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文, 잊혀진 대통령으로 남을 것 같은가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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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후 잊혀진 사람이 되고 싶다”
너무 이상했던 신년회견 대통령 답변
검찰총장 찍어내고 공수처 설치
민주체제 뒤흔든 리더로 기억될 것

김순덕 대기자
김순덕 대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주자로 나서기 한참 전, 대통령감으로 각인된 장면이 있다. 2009년 고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 백원우 민주당 의원이 이명박(MB) 당시 대통령에게 “어디서 분향을 해!” 고함치며 달려들 때다. 상주(喪主) 역할의 전 대통령비서실장 문재인은 MB에게 몇 번이고 고개 숙여 사과했다. 다음 대통령은 저 사람이다, 라고 교통방송 ‘라디오 방통령’ 김어준이 2011년 책에 썼을 정도다.

그때 문 대통령도 속으로는 백원우를 껴안아주고 싶었다면, 좀 복잡해진다. 나중에 백원우 재판과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솔직히 밝힌 심정이다. 대통령이 대단한 절제력으로 꾹꾹 눌러 표현만 안 할 뿐이지 실은 가장 과격한 386정치인과 같은 정서라는 의미여서다.

입으로는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이 열리는 역사적 시간”이라고 말하면서 실제로는 한국 민주주의를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모습에 과거의 문 대통령이 겹쳐 보인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권력기관의 제도적 개혁을 드디어 완성할 수 있는 기회를 맞이했다”는 7일 발언을 곧이곧대로 듣다간 선진국 같은 제도개혁인 줄 알기 십상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청와대까지 치고 들어오기 전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개정법안부터 처리하라는 돌격명령을 문 대통령은 너무나 고상하게 표현했다.

집권세력이 국민의힘 따위는 무시하고 처리한 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 개정은 기업의 소유권을 흔들 수 있다. 노조법 개정은 해고 노동자도 주인 만드는 인민민주주의로, 5·18역사왜곡특별법 개정은 표현과 사상의 자유를 훼손해 전체주의로 가는 길이다. 이미 온갖 부동산 규제로 거주이전의 자유가 사라지고, 내 집을 팔 수도 살 수도 없는 판이다. 소유와 자유가 불안한 체제가 어떻게 민주주의인가.

그러고 보면 집권 4년 차에 이르도록 문 대통령의 말과 실제는 늘 딴판이었다. 선하고 신중해 보이지만 거칠게 말하면 위선이다. 대통령의 성격 때문이라면 위험하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과대망상적 성격에서 포퓰리즘 정치와 현란한 거짓말이 튀어나왔듯, 국정의 성공과 실패에 대통령 성격이 큰 몫을 한다는 연구가 적지 않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2015년 심리학자 김태형은 심리적 의존 상대가 필요한 정치인이라고 진단한 적이 있다. 최순실(최서원)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고 난 뒤 그 말이 그 뜻임을 알고 놀란 기억이 생생하다. 그는 문 대통령에게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다고 2017년 대선 전에 내놨던 ‘대통령 선택의 심리학’에서 분석했다. 가난한 어린 시절 부모님의 기대에 맞추느라 아프고 힘들어도 말을 못했고, 그래서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는 거다. 문빠의 끔찍한 사랑이 대통령에게는 양념인 이유다.

정치하기 싫은 문 대통령이 오로지 정권교체를 위해 386운동권에 택군(擇君)을 당한 사실은 유명하다. 당연히 측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백원우 같은 행동대장 겸 복화술사가 예쁘고 고마웠을 터다.

정치는 잘할 자신도 없다던 문재인을 대통령 만든 사조직이 386운동권 선거 캠프였다. ‘문재인의 운명’을 쓰도록 이끈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등 광흥창팀 10여 명 중 상당수가 그대로 ‘청와대 정부’가 됐다.

진보 정치학자 최장집은 “요컨대 그들은 선거기술자들”이라며 “공직 추구와 권력에 대한 열망이라는 공통점을 제외한다면 정치윤리를 발견하기 어려운 무(無)도덕한 집단”이라고 지적했다. 적폐청산이라는 명분으로 정치 보복을 자행한 그들이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라임·옵티머스 의혹, 우리들병원 특혜 대출 의혹 사건 등 정권비리에 언급된다는 건 당신들 민주주의에도 수치다.

퇴임 후 어떤 대통령으로 남고 싶으냐는 신년회견 질문에 문 대통령은 “그냥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답했다. 망국의 군주가 아니라면 참으로 나오기 힘든 소리다. 주변에서 어른대는 냄새에 ‘나는 아무것도 안 했다’는 잠재의식의 발로가 아니길 바란다. 우리나라의 자유민주주의를 뒤흔든 대통령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문 대통령은 “대통령 끝나고 난 이후 좋지 않은 모습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마무리해 기자들을 웃게 했다. 그러려고 공수처 설치에 기를 쓰는 모습이 슬플 따름이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문재인 대통령#신년회견#잊혀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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