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김순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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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순덕 칼럼니스트입니다.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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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7-04~2025-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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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文 대통령은 왜 구출 지시 하지 않았나

    여자가 돌아서지 못하는 이유는 대개 미련 때문이다. 설마 그건 아니겠지.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못할 일을 당하고도 지지리 궁상으로 사는 사람은 대체로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저도 사람인데 그럴 리가 없다며, 한사코 안 믿으려 든다. 우리 국민이 북한에 끔찍한 죽임을 당했다. 월북이든 불법침입이든, 북쪽 해상으로 넘어간 해양수산부 어업지도원이 북한군에 발견됐다는데,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오후 6시 36분 이 첩보를 서면으로 보고받고도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의례적일지언정 ‘구출에 최선을 다하라’ 같은 지시도 없다. 나는 이 사실이 너무나 이상하다.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 한 마리가 사라져도 찾아나서는 게 인지상정이다. 북한은 원래 이상한 집단이라 치고, 왜 문 대통령은 ‘우리 국민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모든 조치를 취하라’고, 전화로든 서면으로든 지시하지 않았는지 정말이지 납득되지 않는다. ● 리비아 납치 때 “국가의 모든 역량 동원해 구출하라” 만일 문 대통령이 어떤 지시라도 내렸다면 우리 국민이 그렇게 죽진 않았을 거다. 아무리 월북 의사를 밝힌 사람이라 해도 국가정보원이든 판문점 연락사무소를 통해서든, 대한민국 정부가 지켜보고 있음을 북에 알렸다면 생환은 못 시켜도 북에서 함부로 죽이진 못했다. 대통령에게는 북한 김정일에 친서까지 보낸 핫라인이 있지 않은가. 우리 국민이 리비아 무장단체에 억류됐던 2018년 8월, 청와대는 “납치된 첫날 ‘국가가 가진 모든 역량을 동원해 구출에 최선을 다해 달라’는 대통령의 지시가 내려졌다”고 발표했다. 김의겸 당시 대변인은 “정부는 사건 발생 직후부터 지금까지 그의 안전과 귀환을 위해 우방국들과 긴밀한 협력체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그의 조국과 그의 대통령은 결코 그를 잊은 적이 없다”고 했다(결국 억류 315일 만인 2019년 5월 16일 석방돼 이틀 후 귀국했다). “대한민국은 이제 단 한 사람의 국민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문장이 올해 대통령의 광복절 축사에 없었으면 또 모른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도 24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서욱 국방부 장관에게 “실종 공무원이 살아있던 22일 오후 6시 36분 서면보고 때 문 대통령이 아무런 지시를 하지 않았나”라고 캐물었다. 임명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국방장관 서욱이 암만 서류를 뒤적여도 대통령 지시는 적혀 있지 않았다. ● 대통령은 서면보고서를 보고도 편히 잤을까 혹시 문 대통령이 서면보고서를 보기는 한 건지 의문이 든다. 그 서면보고서가 대통령의 집무실로 전달됐는지, 퇴근 후여서 관저로 올라갔는지 청와대는 밝히지 않았다. 만일 서면보고서를 보고도 그 뒤에 어떻게 됐는지 설령 구출 지시는 안 했더라도, 궁금해하지도 않은 점이 납득되지 않는다. 다시 떠올리기도 싫지만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때는 관저로 전달됐다. 오전 10시 12~13분께 위기관리센터 상황병이 상황보고서를 들고 관저 입구까지 뛰어가 7분 만에 경호관에게 전달했으나 서류는 침실 앞 탁자 위에 올려졌을 뿐이다. 그럼에도 2016년 11월 청와대는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해 거짓 발표를 했다. 그날 오전 10시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서면보고를 받고는 10시 15분 “단 한 명의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전화로 국가안보실장에게 지시했다는 거다. ● 끔찍한 죽음을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건 아닌가참모진은 22일 밤 10시 30분 북에서 우리 공무원을 사살하고 불태웠다는 첩보를 접하고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이 첩보를 놓고 23일 새벽 1시부터 안보실장, 비서실장, 통일부장관, 국정원장, 국방부장관이 관계장관회의를 열면서도 대통령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건 너무나 기이하다. 새벽 1시 30분부터는 미리 녹화한 대통령의 유엔연설이 공개되고 있어 더욱 이상하다. 대통령도 깨어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남북 종전선언을 제안하는 연설 내용을 바꾸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바로 그 때문에 대통령은 남북 간의 불상사를 모르고 있는 게 낫다고 ‘정리’했을 수도 있다.결국 문 대통령이 이 끔찍한 첩보를 알게 된 것은 우리 국민이 사망한 지 10시간 만인 23일 오전 8시 30분이라고 한다. 대면(對面)보고 후 “정확한 사실 파악이 우선이다. 북에도 확인을 하도록 하라. 만약 첩보가 사실로 밝혀지면 국민이 분노할 일이다.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지시는 침착하기 그지없다. 대통령에게는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북한이 시신을 불태웠다는 첩보가 맞는지, 그게 사실이면 국민이 분노할 일이 더 관심사 같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그러고도 “충격적인 사건으로 매우 유감스럽다”는 대통령 입장이 나온 것은 대면보고 이후 하루 반나절이 지난 24일 오후 5시 10분이었다.● 제 국민보다 북한 김정은이 더 중한 사람들충격과 유감도 잠깐이다. 25일 오전 북한 김정은이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통지문을 보내오자 정부 여당의 분위기는 감격과 감읍으로 돌변했다. 문 대통령은 28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하는 정부로서 송구한 마음”을 밝히면서도 “이번 비극적 사건이 사건으로만 끝나지 않도록…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 계기로 반전 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여당에서 쌍수 들고 종전선언 촉구 결의안이나 북한 개별 관광 촉구 결의안을 주장하는 것과 비슷한 심정인 듯하다.정부 여당에는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북한 김정은이 백배천배 더 중하다는 사실이 이보다 명백할 순 없다. 이제는 미련을 버릴 때가 됐다. 설마 제 국민보다 북한 김정은을 더 위하는 건 아니겠지. 남북관계를 진전시켜 북핵을 포기시키려는 것이겠지. 우리 국민이 참혹한 죽임을 당했는데도 문파들은 대체로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김정은도 사람인데, 문 대통령도 사람인데 그럴 리가 없다며 한사코 안 믿으려 든다. 김정은이 계몽군주라는 데 동의한다면 문파들의 대통령이 ‘깨몽군주’라는 것도 인정해야 할 때가 됐다. 그들은 무슨 이유에선지 대한민국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은을 더 위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이 꿈에서 깨지 못한다면 국민이라도 깨어나야 한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0-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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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문재인 정부의 공정이란 무엇인가

    문재인 정부가 ‘공정’을 외칠 때면, 자꾸 전두환 정권 때 ‘정의사회 구현’이 떠오른다. 불경스러운 연상 같아 미안하지만 내 의지론 어쩔 수 없다. 조건반사적 반응이니까. 우선 공정사회와 정의사회는 발음부터 비슷하다. 둘 다 대통령 취임사에서 처음 등장해 그 정권을 대표하는 구호가 됐다는 점도 같다. 결정적으로는, 공정 또는 정의를 내세우면서 전혀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는 점이 닮았다(두 대통령이 닮았다는 건 절대 아니다).● 추미애와 손잡고 “공정은 촛불혁명의 정신”문 대통령은 19일 청년의 날 행사에서 “특권과 반칙이 만연한 사회”를 지적하면서 “공정은 촛불혁명의 정신”이라고 강조해 국민의 염장을 질렀다. 그 기념사에 뒤집힌 심정을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기득권은 부와 명예를 대물림하고, 정경유착은 반칙과 특권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조국이 부와 명예를 대물림하고, 추미애가 반칙과 특권을 당연하게 여겼거든요. “독재권력은 이념과 지역으로 국민의 마음을 가르며 구조적인 불공정을 만들었습니다.”→그럼 의사와 간호사로 국민의 마음을 가른 청와대는 뭔가요? 독재권력인가요? “기성세대가 불공정에 익숙해져 있을 때, 문제를 제기하고 우리 사회의 공정을 찾아 나선 것은 언제나 청년들이었습니다.”→추미애 아들 문제를 제기한 당직사병도 청년이었어요. “우리 정부 또한 청년들과 함께하고자 했고, 공정과 정의, 평등한 사회를 위해 한 걸음씩 전진하고 있습니다.”→우씨. 언제요 언제?● 文정부가 ‘공정을 바라보는 눈’은 달랐다이번 대통령 연설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공정을 바라보는 눈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라고 본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차별을 해소하는 일이, 한편에서는 기회의 문을 닫는 것처럼 여겨졌다”면서 문 대통령은 “공정을 바라보는 눈이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이 공정에 대해 더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밝힌 것이다. 그래서 진정 공정을 더 성찰하게 됐다고는 보이지 않는다. 문맥상으로 보면 인국공(인천국제공항공사) 사태를 언급한 건데 전체적으로 보면 이 정부가 자신들이 하는 일은 무조건 옳다고 믿는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공정경제3법, 외국어고 폐지 같은 교육개혁, 부동산정책, 심지어 권력기관 개혁과 4차 추경안까지 연설문에 언급된 모든 정책은 지고지순하기 한량없다. 심지어 문 대통령은 2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행사에 추미애와 나란히 입장함으로써 청와대가 공정을 보는 눈은 조국·추미애와 같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렸다. 그렇다면 혹시 추미애 아들이 억울한 누명을 쓴 게 아닐까 싶어지는 순간, 천만다행하게도 노무현 정부 때 정무수석을 지냈고 독설을 서슴지 않지만 틀린 말은 하지 않는 ‘엽기수석’으로 유명한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이 사태를 한마디로 정리해줬다. “막말로 빽도 있는데 다 손 써서 휴가를 갔을 것”이라는 거다(21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 지배계급도 법의 지배를 받아야 공정한 것여기서 공정이란 무엇인지 학술적으로 정의(定義)하는 건 시간낭비라고 본다. 한때 ‘정의란 무엇인가’로 한국에서 히트 쳤던 마이클 샌들의 정의론을 비롯해 정의(正義)와 공정(公正)에 대한 정의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은 2011년에 내놓은 보고서 ‘복지국가와 사회정의’에서 “존 롤스의 정의론이 우리가 지향하는 복지국가를 안정적으로 지지해줄 수 있는 정의론이라는 점을 확인했다”면서도 “다른 사회철학적 입장들도 각기 나름대로 일리가 있다”고 밝혔다. 즉 정의와 공정을 바라보는 눈은 다를 수 있다는 거다. 다만,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점은 고대 로마법 이래 법(法)이 정의를 실현하는 의지의 산물로 인식돼 왔다는 사실이다. 법에 의한 지배(rule of law)는 그래서 중요하다. 특히 법치주의에서 피지배계급만이 아니라 지배계급 역시 정해진 법을 따르는 데 예외가 아니어야 공정한 사회다(집권세력이 자의적으로, 나는 빼고, 법을 집행하는 국가가 공정하다는 사람 있으면 당당히, 이름 걸고 댓글 달아주시기 바란다).● 86그룹은 민주화운동을 한 게 아니다문재인 정부의 집권세력은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것을 훈장처럼 자랑하는 집단이다. “당신들의 법과 사상은 부르주아지의 생산체제와 소유관계의 부산물이고 지배수단과 도구에 불과하다”는 공산당선언까지 들먹이고 싶진 않다. 그러나 민주화운동 세력이 정권을 잡았음에도 왜 과거 독재권력 뺨치는 반칙과 특권으로 구조적 불공정을 만드는지, 대통령은 그걸 왜 싸고도는지 나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집권세력 86그룹은 민주화운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면 쉽게 풀린다. “그들은 민주화된 대한민국을 추구하지 않았다”고 딴지일보 에디터와 ‘포린폴리시’ 한국어판 편집장을 지낸 노정태는 신동아 9월호에서 밝혔다. 과거 학생운동을 했던 봉달호(필명)는 “반미, 종북이 본질이었던 우리 운동을 민주화운동이라고 부르는 것은 도둑질하려고 은행에 들어갔다가 우연찮게 은행 강도를 잡은 도둑을 영웅으로 추앙하는 형국”이라고 신동아 7월호에 쓴 바 있다. 강준만은 ‘강남좌파2’ 책에서 집권 86그룹이 ‘도덕적 우월감’에 중독돼 있다며 그들이 이끈 한국정치가 불평등을 완화하기는커녕 오히려 확대재생산했다고 비판했다. 당연하다. 그들은 아침에 간을 빼놓고 출근해야 하는 일터에 나가 제 손으로 돈 벌어본 적이 없다. 그러니 “오늘날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부정의(不正義) 문제는 거의 대부분 박정희체제나 그 산물인 재벌체제, 혹은 신자유주의에서 비롯된 것으로 설명된다”고 참 쉽게 주장할 수 있었을 것이다. ● 거대한 이권네트워크를 어찌할꼬젊어서부터 전대협 ‘의장님’으로 권력놀음에 익숙한 그들은, 법은 우습게 알아도 권력의 효용가치는 안다. 노무현 정부에서 누린 권력은 짧았지만 야당 권력이나 노조, 시민단체 권력도 나쁘진 않다. 전화 몇 통이면 봐주고 챙겨줄 수 있는 운동권 출신 이권네트워크가 탄탄하고도 촘촘히 형성돼 있다. 민주주의를 배운 적도, 제대로 공부해본 적도 없는 그들에게 자유와 평등, 공정, 정의를 구하는 게 웃기는 일이었던 거다. 문 대통령과 함께 ‘검찰을 생각한다’는 책을 썼던 김인회는 작년 말 ‘정의의 미래―공정’이라는 책을 내놓았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초대 처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물이라 거금 1만5000원을 주고 사서 읽고 나니 더 답답해졌다. “미래비전의 정의와 공정의 관계를 생각하는 전제로서 인간관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라는 난해한 문장으로 시작해서 결론은 사법개혁, 공수처 설치, 과거사 정리를 통한 인권과 평화였다. 문 정부가 자행하는 사법개악과 공수처와 과거사 뒤집기가 정의의 미래이자 공정이라면, 이 나라에는 정말 희망이 없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0-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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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新주류세력 자녀들만 龍 되는 나라

    대통령이 친문(친문재인) 후계자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염두에 둔 게 아닌가 싶다. 그러지 않고서야 친문 의원은 물론 검찰, 국방부, 공직자 부패를 감시하는 국민권익위원회까지 일제히 호위무사로 나설 리 없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작년 가을 ‘조국 수호 검찰개혁 촛불문화제’가 이어졌지만 교육부나 금융감독원 수장이 조국의 비리 의혹까지 싸고돌진 못했다. 추미애 아들의 군 휴가에 대한 엄호는 진영논리를 능가한다. 국민 편 가르기를 넘어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위기감이 엿보인다. 특히 국회 국방위원회 더불어민주당 간사 황희 의원이 “도저히 단독범이라고 볼 수 없다”며 당직사병의 실명을 공개한 것은 무고한 시민을 테러 한복판에 몰아넣은 행위나 다름없다. 장관과 그의 귀한 아들 구하자고 대한민국 청년의 인권을 짓밟는 거대여당이 무슨 짓은 못할지 모골이 송연할 판이다. 애초 이 문제는 추미애가 자초한 책임이 크다. 작년 말 인사 청문회를 앞두고 야당이 아들의 휴가 자료를 요구할 때 휴가명령서든 병원진단서든 성실한 해명이든 내놨다면 지금 같은 국가적 에너지 낭비는 없었을 거다. 추미애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근거 없는 내용이 떠돌아 정보 제공할 수 없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댔다. 그러곤 아들 휴가 연장에 대해 “외압을 쓸 이유도 없고 쓰지도 않았다”며 오만한 애티튜드였다. 국민은 우파 야당을 싫어할 수도 있고 우습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장관이 야당을 무시한다는 건 국민을 능멸하는 일이다. 국민의힘이 공익제보를 파고들지 않았다면 집권세력의 힘이 국가 제도와 근간을 어떻게 무너뜨리고 있는지 국민은 모를 뻔했다. ‘황제 병역’ 의혹 자체보다, 문재인 정권이 검찰개악(改惡)에 돌진하는 추미애를 지키기 위해 국기(國基) 문란도 서슴지 않는 것은 더 섬뜩하다. 검찰이 인사권을 쥔 법무장관 무서워 아들의 수사를 뭉갠 정황은 차라리 이해된다. 추미애는 정권비리 의혹 수사를 막겠다고 윤석열 검찰총장의 수족을 자르면서 아들의 수사라인까지 와해시켰다. ‘검찰의 사유화’다. 대통령의 대학 후배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지난주 윤석열 장모 고소·고발 사건을 검찰 내 신주류세력인 순천고 출신 부장검사에게 전격 재배당했다. 치사하게 지역주의를 자극해 ‘민주당 20년 집권’의 발판을 굳히고, 추미애는 그 공으로 2022년 대선 후보가 될 작정이 아니길 바란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추미애 아들한테 면죄부를 주려는 듯 지휘관의 잘못을 강조했다. 군의 기강을 뿌리째 흔든 것이다. 곧 떠날 사람이지만 전 국민 앞에서 지휘관을 욕보이다니 내가 다 수치스럽다. 서욱 장관 후보자 역시 특혜 의혹에 대해 “획일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며 몸을 사렸다.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는 국방장관을 군이 목숨 걸고 따를지 걱정될 따름이다. 이제 ‘전화로 휴가’ ‘카톡으로 병가’ 민원까지 쏟아져 병력에 차질이 생기면 누가 책임질 텐가. 이 모든 것을 내다본 양 추미애는 2017년 말 중국공산당 주최 행사에 참석해 “대한민국이 촛불혁명으로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켰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의법치국(依法治國)의 전범”이라는 거다. 의법치국이 공산당 영도를 따르는 중국특색의 사회주의 법치임을 알고 말했다면 큰일이다. 민주당 영도를 따르는 검찰, 대한민국 국군이 아닌 민주당의 군대를 만들려는 의미로 읽힌다. 시진핑 중국공산당 총서기 같은 혁명 원로 2세들을 태자당(太子黨)이라고 한다. 지난해 조국 사태로 교육의 불평등·불공정 문제가 터지자 문재인 정부는 ‘2025년 자율형사립고 외국어고 국제고 폐지’를 깜짝 발표했다. 86그룹·호남·시민단체 출신 신주류세력이 제 자식들은 외고-명문대-의학전문대학원에 보내고는 외고 같은 교육사다리를 끊어버린 것이다. 신주류 2세의 태자당만 지배계급을 세습하겠다는 전체주의 정책폭력이다. 물론 신주류세력은 모두 용이 될 필요는 없다며 가재 붕어 개구리로 살아도 행복한 개천을 만들겠다고 했다. 나라와 미래를 위한 정말 좋은 교육, 국민을 지키는 안보를 고민하기는커녕 가붕개는 덜 공부시키고 더 가난하게 만들어 좌파 영구집권을 꾀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추미애 사태가 터진 김에 그 아들이 복무하던 카투사를 없애고 주한미군도 철수시켜선 남북 지배계급이 원하는 평화협정까지 냅다 달릴까봐 걱정이 태산이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0-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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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코로나19, 독재자 끌어내릴까

    벨라루스가 코로나19 여파에 무너진 첫 독재국가로 기록될지 모르겠다. 공산주의 소련 붕괴로 독립한 이 나라를 26년째 철권통치하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대통령(66). 한 달 전 대선에서 6선에 성공했지만 반(反)독재 시위는 갈수록 격해진다. 대선 후보를 포함한 여성 리더 3명이 추방, 납치되는 일까지 벌어져 세계가 좌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나라의 첫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라는 ‘목소리 소설’을 썼다. 지금 벨라루스의 민주주의는 여자의 얼굴을 하고 있어 더 관심을 끈다. ● 여자의 얼굴을 한 벨라루스 민주주의2001년, 2006년, 2010년 그리고 2015년 대선 때도 부정선거 규탄 시위는 있었다. 지금 같지 않았을 뿐이다. 독재 아래 오래 살아선지 벨라루스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온순’하다. 소련이 해체될 때도 대다수가 소비에트연방에 남기를 원했을 정도다. 하원의원 110명을 뽑는 작년 선거에서도 야당 의원은 한 명도 안 뽑혔다(친정부 성향의 무소속이 89명, 나머지는 공산당과 노동정의당 등 친정부 정당 소속 의원들이다). 이 평화로운 정치판에 ‘쎈 언니’ 3명이 떴다(셋 다 미스유니버스대회급 미녀들이다). 루카셴코는 대선 때마다 유력 주자들에게 누명을 씌워 주저앉히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번엔 출마가 막힌 정치인 대신 그 아내가 대선 후보로 나선 것이다. “정치보다 부엌에서 돈가스 튀기는 게 더 좋다”던 스베틀라나 티하놉스카야(38)의 당선을 위해 유력 주자의 부인 베로니카 쳅칼로, 또 다른 유력 주자의 선거운동원 마리아 콜레스니코바(38)가 합류하자 공기가 달라졌다. 투표가 공정하게 진행된 투표소에선 티하놉스카야의 표가 70% 이상 나왔다는 게 영국 이코노미스트지 보도다. 그럼에도 루카셴코는 80%가 넘는 득표율로 당선됐다. 세 여성 리더는 독재자의 탄압에 추방됐거나 체포됐다. 여자들이 백러시아라는 나라 이름대로 흰 전통의상을 입고 시위에 나섰는데 남자들이 몸 사릴 리 없다. 그리하여 독재자를 끌어내리는 데 성공한다면, 벨라루스의 국민적 사랑을 받는 명화 ‘에바’에서 따온 ‘에발루션(Eva+revolution) 혁명’이 되리라는 외신까지 나왔다. ● 독재자에게는 국민보다 권력이 중하다 벨라루스는 선거로 독재의 정당성을 입증해온 선거권위주의 정권이다. 달랑 부정선거뿐이라면 시위는 진작 진압됐다. 이번 시위가 과거와 다른 건,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정권의 형편없는 대응이 뇌관으로 깔려 있다는 점이다. 첫 확진자가 발생한 2월 28일, 루카셴코는 “(이웃나라) 폴란드에 발이 묶인 러시아인들이 벨라루스를 통과해 귀국하게 해주겠다”고 나서 제 국민을 분노시켰다(국경 폐쇄가 효과적이지 않다던 어느 대통령이 연상된다). 5월 9일엔 수천 군중을 모아놓고 2차 세계대전 전승 기념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를 벌여 2주 후 이 나라를 100만 명당 확진자 수 상위 10개국에 올려놨다.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가 없는 나라에서 반대가 빗발쳤지만 대선이 닥친 루카셴코에겐 국민의 생명보다 중한 게 있었던 거다. 대통령 권력을 지켜주는 군과 경찰의 사기! 그 결과 인구 980만 명도 안 되는 이 나라의 코로나19 확진자가 7만3000여 명, 사망자가 720여 명이다. 100만 명당 확진자로 따지면 세계 평균(3549명)의 두 배가 넘는 7777명이다. “루카셴코가 국민을 뭘로 보는 건지, 뒤늦게 국민이 알게 된 것”이라는 콜레스니코바의 외신 인터뷰도 있다. 대통령이 지금까지는 기업이나 반정부 세력을 증오의 대상으로 지목해 왔는데 알고 보니 전체 국민을 적(敵)으로, 노예로 여기더라는 대목에서 나는 울컥했다. ● 자유냐 소시지냐,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 벨라루스는 북한과 함께 ‘폭정의 전초기지’로 지목된 나라다. 소련 붕괴 후 동유럽 국가처럼 민주화 해본 적도 없어 아직도 KGB라는 이름의 비밀경찰이 대통령의 개 노릇을 한다. 벨라루스의 남쪽 국경과 맞닿은 우크라이나가 2004년 오렌지혁명, 2014년 유로마이단 혁명으로 두 번이나 대통령 당선자와 대통령을 갈아 치운 것과 참 대조적이다. 하지만 경제로 따지면 벨라루스가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에 육박하는 반면 우크라이나는 1만 달러를 못 넘는다(나라 면적과 인구 규모는 우크라이나가 훨씬 크다). 세계은행의 ‘기업하기 좋은 환경’에 이유가 있을까 싶어 2019년 순위를 보니 벨라루스가 190개 국가 중 49위, 우크라이나는 64위였다. 한때 벨라루스에선 “자유냐, 소시지냐” 같은 말이 유행했다고 한다. 한때 법무장관이었던 조국은 “중요한 건 용이 되지 않아도, 개천에서 가재·붕어·개구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독재국가와 독재가 아닌 국가 중 어디가 나은지 나는 잠깐 고민했다. ● 독재자에게 ‘가붕개’ 운명을 맡길 텐가 벨라루스 민주화를 응원하는 인터넷 매체 ‘벨라루스 다이제스트’에서 답을 발견했다. “우크라이나엔 국회에 야당이 있어 정쟁이 요란하다. 그러나 정부가 못하면 교체를 할 수 있다. 벨라루스에선 루카셴코를 빼고는 모든 법과 제도가 무의미하다. 부자나 기업인도 야권을 지원하거나 대통령 눈 밖에 나면 한순간에 날아간다.” 루카셴코도 이번엔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모양이다. 평화시위를 벌이던 시민 두명을 죽음으로, 수천 명을 감옥으로 몰아넣고도 모자라 “벨라루스가 무너지면 다음은 러시아 차례”라며 동색의 러시아 대통령 푸틴에게 신호를 보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나라를 팔아먹을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판국이다. 독재자가 안정과 성장을 제공하고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는 독재를 묵인하는 ‘사회적 계약’은 깨졌다. 평화로운 척했던 개천은 뒤집어졌고 가붕개는 더러운 물로 돌아갈 수 없다. 내가 용이 될지 말지를 대통령이 정하는 나라, 집권세력 자제들만 용 되는 나라에서 나는 살고 싶지 않다. 벨라루스의 자유와 민주, 그리고 쎈 언니들의 귀환을 빈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0-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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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文정권에선 왜 펀드사기 줄줄이 터지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지난주 정경심 재판에 나와 모든 증언을 거부했다. 딸의 운명이 걸린 입시 비리 혐의만이 아니다. 사모펀드 비리 혐의에 대해서도 형사소송법148조만 되뇌며 입을 다물었다.딸을 의사 만들겠다고 교수 부부가 별별 일을 다 했다는 검찰 발표는 자식 가진 모든 이의 공분을 자아냈다(문파와 조빠 빼고). 하지만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PE), 블루코어밸류업 같은 사모펀드 용어가 등장하면 복잡해서 관심줄 놓기 십상이다. 조국의 탁월한 점이 바로 이거다.‘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조국흑서)’에 참여한 권경애 변호사에 따르면 조국 문제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이전 정부가 부를 축적하는 방식이 최순실의 미르재단처럼 재벌들과 거래해 돈을 빼내는 식이었다면, 사모펀드는 권력에 연줄을 대 국책사업의 보조금을 따내는 사업권을 획득할 기회를 얻는 것.” 쉽게 말해 사모펀드는 돈과 권력을 잇는 빨대요, 86그룹 집권세력이 업그레이드시킨 부패인 셈이다. ● 뇌물 대신 펀드로 돈 버는 권펀유착여기서 잠깐. 암만 복잡해도 펀드 기본용어는 알아야 감이 잡힌다. 펀드엔 공모(公募)펀드와 사모(私募)펀드가 있는데 공모펀드와 달리 사모펀드는 진입장벽도 낮고 규제도 낮다. 정경심이 관련된 코링크PE, 대규모 환매 사태가 일어난 라임자산운용과 옵티머스자산운용이 사모펀드 운용사다. 사모펀드를 발행해 모은 자금을 기업에 투자하고 수익금은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구조다.조국흑서에 따르면, 조국의 계좌에서 나간 8500만 원이 코링크PE 설립자본금에 쓰였다고 한다. 코링크를 설립한 조국의 5촌 조카 조범동의 공소장에 나오는 얘기다. “코링크는 처음부터 조국의 돈으로 세워진 회사”라는 게 참여연대 출신 회계사 김경율의 주장이다.그들만 아는 미공개정보는 권력이자 돈이다. 다시 조국흑서에 따르면, 코링크는 서울시지하철 공공와이파이사업권을 따내려 만든 회사로 봐야 한다고 했다. 청와대, 특히 민정수석실은 정보를 취급하는 곳이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모펀드가 투자하기 좋은 기업정보를 알 수 있다. 청와대 실세가 사모펀드에 이름을 감춘 채 국책사업으로 보조금을 받는 사업체에 투자함으로써 ‘이해충돌’을 자행한다는 데 김경율, 권경애 같은 진보단체 출신이 공분을 못 참고 나섰던 셈이다. ● 라임·옵티머스에 어른대는 권력 그림자라임, 옵티머스 등 최근 줄줄이 터진 사모펀드 사건에도 이런 신(新)정경유착, 아니 권펀유착의 그림자가 어른댄다. 라임 사태란 국내 1위의 사모펀드 운용사인 라임자산운용이 사모펀드 환매 중단으로(쉽게 말하면 파산) 4000여 명의 투자자가 1조6679억 원을 날린 것을 말한다. ‘쩐주’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의 ‘어마무시한’ 로비 대상에 청와대 행정관, 여당 의원들이 등장하는데 이 정도 ‘뒷심’에 금감원이 투자원금 전액 반환이라는 전례 없는 조치를 내렸을 것 같지가 않다.옵티머스 사태는 공공기관에 투자한다며 사모펀드를 발행해 5300억 원가량을 모은 옵티머스 자산운용사가 실은 서류를 위조해 부실기업에 투자했다는 사건이다. 야당은 옵티머스를 설립한 이혁진 전 대표를 놓고 “배후에 청와대가 있다는 정황이 포착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이럴 줄 알고 증권범죄수사단 폐지했나임종석 대통령외교안보특보와 대학 동기(한양대 86학번)이고, 서류 위조 혐의의 윤모 변호사의 부인이 청와대 민정수석실 행정관이었다. 이혁진은 2018년 3월 검찰 조사를 받다 홀연 출국해 문재인 대통령의 베트남, 아랍에미리트 순방 장소에서 사진까지 남겼음에도 여태 소환되지 않는 괴력을 발휘했다. 금융경제범죄는 과거 정권에서도 권력형 비리나 정치권과 연결된 경우가 적지 않다. 김대중 정부 때 이용호 게이트, 이명박 정부 때 저축은행 사태와 비교하면 작금의 펀드 사태는 첨단 투자기법을 활용해 훨씬 세련되게 변모한 셈이다. 그렇다면 금융전문수사는 더욱 앞서가야 마땅한데도 이 정부의 충실한 법무장관 추미애는 올 초 취임하자마자 증권범죄수사단 폐지를 전격 발표했다. ● 그 많은 돈은 다 어디로 갔나바른사회운동연합 공동대표인 김종민 변호사는 “특히 라임이나 옵티머스 사태에 정관계 인사들이 연루됐다는 의혹도 적지 않은 상태에서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이 폐지된 것은 심각한 문제”라고 우려했다. 7월에 개최한 세미나 ‘범죄의 온상이 된 사모펀드’에서 “검찰수사를 무력화시키려는 정치적 배경이 있는 게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나온 것도 당연하다. 86그룹 집권세력은 ‘이해충돌’ 관련에서 유독 미성숙한 부분을 보여주고 있다. 전대협 시절 기수와 학번으로 끈끈하게 이어져 이권으로 뭉친 이들 운동권 네트워크에선 국정의 사사화, 공직의 사유화에 죄의식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국책사업 관련 미공개정보를 움켜쥔 이들이 이름을 감추고 사모펀드에 투자해선 혈세 보조금을 빼먹어도 국민은 알 방법이 없다. 정부가 투자처를 콕 찍어주는 뉴딜펀드가 불안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올 7월까지 1년간 환매 중단된 펀드가 22개, 피해 규모는 무려 5조6000억 원으로 추산된다. 앞으로 사모펀드 만기가 돌아오면 얼마나 더 환매 중단 사태가 벌어질지 알 수 없다. 김경율은 7월 사모펀드 세미나에서 “각종 펀드들이 투자했다는 돈의 실체와 최종 귀착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대체 그 많은 돈들이 어디로, 누구에게 갔는지 언제 밝혀질 수 있을 것인가.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0-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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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정권비리 콕 찍어 알려준 추미애의 검찰인사

    아들의 ‘황제 탈영’ 의혹을 제기한 야당 의원에게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소설 쓰시네” 빈정댔다. 두 달 전엔 “아이가 굉장히 화가 나고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며 검찰이 빨리 수사해 진실을 밝히기 바란다고 오만하게 말했다. 동아일보 취재에 따르면, 거짓이었다. 집권당 대표 때는 보좌관을 시켜 그 어렵다는 군인 병가를 받아내더니, 법무장관이 돼선 대한민국 검찰까지 딴소리하게 만드는 형국이다. 그 마마보이 같은 아들이 변호사를 동원해 뭐라 설명하든, 군인이 부대 복귀 날 안 가고도 무사한 건 ‘엄마 찬스’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이 땅에 태어난 여자들은 누구나 한때 군인을 애인으로 갖는다. 대한민국 남녀 모두를 분기탱천시킨 반칙이고 특권이 아닐 수 없다. 동부지검은 고민 많게 됐다. 조국 등 현 정권 인사들을 수사한 검사들을 효수(梟首)하듯 표 나게 좌천시킨 추미애다. 법무장관 아들의 휴가에 문제가 없었다고 수사 결과를 말하면 국민이 안 믿을 것이고, 문제가 있었다고 발표하면 선혈 낭자한 귀양길을 가야만 한다. 정권이 바뀌기까진 어떤 검찰도 똑같은 굴레를 벗어나기 어렵다. 브라질은 그런 고민 하지 않는다. 우리처럼 전직 대통령 한 명을 부패 혐의로 감옥에 보내고 또 한 명은 탄핵한 이 나라에선 지금도 연방검찰총장이 두려움 없이 현직 대통령 자이르 보우소나루 수사를 들여다보고 있다. 올해 4월 세르지우 모루 법무장관이 “대통령은 연방경찰에 수사·정보 보고를 요구하다 거부당하자 연방경찰청장을 경질했다”며 전격 사퇴하자 연방검찰총장이 즉각 수사를 촉구한 것이다. 나는 내 상식을 의심했다. 청와대가 당연히 여기는 정보경찰 보고가 정상 국가에선 직권 남용이고, 사법 방해였던 거다. 더구나 아우구스투 아라스 검찰총장은 작년 9월 대통령이 연방검사들의 3배수 추천을 무시하고 지명한 코드인사였다. 그럼에도 검찰총장이 대통령 권력 앞에 당당한 이유는 인사와 예산의 독립성이 확보돼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도 21년이나 우리처럼 군사독재를 겪었고 검찰은 집권세력의 충견이었다. “1988년 민주헌법에서 대통령과 법무부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브라질 검찰은 주도적으로 개혁에 나섰다”고 브라질 변호사인 조희문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한다. 수사권을 경찰에 넘기는 대가로 제4의 헌법기관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받은 것이다. 제도가 바뀌어도 문화는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처럼 끈끈하고, 챙겨주고 챙김 받는 걸 좋아하며, 권력자는 법 위에 있는 브라질에선 권력형 비리는 일상이었다. 2014년 국영 에너지기업 페트로브라스 비자금 문제가 드러나면서 ‘라바 자투(세차용 고압분사기) 작전’이라는 이름의 대대적 부패 수사가 시작됐다. 2013∼2017년 검찰총장을 지낸 호드리구 자노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부터 자신을 임명한 지우마 호세프 전 대통령, 그리고 미셰우 테메르 전 대통령까지 3명을 기소하는 쾌거를 이뤘다. 2017년 현직 대통령으로서 처음 기소된 테메르가 “드라마를 쓰고 있네”라며 검찰을 비난하자 자노는 “누구도 법 위에 있을 수 없다”며 맞선 진정한 무사였다. 그럼에도 자기들 역시 부패에서 자유롭지 않은 연방하원은 두 번이나 대통령 기소 안건을 부결시켰다. 자노 총장은 임기 만료 이틀 전인 2017년 9월 15일 또다시 테메르를 기소했다. 결국 테메르는 퇴임 석 달 만인 작년 3월 부패 혐의로 전격 체포됐다. 이 기소장에 의거해서다. 우리나라에선 1987년 민주화 이후 집권세력들이 검찰에 더 의존해 왔다는 건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집권 정치권력에 충성하는 검찰 권력의 속성이 바뀔 새가 없었다는 것도 비극이다. 스스로 개혁할 동력도, 이유도 없는 상태에서 모든 것을 움켜쥐고 있다가 오늘날 굴욕을 당하는 셈이다. 행인지 불행인지 추미애는 이번 검찰 인사에서 문재인 정권의 비리를 콕 찍어 폭로함으로써 브라질의 모루 장관 같은 내부 고발자가 되고 말았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임기 만료 이틀 전까지 끈질기게 현직 대통령을 기소했던 브라질 검찰총장을 배웠으면 좋겠다. 판사 출신인 추 장관도 현직 대통령 비리를 폭로해 2022년 대통령 감으로 번쩍 뜬 모루 장관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가 라바 자투를 출범부터 이끌어 록스타급 인기를 누린 판사 출신이라는 것을.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0-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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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문파’에 절절매는 집권당 대표 선거

    코로나19 사태니까, 어대낙(어차피 대표는 이낙연)이니까, 당연하다고들 한다. 29일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 경선이 관심을 못 끄는 것 말이다. 나는 코로나나 어대낙이 아니어도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누가 돼도 민주당은 달라질 게 없기 때문이다. 암만 별 볼 일 없는 정당이라고 해도 당 대표가 바뀌면 당도 달라져야 정상이다. 미래통합당을 보시라. 한시적 비상대책위원장이지만 김종인이 대표 자리에 앉자 보수꼴통, 꼰대정당 느낌이 줄지 않았나. 전임 정권 때만 해도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만 외치는 집권당 대표 경선은 없었다. 2014년 새누리당 시절 김무성은 ‘할 말은 하는 집권여당’을 내걸었고, 2016년 친박 이정현은 “나를 대통령의 내시라고 불러도 부인하지 않겠다”면서도 “당을 혁명해서 뒤바꿔 보겠다”고 나서 당 대표가 됐다. 결과적으론 실패했지만 수평적 당청관계여야 한다는 의식은 분명했다. ● 누가 당대표 돼도 지금 같을 문주당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도 2년 전엔 ‘강한 리더십’을 내세웠다. 이해찬만이 청와대를 견제할 수 있다는 기대가 꿈틀거렸을 정도다. 물론 그런 정황은 알려진 바 없다. 총선을 비롯한 모든 걸 ‘청와대 정부’가 주도하는 문주당(文主黨)으로 만든 것이 이해찬의 업적이라면 업적이다. 이번 경선주자들의 공약은 이런 문주당 그대로 가자는 거다. 지난주 갤럽 여론조사 당 대표 선호도 1등인 이낙연(48%)의 공약 1번은 ‘민주정부 4기를 준비하는 책임정당’이다. 2위 김부겸(15%) 역시 개헌·공수처·행정수도 이전 등 문 대통령 숙원사업을 성공시키는 책임정당을 3대 당 혁신공약 중 하나로 내세웠다. 차이가 있다면 이낙연은 내년 3월 대선 후보 경선까지만, 김부겸은 임기 2년을 꽉 채우겠다는 정도다. 정책토론·디지털정당 등을 내건 찐문 박주민(8%)의 정당개혁 공약이 달라 보이지만 뜯어보면 더 격한 문주당으로 끌고 가겠다는 거다. 사회적 의제 연석회의, 권리당원 1만 명 이상 온라인 청원 시 안건 상정 및 결과 발표 등의 내용은 의회민주주의 아닌 인민민주주의, ‘문파’ 주도 정당을 예고한다. ● 대통령을 향한 공세 차단이 위기 극복인가한 달 전 제주도에서 열린 첫 합동연설회에서 이들은 일제히 당의 위기를 말했다. 자신만이 위기의 리더가 될 수 있다면서도 그래서 집권당 대표로서 당을 어떻게 변화시키겠다고 말하지 않는 건 무책임하다. ‘청와대 정부’를 쓴 박상훈이 지적했듯, 문재인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는 의회와 정당을 무시하고 대통령 보좌조직에 불과한 청와대를 통해 통치한다는 점이다. 최고 권력자 중심체제가 권위주의다. 집권당 내에서도 “아니다” 소리가 나오면 극렬 지지층인 문빠를 이용해 무찔러 버린다. 의식 있는 당 대표 후보라면 문 대통령이 ‘남자 박근혜’로 남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당청관계의 정상화를 말해야만 하는 것이다. 매사를 엄중하게 주시하는 ‘엄중 낙연’은 22일 합동토론회에서 “당정관계를 실질적으로 강화하기 위해 내각에 국민의 목소리를 더 정확히 전달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곧 “청와대와도 필요하면 언제든지 대통령을 만나 국민과 당의 의견을 전하고 동시에 대통령과 내각을 향한 왜곡된 공세는 사실을 근거로 차단하겠다”라고 덧붙였다. 10일 인터뷰 때만 해도 “국무총리는 2인자지만 당 대표는 1인자다. (할 말을 하는) 새로운 이낙연을 보게 될 것”이라더니 2주일도 안 돼 온몸으로 문 대통령을 보호하겠다고 말을 바꾼 꼴이다. ● 그들이 문파를 두려워하는 이유김종인은 “그동안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봤는데 깜짝 놀랐다”고 이낙연을 평했다. 15일 광복회장 김원웅의 파묘 주장에 이낙연이 “광복회장으로서 그런 정도의 문제의식은 말할 수 있다”고 하자 나온 말이다. 김종인은 “지금 권력이 눈앞에 놓여 있어서 그런지 상상하기 어려운 얘기를 했다”고 해설했다. 덕분에 우리는 권력의 속성에 대해, 민주당의 본질에 대해 한층 더 다가갈 수 있게 됐다. 당 대표 선거에서 강성 지지층인 권리당원 투표가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40%다. 물론 당 소속 국회의원과 시도위원장 등 대의원 1만5000여 명 투표의 반영 비율이 45%로 크긴 하다(나머지는 국민 10%, 일반당원 5%). 하지만 대의원들의 지지후보는 각기 다른 데 비해 주로 온라인으로 입당해 월 1000원의 당비를 내는 권리당원들은 문 대통령 중심으로 결집력이 대단하다. 그중에서도 험악한 문자폭탄이나 조직적 댓글로 즉각적 반응을 하는 열혈 권리당원이 30%라고 민주당에선 보고 있다. 민주당 300만 당원 중 10%도 안 되는 24만 명의 ‘문파’가 집권당, 아니 이 나라를 들었다 놨다 한다고 정치인들은 믿고 있다는 얘기다. 이낙연이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직분을 넘나든다”고 한 것도 문재인-조국에 충성하는 문파를 의식한 발언이라고 믿고 싶다(아니라면, 동아일보 선배 아니라고 생각할 작정이다). ● 문 대통령이 문파를 키워 전체주의로 가는 꼴문 대통령이 ‘양념’이라며 싸고돈 문파가 과연 당심을 좌우하는지,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에 불과한지 정치학자들이 연구 좀 해줬으면 좋겠다. 2년 전 문파는 이해찬이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연계돼 있다며 2·4·6투표운동(당 대표는 2번 김진표, 최고위원에 4번 박광온, 6번 박정)을 벌였으나 결과는 권리당원 투표에서도 이해찬 압승이었다. 온라인 당심과 실제 권리당원 당심은 달랐던 거다. 올해 문파는 1·1·8운동(당 대표는 1번 이낙연, 최고위원은 1번 신동근, 8번 김종민)을 벌였다고 한다. 결과는 뚜껑 열어야 알겠지만 일국의 집권당 대표 될 사람이 한 줌도 안 되는 대통령 충성파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사실은 비극이다. 다시 ‘청와대 정부’를 인용하자면, 문파는 대중적 지지 현상 정도가 아니라 정치화, 권력화됐다는 차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정당처럼 실체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민주주의 원리대로 논쟁과 협상을 통해 차이를 조정할 방법도 없다. 이 정도 큰 규모의 정치 현상은 권력의 개입 없이 유지되고 계속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문 대통령이 문파 현상을 키우는 방식으로 청와대 정부를 심화시키고, 다른 의견을 억압하는 전체주의로 가고 있다는 얘기다. ● 노무현은 靑의 黨 장악을 유신잔재라고 했다노빠가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를 외치며 문파로 변신하는 데 기여한 고 노무현 대통령은 살아생전 당정(黨政)분리를 강조한 정치인이었다. “당정분권론이라는 것은 원칙적으로 우리 (정치) 지도체제가 잘못됐다는 생각에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대통령이 당을 장악하고 그 당을 통한, 당의 장악력을 통해서 의회 의원들의 투표행위를 장악하고 있다, 그래서 제왕적 대통령제다….한국이 유독 이렇게 대통령이 당을 통해서 의회를 지배하는 것은 유신시대의 잔재거든요. 공화당 정권의 잔재거든요. 청산되어야 할 것입니다.”(노무현 2001년 자전구술 ‘통합의 정치를 향한 고단한 도전’). 2017년 5월 9일 방송사 출구조사에서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되던 밤, 문재인은 “다음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우리 더불어민주당 정부”라고 똑똑히 말했다. “정당이 생산하는 중요한 정책을 정부가 받아서 집행하고, 인사에 관해서도 당으로부터 추천받거나 당과 협의해 결정하는, 그래서 문재인 정부가 아니라 더불어민주당의 정부가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던 기억을 문 대통령이 되살려주기 바란다.● 문파에 언제까지 휘둘릴 텐가아니면 옆에서 지켜본 이낙연, 김부겸, 박주민이 기억해내야만 한다. 문 대통령이야 1년 9개월 뒤면 청와대에서 나오겠지만 민주당은 앞으로도 시민의 의견을 조직하는 공당 역할을 계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하나가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을 배출한 정당으로서 유신시대 뺨치는 청와대 거수기로 전락한 것만도 땅을 칠 노릇이다. 심지어 차기 대통령을 바라보는 정치인이 실체도 없는 홍위병 온라인 테러집단 앞에 설설 기는 나라가 어떻게 민주주의일 수 있는지 모골이 송연하다. 한때 ‘정당정부’를 말했던 문 대통령이, 적폐청산을 부르짖는 문재인 청와대가, 유신 잔재인 당청 장악도 모자라 문파를 상왕처럼 모시는 상황이 부끄럽지 않은가.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0-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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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참 못난 정권

    지난달 국세청은 부동산 관련 탈세혐의자 413명의 세무조사를 발표했다. 그중 한 사례가 고가의 아파트를 부모에게 임대하고 보증금을 받아 잔금을 치른 경우다. 국세청에서 “편법증여 행위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며 편법적으로 부를 축적하거나 이전하는 사례를 끝까지 추적해 철저히 과세하겠다고 강조한 건 물론이다. 김대지 국세청장 후보자가 이 경우에 속한다는 게 비극인지 희극인지 모르겠다. 2010년 34세인 처제가 강남에 5억 원이 넘는 아파트를 샀고 17년 차 고위공무원인 김대지의 네 가족이 전세보증금을 주고 함께 살았다는 거다. 당연히 김대지는 편법 증여나 차명 매입 의혹을 부인했다. 당시 부동산거래관리과장이었던 그가 그랬다면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어쨌든 세무공무원이 무주택자 자격으로 이명박 정부 때 강남 그린벨트를 헐어 지은 서민용 보금자리주택을 2013년 분양받은 사실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그 사이 처제는 강남 아파트를 팔아 수억 원을 벌었고 가족은 딴 데 전세로 살아 ‘반값 아파트’ 실거주 여부가 의심스럽다는 소리는 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분납임대여서 법적 무주택자라는 것 말고 그에게 무슨 경쟁력이 있는지 궁금했다. 어제 인사 청문회에서 여당이 전광훈 목사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를 지적하자 김대지는 “탈루 혐의를 체크하겠다”고 받드는 모습이었다. 야당에서 “정치적 세무조사에 적합해 선택된 게 아니냐”며 국세청의 중립성을 우려했을 정도다. 세무조사를 집권세력의 보위 수단으로 쓰는 기민함과 능력으로 국세청장에 지명됐다면 나라가 암담하다. 어디 국세청뿐이랴. 집권당 최고위원 후보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개가 주인을 무는 꼴’이라고 대놓고 말하는 나라다.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등 살아 있는 권력 수사는 문재인 대통령의 경희대 후배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지키고 선 데다 치사한 보복 인사로 확인 사살되는 조짐이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은 지명되자마자 “역사와 대한민국, 문 대통령을 위해 애국심을 갖고 충성을 다하겠다”고 맹세하는 추태를 보였다. 경찰은 문 대통령을 향해 신발을 던진 50대 남성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이번엔 경찰을 폭행했다며 기어코 구속시키는 것으로 충성을 입증했다. 청와대는 뭐가 그리 두려워 국세청과 검찰, 국정원, 경찰의 4대 권력기관을 충견처럼 길들이는지 알 수가 없다. 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되자 눈엣가시 같은 전 목사의 교회에 진단검사 아닌 세무조사를 사실상 지시한 것이야말로 집권세력의 본질을 드러낸다. 코로나 확산 방지에 온 국민이 나서야 하는 건 맞지만 소비쿠폰까지 뿌려 방역 위기를 자초했던 정부로선 못난 짓이 아닐 수 없다. 세월호 사건 와중에 구원파 수사를 다그쳤던 과거 정권과 뭐가 다른가. “나라가 니꺼냐”는 외침을 전임 정권 식으로 표현하면 ‘국정의 사유화’다. 4년 전 같으면 나라가 뒤집어지고 대통령 탄핵까지 불러왔을 일들이 거의 일상적으로 벌어지기 때문인지 이제 국민은 놀라지도 않는다. 문제 삼는 사람이 호들갑 떠는 것처럼 보이는 현실이 슬플 뿐이다. 심지어 집권당 대표 경선에 나선 이낙연 의원조차 김원웅 광복회장의 친일파 파묘 발언과 관련해 “차분하게 따져보지도 않고 웬 호들갑이냐”며 싸늘한 반응이었다. 나치 시절 독일인들도 다르지 않았다. 유태인 학살 같은 큰 사건에 충격 받은 게 아니라 매일 조금씩 ‘깜짝 조치’에 통치되는 일이 습관화됐다는 거다. 이거 잘못된 거 아냐? 주변을 돌아보면 호들갑 떤다는 비난이나 받았다. 어느 날 문득 모든 것이 변했음을 깨달을 때는 이미 늦었다. 권력의 선전대로 맹종하다 자유를 잃은 줄도 몰랐다는 전체주의 파시즘이 이 땅에서 좀비처럼 되살아난 형국이다. 달님 대통령은 이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만 출범시키면 퇴임 후에도 발 뻗고 잘 수 있다고 믿을 것이다. 그러나 항간에선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나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무죄 선고 받고 대선에 나오면 몰라도, 이재명 경기도지사 또는 이낙연 전 총리가 대통령이 될 경우 전임 정권의 비리를 제대로 파헤치지 않을 수 없을 거라는 공론이 분분하다. 최고의 엘리트를 모아 최선의 정책으로 국정을 운영해도 모자랄 대한민국이다. 그들만의 안위를 위해 애완견 같은 인물로 요직을 채워도 될 만큼 이 나라는 만만하지 않다. 향후 계속될 ‘문파 정권’을 위한 포석이겠지만 세상이 당신들 뜻대로만 되진 않는다. 참 못난 정권이다.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0-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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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대한민국은 정말 ‘태어나선 안 될 나라’였나

    “이승만 대통령을 우리의 국부(國父)다, 하는 부분에 대해선 다르게 생각한다. 우리의 국부는 김구 (임시정부) 주석이 되는 것이 더 마땅했다고 생각하고 그런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한 달 전 인사청문회에서 한 말이다. 국부가 누구냐고 아무도 안 물었다. “이승만 정권은 괴뢰정권인가.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건국 대통령이라는 데 동의하느냐”고 박진 미래통합당 의원이 물었을 뿐이다. 광복 75주년을 맞은 2020년 8월 15일.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에 의해 임명된 통일부 장관이 초대 대통령을 건국 대통령으로도, 국부로도 인정하지 않는 사실은 기록해둘 필요가 있다. 문재인 정부가 586운동권에 포획돼 있고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전대협 1기 의장 출신이다. 그의 역사의식은 곧 이 정부의 집단 역사의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누군들 백범 김구를 존경하지 않으랴 백범 김구를 존경하지 않는 한국인은 단언컨대, 없다. 요즘 찐 대세남으로 뜬 영탁 정동원이 TV ‘대한외국인’ 퀴즈 대결에서 백범의 ‘나의 소원’에 나오는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ㅇ ㄹ ㄷ ㅇ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에서 ‘아름다운’을 맞히고는, “민족의 혼을 잊으면 안 된다”고 기염을 토했을 정도다. 하지만 백범이 국부여야 마땅하다는 건 다른 얘기다.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이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차원을 넘어,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은 ‘태어나선 안 될 나라’로 친다는 역사관이 배어난다. 이인영이 1987년 전대협 의장 때 읽기만 했다는 ‘동지여 전진! 동지여 투쟁!’ 격문을 보면 알 수 있다. “삼팔선 이남을 점령군으로 진주해온 양키 침략자. 이남의 이승만 괴뢰정권을 내세워 민족해방 투쟁의 깃발을 갈가리 찢고자 책동했다.” 1980년대 NL(민족해방)이나 주사파의 낡은 이념일 뿐이라면, 나도 속 편하겠다. 그러나 이인영은 “(이승만) 괴뢰정권이라고 단정하는 것에 대해선 여러 가지 이견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좌파진영에선 지금도 이승만 정부를 정통성 없는 괴뢰정권으로 본다는 점을 사실상 시인한 것이다. ● 좌파의 역사인식 공유한 문 대통령 대한민국을 태어나선 안 될 나라처럼 보는 시각은 문 대통령의 올해 제주4·3 희생자 추념식 연설에도 배어난다. “제주는 해방을 넘어 진정한 독립을 꿈꿨고, 분단을 넘어 평화와 통일을 열망했다”며 “그러나 누구보다 먼저 꿈을 꾸었다는 이유로 제주는 처참한 죽음과 마주했다”고 했다. 단독선거 저지와 통일정부 수립을 내세운 남로당의 무장폭동(2020 고교 한국사 교과서 집필 기준)을 이토록 아름답게 표현했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다. 백범이 통일정부를 지지했다고 믿는 세력은 1947년 12월까지만 해도 이승만과 함께 단독정부를 지지했다는 사실도 아는지 의문이다. 해방 후 대세는 좌경화였다며 미군만 아니면 한국은 공산주의로 갈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도 심심찮게 등장한다(실은 나도 그런 줄 알았다). 어쩌면 문 대통령도 ‘제주의 꿈’이 남조선 전체의 희망이었다고 믿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강만길이 “1946년 미군정 여론조사에서 사회주의 지향 세력이 70%”라고 한 것도 1994년 ‘고쳐 쓴 한국현대사’ 때 얘기다. 2018년 박명수 서울신학대 교수의 연구를 보면, 미군정은 1946년 7번이나 여론조사를 했고 민심은 북한식 공산주의 아닌 미국식 민주주의를 선호했음이 분명히 드러난다. ● 해방 직후 한국은 민주주의 남한정부를 원했다 신탁통치를 하자는 미소공위가 실패로 돌아간 1946년 5월 미군정은 “현재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묻는 여론조사를 했다. “남한정부를 세우는 것”이라는 응답이 54%나 됐다는 사실은 눈물나게 감동적이다(미군정 계속은 43.8%). 많은 사람들이 소련과의 협상이 현실적으로 어렵고, 따라서 남한만이라도 독자적으로 정부를 세워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뜻이다. 북한이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개혁을 감행한 3월, 대지주 소유 토지 처리 방법을 묻는 조사에서도 민심은 66.3%가 경작자에게 분배하되 유상분배(72.9%)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누가 한국사람 복지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가를 묻는 조사 역시 이승만(30%), 김구(20%)와 안재홍, 김규식, 조만식 등 우익이 70%로 압도적이었다. 그럼 ‘사회주의 선호 70%, 자본주의 13%, 공산주의 10%’라는 조사 결과는 뭐냐고? 박명수는 해방 정국에선 좌익과 우익이 사회주의를 다른 의미로 썼다고 설명한다. 좌익은 공산주의에 이르기 전(前) 단계를 사회주의라고 했고, 우익은 사회민주주의와 거의 동일한 의미로 썼다는 거다. 즉 한국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우파의 대의민주주의를 지향하면서 경제적으론 중도적 성향이라는 분석이다(그래서 제헌 헌법에도 사민주의적 요소가 있었던 것이다).● 공산당과 합작은 불가능… 정치인 김구는 실패했다 백범의 핵심 노선이 주한미군 철수와 자주적 통일이라는 점에서 현 집권세력이 백범을 숭앙하는 것도 당연하다. 국제적 인식이 부족했고, 국제노선을 따르더라도 중국을 우선시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이상주의에 치우쳐 현실감각은 물론 정치능력이 부족한 점 역시 집권세력과 비슷하다는 건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백범은 1948년 “김일성과의 남북협상에서 성과가 없으면 차라리 38선에서 배를 갈르리라”라는 비장한 성명을 발표하고 북행을 결행했으나, 공산주의 소련과 김일성을 이길 수 없었다. 미국과 소련 군대가 철군해도 전쟁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6·25전쟁 발발 전에 암살당함으로써 오늘날 통일운동과 민족주의의 표상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 아이러니다. 박명림은 “김구는 해방 이후 임정봉대, 반탁·반공, 미소공위 반대, 좌우합작, 건국, 남북회합, 양군 철수 주장…을 포함한 현실적 성공과 실패에 대해 전혀 책임을 지지 않았고, 성찰도 표명하지 않았다”고 ‘도덕성을 넘는 책임성’ 문제를 지적했다(대한민국 건국과 한국 민족주의-김구 노선을 중심으로). 독립운동가 아닌 정치인이라면 당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식견과 유연성이 필수라는 점은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정치인들에게도 유효하다. ●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광복 75주년! 문재인 정부가 정녕 백범을 배우겠다면, 독재 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독재는 어떤 주의, 즉 철학을 기초로 하는 ‘계급독재’라고 지적한 백범일지를 다시 봤으면 한다. 임정 시절 “공산주의자들과는 아무것도 더불어 함께할 수 없다”던 백범도 권력의지는 버리지 못해 북행을 결행했고, 정치인으로서 실패했다. 덕분에(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1948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건국혁명에 성공할 수 있었다. 오늘은 자랑스러운 광복 75주년이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0-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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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무주택자 양산하는 문재인 부동산정책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의 사표는 어떻게 됐을까. 어제도 청와대는 “추가 인사 여부는 대통령 인사권에 관한 사안”이라며 언급을 회피했지만 나는 유임이라고 본다. 이유는 단 한 가지. 그가 얼떨결에 청주와 서울 반포 아파트까지 두 채를 다 팔고 무주택자가 됐기 때문이다. 지금은 청와대 지근거리 실장 관사에 살고 있어 집 없는 설움이 실감나지 않을 거다. 하지만 일자리까지 잃으면 관사를 비워줘야 한다. 반포 아파트 공동 소유자였던 노영민의 부인으로선 졸지에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사슴 같은 눈을 지닌 문재인 대통령이 집도 절도 없어진 ‘정치적 동지’ 부부를 내보낼 수 있겠나. ● 내가 하면 투자요, 남이 하면 투기인 법웃기지도 않는 소리라는 거, 안다. 작년 12·16부동산대책이 나온 날 노영민이 “수도권 내 2채 이상 집을 보유한 청와대 고위공직자들은 1채를 제외하고 6개월 안에 처분하라”고 권고한 것부터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내가 하면 투자요, 남이 하면 투기인 법이다. 다주택자가 죄 투기꾼이 아닌 것처럼 청와대 다주택자가 죄 집을 판다고 집값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청와대 안에 다주택자가 수두룩하면서 민간인 다주택자를 인민의 적(敵)처럼 몰아대는 게 코미디다. 그런데 이 정부는 다주택자에 대한 인식과 정책을 고치는 게 아니라 청와대 다주택자들한테 집을 팔라고 종용했다. 6개월 뒤인 7월 2일 노영민은 보무도 당당하게 “이달 중 팔라”고 한 달을 연기해줬다. 그럼 노영민의 집은? 국민이 궁금해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런데 어쩌랴. 당초 집 팔라고 공개 경고를 했을 때 노영민 자신은 집 팔 생각이 없었던 것을(청주 아파트를 매물로 내놓은 날짜가 7월 1일이다. 집을 팔 작정이면 6개월 동안 왜 끼고 있었겠나). ● 인민재판 당하듯 강남 아파트 판 꼴청와대는 당시 집을 팔아야 할 참모진이 강남 3구와 투기지역 또는 투기과열지구에 2채 이상을 가진 11명을 말한다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붙여줬다. 안타깝게도 그걸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이제 와서 청주는 수도권도, 투기지역도 아니라고 해명하는 것도 구차하다. 파는 수밖에 없다 싶어 노영민은 전날 청주 아파트를 내놨는데 설상가상, 반포 아파트를 팔겠다고 했다가 50분 뒤 “아니 청주”라고 바꾼 것으로 2일 발표되고 말았다. ‘똘똘한 아파트 한 채’를 지키려 지역구를 팔아먹는다는 비난이 인민재판 하듯 쏟아졌다. 결국 노영민은 인당수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7일 김조원 민정수석 등 다주택자를 포함한 참모 5명과 일괄 사표를 제출하고도 모자라 8일 “국민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다”며 반포 아파트를 이달 중 처분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노 실장이 7월 24일 반포 아파트를 매각했다”는 10일 청와대 발표가 앞뒤 안 맞긴 해도 어쨌든 노영민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성공을 위해 아파트 두 채를 다 팔고 말았다. 마치 심청이가 아버지를 위해 몸을 판 것처럼.● ‘버블 세븐’ 공격할 때 집 사길 잘했다 반포동 한신서래 45.72㎡ 아파트를 11억3000만 원 최고가에 매각해 8억5000만 원의 시세 차익을 올린 데 대해 청와대는 “15년 보유한 아파트임을 감안해 달라”고 했다. 집권세력 일각에서 부동산 시세차액은 불로소득이고, 징벌적 세금으로 회수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기에 청와대가 하는 소리일 거다. 동의한다. 고위공직자가 20평 아파트에 15년이나 산다는 것도 미담이라면 미담이다(주변 아파트처럼 재건축만 되면 20억 원대로 뛰겠지만). 다만 노영민이 그 아파트를 구입한 시점이 2006년 5월이라는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청와대’가 서울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와 양천구 목동, 경기 성남시 분당, 안양시 평촌, 용인시 등 7개 지역을 ‘버블(거품) 세븐’이라고 규정하고 ‘부동산, 이제 생각을 바꿉시다’라는 청와대브리핑 10회 시리즈를 시작한 날이 2006년 5월 15일이기 때문이다. 이미 노영민은 2004년 고향인 청주 흥덕구에서 17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1년 전 청주 아파트를 구입한 상태였다. 글로벌 호황기였던 노무현 정부 시절, 넘치는 유동성에 국토균형발전정책으로 보상금이 풀리면서 집값이 걷잡을 수 없이 뛰자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7월 “하늘이 두 쪽 나더라도 부동산만은 확실히 잡겠다”고 선언했다. ● 소유는 곧 자유… 전체주의가 소유권 침해한다공급은 틀어막은 채 수요자만 죄인 취급하는 부동산 대책이 먹힐 리 없다. 재건축 규제 같은 공급억제책은 물론 징벌적 세금(거래세·보유세 강화), 거래규제 강화(투기지역 지정), 금융규제 강화(LTV, DTI 하향 조정) 등 수요억제 정책도 그때 다 써본 것들이다. 노무현 집권 3년간 30여 차례 대책을 쏟아내도 강남구 아파트는 57.4%나 치솟았고 열린우리당은 2006년 4월 재·보선에서 0 대 23으로 완패했다. 바로 그 무렵에 노영민은 반포 아파트를 보러 다니다 5월 버블 세븐 한복판에 한신서래아파트를 샀던 것이다. 심지어 5월 19일 노 대통령이 “부동산 시장 안정이 과연 되겠나 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한탄을 하는데도 집권당 의원조차 대통령을 안 믿고 반포 아파트를 장만한 거다. 그게 사람 심리다. 노영민이 특별이 욕심 사납거나 사악해서가 아니다. 나는 노영민과 문재인 정부가 제발 겸허하게 사람을 볼 줄 알았으면 좋겠다. 당신들 편만 인민(노동자계급 농민계급 소부르주아계급)이고 토지(요즘은 아파트)를 가진 지주계급은 인민의 적으로 몰아대지 말라는 얘기다. 그래도 노 대통령은 “부동산 말고는 꿀릴 게 없다”는 말로 정책 잘못을 시인했다. 부동산에 적극 개입하다 못해 사적 소유권을 침해하는 국가가 전체주의다. 소유는 자유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도 인민재판처럼 몰리다 어쩔 수 없이 ‘집 없는 천사’가 된 노영민을 보며 생각을 바꿨으면 한다. 노영민이 살던 곳은 다수 국민들이 살고 싶어 하는 곳이고, 인민민주독재가 아니라면 그런 곳을 최대한 만드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라고.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0-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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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오거돈·박원순 性비리와 ‘경찰 공화국’

    윤석열 검찰총장은 피를 토하는 심정일 것이다. 당정청의 이른바 권력기관 개혁안에 따라 검사의 직접수사는 부패, 경제, 공직자, 선거 등 6개 범죄로 제한됐다. 심지어 공직자 수사는 달랑 4급만 가능하다.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도 없어진다. 그가 3일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쓴 독재와 전체주의 배격”을 말했을 때는 설령 탄핵을 당하더라도 ‘법의 지배’를 지키겠다는 각오였을 것이다. 검찰이 윤석열을 중심으로 분연히 나설지는 알 수 없다. 손발이 잘려나간 검찰 옆에 비대해진 경찰이 버티고 선 것도 사실이다. 1차 수사종결권과 함께 국가정보원의 국내 정보수집권, 대공수사권까지 경찰에 넘어오면 무소불위의 경찰 권력을 우려해야 할 판이다. 특히 민변, 참여연대 등이 강조해온 ‘정보경찰 폐지’가 빠진 것은 문재인 정부의 의도를 의심케 한다. 경찰청 정보국은 경찰관직무집행법 제2조 ‘치안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 조항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정보경찰을 비밀정치경찰처럼 운용한다는 지적이다. 청와대가 경찰 정보에 중독돼 아예 ‘경찰 공화국’을 만들 작정인 듯하다. 정보경찰이 공생관계를 넘어 문재인 정부의 오장육부가 됐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지난달 김창룡 경찰청장 인사청문회에서도 청와대-경찰 관계에 대한 질의가 쏟아졌다. 더불어민주당 한병도 의원은 고 박원순 서울시장과 관련해 “고위공직자의 비위는 국정운영 체계에 따라 당연히 청와대에 보고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가?” 물었다. 김창룡이 정부조직법과 경찰청 내부규칙에 따라 중요 사건은 발생 단계에서 청와대에 보고한다고 답하자 그는 “이 점이 가장 중요한데, 청와대에 보고를 하면 청와대에서 수사 지휘를 직접 하나? 내 경험칙상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문제”라고 질문 같지 않은 질문을 했다. 한병도는 2018년 청와대 정무비서관 재직 당시 울산시장 선거 개입과 하명수사 의혹으로 올 초 불구속 기소된 상태다. 당연히 김창룡으로선 “(청와대가) 수사 지휘를 하는 것은 경험해 보지 못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쿵짝 문답대로라면 경찰은 울산시장의 비리 의혹을 청와대에 보고해야 마땅하고, 하명수사란 있을 수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김창룡이 거론한 정부조직법(11조 대통령의 행정감독권), 경찰청 훈령 범죄수사규칙(14조 2 중요 사건은 지방경찰청장에게 신속 보고)에는 청와대 보고 규정이 없다. 지금까지 경찰청이 자체 규칙을 준용해 보고해 왔을 뿐이다. 이 사실을 지적한 미래통합당 박수영 의원은 “규정에 없는데도 청와대니까 보고해야 한다는 생각들이 쌓여 청와대가 제왕적 권력을 갖는 것”이라며 법치국가가 되려면 정확하게 규정화하라고 당부를 했다. 어쩌면 두 지방자치단체장의 운명도 경찰의 대응에 따라 달라졌을 수도 있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은 김창룡이 부산경찰청장일 때 성추행을 했으나 ‘봐주기 수사’로 일관했다는 지적이다. 친문이 아니라면, 총선 뒤 사퇴하기로 피해자와 변호사가 합의하고 발표할 때까지 부산지역 115명의 정보경찰이 몰랐을 리 없다는 거다. 고 박원순 시장은 비(非)문으로 분류된다. 경찰청은 박원순의 성추행 피소를 청와대에 보고했고 서울중앙지검도 석연치 않다. 박원순이 누군가에게 이 사실을 듣지 않았다면 극단적 선택은 없었을지 모른다. 정보 누출자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김창룡도 서울경찰청 수사라인으로부터 피소 사실을 보고받았다고 밝혔다. 경찰청장에 취임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월선(越線)보고인 셈이다. 경찰이 1차 수사종결권까지 가지면 청와대와 ‘직거래’로 사건을 덮어버려도 국민은 알 길이 없다. 사실상 대통령이 경찰청장까지 하는 셈이다. 김창룡이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한 보고와 경찰의 정치적 중립은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통치자료’ 상납을 극대화하겠다는 소리로 들려 개운치 않다. 어느 선진국을 봐도 정보 수집과 수사는 분리가 원칙이다. 민주당의 민주연구원이 2018년에 내놓은 국정원 개혁 이슈 브리핑을 다시 보기 바란다. 특히 독일은 나치 시절 게슈타포의 권력 독점과 오남용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정보기관과 수사기관을 분리한다고 명시해 놨다. 그러고도 국정원에서 떼어낸 정보권을 경찰에 갖다 붙이는 건 국민을 우습게 보는 처사다. 정보경찰의 평판 수집이 두려워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채택한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0-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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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대한민국 검찰은 살아있는가

    ‘개혁’을 칭했다고 다 개혁이 아니다. 법무부가 설치한 법무·검찰개혁위원회에서 27일 발표한 검찰총장 지휘권 박탈 권고안은 이 조직의 반(反)개혁성을 극명히 드러낸다. 윤석열 검찰총장만 분재(盆栽)총장으로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법무부 장관이 전국의 고등검사장들에게 수사지휘권을 발동케 함으로써 사실상 검찰의 정권비리 수사를 금지시킨 것이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사정없이 박살내는 내용에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이런 권고안을 보고도 가만있다니, 대한민국 검찰은 배알도 없나. 다음 날 오전 서울중앙지검 김남수 검사가 검찰 내부통신망에 글을 올렸다. “법무부 장관이 고검장에게 직접 (수사)지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공개질의에 30일 오전까지 180여 명의 검사들이 실명으로 지지 댓글을 붙여 올렸다. 다행이다. 대한민국 검사가 아직 살아있어서. ● 검개위, 검찰을 청와대의 충견으로 검개위가 보도자료에서 밝혔듯, 검찰총장에게 수사지휘권을 주고 2년 임기를 보장한 것은 정치권력의 압력을 막는 방어벽 역할을 하라는 취지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검찰청법 8조는 법무부 장관이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만 검찰총장을 지휘·감독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만일 문재인 정부가 진정 검찰개혁 의지를 가졌다면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해야 했다. 검찰이 불신을 받는 것은 정치권력의 도구로 쓰이기 때문이고, 법무부 장관은 지휘권을 광범위하게 행사해 정치적 영향을 작동시키는 정황이라고 한인섭 한국형사정책연구원장은 논문에서 지적한 바 있다. 한인섭은 문재인 정부 1기 검개위원장을 지냈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과도 가까운 진보적 법학자다(조국 자녀의 인턴 의혹에도 관련돼 있다). 한인섭이 제시한 검찰개혁 핵심이 인사·예산의 독립과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최소화였다(1999년 서울대법학 ‘한국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세계적으로도 법무부 장관의 지휘권은 독일 나치시대 정치적 목적으로 남용된 흑역사가 있다. 지금은 장관 지휘권 행사가 거의 불가능함에도 유럽평의회에선 그마저 폐지를 요구하는 상황이다. 우리가 본떴다는 일본에서도 1954년 조선의옥(造船疑獄) 사건 때 딱 한 번 지휘권 발동 뒤 장관이 사임해 더 이상은 없다. 이런 수사지휘권을 대한민국 장관이 고검장들에게 행사하겠다는 건 검찰을 청와대 충견 만들기나 다름없다. ● 검찰의 정치적 독립이 노무현 서거로? 권고안을 만든 검개위원장 김남준 변호사는 민변 출신이다. 노무현 정부 때 헌정 사상 최초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던 천정배 법무부 장관의 정책보좌관을 지내 수사지휘권 문제와 묘한 인연이 있다. 김종빈 당시 검찰총장은 고뇌 끝에 지휘권을 수용하고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할 우려가 있어 심히 유감”이라는 발표문을 남기고 사퇴했다. 그러자 민정수석이었던 문 대통령이 “검찰권 독립이란 민주적 통제 아래서만 보장되는 것”이라며 검찰총장의 ‘부적절한 처신’을 격렬히 비난한 과거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15년이 흐른 30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당정청 권력기관개혁협의에서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 강화를 밝혔다. 민주적 통제라는 말이 거부할 수 없는 포스를 뿜어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민주’가 붙었다고 다 민주는 아니다. 쉽게 말해 검찰은 선출된 권력인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을 통해 내려 보내는 어명(御命)을 따라야 한다는 의미다. 정말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기 싫은 것은 왜 한때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집권세력이 검찰을 장악하려는 것이냐다. 2009년 전남대 이채언 교수가 쓴 ‘노무현 서거 이후의 국내외 정세’ 라는 논문은 문 정부의 집요한 검찰통제 기도를 이해할 단초를 제공한다. “노무현의 서거는 형식상의 민주주의인 1987년 체제를 이대로는 끌고 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87년 체제의 첫 번째 문제점이 검찰을 정치로부터 독립시켜 놓은 것”이라는 내용이다(두 번째 문제점은 경제의 독립). 따라서 한국 민주주의의 완성은 검찰과 경제를 실질적으로 다시 정치에 종속시키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거다(학술지 ‘마르크스주의 연구’).● 윤석열, 좀비가 될 것인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 정말이지 믿고 싶진 않지만 검찰을 다시 정치에 종속시키는 것이 민주주의 완성이고, 마르크스주의 실현이고,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복수라면… 방법이 없을 것 같다. 당신들 원하는 대로 하는 수밖에(나라가 니꺼냐, 외쳐봤자 소용없다). 다만 윤석열 검찰총장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궁금하다. 법무부 장관 추미애는 임기가 1년이나 남아 있는 윤석열을 자진 사퇴시키려고 수사지휘권 발동은 물론 온갖 모욕적 압박을 가하는 상황이다. 조국이 장관으로 앉아있어도 같은 일을 했겠지만 추미애는 향후 서울시장을 거쳐 대선에 도전하기 위해 과거 노무현 탄핵에 앞장섰다는 ‘원죄’를 씻으려 애쓴다는 티가 역력해 안쓰러울 뿐이다. 검찰이 국민의 불신을 받는 것은 죽은 권력에 강하고 산 권력에 약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최소한 5년에 한 번은 거악(巨惡)을 척결해 일거에 명예를 회복해온 것도 사실이다. 아무리 추미애가 최악의 인사를 자행하더라도 윤석열은 독립운동 하듯 조직을 규합해 울산시장 선거 비리 의혹 등 정권비리 수사를 악 소리 나게 해냈으면 한다. 아니면 지금까지 정치권력의 압력을 기자회견에서 밝히고 반(反)문 정치에 뛰어드는 수밖에 없다. 좀비처럼 총장 임기를 지킬 텐가, 아니면 대통령에 도전할 텐가.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0-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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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국민은 공직자의 사상 ‘알 권리’ 있다

    ‘철 지난 색깔론’ 소리가 나올 줄 알았다. 통일부 장관에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출신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내정될 때부터 예상된 바다. 23일 인사 청문회가 끝나고도 여당은 “(야당이) 색깔론에 빠져 정책 검증 아닌 사상 검증을 한 것을 국민께 사과하라”며 야당을 거세게 공격했다. 1980년대 말 전대협의 주류는 주사파였고, 주사파가 북한 주체사상을 신봉했다는 건 팩트다. 1987년 전대협 초대 의장 이인영도 주체사상을 신봉했는지, 지금은 어떤 사상을 가졌는지 국민이 궁금해하는 건 당연하다. 색깔론 무섭다고 야당이 안 물으면 그게 야당인가. ● 운동권 86그룹은 특권계급인가태영호 미래통합당 의원의 질문에 이인영은 답했다. “그 당시에도 주체사상 신봉자는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다. 이 점은 분명히 말씀드린다.” 그러면 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인영은 까칠하게, 굳이 토를 달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야기가 태 의원님께서 저에게 사상전향을 끊임없이 강요하거나 추궁하는 행위로 착각되지는 않기 바란다.” 청와대 출신 윤건영 의원의 반응은 더 까칠했다. “오늘의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이인영 후보자 같은 독재 시절 젊은이들의 피와 땀으로 이뤄졌다”며 “그렇게 함부로 폄하할 대상도, 천박한 사상 검증의 대상도 아니다”라는 것이다. 운동권 86그룹은 무슨 특권계급이라도 된다는 소리 같다. ● 과도한 부정은 신뢰를 떨어뜨린다 북한 외교관 출신 태영호가 이인영을 주사파로 간주하고 추궁한다는 느낌에 집권세력이 불쾌했을 순 있다. 그러나 이인영도 미심쩍은 답변을 한 게 사실이다. 1980년대 북한 대학을 다닌 태영호가 “북에선 전대협 조직원들이 매일 김일성 초상화 앞에서 충성 의지를 다진다고 가르쳤다”고 하자 이인영은 과도한 반응으로 신뢰를 떨어뜨렸다. “그런 일은 없었다고 저는, 제가 알기로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그때 충성 맹세했던 사람들이 숱하게 고백했는데 의장만 몰랐나….)“전대협 의장인 제가 매일 아침에 김일성 사진을 놓고 거기에서 충성 맹세를 하고 주체사상을 신봉했다, 이런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했으면 했다, 안 했으면 안 했다…가 아니라 기억이 없다는 건 무슨 의미야….)● 공인의 이념 공개돼야 한다는 대법 판결“국민들 앞에서 솔직히 나는 이제 주체사상 버렸다(라고 말하는 것이) 이게 그렇게 힘든 말이냐”는 태영호가 그들에게는 사상전향 강요로 보였을지 모른다. 한겨레신문 24일 사설은 ‘헌법 19조의 양심의 자유에는 누구도 내면의 생각을 강제로 드러내도록 억압받아선 안 된다는 원칙이 포함돼 있다’고 썼다. 사상을 밝히지 않는 것도 자유라는 의미일 터다.그러나 국민은 공인의 사상과 정치적 이념을 알 권리가 있다. 대법원 판례가 나온 지 오래다. 공적인 존재의 정치적 이념은 국가의 운명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공적인 존재가 가진 국가·사회적 영향력이 크면 클수록 그 존재가 가진 정치적 이념은 국가의 운명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그 존재가 가진 정치적 이념은 더욱 철저히 공개되고 검증되어야 하며, 이에 대한 의문이나 의혹은 그 개연성이 있는 한 광범위하게 문제 제기가 허용되어야 하고 공개토론을 받아야 한다.”(대법원 2002.1.22. 선고) ● 정치적 이념 위장, 지금은 없을까1997년 우파 잡지 한국논단이 보도한 ‘노동운동인가, 노동당운동인가’ ‘공산당이 활개 치는 나라’ 등의 기사에 대해 대법원이 내린 판결이다. 국민의 알 권리는 주로 언론을 통해 실현되고, 언론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취재·보도한다. 민변 등이 허위보도로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한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언론자유의 손을 들었다. 특히 판결문에서 “사람이나 단체가 가진 정치적 이념은 흔히 위장하는 일이 많다”고 적은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위장인지 아닌지 국민이 제대로 알기 위해선 의혹 제기나 주관적 평가 역시 허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86그룹 집권세력이라 해도 과거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사상 검증에서 제외될 순 없다. 공직자의 이념과 가치, 역사 인식, 과거의 공적 활동은 그 사람의 현재와 미래 공직 수행에 영향을 미친다. 더욱이 20대의 생각과 정서, 습관과 경향은 거의 평생토록 원형을 유지한다. 그래서 국민이 알아야 한다는 거다. ● 이념은 공직 수행에 영향을 미친다서울대 이준웅 교수(언론정보학)는 “언론이 공직자의 도덕성과 사생활 보도에 집중해 공직 관련 능력을 소홀히 보도한다지만 ‘공직자’ 개념 자체가 ‘개인과 공적 임무’라는 두 영역의 결합”이라고 했다. 공직자 인사 검증의 필요성을 강조한 2014년 관훈클럽 토론회에서다(이인영 아들의 병역 문제도 그래서 중요하다). 이인영은 다른 부처도 아닌 통일부의 수장이 될 사람이다. 그의 이념은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심지어 북한의 대남선전기관에선 “리인영, 임종석(전대협 3기 의장)에게 거는 기대가 많다”며 우리민족끼리 철학과 미국에 맞설 용기를 주문했다. 북에선 핵무력을 포기하지 않는데 이인영은 대동강 맥주와 우리 쌀을 교환할 뜻을 밝혔다. 한미 연합훈련도 연기됐으면 좋겠다고 ‘개인적 입장’을 밝혔다. 미 제국주의가 철천지 원수라며 주한미군 철수를 외친 게 주사파였다. 앞으로 어떤 상상력을 더 발휘할지 더럭 겁이 나는 이유다. ● 색깔론에 굴복하는 쪽이 지는 거다이인영을 비롯한 86그룹 집권세력은 전대협 운동 경력으로 정치권에 쉽게 진입한 까닭에 역사적 반성을 해본 적이 없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쉽게 집권한 까닭에 자기들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다. 세상 변화에 눈 감고 그냥 그 길로 매진할 뿐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찾아온 태영호를 그들은 ‘변절자’로 매도했다. 당신들이 색깔론을 휘두르는 것도 자유다. 그러나 공직자의 이념을 따질 자유, 알아야 할 권리 역시 훼손될 수 없다. 색깔론 공격이 두려워(혹은 더러워) 입을 다물수록 대한민국은 전체주의 북조선처럼 가는 것이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0-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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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수도 이전, 공직자는 ‘서울 집’ 팔고 가라

    ‘독재자의 핸드북’에 따르면 정치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정치생명이다. 독재자이든 민주국가의 대통령이든 마찬가지다. 미국 뉴욕대 석좌교수 브루스 부에노 데 메스키타의 이 책에 비춰보면,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20일 국회와 청와대의 행정수도 이전을 주장한 건 탁월한 전략이었다. 22번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사과해도 시원치 않은 판에 집권당 책임을 모면하고 정권 재창출의 발판을 굳힌 거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미 위헌 결정이 난 사안”이라고 일축했다. 행정수도 블랙홀에 빠지고 싶지 않아서일 터다. 그러나 청와대와 민주당 당권주자들은 쌍수를 들고 나섰다. 자신들의 정치생명이, 당내 경선과 대선에서의 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총리 시절 국회와 청와대의 세종시 이전을 놓고 “국민 다수가 동의할지 의문”이라던 이낙연 의원도 달라졌다. “16년 전 ‘관습헌법’이라는 헌법재판소의 논리가 이상하지 않으냐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며 이번엔 전면적 행정수도 이전을 목표로 여야가 협의해야 한다고 환영했다. 국회와 청와대까지 세종시로 옮기는 것은 행정수도 완성 정도가 아니라 천도(遷都)다. 2004년 헌재는 국회와 청와대의 소재지가 수도의 중요 요소라고 밝혔다. 우리나라 수도가 서울이라는 관습헌법을 폐지하려면 헌법 개정을 해야 한다고 결정한 것이다. 관습헌법이라는 논리가 마음에 안 든대도 국회 이전은 개헌을 해야 가능하다. 범여권 190석을 넘나드는 집권세력으로선 개헌도 어렵지 않을 거다. 헌법소원이 제기돼도 겁날 것 없다.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헌법재판관 8명 중 6명이 특정 세력 출신이다. 문 정권 임기 내내 그리고 2022년 대선까지도, 수도 이전은 되면 좋고 안 되면 계속 통합당을 괴롭힐 수 있어 좋은 민주당의 꽃놀이패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 후보가 ‘충청권 행정수도 건설’ 공약으로 대선에서 재미 좀 봤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국토균형발전을 내세웠지만 길거리 국장, 카톡 과장이 국가경쟁력을 갉아먹는 현실이다. 18년 전이나 지금이나, 국가 명운을 좌우하는 수도 이전을 자칭 진보개혁세력이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한다는 건 비극이다. 진정 국가균형발전을 바랐다면 수도 이전 아닌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뉴욕은 미국의 수도가 아니어도 세계적 도시로 발전했다고 말하지 말라. 워싱턴DC는 1800년에 수도가 됐다. 호주의 캔버라는 1913년, 터키의 앙카라는 1923년, 브라질의 브라질리아는 1960년 수도로 등극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시드니, 이스탄불, 상파울루를 더 좋아한다. 왕조가 바뀐 것도 아니고 수도가 바뀌었다고 주류세력 교체와 부의 재분배가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브라질에선 수도가 국민과 괴리되는 바람에 부패를 감시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무성하다. 그래서 1999년 수도 이전을 완료한 통일독일 말고 근래 천도를 한 나라는 미얀마(2005년) 카자흐스탄(1998년) 나이지리아(1991년)처럼 주로 저개발 독재국가들이다. 한국이 여기 끼었다가 정체성을 의심받을까 걱정스럽다. 말레이시아는 2002년 푸트라자야로 수도를 옮기며 2020년까지 선진국 도약을 다짐했지만 아직도 선진국과는 거리가 멀다. 인도네시아에선 지난해 수도 자카르타가 홍수와 지진으로 지반이 내려앉는다며 2024년 수도 이전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자 세계은행은 “수도를 옮긴다고 인구 분산과 사회 양극화 해소, 균등발전이 이뤄진다고 할 수 없다”며 세종시를 실패 사례로 들기까지 했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까지 터져 공사비만 39조 원이나 드는 대사(大事)가 가능할지 의문이라고 닛케이 아시안 리뷰는 전했다. 이제 와서 세종시를 도로 무를 수도 없다는 건 두고두고 한스러울 듯하다. 공무원들 출장지의 60%가 국회이므로 차라리 국회를 세종시로 옮기면 국정 효율성을 높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단, 서울 등 수도권 지역구 의원을 빼곤 여기 집이 있는 의원과 공무원들은 반드시 팔고 온 식구가 이사하도록 특별법이라도 만들어야 한다. 집권세력의 진정성 없이는 단언컨대 부동산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그리고 제발 노무현 정부의 수도 이전을 완수한다는 투지 따위는 불태우지 말기 바란다. 한반도에서 유훈(遺訓) 통치는 북한만으로 족하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0-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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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文정부가 집값 안 잡는 이유 이젠 알겠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밥값을 했다. “그렇게 해도 (집값은) 안 떨어질 것”이라고 문재인 정부 부동산 정책의 비밀을 알렸다. 지난주 MBC 백분토론 끝에 방송사고처럼 슬쩍 진실을 밝힘으로써 그는 집권세력 내부고발자의 새로운 모습을 연출했다. 물론 진성준은 정부 대책이 소용없다는 취지가 아니었다고 맹렬히 해명했다. 그러나 ‘문재인 청와대’에서 정무기획비서관, ‘박원순 서울시’에서 정무부시장을 지낸 그가 정무적 판단 없이 말실수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 ● 세금 많이 걷으려면 집값 더 올라야20일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도 “주택을 볼모로 한 불로소득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며 “다주택 매매, 취득, 보유에 대한 규제를 더욱 강화하고 초과이익 환수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국회에서 연설했다. 불로소득이든 초과이익이든 부동산으로 세금 많이 걷는 게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라고 확인한 셈이다. 정부가 부동산 공급을 막아 집값 올리는 정책을 22번이나 내놓은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집값을 못 잡는 게 아니라 안 잡고 있었던 거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괜히 장수하는 게 아니다. 청와대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발표만 하면 집값이 오르는 정책을 내놓아서 경제부총리 능가하는 권세를 누리는 거다. 심지어 수요까지 늘려 집값을 키우고 있다. 이러다 영영 원하는 곳에 살 수 없다고, 3040의 불안감을 자극해 부동산 시장에 뛰어들게 만드는 것이다. 집값이 오르면 당연히 세수(稅收)도 늘어난다. 경제를 살릴 자신은 없고, 대놓고 세금을 올릴 수도 없는 무능한 정부가 집 부자에게 징벌세를 때려 수입을 올리는 형국이다.● 양도세는 소득세여서 못 내린다고?보유세 무서워 다주택자가 집을 팔게 만들려면 정부는 양도세라도 내려줘야 한다. 2019년 ‘유라시아연구’ 학술지에 실린 ‘부동산 세제의 국제비교와 시사점’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 대비 거래세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무려 4배다. 하지만 어림없다. 김현미는 작년 초 한 인터뷰에서 “양도소득세는 소득세”라며 소득 있는 곳에 과세 있다고 주장했다. 그럼 진짜 거래세인 취득세라도 낮춰줘야 하는데 대통령은 취득세가 지방정부 세원이어서 낮추기 어렵다고 했다. 보유세도 우리나라가 낮다고 알려져 있지만 그렇지도 않다. 2015년 세수 통계를 보면 총 세수 가운데 재산세가 차지하는 비율이 OECD 평균 5.6%인데 우리나라가 10.3%다. 정부가 160조 원 규모의 한국판 뉴딜을 발표하면서 재원 마련을 말하지 않은 이유도 알 것 같다. 5조1000억 원만 올해 추경안에 들어있을 뿐이다. 부동산에서 세금 왕창 걷을 작정이었던 것이다. 1주택자는 세금 늘지 않는다는 것도 거짓이었다. 공시지가가 계속 올라가 죄 없이 거지된다는 비명이 터져 나온다. ● 내가 하면 투자, 남이 하면 투기다문 대통령 역시 “다주택자에 대한 주택 보유 부담을 높이고 시세 차익에 대한 양도세를 대폭 인상하여 부동산 투기를 통해서는 더 이상 돈을 벌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겠다”고 국회 개원 연설에서 강조했다. 세금으로 다 가져가면 부동산 투기로 돈 벌기는 어려워지겠지만 그렇다고 투기가 근절될 것 같지는 않다. 남이 하면 투기요, 내가 하면 투자다. 노무현 정부 때 실패했던 부동산 정책을 현 정부에서도 재차 설계한 김수현 전 대통령정책실장이 2011년 ‘부동산은 끝났다’는 책을 썼지만 지금 그의 과천 아파트는 눈부시게 재건축되는 중이다(이 정부의 고위공직자들이 투자한 아파트단지는 재개발·재건축도 어찌 그리 빠를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다).김수현은 영국을 예로 들며 “집을 가진 계층은 보수적 경향을, 그렇지 않은 계층은 진보적 경향을 보인다”고 썼다. 고소득층이 많은 중대형 아파트단지는 한나라당(지금의 미래통합당)에 주로 투표하는데 다세대·다가구 재개발로 아파트단지가 되면 투표 성향도 달라진다. 문재인 정부가 대출을 막아 ‘부동산 사다리’를 무너뜨리고, 재건축·재개발은 결사반대하는 ‘부동산 정치’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집값이 오를수록 반(反)부자 정서가 자극되는 것도 민주당 장기집권에 이롭다. ● 개천에서 가재·붕어·개구리로 행복하게…문재인 정부의 내심은 국민이 내 집 마련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 양도세가 무지막지하면 다주택자는 차라리 집을 안 팔거나 자녀에게 증여할 공산이 크다. 매물이 줄어드는 것이다. 덩달아 전세가 줄고, 월세로 바뀔 공산이 크다. 이미 그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대출이나 전세를 끼고 집을 사기 위해 아등바등 애쓰지 말라. 자사고와 특목고를 없애는 것도 내 아이를 용으로 만들겠다는 일부 망둥이들의 헛된 욕망을 없애기 위해서다(미래의 지배계급은 운동권 동지들의 새끼 용들로 충분하다). 임대차 3법에 의지해 굳이 개천에서 벗어날 생각 말고 가재·붕어·개구리로 행복하라는 것이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인 셈이다. 안타깝게도 미국의 진보적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는 2018년 임대료 규제에 대해 “당장은 세입자에게 이롭지만 장기적으로는 물량을 감소시키고 젠트리피케이션을 일으켜 악영향을 미친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영국 BBC도 팩트 체크를 통해 “주택 신축을 늘리면서 임대료 규제를 하지 않는 한 효과가 크지 않다”고 했다. ● 아등바등하지 말고 정부에 의지하라김수현은 2017년 진미윤과 함께 쓴 ‘꿈의 주택정책을 찾아서’에서 “다주택자를 경원시할 것이 아니라 부담 가능한 주택 공급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세계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주택 모델로 오스트리아를 소개하며 “신규 주택을 꾸준히 공급해온 공급 중심의 주택 모델을 채택해왔다”고 했다. 내 나라가 잘살겠다고 자유무역 대신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근린궁핍정책이라고 한다. 공급 중심 주택 모델은커녕 민주당 장기 집권을 위해 공급 억제를 하는 것이야말로 국민궁핍정책이다. 코로나19 같은 재난이 이어져도 문재인 정부는 두렵지 않을 것이다. 영혼까지 끌어 모은 세금으로 선거 직전에 재난지원금을 퍼부으면, 고스란히 표로 돌려받을 수 있다. 국민이 무기력하게 정부에 기댈수록 좌파 정부는 세금 뿌릴 수 있어 좋다. 그것이 나라 망하는 길임을 알고 집권세력은 일찌감치 자식을 이민 보내고 유학 보내는 것인가.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0-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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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여당은 서울·부산시장 공천 말라

    팬데믹은 코로나19만이 아니었다. 뻔뻔함도 팬데믹이다. 집권세력의 뻔뻔스러운 내로남불엔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친문 핵심도 아닌 김부겸 전 의원까지 감염될 줄은 몰랐다. 자신이 당 대표가 되면 내년 재·보궐선거에 서울·부산시장 후보를 낼 뜻을 밝힌 것이다. 마치 심장에 철판을 깐 듯 불과 닷새 전 자기가 한 말을 뒤집고서. 더불어민주당 당헌 제96조 2항은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직위를 상실해 재·보선을 할 경우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2015년 ‘김상곤 혁신위’가 만든 혁신책이다. 뚝심으로 이름난 김부겸이 대통령표 당헌을 가볍게 깨뜨린다니, 뻔뻔함은 무서운 팬데믹이 아닐 수 없다. ● 국민과의 약속 뒤집겠다는 김부겸부산시장 보궐선거는 오거돈 전 시장이 성추문으로 사퇴해 치르는 거다. 서울시장 보선 역시 고 박원순 시장의 ‘유고’ 때문이다. 민주당에서 성추문 정도는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 당의 뻔뻔스러움을 입증할 뿐이다. 당신의 딸이, 누이 또는 아내가 같은 일을 당했대도 같은 말을 할 수 있겠나. 김부겸은 14일 당에 귀책사유가 있으면 재·보선 후보를 안 낸다는 당헌을 언급하면서도 내년 선거가 “당의 중요한 명운이 걸렸다고 할 만큼 큰 선거”라고 공천의 불가피성을 시사했다. 당헌 당규만 고집하기엔 너무 큰 문제가 됐고, 따라서 그 지역에서 고생해 온 당원 동지들의 견해가 제일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결국 당원 뜻을 방패 삼아 당헌을 고치고, 대국민 사과를 마스크 삼아 서울·부산시장 후보 공천을 하겠다는 얘기다. 금태섭 전 의원이 당론을 어겼다는 이유로 징계했던 민주당이다. 이해찬 당 대표는 당론 받들기를 ‘국회의원은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는 헌법보다 중시해 중국공산당의 민주집중제 뺨친다는 비난까지 들었다. 당헌을 그냥 둔 채 2018년 지방선거 때 안희정 전 충남지사 자리에 양승조 현 지사를 공천한 것보다는 당헌을 고치는 게 덜 뻔뻔한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국민 앞에 약속했던 당헌을 고치는 것도 김부겸은 국민과의 약속보다 ‘문파’의 뜻을 중시한다는 의미나 마찬가지다. ● 서울시장 유고, 누구 귀책인지 밝혀라김부겸이 9일 자기가 했던 말을 뒤집고도 반성조차 않는 건 더 실망스럽다. 당 대표 출마를 공식 선언한 그날 김부겸은 “당헌은 편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없는 문제”라며 “우리들이 약속한 국민들과의 약속 자체가 편의에 따라 해석돼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말했다. 당원들과 고민해서 결정하겠다는 똑같은 전제 아래 말을 바꾼 것이다. 그러고도 ‘책임 정당’을 이끌겠다는 그의 말은 믿기 어렵다. 서울시장 유고를 불러온 성추행 의혹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다. 박원순 전 시장에 대한 서울시 직원 A 씨의 고소는 피고소인의 극단적 선택으로 ‘공소권 없음’ 처분된 상태다. 그래서 귀책사유가 어디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진상 규명은 반드시 해야 한다. 김부겸 선거캠프는 14일 서울시 인권위원회 조사를 공식 제안했다. 심지어 15일 김부겸은 “고소인의 주장을 기정사실화하는 건 고인에 대한 명예훼손”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A 씨가 서울시 내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묵살당했는데 ‘서울시 내부’의 인권위원회인들 제대로 밝혀낼지 의문이다. 민주당 여성의원들이 서울시 차원의 진상조사를 제안하며 외부인 참여를 요구한 데 비해서도 김부겸안은 뻔하고도 무책임하다. ● 당권주자 이낙연은 제 목소리 못 내나 당권주자 이낙연 의원은 14일 후보 공천 여부를 묻는 질문에 “시기가 되면 할 말을 하겠다”고 답 같지 않은 답을 했다. 진상 규명 여부를 묻는 질문에도 “당에서 정리된 입장을 곧 낼 것으로 안다”고 말해 듣는 이를 속 터지게 했다. 15일엔 “사건의 진상이 규명되기를 바란다”며 “민주당도 최대한 협력할 것”이라는 뻔한 소리를 했다. 차기 대통령감 1등을 달리면서도 친문 직계 아닌 호남 출신이어선지 부자 몸조심하는 티가 역력하다.어쩌면 이낙연은 엄숙한 신중함으로 지배세력의 뻔뻔스러움과 차별화하는 전략일지 모른다. 문파의 눈 밖에 나면 당권도, 대권도 불가능하다는 걸 모를 사람도 없다. 그렇게 신중(愼重·지나치게 조심함)에 신중을 기하다 설령 대선 경선을 통과해 대통령이 된대도 자기 목소리가 남아날지 걱정스럽다. 이낙연이 진정 현재의 권력과 차별화를 원한다면, 진상 규명은 물론 누가 A 씨의 고소를 피고소인에게 유출했는지 밝히라고 촉구하기 바란다. 경찰청이 A 씨의 고소를 청와대에 보고한 날 서울시 젠더특보는 ‘외부’에서 불미스러운 소문을 들었다고 했다. 전임 대통령이 국정 농단으로 탄핵을 받은 것도 공무상 비밀누설에서 비롯됐다. 그래도 침묵한다면… 이낙연은 ‘문재인 청와대’의 적자(嫡子)로 자리매김할 순 있을 것이다(그러나 대선에 유리할지는 알 수 없다). ● 몸은 늙어도 마음은 아직도 ‘운동권 성문화’민주당 여성의원들이 14일 사과문을 내며 ‘민주당 소속 자치단체장을 포함해 당내의 모든 성비위 관련 긴급 일제점검’을 요구한 건 의미심장하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 등 민주당에서 성추문이 잇따라 터져서만이 아니다. 그들도 운동권 특유의 성(性)문화를 모르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 21대 국회의원 중 전과(前過)가 1건 이상 있는 사람이 세 명 중 한 명(33%)이다. 민주당은 73명(41%)으로 통합당(22명·21%)보다 훨씬 많다. 상당수가 전대협 등 운동권 출신이어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으로 별을 단 것으로 분석된다. 1980년대 운동권은 감히 말하지 못했지만 2000년 들어 젊은것들이 작심하고 까발린 이슈가 ‘운동사회의 성폭력’이다. 정의당 류호정, 장혜영 의원이 강조한 ‘피해자 중심주의’는 단순히 성폭력을 피해자 중심으로 봐야 한다는 게 아니다. 대학·노조·시민단체 등 도덕성과 평등을 내건 좌파 조직에 성폭력이 만연해 있고, 더는 못 참게 된 젊은 여성단체들이 2000년 말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 뽑기 100인 위원회’ 깃발 아래 외친 전문용어가 피해자 중심주의였다. ● 은폐와 적반하장은 집어치워라피해자 중심주의에서 무엇이 성폭력인지는 가해자 진술 없이도, 피해자의 고통과 판단만으로 성립된다(극단적 선택을 한 고인의 진술이 필요 없는 이유다). 운동사회 내에서 성폭력 사건은 매우 빈번히 발생하는데(2000년 12월 100인위 ‘1차 실명 공개에 대한 입장’) 명망 있는 남성 운동가라는 특유의 조건 아래, 조직 보위를 위해 입을 다물라는 특유의 은폐구조, 가해자가 피해자처럼 둔갑하는 특유의 부정의(不正義)가 뻔뻔스럽게 작동된다. 이런 은폐와 침묵과 적반하장의 메커니즘이 ‘2차 가해’라는 거다. 서울시장 유고를 둘러싼 집권세력의 분위기와 기이할 만큼 흡사하지 않은가. 주로 운동권, 시민단체 출신이니 당연하다. 유독 민주당에서 불거지는 성적 문제는, 모든 여자들이 자기를 좋아한다고 믿는 권력중독 아저씨들의 착각 때문만이 아니다. 운동권 학생 시절에 익히, 좌파단체 때도 숱하게 직간접으로 겪었기에 보통국민은 이해 못 할 뻔뻔스러운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당신들의 이념과 정책이 시대착오적이듯, 당신들의 성문화 또한 시대를 잘못 만났다. 이념과 정책과 성문화를 바꾸지 못한다면 노무현 정부 때 만든 성매매처벌법을 폐지하는 건 어떤지 묻고 싶다(필자가 폐지에 찬성한다는 건 절대 아니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0-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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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차라리 무상몰수-무상분배를 하든가!

    22번째 부동산대책이 나왔다. 여기가 북한이냐, 집 두 채 가진 게 죄냐, 소리가 나오게 하겠다더니 과연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7·10대책이다. 다주택자의 취득세, 보유세, 양도세를 동시에 올려 확실히 징벌했고, 3년 전 이 정부가 부여했던 임대주택자 혜택도 박탈한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오른 아파트값이 떨어질 것 같진 않다. 두 배로 뛴 종합부동산세를 면하려면 1년 내 집을 팔라는 건데, 양도소득세를 내려 퇴로를 열어준 것도 아니다. 종부세 무섭다고 강남 아파트를 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국회의장도 대전 아파트를 자식한테 증여하고 강남 아파트 살면서 재건축 기다리는 판국에. 주택공급 대책도 없진 않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주재하에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도심 개발을 추진하겠다는 거다. 이 정도로 부동산시장의 악순환이 사라질지 의문이다. 근본적 대책이 빠졌기 때문이다. 국민이 살고 싶어 하는 곳에 좋은 주택을 많이 공급하는 것!● 재건축·재개발은 文정부 금기사항정부에 더 센 대책을 요구했다는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역구가 성남시 수정구다. 분당 바로 옆이어서 총선 때 신흥2동 한신·청구·두산 아파트 재건축, 신흥 1·2·3동 재개발, 복정동 택지개발사업 조기 추진을 약속했다. 그러나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10일 “재건축 규제 완화에 대해선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분명히 밝혔다. 여기가 정말 북한인가 생각이 들 정도로의 강력한 정책을 강조했던 김남국 의원도 경기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재건축을 공약했다. 구축 아파트가 즐비한 서울 송파구 남인순 의원의 공약은 어마무시하다. 가락우성1·가락프라자·삼환가락·가락극동·가락미륭·오금현대·가락상아1차·가락1차현대 아파트와 문정동 136번지 일대 재건축·재개발사업! 김남국과 남인순이 선거 때 “주민 여러분의 투기를 지원하겠다”고 유세했을 리 없다. 주민들이 간절히 원하기에 공약한 것이고, 주거환경 개선과 주거복지 확충이 대한민국에 해로울 리 없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가 재건축·재개발 불가를 고집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집값 올라 투기세력이 희희낙락하는 꼴을 못 보겠다는 거다. ● 내 생에 재건축은 바라지도 않지만여기까지 읽은 독자들 중엔 혹시 내가 송파구 주민이 아닌지 궁금해지면서, 언론이 아파트 투기를 부추긴다고 냅다 댓글을 달고 싶을지 모른다. 죄송하지만 저는 송파구나 강남구 주민도 아니고, 재개발을 노린 딱지나 지분 같은 건 구경도 못해봤다. 그래도 ‘라떼’는 운이 좋아 대출 안고 월급 저축해 아파트를 살 수 있었다. 마포 언덕배기 아파트에 살던 겨울엔, 빈 차로 올라가는 승용차를 붙잡고 “요 위까지 태워주실래요?” 성냥팔이소녀처럼 호소한 적도 있다. “건강에 좋은데 걷지 그러느냐”는 소리가 서러웠던 기억도 생생한데 20년 전 여의도로 이사하면서 평지에 사는 소원을 이뤘다. 이제는 근 50년을 바라보는 아파트와 함께 늙어가는 처지지만 여의도-용산 통개발 계획이 취소되는 바람에 내 생에 재개발은 꿈도 안 꾼다.나처럼 달랑 집 한 채가 전 재산인 사람은 집값이 올라도 내려도 달갑지 않다. 내 집이 올랐으면 강남은 더 올랐고, 내렸다 해도 팔고 이사 갈 곳도 없다. 강남에 집 가진 사람을 보면 물론 부럽다. 필시 부모나 남편을 잘 만났거나, 부지런히 이사 다니며 나름 고생을 했거나, 그것도 아니면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 것이라고 믿으려 한다(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재산권 위협하는 위헌적 부동산정치그럼에도 강남 아파트 지닌 고위공직자들한테 팔아치우라고 강요하는 건 찬성하지 않는다. 깨소금 맛이긴 해도 거주·이전의 자유, 재산권 보장을 명시한 헌법을 무시하는 처사다. 책임 있는 집권세력이라면, 많은 이들이 살고 싶어 하는 강남에 더 많은 아파트를 지을 수 없는지 머리를 싸매야 옳다. 강남 같은 교통, 교육, 상권 등 인프라를 갖춘 단지가 곳곳에 생긴다면 굳이 강남에 목을 맬 이유가 없다. 재개발·재건축이 그래서 절실한데도 이 정부는 ‘투기세력 근절’을 외치며 결사반대한다. 국회의장이나 대통령비서실장이 투기세력이었겠나. 불법으로 집을 사들였거나 탈세하지 않았다면, 다주택자도 나름 선량한 국민이다. 다주택자가 있어야 전세도 나올 수 있고 공급이 충분해야 대출받아 내 집도 살 수 있다. 그런데도 김현미는 “살지 않는 집이면 좀 파시라”며 다주택자를 무조건 투기세력으로 몰았다. 대출까지 막아 금수저 아니면 내 집 마련도 못 하게 만든 건, 3040의 계층이동 사다리를 부숴버리는 잔인한 부동산정치다. ● 다주택자, 대주주는 인민의 敵인가 노무현 정부 때도 그랬다. 집권세력이 강남 사는 사람들, 집 두 채 이상 가진 사람들을 징벌하는 것은 운동권 시절 주입된 의식 탓이 크다. 강남에 고가 아파트를 소유한 자는 해방 전후로 치면 대지주(大地主)다. 노동자와 농민, 민족 기업가 등 인민이 주인 돼야 할 세상에서 불로소득으로 재산을 늘린 대주주는 인민의 적(敵)인 것이다. 북한 김일성은 일본 제국주의를 몰아내고 무상몰수-무상분배의 토지개혁으로 인민을 해방시켰다. 남한이 이제라도 친일잔재를 청산하고 토지개혁과 인민해방에 성공하려면 강남의 모든 아파트를 무상몰수-무상분배해도 시원치 않을 판이다…라고 집권세력은 죽창을 갈고 있을지 모른다. 말이 안 된다고? 제 국민에게 고통을 주어 집값을 잡겠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발상이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부는 가진 자, 기업 하는 자를 북한 백두혈통보다 증오하는 티가 역력하다. 외고와 자사고를 없애고, 공정경제로도 모자라 평등경제를 들고나온 것 역시 아직도 주사파식 세계 속에 살기 때문이다. 아니면 조선시대 사림파 또는 척화파처럼 살고 있든지. ● 제발 시장경제 원리부터 공부하시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도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호되게 비판하는 상황이다. 이 정부와 뿌리가 비슷한 진보적 시민단체로서 고맙기 짝이 없지만 그들이 제시한 해법은 고맙지 않다. 집값을 자극하는 개발부터 막으라는 식이다. 분양가상한제 전면 확대, 공시지가 2배 이상 인상, 공공주택 확대 같은 ‘좌파 정책’으로는 턱도 없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350년간 세계 대도시 집값을 조사한 해외 연구를 들며 “우리보다 집값이 더 오른 선진국도 우리 같은 규제를 하는 나라는 없다”고 했다. 선진국 부동산 정책은 서민들을 위한 주거복지, 수요 공급에 따른 시장시스템 마련이 핵심이다. 보유세를 올린 미국과 영국도, 보유세를 내린 독일도 대도시 부동산값이 폭등했다.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서이고, 그게 시장경제 원리다.문 대통령이 취임 때 수준으로 집값을 잡는다면, 꼼짝없이 최고 50%의 재산을 날릴 국민이 나오게 된다. 이럴 바엔 차라리 강남 아파트 전체를 무상몰수한 뒤 초고층 아파트를 지어 무상분배하면 성군(聖君) 소리 들을 것이다. 대한민국을 곡소리로 채우고 싶지 않다면, 겸손하게 전문가와 국민의 소리를 듣기 바란다. 그것도 싫다면 제발 “부동산문제는 자신 있다”는 말이나 말든지!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0-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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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체제경쟁은 끝나지 않았다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박지원은 방송가의 아까운 논객이었다. 자칭 정치 9단에 능란한 말솜씨로 총선 낙선 뒤 외려 천직을 찾은 듯했다. 지난달 북한 김여정의 앙칼진 말폭탄에 통일부 장관이 물러나자 그는 “북한에서 자기들이, (김여정) 제1부부장이 한 번 흔드니까 다 인사조치되고… 이런 것도 나쁜 교육이 될 수 있다”고 사이다 발언을 했다. 그때만 해도 박지원은 국정원장 발탁을 몰랐던 것 같다. 자신이 어찌 될지는 권력자도 한 치 앞을 모르는 법이다. 하지만 북한에 관해선 우리 국민도 알 만큼 안다. 김여정이 “확실하게 남조선 것들과 결별할 때가 된 듯하다”며 장래의 주북(駐北) 대사관을 폭파하고 군사행동을 예고해도 불안, 공포 반응은 나오지 않았다. 북한이 어려우니 대북지원과 대북제재 해제를 확실하게 해내라는 의도가 너무 빤해서다. 불안과 공포를 자아낸 건 우리 정부의 반응이었다. 미국외교협회 스콧 스나이더 선임연구원은 “문재인 정부가 북한의 충성 테스트에 직면했다”고 분석하고 있었다. 김여정이 대북전단은 물론이고 민주국가인 남한 내에서의 대북 비판까지 억압하는 유화조치를 요구했다고 본 거다. 정부는 북한인권 단체 설립 취소에서 그치지 않았다. 전대협 초대의장 출신의 통일부 장관, 대북 송금의 주역 국정원장, 북한전문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 안보라인을 친북적 인사로 물갈이했다. 북한관광, 개성공단 재개 등 북에서 원하는 모든 걸 남측 대통령이 해주겠다는 확실한 메시지다. 이 정도면 충성 테스트 통과 수준이 아니라 머리를 땅바닥에 조아리는 삼배고두(三拜叩頭)라고 할 판이다. 왼쪽 뺨을 맞고 오른쪽 뺨까지 내준 데 감읍해 김정은이 핵을 폐기한다면,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다. 기이하게도 새 안보라인은 북핵 폐기에 큰 무게를 안 두는 눈치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는 “대북제재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그것을 통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했던 것은 한반도 평화”라고 봉창 뜯는 소리를 했다. 그럼 북핵 폐기라는 목적 없이 괜히 유엔이 북한을 제재한단 말인가. 서훈 안보실장 내정자와 박지원도 ‘스몰딜+α’로 제재 완화를 꾀할 모양이다. 모든 핵을 신고·폐기하는 게 아니라 2018년 하노이 회담 때 북한이 주장한 영변 핵시설 폐기에서 약간만 더하는 식이다. 마침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을 밝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을 노려 덜컥 합의해버리면, 우리는 핵을 감춘 북한과 살아야 하는 운명이 된다. 북핵과의 평화롭지 못한 공존이 그래도 전쟁보다는 나을지 모른다. 문 대통령은 6·25전쟁 70주년 기념연설에서 “남북 간 체제경쟁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고 했다. 우리 국내총생산(GDP)이 북한의 50배가 넘는다는 맥락을 보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체제가 승리했다는 의미 같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가 자유와 기본권을 누리고 살아야 김정은도 개과천선을 고려할 수 있다. 북에서 민주화를 원하는 움직임이 생겨나고, 따로 살든 같이 살든 평화도 가능해진다. 북한 ‘최고 존엄’의 여동생이 신경질 부렸다고 장관을 갈아 치우는 나라는 총 한 방 안 맞고 항복한 식민지나 다름없다. 전체주의 독재자를 위해 표현의 자유를 막는 법까지 만든다면 자유민주체제라고 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3차 추경안 국회 본회의 표결에 반대표를 던진 열린민주당 의원이 ‘문파’의 공격에 사과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헌법대로 양심에 따라 직무수행을 하는 국민의 대표에게 마오쩌둥 시대 홍위병처럼 달려드는 나라에선 자유민주주의가 배겨날 수 없다. 문 대통령에 대한 손톱만 한 반대도 용납지 않는 체제는 이미 전체주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우리의 체제를 북한에 강요할 생각도 없다”고 했다. 일국양제(一國兩制)의 국가연합, 또는 북한이 주장하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가자는 의미라면 불길하다. 중국의 홍콩 탄압이 만천하에 보여주듯,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6·25전쟁을 내전이라 했던 문재인 정부다. 비판세력을 토착왜구로 몰아붙이는 이유가 북에 정통성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면 섬뜩하다. 현실사회주의 붕괴와 함께 냉전이 끝났다지만 그건 서구의 시각일 뿐이다. 전체주의 중국공산당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한 신(新)냉전시대, 체제경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0-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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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의회독재, 보이콧으론 못 막는다

    세상이 바뀐 걸 미래통합당만 모르는 모양이다. 4월 총선에서 참패는 했지만 웰빙당으로 살기엔 야당도 나쁘지 않다고 믿은 것 같다. 그래서 야당이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맡는 게 관행이라며 원 구성 협상에 임했을 것이다. 대통령이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하면, 밀어붙이는 게 문재인 정부다. 취업준비생들이 반발하든 말든 상관없다. 대통령 취임 약속 30가지 중 지킨 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든 것 하나라는 말이 있지만, 이 정부는 비정규직 해결 약속도 지켰다고 믿는 게 분명하다. 한다면 하는 정부가 ‘범여권 180석’이라는 보검(寶劍)까지 확보했다! 원하는 건 뭐든 법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신천지가 도래한 거다.“절대 과반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상임위원장 모두를 맡는 게 국회 운영의 기본 원칙”이라고 민주당 윤호중 사무총장은 4월 말 선언했다. 그때라도 통합당은 알아차렸어야 했다. 집권당이 법사위를 포함해 진짜 상임위 전체를 차지해버릴 수 있다는 것을.●전두환 시절 뺨치는 집권여당 독주2004년 노무현 정부 때부터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는 아름다운 관행이 이어졌다고 해봤자 입만 아플 뿐이다. 여야가 2년씩 나눠 맡자는 통합당 제안에 민주당은 “대선 승리한 당이 맡자”고 약을 올렸다고 한다. 그러곤 6월 29일 정보위원장을 빼고 상임위원장 17개 전체를 독식함으로써 민주당은 전두환·노태우 시절 12대 국회(1985~1988년)로 끝난 독재의 유물을 이어받았다. 그 시절 민주화를 외쳤다는 자칭 ‘3기 민주정부’로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통합당은 국회 보이콧을 선언했다. 과거처럼 여당이 돌아와 주십사 애걸복걸할 줄 알았다면 이제라도 꿈 깨시라. 민주당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하루 만에 35조 원 규모의 3차 추경안 상임위 심사를 끝냈다. 국민의 대표답게 깐깐히 살피기는커녕 정부 제출안보다 3조 원이나 늘린 금액이다. 통합당의 자존심 때문에 벌써 국민이 피해를 본 것이다. ●공수처 출범시켜 윤석열 날리겠다? 추경안뿐 아니다. 여당은 곧바로 7월 임시국회를 소집해 대북전단 살포금지법, 5·18특별법 등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북한 김여정이 하명하고,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는 주요 법안들도 단독 처리를 불사할 태세다. 법사위 여당 간사인 백혜련 의원도 “통합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 날짜(15일)를 어기고 협조하지 않는다면 법 개정을 통해서라도 출범시키겠다”고 했다. 총선 직후 대통령이 여야 원내대표를 초청해 공수처 7월 출범을 언급 한 대로, 야당이 반대하든 말든 여당은 대통령 숙원사업을 국회에서 완성해 바치겠다는 얘기다.집권세력이 공수처 출범을 서두르는 것을 보면 ‘윤석열 검찰’이 밝혀내선 안 될 정권 차원의 비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돈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이나 유재수 전 금융위 국장 감사 무마, 우리들병원 특혜 대출 의혹 등 지금까지 알려진 의혹을 능가하는 뭔가가 있기에 7월 15일 공수처 개문과 동시에 윤석열을 무장해제시키려 한다는 거다. ●웰빙야당이 거대여당 막을 수 있나국민이 민주당에 177석을 안겨준 이상 통합당이 거대여당의 독주를 막을 방법은, 애통하지만 없다. 총선을 통과한 통합당 의원 중 9명이 이미 국회선진화법 위반으로 기소돼 있다. 500만 원 이상 벌금형을 맞으면 의원직을 잃을 처지라 몸으로 여당을 막는 건 언감생심이다. 4명만 의원직을 잃어도 개헌 저지선이 붕괴될 판이다. 통합당은 공수처가 삼권분립을 위반한다며 두 달 전 헌법재판소에 헌법 소원을 청구하긴 했다. 통합당 의원 103명 전체를 상임위에 강제 배정한 국회의장에 대해서도 헌재에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할 ‘예정’이란다. 세상 바뀐 줄 모르는 봉창 두드리는 소리다. 헌재 재판관 9명 중 8명을 문 대통령이 임명했다. 헌재가 문제없다고 결론 내리면 그때 가서 통합당은 어쩔 셈인가. 아니 그때까지는 뭘 할 작정인가. 이제 와서 소속 의원들한테 희망 상임위를 써내라고 했다는 것도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일이다. 총선에서 패한 지 두 달이 다 되는 동안 뭐하고 있었는가. 삭발이나 단식, 장외투쟁을 해봤자 구태 소리 들을 뿐임을 아는 게 다행이다. 안타깝게도 요즘 독재정권은 야당 보이콧에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보이콧은 독재에 주단을 깔아줄 뿐베네수엘라 얘기는 하기도 싫지만, 극심한 경제난에도 2018년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이유를 아는가. 우파 야권연합이 부정선거가 의심된다며 대선을 보이콧했기 때문이다. 2015년 총선에서 야권연합이 다수를 차지하자 따로 제헌의회까지 설치한 마두로였다. 야권은 선거를 보이콧할 게 아니라 대선 단일후보를 내세워야 했다(물론 그게 안 돼 지금 그 모양이지만). 포퓰리즘에서 출발한 신(新) 독재정권이 쿠데타 대신 법으로 국가를 장악하면, 야당은 보이콧 빼곤 할 일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프리덤하우스는 ‘전환기의 국가들 2020’보고서에서 “알바니아, 불가리아, 조지아, 몬테니그로, 세르비아 야당들이 입법 과정을 보이콧함으로써 의회의 정당성에 문제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보이콧은 단기적 정치적 자산을 안겨줄 수 있어도 결국 의회와 정당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다는 게 영국 ‘민주주의를 위한 웨스트민스터재단’의 지난해 연구 결과다. 남의 나라를 봐도, 야당의 국회 보이콧은 바보짓이다. 민주당 독주가 오만하고 위험해도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과 정당은 도태시키는 제도를 만들겠다”는 데는 박수칠 국민이 적지 않다. 그래서 포퓰리즘 정권이 세계적으로 잘 나가는 거다(아직까지는). 통합당은 7월 임시국회 개최 상황을 보고 복귀 시점을 검토할 게 아니라 이제라도 밥값 할 길을 찾아야 한다. ● 당장이라도 국정 운영할 수 있나2006년 소수야당 민주당(지금의 민주당과는 다른 당이다) 조순형 의원은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지명의 위헌 소지를 밝혀내 낙마시킨 바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사법시험 동기 전효숙을 6년 헌재소장 시키려고 헌재 재판관에서 사퇴시킨 것이 ‘헌재 재판관 중에서 헌재소장을 임명’하도록 한 헌법규정 위반이라고 악 소리 나게 지적한 것이다. 실력과 의지만 있다면 소수야당이라고 무력한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민주당의 ‘의회 독재’가 불길한 건 분명하지만 미국도 여당이 상임위원장을 독식한다. 상임위원장 전부 뺏겼다고 슬픈 척 할 때가 아니라는 소리다. 박병석 국회의장의 공수처장 후보 선임 요청에 통합당이 “공수처 독소조항까지 묶어 논의하자”며 뻗댈 만큼 한가한 때도 아니다. 차라리 야당의 공수처장 거부권을 활용하는 게 현명할 수도 있다. 이 절박한 상황에 우리에게는 비상한 야당이 필요한 것이다. 야당 상임위원이라도 여당 위원장 꼼짝 못하는 역량을 발휘한다면, 국민은 반드시 알아본다. 무능한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비판만 할 게 아니라 통합당에서 똑 소리 나는 대안을 내놓으라는 얘기다. 진중권 한 사람이 열 야당 노릇을 하는 현실이다. 당장 정권이 바뀔 수도 있다고 상상해 보라(탄핵당한 전임 대통령 때처럼). 문재인 정부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통합당의 모습을 지금, 국회에서 왜 못 보여주는가.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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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6·25 70주년… 이번엔 볼턴이 나라를 구했다

    그래도 대한민국은 하느님이 보우하는 나라가 틀림없다. 70년 전 북한이 6·25전쟁을 일으킨 바로 다음 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 병력 즉각 철수결의안을 채택해 유엔군 참전의 길을 열었다. 거부권을 지닌 상임이사국 소련이 때맞춰 불참한 덕분이다. 소련은 중국 아닌 중공의 대표권을 인정하라며 안보리를 보이콧하고 있었다. 소련 붕괴 뒤 미국서 번역된 안드레이 그로미코 전 외교장관의 회고록에 따르면 안보리 불참은 스탈린 지시다. 미국이 대륙을 정복한 중공과 한반도에서 싸우게 하는 게 스탈린의 세계전략이었다. 미국을 아시아에 묶어둠으로써 소련은 유럽 사회주의를 강화할 시간을 벌고, 중국의 기세도 꺾을 수 있어 전략적 이익이라는 거다. 이번엔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출신 존 볼턴이 우리나라를 구한 것 같다. 때맞춰 나온 그의 회고록을 놓고 청와대는 “볼턴이 한반도 평화의 훼방꾼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했다”고 비판했다. 볼턴이 북핵 협상 실패를 꾀했다며 불쾌한 모양이다. 그러나 북핵 폐기 없이 북-미가 종전선언에 합의하는 것보다는 회담이 깨진 게 훨씬 낫다. 볼턴은 훼방꾼이 아니라 백악관의 어른이자 대한민국 지킴이였던 셈이다. 지금도 북한 김여정의 한마디에 대한민국 장관이 날아가는 나라다. 청와대 주장대로 종전선언부터 했다가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 한미동맹 파기까지 요구하며 핵무기를 놓지 않으면 우리는 꼼짝없이 김정은의 노예처럼 살 판이다. 2018년 3월 트럼프에게 김정은의 초청장을 전달했던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회고록 상당 부분이 사실 왜곡이라고 했다. 그가 불타는 애국심과 사명감으로 북-미 회담의 물꼬를 튼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볼턴은 “나중에 정의용은 김정은에게 트럼프를 초청하라고 처음부터 제안한 사람이 자기라고 거의 인정했다!”고 회고록에서 지적했다. 정의용이 이것도 부인한다면 볼턴의 양식과 지성을 모욕하는 일이다. 메모광에 가까운 볼턴이 맨 뒤에 각주까지 붙여 “정상회담 뒤 서울에서 가십이 나돌기에 나도 의심이 생겨 정의용에게 직접 이슈를 제기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회고록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김정은에게 1년 안에 비핵화할 것을 요구해 동의를 받았고, 김정은은 비핵화 ‘뒤에’ 보상이 주어진다는 점을 완전히 이해했다”는 대목도 나온다. 싱가포르 회담 뒤 실무협상에서 북한은 미국의 ‘강도적 비핵화 요구’를 비난하며 체제보장부터 해달라고 종주먹을 댔다. 볼턴의 눈에 “이 모든 외교적 판당고(스페인의 구애춤)는 한국의 창작물”로 보일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심지어 청와대가 희망적 사고에 사로잡혀 국민과 북-미 지도자를 북핵 해결의 환상으로 몰고 갔다면 문제의 차원이 달라진다. 북핵을 머리에 인 채 남북관계의 진전만으로 한반도 평화체제가 가능하다고 믿을 순 없다. 소련과 중국의 승인을 얻어 남침만 하면 미국이 개입하기 전에 남한을 붕괴시킬 수 있다고 믿은 70년 전 김일성의 모험주의와 다를 바 없다. 해고자의 노동조합 가입을 허용하는 노조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한 23일, 민주노총 등은 “미국이 남북관계 진전을 방해한다”며 “문재인 정부는 우리 민족끼리 우리 길을 가겠다고 선언하라”고 촉구했다. 문재인 정권에선 노동자가 주인 된 세상 같겠지만 바깥세상은 또 달라졌다. 트럼프 미 행정부는 5월 ‘대(對)중국전략보고서’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을 ‘공산당 총서기’로 호칭하며 과거 미소(美蘇)대결 같은 신냉전 시대를 선언했다. 소련이 사라졌을 뿐, 중국공산당은 냉전을 끝낸 적 없다. 이를 뒤늦게 깨달은 미국이 공산당 독재체제가 ‘우리의 가치에 도전’한다며 우방들과 함께 체제경쟁 승리를 다짐한 것이다. 강대국 세계전략을 무시하고 우리끼리 산다는 건 이불 속 활갯짓이다. 북이 예고했던 대남 군사도발을 김정은이 어제 전격 보류한 것도 미국에서 항공모함과 B-52 전략폭격기들을 한반도에 전개한 영향이 컸다. 북한은 우리와 같은 민족국가라고 할 수도 없다. 김일성 민족만의 전체주의 세습국가다. 더구나 핵무기를 생명줄로 아는 김정은 정권과는 통일도, 평화도 불가능하다. 문재인 정부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는 알 수 없다. 6·25전쟁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킨 대한민국은 무슨 죄를 지었다고 김정은 정권한테 ‘겁먹은 개’ 소리나 들어야 한단 말인가.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0-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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