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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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순덕 대기자입니다.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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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10~2024-05-10
칼럼100%
  • [김순덕 칼럼]A4용지 없는 文 신년회견

    대통령에 대해 보통 사람들이 믿고 싶은 신화가 있다. 대통령은 선하고 현명한데 주변에서 눈과 귀를 가려 문제라는 거다. 실세가 누구냐는 의문도 그래서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를 진심으로 싫어했다는 사람이다. 밥도 혼밥, 인사도 노무현-문재인 청와대 중심의 근친교배, 국민과의 소통도 의전비서관 탁현민이 꾸민 모델하우스에서나 하는 대통령이어서 나는 늘 궁금했다. 참모진이 써준 말씀자료 없이 문 대통령은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지. 18일 신년회견은 A4용지 없는 대통령의 발언을 접할 수 있는 귀한 기회였다. 어떤 질문에도 문 대통령은 막힘없이 답변했다. 전직 대통령 사면 같은 민감한 문제는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는 말로 ‘왕관의 무게’를 피해갔다. 부동산 문제에선 세금 폭탄으로 1인 가구가 늘어난 정책 실패도 인정하지 않았다. 무책임하고도 당당한 모습에 대통령이 진짜 일각에서 주장하듯 운동권 세력에 얹혀있는 마리오네트가 아닌가 싶어질 판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참모진이 대통령의 눈을 가린다거나 민심을 왜곡한다는 것은 다 틀린 말”이라며 대통령은 신문도 댓글까지 꼼꼼히 읽는다고 했다. 그 말이 맞는다면 문 대통령은 누구도 흔들지 못하는 신념의 실세라고 볼 수밖에 없다.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을 쓴 슈테판 츠바이크는 “실제 생활이나 정치라는 힘의 영역에선 뛰어난 인물이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일이 드물다”고 간파한 바 있다. 오히려 그렇지 않은 인간이 결정권을 쥐는 경우가 많다는 거다. 문 대통령이 뛰어난 인물이 아니라는 불경(不敬)의 소리가 아니다. 만만할 줄 알고 1999년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 후임에 옹립된 블라디미르 푸틴이 뜻밖의 정치력으로 장기 집권하듯, 문 대통령도 카리스마의 정치인임을 새롭게 발견했다는 고백이다. “월성 1호기는 언제 폐쇄하느냐”는 한마디로 장관부터 엘리트 공무원까지 백방으로 뛰게 함으로써 문 대통령은 실세의 참모습을 드러냈다. 작년 한 해를 윤석열 검찰총장 축출 기도로 보내고도 신년회견에서 “윤석열 총장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는 평가로 정치권을 평정하기도 했다. 최재형 감사원장에 대해 “집을 지키라고 했더니 안방까지 차지하려 한다”고 비난한 임종석 전 비서실장과는 비교도 안 될 세련된 정치적 낙인이다. 윤석열이 대선후보로 나오면 정권 교체할 수 있다는 희망을 무너뜨렸을 정도다. 권력비리 의혹 수사팀을 날린 검찰 인사가 ‘추미애의 난(亂)’의 시작이었다. 대통령이 강조하는 인사권을 통한 ‘문민통제’를 법무장관 추미애 독단으로 했을 리 없다. 그가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밀어붙인 윤석열 징계 청구 및 직무 배제 조치도 문 대통령은 침묵으로 승인했었다. 180석 거대 여당의 탄생 역시 문 대통령 ‘30년 절친’을 위해 청와대 참모진이 대거 나선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 덕분으로 봐야 한다. 추미애가 공개를 완강히 거부했던 사건 공소장이 보도되자 집권당 핵심 인사들은 “(대통령) 탄핵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어쩔 수 없이 해야 하지 않겠나”라며 비례 위성정당 창당에 나섰기 때문이다. 대통령 퇴임 후 안전을 위해 온 나라를 뒤집어 놓고도 “감사원 감사나 검찰 수사에 대해 ‘일절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지금까지 철저하게 지키고 있다고 자부한다”고 답변할 수 있는 사람은 실세이거나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같은 정치적 인간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심지어 문 대통령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원리가 아주 건강하게 작동되고 있다”는 자찬으로 국민을 경악하게 했다. 한때 우리가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를 불렀던 이유는 독재가 지긋지긋했기 때문이었다. 집권세력은 물론 대통령도 법을 지키는 ‘법의 지배’가 민주주의다. 다수의 지배가 민주주의인 줄 알고 말끝마다 ‘국민’을 외치는 포퓰리즘의 큰 문제가 정치적 무책임이다. 반대는 문파의 온라인테러가 무서워 못 하고, 나라가 잘못돼도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달님을 떠받드는 국민이 원한다는데 어쩔 것인가. 권력과 이권에 중독된 좌파 운동권 네트워크 집권세력이 문 대통령의 정치력을 키웠는지는 알 수 없다. 서울·부산시장 선거와 내년 대선을 거저먹을 것처럼 기고만장해진 야권이 정신 차려야 할 이유다.※문재인 대통령 앞에 이 나오는 모니터 또는 프롬프터가 있더라는 독자 의견이 적지 않다. 청와대에 따르면 기자의 질문을 속기사가 요약해 올린 것일 뿐, 답변이 담긴 것은 아니었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1-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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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안철수는 경선하지 않는다

    ‘안철수의 마법’에 야권이 또 빠져들었다. 국민의당(이하 국당) 안철수 대표의 작년 말 서울시장 출마 발표는 거의 도시락폭탄 수준이었다. 의석수 3석의 군소야당 대표가 담대하게 야권후보 단일화를 제안하는 정도가 아니다. “서울의 시민후보, 야권 단일후보로 당당히 나서 정권의 폭주를 멈추는 견인차 역할을 하겠다”고 했다. 쉽게 말해 중도층 지지를 받아 당선되려면 자기가 야권단일후보로 나서야 하니 다른 야당은 후보를 내지 말든가, 양보하라는 소리다.명색이 제1야당이 안철수 앞에 당장 엎드릴 리 없다. 안철수도 출마 선언 당시 국민의힘(이하 국힘) 입당 가능성에 대해 ‘열린 마음’이라고 했고, 통합경선도 “공정경쟁만 된다면 어떤 방식도 좋다”고 밝혔다. 이후 야권은 안철수가 던진 도시락폭탄에 혼란과 갈등, 분열로 치닫는 양상이다. ● 총선 지역구 포기가 양보였다고? 국힘에서 입당하라, 들어와서 경선하라, 노래를 부른 건 당연하다(안철수가 열린 마음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리하여 국힘과 국당이 통합경선 방식에 합의해낸다면,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서울시민은 희망차게 새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국힘이 서울시장 후보를 준다고 약속을 한대도(공당으로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안철수가 그 당에 입당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합당도 시원치 않을 판에 입당은 웃기는 소리다). 선입당 후경선이 싫은 건 이해한다지만 안철수는 14일 “이미 지난해 총선에서 지역구 후보를 내지 않고 양보했는데 또 양보를 하라고 한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오잉? 국당이 지역구 후보를 못 낸 게 아니라 양보를 한 거라고? 긴 외유에서 귀국해 2020년 1월 국당을 창당한 안철수는 국힘(당시 미래통합당)과의 연대를 단호히 거부했었다. “여당과의 일대일 구도는 백전백패”라고 했다가 나중엔 “거기(통합당) 대표나 공천관리위원장이 오히려 생각이 없다고 한다”고까지 했다. 당 지지율이 지지부진해 안철수계 의원들이 자꾸 통합당으로 떠나자 2월 말 기자회견을 열어 “253개 지역 선거구에 후보자를 내지 않기로 했다”고 비례대표 후보만 공천한 게 전부다. 그게 아니라 안철수 자신이 서울시장(원래는 대통령) 야권 단일후보가 되려고 일부러, 미리, 당을 희생시키는 양보를 했다면 그야말로 당을 사유화한 당권남용이다. ● 서울시장 포기는 부친 반대 때문이었다 ‘양보’라는 데 안철수의 상품가치가 있기는 하다. 2011년 10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지지율 50%를 달리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안철수는 시민운동가 박원순을 위해 조건 없는 불출마를 선언함으로써 단박에 대선주자로 등극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안철수의 ‘300명 멘토’ 중 하나였던 윤여준은 그해 12월 “안철수가 부친의 결사반대 때문에 (출마) 못 한다고 했다”고 시사인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나도 생생히 기억한다. 서울시장에 출마를 생각 중이라는 기사가 9월 1일 밤 오마이뉴스에 뜨자 다음 날 모든 매체가 안철수의 입만 바라보는 형국이었다. 그는 기자들에게 출마를 검토하고 있다며 9일 최종 결심을 밝히겠다고 했다. 그런데 윤여준에 따르면 안철수는 2일 아침에 벌써 “부친이 결사반대한다”고 전화해왔다는 거다. 이렇게 발칵 엎어놓고 안 하겠다면 장난하는 거냐, 빠지더라도 명분이 있어야 하니 박원순에게 양보한다며 빠져야 명분이 선다는 취지로 말해줬더니, 그게 7일 사심 없이 양보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포장됐다는 얘기다.● 파파보이 안철수, 지금은 달라졌을까안철수의 부친 안영모 씨도 이 사실을 인정한다. 2012년 4월 국제신문 인터뷰에서 “평소 내가 정치에 관여하지 말라고 한 요소도 있었을 것”이라며 또 한 가지 중요한 얘기를 했다. 안철수가 2012년 대선에 나오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였을 때였다. 부친은 “내가 성격을 봐서 아는데 큰아이는 경선하자고 해도 경선할 아이가 아냐. 절대 경선은 안 한다”고 단언한 것이다. 실제로 그해 민주당 대선후보 문재인과 단일화 과정에서 안철수는 경선을 하지 않았다. 당시 안철수의 진심캠프에서 단일화 협상에 나섰던 금태섭은 무슨 대책이 있는 게 아니라 문재인의 양보만 기다렸다고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에 썼다. 계속 시간만 흘러가 나중엔 여론조사 방식만 남았는데 그마저 못 믿겠다며 거부해버렸다. 그러더니 안철수는 누구와 의논했는지도 모르게 11월 23일 느닷없이 사퇴를 선언했다. ‘안 후보의 지지율이 문 후보 지지율을 압도하고 있다고 해도 제1야당의 후보가 자진해서 사퇴하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 금태섭이 책에 쓴 대목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국힘은 10명의 경선 주자 중 후보를 만들어낼 것이다. 서울시를 집권당의 폭정에서 ‘해방’시키기 위해선 야권후보 단일화가 절체절명의 과제다. 그러나 안철수로선 더는 물러설 수 없다. 그렇다고 국힘과 단일화 경선을 할 ‘아이’인지는 의문이다. 과연 안철수는 달라졌을까. ● 눈썹 굵어진 안철수, 마음도 굵어졌어야아닌 것 같다. 눈썹이 진해지고, 목소리도 굵어졌지만 자신을 비판하는 소리에 “저를 잘 알지 못하는 분들까지 나서 근거 없는 비판을 한다”고 발끈한 걸 보면 안철수는 아직 밴댕이속이다. 10년의 정치 실패를 반성하고, 공부하며, 큰 뜻을 갈고 닦았다면 “과거에 그랬다면 미안하다. 지금의 나는 다르다. 같이 정치하며 큰 뜻을 펴보자”는 식으로 정치인의 도량을 보여줬어야 했다. 국힘과 단일화하기로 결론이 났다 해도 경선방식에 합의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안철수는 “단일후보 결정은 이 정권에 분노하는 서울시민들이 하면 된다”고 했는데 국힘이 제시하는 여론조사 방식은 ‘이 정권에 분노하는 서울시민 대상’이 아니라는 식으로 합의가 안 될 가능성이 크다(심지어 국당의 이태규는 14일 “100% 시민경선에서 표본수 표본도 전체 표본으로 할지, 야당 지지층과 무당층으로만 할지, 적합도로 할지, 경쟁력으로 할지, 여기에 따라서 엄청난 관점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복잡한 소리를 했다). 경선방식에 합의하지 못할 경우, 안철수는 당연히 출마한다. 안철수와 국힘, 무소속의 금태섭까지 야권이 표를 갉아먹다 패배할 공산이 크다. ● 그래도 집권당에 비하면 양질이다 집권당 소속 고 박원순 서울시장 때문에 하게 된 보궐선거다. 자기네 잘못 때문에 재·보궐선거를 하게 되면 후보를 안 낸다는 당헌까지 고치는 집권세력에 비하면, 안철수나 국힘은 양질이라고 봐야 한다.그럼에도 제1야당인 국힘이 이 선거도 이기지 못하면, 그런 당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서울시민이 원하는 것은 야권의 승리이지 국힘의 운명엔 미안하지만 관심 없다. 어떤 식으로든 국힘은 안철수를 껴안고 승리하든지, 논개처럼 자폭을 할 수밖에 없다. 다만 안철수든, 국힘이든 비판전으로 제 살 깎아먹진 말았으면 한다(좌파는 그런 짓 절대 안 한다. 그러고 보니 안철수는 좌파는 아닌 모양이다). 행운을 빈다. 해피 뉴 이어.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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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북핵 불용” 문 대통령은 왜 말 못 하나

    “북한당국에 촉구합니다. 북한의 핵은 결코 용납할 수 없습니다.” 11일 신년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끝까지 이 말을 하지 않았다. 북한 김정은이 9일 한국을 겨냥해 “핵무기의 소형경량화, 전술무기화를 보다 발전시키라”며 전술핵무기 개발을 지시한 직후다. 김정은은 “강력한 국방력에 의거해 조국 통일을 앞당기겠다”고 대한민국을 위협했다. 사거리가 짧은 전술핵무기는 한국을 겨냥한다(일본에도 사용할 수 있겠지만 북한이 미쳤다고 일본에 전쟁 걸겠나). 전술핵 개발을 김정은이 공개 지시한 것도 처음이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남북 비대면 대화를 제안한 문 대통령은 한반도 아닌 천상(天上)의 대통령 같았다. 국민 세금이 들어간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해도, 우리 공무원을 쏴죽이고 불태워 죽여도 ‘전쟁 불용’ ‘상호 간 안전보장’ ‘공동번영’이 3대 원칙이라고 했다. 북핵 불용이 아니고 전쟁 불용? 그럼 핵은 용인할 수 있단 말인가?● ‘북의 비핵화 의지’ 文은 답변 피했다궁금하지만 대통령한테 물을 수도 없다. 기자회견을 이어서 하면 신년사가 주목받지 못한다며 질문도 안 받아서다. 그러나 지난해 신년회견 때도 대통령은 답하지 않았다. 첫 질문이 “김정은의 비핵화, 그리고 김정은의 답방을 여전히 신뢰하느냐”는 것인데 대통령은 묻지도 않은 북-미 간 신뢰에 대해 한참 말했을 뿐, 김정은의 비핵화(의지)에 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양 정상 간의 신뢰는 계속되고 있고… 저는 대단히 긍정적으로 평가를 하고 싶다… 남북관계도 어려움을 겪고는 있지만 대화를 통해서 협력을 늘려나가려는 그런 노력들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고….”제대로 된 기자회견이라면 “그래서 대통령은 김정은에게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보느냐”고 재차 물었어야 했다(이번 기자회견에선 제발 보충질문을 하기 바란다). 대통령이 일부러 핵심을 피했는지는 알 수 없다. 만일 김정은에게 비핵화 의지가 없고, 비핵화하지도 않을 것을 대통령도 알기에 답변을 피했다면 국민을 속인 것과 다름없다. ● ‘북핵 불용’에서 ‘전쟁 불용’으로 바뀐 원칙문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7년 10·4남북공동선언 10주년 기념식에서 “북한의 핵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밝혔다. 그러면서도 “북한이 무모한 선택을 중단한다면 대화와 협상의 테이블은 항상 열려 있다”고 대화를 강조한 거다. 한 달 뒤 국회 시정연설에서 밝힌 한반도 안보 5대 원칙에도 ‘북핵 불용’은 당연히 포함돼 있었다. ‘북핵 불용’이라는 단어는 2018년 4월 1차 남북정상회담 합의에서 사라진다. 문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과 합의한 것은 △남북관계 전면적 개선 △군사적 긴장 완화와 전쟁 위협 해소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와 전쟁 불용이었다. 북에서 말하는 비핵화는 북핵 폐기가 아님을 대통령이 모를 리 없다. 주한미군 철수는 물론 한반도 핵우산 보장 철회, 일본과 괌에 있는 미국 핵무기 철수까지 포함된다. 실은 이보다 넉 달 전, 문 대통령 중국 방문 때 이미 ‘북핵 불용’은 실종됐다. 두 정상이 의견을 같이했다는 한반도의 평화·안정을 위한 4가지 원칙이 △전쟁 불용 △비핵화 견지 △북핵의 평화적 해결 △남북관계 개선이다. 만일 문 대통령이 중국에서 어떤 압력(또는 영감)을 받아 ‘북핵 불용’ 입장을 ‘전쟁 불용’으로 바꿨고, 남북회담에서도 그렇게 합의한 것이라면 충격적이다.● 국민과 세계를 속여 선거 이기니 좋은가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중요한 것은, 북-미 사이에서 한국이 그걸 보장했기 때문이다. 2018년 3월 정의용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김정은을 만나고 돌아와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국민 앞에 밝혔다. 이때 ‘김정은’이 아니라 ‘북측’이라고 밝혔다는 데 유의하기 바란다. 정의용은 이 결과를 들고 트럼프를 만난 뒤 “저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의 지도자인 김정은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김 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음을 언급하였다’고 했다”고 브리핑했다. 김정은이 자기 입으로 비핵화 의지를 밝혔다고 정의용은 세계에 천명을 한 것이다. 정의용이 속였는지, 그의 상관이 그렇게 하도록 시킨 것인지 정말이지 궁금하다. 그 다음은 거짓 약속에 속은 더러운 사랑의 역사다. 햇볕정책의 상대는 철갑을 두르다가 전술핵무기까지 개발하는데 이쪽은 스스로 옷을 벗다 못해 무장해제로 가는 추세다. 2018년 문 정권은 국민과 미국과 북한을 각각 듣기 좋은 소리로 속인 결과 지방선거에서 벼락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4월 재·보궐 선거와 내년 대선 때 비슷한 북한 쇼는 안 통할 것이다. 만일 문 대통령이 “북핵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며 대북정책을 완전히 바꾼다면 또 모르지만.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1-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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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펜트하우스’ 뺨치는 막장의 정치

    성공한 ‘막장 드라마’에는 공식이 있다. 첫째, 음모 배신 살인 불륜 같은 악행과 복수. 착한 주인공과 악당이 선명하게 대립돼 욕을 하면서도 안 볼 수 없게 된다. 둘째, 출생의 비밀 등 복잡한 관계. 왜 막장이 될 수밖에 없는지 합리화하면서 시청자의 공감을 얻어낸다. 셋째, 권선징악의 결말. 그럼에도 정의(正義)는 살아있음을 알려 희망을 갖고 현실을 살게 해주는 거다. 5일 자체 최고 시청률로 종영된 SBS 드라마 ‘펜트하우스’는 과거의 공식을 뒤집었다는 점에서 진보적이다. 부동산 문제로 국민 분노가 들끓는 지금, 100층짜리 호화 아파트의 비극은 “모두 다 강남에 살 필요는 없다”던 전 대통령정책실장을 떠올리게 만든다. 반듯하고 선해 보이는 겉모습에 속지 말라는 새해 교훈도 짜낼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등장한 이 K막장 드라마는 인과응보가 없어 묘하게 시사적이다. 예전 막장극에선 악한도 결국 잘못을 뉘우치거나 피해자에게 용서를 빌어 손발이 오글거리는 감동을 주었다. 과거엔 정권 비리가 드러나면 대통령들이 국민 앞에 사과를 했던 것이다. 검찰이 대통령 무서워 대충 수사를 덮으면 야당에서 들고일어나 특별검사를 사실상 지명했고, 대통령의 인사권에서 자유로운 특검은 살아있는 권력을 추상같이 단죄했다. 검찰총장을 찍어내거나 헌법에도 없는 수사기구를 만들진 않았다는 얘기다. 드라마 펜트하우스가 블루하우스와 겹쳐 보인 건 “진실은 우리가 만든다”는 남자주인공 주단태 때문이다. 겉보기엔 완벽을 추구하는 신사지만 결코 잘못을 인정 않는 사이코패스다. “쟤 하나 때문에 우리가 똥물을 뒤집어쓸 수 없다”며 더 큰 죄로 악행을 덮는 모습은 섬뜩할 정도다. 그가 욕망의 화신 같은 팜 파탈 천서진과 다시 펜트하우스를 차지하고 파티를 여는 결말은 불길하기까지 하다. 드루킹 대선 댓글 여론 조작 사건은 문재인 정부 출생의 비밀일 수 있다. 이 사건의 김경수 경남지사는 작년 2심에서 대선 여론 조작 혐의가 유죄로 판단돼 징역 2년이 선고됐음에도 대법원 무죄 판결을 확신한다고 밝혔다. 여전히 문재인 대통령의 원톱 최측근인 그로선 진실도 자신들이 만든다고 믿고 싶을지 모른다. 블루하우스가 윤석열 검찰총장 하나 때문에 ×물을 뒤집어쓸 수는 없다며 법무부 장관 추미애를 앞세워 벌인 일들은 모조리 실패했다. 건전한 상식으로, 법관의 양심으로 대한민국의 법치와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사법부 덕분이다. 그러나 추미애 못지않은 강성 친문 의원 박범계가 후임으로 내정돼 2020년 뺨치는 막장 혈투가 우려될 판이다. K막장 드라마에선 말도 안 되는 일이 거듭되면서 충격의 강도가 갈수록 커지는 자극의 역치(閾値)가 발생한다. 문재인 정권 역시 말도 안 되는 일을 계속 일으킴으로써 대통령비서실장이 멀쩡한 국민을 ‘살인자’라고 소리쳐도 놀라지도, 분노하지도 않는 상태가 돼버렸다. 그러나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 내 집을 놓고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이면 소 같은 국민도 못 참는다.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건 사이코패스나 다름없다. 부동산 안정을 목표로 24번이나 규제 정책을 내놓고도 성과가 안 났으면 잘못을 인정하고 방향을 바꿔야 옳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신년회견에서 “급격한 가격 상승이 원상회복될 때까지 보다 강력한 대책을 끝없이 내놓겠다”며 일로매진을 강조하는 놀라운 모습이었다. 국민의 자유와 소유를 규제한 결과 지난해 집값은 9년 만에, 전셋값은 5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뛰었다. 실패한 김현미 전 국토교통부 장관 대신 그보다 더한 규제론자 변창흠을 앉힌 것도 정상으로 봐주기 어렵다. 작년 서울 집값이 2.67% 상승했다는 한국부동산원 조사가 미심쩍긴 해도 작년 1∼9월 7.4% 오른 독일이나 5.4% 오른 영국, 4% 오른 미국 10개 도시보다는 훨씬 적게 올랐다. 그 선진국들이 내놓는 ‘공급확대, 규제완화’ 대책은 쏙 빼고 엉뚱한 정책만 내놓는 것이 막장 부동산 정치다. 막장 드라마는 그나마 현실이 아니어서 즐기면 그만이다. 살아있는 국민을 놓고 벌이는 막장 정치는 국민 심성을, 나라 근간을 피폐하게 만든다. 우리나라처럼 막장 미드를 연출했던 미국이 마침내 조 바이든 대통령을 선출해 정상(正常)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우리에게도 선거가 있다는 희망으로 2021년을 버틸 일이다. 마스크 단단히 끼고.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1-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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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문재인 정권은 혁명정부였다

    평양 김일성광장에 ‘결사옹위’라는 글자가 등장했다. 아니, 북에서도 우리 대통령을 결사옹위? 나는 잠시 헷갈렸다. ‘대통령의 안전’ 운운하며 윤석열 검찰총장 탄핵을 외친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장에 이른바 ‘조국 수호대’ 출신 등 강성 의원들이 가세했다. ‘정권 엄호’를 설립취지문에서 밝히며 친문 의원들은 민주주의4.0연구원을 발족했다. ‘대통령이 외롭지 않도록’ 정계 복귀를 시사한 전 비서실장도 나왔다. 북한에서 결사옹위정신이란 “수령의 신변을 결사호위하고 수령의 권위를 결사옹호하는 정신”을 말한다. “수령의 업적을 결사고수하고 수령의 사상과 노선, 정책을 결사관철하는 정신”이라고 1992년판 조선말대사전은 정의하고 있다. 불경이 아닐까 걱정스럽긴 해도 수령 대신 문재인 대통령을 넣어 읽어보라. 요즘 친문세력 분위기와 딱 들어맞는다. 최고지도자 결사옹위에선 남북이 하나가 된 감격스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 대통령의 신변과 권위, 업적과 노선을 지켜라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38노스가 위성사진으로 포착한 ‘결사옹위’는 내년 1월 노동당대회 때 선보일 매스게임의 한 장면이다. 자유민주주의에선 상상하기 힘든 대중동원이고, 정치구호로 봐준대도 유치한 충성맹세다.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따져보자. 국가이익을 우선해야 할 국민의 대표들이(헌법 46조) 혈세로 봉급 받으며 대통령 옹위나 하는 게 과연 정상인가.문재인 정부는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지, 나는 늘 궁금했다. 특히 2020년은 1월 2일 오전 7시 법무부 장관 추미애 임명부터 1년 내내 대통령의 신변과 권위와 업적과 사상과 노선과 정책 옹위를 위해 바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아일보가 선정한 10대 뉴스로 봐도 2건(이건희 삼성회장 별세, 성착취 영상 n번방)만 빼고는 대통령 엄호와 놀랍게 연결된다. 코로나19 사태가 대표적이다(1). 중국발 입국자 차단 요구가 빗발치던 2월 20일, 문 대통령은 차단은커녕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과 통화에서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라는 역사적 발언까지 남겼다.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절대 지지 않을 것”이라는 신년사에 맞춰 두 달에 한 번꼴로 대책이 나왔으나 결과는 집값 급등에 ‘영끌’, 전세대란, 그리고 세금폭탄이었다(2). ● 2020년 10대 뉴스의 주인공은 문 대통령북한군이 서해 북방한계선에서 우리 공무원을 쏴 죽였을 때(3) 청와대가 대통령한테 보고도 안 한 것이야말로 결사옹위의 전범이라 할 수 있다. 국민이 목숨을 잃을지언정 대통령의 밤잠은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극단적 선택(4)을 하기 전 청와대가 통보를 해줬는지를 놓고도 뒷말이 오갔다. 4·15총선에서 대통령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청와대 출신을 포함해 집권당이 위성정당까지 180석을 차지하자(5) ‘우리 총장님’과 법무부의 갈등은 한층 격해졌다(6). 심지어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7)은 청와대 짜파구리 파티로 쓴 입맛을 다셔야 했고, 한국인 최초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방탄소년단(8)도 청와대 ‘탁현민쇼’에 동원되는 노역을 치러야 했다. 이쯤 되면 나라 전체가 문 대통령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코로나 대비가 잘못돼도, 부동산대책이 잘못돼도, 우리 국민의 생명과 헌법정신을 지켜내지 못해도 문 대통령은 노선을 바꾸는 법이 없다. 문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정부”라고 강조했는데 이 말이 단순한 레토릭이 아니고 이 정권이 혁명정부임을 인정하면, 많은 의문이 풀리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적폐청산은 공산숙청과 유사2016년 12월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틀 뒤 제1야당의 유력한 대선 주자였던 문재인은 다음과 같은 발표를 했다. “대통령 탄핵은 이 촛불혁명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이 촛불혁명의 끝은 새로운 대한민국입니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청산해야 할 과제로 밝힌 것이 ‘비리와 부패에 관련된 공범자 청산’이고 ‘재산 몰수와 지위 박탈’이었다. 그때는 너무나 혁명적인 발언이어서 주목받지 못했지만 이제 알 것 같다. 문 정권은 단순한 정권교체가 아니라 혁명을 꾀했다는 것을.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위기’를 주제로 2018년 미국에서 열린 구국재단 세미나에서 “국내적으로 촛불정신이라는 명분과 적폐청산이라는 미명하에 공공연히 진행되는 구속과 위협, 언론 통제와 여론 조성, 그리고 유례없는 공직 독점은 1917년 러시아 레닌혁명 이후 자행된 정권 장악, 공산 숙청과 유사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그럼에도 국민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대한민국이 ‘공중 납치된 항공기’ 상태였기 때문이다. “기장이 납치범으로 바뀔 때 승무원들은 선한 웃음과 안심시키는 목소리로 승객들을 평안하게 해주어서 비행기가 납치된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2020년 국민은 비로소 대한민국이 공중납치됐음을 깨달았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공수처장은 혁명정부를, 최고지도자를 결사옹위하는 충견 역할을 할 것이다. ● 우리가 몰랐던 대한민국, 이제 어디로 가나 문 대통령은 30일 새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집권당 의원 박범계를 지명했다.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와 관련해 재판을 받고 있고, 사법부의 행정처장을 입법부로 불러다가 “살려달라고 해보라”고 했던 ‘대통령의 든든한 동지’를 행정부에 입각시킨다는 건, 3권 분립을 불도저로 무너뜨린다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3권 분립 없는 민주주의를 외치는 나라가 중국이다. 국민을 ‘우리’ 편에 속하는 인민과 우리 편 아닌 적으로 나누고 인민에게는 민주를, ‘인민의 적’에게는 독재를 하는 것이 인민민주독재다. 그 민주의 실천원리가 ‘민주집중제’인데 당 중앙이 한번 결정하면 무조건 집행한다. ‘절차’는 무시된다. 이견은 용납되지 않는다. 소수는 다수에 무조건 복종한다. 마오쩌둥은 개인숭배를 통해 중국의 공산혁명을 완성했고, 마오쩌둥 뺨치는 우상숭배를 추구하는 후계자가 시진핑이다. 문파든, 문빠든, 단순한 문재인 지지나 팬덤이 아니라 우상숭배로 다시 보면, 상황은 명확해진다. 문 정권은 작은 중국을 꿈꾸고 있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첫해 방중에서 세계패권의 중국몽을 꾸는 시진핑에게 “한국도 작은 나라지만 그 꿈에 함께할 것”이라고 이미 맹세를 했다. 중국이 국민소득이 높아지면 민주화할 것이라는 자유세계의 희망은 지금 없다. 중국에서 퍼진 코로나19 사태로 대한민국은 중국처럼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며 2020년 한층 중국과 가까워지고 있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0-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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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2020년 문재인 정부가 자유를 빼앗은 해

    법무부 차관으로 금의환향하기 전, 이용구는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왜 조국 가족을 수사했느냐고 따졌다고 한다. “강남에선 서로 추천서 써주고 사모펀드 투자도 다들 내부 정보 받아서 한다”며 “정치하려고 수사한 게 아니냐”고 불만을 터뜨렸다는 거다. 취중진심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 주류세력의 삶과 의식구조를 확실히 알겠다. 내로남불은 문 정권의 양념이다. ‘대통령의 남자’는 대역죄를 지어도 봐줄 판인데 남들 다 저지르는 사소한 문제를 굳이 수사한 검찰총장이 죄인일 터다. 그럼에도 서울중앙지법은 어제 딸의 표창장 등을 위조한 조국의 부인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정권과 상관없이 나쁜 짓하면 벌 받는다는 정의(正義)를 확인해준 사법부에 경의를 표한다. 집권세력은 벌써 재판부 공격에 들어갔다. 끈질긴 동지애와 이권으로 뭉친 문 정권한테는 내로남불도 가볍겠지만 학술용어로 ‘선택적 법집행’은 가볍지 않다. 독재자들이 법률을 선별적으로 적용해 내 편을 보호하고 남의 편은 처단한다고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은 적시해 놨다. 처벌될 걱정 없는 특권계급이 생기고, 나머지 국민은 처벌의 불확실성에 말과 생각과 행동의 자유를 뺏기는 악랄한 통치술이다.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의 반(反)부패운동이 대표적이라고 송재윤 캐나다 맥마스터대 교수는 지적했다. 변호사 출신 문 대통령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국민의 자유를 박탈하는 법까지 만들며 ‘스텔스 독재’를 한다는 것을 이제 적잖은 국민이 안다. 문 정권의 내로남불, 선택적 법집행은 사람 사는 상식을 의심케 하고, 말도 안 되는 불의와 불공정에 분노하게 만들고, 법과 제도에 대한 불신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어떤 폭정보다 비인간적이다. 그렇게 민주주의와 진보와 인간에 대한 믿음을 추락시켜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는지 궁금했다. 2017년 대선 직전 문 대통령이 ‘지금’ 국민과 읽고 싶다고 한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에 실마리가 있다. 베트남전쟁에 관해 읽고 ‘미국의 주장을 진실로 여기는 허위의식’이 깨졌다지만 중공(中共)에 대한 논문은 더 길고 긍정적이다. 문 대통령이 “대학 시절 이 책을 읽고… 새 시대의 정의와 가치를 상상할 용기를 얻었다”고 했을 정도다. 중국공산당이 내년 창당 100주년을 맞는다. 2021년까지 전면적 소강사회(중산층사회)를 이루고 건국 100년인 2049년 패권국가가 되기 위해 ‘백년의 마라톤’을 뛰고 있다. 미국 허드슨연구소의 마이클 필즈버리 중국전략센터 소장이 이 책에서 밝힌 ‘미국을 제친 중국의 비밀전략’은 한마디로 36계 속임수다. 차도살인(借刀殺人), 소련을 무너뜨리려 미국과 수교했고 세계 제패의 야심 따위는 없는 척, 미국에서 첨단기술을 배우거나 빼내 마침내 자유세계를 위협하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거다. 문 정권의 지지세력은 3·1운동부터 이어진 ‘100년의 변혁’에도 한반도평화체제를 만들지 못했다며 ‘새로운 100년’을 말하고 있다. 대통령이 통합의 취임사와는 달리 선택적 법집행에 골몰하며 대북전단금지법, 1가구1주택법, 5·18관련법, 윤석열 출마금지법, 경제3법 같은 악법으로 국민의 자유와 소유를 뒤흔드는 걸 보면 중국처럼 속임수로, 중국 같은 방향으로 나라를 끌고 가는 것 같다. 특히 코로나19를 기화로 중국의 국가자본주의로 달려가는 건 위험하다. 집권당 경제 브레인으로 K뉴딜위원회 디지털분과 단장을 맡은 홍성국 의원은 심지어 “정부가 적극적으로 경제에 개입하는 케인시안정책보다 더 강한 국가중심적 자본주의로 가야 한다”고 최근 인터뷰에서 밝혔다. 아무도 인수하려 하지 않는 아시아나항공을 산업은행이 경영권 분쟁 중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에게 떠넘기고 사외이사 3명과 감사 1명을 장악하는 것이야말로 심각한 중국식 국가자본주의다. 앞으로는 중국의 앤트그룹처럼 정부의 눈 밖에 났다고 증시 상장이 막히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나마 중국공산당 엘리트는 능력주의로 평가되지만 그만한 능력도 없는 문 정권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망칠까 걱정스럽다. 더불어민주당의 재집권을 꾀하는 ‘민주주의 4.0연구원’ 창립총회에선 “마오쩌둥은 사람을 모으려면 깃발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는 발언이 나왔다. 마오쩌둥을 모델로 삼는 운동권 정권 아래 2020년은 우리 국민이 자유를 빼앗긴 해(年)로 기록될 것이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0-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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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 김경수-드루킹 사건도 앞으론 못 밝힌다

    ‘공수병’을 아시는지? 광견병(狂犬病)과 같은 병이다. 광견병 걸린 개한테 물리면 물만 봐도 공포에 떤대서 공수병(恐水病)이라고도 한다. 문재인 대통령 숙원사업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약칭이 하필 공수처다. 공수처라고 쓸 때마다 혼자 광견병과 미친개를 떠올리곤 했는데(죄송해요. 어릴 때 개한테 물려 고생했거든요) 공직자들 특히 판검사들은 어떤지 궁금하다. “나 지금 떨고 있니” 상태가 아닌지.집권세력은 결국 자기들 뜻에 맞는 공수처장을 앉히고 말 것이다. 공수처장은 정치적 중립성이 필요하므로 야당의 비토권을 보장한다더니 집권당은 기어코 법까지 바꿔 비토권을 박탈해버렸다. 쉽게 말하면 김경수 경남지사가 관련된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이 또 터질 경우, 특별검사를 여당끼리 추천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흥! 지금의 허익범 특검이 여당 사람이라면 2심까지 유죄를 받아낼 수 있었겠나.● 공수처 출범…김경수는 “대법원 무죄 확신”기다렸다는 듯 김경수는 18일 아침 방송에 나와 대법원 판단이 뒤집힐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무죄가 당연하다”는 거다. 그러면서도 2022년 대선에는 출마하지 않는다니 마치 차차기 대통령은 예약한 것 같다(2027년 당선되면 민주당은 최소 15년 장기집권이다). 신년 초 공수처가 출범하는데 대법관들이 감히 문 정권의 황태자에게 유죄를 때릴 수 있겠느냐는 자신감이 스피커를 뚫을 듯했다.문 정권의 권력기관 개혁(이라고 쓰고 개악으로 읽는다)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김경수-드루킹 사건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첫째,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정권 비리도 경찰 선에서 조용한 처리가 가능하다. 경찰은 2018년 4월 13일 그 사건이 한겨레신문에 보도될 때까지 입을 딱 다물고 있던 조직이다. ‘네이버에 문재인 정부 비방 댓글을 쓰고 추천 수 등을 조작한 혐의로 누리꾼 3명이 구속됐는데 이 중 2명은 더불어민주당원’이라는 보도가 없었으면 국민은 모르고 지나갈 뻔한 거다. 심지어 경찰은 3월 30일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때도 ‘드루킹이 민주당 김경수 의원에게 온라인 활동을 알렸다’는 핵심 서류는 쏙 빼놓기까지 했다. ● 김경수 보호했던 경찰, 수사종결권도 갖는다 내년 1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1차 수사종결권을 경찰이 갖는다. 검찰의 수사지휘권은 폐지된다. 경찰이 드루킹 사건을 부실수사하거나 김경수 부분은 덮은 채 수사를 종결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물론 검사가 경찰에 재조사를 요청할 수는 있다. 그러나 경찰개혁과 선거 관리의 총책임자가 문 정권 ‘실세 3철’ 중 하나인 전해철 행정안전부 장관(후보자)이다. 어떤 간 큰 검사가 문제 삼겠나.김경수-드루킹 사건과 관련해선 검찰도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선거관리위원회가 2017년 5월 대선 직전 드루킹과 민주당의 연관성 수사를 의뢰했음에도 증거가 없다고 불기소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거다. 당연히 야권은 특검을 요구했다. 당연한 듯 여당은 특검을 반대했다. 우여곡절 끝에 사건이 불거진 지 한 달 만에 특검법이 합의됐다. 특검은 대한변호사협회가 4명을 추천하면 그중 2명을 야3당 교섭단체가 합의해 대통령에게 추천하고, 대통령은 그중 1명을 임명하게 됐다.● 집권세력끼리 정하는 공수처장에게 뭘 바라랴검경이 못 밝힌 사실을 특검이 밝혀낼 수 있었던 것은 허익범 특검이 대통령의 인사권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물론 유능하고 성실한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민주적 통제’라는 명목으로 정권의 통제를 받는 검찰과 달리 특검은 재판 뒤 변호사로 돌아가니까 좌고우면하지 않고 수사할 수 있다. 특검은 대개 야당 추천인사가 임명되는 게 관례였다. 이명박 대통령 때 ‘내곡동 특검’도 당시 제1야당이던 민주당이 추천권을 행사했고, 박근혜 대통령 때 ‘최순실 국정농단 특검’ 역시 민주당과 국민의당 두 야당이 합의해 추천했다. 공수처장 추천에서 야당의 발언권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판검사든 공직자든 결국 현 정권 인사들인데 집권세력끼리 공수처장을 임명한다는 건 미친개 공수처장을 임명해도 말리지 말라는 거다. 더 뻔뻔한 것은 민주당이 드루킹 특검 협상 때는 ‘여당의 비토권’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기실 대통령의 인사권 때문에 검찰이 눈치 보느라 정권비리를 제대로 수사하지 못했고 그때마다 특검이 등장했던 거다. 검찰 문제를 인사 독립 아닌 공수처 설치로 푼다는 것부터 엉뚱한 해법이었다(1996년 참여연대가 처음 주장했다).● 단식투쟁으로 특검 쟁취해내는 야당도 없다김경수-드루킹 사건 때 김성태 자유민주당 원내대표는 9일간 목숨 건 단식투쟁으로 여당에서 특검을 받아냈다. 단식이라는 것이 참으로 구태의 방식이긴 해도 그런 투쟁이 없었으면 여당은 특검에 합의하지 않았다. 현재의 국민의힘은 그만한 투쟁 의지도, 능력도 없다. 21대 국회의 지형이 비상하게 바뀐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면 야당도 비상한 전략으로 공수처장 추천권을 확보해야 마땅했다. 주호영 원내대표가 18일 사의를 표명했고, 의원들이 곧바로 재신임했지만 구차하다. 그 당에 십자가를 받아들 사람도 없는 것 같아서다.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강기정은 17일 개헌을 언급했다. 헌법을 개정해 검찰의 기소권 독점을 막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개헌을 강행한다면 집권세력이 달랑 검찰 기소권 한 대목만 고칠 리 없다. 말도 안 되는 소리도 일단 발설하면 성사시키고 마는 무서운 정권 아래 우리가 살고 있다.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0-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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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국민은 체제 바꾸는 ‘사회계약’한 적 없다

    올해 8·15경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판 뉴딜’은 ‘상생’을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이라고 했다. 그때 ‘사회계약’이라는 단어에 주목한 사람은 거의 없다. “이제 우리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며 “대한민국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고 밝혔음에도 그냥 레토릭이겠거니 무심히 넘어갔다. 이번 국회에서 자행된 집권세력의 ‘입법 쿠데타’를 보니 알겠다. 새로운 사회계약이란 대한민국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임을. 집권당이 강행처리한 경제 3법, ILO(국제노동기구) 3법은 시장경제를 위협하는 법들이다. 5·18역사왜곡처벌법과 대북전단금지법은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박탈하는 내용이다. 공수처를 만들고 윤석열 검찰총장을 쳐내는 건, 반역의 국민에 대한 선전포고라고 할까.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이렇게 변혁 당하는 것이다.● 한국판 뉴딜이 새로운 사회계약이라고?사회계약이라는 단어는 평상시 쓰는 말이 아니다. ‘문재인’과 ‘사회계약’을 넣어 구글 검색을 하면 7월 14일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한국판 뉴딜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사회계약”이라고 한 문 대통령의 발언이 처음 등장한다. ‘대전환의 시작’이라는 간판의 이 행사에서 대통령은 “한국판 뉴딜은 대한민국 새로운 100년의 설계”라고 자그마치 향후 100년을 내다보는 계획을 천명했다. ‘우리 경제를 바꾸고, 우리 사회를 바꾸며, 국민의 삶을 바꾸는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라는 거다. 이틀 뒤 국회 개원 연설에서도 문 대통령은 “한국판 뉴딜은 새로운 사회계약”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연설 뒤 정당 대표들과의 대화에선 “한국판 뉴딜은 단순히 일자리 몇 개 늘린다거나 경제회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계약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고 또 한번 주장했다(그런데도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것이 답답했을 듯하다). 사회계약론은 국가의 형성을 설명하는 대표적 사회과학이론이다. 국가가 생기기 전 자연상태는 불안정하다. 그래서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이 자발적 합의를 통해 국가를 형성하는 사회계약이 발생한다. 거칠게 말하자면 문 대통령은 국민의 자발적 합의 없이 새로운 국가 건설을 천명한 것이다. ● 미국 뉴딜은 새로운 자본주의를 열었다국가가 생기기 전의 자연상태를 토머스 홉스(1588~1679)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본 반면, 존 로크(1632~1704)는 이성에 의해 자연법을 따르는 자유의 상태로 본다. 장 자크 루소(1712~1778)는 “인간은 본래 자유인으로 태어났지만 쇠사슬에 묶여 있다”고 했다. 개인들이 사회계약을 통해 자유와 권리를 국가에 양도하는 것은 자기보존(홉스)이나 재산(로크), 자유와 평등(루소)을 지키기 위해서다. 물론 이는 정치철학자들의 사고(思考)실험이고 실제로 체결된 적은 없다. 그럼에도 사회계약론이 의미 있는 건, 사회계약을 들고 나온다는 자체가 새로운 사회질서를 만들겠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100년 전 루스벨트 전 대통령이 했던 것(뉴딜)이 사실 새로운 사회계약이고 사회개혁”이라고 김상조 대통령정책실장은 한국판 뉴딜을 설명하면서 강조했다. 대공황 여파로 공화당 12년 장기집권을 깨고 1933년 취임한 민주당 대통령이 프랭클린 루스벨트다. 뉴딜이라는 말 그대로 루스벨트는 계약자유방임주의 대신 국가 개입의 수정자본주의로 새로운 질서를 열었다(정작 경제위기를 극복한 건 뉴딜보다 제2차 세계대전 효과라고 본다).● 히틀러의 나치 독재도 경제 부흥시켰다문재인 정부는 분명 루스벨트의 뉴딜을 모델로 삼았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히틀러 역시 1933년 독일 총리가 돼 대형 공공사업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국가통제로 경제를 부흥시킨 지도자였다. 둘 다 카리스마가 넘쳤고 라디오를 통한 노변대화(루스벨트)나 대규모 군중집회(히틀러) 같은 소통 또는 선전에 능했다는 점에서 비슷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히틀러는 다름을 용납지 않는 전체주의, 과거 정권에 대한 무자비한 공격, 광기의 민족주의 선동 등에서 루스벨트와 다르다. 히틀러를 루스벨트와 나란히 비교한다는 게 불경스러울 정도다. 새로운 사회계약을 추진하는 문재인의 한국은 지금 어느 쪽에 가까운가. 문빠의 공격과 문 정권의 보복이 두려워 감히 입 밖에 낼 수 없는 단계에 이르렀다면? ● 그들만을 위한 체제변혁은 사회계약 아니다뉴딜 보고대회에서 “정부의 역할과 책임을 힘 있게 실천하겠다”고 밝힌 만큼 문재인 정부의 경제 개입은 날로 격해질 것이다. 재정 조달 계획도 없이 한국판 뉴딜에 2025년까지 160조원을 투입하겠다더니 결국 대통령이 한국형 뉴딜펀드라는 관제 펀드 매니저로 나서고 말았다. 사실상 세금으로 원금을 보장해준다는 것도 시장경제 원칙에 어긋나지만 정부가 택한 산업과 금융에 민간투자를 몰아준다는 건 국가자본주의인지, 국가사회주의인지 헷갈린다. 그리하여 사회안전망 튼튼한 스웨덴 같은 사회민주주의나, 국가가 국민 먹여 살린다는 소련식 사회주의, 아니면 유능한 공산당이 세계 패권까지 노리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로 간다면 차라리 명쾌하겠다. 무더기 입법으로 살판난 건 집권세력과 연계된 민변, 민교협, 민노총 같은 이념형 이권단체 마피아다. 경제3법 여파로 이들이 뜯어먹을 수 있는 일자리(그리고 일거리)가 무궁무진해진 것이다. 그것도 입법을 통해 합법적으로. 집권세력은 국민의힘을 무시하고 입법 쿠데타를 감행했다. 국민의 대표가 동의하지 않은 사회계약은 ‘계약’이라고 할 수 없다. 현 집권세력의 장기집권과 부귀영화를 위한 대한민국 변혁은 반대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0-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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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文, 잊혀진 대통령으로 남을 것 같은가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주자로 나서기 한참 전, 대통령감으로 각인된 장면이 있다. 2009년 고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 백원우 민주당 의원이 이명박(MB) 당시 대통령에게 “어디서 분향을 해!” 고함치며 달려들 때다. 상주(喪主) 역할의 전 대통령비서실장 문재인은 MB에게 몇 번이고 고개 숙여 사과했다. 다음 대통령은 저 사람이다, 라고 교통방송 ‘라디오 방통령’ 김어준이 2011년 책에 썼을 정도다. 그때 문 대통령도 속으로는 백원우를 껴안아주고 싶었다면, 좀 복잡해진다. 나중에 백원우 재판과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솔직히 밝힌 심정이다. 대통령이 대단한 절제력으로 꾹꾹 눌러 표현만 안 할 뿐이지 실은 가장 과격한 386정치인과 같은 정서라는 의미여서다. 입으로는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이 열리는 역사적 시간”이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한국 민주주의를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모습에 과거의 문 대통령이 겹쳐 보인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권력기관의 제도적 개혁을 드디어 완성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다”는 7일 발언을 곧이곧대로 듣다간 선진국 같은 제도개혁인 줄 알기 십상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청와대까지 치고 들어오기 전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개정법안부터 처리하라는 돌격명령을 문 대통령은 너무나 고상하게 표현했다. 집권세력이 국민의힘 따위는 무시하고 처리한 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 개정은 기업의 소유권을 흔들 수 있다. 노조법 개정은 해고 노동자도 주인 만드는 인민민주주의로, 5·18역사왜곡특별법 개정은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훼손해 전체주의로 가는 길이다. 이미 온갖 부동산 규제로 거주이전의 자유가 사라지고, 내 집을 팔 수도 살 수도 없는 판이다. 소유와 자유가 불안한 체제가 어떻게 민주주의인가. 그러고 보면 집권 4년 차에 이르도록 문 대통령의 말과 실제는 늘 딴판이었다. 선하고 신중해 보이지만 거칠게 말하면 위선이다. 대통령의 성격 때문이라면 위험하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과대망상적 성격에서 포퓰리즘 정치와 현란한 거짓말이 튀어나왔듯, 국정의 성공과 실패에 대통령 성격이 큰 몫을 한다는 연구가 적지 않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2015년 심리학자 김태형은 심리적 의존 상대가 필요한 정치인이라고 진단한 적이 있다. 최순실(최서원)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고 난 뒤 그 말이 그 뜻임을 알고 놀란 기억이 생생하다. 그는 문 대통령에게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다고 2017년 대선 전에 내놨던 ‘대통령 선택의 심리학’에서 분석했다. 가난한 어린 시절 부모님의 기대에 맞추느라 아프고 힘들어도 말을 못했고, 그래서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는 거다. 문빠의 끔찍한 사랑이 대통령에게는 양념인 이유다. 정치하기 싫은 문 대통령이 오로지 정권교체를 위해 386운동권에 택군(擇君)을 당한 사실은 유명하다. 당연히 측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백원우 같은 행동대장 겸 복화술사가 예쁘고 고마웠을 터다. 정치는 잘할 자신도 없다던 문재인을 대통령 만든 사조직이 386운동권 선거 캠프였다. ‘문재인의 운명’을 쓰도록 이끈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등 광흥창팀 10여 명 중 상당수가 그대로 ‘청와대 정부’가 됐다. 진보 정치학자 최장집은 “요컨대 그들은 선거기술자들”이라며 “공직 추구와 권력에 대한 열망이라는 공통점을 제외한다면 정치윤리를 발견하기 어려운 무(無)도덕한 집단”이라고 지적했다. 적폐청산이라는 명분으로 정치 보복을 자행한 그들이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라임·옵티머스 의혹, 우리들병원 특혜 대출 의혹 사건 등 정권비리에 언급된다는 건 당신들 민주주의에도 수치다. 퇴임 후 어떤 대통령으로 남고 싶으냐는 신년회견 질문에 문 대통령은 “그냥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답했다. 망국의 군주가 아니라면 참으로 나오기 힘든 소리다. 주변에서 어른대는 냄새에 ‘나는 아무것도 안 했다’는 잠재의식의 발로가 아니길 바란다.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뒤흔든 대통령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문 대통령은 “대통령 끝나고 난 이후 좋지 않은 모습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마무리해 기자들을 웃게 했다. 그러려고 공수처 설치에 기를 쓰는 모습이 슬플 따름이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0-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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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뺑덕어미 같은 빵장관 헛소리 말라

    국토교통부 장관 김현미가 또 국민적 염장을 질렀다. “아파트가 빵이라면 제가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며 지금 아파트 물량이 부족한 건 5년 전에 아파트 인허가 물량과 공공택지가 대폭 줄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흥. 밤 새워 빵을 만들기는커녕 냅다 빵 반죽 뒤엎은 뺑덕어미 같은 장관이 또 과거정부 탓이다. 좌파정부의 우파 핑계가 한두 번도 아니지만 이번엔 못 참겠다. 적어도 팩트를 왜곡하진 말아야 할 게 아닌가. ● 아파트 못 짓게 한 건 문 정권이다5년 전인 2015년 주택건설 인허가는 76만5300호다. 2014년 51만5200호에서 25만 채가 늘었다. 심지어 국토부는 ‘2015년 신규 주택시장 호조세로 역대 최대치 인허가’라고 통계 설명을 붙여놨다. 2016년에도 72만 호를 넘었던 인허가 물량은 문재인 정부 들어 2017년 65만 호, 2018년 55만 호, 2019년 49만 호로 크게 줄었다. 2014년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3년간 대규모 택지 지정을 중단한 적은 있다. 아파트 수요가 많지 않아 빚내서 집 사라던 박근혜 정부 때다. 인프라도 안 갖춰진 외곽에 덩그러니 대규모 아파트단지를 지을 게 아니라 수요에 맞는 도심 재개발 재건축을 하자는 취지다. 그걸 막은 게 문재인 정부였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도 뉴타운 개발을 속속 취소시켰는데 심지어 김현미는 2018년 박원순이 ‘리콴유 세계 도시상’을 수상하며 여의도 글로벌금융 중심지 개발 계획을 밝히자 극구 반대해 주저앉혔다. 분양가상한제·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안전진단 강화 등 오만 규제로 구축 아파트의 신축을 막아놓고 태연히 우파정부 때문이라는 건 비열한 거짓말이다. ● 민간기업이라면 진작 잘렸을 것김현미가 “아파트가 빵이라면…”이라고 말할 적엔, 밤새워 빵 만들어 국민을 먹여 살리는 어머니 같은 모습을 혼자 떠올렸을지 모른다. 재기발랄한 진중권이 ‘헨젤과 그레텔’ 속의 과자로 만든 집 삽화를 소개했듯, 국민이 연상하는 김현미는 마귀할멈 아니면 잘해야 마리 빵투아네트다. 민간기업이 열심히 빵 만들고 있는데 자기가 개입해 못 만들게 해놓고는 자기들은 살지도 않을 호텔방 월세를 국민더러 살라는 건 완전 뺑덕어미다. 민간기업 같으면 자기 분야에서 3년 이상 실패한 간부는 진작 경질됐다. 김현미는 2015년 문재인 당 대표 비서실장을 하며 정무적 감각을 인정받았다는 이유로 스물네 번이나 부동산정책을 실패하고도 고개를 빳빳이 쳐드는 실세 장관이다. 자신을 자르는 순간 문 대통령이 민생경제 실패를 인정하는 게 되므로 못 자른다는 걸 빤히 아는 것이다. 김현미는 대통령한테 총애 받아 하늘을 쓰고 도리질하겠지만 경제를 모르는 정치인 출신 장관 때문에 국민은 불행하다. 김현미가 암만 “내년 봄이면 전세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고 말해도 결코 나아질 수 없는 현실 때문에 더욱 불행하다. 이유는 첫째, 김현미가 싸놓은 × 때문이다. ● 아파트 전세는 줄고, 값은 뛸 수밖에 3년 전부터 아파트 건설 인허가를 대폭 줄인 대가는 2022년, 2023년 아파트값 상승으로, 전세 폭등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래도 국토부 장관이라고 천기를 누설했는데, 아파트 인허가가 줄면 5년 후 공급이 줄어 값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당연히 전세도 따라서 뛴다. 1990년대 전셋값이 잡혔던 건 주택 200만 호 건설정책이 있어서였다. 벌써 월세대란 조짐이 심상찮다. 이 정부가 강행한 임대차2법이 폐지되지 않는 한, 내년 봄엔 전세의 씨가 마를 수도 있다. 둘째는 이 정부가 코로나19에 대응한다며 대폭 늘린 통화량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통화량이 1% 증가할 때 주택가격은 1년에 걸쳐 0.9% 상승한다. 문 정권은 이미 네 차례 추경예산을 편성했고 민생금융안정 패키지로 82조 원의 유동성을 공급했다. 김현미가 전세난 배경에 대해 “근본적인 원인은 코로나를 겪으면서 기준금리가 0.5% 떨어진 것”이라고 구시렁댄 것은 ‘그게 왜 내 탓이냐, 통화량이 늘었기 때문이지’라는 속뜻이었던 거다. 셋째, 현 정부 들어 외국인 특히 중국인의 부동산 구입이 무슨 이유에선지 크게 늘었다. 2017년부터 올 5월까지 외국인이 취득한 아파트가 2만3167건인데 이 중 중국인이 1만3573건으로 60%에 가깝다. 이들이 사놓은 집을 우리처럼 전세로 착착 내놓을 리 없다. 또 중국인 아니어도 아파트 증여가 늘었다. 한 푼이 아쉽지 않은 이들은 전세 관련 규제가 까다로우면 그냥 비워둘 공산이 크다. ● 내년 봄 나아진다는 희망고문 집어치우라김현미가 침이 마르게 자랑한 호텔 리모델링 월세방은 깨끗한 모텔방 딱 그 수준이다. 20, 30대 독신가구에는 ‘힘이 되는 주택’일 수 있어도 더 이상은 아닌 것이다. 운동권 출신 장관 김현미가 아니라 서른한 살, 스물일곱 살의 두 아들을 둔 어머니로서 생각해보라. 아들이 결혼할 때, 밥도 해먹을 수 없는 그런 곳에서 신혼살림 시키고 싶겠나. 경제를 모르면 경제 전문가의 고언을 듣기 바란다. 국토부에도 부동산을 아는 유능한 공무원이 수두룩하다. 단지 말을 못 할 뿐이다. 정무감각, 아니 양심이 손톱만큼이라도 남아 있다면 대통령에게 “부동산정책 때문에 민심 이반이 심상치 않다”고 직언해야 한다(총애받는 김현미조차 대면보고한 지 몇 달 된다고 한 게 불길하긴 하다). 그것도 못 한다면, 가만히 있으라. 내년 봄쯤 나아진다는 거짓말 따윈 하지 말란 말이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0-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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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대한민국 사법부 아직 살아계시죠?

    다음 주는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명운을 가르는 주간이 될 것 같다. 검찰총장 직무정지 명령의 효력을 멈춰 달라는 집행정지 신청사건 심문이 30일 월요일 오전 11시에 열린다. 12월 2일 수요일엔 법무부 징계위원회가 소집돼 있다. 징계위원장인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필시 윤석열 검찰총장 중징계를 끌어낼 것이고,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총장을 해임할 것으로 예상된다.그런데 왜 ‘자유민주주의의 죽음’이 아니라 ‘명운을 가르는’ 주간이라고 썼느냐. 사법부의 판단이 있기 때문이다.당장 30일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부장판사 조미연)가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면 윤석열은 직무에 복귀할 수 있다. 심문 후 며칠 내로 신청이 받아들여질지 여부가 결정되는데 이틀 뒤에 징계위가 열리는 만큼 재판부는 당일 결과를 내놓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행정법원 조미연 판사를 주목하라물론 윤석열이 복귀해도 추미애는 중징계를 짜낼 게 뻔하다. 하지만 국민은 개돼지가 아니다. 추미애의 무리수와 지적 수준은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대통령도 추미애의 장단에 춤추기 민망할 것이다. 사법부 판단은 이렇게 중요하다. 사법부가 민주주의를 지키는 보루인 것도 이 때문이다.지금 조미연 부장판사는 엄청난 압박 속에 있을지 모른다. 대선 댓글 조작 사건의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1심 유죄를 선고한 성창호 부장판사가 어떤 곤욕을 치렀는지 모를 리 없다. 그래서 조 부장판사는 눈 질끈 감고 윤석열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할 수도 있다. 아니면 질질 끌다 징계위 결정 뒤에 기각해버리면 부담도 덜할 터다.그러나 그 전에 가슴에 손을 얹기 바란다. 이번 법원의 결정은 윤석열 한 사람을 내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법치주의와 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키느냐, 권력의 바람결대로 무너지느냐의 문제다. 집권당은 ‘검찰권력에 대한 문민통제’라고 주장하지만 웃기는 소리다. 문민통제라니, 지금이 무슨 군사독재체제냐? ‘검찰에 대한 청와대통제’라고 솔직히 말하시라.●중국공산당처럼 사법부 영도할 텐가집권당 박범계 의원은 최근 법원행정처 조재연 처장에게 “의원님 꼭 살려주십시오”라고 해보라며 종용을 했다. 법률정보 데이터베이스 예산 3000만 원이 깎인 것을 놓고서다. 판사들은 그게 아무렇지도 않았는지 몰라도 내가 다 자존심이 상했다. 설령 제 돈이라도, 설사 상대가 거지라 해도 중인환시리에 매달려 보라고 시건방을 떨어선 안 되는 일이다.집권세력은 사법부 예산만 쥐락펴락하지 않는다. 이탄희 의원은 김명수 대법원장 임기 절반이 지나도록 ‘사법개혁’이 안 되고 있다며 ‘사법행정위원회’ 설치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사법농단 연루 판사들이 줄줄이 무죄를 받고, 대부분 쫓겨나지도 않아 더는 못 봐주겠다는 거다.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대법원장 인사권을 박탈한 뒤 정권의 입맛에 안 맞는 재판을 한 판사들의 법복을 벗길 의도가 역력하다.문 정권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중국 국가감찰위원회와 흡사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더 흡사한 건, 중국공산당이 법 위에 존재하는 것처럼 문 정권(정확히는 ‘청와대’나 ‘친문’) 역시 법 위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인민민주전제정치를 고수하는 중국공산당이 행정, 입법, 사법부를 영도하듯 대한문국(大韓文國)에서도 이젠 문파가 법관 인사를 틀어쥐고 사법부까지 장악할 모양이다.●민주주의 보루, 사법부를 응원한다영국 이코노미스트지 최신호는 윤석열에 대한 추미애의 공격을 소개하며 문 대통령과 정부에 심각한 결과를 남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력의 곁불을 쬐며 재미 보는 건 잠깐이다. 대법관들이 집권세력 앞에서 “살려주세요” 하는 시대를 맞지 않으려면 사법부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다행히도 우리에겐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한 성창호 부장판사가 있었다. 2심 선고 전에 김경수가 드루킹 일당의 킹크랩 시연을 본 사실이 인정된다고 못 박은 차문호 부장판사도 용감했다. 그 뒤를 이어 엄청난 중압감 속에서도 유죄를 인정한(공직선거법 위반은 무죄) 함상훈 부장판사 역시 순리적 재판을 한 법관이었다.사법부를 주시하는 것이 신종 독재와 맞서는 길이 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책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 나오는 말이다. 코로나 때문에 시위도 못 하게 된 지금, 우리 앞에 존재하는 사법부라는 제도는 너무나 중요하다. 전생에 나라를 구해 법관이 됐을 조미연 부장판사가 30일 대한민국의 자유와 민주, 법치를 지켜주길 바란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0-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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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문재인 정부는 왜 다급한가

    집권세력이 뭔가 쫓기는 느낌이다. 곧 쓰나미가 닥친다는 예보에 미친 듯이 방파제를 쌓고, 비상발전기를 점검하고, 그러고도 두려워 버킷리스트까지 해치우는 분위기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24일 윤석열 검찰총장을 직무정지시키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다음 날 국정조사와 총장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집권당은 국가정보원의 대공(對共)수사권을 사실상 폐지하는 법안을 정보위 법안소위에서 저희들끼리 의결했다. 25일 야당 측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후보 추천에 거부권을 행사하자 집권당은 아예 거부권을 박탈해 연내 공수처를 출범시킬 태세다. 요 며칠 사이 문재인 정부가 강행한 일을 꿰어보면 계엄령 없는 계엄 상태로 가는 수순이다. 물리적 폭력만 안 보일 뿐 광기와 무리수, 속임수는 유신 독재 말기보다 덜하지 않다. 대통령 퇴임이 1년 반이나 남아 있어도 그들은 불안한 것이다. 국민의힘 대선 주자들이 지리멸렬한 건 고맙지만 친문 후계자 없이는 퇴임 후 안전을 믿을 수 없다. 윤석열의 치솟는 대선 후보 지지율은 현 정권을 응징해야 한다는 국민 여망을 반영한다. 문 대통령이 최근 치과 치료를 받은 것도 이런 고통 때문일 터다. 한 번도 경험 못한 이 나라에 철근 콘크리트를 박아 되돌릴 수 없게 만들려면 다급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칭 민주개혁정부가 헌정 사상 최초로 검찰총장의 직무상 명줄을 끊은 건, 하루라도 빨리 윤석열을 찍어내지 않으면 안 될 정권 비리가 있는 게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이 들게 한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은 집권세력에 치명상을 안길 수 있다. 추미애가 공개를 결사반대했던 검찰 공소장엔 ‘대통령이나 대통령의 업무를 보좌하는 공무원에게는 선거에서의 정치적 중립성이 더욱 특별히 요구된다’고 명시돼 있다. 문 대통령 30년 지기인 피고인 송철호의 당선을 위해 청와대 참모들이 대거 나섰다는 공소장이 맞는다면, 대통령 탄핵 사태를 부를지 모른다. 조국 역시 “검찰이 집권 여당의 총선 패배를 예상하며 문 대통령의 탄핵을 위한 밑자락을 깐 것”이라며 탄핵 사안임을 사실상 인정했다. 원전 폐쇄 정책은 이보다 더 폭발성이 클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의 복심(腹心) 윤건영 민주당 의원이 월성1호기 폐쇄 수사에 착수한 검찰을 향해 “선을 넘지 말라”고 경고한 지 열흘 만에 집권세력이 윤석열 찍어내기에 본격 착수한 건 심상치 않다. 검찰의 울산 관련 공소장에는 문 대통령의 구체적 행위가 안 나온다. 최재형 감사원장이 사력을 다해 지켜낸 감사원의 원전 감사보고서는 대통령의 행위가 두 차례 적시돼 있다. ‘대통령이 월성1호기의 영구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할 계획인지 질문하였다’는 대목이다. 조성진 전 한국수력원자력 이사는 이적(利敵)행위라고 했다. 원전을 단종 사업으로 만들어 해외 수출도 못 하게 해놨다는 의미에서다. 그 정도면 차라리 낫겠다. 문 정권의 탈원전 단행은 단순히 기후 변화에 대처하는 친환경 에너지 정책이 아니다. 북핵을 나날이 고도화하고 있는 김정은 앞에서 우리 핵개발 잠재력을 스스로 말살시킨 것과 다름없다. 이광재 민주당 의원이 원장을 지낸 싱크탱크 여시재도 최근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 및 핵무장을 원하는 나라는 원전을 포기하기 어렵다”고 소개했다. 국민을 속여 가며 탈원전을 강행한 의도가 ‘무장해제’라면 보통 일이 아니다. 국정원의 대공수사권 폐지는 ‘국가 안보의 탈원전’이랄 수 있다. 노무현 정부 당시 김승규 국정원장은 일심회 간첩단 사건 수사 중 청와대 압력으로 사퇴를 해야 했다. 국정원이 대공·대정부전복 정보 수사를 못 하게 되면 일심회 후예들은 만세 부를 판이다. 대남사업을 총괄하는 북한 김여정에게 바치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더불어 경찰에 대공수사와 국내 정보 업무를 이관하면 사냥개 같은 충성 경쟁으로 내년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 2022년 대통령선거에 기여할 것이다. 문 대통령과 26일 만나는 중국 왕이 외교부장이 시진핑 국가주석의 연내 방한을 성사시키면, 집권세력은 내년 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취임해도 발 뻗고 자는 게 가능해진다. 국민은 숨이 막히는 상황이다. 추미애가 윤석열 찍어내기를 보고해도 문 대통령이 가만히 있었다는 사실은 섬뜩하다. 판단 능력이 없어졌거나 누군가 써준 A4용지가 없으면 할 말이 없기 때문은 아니길 바란다. 이 와중에 “사람 중심의 따뜻한 인공지능 시대를 열겠다”는 원고는 차라리 안 읽는 게 나았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0-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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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제 국민을 주거난민 만드는 ‘약탈 정권’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홍남기는 ‘물고기를 잡아 오라면 물을 퍼낸다’는 소리를 듣는다. 그만큼 성실하고 우직한 공직자라는 칭찬이다. 국무조정실장 시절 모셨던 까칠한 총리가 경제부총리로 천거했을 정도다. 윗분을 모시던 때와 지금은 달라야 한다. 연못을 살펴본 뒤 “물고기 없다”고 말할 수 있어야 경제수장이다. 바닥까지 파내고도 붕어가 없자 가재나 개구리를 잡아 와서는 용이라고 우기면, 본인이야 벼슬자리 지켜 좋겠으나 국민이 고생한다. 19일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전세 공급 물량을 조속히 확대해 전세시장을 안정시키겠다”고 말한 홍남기가 딱 그 짝이었다. “임대차3법으로 새로 집을 구하는 분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는 했지만 그러고도 지구 반대편 바다에 닿을 때까지 연못을 파낼 태세다. ● 홍남기부터 모텔에서 평생 월세 살든가임대차2법(전월세상한제, 계약갱신요구권) 전격 시행으로 전세대란이 불붙었다. 전세 물량이 씨가 마르면서 전셋값이 급등하고 있다. 홍남기의 집 세입자도 돌연 계약갱신요구권을 행사해 일국의 경제부총리가 길바닥에 나앉을 뻔했다는 후문이다. 책상머리 정책의 부작용을 온몸으로 겪었으면, 부총리는 제 목을 걸고 당정청을 설득해 임대차3법 전면 보완 같은 정책 전환을 해냈어야 마땅했다.정부가 19일 24번째로 발표한 부동산정책은 지금껏 임대 안 된 빌라, 문 닫게 생긴 모텔 등을 끌어모아 2년 내 11만4000채를 공공임대로 공급한다는 골자다. 그중 아파트는 25%에 불과하다(서울은 10%). 전세로 들어갈 아파트가 없어 이 난리가 벌어졌는데 문재인 정권은 제 국민을 변두리 빌라나 싱크대 붙여 개조한 모텔에서 월세 살라고 등 떠미는 형국이다. 그러니 부총리가 야당 의원한테 “호텔 전셋집에 먼저 입주할 의향이 있느냐” 조롱이나 받는 거다. 문 정권의 장기가 결코 잘못을 인정 안 한다는 점이다. 심지어 국토교통부 장관 김현미는 “임대차3법은 집이 사람 사는 곳이라는 사회적 합의로 이룬 소중한 성과”라고 자랑을 했다. 그럼 언제는 집이 짐승 사는 곳이던가? 여야 토론 한 번 없이 저희들끼리 뚝딱 처리해놓고 ‘사회적 합의’를 했다니, 이런 게 바로 가짜뉴스다. ● 정부의 부동산 가짜뉴스에 속지 마시라 진실을 호도하는 것이야말로 문 정권의 큰 병이다. 대통령정책실장 김상조는 “과거 전세계약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렸을 때 7개월 정도 과도기적 불안정이 있었다”며 이번에도 좀 지나면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했다. 국민을 현혹하는 가짜뉴스다. 1989년 임대차계약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렸을 때 전세가격지수가 즉각 12.48~13.29%(1990년 1월=100기준) 올랐다가 점차 0.5%포인트 내려간 건 사실이되, 이는 ‘주택 200만호 건설’이라는 공급확대정책이 있어 가능했음을 쏙 빼놓고 말한 것이다. 1991년 주택건설은 61만 채로 88년 31만 채의 두 배였다. 전셋값은 시차를 두고 집값을 따라간다. 공급이 확대돼 집값이 안정되면 전세시장도 평화로워질 수밖에 없다. 국토부가 2016년 실증연구 용역을 통해 밝혀낸 사실이고, 이 정부 출범 뒤인 2017년 9월 국토연구원 보고서에도 나온다. 심지어 “계약갱신요구권은 집값이 하락할 때(콜드마켓) 도입해야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음”이라고 명시돼 있다. 그럼에도 이 정부는 집값이 미친 듯이 오르는 상황에 덜컥 임대차3법을 도입해 부작용을 극대화시켰다. 계약갱신요구권으로 눌러앉는 임차인이 나오면서 그 집에 못 들어가 헤매는 주거 난민이 생겨나고, 계약 분쟁에, 뜻하지 않은 합가(合家) 또는 분가(分家)로 인한 갈등까지 연쇄적으로 겹쳐지면서 지금 전국이 거의 내전 상태다. 고의로 국민을 갈라쳐 내전을 일으키고 급기야 난민으로 떠돌게 만든 중동의 어느 독재자를 연상시킨다. ● 역효과를 극대화시킨 文 부동산정책 폭정(暴政)을 자행하는 그들처럼, 문 대통령도 언론의 비판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고 공언한 바 있다. 진짜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 부동산 관련 학술논문을 찾아봤다. “부동산정책은 자신 있다”는 문 대통령의 공언과 달리 올해 나온 부동산 논문만 봐도 정책마다 역효과가 났다는 결론이 수두룩했다. 공급 억제는 물론 수요도 억제하는 게 문 정권의 부동산정책이다. 문 정권은 출범하자마자 조정대상지역, 규제지역을 확대 강화했는데 효과는 지정 즉시 나타났다. 집값을 안정시킨 게 아니라 상승시킨 것이다(성주한, 김선주 ‘규제지역지정의 주택가격 효과’). 특히 이명박 정부 때는 투기과열지구 지정 후 집값이 올랐다가도 내려갔지만 문 정권은 계속 집값을 상승시키는 ‘미다스의 손’이었다(정부는 19일 경기 김포, 부산 해운대·수영·동래·연제·남구, 대구 수성구 등 7곳을 조정대상지역으로 기습 지정했다. 귀추가 주목된다). 세금폭탄으로 집값을 잡겠다는 조세 강화정책 역시 되레 집값을 올리는 악순환을 불렀다(장현우, 최민섭 ‘정부의 주택정책과 시장특성이 주택구매의향에 미치는 영향 연구’). 정부가 개입할수록 집값은 더 오른다는 학습효과가 있는 데다 조세부담분이 집값에 가중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양도소득세 강화는 강남3구의 매매거래량을 줄이고 증여를 늘렸으며 집값도 올려놓는 괴력을 발휘했다(오예성, 이호진, 황세진 ‘주택 양도소득세의 동결효과에 관한 연구’).● 세금폭탄은 재산몰수나 마찬가지다그러고도 성이 안 찼는지 집권당은 8월 초 종합부동산세, 양도세, 취득세를 강화하는 부동산법안 11건을 자기들끼리 무더기로 통과시켰다. 태어나서 한 번도 부동산투기 해본 적 없고, 가진 건 달랑 집 한 채뿐인 선량한 시민에게도 세금폭탄이 쏟아질 판이다. 홍남기처럼 죽을 때까지 공무원연금 받는 사람들은 세금 겁나지 않겠지만 민간인은 다르다. 결국 집 팔아서 세금 내야 하는데 국민이 감당 못할 세금은 재산 몰수나 다름없다. 실제로 중국 공산당은 중국 대륙을 통일한 뒤 외국인에게 살인적 세금을 매겨 맨몸으로 중국을 떠나게 만들었다. 제 손으로 1000원 한 장 벌어본 적 없이 ‘운동’만 하다 권력을 잡은 그들은 보통 사람에게 내 집이 어떤 의미인지 모를 것이다. 젊을 때 ‘주거 사다리’를 타고 월세에서 전세로, 방 한 칸에서 두 칸으로 늘려가며 키워온 내 집은, 정말이지 죽을 때까지 나를 지켜 줄 것 같은 나의 노후 동반자다. 그래서 연금 탄탄하고 정부 신뢰가 두터운 일본에선 고령화로 주택경기가 침체해 빈집이 속출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고령화가 외려 수도권 집값을 상승시키는 거다(안제욱 ‘주택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엇인가? 고령화를 중심으로’). 노무현 정부 때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은 지난여름 “문 대통령이 일본처럼 우리도 집값 폭락할 테니 집 사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잘못된 신화를 학습하셨구나, 큰일 나겠다 싶더라”고 했다. 죽창을 들 때는 언제고 부동산에선 일본을 따라가고 싶은가. ● 집값 올린 좌파집권, 국민이 응징했다정권 유지를 위해 계속 돈을 뿌려야 할 문 정권으로선 세수 확보가 절실할 터다. ‘토착왜구’의 재산몰수는 적폐청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직을 운동권 패거리로 채워 국고를 나눠 먹는 것도 모자라 혈세로 국민을 뜯어먹는 정부는 약탈정권(kleptocracy)이다. 집값 상승도 보수정당 집권 때는 선거에 별 영향을 못 미치지만 좌파집권 때는 투표로 집권당을 응징한다는 연구가 있다(김지혜, 권혁용 ‘아파트 가격 상승과 집권당 지지:2006~2018년 지방선거 분석’). 노무현 정부는 집값을 올려놓고 세금폭탄 때려 2006년 지방선거에서 패했고, 그러고도 정책 전환 없이 국민과 싸우다 정권을 잃었다. 문 정권이 지금 정확히 같은 길을 가고 있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0-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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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추미애 해임, 정세균 총리가 건의하라

    법무부 장관 추미애는 장관직이 자기 것인 줄 아는 모양이다. 16일 국회에서 그는 “검찰개혁이 완수되기 전까지 장관직을 내려놓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에서 서울시장이나 대선 출마 의향이 없느냐고 묻자 “법무부 장관으로서 검찰개혁 사명을 갖고 이 자리에 왔기 때문에 이 일을 마치기 전까진 정치적 입장을 갖고 있지 않다”고 답한 거다. 장관의 직분을 능가하는 답변이다.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이 검찰 ‘개혁’이라고 믿는 것도 황당하지만, 장관직을 스스로 내려놓지 않으면 평생 할 수 있는 양 믿는 모습은 더 황당하다. ● 법무부 욕보이는 추미애의 행태2020년은 ‘추미애의 난’으로 점철된 한 해였다. 1월 2일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 없는 23번째 장관으로 임명된 이래, 그는 정권의 행동대장 역할로 마침내 ‘광인 전략’ 소리까지 듣게 됐다. 추미애 아들의 황제휴가 무마는 이 과정에서 주어진 정권 차원의 보너스라고 본다. 법무부 수장으로서 추미애가 강행한 위법적 행태는 법무부의 수치로 기록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반(反)인권적, 위헌적 휴대전화 비밀번호 해제법까지 밀어붙이자(한발 물러섰다지만 만일 법이 만들어진다면, 추미애의 댓글 조작 고발 같은 자충수가 될 게 뻔하다) 16일 국민의힘 대변인들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추미애 해임을 촉구했다. 그래도 추미애는 마스크 줄 하나 흔들리지 않는다. “장관직을 내려놓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문 대통령이 결코 자기를 해임 못할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일 터다. 청와대가 최근 개각작업에 착수했다지만 그의 자리는 굳건한 눈치다. 하긴 어떤 제 정신 가진 사람이 추미애처럼 광인 전략을 불사할 것이며, 그 뒤처리를 할 사람은 어디 있겠나. ● 헌법이 보장한 총리의 장관 해임 건의정세균 국무총리가 나서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헌법 제87조③항은 국무총리가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정세균이 추미애에게 ‘절제된 언어’ 경고를 보냈지만 그 정도로는 총리로서의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최근 정 총리가 김외숙 청와대 인사수석을 따로 불러 보고를 받았다는 보도가 나왔다(이것만으로도 보기 드문 일이긴 하다). 추미애와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에 총리가 해법을 논의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검찰총장 임기가 2년이어서 못 자르는 청와대를 위해 정 총리가 총대를 메고 해임 건의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의 앓던 이를 대신 빼줌으로써 단박에 친문 핵심의 지지를 받게 된다는 시나리오인 것 같다. 그러나 그건 정세균 자신의 무덤을 파는 길이다. 정 총리는 추미애 해임을 건의해야 한다. 여권의 누구도 못 하는 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정세균은 단박에 이낙연, 이재명, 심지어 윤석열을 누르고 대선주자로 각인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을 위한 정치, 정세균이 선택하라아니다. 대선주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통령이나 일개 정권 아닌 국민에 봉사하는 국무총리기에 간절한 국민의 바람을 전하는 바다. 헌법에 따라 공개적으로 대통령에게 법무부 장관 해임을 건의하기 바란다. 그것이 코로나19 때문에 거리에 나가 외치지 못하는 국민을 대신하는 길이다. 헌법에 명시만 돼 있을 뿐 어떤 총리도 못한 국무위원 임면 건의를 감행한 첫 총리로 역사에 남는 길이기도 하다. 작년 9월 30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총리로서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의 해임을 건의할 의사가 있느냐는 야당 질문에 “해임 건의 문제는 진실이 가려지는 것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피해갔다. 그래도 건의할 용의가 없느냐는 거듭된 질의에는 “요란하게 총리 역할을 수행하기보다 훗날 그 시점에 이낙연이 무슨 일을 했구나, 국민이 알 수 있다면 다행”이라는 말로 요란하게 빠져나간 전력이 있다(현재 이낙연의 대선 주자 지지율이 좀처럼 안 오르는 것도 이런 매끄러움 때문이라고 본다). 1994년 김영삼 정부 때 이회창 총리가 헌법에 명시된 총리 권한을 행사하겠다며 사표를 던져 국민에게 각인된 사건은 유명하다. 대통령 말고는 다 해봤다는 정세균이지만 지금 같아선 양지쪽만 밟아온 ‘미스터 스마일’일 뿐이다. 매주 목요일 싱크탱크를 방불케 하는 목요대화를 열고 2030을 포용하며 보폭을 넓히고 있어도 그래 봤자 ‘원만한 친문 후계자’ 말고 뭐가 될 수 있겠나. ● 해임되지 않아도 국민은 정세균을 주목할 것문파보다 더 많은 국민이 새롭게 정세균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대통령은 언론에 귀 기울이지 않고, 원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상황이다. 문파 무서워 아무도 쓴소리를 못 하는 이 나라에서 추미애 해임을 건의할 수 있는 사람은, 지금 그만두어도 아쉬울 것 없는 정세균뿐이다. 그리하여 추미애가 해임되면 우리나라는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민주당에서도 진정한 개혁을 하려는 세력이 나올 수 있다. 만일 해임되지 않는다 해도, 국민의 눈은 정세균에게 쏠릴 것이다. 그는 2009년 당 대표 시절 좌우를 뛰어넘는 민생정치를 위해 ‘뉴민주당 플랜’을 마련했던 정치인이었다. 지금이야말로 정세균이 좌우를 뛰어넘어 국민을 살리는 정치를 해야 할 때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0-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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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독재자를 몰아내는 법

    4년 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이 확실해지자 멜라니아는 울었다고 했다. 대통령 취임 전후 1년 반을 백악관 벽에 붙은 파리처럼 지켜보고 썼다는 마이클 울프의 ‘화염과 분노’에 나오는 얘기다. 기쁨의 눈물이 아니었다. 질 줄 알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물론이고 아들, 딸, 사위, 참모 등 선거캠프의 모두가 대통령 당선을 원치 않았다는 대목은 웃기기보다 섬뜩하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남자가 돼 트럼프타워의 브랜드 값을 비싸게 받으려고 출마했고 패배하면 “선거를 도둑맞았다!”며 지금처럼 화염과 분노를 내뿜을 작정이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유명세를 노린 황당 후보가 미스터트롯식의 경선에서 경쟁자 열여섯 명을 누르고 국민의힘 공천까지 받아 대통령이 돼버린 셈이다. 트럼프도, 멜라니아도 재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지금, 뒤늦은 의문을 떨칠 수 없다. 만약 러시아가 2016년 대선에 개입하지 않았어도 대통령이 됐을까. 러시아 정부가 트럼프 당선을 위해 정보 조작의 사이버전을 벌였다는 ‘러시아 게이트’는 음모론이 아니다. 대선 두 달 뒤 미국 정보당국이 합동조사 결과 “푸틴이 지시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발표했다. 푸틴 역시 2018년 헬싱키 정상회담에서 “트럼프의 승리를 바랐다”며 “러시아 국가는 개입하지 않았다”는 말로 국가 차원이 아닌 개입을 시사했다. 로버트 뮬러 특검 역시 지난해 의회 청문회에서 이 사실을 확인했다. 물론 트럼프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의 첫 국무장관 렉스 틸러슨은 전 중앙정보국장 권한 대행에게 “푸틴이 트럼프를 본인도 모르게 러시아 스파이로 발탁했다”고 확언한 바 있다. 나중에 보니 본인도 알고 있는 것 같더라고 티머시 스나이더 예일대 교수는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에 소개했다. 소련의 옛 정보기관 KGB는 1980년대 초부터 해외로 국고를 빼돌렸고 푸틴도 그중 하나였다고 한다. 돈세탁하는 데는 부동산 개발이 적격이다. 트럼프는 1987년 이들을 만나 파산상태에서 벗어났고 재벌로 행세했으며 심지어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민주주의 규범을 외면하고 야당을 적으로 보는 독재자가 돼선 러시아의 국익만 들어줄 판이었다. KGB 출신 푸틴이 미국 대통령을 만드는 한, 소련은 죽었다고 할 수 없다. 사람들이 투표를 못 믿으면 민주주의는 죽는다. 미국의 공작 때문에 소련이 붕괴했다고 믿는 푸틴으로선 트럼프를 이용해 미국 민주주의를 죽이는 복수에 성공한 거다. 서구에 핍박받아온 순결한 러시아를 지키는 차르가 마침내 자유세계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형국이다. 러시아의 선거 개입은 적대국에 의한 불법 침략행위여서 차라리 낫다. 2017년 대선 때 김경수 경남지사는 자국민을 대상으로 정보조작 댓글 공작을 벌이고도 최근 2심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에 무죄 선고를 받았다. 드루킹의 댓글 조작 규모가 특검이 파악한 것만 8840만 회다. 전임 정부 때 국정원 댓글 41만 회의 수백 배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러시아가 날린 트윗 300만 개의 수십 배를 넘는다면 대체 제 국민을 뭘로 봤다는 건가. 재판부는 김경수가 드루킹 측에 일본 센다이 총영사직을 제안한 것이 “대선 기간 문재인 후보의 선거운동을 지원한 것 등에 대한 보답 내지 대가”라고 분명히 인정했다. “선거 국면에서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에게 유리한 여론을 유도할 목적으로 댓글 조작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중대한 범죄행위”라면서도 무죄라는 판단은 납득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대한 모독이고, 다음 대선에서 또 같은 범죄를 벌이라는 소리다. 그래도 미국은 실수에서 배우는 교정 능력이 있는 나라다.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마련하자 트럼프는 불평을 하면서도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 게이트 수사가 합당한지 감찰하라는 트럼프 지시에 법무부는 작년 말 “정당했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트럼프가 보수 우세인 연방대법원까지 소송전을 끌고 간대도 뒤집힐 가능성은 적다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주의 규범을 무시하고, 야당을 적으로 아는 것은 이 나라 대통령도 다르지 않다. 선거로 정권을 교체하려면 또박또박 제자리에서 할 일을 다 하는 공직자와 사법부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에겐 월성원전 1호기 폐쇄 관련 7000여 장의 자료를 검찰에 넘긴 감사원장이 있고 ‘살아있는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검찰총장이 있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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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美제국의 황제를 미국인만 뽑다니

    남의 나라 대통령 선거는 부담 없이 관전할 수 있어 좋았다. 3일(현지 시간) 치러지는 이번 미국 대선은 그게 안 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느냐 아니냐에 따라 우리나라가, 그리고 세계 역사가 달라질 공산이 크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한국 정부가 트럼프 재선을 원하는 반면 한국 국민은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을 선호한다고 전했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 김정은과 담판해서 단박에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대충 ‘봉합’ 정도라고 본다) 북-미 수교를 단행할 대통령은 트럼프라고 믿는 것이고, 보통 국민은 바로 그 점이 불안한 거다. ● 한국의 좌파-강경우파의 기이한 의견 일치나도 지난주 신문 칼럼에서 그렇게 썼다(美 바이든 당선을 걱정하는 김어준과 집권세력). 그랬더니 당신이 몰라서 그런다, 중국 공산당을 궤멸시키고 더불어 북한 김정은까지 멸망시킬 미국 대통령은 트럼프다, 같은 댓글이 적지 않았다(주로 박근혜 탄핵에 결사반대하는 태극기부대 중에 이런 생각이 많다). 바이든 아들의 부패와 성문제가 폭로됐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에선 좌파와 강경우파가 동시에 트럼프 재선을 지지하는 기묘한 현상이 벌어진 셈이다. 미국 고학력 고소득의 ‘리무진 좌파’(우리나라의 강남좌파쯤 된다)는 입만 열면 거짓말에 반(反)지성적, 반(反)엘리트적, 충동적이고 저질스러운 트럼프를 경멸한다. 트럼프가 재선되면 미국은 전체주의로 갈 것이며, 미국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트럼프는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같은 신문마다 넘쳐난다. 바닥 민심은 또 다르다. 중국발 코로나19가 터지기 전까지 실업률을 5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줄이면서 저소득층의 소득도 크게 끌어올린 트럼프의 인기가 상당하다. 미국에 사는 지인 중에는 약탈과 폭동을 서슴지 않는 흑인 시위에 질린 나머지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트럼프를 지지하면서도 내놓고 말 못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바이든이 예고한 증세와 규제에 경제를 걱정하는 이들도 꽤 있다. 바이든이 당선되면 미국은 사회주의로 갈 거라는 불안도 만만치 않다. ● 미군 철수 위협하는 트럼프를 믿을 수 있을까 내가 미국 시민이면 미국 우선주의를 외치는 트럼프를 뽑을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핵무기를 가진 북한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반대하는 중국 때문에 불안한 약소국의 궁민(窮民)이다. 시민권을 지닌 미국인과는 이해관계가 다를 수밖에 없다. 나로선 우리나라 국익에 도움 되는 미국 대통령이 최고다. 북한 김정은은 지난해 하노이 북-미 회담이 실패로 끝난 다음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전체 조선인민의 최고대표자’라는 호칭을 부여받았다. 북조선이 아니라 전체 조선인민이다. 중앙통신 영문판으로 보면 더 섬뜩하다. the supreme representative of all the Korean people이다.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보유한 김정은이 한반도 전체에 진짜 지배력을 행사하려 들 때, 한미동맹을 돈으로 계산하며 주한미군 철수를 위협하는 트럼프가 과연 한국을 구할지 불안한 것이다. 반면 바이든은 한국인의 마음을 읽은 듯 지난주 한국에 보낸 편지에서 “무모한 협박으로 한국을 갈취하지 않고 동맹을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밝혀줬다(북이 침략한 6·25전쟁 때 한국을 위해 참전을 결정한 해리 트루먼 대통령도 민주당 소속이었다). ● 독재자들은 트럼프 당선을 원한다트럼프는 이런 바이든을 약체 후보라고 깔아뭉개면서 “북한의 김정은, 중국의 시진핑, 러시아의 푸틴이 나의 당선을 원한다”고 유세한다. 미국의 정보기관들도 중국이 트럼프가 재선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분석한 바 있다. 하지만 중국의 속내는 트럼프의 당선을 바란다는 게 미 외교잡지 포린폴리시의 지적이다. 트럼프가 미국의 몰락을 재촉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유럽도 두 갈래로 나뉘었다. 강한 러시아가 두려운 동유럽의 지도자들은 트럼프 재선을 바라는 반면 서유럽에선 우익 포퓰리즘을 부추긴 트럼프 재선을 반대한다고 뉴욕타임스는 썼다. 이토록 세계의 운명을 좌우하는 미국 대통령 선출을 미국인들에게만 맡겨야 하다니, 불공평하고 불합리하지 않은가. 그래서 능력이 있는 국가는 미국의 대선에 개입한다. 2016년 대선에서 러시아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해킹 사건을 벌였다고 미 정보당국이 2017년 초 의회에 제출한 조사 보고서에서 밝혔다. 미 상원도 올 4월 이를 공식 인정했다. ● 러시아와 중국이 미 대선에 개입했다는데단순히 미국 민주당 하원선거위원회를 해킹해 힐러리 클린턴이 낙선하도록 공작한 정도가 아니다. 이젠 많이 알려졌지만 러시아가 인터넷 사용 습관에 따라 그 사람의 정보 수용성을 파악하고, 그가 솔깃하게 들을 만한 정보를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구글 등으로 콕 찍어 전달한 사실이 드러났다. 대선 투표에 참가한 미국인이 1억3700만 명인데 1억2600만 명이 페이스북에서 러시아 콘텐츠를 봤다. 나의 생각이 러시아에 조종당한 것을 나도 몰랐다는 것이 무서운 거다. 러시아의 대선 개입이 발각됐으니 이번엔 못하겠지… 싶지만 그렇지 않다. 크리스토퍼 레이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도 9월 하원 국가안보위원회에서 “러시아가 반(反)러 기득권으로 보는 바이든의 대선 낙선을 위해 사이버 개입을 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심지어 중국과 이란까지 뛰어들었다는 지적이다. 뉴스위크 최근호는 ‘미국을 전복하기 위한 시진핑의 비밀 계획’이라는 탐사보도를 커버스토리로 실었다. 로라 대이엘스, 제시 영, 에린 브라운이라는 세 여성이 미국 정치와 사회에 대해 열나게 트윗질을 하고 있는데 어딘가 중국말 티가 난다는 대목은 섬뜩하다. 총선 전 우리나라를 휩쓴 ‘차이나 게이트’가 떠올라서다. 이들 세 여성은 미국인이 아니라 중국이 미 대선을 앞두고 선전선동을 벌이는 봇과 트롤이라고 뉴스위크는 폭로했다. 중국 공산당은 미국의 기업과 대학, 연구소, 사회문화단체와 사교모임 등에 600여 개의 통일전선 조직을 만들어 중국공산당의 이익을 노린 정보를 퍼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 다음 선거를 기약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다 그놈의 민주주의 때문에 트럼프 같은 대통령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만 퍼뜨려도 중국공산당 총서기 시진핑으로선 신나는 일이다. 선거 없는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의 우월성을 자부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중국이 턱밑에 있는 한국의 선거에 개입하지 않는다면 되레 이상한 일 아닌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존 볼턴 역시 ‘그 일이 일어난 방’에서 2018년 의회 선거의 중국 개입을 거론했다. 그리고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에 있다는 미 민주당 전국위원회의 서버를 알아내도록 했다고 폭로했다. 트럼프가 우크라이나 원조를 미끼로 사실상 미국 대선 개입을 종용했다는 얘기다. 결국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게이트’에서 자신의 개입이 드러나 미 하원에서 탄핵소추되고 말았다. 그러나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에서 부결되는 바람에 트럼프는 살아남았고, 마침내 재선을 노리게 됐다. 민주주의에서 선거의 의미란 다음 선거를 약속하는 것이다. 손가락을 자르고 싶어도, 참고 기다리면 다음 선거에서 정권을 바꿀 수 있다. 트럼프가 되든, 바이든이 되든 미국에서 다음 대선은 또 치러질 것이다. 민주주의가 흔들리는 나라, 적대국의 개입이 있었는지 자국민의 조작이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이 나라에선 다음 선거가 무사히 치러질 수 있을까.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0-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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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美 바이든 당선 걱정하는 김어준과 집권세력

    문재인 정부가 만드는 나라가 궁금하면 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듣기 바란다. 진중권이 왜 김어준을 정신적 대통령이라고 했는지 이해될 것이다. 국내 문제는 팩트와 상관없이 거의 김어준 말대로 전개된다. 옵티머스 펀드 사태가 커지자 지명수배 중 출국한 이혁진을 등장시켜 “과거에 여권과 관계가 있다는 이유로 권력형 게이트로 뒤집어씌우고 있다 주장하시는 거죠?” 확인해주는 식이다. 외교 문제도 비켜가지 않는다. 11월 3일 미국 대선을 넉 달 앞두고 인터뷰한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는 “10월쯤 3차 북-미 정상회담이 추진되고 있다”며 “북-미 대화가 이뤄지는 것을 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조 바이든(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투표하면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어준이 “100% 동의한다”고 화답한 건 물론이다. 문 정권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과 북-미 회담을 위해 미 대선 전 북한 김여정의 방미를 추진했음이 뒤늦게 알려졌다. 트럼프가 코로나19에 딱 걸리는 바람에 ‘옥토버 서프라이즈’는 불발됐다. 이 정권이 그토록 절실하게 트럼프 재선을 원한다는 건 모두가 알게 됐다. 트럼프 지지율이 바이든보다 뜨지 않자 김어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전을 해야 한다” “바이든이 뭘 특별히 인상적인 걸 남긴 기억이 없다”며 수도권 공영방송의 중립성을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민주당이 승리한다면 오바마 3기가 되는 것인데 오바마 시절 ‘전략적 인내’라는 정책은 한국 입장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북한 걱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래도 트럼프 역전 기미가 안 보이자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이 5일 방송에서 김어준을 안심시키는 분석을 내놨다. 이명박 보수 정부의 강경책 때문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을 사실상 버려뒀다는 거다. 우리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므로 문재인 정부는 김대중 정부 때 빌 클린턴 대통령을 설득하듯 바이든 정부를 설득해 포용정책을 펼 수 있다고 했다. 이런 내용이 23일 통일부 종합감사에서 재방송처럼 반복됐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인 전략적 인내 기조를 유지하지 않겠느냐”고 질의하자 이인영 장관은 “오바마 3기로 접근할 수도 있겠지만 클린턴 3기가 될 가능성도 있다”며 우리 정부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김어준이 아무리 정신적 대통령이라 해도 집권세력의 싱크탱크는 아니다. 일국의 장관, 대통령을 내다보는 정치인이 라디오 하나 달랑 듣고 국회에서 질의 응답했다고 믿고 싶지도 않다. 하지만 한 여당 의원은 “의원들이 김어준, 유시민 방송대로 질의하더라”며 개탄을 한 바 있다. 더구나 이번 미 대선은 보통 선거가 아니다. 미국이 자유주의와 인권, 동맹의 가치를 중시하는 바이든과 함께 역사적 전환을 할 것인지, 미국우선주의를 고집하는 권위적 포퓰리스트 트럼프와 고립될 것인지 가늠하는 선거다. 지배계급이 나라와 국민만 보고 대책을 세우기는커녕 북-미 관계에만 골몰하는 모습은 암담하다.그제 방송에서도 트럼프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선임고문이 “재선되면 바로 북한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했다는 소리에 김어준은 “트럼프 쪽이 그나마 정상회담 가능성이 있는 편”이라며 반색을 했다. 김 원장이 “한미동맹이 걱정된다. 트럼프는 확실히 주한미군 철수를 해버릴 것”이라고 우려해도 안 들리는 눈치였다. 일각에선 문 정권이 방위비 인상을 거부해 트럼프가 주한미군 철수를 하게 만들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막판 유세에서 트럼프는 “북한의 김정은, 중국의 시진핑, 러시아의 푸틴이 나의 재선을 바란다”며 바이든을 약체라고 깎아내렸다. 바이든 지원 유세에 나선 오바마 말대로 미국의 적대국 독재자들은 트럼프가 대통령직에 있어야 제 나라 국익에 이롭다고 본다는 의미다. 여기 우리의 문 대통령이 빠진 게 이상하지만 끼어 있어도 나라 망신일 뻔했다. 트럼프는 “모든 문 뒤에 다이너마이트가 있다”고 대통령직을 설명했다고 밥 우드워드는 신작 ‘격노(Rage)’에 썼다. 법과 제도를 무시하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평화의 올리브가지나 흔든다는 점에서 트럼프가 바로 다이너마이트다. 대통령직에 맞지 않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법과 제도를 무시하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국민이 북한에 죽임을 당해도 평화체제를 외친 대통령은 우리나라에도 있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0-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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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혹시 ‘트바로티’ 김호중… 좋아하세요?

    처음엔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쓸 작정이었다. “검찰총장은 법리적으로 법무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 “산 권력 수사하면 좌천, 다 아는 얘기 아니냐.” 22일 윤석열이 법무부 장관 추미애를 공개 저격한 대검찰청 국정감사 장면을 다시 보려고 유튜브를 열었는데, 글쎄 ‘트바로티’ 김호중의 노래 영상이 줄줄이 뜨는 것이었다. 일선 검사들은 윤석열의 작심 발언에 속이 뻥 뚫렸다고 한다. 김호중이 온 힘을 다해 부르는 노래들은 가히 폭포수였다.‘첫눈처럼 너에게 가겠다’ 하나만 듣고 윤석열로 갈 생각이었는데 새벽 두 시가 넘어버렸고, 나는 스마트폰을 쥔 채 이불 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우연인지, 시대가 만든 운명인지 김호중과 윤석열의 공통점이 줄줄이 떠올랐다. ● 노래 잘하는 가수, 나쁜 놈 잘 잡는 검사첫째, 자신의 직업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트로트에 별 관심이 없는 나는 개천절까지만 해도 김호중이라는 가수를 알지 못했다. 그날 혼자 동네 극장에 갔다가 3면에 영상이 펼쳐지는 스크린X로 김호중의 팬미팅 무비 ‘그대, 고맙소’를 보고는 그만 뿅 가버렸다. 영화관 가득 솟구치는 불꽃 속에 “천상에서 다시 만나면…” 하고 ‘천상재회’가 터져 나오는데 심지어 눈물이 나는 것이었다. 요즘 노래 잘하는 사람이 어디 한둘인가. 하지만 김호중은 성악을 공부한 천상의 목소리로 대중가요를, 그것도 이 노래를 부르다 죽어도 좋다는 모습으로 불러서 감동을 준다. 가수라는 직업에 성심을 다하는 태도가 너무나 절절하게 배어난다. 윤석열 역시 검사라는 직업에 충실한 사람이다. ‘나쁜 놈은 잡아들여야 한다’는 검사 본능에 충실한 나머지 살아있는 권력까지 파고들다 수난을 당하는 신세가 됐다. ‘검찰 지상주의자’이고 정무감각 빵점이라는 평가다. 그러나 가수든 검사든 자신의 업(業)에서 최선을 다하고 그리하여 최고가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아닌가?(때로 박근혜 정부 때도 지금처럼 정부 비판을 했느냐는 댓글을 본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그게 기자의 역할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 조폭과 연관 있고, 송사에도 얽혀 있고둘째, 김호중과 윤석열은 어떤 식으로든 조폭과 연관이 있다. 김호중은 불우한 10대 시절 조직에 스카우트당한 경력이 있다. 경북 김천예술고에서 그를 ‘사람’으로 만든 음악과장 서수용 선생님은 2008년 처음 만날 때 양복 차림에 금목걸이, 금팔찌, 팔뚝에 문신까지 새긴 덩치가 걸어오더니 고개가 아닌 어깨로 인사를 하더라고 했다.윤석열이 국민에게 각인된 것도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2013년 국감에서의 발언 때문이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 사건 수사에 윗선의 압력이 있었다고 폭로할 때 “(윗선의) 지시 자체가 위법한데 그것을 어떻게 따르겠느냐”며 했던 명언이다. 사람 아닌 나라와 국민에게 충성이면 좋겠는데 검찰 ‘조직’에 대한 충성이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작년 인사 청문회 때 검찰 후배를 보호하는 모습이 역력해 여권에서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한 검찰을 통제하기 위해서라도 검찰 ‘개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을 정도다. 당시 의원이 아니었던 정청래는 “의리의 총대를 맨 윤석열” “이 남자 상남자”라며 상찬을 아끼지 않았다(그때는 같은 편이었던 거다). 어제 국감에서 윤석열은 주먹을 불끈 쥐거나 탁자를 내려치고, “패죽인다” 같은 발언을 하는 등 더 다이내믹해진 모습이었다. 편은 갈라졌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가 방송에서 “제가 왜 조폭검찰의 검찰정치를 방치하면 안 된다고 했는지 확실히 아시겠죠” 했을 만큼. 그래서인지 두 사람 다 송사에서 자유롭지 않다. 김호중은 음악 선생님의 눈물과 기도로 폭력조직에서 두드려 맞고 빠져나왔지만 과거 여자친구가 폭행설을 제기해 그의 부친을 허위사실 유포 및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상태다. 윤석열은 부인의 회사 협찬금 의혹과 장모의 요양병원 운영 의혹, 후배 검사의 친형 관련 사건을 빌미로 법무장관으로부터 사건 지휘에서 배제된 상태다. ● 같은 사람, 같은 사안도 달리 보인다는 사실가장 큰 공통점은 두 사람에게 열렬한 지지층이 있다는 사실이다. 김호중에게 온갖 의혹이 쏟아졌는데도 팬심이 어찌나 막강한지 “이는 김호중을 음해하는 불순한 의도 때문”이라며 더 결집하고 응원한다. 이렇게 노래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가수라면 과거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사과하면 받아줘야 한다 싶다. 안 받아준다면, 다시 과거로 돌아가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윤석열 역시 지지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삼권분립이 무너지고, 집권세력은 소련의 노멘클라투라처럼 어떤 잘못에도 처벌받지 않는 특수계급화하는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줄 집단은 ‘윤석열 검찰’밖에 없다는 기대가 하늘을 찌른다(물론 문파와 그 주변에선 그 반대 시각이 하늘을 찌른다). 국감 막바지에 윤석열이 “소임을 마치고 나면 사회와 국민들을 위해 어떻게 봉사할지 생각해보겠다”고 하자 당장 ‘윤석열 대망론’이 나왔을 정도다. 김호중과 윤석열에 쏟아지는 시선을 보면 같은 사람도, 또 같은 사안도 입장에 따라 이렇게 달리 보일 수 있다는 데 놀라게 된다. 그래도 김호중의 경우엔 그의 노래를 들어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내가 그랬다). 윤석열이 민주주의를 무시했고 그러니 어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설치해 잡아넣어야 한다는 두뇌구조는, 정말이지 우리가 같은 한국말을 쓰며 살고 있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희망을 주는 그들이 고맙소김호중 팬들은 좋겠다. 비록 호중님은 군 복무 중이지만(멀리 안 갔다. 서초구청 사회복무요원) 기다리면 돌아온다는 희망이 있다. 윤석열은…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백척간두다. “정치가 검찰을 덮었다”며 라임사태를 수사해온 서울남부지검장이 22일 전격 사퇴했지만 과연 검찰의 기개가 살아있는지 희망을 갖기 어렵다. 현실정치에 관심을 끄고 김호중 노래만 들으면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김호중처럼 집권세력과 연계된 빽이 없는 국민도 두려움 없이 살아가려면, 윤석열이 검찰총장다운 총장으로 살아남아야 한다. 그래야 법치가 살아있을 수 있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0-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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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감사원장 최재형의 절묘한 정치감각

    절묘하다면 절묘할 수도 있는 결론이다. 감사원은 20일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 조기폐쇄 결정의 타당성 점검’ 감사보고서에서 조기폐쇄 결정의 핵심 근거는 조작됐지만 폐쇄 결정이 타당한지 판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발표했다. 음주측정 조작을 밝혀내고도 운전면허 박탈이 부당한지에 대해선 여러 사정을 감안해 덮은 셈이다. 틀린 결론이라고 하긴 어렵다. 운전자 집안 분위기에 따르면 운전을 하는 데는 맑은 정신 외에 안전성이나 주변 수용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과 비슷한 논리다. 대통령이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이면 따르는 거지 무슨 근거가 필요하겠나. ● 감사원장 자리를 박차고 나올 것이지 15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꼿꼿 재형’으로 기대를 모았던 최재형 감사원장(64)이 이런 매가리 없는 감사 결과를 내놓은 게 실망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보고서 제목이 ‘조기폐쇄 결정의 타당성 점검’이면 타당한지 부당한지 밝혀야 옳지, 달랑 경제성 평가만 해놓고 타당성 판단 불가라니 비겁하다, 라고 나는 혼자 분개했다. 국감에서 최재형은 모처럼 진검(眞劍) 공직자 같은 모습이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월성 1호기는) 53회 정지했다”고 던지자 최재형은 “정지가 안 되는 게 문제이지 문제 있을 때 정지한다는 것을 꼭 안전성이 없다고 보기 어렵다”고 멋지게 받아넘겼다. 2019년 말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안전성을 고려해 내린 결정”이라며 월성 1호기 영구 정지를 발표한 것은 문제가 있다는 의미다. 감사원 내부에선 “외부 압력이나 회유에 순치된 감사원은 맛을 잃은 소금과 같다”며 감사원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강조했다는 최재형이다. “이렇게 심한 감사 저항은 처음”이라고 토로할 만큼 385일이나 ‘감사 투쟁’을 하고도 맹탕 보고서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면, 최재형은 “문재인 정권의 집요한 감사 방해를 고발한다”며 분연히 떨쳐 일어났어야 했다. 그가 감사원장 자리를 박차고 나와 대정부 투쟁에 나선다면, 김영삼(YS) 정부 때 이회창 감사원장처럼 단박에 국민의 희망이 될 게 틀림없다고 나는 상상했다. ● ‘대쪽 회창’이 대선주자로 떠오른 이유그런데 자료를 뒤져보니 이회창이 박차고 나온 건 감사원장이 아니라 국무총리 자리였다(사람의 기억력은 이렇게 불확실하다). 문민정부 초대 감사원장 이회창은 ‘성역 없는 감사’를 강조하며 청와대와 안기부까지 감사한 ‘대쪽’이었다. 1993년 7월엔 방위산업 관련 율곡비리 감사 때는 YS가 “정치보복으로 비칠 수 있다”며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 조사를 반대했으나 이회창은 흔들리지 않았다. “감사원이 대통령 눈치를 보지 않고 독립성을 지키면서 엄정하게 업무를 집행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는 법치주의에 충실한 새 정부의 이미지로 부각될 것이고, 이것이 일시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대통령에게도 플러스가 된다고 믿었다”는 ‘이회창 회고록’ 구절은 지금 최재형의 감사원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YS는 물론 YS의 가신들에게도 이회창은 껄끄러운 존재였다. 1993년 말 그는 YS로부터 국무총리 제의를 받고는 “순간적으로 나는 대통령이 나에게 총리로서의 능력 발휘를 기대하기보다도 나를 감사원장 자리에서 옮기기 위해 이런 제의를 한 것이라고 직감했다”고 회고록에 썼다. 감사원장이나 대법원장과는 달리 총리는 대통령의 지휘명령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청와대 지시를 받기는커녕 ‘법대로’ 내각 통할을 원했던 대쪽 총리에 YS는 격노했고, 결국 이회창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그리고 대선 주자로 떴다. ● 생각도 다르고, 신뢰도 없는 사람과 일할 때안타깝게도 이회창의 결말은 좋지 않았다. 대쪽이라는 특성이 감사원장이나 대법원장으로는 적격일지언정 정치인으로선 안 어울린다. 특히 ‘나는 맞고 너는 틀렸다’고 믿는 적화 증후군(enemyfying syndrome)이 만연한 우리나라에선 생각도 다르고 호감도, 신뢰도 없는 사람들과도 협력해서 일할 수 있는 능력이 긴요하다. 최재형은 감사원장 자리에서 바로 그런 능력을 발휘했다. 국민적 의혹을 규명하면서도 정권의 비위는 거스르지 않는 보고서를 내놓은 것이다. 만일 월성 1호기의 조기 폐쇄가 부당했다는 결론을 내렸다면 여권에서 당장 감사원장 사퇴 압력이 몰아쳤을 것이다. 반대로 조기 폐쇄가 타당했다는 결론이면, 야당에서 “감사원이 정권 앞에 엎드렸다”며 공격했을 게 틀림없다. 그러나 최재형의 이번 결론엔 여야가 모두 만족했다. 감사원장까지 6명의 감사위원 중 확실한 친여 위원이 3명인 합의제 기관에서 모두가 참을 만한 결론을 내려면 리더의 정치적 능력 없이는 불가능하다. 심지어 최재형은 눈 밝은 국민을 위해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개입 사실을 분명히 언급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비서관에게 “월성 1호기 영구 가동중단은 언제 결정할 계획이냐”는 취지로 물은 것이 백운규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움직였음을 적시함으로써 향후 세상이 바뀔 경우 문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게끔 기록해둔 것이다. ● 그 자리에서 직분을 다하는 공직자 만세!최재형은 국감에서 여권의 공세에 대해 “전혀 핍박이나 압력으로 생각하지 않았고 그런 게 결정에 어떤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며 쿨한 모습이었다. “제2의 윤석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는 야권의 ‘떠보기’에도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인기를 실감 못 하는 아이돌처럼 답했다. 정치권에선 판사 출신이고 원칙론자인 그로선 일단 감사원장 임기를 무사히 마치는 것이 목표일 거라고 보는 모양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삼권분립이 무너진 이 나라에 아직 감사원이 살아있다는 건 중요하다.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태와 관련해 금융감독원 감사 역시 월성 1호기처럼 파고든다면 ‘윤석열 검찰’을 대신해 정권 실세의 개입을 밝혀낼 수도 있을 것이다. 국방부와 사법부, 심지어 청와대에 대한 추상같은 직무 감찰을 통해 현재 누구도 건들지 못하는 정권 비리를 기록에 남길지도 모른다. 정 안 되면 그 자리에서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 같은 친문인사의 감사원 진입을 막는 것만으로도 최재형은 밥값을 한다(이회창 역시 낙하산 인사를 막는 것으로 감사원 독립성을 지켜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에 최재형처럼 그 자리에서 직분을 다하는, 공선사후(公先私後)를 당연하게 여기는 공직자가 있다면 나는 희망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2021년 말까지 감사원장 4년 임기를 채운 뒤 더 큰 공직에 나선다면, 그건 그의 운명이다. 6·25전쟁 때 대한해협 해전에서 나라를 지킨 부친 최영섭처럼 그 역시 백척간두 위기에서 나라를 지킬지 누가 아는가.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0-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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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운피아’도 모자라 세습제로 갈 참인가

    1970년대 청년들은 고래를 잡으러 동해바다로 갔다. 송창식 노래 ‘고래사냥’이 나온 해가 1975년이다. 보이는 건 모두 돌아앉았어도 3등 완행열차를 타고 가면 신화처럼 숨 쉬는 고래를 잡는다는 꿈이 있었다. 서슬 퍼런 박정희 유신 시절을 거치며 잡아 올린 그 예쁜 고래가 지금은 고래고기로 팔려나가고, 뼈까지 구석구석 뜯어 먹히는 느낌이다. 이 나라를 자기네들이 민주화한 것처럼 도륙하고도 모자라 자식들한테 특권 세습을 하려는 86그룹 운동권 집권세력 때문이다. 부패도 급수가 있다. 행정부패가 규제나 정책을 놓고 관료나 정치인들이 뇌물 등 대가를 챙기는 것이라면, 국가포획(State Capture)은 나라를 포로처럼 잡아놓고 사익을 추구하는 대형 부패라고 세계은행에선 분류했다. 문재인 정부가 행정·입법·사법부를 총동원해 법과 제도의 ‘게임의 법칙’을 바꾸는 것이 바로 국가포획이다. 20년 집권으로 그들의 배는 불릴지 몰라도 나라와 국민은 식민지 신세다. 포획된 고래의 살을 썩썩 썰어 독식하듯, 문 정권이 340여 개 공공기관에서 4곳 중 1곳을 캠코더(선거캠프·코드·더불어민주당) 기관장으로 채운 건 놀랍지도 않다. 정책과제 1호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결국 공공기관에 자회사를 세워 캠코더 사장 늘리기라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제 편도 못 챙긴다는 소리나 듣다 정권을 잃진 않겠다고 맹세를 한 것 같다. 더 놀라운 건 고래 뼈에 붙은 살점까지 발라 먹기 위해 자식들을 불러들이는 좌파의 탐욕이다. 우원식 윤미향 등 민주당 의원 20명이 발의한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은 학생운동과 노동, 통일운동 등으로 사망했거나 부상한 유공자의 자녀에게 대학 입학과 취업 특혜를 주는 게 핵심이다. 우원식은 여당 의원에 해당자도 없고 ‘운동권 셀프 특혜법’도 아니라며 대수롭지 않은 척 말했지만 그렇지 않다. 신분제로 돌아간다는, 나라 근간을 뒤흔드는 소리다. 86그룹 의원 상당수가 합세한 이 안은 ‘훈장 등의 영전(榮典)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고 어떠한 특권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는 헌법 11조 3항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 영전이란 국가·사회에 공을 세운 사람에게 부여하는 특수한 법적 지위를 말한다. 5·18유공자들과 달리 민주화유공자들 연령층에선 대입과 취업을 할 자녀들이 계속 나올 공산이 크다. 민주화유공자의 자녀들을 대학에 일정 비율 입학시키고 국가기관과 공공기관, 국공립학교는 물론 대기업과 사립학교 채용시험에 가산점을 주어 특수계급의 상류생활을 세습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귀족사회였던 신라, 그러니까 영남의 귀족적 세습적 특권 감각이 한국사 전체를 관통한다고 한다. 조선은 개국 공신(功臣)들에게 세습 토지와 특전을 내린 절대왕조였다. 신분과 당파까지 세습에 매달려 나라 발전이 어려웠다는 게 우리와 중국과의 큰 차이다. 문 정권의 영남패권은 반정(反正)공신들에게 공공기관을 나눠주고도 부족해 후손에게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보장하는 특수계급을 창설할 모양이다. 공산당 일당독재 소련에서도 권력 엘리트 노멘클라투라의 낙하산 인사는 극히 예외였다. 지위가 세습되지 않는 건 물론이다. 소련이 붕괴되면서 이 중 일부는 국유재산을 사유화해 국가포획형 올리가르히(신흥 재벌)가 됐다. 문 정권의 노멘클라투라는 운피아(운동권+마피아) 낙하산 인사를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공공기관 같은 국유재산, 4차 산업혁명용 사모펀드 투자 재정까지 제 것처럼 주무르는 올리가르히 자질이 엿보인다. 요즘 라임, 옵티머스 사모펀드 사기 사건에 86그룹 집권세력 노멘클라투라와 운피아들이 스멀스멀 등장하고 있다. 4000여 사모펀드 투자자들이 1조6000억 원 이상 피해를 본 라임사태엔 운동권 출신 강기정 전 대통령정무수석이, 1조2000억 원 규모의 사기 행각을 벌인 옵티머스 사태에도 운동권 출신인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구설수에 오른다. 펀드와 관련된 공공기관마다 전문성 없는 운피아가 감투를 쓴 채 혈세를 쓰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당 원내대표는 믿는 구석이 있는지 권력형 비리 게이트라는 근거가 있냐고 따졌다. 마침내 윤석열 검찰총장이 일어섰다. 청와대는 수사 협조를 지시했다. 우리나라가 이대로 망할 리 없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0-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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