울대병원 후문까지 행진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행진이 끝난 직후 참가자들이 ‘한상균을 석방하라’는 유인물을 배포한 점, 사회자의 선동에 따라 구호를 제창한 점으로 볼 때 이날 문화제가 ‘미신고 불법집회’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민노총은 “시위의 자유를 억압한 경찰은 사법처리 운운할 자격이 없다. 소요문화제는 민주주의 문화제”라고 반박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삶의 최전선에서 분투하고 있는 당신이라면 이미 ‘글쓰기의 최전선’에 나갈 준비는 마친 셈. 당신의 글쓰기를 응원합니다.” ―‘글쓰기의 최전선’을 주문하신 황은주 고객님의 추천사. 강원 속초시에서 60년 가까이 운영된 ‘동아서점’은 10일부터 ‘타인의 취향’이라는 주제로 이런 글귀가 붙은 책 22권을 전시하고 있다. 온라인 서점이 있지만 굳이 동네 서점을 찾아 책을 주문하고 기다렸다 가져가는 사람들을 위해 서점이 준비한 감사의 이벤트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곳은 참고서와 베스트셀러 위주로 판매하는 평범한 서점이었다. 하지만 최근 이런 소소한 이벤트를 열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소통하며 ‘머물고 싶은 서점’이 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속초에서는 보기 드문 20, 30대 고객이 늘고 서울의 서점에서 견학을 오기도 했다. 3대째 서점을 운영 중인 김영건 씨(28)는 “단순히 책 파는 공간이 아니라 편히 책을 읽는 공간으로 바꾸고 손님들과 소통하려 노력하다 보니 책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했다. 지난달 100명이 한꺼번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대형 테이블을 들이는 등 ‘책 파는 공간’에서 ‘책 읽는 공간’으로 대규모 리모델링을 한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에서도 새로운 모습이 포착됐다. 15일 오후 8시 30분경, 200여 명이 책을 보고 있었지만 책을 깔고 앉거나 진로를 방해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진열대에서 꺼내본 책을 구겨지지 않게 조심히 읽고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 모습도 발견됐다. 2주에 한 번 교보문고를 찾는다는 표지수 씨(21·여)는 “과거에는 공간이 부족해 서서 책을 보다가 지나가는 사람들과 부딪치곤 했는데 이제는 오래 머무르고 싶다”고 했다. 교보문고 관계자도 “리모델링 이후 달라진 분위기에 손님들이 책을 다루는 모습도 바뀐 것을 쉽게 볼 수 있었다”며 “사람들이 책을 보기만 하고 떠나지 않겠느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대부분이 책을 구매해 매출도 떨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일본 쓰타야 서점처럼 오프라인 서점이 문화적 체험 공간으로 변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라며 “이에 따라 시민들의 독서 문화도 더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표현의 자유를 둘러싸고 대학가에 때아닌 ‘대자보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발단은 지난달 30일 경희대 청운관에 붙은 대자보였다. 대자보에는 고 김수영 시인(1921∼1968)의 ‘김일성 만세’가 적혀 있었다.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라는 표현이 담긴 시다. 1960년 작품이지만 알려지지 않다가 2008년에야 공개됐다. 대자보를 쓴 김모 씨(23)는 “8월부터 교내에 딱딱한 대자보 대신 시를 게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 활동의 하나로 게시한 것일 뿐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대자보가 학교 직원에 의해 철거되면서 오히려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11일 고려대 학생 12명은 교내 게시판에 같은 내용의 대자보를 붙였다. 대자보를 게시한 강모 씨 등은 경희대 대자보 철거 등을 언급하며 “우리 사회의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이에 반박하는 학생들의 ‘패러디성’ 대자보가 잇달아 등장했다. 김일성 만세라는 시의 제목을 ‘전두환 만세’ 또는 ‘천황폐하 만세’ 등으로 바꾼 대자보들이다. 반박 대자보를 붙인 학생들은 “표현의 자유도 상식적인 선을 지켜야 한다” “독일 러시아에서는 하켄크로이츠(나치 문양) 사용이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 사람들에겐 말할 권리도 들을 권리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일성 부자와 일가족 때문에 고통받는 북한 주민들을 생각해야 한다는 의견도 등장했다. 고려대 북한인권학회 ‘리베르타스’는 “6·25전쟁의 원흉이자 독재자인 김일성을 추앙하는 표현을 어찌 언론의 자유라고 할 수 있나? 이는 북한 주민들의 아픔과 상처에 칼질을 하는 것이다”라는 대자보를 붙였다. 글을 쓴 정모 씨(23·경영학)는 “표현의 자유는 이해하지만 그 표현으로 인해 상처받을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 없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논란이 커지면서 일부 대자보가 뜯겨 나가고 다시 게시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재교 세종대 자유전공학부 교수는 “김일성의 업적을 얘기하면서 만세를 외쳤다면 별개의 차원이겠지만, 표현의 자유 자체만 놓고 대학생들이 이처럼 논쟁을 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본다”고 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0일 체포된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은 묵비권을 행사하며 경찰 조사를 사실상 거부했다. 그는 체포 직전 기자회견에서 “정권이 짜놓은 각본에 따라 구속은 피할 수 없다. 아니 피하지 않겠다”며 불법 행위를 정당화하는 궤변을 늘어놨다. 그는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 시절 77일간 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2009년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만기 출소한 이후 또다시 구속될 처지에 놓였다.○ 한상균, 묵비권 행사로 일관 서울 남대문경찰서로 압송된 한 위원장은 경찰서 1층 유치장 내 조사실에서 진행된 조사에서 진술을 전면 거부했다. 경찰이 폭력으로 번진 집회 현장에서 채증한 사진도 보지 않겠다고 버텼다. 그는 변호인 입회하에 오후 2시 10분부터 시작된 조사에서 인적사항만 답변하다가 30분이 지나자 입을 다물었다. 경찰은 미리 준비해 놓은 300여 개의 신문 항목을 차례로 물으며 한 위원장이 보이는 반응을 조서에 기록했다. 이날 한 위원장은 경찰 조사에 앞서 흉기 소지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한 간단한 신체검사를 받았다. 조계사에서 스마트폰으로 페이스북에 투쟁 선동 동영상 등을 17차례 올렸지만 경찰 확인 결과 한 위원장은 스마트폰을 소지하지 않았다. 수사에 대비해 체포 전 누군가에게 넘긴 것으로 보인다. 이어 변호를 맡은 민노총 법률원 장종오 조세화 변호사를 접견했다. 11일째 단식 중인 것으로 알려진 그는 경찰서 구내식당의 점심과 저녁을 모두 거부하고 오후 4시 1차 조사를 마친 뒤 구운 소금만을 요청했다. 오후 10시까지 이어진 2차 조사에서도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300여 개 신문 항목 중 절반 이상 질문했지만 일절 입을 열지 않았다”며 “하지만 채증 자료와 한 위원장 발언, 관련자 진술 등만으로 혐의 입증은 충분하다”고 밝혔다. 3차 조사는 11일 오전 10시로 예정됐다. 경찰은 지난달 14일 제1차 민중총궐기 투쟁대회 등 한 위원장에게 총 24개 범죄 사실과 8가지 혐의를 적용해 11일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다. 그는 1차 투쟁대회를 포함해 올해 총 11건의 불법 시위를 주도하면서 일반교통 방해, 해산명령 불응, 특수공무집행 방해, 특수공무집행 방해치상, 특수공용물건 손상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최고 징역 10년형에 처할 수 있는 형법상 소요죄는 구속영장 신청 때는 적용하지 않고, 증거 자료를 수집한 뒤 기소 단계에서 적용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한 위원장은 지난달 14일 불법 폭력시위를 사전에 기획하고 청와대까지 진격하기 위해 민노총과 산하 산별노조에 시위 당일 역할을 분담시키는 등 “나라 전체를 마비시키자”며 폭력시위를 조장한 혐의를 받고 있다.○ 민노총 핵심 간부들도 수사 경찰이 민노총 핵심간부 등 집행부에 대해 엄정한 수사를 예고해 민노총이 적잖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1차 민중총궐기 집회 때와 같은 불법 폭력시위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본보기를 보이겠다는 것이다. 경찰은 이날 출석요구 시한을 넘긴 민노총 핵심간부 이영주 사무총장과 배태선 조직쟁의실장 등의 영장을 곧 신청할 예정이다.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을 것으로 보이는 최종진 수석부위원장은 2일 경찰에 출석해 일부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최 수석부위원장의 구속영장 신청을 검토 중이다. 이에 앞서 한 위원장은 조계종 화쟁위원장인 도법 스님과 함께 조계사 관음전을 걸어 나왔다. 대웅전에 들러 삼배를 올린 그는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자승 총무원장과 약 15분간 면담했다. 이후 기자회견을 열어 16일 총파업 투쟁을 부르짖었다. 기자회견을 마친 한 위원장은 오전 11시 18분경 조계사 일주문을 빠져나왔고, 그를 기다리던 경찰은 미란다 원칙을 고지한 후 염주를 낀 그의 양손에 수갑을 채웠다.박훈상 tigermask@donga.com·권오혁·김민 기자}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은 10일 조계사를 떠나기 직전 민노총 간부들에게 이후 투쟁 방침을 지시하고 떠났다. 그는 자신이 25일간 의탁했던 조계사를 ‘절간’이라고 표현하는 등 조계종에 대한 서운한 마음을 또 드러냈다. 그는 이날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을 만나기 전 관음전 지하 1층 법당에서 민노총 중앙집행위원회 간부들과 따로 20여 분 동안 만났다. 그는 이 자리에서 “수도권 조합 동지들을 중심으로 역량을 모아 16일 총파업 투쟁을 내년 총선 투쟁까지 이어가자”고 주문했다. 이 과정에서 지난달 1차 민중총궐기 집회 때 부상해 입원 중인 백남기 씨 사건을 투쟁 동력으로 삼자는 발언도 했다. 그는 “백남기 어르신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정권은 그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그런 비통한 일이 터지면 민주노총이 농민의 심장으로 들어가 정권을 끝장내는 투쟁으로 이어가자”고 했다. 한 위원장은 조계사에 도피 중이던 7일 자신의 페이스북 글에 내비쳤던 조계종에 대한 섭섭한 심정을 이날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절간에서 많은 반성의 시간을 가졌고 분노도 키워봤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조계종단이 계급적 관점으로 우리와 동질하지 못한 것은 현실적인 문제였다”고 꼬집었다. 조계종단이 자신을 끝까지 보호해주지 않고 나가라고 한 데 불만이 배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그는 “우리의 우군으로 생각하자”며 종교를 투쟁에 활용해야 한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한 위원장은 야당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노동개혁 법안 반대를) 야당의 당론으로 하는 문제는 우리가 구걸할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재벌의 편인지, 노동자의 편인지 우리가 묻고 있는 것이다”라며 “야당도 당론을 명쾌하게 정리하기를 요구한다”고 말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조계사의 관음전은 평소 기도처이자 템플스테이 숙소로 활용되는 조용한 공간이다. 하지만 지난달 16일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이 이곳에 은신한 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10일 한 위원장이 체포된 뒤 관음전은 청소 등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만약에 있을 충돌에 대비해 구름다리를 감시하던 옥상 조명은 오후 2시경 철거됐다. 한 위원장이 체포된 직후인 오전 11시 40분경에는 매일노동뉴스 등 신문이 담긴 쓰레기 포대가 관음전에서 나왔다. ○ “집주인 말도 안 듣는 갑 중의 갑” 이날 오전 10시 7분경 화쟁위원회 위원장인 도법 스님과 조계사 부주지 담화 스님 등이 한 위원장의 자진 퇴거에 앞서 관음전을 찾았다. 퇴거를 둘러싼 갈등 때문에 심각했던 이전과 달리 차분했다는 후문이다. 이 자리에 참석한 한 관계자는 “사실상 전날 자진 퇴거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기 때문에 심각한 얘기는 나오지 않았고 향후 계획과 건강에 대한 덕담이 오갔다”고 했다. 하지만 전날인 9일 오후 관음전은 같은 호남 출신인 담화 스님과 한 위원장 사이에 전라도 사투리로 고성이 오가는 등 격앙된 분위기에 휩싸였다. 이날 오후 4시경 관음전 밖에서는 공권력 집행에 나선 경찰과 이를 막는 종무원들 간의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 시각 담화 스님은 한 위원장을 설득하다 지쳐 “한 사람 때문에 조계사는 물론이고 종단 전체가 이렇게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게 말이 되냐”며 압박했다. 이에 한 위원장은 “(나는) 2000만 노동자의 대표자이니 함부로 거취를 결정할 수 없다”는 논리로 반박했다. 도법 스님이 두 사람을 자제시키며 대화를 이어갔다는 후문이다. 자진 퇴거 시점과 관련해 한 위원장이 거듭 말을 바꾸는 과정을 지켜본 조계사의 한 관계자는 “집 주인인 조계사와의 약속을 3차례나 어긴 한 위원장이 ‘갑 중의 갑’이라며 “(나가기로 약속한) 10일 새벽에도 혹시 마음을 바꿀까 봐 불안해 옆방에서 잤다”고 했다.○ “휴대전화는 목욕탕 들어갈 때에도 비닐에 싸서 가지고 들어가라” 조계사로 들어간 직후 관음전 409호에서 생활하던 한 위원장은 2차 민중총궐기 대회를 하루 앞둔 4일 밤 407호로 방을 옮겼다. 그가 창문을 통해 민노총 관계자들과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본 사찰 측에서 조계사 대웅전이 아닌 반대 방향으로 창문이 난 방으로 옮겨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한 위원장의 은신 뒤 관음전은 철저히 통제됐다. 건물 내 엘리베이터 사용이 중지됐고, 출입문도 모두 자물쇠로 잠겼다. 직원들 몇 명은 주간에는 외부에서 열어줘야 출입이 가능했고 야간에는 외부와의 출입이 차단됐다. 한 사찰 관계자는 “출입이 번거로워 안에서 직원들이 컵라면을 먹곤 했는데 그걸 두고 (단식 중이던) 한 위원장이 페이스북에 ‘컵라면 고문’이라고 썼다”고 했다. 이세용 조계사 종무실장은 언론과의 거의 유일한 창구가 됐다. 종단이 직접적인 개입을 꺼려 이번 사안을 조계사와 화쟁위원회 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어떤 상태라도 전화를 꺼놓으면 안 되고 기자들 전화를 받아라. 목욕탕 들어갈 때에도 비닐에 싸서 가지고 들어가라”는 조계사 주지 지현 스님의 당부까지 있었다. 한 위원장은 은신 초기에는 방에서 노트북을 사용하며 온라인을 통해 투쟁 지침과 서신을 전했다. 하지만 이에 부담을 느낀 사찰 측이 “여기에 피신해 온 것이지 투쟁 지휘소를 설치하러 온 게 아니지 않느냐”며 노트북을 치워 달라고 요청해 한 위원장은 나중에는 스마트폰만 사용했다. 4층을 지키던 조계사 직원들과는 거의 교류가 없었다. 한 위원장은 방에서 조용히 무표정하게 앉아 있거나 테이블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입고 있는 옷은 민노총 관계자들이 챙겨 가서 따로 빨래를 해줬다. 한 위원장은 단식 전에는 김치찌개 등 배달 음식을 자주 시켜 먹었다. 또 은신 초기에는 4층 복도나 옥상을 자주 드나들고 야간에는 민노총 관계자들도 찾아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등 비교적 자유로운 생활을 했다.김갑식 dunanworld@donga.com·김민 기자}

조계사 은신 24일째인 9일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조계종 화쟁위원회와 조계사 측의 장시간 설득에도 불구하고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경찰의 영장 집행 예고 시한인 9일 오후 5시 직전까지도 화쟁위원장 도법 스님이 관음전에서 한 위원장을 설득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한 위원장은 조계사 관음전 407호에 머물고 있다. 지난달 16일 조계사로 들어간 직후엔 409호에서 생활했지만 창문을 통해 민주노총 관계자들과 대화를 주고받는 모습을 본 사찰 관계자들의 요청으로 관음전 앞마당과 떨어진 방으로 옮겼다. 경찰에 따르면 한 위원장이 있는 방에는 민주노총 관계자 1명도 함께 생활하고 있다.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한 위원장의 극단적 행동을 막기 위해 407호 옆방들에는 조계종 관계자 20여 명이 나눠 생활하며 밀착감시하고 있다. 한 위원장은 8일 오후 8시경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게시된 민주노총 결의대회 사진에 ‘동지가 민주노총입니다. 투쟁!’이라는 댓글을 남긴 이후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앞서 이날 오후 3시경에는 “불편을 감내해야 하는 조계사의 스님, 직원님들 모두와 다수의 신도님들께 거듭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는 글을 올렸다. 전날 “사찰은 나를 철저히 고립 유폐시키고 있다”며 조계사를 비난한 글은 이즈음 삭제됐다. 경찰의 ‘최후통첩’ 통보 직전인 8일 오후 1시경 조계사 신도 60여 명이 관음전 4층을 찾았을 때 한 신도는 “한 위원장이 방에서 ‘박근혜가 퇴진하면 나간다’고 했다. 존댓말도 아닌 반말이었다”고 전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국내 우유업계 1, 2위인 서울우유와 매일유업 임직원들이 납품업체로부터 지속적으로 돈을 받아 챙기는 등 ‘갑질’을 일삼다 적발됐다. 서울북부지검 형사6부(부장 조재빈)는 납품업체에 편의를 봐주고 금품을 챙긴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및 배임수재)로 이동영 전 서울우유 상임이사(62)와 매일유업 직원 2명을 구속 기소했다고 6일 밝혔다. 또 김정석 전 매일유업 부회장(56) 등 두 회사 업체 임직원 10명을 횡령·수재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 전 상임이사는 우유용기 납품업체인 H사 측에 “불량품이 나와도 무마해주겠다” 등 편의 제공을 대가로 2010년부터 올해 5월까지 수차례에 걸쳐 8500만 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상임이사는 조합장을 대신해 경영 전반을 총괄하는 자리다. 그는 지난달 초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뒤 사직했다. 같은 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은 매일유업 직원 2명도 구속 기소됐다. 홍모 팀장(42)은 2013년 1월부터 수표 1억2000만 원과 3000만 원 상당의 승용차를, 유모 과장(38)은 9600만 원을 각각 받은 혐의다. 이들에게 돈을 건넨 H사 최모 대표(62)는 불구속 기소됐다. 매일유업은 김 전 부회장이 대주주로 있는 납품 중개 및 운송 담당 법인에 일감을 몰아줬다. 납품업체들은 어쩔 수 없이 불필요한 중간 단계를 거쳐야 했다. 사실상 ‘통행세’를 낸 셈이다. 김 전 부회장은 이 과정에서 회사 수익금 48억 원 상당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근무하지 않는 직원 명의의 계좌로 거래금액을 가로채 유흥비 등 사적으로 사용했다. 매일유업 3대 주주인 김 전 부회장은 고 김복용 창업주의 차남이자 회장의 동생이다. 검찰은 김 전 부회장이 실질적 압력을 행사하진 않았지만 매일유업의 오너 일가이기 때문에 납품업체가 부담을 가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임직원들이 대부분의 금품을 수표로 전달받을 정도로 죄의식 없이 범행을 저질렀다”며 “비리가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이어져 소비자에게 피해가 전가됐을 것으로 보고 엄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조계사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신도회가 요구한 퇴거 기한(6일)에도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스스로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5일 2차 총궐기 대회 후 조계종 화쟁위원장인 도법 스님과 조계사 관계자가 한 위원장을 6일 새벽까지 면담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한 위원장은 이날까지 언제 어떤 모양새를 갖춰 조계사를 나갈지 밝히지 않았다. 조계사 관계자는 “도법 스님이 ‘평화 집회의 명분도 얻었고 조계사 신도회를 포함한 국민 앞에서 6일까지만 있겠다고 했으니 나와 손잡고 명예롭게 출두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했지만 한 위원장이 노동법 개악에 대한 우려의 입장만 되풀이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한 위원장은 5일 페이스북을 통해 ‘12월 16일 총파업 투쟁’ 참여를 독려하는 글을 남기는 등 향후 투쟁을 계속 이어 갈 뜻을 밝혔다. 민주노총은 이날 한 위원장의 거취와 관련해 “(한 위원장이) 화쟁위와 소통하는 중이나 아직 최종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조계종의 한 관계자는 “한 위원장이 자진 출두 약속을 깨고 계속 조계사에 은신한다면 그동안 불편과 고통을 참아 준 신도들과 국민 앞에서 종단이 뭐가 되겠느냐”며 “한 위원장이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박준 조계사 신도회 부회장은 “한 위원장이 나오지 않으면 7일 신도회 회장단 회의를 여는 등 추가 대응에 나설 수 있다”고 밝혔다. 앞서 조계사 신도회는 긴급 총회를 열고 “6일까지 인내하고 기다리겠다”는 뜻을 밝혔다. 경찰은 이날 돌발 상황에 대비해 조계사 주변 배치 인력을 700여 명으로 늘려 경계를 강화했다. 경찰은 지난달 14일 1차 민중 총궐기 투쟁대회에서 발생한 불법 폭력 행위를 한 위원장이 주도했다며 형법상 소요죄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집회 관련 법보다 처벌 수위가 높아 최고 징역 10년형까지 처해질 수 있다.권오혁 hyuk@donga.com·김갑식·김민 기자}

“산업화, 정보화, 민주화가 모두 달성된 마당에 폭력 집회는 공감을 얻기 힘들어요. 앞으로는 평화적인 준법 집회가 확실히 뿌리내려야 합니다.” 5일 오후 2시 30분 서울 중구 서울파이낸스센터 앞. ‘2차 민중 총궐기 투쟁대회’를 앞두고 열린 범종교인 기자회견을 보며 강영진 한국갈등해결연구원장(54·사진)은 이렇게 말했다. 강 원장은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신동아 기자로 현장을 취재했다. 본보 취재팀은 강 원장과 2차 민중 총궐기 집회 현장에 동행하며 바람직한 집회 시위 문화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이날 집회는 오후 3시경 서울광장에서 경찰 추산 1만4000여 명(주최 측 5만여 명 추산)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집회가 시작되자 조계사 스님을 비롯한 종교계 인사들이 한 손에 꽃을 들고 집회장에 들어섰다. 평화와 화해의 상징인 꽃으로 이날 집회가 순조롭게 끝나길 바라는 염원을 담은 퍼포먼스였다. 강 원장은 “1989년 공산주의 정권 붕괴를 불러온 체코의 ‘벨벳혁명’ 당시에도 꽃을 든 시위대의 사진이 널리 회자됐다. 꽃이 등장한 게 매우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1시간 반 동안 진행된 집회에서 주최 측은 노동관련법 개악 중단, 역사 교과서 국정화 중단, 농민 고사정책 중단 및 백남기 씨 부상에 대한 사과와 책임자 처벌 등 다양한 요구를 내놨다. 집회장 곳곳에서 “박근혜 정권 퇴진하라” “이석기(전 통합진보당 의원)를 석방하라”는 정치성 구호를 외치는 이들도 있었지만 폴리스라인을 넘어서는 등의 불법 행위는 없었다. ▼ “과격문구도 사라져야 일반시민 공감 얻을것” ▼경찰도 집회 참가자가 늘어나자 플라자호텔 앞 도로까지 집회장소를 열어주고 경찰버스 차벽을 설치하는 않는 등 유연한 대처가 돋보였다. 본 집회가 끝나자 참가자들이 대학로 방향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1차 총궐기처럼 “청와대로 가자”는 구호는 없었다. 강 원장은 “‘청와대로 가자’는 구호는 시위대에 자기만족을 줄지 몰라도 일반인의 공감을 얻긴 힘들다”고 지적했다. 모든 사회문제의 원인과 책임을 청와대 탓으로만 돌리는 문제의식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대한 해법이 될 수 없음을 지적한 것이다. 행진은 청계천, 보신각을 거쳐 종로를 지나 대학로에 있는 서울대병원까지 이어졌다. 주최 측은 300명의 질서유지단을 동원해 일부 시위자의 돌출행동을 막기 위해 노력했다. 강 원장은 “과격하고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구호나 피켓은 도리어 집회에 참여하지 않는 일반 시민 다수의 반발을 살 수 있다”며 “많은 사람에게 자신의 주장을 알리고 설득하기 위해 좀 더 재치 있고 풍자나 해학이 담긴 표현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오후 8시 40분경 시위대는 서울대병원 앞에서 마무리 집회를 끝으로 해산했다. 주최 측이 신고한 집회 마감시간인 오후 9시를 넘지 않았다. 강 원장은 “오늘 집회는 작은 기적이 이뤄진 중요한 실험이었다”며 “종교단체가 대립을 완충하는 역할을 했고 집회 주최 측도 최근 악화된 국민 여론을 수용한 결과”라고 평가했다. 집회를 지켜본 시민들은 이날 집회가 평화적으로 마무리된 데 안도하면서도 현행 집회시위 문화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직장인 강이슬 씨(26·여)는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참가자들이 각자의 주장을 한꺼번에 내놓아 소란스럽기만 하고 공감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회사원 이윤수 씨(29)는 “일부 요구 내용엔 동의하지만 시위대가 말하는 민중이 실제 나를 포함한 국민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며 시위대와 거리를 두는 모습이었다. 폭력 시위가 언제 다시 등장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왔다. 이호연 씨(30·여)는 “평화시위를 한다고 해도 아직까지는 과격해 보이고 ‘그들만의 리그’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강홍구 windup@donga.com·박창규·김민 기자}

“평화롭고 자유로운 집회와 행진이 되도록 할 것이다.”(집회 주최 측) “평화 시위를 내세워 도로 점거 등 불법 행위가 있어선 안 된다.”(경찰) 5일 서울 도심에서 열리는 ‘2차 민중 총궐기 투쟁대회’를 앞두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농민회총연맹 등은 따가운 국민 여론을 의식한 듯 ‘평화 시위’를 거듭 다짐했다. 그러나 경찰은 신고된 차로를 넘어선 행진이나 동선 이탈, 장시간 도로 점거 등 불법 행위에는 엄정 대응하겠다며 ‘준법 집회’에 무게를 뒀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폭력을 쓰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다수의 시민에게 피해를 주는 교통 흐름 방해 같은 행위도 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주최 측 “폭력 쓰지 않겠다” 약속 5일 서울광장 집회는 오후 3시 시작된다. 주최 측은 5만 명 참가를 예상하면서 2시간 동안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부는 민중총궐기 투쟁대회, 2부는 ‘백남기 농민 쾌유와 민생살리기 민주주의 범국민대회’로 진행된다. 집회 참가자들은 노동 관련법 개악 중단, 역사 교과서 국정화 중단, 농민 고사 정책 중단 및 백남기 농민 부상에 대한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할 예정이다. 오후 5시 집회가 마무리되면 2개 차로를 따라 서울광장에서 무교로, 종로2가를 지나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후문까지 3.5km 구간을 행진한다. 일부 참가자들은 복면 금지법 발의에 반발해 가면을 쓰고 집회에 참가할 것으로 알려졌다. 불교 성공회 개신교 원불교 등 각계 종교인 300여 명은 오후 2시 30분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평화의 꽃길 기도회’를 연 뒤 꽃을 들고 행진을 함께하며 집회 참가자와 경찰 사이에 평화지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민중총궐기 투쟁본부 관계자도 “차벽이 설치되더라도 이를 부수지 않을 것이고, 물대포를 맞아도 물리적 폭력은 행사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했다. 집회 참가자들이 서울대병원에 도착한 뒤인 오후 6시부터는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인근에서 4000명이 참여하는 촛불 문화제가 열린다.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 피신 중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4일 오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회색 법복을 입고 주먹을 쥔 채 투쟁을 독려하는 동영상과 함께 “2차 민중 총궐기, 정권이 주는 공포를 뚫고 우리는 다시 모입니다. 이천만 노동자와 전 민중의 생존권을 지켜내기 위해 서울로, 서울로 진격해 민중의 힘이 세상의 주인임을 선언합시다”라며 집회 참가를 독려하는 글을 올렸다.○ 경찰 “긴박한 상황 발생땐 차벽-살수차 동원” 경찰은 준법 집회는 최대한 보장하겠지만 어떤 불법 행위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폭력 없는 평화 시위뿐 아니라 도로 무단점거, 행진 코스 이탈, 집회신고 시간 초과 등의 행위가 없는 ‘준법 집회’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경찰은 225개 중대 1만8000여 명을 현장에 투입한다. 불법 행위에 대비해 차벽 트럭 20대, 살수차 18대도 준비했다. 차벽과 살수차를 먼저 쓰지는 않되 긴박한 상황이 발생할 때에는 곧바로 차벽과 살수차를 동원할 방침이다. 특히 복면을 쓰고 폭력을 행사하면 현장에서 검거할 계획이다. 차벽을 훼손하거나 경찰관을 폭행하는 불법 시위자들에게 유색 물감을 뿌리고, 경찰 기동대로 구성된 검거 전담반을 투입한다.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과거처럼 시위대를 막기만 하지 않고 검거작전도 펼칠 것이다. 불법 행위를 강행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서울광장 주변의 검문검색도 강화한다. 경찰은 지난달 14일 투쟁본부 측이 장기간 불법 집회를 계획하고 철제 사다리, 쇠파이프 등 불법 시위용품을 사전에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집회에는 검문검색을 통해 불법 시위용품을 미리 찾아낼 계획이다. 지난달 14일 집회 때 검거하지 못했던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조계사를 나올 때에는 반드시 검거하겠다는 방침이다. 경찰은 5일 0시부터 조계사 스님과 종무원들의 출입증을 확인하고 신도를 가장한 무단출입을 차단해 한 위원장이 집회에 참가하거나 제3의 장소로 도피하는 것을 막을 계획이다. 집회 참가자들이 조계사 방향으로 행진하는 것도 차단할 예정이다. 한편 5일 집회 현장에는 전·의경부모모임 소속 회원 20여 명이 참석해 집회 상황을 지켜볼 계획이다. 이 모임의 강정숙 회장(50)은 “지난달 집회가 너무 폭력적이라 부모들이 거리로 나선 것”이라며 “(집회 참가자가) 법과 원칙에 따르는지 지켜보겠다. 법을 어기는 사람에게는 합당한 처벌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박훈상 tigermask@donga.com·김민·김도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