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

김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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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국제부 기자입니다. 예술가의 이야기를 따로 모아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kimmin@donga.com

취재분야

2024-04-04~2024-05-04
미술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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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중해에 빠진 건곤감리 4괘의 느낌은…

    서울 중구 금산갤러리에서 다음 달 9일까지 그리스 작가 안젤리키 안젤리디스의 개인전 ‘클라이밍(Climbing)’이 열린다. 이 전시는 주한 그리스대사관이 6·25전쟁 정전 70주년을 맞아 진행하는 한국·그리스 문화 교류 행사의 일환으로 마련됐다. 작가의 최근 회화 작품 24점을 소개한다. 작가는 2016년부터 시각 예술을, 2019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회화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2020년부터 아시아 문화와 역사를 공부해 같은 해 그리스 아테네 시청에서 한국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전시했다. 최근에는 프랑스 파리, 벨기에 브뤼셀 등을 중심으로 개인전을 이어왔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동양의 음양사상을 ‘빛과 그림자’로 해석했다. ‘Air-Sky’, ‘Earth’, ‘Water’, ‘Fire’ 등의 작품은 태극기에 담긴 건곤감리 4괘의 의미를 그리스 바다와 풍경 등 상징적 요소를 더해 만들었다. 꽃이 핀 나무를 표현한 작품 ‘Dream’에 대해 작가는 “한국인은 벚꽃을 연상하지만, 그리스인에게는 아몬드 나무처럼 보이게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림에서 국적과 관계없이 모든 관객이 자신만의 고향을 떠올리는 무언가를 찾을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전시 제목 ‘Climbing’은 자신이 지금까지 이룬 성취를 가능한 한 많은 나라에서 보여주고 싶다는 작가의 바람을 담았다. 작가는 “이번 전시가 나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첫걸음이기 때문에 꿈과 포부를 담아 전시명을 정했다”고 말했다. 13일 열린 전시 개막식에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나마, 필리핀 등 10여 개국의 주한 외국 대사들이 에카테리니 루파스 주한 그리스 대사의 초청으로 참석했다. 루파스 대사는 “6·25전쟁 당시 그리스 군인과 간호사가 참전하면서 그리스인들이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며 “70년 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의 한국에 오게 된 것이 기쁘다”고 말했다. 이어 “안젤리디스 작가의 작품을 비롯한 미술을 매개로 한국과 그리스가 더 가깝게 연결돼 서로에게 좋은 영감을 주고받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는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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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中서 인기몰이 조각가 김선구, 8년만에 ‘응축된…’ 개인전

    역동적인 작품으로 중국에서 인기를 모았던 조각가 김선구(64)가 14일 경기 파주시 이랜드갤러리 헤이리에서 8년 만의 개인전 ‘응축된 순간들’을 개막했다. 김 작가는 중국 미술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던 2000년대 달리는 말 위에 기사가 타고 있는 형상 등 남성적이고 역동적인 조각으로 중국 컬렉터의 인기를 끌었다. 2006년 중국 상하이아트페어에서 말조각 ‘질주’를 출품해 ‘올해의 조각’으로 선정됐고, 2007년에는 중국 닝보미술관, 상하이 쉬후이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개최하는 등 자신감 넘쳤던 중국의 당시 분위기와 맞아떨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14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달리는 호랑이의 등에 올라탔던 것 같다”고 2000년대를 회고했다. 그의 작품의 주요 컬렉터는 중국에 외국 자본이 투자해 만들어진 합작회사의 대표들이었다. 김 작가는 “당시 중국 부자들은 명대(明代) 문화재를 수십억 원에 사고, 장다첸(1899∼1983)의 그림을 며칠을 쫓아다녀 십수억 원을 주고 샀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했다”며 “내 작품은 수억 원 정도이니 저렴한 편이었던 것”이라고 했다. 이어 “열 살짜리 딸의 생일 선물을 산다며 내 작품을 사간 적도 있다”면서 웃었다. 중국에 자본이 넘쳐났던 시절 한국 갤러리들의 진출도 활발했다.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2013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집권과 2016년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논란이었다. 작가는 “시진핑이 집권하고 부정부패를 방지한다며 사회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면서 “사드 논란 뒤엔 중국에서 주문이 딱 끊겼다”고 말했다. 다시 교류가 시작될 무렵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또다시 길이 막혔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작품 20여 점은 그리스 신화의 인물을 형상화하거나, 종교적 의미를 담아 최근 제작한 것들이다. 중국에선 선보이기 어려운 주제이기도 하다. 작가는 “의뢰를 받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었던 작품을 이제야 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30일까지. 무료.파주=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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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진출했던 조각가 김선구, 8년 만에 개인전 열어

    조각가 김선구(64)가 경기 파주시 이랜드갤러리 헤이리에서 8년 만에 개인전 ‘응축된 순간들’을 열었다. 김선구는 2000년대 중국 미술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을 때, 중국 컬렉터의 취향에 맞는 조각으로 인기를 끌었다. 2006년 중국 상하이아트페어에서 말조각 ‘질주’를 출품해 ‘올해의 조각’으로 선정됐고, 2007년에는 중국 닝보미술관, 상하이 쉬훼이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전시가 개막한 14일 갤러리에서 만난 작가는 2000년대에 “달리는 호랑이의 등에 올라탔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그의 작품은 달리는 말 위에 기사가 타고 있는 모습 등 남성적이고 역동적인 특징이 두드러진다. 당시 시장을 개방하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개최하는 등 자신감 넘쳤던 중국의 분위기와 맞아 떨어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주된 컬렉터는 중국에 외국 자본이 투자해 만들어진 ‘합작회사’의 대표들이었다. 작가는 “당시 중국 부자들은 명대(明代) 문화재를 수십억에 사고, 장대천 그림을 며칠을 쫓아다녀 십수억을 주고 샀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했다”며 “내 작품은 수 억 정도이니 저렴한 편이었던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열 살짜리 딸의 생일 선물을 산다며 내 작품을 사간 적도 있다”고 웃었다. 이렇게 중국에 자본이 넘쳐났던 시절 한국 갤러리들의 진출도 활발했다.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2013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집권과 2016년 사드 배치 논란이었다. 작가는 “시진핑이 집권하고 부정부패를 방지한다며 사회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며 “이후 사드 배치 논란으로 중국에서 주문이 딱 끊겼다”고 말했다. 이후 다시 교류가 시작될 무렵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또 다시 길이 막혔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작품 20여 점은 그리스 신화의 인물을 형상화하거나, 종교적 의미를 담은 것들로 최근 제작한 것들이다. 중국에서 선보이기 어려운 주제이기도 한데, 작가는 이에 대해 “의뢰를 받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었던 작품을 이제야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30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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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소걸음으로 간다…전기톱 든 88세 예술가[영감 한 스푼]

    여러분 안녕하세요,오늘은 5월 7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미술관에서 개인전 ‘더하고 나누며, 하나’를 열고 있는 조각가 김윤신의 인터뷰를 준비했습니다.지면에는 이미 한 차례 다루었는데, 분량의 한계로 다루지 못한 뒷이야기까지 상세하게 풀어드리겠습니다.기자간담회에서 김윤신 작가는 아르헨티나와 멕시코 등 여러 나라를 누비며 평생 작업하며 살았던 이야기를 들려주며 감동을 주었습니다. 이에 따로 인터뷰까지 하게 되었는데요. 자세한 이야기를 만나보시죠.“하나밖에 없는 동생이 날 배신하다니!”제가 가장 먼저 궁금했던 건 상명대 교수를 지내던 작가가 50세에 갑자기 아르헨티나로 떠나게 된 사연이었습니다. 한국을 떠난 과정이 궁금하다고 묻자 김윤신 작가는 “그 과정은 아무도 모르는데”라고 답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 혼자 생각하고 실행에 옮긴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김윤신(윤): 그날이 12월 5일이었어요. 학기말 시험 볼 때죠. 이사장님께 방학 동안 나가서 전시를 하겠다고만 말하고 허락을 받고 떠나버렸죠. 그때 우리 조카가 아르헨티나에 살고 있었는데, 사실은 이혼을 하고 아이들을 빼앗길까봐 멀리 떠나버린 것이었어요. 지구 반대편으로 가겠다고 거길 무작정 간 거죠.그리고 조카가 “고모 여기 와봐. 나라가 아주 크고 작품 하기에도 좋을 것 같다”고 해 전시를 한다며 제가 떠난 거예요. 학교도, 오빠도, 아무도 모르게. 갔더니 끝 없는 지평선이 펼쳐져 있고, 크고 귀한 나무가 많았죠. 작업을 해야겠다 싶었어요.김민(민): 그래서 전시를 하게 되셨군요.윤: 며칠 만에 한국 대사관을 찾아가 공보부에 전시를 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이력서를 갖고 오라기에 다음날 써서 갔죠. 공보관님이 ‘대학 교수시군요’ 하더니 저를 미술관으로 데려갔고, 미술관에서 작품을 보여달라고 해요. 그래서 제가 두 달만 달라고 했죠.민: 무작정 찾아가서 전시를 하게 되신 거네요.윤: 그때 내가 무슨 배짱이 있었는지 몰라요. 1년 동안 작품 30점을 했죠. 대작도 있고 하다 보니 부에노스아이레스 식물 공원에서 전시를 하게 됐고, 미디어의 관심을 받으면서 작가 생활을 이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민: 1년 동안 한국에선 아무런 연락이 없었나요?윤: 학교에선 개학을 했으니 저를 찾았고, 나중엔 오빠도 결국 알게 됐어요. 그땐 인터넷도 없고 편지를 써도 몇 개월이나 걸리니 제가 사라진 줄도 다들 몰랐던 거죠. 그러다 제가 88년 초 전시를 하게 돼서 다시 한국에 갔을 때, 오빠가 난리가 났죠.“내가 군인이고 내 밑에 수천 명이 있지만 한 번도 배반을 당해본 적이 없는데, 딱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 날 배반했다. 어떻게 말 한마디 없이 그럴 수가 있니.”민: 굉장히 서운해하셨네요. 그런데 떠나기 전에 말을 안 하신 건 말릴까봐 그랬던 거였죠?윤: 엄청나게 만류를 했겠죠. 대학 교수 되기가 얼마나 힘든데 너 같은 맹숭이가 교수가 됐는데 그걸 마다하느냐며 저를 한심하게 봤어요. 그렇지만 저는 결심했어요. 나는 남미에서 커야겠다. 여기서 조각가가 되어야겠다. 뭘 먹고 살까 굶어 죽진 않을까 고민보다는 내 일만 하면 된다는 생각이었죠.느려도 황소걸음으로 가자민: 스물여덟 살 때는 프랑스 유학을 가셨어요. ‘결혼은 안 하겠다는 얘기냐’는 오빠의 말에 그렇다고 답하고 정말 평생 세계를 다니며 작업을 하셨어요.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었나요?윤: 나는 전쟁을 많이 겪었어요.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제가 원산 출신인데 남쪽으로 피난을 와야 했어요. 일제강점기인 당시 오빠(독립운동가 김국주)가 행방불명이 됐었고 해방이 된 후 서울에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엄마와 함께 38선을 넘었죠.그때 제가 10, 11살이었는데 난민 수용소에서 두 달을 보내고 6.25 전쟁 때는 가족들이 부산으로 피난을 가고 저는 서울에 혼자 남아 있었어요. 제가 언니가 넷이 있었고, 제 바로 위가 오빠였는데 오빠가 집에 돌아올 수 있으니 저만 남겨둔 거였어요.민: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이었군요.윤: 전쟁 때는 아무것도 먹고 싶은 것도 없고 그저 총을 맞을까봐 두려움밖에 없었어요. 길에는 죽은 사람들이 널브러져 있고. 안 본 사람은 상상 못 해요. 군복 입은 시체를 보면 혹시나 오빠일까 하고 건드려 보기도 했어요. 며칠 지난 시신은 손이 뚝 떨어지기도 하고. 그런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또 오빠가 독립운동을 했기 때문에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사회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오빠가 그렇게 나라를 위해 살았기에 나도 무언가를 해야겠다. 결혼을 해야 한다는 마음은 없었고 느릿느릿해도 황소걸음으로 가자. 그런 생각을 했죠. 민: ‘기원 쌓기’라는 작업이 인상 깊었어요. 어떤 마음으로 하셨을지 궁금합니다.윤: 오빠와 엄마를 생각하며 만든 작품이에요. 일제 강점기 때 행방불명된 아들이 소식이 없어, 엄마가 매일 산 밑에 가서 흰 그릇에 물을 떠다가 왔어요. 그때 돌을 엄마가 주시면 하나씩 쌓고, 그 옆에 초에 불을 붙인 뒤 두 손을 모아 빌면서 무슨 이야기를 해요.하루도 빠짐없이 몇 년을 그렇게 하셨어요. 그때 전 어려서 엄마가 왜 그러시는 줄은 몰랐죠. 나중에서야 오빠를 걱정하며 그랬다는 걸 알았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작가가 되어서, ‘아 엄마가 아들이 살아있기를 염원하는 기도를 한 거였구나’ 깨닫고 난 뒤 나무 조각으로 표현하게 된 거죠.다시 찾은 고국, 한국 사람들은 귀여워민: 오랜만에 한국에 오신 거잖아요. 많은 것들이 새로울 것 같은데 어떠신지 궁금합니다.윤: 한국 나무는 한국 사람과 똑같아요. 부드럽고 연하고 고와요. 다루기가 좋아요. 남미에서 단단한 나무만 쓰다 보니 너무 무르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딱딱한 나무로 하면 힘만 주면 작업이 더 간단한데, 한국 나무는 부드러워서 굵은 걸로 밀고 그다음 보드라운 걸로 밀고 손이 많이 가요.그러니 남미 나무처럼 우람하게 무게를 주는 게 아니라 섬세하게 모양을 내고 거기에 색을 칠해 그림까지 넣으니 아주 얌전하고 착하고 연하게 보이죠.한국은 가끔 왔다 갔다 했지만 요즘 특히 한국 여성들이 더 젊고 어리게 보여요. 귀여워. 왜 이렇게 귀엽나요. 남미 사람들은 눈이 큰데, 한국은 눈이 적절한 크기에 있을 게 다 있어서 귀여워요. 또 섬세하고 친절하죠.민: 멕시코에서도 하루 한 끼만 먹고 작업을 하셨다구요.윤: 따꼬(타코)라고, 강냉이를 갈아서 판에다 우리나라 지짐이 하듯이 뿌려요. 그럼 종잇장처럼 마르는데 그사이에 선인장 이파리 연한 것과 풋고추 조그마한 걸 넣어서 먹죠. 테칼리라는 마을이었는데, 먹을 게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저녁에 배고프면 맥주로 버티기도 하도. 한국 문화원에서 가끔씩 갈비를 해서 가져와 주시면 그때 고기를 먹는 거죠. 일주일 만에 올 때도 있고, 어떨 땐 이주일, 한 달도….민: 그때 오닉스 돌이 궁금해서 가셨던 거죠?윤: 그렇죠. 한국 대사관에서 이런 재료가 있다고 알려주어서 가게 됐어요. 브라질에서도 야전용 침대 하나 있는 호텔에서 아침에 팥 삶은 것과 딱딱한 빵을 먹고 지냈었죠.민: 꾸준히 작업만 생각하면서 지내셨네요.윤: 한국에 와보니 입체인 조각과 평면인 회화가 하나가 되는 작업을 했다는 게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 하나는 확고하게 무언가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갖고 있어요.또 젊은 세대가 정말 확실하게 정확하게 일을 하는 걸 보면서 변화된 것이 보여요. 젊은 사람들이 일을 빨리빨리 잘 돌아가게 하니 창의력이 많고 정확하다. 이들이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수 있겠다, 희망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88세의 나이지만 지금도 전기톱을 들고 나무 조각을 한다는 김윤신 작가는 그저 자신의 예술 세계, 그리고 젊은 세대를 보며 느끼는 희망을 이야기했습니다.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님도 ‘작가님과 대화를 하면 에너지를 받는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오래된 건물과 잘 어울리는 김윤신 작가의 조각 작품을 남서울미술관에서 직접 만나보세요.※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뉴스레터 구독 신청 김민기자 kimmin@donga.com}

    • 2023-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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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시원한 여름’에 대가 치를 날 올지도

    올해 3월 전국 평균 기온은 9.4도로 관측 이래 가장 높았다. 기온이 높은 날이면 지하철에서는 어김없이 차가운 바람이 나왔다. 조금만 땀이 나도 에어컨 전원을 켜는 건 정상일까? 산업혁명 이후 최고의 발명품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에어컨과 냉매의 역사를 추적한 책이다. 1851년 최초의 에어컨이 발명됐을 때 미국인은 이 기계를 이상하게 생각했다. 더우면 그늘이나 마루, 실내에서 땀을 식히면 될 일이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 도시가 발달하며 상황은 변했다. 증권거래소에서 시작된 에어컨 사용은 가정집으로 퍼졌고, 햇볕이 그대로 들어오는 유리 통창과 콘크리트 구조로 건물이 바뀌며 에어컨 사용은 더욱 확산됐다. 그러자 냉매는 오존층에 커다란 구멍을 뚫었다. 1987년 3월 오존층이 특히 얇았던 어느 날 미국 뉴욕 해변에서 일광욕을 하던 6명이 망막에 화상을 입고 부분적으로 실명했다. 1987년 국제사회는 몬트리올 협약으로 프레온가스 생산을 중단시켰지만, 프레온가스는 암암리에 계속 사용되고 있다. 저자가 ‘결코 냉매를 써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냉매가 지구를 망치는데도 그것을 이용하는 안일함을 역사, 철학 등 다양한 이야기와 섞어 풀어내면서 기술 개발로는 더 이상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땀과 불쾌함은 여름의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1인분의 안락함’이 아닌 공동체의 안녕을 생각하는 사고의 전환을 요청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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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중미술’에 가려졌던 구상회화의 재발견

    현대 미술에서 추상과 구상의 구분은 더 이상 큰 의미를 갖지 않지만, 한국 미술사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분류로 여겨진다. 1980년대 이후 한국 미술사에서 추상은 미니멀리즘 회화 혹은 단색화로, 구상은 역사적 리얼리즘 혹은 민중미술로 생각돼 온 경향이 강했다. 구상 회화를 민중 미술로 구분했던 인식에서 벗어나 구체적인 형상을 표현한 회화를 재조명하는 전시가 일민미술관에서 열린다.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14일 개막하는 ‘히스테리아: 동시대 리얼리즘 회화’전은 구상 회화를 다루는 국내 작가 13명의 작품 100여 점을 선보인다. 윤율리 일민미술관 학예팀장은 “최진욱 이수경 정수진 노충현 작가는 세상을 회화에 담아내는 방식을 탐구해 온 중견 작가지만 민중미술 중심의 리얼리즘 회화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마련한 전시는 구상 회화의 여러 양상을 보여준다. 1층 전시장의 문을 여는 것은 최진욱의 작품 ‘그림의 시작’(1990년)과 ‘자화상’(1992년)이다. 윤 팀장은 “최 작가는 작품 소재를 주변에서 찾기 위해 애쓴다”며 “가장 가까운 곳인 작업실을 담은 ‘그림의 시작’부터 거리를 그린 ‘하교길2’를 통해 작가가 사회로 나아가는 모습을 가늠해 볼 수 있다”고 했다. 2층 전시실 가장 안쪽 방에는 이수경 작가의 회화 작품이 걸려 있다. 이 작가는 깨진 도자 파편을 이어 붙인 ‘번역된 도자기’로 유명하다. 처음에 자신의 대표작인 도자기가 아닌 회화 작품을 전시한다는 제안을 받아 작가는 망설였다고 한다. 그러나 2008년 작품부터 지난해 그린 것까지 6개 작품이 전시돼 이 작가의 색다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전시에서는 노상호 손현선 이재석 임노식 정수정 함성주 김민희 조효리 김혜원 등 젊은 작가의 작품도 함께 배치했다. 이들의 작품에서는 현실 속 풍경을 넘어 온라인이나 대중매체에서 차용한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양상이 두드러진다. 온라인의 밈(meme)을 집착에 가까울 만큼 많은 양을 수집한 뒤 섞어 작품에 활용하거나(노상호), 게임과 애니메이션 분위기가 나는 이미지와 전통 회화 방식을 엮는 식(정수정)이다. 국제 미술사에서는 추상과 구상의 구분을 넘어 1980년대 형상성을 회복한 ‘신표현주의’가 등장했다. 현재 미술의 양상은 회화적 기법보다는 다양한 사회·정치적 이슈와 맞물려 전개되고 있다. ‘히스테리아’전은 구상 회화에서 그리는 방식이나 소재에 집중한 것이 두드러진다. 윤 팀장은 “작품들을 보면 작가들이 그린 대상들 중 어느 하나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 아니라 모두 균등하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그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참여 작가들이 중견 작가임에도 공공미술관 전시가 많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며 “그만큼 이들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에 그동안 논의되지 못한 회화 담론을 살필 기회를 마련하려 했다는 것이다. 전시와 관련된 프로그램도 펼쳐진다. 5월에는 인문학 프로그램 ‘역자후기26’과 ‘아티스트 토크’가 열린다. 전시 기간 중 매주 수·일요일 오후 3시에는 현장 신청자를 대상으로 도슨트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6월 25일까지. 5000∼7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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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분법을 벗어난 ‘구상 회화’…동시대 작가 작품들 한 자리에 모여

    현대 미술에서 추상과 구상을 구분하는 것은 더 이상 큰 의미를 갖지 않지만, 한국 미술사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분류로 여겨진다. 한국 미술사에서 추상은 미니멀리즘 회화 혹은 단색화로, 구상은 역사적 리얼리즘 혹은 민중미술로 오랫동안 생각되어 왔다. 이런 구분을 벗어나 구상 회화를 그리고 있는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의 한자리에 모은 전시가 일민미술관에서 열린다. 14일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개막하는 ‘히스테리아: 동시대 리얼리즘 회화’는 구상 회화를 다루는 국내 작가 13명의 작업 100여 점을 선보인다. 윤율리 일민미술관 학예팀장은 “최진욱, 이수경, 정수진, 노충현 작가는 회화가 세계에 반응하는 방식을 탐구해 온 작가”라며 “그러나 민중미술 중심의 리얼리즘 회화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문제의식 하에 전시는 구상 회화의 여러 양상을 보여준다. 1층 전시장의 문을 여는 것은 최진욱의 작품 ‘그림의 시작’(1990)과 ‘자화상’(1992)이다. 윤 학예팀장은 “작가가 구상 회화를 그릴 때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것이 ‘무엇을 그리느냐’라고 들었다”라며 “최진욱 작가가 가장 가까운 작업실에서 출발해 ‘하교길2’ 등의 작품에서 거리와 사회로 나아가는 모습을 가늠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2층 전시실 가장 안쪽 방에는 이수경 작가의 회화 작품이 걸려있다. 이수경 작가는 깨진 도자 파편을 이어 붙인 ‘번역된 도자기’ 작품으로 유명하다. 처음에 자신의 대표작인 도자기가 아닌 회화 작품을 전시한다는 제안을 받아 작가는 망설였다고 한다. 그러나 2008년 작품부터 지난해 그린 것까지 6개 작품이 전시돼 이 작가의 색다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전시는 최진욱 이수경 정수진 노충현 등 중견 작가들과 같은 결로 언급될 수 있는 작가로 노상호 손현석 이재석 임노식 정수정 함성주 김민희 조효리 김혜원의 작품을 함께 배치했다. 이들 작품에서는 현실 속 풍경을 넘어 온라인이나 대중 매체에서 차용한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양상이 두드러진다. 온라인의 밈(meme)을 집착에 가까울 만큼 많은 양을 수집한 뒤 섞어 작품에 활용하거나(노상호), 게임과 애니메이션을 연상케 하는 시각 언어를 전통 회화의 방식과 엮는 식(정수정)이다. 국제 미술사에서는 이미 추상과 구상의 구분을 넘어 1980년대 ‘신표현주의’가 등장했고, 동시대 미술의 양상은 회화적 기법보다는 다양한 사회·정치적 이슈와 맞물려 전개되는 중이다. 단, ‘히스테리아’전은 구상 회화의 그리는 방식이나 소재에 집중한 것이 두드러진다. 이에 대해 윤 학예팀장은 “그리는 사람이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는 것이 아니라 결심이 사라진 회화”라며 “그림의 대상들 중 어느 하나가 중요하다고 고르는 것이 아니라 균등하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보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시를 준비하며 놀란 것은 참여 작가들이 중견임에도 미술관 전시가 많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논의되지 못한 회화 담론을 살필 기회를 마련하고자 했다는 설명이다. 전시에 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연계 프로그램으로 펼쳐진다. 5월 중에는 인문학 프로그램 ‘역자후기26’과 ‘아티스트 토크’가 예정되어 있다. 수·일요일 오후 3시에는 현장 신청자를 대상으로 도슨트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전시는 6월 25일까지. 5000~7000원.김민기자 kimmin@donga.com}

    • 2023-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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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원방 홍익대 교수 개인전… 34년만에 작품활동 재개

    미술 평론가와 전시 기획자로 활동해 온 김원방 홍익대 미술대학원 교수의 개인전 ‘잃어버린 미를 찾아서 II’가 14일부터 5월 14일까지 서울 종로구 토탈미술관에서 열린다. 1989년 갤러리현대 첫 개인전 이후 김 교수가 34년 만에 작품 활동을 재개하는 전시다. 이번 전시는 김 교수의 첫 개인전 ‘잃어버린 미를 찾아서’의 속편 성격이다. 첫 개인전에 유리로 만든 초현실적 분위기의 조각 작품을 선보였고, 이번 전시도 인간의 무의식을 표현한 작품들로 구성했다. 특히 무의식을 모성적이고 여성적이라고 보고, 이를 시각적으로 은유해 작품으로 묘사했다. 회화와 조각 작품 30여 점은 모두 ‘태고’(primal)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김 교수는 “(무의식이) 인간 정신의 가장 오래된 기원이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3000∼5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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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본웅-김중현-이인성 유작 3인전’ 69년만의 소환

    “아버지(구본웅)의 대표작이 6·25전쟁으로 다 없어졌지만, 부산까지 피란 가며 몇 점을 싸들고 다닌 것이 있었습니다. 그때 유난히 돌돌 말아 놓은 그림이 있었는데 그게 김해경(이상)의 초상이었죠.” 화가 구본웅(1906∼1953)의 대표작 ‘친구의 초상’(1935년)에 얽힌 뒷이야기를 차남 구상모 씨가 전했다. 서울 강남구 예화랑에서 10일 열린 45주년 기념전 ‘밤하늘의 별이 되어’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구 씨는 “아버지가 남긴 대작이 꽤 있었지만 그림이 있던 수원 장안동 집이 폭격을 맞아 대부분 없어졌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 구본웅, 김중현(1901∼1953), 이인성(1912∼1950) 화백의 가족들이 모인 것은 1954년 천일화랑에서 열린 ‘유작 3인전’ 때문이다. 김방은 예화랑 대표는 디자이너였던 외할아버지 이완석이 화랑을 운영했던 기록을 추적했다. 1930년대 일본 도쿄 태평양미술학교에서 디자인을 공부한 이완석은 천일제약에 디자이너로 취직했고, 이 회사가 세운 백화점 내에 1954년 천일화랑을 열었다. 6·25전쟁 직후 문을 연 화랑은 6개월밖에 운영되지 못했다. 다만 1954년 9월 전쟁 중 세상을 떠난 김중현, 구본웅, 이인성의 유작 40여 점을 전시한 것이 기록에 남았다. 김중현 화백의 딸 김명성 씨는 “열한 살 때 전시 개막식에 갔는데 사진을 보자마자 아버지의 유작전이라는 것이 번뜩 기억났다”고 말했다. 전시에서는 3인 유작전에 관한 사진과 문서 자료, 이완석 관련 자료를 볼 수 있다. 1978년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문을 연 예화랑과 인연을 맺은 작가 21명의 작품도 소개한다. 구본웅, 오지호, 남관 등 한국 근현대 미술 작품을 볼 수 있다. 5월 4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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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 전시회 긴장과 혹평… 인간 백남준의 ‘일생단면’ 생생하게 펼쳐

    짧고 헝클어진 곱슬머리를 한 작은 키의 동양인 남자가 갤러리 이곳저곳을 누비며 기계를 만진다. 1963년 독일 부퍼탈 파르나스갤러리에서 최초의 비디오아트 전시를 연 백남준(1932∼2006)이다. 독일 현지 언론은 “젊은 한국인 예술가가 충격을 주려 했지만 결과는 김빠져”라고 혹평했다. 그러나 그는 훗날 한국 출신의 세계적 예술가가 됐다. 인간 백남준이 어떻게 예술가로 살아남았는지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이다’가 한국계 미국인 감독 어맨다 김의 연출로 올해 미국에서 발표됐다. 백남준을 다룬 다큐 영화 제작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영화를 소장한 울산시립미술관은 지난달 29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ECC 아트하우스 모모 1관에서 시사회를 열었다. 울산시립미술관에서는 6∼8일 상영했다. 영화는 백남준의 깊은 예술적 맥락보다는 그의 삶을 조명하는 데 집중했다. 생전 백남준의 모습을 담은 영상, 그가 남긴 글, 또 그를 기억하는 미술인들의 인터뷰로 구성됐다. 백남준의 글은 영화 ‘미나리’의 배우 스티븐 연이 내레이션을 맡아 읽었다. 백남준과 협업했던 첼리스트 샬럿 무어먼, 머스 커닝햄, 부인 구보타 시게코와 장조카 켄 백 하쿠다의 인터뷰도 나온다. 흥미로운 건 역시 생전 백남준의 모습이다. 첫 전시회에서 긴장하는 표정, 언론의 혹평을 듣고 씁쓸한 기색은 보이지만 아랑곳 않는 등 불안한 가운데 예술적 신념으로 꾸준히 나아갔던 일생 단면들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백남준은 1957년 실험 음악가 존 케이지의 공연을 보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고 자유로워질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그 자유를 텔레비전에 적용해 그는 한 방향으로 영상을 전송하는 텔레비전의 룰을 부순다. 브라운관에 자석을 갖다 대 화면을 왜곡하고, 텔레비전을 개조해 관객이 영상을 조종할 수 있도록 바꾼다.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렸던 백남준이 비가 새는 집에 살아 폭우가 쏟아지던 날 아내 덕분에 작품과 기록을 살렸던 일화도 나온다. 백남준은 “이때 모든 것을 잃었다면 자살했을 것”이라고 했다. 1950년 한국을 떠난 뒤 34년 만인 1984년 귀국해 한복을 입고 누나와 피아노를 치고, 부모님의 묘소를 찾는 얼굴엔 복잡한 감정이 나타난다. 영화를 일반에게 공개하는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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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음과 눈 세상서 탄생한 이누이트 예술 “식민지배-강제이주 아픈 역사속 버팀목”

    캐나다 토론토에서 북쪽으로 2500km 떨어진 작은 섬 웨스트배핀에는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는 예술가 커뮤니티 ‘웨스트배핀 협동조합’이 있다. 이곳 구성원들은 흔히 ‘에스키모’라고 불리는 이누이트족이다. 얼음과 눈으로 뒤덮인 곳에서 탄생한 웨스트배핀 협동조합의 예술 작품 90여 점이 아시아 최초로 한국을 찾았다. 광주 남구 이강하미술관에서 7일 개막한 ‘신화, 현실이 되다’전을 통해서다. 이 전시는 광주비엔날레재단이 주한 캐나다대사관과 협업한 파빌리온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개막 하루 전인 6일 전시장에서 큐레이터 윌리엄 허프먼과 클레어 푸사르를 만났다. 허프먼은 웨스트배핀 협동조합의 큐레이터이며, 푸사르는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이누이트 예술 전문 큐레이터다. 전시는 이누이트 예술 창시자라 불리는 케노주아크 아셰바크의 판화 ‘해초 먹는 토끼’와 조각 ‘곰’으로 시작한다. 이누이트 예술은 1940년대 판화나 조각 등 공예품으로 캐나다에서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누이트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1959년 웨스트배핀 협동조합이 설립돼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허프먼은 “이누이트 예술 커뮤니티와 협동조합의 역사를 보여주기 위해 아셰바크의 작품을 가져왔다”며 “나머지 작품은 최근 1년 동안 제작된 것으로 이들은 3, 4세대 이누이트 예술가”라고 소개했다.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특별 언급상을 수상한 슈비나이 아슈나의 작품도 이번 전시에서 소개된다. 동물들이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 모습을 묘사한 ‘동물 시리즈―나의 아이팟과 함께’를 비롯해 여러 작품이 나왔다. 뉴욕타임스(NYT)는 이누이트 예술이 식민 지배나 강제 이주 등 아픈 역사를 지닌 이누이트족에게 삶의 버팀목이 됐다고 평가한다. 아슈나 역시 NYT 인터뷰에서 “그림 그리기는 아스피린 같은 효과가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90여 점의 작품에는 북극곰, 고래, 늑대 같은 동물이나 이누이트의 각종 신화를 비롯해 풍경과 일상 등 다양한 소재가 담겨 있다. 아이가 그린 듯 순수하면서도 시적이고 유쾌하다. 미술 학교가 없는 웨스트배핀에서는 협동조합이 곧 교육 기관이다. 이 때문에 예술가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비슷한 스타일이 변주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허프먼은 “자식이 예술가가 된다 해도 반대하지 않는 몇 안 되는 곳”이라며 웃었다. 이누이트 예술이 주목받으면서 그간 유럽과 미국 중심의 작가와 작품 위주였던 미술사 연구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푸사르는 “(과거엔) 이누이트 예술이 어떻게 미술사를 따라갈지 걱정했다면, 지금은 미술사가 이누이트 예술을 이해하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7월 9일까지. 무료.광주=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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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 백남준 조명한 다큐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이다’ 미리보니…

    짧고 헝클어진 곱슬머리를 한 동양인 남자가 작은 키로 갤러리 이곳저곳을 누비며 기계를 만진다. 1963년 독일 부퍼탈 파르나스갤러리에서 최초의 비디오아트 전시를 연 백남준(1932~2006)이다. 독일 현지 언론은 “젊은 한국인 예술가가 충격을 주려 했지만 결과는 김빠져”라고 혹평했다. 그러나 그는 훗날 한국 출신의 세계적 예술가가 되었다. 인간 백남준이 어떻게 예술가로 살아남았는지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백남준: 달은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이다’가 한국계 미국인 감독 아만다 킴의 연출로 제작됐다. 울산시립미술관은 이 영화를 소장하며 지난달 29일 서울 이화여대 ECC 아트하우스 모모 1관에서 시사회를 열었다. 백남준을 다룬 다큐 영화 제작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간 백남준의 단면들 영화는 백남준의 깊은 예술적 맥락 보다는 그의 삶을 조명하는 데 집중했다. 생전 백남준의 모습을 담은 영상, 그가 남긴 글, 또 그를 기억하는 미술인들의 인터뷰로 구성됐다. 백남준의 글은 영화 ‘미나리’의 배우 스티븐 연이 내레이션을 맡아 읽었다. 백남준과 협업했던 첼리스트 샬롯 무어만, 머스 커닝햄, 부인 구보타 시게코와 장조카 하쿠다 켄의 인터뷰도 나온다. 가장 흥미로운 건 역시 생전 백남준의 모습들이다. 첫 전시회를 열었을 때 집중 속에 긴장하는 표정, 언론의 혹평을 듣고 약간 씁쓸한 기색은 보이지만 아랑곳 않는 모습, 깊은 사색 중 깨달음을 얻고 새벽에 동료에게 전화를 했던 일화 등 불안한 가운데 자신만의 예술적 신념을 갖고 꾸준히 나아갔던 그의 일생 단면들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 존 케이지와 TV 부처 일본에서 독일로 이주한 백남준은 1957년 음악가 존 케이지와 데이비드 튜더의 공연을 보고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며 케이지에게서 “자유로워질 용기를 얻었다”고 말한다. 그 자유를 백남준은 텔레비전에 적용한다. 케이지가 음악의 규칙을 파괴했다면, 백남준은 일방적으로 영상을 전송하는 텔레비전의 룰을 부순다. 브라운관에 자석을 갖다대 화면을 왜곡하고, 텔레비전 상자를 열어 개조해 관객이 영상을 조종할 수 있도록 바꾼다. 백남준의 실험은 미국 뉴욕으로 이어졌다. 이곳에서 샬롯 무어만과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라’(1969) 퍼포먼스, 또 거리에서 ‘로봇 K-456’이 걸어가도록 조작하는 모습 등을 영상으로 볼 수 있다. 경제적 어려움에 평생 시달렸던 백남준이 미국 록펠러 재단의 후원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모습, 또 비가 새는 낡은 집에 살아 폭우가 쏟아지던 날 아내 덕분에 작품과 기록을 살릴 수 있었던 일화도 나온다. 백남준은 “만약 이 때 모든 것을 잃었다면 자살했을 것”이라고 했다. 영화에 따르면 가난함에 시달리는 그를 구해준 것은 1974년 시작된 ‘TV 부처’ 연작이다. 시게코는 먹을 것이 없어 걱정하고 있는데 백남준이 갑자기 남은 돈을 털어 불상을 사와 당황했다고 말한다. 백남준은 불상을 텔레비전 앞에 세워, 브라운관에 비친 스스로를 바라보는 부처의 모습을 작품으로 만들었고, 이것을 각국 미술관에서 소장하게 된다. 1950년 한국을 떠난 뒤 34년 만인 1984년 귀국한 그의 모습도 볼 수 있다. 한복을 입고 누나와 함께 피아노를 치고, 부모님의 묘소를 찾는 그의 얼굴에 복잡한 표정이 읽힌다. 영화 일반 공개 일정은 미정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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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솔직한 자신의 이야기가 가장 강력하다[영감 한 스푼]

    여러분 안녕하세요,오늘(7일) 개막하는 제14회 광주비엔날레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의 프레스 오픈에 다녀왔습니다.지난번 이숙경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를 맛보기로 소개해드렸는데요. 전시장에 어떤 작품이 나왔는지 또 어떤 메시지를 읽을 수 있었는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서로 다른 것들도 물과 함께 흐른다 전시장에 가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것은 케이프타운과 암스테르담에서 활동하는 작가 불레베즈웨 시와니의 설치 작품입니다.어두운 가운데 흙 사이로 오솔길이 나 있고, 그 사이를 걸어가면 나무 그루터기 같은 의자와 그 위로 밧줄이 늘어트러져 있습니다. 늘어진 밧줄들은 자연 속에서 보이지 않는 정령을 떠올리게 합니다.더 깊숙히 들어가면 빔프로젝터가 물 위로, 두 벽으로 영상을 상영합니다. 영상 속에서는 여성이 흙과 땅을 비롯한 자연에 몸을 맞대고 소리를 듣는 듯 움직이는 모습이 보입니다.작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죽은 자와 산 자의 세계 사이에서 영혼을 치유한다는 ‘상고마’ 전수자입니다. 영상 작품은 물 동굴 평야 등에 깃든 영혼을 상상하는 장면이고, 설치 작품은 그것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것이죠.이 작품은 우리가 지금까지 옳다고 생각해왔던 서구 중심의 문명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수세기 동안 남아공에 살았던 선주민들의 전통적인 치유 방식도 서구 문명 만큼이나 가치가 있을 수 있음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죠. 또 그 치유 방식이 어쩌면 과도한 문명의 발달로 지구 온난화 등 자연의 균형이 깨지고 있는 지금 대안이 될 지도 모릅니다.광주비엔날레 본 전시의 첫 관문에서 핵심적인 메시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주된 흐름에서 소외되어 가치 없거나, 다르거나, 열등하다고 여겨졌던 것들도 모두 가치가 있다. 탑을 쌓는 듯한 위계질서에서 벗어나 다른 것을 포용하고 물처럼 부드럽게 흐르는 힘을 갖자.5일 기자간담회에서 이숙경 감독의 말입니다.“우리는 함께 살아야하고, 그것은 분열과 차이를 인정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물의 은유를 사용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광주 정신과 ‘예향’의 지역성다만 이런 소외된 이야기와 문화, 선(先)주민과 디아스포라 등의 주제는 최근 동시대미술 전시에서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광주비엔날레만의 차별점을 묻는 질문에 이숙경 감독은 이렇게 답했습니다.“광주라는 장소성을 출발점으로 삼고 싶었다. 광주 정신과 예향이라는 특성이 시작점이었고, 이를 통해 광주 밖 세계 다른 곳에서도 일어나는 저항, 불평등, 정의를 생각하는 작가들의 이야기를 보고자 했다.”이러한 주제는 첫 번째 전시관 ‘은은한 광륜’에서 두드러집니다. 5.18 민주화운동 때 제작됐던 목판화에서 영감을 얻은 말레이시아 그룹 팡록 술랍의 작품(위 사진), 광주의 놀이패 신명의 모습을 담은 알리자 니센바움의 회화(첫 번째 사진)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작품들은 참혹했던 현대사를 사실주의적으로 그렸던 강연균 작가가 검은 밤하늘에 흰 나무가 퍼진 듯한 형태로 그린 추상화 ‘화석이 된 나무’, 시각 장애 학생들과 함께 만든 엄정순의 ‘코 없는 코끼리’ 등으로 이어집니다. 모든 억압과 차별에 대한 저항은 광주뿐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공명한다는 메시지로 확장됩니다.가장 개인적인 것이 진정성 있다그러면서 전시는 후반부로 갈수록 작가 개개인의 다양한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여성, 인종, 식민주의, 기후 환경 등 동시대에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는 수많은 주제들을 다룬 작품들이 펼쳐집니다.여기서 방점이 찍힌 부분은 ‘개인’입니다. 선주민 출신인 작가가 자신의 민족에 대해 이야기 하거나, 어릴 때부터 미술학교를 다니지 않고 할머니에게 배운 기술로 그림을 그리거나(막가보 헬렌 세비디), 영혼을 위로했던 전통 의식을 퍼포먼스 작업으로 재해석(노에 마르티네즈)한 작품들을 볼 수 있습니다.결국 주류나 정해진 것에 억압되지 말고, 스스로를 깊이 파고들면 그것이 보편적인 세계와도 연결될 수 있다는 이야기로 이해됩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라는 말로도 풀어낼 수 있겠습니다.“모든 것들은 구체적인 것에서 시작된다.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더 멀리 퍼질 수 있다. 왜냐면 거기엔 진정성이 있기 때문이다.”개개인의 정체성을 존중하는 작업은 일본 작가 고이즈미 메이로의 ‘삶의 극장’(2023)에서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일본 작가지만 제국주의의 문제를 다룬 고이즈미는 이러한 이유로 일본 미술관에서는 전시가 잘 열리지 않아 보기 어려운 작가라고 합니다.그는 광주 고려인마을의 현재와 과거를, 1932년 설립된 카자흐스탄의 고려극장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드러냅니다. 광주 고려인 공동체에 속한 청소년 15명이 고려극장의 사진 기록을 참고해서 연극적 장면을 연출하고 다양한 장면들이 서로 겹쳐서 영상으로 보여집니다.등장 인물들의 일상적인 웃는 얼굴 아래로 역사 속의 장면인 듯한 이미지들이 무수히 중첩되면서, 한 사람의 삶 안에도 얼마나 많은 역사의 시간과 다양한 지역과 문화가 들어 있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진정한 나 자신이 되는 것. 내 속에 들어 있는 여러 장소와 시간을 이해하고, 더 나아가 나와 함께하는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로까지 넓혀 나아가는 것. 수많은 예술 작품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제가 얻은 메시지는 이것이었습니다. 소개되지 않은 많은 작품들이 있습니다. 한 번 직접 경험해보세요.※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뉴스레터 구독 신청 ■구독자 의견(지난주 에드워드 호퍼 작품에 관한 의견입니다)🔸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회 가기전에 미리 도움되는 내용이었어요. 서로 응시하지 않는 호퍼속 인물이 외로움이 아닌 고독으로 생각되었는데, 내면에 집중하느랴 그럴수도 있겠네요.어쩌면 새로운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의 길을 묵묵히 가는 호퍼가 시사하는 바도 큰 것 같습니다. 호퍼그림을 보면 색감과 구도가 꽤 신선한데요. 이부분도 언제 함 설명 들으면 좋겠습니다.(라나)🔸 푸른저녁은 호퍼의 그림으로 처음 접하는 것이라 무언가 발견한 느낌과 함께 작가를 한걸음 더 알게되었다는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호퍼의 그림들을 감상하며 늘 그 이미지와 상황 속에 자연스레 들어가게 되는데, 아마도 제 자신의 심상과 같은 주파수로 공명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 작가, 작품들을 가끔 만나게 되더라구요.특히 랄프 왈도 에머슨의 사상을 존경했다는 데에서 더욱이요.이제 전시 오픈이 한 달도 남지 않았는데 이후에도 호퍼에 대해 더 이야기해주세요!!! *^^(felix)🔸삐에로도 인상 깊었지만 삐에로 맞은편에 모자에 담배를 문 턱수염의 남자가 빈센트 반고흐 같아서 인상 깊네여ㅎ🔸개인적으로 호퍼를 너무좋아해 회사재직시절 목돈이 생길때마다 비록 카피본이지만 호퍼의 작품들을 사서 제 방에 걸어놓고 매일봅니다 특히 제가워낙 올빼미형이고 밤을 좋아하다보니 밤의 사람들은 제 침대바로 위에 놓여있을정도지요🤗 오늘소개한 작품들중 푸른저녁 과 비슷한작품으로 똑같은 옷차림으로 높은 무대같은곳에 올라가 관객들에게 커튼콜을 하듯 인사하는 작품이 있는데 저는 그작품을 보면 눈물이 납니다 거의 인생의 마지막에 자신과 역시 화가였던 와이프와 함께 자신을 사랑해준 팬들에대한 인사처럼 느껴져서 말이죠😭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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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 전 세계 79명 작품, 광주에 흐른다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예술의 힘에 관심 있는 작가를 한자리에 모으고 싶었습니다.” 제14회 광주비엔날레의 예술감독을 맡은 이숙경 영국 테이트모던 국제미술 수석큐레이터(54)는 5일 광주 북구 광주비엔날레 거시기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7일 개막하는 광주비엔날레는 도덕경 78장 ‘유약어수’(柔弱於水·세상에서 물이 가장 유약하지만, 공력이 아무리 굳세고 강한 것이라도 그것을 이겨내지 못한다)에서 차용한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란 주제로 전 세계 79명 작가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 감독은 이날 간담회에서 “한국에서 나고 자라 영국 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제 경험과 관점을 솔직하게 담고 싶었다”고 밝혔다. 서구 중심의 미술사에 의문을 제기하고, 국적을 떠나 예술가 개개인의 예술세계를 조명하는 테이트 미술관의 연구 기관 ‘현대 테이트 리서치 센터: 트랜스내셔널’을 이끌었던 경험이 전시에 녹아들어 있었다.● 광주에서 보는 테이트 큐레이팅 이 감독의 광주비엔날레는 쉽고 친절하되, 원하는 사람에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테이트 미술관의 큐레이팅을 연상케 했다. 한꺼번에 많은 양의 작품으로 압도하는 통상의 비엔날레와 달리 작품 수를 줄이고 가벽도 최소화해 동선을 넓게 확보했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전시 안내문도 큼직한 활자와 짧은 분량이 눈에 띄었다. 큐레이터의 의도를 눌러 담은 빼곡한 줄글이 아니라 간결하게 필요한 내용만 담았다. 전시에 관해 자세히 알고 싶은 관객은 상세한 설명을 담은 포켓북인 ‘가이드북’을, 심층적인 분석은 도록을 참조하면 된다. 자유롭게 보고 싶다면 텍스트의 방해 없이 즐기되, 궁금한 사람에게는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식이다. 테이트 미술관은 벽면의 작품 설명과 전시 소개글을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게 쓴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시각적으로 유사성이 있는 작품을 가까이 배치해서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는 것도 테이트에서 볼 수 있는 방식이다. 첫 번째 섹션 ‘은은한 광륜’ 전시장에서 말레이시아 작가 그룹 팡록 술랍이 5·18민주화운동을 형상화한 목판화의 앞뒤에는 한국의 대표적 판화 작가 오윤(1946∼1986)의 작품이 전시됐다. 여성의 일상 공간을 다룬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 출신 작가 파라 알 까시미의 작품과 한국의 주거 공간 및 재개발을 다룬 유지원의 설치 작품도 함께 전시됐다.● 각자의 자리에서 치유와 연대로 전시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였다. 전시 구성도 소주제인 광주 정신(은은한 광륜)에서 탈근대주의(조상의 목소리), 탈식민주의(일시적 주권), 생태·환경(행성의 시간들) 등 큰 주제로 점차 확장된다. 이 감독은 “모든 것은 구체적 이야기에서 시작되며, 그러한 목소리가 더 진정성이 있고 멀리 퍼질 수 있다”고 했다. 예술가들이 각자가 처한 개별적인 상황을 깊이 파고들면, 사회의 중요한 문제나 지구적 이슈까지 닿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광주 놀이패 ‘신명’과 협업한 알리자 니센바움이 ‘신명’ 구성원을 그린 회화, 시각 장애 학생과 함께한 엄정순 작가의 설치 작품 ‘코 없는 코끼리’, 남아프리카공화국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할머니에게 배운 벽화로 주목받는 작가가 된 막가보 헬렌 세비디의 인물화는 소소한 주변에 관심을 갖고 치유와 연대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전한다. 전시는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국립광주박물관, 호랑가시 아트폴리곤, 무각사, 예술공간 집까지 총 5개 장소에서 펼쳐진다. 7월 9일까지. 5000∼1만6000원.광주=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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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세계 79명 작가의 작품을 한 자리에…” 쉽고 친절한 전시 광주비엔날레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예술의 힘에 관심 있는 작가를 한 자리에 모으고 싶었습니다.”제14회 광주비엔날레 ‘물처럼 부드럽고 여리게’의 예술 감독을 맡은 이숙경 테이트모던 국제미술 수석큐레이터(54)는 5일 광주 북구 광주비엔날레 거시기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7일 개막하는 광주비엔날레는 도덕경 78장 ‘유약어수’(柔弱於水·세상에서 물이 가장 유약하지만, 공력이 아무리 굳세고 강한 것이라도 그것을 이겨내지 못한다)에서 차용한 주제로 전 세계 79명 작가의 작품을 한 자리에 모았다.이 감독은 이날 간담회에서 “한국에서 나고 자라 영국 미술관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제 경험과 관점을 솔직하게 담고 싶었다”고 밝혔다. 서구 중심의 미술사에 의문을 제기하고, 국적을 떠나 예술가 개개인 예술세계의 가치를 조명하는 테이트 미술관의 연구 기관 ‘현대 테이트 리서치 센터: 트랜스내셔널’을 이끌었던 경험이 전시에 녹아들어 있었다. ● 광주에서 보는 테이트 큐레이팅이숙경 감독의 광주비엔날레는 쉽고 친절하되, 원하는 사람에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테이트 미술관의 큐레이팅을 연상케 했다. 한꺼번에 많은 양의 작품으로 압도하는 통상의 비엔날레와 달리 작품 수를 줄이고 가벽도 최소화해 넓은 동선을 확보했다.전시장 입구로 들어서면 보이는 전시 안내문도 큼직한 활자와 짧은 분량이 눈에 띄었다. 큐레이터의 의도를 눌러 담은 빼곡한 줄글이 아니라 간결하게 필요한 내용만 담았다. 전시에 관해 자세히 알고 싶은 관객은 상세한 설명을 담은 포켓북인 ‘가이드북’을, 심층적인 분석은 도록을 참조하면 된다.자유롭게 보고 싶다면 텍스트의 방해 없이 즐기되, 궁금한 사람에게는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식이다. 테이트 미술관은 벽면의 작품 설명 캡션과 월텍스트(전시소개글)를 초등학생도 이해할 수 있도록 쓴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시각적으로 유사성이 있는 작품을 가까이 배치해서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는 것도 테이트 에서 볼 수 있는 방식이다. ‘은은한 광륜’ 전시장에서 말레이시아 작가 그룹 팡록 술랍의 목판화는 한국의 대표적 판화 작가 오윤(1946~1986)의 작품이 앞뒤로 전시됐고, 여성들의 일상 공간을 다룬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출신 작가 파라 알 카시미와 한국의 주거 공간과 재개발을 다룬 유지원의 설치 작품이 함께 전시됐다.● 각자의 자리에서 치유와 연대로전시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다’였다. 전시 구성도 지역적 주제인 광주 정신(은은한 광륜)에서 탈근대주의(조상의 목소리), 탈식민주의(일시적 주권), 생태·환경(행성의 시간들) 등 큰 주제로 점차 확장된다.이 감독은 “모든 것은 구체적 이야기에서 시작되며, 그러한 목소리가 더 진정성이 있고 멀리 퍼질 수 있다”고 했다. 예술가들이 각자가 처한 개별적인 상황을 깊이 파고들면, 그것이 사회의 중요한 문제나 지구적 이슈까지 닿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광주 놀이패 ‘신명’과 협업한 알리자 니센바움의 회화, 시각 장애 학생과 함께한 엄정순 작가의 설치 작품 ‘코없는 코끼리’, 남아프리카공화국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할머니에게 배운 벽화로 주목받는 작가가 된 막가보 헬렌 세비디의 회화 등은 소소한 주변에 관심을 갖고 치유와 연대로 나아가자는 메시지를 전한다.전시는 광주비엔날레 전시관, 국립광주박물관, 호랑가시 아트폴리곤, 무각사, 예술공간 집 등 총 5개의 장소에서 펼쳐진다. 7월 9일까지. 5000~1만6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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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우환, 12년만에 개인전

    이우환 작가(87)가 4일 서울 종로구 국제갤러리 K1, K2에서 12년 만의 국내 개인전 ‘Lee Ufan’을 열고 신작을 공개했다. 이우환의 작품은 2015년 개관한 부산시립미술관에서 꾸준히 전시돼 왔지만 갤러리에서 열리는 개인전은 2011년이 마지막이었다. 이번 전시에서 이 작가는 신작 ‘관계항―키스’를 포함해 198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조각 6점과 드로잉 4점을 선보인다. ‘관계항―키스’는 돌과 철 등 단순한 재료를 시적으로 배치하는 전형적인 이우환 스타일의 설치 작품이다. 2개의 돌이 포개어져 접점을 만들고, ‘키스’라는 부제를 붙여 마치 두 돌이 사람인 듯한 의미도 부여했다. 돌 주변을 쇠사슬이 둘러싸 강하게 연결시키려는 듯한 분위기도 자아낸다. 이우환 작가는 최근 “가상현실은 실체나 외부가 없는 닫힌 세계”라며 “그러한 세계를 넘으려면 만남이 중요하다”고 밝힌 바 있어, 이런 메시지를 더욱 강하게 드러내려는 듯하다. 1996년 작품을 새롭게 만든 ‘관계항―사운드 실린더’는 강철로 만든 원통에 자연석이 살포시 기댄 형태를 하고 있다. 원통에 뚫린 5개의 구멍에서 자연의 소리와 에밀레종 종소리가 공명하듯 흘러나온다. ‘관계항’ 연작은 이우환이 일본에서 전위적 미술운동인 모노하를 주도했던 1968년부터 꾸준히 이어온 대표작이다. 국제갤러리 K2, K3관에서는 미국 조각가 알렉산더 콜더(1898∼1976)의 개인전도 동시에 열린다. 1940∼1970년대 콜더가 만든 모빌 조각과 구아슈(물감의 일종)로 그린 종이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변화하는 날씨가 자아내는 감각을 표현한 ‘록스버리 프런트’(1965년), 콜더가 인도를 여행했을 때 만든 작품 ‘구아바’(1955년) 등 비교적 큰 모빌 작품도 볼 수 있다. 구아슈 회화 작품들은 콜더의 자유로운 면모를 느끼게 해준다. 4일 전시장에서 만난 콜더의 외손자 알렉산더 로어 콜더재단 대표는 “에너지를 압축하는 조각 작업을 할 때와 달리 회화 작업에서 콜더는 에너지를 발산했다”며 “조각을 하다 지쳤을 때 회화에서 여유와 자유를 찾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전시 모두 5월 28일까지 열린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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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릴적 바흐-드뷔시에 빠진 사카모토… 여러 장르 융합한 독창적 음악 만들어

    아시아인 최초로 영화 ‘마지막 황제’(1987년)로 미국 아카데미 음악상을 받은 일본 음악가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 지난달 28일 71세로 별세한 그가 세계에 이름을 알린 건 ‘마지막 황제’를 비롯해 ‘마지막 사랑’(1990년), ‘리틀 부다’(1993년) 등 영화음악을 통해서다. 황동혁 감독이 연출한 영화 ‘남한산성’(2017년)의 음악도 그가 맡았다. 도쿄예술대 작곡과를 나온 그는 호소노 하루오미, 다카하시 유키히로와 3인조 밴드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YMO)를 결성해 활동을 시작했다. 전자음악에 클래식과 현대음악 요소를 가미하며 일본 팝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YMO의 대표곡 ‘Behind the Mask’는 마이클 잭슨과 에릭 클랩턴이 리메이크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김작가 음악평론가는 “사카모토는 여러 음악적 요소를 통합하고 재해석하며 음악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었다”고 말했다. 사카모토와 자주 협업했던 음악가 카스텐 니콜라이는 “사카모토는 여러 장르를 융합한 독창적 스타일이 음악의 미래임을 알았다”며 “그를 이끈 것은 호기심”이라고 2021년 인터뷰에서 밝혔다. 도쿄에서 태어난 사카모토는 3세부터 피아노를 치며 작곡을 시작했다. 바흐와 드뷔시의 음악에 심취했고, 11세에는 존 케이지의 실험 음악에 빠졌다. 연주 시간 동안 아무 연주도 하지 않는 케이지의 곡 ‘4분33초’를 좋아해 스스로를 “4분33초가 작곡된 해(1952년)에 태어났다”고 말하곤 했다. 사카모토의 또 다른 대표곡은 영화 ‘전장의 크리스마스’(1983년)의 주제가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다. 데이비드 보위와 함께 출연을 제안받은 사카모토는 영화음악도 함께 맡는 조건으로 연기했다. 1990년대 후반에는 ‘Back to basics’ 등 솔로 앨범을 내며 클래식에 바탕을 둔 음악으로 돌아갔다. 이때 발표한 ‘에너지 플로’는 연주곡으로는 처음으로 1999년 일본 오리콘 차트에서 1위를 기록했다. 경기 침체를 겪는 일본의 ‘잃어버린 시대’를 위로한 피아노곡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14년 구인두암 진단을 받았고 2020년 암이 재발했지만 음악을 만들고, 설치미술과 결합한 오페라 ‘TIME’도 제작하며 왕성하게 활동을 이어갔다. 2021, 2022년 제작한 앨범 ‘12’는 소리와 여백이 교차하는 미니멀리즘한 음악을 담았다. 유작이 된 앨범을 발표하며 그는 말했다. “음은 더 적게, 공명은 더 많게 하고 싶었다. 여백은 침묵이 아니라 소리가 이어지는 공간이다. 소리로 샤워를 하고 싶었다. 나의 지친 육신과 영혼에 작은 치유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생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장례식장에서 어떤 음악이 들리면 좋겠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바흐가 좋겠다. 거의 평생 들어왔으니까.” 한편 그의 별세 소식에 방탄소년단(BTS) 멤버 슈가는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머나먼 여행 평안하시길 바란다”고 애도했다. 배철수도 고인과 함께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며 추모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 2023-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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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립 바랐던 20세기 미국과 에드워드 호퍼[영감 한 스푼]

    미술을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중 이달 20일부터 열리는 에드워드 호퍼(1882∼1967)의 국내 첫 개인전을 기다리는 분이 많을 듯합니다.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작품 사진 몇 장을 미리 공개해 그중 한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이 작품은 1914년 미국 작가 호퍼가 서른두 살의 나이에 프랑스에서 그린 것입니다. 한글 제목은 ‘푸른 저녁’인데, 원제목은 ‘Soir Bleu’, 프랑스어입니다. 어두운 옷차림을 한 남성들 가운데 분칠을 한 피에로와 여성이 눈길을 사로잡죠. 이 그림엔 어떤 사연이 있을까요?주목받지 못한 그림이 그림은 제목만 독특한 것이 아닙니다. 크기도 높이 91.8cm에 폭 182.7cm로 젊은 작가인 호퍼가 당시 그렸던 것 중 가장 큰 축에 속합니다. 그가 기량을 보여주기 위해 야심 차게 준비한 그림임을 알 수 있죠. 이 무렵 호퍼는 당시 예술의 중심지였던 파리에서 앞서가는 미술을 배우기 위해 여러 차례 여행을 다녀온 뒤였습니다. 호퍼가 여행지에서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는 프랑스의 사순절 축제인 ‘미카렘’에서 피에로와 얼굴을 하얗게 칠한 여자들을 봤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즉, 이 그림은 그때 본 풍경을 담은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호퍼는 이 그림을 1915년 그룹전에 출품한 뒤 평생 다시는 내놓지 않았습니다. 이때 함께 전시한 소품 ‘뉴욕 코너’가 오히려 미국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았고, 야심작인 ‘푸른 저녁’은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죠. 19세기 프랑스 화가 툴루즈 로트레크의 영향이 짙게 보이는 ‘푸른 저녁’은 프랑스 후기 인상파의 아류로 보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호퍼는 이 그림에 한 가지 특징은 남겨둡니다. 이 그림에는 호퍼의 그림답지 않게 무려 7명의 사람이 등장하죠. 그런데 누구도 서로 눈을 맞추거나 대화를 나누지 않습니다. 바로 도시 속 사람들이 각자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입니다.익숙한 일상을 그리다‘푸른 저녁’을 그릴 무렵 호퍼는 수년 동안 그림을 팔지 못해 일러스트와 포스터를 그리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주로 뉴욕의 거리 풍경을 묘사한 판화나 영화 포스터, 광고물을 그렸습니다. 그러다 1918년에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국의 애국심을 고취하는 포스터를 그려 상을 받기도 합니다. 호퍼가 프랑스어 제목을 붙인 ‘푸른 저녁’이 유럽에 대한 선망이나 동경을 담았다면, 그 후부터 호퍼의 작품은 지극히 미국적인 일상에 더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가장 유명한 호퍼의 그림인 ‘밤의 사람들(Nighthawks)’은 물론이고 ‘이층에 내리는 햇빛’(1960년) 같은 작품도 미국인들이 사는 평범한 집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호퍼는 이렇게 미국의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1920년대 중반 이후부터 인정받기 시작합니다. 1931년에는 휘트니 미술관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그의 작품을 수천 달러를 주고 구매하기 시작했고, 1933년에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회고전을 여는 등 성공 가도에 오르게 됩니다. 40대부터 주목받고 그 후로도 미국 미술관의 사랑을 받았으니, 호퍼는 비교적 행복한 삶을 산 예술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지극히 미국적인 고독사실 호퍼가 활발하게 작업을 했던 1930년대 유럽 예술가들은 다다이즘에서 인간의 무의식을 탐구한 초현실주의 예술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현실 풍경을 빛의 효과에 집중해 그리는 것은 이미 19세기 말 인상파 작가들이 너무나도 잘 보여준 것이었죠. 이 무렵 회화는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친 뒤 추상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호퍼는 프랑스를 방문한 소감에 대해 “피카소에 대해서는 잘 들어보지 못했고, 렘브란트가 좋았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호퍼가 파리에 머물 때 이미 피카소는 입체파 예술로 세계 미술계를 뒤흔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호퍼는 이러한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호퍼는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로 랠프 월도 에머슨(1803∼1882)을 꼽곤 했습니다. 모든 개인이 내면의 소리에 충실해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에머슨의 저서 ‘자기 신뢰’는 미국의 사상적 뿌리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유럽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꿈꾸었던 미국의 상황과 맞아떨어졌죠.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런 것들을 느끼는 내면을 소중히 여기는 에머슨의 사상은 호퍼의 그림과 굉장히 닮아 있습니다. 호퍼 역시 주변 도시의 풍경 속에서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생각에 잠긴 사람들을 그렸기 때문이죠. 이런 점에서 보면 호퍼는 미국 미술사의 중요한 작가임이 확실해 보입니다. 20세기 초반 미국인들이 원했던 바를 그림에 충실하게 담고 있으니까요. 미국인들에게 중요한 가치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미국의 박수근’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그의 ‘푸른 저녁’이 다시 빛을 보지 못했던 이유. 미국이 제1·2차 세계대전 등 두 번의 전쟁을 거치며 조금씩 유럽에 대한 동경을 거둬들이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금요일 오전 7시 발송됩니다. QR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하시면 이메일로 먼저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김민 국제부 기자 kimmin@donga.com}

    • 2023-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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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에드워드 호퍼의 피에로, 왜 한 번만 전시됐을까?[영감 한 스푼]

    여러분 안녕하세요,미술을 사랑하는 구독자 여러분 중 4월 있을 에드워드 호퍼 전시를 기다리는 분이 많을 듯합니다.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작품 사진 몇 장을 미리 공개해 그중 한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이 작품은 1914년, 미국 작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가 32살일 때 프랑스에서 그린 것입니다.한글 제목은 ‘푸른 저녁’인데, 원제목은 ‘Soir Bleu’,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입니다.어두운 옷차림을 한 남성들 가운데 분칠을 한 피에로와 여성이 눈길을 사로잡죠. 이 그림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요?주목받지 못한 그림이 그림은 제목만 독특한 것이 아닙니다. 사이즈도 높이 91.8cm에 폭 182.7cm로 젊은 작가인 호퍼가 이 시기 그렸던 것 중 가장 큰 축에 속합니다.그가 기량을 보여주기 위해 야심 차게 준비한 그림임을 알 수 있죠.이 무렵 호퍼는 당시 예술 중심지였던 파리에서 앞서가는 미술을 배우기 위해 여러 차례 여행을 다녀온 뒤였습니다.여행에서 호퍼는 프랑스의 사순절 축제인 ‘미카렘’에서 피에로와 얼굴을 하얗게 칠한 여자들을 봤다고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 씁니다. 즉 이 그림은 그때 본 풍경을 담은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그런데 호퍼는 이 그림을 1915년 그룹전에 출품한 뒤 평생 다시는 내놓지 않았습니다. 이 때 함께 전시한 소품 ‘뉴욕 코너’가 오히려 미국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았고, 야심작인 ‘푸른 저녁’은 별 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죠.19세기 프랑스 화가 툴루즈 로트렉의 영향이 짙게 보이는 ‘푸른 저녁’은 프랑스 후기 인상파의 아류로 보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호퍼는 이 그림에서 한 가지 특징은 남겨둡니다.이 그림에는 호퍼 그림답지 않게 무려 7명의 사람이 등장하죠. 그런데 누구도 서로 눈을 맞추거나 대화를 나누지 않습니다. 바로 도시 속 사람들이 스스로의 생각에 잠겨 있는 모습입니다.익숙한 일상을 그리다‘푸른 저녁’을 그릴 무렵 호퍼는 수년 동안 그림을 팔지 못해 일러스트와 포스터를 그리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특히 뉴욕의 거리 풍경을 묘사한 판화나 영화 포스터, 광고물을 그렸습니다. 그러다 1918년에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국의 애국심을 고취하는 포스터를 그려 상을 받기도 합니다.호퍼가 프랑스어 제목을 붙인 ‘푸른 저녁’이 유럽에 대한 선망이나 동경을 담았다면, 그 후부터 호퍼의 작품은 지극히 미국적인 일상에 더 집중하기 시작합니다.가장 유명한 호퍼의 그림인 ‘밤의 사람들’(Nighthakws)은 물론, ‘이층에 내리는 햇빛’(1960) 같은 작품도 미국인들이 사는 평범한 집을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호퍼는 이렇게 미국의 모습을 그린 작품으로 1920년대 중반 이후부터 인정받기 시작합니다.1931년에는 휘트니미술관과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이 그의 작품을 수천 달러를 주고 구매하기 시작했고, 1933년에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회고전을 여는 등 성공 가도에 오르게 됩니다.40대부터 주목을 받고 그 후로도 미국 미술관의 사랑을 받았으니, 호퍼는 비교적 행복한 삶을 산 예술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지극히 미국적인 고독사실 호퍼가 활발하게 작업을 했던 1930년대 유럽 예술가들은 다다이즘에서 인간의 무의식을 탐구한 초현실주의 예술에 심취해 있었습니다.현실의 풍경을 빛의 효과로 집중해 그리는 것은 이미 19세기 말 인상파 작가들이 너무나도 잘 보여준 것이었죠. 이 무렵 회화는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친 뒤 추상으로 나아가게 됩니다.그런데 호퍼는 프랑스를 방문한 소감에 대해 “피카소에 대해서는 잘 들어보지 못했고, 램브란트가 좋았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호퍼가 파리에 머물 때 이미 피카소는 입체파 예술로 세계 미술계를 뒤흔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호퍼는 이러한 흐름의 중요성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한편 호퍼는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로 랄프 왈도 에머슨(1803~1882)을 꼽곤 했습니다.에머슨은 모든 개인이 내면의 소리에 충실해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저서 ‘자기신뢰’로 미국의 사상적 뿌리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유럽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꿈꾸었던 미국의 상황과 맞아떨어졌죠.자신을 둘러싼 환경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그런 것들을 느끼는 내면을 소중히 여기는 에머슨의 사상은 호퍼의 그림과 굉장히 닮아 있습니다. 호퍼 역시 주변 도시의 풍경 속에서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생각에 잠긴 사람들을 그렸기 때문이죠.이런 점에서 보면 호퍼는 미국 미술사의 중요한 작가임이 확실해 보입니다. 20세기 초반 미국인들이 원했던 바를 그림이 충실하게 담고 있으니까요. 미국인들에게 중요한 가치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미국의 박수근’이라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그의 ‘푸른 저녁’이 다시 빛을 보지 못했던 이유. 미국이 제1·2차 세계대전 등 두 번의 전쟁을 거치며 조금씩 유럽에 대한 동경을 거둬들이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뉴스레터 구독 신청 https://www.donga.com/news/Newsletter■구독자 의견(지난주 원계홍 회고전에 관한 의견입니다)◇ 이미 잘 알려진 유명한 작가였다면 선입견이 작용했을 수도 있겠지만, 세상과 고립되었던 작가의 작품들인데도 순수하게 작품 그 자체에 끌리고 감동한 분들이 있다는 게 놀랍고도 고무적입니다. 그분들이 작품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신 것도 특별한 인연인 것 같습니다. 온갖 사건, 사고들이 벌어지지만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고 따뜻하고, 예술이 서로 모르는 분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소통하게 했네요. 말을 걸어오는 그림들입니다.◇ 정말 디지털 시대 이전, 기업들의 달력…. 우리 생활에 얼마나 문화 수준을 올려준 매개체였는지 몰라요. 크라운제과에서 원계홍 작가의 작품이 실렸었다니, 그 시대 기획자의 남다른 안목과 결단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 어릴 때만 해도 한독약품 명화 달력처럼 소중한 갤러리도 없었거니와 삼성 달력만큼 한국의 미를 오감으로 느낄 수 있게 제작하는 곳도 없었는데, 요즘은 통 접하기가 어렵네요! 요즘 집에 달력 건 집 거의 없잖아요? ㅎㅎ◇ 무명 화가의 그림을 통해 두 사람이 엮이게 되고 그 이야기가 저에게까지 닿은 것이 영화 줄거리 같아 흥미롭습니다. 그림이 조용하고 어딘가 쓸쓸해서 좋네요.◇ 아름다운 이야기네요. 살아생전에 그렇게 인정받고 위로받았다면 더욱 좋았을 텐데… 많은 예술가들의 때는 그렇게 일찍 찾아오지 않더라구요. 그나마 두 분 덕에 뒤늦게라도 빛을 보게 되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솔)◇ 이 전시를 다녀오고 나서 한참 마음이 애잔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정직하고 올바른 예술의 길을 걸어온 분이 크게 조명받지 못했다는 것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기하학적인 구도 뛰어난 색감, 거기에 역사성까지 가미되어 있는 작품이 너무 훌륭한 작품입니다. 훌륭한 컬렉터님들을 만나 이제야 제대로 된 조명을 받을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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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세계적 건축가 안도 “살아 있는 동안은 모두 청춘”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82·사진)가 1일 강원 원주시 뮤지엄 산에서 개막하는 개인전 ‘안도 다다오―청춘’ 개막을 앞두고 한국을 찾았다. 안도는 31일 뮤지엄 산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 팬들에게 “10대, 20대가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은 모두 청춘”이라며 도전정신으로 가득 찬 삶을 살기를 당부했다. 1941년 오사카에서 태어난 안도는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한 뒤 1969년 건축연구소를 설립했다. 초기엔 의뢰가 들어오지 않아 비좁은 부지나 빠듯한 예산의 프로젝트를 도맡았지만, 역경을 극복하며 세계적 건축가로 거듭났다. 이번 전시에선 1969년부터 2020년까지 그의 대표작 250점이 소개된다. 미술관 외부에는 안도가 만든 푸른 사과 형태의 조각 ‘청춘’이 있다. ‘청춘은 인생의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이라는 미국 시인 새뮤얼 울먼의 시 ‘청춘’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풋사과처럼 푸르고 무르익지 않은 도전정신을 담았다. 5월 개관 10주년을 맞는 뮤지엄 산 역시 안도가 건축 설계를 담당한 공간이다. 그는 고 이인희 한솔그룹 고문(1928∼2019)으로부터 설계 의뢰를 받았을 때 일화를 소개했다. “그분이 세계에 없는 것을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 그러나 저는 이렇게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람들이 오겠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고문께서 사람들이 오게 만드는 것은 본인들의 역할이라 했죠. 지금은 이곳에 연간 20만 명이 찾고 있습니다.” 그는 이어 “한국과 일본의 정치와 경제는 잘 모르지만 문화적으로는 교류를 이어 나갔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안도는 지난달 17일 윤석열 대통령의 일본 순방에 동행한 김건희 여사와 일본 도쿄의 한 식당에서 오찬을 갖기도 했다. 전시는 7월 30일까지. 1만4000∼2만2000원.원주=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3-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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