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찬

황인찬 기자

동아일보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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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특파원 황인찬입니다. 한일 관계가 더욱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본에 왔습니다. 일본의 오늘을 보여드립니다.

hic@donga.com

취재분야

2026-01-11~2026-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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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혼혈여인의 예술혼, 피와 땅의 경계 허물다

    김혜련은 이런 여자다. 한국인 아버지와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 외모는 이국적이지만 어린 시절을 한국에서 보냈기에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고, 중년의 나이에 한국에서 뮤지컬 음악 감독으로 성공한 인물. 그렇다. 그녀의 실제 모델은 박칼린(44)이다. 이문열과 박칼린은 뮤지컬 ‘명성황후’에서 원작자와 음악 감독으로 함께 일한 적이 있다. 현실과 소설을 혼동하기 쉬운 상황에 대해 이문열은 ‘작가의 말’에서 분명히 선을 긋는다. “1993년 늦겨울 뉴욕의 어느 호텔에서였다. 어릴 적 한국에서 자랐던 그녀가 한국 아이들의 따돌림을 받아 미국으로 가거나, 리투아니아를 빠져나와 미국에 찾아온 그녀의 이모 얘기를 들으며 소설화 유혹을 느꼈다. 하지만 모델과 창작된 캐릭터는 다르다. 나는 이 소설과 그녀의 실제 삶이 혼동되지 않기를 바란다.” 작품은 공연 연출을 하는 소설 속 화자인 ‘나’와 음악 감독을 하는 김혜련의 몇 번의 만남과 헤어짐을 물 흐르듯 추적해간다. 재수생이던 나는 소꿉놀이를 하던 이국적 외모의 소녀에게 끌리고, 세월이 흘러 둘은 부산의 한 작은 극단의 조연출과 풋내기 음악 감독으로 만난다. 작품 후 헤어졌던 이들은 공연이라는 운명적 매개체를 통해 서울 대학로나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우연히 만나 반가워하고, 인연에 놀라하며, 다시 작품을 하곤 헤어진다. 반복되는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둘은 가까워지지만, 닿을 듯 말 듯한 관계는 세월의 흐름 속에 희석되고 잊혀진다. “집착은 그리움의 다른 말이며 시간의 파괴력에 대한 부질없는 저항이지만 그게 부질없기에 진한 연민과 감동을 느끼게 한다”고 작가는 ‘나’를 통해 말한다. 둘의 연민의 관계 외에도 옛 소련의 침공으로 리투아니아를 떠나온 김혜련의 가족사가 펼쳐진다. 약소국의 수난사와 그것을 온몸으로 헤쳐온 한 가족의 삶은 지구 반대편에서도 똑같다. 작품을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이들의 뮤지컬 창작 스토리다. ‘나’와 김혜련 등은 뉴욕 브로드웨이의 공연들을 닥치는 대로 보며 월북한 시인 임화의 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다룬 창작 뮤지컬을 제작한다. 아이디어 착안부터 이를 무대화하는 과정이 실감나게 그려져 눈길이 간다. 김혜련은 한국에서 유명 음악 감독으로 단숨에 떠오르지만 몇몇 스캔들이 보도되고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면서 순식간에 추락한다. ‘정파와 지역성에 바탕을 둔 논리로 무장하고 이제 막 열린 인터넷 광장을 선점한 그들은 새로운 형태의 대자보로 무자비한 한국판 문화혁명을 진행하고 있었다’는 게 작가의 배경 설명. 2001년 좌파 시민단체들로부터 ‘현대판 분서갱유’를 당했던 작가는 이국에서 온 음악 감독의 눈을 통해 우리 문화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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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가 안정효 씨 “떡값 2억 받으면, 떡 2억 원어치 먹였어”

    “선거 때면 철새 정치인들 얘기 많이 하잖아. 그런데 내 소설에서는 철새 정치인들이 하늘을 날아서 바다 건너 섬으로 가. 진짜 철새처럼 말이야. 아휴∼, 그 생각만 하면 지금도 웃기네. 허허.”소설가 안정효(70)가 껄껄 웃었다. 집필을 마친 장편 ‘역사소설 솔섬’을 설명하면서였다. ‘하얀 전쟁’ ‘은마는 오지 않는다’ 등 사실적이고도 묵직한 소설을 써왔던 작가는 작심하고 펼친 문학적 변신이 스스로 생각해도 즐거운 듯했다. 15일 서울 은평구 갈현동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원고지 4000장 분량으로 책 서너 권은 너끈히 채울 만한 이번 소설의 장르는 이렇다. ‘판타지+역사+정치+풍자소설.’ 일흔에 쓴 ‘해괴한 작품’의 정체성을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막소설이지, 막 쓰는 소설. 나는 그동안 너무 고지식하게 ‘하얀 전쟁’이니 이런 걸 써왔는데 돌아보니 내 속에는 이런 걸 쓰고 싶은 충동이 있었던 거야. 상상력에 제한을 안 두는 자유분방한 소설 말이야. 쓰면서도 즐거웠어.”“좀 황당하긴 하지”라며 작가 스스로 설명한 스토리는 이렇다. 가상의 섬 ‘솔섬’이 점차 융기해 거대해지면서 이 땅의 이윤과 권력을 차지하려는 투기꾼과 조직폭력배, 정치인들이 몰려든다. 각종 권모술수와 사기, 이합집산이 펼쳐지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한국사회를 풍자한다. 시간적 배경은 2007년에 시작해 1945년에 마치는 역순으로 잡았다.가상의 공간과 인물을 내세웠지만 실제 인물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쿠데타를 하겠다”고 공언하고 다니던 군 장성이 솔섬으로 쫓겨난 뒤 섬의 권력을 찬탈하거나, 사이버 선거전 승리를 통해 대권을 쥐는 인물 등에서 쉽게 박정희,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릴 수 있다.“이승만 시대, 군사정권 시대(박정희, 전두환 전 대통령), 진보 시대(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등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눠 각 시대를 풍자했다. 특정 시대를 두둔하기보다는 잘못된 우리 정치와 정치인들의 모습을 다양하게 풍자하려고 했다.”작품 속에선 떡값 2억 원을 받은 정치인들에게 실제 떡 2억 원어치를 먹게 하고, 기업인들이 산으로 야유회를 가자 인근에 있던 정치인들이 단체로 마중 나가 후원 요청을 하며 매달린다. 최루탄을 팔아 거부가 된 기업인이 촛불집회 열풍이 불자 양초 장수로 변모하고, 조폭은 ‘정치인 수련학교’를 세워 격투기장으로 변모한 국회에서 싸울 파이터들을 키워낸다. 가장 가까운 시점을 2007년으로 못 박았지만 전국에 도랑을 쳐 가재를 잡는다는 설정에서 4대강 사업을 유추할 수 있는 등 최근 정치 행태도 담았다.“정권이 여러 번 바뀌었지만 지나고 보면 그 행태는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아. 본격적인 정치 소설을 쓸 생각도 해봤지만 결국 정치 얘기는 풍자가 들어가야 재미있는 것 아니겠어. 정색하고 쓰는 건 신문에 매일 나잖아.”정치 얘기는 내년 대선 얘기로 흘렀다. 1700억 원 상당의 보유 주식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얘기를 꺼내자 안정효는 말을 아꼈다. “몇 번 만났고 좋은 인상을 갖고 있었지. 글쎄, 아까운 사람 하나 또 망가지겠구나 싶어.”안정효는 내년에 작품을 출간할 계획이다. 당초 출간을 의뢰했던 출판사는 정작 탈고가 되자 “부담스럽다”며 출간을 포기했다. 새 출간 계약은 아직 하지 않았다.“그래도 정치 얘기인데 대선 앞두고는 나와야 하지 않겠어. 정 안 되면 나 죽고 나서 딸들이 내도 좋고, 허허.”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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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인들 야구방망이 들고 한판 겨룬다

    한국 문단의 유이(唯二)한 야구단들이 창단 후 첫 맞대결을 펼친다. 문인들의 자존심 대결은 원고지에서뿐만 아니라 그라운드에서도 뜨겁다. 문단의 긴장감도 높다. 2008년 문단에서 최초로 창단한 문인야구단 ‘구인회(球人會)’와 지난해 창단한 시인야구단 ‘사무사(思無邪)’가 19일 오후 3시 경기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자유로리그 야구장에서 일합(一合)을 겨룬다. 언뜻 보면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다. 1930년대 김기림 정지용 등이 참여했던 순수문학단체인 ‘구인회(九人會)’에서 팀명을 따온 구인회는 시인 박형준 감독 아래 박상 박성원 백가흠(이상 소설가) 고운기 정용효 박준(이상 시인) 등 문인뿐만 아니라 출판 관계자까지 참여한 ‘다국적 구단’. 소설가 박범신이 명예구단주로, 은희경이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고 등록선수만 20명이 넘는다. 반면 사무사는 신생 구단인 데다 시인들로만 구성된 까닭에 선수가 모자라는 실정이다. 김두안 감독 아래 김요안 김병호 이승희 등이 뭉쳤지만 9명의 경기 최소 인원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 시인의 가족과 친구를 수소문해 경기를 치르고 있다. 하지만 “구인회에만은 질 수 없다”는 각오가 대단하다. 팀명은 ‘생각에 사악함이 없다’는 뜻으로 공자의 논어에서 따왔다. 양 팀 감독의 포부는 한국시리즈를 앞둔 프로야구 명장들 못지않게 진지했다. 박형준 구인회 감독은 “방심은 금물이다. 박빙의 경기가 예상된다. 결국 수비 하나가 승부를 가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두안 사무사 감독은 “객관적인 전력은 우리가 약세지만 경기 초반 흐름을 가져올 수 있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조직력에 승부를 건다”고 말했다. 변수는 날씨다. 이들은 6월 첫 대결을 가질 예정이었지만 전날부터 내린 장대비 때문에 경기가 무산된 바 있다. 기상청은 경기가 열리는 19일 전국적으로 비가 내린다고 예보했다. 문인 선수들은 수중전도 불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문단의 야구 라이벌 대결이 해를 넘길 것인가. 하늘에 달렸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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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아 채우는 잠깐의 出家… 시인이 권한 꿀맛 산책길

    시인들에게 산책의 의미는 무엇일까. 김규성 시인은 “사람들은 도시화될수록 일상의 번잡에 찌든 영혼을 맑히고 속엣말을 가다듬으러 바쁜 시간표를 쪼개 산책을 나선다. (산책은)일부러 고독과 몸의 수고를 빌려 자연에서 멀어진 발길을 자연에 바싹 붙이는 ‘본원적 귀향’, 즉 자아 회복을 위한 충전”이라고 말한다. 김사인 시인은 산책을 “잠깐식의 출가(出家)”라고 정의한다. 길을 천천히 걸으며 사물들에 하나하나 눈을 맞추면, 안다고 여겨온 풍경의 깊고 아득한 내면으로 떠나게 된다는 것이다. 계간 ‘시인세계’가 겨울호에 ‘시인들이 좋아하는 산책길’이란 기획특집을 실었다. 정진규 문충성 김사인 나태주 문정희 허형만 등 시인 16명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산책길과 그 위에서 얻은 여유, 단상들을 풀어냈다. 4년 전 서울을 떠나 경기 안성시로 이사 간 정진규 시인의 산책은 성묘에 가깝다. 매일 선대 어른들의 묘원인 기유원(己有園)을 둘러보는 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나는 자주 아침마다 300여 년을 거슬러 산책하고 있는 사람이다. 수백 년 장송의 솔숲에서 나오는 피톤치드의 아침 공기로 산림욕 샤워를 누린다.” 제주에 사는 문충성 시인은 현지의 ‘올레 걷기’ 열풍을 소개하며 사라봉 공원과 별도봉 장수산책길을 추천한다. 특히 서쪽으로는 제주 시가지, 북쪽으로는 제주 바다와 제주항, 남쪽으로는 한라산을 비롯한 오름이 두루 보이는 사라봉 정상의 절경을 예찬한다. 정일근 시인은 “30대 전부를 경주 남산과 사랑했다”고 털어놓았다. “나에게 경주 남산은 산이 아니었다. 하나의 길이었다. 눈이 내리는 날은 눈을 맞고, 보름달이 뜨는 저녁이면 달빛에 젖어 걸었다. 그렇게 백 번쯤 걸었을 때 얼굴 없는 돌부처가 웃으며 말을 건넸다”고 그는 말한다. 대구에 사는 문인수 시인은 고모동을 산책하며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떠올린다. ‘고모, 고모동이라는 데가 대구의 변두리에 있다./늙으신 어머니를 돌아본다는 사연이 젖어 있다. 생전/어머님의 손을 놓고 돌아서는, 돌아서 가다 또 돌아보는, 이별 장면을 담은 흘러간 유행가/‘비 내리는 고모령’의 현장이다’(시 ‘고모역의 낮달’에서) 한 잔의 테이크아웃 커피처럼 도심 산책을 즐기는 시인들도 있다. 문정희 시인은 집 근처 선릉과 봉은사, 코엑스 주변 광장을 산책하며, 허형만 시인은 여의도 한강 둔치를 거닐며 시상을 가다듬는다. 나태주 시인은 걷기의 미학을 이렇게 말한다. “길 위에서는 누구나 사색가가 된다. 서투른 철학가가 된다. 글을 쓰는 사람은 더욱 그렇다. 길은 지상에 만들어진 기다란 공간의 연속이지만 그것은 또 마음속으로 이어지고 이어지는 정신의 통로이기도 하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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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태극기는 수천 년 전에 만들었다?

    기원전 3804년 배달국에서는 1년이 360일이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90일씩으로 나눴고 ‘월(달)’ 개념이 없었다. 천문을 연구하는 관직인 ‘천백’에 오른 해달은 천황(天皇)에게 “열두 달로 나누면 더 간편해진다”고 상소를 올린다. 천황은 크게 기뻐하며 1년이 열두 달인 환력(桓曆)을 시행한다. 우리 민족의 시초 배달국의 국가 정비 과정을 그린 소설. 천문을 통해 음양과 팔괘의 이치, 날짜와 시간 개념을 깨치며 이를 생활에 접목하는 진보적 지식인들의 노력을 그렸다. 태극 문양을 바탕으로 한 태극기를 수천 년 전 배달국에서 만들었다는 발상이 신선하다. 한국천문연구원장을 지낸 저자는 “나라의 근본이 되는 모든 것이 하늘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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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와 차 한잔]‘희랍어 시간’ 펴낸 소설가 한강

    소설가 한강(41)이 소설 ‘희랍어 시간’(문학동네)을 냈다. 원고지 600여 장 분량의 경(輕)장편이다. 하지만 8일 저녁 서울 광화문의 카페에서 마주앉은 작가는 “경장편이 아닌 장편”이라고 강조했다. “길이는 짧지만 저에게는 무게가 가벼운 게 아니에요. 누가 뭐래도 저의 다섯 번째 장편입니다.” 애착이 큰 연유는 이렇다. 작가는 2008년 늦가을 지독한 슬럼프에 빠졌다. 언어에 대한, 글쓰기에 대한 고민이 깊어져 한 줄도 쓰지 못하는 위기가 찾아왔다. 그는 ‘희랍어 시간’의 초고를 쓰며 이 고민을 힘겹게 뚫고나갔다. 이듬해 봄 150여 장의 스케치를 완성했을 때 깊은 수렁을 빠져나온 듯했다. 그 느낌에 힘입어 한동안 손을 놓았던 ‘바람이 분다, 가라’를 완성했다. 이 작품은 지난해 동리문학상을 받았다. “‘바람이 분다, 가라’가 격렬한 느낌이었는 데 반해 이번 작품은 한 남자와 한 여자에 대한 조용한 이야기예요. 소멸하는 삶 속에서 서로를 단 한순간 마주보는 사람들을 다뤘죠.” 점심을 걸렀다는 한강은 땅콩크림을 바른 베이글 한 개와 따뜻한 코코아를 달게 먹으며 말을 이었다. 그는 이 작품을 네 번 고쳐 썼다. 쓸 때마다 분량이 늘었고, 결말도 달라졌다. 6월 초부터 두 달 반 동안은 출판사 문학동네의 인터넷 카페에 연재하기도 했다. 소설에서 희랍어 강사인 남자는 독일에 있는 가족과 떨어져 서울에서 홀로 산다. 그는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병을 가졌다. 그의 수강생 중에는 한 여자가 있다. 듣기는 하지만 어릴 때 병을 앓아 말을 하지 못하는 여자다. 여자는 이혼한 남편에게 아이를 빼앗기고 ‘말’을 찾기 위해 희랍어를 배운다. ‘언어를 찾는다’는 점에서 작품 속 여자와 작가가 오버랩된다고 하자 한강은 ‘푸하하’ 웃었다. “여자하고 제가 언어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것은 맞겠네요. 하지만 소멸하고 빛을 잃어가는 사람들을 그렸다는 점에서 결국 우리 모두의 자화상을 그린 거죠.” ‘결여된 삶’을 살아가는 남녀는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된다. 늦은 밤 남자가 희미하게 보이는 여자에게 이렇게 말을 건넨다. “지금, 택시를 부르겠어요.” 말을 할 수 없는 여자는 남자에게 다가와 손가락으로 그의 손바닥에 가만히 적는다. ‘첫 버스를 타고 갈게요.’ 그렁그렁 눈물이 가득 찬 슬픈 눈과 같은 소설은 시종 조용하고 담담하게 남녀의 일상을 따라간다. 발자국 소리도 내지 않는다. 그는 “소설의 절정 부분이라는 게 꼭 격렬하고 시끄러울 필요는 없다. 조용하게 흘러가는 절정도 가능하다”고 했다. “작품을 완성하면 작가가 작품 속에서 ‘나가야’ 하는데 그 과정이 이번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이 소설은 아프고 슬픈 얘기지만 저에게는 따뜻했습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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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 나온 책]엄마의 마지막 눈물 外

    ○ 문학 엄마의 마지막 눈물(이순교 지음·종문화사)=합창곡 ‘염소와 촌할아비’ ‘노인과 바다’ 등의 작곡가인 저자가 대구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작곡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자전적 소설. 1만2500원. 남자를 빌려 드립니다(박석근 지음·민음사)=돈을 받고 남편 역할을 대신해 주는 남성, 전망 좋지만 유독 주인이 자주 바뀌는 집 등을 소재로 현대인의 욕망과 파멸을 그린 소설집. 1만1500원. 아빠의 별(최문정 지음·다차원북스)=세계적 발레리나인 딸과 군인인 아버지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가족 소설. 진한 부성애가 책장 가득하다. 1만2000원. ○ 인문 모든 것은 진화한다(앤드루 페이비언 엮음·에코리브르)=가장 작은 동물 세포로부터 도시, 사회, 소설, 그리고 원대한 우주까지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를 읽기 쉽게 정리했다. 1만6000원. 韓의 건축문화(후지시마 가이지로 지음·곰시)=전 도쿄대 교수인 저자가 1922년부터 1986년까지 한반도 구석구석을 발로 뛰며 우리의 건축과 고미술, 문화재 등을 기록했다. 2만5000원. 미친 연구 위대한 발견(빌리 우드워드 외 지음·푸른지식)=천연두를 차단해 1억 명 이상의 목숨을 구한 과학자 빌 페이지 등 연구에 몰입해 어마어마한 생명을 구해낸 연구자들의 사연을 한 권으로 묶었다. 2만5000원. 교역 오백년기담(김동욱 풀어 옮김·보고사)=조선시대 야사와 야담을 국한문혼용체로 저술한 야담집 ‘오백년기담’을 우리말로 풀어 옮겼다. 조선 초 사회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 1만2000원.○ 학술 불온한 신화 읽기(박효엽 지음·글항아리)=인도 철학이 낳은 가장 위대한 경전이라 일컫는 ‘바가바드기타’를 비판적 시각으로 해설한 책. 이 경전에 담긴 메시지를 현대사회의 관점에서 해석했다. 1만5000원. 몸으로 역사를 읽다(한국서양사학회 엮음·푸른역사)=몸에 대한 서양의 지적 발자취를 살핀 책. 고대엔 몸을 우대했지만 중세엔 몸의 욕망을 죄악으로 여겼다. 현대의 몸은 어떻게 역사에 기록될까. 1만8500원. 20세기 성인교육철학(피터 자비스 지음·동문사)=성인이 된 후에도 왜 학습을 해야 하고, 성인 대상 교육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등을 20세기 교육사상가들의 철학과 행적을 통해 풀어냈다. 2만 원.○ 실용·기타 인생의 고비에서 망설이게 되는 것들(이영만 지음·페이퍼로드)=삶의 갈림길에서 후회 없는 선택을 갈망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기계발서. 기자생활을 하면서 직접 만난 인물을 중심으로, 선택의 모든 과정을 아우르는 흥미진진한 사례 23가지를 실었다. 1만3000원. 나는 영화가 좋다(이창세 지음·지식의숲)=영화기자 출신으로 영화 프로듀서이자 배우인 저자가 감독, 프로듀서, 배우, 스턴트맨, 촬영, 조명, 음악, 미술, 편집, 마케터, 평론가 등 업계 종사자들의 삶을 통해 ‘영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갖가지 대답을 들려준다. 1만7500원. 한 뼘 더 살기 좋은 대한민국 만들기(이기석 지음·바움)=우리나라 청년실업의 근본적 원인과 완화 방안을 모색한다. 공신력 있는 자료와 국내외 사례들을 꼼꼼히 활용해 객관성과 실증성 확보에 노력을 기울였다. 1만5000원. 위험을 최소화하는 시나리오 경영(케스 반 데르 헤이든 지음·21세기북스)=9·11테러를 예측하고 철저한 대비를 주장했던 경영 컨설턴트 겸 미래학자 피터 슈워츠의 ‘시나리오 경영론’을 다뤘다. 내용을 보완한 새로운 판. 3만5000원.○ 어린이 황금 갑옷을 빌려줄게(정진 글·에스더 그림·아이앤북)=누구나 숨고 싶을 때가 있다. 태평이는 거북이로부터 등딱지를 빌려 곤란할 때마다 그 안으로 숨는다. 한 번에 1분씩만 쓸 수 있다. 하지만 등딱지 안에 숨는 게 늘 좋지만은 않다. 9000원. 나처럼 말해 봐!(미셸 피크말 글·토마스 바스 그림·국민서관)=철학하는 피콜로 시리즈. 좋아하는 고양이와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한 피콜로는 고양이는 고양이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마음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된다. 1만2000원. 반토막 서현우(김해등 글·이광익 그림·사계절)=키가 작고 말라 ‘반토막’으로 불리는 서현우는 자작나무 숲으로 비밀 탐험을 떠난다. 싸움짱 강경호와 반장 오귀빈은 있는 대로 잘난 척하며 앞장을 서지만 폐가에서 탈출할 출구를 찾은 사람은…. 8800원.}

    • 2011-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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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라카미 하루키 “스물아홉에 난데없이 소설 써야겠다는 생각이…”

    “스물아홉이 되고 난데없이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뭔가 쓸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도스토옙스키나 발자크에 필적할 가망은 없었지만. 딱히 대문호가 될 필요는 없으니까….”노벨 문학상 후보로 매년 거명되고 있는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62·사진)는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등단할 당시를 이렇게 추억했다. ‘노르웨이 숲’ ‘댄스 댄스 댄스’ ‘태엽감는 새’ ‘1Q84’ 등 숱한 베스트셀러를 배출하며 30년 넘게 이어진 창작 활동은 그에게는 외로운 여정이기도 했다.“돌이켜보면 나는 소설을 쓰는 데 도움 받을 스승도 없었고 동료도 없었다. 스물아홉이라는 나이에 난데없이 소설을 쓰기 시작해 줄곧 혼자 써왔다.”다음 주 출간하는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비채)에는 그의 미발표 에세이 69편이 담겨 있다. 진지한 문학론도 있고 음악과 인생에 대한 진솔한 단상도 가득하다. 저자는 각 에세이에 새로 소감을 추가하는 정성을 들이기도 했다. “설날 ‘복주머니’를 열어보는 느낌으로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하루키에게 소설, 소설가란 어떤 의미일까. 그는 “새로운 말은 그 어디에도 없다. 지극히 예사로운 평범한 말에 새로운 의미나 특별한 울림을 부여하는 것이 소설가가 할 일”이라며 “소설가란 많은 것을 관찰하고, 판단은 조금만 내리는 일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1Q84’에서 덴고가 듣는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가 작품의 깊이를 더하는 것처럼 그의 작품에는 음악이 자주 소재로 등장한다. “음악이든 소설이든 가장 기초에 자리 잡은 것은 리듬이다. 자연스럽고 기분 좋으면서도 확실한 리듬이 없다면, 사람들은 그 글을 계속 읽어주지 않겠지. 나는 리듬의 소중함을 음악에서 배웠다.”리듬감에 대한 그의 애착은 소설의 텍스트를 넘어 창작 태도로까지 이어진다. “더 쓸 만하다고 생각될 때 과감하게 펜을 놓는다. 그렇게 하면 다음 날 집필을 시작할 때 편해진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도 아마 비슷한 이야기를 썼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계속하는 것, 리듬을 단절하지 않는 것. 장기적인 작업을 하는 데에는 그것이 중요하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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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아마존닷컴 ‘베스트 10’

    4월 미국에서 출간된 소설가 신경숙의 장편 ‘엄마를 부탁해(Please Look After Mom)’가 세계 최대 인터넷서점 아마존닷컴이 선정한 ‘문학·픽션 부문 올해의 책 베스트 10’에 선정됐다. ‘엄마를 부탁해’는 올해 출간된 모든 책을 대상으로 하는 ‘올해의 책 베스트 100’에도 이름을 올렸다. ‘엄마를 부탁해’는 미국에서 초판 10만 부를 찍으며 현지 출판계의 높은 기대를 받았고 출간 하루 만에 아마존닷컴 전체 순위 100위권에 진입했다. 아마존닷컴 상반기 결산에서도 ‘편집자가 뽑은 베스트 10’에 꼽혔고,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순위 양장본소설(Hardcover Fiction) 부문에서도 14위까지 오르며 호평을 받았다.이 책의 영문판을 낸 출판사인 크노프는 현재 9쇄까지 찍었으며, 내년 문고판을 선보여 열기를 이어갈 예정이다. 또 이르면 내년 하반기 신경숙의 다른 장편인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를 출간할 계획이다. 신경숙 작품의 해외 판권을 관리하는 이구용 케이엘매니지먼트 대표는 “외국 서적의 비중이 3%에도 못 미치는 미국 시장에서 이룬 순위 진입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인정받은 결과로 본다”고 말했다. ‘엄마를 부탁해’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31개국에 판권이 팔렸고 15개국에서 출간됐다. 일본에서도 9월 출간돼 한 달 만에 3쇄를 찍어내며 1만3000부가 팔렸다. 한국 유명 작가의 책들이 앞서 3000여 부 팔린 것에 비하면 높은 호응이다. 국내에서 ‘엄마를 부탁해’는 2008년 11월 출간 이후 현재 180만 부를 넘겼으며 내년 초 200만 부를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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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울의 ‘우’와 ‘울’을 쪼갠 세상

    문학과지성사 시인선이 지난달 400호 기념시집 ‘내 생의 중력’을 낸 데 이어 최근 401호 시집으로 김혜순 시인의 ‘슬픔치약 거울크림’을 출간했다. 기념시집이 300호대 시집의 대표작들을 엮은 것임을 감안하면 이번 시집으로 본격적인 400호대 항해를 시작한 셈. 문학과지성사는 401호의 상징성을 감안해 이 회사와 인연이 깊은 원로 작가에게 출간 기회를 주려고도 했지만 ‘항상 새로움을 추구한다’는 취지에 맞춰 중견 시인 김혜순을 택했다. 1979년 등단한 김 시인은 자기반복을 최소화하며 늘 새로운 시적 탐구를 계속하는 시인으로 꼽혀왔다. 김수영문학상, 현대시작품상, 소월시문학상, 미당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받았다. ‘슬픔치약…’은 그의 열 번째 시집이다. ‘우 다음엔 울이라고/세상에 가득 찬 수학이 출몰하는 밤/존경하는 시인님들은 아직 죽음의 탯줄에 매달려 계시고’(‘우가 울에게’) ‘길에서 집에서 머리채 잡혀/실종된 여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해파리처럼 젖은 머리를 내리고 물속 땅속 어디에 묻혀 있을까’(‘책 속에서 나왔다가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여자처럼’) 우울의 ‘우’와 ‘울’을 쪼개 순차적으로 돌아가는, 틀에 박힌 세상을 꼬집고, 투명한 해파리를 통해 머리를 풀어헤친 불행한 여인을 응시한다. 시인은 낯선 시어들이 가득한 ‘김혜순 월드’에 대한 초대장으로 이런 인사말을 남겼다. ‘침묵과 비밀, 그 무궁한 풍부 속으로 발을 들여놓는 즐거움! 내가 또 이 부재의 비밀을 당신에게 투척하니 흡입하시어 부디 궁핍하시길.’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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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퓨처 컴퍼니’ 앞세워 인간을 교묘히 지배하는 惡

    11권짜리 ‘고양이 학교’로 판타지 소설 분야에서 입지를 다진 작가(사진)의 신작이다. 한국과 프랑스에서 동시 출간되며 화제가 된 바 있다. 1, 2권을 먼저 선보였고 이달 말 마지막 3권이 나온다. 초등학교 6학년 여학생 ‘유리’는 잃어버린 고양이를 지하철에서 찾다가 우연히 정체 모를 할머니를 만난다. 그 할머니의 도움으로 미지의 세계인 ‘잃어버린 것들의 도시’로 가는 지하철을 타게 된다. 그곳은 ‘어머니의 숲 여왕’이 다스리는 곳이었지만 ‘산카라’라는 악의 근원이 지배한 뒤 폐허로 변한 곳이었다. 힘이 커진 산카라는 인간 세계까지 지배하기 위해 자신의 심복인 ‘달팽이 모자를 쓴 사람들’을 보내고, 결국 ‘잃어버린 것들의 세계’와 인간 세계가 모두 위험에 빠지게 된다. 판타지 소설의 매력이라면 작가가 창조한 거대한 판타지 월드를 여행하는 것. 사람들이 버리거나 잃어버린 각종 물건과 사람들이 ‘잃어버린 세계’에 쌓여 있다는 설정은 신선하지만 구체적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이전에 읽은 듯한 ‘낯익음’의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유리가 ‘검은 무사 하라’ ‘사냥꾼 솔본’ ‘허깨비 야바달’ 등의 도움을 받아 원정대를 꾸리고 산카라가 있는 ‘그림자의 탑’을 향해 가는 험난한 여정은 ‘반지의 제왕’을 연상케 한다. 비밀 통로를 통해 인간 세상과 잃어버린 세계가 순간 이동처럼 이어지는 설정은 ‘나니아 연대기’와 비슷하다. 1권에선 유리가 동료들과 함께 그만그만한 적들을 만나면서 행군하는 과정이 그려지는데 다소 지루하다. 산카라를 만나 일전을 벌이지만 괴물에게 상처를 입히는 데 그친다. 작품이 생동감을 얻게 되는 것은 유리가 현실 세계로 돌아온 2권부터. 산카라는 다국적 기업 ‘퓨처 컴퍼니’를 앞세워 시의 행정을 장악하고 사람들을 통제하려 나선다. 사람들은 이에 반발해 시위대를 조직하고, 유리는 이 모든 위기를 본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현재 산카라가 있는 ‘귀도시’로 향하기로 결심한다. 현실과 가상 세계를 오가며 펼쳐지는 유리와 산카라의 대결은 흥미롭다. 하지만 유리를 뺀 다른 등장인물이 각자 독특한 매력을 가지지 못하고 유리를 돕기만 하는 조연 역에 그치는 것은 아쉽다. 유리 쪽 세력에만 10명이 넘는 캐릭터가 등장하기 때문에 산만하기도 하다. 작품은 퓨처 컴퍼니가 현실 세계를 지배하면서 학생들을 성적 지상주의자로 키우고, 상인들에게는 일방적으로 통합된 할인 카드를 사용하도록 강압하는 과정을 그린다. 우리 사회의 지나친 교육 경쟁, 대기업의 횡포 등을 비판한 것이다. 그러나 그 메시지가 너무 직설적이어서 판타지 소설의 환상과 들어맞지 않는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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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세 박경리’ 47년 만에 만난다

    ‘토지’의 작가 박경리(1926∼2008)가 서른여덟의 나이에 집필했던 장편소설 ‘녹지대(綠地帶)’가 탈고 47년 만인 내년 1월 책으로 나온다. 부산일보에 1964년 6월 1일∼1965년 4월 30일 연재됐던 이 작품은 박경리의 작품 연표 등을 통해 제목만 알려져 있었을 뿐 학계에는 내용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소설은 1960년대 서울 명동의 음악다방 ‘녹지대’를 배경으로 시인, 조각가 등 예술가들의 사랑 얘기를 다뤘다. 당시의 시대상은 거의 다루지 않고 불륜, 배신 등의 치정(癡情)을 그리는 데 집중한 통속적 연애소설이다. 한국인의 수난사를 넉넉하고 푸근한 마음으로 그렸던 ‘토지’와는 전혀 다른 작가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그동안 박경리에 대한 연구는 많았지만 대표작인 ‘토지’에 집중됐고, 범위를 넓힌다고 해도 ‘김약국의 딸들’ ‘시장과 전장’ ‘파시’ 등 몇 작품에 그쳤다. ‘녹지대’처럼 신문에 연재된 작품은 통속적이라는 이유로 학계가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 1963년 전남일보에 연재됐던 ‘그 형제의 연인들’도 책으로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녹지대’는 2008년 박사 논문을 준비하던 김은경 KAIST 강사가 당시 신문을 일일이 살펴 자료를 모았고, 이를 출판사 북폴리오가 교정 편집해 책으로 나오게 됐다. 60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다. 전쟁고아로 자라나 시인을 꿈꾸는 여주인공 하인애는 시화전을 준비하다 만난 김정현을 첫눈에 반해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김정현은 유부녀인 ‘그 여자’(이름이 나오지 않는다)와 불륜의 관계. 하인애는 ‘그 여자’에게 협박을 당하고, ‘그 여자’의 남편인 조각가 민상건으로부터 김정현이 자신의 육촌동생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듣는다. 불륜과 삼각관계, 그리고 근친상간까지 펼쳐지는 이 소설에는 미스터리 요소도 가미돼 있다. 김정현이 과거 과실치사로 친구를 죽였으며 ‘그 여자’가 그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라는 것. 김정현이 홀연히 행방을 감추면서 하인애가 그를 찾아가는 과정도 나온다. 박경리의 딸인 김영주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은 “녹지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출판을 결정하신 작품이다. 생전 추리소설을 즐겨 읽으셨던 어머니는 이 작품에 추리적 요소를 많이 가미하셨다”고 말했다. 작품은 김정현을 향한 하인애의 순종적인 사랑과 ‘그 여자’의 편집증적인 사랑을 대비시키며 흡인력을 높인다. 하인애의 친구 윤은자 또한 두 남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등 음악다방 ‘녹지대’를 배경으로 엇갈린 사랑의 모습을 다양하게 조명했다. 김은경 강사는 “녹지대에서 나타난 치열하거나 유연한 사랑은 박경리 문학의 ‘원숙함’이 ‘젊음’과 함께 나타난다는 특징이 있다”며 “주로 ‘미망인’으로 대표되는 6·25전쟁 1세대가 아니라 6·25 2세대 청춘들의 자유로운 꿈과 사랑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과 다르다”고 평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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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복? 엘도라도행 로또 한장이면 된다

    똥이다, 돼지다, 길몽(吉夢)이다. 생각만 하면 흐뭇한 미소가 절로 번진다. 가슴이 벌렁거린다. 영수증 쪼가리 같은 로또 한 장 샀지만 역시 꽝이다. 하지만 다음 주는 금세 온다. 위안이 된다. 눈앞에 퍼런 지폐가 우수수 쏟아지고 찬란한 황금빛에 눈이 부신다. 아 그곳은 엘도라도, 월급봉투로는 닿을 수 없는 그곳에 가기 위해 오늘도 티켓을 산다, 복권을 산다. ‘이달에 만나는 시’는 11월 추천작으로 최금진 시인(41)의 ‘황금을 찾아서’를 선정했다. 이 시는 지난달 나온 시집 ‘황금을 찾아서’(창비)에 실렸다. 시인 이건청, 김요일, 손택수, 이원, 장석주 씨가 추천에 참여했다. 최금진 시인은 “다다를 수 없는 허황된 꿈을 다룬 시”라고 했다. “3년 전쯤 복권을 한창 많이 살 때 쓴 작품입니다.(웃음) 복권을 사는 것을 한탕주의나 배금주의로 바라보지는 않습니다. 서민들에게는 복권만이 신분 상승의 기회가 되는 게 현실이니까요. 가장 원하는 희망사항(복권 당첨)에 늘 속임을 당하게 되고, 속을 줄 알면서도 계속 사게 되니까 더 절망스러운 겁니다.” 199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은 2007년 낸 첫 시집 ‘새들의 역사’로 오장환문학상을 받았다. 그가 면도날처럼 도려낸 현실은 섬뜩하고 냉혹하다. “현실을 낙천적으로 혹은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싶지 않아요. 우리가 사는 현실을 그냥 사실적으로 그려냈을 뿐입니다. 제가 부정적인 게 아니라 실제 세상이 그런 거죠.” 손택수 시인은 “최금진의 금광은 고통스럽다. 폐광 속에 묻어둔 채 그만 잊고 지내고 싶은 고통스러운 현실이 욱신욱신 일그러진 모습으로 육박해 들어온다. 그의 시를 통해 마주하는 당대의 자화상은 냉소와 비애가 뒤섞인 채로 무섭도록 치열한 리얼리즘을 선물한다”며 추천했다. “팽팽한 긴장과 은유가 없어도, 최금진 시인이 시로 그려낸 그의 가계(家系)와 개인사(個人史) 속에 숨어 있는 몽환적인 연대기는 떠돌이 악사의 연주처럼 쓸쓸하면서도 따스하다. 밥 짓는 굴뚝의 잿빛 연기처럼 매캐하면서 침 돌게 하는 시집을 묶어낸 그에게 소주 한잔 따라주고 싶다”고 김요일 시인은 말했다. 장석주 시인의 추천평은 이렇다. “암울하고 절박한 언어의 전압이 높다. 편하게 읽히지 않는다. 다만 그의 시가 아버지와 만날 때 진정성의 깊이를 얻고 호흡이 안정되는 느낌이 든다.” 이건청 시인은 오정국 시인의 시집 ‘파묻힌 얼굴’을 꼽으며 “강한 시 정신으로 시적 대상의 근원까지 하강해 사물들을 다시 호명해 내고 있으며, 그렇게 발견된 새로운 사물들이 존재의 결핍을 메워주는 시적 성과를 보여준다”고 평했다. 이원 시인은 조동범 시인의 시집 ‘카니발’에 대해 “현실의 비극성을 아이러니를 통해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현실의 비극성을 벗어난 장면까지를 책임지고 보여준다”고 평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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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지와 광장, 넓고 깊은 세계”

    “최인훈 선생님께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시상식이 지연되는 점 죄송합니다.” 토지문화재단과 박경리문학상위원회, 동아일보가 공동 제정한 제1회 박경리문학상의 시상식이 열린 29일 오후 강원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토지문화관. 사회자가 수상자이자 장편소설 ‘광장’의 작가인 최인훈 씨(75)의 건강에 이상이 생겨 시상식이 지연된다고 밝히자 식장을 가득 메운 150여 명의 참석자들은 술렁였다. 최 씨는 이날 오전 9시쯤 경기 고양시의 집을 출발해 점심께 원주에 도착한 뒤 문학상 주최 측과 점심식사를 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원주에 도착할 무렵 지병인 협심증으로 가슴 통증을 호소했고, 급히 원주 기독병원으로 목적지를 돌려 진료를 받는 긴급 상황이 발생했다. 잠시 후,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최 씨가 예정시간보다 10분 늦게 시상식장에 모습을 나타낸 것. 부축을 받고 수상 소감을 말하려 단상에 오른 최 씨는 거동이 불편했지만 목소리에는 힘이 느껴졌다. “오는 도중 건강상 문제가 발생해 시상식을 몇 분 지연시켜서 죄송합니다. 몸도 흔들흔들하고 그런 감도 있지만 여러 이야기를 토로하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최 씨는 박경리 선생에 대해 “한국 현대사의 방대한 화폭 위에 광활, 광대한 인물을 성찰하여 생명과 평화의 의미를 밝힌 분”이라며 “박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만든 문학상의 첫 수상자가 돼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라고 말했다. 박경리문학상은 민족의 수난사와 시대의 아픔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1926∼2008년)을 기리기 위해 제정됐으며 문학작품이 아니라 소설가를 대상으로 한다. 상금은 1억5000만 원으로 국내 문학상 가운데 최고이며, 내년부터는 해외 작가들에게 문호를 개방해 국내 문학상 가운데 최초의 세계문학상으로 탄생한다. 박경리문학상위원회 위원장인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인사말에서 “최 선생은 문학 본연의 가치를 지키며 세상과 타협하지 않은 이 시대의 진정한 작가로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의 보편성 속에서 자리 잡는 데 큰 기여를 하셨다”며 “박경리 문학상도 편협과 이념의 도그마를 넘어 사랑과 평화라는 이념을 실현시키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설가 최일남 씨는 축사에서 “박경리와 최인훈 선생은 세속에 빠지지 않고 고집스럽게 속 깊은 작가로 일관한 것이 서로 비슷하다. 박 선생이 강원도 원주 땅 이 오봉산 아래, 토지문화관을 굽어보며 한층 흡족해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쌀쌀한 날씨에 간간이 빗방울까지 내려 야외에서 치를 예정이던 뮤지컬 ‘우리는 친구다’ 공연과 청소년 백일장은 모두 실내에서 펼쳐졌다. 궂은 날씨였지만 오봉산을 물들인 형형색색의 단풍과 짙은 운무가 빚어낸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에 참가자들은 탄성을 질렀다. 30일 ‘토지와 바느질-김혜련 개인전’을 끝으로 제2회 박경리 문학제는 막을 내렸다.원주=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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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사회]42만2000여 종 식물 이름엔 인류역사가 흐른다

    ‘식물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그리스 철학자 테오프라스토스(기원전 372년경∼기원전 287년)가 식물을 연구할 당시만 해도 그가 이름을 붙인 식물 종류는 500여 개에 머물렀다. 현재 학계에선 42만2000여 종의 식물이 파악됐다. 이 책은 2000년 넘게 이어진 식물학자들의 노력과 그로 인해 ‘이름을 갖게 된’ 식물들의 역사를 700쪽 넘는 분량에 담았다. 기원전 사람들은 주로 식물을 약초나 음식의 개념으로 바라봤다. 테오프라스토스는 ‘식물이 인간에게 어떤 효용성이 있나’를 넘어 처음으로 ‘식물 사이에 어떠한 연관성이 있나’란 관점에서 연구를 진행했다. 그는 식물을 성장 습관, 줄기와 잎, 열매와 뿌리 등 다양한 지표로 구분하며 식물학의 기초를 닦았다. 그의 연구에는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도 큰 영향을 끼쳤다. “식물과 동물의 지식도 형이상학이나 천문학 지식만큼 중요하다”고 아리스토텔레스가 평소 역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테오프라스토스가 토대를 닦은 식물학은 당시 탐미주의적이던 아테네인들에게 외면당했고, 그는 1000년이 넘은 뒤에야 선구적 자연과학자로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출판 기술의 발전이 불러온 식물학 부흥 역사도 이 책은 짚는다. 두루마리 형태의 파피루스를 대신해 서기 100년경 파피루스 종이들을 묶은 현재 형태의 책이 나오면서 식물도감의 제작이 용이해졌다. 중세 구텐베르크의 인쇄기가 보급되면서 식물학은 한층 보급에 탄력을 받는다. 하지만 저작권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해적판 식물도감’이 활개를 치면서 오류가 많은 식물도감들이 유통되는 폐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화가들도 식물학 발전에 역할이 컸다. 사진 기술이 발명되기 전까지 책에 담기는 식물들의 시각적 정확성은 화가가 식물의 모습을 얼마나 생생하게 그려주느냐에 달려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촛불에서 나온 검댕을 잎에 칠한 다음 종이에 대고 눌러 잎사귀를 지탱하고 있는 잎맥과 골을 정교하게 표현했다. 독일의 화가 뒤러는 꽃이나 잎이 솟아나는 방식의 차이들을 면밀히 화폭에 담아 식물학 발전에 기여했다. 식물을 알파벳순으로 처음 배열한 고대 그리스 의학자 갈레노스, 영국 성직자이자 식물학 연구자인 윌리엄 터너, 오늘날 사용하는 생물 분류법인 이명법(二名法)을 고안한 칼 폰 린네 등의 연구사도 정리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 원예전문기자인 저자는 과학, 종교, 역사를 아우르며 2000년 넘게 이어진 식물학의 흐름을 되짚는다. 고대와 중세 식물도감에 실린 오래된 식물 그림들을 살펴보는 즐거움도 크다. 방대하고도 세세한 설명은 전공자에게는 반갑겠지만 일반인 대상의 ‘식물학 입문서’로는 지나치게 전문적인 느낌이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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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예술]불행, 다시 생각하면 다행

    “길을 잘 몰라서 정말 죄송합니다. 택시 운전을 하려면 길부터 알고 핸들을 잡았어야 하는데 갑자기 사업이 망하다 보니 두서가 없었습니다.” 6개월 전까지 중소기업체 사장이었다가 핸들을 잡게 된 중년 남성. “고생과 심려가 많으셨겠다”고 저자가 위로하자 그 남성은 되레 호쾌하게 웃었다. “택시 운전을 서너 달 해보니 제가 세상을 너무 모르고 살았구나 싶었습니다. 이 나이에 세상 공부 다시 하게 됐으니 얼마나 다행인가요.” 중견 소설가가 펴낸 이 책의 한 토막. ‘불행’을 ‘다행’으로 여기며 새 출발을 다짐하는 희망찬 얘기가 가득한 산문집이다. 2009년 1월 시작해 현재 동아일보에 연재 중인 ‘작가 박상우의 그림읽기’에서 아흔아홉 편을 선별했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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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사회]사랑하면 왜 괴물이 될까

    어떤 오누이가 서로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부부의 연을 맺었다. 천제(天帝)가 분노해서 이들을 산 깊은 곳에 유배 보냈다. 추위와 굶주림에 지친 오누이는 산속에서 서로 끌어안고 죽었다. 신조(神鳥) 한 마리가 이들에게 불사(不死)의 풀을 물어다 주었다. 7년 만에 부활한 이들은 몸이 한데 붙어서 두 개의 머리에 네 개의 팔이 달렸다. 이들의 후손이 몽쌍씨(蒙雙氏)다. 중국 신화에 나오는 몽쌍씨 얘기다. 저자는 기괴한 괴물이 된 오누이의 몸에서 사랑의 코드를 읽어낸다. “둘이 ‘오누이’였다는 것은 사실 형벌의 전제 조건이 아니다. 그것은 둘이 한 몸에서 나서 한 몸으로 돌아갔다는 뜻이다. 사랑해서 ‘한 몸이 되다’는 비유가 더 이상 비유가 아니다. 이들은 정말로 한 몸이 됐기 때문이다.”신화나 전설 속에서 사랑의 상징을 이끌어내고 해석한 책은 많다. 하지만 이 책의 시각은 독특하다. 인간과는 거리가 먼 괴물들의 모습, 더 구체적으로는 기괴하게 생긴 그들의 몸뚱이에 내재된 사랑의 의미를 끄집어내기 때문이다. “괴물들이 (자신의 몸을 통해) 보여주는 것은 몸의 몸이며 사랑의 사랑이다. 모든 괴물은 순수한 멜랑콜리아(melancholia)를 구현한다. 몬스터(monster)란 본래 라틴어로 ‘보여 주다(monstere)’라는 뜻이기도 하다.”중국 고대 신화집이자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에는 일비민(一臂民)이란 족속이 있다. 팔이 하나란 뜻이지만 사실 온몸이 다 반쪽인 사람이어서, 이들은 둘이 합쳐야만 한 사람이 된다. 예멘의 산속에 사는 괴물인 니스나스도 반쪽의 몸으로 살아간다. 중국 신화 속 관흉국(貫匈國) 사람들은 가슴에 구멍이 뚫린 채로 살아간다. 세상과 격리된 채 결핍된 신체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에서 사랑의 결여를 읽는 게 저자의 해석이다. “‘한 몸이 되다’ ‘반쪽이 되다’ ‘가슴에 구멍이 나다’와 같은 비유를 그들은 몸의 차원에서 완전하게 실현했다.”동서양의 신화나 전설, 소설 등에 나오는 100여 개의 괴물들의 신체적 특징을 ‘이름’ ‘약속’ ‘망각’ ‘짝사랑’ ‘유혹’ 등 16개 키워드로 해석해 묶었다. 저자는 2005년 ‘태초에 사랑이 있었다’에서 세계 여러 나라의 신화를 정신분석의 논리로 풀어가기도 했다.‘괴물의 몸에서 사랑의 여러 행태를 읽는다’는 접근은 신선하지만 억지스러운 해석도 있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기도 한다. 신체의 앞부분은 사자, 뒤는 개미의 모습을 한 괴물 ‘미르메콜레온’이 아무것도 먹지 못해 태어나자마자 죽는 것에 대해서 ‘불가능한 첫사랑의 운명’을 연결짓는 것이나 자르고 잘라도 뱀 머리카락이 다시 돋아나는 히드라에 대해서 “해야 할 말이 있었지만 그녀의 고백은 제지당하고 부정되고 무시당했다”라는 해석 등이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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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진석 추기경 - ‘엄마를 부탁해’의 작가 신경숙, 대한민국의 오늘과 내일 그리고 희망을 이야기하다

    《 10·26 재·보궐선거 하루 뒤인 27일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진석 추기경(80·오른쪽)과 ‘엄마를 부탁해’의 신경숙 작가(48)가 만났다. 두 사람은 선거 민심과 문학, 행복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작가의 ‘팬’을 자처하는 추기경은 성경책과 세례명 ‘그레이스’를 선물하는 등 각별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 27일 오전 서울 명동대성당 옆 주교관 추기경 집무실에서 신경숙 작가(48)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정진석 추기경(80)과 인사를 나눈 뒤 가방 속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찾았다. 잠시 뒤 그가 꺼낸 것은 손때가 묻은 성경(聖經)이었다. 신 작가는 “내가 미국에 있을 때 추기경께서 보내준 것”이라며 소설 ‘엄마를 부탁해’의 미국판과 영문판을 정 추기경에게 선물했다. 신 작가가 “2년 전 뵈었을 때보다 더 건강해 보여 마음이 놓인다”고 말하자 정 추기경은 “신 작가의 작품이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을 잘 듣고 있다”고 덕담을 건넸다. 두 사람은 10·26 재·보궐선거를 통해 드러난 민심과 세대갈등, 문학과 종교, 가족과 행복 등 다양한 주제로 1시간 반 동안 이야기를 나눴다. ―추기경께서 성경을 보내준 이유가 궁금합니다. ▽신 작가=여러 나라를 다니는 동안 (성경을) 읽고 싶어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께 부탁했는데 추기경께서 직접 글을 쓴 성경을 보내주실 줄 몰랐죠. 해외에서 시차 때문에 새벽에 잠을 못 자는 날이 많았는데 성경을 읽으며 위안을 얻었습니다. ▽정 추기경=하느님이 신경숙 씨를 보살펴 주셔서 내가 선물할 기회를 주신 것 같습니다.(웃음) 정 추기경은 성경의 표지 다음 장에 ‘친애하는 신경숙 씨. 하느님의 훌륭한 도구로 선택되셨음을 축하드리고, 전폭적으로 후원할 것을 약속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늘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라고 썼다.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신 작가를 위해 ‘그레이스’란 세례명을 선물했다. 정 추기경이 세례명을 선물한 것은 처음이다. ―추기경께서도 연말에 새 책을 출간한다고 들었습니다. ▽정=안전한 금고가 있을까요? 정 추기경이 이렇게 말하고 입을 다물자 좌중에선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아∼ 제목이 ‘안전한 금고가 있을까?’예요”라고 웃으며 침묵을 깬 것은 신 작가였다. ▽정=독재자들이 재산을 많이 감춰뒀는데, 그 안전한 금고가 아닙니다. 하늘이 안전한 금고죠. ‘하늘에 보화를 쌓아라’, 즉 ‘남을 위해 선용하라’는 뜻입니다. ▽신=추기경께서 쓴 책이라고는 상상 못할 제목이네요.(웃음) 안 볼 수 없겠는데요. ―시민운동가 출신인 박원순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되고 안철수 씨는 대선후보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세대 간의 확연한 의식차를 보여준 선거라는 분석이 많습니다. ▽정=사람은 다 자기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하는데 그 책임을 안 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투표한 사람들도 자기 투표에 책임을 져야 하고, 정치를 하시는 분들도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능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갈등도 있었고 아쉬움도 있지만, 뽑힌 사람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끝까지 도와야 합니다. ▽신=충분히 예측된 투표 결과죠. 시민의식은 굉장히 올라왔는데 정치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들은 다 알고 있었는데) 정치 쪽만 모른 거죠. ―새 시장에게 하실 말씀이 있다면…. ▽정=사랑은 주고받는 거지 일방통행은 없습니다. 표 받은 만큼 국민에게 보답을 해야 합니다. ▽신=정말 동감입니다. ―암 투병 중인 최인호 작가를 보면서 종교와 문학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신=문학과 종교는 서로 통하고 의지하는 관계라고 생각해요. 문학이 제게 좀 더 가깝게 느껴지는 이유는, 문학 속에는 너무나 많은 오류를 지닌 사람들이 나오고, 그들을 저라고 생각해 편하기 때문입니다. 패배자들과 살아가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시선을 준다는 의미에서 문학과 종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정=돈이 아니라 부모에게, 선생님에게, 사회에서 인정받는 것이 인간의 행복입니다. (심지어) 하느님도 세상을 창조한 뒤 자기 작품을 알아주는 이가 없자 당신과 가장 비슷한 사람을 만든 겁니다. 작가도 자신을 알아주는 독자가 없다면 작품 활동을 할 수 없죠. ▽신=문학은 어찌 보면 끊임없는 세상에 대한 질문이고, 종교는 그것에 대한 대답 같습니다. 똑같이 인간을 사랑하고 의미를 부여하다 어느 순간 질문과 대답으로 갈라지는 게 문학과 종교 아닐까 합니다. ―그럼 기자는 어떻습니까. ▽정=창작하고 보도는 다르지 않나요.(웃음) ―신 작가는 최근 ‘엄마를 부탁해’ 일본판 출간 때문에 일본에 다녀왔는데요. ▽신=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인들이 겪고 있는 공황이나 상실감이 컸습니다. 재난 이후 가장 중요한 단어는 ‘가족’이랍니다. 지진 이후 오히려 결혼하는 사람도 많아졌고, 떨어져 살던 부부도 같이 살려고 한답니다. ▽정=재난을 당했을 때 인류애가 발휘된다면 그 재난을 좀 더 쉽게 잘 이겨낼 수가 있겠지요. ―동아미디어그룹의 종합편성TV 채널A가 12월 개국합니다. 어떤 방송이 되기를 바라는지요. ▽정=좋은 소식뿐 아니라 언짢고 보도하기 싫은 뉴스도 있을 겁니다. 어려운 뉴스일수록 희망을 불어넣는 멘트 하나를 더 부탁합니다. ▽신=제 책에 쓴 말을 인용한다면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는 말을 해드리고 싶어요. 어떤 방송을 하든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기를 바랍니다. ―요즘 무엇을 하실 때 가장 행복합니까. ▽정=요즘 기도할 때마다 올바르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묻습니다. ‘나한테 맡겨라’라는 대답을 들을 때 행복하죠. ▽신=시골(전북 정읍시)에 있는 어머니와 전화 통화할 때가 가장 행복해요. 어머니가 이야기를 계속 하는 것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추기경께서 아직도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묻고 있다니 놀랍습니다. 앞으로 계획은 어떻습니까. ▽정=6·25전쟁 중에 항상 ‘내가 마지막 날을 살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는데 여전히 그런 자세로 살고 있습니다. 저는 시간에 대해 엄격합니다. 저녁에는 ‘오늘 하루 어떻게 지냈나’ 생각하고, 아침에 눈 뜨면 ‘오늘 하루를 더 살게 해 주시는구나’라며 감사해요. 다른 계획보다는 하루, 한 순간을 가장 보람 있게 쓰려고 노력합니다. ▽신=미국에서 푹 쉬려고 했는데 못 쉬고 책 때문에 많은 여행을 했으니 새 작품을 쓰고 싶지요. 내용은 아직 비밀입니다. (정 추기경을) 만나 뵙고 나니 마음속의 빈곳이 채워지는 느낌입니다. 앞으로도 외로운 사람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셨으면 합니다.진행=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정리=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정 추기경-신 작가 “병마 떨치고 글 통해 세상에 힘을 주길” ▼암투병 중인 최인호 작가 쾌유기원 메시지최인호 “추기경 격려에 큰 힘 얻어”“최인호 작가는 글을 통해 나에게 큰 힘을 준 일이 많았습니다.”(정진석 추기경) “지난 작품을 쓰시면서 다른 작품을 쓰고 싶다고 하셨으니 또 작품이 나올 겁니다.”(신경숙 작가) 대담 중 정 추기경과 신 작가는 올해 5월 암과 싸우며 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출간한 소설가 최인호 씨(66·사진)의 빠른 회복을 기원했다. 가톨릭 세례명이 베드로인 최 작가는 2006년 동아일보를 통해 정 추기경과 특별회견을 했고 부부가 정 추기경과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다. 신 작가는 “미국에 있을 때 선생님의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책을 좀 보내달라고 해서 읽었다”며 “작가이자 개인으로 가장 나쁜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가장 좋은 쪽으로 자신을 바꿔가는 모습이 무엇보다 아름답다. 건강이 빨리 좋아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정 추기경은 최근 최 작가와 한 통화에서 “하느님께 모든 걸 맡기면 더 편해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이날 대담에 함께한 허영엽 신부는 최 작가의 요청에 따라 정 추기경과 전화를 연결했다. 최 작가가 나중에 ‘하느님이 쓰시는(사용하시는) 것을 꼭 믿으라’는 추기경의 말이 큰 힘이 된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정 추기경은 “아픈 분이 어디서 그런 글을 쓸 힘이 나올까 한참 생각했다”면서 “재주만 갖고 글을 쓴다면 그런 힘이 안 나온다. 나를 포함해 세상 많은 사람을 도와주고 있는 그 재능을 더 오래 발휘하기 바란다”고 말했다.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

    • 2011-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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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희숙씨, 신동아 논픽션 공모 최우수상

    제47회 월간 ‘신동아’ 논픽션 공모 시상식이 2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열렸다. 이날 시상식에서 이희숙 씨가 호주 카카두 국립공원을 등산한 이야기를 다룬 ‘연-태초(太初)의 품으로 들어가다’로 최우수상(고료 1000만 원)을 받았다. 김정숙 씨는 자신과 어머니의 신산한 삶을 울림 있게 전달한 ‘진혼(鎭魂)의 서(書)’로 우수상(고료 500만 원)을 수상했다. 최맹호 동아일보 대표이사 부사장은 “이희숙 씨가 관찰하고 성찰한 것을 글로 풀어내는 문장력이 대단했고, 김정숙 씨는 대한민국에서 여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절절하게 풀어내셨다. 두 분 모두 축하드린다”고 말했다. 신동아 논픽션 공모는 1964년 신동아 복간 사업으로 시작된 국내 대표적 기록문학상이다. 당선작은 신동아 11월호부터 게재된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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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가 김주영 “밉고 고집세고 억척스럽던 나의 어머니…”

    소설가 김주영(72)은 2년 전 아흔넷의 노모를 잃었다. 2009년 4월의 어느 새벽, 고향인 경북 청송군에 있는 아우가 “내려오셔야 되겠습니다”라고 짤막하게 부음을 전했다. 세찬 비바람이 유리창을 때리던 밤이었다. 단절음도 끊어진 수화기를 들고 일흔 살의 작가는 한참 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일찍이 남편을 잃고 날품팔이로 자식을 키운 어머니. 김주영이 여덟 살이던 1947년, 광복 직후의 극심한 혼란기에 징용 갔다 돌아온 새아버지에게 개가(改嫁)해 주변 사람들의 구설에 휘말렸던 어머니. 농사도 못 짓고 벌이도 없던 새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의 생계를 가녀린 어깨에 홀로 짊어졌던 어머니…. 세 끼를 온전히 챙겨 먹는 날이 드물던 유년 시절. ‘혼절할 정도의 가난’으로 당시를 추억하는 작가는 어머니의 부음을 주위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장례를 치렀다. “내 일생 동안 주변에 도움을 준 일이 없다. 내가 죽더라도 주변에 알리지 마라. 그리고 화장해 다오.” 두 번 세 번 간곡하게 남긴 어머니의 고집스러운 유언 때문이었다. 올해 인촌상을 수상한 김주영 작가가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초상화를 소설로 풀어낸다. 문학동네 인터넷 카페에서 17일부터 연재를 시작한 장편 소설 ‘잘 가요 엄마’. 원고지 1000여 장 분량으로 내년 1월쯤 연재를 마치고 책으로 나온다. ‘객주’(1981년) ‘천둥소리’(1986년) ‘화척’(1995년) ‘홍어’(1997년) 등의 작품에서 서민들 삶의 애환을 토속적 언어로 풀어냈던 그가 등단 40년 만에 친어머니를 주제로 삼아 소설을 집필하는 것. “친하게 지내는 지인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고향에 내려가 (어머니가) 개가하셔서 낳은 아우와 며칠을 같이 지냈죠. 장례를 함께 치르면서 어머니의 인생을 돌아보았습니다. 어머니와 나의 관계, 생전 의붓아버지와 나의 관계를요. ‘홍어’ 등 작품에서 우리나라의 어머니에 대한 얘기들을 많이 했지만, 제 어머니 얘기를 소설 전면에 내세운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겁니다.” 김주영은 광복과 6·25전쟁 시기의 궁핍했던 유년 시절에 대해선 각종 기고문과 작품에서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어머니와 새아버지, 동생에 대해서는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어머니를 보내고, 일흔이 넘은 원로 소설가가 스스로 ‘비참한 가정사’라고 말하는 가족 얘기를 꺼낸 이유가 무얼까. “어릴 적에는 어머니에 대한 원망도 있었지요. 하지만 지금 제 나이에 뭐 그렇게 숨기고 그럴 것이 있나 싶어요. 이름 없이 살다간 어머니에 대한 자서전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적어도 거짓말은 하지 말아야겠다 싶었고, 진실한 마음을 가지니까 주위의 시선에 대한 부담감도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일기를 쓰지 않는 작가는 오로지 기억력에 의지해 어머니의 삶을 하나씩 입체적으로 복원한다. “내 기억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가를 시험해보고 있다”는 그는 겉으로는 고집스러우면서도 속으로는 한없이 희생적인 어머니상을 그려낸다. 작품에서 20여 년 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작가의 서울 집을 찾은 어머니는 63빌딩도, 청와대 구경도 하지 않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며칠이나마 서울 구경을 하고 돌아가시라는 간청을 끝내 뿌리쳤던 어머니의 속내를 짐작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보고 싶었던 것은 서울 경치도, 며느리도, 손자나 손녀도 아닌 바로 평생 당신께 부담만 주었던 당신의 늙은 아들이었다.’ 김주영은 연재를 시작하며 인터넷에 짤막한 글을 올렸다. “어머니는 나에게 크나큰 행운을 선물했다. 어머니와 내가 함께한 시간 속에서 어머니는 나로 하여금 도떼기시장 같은 세상을 방황하게 하였으며, 저주하게 하였고, 파렴치로 살게 하였으며, 쉴 새 없이 닥치는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어머니가 내게 주었던 자유의 시간이었다. 그것을 깨닫는 데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황인찬 기자 hic@donga.com}

    • 2011-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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