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희

김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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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취재하는 방송·영화 담당 기자입니다. 재미를 주는 콘텐츠를 더 재밌는 기사 안에 담겠습니다.

jetti@donga.com

취재분야

2025-11-06~2025-12-06
문화 일반48%
인물/CEO13%
사회일반7%
IT3%
산업3%
검찰-법원판결3%
패션3%
음악3%
기타17%
  • “국내 무슬림과 공존 해법 찾으려 사원 100곳 누볐죠”

    2018년 6월 예멘 난민들이 내전을 피해 제주도에 들어온 뒤 이슬라모포비아(이슬람 공포증) 논란이 불거졌다. 이들 대부분이 무슬림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예멘 난민 수용 반대 집회가 열리고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와 70만 명의 동의를 받았다. ‘타인을 기록하는 마음’(메디치)을 최근 펴낸 이수정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책임연구원(37)이 국내 이주 무슬림을 인터뷰하기로 작정한 계기다. 당시 그는 국내 이슬람 건축 디자인을 연구하기 위해 2018년 초부터 이슬람 사원과 예배소를 찾아다녔다. 거대한 돔이나 첨탑을 기대한 그가 맞닥뜨린 건 간판도 없이 옥탑이나 지하에 숨어든 예배소였다.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의 이슬람 사원인 서울중앙성원에서 만난 그는 “건축물 연구를 접으려던 차에 예멘 난민 사태가 터졌다”며 “다양한 국적이나 종교를 가진 이주민이 늘고 있는 한국에서 장소보다는 그 안에 사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국내 거주하는 외국인 무슬림은 약 15만 명으로, 전국의 이슬람 종교시설은 150개가량 된다. 이 연구원은 2018년부터 2년간 이슬람 종교시설 100여 곳을 다니며 무슬림 이주자들을 인터뷰했다. 이들이 한국인과 겪는 갈등 혹은 차별의 경험, 무슬림과 공존해야 하는 이유를 신간에 담았다. 무슬림에 대한 차별적 시선은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에서 비롯됐지만 팬데믹으로 더 심화된 양상이다. 지난해 5월 강원 강릉시에서 라마단(이슬람 금식성월) 기간 식당에 모인 무슬림 사이에서 집단감염이 터진 뒤 주변 시선은 특히 곱지 않았다. “부산에 있는 공장에 다니는 무슬림 노동자가 ‘사택 밖으로 나가면 해고하겠다’는 회사 통보를 받았다고 합니다. 종교모임에 나가는 걸 막으려고 외출을 금지시킨 거죠. 경기도가 모든 외국인 노동자를 대상으로 코로나19 검사를 받도록 한 것에 억울함을 호소한 분도 있었어요.” 지난해에는 대구 경북대 앞에 이슬람 사원을 설립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빚어졌다. 경북대로 유학을 온 무슬림 학생들이 2014년부터 사원 설립을 추진했는데 인근 주민들이 소음과 지역 슬럼화를 이유로 반대에 나선 것. 주민들은 공사장 입구에 차를 세워 공사를 막았다. 충돌이 커지자 지방자치단체는 무슬림 학생들에게 주민들과 합의하라며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렸다. 이 연구원은 “정부가 갈등을 제대로 조율하지 않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유럽에서는 이슬람 사원 설립을 놓고 갈등이 생겼을 때 정부 주도로 중재위원회가 구성된다고 한다. 관련 공청회와 토론회가 열린 영국 런던 킹스턴어폰템스 지역이 대표적이다. 독일은 이슬람 단체와 정부 간 소통기구인 ‘DIK’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유럽에서 중재위는 몇 년이 걸리더라도 토론회를 열어 합의점을 찾아간다. 한국도 양측의 의견을 조율하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주민을 우리가 양보해야 하는 존재로 생각하지 말고 협의의 대상으로 보는 관점의 전환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20년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넘어서는 ‘데드크로스’가 발생한 상황에서 이주민과의 공존은 필수가 됐다는 것. “이주 노동자들은 한국인이 기피하는 3D 업종을 채우는 필수 노동력이 됐어요. 무슬림이 유입돼 공실이 사라지고, 죽었던 상권이 되살아나기도 합니다. 이제는 ‘왜 이들이 여기 사는가’보다는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할 시점입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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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첫장 여는 순간 보석 만난듯… 29번째 게이고 작품 번역”

    일본작가의 소설책을 즐겨 읽는 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이름이 있다. 번역가 양윤옥(64·사진)이다. 국내에서 150만 부가 팔린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현대문학·2012년),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시리즈(문학동네·2009∼2010년) 등 일본 대표 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번역했다. 특히 추리소설계의 거장 게이고의 소설 중엔 양 번역가 손을 거치지 않은 게 없다. 양 번역가가 15년간 번역한 그의 작품은 29편에 달한다. 양 번역가는 24일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최근 번역한 ‘조인계획’은 1994년에 출간됐지만 한국엔 지금에서야 처음 소개되는 게이고의 초기작”이라며 “첫 장을 펼쳤을 때 ‘드디어 숨은 보석을 만났다’는 생각에 설렜다”고 말했다. 조인계획은 스키점프 유망주 살인사건을 통해 천재적 재능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그린 작품이다. 양 번역가는 게이고의 문체에 대해 “등장인물의 표정이나 동작을 짧은 묘사로 켜켜이 쌓아가고, 그것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틈에 정교한 대형 건축물이 머릿속에 출현하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게이고 문체를 잘 알기에 번역 과정에서 설명을 덧붙일까 고민되는 순간마다 ‘원문에 충실하기’를 따른다고 했다. 조인계획에서도 원문에 쓰인 ‘날다’(飛)와 ‘뛰다(跳)’라는 단어를 놓고 고민하다 결국 원래 단어의 뜻을 살린 ‘날아오르다’와 ‘뛰어들다’로 번역했다. “천재 스키점프 선수 ‘니레이’는 점프 순간을 ‘날다’가 아닌 ‘뛰다’로 묘사합니다. ‘천재란 비상하는 것이 아니라 단계를 밟아 도약하는 것’이라는 니레이의 생각이 담겨 있죠. 작가 의도를 전달하기엔 ‘날아오른다’, ‘뛰어든다’는 너무 평범한 것 아닌가 고민했습니다. 설명을 덧붙이고픈 욕심도 들었지만 독자들이 숨은 뜻을 알아줄 거라 믿었죠.” 원문에 손을 댈 때도 있다. 편견이 들어간 표현이 우려될 경우다. 하루키의 단편집 ‘여자 없는 남자들’(문학동네·2014년) 중 ‘드라이브 마이 카’가 그랬다. 운전기사 ‘미사키’가 운전 도중 불붙은 담배를 창밖으로 튕겨버리는 장면에서 하루키는 ‘가미주니타키초에서는 다들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는 것이리라’라고 표현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는 것이리라’를 ‘아무렇지도 않게 그러는 것인지’라고 애매하게 얼버무려 번역했어요. 가상의 지명이라도 온 동네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차 밖으로 담배꽁초를 버리는 곳’이라고 표현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문장을 수십 개로 쓰는 집요함도 있다. ‘여자 없는 남자들’ 중 ‘예스터데이’에서 ‘후렴구를 그야말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불렀다’라는 문장은 12가지 버전으로 써보며 고민했다. ‘쩌렁쩌렁한’의 원문은 ‘목욕탕적인, 잘 들리는’이다. ‘가장 신나는 부분을 그야말로 목욕탕적으로, 구성지게 뽑아냈다’, ‘가장 고조되는 부분을 욕실 스타일로, 구성지게 뽑아냈다’ 등이 후보였다. 그는 “문장은 쉽고 편하게 느껴져야 한다는 생각에 책에 나온 최종 문장으로 선택했다.” 양 번역가는 번역가를 ‘구로고(黑衣)’에 비유한다. 구로고는 일본 전통연극 가부키에서 관객들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온몸에 검은 천을 둘러쓰고 무대 진행을 돕는 이다. “번역자는 원작자의 ‘구로고’입니다. 원작을 최대한 우리말로 매끄럽게 소개하는 것이 할 일이지요. 번역자가 자기주장을 하거나 얼굴을 내밀 일은 없어야 합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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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조선통신사의 눈에 비친 400년 전 일본 풍경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1537∼1598)와, 그의 아들 히데요리(1593∼1615)를 조선 사람들은 어떻게 바라봤을까. 7년간 지속됐던 전란 후 약 10년 뒤인 1607년부터 다시 일본에 파견되기 시작했던 조선통신사의 기록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신유한이 1719년에 쓴 사행록에는 ‘히데요시가 오사카에 살면서 싸움을 즐기고 사치하고 백성의 고혈을 긁어다 욕심을 채웠다’는 기록이 있다. 1607년 4월 9일 도요토미 가문의 본거지 오사카에 도착한 사행원 경섬은 ‘해사록’에 히데요리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음식을 먹을 때에도 풍악을 폐하지 않았고, 오직 호화와 사치를 스스로 즐겼으며, 일의 처리가 많이 유약하므로 왜인들이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다고 한다.’ 히데요리가 패망하게 된 경위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고전문학을 전공한 뒤 조선 후기 문화를 연구해 온 저자는 1607년부터 1764년까지 총 11차례에 걸쳐 에도 막부에 파견됐던 통신사행들이 관찰한 오사카, 교토, 나고야, 에도 등 일본 주요 도시에 대한 기록을 탐구했다. 전쟁의 상처가 가시지 않은 때, 조선인들은 왜란을 일으킨 히데요시와, 그를 물리친 도쿠가와 이에야스 휘하의 에도 막부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통신사행의 여정은 오사카항 하구에서부터 시작됐다. 오사카 시내 나루터 주변의 인가를 묘사한 기록은 생생하다. 1719년 신유한은 이렇게 글을 남겼다. ‘모든 집의 담과 벽이 다 화려하게 색칠을 하였다. 낮고 습해서 거처할 수 없는 곳에는 푸른 풀로 금빛 방죽을 만들었는데 깨끗하여 침도 뱉을 수 없을 정도였다.’ 잡초가 난 곳조차 관리가 잘돼 있었다니, 청결을 중시하는 일본의 문화가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님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한편 조선인들은 실권이 없는 일왕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이로 인해 벌어질 위험을 우려했다. 원중거는 “일왕을 끼고 쟁탈을 도모하는 자가 다시 나타나지 않을지 어찌 알겠는가. 저 나라가 어지러워진다면 변방의 교활한 무리가 반드시 기회를 타서 우리 땅을 노략질하게 될 것”이라고 썼다. 실제 에도 막부가 무너진 뒤 일본은 조선 침탈에 나섰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인 ‘피로인’에 대한 기록은 전쟁이 남긴 상처를 보여준다. 1636년 통신사행들이 지나갈 때 ‘자주 눈물을 닦으며 번거로이 절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피로인들이었다’는 기록이 그렇다. 책의 묘미는 통신사행들이 남긴 상세한 기록을 통해 400여 년 전 일본 문화와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늦은 저녁 배를 타고 가다 강물에 놓인 다리를 본 조명채는 1748년 ‘공중에 밝게 빛나는 불 구슬이 문득 가까워져 오고, 만 길 뻗은 무지개가 뱃머리에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고 적었다. 불 구슬은 다리 위에 밝힌 등불이고, 무지개는 다리였다. ‘여인들이 한가로운 도회의 자태를 더하고 분칠을 낭자하게 하여 눈을 현란하게 하였다’는 1764년 원중거의 교토 방문 기록도 흥미롭다. 통신사행들의 글을 따라가며 그들이 걸었던 길을 머릿속에서 함께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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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진왜란 겪고 파견된 조선통신사가 본 일본 그리고 일본인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그의 아들 히데요리를 조선 사람들은 어떻게 바라봤을까. 7년 간 지속됐던 전란 후 약 10년 뒤인 1607년부터 다시 일본에 파견되기 시작했던 조선통신사의 기록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신유한이 1719년에 쓴 사행록에는 ‘히데요시가 오사카에 살면서 싸움을 즐기고 사치하고 백성의 고혈을 긁어다 욕심을 채웠다’는 기록이 있다. 1607년 4월 9일 오사카 하구에 도착한 사행 중 한 명이었던 경섬은 ‘해사록’에 히데요리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음식을 먹을 때에도 풍악을 폐하지 않았고, 오직 호화와 사치를 스스로 즐기었으며, 일의 처리가 많이 유약하므로 왜인들이 사리에 어둡고 어리석다고 한다.’ 히데요리가 패망하게 된 경위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고전문학을 전공한 뒤 조선 후기 문화를 연구해 온 저자는 1607년부터 1764년까지 총 11차례에 에도 막부에 파견됐던 통신사행들이 관찰한 오사카, 교토, 나고야, 에도 등 일본 주요 도시에 대한 기록을 탐구했다. 전쟁의 상처가 가시지 않은 때, 조선인들은 왜란을 일으킨 히데요시와, 그를 물리친 도쿠가와 이에야쓰 휘하의 에도 막부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통신사행의 여정은 오사카항 하구에서부터 시작됐다. 오사카 시내 나루터 주변의 인가를 묘사한 기록은 생생하다. 1719년 신유한은 이렇게 글을 남겼다. ‘모든 집의 담과 벽이 다 화려하게 색칠을 하였다. 낮고 습해서 거처할 수 없는 곳에는 푸른 풀로 금빛 방죽을 만들었는데 깨끗하여 침도 뱉을 수 없을 정도였다.’ 잡초가 난 곳조차 관리가 잘 돼 있었다니, 청결을 중시하는 일본의 문화가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님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한편 조선인들은 실권이 없는 일왕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이로 인해 벌어질 위험을 우려했다. 원중거는 “일왕을 끼고 쟁탈을 도모하는 자가 다시 나타나지 않을지 어찌 알겠는가. 저 나라가 어지러워진다면 변방의 교활한 무리가 반드시 기회를 타서 우리 땅을 노략질하게 될 것”이라고 썼다. 실제 에도 막부가 무너진 뒤 일본은 조선 침탈에 나섰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인 ‘피로인’에 대한 기록은 전쟁이 남긴 상처를 보여준다. 1636년 통신사행들이 지나갈 때 ‘자주 눈물을 닦으며 번거로이 절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피로인들이었다’는 기록이 그렇다. 책의 묘미는 통신사행들이 남긴 상세한 기록을 통해 400여 년 전 일본 문화와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는 점이다. 늦은 저녁 배를 타고 가다 강물에 놓인 다리를 본 조명채는 1748년 ‘공중에 밝게 빛나는 불 구슬이 문득 가까워져 오고, 만 길 뻗은 무지개가 뱃머리에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고 적었다. 불 구슬은 다리 위에 밝힌 등불이고, 무지개는 다리였다. ‘여인들이 한가로운 도회의 자태를 더하고 분칠을 낭자하게 하여 눈을 현란하게 하였다’는 1764년 원중거의 교토 방문 기록도 흥미롭다. 통신사행들의 글을 따라가며 그들이 걸었던 길을 머릿속에서 함께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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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 지친 마음 다독다독… 일상 접목 철학책 ‘인기’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철학서가 인기를 끌고 있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어크로스)처럼 출간된 지 1년이 다 돼 가는 철학서가 최근까지 베스트셀러 순위에 드는 철학서의 ‘스테디셀러화’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4월 출간된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교보문고 1월 종합 월간 베스트 8위, 인문 분야 월간 1위에 오르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해 말에 나온 신간도 인기다. 11월 출간된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인플루엔셜)는 1월 인문 분야 기준 교보문고 6위, 예스24 3위다. 12월에 나온 ‘데일리 필로소피’(다산초당)는 교보문고 13위, 10월 출간된 ‘필로소피 랩’(윌북)은 예스24 20위다. 철학서의 판매량과 출간 종수도 늘었다. 온라인 서점 예스24에 따르면 철학·사상 분야 도서 연간 판매량은 2020년 전년보다 23.8% 감소했지만 지난해에는 60.7% 증가했다. 신간 출간 종수도 2020년 206종에서 지난해 290종으로 늘었다. 철학서의 인기 비결로는 일상과의 연결고리를 포착해 진입장벽을 낮추고, 지친 마음을 달래는 점이 꼽힌다.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침대에서 나오는 법, 공자처럼 친절을 베푸는 법 등 어려운 철학적 사유를 일상에 접목했다. ‘아직 오지 않은 날들을 위하여’는 파스칼, 프로이트 등 철학자들의 말을 인용해 욕망, 사랑 등 나이가 들면서 포기하게 되는 것들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최근 인기 있는 철학서들은 어려운 철학 지식을 설명하는 교양서가 아니라, 철학 지식과 통찰을 통해 삶을 돌아보고 마음의 휴식을 얻는 자기계발서 성격이 강하다”고 분석했다. 팬데믹 장기화의 영향도 있다. 지속된 사회적 거리 두기로 심신이 지친 사람들이 마음을 달랠 책을 찾는 것이다. 박숙경 예스24 과장은 “불안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위안을 주는 ‘불안한 날들을 위한 철학’(다산초당·2022년), ‘에피쿠로스의 네 가지 처방’(복복서가·2022년)은 행복을 탐구한 스토아학파, 에피쿠로스학파의 사상을 접목했다”고 설명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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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린 흥행 날개 달고, 그때 그 소설 다시 날다

    국내에 번역 출간된 지 오래된 외국 원작들이 영화 흥행에 힘입어 뒤늦게 빛을 보고 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나일강의 죽음’(1937년)은 ‘오리엔트 특급 살인’(1934년)이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1939년)에 비해 그동안 국내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이 소설은 신혼부부가 탄 나일강의 호화 여객선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그렸다. 이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가 9일 개봉 후 엿새 동안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면서 소설도 주목받고 있다. 21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2013년 ‘애거사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황금가지)에 묶여 출간된 소설은 월간 기준으로 판매량이 약 500권 수준에서 영화 개봉을 전후해 5000권가량으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지난해 12월 개봉한 영화 ‘드라이브 마이 카’의 원작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문학동네·2014년)도 영화 덕을 봤다. 소설은 갑작스레 아내와 사별한 남자가 여성 운전사를 만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담았다. 영화는 지난해 프랑스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에 이어 올해 미국 아카데미상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이에 힘입어 지난달 22일 기준 원작 소설의 한 달 판매량은 직전에 비해 약 5배로 늘었다. 중국 소설가 옌롄커의 대표작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웅진지식하우스·2005년)도 23일 동명의 영화 개봉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달 셋째 주 알라딘 소설·시·희곡 부문 14위에 올랐다. 소설은 중국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 사단장 아내와 젊은 사병의 불륜을 통해 마오쩌둥 이념을 풍자했다. 이 밖에 다른 소설 원작 영화들도 개봉을 앞두고 있어 출판계가 마케팅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주연의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은 2018년 국내에 출간된 데이비드 그랜의 ‘플라워 문’(프시케의숲)이 원작이다. 1920년대 미국 중남부에서 벌어진 인디언 살인사건을 다룬 논픽션이다. 봉준호 감독의 ‘미키7’(가제)도 에드워드 애슈턴의 공상과학(SF) 소설 ‘미키7(Mickey 7)’을 원작으로 제작됐다. 국내에 아직 출간되지 않은 이 책은 복제인간이 다른 복제인간을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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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빛, 그 파동과 입자가 전하는 감동의 本色

    태양빛이 자연에 닿는 순간을 포착한 작품을 다수 남긴 빈센트 반 고흐에게는 ‘태양의 화가’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는 태양빛의 강렬함을 드러내고자 점묘법을 사용했다. 그가 햇빛의 변화에 따라 수십 번을 그렸다는 ‘씨 뿌리는 사람’에도 그 특징이 녹아 있다. 노란색과 파란색 점이 대비를 이루는 밀밭은 작열하는 태양이 밀밭 위에 일렁이는 느낌을 준다. 고흐가 즐겨 사용한 점묘법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답은 빛의 성질과 특성을 연구하는 광학에 있다. 프랑스 화학자 미셸 외젠 슈브뢸은 실험 중 인접한 색에 따라 원래 색이 다르게 보이는 ‘병치 혼합’을 발견했다. 이를 바탕으로 화가들은 물감의 혼합이 아닌 망막에서의 혼합을 통해 색을 인식토록 하는 점묘법을 개발했다. 물리학자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책임연구원인 저자는 빛의 정체를 규명하려고 노력한 과학자들과, 빛을 통해 세상을 아름답게 표현하고자 한 미술가들의 역사를 추적한다. 예컨대 카메라의 등장이 극사실주의 화풍을 불러 일으켰고, 물리학 이론의 양대 축인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이 마르셀 뒤샹과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에 영향을 미친 이야기를 소개한다. 광학의 창시자 아이작 뉴턴은 흰색으로 보이는 햇빛이 일곱 가지 색으로 나뉘고, 이를 합치면 다시 흰색이 되는 분광이론을 발견한다. 빛은 섞을수록 흰색에 가까워진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 이를 계기로 비로소 화가들은 빛을 화폭에 제대로 담아낼 수 있게 된다. 매개체는 유화물감. 이 물감에는 기름이 섞여 있어 빛을 받으면 반짝거리고 매끄러운 느낌을 준다. 유화물감을 여러 겹 덧칠해도 마치 색유리를 겹친 것처럼 투명한 효과를 낼 수 있다. 뉴턴에서 시작한 광학과 미술의 상호작용은 양자역학으로까지 나아간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전자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알 수 없고 오로지 확률로만 기술할 수 있다. 이른바 ‘불확정성의 원리’다. 이는 선택에 따른 무한대의 가능성을 상정하는 철학 담론을 낳아 관찰자에 의해 완성되는 예술로 이어졌다. 자전거 바퀴, 남성용 소변기 등 기성품을 그대로 가져온 뒤샹의 작품이 그 예다. 뒤샹은 “관람자의 관점에서 해석될 때 비로소 작품이 완성된다”는 철학을 기반으로 자유롭게 해석될 수 있는 ‘열린 작품’들을 선보였다.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금지된 재현’은 보는 순간 눈을 의심하게 된다. 양복을 입은 남자는 뒷모습을 보이고 서 있는데, 그의 앞에 놓인 거울도 그의 뒷모습을 비춘다. 남자가 자신의 정면을 직시하기 싫은 것일까. 아니면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걸까. 마그리트는 눈에 보이는 것을 의심하고, 그 안에 숨은 의미를 상상하는 과정을 의도했는지 모른다. 광학부터 상대성이론까지 물리학의 주요 개념이 작품에 녹아든 과정을 파헤치는 이 책을 읽으면 그림의 관람자를 넘어 화가의 관점을 경험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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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V 맞은편에 소파, 전통 거실구조 곧 사라질 것”

    집 꾸미기 열풍이 이어지고 있다. MZ세대에선 더 뜨겁다. 취향을 중시하는 데다 코로나 19로 인한 ‘집콕’ 문화 확산 때문이다. ‘오늘의 집’ 같은 온라인 인테리어 플랫폼도 많이 활용한다. 14일 출간된 ‘가구, 집을 갖추다’(싱긋)의 저자인 김지수 매스티지데코 대표이사(53·사진)는 “집을 꾸미는 것이 ‘나만의 작은 문명’을 만드는 일”이라고 말한다. 유명 브랜드 가방, 외제차처럼 과시하기 위한 소비가 아니라 사적인 공간을 나만의 취향으로 채워 넣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16일 김 대표를 만났다. 코로나19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여행, 외식에 쓸 돈을 고가의 가구를 구입하는 데 사용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듯 그는 집 안 구조와 가구는 사회·문화적 맥락에 맞게 바뀌었다고 말한다. 조선시대에 경대, 소반같이 낮고 작은 가구가 많았던 이유도 17세기 소빙하기 확산에서 찾는다. “소빙하기 시절 추위가 또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조선 사람들은 난방 시스템을 온돌로 바꿨습니다. 온돌의 확산은 좌식문화로 이어졌고, 좌식 가구가 발달하게 됐죠.” 코로나19 이후에도 집 꾸미기에 대한 관심은 지속될까. 김 대표는 “그렇다”고 답한다. 사람들이 소비 활동을 집에서 해결하는 ‘홈코노미’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집에서 즐기는 ‘홈파티’의 편안함, 거실 소파에서 ‘혼술’을 하며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보는 안락함을 쉽게 놓진 않을 것이란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은 집 안에서 즐기는 법을 찾았습니다. 집이라는 작은 우주 안에서 내가 중심이 되는, ‘한국식 히키코모리(운둔형 외톨이)’ 세대가 주거문화를 이끌어 갈 겁니다.” 그가 전망하는 미래 집의 특징은 ‘커지는 거실’이다. 과거 거실은 가족이 모여 TV를 보는 공간이었다. 이젠 각자 방에서 휴대전화를 갖다 보니 거실은 무용지물이 됐다. 놀고 있는 거실은 업무, 식사, 휴식 공간으로 다양하게 활용될 것이라는 게 그의 예상이다. 거실에 둘 대형 테이블, 테이블 높이에 맞는 소파 등 가구도 많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TV를 두고, 맞은편에 소파를 놓는 전통적인 거실 구조는 해체될 겁니다. TV와 소파의 자리에는 큰 테이블이 놓일 거예요. 저희 집 거실엔 통원목 테이블인 2m 길이 우드슬래브가 한가운데에 놓여 있어요. 여기서 아이들이 숙제도 하고, 저도 업무를 봐요. 이런 집이 보편화되는 시대가 곧 오지 않을까요?” 아파트도 내부에 속한 베란다가 아니라 벽에서 돌출된 발코니를 갖춘 아파트가 인기를 끌 것이라고 전망했다. 발코니는 하늘을 마주하기에 햇살과 바람을 바로 맞을 수 있다. “주말에 녹음이 짙은 교외로 여행을 떠나고 쾌적한 테라스 카페를 찾는 사람들의 취향이 아파트에도 옮겨 올 거라고 봐요. 탁 트인 곳에서 평화로움과 안락함을 느끼며 자연의 품에 안기길 원하는 인간의 본능은 변하지 않으니까요.”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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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은 원룸도 내 취향대로”…길어진 집콕이 불러온 ‘집 꾸미기’ 열풍

    요즘 MZ세대 사이에서 ‘집 꾸미기’가 인기다. 원룸에 살더라도 내 취향에 맞는 가구들로 채워진 공간을 만드는 것, 즉 ‘작은 집 예쁘게 꾸미기’가 중요해진 것이다. ‘오늘의 집’ ‘집닥’ 같은 온라인 인테리어 플랫폼은 MZ세대의 필수 어플리케이션이다. 40만 원을 호가하는 이탈리아 브랜드 아르떼미데의 버섯 모양 전등의 가품은 10만 원 안팎에 날개 단 듯 팔려나간다. 수백~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가구들로 가득한 강남구의 ‘더콘란샵’도 ‘핫 플레이스’다. 소득 수준의 향상, 취향을 중시하는 MZ세대의 특성과 함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인한 ‘집콕’ 문화 확산이 집 꾸미기 열풍에 불을 지핀 것이다. 14일 출간된 ‘가구, 집을 갖추다’(싱긋)는 집을 꾸미는 것이 ‘나만의 작은 문명’을 만드는 일이라고 말한다. 명품가방, 외제차처럼 남에게 과시하기 위한 소비가 아니라, 지극히 사적인 공간을 나만의 취향으로 채워 넣는 행위기 때문이다. 집 꾸미기의 열풍은 잠깐의 유행이 아니라, 지속되는 흐름이 될 것이라는 저자 김지수 매스티지데코 대표이사(53)를 16일 서울 마포구 카페에서 만났다.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자 여행, 외식 등에 쓸 돈을 고가의 가구에 투자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듯, 저자는 집안 구조와 가구는 사회·문화적 맥락에 맞게 바뀌어 왔다고 말한다. 조선시대에 경대, 소반과 같이 낮고 작은 가구가 많았던 이유도 17세기 소빙하기의 확산에서 찾는다. “17세기 소빙하기 시절 조선에서도 대흉작, 대기근, 전염병의 창궐이 일어났습니다. 굶주린 백성들은 폭동과 민란을 일으켰죠. 민란으로 전소된 집들이 많았던 데다가, 추위가 또 닥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조선 사람들은 난방시스템을 온돌로 바꿨습니다. 온돌의 확산은 좌식 문화로 이어졌고, 좌식에 맞는 좌식가구가 발달하게 됐죠.” 코로나 19 이후에도 집 꾸미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지속될까. 김 대표는 ‘그렇다’고 답한다. 사람들이 바깥에서의 소비 활동을 집 안에서 해결하는 ‘홈코노미’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직접 요리를 하고, 음악을 골라 들으며 친구들과 즐기는 ‘홈파티’의 편안함, 침대에서 ‘혼술’을 하며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를 보는 안락함을 쉽게 포기하진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코로나 19로 사람들은 집 안에서 참는 게 아니라 즐기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집안에서는 미처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경험함으로서 다양성을 맛본 거죠. 집이라는 작은 우주 안에서 내가 중심이 되는, ‘한국식 히키코모리’ 세대가 리빙 문화를 이끌어 갈 겁니다.” 저자가 전망하는 미래의 집의 특징은 ‘커지는 거실’이다. 과거의 거실은 가족들이 모여 TV를 보는 공간이었다. 이제 가족 구성원들은 각자의 방에서 핸드폰을 가지고 논다. 집에서 가장 넓은 공간인 거실이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놀고 있는 거실은 업무, 식사, 휴식 공간으로 다양하게 활용될 것이라는 게 저자의 전망이다. 부엌은 점차 사라지고, 거실은 점점 커지는 집, 저자가 그리는 미래의 집이다. 집안 구조의 변화에 따라 거실에 둘 수 있는 대형 테이블, 테이블 높이에 맞는 소파 등의 가구도 많아질 것이라는 게 김 대표의 예측이다. “TV를 두고, 맞은편에 소파를 놓는 전통적인 거실의 구조는 해체될 겁니다. TV와 소파의 자리에는 큰 테이블이 대체할 거에요. 저희 집 거실이요? 통원목 테이블인 2m 길이 우드슬랩이 한 가운데 놓여져 있죠. 여기서 아이들 공부도 봐주고, 저도 업무를 봐요. 이런 집의 구조가 보편화되는 시대가 곧 오지 않을까요?”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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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일보 연재 ‘남산의 부장들’ 대만서 중국어로 번역 출간

    중앙정보부 부장들이 주도한 공작 정치를 통해 박정희 정권 18년을 조명한 논픽션 ‘남산의 부장들’(폴리티쿠스·사진)이 최근 대만에서 중국어로 번역 출간됐다. ‘남산의 부장들’은 김충식 가천대 특임부총장이 동아일보 기자 시절 2년 2개월 동안 연재한 기사를 모아 1992년 출간한 책이다. 지금까지 약 55만 부가 팔렸다. 2020년 이병헌 이성민 등이 출연한 동명의 영화로도 개봉해 코로나19 여파에도 불구하고 490만 명이 관람했다. 일본 최대 출판사인 고단샤(講談社)도 1994년 번역 출판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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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0대에 ‘미니멀리즘 거장’ 오른 화가 에레라 별세

    극단적 미니멀리즘을 추구하며 거장으로 인정받은 쿠바 출신 화가 카르멘 에레라(사진)가 별세했다. 향년 107세. 미국 뉴욕타임스는 그가 12일(현지 시간) 뉴욕 맨해튼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고 14일 보도했다. 쿠바 아바나에서 태어난 고인은 유년 시절 프랑스 파리와 독일 베를린 등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아바나에서 대학을 다니며 건축학을 전공했고, 교수였던 남편을 만나 1939년 미국 뉴욕으로 이주했다. 1948년부터 파리에서 활동하며 유명 갤러리인 살롱 데 레알리테 누벨에 작품을 전시해 작가로 인정받았다. 1954년 뉴욕에 정착했지만 89세까지 한 작품도 팔지 못했다. 흑백의 조합, 단순한 기하학 구조를 사용해 미니멀리즘을 선보였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2004년 중남미 출신 예술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뉴욕 프레데리코 세베 갤러리 전시가 분기점이 됐다. 평론가들은 기하학적 미니멀리즘을 다룬 에레라의 작품이 예술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에레라는 이 전시에서 작품을 처음 판매했다. 그의 작품은 현재 뉴욕 현대미술관(MoMA)과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 등에 전시돼 있다. 2009년 5만 달러(약 6000만 원)였던 작품 값은 2014년 16만 달러(약 1억9000만 원)로 뛰었다. 고인은 생전 인터뷰에서 “버스를 기다리면 언젠가 버스가 온다는 말처럼 결국 시간의 문제다. 난 100년 가까이 기다렸다”고 말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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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한 사람의 권력욕이 ‘모두의 불행’ 되지 않게 하려면

    장베델 보카사는 역사상 악명 높은 독재자 가운데 한 명이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그는 국명을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서 중앙아프리카제국으로 바꾸고, 스스로를 황제 보카사 1세라 칭했다. 1977년 대관식에는 정부 예산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2200만 달러(현 환율로 약 263억 원)가 투입됐다.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이들은 악어가 득실대는 연못에 빠뜨렸다. 그의 악마적 행태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영국 런던대(UCL) 국제정치학과 교수인 저자는 보카사를 비롯한 권력자들 수백 명을 연구해 어떤 사람이나 시스템이 더 쉽게 권력을 쥐고 남용하는지를 분석했다. 사이코패스 성향의 사람들이 권력을 손에 넣는 과정과 잘못된 시스템으로 인해 권력자가 악인이 되는 과정을 집중 추적했다. 악인들은 어떻게 권력을 얻었을까. 저자는 진화론에서 답을 찾는다. 선사시대에 더 많이 사냥하고, 부족 간 전쟁을 승리로 이끌려면 건장하고 잔혹한 이가 지도자가 되어야 했다. 진화는 지도자 선택의 프레임을 우리 뇌에 새겼는데, 이것이 지금까지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역대 대통령들은 당대 남성들의 평균 키보다 컸다. 여성보다 남성에게, 키 작은 남성보다 키 큰 남성에게 권력이 쏠리는 경향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보다 어떻게 보이는지에 더 집착한다. 그 결과 권력을 얻는 데 능하고 자기 중심적으로 사고하는 ‘악한 리더’에게 더 끌린다. 권력자들이 권력을 남용하는 이유도 스스로가 악인인 경우가 많아서라고 말한다. 타인의 환심을 사고 이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일수록 권력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악한 권력자를 낳는 건 개인의 성품 이상으로 부패한 시스템에 원인이 있다. 외교관 면책특권이 주어진 미국 뉴욕시에서 각국 대사들이 불법주차를 일삼은 사례가 대표적이다. 뉴욕시장이 불법주차를 반복할 경우 번호판을 취소하는 ‘삼진 아웃제’를 시행하자 외교관들은 비로소 불법주차를 멈췄다. 나쁜 국가의 시스템은 권력자의 선택을 더 이기적이고 악한 방향으로 끌고 간다는 걸 보여준다. 부패한 이의 손에 권력을 쥐어주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통계학자 에이브러햄 월드의 ‘생존자 편향 오류’를 참고하라고 말한다. 월드는 제2차 세계대전 승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프로젝트에서 전쟁 중 생존한 전투기를 보강하기보다 격추된 전투기를 분석해 이를 개선하는 전략을 짰다. 저자는 현재의 권력자에게 문제가 있다면 격추된 전투기처럼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진, 다시 말해 권력의 자리에 오르고 싶어 하지 않는 이를 지도자로 세워야 한다고 말한다. 권력을 탐하는 자가 가장 부패한 사람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조직 안에서 무작위로 표본을 추출해 청렴성 시험을 진행하거나, 감시의 초점을 하위직이 아닌 임원에 맞추는 방안도 제시한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권력을 원치 않지만 리더십이 있는 사람을 가려내는 것이 얼마나 실현 가능할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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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인공들의 대사가 정말 좋아서… “드라마 대본집 제발 팔아주세요”

    “대본집 사고 싶다. 제발 팔아주세요.” 지난달 종영한 SBS 드라마 ‘그 해 우리는’의 대본 비교영상(사진)에 지난해 12월 달린 댓글이다. 방송사는 드라마 장면 아래로 대본 자막이 흐르는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학창시절 이별한 주인공 최웅(최우식)과 국연수(김다미)가 10년 만에 재회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6화 영상에 대한 시청자 관심이 특히 높았다. 해당 영상의 조회수는 9만 회를 넘었고 ‘대본집을 내달라’는 댓글이 달렸다. SBS 관계자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대사가 좋다는 시청자 반응이 많아 실제 대본과 비교한 영상을 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대본 비교영상에 대한 높은 호응은 출판시장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12일 예약판매를 시작한 ‘그 해 우리는’ 대본집 1·2권(김영사)은 예스24와 알라딘에서 1월 셋째 주 주간 종합 베스트셀러 1, 2위를 각각 차지했다. 지난달 종영한 MBC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 대본집도 예스24와 알라딘에서 1월 넷째 주 기준 종합 베스트셀러 2, 8위에 각각 올랐다. tvN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 대본집 1·2는 지난해 10월 알라딘에서 주간 종합 베스트셀러 1, 2위를 휩쓸었다. 2020년 발매된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 대본집은 예스24 소설·시·희곡 분야 7위에 올랐다. 9일 예스24에 따르면 지난해 1월∼올 1월 대본집 판매량은 2019년 1월∼2020년 1월에 비해 3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김유리 예스24 에세이·예술 MD는 “마니아층이 탄탄한 드라마는 팬들이 대본집을 2, 3권씩 중복 구매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대본집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일부 출판사는 드라마 기획 단계부터 방송사와 대본집 출간을 협의한다. 박은경 김영사 홍보팀장은 “‘그 해 우리는’ 제작 소식을 접하고 방송사에 대본집 출간을 먼저 제안했다”고 했다. 대본집이 인기를 끄는 건 드라마를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다각적으로 감상하고자 하는 수요가 있어서다. 김상만 엘리 마케팅팀장은 “팬들이 대본과 실제 연기에서 달라진 대사는 무엇인지까지 비교해 본다”고 말했다. 박은경 팀장은 “드라마에서 생략된 서사를 궁금해하는 팬들이 많아 대본집을 ‘무삭제 작가판’으로 내고 있다”고 했다. 출판사가 대본집을 펴내면서 관련 굿즈(상품) 제작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옷소매 붉은 끝동’ 1·2를 낸 출판사 청어람은 드라마 장면을 담은 엽서집을 제작하고 있다. 박문수 청어람 실장은 “방송사가 이벤트를 통해 일반인에게 극소량 배포한 ‘캐릭터 엽서집 모음집’을 갖고 싶다는 요청이 많아 해당 엽서집 라이센스를 취득하여 대본집 한정수량 굿즈로 활용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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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 ‘그 해 우리는’ 인기에 대본집도 베스트셀러 1위

    ‘대본집 사고 싶다. 제발 팔아주세요.’ ‘(대본비교영상을) 하도 많이 봐서 대사를 다 외울 지경이에요.’ 지난달 25일 종영한 드라마 ‘그 해 우리는’(SBS)의 대본비교영상에 달린 댓글들이다. SBS는 드라마 속 장면 아래 대본이 흘러가도록 편집한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특히 학창시절 이별한 주인공 최웅(최우식)과 국연수(김다미)가 10년 만에 재회해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6화 엔딩의 대본비교영상에 쏟아진 반응은 뜨거웠다. ‘다시 만났으면 잘 지냈냐고. 힘들진 않았냐고. 나는 좀 많이 힘들었다고. 말할 수 있잖아… 어떻게 지냈어. 말해봐. 어떻게 지냈어 너’라고 말하는 최웅의 대사와, ‘우리가 헤어진 건, 다 내 오만이었어. 너 없이 살 수 있을 거라는 내 오만’이라는 연수의 내레이션이 겹쳐진 장면이었다. 해당 영상의 조회수는 9만 회를 넘었고, ‘대본집을 내 달라’는 등 380여개의 댓글이 달렸다. 대본비교영상에서의 뜨거운 반응은 그 해 우리는의 대본집 판매량에서 입증됐다. 지난달 12일 예약판매를 시작하자마다 그 해 우리는 대본집 1·2는 예스24, 알라딘 등 온라인 서점에서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올랐다. 출간 직후인 1월 셋째 주에는 예스24와 알라딘에서 주간 베스트셀러 1, 2위를 차지했다. SBS 관계자는 “그 해 우리는은 다른 드라마에 비해 대사가 좋다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많아 직접 대본과 비교할 수 있도록 영상을 올렸다. 대본비교영상에의 관심이 대본집의 인기로까지 이어진 것 같다”고 전했다. 드라마 대본집 시장이 커짐에 따라 방송사, 출판사는 드라마 팬들을 대본집으로까지 유인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출판사는 드라마의 특성을 살린 대본집 굿즈(상품) 제작에 집중한다. 그 해 우리는의 경우 고등학교 시절 최웅과 연수의 풋풋했던 연애 시절이 주된 배경인 점을 살려 두 사람의 이름이 들어간 명찰을 굿즈로 제작했다. 그 해 우리는의 출판사인 김영사 관계자는 “대본집은 드라마 팬들의 소장욕구를 자극하는 것이 중요해 커버나 굿즈를 더 예쁘게 만드는데 최근 더 심혈을 기울인다”며 “그 해 우리는의 명찰 굿즈는 전부 소진됐고, 해외에서 판권 문의를 할 때 굿즈도 같이 제작해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전했다. 출판사와 방송사에서 대본집 마케팅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는 대본집 시장이 점차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스24에 따르면 2019년~2020년 대비 2021년~2022 초 국내 TV 드라마 대본집 판매량은 46.3% 증가했다. 지난달 종영한 ‘옷소매 붉은 끝동’(MBC)도 예스24와 알라딘에서 1월 넷째주 기준 각각 베스트셀러 2, 8위에 올랐다. 예스24의 김유리 에세이·예술 MD는 “그 해 우리는 팬들의 경우 소장본 개념으로 대본집을 2~3권씩 중복 구매하는 경향도 보인다”고 설명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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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과학자의 눈, 욕망 아닌 본질을 보라

    사람을 살려야 할 의학이 그 반대로 활용됐다면? 말도 안 된다고 여겨지는 일이 2008년 이탈리아에서 벌어졌다. 외과의사 파올로 마키아리니는 유명 의학저널 ‘랜싯’에 기관지를 성공적으로 이식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후 그는 환자 8명에게 인공 기관지 이식 수술을 추가 집도했고, 그 결과 환자들의 상태가 호전됐다는 논문을 7편이나 내놓았다. 이는 모두 거짓이었다. 마키아리니가 수술한 환자 대부분이 부작용으로 사망하자, 이들을 돌봤던 의사들이 의문을 제기했다. 마키아리니를 고용하고 연구를 지원했던 카롤린스카기술대는 수술과 논문 작성에 어떤 위법행위도 없었다며 그를 비호했다. 하지만 합병증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보도되면서 대학도 조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마키아리니는 환자 상태를 조작했고, 쥐를 대상으로 한 기관지 이식 실험 데이터를 위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획기적인 발견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과학자들이 연구 결과가 거짓이었음을 시인하며 카메라 앞에서 고개 숙이는 모습을 심심찮게 본다. 영국 심리학자인 저자는 마키아리니의 사례처럼 데이터를 누락하고, 사진을 조작해 성과를 부풀리는 경우가 과학계에 팽배하다고 폭로한다. 과학계 최고 수준의 저널인 ‘네이처’ ‘사이언스’에 게재된 논문 중에서도 데이터 조작 등 연구 부정행위로 한 해에 수백 편의 논문이 철회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유명 과학자들도 조작의 유혹을 피해갈 수 없었다. 간수 역할의 피실험자가 죄수 역할의 피실험자를 학대하게 되는 결과를 도출한 필립 짐바르도의 ‘스탠퍼드 감옥 실험’은 심리학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연구로 꼽히지만 수십 년이 지나서야 민낯이 드러났다. 짐바르도가 실험에 간수 역할로 참여한 이들에게 어떻게 행동할지 상세한 지침을 준 녹취록이 공개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가 2004년 인간 배아 복제에 성공했다는 논문을 ‘사이언스’에 발표했다가 세포 사진을 조작한 사실이 발각돼 바닥으로 추락한 사건은 한국 과학계의 수치로 남아 있다. 저자는 조작을 통해 결과를 부풀리려는 욕망이 과학계의 ‘출판 편향’에 기인했다고 지적한다. ‘과학문헌은 과학 과정에서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한 철저한 기록이어야만 하는데, 과학 문헌 역시 신문처럼 새롭고 흥미로우며 명확한 주제가 있는 스토리를 편애한다’는 것이다. 저널 편집자와 논문 검토자들은 연구 결과가 얼마나 흥미로운가에 따라 논문 게재 여부를 결정한다. 이를 과학계에서는 출판 편향이라고 부른다. 그 결과 긍정적인 결과만 인정되고 무효로 나타난 결과는 서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런 현실을 바꿀 수는 없을까. 저자는 방법론이 타당할 경우 결과와 상관없이 논문을 게재해 주는 저널을 만드는 방안을 제안한다. 논문 출판의 모든 과정에 대해 누구든 접근할 수 있도록 연구에 사용된 데이터, 데이터 분석에 사용된 통계 프로그램의 코드 등을 공개하는 ‘오픈 사이언스’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식음을 전폐하고 연구만 하던 과학자가 종이뭉치를 들고 뛰쳐나와 ‘유레카!’를 외치는 것이 유의미한 발견이라는 생각이 오랜 기간 과학계에 뿌리내렸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당장은 덜 흥분되더라도 제대로 된 방법론을 거쳐 견고한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부분의 과학은 갑자기 결론적 진리로 도약하기보다는 점진적으로 누적되는 성격을 띤다. 그래서 과학은 원래 지루한 학문이었다. 그리고 과학은 결국, 다시 지루해져야 한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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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구욕이 탐욕과 재미에 홀릴때…과학은 거짓말을 한다

    사람을 살려야 할 의학이 그 반대로 활용됐다면? 말도 안 된다고 여겨지는 일이 2008년 이탈리아에서 벌어졌다. 외과의사 파올로 마키아리니는 유명 의학저널 ‘랜싯’에 기관지를 성공적으로 이식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이후 그는 환자 8명에게 인공 기관지 이식 수술을 추가 집도했고, 그 결과 환자들의 상태가 호전됐다는 논문을 7편이나 내놓았다. 이는 모두 거짓이었다. 마키아리니가 수술한 환자들 대부분이 부작용으로 사망하자, 이들을 돌봤던 의사들이 의문을 제기했다. 마키아리니를 고용하고 연구를 지원했던 카롤린스카 기술대학은 수술과 논문 작성에 어떤 위법행위도 없었다며 그를 비호했다. 하지만 합병증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보도되면서 대학도 조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마키아리니는 환자 상태를 조작했고, 쥐를 대상으로 한 기관지 이식 실험 데이터를 위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획기적인 발견으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과학자들이 연구결과가 거짓이었음을 시인하며 카메라 앞에서 고개 숙이는 모습을 심심찮게 본다. 영국 심리학자인 스튜어트 리치는 신간 ‘사이언스 픽션’(더난출판)에서 마키아리니의 사례처럼 데이터를 누락하고, 사진을 조작해 성과를 부풀리는 경우가 과학계에 팽배하다고 폭로한다. 과학계 최고 수준의 저널인 ‘네이처’, ‘사이언스’에 게재된 논문 중에서도 데이터 조작 등 연구 부정행위로 한 해에 수백여 편의 논문이 철회되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유명 과학자들도 조작의 유혹을 피해갈 수 없었다. 간수 역할의 피실험자가 죄수 역할의 피실험자를 학대하게 되는 결과를 도출한 필립 짐바르도의 ‘스탠포드 감옥실험’은 심리학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연구로 꼽히지만 수십 년이 지나서야 민낯이 드러났다. 짐바르도가 실험에 간수 역할로 참여한 이들에게 어떻게 행동할지 상세한 지침을 준 녹취록이 공개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가 2004년 인간 배아 복제에 성공했다는 논문을 ‘사이언스’에 발표했다가 세포 사진 조작이 발각돼 추락한 사건은 한국 과학계의 수치로 남아있다. 저자는 조작을 통해 결과를 부풀리려는 욕망이 과학계의 ‘출판 편향’에 기인했다고 지적한다. ‘과학문헌은 과학 과정에서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한 철저한 기록이어야만 하는데, 과학 문헌 역시 신문처럼 새롭고 흥미로우며 명확한 주제가 있는 스토리를 편애한다’는 것이다. 저널 편집자와 논문 검토자들은 연구 결과가 얼마나 흥미로운가에 따라 논문 게재 여부를 결정한다. 이를 과학계에서는 출판 편향이라 부른다. 그 결과 긍정적인 결과만 인정되고 무효로 나타난 결과는 서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런 현실을 바꿀 수는 없을까. 저자는 방법론이 타당할 경우 결과와 상관없이 논문을 게재해 주는 저널을 만드는 방안을 제안한다. 논문 출판의 모든 과정에 대해 누구든 접근할 수 있도록 연구에 사용된 데이터, 데이터 분석에 사용된 통계 프로그램의 코드 등을 공개하는 ‘오픈 사이언스’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식음을 전폐하고 연구만 하던 과학자가 종이뭉치를 들고 뛰쳐나와 ‘유레카!’를 외치는 것이 유의미한 발견이라는 생각이 오랜 기간 과학계에 뿌리내렸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당장은 덜 흥분되더라도 제대로 된 방법론을 거쳐 견고한 결과를 도출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부분의 과학은 갑자기 결론적 진리로 도약하기보다는 점진적으로 누적되는 성격을 띤다. 그래서 과학은 원래 지루한 학문이었다. 그리고 과학은 결국, 다시 지루해져야 한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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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끌해도 티끌… 내집 마련이 뭐길래

    집 샀다는 사람들은 흔히 ‘영끌했다’고 말한다. 영혼까지 끌어모으듯 최대한으로 대출을 받았다는 뜻이다. ‘내가 산 게 아니라 은행이 샀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2030 영끌족’이 수도권 아파트를 대거 사들이기 시작했다는 한 온라인 기사를 보며 ‘서영동 이야기’ 마지막 장의 주인공 아영은 생각한다. ‘끌어모으면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영혼은 대체 어떤 영혼일까. 나는 영혼마저도 실속이 없네.’ 아영처럼 영끌을 해도 티끌인 30대 초반의 시간제 강사가 있다. 반대로 부모를 잘 만나 영끌할 필요 없이 신혼 생활을 34평 자가에서 시작한 세훈도 있다. 승복은 영끌한 돈으로 부동산 사고팔기를 반복해 아파트 두 채와 건물 소유주가 된 두 남매의 아버지다. 25평 아파트에 영끌한 돈을 얹어가며 42평 아파트에 안착했지만 층간소음 갈등으로 온 가족이 고통받는 희진은 어떤가. 어딘가에서 본 듯한, 또는 나 자신과 비슷한 인물들이 서영동에 산다. 서영동 사람들이 고민하는 건 영끌로 살 수 있는 집만은 아니다. 이들은 내 집 장만을 위한 일상의 분투 속에서 몰염치함과 부끄러움을 생각한다. 끌어모으면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영혼은 대체 무엇인가를 고민한 아영처럼 말이다. 부동산 투자라는 치열한 전쟁 앞에 내 영혼은 얼마나 깨끗한가. 이들은 집에만 목을 매느라 가족에게 소홀하고, 나보다 나은 집에 사는 타인을 시기 질투했던 자신들의 부끄러운 모습을 마주한다. 대출 이자를 갚는 서영동 사람들의 팍팍한 삶은 우리의 현실과 닮아 있어 익숙하다. 익숙하지 않은 건 팍팍한 삶을 살아내느라 우리가 잊었던 가치다. 그 가치의 중심에는 가족이 있다. 남동생에게만 집을 증여하려는 아버지를 미워했던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 생업에 바빠 신경 쓰지 못한 사이 치매에 걸린 어머니에 대한 안쓰러움, 어렵게 마련한 42평 아파트에서 아랫집과의 갈등으로 괴로워하는 중학생 딸에 대한 미안함…. 내 집 마련의 분투에서 출발한 책은 집 안에서 함께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로 나아간다. 가족의 불행 앞에 너무도 쉽게 무너지는 ‘내 집’의 안락함은 집의 평수와 시세 차익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음을 깨닫게 한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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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구절벽, 함께 잘 사는 이민정책 필요”...공존 위한 제안들[히어로콘텐츠/공존]

    “한국어를 배워서 아이와 소통하려 했던 ‘그랜마 비(Granma B)’가 없었다면, 우리 아이는 미국 어린이집에 적응하지 못했을 겁니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 ‘공존: 그들과 우리가 되려면’ 시리즈가 보도되자 권석준 성균관대 공대 교수는 17일 페이스북에 해당 기사를 공유하며 미국 유학 경험을 소개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아이에게 영어를 강요하지 않고 직접 한국어를 배워 보살폈다는 얘기다. 이에 이모 씨도 미국에서의 육아 경험을 떠올리며 “아이를 돌봐주는 곳에서 ‘WATER=MOOL(물)’이란 식으로 중요한 단어를 적어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독자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포털 사이트 등에서 ‘공존’ 기사를 공유하며 해외에서 이방인으로서 겪은 어려움과 현지인의 따뜻한 도움을 소개했다. 우리가 이방인으로서 도움을 받았듯 이주민들을 돕자는 취지다. 해외 한인교포나 유학생 독자들은 현지 이민정책을 알리며 ‘공존 정책’을 제안했다.○ “대선 주자, 이민정책 마련하라”1회 ‘한 동네, 두 세계’(17일자 A1·2·3면), 2회 ‘이주민들 떠나지 못하는 섬’(18일자 A1·2·3면)에서 지적된 언어교육 문제에 공감하는 독자가 많았다. 네덜란드에 사는 한국인 장모 씨는 “네덜란드처럼 취학 전 현지어 교육을 지원하면서, 아이의 언어치료 비용까지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3회 ‘사다리 없는 이주민 아이들’(19일자 A1·2·3면)에 보도된 이주민 비자 제도에 대한 대안도 나왔다. 이민 인재를 국내에서 육성하도록 비자를 개편하자는 얘기다. 벤처캐피털 TBT의 임정욱 대표는 미국 실리콘밸리 체류 경험을 소개하며 “미국은 비자제도가 유연하다는 인상을 받았고, 이민 변호사도 많았다”며 “능력 있는 이주민을 채용하는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대선 주자들이 이민 정책을 적극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를 나온 송주영 씨는 “인구절벽은 가장 시급히 다뤄야 하는 문제인데, 양당 대선주자들의 공약에서 인구 문제 및 이민자 정책에 대한 제대로 된 긴 문장 하나 찾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원희룡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정책본부장은 2회 기사를 언급하며 “엄마 아빠가 어느 나라 사람이건, 비자가 있건 없건 아이는 학교에 가고 예방주사를 맞고 아프면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좋은 나라”라며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겠다”고 밝혔다.○ 열띤 토론 촉발‘공존’ 시리즈는 포털 사이트와 SNS에서 이주민에 대한 열띤 토론을 촉발시켰다. 1회에 알려진 ‘백운동 신축 아파트 입주민’이라고 밝힌 한 독자는 “피자집, 네일아트 사장님 등이 모두 외국인인데 다 좋은 분들이다.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했다. 반면 한 누리꾼(ohyu****)은 “불법 체류자 아이들보다 자국민 아이가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지 말고 국내 노동자 임금을 향상시켜야 한다’(k1m4****), ‘미등록 아동의 체류 자격을 인정하면 이를 악용하는 외국인들이 폭증한다’(enef****)는 댓글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공존을 위한 상호이해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동관 이민정책연구원장은 “막연한 적개심을 없앨 수 있도록 정확한 정보에 근거한 상호 이해와 소통이 필요하다”며 “다문화는 갈등의 씨앗이 아니라 발전시켜야 할 자원이라는 점을 알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인구절벽 시대, 공존 위한 이민정책 마련을”미등록 이주아동 체류자격 완화, 2025년 3월까지만 시행 ‘미봉책’외국인 아동 취학전 보육지원… 미등록 아동 방치 문제도 논의를 법무부가 20일 국내 미등록 이주아동의 체류자격을 완화했지만 여전히 한시적으로 시행되는 ‘미봉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인구절벽 시대, 이주민과의 공존을 위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민 정책의 큰 틀을 다시 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날 발표된 미등록 이주아동 체류자격 완화 방안은 2025년 3월 31일까지 한시적으로 시행된다. 이때까지 국내 거주기간을 채우지 못하면 대상이 될 수 없다. 초중고교에 재학 중이거나 고교를 졸업한 아동만 대상으로 한 점도 문제다. 한국어가 서투르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워 학교에 늦게 들어가거나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는 이주아동도 많기 때문이다. 취학 전 아동을 위한 보육 지원책이 마련되지 않은 점도 한계다. 지금은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등록 외국인도 한국 국적이 아니면 보육료를 지원받지 못한다. 보건복지부는 보육비 지원 대상을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자’로 제한하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대상을 ‘국내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영아 경기이주아동보육네트워크 간사는 “세금을 내는 등록 이주민의 영·유아 자녀에게 보육비를 지원하지 않는 건 차별”이라며 “미등록 아동은 방치해도 되는지도 논의해야 할 때”라고 했다. 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7월 외국인 영·유아에게도 보육비를 지원하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이 안은 국회에 계류됐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출생등록제 시행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등록 이주아동을 출생등록하면 신분이 증명돼 어린이집 입소나 학교 입학, 예방접종 등 복지혜택을 수월하게 받을 수 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출생등록제 도입 방침을 공식화했지만 법 제정, 시스템 마련 등을 거쳐 2024년 이후에나 시행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민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일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는 “이주민을 어떻게 차단하고 통제할 것인가가 아니라, 이주민과 어떻게 같이 잘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히어로콘텐츠팀▽팀장: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기사 취재: 신희철 김재희 남건우 기자▽사진·동영상 취재: 송은석 남건우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편집: 한우신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이트 개발: 고민경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동영상 편집: 남건우 기자 박세진 PD 안채원 CDQR코드를 스캔하면 ‘공존’을 디지털 스토리텔링으로 구현한 사이트(together_intro)로 연결됩니다. 히어로콘텐츠팀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남건우 기자 woo@donga.com}

    • 202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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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네시아계 대성씨 “해병 입대 신고합니다”[히어로콘텐츠/공존]

    해안가의 칼바람을 호루라기 소리가 꿰뚫었다. 지난해 10월 25일, 해병대 교육훈련단 앞은 입소자 가족들로 가득했다. 윤대성 씨(20)는 스마트폰을 붙들고 있었다. 영상통화 화면엔 인도네시아 친구들이 있었다. 영상통화가 끝나자 엄마 에코디르미야띠(에코·50) 씨는 아들 대성 씨를 꼭 안았다. ‘이런 날이 현실이 될 줄이야.’ 대성 씨는 한국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마치고 엄마의 나라인 인도네시아로 떠났다. 인도네시아에선 지원자들만 군대를 간다. 대성 씨에게 군대는 필수 코스가 아니었다. 대성 씨는 한국인 아버지, 인도네시아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인도네시아계 한국인.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고 인도네시아 국적을 취득하면 인도네시아에 정착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났으면 군대는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한 번 가는 군대, 멋있게 가자고 생각했죠.”(대성 씨) “다녀올게요!” 대성 씨는 교육훈련단 입구 속으로 훌쩍 사라졌다. 새빨간 바탕에 샛노란 글씨가 새겨진 간판 아래로. 간판의 문구는 ‘해병대는 이곳에서 시작된다’. 대성 씨는 속으로 외치지 않았을까. ‘진짜 한국인’은 이곳에서 시작된다고. ● 우리는 다중정체성 세대2000년대 초반 결혼이주여성, 이주노동자 증가 등으로 국내 이주민이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이제 이들이 낳은 자녀들이 성인으로 자랐다. 군대를 가고, 취업을 준비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이민자 2세(한국인으로, 부모 중 1명 이상이 귀화자이거나 외국인)는 2020년 28만 명이었다. 2040년엔 2.5배로 뛸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을 한국계, 중국계 미국인이 이끌듯 한국을 인도네시아계, 스리랑카계 한국인들이 이끄는 날이 올까. 대성 씨는 2002년 경기 광명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직장을 따라 광명시, 필리핀, 경기 안산시 등을 오갔다. 초등학교 때부터는 쭉 안산에서 자랐다. “대성이 어머니가 인도네시아분인 건 초등학교 2학년 운동회 때 알았어요. 어떤 애들은 놀랐는데요. 덤덤한 애들이 더 많았어요.” 초등학교 동창 이윤재 씨(20)가 말했다. 대성 씨가 손꼽는 ‘절친’이다. “다문화 아이라도 좋은 점이 있으면 그걸 보고 사귀어요. 대성이는 성격 좋고 분위기도 잘 띄워서 친해졌어요.” 대성 씨에게 변곡점은 중학교 3학년, 2017년에 찾아왔다.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가 부도났다. 아버지는 아내의 나라 인도네시아에서 새 기회를 찾고 싶었다. 우선 대성 씨를 2018년 인도네시아로 보냈다. “대성이가 운동만 좋아하고 공부를 안 했어요. 한국은 경쟁이 너무 치열하니까 외국어라도 배우라고 먼저 보냈죠. 근데 대성이 누나 송이가 한국에서 대학을 가겠다고 해서 저랑 남편은 한국에 남게 됐어요.”(에코 씨) 대성 씨는 홀로 인도네시아 자와틍아주 스마랑으로 갔다. 인도네시아의 대표 무역도시 스마랑. 대성 씨는 무역도시의 국제학교를 택했다. 인도네시아어와 영어를 동시에 배우기 위해서였다. 이제 ‘안산 원일중 3학년 윤대성’은 ‘서머스타고 1학년 윤대성’이 되었다. “이슬람교인 애들도 있었어요. 처음 갔을 땐 새벽 5시 반에 기도 소리가 들려 깜짝 놀라 깬 적도 많아요. 라마단(이슬람 금식성월) 기간에 같이 금식도 해봤는데 재밌었어요. 케이팝이나 드라마를 아는 친구들이 한국을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덕분에 저도 인기 많았죠.” 선생님들은 대부분 터키, 우즈베키스탄에서 왔다. 기숙사엔 인도네시아는 물론이고 중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온갖 국적의 친구들이 있었다. 대성 씨는 이렇게 3년을 보내며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소화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를 결합한 사업을 구상하는 청년이 됐다. 이른바 ‘다중정체성’ 세대다. 여러 언어와 문화에 익숙하고 다른 사람, 다른 문화를 잘 받아들이는 세대. “한국 친구들을 불러서 같이 사업할 거예요. 인도네시아에 케이팝 틀어주고 한국 연예인 사진을 걸어놓은 인기 음식점이 있거든요. 근데 사장이 중국인이에요. 한국인인 제가 떡볶이처럼 유명한 한국 음식으로 장사하면 더 잘되지 않을까요?”● 남다른 연애“화장품 원료의 성분까지 알아야 마케팅에서도 경쟁력이 생긴다고 생각했어요.” 대성 씨 누나 윤송이 씨(22)는 ‘K뷰티’ 전문가를 꿈꾼다. 피부가 나빠졌을 때 한국 화장품으로 나아진 경험 덕분이다. 지금은 한 대학 바이오화장품과에 다닌다. “우선 한국 화장품 회사에서 경험을 쌓을 거예요. 그 후에 한국 화장품 시장과 인도네시아 화장품 시장을 연결해 보고 싶어요.” 꿈을 이야기할 땐 똑 부러지지만, 연애를 할 땐 말 못 할 고민으로 끙끙 앓기도 한다. 4년 전 남자친구를 사귀기 시작했을 때가 그랬다. 송이 씨는 외모나 말투 모두 평범한 한국인. 남자친구는 송이 씨가 이주민 2세란 걸 몰랐다. “빨리 말해야 할 것 같았어요. 추억을 더 많이 쌓기 전에…. 남자친구가 싫어할 수도 있잖아요.” 우연히 고백의 기회가 왔다. “나 엄마랑 이모 결혼식에 참석하러 인도네시아에 가.” 송이 씨의 말에 남자친구가 조심스레 물었다. 엄마가 인도네시아인이냐고. “응.” 이후 4년째 사랑을 키우고 있다. 송이 씨가 고민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같은 인도네시아계 한국인 친구가 이주민 2세란 사실 때문에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친구의 남자친구가 ‘우리 가족한테 네 엄마 한국 사람이라고 하라’고 했대요.” 송이 씨의 고민은 어릴 때부터 뿌리를 키웠다. 초등학생 때 한 또래 아이는 송이 씨를 놀렸다. “너 다문화잖아.”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다문화 가정 이야기가 나올 때 물었다. “송이 학생이 다문화 가정이죠?” 반 친구들의 시선이 쏠렸다. 송이 씨는 그 선생님이 미웠다. ‘굳이 내 이름을 언급해야 하나.’ 학교에서 비슷한 이주배경 친구들은 종종 이름을 잃었다. 선생님들은 이름 대신 이렇게 부르곤 했다. “야, 인도네시아!” “야, 중국!” 상처가 쌓이며 입은 닫혔다. “상처가 없었다면 저도 당당하게 말을 했겠죠. 움츠러드니까 바로 말하지 못하고, 돌려서 말하려 하고. 제가 그런 성격이에요.” 엄마 에코 씨는 송이 씨에게 고맙다. 아픔을 딛고 잘 자라줘서. 고등학생 때 용돈을 스스로 벌던 딸이다. 알아서 진로도, 대학도 정했다. 상처를 받은 적도 있지만 송이 씨는 앞으로도 계속 한국에서 살아갈 생각이다. 친구들에겐 당연하지만 송이 씨에겐 당연하지 않은 일이다. 가족들이 인도네시아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송이 씨는 혼자서라도 한국에 남을 생각이다. “인도네시아는 오래 살아보지 않아서 고향으로 느껴지진 않아요. 저는 한국에서 사는 게 너무 좋아요.” 송이 씨와 대성 씨처럼 이주민 2세들은 이제 한국 곳곳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아픔이 있지만 희망을 얘기한다. 한국 사회는 노력한 만큼 성공할 수 있는 사회라고. 20년 뒤, 과연 70만 명의 ‘다중정체성 세대’는 우리를 어떻게 바꿀까. 세계를 어떻게 바꿀까.한국 택한 이주배경 청년들2000년대 초반 결혼이주여성, 이주노동자 증가 등으로 국내 이주민이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이제 이들이 낳은 자녀들이 성인으로 자랐다. 군대를 가고, 취업을 준비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이민자 2세(한국인으로, 부모 중 1명 이상이 귀화자이거나 외국인)는 2020년 28만 명이었다. 2040년엔 2.5배로 뛸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을 한국계, 중국계 미국인이 이끌듯 한국을 인도네시아계, 스리랑카계 한국인들이 이끄는 날이 올까. ● ‘다름’은 나의 힘이주민 2, 3세들은 어릴 때부터 자신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며 자란다. ‘다름’은 이주민 2세가 성장하는 힘이 된다. 다른 사람을 잘 이해하고 돕는다. 스리랑카계 한국인 서현식 씨(29)는 2016년 경기 안양 YMCA에 입사했다. 현재 시민사업부 팀장으로, 공동체 활성화를 위한 강연을 주관한다. 화상회의 플랫폼인 ‘줌(zoom)’ 활용법 강의는 직접 한다. 안양 YMCA의 이현주 아기스포츠단 원장은 현식 씨의 소통 능력을 칭찬했다. “유아부터 어머니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일하면서 모든 세대와 소통하는 유연함을 키웠더라고요.” 한 학부모는 현식 씨를 ‘까만콩 선생님’으로 기억한다. “먼저 그렇게 불러달라고 했어요. 자기소개도, 프로그램 설명도 선생님들 중 가장 똑 부러지게 해서 놀랐어요.” 현식 씨는 1993년 스리랑카 중남부 웰리마다시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한국인, 어머니는 스리랑카인이다. 2002년 아버지가 다니던 스리랑카의 한국 기업이 철수하며 가족은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현지 국제학교를 다니던 현식 씨는 순식간에 ‘안산시 와동초 3학년’이 됐다. 당시 현식 씨가 다니던 학교엔 이주배경 학생이 거의 없었다. 지금의 안산과는 너무도 달랐다. “우리를 외계행성에서 온 사람처럼, 아주 신기하게 쳐다봤어요. 쉬는 시간에 저를 보려고 교실 창문에 굉장히 많은 친구가 몰려들었죠.” 2002년 월드컵으로 생긴 ‘축구 붐’ 덕분에 현식 씨는 축구를 하며 친구를 사귀었다. 중학교 때 시작한 춤은 그를 ‘인사이더’로 만들었다. 현식 씨는 전문 크루에서 활동하며 지역, 학교 축제에 나가기도 했다. 현식 씨는 자신의 색다른 배경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살렸다. 고등학교 때는 경기차세대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청소년 정책, 다문화 정책을 제안했다. “이주배경 학생도 한국 사회의 일원일 뿐이고, 남들과 다를 게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인종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면 안 되잖아요.” 현식 씨는 2012년 신안산대에 입학해 전자정보통신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대학 때 다녀온 해외 봉사활동이 진로를 바꾼 계기가 됐다. 필리핀의 빈곤 지역에 사는 사람들과 6개월간 어울렸다. 본인도 선입견이 많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불쌍하니까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평등한 사람’으로 대하는 게 더 중요했어요. 돈을 많이 벌기보단 다양한 사람을 편견 없이 만나 소통하는 일을 하고 싶어졌어요.” 현식 씨의 동생 샤니 씨(26)도 편견을 씩씩하게 딛고 성장했다. 샤니 씨가 한국에 첫발을 디딘 건 일곱 살 때. 그때를 어렴풋하게 기억한다. 한국인 아버지와 할머니는 샤니 씨 손을 잡고 유치원을 찾았다. “외국인 아이는 안 돼요.” “한국인이에요. 내가 아빠고, 이분이 할머니예요.” “외국인 아이는 무조건 안 된다고 했대요. 길게 얘기도 못 했대요. ‘안 되니까 돌아가시라’고 했대요.”(샤니 씨) 결국 동네 한 어린이집만 샤니 씨를 안쓰럽게 여겨 받아줬다. “일곱 살이었는데 4~6세만 다니던 어린이집에 다녀야 했어요. 갈 곳이 없으니 어쩔 수 없었죠.” 학창 시절 유쾌하지 않은 경험도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역사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샤니 씨를 갑자기 일으켜 세웠다. “한국사를 몰라도 되는 샤니가 98점을 받았어요. 본받아야 해요.” 샤니 씨는 수업 내내 기분이 나빴다. 수업 후 선생님을 붙잡았다. “저희 아버지는 한국인이고, 전 어렸을 때부터 한국에서 살았어요. 제가 왜 한국사를 몰라도 돼요?” 샤니 씨는 더욱 단단해졌다. 고교 졸업 뒤엔 바로 취업에 뛰어들었다. 제약회사, 물류회사를 거쳐 비영리 단체에서 일했다. 저소득층 한국인, 난민, 다문화 가정 등에 기업이 후원한 물품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최근엔 경기 안양시의 한 병원에 취직했다. ‘싱글 라이프’를 즐기기 위한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해서다. 20대이지만 이미 개인연금에 가입했다. 월급의 절반은 저축하려 아낀다. “거실 하나, 방 하나 있는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며 살고 싶어요. 아파트 청약을 넣어서 독립할 생각이에요.” 남을 돕는 일은 계속하고 싶다. 스리랑카 이주민 상담을 하는 어머니처럼 신할리즈어(스리랑카 제1언어)를 더 배워 같은 일을 해볼 생각도 있다.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며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다. 혹시 도와줄 수 있냐’고 하는 이주민들을 많이 봤어요. 스리랑카어를 배워두면 남을 도울 수 있는 기회가 많을 것 같아요.”● 그래도, 한국한국 사회에서 꽃을 피우지 못한 채 떠나는 이주 청년들도 있다. 이주민 2세 부디(가명·26) 씨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 때 부모님을 따라 한국에 와 초등학교, 중학교를 모두 안산에서 다녔다. 언어도, 문화도 한국이 익숙하다. 한국에서 평생 살 생각으로 한국 이름도 지었다. 부디 씨가 고교 1학년이 됐을 때 삶에 균열이 생겼다. 부모님이 갑자기 인도네시아로 돌아가야 한다고 통보했다. 인도네시아에 계신 할아버지 지병이 악화돼 부양을 해야 했다. 미성년자였던 부디 씨는 부모님을 따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생 부디 씨에게 인도네시아는 외딴 세계였다. 인도네시아어를 부지런히 배웠지만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가 벅찼다. 한국이 늘 그리웠다. 혼란스러운 고교 생활 끝에 결심했다. ‘한국 대학으로 가자.’ 부디 씨는 2019년 서울의 4년제 대학에 입학했다. 꿈에 그리던 한국이었지만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짜리 원룸을 겨우 구했다. 대학 등록금 외에도 월세, 생활비 등으로 매달 70만 원가량이 나간다. 하지만 부디 씨는 학생비자를 받았기 때문에 규정상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할 수 없다. 미래를 생각하면 더 힘들다. 취업에 성공해야만 취업비자를 받아 한국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취업의 길은 한국인 청년에 비해 더 좁다. “한국어와 인도네시아어를 모두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그런데 임용시험은 외국인이 응시할 수 없어요. 계약직 교사도 한국인을 선호하더라고요. 안 되면 통역 일을 하려고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알아보고 있어요.” 특기를 살려 정보기술(IT) 기업에서도 일하고 싶다. 부디 씨는 초등학생 때 이미 간단한 게임을 만들었을 정도로 IT 실력이 뛰어나다. 부디 씨는 한국이 재능 있는 이주민 청년과 더불어 일할 방법을 찾아주길 고대한다. 정부와 기업이 채용의 문턱을 낮추면 다양한 끼와 자질로 기여할 준비가 돼 있다. 이주민 2세들은 이제 한국 곳곳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이들은 학교의 울타리에선 몰랐던 사회를 알아간다. 현실을 더 날것으로 접한다. 아픔이 있지만 희망을 얘기한다. 한국 사회는 노력한 만큼 성공할 수 있는 사회라고. “자립해서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노력해야 해요. 지원만 바라고 있으면 안 돼요. 이런 노력을 제도가 뒷받침해 주면 더 좋고요.”(샤니 씨) “안산 밖에서도 이주민 2세들을 지원하는 센터나 기관이 늘고, 프로그램 질도 높아지면 좋겠습니다.”(현식 씨) 이들은 말한다. 공존은 존중에서 시작된다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사회 곳곳에 자리 잡아야 한다고. 20년 뒤, 70만 명의 국내 이주민 2세들은 우리를 어떻게 바꿀까.히어로콘텐츠팀▽팀장: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기사 취재: 신희철 김재희 남건우 기자▽사진·동영상 취재: 송은석 남건우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 ▽편집: 한우신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이트 개발: 고민경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동영상 편집: 남건우 기자 박세진 PD 안채원 CDQR코드를 스캔하면 ‘공존’을 디지털 스토리텔링으로 구현한 사이트()로 연결됩니다.히어로콘텐츠팀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남건우 기자 woo@donga.com}

    • 2022-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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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사나이’ 되려 해병대 지원…인니서 돌아왔어요”[히어로콘텐츠/공존]

    해병대에 입대하고, 취업 준비를 하고, 남다른 연애와 결혼에 고민한다.성인이 된 한국 이주민 2세, ‘다중정체성 세대’가 공존으로 향한다동아일보 디오리지널 페이지()를 방문해 보세요. 다양한 사진과 영상, 인터랙티브 효과가 결합된 새로운 형식의 기사로 공존 시리즈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인도네시아에서 대한민국 해병대로2021년 10월 25일. 해안가의 칼바람을 호루라기 소리가 꿰뚫었다. 해병대 교육훈련단 앞은 입소하는 이들과 가족들로 꽉 찼다. 아들과 부모들은 마스크를 쓴 채 서로 눈을 떼지 못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윤대성 씨(20)는 그 순간까지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인스타그램 라이브 화면 건너엔 인도네시아의 풍경과 친구들이 있었다.드디어 인도네시아 친구들과의 이별 인사가 끝났다. 그제야 대성 씨 어머니 에코디르미야띠(에코) 씨(50)가 아들을 꼭 끌어안았다. ‘이런 날이 현실이 될 줄이야.’에코 씨가 그리지 못한 오늘이었다. 대성 씨는 몇 년 전 인도네시아로 떠났다. 인도네시아에선 지원자들만 군대를 간다. 떠났던 아들은 해병대를 가겠다며 다시 한국으로 왔다.“대성이가 고등학교 때 인도네시아로 간 뒤엔 계속 거기서 살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군대는 가야 한다’ ‘나이 들어서 가면 힘드니 대학 전에 해병대를 가겠다’는 말을 하는 거예요….”대성 씨에겐 군대는 필수 코스가 아니었다. 대성 씨는 한국인 아버지, 인도네시아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인도네시아계 한국인이다.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면 인도네시아에 정착할 수 있었다. 그는 왜 굳이 해병대를 택했을까.“대한민국에서 태어났으면 군대는 가야한다고 생각했어요. 한 번 가는 군대, 멋있게 가자고 생각했죠.” (대성 씨)“대성이는 진짜 사나이,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되고 싶어 했어요.” (에코 씨)“대성이는 고등학교 때부터 군대 간다고 했어요. 항상 남자로서 인정받고 싶어했죠.” (누나 송이 씨)대한민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진짜 사나이가 되려고. 대성 씨가 해병대를 가는 이유다. 인도네시아에서 바삐 살면서도 잊지 않았다. ‘난 한국인이다. 군대에 가야 한다.’“다녀올게요!”대성 씨는 교육훈련단 입구 속으로 훌쩍 사라졌다. 새빨간 바탕에 샛노란 글씨가 새겨진 간판 아래로. 간판의 문구는 ‘해병대는 이곳에서 시작된다’. 대성 씨는 속으로 외치지 않았을까. ‘진짜 한국인’은 이곳에서 시작된다고.내 고향은 안산, 그리고 스마랑대성 씨는 2002년 경기 광명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직장을 따라 광명시, 필리핀, 안산시 등을 오갔다. 그러다가 초등학교 때부터는 쭉 안산시에서 있었다. 안산이 그의 첫 고향이다.“대성이 어머니가 인도네시아 분인 건 초등학교 2학년 운동회 때 알았어요. 어떤 애들은 놀라서 대성이한테 어머니가 외국인이었냐고 물었죠. 하지만 덤덤한 애들이 더 많았어요.”초등학교 동창 이윤재 씨는 대성 씨가 손꼽는 ‘절친’이다. 안산 친구들은 대성 씨가 인도네시아에 있을 때도 수시로 연락했다. “어릴 때부터 ‘다문화 아이’라고 일부러 멀리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어요. 좋은 점이 있으면 그걸 보고 사귀죠. 대성이도 그래서 친해졌어요.”대성 씨에게 변곡점은 중학교 3학년, 2017년에 찾아왔다.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가 부도났다. 아버지는 아내의 나라 인도네시아에서 새 기회를 찾고 싶었다. 우선 대성 씨를 2018년 인도네시아로 보냈다.“대성이가 운동만 좋아하고 공부를 안 했어요. 한국은 경쟁이 너무 치열하니까 외국어라도 배우라고 먼저 보냈죠. 근데 대성이 누나 송이가 한국에서 대학을 가겠다고 해서 저랑 남편은 한국에 남게 됐어요.” (에코 씨)대성 씨는 홀로 인도네시아 자와틍아주 스마랑으로 왔다. 인도네시아의 대표 무역도시다. 대성 씨는 무역도시의 국제학교를 택했다. 인도네시아어와 영어를 동시에 배우기 위해서였다. 이제 ‘안산 원일중 3학년 윤대성’은 ‘서머스타고 1학년 윤대성’이 되었다.“이슬람교인 애들도 있었어요. 처음 갔을 땐 새벽 5시 반에 기도 소리가 들려 깜짝 놀라 깬 적도 많아요. 라마단(이슬람 금식성월) 기간에 같이 금식도 해봤는데 재밌었어요. K팝이나 드라마를 아는 친구들이 한국을 엄청 좋아하더라고요. 덕분에 저도 인기 많았죠.”서머스타고 선생님들은 대부분 터키, 우즈베키스탄에서 왔다. 기숙사엔 인도네시아는 물론이고 중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온갖 국적의 친구들이 있었다. 대성 씨는 이렇게 3년을 보내며 인도네시아어와 영어에 능숙해졌다. 다양한 문화를 배웠다.“원래 인도네시아 말은 거의 못해서 맨 땅에 헤딩했어요. 매일 애들이랑 인도네시아어랑 영어로 말하니까 빨리 늘더라고요.”대성 씨는 한국어와 인도네시아어, 영어에 능통한 인재로 돌아왔다. 이른바 ‘다중정체성’ 세대다. 여러 언어와 문화에 익숙하다. 다른 사람, 다른 문화를 잘 받아들이는 세대다.다중정체성은 꿈을 위한 ‘스펙’이다.“돈을 모으면 한국 친구들을 불러서 같이 사업할 거예요. 인도네시아에 K팝 틀어주고 한국 연예인 사진을 걸어놓은 인기 음식점이 있거든요. 근데 사장이 중국인이에요. 한국인인 제가 떡볶이나 불닭 볶음면처럼 유튜브에서 유명한 한국 음식으로 장사하면 더 잘 되지 않을까요?”‘다중정체성’ 세대한국다문화교육연구학회에 따르면 다중정체성은 한 사람이 두 가지 이상의 인종과 문화가 만들어낸 여러 요소들을 수용하면서 형성된 정체성이다.2000년대 초반, 결혼이주여성, 이주노동자 증가 등으로 국내 이주민이 급격히 늘기 시작했다. 이제 이들이 낳은 자녀들이 성인으로 훌쩍 자랐다. ‘이주민 2세’가 학교 울타리를 넘어 사회로 나온다.이민자 2세(부모 중 1명 이상이 귀화자이거나 외국인)는 2020년 28만 명이었다. 2040년엔 2.5배로 뛴다. 미국을 한국계, 중국계 미국인이 이끌 듯, 한국을 인도네시아계, 스리랑카계 한국인들이 이끄는 날이 올까.독백과 고백 사이“화장품 원료의 성분과 제조과정을 알아야 기획이나 마케팅에서도 경쟁력이 생긴다고 생각했어요. 대기업에 당연히 가고 싶지만 중소기업부터 취업해서 올라가야 할 것 같아요.”대성 씨 누나 윤송이 씨(22)는 인도네시아에 한국 화장품을 알리는 ‘K뷰티’ 전문가를 꿈꾼다. 피부가 나빠졌을 때 한국 화장품으로 치료하며 K뷰티의 꿈을 키웠다. 그래서 한 대학 바이오화장품과에 다닌다.“우선 한국 화장품 회사에서 경험을 쌓을 거예요. 그 후에 한국 화장품 시장과 인도네시아 화장품 시장을 연결하는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송이 씨의 또 다른 꿈은 한국에서 계속 살기. 친구들에겐 당연하지만 송이 씨에겐 당연하지 않은 일이다. 가족들이 어머니의 고향 인도네시아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 홀로서기가 힘들지라도 송이 씨는 혼자라도 남을 생각이다.“인도네시아는 오래 살아보지 않아서 고향이라고 느껴지진 않아요. 제가 한국인이라는 게 자랑스러워요. 한국에서 안 태어났으면 슬펐을 정도로 한국에서 사는 게 너무 좋아요.”꿈을 이야기할 땐 똑 부러진다. 하지만 연애할 땐 말 못할 고민으로 끙끙 앓기도 한다. 4년 전 남자친구를 사귀기 시작했을 때가 그랬다. 송이 씨는 외모나 말투 모두 평범한 한국인. 남자친구는 송이 씨가 이주민 2세란 걸 몰랐다. ‘우리 엄마, 인도네시아 사람이야.’ 이 말은 계속 독백으로만 머물렀다.“빨리 말해야 할 것 같았어요. 추억을 더 많이 쌓기 전에…. 남자친구가 싫어할 수도 있잖아요.”우연히 고백의 기회가 왔다. “나 엄마랑 이모 결혼식에 참석하러 인도네시아에 가.” 송이 씨의 말에 남자친구가 조심스레 물었다. 엄마가 인도네시아인이냐고. 송이 씨는 맞다고 했다. 그렇게 송이 씨는 4년 간 사랑을 키우고 있다.송이 씨가 고민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같은 인도네시아계 한국인 친구가 이주민 2세란 사실 때문에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3년이나 사귄 사이었는데도 그렇게 남이 됐다. “남자친구가 자기 가족한테 ‘네 엄마 한국 사람이라고 하라’고 강요했대요.” 그래서 더욱 송이 씨는 고백하기가 쉽지 않았다. 독백과 고백 사이를 수없이 오갔다.송이 씨의 고민은 어릴 때부터 뿌리를 키웠다. 학교 반 친구들에게 당부할 때도 있었다. “우리 엄마 외국인인 거 비밀로 해줘.”송이 씨는 자라며 자꾸 그렇게 비밀이 생겼다. 아픈 경험이 알알이 마음에 박혔다. 선생님은 수업 시간에 다문화 가정 이야기가 나올 때 물었다. “송이 학생이 다문화 가정이죠?” 반 친구들의 시선이 송이 씨에게 쏠렸다. 송이 씨는 그 선생님이 너무 미웠다. ‘그냥 넘어가면 좋겠는데 굳이 내 이름을 언급해야 하나.’ ‘다문화라고 각인시켜야 하나.’학교에서 비슷한 이주배경 친구들은 종종 이름을 잃었다. 선생님들은 이름 대신 이렇게 부르곤 했다. “야, 인도네시아!” “야, 중국!”상처가 쌓이며 입은 닫혔다. “상처가 없었다면 저도 당당하게 말을 했겠죠. 움츠러드니까 바로 말하지 못하고, 돌려서 말하려 하고. 제가 그런 성격이에요.”엄마 에코 씨는 송이 씨에게 고맙다. 아픔을 딛고 잘 자라줘서. 고등학생 때 용돈을 스스로 벌던 딸이다. 알아서 진로도, 대학도 정했다.딸에게 비밀인 엄마, 피부색도 언어도 다른 학부모. 쉽지 않은 길이었다. 냉대의 시선이 많았다. 한국인 남편과 사랑에 빠져 합법적으로 한국에 왔을 뿐인데 말이다. “맞벌이를 하면서도 지금까지 송이의 초, 중, 고등학교 담임선생님을 모두 기억할 정도로 학교를 자주 찾아갔어요. 친구들을 수시로 집으로 불러 맛있는 걸 해줬어요.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학교에 찾아가 선생님 말이 이해가 안 되면 남편에게 바로 전화해 선생님에게 바꿔줬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한 선생님은 ‘인도네시아 음식을 싸 와 달라’고 했다. 에코 씨는 부지런히 볶음면을 만들어 송이 씨를 통해 보냈다. 송이 씨에겐 유쾌하지 않은 기억이다.아빠 형관 씨(58)는 아내를 더 아끼고 존중하려 했다. 그게 최고의 교육이라고 여겼다. 아이들이 한글을 배우기 시작할 땐 엄마 이름을 아빠 이름보다 먼저 외우게 했다. ‘엄마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집 사람이 애들을 정감 있게 잘 키워줘서 항상 고마워요.”다름은 나의 힘‘다름’을 받아들이는 경험은 이주민 2세가 성장하는 힘이 된다. 다른 사람, 다른 사회를 잘 이해한다. 공감한다. 그리고 돕는다.‘2016년 신안산대 전자정보통신학과 졸업, 2016년 안양 YMCA 입사. 현 시민사업부 팀장.’ 스리랑카계 한국인 서현식 씨(29)의 스펙이다. 안양시민에게 기후, 환경, 생태 관련 강연과 소모임을 마련해준다. 줌(ZOOM) 활용법, 사진 동영상 편집 강의는 직접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거리두기 시대, 사람 사이 거리를 좁히는 기술을 가르친다. 그의 지향은 ‘마을 공동체 회복’. 시민들이 공동체 가치에 주목하고 그 가치를 지키는 삶을 꿈꾼다. 지금 당장의 목표는 ‘내적 성장’이다.“우선 30대 중반까지는 경험으로 내적 성장을 하고 싶어요. 어차피 80, 90대까지 살 텐데 내적으로 성장한다면 30대 중반 이후부턴 알아서 필요한 돈을 벌지 않을까요. 지금 당장은 ‘집 사야 한다’ ‘돈 벌어야 한다’는 생각은 없어요.”현식 씨는 안양 YMCA의 핵심 인재다. 관리자급 중에선 가장 젊다. 안양 YMCA의 이현주 아기스포츠단 원장은 현식 씨의 소통 능력을 칭찬했다. “유아부터 어머니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일하면서 모든 세대와 소통하는 유연함을 키웠더라고요.”현식 씨가 가르치던 한 학생의 학부모는 현식 씨를 ‘까만콩 선생님’으로 기억한다. “먼저 그렇게 불러달라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자기소개도, 프로그램 설명도 선생님들 중 가장 똑 부러지게 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한국인 아버지와 스리랑카인 어머니는 현식 씨를 1993년 스리랑카 중남부 지역 웰리마다(WELIMADA) 시의 한 산간 마을에서 낳았다. 2002년 아버지가 다니던 스리랑카의 한국 기업이 철수하며 가족은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현식 씨 나이 9세 때였다. 현지 국제학교를 다니던 현식 씨는 순식간에 ‘안산시 와동초등학교 3학년’이 됐다. 당시 현식 씨가 다니던 학교엔 이주배경 학생이 거의 없었다. 지금의 안산과는 너무도 달랐다.“우리가 외계행성에서 온 사람처럼, 아주 신기하게 쳐다봤어요. 쉬는 시간에 교실 창문과 문에 저를 보려고 굉장히 많은 친구가 몰려들었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어요. 저도 그런 상황이 신기했죠.”2002년 월드컵 이후 분 ‘축구 붐’ 덕분에 현식 씨는 몸으로 부딪히며 친구를 사귀었다. 중학교부터 시작한 춤은 그를 ‘인사이더’로 만들었다. 현식 씨는 전문 크루로 활동하며 지역, 학교 축제에 나가기도 했다.현식 씨는 자신의 배경을 오히려 적극적으로 살렸다. 고등학교 때는 경기차세대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청소년 정책, 다문화 정책을 제안했다. “이주배경 학생도 한국 사회의 일원일 뿐이고, 남들과 다를 게 없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인종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면 안 되잖아요.”현식 씨는 2012년 신안산대에 입학해 전자정보통신학을 전공했다. 정보기술(IT)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IT 기업에 취직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대학 때 참여한 해외 봉사활동이 진로를 바꾼 계기가 됐다. 필리핀의 빈곤 지역에서 6개월간 봉사하며 어려운 사람들과 어울렸다. 대화하며 그들의 상처에 다가갔다. 아픔을 공감하게 됐다. “돈을 많이 벌기 보단 다양한 사람을 편견 없이 만나 소통하는 일을 하고 싶어졌어요.”현식 씨가 한국 사회를 돕는 봉사자로 성장한 건 어머니 서아이라 씨(50) 영향도 있었다. 서 씨는 안산 외국인주민상담지원센터에서 스리랑카 이주민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서 씨는 이주민들을 돕고 있지만, 이주민들이나 아이들에게 늘 얘기한다. 남들이 우릴 도와주길 바라지 말라고. 스스로 열심히 해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늘 ‘해봐’ ‘안 해보고 포기하지마’라고 말해요. 현식이가 힘들었을텐데 노력을 많이 했죠.”현식 씨의 동생 샤니 씨(25)도 어릴 적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 있다. 샤니 씨가 한국에 첫 발을 디딘 건 일곱 살 때. 그 때를 어렴풋하게 기억한다. 한국인 아버지와 할머니는 샤니 씨 손을 잡고 유치원을 찾았다. “외국인 아이는 안 돼요.” “한국인이에요. 내가 아빠고, 이 분이 할머니에요.”“외국인 아이는 무조건 안 된다고 했대요. 길게 얘기도 못했대요. ‘안 되니까 돌아가시라’고 했대요.”(샤니 씨)결국 동네 한 어린이집만 샤니 씨를 안쓰럽게 여겨 받아줬다. “일곱 살이었는데 4~6세만 다니던 어린이집에 다녀야 했어요. 갈 곳이 없으니 어쩔 수 없었죠. 아직도 이주 아동을 거부하는 어린이집들이 많다니 신기하네요.”한국에서의 출발부터 장애물이 있었지만 샤니 씨는 상처만 받고 있지 않았다. 당당하게 맞섰다.고등학교 2학년 때 역사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샤니 씨를 갑자기 일으켜 세웠다. “한국사를 몰라도 되는 샤니가 98점을 받았어요. 본받아야 해요.” 샤니 씨는 당황했다. 수업 내내 기분이 나빴다.수업 종료 종이 울리자마자 교실을 나가는 선생님을 붙잡았다. “저희 아버지는 한국인이고 저 어렸을 때부터 한국 살았어요. 제가 왜 한국사 몰라도 돼요?”샤니 씨는 고교 졸업 후 바로 취업했다. 제약회사, 물류회사를 거쳐 비영리 단체에서 일했다. 저소득층 한국인, 난민, 다문화 가정 등에 기업이 후원한 물품을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주배경 청소년의 ‘꿈 찾기’를 돕는 강연을 열기도 했다.최근엔 경기 안양시의 한 병원에 취직했다. ‘싱글 라이프’를 즐기기 위한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해서다. 독립 준비도 시작했다. 20대이지만 이미 개인연금에 가입했다. 월급의 절반은 저축하려 아낀다. 수익이 안정적인 종목 중심으로 주식 투자도 한다. “거실 하나, 방 하나 있는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며 살고 싶어요. 지금은 부모님이랑 살지만 아파트 청약을 넣어서 독립할 생각이에요.”그래도 앞으로 남을 돕는 일은 계속 하고 싶다. 스리랑카 이주민 대상 통역과 상담을 하는 어머니처럼 싱할라어(스리랑카 제 1언어)를 더 배워 같은 일을 해볼 생각도 있다.“비영리 단체에서 일하며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다. 혹시 도와줄 수 있냐’고 하는 이주민들을 많이 봤어요. 저절로 마음이 움직이더라고요. 스리랑카 말은 내 정체성을 찾기 위해서라기보단… 엄마 보니까 통역 요청이 너무 많아 거절할 때가 있을 정도더라고요. 배워두면 전망이 좋을 거 같아요.”샤니 씨의 이름은 ‘아름답다’는 싱할라어 ‘프샤니’에서 따왔다. 외가에서 지어준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 “덕분에 ‘샤니빵’이란 별명도 있지만 그래도 전 제 이름이 좋아요.”그래도, 한국한국 사회에서 꽃을 피우지 못한 채 떠나는 이주 청년들도 있다. 이주민 2세 부디 씨(가명·26)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 때 부모님을 따라 한국에 와 초등학교, 중학교를 안산에서 모두 다녔다. 언어도, 문화도 한국이 익숙하다. 한국에서 평생 살 생각으로 한국 이름도 지었다. 부디 씨가 고교 1학년이 됐을 때 삶에 갑자기 균열이 생겼다. 부모님이 갑자기 인도네시아로 돌아가야 한다고 통보했다. 인도네시아에 계신 할아버지 지병이 악화돼 부양을 해야 했다. 미성년자였던 부디 씨는 부모님을 따라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등학생 부디 씨에게 인도네시아는 외딴 세계였다. 인도네시아어를 부지런히 배웠지만 학교 수업을 따라가기가 벅찼다. 한국이 늘 그리웠다.혼란스런 고교 생활 끝에 결심했다. ‘한국 대학에 돌아가자.’ 부디 씨는 2019년 서울의 4년제 대학에 입학했다. 꿈에 그리던 한국이었지만 생활은 녹록치 않았다. 보증금 3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짜리 원룸을 겨우 구했다. 대학등록금 외에도 월세, 생활비 등으로 매달 70만 원가량이 나간다. 하지만 부디 씨는 학생비자를 받았기 때문에 규정상 아르바이트를 구할 수 없다. 미래를 생각하면 더 힘들다. 취업에 성공해야만 취업비자를 받아 한국에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취업의 길은 한국인 청년에 비해 더 비좁다. “한국어와 인도네시아어를 모두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그런데 임용고시는 외국인이 응시할 수 없어요. 계약직 교사도 한국인을 선호하더라고요. 안 되면 통역 일을 하려고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을 알아보고 있어요.” 특기를 살려 정보기술(IT) 기업에서도 일하고 싶다. 부디 씨는 초등학생 때 이미 간단한 게임을 만들었을 정도로 IT 실력이 뛰어나다. 부디 씨는 한국이 재능 있는 이주민 청년과 더불어 일할 방법을 찾아주길 고대한다. 정부와 기업이 채용의 문턱을 낮추면 다양한 끼와 자질로 기여할 준비가 돼 있다. 이주민 2세들은 이제 한국 곳곳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이들은 학교의 울타리에선 몰랐던 사회를 알아간다. 현실을 더 날 것으로 접한다. 아픔이 있지만 희망을 얘기한다. 한국 사회는 노력한 만큼 성공할 수 있는 사회라고. “자립해서 살아갈 수 있을 만큼 노력해야 해요. 지원만 바라고 있으면 안 돼요. 이런 노력을 제도가 뒷받침 해주면 더 좋구요.”(샤니 씨)“안산 밖에서도 이주민 2세들을 지원하는 센터나 기관이 늘고, 프로그램 질도 높아지면 좋겠습니다.” (현식 씨) 이들은 말한다. 공존은 존중에서 시작된다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가 사회 곳곳에 자리 잡아야 한다고. 20년 뒤, 70만 명의 국내 이주민 2세들은 우리를 어떻게 바꿀까.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지난해부터 지속적으로 히어로콘텐츠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번 히어로콘텐츠팀의 ‘동행: 그렇게 같이 살기로 했다’는 동아일보가 지켜온 저널리즘의 가치와, 경계를 허무는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지향합니다. 기존에 경험할 수 없었던 디지털 플랫폼 특화 보도는 히어로콘텐츠 전용 사이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기사 취재 : 이새샘 신희철 김재희 남건우 기자▽사진·동영상 취재 : 송은석 남건우 기자▽동영상 편집 : 남건우 기자 박세진 PD 안채원 CD▽그래픽 : 김충민 기자▽프로젝트 기획 : 위은지 기자▽사이트 제작 : 임상아 고민경 뉴스룸 디벨로퍼히어로콘텐츠팀신희철 기자 hcshin@donga.com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남건우 기자 woo@donga.com}

    • 2022-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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