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효주

손효주 기자

동아일보 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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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손효주 기자입니다.

hjson@donga.com

취재분야

2025-11-18~2025-12-18
국방38%
대통령30%
정치일반13%
남북한 관계7%
사고3%
역사3%
칼럼3%
산업3%
  • [인사]기상청 外

    ◇기상청 △차장 정홍상 ◇국민일보 ▽종교국 △부국장 겸 종교부장 염성덕 ▽논설위원실 △논설위원 정진영 김준동 ▽편집국 △정치국제센터장 김의구 △산업경제〃 박정태 △사회〃 김용백 △편집〃 겸 종합편집1부장 김태희 △외교안보국제부장 한민수 △산업부장 노석철 △문화부장 손영옥 △온라인뉴스부장 고승욱 △체육부장 직대 김영석 △심의위원 박철화 △〃 겸 국차장 남호철 ▽경영전략실 △재무팀장(부국장대우) 김철수 △총괄데스크(총괄팀장) 강의형 △인사기획팀장 천성우 △경영지원팀장 권혜숙 ▽선교홍보국 △선교홍보팀(국장대우) 김태순 △선교홍보팀(부국장대우) 최병희 ▽광고마케팅국 △총괄데스크(부장) 김성호 △영업2팀장 호임수 ▽사업국 △사업팀장 최창범 ◇한겨레신문사 ▽논설위원실 △논설위원 겸 환경전문기자 조홍섭 △〃 겸 종교전문기자 조연현 ◇KBS ▽국장급 △보도본부 보도국 주간 홍기섭 △〃 디지털뉴스국장 김종진 △정책기획본부 방송문화연구소장 성창경 ▽보도본부 보도국 부장급 △뉴스제작2부장 유석조 △〃3〃 곽우신 △사회1부장 조재익 △국제〃 이재강 △중국지국장 오세균(7월 1일자)}

    • 2014-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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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3년만에… 대관령 ‘5월의 눈’

    부처님오신날인 6일 강원 대관령에 눈이 흩뿌렸다. 적설량은 기록되지 않았지만 5월에 내린 눈으로는 1981년 5월 17일 이후 33년 만이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3시 대관령 상층의 차가운 공기가 내려오면서 기온이 낮아져 산발적으로 눈이 날렸다. 전날 오후 설악산 대청봉에서도 눈이 관측됐다. 7일 중부지방은 가끔 구름이 낀 후 차차 흐려지겠다. 서울·경기와 강원 영서 중북부, 충남에는 밤 한때 비가 조금 올 것으로 보인다. 남부지방은 대체로 맑다가 밤부터 구름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14-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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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 계약직 직원 아들 기다리는 엄마의 애끊는 모정

    세월호가 침몰하던 날 밤, 엄마는 꿈을 꿨다. 엄마는 망망한 바다, 물살에 휩쓸려 허우적댔다. 물에 떠있는 끈을 잡으려 몸부림쳤다. 물에서 나오려 발버둥을 쳤다. 눈을 떠보니, 진도체육관이었다. "우리 아들, 꿈에서 한 번만 보면 좋겠는데 안 나타나요. 내가 물에 빠지는 꿈만 꾸고…." 황정애 씨(55)의 둘째 아들 안현영 씨(28)는 외주업체에 소속된 계약직 승무원이었다. 2012년 대학 졸업 후 아르바이트생 신분으로 세월호를 탔다. 서빙, 승객 관리, 행사 MC. 잡다한 일을 도맡아 하다 지난해 8월 계약직이 됐다. 아르바이트와 다를 건 없었다. 배를 타며 정식 취업을 준비했다. 세월호 출항 하루 전날 아들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화분 하나 내 방에 둘 테니까 엄마가 키워줘." "무슨 화분인데?" "잎이 길고 삐죽하네." "난초인가 보네." 잎 사이로 꽃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엄마, 난도 꽃이 펴?" "그럼. 꽃이 예쁘게 피지." 도란도란 대화가 오갔다. 화분은 아들의 마지막 선물이 됐다. 화분은 학생들을 구하려다 실종된 세월호 사무장 양대홍 씨(46)가 준 것이었다. 사무장은 책임감 강한 안 씨를 아꼈다. 안 씨는 군복무 시절 사단장 표창을 받을 정도로 책임감이 강했다 "사무장님이 화분 두 개를 사서 우리 애 하나, 자기 하나 나눠 가졌대요. 자기들 가는 거 알아서 그랬나봐요." 세월호 출항 8시간 전 아들은 전화를 한 번 더 걸었다. 아들은 "제주에 도착하면 돌려줄테니 20만 원만 보내달라"고 했다. 평소 돈을 달라고 한 적이 없던 아들이었다. 엄마는 어디에 쓸 건지 묻지도 않고 돈을 보냈다. 어쩐지 묻고 싶지가 않았다. 아들은 "돈 확인했어. 감사해용. 내일 줄게~"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엄마는 "고맙긴 뭘, 우린 가족이니까~^^ 아들! 수고해~"라고 답했다. 모자가 주고받은 마지막 문자였다. "저승길에 노잣돈 하려고 돈을 받아갔나 봐요. 더 줄 걸 그랬어요." 둘째 아이로 딸을 원했던 엄마는 어릴 적 한때 아들을 딸처럼 키웠다. "어릴 때 생김새가 예뻤어요. 내가 분홍색, 빨간색 내복 입히고 핀도 꽂아주고 그랬어요. 여기서 아들 기다리다 보면 하나부터 열까지, 태어나서 기저귀 갈던 거, 편식하는 거 야단치던 거 다 떠올라요. 내 눈엔 지금도 아기 같고…." 첫날 황 씨도 여느 엄마들처럼 화를 냈다. 해경에게 울며 소리쳤다. "잠수사한테 물에 들어가서 망치로 배를 두드리라고 하세요. 그 소리 들으면 아들이 희망을 안 잃을 거 아니에요. 우리 애기 너무 아까우니까 살려주세요…." 그 다음에는 돌아가신 시어머니와 친정 엄마를 원망했다. "다시는 제사를 지내지도, 산소에 가지도 않을 거라고. 어떻게 이렇게 일찍 어린 손주를 데려갈 수 있는 거냐고. 얼마나 화를 냈는지 몰라요." 그 뒤부터는 죄인처럼 지냈다. 체육관에서 보름을 머물며 제대로 슬퍼하지도 못했다. 아르바이트생이었지만 아들이 승무원이라는 죄책감 때문이었다. 엄마는 속내를 수첩에 털어놨다. "저는 자식 잃은 어미로서 큰 목소리로 우리 아들 승무원인데 실종됐어요! 라는 말도 못하고, 억울하게 죽어갔을 우리 아들 너무 불쌍해서…." 200구 넘는 시신이 발견됐지만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얼마 전 해군 해난구조대 대원에게 아들 사진을 보여주며 "승무원복 입은 아이가 있으면 꼭 좀 데려와달라"며 매달렸다. 엄마는 잠수부들이 아들 얼굴을 몰라서 못 데려오는 거라고 생각했다. 침몰 첫날부터 쓰기 시작한 수첩은 보름 동안 일기, 아들에게 쓴 편지로 빼곡히 들어찼다. "바다에서는 내 얘기가 안 들릴 거 같아서 쓰는 거예요. 우리 아들은 생김새는 예쁘지만 용기도 있고 의리도 있고 남자다웠어요. 그 애는 아이들 구하려다 같이 못 나왔을 겁니다. 우리 아들은 정직한 사람이었거든요."진도=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14-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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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들 시신상태 확인 요구에 “다른 일정이…”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이 머무는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을 찾은 정홍원 국무총리가 “아이들 시신 상태를 직접 확인하라”는 가족들의 요구에 “(다른) 일정이 있다”며 거절했다가 가족들의 분노를 샀다. 그는 실종자 가족과 대화를 하겠다며 체육관을 찾았지만 해명이나 명확하지 않은 답변으로 일관해 화만 키우고 돌아갔다. 정 총리는 1일 오전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각계 전문가와 함께 체육관을 방문했다. 그는 단상에 올라 가족들에게 사과하는 것을 시작으로 수색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나 “물속 시야가 확보가 안 돼 강한 빛을 써보려 했으나 빛이 잠수부에게 방해가 될 수 있다” “빠른 조류를 막는 데 한계가 있다” 등 해명성 발표로 일관해 가족들의 원성을 샀다. 분노는 질의응답 시간에 폭발했다. 한 실종자 가족이 “우리 아이들 시신이 어떤 상태인지 눈으로 꼭 확인하고 가라. 직접 봐야 심각성을 알고 대처 방식도 바뀔 것이다”라고 하자 정 총리는 “오후에 일정이 있어서 올라가야 한다”며 얼버무렸다. 이후 두 번 더 같은 요구가 이어졌지만 그는 “일정이 있다. 최대한 노력해 보겠다”며 대답을 회피했다. 네 번째 요구가 나온 뒤에야 “일정이 있습니다만 알겠습니다”라며 요구를 받아들인 뒤 이날 오후 팽목항에 가서 시신을 확인했다.진도=손효주 hjson@donga.com·박성진 기자}

    • 2014-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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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이 무너졌는데 상담 받으러 나오라니”

    “○○동사무소입니다. 희생자 ○○○ 씨 가족이시죠? 시간 되면 보건소에 나와서 상담을 받으세요.” 28일 세월호 침몰 사고로 소중한 딸을 잃은 김모 씨(55)에게 걸려온 전화 내용이다. 깊은 슬픔 속에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던 김 씨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동네 보건소를 찾았다. 상담사는 처음 만난 김 씨에게 대뜸 집 주소를 묻더니 “지금 심정이 어떠세요?” “많이 힘드시죠”라는 식의 일상적인 질문을 이어갔다. 김 씨가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앉아있자 상담사는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며 상담을 끝냈다. 보건소를 방문한 지 10분도 안 되는 시간이었다. 김 씨는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피해자 가족을 도와준다면 전문 상담사가 직접 방문해 상세하게 이야기를 해 줘야 하는 게 기본 아닌가. 10분 만에 끝내는 형식적인 상담이 무슨 필요가 있느냐. 정부가 내놓는 대책이 다 이런 식이다”라며 울분을 토했다.○ 현실과 거리 먼 피해자 가족 지원 엉터리 구조 현황을 발표하는 등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던 정부가 사후 대책을 시행하는 데에도 피해자 가족들의 현실과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겉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당수 피해자는 정부의 지원대책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안산과 진도 현장에 파견 나온 공무원들의 형식적인 대응도 바뀐 게 없었다. 여성가족부 등 각 담당 부처 관계자들은 “큰 충격을 받은 세월호 피해자 가족들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할 수밖에 없다. 적극적으로 정부의 대책을 알리기가 쉽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취재팀이 만난 가족들은 “현수막에 이번 참사 피해자를 돕는다는 내용의 홍보 문구를 보고 연락해 봤지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부의 대책과 피해 가족의 기대치 사이에 큰 차이가 있는 셈이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안산에는 피해 학생과 가정, 시민에 대한 심리치료를 지원하는 ‘통합재난심리지원단’이 마련됐다. 지원단 측은 “장례식장이나 피해자 가정을 파악 하고 있지만 각자의 사정이 다르다 보니 섣불리 접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당장의 치료보다는 가족들의 상황에 맞춰 지속적인 접촉을 추진하는 데 방점을 두겠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피해자 가족의 반응은 냉랭했다. 단원고 희생자 임모 군(17)의 아버지는 “상담을 받으러 오라는 전화를 받았지만 자식을 잃고 망연자실한 상황에서 찾아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주위에서 다녀온 사람들 역시 ‘안 가느니만 못했다’더라”고 전했다. 심리지원단은 이번 사고에서 생존한 단원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일대일 심리치료는 아직 진행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청과 어떤 방식으로 심리치료 프로그램을 추진할지 조율 중이기 때문이다.○ 피해자에게 실질적인 대책 절실 여성가족부는 가족 돌보미 150여 명과 자원봉사자 100여 명을 투입해 피해 가정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가족들은 지원사항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거나 경황이 없어 신청조차 못한 경우가 많았다. 취재팀은 29일 진도실내체육관에 마련된 여성가족부의 ‘긴급 가족 돌봄 지원서비스’ 부스를 찾았다. 이 부스에 놓인 안내종이를 들고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 이 서비스를 알고 있는지 확인한 결과 실망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실종된 단원고 교사의 한 어머니는 “체육관에 있을 때 신청서 같은 종이를 한번 나눠준 게 전부였다. 자식의 생사를 애타게 기다리는 부모가 그거 볼 정신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실종된 아들 이모 군(17)을 기다리는 한 아버지 역시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 어떤 지원책이 나와도 믿을 수가 없다”고 했다. 공무원이 기부자의 연락을 제대로 챙기지 않아 국화 2만 송이 기부가 무산된 일도 있었다. 임영호 한국화훼협회장(59)은 세월호 침몰과 관련해 전국에 분향소가 생기면서 국화 공급이 부족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화훼 관련 단체 회장들과 상의한 끝에 국화 2만 송이를 기부하기로 했다. ‘슬픔을 함께 나누자’는 취지였다. 임 회장은 25일 오후 6시경 교육부에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담당 직원이 현장에 파견돼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는 장례지원단에 전화해 파견된 직원을 찾았지만 해당 직원이 자리를 비워 통화할 수 없었다. 결국 전화를 받은 현장 직원에게 ‘국화를 기부하겠다’는 의사를 메모로 남겼다. 그러나 현장 직원이 메모를 전달하지 않아 다음 날까지 답신이 오지 않았다. 꽃의 유통기한 때문에 준비했던 국화 2만 송이는 경매시장에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반면 안산시 합동분향소에 준비됐던 12만 송이 국화는 지난 주말 동이 나 ‘검은색 리본’으로 대체됐다. 임 회장은 “29일에야 교육부 담당 직원한테 사과 전화가 왔다. 공무원들이 이런 시기에 모두 자기 일처럼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안산=김수연 sykim@donga.com   진도=손효주 / 김성모 기자}

    • 2014-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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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잠수부님 제발…” 쪽지에 구조대 울음바다

    한 부모가 막 진도실내체육관 강당을 빠져나가는 해군 해난구조대(SSU) 주환웅 상사(36)를 쫓아갔다. 주 상사는 25일 실종자 가족들에게 수색 상황에 대해 브리핑한 뒤 강당을 나서는 길이었다. 그는 이날 세월호 도면을 보여주며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선체에서 시신을 찾으려면 얼마나 많은 미로와 부유물을 헤쳐야 하는지 등 구조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다. “저희도 갑갑합니다. 유가족분들이 울면 저희도 웁니다. 군 생활 17년 동안 수심 318m까지 들어가 봤는데 40m밖에 안 되는 선체 수색이 이렇게 힘들지 몰랐습니다.” 이날 실종자 가족들은 해경, 해군 관계자에게 처음으로 박수를 쳤다. “잘하셨어요.” 주 상사는 울음을 삼켰다. “제가 더 구조를 못해서 죄송합니다.” 브리핑이 끝나자 키 180cm인 주 상사는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주 상사가 팽목항으로 돌아가는 차를 타려는 찰나 부부가 주 상사를 잡았다. 군복 상의 가슴팍 주머니에 쪽지 하나를 집어넣고 주 상사에게 고개를 숙였다. 머리가 땅에 닿을 정도였다. 고개 숙이길 반복했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잠수부님, 제발 우리 어린 아들 좀 데려와 주세요. 부탁합니다. 부탁합니다.” 고개 숙인 엄마 목에 걸린 사진이 펄럭였다. 20대 초반, 앳된 남자였다. 이날 밤 침몰 해역에 떠있는 청해진함(해군 구조함)으로 돌아온 주 상사는 주머니 속 쪽지를 꺼냈다. 쪽지는 ‘훌륭한 잠수부님!’으로 시작됐다. “승무원복을 입은 우리 아들! 나이도 어린 우리 아들 학생들과 함께 구분하지 말고 어린 생명 같이 구해주셨으면 하고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학생들 인도하다 못 나왔을 겁니다. 평소 그런 애입니다. 승무원복 입은 아이 있으면 같이 구조해 주세요.” 아들은 세월호에서 근무한 서빙 아르바이트생이었다. 부부는 체육관에서 죄인처럼 지내고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이었지만 ‘승무원’이라는 죄책감에 드러내놓고 슬퍼하지도, ‘내 자식은 이런 아이였다’고 말하지도 못했다. 부부는 주 상사가 브리핑을 하는 동안 급하게 편지를 썼다. 이날이 아니면 ‘잠수부님’을 만나지 못할 것 같았다. 부부는 고개 숙여 부탁하면 아들을 찾게 될 거라 믿었다. 편지를 다 읽은 주 상사는 한참을 울었다. 청해진함 해난구조대원들도 돌려가며 쪽지를 봤다. 바다 햇빛에 그을려 시커먼 장정들이 울었다. 구하고 싶어도 구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었다. 청해진함이 눈물바다가 됐다. “우리는 유가족 보는 게 가장 힘든 거 같아요. 너무 죄송하죠. 안에 지금 100명이 넘게 있어요. 그런데 도저히 찾을 수가 없으니까. 보이는 게 없어서 더듬으면 뭐라도 잡혀야 되는데 아무것도 안 잡히니까….” “물속 시신은 손이 떠있어요. 저 좀 데려가라고 손짓하는 거예요. 이번에 세 명을 한 번에 몸에 묶어 데리고 나온 적도 있어요. 세 명을 데리고 나오다가는 제가 죽을 수도 있거든요. 하지만 꺼내달라고 손짓하는데 어떻게 그냥 두고 갑니까. 세 명이고, 네 명이고 보이면 데리고 나올 텐데 앞은 보이지 않고…. 자식 만나면 알아보게는 해드려야 할 거 아닙니까.” 27일 새벽 전화통화에서 주 상사는 거센 풍랑 탓에 물에 들어가지 못하고 대기 중이라고 했다. 방금 막내 대원이 잠수병에 걸려 안면마비가 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또 다른 잠수부는 선상에 올라온 지 10분 만에 하지 마비가 왔다. 11일 동안 총 20시간밖에 자지 못했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대원들을 지원한다며 먹을거리가 잔뜩 들어오지만 먹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자에게 꼭 부탁할 게 있다고 했다. “제가 다시 체육관에 못 갈 거 같아서요. 그 어머님, 아버님 보이면 대신 전해주세요. 꼭 아드님 찾아드린다고. 약속드린다고.”진도=손효주 hjson@donga.com·박성진 기자}

    • 2014-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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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학생 짧은 머리를 곱슬 단발이라니… 어떻게 찾으라고”

    침몰한 세월호 선체에 처음 진입해 선체 수색 작업을 벌인 지 6일이 지나도록 에어포켓(선체 중 공기가 남아 있는 공간)이 발견되지 않자 실종자 가족의 절망은 깊어지고 있다. 에어포켓이 없다면 단 한 명의 생존자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해경은 실종자 가족에게 수습된 시신의 인상착의를 잘못 전달하는 바람에 시신이 미확인 상태로 병원에 안치되는 일까지 빚어져 절망을 가중시켰다.○ 에어포켓 한 가닥 희망 사라져 23일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민관군 합동구조팀이 세월호 선내 3, 4층의 다인실을 집중 수색했지만 에어포켓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배 선체가 뒤집히면서 집기가 섞여 엉망이고 부유물로 인해 선실 입구가 막혀 있었다”고 말했다. 사실상 에어포켓이 있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뜻이다. 수색작업을 지휘하고 있는 한 해군 고위관계자도 “침몰해 뒤집어졌던 선체가 좌현으로 다시 기울어져 넘어갔을 때 에어포켓이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에어포켓에 한 가닥 희망을 걸었던 실종자 가족들은 격분할 힘도 잃은 채 절망한 모습이었다. 한 실종자 가족은 “정부는 있지도 않은 에어포켓 가능성만 반복하면서 가족들에게 희망고문을 했다. 사실상 정부가 힘든 가족들을 두 번 죽인 것이다. 더이상 화낼 힘조차 남아 있지 않다”고 전했다.○ 남학생이 곱슬 단발머리라고? 23일 오전 2시 세월호 실종자 가족이 모인 진도 실내체육관 강당에 한 남성이 분통을 터뜨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남성은 체육관 한편의 신원확인소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는 등 분을 삭이지 못했다. 그는 22일 아침 시신으로 발견된 단원고 2학년 박모 군(18)의 아버지였다. “학부모들은 이것만 쳐다보고 있어. 그런데 옷 색깔도, 머리 모양도 다 틀리면 아이를 어떻게 찾냐고.” 박 씨는 22일 오전 9시경 체육관 강당 앞 대형 TV 화면에 뜨는 수습된 시신 정보를 유심히 봤다. 91번째로 수습된 단원고 남학생 추정 시신의 인상착의가 공개되고 있었다. “키 174cm 추정, 검은색 반팔티·검은색 아이다스, 통통한 체격, 곱슬머리 단발….” 아들과 체격, 키, 옷 스타일이 같아 가슴이 덜컥했지만 곧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들은 청색 운동복을 입고 있었고 곱슬 단발머리가 아니라 짧은 머리였다. 그러나 이날 내내 91번째 시신 정보가 계속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던 박 씨는 22일 밤 미확인 시신이 안치된 목포 시내 병원으로 달려갔다. 시신 얼굴을 확인한 결과 아들이었다. 시신의 머리 모양은 곱슬 단발머리가 아니라 짧은 머리였다. 박 씨가 병원으로 가 확인하지 않았다면 DNA 대조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거나 미확인 시신으로 남을 수도 있었던 상황. 박 씨는 “상식적으로 남학생이 곱슬 단발머리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항의했다. 현재 해경은 시신을 수습한 뒤 팽목항까지 이송하는 배 위에서 시신 인상착의를 보고 옷차림 등의 정보를 기록한다. 이 정보는 곧바로 팽목항 실종자 가족 대기소와 진도체육관 강당으로 전송된다. 가족들은 이 정보가 자녀와 비슷하다고 판단되면 신원확인반을 찾아 시신을 직접 확인하는 절차를 밟는다. 그러나 1차 인상착의 확인이 배 위에서 진행되는 데다 재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아 인상착의가 틀릴 가능성이 있다. 항의가 이어지자 해경은 향후 인상착의 게시물에 신체 특징을 더 구체적으로 파악해서 게시하겠다며 실종자 가족들에게 사과했다. 23일 현재 만 하루가 지나도 신원 확인이 되지 않은 시신은 10구에 이른다. 37번째로 발견된 남성의 시신은 발견된 지 나흘이 지나도록 신원 확인이 안 돼 가족에게 인계되지 않고 있다. 미확인 시신이 나오는 것은 실종자 가운데 대다수가 주민등록이 되지 않아 등록된 지문이 없는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DNA 대조를 통해 확인하는 수밖에 없다. 23일부터는 검안 속도를 높이기 위해 팽목항에 간이 영안실이 설치됐다.진도=박성진 psjin@donga.com·손효주·이건혁 기자}

    • 2014-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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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해훼리호는 정원초과로… 세월호는 과적으로 복원력 잃어

    “서해훼리호 침몰 후 사흘이 지난 12일 오후까지 정확한 사고 원인 규명은 물론이고 승객 수조차 파악되지 않는 등 당국의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심각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21년 전 동아일보 기사다. 1993년 10월 10일 전북 부안군 위도 앞바다에서 발생한 서해훼리호(110t) 침몰 사고를 다룬 것이다. ‘서해훼리호’를 ‘세월호(6825t)’로만 바꾸면 지금 상황과 다를 게 없을 정도로 두 사고는 쌍둥이처럼 보인다. 서해훼리호 침몰 당시 선박 안전 및 감독 부실에 대한 총체적인 문제가 제기됐다. 그러나 292명이 목숨을 잃으며 지적한 문제는 지금도 개선되지 않았다. 서해훼리호 침몰 직후 경찰이 밝힌 승선자 수는 140여 명에서 200여 명으로 수차례 번복했다. 정부는 시신 인양이 끝나고 나서야 362명으로 확정했다. 당시 선사들의 모임인 해운조합이 채용한 운항관리자가 주요 항구에 배치돼 승선자 수를 파악했다. 운항관리자가 선장의 보고를 믿는 허술한 구조였다. 서해훼리호 침몰 이후 정부는 운항관리자를 늘렸다. 현재 전국에 74명의 운항관리자가 있지만 여전히 출항 전 선장이 승선자 수를 문서로 보고하면 이를 승인하는 데 그쳐 정확한 파악이 어렵다. 세월호 선장은 출항 전 점검 보고서에 승선자 수가 450명이라고 보고했지만 실제로는 476명인 것으로 집계됐다. 정부는 이번에도 477명→459명→462명 등 수차례 생존자 수를 번복했다. 서해훼리호 침몰 당시 원인 중 하나로 과적이 지목됐다. 정원이 221명이었지만 362명이 타는 등 화물을 포함해 6.5t을 과적한 상태. 물살이 거센 해역에서 급선회를 시도했고 화물과 사람이 한쪽으로 몰리면서 복원력을 잃은 뒤 침몰했다. 훼리호는 무자격 업체에서 복원력 검사를 받았다. 세월호도 비슷하다. 세월호 선장은 안전점검표에 차량 150대, 화물 657t을 실었다며 운항관리자에게 보고했다. 그러나 사고 이후 밝혀진 화물량은 차량 180대, 화물 1157t. 50t 트레일러 3대도 실려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세월호 정원은 921명. 승선자 수는 이에 훨씬 못 미쳤지만 화물이 이를 상쇄하고 남았을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이 때문에 복원력이 떨어진 세월호가 과적 상태에서 급선회를 하면서 복원력을 쉽게 잃고 침몰했을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과적이 가능한 이유는 운항관리자가 배가 물에 잠긴 정도를 보고 과적 여부를 판단할 뿐 화물을 확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운항관리자가 해운조합 소속이어서 감시자 역할을 하기 어려운 구조이기도 하다. 운항관리자의 구명장비 점검도 형식에 그치는 실정이다.손효주 hjson@donga.com·신광영 기자}

    • 2014-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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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안전 실종… 이름 부끄러운 ‘안전행정부’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출범하면서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이름을 바꿨다. ‘국민안전을 중시한다’는 국정 목표에 따른 것이다. 부처 이름을 ‘행정’과 ‘안전’이란 단어의 위치만 바꾸는 것은 예산 낭비라는 비판이 적지 않았지만 안행부를 국민안전의 통합 컨트롤타워로 만들겠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했다. 이름이 바뀐 뒤 안행부는 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부처별 기관별로 나뉜 재난안전관리를 총괄 조정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재난이 발생하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중심으로 관계기관과 공조해 신속하고 적극적으로 초동 대응에 나서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지난해 5월에는 국민안전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안전정책조정회의도 신설했다. 그러나 이번 진도 여객선 침몰 사고 대응 과정을 놓고 “대체 무엇이 바뀐 것이냐”란 지적이 적잖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여객선 침몰 사고라는 참사가 발생하자 중대본은 우왕좌왕했다. 승선자 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구조자 수도 오락가락하면서 혼선을 초래했다는 비판이 많다. 중대본은 당초 승선자를 462명으로 발표했지만 화물차 운전기사 13명이 표를 끊지 않고 승선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승선자 수는 475명으로 정정됐다. 해명도 엉성하기 짝이 없어 ‘대책 없는 대책본부’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중대본부장인 강병규 안행부 장관은 ‘엉터리 집계 논란’을 의식한 듯 17일 오전 기자회견을 자청했지만 A4용지 한 쪽짜리 자료만 읽고 자리를 떴다. 기자들의 질문은 받지도 않았다. 이후 중대본은 “모든 구조와 수색에 관한 공식 브리핑은 해양경찰청이 한다”고 책임을 떠넘겼다. 스스로 통합 컨트롤타워 역할을 포기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안행부는 올해 2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안전조끼 착용 의무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7월 사설 해병대 캠프에 참가한 고교생 5명이 안전조끼를 착용하지 않아 숨지는 사고가 발생하자 내놓은 수습책이었다. 그러나 이번 진도 여객선 참사에서도 안전조끼 착용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뒷북만 치는 것 아니냐”란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이재명 egija@donga.com·손효주 기자}

    • 2014-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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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안함 10배 무게… 인양 두달 걸릴듯

    16일 전남 진도해역에서 침몰한 세월호 인양작업이 18일 오전 시작될 예정이지만 배를 끌어올리는 데 두 달 이상 걸릴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2010년 3월 백령도 해역에서 침몰한 천안함은 함미 인양에 3주, 함수 인양에 30일이 걸렸다. 세월호 인양이 천안함보다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는 우선 배의 크기가 10배 가까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세월호는 국내 여객선 최대 규모인 6825t, 천안함은 1220t이다. 천안함은 선체가 두 동강 난 상태에서 하나씩 끌어올렸기 때문에 인양 크레인이 감당해야 할 무게가 세월호의 10분의 1 수준이었다. 박종환 목포대 조선공학과 교수는 “배 안에 차량 등 화물이 많이 실려 있는 데다 물까지 가득 차면 무게가 1만 t 이상 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사고 현장으로 이동 중인 크레인 3대의 인양 가능 무게는 총 9200여 t. 크레인을 추가로 투입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해양경찰 등 구조당국은 배 안에 공기주머니 등을 집어넣는 등의 방법으로 무게를 최대한 줄일 계획이다. 세월호의 선체가 거의 180도 뒤집혀 있는 것도 문제다. 이 상태로 끌어올렸다간 인양 과정에서 취약한 부분이 파손되거나 추락할 수 있어 일단 배를 바로 세워야 한다. 천안함 인양에 참여했던 정승계 유일수중공사 사장은 “배를 일으켜 세우려면 배 표면에 용접을 해 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그 작업에만 20일가량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작업은 바닷물이 빠지는 정조시간에만 가능한데 6시간 주기로 1시간 남짓 오기 때문에 길어야 하루 4시간 정도 작업할 수 있다. 세월호 침몰 지점의 수심이 최고 37m로 천안함 침몰 수심(25m)보다 10m 이상 깊다는 것도 인양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조규남 홍익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잠수부들이 일할 수 있는 최대 수심이 30m 정도다. 물 속은 10m 내려갈 때마다 1기압씩 올라 작업자들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 침몰 해역은 국내에서 물살이 세기로 손꼽히는 지역이기도 하다.신광영 neo@donga.com·손효주 기자}

    • 2014-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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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7명 실종”… 2시간뒤 “293명”… 대책없는 대책본부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피해자 구조작업을 총괄하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본부장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는 구조자와 실종자 수가 얼마나 되는지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는 등 하루 종일 허둥대는 모습이었다. 오후 한때 구조자 수를 실제보다 200명 넘게 잘못 발표했다가 얼마 뒤 대폭 수정하는가 하면 실종자 수는 3분의 1이나 적게 발표하는 등 혼란을 부추겼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중대본은 이날 오후 2시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오후 1시 현재 세월호 승선자 수는 477명으로 2명이 사망하고 368명이 구조됐다고 밝혔다. 실종자 수는 107명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오후 4시 30분 브리핑에서는 말이 바뀌었다. 이경옥 안행부 제2차관(중대본 차장)은 “구조자가 368명이 아니라 164명”이라며 “실종자 수가 107명에서 293명”이라고 바로잡았다. 이 차관은 “해경, 해군, 소방, 민간 등 여러 기관에서 동시에 구조를 하다 보니 구조자 수가 중복 집계됐다”고 해명했다. 중대본은 세월호의 총 승선 인원이 몇 명인지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당초 승선자 수를 477명이라고 했다가 오후 4시에는 459명으로 수정해 발표했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 측이 밝힌 승선자 수는 462명으로 중대본 발표와 달랐다. 이날 오전 11시경 경기도교육청과 안산 단원고교 측이 “학생 전원이 구조됐다”며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언론과 학부모에게 발표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해경이 단원고 행정실로 전화를 걸어와 ‘전원 구조된 것 같다’고 말했고 학교 측이 이를 도교육청에 보고해 교육청이 ‘전원 구조됐다’라고 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정부와 경기도교육청의 부정확한 발표 때문에 단원고 학부모들은 분개했다. 이날 단원고 에 모여 자녀의 생존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던 한 학부모는 “우리는 이렇게 애가 타는데 정부고 교육청이고 다 거짓말만 한다. 구조자 수 파악은 구조작업의 기본인데 구조를 할 의지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안산=남경현 기자}

    • 201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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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미엄 리포트]어른의 주먹-발, 아이에겐 ‘흉기’

    ‘울산 계모’ 박모 씨(42)와 ‘칠곡 계모’ 임모 씨(36)가 각각 여덟 살 의붓딸을 때려 죽음에 이르게 할 당시 사용한 건 주먹과 발이었다. 울산 사건의 1심 재판부는 박 씨가 흉기를 쓰지 않았다는 점을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는 근거 중 하나로 들었다. 하지만 아동들은 갈비뼈 14대가 부러지는 등 흉기로 맞았을 때와 별 차이가 없을 정도의 중상을 입고 숨졌다. 서승우 고려대 의대 정형외과 교수는 “법원이 살인 고의가 없었다고 판단한 건 아동 신체가 어른에 비해 얼마나 약한지를 간과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뼈와 근육이 발달하지 못한 여덟 살 아동에게 성인의 주먹과 발은 흉기나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울산 계모 박 씨는 딸이 숨지기 1년여 전 딸의 허벅지를 발로 수차례 찼다. 허벅지 뼈는 두 동강 났다. 여덟 살 아동의 허벅지 뼈 굵기(지름)는 성인의 절반 수준. 갈비뼈는 더 가늘어 성인의 절반∼3분의 1 수준이다. 뼈 구성 성분 등 모든 조건이 성인과 같고 굵기만 다르다고 가정해도 뼈 강도는 어른의 8분의 1∼27분의 1에 불과하다. 박 씨는 키 166cm에 몸무게 58kg. 딸은 123cm에 20kg이었다. 서 교수는 “철근 지름이 1mm만 차이가 나도 철근이 견딜 수 있는 건물 하중에 엄청난 차이가 나는 것처럼 어른 뼈와 아이 뼈는 강도에서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차이가 난다”며 “체격 차이가 큰 어른이 뼈의 강도가 나무젓가락 같은 아이를 무차별 폭행했는데 어떻게 살인의 고의가 없었다고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칠곡 계모 임 씨는 누워 있는 딸의 배를 발로 수차례 밟았다. 임 씨 몸무게는 50kg가량. B 양은 20kg이었다. 몇 시간 뒤 딸이 심한 복통을 호소했음에도 주먹으로 배를 또 때렸다. 아동의 복벽(배 앞쪽의 속 부분)은 어른에 비해 몇분의 1∼몇십분의 1 정도로 얇다. 성인의 경우 장이 파열되려면 차량 정면충돌 사고로 배가 핸들에 강하게 부딪힌 정도의 충격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아동은 복벽이 얇아 발로 강하게 밟는 정도로도 같은 충격을 받는다. 이국종 아주대 의대 외과 교수는 “7년 전 계모의 발에 배를 밟혀 췌장이 두 동강 난 7세 여아를 치료한 적이 있었는데 복벽 두께를 생각하면 아동의 배를 강하게 밟는 건 살인에 가까운 행위”라고 말했다. 지난해 계모와 친부에게 닷새 동안 구타당한 뒤 숨진 A 군(8)은 ‘수면 고문’을 당했다. 부부가 골프채 등으로 A 군을 때리면서 1차로 30시간, 2차로 40시간 가까이 잠을 재우지 않았다. 아동을 잠자지 못하게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흉기’를 휘두르는 것이나 다름없다. 주은연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교수는 “잠을 못 자면 심장, 뇌, 혈관 등 모든 기관이 쉬지 못해 손상을 입는데 아동은 장기가 미성숙해 더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되고 심하면 사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손효주 hjson@donga.com·박성진 기자}

    • 2014-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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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에 오면 ‘괴물’ 되는 폭력부모 ‘폭력의 에스컬레이팅’ 현상 보여

    “저 좀 잡아가 주세요.” 2012년 2월 수도권의 한 아동보호전문기관에 30대 여성이 다급히 전화를 걸어왔다. 이 여성은 상담원에게 “저를 데려가세요” “저 좀 도와주세요”라고 몇 번 외치더니 끝내 흐느꼈다. 아동복지기관에 스스로 전화를 걸기 직전까지 그녀는 일곱 살 된 친아들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자신에게서 아들을 지키고 스스로를 절망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신고전화였다. 중학교 교사 이모 씨(37·여)도 2010년 11월 아동보호기관에 스스로 학대 가해신고를 했다. 학교에선 자상한 선생님으로 알려져 있던 이 씨는 집에 오면 ‘괴물’로 변했다. 그는 10세와 6세인 두 딸이 자신의 지시를 어길 때면 화장실에 가두고 뺨을 후려쳤다. 한 번 회초리를 들면 쇠로 된 막대가 휠 때까지 때려야 직성이 풀렸다. 한겨울에 아이들을 맨발로 집 밖에 서 있게 한 뒤 분에 못 이겨 계단 아래로 밀어버린 적도 있다. 두 엄마가 처음부터 폭력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아이가 행동이 느리거나 주의가 산만해 손바닥 때리기 등 가벼운 체벌을 하기 시작한 게 발단이었다. 이 씨는 “아이가 커서 혹시 무시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들었다. 나도 많이 맞고 컸기 때문에 일단 매를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훈육’이 ‘학대’로 변질되기까지 채 1년이 걸리지 않았다. 최근 울산과 경북 칠곡 아동학대사망 사건이 집중 조명되면서 비정한 계모가 주된 가해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자녀를 학대하는 부모는 대부분 친부모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보고된 아동학대 6796건의 가해자 가운데 76.2%가 친부모다. 계부모는 학대 가해자의 3.7%였다. 양부모는 0.4%였다. 근본적인 아동학대 대책을 찾으려면 부모가 금쪽같은 친자식을 어떻게 학대하게 되는지 구조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취재팀이 전국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중점 개입사례 10건을 분석한 결과 부모들의 체벌 정도가 서서히 심해져 결국 극단에 이르는 공통점을 보였다. 이른바 ‘폭력의 에스컬레이팅(escalating·상승)’ 현상이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유미 복지사업본부장은 “훈육과 학대의 경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다 보니 훈육 목적으로 체벌을 시작했더라도 기대했던 교정효과를 보고 스스로 화가 풀릴 때까지 때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폭력의 강도를 계속 높이게 된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적절한 외부 개입이 없을 경우 부모는 자신이 휘두르는 극단적 폭력에 둔감해진다. 이 부모들은 체벌을 피하려 자녀가 잘못을 시인하는 반응을 보이면 그간의 폭력이 ‘필요악’이었다고 합리화하는 특징도 보인다. 가해 부모들은 체벌 후 자녀의 마음을 풀어준다며 잠시 잘해주는 패턴을 보이는데 이는 아동의 체벌에 대한 내성을 키울 수 있다. 아이들이 체벌을 당하는 동안 “이것만 맞고 나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생각을 갖는 것이다. 자녀의 내성이 커질수록 부모의 폭력은 세질 수밖에 없다. 학대의 강도가 셀수록 아이들은 부모가 보이는 잠깐의 호의에도 감동한다. 이 때문에 피해 아동이 부모를 감싸게 돼 학대 사실이 외부로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다. 학계에서는 자녀 학대 부모들 가운데 30∼60%가 성장과정에서 학대를 경험한 것으로 보고 있다. 폭력이 대물림되는 것이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어려서 부모의 학대 속에 성장한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나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막상 자기 자녀와 마찰이 생겨 흥분상태가 되면 유년 시절 학습돼 있던 폭력 성향이 무의식적으로 나오기 쉽다”고 말했다. 또 피학대 경험이 누적되면 감정조절 기능을 하는 뇌 기관인 전전두엽의 기능이 약화돼 감정 조절 능력이 떨어진다. 신광영 neo@donga.com·손효주 기자}

    • 2014-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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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PCC “한국,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 절반 이상 줄여야”

    지구 온도의 급상승을 막기 위해 우리나라의 경우 온실가스 배출량을 2050년까지 지금보다 절반 이상을 줄여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는 12일 독일 베를린에서 총회를 연 뒤 이 같은 내용을 담은 IPCC 제3실무그룹 제5차 평가보고서를 발표했다. IPCC는 1988년 세계기상기구(WMO)와 국제연합환경프로그램(UNEP)이 기후변화 문제에 대처하고자 공동으로 설립한 기구로 195개 회원국이 활동하고 있다. 13일 기상청에 따르면 IPCC는 산업화 이전에 비해 지구 평균 온도가 2도 이상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회원국 가운데 OECD90(1990년대 이전에 OECD에 가입한 국가)은 2050년까지 2010년 대비 80~95%를, 우리나라가 속한 아시아 국가는 30~50%를 감축할 것을 권고했다. 추가적인 감축이 없을 경우 2100년까지 지구 평균 온도는 3~5도 가량 올라 지구의 안정을 위협할 것이라고 보고서는 예상했다. 기상청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아시아 지역 최고 수준이어서 아시아 지역 권고량보다 더 감축해야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IPCC는 올해 10월 덴마크에서 열릴 총회에서 제5차 종합보고서를 채택할 예정이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14-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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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요판 커버스토리]숨가쁜 봄날

    ‘노란 게릴라’, 황사가 몰려올 태세다.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지역과 고비사막은 현재 물기 하나 없다. 지난달 네이멍구는 기상 관측 이래 강수량이 가장 적었다. 고비사막 강수량은 예년 절반 수준. 기록적인 가뭄이다. 두 지역에서만 한반도 황사의 64%가 날아온다. 이 지역에 상승 기류가 만들어지기만 하면 바짝 마른 흙은 기다렸다는 듯 3km 상공까지 떠오를 것이다. 이때 부는 북서풍은 출발을 알리는 총성이다. 황사는 상공에 뜬 다음 북서풍을 타고 하루가 지나지 않아 ‘숨 가쁜 단내를 풍기며’ 한반도를 덮칠 것이다. 민간 기상업체 케이웨더에 따르면 올해 황사는 ‘거대한’ 규모일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한층 독해질 것으로 보인다. 황사가 중국 공업지대를 지나다 지름 10μm(마이크로미터·1μm는 100만분의 1m)의 미세먼지(PM10)를 가득 떠안고 올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겨울 한반도를 강타한 중국발 미세먼지는 중국 내 난방이 끝난 지금도 줄어들 기미가 없다. 이 때문에 올해 황사에는 인체에 치명적인 초미세먼지(PM2.5)가 최대 40% 섞여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사람들은 괴물이 된 황사의 공습을 앞두고 한숨을 쉰다. 중국발 미세먼지의 가세로 3, 4년 전부터 독성을 키운 황사는 많은 사람의 삶을 바꿔 놓았다. 어부는 산오징어를 싣고 해발 800m 산(山)으로 갔다. 고층 건물 외벽 유리를 닦는 이들은 일이 끝난 뒤 팔자 주름 속에 낀 먼지를 닦아내는 것이 일상이 됐다. 아토피 환자는 미세먼지 안전지대를 찾으려 애쓰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   ▼ “곧 더러워질텐데…” 건물외벽 청소일감 오히려 줄어 ▼먼지와 싸우는 사람들얼굴 주름 따라 미세먼지 가득 41층 건물 옥상 난간에 주태형 씨(37)가 섰다. 서울 강남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 지난달 29일 오전 8시, 강남구 아셈타워에서다. 물병을 든 주 씨는 176m 아래 바닥으로 물을 떨어뜨린다. 물은 흩날리지 않고 반경이 큰 곡선을 그리며 떨어진다. “바람 좋다.” 주 씨와 동료들 얼굴이 밝아진다. 바람이 강하면 외벽 유리 청소를 할 수가 없다. 작업자가 매달린 밧줄이 흔들려 위험해서다. 이들은 외벽 유리 청소업체인 고공시스템 직원들. 약한 바람에 마음을 놓은 뒤 건물 외벽으로 긴 밧줄을 내린다. 줄을 타기 직전, 이번엔 주 씨 표정이 굳는다. 옥상에서 본 강남 일대 가장자리에 뿌연 테두리가 드리웠다. “저 멀리 산까지 다 보여야 되거든요. 요즘 거의 맨날 이래요. 이런 날 일하고 나면 많이 힘들죠.” 전날인 28일 서울 미세먼지 농도는 시간에 따라 ‘나쁨(m³당 120∼200μg·마이크로그램)’ 수준까지 올라갔다. 전날의 먼지가 채 가시지 않은 이날도 한때 ‘약간 나쁨(m³당 81∼120μg)’까지 올라 공기가 맑지 않았다. “황사니 미세먼지니 해도 10년 넘게 이 일 하면서 실감을 못 했어요. ‘왜 이렇게 기침이 자주 나지’ 그러면서도 그냥 넘겼어요. 그런데 3, 4년 전부터는 ‘아, 확실히 나쁘구나’ 하고 느껴요.” 주 씨와 직원들은 2011년 5월 1일부터 서울의 한 건물 유리를 나흘에 걸쳐 닦았다. 일을 마치고 집에 가 코를 풀면 매일 시커먼 게 나왔다. 가래도 끓었다. 청소 마지막 날 건물주가 이들을 불렀다. 첫날 닦은 외벽 한 면을 보여줬다. “이게 닦은 거예요?”라고 다그쳤다. 나흘 전 물청소를 했던 유리가 어느새 흙먼지로 도배돼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한반도는 5월 1일부터 나흘 연속 황사 몸살을 앓았다. 황사가 몰아치면서 미세먼지 농도도 치솟았다. 미세먼지가 자동차·공장 매연 등에 따른 인위적인 오염 물질로 구성된 것과 달리 황사는 자연 먼지다. 한반도에 도달하는 황사는 크기(지름 4∼10μm)로만 보면 미세먼지의 일종이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황사를 미세먼지에 포함시켜 농도를 측정한다. 주 씨가 작업을 하던 2011년 5월 2일 흑산도의 미세먼지 최고 농도는 m³당 1025μg이었다. 지난해 서울 연평균 미세먼지 농도(m³당 45μg)의 23배 가까운 수준. 서울도 공포에 떨었다. 1일 최고 농도 326μg을 기록한 뒤 3일 423μg까지 올라갔다. 주 씨는 “2010, 2011년 봄 ‘최악의 황사’가 왔다며 2년 연속 언론에서 난리가 나고 건물주의 오해를 받은 뒤에야 내가 겪는 증상이 황사나 미세먼지 때문인 걸 알았다”고 말했다. 하루에 길게는 10시간 이상 외부에서 일하지만 황사 마스크를 쓸 엄두를 못 낸다. 높게는 50층이 넘는 건물 유리를 줄을 타고 내려오며 닦다 보면 호흡이 가빠진다. 황사 마스크를 쓰면 당장 호흡에 무리가 온다. 수개월∼수년째 쌓인 코앞 유리 위 미세먼지와 공기 중의 황사가 펼치는 협공을 받으면서도 마스크를 못 쓰는 이유다. 주 씨는 “황사가 오든 미세먼지가 오든 작업 중엔 멀리 볼 틈이 없다”고 했다. “일이 워낙 위험하니까 긴장해서 눈앞 유리창만 보고 연신 닦아요. 그러다 집에 가서 거울을 보잖아요. 팔자 주름 사이에 새까만 먼지가 끼어 있어요. 아, 황사가 왔구나. 그제야 아는 거죠.”미세먼지가 앗아간 봄 대목 “그래도 황사가 세게 오거나 미세먼지가 자주 나타나면 대목 아닌가요? 건물이 더러워지니까 청소하려는 건물주가 많을 거 같은데요?” 기자의 질문에 직원들은 손사래를 쳤다. 한때 유리 청소의 최대 성수기였던 봄철이지만 이들을 찾는 전화는 2010년 이후 눈에 띄게 줄었다. ‘봄맞이 대청소’는 옛말이 됐다. 2010년 3월 20일 흑산도에는 서울 연평균 미세먼지 농도의 60배가 넘는 m³당 2712μg의 ‘슈퍼 황사’가 몰아쳤다. 기상 관측 이래 최악의 황사였다. 더러워진 유리를 청소하려는 건물주가 늘 거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황사가 다 지나가면 청소할게요. 요즘은 미세먼지도 기승이라 봄에 청소해봐야 소용없을 거 같아요.” 직원들이 봄철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황사가 한풀 꺾이길 기다리다 보면 외벽 유리 청소가 불가능한 장마철이 이어진다. 더위가 식고 가을이 다 돼서야 건물주들은 본격적으로 이들을 찾는다. “저희는 겨울엔 일을 못해서 3, 4개월 쉬다가 봄에야 일을 시작하거든요. 황사가 이슈가 된 뒤부터는 일을 시작하는 시기가 점점 뒤로 미뤄지고 그만큼 돈도 못 벌게 되니까 마음이 안 좋죠.” 아셈타워 같은 대형 건물을 제외한 건물 상당수가 봄 청소를 미루면서 황사와 미세먼지는 해를 거듭하며 유리 위에 켜켜이 쌓인다. 그들 표현에 따르면 이런 건물 유리엔 도심 매연이 기름때처럼 엉겨 붙어 있다. 황사는 기름때에 뿌리째 박혀 있다. ‘밀어도 밀어도 안 밀리는, 유리와 하나가 된 먼지’다. “일이 줄어드는 데다 때가 수년간 묵은 건물이 늘어난 탓에 청소하기가 배로 힘들어졌어요. 올해는 제발 황사가 덜 왔으면 좋겠네요.” 산오징어가 산(山)으로 간 이유 건어물 제조업자 최모 씨(39)는 속초 바닷가에 있던 오징어 덕장을 강원 인제군 북면 용대리 산으로 옮겼다. 해발 800m 고지대였다. 최 씨네 ‘산오징어’가 ‘산’으로 가게 된 건 3년 전. 국내에 황사 비상이 걸렸을 무렵이었다. “기계로 말리면 편하죠. 그런데 사람들은 자연 바람에 건조된 오징어를 더 많이 찾아요. 그렇다고 바닷가에서 말릴 수가 있나요? 미세먼지가 잔뜩 끼어있는 데다 언제 또 센 황사가 올지 모르는데….” 해마다 10월이면 강원 속초 바닷가엔 목욕탕 의자에 앉은 아낙네들이 오징어를 손질해 너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하지만 황사 비상 사태가 이어지고 최근 미세먼지 문제까지 심각해지면서 바닷가에 빨래 널 듯 말리는 오징어의 위생에 대한 걱정이 쏟아졌다. 최 씨가 궁여지책으로 찾은 장소는 산속 덕장이었다. 젖은 오징어를 트럭에 싣고서 40분을 들어가야 하는 깊은 산골이다. 덕장을 새로 마련한 데다 먼 산속에 있다 보니 운송비 등 각종 비용이 예년에 비해 1000만 원 더 든다. 오징어를 산까지 운송해야 해 인력도 많이 필요하다. 오징어 건조로 한창 바쁜 9∼11월 말, 해안가 덕장에서는 인력 10명으로 충분히 일을 해냈다. 지금은 15명은 있어야 일이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산이나 해안가 모두 중국발 미세먼지나 황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산속 덕장의 경우 해안가에서 발생하는 미세먼지를 차단하는 효과는 있다. 해안가 바로 인근은 선박과 해염입자에서 나오는 미세먼지 영향으로 산속보다 미세먼지 농도가 높게 나타날 수 있다.   ▼ “또 먼지 몰려올텐데…” 오징어 건조장도 산으로 옮겨 ▼먼지를 피하는 사람들추가 비용이 들었지만 미세먼지는 최 씨에게 전화위복이 됐다. ‘청정지역에서 만든 산골 오징어’라는 이름을 달고 이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에 공급하니 제법 장사가 됐다. 하지만 젊은 사업가인 최 씨와 달리 대부분의 영세 건어물 제조업자들은 아직도 바닷가에서 미세먼지를 보고 한숨만 내쉴 뿐이다. 최 씨는 “나는 그나마 예외적인 경우”라고 했다. “건어물 제조업자 대부분이 새로운 덕장에 투자할 비용이 부족한 어르신이거든요. 행여나 바닷가에서 말린 오징어에 미세먼지나 황사가 덕지덕지 붙지 않을지 전전긍긍하면서도 뾰족한 방법이 없어 발만 구르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워요.” 노순아 국립환경과학원 연구사는 “서해에 비해 중국발 미세먼지의 영향을 다소 덜 받는 동해안 지역 주민의 삶에도 이미 변화가 생긴 것”이라며 “국내 미세먼지 배출량은 줄어드는 추세지만 중국에서 매년 넘어오는 미세먼지를 줄일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가장 작은 것이 가장 위험하다 김레온 군(3)의 엄마 이지연 씨(30)는 곧 불어올 황사가 두렵다. 생후 2개월부터 아토피 피부염으로 고생하는 김 군 때문. 황사철이 되면 김 군 얼굴엔 물집이 빨갛게 오른다. 피부가 벗겨져 진물도 난다. 이 씨는 언제 아들의 얼굴에 물집이 생기고 피가 났는지, 언제 붉은 기가 오래 지속됐는지 등을 매일 수첩에 기록해뒀다. 수첩을 보니 아토피 증상이 심해진 시기와 미세먼지 농도가 높았던 시기가 대부분 일치했다. 미세먼지가 아토피 피부염을 악화시킨다는 연구도 있다. 환경부와 삼성서울병원이 2009년 7월∼2010년 12월 삼성서울병원 아토피 환경보건센터에 내원한 소아환자 22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미세먼지 농도가 m³당 1μg 증가할 때마다 환자들이 겪는 가려움, 수면장애, 피부 진물 등의 증상은 평균 0.4% 늘었다. 황사나 미세먼지는 눈병,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거나 악화시키기도 한다.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나 노인, 평소 알레르기 질환이나 폐결핵, 천식 등 호흡기 질환을 앓는 사람에겐 더 위험하다. 숨을 쉴 때마다 들이마시는 미세먼지는 코털이나 기도 점막에서 걸러지지 못하고 폐 깊숙이 침투한다. 외부 이물질을 뱉기 위해 가래가 만들어지고, 그 가래를 뱉어내려 기침하는 증상도 생긴다. 입자가 특히 작은 초미세먼지는 말초 기관지나 폐포, 허파꽈리까지 닿아 염증 반응을 일으킨다. 전경만 삼성서울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초미세먼지는 기관지염이나 만성 폐질환을 유발하거나 심하면 순환하는 혈액으로 들어가 심장질환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혈관에 도달한 초미세먼지는 모든 기관으로 퍼져 나갈 수 있다.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대 환경과학연구소가 펴낸 책 ‘먼지보고서’에는 “가장 작은 입자는 심장 박동을 뒤틀리게 한다. 가장 작은 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것”이라고 쓰여 있다. 기상청은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중국발 미세먼지(황사가 더해지지 않은 상태)에 인체에 치명적인 ‘가장 작은 것’인 초미세먼지가 70∼80%가량 섞인 것으로 보고 있다. 초미세먼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입자가 큰 황사(4∼10μm)도 안전하진 않다. 황사의 주성분인 규소가 폐에 축적되면 규폐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인후염, 후두염을 유발하기도 한다.공기청정기, 마스크, 외출 자제 “먼지는 태초 이래 인간을 따라다녔다. 불을 지피거나 단순히 움직이는 것 등 인간이 하는 모든 것에서 먼지가 생겨난다.” ‘먼지보고서’의 한 대목이다. 미세먼지를 떨쳐내려는 인간의 행위마저도 미세먼지를 유발한다. 인간을 끈질기게 따라다닌 미세먼지와 황사를 인간은 떨쳐낼 수 있을까. ‘클린룸’을 만들지 않는 이상 집도 완벽한 안전지대는 아니다. 먼지보고서 저자 중 한 명인 루이트가르트 마샬 박사는 “집에 있는 먼지 대부분이 외부 먼지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집 안 공기는 외부와 똑같이 오염돼 있다”고 했다. 문을 닫아도 따뜻한 실내와 상대적으로 덜 따뜻한 외부의 온도차로 인해 미세먼지가 창 틈새를 비집고 침투한다. 송두삼 성균관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외국에 1년 넘게 나가 있다 집에 오면 가구에 먼지가 많이 쌓인 걸 볼 수 있다. 집에 사람이 없었음에도 이런 건 외부 먼지가 내부로 들어왔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공기청정기는 미세먼지 차단 효과가 있지만 10∼15평의 한정된 공간에서만 제 효력을 발휘한다. 김재열 중앙대 의대 호흡기내과 교수는 “황사마스크를 쓰면 완벽하지는 않지만 흡입하는 미세먼지 양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며 “황사가 오거나 미세먼지 농도가 평소보다 높을 때는 외부 활동을 최대한 자제하는 식으로 건강을 스스로 지키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손효주 hjson@donga.com·김수연·최지연 기자}

    • 2014-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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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안 앞바다 5.1 지진… 역대 세번째

    1일 충남 태안군에서 기상청이 계기 관측을 시작한 1978년 이래 세 번째로 큰 규모(리히터 5.1)인 지진이 발생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진은 이날 오전 4시 48분경 태안군 서격렬비도에서 100km 떨어진 해역에서 발생했다. 2004년 5월 29일 경북 울진 동쪽 80km 해역에서 발생한 지진과 1978년 9월 16일 충북 속리산 부근에서 발생한 지진(이상 규모 5.2)에 이어 북한을 제외한 남쪽에서 역대 세 번째로 강도가 셌다. 진동은 지진 발생 약 25초 후 진앙에서 200km 넘게 떨어진 서울 등 수도권에까지 전달됐다. 서울 은평구 불광동의 빌라 4층에 거주하는 공정희 씨는 “새벽에 침대가 조금씩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진앙 주변에서는 진도(사람이나 건물이 감지하는 진동의 정도)가 4로 나타났다. 진도 4는 창문이 흔들리며 벽이 갈라지는 소리가 나는 정도. 서울의 진도는 1∼2 규모로 건물 위층에 사는 일부만 느낄 수 있는 수준이었다. 기상청 지진감시과 이지민 연구관은 “멀리 떨어진 해역에서 지진이 발생해 일부 사람이 진동을 느낀 것 외에는 피해가 없었다”며 “해저 지질 조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이번 지진의 원인을 파악하기는 어려운 상태”라고 말했다. 이제 한반도도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지난해 규모 2.0 이상의 지진 발생 횟수는 93회로 계기 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많은 지진이 발생했다. 디지털 방식으로 지진 관측을 시작한 1999년부터 2012년까지 한 해 평균 지진 발생 횟수(44.5회)보다 2배 이상으로 늘었다. 이번에 규모 5가 넘는 지진까지 발생해 2011년 동일본 대지진 같은 대규모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그러나 기상청 관계자는 “규모 3 이상 지진의 연간 발생 횟수 추이를 보면 35년간 증감을 반복했다”며 “한두 해 발생이 늘었다고 한반도를 지진 위험 지역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14-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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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근혜 1기 정부, 이명박 1기 때와 비교해 보니… 靑수석은 13억 많고 장관은 14억 적어

    지난해 3월 출범한 박근혜 정부(청와대 1기 수석급 이상) 고위공직자들의 재산 평균액이 전임 이명박(MB) 대통령 당시 청와대 1기에 비해 10억 원이 넘게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28일 공개한 ‘공직자 재산등록 및 변동 신고사항’에 따르면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등 청와대 수석비서관급 이상 13명의 재산 총액은 354억4695만 원에 1인당 평균 27억2669만 원이었다. MB 정부 출범 1년 후인 2009년 3월 공개된 당시 청와대 수석급 이상 11명의 재산 평균액(14억2421만 원)보다 약 13억 원이 많았다. 이는 박근혜 정부의 윤창번 미래전략수석이 100억 원대 재력가인 데 따른 것. 윤 수석의 재산은 138억6757만 원으로 수석급 이상 인사 가운데 가장 많았다. 그는 이번에 재산이 공개된 고위공직자 2380명 중 재산 총액 상위 4위에 올랐다. 배우자 명의로 된 서울 강남구 주상복합건물이 116억5600만 원이나 됐다. 윤 수석과 부인 명의로 된 예금만 해도 31억2452만 원에 달했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37억5904만 원을 재산으로 신고해 수석급 이상 공직자 중 두 번째로 재산이 많았다. 그는 10억2000만 원 상당의 서울 평창동 단독주택을 본인 명의로 소유하고 있었다. 본인 및 부인 명의의 예금도 26억 원이 넘었다. 재산이 가장 적은 수석급 이상 공직자는 4억6027만 원을 신고한 이정현 홍보수석이었다. 반면 박근혜 정부에서 국무총리와 각 부처 장관들의 재산 평균액은 16억6887만 원으로 MB 정부 당시 평균(30억7400만 원)에 비해 절반 가까이 적었다. 국무총리 및 장관 중 가장 재산이 많은 사람은 본인, 배우자, 자녀의 재산을 포함해 총 45억7997만 원의 재산을 신고한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 16억5000만 원 상당의 서울 서초구 반포2동 래미안 퍼스티지 아파트 전세 임차권, 배우자 명의로 된 반포주공아파트(13억3600만 원) 등을 신고해 총 재산 가운데 부동산 비중이 76%에 달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14-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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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7일 대구 25도… 반팔 입어도 되겠네

    26일 서울의 낮 최고기온이 평년보다 10도 이상 높게 나타나는 등 중부 일부 지역이 올 들어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낮 최고기온이 20도를 웃도는 고온 현상은 다음 주까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상청에 따르면 26일 서울 낮 최고기온은 21.9도를 기록했다. 1981∼2010년 30년간 같은 날 서울지역 평균 최고기온(11.8도)보다 10.1도나 높았다. 서울에서 기상관측이 시작된 1907년 이래 서울지역 3월 기온으로는 다섯 번째로 높은 기록이었다. 역대 3월 중 가장 높았던 건 2013년 3월 9일의 23.8도. 26일 동두천(23.9도), 이천(23.5도), 춘천(22.4도) 등도 올 들어 가장 더운 날씨를 보였다. 이날 남부지방은 구름이 많거나 비가 내려 대구 16.6도, 전주 19.5도 등 중부지방에 비해 낮았다. 그러나 이 역시 평년 최고기온보다는 2∼6도 높다. 기상청 관계자는 “우리나라 북쪽에 고기압의 영향으로 따뜻한 남서기류가 지속적으로 유입된 데다 햇볕까지 강해 초여름 날씨가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기상청은 27일에는 서울 22도, 대구 25도 등 전국이 올 들어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기상청 관계자는 “29일 전국에 비가 내리면서 고온 현상이 잠시 누그러지겠지만 다음 주 초부터 다시 초여름 날씨가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14-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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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미엄 리포트]자살자 10명중 6명엔 가정폭력 아픔이…

    자살자 10명 중 6명은 부모나 배우자에게 가정폭력을 당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집안 분위기가 억압적이어서 가족 간 교류가 적었을 때도 자살 확률이 높았다. 동아일보 탐사보도팀은 2011년~2013년에 발생한 자살사건 60건을 대상으로 심리학 전문가들과 심리적 부검을 진행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심리적 부검은 자살자의 생애를 되짚어가며 절망에 이르게 된 경로와 고통의 실체를 찾는 작업이다. 한국은 하루 평균 43명(2011년 기준)이 자살하는 나라다. 인구 10만 명당 31.7명.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높다. OECD 평균은 인구 10만 명당 12.6명(2011년). 우리는 2003년부터 9년 연속 자살률 1위다. 자살률 세계 1,2위였던 핀란드는 1986년 국가 차원의 심리적 부검 프로젝트를 세계 처음으로 시도해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30.3명을 2012년 17.3명으로 줄였다. 취재팀은 자살의 씨앗이 폭력적인 가정에서 싹튼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부모의 가정폭력을 목격하거나 장기간 학대 및 방치된 사례, 결혼 후 남편한테 상습적인 신체·언어폭력을 당한 경우를 합치면 65%(39건)에 달했다. 가족 간 관계가 권위적이고 경직돼있어 교류가 적었던 사례도 63.3%(38건)였다. 가정폭력을 경험한 고인들은 어느 누구도 자신을 구출해주지 않았다는 무력감이 가슴 깊이 새겨져 있었다. 성장한 뒤 실직이나 채무누적, 이혼 등 고난이 닥쳤을 때 해결할 수 없다는 좌절감에 쉽게 빠졌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증오해야 하는 딜레마에서 허우적대다 우울증 같은 정신적 후유증도 남았다. 이 때문에 가정 밖에서도 인간관계에 서툴렀다. 부모와 건전한 신뢰관계를 맺은 경험이 없어 주변의 호의도 잘 믿지 못했다. 고민이 생기면 나누지 못하고 고립될 수밖에 없었다. 자존감이 낮아 자기 목숨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마저 강했다. 대구의 한 30대 여성은 아버지의 학대 후유증으로 말을 더듬고 손을 떠는 강박장애를 안게 됐다. 처음엔 참아주던 남편도 이 증세를 볼 때마다 폭력을 휘둘렀다. 이 여성은 결국 자살했다. 어릴 적 가정폭력을 당한 남성 상당수는 폭력성향을 대물림 받았다. 이들은 아내와 자녀를 괴롭히다 외톨이가 됐고, 자살로 내몰릴 때까지 외면 받았다. 아버지가 폭력으로 가족을 휘어잡는 걸 봐온 사람은 자기 문제도 폭력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고비가 왔을 때 자기 파괴적인 방식으로 벗어나려 했다. 자살은 대표적인 자기파괴 행위다. 가족간 의사소통이 취약한 가정에서 자살이 많은 이유는 가족끼리 어려운 상황을 공유해본 적이 드물어 문제를 혼자 해결하려 하기 때문이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는 "자살 직전에는 소외감이 극도에 달하는데 성장과정에서 가족의 지지와 보살핌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자살을 더 쉽게 결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삭막한 가정일수록 서로의 감정에 무관심해 자살 충동을 느끼는 가족이 신호를 보내도 거의 알아채지 못했다. 어쩌다 힘들다고 토로했을 땐 "다들 그렇게 살아" "나도 힘들어" "이겨내야지" 같은 반응을 보였다. 심리적 부검을 통해 접한 고인들은 한 번 닫힌 대화창구를 좀처럼 다시 열지 않았다. 보건복지부는 국내 처음으로 8개월에 걸쳐 체계적인 심리적 부검 연구를 진행했으며 이달 말경 최종 보고서와 함께 종합적인 자살 방지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신광영 기자neo@donga.com손효주기자 hjson@donga.com}

    • 2014-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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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미엄 리포트]우울증 약물처방 받았다고 민간보험 퇴짜

    최모 씨(51·여)는 매년 2, 3차례씩, 20년 넘게 자살 시도를 했다. 남편의 외도와 폭력에 시달리던 그는 분노가 극에 달할 때마다 가족이 보는 앞에서 자살하려 했다. 가족들이 "잘못했다"고 빌면 시도를 멈추는 식이었다. 베개 밑에 늘 칼과 넥타이를 감춰둘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지만 20년 동안 한 번도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지 않았다. 최 씨 남편은 "정신과에 가면 평생 정신병자로 낙인찍힌다"고 여겼다. 최 씨는 2012년 아들과 다툰 끝에 목을 매 자살했다. 가족들은 최 씨의 행위를 일상적인 반복 행위로 받아들였지만 정작 최 씨는 20년 넘게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분노를 쌓아온 것이었다. 이동우 인제대 의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한 번의 자살 시도도 심각한 수준의 질환이므로 첫 시도 당시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아주대 연구진과 동아일보 취재팀이 심리 부검한 60명 중 40명(66.7%)은 자살 전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 있었다. 40명 가운데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충분한 진료를 받은 사람은 6명(15%)에 불과했다.자살 위험군에 속한 사람과 그의 가족들이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지 않는 데는 낙인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작용한다. 대인 관계나 취업 등 사회 활동에 불이익을 받을까 두려워하는 것. 윤대현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통상 우울증 외래 진료 환자 3명 중 1명은 완치 전에 치료를 중단한다"며 "환자나 환자 가족이 환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해 중단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사회적인 불이익과 편견이 두려워 그만두는 것"이라고 했다.정부는 지난해 4월부터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상담을 받더라도 건강보험 청구 기록에 정신질환 대신 '일반 상담'으로 기록을 남길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지난해 4월 이후 처음으로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은 환자에게만 해당될 뿐 이전에 진료를 받은 적이 있는 사람이 다시 병원을 찾는 경우는 해당되지 않는다. 게다가 약물 처방을 받으면 정신 질환 기록이 남게 돼 있어 약이 긴급히 필요한 사람이 오히려 병원을 찾지 않게 만드는 결과를 낳고 있다.심한 정도에 상관없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병력이 있다는 이유로 민간 보험 가입이 거절되는 것도 문제다. 지난달 6일 신의진 의원(새누리당)은 보험사가 정당한 이유 없이 가벼운 우울증 등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치료를 받은 국민의 보험 가입을 거부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정당한 이유'의 기준이 모호해 가입 거절을 막는 데 한계가 있을 거라는 지적이 나온다.심리적 부검 프로젝트로 자살률을 절반 가까이 줄인 핀란드는 노인 등 사회 취약계층을 상대로 정기적인 상담을 진행했다. 자살 징후가 포착되면 그 즉시 전문 상담기관이 개입해 자살을 막았다. 한국도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손효주 hjson@donga.com·김재형 기자}

    • 2014-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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