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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의 창간 93주년 기념 통일의식 조사에서 응답자 10명 중 6명이 △통일에 가장 영향력 있는 나라는 중국(59.4%)이고 △중국은 남북 분단의 현상유지를 원한다(59.6%)고 답했다. 요약하면 ‘중국이 움직여야 통일이 가능하지만 그러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통일의 걸림돌이라는 국민 인식은 통일에 대한 체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반도 통일에 대한 중국의 실제 견해와도 거리가 있는 만큼 이런 시각을 바로잡기 위한 한중 양국의 적극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의 견해와 분석을 문답 형식으로 풀어본다.문: 중국은 여론조사 결과처럼 남한 중심의 통일(5.7%)보다 북한 중심의 통일(26.2%)을 더 원하나.답: 오해다. 최근 중국을 방문해 싱크탱크 그룹과 접촉한 김흥규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국은 북한 중심으로 통일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중국은 북한이 그럴 역량이 없다고 본다는 것이다. 또 핵을 가진 북한 중심의 통일은 한반도 혼란과 불안정을 야기할 것이라고 우려한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중국 내에 남한 중심의 통일이 중국의 이익에 부합할 것이라는 생각이 일정 부분 존재한다고 말했다. 고도의 경제발전을 이룬 한국 중심으로 통일돼야 중국에 경제적으로도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중국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대만과 중국의 통일에 대한 대만의 거부감도 한층 줄어들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문: 중국이 남북 분단의 현상유지를 계속 원할까.답: 현상유지를 원해왔다. 그러나 중국의 대외정책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변하고 있다. 중국은 그동안 ‘재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린다’는 뜻의 도광양회(韜光養晦)를 대외정책의 근간으로 삼아 왔다. 한반도 통일로 미국의 영향력이 중국에 바로 뻗칠 상황을 피하기 위해 한반도의 현상유지(status quo)를 선호해온 것도 사실이다. 전략적 분쟁 관계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국력에 아직 한참 못 미치기 때문이다.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부 교수는 “중국은 흡수통일이나 무력통일 또는 북한 정권의 급작스러운 붕괴를 우려하는 것이지 평화적인 한반도 통일 그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주중공사 출신의 신봉길 한중일협력사무국 사무총장도 “시진핑(習近平) 체제의 중국이 국제사회의 의무를 준수하는 책임 있는 강대국이 되겠다는 ‘새로운 대국관계(新型大國關係)’를 천명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이 중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걸 방조하지 않겠다는 쪽으로 중국의 한반도정책이 바뀌고 있다는 설명이다. 문: 국민 의식과 외교 현실의 간극을 어떻게 메워야 하나.답: 한국 주도 외교로 통일코리아의 이익을 국내외에 설파하라. 많은 국민의 ‘중국은 일방적인 북한 편’이란 부정적 인식은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에서 보여준 중국의 북한 감싸기가 투영된 결과라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특히 북한의 이런 도발들은 남한의 20대를 ‘현실적인 냉전 세대’로 만든 측면이 있다. 20대의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6·25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60대와 비슷한 것은 주목되는 부분이다.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중국은 남북 분단 상황의 고착을 원하기보다 현재 한반도 상황의 불확실성을 타파할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통일로 출현할 ‘인구 8000만 명의 세계 경제 10위권, 군사력도 만만치 않은 민주주의 체제의 통일코리아’가 자신들과 어떤 관계를 맺을지에 대한 불확실성에 우려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한 처방으로 한국 주도 외교, 코리아 이니셔티브 디플로머시(KI-Diplomacy)를 주문했다(본보 3월 28일자 1·3면 참조). 오승렬 한국외국어대 중국학부 교수는 “중국의 현상유지 선호는 불변적인 게 아니다. 한국이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통일전략을 주도하면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통일한국이 중국의 국익을 신장시킬 것이라는 믿음을 적극적으로 줘야 한다는 것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탈북자들이 한국에 잘 정착해 이방인이 아닌 한국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한반도 통일의 밑거름이 될 의미 있는 ‘작은 통일’이다. 하지만 탈북자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은 1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는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형제·자녀가 탈북자와 결혼해도 괜찮은가’ ‘자녀의 교사가 탈북자여도 괜찮은가’라고 물었다. 결혼과 교육이 탈북자를 한국민으로 받아들이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척도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응답자 중 57.4%가 ‘탈북자와의 결혼’에 대해 ‘괜찮다’고 답했다. ‘괜찮지 않다’고 답한 사람도 38.5%였다. 2003년 동아일보의 같은 조사(1009명 대상)에서 ‘형제·자녀의 탈북자 결혼’에 대한 긍정적 응답은 52.2%, 부정적 답변은 39.6%였다. 10년 전에 비해 긍정적 답변은 5.2%포인트 높아졌지만 부정적 답변은 1.1%포인트 줄어드는 데 그쳤다. 40대의 60.7%, 50대의 61%가 ‘탈북자와의 결혼’에 대해 ‘괜찮다’고 답해 다른 연령대에 비해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반면에 가장 젊은 20대는 긍정적 답이 54.9%에 불과해 전체 평균(57.4%)보다도 낮았다. 부정적 답도 42.5%로 평균(38.5%)보다 4%포인트 높았다. 20대의 이런 인식은 미래로 갈수록 탈북자에 대한 시각이 개선되지 않고 나빠질 수도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청년실업 문제 등으로 고통받는 20대가 탈북자를 ‘사회적 부담’으로 인식하는 측면이 더 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남성은 탈북자와의 결혼에 괜찮다는 답이 69.6%였지만 여성은 45.4%에 불과했다 ‘괜찮지 않다’(49.2%)는 답도 남성(27.7%)보다 크게 높았다. ‘자녀의 교사가 탈북자라도 괜찮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엔 61.1%가 ‘괜찮다’고 답해 2003년의 긍정적 답변(57.1%)보다 4%포인트 높아졌다. 부정적 답변은 33.9%로 2003년(35.0%)보다 1.1%포인트 낮아지는 데 그쳤다. 이 문제에서도 여성이 남성보다 덜 관용적이었다. 남성 응답자의 70.8%가 자녀의 교사가 탈북자인 데 대해 ‘괜찮다’고 답한 반면에 여성은 51.6%만이 같은 대답을 했다. 부정적 답변도 남성(26.3%)에 비해 여성(41.4%)이 크게 높았다.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이 최근 공개한 ‘2012 탈북청소년 실태조사’(탈북 청소년 1044명 대상)에 따르면 응답 탈북자의 54.4%가 탈북 사실을 가까운 사람에게도 밝히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그 주된 이유로 ‘차별대우를 받을까 봐’ ‘호기심을 갖는 게 싫어서’ 등을 꼽았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 부인 성혜림의 조카 고 이한영 씨가 스위스에서 망명해 한국에 도착한 나흘간의 긴박한 과정이 담긴 외교문서가 30년 만에 공개됐다. 주제네바 대표부는 1982년 9월 28일 오전 귀순하겠다는 ‘공작원 김영철’의 전화를 받아 신병을 확보한 뒤 그날 저녁 서울의 외무부 본부에 긴급 보고했다. 전문의 제목은 ‘몽블랑 보고’. 이후 전문에서 ‘몽블랑’이 암호명으로 사용됐다. 김영철은 이 씨였다. 대표부는 외교 전문에서 “김영철은 ‘무시무시한 보복’을 말하면서 자신에 대한 위해를 의식, 시종 초조해 하고 불안감을 표시했다”며 긴박한 분위기를 전했다. 대표부는 이 씨의 요청에 따라 서울 외무부 본부의 추가 지시 전문이 도착하기도 전에 이 씨를 스위스에서 국제공항이 있는 프랑스 리옹으로 옮겼다. 이후에도 상황의 급박감 때문에 벨기에를 거쳐 독일에서 필리핀 마닐라행 비행기를 타는 순간까지 현지 대사관들이 본부 지시 없이 임의로 이 씨를 이동시켰다. 스위스 프랑스 벨기에 독일까지 이 씨의 행적을 해당국에 알리지 않은 채 몰래 통과시킨 셈이다. 이 씨는 필리핀에서 대만을 경유한 뒤 그해 10월 1일 서울에 도착했다. 북한 측은 다음 날 정부에 면담 요청을 해왔고 7일 제네바대표부 공사를 만난 북한 측 공사는 “가출해 소식이 없는 19세 북한 외교관 아이를 찾는 걸 도와 달라. 처음엔 남한 측이 장난놀음을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의심했다”고 했고 우리 측 공사는 망명 사실을 모르는 척했다. 그로부터 15년 뒤인 1997년 이 씨는 경기 성남시 분당의 한 아파트에서 피격돼 숨졌다. 외교부는 생산된 지 만 30년이 지난 문서를 공개하는 ‘외교문서 공개에 관한 규칙’에 따라 이 문서를 포함해 총 1490권, 22만여 쪽의 외교문서를 31일 공개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미국 본토와 미제 침략군 기지들과 남조선의 모든 적대상물을 타격하게 된 전략로케트군부대들과 장거리포병부대들을 포함한 모든 야전포병군집단들을 1호 전투근무태세에 진입시키게 된다.”(지난달 26일 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성명) “적이 도발해오면 평소 훈련한 방법대로 즉각적이고 자동적으로 도발 원점과 지원·지휘세력까지 강력히 응징해야 한다.”(같은 날 김관진 국방부 장관) 정전협정 백지화, 남북 불가침 합의 폐기, 1호 전투근무태세 진입, 전시 상황 돌입 등 북한의 대남도발 위협이 연일 높아지자 한국군도 강성 발언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남북의 군 수뇌부가 이렇게 ‘강대강(强對强)’ 일변도의 대결 양상을 보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크리스토퍼 힐 전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지난달 30일자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최근 대치 국면이 과거보다 훨씬 심각해 보인다”고 우려할 정도다.○ 한국군, “북한 오판과 국민 동요 막아야” 정부 관계자는 ‘강대강’ 대응 이유에 대해 “북한의 강경 도발 위협에 군이 강경하게 대응해야 북한의 오판과 국민의 동요를 막는 데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비록 수사적인 측면이 강하지만 북한이 연일 도발 위협을 가하는 상황에서 군의 단호한 견해 표명은 국민의 불안감을 없앨 수 있다”며 “북한의 도발에 대한 억제력 측면에서도 효과적”이라고 덧붙였다. 군 내부에선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겪으면서 군내에 ‘북한을 응징해야 한다’는 강경한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대북 강경 기류의 한 요인으로 꼽힌다. 한 군 장성은 “북한의 도발로 전우를 잃었던 만큼 군 내부에선 북한이 도발하면 제대로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결기가 형성돼 있다”며 “말로 하는 보복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군이 대북 강경 발언을 하면 “전쟁을 부추기는 것이냐”는 비판이 적지 않았지만 북한의 잇따른 도발로 안보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면서 군의 이런 부담감도 크게 줄었다. 그러나 군의 대북 강경 발언이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가 강경해졌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게 정부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정부는 오히려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남북대화로 이어갈 여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북한이 이 국면에서 자제하면 인도적 지원을 비롯해 남북 간 신뢰를 회복하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물꼬를 틀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부가 북한의 개성공단 폐쇄 위협에 대해 “새로운 위협이 아니다”라며 그 의미를 축소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 북한의 도발 위협은 내부불만 폭발 막으려는 것 한국 정보 당국은 북한이 연일 높은 수위로 전쟁 위협을 쏟아내는 것은 군부 강경파가 체제 불안을 막기 위해 북한 권력엘리트들과 주민들에게 전쟁공포를 심어주려는 ‘대내용 심리전’을 펼친 결과로 파악하고 있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이런 강경파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한 당국자는 31일 “북한의 군부 강경파는 체제에 대한 북한 내부의 불만이 언제라도 폭발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이 때문에 외부의 적을 만들고 전쟁이 임박한 것처럼 선전하는 심리전을 펼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도발 위협이 대남, 대미 메시지의 성격도 있지만 그보다는 체제위기를 벗어나려는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장기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이처럼 북한의 ‘대내용 심리전’의 목표가 분명하기 때문에 이런 위협으로 내부의 동요가 해소되지 않을 경우 실제 대남 국지도발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전쟁 일촉즉발의 상황이라는 인식까지 몰고 가야 권력엘리트와 주민들의 결속을 도모하기 쉽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정부는 북한 최룡해 인민군 총정치국장 등 군부 강경파의 득세 속에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등 온건파가 힘을 못 쓰고 있다고 보고 있다. 북한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장성택 같은 온건파나 최룡해 같은 강경파 모두 최고의 과제는 ‘김정은 체제 유지’이다. 단지 그 방법론이 다를 뿐인데 두 진영 간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대북소식통 사이에서는 북한의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장성택이 숙청됐을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손영일·윤완준 기자 scud2007@donga.com}

《북한과의 협상에 지친 미국을 이끌며 새 돌파구를 찾아야 할 나라는 한국이다. 북한을 감싸온 정책을 바꿀지 고심하는 중국에 정책 전환의 명분을 줘야 할 나라도 한국이다.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큰 나라들을…”이라는 관성적 회의에서 벗어나 ‘한반도의 주인은 우리’라는 확고한 오너십으로 주도적 전방위 외교를 적극 펼 때가 됐다. 일관되지도 않고 진정성도 느껴지지 않는 일회성 대북 메시지로 북한의 근본적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어렵다. 남남(南南) 갈등도 해결하지 못한 채 남북 문제를 주도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북핵 문제를 풀 새로운 열쇠인 ‘코리아 이니셔티브 디플로머시(KI-Diplomacy)’는 ‘남한을 하나로 모아 북한을 일깨울 때’ 그 위력이 발휘될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한국 주도의 전방위 외교인 키-디플로머시(KI-Diplomacy)와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실질적 성과를 이룰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과거 대북정책의 실패를 분석해 △대북전략의 새 틀을 짜고 △북한을 일깨울 일관된 소통수단을 마련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미국은 협박에 굴복해 협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외교의 근간이다. 그런데 북한은 핵이나 미사일로 미국을 협박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고 여전히 믿고 있다. 이 간극을 분명하게 깨닫게 해주는 것이 한국 정부의 중요한 몫”이라고 말했다. ○ 과거정부의 대북정책 반면교사로 ‘어느 동맹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며 조건 없이 비전향 장기수를 송환할 만큼 전향적이던 김영삼 정부는 1994년 김일성 사망으로 남북 정상회담이 무산되자 급격하게 보수화했다.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으로 금강산 관광과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성과를 거뒀지만 ‘뒷돈 지급’ 논란을 빚었다. 1, 2차 연평해전이라는 북한 도발 앞에 미온적 대처로 비난받았다. 햇볕정책을 계승한 노무현 정부도 남북관계 유지라는 강박 때문에 북한의 1차 핵실험 도발에도 불구하고 금강산 관광을 중단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중풍으로 쓰러지자 ‘북한의 붕괴가 머지않았다’는 섣부른 인식을 한 측면이 있다. 대북 원칙론자들의 그런 ‘희망적 사고’가 오판이었음은 이듬해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으로 드러났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과거 진보 정권과 보수 정권의 이런 패턴을 정반합의 발상으로 뛰어넘는 ‘제3의 길’을 실천적으로 제시해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키-디플로머시의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북핵 문제의 새로운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 내부에서 인권문제 눈뜨게 해야 조영기 고려대 교수는 대북 접근법의 새 틀과 관련해 “북한에 ‘핵실험하지 말라’ ‘추가도발하지 말라’고 경고만 하지 말고 북한이 국제 규범을 지키고 인류 보편의 가치를 따르도록 북한의 체질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의 체질이 바뀌려면 지도부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 그러려면 남북 대화의 창이 열려 있어야 한다. 교류와 접촉도 늘어야 한다. 한국이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하려면 기아와 질병에 노출된 북한 주민들의 현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 대북 인도적 지원이 강화돼야 하는 이유가 있다. ‘비정상’인 북한에 ‘정상으로 바꾸라’고 주문만 하지 말고 한국이 적극적으로 이를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강 국립외교원 교수는 “앞으로 대북 관여정책은 오랜 시간에 걸쳐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어야 한다”며 “대규모 경협보다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 고루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소규모 협력사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북한을 대하는 방식에도 근본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 한건주의, 깜짝쇼는 더이상 용납되기 어렵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2011년 이명박 정부가 독일 베를린에서 ‘김정일을 서울 핵안보정상회의에 초청할 수 있고 그런 의사가 이미 북한에 전달됐다’고 일방적으로 공개한 것은 대표적 실책”이라고 말했다. 설익은 언론플레이가 빚은 해프닝이었다고 정부 관계자들은 말한다. 다른 당국자는 “남북 직접대화가 많을 때는 약간의 오해가 생겨도 금방 풀 수 있지만 경색 국면일 때는 정말 말조심을 해야 한다”며 “정제된 메시지가 대북특사 같은 일관된 메신저를 통해 전달돼야 북한이 경청한다”고 말했다. ○ “대미 대남 협박으로 얻을 건 없다”는 인식 일깨워야 북한이 갖고 있는 ‘북-미 직접대화만이 최상’이라는 통미봉남의 오랜 관념도 반드시 깨야 한다. ‘북-미 2·29 합의’를 이끈 글린 데이비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인공위성도 미사일로 간주되니 절대 발사해서는 안 된다고 3번이나 다짐을 요구했고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은 ‘알았다’고 말했다”고 회고했다고 한 외교소식통이 전했다. 그러나 미국은 ‘알았다’를 ‘미국에 동의한다(I agree)’는 뜻으로 받아들인 반면에 북한은 ‘당신 처지를 이해한다’는 정도로 전달한 것 같다고 이 소식통은 설명했다. 이런 오해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난해 4월 북한이 미사일(북한 주장으로는 인공위성) 발사를 강행했고 2·29 합의는 공중분해됐다. 전직 미 국무부 관리는 “북-미 간 뉴욕 채널에서 여러 차례 북한과 대화와 협상을 했지만 한 번도 속 깊은 얘기를 나눈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남한이 북한에 인권 존중, 도발 중단을 요구하는 건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북한에도 이득이 되는 정상국가로 가는 길’이란 점을 일깨워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국책기관 연구원은 “고립경제로 외자 도입이 끊긴 북한 체제가 최종적으로 기댈 수 있는 곳은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라며 “북한이 정상국가로 체질을 바꿔나간다면 남한이 적극 도울 수 있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 주도의 키-디플로머시를 통해 미국과 중국 등 주변국도 북한에 같은 메시지를 일관되게 보내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연구원은 “북한이 ‘우리가 사는 길이 남북관계에 있다’고 깨닫는 순간 북핵 문제 해결의 새로운 열쇠가 작동하게 된다”고 강조했다.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전문가들은 “한국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을 설득하고 미국을 이끌면서 북한의 변화를 가져오려면 강력한 국내 지지 기반부터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이 주도하는 전방위 외교인 키-디플로머시(KI-Diplomacy)의 원동력은 대북정책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와 성원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국론 분열됐는데 북한이 경청하겠나” 이명박 정부 외교안보라인의 핵심이었던 전직 고위 인사는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이후 정치적 분열 양상을 꼬집었다. 국회 대북 규탄 결의안을 채택하는 과정에서 야당이 “정부와 여당의 잘못이 이런 문제를 초래한 책임도 있다는 점을 결의안에 병기해야 한다”고 주장할 때 심한 좌절감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이 인사는 “북한의 만행을 여야가 한목소리로 꾸짖어도 모자란 것 아니냐. 정말 한심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올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박근혜 대통령과 민주통합당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이 긴급 회동을 하고 ‘안보에는 여야가 없다’고 과시했지만 그때뿐이었다. 통합진보당은 여전히 천안함 폭침을 ‘사고’로 표현한다. 극단적 좌파단체들은 “한국과 미국 때문에 전쟁 위기가 왔다”는 주장을 되풀이한다. 반면 박근혜 정부가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지원과 남북대화 제의 계획을 본격화하자 보수진영 일각에선 벌써부터 ‘대북 퍼주기 아니냐’며 비판한다. 국책연구기관장 출신의 인사는 “통일부는 북한과의 화해협력과 북한의 변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균형 있게 잡아야 하는데 야당은 대화만 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여당은 북한을 자극하는 역할까지 통일부에 강요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은 “남남(南南) 갈등 상태에선 대통령이 아무리 ‘북한에 핵을 내려놓고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돼라’고 한들 북한이 전혀 경청하지 않는다. 한국의 주도적 전방위 외교를 북한이 존중할 리도 없다”고 말했다.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도 “외교안보는 초당적으로 대처해야 하고 최소한 국내 정치에서 해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 ‘서독판 키-디플로머시’에 해답 있다 전문가들은 과거 서독이 추진한 동방정책(동유럽권과의 관계 정상화)에 대한 서독 정치권과 국민들의 하나 된 모습에서 키-디플로머시의 토대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동방정책의 기틀을 닦은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는 사회민주당 출신이었다. 동방정책은 당시까지 동독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던 서독에서 급진적인 정책이었지만 정치권과 국민들은 동방정책에 힘을 실어줬다. 헬무트 콜 전 총리는 보수 성향의 기독민주당 출신이었지만 동방정책을 계승해 마침해 독일 통일로 그 꽃을 피워냈다. 콜 총리 시절의 한스 디트리히 겐셔 외교장관은 중도 성향의 자유민주당 출신으로, 주변국과 동독에 서독판 이니셔티브 디플로머시(Initiative Diplomacy)를 폈다. 서독이 독일(서·동독) 문제와 관련한 외교에서 주변국에 주도권을 내주지 않았던 힘은 초당적이고 일관된 정책 추진과 국민적 공감대였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정책 입안에 깊이 관여한 한 인사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기본 전제는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진보-보수 간에 벌어지는 남남 갈등의 해소다. 그래야 남북 간 신뢰 회복도 가능하다”고 말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미국이 한국의 대북정책을 중심으로 한반도정책을 수립하고 ‘한국을 뺀 북-미 대화는 없다’는 쪽으로 정책을 전환한다는 방침을 한국 정부에 전달해옴에 따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 주도의 전방위 외교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정부 안팎에서 높아지고 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27일 “미국은 북한에 하도 여러 번 속아서 이제 북한과 (협상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해보겠다는 의지가 별로 없다”며 “미국 정부 내에서는 북한과 다시 마주앉겠다는 이야기를 누구도 하기 어려운 분위기”라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미국이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환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외교부 통일부 업무보고에서 “북한의 변화를 마냥 기다릴 것이 아니라 북한이 변화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우리와 국제사회가 힘을 합쳐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북한의 위협에 대응하는 수준의 소극적 정책에서 벗어나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 정부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정부 당국자와 전문가들은 북핵 문제를 풀 새로운 열쇠를 한국 주도의 북핵 해결 외교, 즉 코리아 이니셔티브 디플로머시(Korea Initiative Diplomacy)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 ‘키-디플로머시(KI-Diplomacy)’의 핵심 중 하나는 북핵을 포함한 북한 문제를 풀기 위해 중국을 적극적으로 설득해 대북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움직이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중 공사 출신인 신봉길 한중일협력사무국 사무총장은 “시진핑(習近平) 체제의 중국이 국제사회의 의무를 준수하는 책임 있는 주도 국가가 되겠다는 ‘새로운 대국 관계(新型大國關係)’를 핵심 대외정책으로 천명하면서 북한의 도발을 마냥 감쌀 수 없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키-디플로머시의 다른 핵심 요소로는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 전술에 지친 미국을 한국 주도의 해법에 맞게 잘 이끌고 △이런 정세적, 정책적 변화를 북한에 일깨워 주는 것이라고 당국자와 전문가들은 덧붙였다. 외교안보 라인의 핵심이었던 전직 고위 당국자는 “한국이 주인의식을 갖고 한반도 평화와 안정, 나아가 통일한국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주도적 외교를 펼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윤완준·손영일 기자 zeitung@donga.com}

《 한반도는 그 어느 때보다 엄중한 상황을 맞고 있다. 미국은 잘못된 패턴을 반복하는 북한과의 협상에 지쳐 있다. 한국에 북핵 위협을 포함한 북한 문제의 주도권을 넘기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중국은 북한을 무조건 감싸온 정책의 전환을 고심하며 한중 관계의 심화와 발전에 상당한 비중을 두는 모습이다. 주요 2개국(G2)이 모두 한국의 대북정책과 외교향방을 주목하는, 전례 없는 상황이다. 한국이 주도적 전방위 외교를 펼치는 코리아 이니셔티브 디플로머시(Korea Initiative Diplomacy)가 절실한 시점이다. ‘키-디플로머시(KI-Diplomacy)’가 북핵문제 해결의 새로운 키(Key)가 될 수 있는 방안을 2회에 걸쳐 짚는다. 》시진핑(習近平) 체제의 중국이 기존 대북정책을 전환할 수 있다는 조짐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 중국의 대북 원유 수출 중단설 등이 대표적이다. 주펑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중국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제재 결의 동참은 ‘한반도 불안정의 최대 원인이 북한이라면 중국도 한국 미국 일본과 함께 대북 제재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중국을 움직일 호기 국제사회에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다는 ‘새로운 대국 관계(新型大國關係)’를 공식화한 중국은 ‘북한의 잘못된 행동을 감싸는 중국’이란 국제사회의 부정적 시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북한을 변화시키기 위해 중국의 결단과 행동이 절실한 한국에는 이런 상황이 전략적 호기인 셈이다. 외교부의 한 중국 전문가는 “북한을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으로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새로운 대국 관계의 핵심 과제라는 점을 대중국 외교의 핵심 논리로 개발해 끊임없이 대화하고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아시아로의 귀환(Pivot to Asia)’을 내세우며 대아시아 정책을 강화하고 이 과정에서 미일동맹이 끈끈해진 점도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고 있다. 한국마저 미국과 밀착하면 동북아의 세력 균형이 급격히 기울 수 있다는 위기감이 중국 정부에 있다는 것이다. 중국은 한국이 한중일 관계의 ‘중간자 역할’을 해주길 바라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했다. 이를 적극 활용해 5월 서울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의를 한국 주도의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코리아 이니셔티브 디플로머시’의 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 대중(對中) 촉매 논리를 개발해야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한중 당국 간 심도 있는 전략대화를 통해 한국이 북한의 갑작스러운 붕괴를 바라지 않으며, 한미동맹이 대중 봉쇄망에 이용되지도 않을 것이라는 점을 끊임없이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북한 문제에서 중국이 한국에 갖고 있는 불신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선 한중 간에 이런 대화가 없었다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박근혜 대선캠프 출신의 한 전문가는 “북한의 붕괴를 원하거나 가능성을 높게 본 이명박 정부는 그런 대화가 절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석희 연세대 교수는 “한국이 북한의 붕괴를 원하지 않고 안정을 원한다고 중국에 말하는 순간 한중은 북한의 정상국가화라는 같은 목표를 공유하게 된다. 중국과의 대화는 훨씬 부드러워지고 새로운 차원의 설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 “그 사람 친미주의자 아니오!” 이런 외교를 위해 청와대를 비롯한 외교안보 핵심라인에 중국도 잘 아는 외교통이 절실하지만 박근혜 정부도 미국통과 군인 출신으로만 짜였다는 우려가 많다. 한 정부 관료는 “중국 관료들이 박근혜 정부에 대한 기대가 많았는데 외교안보라인 진용을 보고 실망했다는 말을 많이 한다”고 했다. 지난해 대선 당시 중국 관리가 박근혜 후보의 외교 실세는 누구냐고 묻기에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라고 답했더니 그가 대끔 “그 사람은 친미주의자 아니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한국 관료는 “사실이 아니다. 균형감각을 갖춘 외교관이다”라고 설명했지만, 윤 장관의 주요 경력이 미국 업무에 집중돼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인식을 쉽게 걷어내지 못했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은 윤 장관 같은 ‘워싱턴 스쿨(미국통)’과 김장수 국가안보실장 같은 군 출신밖에 없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현 정부에는 중국통도 없지만, 국제정세의 큰 그림 속에서 중국의 생각을 정확히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없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윤완준 기자·베이징=이헌진 특파원 zeitung@donga.com}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앞으로는 한국의 대북 정책을 중심으로 미국의 대(對)한반도 정책을 짜겠다”는 뜻을 여러 외교 경로를 통해 박근혜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26일 알려졌다. 또 “남한을 배제한 북-미 양자 대화를 하지 않을 것”이란 뜻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 방향의 근본적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미 정부의 고위 관계자는 최근 한국 측 인사와의 면담에서 “과거에는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이 한국의 대북 정책의 근간이 됐지만 앞으로는 한국의 대북 정책이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의 일환으로 그대로 흡수돼 반영될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의 고위 당국자들도 “사실상 한국이 소외된 채 이뤄진 ‘지난해 2·29 북-미 양자 합의’가 북한의 계속된 핵과 미사일 도발 때문에 처참한 실패로 결론나면서 오바마 행정부가 기존의 대한반도 접근 방식에 근본적 회의를 품게 됐다”고 말했다. ‘2·29 합의’의 뼈대는 북한이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을 중단하고 장거리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유예하면 미국이 그 대가로 약 24만 t의 식량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계속된 도발로 유야무야돼 버렸다. 또 고위 당국자들은 “미국은 그동안 북한을 해결해야 할 ‘본질(substance)’로 보고 한국은 그 문제 해결 과정의 ‘수단’으로 여긴 측면이 있었다”며 “그러나 ‘2·29 합의’의 실패 이후 워싱턴 정가에서 이런 기존 시각에 대한 큰 반성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주요 당국자들은 1월 미국에 파견됐던 한국의 정책협의단에도 “한국이 어떤 대북 정책을 결정해도 전적으로 동의하고 지원할 것”이라는 의사를 전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의 이런 정책 기조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다음 달 2∼4일 미국 방문과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의 다음 달 중순 방한 등 한미 간 고위급 협의를 통해 구체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국 정부 관계자들이 전했다.윤완준·부형권 기자 zeitung@donga.com}
“역사에 눈감는 자, 미래를 볼 수 없다.” 외교부 조태영 대변인은 26일 일본 정부가 ‘한국이 독도를 일방적으로 점거하고 있다’는 왜곡된 내용을 담은 고교 교과서의 검정을 통과시킨 직후 항의 성명에서 이같이 경고했다. 조 대변인은 성명에서 “일본 정부가 여전히 역사를 직시하지 않고 자신의 책임을 외면하는 내용을 포함한 고교 교과서를 검정, 통과시킨 데 대해 강력히 항의하며 근본적인 시정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는 검정을 통과한 일본 교과서에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재론의 여지가 없는 우리 고유의 영토인 독도를 여전히 일본 영토로 부당하게 주장하는 내용이 포함된 점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한다”고 강조했다. 조 대변인은 또 “지난 역사에 대한 정직한 성찰에 기초하지 않은 교과서는 결국 일본의 미래 세대에게 그릇된 역사관을 심어줌으로써 과거사의 무거운 짐을 지운다는 것을 일본 정부는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일본 정부가 역사를 직시하고 책임 있는 행동을 취함으로써 한일 간 과거의 상처를 하루빨리 치유하는 것이 양국 간 신뢰를 회복하는 첩경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오후 외교부 박준용 동북아국장은 구라이 다카시(倉井高志)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로 불러 일본 교과서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과거사 왜곡을 강력히 항의하고 정부의 항의가 담긴 외교문서를 전달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일본 교과서의 역사 왜곡과 독도 영유권에 대한 억지 주장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동아일보의 항일 투쟁인 일장기 말소 사건을 언급한 교과서가 있어서 한국 정부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일본 문부과학성의 고교 교과서 검정을 통과한 진보 성향인 짓쿄(實敎)출판의 일본사A 교과서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 선생(1912∼2002)의 시상식 장면이 담긴 사진을 소개하면서 일장기를 말소한 동아일보 보도를 언급했다. 정부 관계자는 “동아일보를 명시하면서 일장기 말소 사건을 서술한 교과서는 처음인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총독부가 동아일보 무기한 발행정지시켰다” 명시 ▼이 교과서는 사진 옆에 ‘베를린 올림픽의 마라톤 시상식’이라는 제목을 달고 “베를린 대회의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은 조선인이었지만 당시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손 선수는 일장기를 가슴에 붙이고 달릴 수밖에 없었다”고 기술했다. 이어 “조선의 신문인 ‘동아일보’가 일장기를 지운 손 선수의 사진을 게재하자 조선총독부는 동아일보를 무기한 발행 정지시켰다”고 적었다. 이 교과서는 ‘운동과 사회’라는 장에서 올림픽 경기를 설명하며 손 선수의 시상식 사진과 사진설명을 함께 실었다. 사진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남자 마라톤 시상식에서 우승한 손 선생과 3위를 차지한 남승룡 선생이 일본 국가가 나올 때 나란히 고개를 숙인 모습이다. 손 선수는 시상식에서 받은 올리브나무를 가슴 쪽으로 끌어당겨 일장기를 보이지 않도록 가리고 있었다. 외교부 당국자는 “손기정 선생이 한국인이었다는 사실과 동아일보의 일장기 말소 사건을 짧게나마 서술한 것은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 중에서 그나마 의미를 둘 수 있는 진전된 부분 중 하나”라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1936년 8월 25일자에 손 선생이 올림픽 최고기록으로 우승한 소식을 전하면서 시상대에 오른 손 선생의 가슴에 있던 일장기를 지우고 게재했다. 이로 인해 현진건 당시 사회부장, 일장기 말소를 주도한 이길용 기자 등 8명이 구속되고 송진우 사장, 김준연 주필, 설의식 편집국장 등이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동아일보는 조선총독부로부터 무기정간 처분을 받았다. 손 선생은 귀국 길에 이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듣고 “나의 심경을 대변해 준 동아일보에 감사한다. 고초를 겪고 있는 기자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짓쿄출판의 이 교과서는 ‘위안부란 강제 모집돼 일본병사를 성적(性的)으로 상대하도록 강요받은 사람’이라는 내용과 “1993년 군이 관여해 위안소가 설치된 것을 인정하고 사죄와 반성을 했다”는 ‘고노(河野)담화’도 소개했다.윤완준 기자·도쿄=박형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미국이 한국을 배제한 북-미 대화로는 북핵 위협을 포함한 북한 문제를 풀 수 없다고 깨닫고 대(對)한반도 정책을 한국 중심으로 전환하게 된 것은 처절한 자기반성의 결과다. 세 차례의 북-미 고위급 회담을 어렵게 이어 가며 타결한 지난해 ‘2·29 합의’의 실패가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 경험을 통해 ‘미국이 북-미 양자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한을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자각을 했다는 것이 한미 고위 당국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북한은 남한을 미국과 거래하기 위한 통과 의례 정도로만 여기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술을 일관되게 써 왔다. 이에 질색한 미국이 ‘한국과 통하지 않고는 북한과 대화하지 않겠다’는 ‘통남봉북(通南封北)’ 의지를 확고히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3일 미 A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미 직접 대화 가능성을 묻자 “우리(미국)는 (북핵 문제의) 유일한 당사자가 아니다. 문제를 풀기 위해선 분명히 한국, 중국 등 6자회담 당사국이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29 합의 처절한 실패와 깨달음 2·29합의는 북한의 위협→협상→도발로 이어지는 잘못된 패턴에 미국이 말려든 사건이다. 이 합의에서 북한은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을 중단하고 장거리미사일 시험 발사와 핵실험을 유예(모라토리엄)하는 대가로 24만 t이라는 미국의 대규모 식량 지원을 약속받았다. 미국은 지난해 4월과 8월에도 한국과 별다른 협의 없이 고위 당국자를 비밀리에 북한에 파견해 별도의 협상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의 핵심 관계자는 “한국은 철저히 소외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북한의 잇따른 도발로 2·29 합의가 휴지 조각이 되자 워싱턴 정가에서 대북 협상파의 설 자리가 사라졌다. 2·29 합의 때만 해도 대화론자로 북-미 대화를 주도한 미 글린 데이비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도 이달 7일 미 상원 청문회에서 “대화를 위한 대화에 응하지 않겠다. 남북 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한 북-미 관계도 개선될 수 없다는 점을 북한에 분명히 알렸다”고 밝혔다. ○ 대북 정책의 주도권을 얻은 한국 미국의 고위 당국자는 최근 한국 인사를 만난 자리에서 “남북 관계가 경색되더라도 인도적 지원과 대화 창구를 열어 놔야 한다는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환영하고 한국이 대북 정책의 돌파구를 마련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이런 전폭적인 한국 지지는 동북아 지역에서 중국과의 패권 다툼이 날로 가열될 개연성이 커지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정부 당국은 보고 있다. 한국 정부의 당국자들은 “미국의 한반도 정책의 중심이 ‘북-미 관계를 어떻게 다룰 것이냐’의 문제에서 ‘한미 관계를 어떻게 더 굳건히 할 것이냐’의 문제로 옮겨 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로서는 주도적으로 남북 관계 개선과 비핵화 정책을 추진할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통남봉북’ 태도를 북한의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 내는 데 활용할 수도 있다.박근혜 정부가 최근 북한의 도발 위협에도 ‘일정 기간 북한이 자제하면 대북 인도적 지원을 시작할 수 있다’는 뜻을 나타내고 있는 것도 이런 기류를 반영한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정부가 주도적으로 현 상황을 관리하면서 대화의 물꼬를 트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윤완준·조숭호 기자 zeitung@donga.com}
정부 핵심 관계자는 20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지금 단계에서 대북 추가 제재를 당장 시행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이 발언은 이날 북한 돈줄을 차단하는 대북 금융 제재를 총괄하는 데이비드 코언 미국 재무부 테러·금융담당 차관이 한국 정부 핵심 당국자들을 잇달아 만나 북한 및 이란 제재 방안을 논의한 시점과 맞물려 주목된다. 한국 정부로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를 이행하되 미국의 대북 추가 양자 제재에 적극 동참하는 문제에는 신중히 하겠다는 정책적 의지로 읽힌다. 이날 코언 차관과 외교부 임성남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의 면담에서도 조선무역은행 제재를 포함해 미국의 추가 제재에 대해 양국이 긴밀히 협의하자는 의견은 오갔으나 한국이 미국의 대북제재에 동참한다는 결정은 나오지 않았다. 외교부 당국자는 논의 내용에 대해 ”(제재에 대한 한국의) 협조가 아니라 (양국 간) 협의였다”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미국의 독자 제재를 둘러싸고 한미 간 이견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이에 외교부 측은 “미국이 제재 동참 요청을 하지는 않았다”며 “북한의 핵실험과 도발에 단호히 대응하되 대화의 문을 열어놓는다는 기조에 한미가 넓은 공감대를 갖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북한 선박 검색 등 정부 나름의 제재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북한이 도발하지 않으면 남북 간 신뢰를 회복할 정책을 펼 계획이 있기 때문에 관련 동향을 보면서 (제재의 실행 시기 등을)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유엔 안보리 제재도 북한에 큰 압박이고 미국 중국 등도 추가 제재를 하고 있다”며 “한국의 대북 추가 제재는 결정되더라도 실행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대북 양자 제재는 서두를 이유도 없고, 북한의 태도 변화를 봐가며 전략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정부 안팎에서는 “앞으로 북한이 일정 기간 이상 추가 도발을 하지 않는다면, 그에 대한 남북대화 재개 희망의 제스처로 그만큼 한국의 대북 추가 제재 조치도 미루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지 않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 일각에서는 이런 전략적 구상과 관련해 ‘개성공단 역할론’을 기대하고 있다. 정부의 핵심 관계자는 “개성공단은 안보리 대북제재와 상관이 없고, 한국 정부의 제재 대상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설사 미국이 개성공단 제재를 요청하더라도 그렇게 할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김일성 생일(4월 15일) 전후로 북한이 긴장 국면을 완화해 나갈 가능성이 있다”면서 “악화된 남북관계의 연착륙 방안으로 유일하게 남북 간 열려 있는 개성공단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대북 인도적 지원의 적절한 시기로 춘궁기를 맞는 5월을 검토하고 있다. 한 핵심 관계자는 “그때까지 도발이 안 일어나면 국제기구를 통한 지원이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코언 차관은 이날 한국을 떠나 중국에 도착하는 것으로 2박 3일의 방중 일정을 시작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아산정책연구원(원장 함재봉)이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북한이 핵실험을 했지만) 불안하지 않다’는 대답이 35.7%나 됐다. 그 35.7%의 ‘안보 불감증’은 어디서 온 것일까. 19일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선 이를 인지심리학으로 분석한 결과가 발표됐다. 이나경 이화여대 연구교수는 ‘신호탐지 이론’을 소개했다. 위험에 대한 신호가 있고 그것을 발견하면 ‘적중(hit)’이다. 신호가 없는데도 발견했다고 느끼면 ‘틀린 경고(false alarm)’다. 신호가 있는데도 이를 발견했다고 느끼지 못하면 ‘탈락(miss·놓침)’이다. 신호도 없고 발견하지도 못했으면 ‘경보 해제(all clear)’다. ‘적중’과 ‘틀린 경보’는 위험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탈락’과 ‘경보 해제’가 반복되면 사람들은 위험 신호에 거부 반응을 느끼고 웬만한 위험은 위험으로 느끼지 못한다. 이를 북한의 도발에 대입하면 신호는 ‘북한의 도발 위협’, 신호의 발견 여부는 ‘실제 도발’이다. 이 교수는 안보 불감증의 원인으로 ‘탈락’ 현상에 주목했다. 한국인들이 북한의 도발 위협은 많지만 그에 비해 실제 도발은 적다고 인지한다는 것이다. 군 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1990년부터 현재까지 535회에 걸쳐 크고 작은 대남 도발을 일으켰다. 연평균 약 40회의 도발을 일으킨 셈이다. 그럼에도 실제 도발이 적다고 느끼는 이유는 뭘까. 이날 ‘위험 지각에 대한 인지심리학적 접근’을 발표한 이영애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위험 인식은 주관적 개념이다. 예컨대 서울시민은 서울에서 직접적 도발이 일어난 적이 없다는 경험과 감정을 바탕으로 판단하기 때문에 (실제로 도발이 많았다는) 데이터의 의미가 줄어든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나경 교수는 한국의 ‘비현실적 낙관주의’, 즉 ‘설마 나한테 무슨 일이 있겠어?’라는 심리도 안보 불감증의 한 원인으로 꼽았다. 자연재해 등 모든 위험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많이 갖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영애 교수는 “미국 일본 등은 북한의 핵실험을 구체적 데이터로 판단하는 데 비해 한국의 일반인은 그 데이터에 자신의 감정 경험을 더함으로써 위험에 대한 지각이 왜곡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안보 불감증의 오명에서 벗어나 안보 위험을 제대로 지각할 수 있도록 객관적인 지식과 정보가 제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북한의 3차 핵실험 등 고조되는 북핵 위협에 한국도 핵무장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달아 나왔다. 송대성 세종연구소 소장은 18일 자유민주연구학회가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연 ‘천안함 폭침 3주기 과제와 북핵 위기의 대응’ 세미나에서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응해 한국도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폐기하고 미국의 핵무기를 재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 소장은 “북한은 비핵화 공동선언에 위장 서명하고 20년간 핵을 개발해 결국 핵보유국이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북한이 핵보유국이 되면 한국도 핵보유국이 돼야만 생존할 수 있다.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한 대책은 ‘공포의 균형’밖에 다른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이 자체 핵무장할 때까지 미국 핵무기를 한국에 재배치함으로써 남한을 상대로 핵무기를 사용하면 반드시 멸망한다는 공포를 북한이 느끼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미국의 전술핵무기가 모두 폐기됐다’는 주장에 대해 “현재 미군은 9400기의 전술핵무기를 보유 중”이라고 주장했다. 한반도선진화재단(이사장 박세일)이 이날 같은 장소에서 개최한 ‘우리도 핵을 가져야 하나’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도 전술핵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상의 전 합참의장은 “(자체) 핵무기 보유는 리스크가 크고 비용과 기간이 너무 많이 든다”며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는 매우 긍정적으로 판단한다. 전술핵을 육지에 가져다놓는 게 가장 이상적이고 (전술핵을 실은) 잠수함을 한반도 주변에서 운용하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이어 “핵 억지력을 위해 핵 재처리 권한은 절박하고도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박근혜 대통령이 5월 방미 때 정권의 사활을 걸고 원자력협정 협상을 타결시켜 재처리 권한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도 이날 미국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핵무기를 갖고 있는 북한과는 평화 공존할 수 없으며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 가능한 모든 대안을 고려해야 한다. 대북 억지력을 확보하기 위해 우리도 미국의 전술핵을 다시 반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조숭호·윤완준 기자 shcho@donga.com}
주말인 16, 17일 북한은 북한 내부와 남한, 미국과 중국을 향해 ‘4차원 메시지’를 내보냈다. 남한에는 거친 말로 협박을 계속했고 내부적으론 민심 이반을 막으려는 듯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미국에는 ‘협상으로는 핵 포기할 생각 없다’는 뜻을 밝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 이후 갈등설이 불거진 중국에는 ‘양국 우호 전선 이상 없다’는 화합의 제스처를 보였다. 북한 외무성은 16일 담화에서 “우리가 경제적 흥정물로 핵을 보유했다는 생각은 허황된 오산이다.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지 않는 한 미국과 대화할 생각이 없다”고 주장했다. 담화는 또 “다른 길을 택하면 도와주겠다는 미국의 유혹이 개소리로밖에는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토머스 도닐런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11일 발언(“북한이 의미 있는 조치를 취해야 진정한 협상에 응할 것”)을 비난한 것이다. 한국 정부 당국자는 “미국이 북한의 나쁜 행동(도발)에는 보상하지 않겠다는 강한 메시지를 내놓자 (북한이) 신경질적으로 대응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은 중국의 새 지도부에는 잇따라 축전을 보내며 조중(북-중) 우호는 변함없음을 과시했다. 북한은 17일 리커창(李克强) 신임 중국 국무원 총리에게 축전을 보내 “전통적인 조중친선협조관계가 쌍방의 공동의 노력에 의해 계속 공고 발전되리라는 확신을 표명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이날 왕이(王毅) 신임 외교부장에게도 축전을 발송했다. 14일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장더장(張德江) 전국인민대표대회(전국인대) 상무위원장에게도 축전을 보냈다. 반면 한국에는 노골적 도발 협박을 계속했다. 조선중앙통신은 16일 정홍원 국무총리 이름을 거론하며 “첫 벌초 대상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정 총리가 14일 연평도를 방문해 “북한 도발에는 10배의 타격이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고 말한 것에 대한 ‘보복성 협박’인 셈이다. 조선중앙통신은 16일 “어디서나 1950년대 전시가요가 울려 퍼지고 있다”며 북한 전역이 준전시 상태임을 강조했다. 다분히 체제 결속을 위한 선전선동으로 풀이된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살구나무가 보였다. 연한 붉은색 꽃의 나무. 얼마 전 누군가가 여기에 목을 맸다. ‘자다가 고통 없이 죽을 수 없을까.’ 2011년 4월 우즈베키스탄 베카바트 지역 교도소의 유일한 한국인 수감자 황원선 씨(47)는 침대에 누워 되뇌었다.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에서 남쪽으로 210km, 겨울엔 영하 40도인 이곳에 들어온 지 2년. 아직 7년이 더 남았다. 그는 다시 살구나무를 쳐다봤다. 그가 우즈베키스탄 검찰에 구속된 것은 2009년 1월. 그는 현지에서 무역업을 했다. 현지인 직원이 그의 이름을 내세워 우즈베키스탄인의 한국행을 불법 알선하다가 돈을 챙겨 달아났다. 졸지에 공범이 됐다. 그의 억울함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9년형이 선고됐다. 철창에 둘러싸인 한 평(3.3m²)도 안 되는 공간에 죄수 14명을 가둔 교도소 이송 열차. 13시간을 달렸다. 그는 7번 동에 배정됐다. 작고 더러운 침대가 그를 반겼다. 끝 모를 두려움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국에 홀어머니가 있었지만 차마 알리지 못했다. 2009년 7월의 어느 날. 교도관이 면회 요청이 왔다고 알려왔다. ‘누굴까….’ 구속됐을 때 많은 도움을 줬던 주우즈베키스탄 한국대사관의 이희석 영사(경찰청 소속)였다. “아이고, 영사님….” “힘내셔야 합니다.” 이 영사가 쌀밥과 불고기를 가져왔다. 하얀 쌀밥 위로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두 달 뒤 이 영사의 후임인 심기철 영사가 찾아와 항소를 권했다. ‘나를 기억하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 타슈켄트에서 항소심이 진행된 6개월간 심 영사가 매주 그를 찾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그를 절망시켰다. 2010년 3월 교도소로 다시 호송됐다. 절망이 깊어졌다. 2011년 4월경 죽음을 생각했다. 살구나무가 자꾸 눈에 보였다. 그의 죽음을 가로막은 건 심 영사의 계속된 면회였다. “이럴 때일수록 희망을 잃으면 안 됩니다!” 2012년 여름부턴 후임인 우병일 영사가 왔다. 우 영사가 면회를 왔던 많은 날들 중 같은 해 11월 26일은 잊을 수 없다. 3시간여 면회가 끝난 뒤 우 영사가 그를 꼭 안았다. “당신에게는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제가 있습니다.” 두 남자의 뜨거운 포옹은 3분 넘게 계속됐다. 그 옆을 지나던 수백 명의 수감자가 술렁거렸다. “황 씨, 한국 정부가 왜 이렇게 당신에게 잘해줘?” “세상에 어느 나라 대사관 직원이 죄수를 껴안아 주나?” 싸늘하게 식어 있던 그의 가슴이 뭉클거렸다. “그건 교도소 안의 코리안 드림이었습니다. 다른 외국인 수감자들의 대사관 면회는 거의 없었거든요. 영사들이 와도 무심하게 ‘더이상 도와줄 수 없다’는 말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한국대사관은 날 품에 안아줬습니다. 내 부모님이었습니다.” 올해 1월 24일 그는 마침내 교도소에서 풀려났다. 4년 만이었다. 그동안 우 영사가 석방탄원서를 우즈베키스탄 당국에 수차례 제출하고 당국에 부탁한 끝에 지난해 12월 특별사면 대상이 된 것이다. 교도소 문을 나설 때 그는 여전히 죄수복 차림이었다. 다른 옷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 영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현재 부산에서 낮엔 냉면식당, 밤엔 야간업소 주방에서 일한다. 우 영사가 준 고동색 코르덴바지를 여전히 입고 있다. “그들이 있어 살아낼 수 있었습니다. 내가 기자 분에게 전한 말은 내가 받은 사랑의 30%도 담지 못합니다.” 15일 기자와 통화하는 그의 목소리는 이미 흠뻑 젖어 있었다. 우 영사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그렇게까지 도운 이유를 물었다. “일을 떠나 인간 대 인간으로 진심으로 대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일주일 새 세 번이나 서해 전선을 찾았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빌미로 백령도 연평도 등 서해 5도에서 도발을 일으킬 명분을 쌓고 있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정부 일각에서는 “성동격서 전술 같다. 서해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도발하거나 4차 핵실험 같은 전략도발을 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 조선중앙방송은 14일 김정은이 ‘대연평도와 백령도 타격을 위한 포병대들의 실전능력 판정을 위한 실탄 사격훈련을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한국 영토를 명시한 군사훈련 보도는 드문 일이다. 방송은 방문 시기와 구체적인 장소를 밝히진 않았다. 한국 정부 관계자는 “13일 서해 옹진반도의 북한 4군단 포병부대 지역을 시찰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실탄 사격훈련은 연평도 백령도의 한국군 연평도서방어부대본부, 육·해병여단 본부와 방사포 진지 등을 집중 타격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고 중앙방송이 보도했다. 또 김정은이 “훈련 참가 부대 중 장재도, 무도 방어대가 제일이라고 치하했다”고 전했다. 두 부대는 2010년 연평도를 포격한 부대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도 이날 1면에 훈련 사진을 게재했다. 김정은은 7일엔 무도, 장재도 방어대를 찾아 “연평도 포격전은 정전 이후 가장 통쾌한 싸움”이라고 말했다. 11일엔 백령도에서 불과 11∼18km 떨어진 월내도 방어대와 인근 내륙의 장사정포 부대를 찾아 한국군 해병6여단에 대한 타격 순서를 점검했다. 한편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4일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에서 북한의 3차 핵실험 등을 비판했던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해 “반기문이 미국에 굴종하던 남조선 외교통상부 장관 시절의 때를 아직도 벗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미국이 11일 북한 대외무역의 중앙은행 격인 조선무역은행을 제재 리스트에 올린 것은 합법과 불법을 가리지 않고 중국 등 외부 세계에서 북한으로 들어가는 달러를 막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북한 금융기관 간부 출신인 김광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은 13일 “내각 산하 기관인 조선무역은행은 북한의 대외무역 자금 전반을 담당하는 곳으로 그동안 미국의 제재 리스트에 올랐던 당과 군 경제 산하 외화벌이 관련 군소 금융기관들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말했다. 현재 북한 무역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 기업의 상당수가 중국의 은행을 통해 조선무역은행과 거래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의 이번 조치는 중국 은행들이 북한과의 거래를 꺼리도록 만드는 단초를 마련했다는 분석이다. 미 재무부는 11일 미 기업과 금융기관이 조선무역은행과 거래하지 못하도록 금지하는 동시에 “우리는 ‘전 세계의 금융기관’들이 조선무역은행과의 거래 위험에 각별히 주의하기를 촉구한다”고 명시했다. 애국법 311조를 동원해 미 금융기관이 조선무역은행과 거래하는 중국 금융기관과 거래할 수 없도록 하는 초강수 조치를 취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조선무역은행과 거래하는 ‘전 세계 금융기관’의 사실상 대부분인 중국 은행들에 일종의 ‘구두 경고’를 한 것이다. 대북 금융제재 전문가인 장형수 한양대 교수는 “유엔의 용어선택을 준용한다면 촉구한다(urge)는 표현은 결정한다(decide)보다는 약하지만 강조한다(underline)보다는 세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4, 5차 핵실험을 강행하고 조선무역은행의 대량살상무기(WMD) 관련 자금 불법 취급의 증거가 더 드러나면 언제든지 제재의 수위를 높일 가능성을 보여줬다. 애국법 311조를 적용하면 2005년 방코델타아시아(BDA) 사례보다 더 강력한 제재가 가능하다.워싱턴=신석호 특파원·윤완준 기자 kyle@donga.com}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되는 한반도는 요즘 시계(視界) 제로 상태다. 서로 치고받는 ‘말(言) 폭탄’이 언제 실제 폭탄이 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 국방위원회 산하 인민무력부는 13일 대변인 담화를 통해 “괴뢰군부 호전광들의 광기 어린 추태는 청와대 안방을 다시 차지하고 일으키는 독기 어린 치맛바람과 무관치 않다”며 한국의 첫 여성 군 통수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했다. 담화는 또 “이 땅에 이제 더는 정전협정의 시효도, 북남불가침선언에 의한 구속도 없다. 남은 것은 우리 군대와 인민의 정의의 행동, 무자비한 보복 행동뿐”이라고 위협했다.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가 박 대통령을 비판한 적은 있으나 북한 정부기관이 직접 비난에 나선 것은 취임 이후 처음이다. 이에 한국 정부 당국자들은 이날 “서해 5도 지역 등에 대한 북한의 국지 도발과 추가 핵실험, 로켓 발사 같은 전략도발의 가능성에 다각도로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물밑으론 한반도 안보 위기 국면을 벗어날 남북대화 창구 모색 등 출구전략도 고심하고 있다.○ 북, 남한의 긴장 풀리는 시점 노려 군 당국은 한미연합군사연습인 키리졸브가 끝나는 21일 직후나 천안함 3주기(26일) 이후에 북한이 기습적으로 도발할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 키리졸브 훈련이 끝나면 미군 증원 전력이 한반도에서 철수하게 된다. 북한으로선 한미 연합군의 대응타격에 대한 부담감이 줄어드는 것이다. 2010년 천안함 폭침도 키리졸브가 끝난 지 8일 만인 3월 26일 발생했다. 정통한 대북 소식통은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연평도나 백령도가 보이는 최전방을 잇달아 방문해 남측 도발 대상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은 오히려 ‘성동격서’ 전술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3월 하순이나 4월경 국지도발 대신 4차 핵실험이나 은하로켓 발사 같은 전략도발을 단행할 수도 있다고 이 관계자는 전망했다. 군 당국자도 “북한은 제2의 연평도, 제2의 천안함 사건을 일으키면 남한의 대응이 어느 때보다 강력할 것임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핵실험이나 로켓 발사 같은 전략도발은 한미 양국과 국제사회의 즉각적인 대처가 어렵고 실효적인 제재에도 한계가 있다고 이 당국자는 설명했다.○ 정부 “긴장 벗어날 출구전략 모색” 정부는 북한의 예측불허 도발 위협에 다각도로 대처하면서도 한반도 안보 위기를 풀 실마리를 찾는 데 골몰하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거친 말이 오가는 강대강(强對强)의 대치 국면이 지속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며 “과거처럼 뭘 주기 위해 북한에 대화를 구걸하지는 않지만 남북 간 갈등을 풀기 위한 대화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전격적인 남북 군사회담 제의를 비롯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행 청와대 대변인도 13일 브리핑에서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실의 보고사항”이라며 “판문점 남북 직통전화는 단절됐지만 남북 간 군 통신은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어 필요하면 이를 통해 대북 메시지를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군 통신선을 통해 도발 자제 요청은 물론이고 이를 위한 군사회담 제의 가능성도 열어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북한이 일정 기간 자제하면 남북관계 경색을 풀 방안을 추진할 수 있다. 그 첫 번째 시도는 인도적 지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도 “상황을 가라앉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대북 메시지가 강경 대립보다는 긴장 고조를 막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윤완준·조숭호·손영일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