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바다를 보러 혼자 여행을 떠난 레아. 떨리는 마음으로 기차, 버스를 탄다. 숲속에 사는 레아는 도시의 엄청난 규모와 정신없이 돌아가는 속도에 놀란다. 이윽고 도착한 바다. 한없이 푸르고 넓다. 친구 루도에게도 보여주면 좋을 텐데…. 바닷가에서 만난 노노는 황금색 소라고둥을 루도에게 가져다주면 어떨지 제안한다. 소라고둥을 찾아 바닷속으로 들어간 레아는 색색의 물고기와 물풀이 가득한 또 다른 세상을 만난다. 설레는 출발, 새로운 친구들과의 만남, 처음 본 풍광이 주는 놀라움까지, 여행이 선사하는 즐거움을 한가득 머금었다. 두 페이지를 꽉 채운 짙푸른 바다 그림에 눈이 시원해진다. 레아와 친구들의 다양한 표정을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돌아오는 길은 어땠을까. 펠리컨의 몸에 걸린 바구니를 타고 살랑살랑 바람을 느끼며 한번에 집으로 왔다. 놀랍고 신나는 여행을 함께 다녀온 듯하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국민의힘은 20일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지키기 법’으로 규정하고 “헌법소원 제기 등 모든 법적, 제도적 장치를 총동원해 저지하겠다”고 밝혔다. 김기현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언론중재법은 제2, 제3의 조국을 만들어내고 날개를 달아주는 ‘조국 지키기 법’에 불과하다”며 “조국 씨는 심지어 법원 판결이 선고돼도 가짜뉴스라고 우기고,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들도 동조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그는 “(조 전 장관처럼) 공직 후보자 일가가 각종 반칙과 편법을 이용해 입시비리 등 불법과 일탈을 일삼아도 사생활 영역이라고 우긴다면 도덕성 검증을 제대로 못 하게 될 것”이라며 “조 장관 후보자 검증 때처럼 언론이 보도를 쏟아낼 때 사생활 침해라는 이유로 열람 차단을 청구할 수 있게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당이 날치기 처리한 언론재갈법은 악법 중의 악법이며 독재로 가는 지름길”이라며 “청와대와 민주당은 마치 탈레반 점령군처럼 완장을 차고 독선과 오만으로 우리나라의 근본을 통째로 뒤집어 왔다”고도 비판했다. 특히 야당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전직 고위 공직자에 대해서는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를 허용한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예를 들어 문재인 대통령이 퇴임한 뒤 자신에 대한 의혹을 다루는 기사를 가짜뉴스라고 주장하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의당 배진교 원내대표는 이날 KBS 라디오에서 “법안의 내용이나 밀어붙이는 민주당의 방식 등 어떤 면으로 봐도 일방적인 입법 폭주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며 “정치 권력이나 경제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전략적 봉쇄 소송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언론재갈법’이라고 명명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언론의 독립성은 위축시킨 채 책임성만 부과하면 공정성이나 공공성을 훼손하는 것”이라며 “껍데기만 언론피해구제법인 법안을 이렇게 밀어붙이는 이유가 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서울외신기자클럽(SFCC) 이사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언론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킬 수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강행 처리하려는 움직임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민주 사회의 기본권을 제약할 수 있는 논란의 소지가 큰 법안”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세계 주요국 중 드물게 한국에서는 명예훼손죄가 민사적 책임뿐만 아니라 형사 처벌이 가능한 데다가, 사실을 적시하더라도 명예훼손죄가 성립해 이에 문제의식을 가진 외신기자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세계 최대 규모의 디자인 전시 행사인 밀라노디자인위크에서 한국 공예를 선보인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과 문화체육관광부는 ‘2021 밀라노 한국공예전: 사물을 대하는 태도’를 다음 달 5∼10일 이탈리아 밀라노의 팔라초 리타 전시장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금속, 도자, 섬유, 유리, 목, 옻칠 등 작가 21명의 작품 126점을 선보인다. 지요한 이상협 김준용 강미나 신예선 오세린 작가 등의 작품이 전시된다. 눈에 띄는 작품은 영화 ‘기생충’에서 박 사장(이선균)의 집 거실에 놓여 있던 커다란 테이블. 바로 가구 디자이너 박종선의 작품 ‘Trans 201808 Low Table’이다. 기택(송강호)의 가족은 박 사장네 거실에서 마음껏 놀다 급작스레 박 사장 식구가 집으로 돌아오자 테이블 아래로 감쪽같이 숨는다. 강재영 예술감독(맹그로브아트웍스 대표)은 “박종선 작가의 테이블은 사방의 단 높이가 각각 달라 어른부터 아이까지 모두 맞춰 앉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입체 공예작품을 배치한 ‘대지의 사물들’, 장신구를 소개한 ‘반려 기물들’, 한국 좌식 문화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생활의 자세들’까지 모두 세 개의 공간으로 구성됐다. 강 감독은 “코로나19 시대에 인간 중심의 공예에서 벗어나, 공예와 연관된 수많은 기계 사물 재료 환경 사이의 수평적이고 평등한 관계를 추구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김태훈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장은 “‘사물을 대하는 태도’는 인간 중심주의적 사고를 내려놓고 자연과 재료, 사물과 도구를 존중하는 태도를 갖자고 제안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며 “한국 공예는 이런 메시지를 담은 실증적 사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 달 4일 밀라노디자인위크 행사 주최 측인 모스카파트너스 누리집에서 가상 전시공간을 즐길 수 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대표 최정화)은 문화체육관광부 해외문화홍보원 외교부와 공동으로 31일과 다음 달 1일 문화소통포럼(CCF) 2021을 개최한다. ‘국제사회 핵심가치 공유 방법으로서의 문화소통’을 주제로 국내외 문화계 인사들이 토론에 참석한다. 한국계 프랑스인인 세드리크 오 프랑스 디지털경제부 장관이 첫날 화상으로 축사를 한다. 그의 여동생인 델핀 오 유엔 세계평등포럼 사무총장이 기조발표를 맡았다. 이광형 KAIST 총장, 송승환 PMC프러덕션 대표, 폴 매카트니 전속 사진작가인 MJ KIM(본명 김명중) 작가,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마크 리퍼트 유튜브 아시아 대정부·정책업무 총괄 담당 등 국내외 인사들이 온·오프라인에서 의견을 나눈다. 이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세계적 변화를 진단하고,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가 문화를 매개로 교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살펴볼 예정이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김영수, 23페이지 첫째 단락을 읽어보세요.” 고 장영희 서강대 교수(1952∼2009)가 생전 미국 소설 수업 때 학생에게 ‘주홍글씨’의 한 단락을 읽도록 했다. 아무 반응이 없어 다시 말하자 한동안 침묵이 흐른 후 서훈이가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학생들 이름과 얼굴을 모두 아는 장 교수는 부아가 치밀어 쏘아붙였다. “결석한 친구 대신 대리 대답하는 학생들이 있다더니 그렇게 하는 것이 아예 버릇이 돼서 이젠 친구 이름을 자기 이름인 줄로 착각할 정도인가?” 퇴근 무렵 한 학생이 찾아와 설명했다. 영수는 심각한 말더듬이 증세가 있고 사람들 앞에서 말하거나 읽어야 할 때면 증세가 더 악화된다고. 당황한 영수를 도와주려고 서훈이가 대신 읽었다는 것. 장 교수는 어떻게 사과할지 고민하다가 시간이 지나 잊었다. 어느 날, 그는 다리가 불편한 자신을 데리러 온 아버지(고 장왕록 서울대 명예교수·1924∼1994)가 건물 현관 앞에 주차했다가 경비원에게 지적받고 연신 사과하는 모습에 “채신없어 보인다”고 투덜댄다. 돌아온 아버지의 말. “채신? 원, 잘못한 거 사과하는데 채신은 무슨 채신이냐?” 장 교수는 순간 영수의 얼굴을 떠올렸고, 다음 날 정식으로 사과하기로 다짐한다. 최근 재출간된 장 교수의 에세이 ‘내 생애 단 한 번’(샘터)에 나온 이야기다. 살다 보면 사과할 일이 생긴다. 잘못한 일에 대해 곧바로, 그게 어려우면 시간이 지난 후 사과를 꼭 했는가. 기자를 포함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할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반대로 사과를 받지 못하면 분한 감정이 오래 지속된다. 잊었다가도 문득 그 일이 떠올라 불끈불끈 화가 치솟는다. 일제강점기부터 현대까지 여성 4대의 삶을 그린 최은영 작가의 장편 소설 ‘밝은 밤’(문학동네)에는 인생의 고비마다 상처받은 이들이 나온다. 주인공 지연은 말한다. 세상에는 진심으로 사과받지 못한 사람들의 나라가 있을 거라고. 그저 잘못을 인정하길 바라는 사람, 미안한 시늉이라도 해주면 좋겠다고 애처롭게 바라는 사람, 사과할 사람이라면 애초에 상처를 주지 않았을 거라 체념하는 사람, 다시는 예전처럼 잠들 수 없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그 나라에 살고 있을 거라고. 진심 어린 사과는 마음속 깊은 상처를 어루만지고 아물게 한다. 이는 사람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국가 간에도 마찬가지다. 주변의 여러 상황,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구구절절 따질 필요가 없다. 사안이 복잡할수록 핵심에 집중하면 된다. 잘못을 했느냐, 그렇지 않으냐. 잘못했으면 사과해야지 나이, 직위 등 그 외 다른 걸 왜 따지느냐는 고 장왕록 교수의 말에는 깊은 지혜가 담겼다. 사과하는 이가 지녀야 할 마음가짐을 정확히 짚는다. 이런 마음과 태도를 가진 이가 늘어날수록 고통 속에 몸부림치는 이가 줄어들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나아질 세상을 그려본다.손효림 문화부 차장 aryssong@donga.com}

아침밥을 먹고 양치를 하고…. 소녀 루치아의 하루가 시작된다. 집을 나서기 전 루치아가 꼭 챙기는 건 흰 지팡이. 루치아는 시각장애인이다. 버스 창에 머리를 살짝 기대면 신비한 세상이 펼쳐진다. 색색의 동물들이 하늘을 날고, 발걸음을 옮길 때면 악기 소리가 들린다. 흑백의 그림은 루치아가 집을 나선 후 촉감, 냄새, 소리로 세상과 만나자 화사한 색상으로 바뀐다. 풍경은 몽환적이다. 코뿔소는 물고기 모양 비행기를 몰고, 연미복을 입은 아저씨는 커다란 입 그 자체가 얼굴이다. 루치아가 나무를 만지며 인사하면 루치아의 머리는 한가득 돋아난 잎사귀로 가득하다. 학교에서 만난 새 친구는 색색의 꽃잎을 지녔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온몸의 감각을 열어 마주한 세상은 신비롭고 흥미진진하다. 루치아처럼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느끼는 이들과 친구가 되면, 놀라운 세상을 함께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본당보다 작아 본당 주임신부가 상주하지 않고 순회하는 구역의 천주교 공동체, 천주교 건축물. 공소(公所)의 의미다. 우리나라 전국의 공소 가운데 225곳을 찾아가 그림을 그리고 사진, 글과 함께 담아낸 ‘공소에 스미다’(미디어북)가 최근 출간됐다. 저자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윤영선 강동대 실내디자인과 교수. ‘성당을 그리다’(2015년), ‘성당을 새기다’(2016년), ‘성지를 담다’(2018년)에 이은 네 번째 책이다. ‘공소에 스미다’에는 유화 41점, 펜 드로잉 20점이 담겼다. 종탑, 성상과 성물, 공소에서 만난 이들, 공소 주변 산과 폭포, 꽃, 새를 맑고 정갈하게 그렸다. 붓, 펜 끝 하나하나에 정성을 담은 흔적이 역력하다. 공소로 가는 여정, 공소에서의 느낌도 글로 자세히 묘사했다. 여러 사진과 상세한 지도도 공소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윤 교수는 “성당과 성지보다 규모가 작으면서도 우리 삶과 밀착된 곳을 탐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공소가 우리 선조들의 신앙의 뿌리이며 작은 마을 단위 신앙공동체의 중심으로 느껴졌고, 그 모습이 정겹고 우아하고 아름다웠다”고 밝혔다.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는 순례기이자 작품집이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물풍선을 힘차게 던지는 아이들, 풍선이 터지며 사방으로 튀는 물방울이 경쾌하다. 검은색 강아지는 아이들 사이를 날아다니듯 달린다. 물총에 물호스까지 등장하며 놀이는 한층 격렬해진다. 이수지 작가(47)의 새 그림책 ‘여름이 온다’(비룡소·사진)는 한여름 물놀이가 내뿜는 에너지를 한껏 발산한다. 책의 원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서울 용산구 알부스갤러리에서 5일 이 작가를 만났다. 그는 “비발디 협주곡 ‘사계’ 중 ‘여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3악장으로 구성된 곡과 동일하게 책도 3악장으로 구성했다. “‘여름’은 굉장히 역동적이어서 들을 때마다 가슴 깊은 곳이 쿵쿵쿵 뛰어요. 제주에서 본 변화무쌍한 구름, 두 아이가 어릴 적 친구네 아이들과 신나게 물놀이를 하던 모습을 연결시켜 여름을 시각적으로 표현했어요.”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시작하면 무대 위 커튼이 열리고 초록빛 벌판이 펼쳐진다. 그곳에서 물놀이가 벌어진다. 책의 앞날개에 있는 QR코드를 이용해 ‘여름’을 들으며 책장을 넘기면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 같다. 거의 그림만 있고 148쪽이어서 그림책치고는 꽤 두껍지만 한바탕 같이 물놀이를 하듯 푹 젖어들어 순식간에 읽힌다. 물풍선 놀이는 색종이와 색 스프레이로, 악보와 쏟아지는 물은 색 테이프와 스티커로, 하늘로 치솟는 물줄기는 색실에 물감을 묻혀 각각 표현했다. 거침없는 자유와 싱그러움에 독자들은 “여름을 정확히 짚은 작품”이라고 말한다. “예전 북토크에 한 팬이 ‘우리 수지 그리고 싶은 거 다 그려’라는 배너를 들고 온 적이 있어요. 그 응원처럼 진짜 하고 싶은 걸 다 하며 만들었어요. 자연의 변화가 가장 강렬하게 드러나는 여름처럼 제 안에서 폭발하는 자유로움을 신나게 쏟아부었죠. 행복했어요.” 장면 장면을 찬찬히 살펴보면 깨알 재미도 발견할 수 있다. 검은 강아지는 이 작가가 실제 키웠던 ‘강이’다. 그림책 ‘강이’의 주인공. 호스를 잡고 물을 뿌리는 아기는 기저귀를 차고 있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했을까. 까무잡잡한 피부가 당차 보인다. 이 작가는 볼로냐 국제 어린이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됐고, ‘파도야 놀자’는 뉴욕타임스 우수 그림책에 꼽히는 등 해외에서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그의 작품은 주로 그림만으로 구성돼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를 자아내게 한다. 9월 19일까지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 ‘여름 협주곡’에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파도야 놀자’ ‘물이 되는 꿈’까지, 이 작가의 작업 과정을 담은 사진, 노트도 볼 수 있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오늘 지각하고 싶다. 1교시 전에 내야 하는 숙제를 안 했다. 결정적인 이유는 게임을 많이 한다고 어젯밤 엄마에게 휴대전화를 뺏겼기 때문이다. 지각하면 담임 선생님이 엄마에게 전화할 테고, 엄마는 내게 연락할 방법이 없어 휴대전화를 뺏은 걸 후회할 테니까. 놀이터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나자 밖에 인기척이 느껴진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는데 그가 전화 통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학교에 가기 싫어 일부러 늦게 간단다. 선생님들도, 학생들도 마음에 안 들고 과학의 달이다 편지 쓰기 대회다 행사가 너무 많단다. 고등학생 형 같은데, 듣다 보니 내 마음과 똑같다! 현실감 있는 묘사로 “내 얘기잖아”라며 공감할 아이가 많을 것 같다. 깜짝 반전도 재미를 더한다. ‘엄마의 착한 아들’ ‘영혜에게 약간 불만이 있다’ 등 모두 5편의 이야기가 실렸다. 고개를 깊이 끄덕이다 어느새 다른 이의 마음도 헤아리게 된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고양이를 돌보게 된 소년과 할아버지. 놀고 먹이고 안아 주기만 하면 될 거라 여겼는데 웬걸, 생각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고양이는 원숭이 인형, 장난감 자동차를 내밀어도 반응이 없다. 새우, 빵을 건네도 본 척도 하지 않는다. 벽난로에 불을 피우고 같이 자려고 하자 창문 너머로 도망쳐 버린다. 소년과 할아버지는 고양이를 찾아 숲속으로 달려가는데…. 일상이 이어지다 고양이를 따라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자 동물들이 바이올린, 첼로, 기타, 피리를 연주하는 놀라운 세계가 펼쳐진다. 할아버지는 사자와 손잡고 춤추고, 소년은 고양이를 품에 안은 채 신나게 논다. 한바탕 꿈이었을까. 집으로 돌아온 후 신기하게도 고양이가 소년에게 얌전히 안긴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들며 예상치 못한 짜릿한 모험의 세계를 선사하는 작품이다. ‘SNOW: 눈 오는 날의 기적’, ‘RAIN: 비 내리는 날의 기적’ 등 저자의 기적 시리즈 중 다섯 번째 그림책.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어떻게 그동안 너를 잃지 않고 자랄 수 있었니!” 영화 ‘블랙 위도우’에서 성인이 된 나타샤(스칼릿 조핸슨)와 재회한 과학자 멜리나(레이철 바이스)는 놀라워하며 나직하게 탄식한다. 오래전 이들이 위장 가족으로 살 때 멜리나는 나타샤의 엄마 역할을 했다. 소녀들의 뇌를 조종하고 살인 병기로 만드는 ‘레드룸’이라는 끔찍한 프로그램 속에서 지냈음에도 나타샤는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주체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존재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나타샤는 답한다. “(어릴 적) 당신이 가르쳐 줬잖아요. 아플수록 강해지는 거라고.” 블랙 위도우는 코로나19로 극장가가 얼어붙은 가운데서도 25일 현재 관객수 240만 명을 넘기며 흥행몰이 중이다. 짜임새 있는 이야기에 화려한 액션 그리고 자매애가 어우러져 스크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영화를 본 후 멜리나가 나타샤에게 건넨 대사가 기억에 남았다. 나 자신을 잃지 않는 것. 삶에서 기억하고 실천해야 할 중요한 명제지만, 코로나19로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이 줄어들고 혼자만의 시간이 늘어난 요즘 이를 자주 곱씹어 보게 된다. 원하든 원치 않든 사람들은 점점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단 휴가를 보내는 방식의 변화가 눈에 띈다. MZ세대 가운데는 골프, 서핑, 피트니스 등 자신이 하고 싶은 운동을 중심에 두고 휴가를 보내는 이들이 많다. 이른바 ‘스포츠케이션(Sports+Vacation)’이다. 휴가 때 서울 시내 호텔에 머물며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한 30대 여성은 매우 만족스러웠다고 했다. 그는 “머리를 비우고 오직 몸에만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운동에 몰입하다 보니 마치 명상하는 것 같았다. 내 몸과 마음을 돌보는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수도권에서 오후 6시부터 3명 이상 모일 수 없게 되자 약속을 취소한 경우도 많지만 오랜만에 둘만의 모임을 가진 이들도 있다. 한 출판사 대표는 3명이 만나기로 했다가 인원을 2명으로 줄였다. 그는 “둘 다 술을 즐기지 않아 식사만 했다. 그리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는데 술도 마시지 않고 3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나눈 경험은 신선했다. 돌아보면 예전에는 어색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술을 마신 것 같다”고 했다. 자연스레 관계의 깊이에 대해서도 짚어보게 된다. 발이 넓기로 유명한 한 기업인은 “일대일로 만날 수 없는 사이는 진정한 관계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여럿이 어울릴 수는 있지만 둘이 만나면 데면데면하고 할 말이 별로 없다면 깊이 있는 관계라고 할 수 없다는 것. 그의 말에 공감하며 둘이서 편하고 솔직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들이 누구인지 꼽아봤다. 그리고 요즘, 다시 이를 떠올려 보고 있다. 코로나19는 큰 고통을 주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과 관계를 돌아보게 만들기도 한다. 이 시기가 지난 후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내면은 보다 단단해지길, 관계는 좀 더 깊어지길. 손효림 문화부 차장 aryssong@donga.com}

엄마, 아빠, 친구 렉스, 옆집 할머니, 빵집 아저씨, 코흘리개 콜리…. 한 마을에 사는 고양이들은 모두 노란색 줄무늬를 가졌다. 하얀 고양이인 나는 붓으로 온 몸에 노란 줄무늬를 그린다. 이건 특급 비밀이다. 사실이 드러나면 다들 비웃고 놀아주지 않을 테니까. 늘 조심 또 조심한다. 어느 날, 갑자기 비가 후드득 내려 노란색 물감이 지워졌다. 하얀 몸이 드러난 나…. 이제 어떡하지? 친구들은 더 이상 나와 놀지 않을까. 알고 보니 렉스는 빨간색 얼룩무늬를, 수지는 보라색 무늬를 가졌다. 빅터와 조이는 온 몸이 갈색이다. 다들 노란 줄무늬가 없었다! 모두 진짜 무늬를 드러내며 당당하게 지낸다. 남들과 같은 모습으로 살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앙증맞은 그림과 함께 흥미진진하게 들려준다. 나만이 지닌 특징은 그 자체로 소중하다. 개성 있는 고양이들의 모습과 다채로운 표정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이거 내 얘기잖아!” 책을 펼친 아이들 상당수는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주인공은 스마트폰을 뚫어지게 보며 걸어가는 한 소녀. 강아지들이 우르르 따라와도, 코끼리가 물을 뿌려도, 돌고래들이 신나게 노래를 불러도 아이는 모른다. 아파서 누워 있을 때조차 눈을 스마트폰에서 떼지 않는다. 스마트폰 속 세상이 재미있지만, 고개를 들어 주위를 돌아보면 놀랍고 즐거운 진짜 세상이 있다는 걸 속삭이듯 들려준다. 스마트폰이 떨어져 부서지자 슬퍼하는 아이. 하지만 이내 얼굴이 환해진다. 강아지, 돌고래, 곰, 기린…. 아이가 못 보고 지나친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 눈을 맞추고 마음을 나누는 건 신나고 가슴 뛰는 일이다. 소녀는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멀리 볼 수 있다. 그리고 더 많은 걸 느낄 것이다. 스마트폰 때문에 아이와 실랑이를 벌이다 지친 이들이라면 아이 곁에 슬쩍 책을 놓아두면 어떨까. 저자 역시 같은 고민을 하다 그림책을 냈다고 한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버려진 우체통 안에 사는 겁 많은 토끼 윌로우. 어느 날 우체통으로 편지 한 통이 날아든다. 테오가 달님에게 보낸 편지다. 엄마 생일인 오늘, 밤에 찾아와 달라고. 달님에게 편지를 전해야 한다는 생각에 윌로우의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밖에 나가기 겁났지만 열두 시가 되기 전 해내야 하기에 길을 나선다. 산꼭대기에 오르지만 달님은 너무 멀리 있다. 새 등에 올라타지만 이내 쿵 떨어진다. 윌로우는 포기했을까. 천만의 말씀. 커다란 풍선을 만들어 이를 잡고 둥실 떠올라 마침내 달님을 만난다. 테오네 집에 가 빛을 뿜어내는 달님. 두 페이지를 꽉 채운 환한 달님은 감탄이 나올 만큼 어여쁘다. 테오와 엄마의 얼굴엔 큰 웃음이 핀다. 연달아 실패하고도 끝내 방법을 찾아내 멋지게 성공한 윌로우에게 짝짝짝 박수를 보낸다. 앞 면지에 윌로우가 그린 그림은 검은색이지만 뒤 면지의 그림은 알록달록한 색깔로 채워져 있다. 모험을 하기 전과 후의 윌로우 마음을 보여준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기증한 문화재와 미술작품 등을 전시하는 ‘이건희 기증관’이 이르면 2027년 서울에 들어선다. 문화체육관광부는 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2만3181점을 한곳에 모은 이건희 기증관이 들어설 후보지는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 또는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부지라고 밝혔다. 정부는 올해 안에 최종 부지를 결정해 2027년 또는 2028년까지 완공할 예정이다. 올해 4월 이 회장 유족은 정부에 문화재와 근현대 회화 등 2만3181점을 조건 없이 기부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이건희 컬렉션’을 위한 별도 미술관을 설립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대구와 부산을 비롯한 각 지방자치단체가 삼성과의 인연, 지역균형발전 등을 내세워 치열한 유치전을 벌였다. 그러나 문체부는 전문가 논의 등을 거쳐 서울 도심지를 낙점했다. 황희 문체부 장관은 “40여 개 지자체가 유치 의사를 밝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후보지를 검토했다. 국민의 문화 향유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두고 고민한 결과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시관 이름은 기증자의 이름을 넣어 ‘이건희 기증관’으로 쓸 예정”이라고 덧붙였다.문체부 “많은 사람 볼수 있게”… 이건희 기증관, 서울 도심에 후보지, 용산-송현동 압축문화체육관광부와 전문가들이 이건희 기증관 후보지 선정에 특히 고려한 부분은 연구·보존 전문 인력, 관람객의 접근성, 기증자의 철학이다. 문화재, 미술 전문가들로 구성된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회’의 김영나 위원장은 “유화, 도자기, 고문서와 서적 등 다양한 작품이 망라된 이건희 컬렉션을 연구하고 관리하려면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뿐만 아니라 국립중앙도서관 등 여러 기관 전문가들의 협업이 필요하기에 서울이 적합하다”며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도 수월하게 관람하려면 서울에서도 도심이어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공터인 송현동 부지는 대한항공으로부터 소유권을 넘겨받는 중인 서울시가 이건희 기증관 건립을 위해 무상 제공하겠다는 입장이고, 용산 부지는 문체부 소유여서 부지 매입 비용은 들지 않는다. 건물 건립에는 1000억 원 이상이 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김 위원장은 개인 의견이라고 전제하며 “용산 부지는 진입로를 만들어야 하지만 송현동 부지는 걸어서 바로 갈 수 있어 더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서울 지역 두 곳이 후보지로 발표되자 그간 유치전을 벌였던 지자체들은 강력 반발하며 재선정을 요구했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지역 국민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지역 무시와 오만 행정의 극치”라고 올렸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비수도권을 대상으로 공정한 절차에 따라 대상지를 다시 선정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문체부는 후보지 변경이나 재선정은 없다는 단호한 입장이다. 이건희 기증관이 완공되는 2027∼2028년부터는 한 자리에서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 금동보살입상(통일신라시대·국보 129호), 이중섭의 ‘황소’(1950년대), 살바도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1940년) 등 국내외 명작을 모두 만날 수 있다. 김 위원장은 “기증품은 한 자리에 전시해야 작품을 수집한 기증자의 철학을 잘 구현할 수 있고 기증 문화도 활성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 유족이 광주시립미술관(30점), 전남 광양시 전남도립미술관(21점), 대구미술관(21점), 강원 양구군 박수근미술관(18점), 제주 이중섭미술관(12점)에 기증한 작품은 이건희 기증관에 들어가지 않는다. 기증관이 마련되기 전에도 이건희 컬렉션은 다양한 형태로 대중과 만난다. 이달 21일 국립중앙박물관은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 명작’을 열어 주요 작품을 공개한다. 기증 1주년인 내년 4월에는 특별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때 리움과 지방박물관·미술관의 소장품을 함께 전시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내년 하반기부터는 연 3회 이상 지역별 대표 박물관, 미술관을 돌며 전시를 할 예정이다. 이건희 컬렉션의 작품별로 고유번호를 부여하고 사진 촬영을 해 등록하는 작업은 2023년까지 마무리될 예정이다. 등록 및 조사·연구가 완료된 작품은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e뮤지엄(전국 박물관·미술관 소장품을 볼 수 있는 플랫폼)을 통해 공개한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기증한 문화재와 근현대 회화 등을 전시하는 ‘이건희 기증관’의 설립 지역으로 서울이 결정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7일 서울정부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2만 3181점을 한 곳에 모은 이건희 기증관이 들어설 후보지는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 또는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부지라고 밝혔다. 최종 부지는 올해 안에 결정한다. 황희 문체부 장관은 “국민의 문화 향유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두고 후보지를 선정했다. 동서양은 물론 여러 장르와 시대를 아우르는 작품들을 수집해 기증한 이건희 회장의 철학을 반영하려면 ‘이건희 컬렉션’은 한 곳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작품을 연구하고 보존·관리하는 전문 인력이 필요한데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작품을 감상하려면 서울 도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황 장관은 “전시관 이름은 ‘이건희 기증관’이며 2027년이나 2028년에 완공될 예정이다”고 말했다. 올해 4월 이 회장 유족은 정부에 문화재와 근현대 회화 등 2만3181점을 조건 없이 기부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이건희 컬렉션을 위한 별도 미술관을 설립하라고 지시했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에서 활약하는 세계적인 축구선수 손흥민(29·사진)이 한국관광 명예홍보대사가 됐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한국을 세계에 널리 알리기 위해 6일 손흥민을 한국관광 명예홍보대사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한국을 닮은 손흥민, 이번엔 한국과 너의 닮은 점도 찾아봐(This is my Korea, What’s yours?)’를 주제로, 빠르고 열정적이고 영리한 손흥민의 특징과 한국관광의 매력을 연계한 홍보영상도 제작할 예정이다. 손흥민은 1분 30초 분량의 이 영상에 출연해 한국의 다양한 매력을 전한다. 영상은 관광공사가 운영하는 ‘Imagine your Korea’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을 통해 올해 9월 공개할 예정이다. 손흥민의 개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도 올릴 계획이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때때로 불행한 일이 좋은 사람들에게 생길 수 있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즌2’(이하 슬의생)에서 양석형 산부인과 교수(김대명)가 시험관 시술 세 번 만에 얻은 아이를 유산한 산모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다. ‘눈치 없는 곰탱이’로 불릴 정도로 감정 표현에 서툰 그가 환자와 개인적으로 연락하지 않는다는 자신의 원칙을 깨고 건넨 위로였다. 산과 교과서 첫 장의 첫 문장이라고 한다. 지난달 17일 첫 방송부터 시청률 10%를 넘기며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슬의생’은 진한 위안을 준다. 온 가족이 모여 ‘본방 사수’를 한다는 집도 많다. 슬의생 등장인물들이 보여주는 배려는 친절을 넘어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고 거기서 몇 걸음 더 나아가 고민한 끝에 나온 것이기에 감동을 준다. 시청자 댓글에는 ‘현실에는 이런 의사들 없음’이라는 글이 적지 않다. ‘슬의생은 판타지’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렇다. 현실에서 이런 일이 없는 건 아니지만 상당히 드물다. ‘드라마니까’라고 하면 그만이지만, 실제 삶에서 감동까지는 아니더라도 작은 친절을 기대하는 건 불가능할까. 일단 개인의 인성이 일차적으로 중요하겠지만 전적으로 이에 기댈 수만은 없다. 필요한 건 타인을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만드는 사회 구조다. 전날 당직을 하고 다음 날 저녁까지 외래 진료를 하면서도 마지막 환자의 불안까지 잠재워주는 이익준 간담췌외과 교수(조정석)의 강철 체력과 정신력을 모든 의사가 지닐 수는 없다. 병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아기가 세상을 떠난 후 자신을 ‘연우 엄마’라고 부르는 유일한 존재인 의료진을 만나러 수시로 병원을 찾는 이와 커피를 마시며 “연우 생각이 나면 언제든 오시라”고 말하는 외과 레지던트 장겨울(신현빈). 잠잘 시간도 부족한 레지던트 중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기자는 한 대학병원에서 오후 늦게 마지막 외래 환자로 진료를 받은 적이 있다. 한눈에 봐도 피로에 찌든 의사의 목소리는 힘겨웠다. 차트에 기록하던 그는 양손을 계속 주무르더니 결국 양해를 구했다. “오늘 너무 많은 환자를 진료해 손이 저리고 떨린다”고. 기자는 처방전을 받아가란 말을 듣고 진료실을 나왔다. 증상에 대해 자세히 물어볼 수가 없었다. 김범석 서울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에세이 ‘어떤 죽음이 삶에게 말했다’에서 휴가를 간다고 했다가 환자 보호자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은 경험을 썼다. 아픈 환자를 두고 어떻게 휴가를 가느냐고. 5년간 가족과 제대로 시간을 못 보낸 그는 속상한 마음으로 휴가를 갔지만 푹 쉬고 나니 치료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됐고 환자와의 관계도 더 좋아졌다고 한다. 친절은 편안한 몸과 마음에서 나온다. 이는 사회 모든 조직과 구성원에게 해당된다. 쉴 틈 없이 몰아치며 쫓기듯 일하는 이에게 배려를 기대할 순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우리 사회는 서로를 보듬는 여유라는 완충 장치를 지니게 하는가. 슬의생을 보며 떠올린 질문이다. 손효림 문화부 차장 aryssong@donga.com}

전학생 안리가 후코 옆자리에 앉게 됐다. 후코는 “뭐든 물어 봐”라고 말하고, 음악 시간이 되자 안리와 음악실에 간다. 이상하게 뭔가 치밀어 오른다. 후코는 나와 제일 친하고 음악실도 늘 같이 가는데…. 다음 날 체육 시간에 함께 있는 안리와 후코를 보니 왈칵 질투가 난다. 아, 이러지 않기로 했는데 마음이 제멋대로다. 소중한 누군가를 빼앗긴 것 같을 때 느끼는 서운함을 200% 공감하게 묘사했다. 엄마가 아기인 막내만 챙긴다며 우는 동생을 보고 그 심정을 온몸으로 이해하는 나. 인심 쓰듯 동생과 놀아주는 모습에 슬쩍 웃음이 나온다. 체육 시간에 다리를 다친 안리를 보건실에 데려다주며 얘기하다 보니 마음 문이 빼꼼 열린다. 마라톤에서 선두를 다투는 나를 응원하는 안리, 일등한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후코의 말에 마음이 스르르 풀린다. 그렇게 친구가 한 명 더 생겼다. 여러 관계 속에서 다채로운 빛깔의 감정을 느끼며 쑥쑥 자라는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

정규직 채용 공고를 하고 막상 고용계약서를 쓸 때는 계약직 서류를 내미는 회사, 폐쇄회로(CC)TV로 감시하며 업무 태도를 지적하는 상사, 화장실도 5분 내에 다녀와야 하는 세무법인에서 일하다 쓰러진 고교 3학년 현장실습생…. 노무사인 저자는 일터의 각종 갑질을 나열하며 일과 사람에 대해 성찰한다. 괴롭힘에 시달리고 건강이 망가질 정도로 과중한 업무에 신음하면서도 일터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급여, 소속감 등 회사가 많은 걸 제공하는 데다 일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스스로를 뒷전으로 두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다른 직장을 못 구할 것이라는 두려움도 한몫한다. 갑질을 하는 사람이 떠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여긴다. 하지만 저자는 잘라 말한다. 이 모든 걸 방관한 회사 그 자체가 문제라고. 갑질을 당하면 자기 탓을 하지 말고 이의 제기를 해야 한다. 아프면 병원에서 치료받아야 한다. 산재를 신청할 수 있는 기간은 병원 치료를 받은 날로부터 3년이다. 막말하는 상사와 눈 마주치지 않기, 소리 지르는 상사에게 대답 안 하기, 성차별적 농담에 웃지 않기처럼 작게나마 항변하는 것도 방법이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자신이 몸담은 조직이 어떤지, 문제는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퇴직급여 받는 방법, 임금 체불 대비법 등을 부록으로 담았지만 구체적인 지침서라기보다 직장과 사람의 관계, 일과 사람의 가치에 대한 생각을 담은 에세이로 느껴진다. 저자는 당부한다. 과도한 노동 끝에는 번아웃이 있기에 무너지기 전에 퇴사하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일이라는 걸 잊지 말라고. 생각이 복잡해질수록 오로지 자신만을 우선순위에 둘 때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다고. 이 순간도 번뇌하고 있는 직장인이라면 강력한 돌직구로 받아들일 것 같다.손효림 기자 arys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