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희

김재희 기자

동아일보 DX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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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취재하는 방송·영화 담당 기자입니다. 재미를 주는 콘텐츠를 더 재밌는 기사 안에 담겠습니다.

jetti@donga.com

취재분야

2024-03-28~2024-04-27
문화 일반55%
인물/CEO7%
산업3%
검찰-법원판결3%
패션3%
음악3%
사회일반3%
인사일반3%
기타20%
  • “유리천장 겪었던 그날, 첫 장 쓰기 시작…여성과학자들 공감 얻어”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코다’와, 제작비 1000억 원을 들인 드라마 ‘파친코’로 2연타를 친 애플TV플러스의 기대작 중 하나는 곧 촬영에 들어가는 드라마 ‘레슨 인 케미스트리’(다산책방)다. 여성 과학자가 전무하던 1960년대 화학자인 엘리자베스 조트가 편견을 이기고 요리 프로그램 진행자로 성공을 거두는 과정이 그려진다. 당시 주부의 식사 준비는 허드렛일 취급을 받았지만 요리를 진지한 화학실험으로 대하는 조트의 모습에 전국 여성들이 열광한다.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자이자 ‘캡틴 마블’ 역으로 유명한 배우 브리 라슨이 원작 소설을 보고 주연을 자처했다. 소설은 2020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원고가 공개된 직후 22개국에 판권이 수출됐다. 국내에선 9일 출간됐다. 레슨 인 케미스트리는 놀랍게도 저자 보니 가머스(65)의 데뷔작이다. 평생 카피라이터로 일하다 뒤늦게 유년시절 꿈인 소설가가 된 그를 지난달 17일 화상으로 만났다. 가머스는 “책의 첫 장을 썼던 5년 전 그날이 아직도 기억난다”고 입을 열었다. 당시 과학·기술 분야 카피라이터로 일하던 그는 남성이 대부분이었던 조직에서 성차별을 겪었다고 털어놨다. “회사에서 발표를 했는데 아무도 반응이 없다가 똑같은 아이디어를 남자 상사가 발표하니 다들 좋다고 하더군요. 당시 미팅룸엔 저 혼자 여자였어요. 그런 식으로 제가 한 일이 다른 남성의 공으로 돌아간 적이 많았어요. 그날 너무 화가 난 상태로 집에 와 책상에 앉았는데 엘리자베스 조트가 저에게 말을 걸더군요. 바로 노트북을 열고 첫 장을 쓰기 시작했어요.” 조트는 명석한 화학자의 자질을 갖췄지만 그의 시도는 번번이 좌절됐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박사과정에서 담당 교수는 조트의 실력보다 그의 아름다운 외모에 더 관심이 컸고, 자신의 일방적 구애를 거절한 조트에게 누명을 씌워 박사과정에서 조트를 쫓아낸다. 조트는 어렵사리 헤이스팅스 연구소에 들어가지만 남성 과학자들은 그의 성과를 가로채고, 여성 직원들은 “얼굴로 여기까지 왔다”며 그의 실력을 폄하한다. “책이 발간된 뒤 수백 명의 여성 과학자들로부터 메시지를 받았어요. 그들은 책에 묘사된 1960년대 실험실 풍경과 지금 그들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하더군요. 승진이 어렵고, 논문의 아이디어를 도난당하는 상황이 많다고요. 과학계의 유리천장은 여전히 존재해요.” 5년 간 책을 쓰면서 1960년대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를 가늠하는데 참고한 자료는 페미니즘의 고전으로 불리는 1963년작 ‘여성성의 신화’(갈라파고스). 여성들이 사회로부터 아이를 기르고 남편을 내조하는 가정주부로서의 역할만 강요받는 당대 시대상을 비판한 책이다. “저의 어머니 세대의 시절을 생생하게 묘사한 책이었어요. 당시 여자는 수표에 서명을 하려면 남편의 공동서명이 필요했고, 자신의 이름으로 된 집을 소유할 수도 없었죠. 여자들이 가질 수 있는 직업은 사서, 간호사, 교사 뿐이었어요. 1960년대에 비해 상황은 나아졌지만 충분치 않아요. 유년시절 학교에서 남학생과 여학생에 기대되는 역할이 달랐고, 지금도 직장에서 남성과 같은 일을 해도 보수를 덜 받거나, 공을 빼앗기는 경험을 종종 하게 되죠.” 책이 성공을 거둔 만큼 그가 드라마에 거는 기대도 크다. 드라마 제작을 위해 꾸려진 팀 구성원의 면면도 화려하다. ‘에린 브로코비치’ 각본가로 유명한 수재나 그랜트가 드라마 각본을 맡는다. 주연 조트 역을 맡은 라슨은 총괄 프로듀서로도 참여한다. 그는 “라슨의 소속사에서 책을 읽어볼 독점적 권한(exclusive read)을 달라고 먼저 요청했고, 원고를 읽은 라슨이 ‘엘리자베스 조트를 스크린에 그대로 살려내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며 “라슨은 페미니스트이자 훌륭한 배우이기 때문에 조트를 훌륭하게 연기해낼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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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친구이자 맞수였던… 경제학의 두 이정표[책의 향기]

    사상에선 적, 사적으로는 친구. 20세기 위대한 경제학자로 불리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새뮤얼슨(1915∼2009)과 밀턴 프리드먼(1912∼2006)의 관계는 이렇게 요약된다. 두 사람은 1965년부터 18년간 미국 주간지 뉴스위크 칼럼을 통해 인플레이션의 원인과 해결책, 정부의 시장 개입 등의 쟁점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1932년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과 학부생과 대학원생으로 만나 둘 다 각각 94세에 숨을 거둘 때까지 평생 깊은 우정을 나눈 동료이기도 했다. 15일 출간된 책은 ‘시장의 자유’를 둘러싸고 벌어진 세기의 대결과, 그 뒤에 가려졌던 두 사람의 동료애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영국 언론인인 저자는 전작 ‘케인스 하이에크’(부키)에서 20세기 전반의 경제학계 라이벌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격돌을 다뤘다. 새뮤얼슨과 프리드먼의 대결 중심에는 인플레이션이 있었다. 1960년대 당시 세계 물가상승률이 치솟으면서 미국이 하이퍼인플레이션에 빠진 데 따른 것. 새뮤얼슨을 비롯한 케인스주의자들은 경제가 성장하면서 수요가 증가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고 봤다. 그러나 당시 미국 경제는 경기침체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발생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양상을 띠고 있었다. 새뮤얼슨은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당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이 케인스주의의 관에 대못을 박았다”고 말했다. 반면 프리드먼은 승승장구했다. 통화와 인플레이션이 직접 연관돼 있다고 보는 통화주의자인 그는 통화량이 경제성장 속도보다 빨리 늘어난 게 인플레이션의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중앙은행이 화폐 공급량을 통해 경기를 조절해야 한다는 프리드먼의 해결책은 효과를 냈다. 그는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 현상이다”라고 단언했다. 정부의 시장 개입을 둘러싼 두 사람의 논쟁도 생생하게 펼쳐진다. 새뮤얼슨은 정부가 시민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강력한 재정정책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프리드먼은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자유 시장의 힘을 믿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는 일은 비록 의도가 좋더라도 자유 시장을 방해해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것. 1930년대 대공황과 1960년대 하이퍼인플레이션 이후 글로벌 경제위기는 두 차례 더 찾아왔다. 2008년 금융위기와, 2020년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제위기다. 저자는 이후 두 차례의 경제위기를 해결하는 과정은 케인스와 새뮤얼슨의 손을 들어줬다고 평가한다. 2008년 발생한 금융위기를 진화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수조 달러의 지출을 통해 직접 경기를 부양하는 케인스식 정책을 택했다. 코로나19로 대공황 이래 경제성장률이 최저 수준으로 곤두박질하자 미국 영국 등 각국 정부는 록다운(봉쇄)을 선언하고 시민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하며 큰 정부를 자처했다. 저자는 각국의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위기 해결 방식에 대해 ‘시장에서 정부 입김을 지우고자 했던 프리드먼의 바람을 완전히 무너뜨렸다’고 평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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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징대학살-문화대혁명 폭력의 역사속 인간

    선과 악. 소설가 정찬(69·왼쪽 사진)은 둘의 분리를 경계한다. 악 속에 선이 있고 선 속에 악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3일 출간된 그의 열세 번째 장편소설 ‘발 없는 새’(창비·오른쪽 사진)에도 그 주제의식이 담겼다. 중국 전통악기 ‘얼후’ 연주가이자 역사학자인 주인공 워이커씽에게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피가 함께 흐른다. 워이커씽의 어머니는 난징(南京)대학살 당시 일본군에게 성폭행 당해 워이커씽을 낳았다. ‘어머니가 강간당하는 꿈을 간헐적으로 꿨다. 그 광경을 꿈의 어디선가 보고 있던 나는 강간하는 자가 아버지임을 알고 있었다’고 워이커씽은 고백한다. 7일 전화로 만난 정 작가는 “워이커씽에게 가해자와 피해자의 영혼이 모두 담긴 것처럼 우리 모두 가해자임과 동시에 피해자가 될 수 있다.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대화하려는 태도가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허구의 인물인 워이커씽을 중심으로 소설에는 홍콩 영화배우 장궈룽(張國榮), 베스트셀러 논픽션 ‘난징의 강간’을 쓴 중국계 미국인 역사가 아이리스 장, 중국 문화대혁명을 배경으로 한 영화 ‘패왕별희’의 감독 천카이거 등 실존 인물들이 등장한다. 워이커씽은 장궈룽이 ‘패왕별희’의 데이 역은 삶의 고통이 너무 큰 캐릭터여서 이입하기 어려워하자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영감을 불어넣어 준다. 아이리스 장과는 난징대학살의 진상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활동한다. 실존 인물과 허구 인물을 통해 난징대학살, 일본군 성노예제, 문화대혁명 등 20세기 전반에 걸친 폭력의 역사를 짚는다. 그가 소설 집필 중 가장 많이 본 책은 천카이거 감독의 논픽션 ‘나의 홍위병 시절’(1991년). 홍위병은 마오쩌둥을 지지하며 문화대혁명에 나선 학생들로, 천카이거는 중학교 때 홍위병이 돼 국민당 활동을 한 자신의 아버지를 비판했다. 정 작가는 “천카이거를 통해 역사적 상황으로 인한 소년의 번민, 고통을 생생히 느꼈다. 정치와 권력이라는 외부 상황 자체보다 그 상황에 던져진 인간의 존재 양식이 중요하다는 내용을 담은 이 책은 ‘발 없는 새’의 주제의식과도 맞닿아 있다”고 했다. 5·18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그의 1992년 소설집 ‘완전한 영혼’부터 이번 신작까지 정 작가는 권력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 폭력에 희생되는 개인의 문제에 천착해 왔다. “권력은 우리 생활 도처에 있어요. 남성과 여성, 빈자와 부자, 부모와 자녀 등 모든 인간관계는 권력에 의한 상하관계가 만들어집니다. 권력을 가진 이는 상대를 자신보다 낮은 사람으로 대하지 않고 공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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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중섭 ‘황소’엔 어머니와의 분리불안이 그려져 있다”

    《“그림 속에는 그것을 그린 사람, 즉 작가가 커튼처럼 길게 드리워져 있습니다.”박수근(1914∼1965), 이중섭(1916∼1956) 등 한국 근대미술 거장들의 작품엔 작가의 어떠한 내면과 무의식이 녹아 있을까. 지난달 출간된 ‘그림, 그 사람’(아트북스)의 저자인 김동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겸 미술평론가(53)는 박수근 이중섭 진환 황용엽 양달석 김영덕 신학철 서용선 등 한국 근현대 화가 8명의 작품을 바탕으로 이들의 내면을 분석했다.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6일 만난 김 씨는 일본인 아내 야마모토 마사코(한국명 이남덕)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다양한 엽서화로 그린 이중섭에 대한 이야기를 가장 먼저 꺼냈다. 김 씨는 그의 작품에서 ‘이중섭과 어머니의 강력한 영유아기 애착관계’를 엿볼 수 있다고 했다. “아버지를 일찍 여읜 이중섭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랍니다. 보통학교 3, 4학년 때까지 어머니의 젖을 먹을 정도로 과도한 애착관계를 보이죠. 이는 역으로 분리불안을 낳았고, 그게 아내와의 이별을 극도로 괴로워하는 모습으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이중섭의 대표작 ‘황소’에도 어머니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작가의 욕구가 담겼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희생과 헌신이라는 모성적 원형을 간직한 소에 힘차고 강인한 남성적 이미지를 덧씌운 것이 이중섭의 황소”라며 “어머니와 자신의 모습을 동시에 담아 하나가 되고자 하는 공생적 욕망이 반영됐다”고 분석했다. 물감을 덧칠하는 기법으로 유명한 박수근에 대해선 억압을 작품 활동의 원천으로 꼽았다. “박수근은 가세가 기울어 양구국민학교를 졸업한 뒤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했지만 좌절의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내재된 억압과 인내가 많게는 20번가량 물감을 덧칠해 그림을 완성하는 ‘겹’으로 표현됐다고 봅니다.” 다양한 인간상을 그려 온 황용엽(91)은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김 씨는 “황용엽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인간의 모습은 괴기스럽다”며 “작가가 인민군 징집을 피하기 위해 월남하고 6·25전쟁에 참전해 생사의 기로를 넘나들며 겪은 상처가 어둡고 기괴한 인간상으로 구현된 것”이라고 했다. 도시의 소외된 인간군상을 다룬 서용선(71)에 대해선 뚜렷한 직업이 없던 그의 아버지가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서용선의 아버지는 꽃을 키우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즐겼지만 가장으로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역할은 하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삶을 통해 시대상과 문제점을 비판하려는 무의식적 의도가 작품에 담겼습니다.” 의사인 그가 미술에 빠져든 건 신촌 세브란스병원 레지던트였던 20년 전 우연히 박수근 화집을 접하면서다. “종로서적에서 박수근의 그림을 접했을 때 어린 시절의 향수를 느꼈어요. 강렬한 느낌에 매료됐죠.” 이후 박수근의 드로잉 ‘초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300여 점의 드로잉을 수집했고, 2019년엔 전시회도 열었다. 그는 신간을 준비하며 박수근 진환 양달석 작가의 경우 유가족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림은 화가들의 내면이 담긴 일종의 정신적 증상입니다. 작가의 삶과 행동 전반을 통해 그 심리까지 파고들면 작가와 작품에 대해 좀 더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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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중섭 ‘황소’엔 어머니와의 분리불안이 담겨있다”

    화가 이중섭(1916~1956)의 지극한 아내 사랑은 유명하다 6·25전쟁 당시 월남한 후 경제적 문제로 1952년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 처가로 돌려보낸 이중섭은 아내와 아이들을 다시 만나는 것에만 골몰했다. 그는 1955년 4월 대전에서 개인전을 마친 뒤 자학, 거식증, 피해망상 등 정신질환 증세를 보인다. 개인전이 실패로 돌아가 돈을 벌지 못하면서 아내를 만날 수 있다는 마지막 희망이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이중섭은 왜 그토록 아내와의 이별을 두려워했을까? 지난달 26일 출간된 ‘그림, 그 사람’(아트북스)을 쓴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겸 미술평론가 김동화 씨(53)는 6일 서울 종로구 카페에서 “사랑하는 대상의 원형인 어머니와의 관계 문제가 먼저 자리 잡고 있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화가가 3~5세 사이 아버지가 죽었고, 어머니의 애정은 막내였던 화가에게 집중됐다. 화가는 보통학교 3~4학년 때까지 어머니의 젖을 먹었고 좋아하는 이성상에 대해 “어머니처럼 편한 여자가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강력한 영유아기 애착관계가 분리불안을 낳았고, 그게 아내와의 관계로 이어졌을 것”이라고 했다. 책은 이중섭을 비롯해 박수근 진환 양달석 황용엽 등 한국 근현대화가 8인의 그림을 통해 그들의 내면을 진단했다. 책은 화가의 정신역동(인간 행동의 밑바닥에 잠재해 있는 무의식적인 힘)이 그림에 어떻게 반영됐는지 분석한다. 김 씨는 이중섭의 ‘황소’에 어머니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욕구가 담겼다고 본다. 그는 “희생과 헌신이라는 모성적 원형을 간직한 소에 불알이 강조된 수소의 이미지를 덧씌운 것이 이중섭의 황소다. 황소에 어머니와 자신의 모습을 동시에 담은 것”이라며 “어머니와 자신이 하나가 되고자 하는 공생적 욕망이 반영됐다”고 말했다. ‘세 사람’ ‘물고기와 노는 세 어린이’ 등 그의 작품에서 꾸준히 드러나는 원환구도 역시 어머니와 하나의 덩어리가 되고자 하는 욕구의 발현이라는 게 그의 분석이다. ‘국민화가’로 불리는 박수근(1914~1965)의 경우 ‘억압’이라는 방어기제를 그의 주된 정신역동으로 봤다. 보통학교 진학 후 가세가 기울어 상급학교 진학에 실패하고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해야 했지만 내향적 성격과 감내의 기질을 타고난 그는 좌절의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않았다고. 그러한 억압의 정신역동이 여러 번 물감을 덧칠해 그림을 완성하는 ‘겹’으로 드러났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그는 “참고 또 참는 것의 반복이었던 박수근의 인생궤적처럼 그의 그림도 물감을 많게는 20번 가량 올리고 또 올리는 방식으로 나타났다. 계속해서 쌓고 견디며 또 올리는 ‘겹’은 내적 소망을 억압하는, 욕망의 죽음과도 같다”고 설명했다. 살아있는 황용엽, 2020년 별세한 김영덕의 경우 저자가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그들의 실제 구술이 들어가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첫 인터뷰를 5시간 동안 했다는 황용엽은 어머니의 유방절제술로 친모와 유모 두 양육자를 둬야 했던 유년기, 인민군 징집을 피하기 위한 도피와 월남, 생사의 기로를 넘나든 참전의 경험을 생생하게 털어놓는다. 김 작가는 “황용엽이 수도 없이 그린 ‘인간’은 일반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그가 겪은 정신적 외상이 그로테스크하고 감정표현불능(자신 또는 타인의 감정상태를 인식 또는 언어화하지 못하는 증상)적 양상으로 화폭에 드러났다”고 했다. 화가들의 내밀한 심리를 정교하게 분석할 수 있었던 건 20여 년 간 그림에 천착해 온 덕이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레지던트 시절 종로서적에서 박수근 화집을 보고 그림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에 매료된 그는 지도에 화랑을 표시해 1주일 동안 전국 화랑을 다 돌았다. 이후 그로리치 화랑에서 산 박수근의 드로잉 ‘초가’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300여 점의 드로잉을 수집해 2019년 전시회도 열었다. 그는 “시중에 나와 있는 미술서적 중 안 본 게 거의 없다. 화가들과 관련된 모든 기록들에서 시작해 박수근 진환 양달석 선생님의 경우 유가족들을 직접 만났고, 생존한 화가는 직접 진술을 듣는 방식으로 치밀하게 분석했다”고 말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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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리저리 내몰려도 무너져선 안되는 삶

    모피방. 기본 골조 외에 아무것도 없는 방을 말한다. 창문도, 전등도, 문턱도, 심지어 초인종도 없다. 모피방은 기본 자재를 뜯어내고 고급스럽게 인테리어를 하려는 부자들에게 인기를 끌다가 점차 가난한 사람들이 찾기 시작했다. 아무 옵션도 안 들어가 싸게 매매되기 때문이다. 단편소설집 ‘모피방’(민음사)의 저자 전석순 작가(39·사진)는 1일 전화 인터뷰에서 “모피방은 원래 모든 것이 다 될 수 있는 방이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가능성이 다 닫혀있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방이 됐다”고 말했다. 지난달 20일 출간된 ‘모피방’의 주인공들 역시 선택권이 없어 열악한 공간으로 밀려난 빈곤층이다. 단칸방에서 월세, 전세로 가기 위해 수십 년간 위험한 건물 철거 현장에서 일한 가장을 다룬 ‘수납의 기초’부터, 임종을 앞둔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인근 호텔방에서 생활하는 부부를 다룬 ‘때 아닌 꽃’까지. “방이라고 볼 수 없는 곳으로까지 내몰리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그들을 주인공으로 삼고 싶었어요.” 표제작인 ‘모피방’은 아버지가 평생 일해온 세탁소가 시청의 부지 확장으로 철거되는 상황을 겪은 저자의 경험이 녹아 있다. 주인공은 세탁소 철거를 원치 않는 아버지와,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조금이라도 싸고 넓은 모피방으로 이사 가자는 아내 사이에서 신음한다. “주인공은 아버지와 아내 사이에서 혼란스럽지만 무너져서는 안 돼요. 간신히 균형을 맞추려는 감정을 세탁소와 모피방을 통해 표현했죠. 그 아슬아슬한 균형을 우리 모두 경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경제적 문제로 좁은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하거나, 삶의 터전이 재개발로 철거되는 상황을 많은 사람들이 겪고 있으니까요.”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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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음 팬데믹 대응위해 세계적 조직 마련하자”

    “문제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67)는 10일 출간되는 ‘빌 게이츠 넥스트 팬데믹을 대비하는 법’(비즈니스북스)에서 2014년 서아프리카를 중심으로 퍼진 에볼라바이러스에 대한 세계의 대응을 이렇게 진단했다. 게이츠는 팬데믹 대응 시스템의 부재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까지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번 책에서 질병의 ‘아웃브레이크’(특정 지역에서 작은 규모로 질병이 급증하는 현상)가 팬데믹이 되는 것을 막는 시스템을 정부, 과학자, 기업, 개인이 구축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세계가 시작해야 할 액션 플랜의 출발점은 팬데믹에 대응하는 세계적 조직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는 “세계보건기구(WHO)조차 자금이 넉넉하지 않고, 팬데믹 전담 인력이 거의 없다”고 지적한다. 팬데믹 대응 조직에 전염병학, 유전학, 약물 및 백신 개발, 외교 등 전 분야의 인재를 두고, 세계은행과의 협력을 통해 자금을 빠르게 조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병원체가 확인된 후 6개월 내에 전 세계 모든 사람이 백신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가 기대를 거는 기술은 ‘메신저리보핵산(mRNA)’이다. 이 기술은 코로나19가 터진 후 모더나와 화이자가 1년여 만에 도입한 기술로, 지속적으로 변이를 일으키는 바이러스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게이츠는 “미래의 아웃브레이크에서는 최초 확진과 최초 백신 후보가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몇 주 혹은 며칠 단위로 측정하게 될 것이고, mRNA가 이를 가능케 할 기술로 자리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며 mRNA 기술에 대한 충분한 투자와 연구를 권고한다. 그가 마지막으로 제안하는 건 팬데믹 전담 조직 주도하에 ‘현장 종합 훈련’을 진행하자는 것. 아웃브레이크를 경험하는 도시를 지정하고, 병원체에 대한 진단 검사가 얼마나 빨리 개발되는지, 공급망이 단절될 때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등을 시뮬레이션하자는 것이다. 훈련에서 발견한 사실 중 의미 있는 내용을 세계 지도자들에게 꾸준히 알리고 필요한 사항을 요청해야 한다고 강조한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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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현대 의학기술의 ‘진짜 목표’를 묻습니다

    “의료제도가 건강에 주요한 위협이 되고 있다.” 오스트리아 사제이자 사회비평가 이반 일리치가 1975년 출간된 ‘의료의 한계’에서 던진 경고다. 의학이 오히려 건강에 위협이 된다는 그의 주장은 너무 파격적이어서 당시 의료계는 그를 ‘아픈 사람’이라고 치부했다. 철저히 무시됐던 일리치의 주장은 소화기내과 전문의인 저자에게 영향을 미쳤다. 1980년대 아일랜드에서 의사 자격을 얻고 영국 의료계에서 일하던 저자는 경력의 정점에서 그동안 누구를 위해 일해 왔는지 되돌아본다. 그리고 의학기술의 발전과 연구가 환자가 아닌 의학계만을 위한 행위였다고 고발한다. 저자는 현대의학이 병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한다. ‘비셀리악 글루텐 과민증’이 대표적이다. 셀리악병 환자들은 글루텐 성분에 민감해 과민성대장염을 앓는다. 하지만 셀리악병이 없어도 과민성대장염 증상을 겪는 환자들도 있다. 몇몇 연구자는 이들 증상의 원인 역시 글루텐이라 주장하며 ‘비셀리악 글루텐 과민증’이라는 신종 질병을 만들어 낸다. 저자는 이러한 질병의 창조가 ‘수백만 명의 환자가 있다고 주장하는 연구자들에게 이익이 되고, 글루텐 무함유 식품의 폭발적 판매 증대로 식품산업에 이익을 안겨주며, 증상이 있는 사람들에게 받아들이기 쉬운 진단명을 내세우기 위함’이었다고 지적한다. 현대의학이 암을 다루는 방식도 비판한다. 1971년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국가 암퇴치법’에 서명한 것을 시작으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6년 “미국을 암 완전정복 국가로 만들자”고 밝혔다. 이런 구호가 무색한 건 항암제 개발에서 잘못된 지표가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문제의 지표는 질병은 남아있으나 더 악화되지 않는 기간인 ‘무진행 생존기간’. 저자는 전체 생존기간은 비슷하지만 무진행 생존기간만 늘어나는 신약 임상시험 결과가 많이 나오고 있다는 점을 든다. 신약을 사용하면 암이 더 커지지 않게 할 뿐 생명 자체를 의미 있게 연장시키는 건 아니라는 것. 2002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승인한 신규 항암제 48개로 생명이 연장된 기간은 평균 2.1개월에 불과했다. 그는 새 치료법이 나오면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보라고 조언한다. ‘누구에게 이익인가’ ‘그것 때문에 삶이 더 행복해질 것인가’. 호스피스 의료, 통증 완화와 치유에 주목해야 한다는 그의 말은 삶의 상업화, 거대 다국적 기업의 욕망에 가려 간과됐던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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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신의 분신과 대면한 8명의 반응 쓰고 싶었다”

    2021년 3월 파리에서 출발한 뉴욕행 비행기는 난기류를 만나 위기를 겪은 뒤 착륙한다. 석 달 뒤 똑같은 기장과 승무원, 승객이 탑승한 파리발 비행기 역시 난기류를 뚫고 뉴욕에 도착한다. 석 달이라는 시간차가 있을 뿐 3월의 승객과 6월의 승객은 DNA까지 정확히 일치하는 동일인이다. 지난달 26일 출간된 장편소설 ‘아노말리’(민음사)는 분신과 마주한 8명의 이야기다. 전대미문의 사건을 인지한 미국 정부는 과학자를 소집해 사태의 실체를 파헤친다. 이 책은 2020년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프랑스 공쿠르상을 수상했고, 프랑스에서만 110만 부 이상 팔렸다. 서울 종로구에서 2일 열린 간담회에서 저자 에르베 르 텔리에(65·사진)는 “오늘 오전 7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세 달 뒤 제 분신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농담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나 자신과의 대면’에 대한 고민이 책의 시작이었다. 8명의 인물이 자신의 분신과 대면했을 때 어떻게 반응할지 상상해 이야기를 썼다”고 했다. 아노말리는 ‘변칙’, ‘이상’이란 뜻. 르 텔리에는 “코로나19로 미쳐 돌아가는 세상과 공명하는 제목이 됐다. 무미건조했던 제목이 이 시기를 만나 멋지게 재해석됐다”고 했다. 등장인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분신에 대응한다. 청부살인업자 블레이크는 ‘두 명의 나’는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분신을 납치해 죽인다. 석 달 사이 임신을 한 분신과 마주한 변호사 조애나는 곧 태어날 아이를 위해 자신의 집과 경력, 연인까지 포기하고 도망친다. 대응 방식은 각양각색이지만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위해 행동한다. 르 텔리에는 “살면서 여러 갈림길이 나타나고, 인생이 급류를 타고 변화하거나 두 번째 기회를 갖게 되는 경우도 있다”며 “그 속에서 본질적으로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은 무엇인지 고민하길 바랐다”고 말했다. 수학자이기도 한 저자는 분신이 등장하게 된 가설로 ‘보스트롬의 모의실험’을 제시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슈퍼컴퓨터에 의한 시뮬레이션이라는 이론이다. “우리가 시뮬레이션에 의한 가상세계에 살고 있다는 가정이 문학적으로 멋진 은유라 생각했습니다. 소설은 우리 세계에 대한 은유이고, 독자들이 그 세계로 들어가 실제와 같은 경험을 하니까요. 시뮬레이션이 가능한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기고 싶습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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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회의 어두운 면 매일 목격하지만 인간의 선함 믿어”

    검정색 반팔에 운동복 반바지, UFC가 적힌 백팩. 다부진 체격에 언뜻 보면 운동선수 같은 곽경훈 작가(44)는 11년 차 응급의학과 전문의다. 최근 서울 종로구 카페에서 만난 그는 “오늘 새벽까지 병원에서 당직을 서고 와서 옷을 못 갈아입었다”며 웃었다. 달리기 5km, 로잉머신 1만 km, 주짓수 중 하나를 매일 1시간씩 해 운동복 차림일 때가 많다고 했다. “응급실에서는 긴장된 상황에서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해야 해 체력이 중요해요. 피곤하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귀찮아지거든요.” 운동에 진심인 그는 글을 쓰는 작가이기도 하다. 8일 펴내는 ‘응급실의 소크라테스’(포르체)는 그의 여섯 번째 책. 그가 응급실에서 만난 환자와 보호자들을 통해 느낀 점을 담았다. “응급실은 사회의 꼭대기부터 바닥까지 모든 사람이 옵니다. 인간의 욕망과 약점이 가감 없이 드러나는 곳이죠. 응급실에서 본 인간 군상을 통해 한국 사회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책에는 “피곤해서 쉬러 왔다”며 병상을 요구하며 갑질하는 국회의원부터 종교적 신념으로 수혈을 거부하는 환자 가족까지 각종 에피소드가 펼쳐진다. 그가 오래도록 잊지 못하는 환자들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 의료보험이 없어 당뇨병 치료 시기를 놓친 탓에 중증질환으로 악화한 불법 체류자나,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패혈증으로 사망할 수 있는 담관염 진단을 받았음에도 돈이 없어 자식을 퇴원시키기로 한 아버지도 있었다. “몇 년 전 한 트랜스젠더가 도착 시 사망(DOA)으로 실려 왔어요. 혼자 집에서 쓰러졌는데 그날 일하던 바에 출근하지 않아 동료가 와서 발견한 거죠. 연락이 닿는 가족이 없어 동료 혼자 응급실에서 서럽게 울더군요. ‘평생 차별받다 죽을 때도 혼자 가는구나’라는 생각에 씁쓸했습니다.”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의 가난에 무뎌진 사람들, 학대받는 아이들…. 사회의 어두운 면을 매일 목격하지만 그는 인간의 선함을 믿는다고 했다. “‘불법체류자니까, 성소수자니까 어떨 것이다’라는 식의 선입견이 깨졌어요. 교육 수준, 빈부, 국적을 떠나 진심을 갖고 선의로 다가가면 상대방도 선의로 대해 주더라고요.” 어릴 때 소설가를 꿈꿨지만 의사가 된 그는 응급의로 마주하는 예측 불가능성과 현장성을 사랑하기에 작가와 의사, 두 길을 모두 걸어갈 거라고 했다. “생텍쥐페리는 성공한 작가가 된 후에도 여권 직업란에 늘 조종사라고 쓸 만큼 비행을 사랑했어요. 저도 ‘해리포터’ 같은 책을 써서 억만장자가 되더라도 응급의학과 의사를 계속 할 겁니다. 하하.”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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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쉬러왔다며 ‘베드’ 요구하는 의원님…영화냐구요? 응급실 현장입니다

    검정색 반팔, 반바지의 운동복, ‘UFC’가 적힌 커다란 백팩. 그을린 피부에 다부진 체격 의 곽경훈 작가(44)는 언뜻 보면 운동선수 같지만 경기 성남시 분당제생병원에서 일하는 11년차 응급의학과 전문의다.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카페에서 만난 그는 “오늘 새벽까지 당직을 서고 병원에서 자다 와서 옷을 못 갈아입었다”며 웃었다. 러닝 5km, 로잉머신 1만km, 주짓수 세 가지 중 하나를 매일 1시간씩 하기에 운동복 차림일 때가 많다. “응급실에서는 긴장된 상황에서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을 내려야 하기에 체력이 굉장히 중요해요. 피곤하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귀찮아 지거든요. 그 때 사고가 발생해요.” 그는 운동선수만큼 체력단련에 열심인 의사이면서 글을 쓰는 작가이기도 하다. 8일 나오는 ‘응급실의 소크라테스’(포르체)는 그의 6번째 책이다. 책은 그가 응급실에서 만난 환자와 보호자, 선후배 의사 등을 통해 느낀 점을 담았다. “응급실은 사회의 꼭대기부터 바닥까지 모든 사람이 옵니다. 사람의 욕망과 약점이 가감없이 드러나는 곳이기도 하죠. 응급실에서 본 인간군상을 통해 오늘날의 한국 사회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인간의 ‘욕망과 약점’을 담고 싶었다는 설명에 맞게 책에는 ‘피곤해서 쉬러 왔다’며 응급실 ‘베드’(침대)를 요구하는 국회의원부터 종교적 신념으로 환자의 수혈을 거부하는 가족까지 영화에서 볼 법한 장면들이 펼쳐진다. 곽 작가가 오래도록 잊지 못하는 환자들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다. 의료보험이 없어 당뇨병을 제때 치료받지 못해 케톤산증이라는 중증질환으로 악화한 불법체류자, 자식이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패혈증으로 사망할 수 있는 담관염을 진단받았음에도 “병원비가 없다”며 집으로 가겠다는 아버지…. “몇 년 전 한 트랜스젠더가 DOA(도착 당시 사망)로 실려왔어요. 혼자 집에서 쓰러졌는데, 그날 일하던 바에 출근하지 않아서 동료가 그 집에 갔다가 죽은 걸 알게 됐죠. 가족도 아무도 없이 동료 혼자 응급실에서 서럽게 울더라고요. ‘살아서 차별받다가 죽을 때도 혼자 가는구나’라는 생각에 씁쓸했죠.” 갑질하는 권력자들, 목숨을 걸어야 하는 가난에 무뎌진 자들, 학대받는 아이들…. 사회의 어두운 면을 매일 목격하지만 그는 ‘인간의 선의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불법체류자니까, 성소수자니까 어떠할 것이다’라는 식의 인간을 향한 선입견이 많이 깨졌어요. 교육수준이나 빈부, 국적을 떠나 내가 진심을 갖고 선의로 대하면 상대방도 나에게 선의를 갖고 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유년시절 소설가와 인류학자를 꿈꿨지만 부모님의 권유와 현실적 판단으로 의사가 된 그는 작가의 꿈도 놓지 않고 있다. 지난해에만 4권의 책을 출판사들과 계약했다. 주로 응급실에서의 경험담을 다룬 에세이를 썼지만 최근에는 다크 판타지 장르의 소설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응급의학과 의사의 예측불가능성과 현장성을 사랑하기에 작가와 의사, 둘 다를 이어나갈 것이라고. “‘어린왕자’를 쓴 생 텍쥐페리도 성공한 작가가 됐지만 여권의 직업란에 늘 조종사라고 썼을 만큼 비행을 사랑했어요. 저도 ‘해리포터’같은 책을 써서 억만장자가 되더라도 응급의학과 의사 일은 계속 하면서 글을 쓸 겁니다.”인천=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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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로맨스 ‘칸의 남자들’ 금빛 귀향

    “한국 영화에 대한 팬들의 사랑과 성원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75회 칸영화제에서 한국 남자 배우로는 처음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송강호가 30일 귀국했다. 이날 오후 영화 ‘브로커’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배우 강동원 이지은(아이유) 이주영과 함께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그는 “끊임없이 한국 영화에 관심을 갖고 성원을 보내주는 팬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칸영화제에서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도 이날 인천공항으로 귀국해 “‘헤어질 결심’이 대중과 거리가 먼 예술영화란 선입견은 버려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의 주연배우 박해일도 함께 입국했다. ‘브로커’ 팀이 먼저 귀국했고 이후 ‘헤어질 결심’ 팀이 입국했다. 이날 공항에는 칸영화제에서 두 개의 트로피를 거머쥐며 한국 영화의 새 역사를 쓴 송강호와 박 감독을 보기 위해 200여 명이 몰렸다. 송강호와 박 감독이 칸 트로피와 상장을 각각 들어올리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송강호는 “‘브로커’는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감독이 한국 배우들과 작품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나라가 달라도 영화를 통해 같은 문화와 생각, 감정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공유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었다”며 “국적을 떠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사람, 감정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즐겨 달라”고 말했다. 박 감독은 자신이 대중영화를 만드는 감독임을 강조했다. 그는 ‘박쥐’ ‘아가씨’에 이어 세 번째로 칸 트로피를 들어올린 것에 대해 “예술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국한될까 봐 걱정된다”며 “내가 만드는 영화는 대중을 위한 상업영화이기 때문에 어쩌면 너무 영화가 재밌어서 칸영화제와 어울리지 않는다고도 볼 수 있다”고 했다. 박 감독은 ‘헤어질 결심’의 출연 배우들이 수상하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박 감독은 “사실 제가 원했던 건 남녀 연기상이었다. 엉뚱한 상을 받게 됐다”며 “배우들이 상을 받으면 ‘저 감독과 일하면 좋은 상 받는구나’라는 인식이 생겨서 다음 작품 캐스팅할 때 도움이 된다. 그것을 바랐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송강호는 박 감독에 대해 “오랜 영화적 동지이자 존경하는 분”이라며 “언젠가 같이 작업할 날이 오리라 믿는다. 감독님께도 그렇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뒤이어 귀국한 박 감독은 그의 소감에 화답했다. “송강호 씨는 이미 외국인 감독님과 작업을 했고, 큰 상까지 받았습니다. 이제 국제 스타가 돼 버려서 저한테까지 차례가 돌아올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로서는 언제나 함께 일하고 싶은 첫 번째 배우입니다.” 인천=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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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찬욱 금의환향 “엉뚱한 감독상, 사실 원했던 상은…”

    “한국영화에 대한 팬들의 사랑과 성원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생각이 듭니다.” 제75회 칸 영화제에서 한국 남자 배우로는 처음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배우 송강호가 30일 귀국했다. 이날 오후 영화 ‘브로커’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배우 강동원 이지은 이주영과 함께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한 그는 “끊임없이 한국영화에 관심을 갖고 성원을 보내주는 팬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칸 영화제에서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수상한 박찬욱 감독도 이날 인천공항으로 귀국해 “‘헤어질 결심’이 대중과 거리가 먼 예술영화란 선입견은 버려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영화의 주연배우 박해일도 함께 입국했다. ‘브로커’ 팀이 먼저 귀국했고 이후 ‘헤어질 결심’ 팀이 입국했다. 이날 공항에는 칸 영화제에서 두 개의 트로피를 거머쥐며 한국 영화의 새 역사를 쓴 송강호와 박 감독을 보기 위해 200여명이 몰렸다. 송강호와 박 감독이 칸 트로피와 상장을 각각 들어올리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송강호는 “‘브로커’는 일본의 거장 고레에다 감독이 한국 배우들과 작품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며 “나라가 달라도 영화를 통해 같은 문화와 생각, 감정을 가질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공유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중요한 작업이었다”며 “국적을 떠나 우리가 살고 있는 사람, 사회, 감정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즐겨 달라”고 말했다. 박 감독은 자신이 대중영화를 만드는 감독임을 강조했다. 그는 ‘박쥐’ ‘아가씨’에 이어 세 번째로 칸 트로피를 들어올린 것에 대해 “예술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국한될까봐 걱정된다”며 “내가 만드는 영화는 대중을 위한 상업영화기 때문에 어쩌면 너무 영화가 재밌어서 칸 영화제와 어울리지 않는다고도 볼 수 있다”고 했다. 박 감독은 ‘헤어질 결심’의 출연 배우들이 수상하지 못한데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박 감독은 “사실 제가 원했던 건 남녀 연기상이었다. 엉뚱한 상을 받게 됐다”며 “배우들이 상을 받으면 ‘저 감독과 일하면 좋은 상 받는구나’라는 인식이 생겨서 다음 작품 캐스팅할 때 도움이 된다. 그것을 바랐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송강호는 박 감독에 대해 “오랜 영화적 동지이자 존경하는 분”이라며 “언젠가 같이 작업할 날이 오리라 믿는다. 감독님께도 그렇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뒤이어 귀국한 박 감독은 그의 소감에 화답했다. “송강호 씨는 이미 외국인 감독님과 작업을 했고, 큰 상까지 받았습니다. 이제 국제 스타가 돼버려서 저한테까지 차례가 돌아올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로서는 언제나 함께 일하고 싶은 첫 번째 배우입니다.”}

    • 2022-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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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강호, 7번 도전끝 ‘칸의 남자’로… “상 받았다고 바뀔 것 없다”

    송강호가 28일(현지 시간) 칸영화제 폐막식이 열린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지명되자 동료 배우들은 감격에 휩싸였다. 영화 ‘브로커’에 함께 출연한 강동원은 그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글썽였고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칸을 찾은 박해일도 그를 끌어안았다. 송강호는 칸영화제에 16년간 7번이나 초청된 단골손님 같은 배우다. 2006년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감독주간에 초청된 게 시작이었다. 올해를 포함해 작품이 경쟁부문에 진출한 건 네 번. 2009년 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심사위원상을, 2007년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 함께 출연한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타면서 그에겐 수상의 기회가 오지 않았다. 2019년엔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그의 수상이 불발됐다. 칸영화제는 한 작품에는 한 종류의 상만 주는 게 관례다. 그는 2019년 ‘기생충’ 제작보고회에서 “내가 칸에 갈 때마다 그 작품이 상을 받는 전통이 있다”고 농담처럼 말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한국 감독들은 송강호에 대한 부채 의식이 있었다. 봉 감독은 2019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후 “이 위대한 배우가 아니었으면 내 영화는 한 장면도 완성될 수 없었을 것”이라며 공을 돌렸다. 박 감독도 2009년 ‘박쥐’로 심사위원상을 받자 “형제나 다름없는 가장 정다운 친구 송강호와 영광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객석에선 ‘늦깎이’ 남우주연상 주인공인 송강호를 향한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한국 거장들의 페르소나인 송강호가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만든 한국영화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도 눈길을 끌었다. 송강호가 수상 소감에서 감사를 표하자 고레에다 감독은 엄지를 세우고 미소를 보냈다. ‘브로커’는 베이비 박스에 버려진 아이를 키울 양부모를 찾아주는 브로커 상현과 아이를 낳은 여성 등이 가족처럼 가까워지는 여정을 그렸다. 송강호는 상현 역을 맡았다. 폐막식이 끝난 직후 박 감독은 송강호와 나란히 한국 기자들을 만나 그의 수상을 축하했다. 박 감독은 “나도 모르게 복도를 건너 뛰어가게 되더라. 그간 많은 좋은 영화에 출연했는데…. 이렇게 기다리니까 때가 온다”며 기뻐했다. 송강호의 수상은 한국 남자배우 중 처음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연기상을 받는 역사를 썼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앞서 고 강수연이 1987년 ‘씨받이’로 베니스에서, 전도연이 ‘밀양’으로 칸에서, 김민희가 2017년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베를린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윤여정은 지난해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남자배우는 누군가 첫 수상의 관문을 열어주길 바라는 기대가 높았다. 송강호는 이날 취재진이 ‘수상이 배우 생활에 어떤 의미로 작동하길 바라나’라고 묻자 “전혀 (어떤 의미로) 작동하지 않길 바란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좋은 작품, 이야기를 새롭게 전달하려 노력하는 건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강동원 이지은(아이유) 등 수많은 깨알처럼 보석 같은 배우들을 대표해 받은 거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오랜 기다림 끝에 영예를 얻었지만 침착하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는 “상을 받기 위해 연기를 할 수가 없다”며 “좋은 작품에 끊임없이 도전하다 보면 최고의 영화제에 초청받고 수상도 하게 될 뿐이지 상이 절대적인 가치나 목표는 아니다”라고 했다. 한편 송강호 강동원 이지은, 고레에다 감독을 비롯해 박 감독과 박해일은 30일 오후 귀국한다. 칸=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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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경, ‘기생충’ 이어 ‘브로커’ ‘헤어질 결심’ 성공신화 써

    “이 영화를 만드는 데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은 CJ와 미키 리(이미경 CJ그룹 부회장·사진)에게도 감사를 보냅니다.” 박찬욱 감독은 28일(현지 시간)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 소감에서 특별히 이 부회장에 대해 감사를 표시했다. 앞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할 때도 이 부회장의 이름이 거론됐다. 영화계에서는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가 올해 칸영화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각각 받은 데도 그가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기생충’과 ‘헤어질 결심’ ‘브로커’는 모두 CJ ENM이 투자, 배급을 맡았다. 좀처럼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 부회장은 칸영화제에 참석해 이들 영화의 수상에 힘을 보탰다. 그는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가 칸 현지에서 처음 공개된 이달 상영회에 잇따라 참석해 배우, 감독들과 포옹하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여 년간 영화 제작과 투자, 배급 등을 진두지휘하며 한국영화의 세계시장 진출에 기여했다. 2005년 ‘달콤한 인생’을 시작으로 ‘박쥐’ ‘아가씨’ 등 칸영화제에 진출한 국내 영화 12편의 제작 혹은 투자, 배급에 참여했다. ‘기생충’과 ‘헤어질 결심’ ‘브로커’ 등에는 제작총괄로 이름을 올렸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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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강호, 거장들의 ‘페르소나’… 박찬욱, 칸 3번째 수상 ‘깐느 박’

    송강호의 배우 인생“청소부라도 시켜달라” 연극 입문후드라마 출연않고 영화배우 외길 걸어김지운 박찬욱 봉준호 만나 연기 변신 경남 김해(현 부산 강서구)에서 나고 자란 송강호는 중학교 2학년 때 자신의 이야기를 재밌어하는 친구들을 보며 배우의 꿈을 꿨다. 23세이던 1990년 부산에서 극단 연우무대의 ‘최선생’을 본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다. 이듬해 연우무대 극장장이던 류태호에게 “청소부라도 시켜 달라”던 청년 송강호는 이로부터 31년 뒤 한국인 첫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의 쾌거를 이뤘다. 단 한 편의 드라마에도 출연하지 않고 줄곧 영화배우 외길을 걸은 결과다. 1991년 연극배우로 데뷔한 그는 ‘동승’을 시작으로 1996년까지 10여 편의 연극에 출연하며 실력파 배우로 이름을 알린다. 1996년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단역으로 영화에 데뷔한 그는 1997년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에서 조폭 부하 ‘판수’ 역을 맡아 주목받았다. 이어 그해 영화 ‘넘버3’에서 말더듬이 깡패 ‘조필’ 역을 맡아 한국 대표 감초 배우로 떠올랐다. 이 영화에서 그의 “내가 현정화! 그러면 무조건 현정화야” 대사는 두고두고 회자됐다. 그는 넘버3로 그해 대종상 신인남우상,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송강호는 코믹한 이미지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쉬리’(1999년)에서 국가정보원 특수요원으로 변신했다. 당시 그의 연기가 배역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도 있었지만 ‘조용한 가족’(1998년)에서 가능성을 본 김지운 감독이 ‘반칙왕’(2000년) 주연으로 그를 캐스팅한다. 송강호의 첫 주연 작품이다. 송강호는 한 인터뷰에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지만 가장 힘들었던 영화는 단연 ‘반칙왕’이다. 주변 시선을 느꼈기에 스스로 더 채찍질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거장 감독들의 페르소나로 자리매김한다. ‘조용한 가족’ 이후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년), ‘밀정’(2016년)에 잇달아 출연한다. 박찬욱 감독과는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 이후 ‘복수는 나의 것’(2002년), ‘박쥐’(2009년)를 찍었다. 봉준호 감독과는 ‘살인의 추억’(2005년)을 시작으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괴물’(2006년), ‘설국열차’(2013년)에 이어 칸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 석권한 ‘기생충’(2019년) 작업을 함께했다.박찬욱의 감독 여정 복수 3부작 등 자신의 취향에 충실‘올드보이’ 칸 심사위원대상으로 세계 주목장르 넘나들며 할리우드 등 진출칸영화제에서만 올해 세 번째로 트로피를 들어올려 ‘깐느 박’으로 통하는 박찬욱 감독(59)은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자신의 취향에 충실한 영화를 제작해온 그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하며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그의 첫 장편영화 데뷔작은 29세 때 찍은 ‘달은…해가 꾸는 꿈’(1992년)이다. 가수 이승철, 나현희가 출연한 이 작품은 흥행에 참패하고 평단의 호응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부진한 성적으로 생계형 평론가로 활동하던 그는 5년 뒤 ‘삼인조’(1997년)를 내놓았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를 충무로가 주목하는 감독 반열에 오르게 한 작품은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 관객 590만 명을 동원해 그해 최고 흥행작이 된 이 작품은 제5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다. 흥행 감독으로 입지를 굳힌 박 감독은 이후 본격적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치기 시작한다. ‘복수는 나의 것’(2002년)을 시작으로 원죄와 복수, 구원을 소재로 한 ‘복수 3부작’을 선보인다. ‘복수는 나의 것’은 흥행에 실패했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한 ‘올드보이’(2003년)를 선보인다. ‘올드보이’가 2004년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으며 박 감독은 칸과 첫 인연을 맺게 된다. 복수 3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한 ‘친절한 금자씨’(2005년)는 “너나 잘하세요”라는 명대사를 낳으며 제62회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박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박쥐’(2009년)는 제62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박찬욱은 당시 인터뷰에서 “‘박쥐’는 그동안 찍었던 작품 중 가장 좋았다. 왜냐면 내 마음대로 다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16년에는 영국 소설가 세라 워터스의 ‘핑거 스미스’를 각색한 영화 ‘아가씨’를 선보였다. 김민희 김태리 주연의 이 영화는 제69회 칸영화제에 초청됐지만 수상하지는 못했다. 최근 세계 영화계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그는 장르를 넘나들며 영미권에도 진출했다. 미국 할리우드에선 니콜 키드먼, 미사 바시코프스 주연의 ‘스토커’(2013년), 영국 BBC 첩보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2018년)을 연출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2022-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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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오스만 제국은 요새를 ‘못’ 지은 것이 아니다

    1592년 임진왜란에서 초반에 일본군에 밀리던 조선군이 전세를 뒤집을 수 있었던 건 해전 덕분이었다. 당시 일본군은 수도인 한양까지 점령했고, 선조는 중국 국경까지 도주한 뒤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영토 정복 야심이 현실화되던 시점, 일본 함대는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과의 해전에서 연패를 당했다. 25일 출간된 이 책은 승전의 요인을 거북선에서 찾는다. 책은 ‘거북선은 적군이 배에 올라타 백병전(근접 전투용 무기를 이용한 전투)을 벌이지 못하게끔 육각형 금속판으로 선체를 덮었다’고 설명한다. 백병전을 막음으로써 칼, 검, 창 등 근접용 전투 무기를 활용한 일본군으로부터 입을 수 있었던 피해를 최소화했다는 것이다. 영국 육군사관학교 석좌교수를 지낸 군사사 전문가이자 영국 엑서터대 역사학과 명예교수인 저자는 임진왜란을 비롯해 십자군전쟁, 트로이전쟁, 제1·2차 세계대전 등 인류 전쟁의 역사는 물론이고 미래에 이어질 전쟁까지 다뤘다. 무기와 전투 기술의 역사, 동맹과 배신, 국제정치 역학 등 전쟁에 크게 영향을 미친 요소를 다각도로 짚었다. 저자는 기존 전쟁사 책이 주목하지 않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비서구 군사사에 초점을 맞춘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물과 방목지를 차지하려는 자원전쟁을 주로 벌였다. 15세기 말 아프리카 사헬 지역에 세워진 ‘송하이 왕국’의 지도자 손니 알리는 속국의 자원을 갖기 위해 재위했던 28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전쟁을 벌였다. 저자는 1998∼2000년 에리트레아와 에티오피아 간 국경 분쟁에서 10만 명이 죽고, 1996∼2003년 콩고민주공화국을 중심으로 벌어진 ‘아프리카 대전’에서는 최소 300만 명이 학살과 질병, 굶주림으로 사망했다고 지적한다. 피해 규모를 봤을 때 ‘전쟁과, 그것의 미래를 확실히 파악하려면 서양을 벗어나 훨씬 멀리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존 전쟁사의 시각을 뒤집는 새로운 분석도 흥미롭다. 중국이나 오스만 제국이 서양에 비해 요새를 축성하거나 그 양식을 혁신하는 데 소극적이었던 이유를 군사 역량이 아닌 전투 방식에서 찾는 것이 대표적이다. 오스만 제국은 야전 병력과 기동성에 초점을 뒀기 때문에 고정된 진지를 방어하는 요새에 덜 투자했다는 것이다. 요새를 짓는 것은 물론이고 부지를 확보하고 수비대를 배치하는 등 요새에 들어가는 자원에 비해 그 효과는 미미하다는 각국의 판단도 있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미래전의 주요 원인으로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유례없는 인구 증가 속도다. 2020년 78억 명이었던 세계 인구는 2050년 98억 명, 2100년 109억 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2019년 10억 명인 아프리카 인구는 2050년 24억 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예멘에서는 2015년 물 부족으로 인한 반란으로 정부가 전복됐다. 인구 증가로 인한 자원 부족이 향후 전쟁의 원인이 될 것이라는 저자의 전망은 새겨들을 만하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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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00년 109억 명 될 세계 인구, 전쟁 원인이 된다?

    1592년 임진왜란에서 초반에 일본군에 밀리던 조선군이 전세를 뒤집을 수 있었던 건 해전 덕분이었다. 당시 일본군은 수도인 한양까지 점령했고, 선조는 중국 국경까지 도주한 뒤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영토 정복 야심이 현실화되던 시점, 일본 함대는 이순신 장군이 이끌었던 해전에서 연패를 당했다. 25일 출간된 ‘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서해문집)는 승전의 요인을 거북선에서 찾는다. 책은 ‘거북선은 적군이 배에 올라타 백병전(근접 전투용 무기를 이용한 전투)을 벌이지 못하게끔 육각형 금속판으로 선체를 덮었다’고 설명한다. 백병전을 막음으로써 칼, 검, 창 등 근접용 전투무기를 활용한 일본군으로부터 입을 수 있었던 피해를 최소화했다는 것이다. 영국 육군사관학교 석좌 교수를 지낸 군사사 전문가이자 영국 엑서터대 역사학과 명예교수인 제러미 블랙은 임진왜란을 비롯해 십자군전쟁, 트로이전쟁, 제1·2차 세계대전 등 인류 전쟁의 역사는 물론 미래에 이어질 전쟁까지 다뤘다. 무기와 전투 기술의 역사, 동맹과 배신, 국제정치 역학 등 전쟁에 크게 영향을 미친 요소를 다각도로 짚었다. 저자는 기존 전쟁사 책이 주목하지 않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비서구 군사사에 초점을 맞춘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물과 방목지를 차지하려는 자원전쟁을 주로 벌였다. 15세기 말 아프리카 사헬지대에 세워진 ‘송가이 제국’의 지도자 손니 알리는 속국의 자원을 갖기 위해 재위했던 28년 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전쟁을 벌였다. 저자는 1998~2000년 에리트레아와 에티오피아 간 국경분쟁에서 10만 명이 죽고, 1996~2003년 콩고민주공화국을 중심으로 벌어진 ‘아프리카 대전’에서도 최소 300만 명이 학살과 질병, 굶주림으로 사망했다고 지적한다. 피해 규모를 봤을 때 ‘전쟁과, 그것의 미래를 확실히 파악하려면 서양을 벗어나 훨씬 멀리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존 전쟁사의 시각을 뒤집는 새로운 분석도 흥미롭다. 중국이나 오스만 제국이 서양에 비해 요새를 축성하거나 그 양식을 혁신하는데 소극적이었던 이유를 군사 역량이 아닌 전투 방식에서 찾는 것이 대표적이다. 오스만 제국은 야전 병력과 기동성에 초점을 뒀기 때문에 고정된 진지를 방어하는 요새에 덜 투자했다는 것이다. 요새를 짓는 것은 물론 부지를 확보하고 수비대를 배치하는 등 요새에 들어가는 자원에 비해 그 효과는 미미하다는 각국의 판단도 있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미래전의 주요 원인으로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유례없는 인구 증가 속도다. 2020년 78억 명이었던 세계 인구는 2050년 98억 명, 2100년 109억 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2019년 10억 명인 아프리카 인구는 2050년 24억 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예멘에서는 2015년 물 부족으로 인한 반란으로 정부가 전복됐다. 인구증가로 인한 자원 부족이 향후 전쟁의 원인이 될 것이라는 저자의 전망은 새겨들을 만 하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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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문화콘텐츠, 다양한 언어로 세계에 알려야”

    “더 많은 세계인이 한국의 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 영어, 프랑스어를 비롯해 다양한 언어로 콘텐츠를 알려야 합니다.” 서울 중구 로얄호텔서울에서 26일 만난 오만 술탄 카부스대 무함마드 알 암리 교수가 말했다. 예술교육 전문가인 그는 코로나19를 계기로 각국에서 문화유산을 디지털로 전환하는 작업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암리 교수는 “한국 역시 문화유산의 디지털 전환은 물론이고 많은 문화 행사를 온라인으로 개최하고 있다”며 “한국 문화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갈수록 뜨거워지는 만큼 여러 언어로 번역해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암리 교수는 23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제11회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 ‘문화예술교육 국제 심포지엄’ 연사로 참석해 오만의 문화예술 교육 현황과 코로나19 이후의 전망을 주제로 강연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한 이번 심포지엄에서 한국, 이집트, 말레이시아, 오만, 영국 출신 예술교육 전문가 5명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문화예술 교육, 회복과 전환’을 주제로 강연했다. 암리 교수는 코로나19로 비대면 교육이 확산되면서 실습이 중요한 예술 교육에 한계가 있었지만 더 많은 사람이 예술을 접할 수 있게 된 건 기회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로 각국이 비대면 소통 방식을 고민하게 되면서 오만도 예술교육에 큰 변화가 있었다. 그는 “코로나19 이전에는 대학에서 하는 예술교육 대부분이 대면이었고, 온라인 수업은 한두 개에 불과했다. 코로나19가 닥친 2020년 초부터 온라인으로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교수진과 학생에게 기술을 가르쳤고 지금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합하는 수업 방식이 보편화됐다”고 했다. 그는 온라인 교육이 확산되면서 일반인도 예술을 접하고 교육을 받기가 훨씬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예술을 공부하는 데 있어 이제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마음만 먹으면 국내의 먼 곳은 물론이고 지구 반대편에서 열리는 문화 행사에도 참석할 수 있다”고 했다. 엔데믹으로 전환되면서 대면 행사와 교육이 다시 늘어나는 데 대해 암리 교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병합된 교육 방식이 균형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론 위주의 예술교육은 온라인으로, 실습은 오프라인으로 진행하는 복합적 수업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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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상현실’과 ‘메타북스’가 빚어낸 우연한 이야기

    “이번 책이 진짜 어렵긴 한가 봐요.” 24일 동아일보와 인터뷰한 소설가 정지돈(39)은 “온라인에 책 리뷰 올라오는 속도가 전작들에 비해 확연히 느리다”며 웃었다. 그가 9일 펴낸 공상과학(SF) 소설 ‘…스크롤!’(민음사)은 기승전결의 일반적 서사구조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신간은 가상현실에서 활동하며 음모론을 척결하는 ‘미신 파괴자’들과, 가까운 미래의 서점 ‘메타북스’ 직원들의 두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에서는 파편적인 이야기들이 우연히 전개된다. 가상현실과 메타북스 두 이야기 사이의 연관성도 작품에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 실험적 문학기법으로 문지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작가답게 독특한 형식과 내용을 담았다. 그는 “소설 속 강력한 인과성은 예술이란 장르 때문에 발생하는 ‘가짜 현실’이다. 현실은 우연적으로 흘러간다. 현실에서 사물과 사람을 체험하는 방식을 그대로 재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신작은 음모론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됐다. 근미래 배경의 수사물을 쓰려고 자료조사를 하던 중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둘러싼 음모론에 대응하는 ‘미스버스터스(mythbusters) 팀을 만든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음모론을 파다 보니 사이키델릭 약물, 메타버스, 인공지능 등 다양한 소재들이 엮여 있었다. 내 안에서 연결된 여러 소재를 작품에 녹였다”고 말했다. 책에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가 우주의 근원이라고 주장한 ‘아페이론’ 같은 생소한 개념들이 튀어나온다. 환각제인 LSD나 실로시빈이 병을 치료하고 창의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른바 ‘사이키델릭 르네상스’도 집필에 영향을 끼쳤다. 그는 “대학 시절 세계문학전집이 꽂힌 도서관 서가를 따라 걸으며 처음 본 작가의 소설을 전부 읽을 정도로 독서광이었다. 지금도 책을 읽으면서 모르는 단어를 검색하고 이 중 꽂히는 소재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소설에 녹인다”고 했다. 신작은 난해하고 불친절하다. 하지만 그는 예술가마다 독창적인 탐구 방식이 있고 이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늦은 밤 혼자 침대에 누워 있어도 책 하나만 있으면 돼요. 책은 저에게 가장 좋은 피난처이자 동료거든요. 저도 그런 책을 쓰고 싶어요. 누군가는 제 책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고요. 사회에서 동떨어진, 외로운 작업을 꾸준히 해나가는 제 모습을 통해 용기와 위로를 전하고 싶습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 2022-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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