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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순덕 대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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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02~2024-06-01
칼럼100%
  • [김순덕 칼럼]‘중국의 패권’에 줄 선 친중파 정권

    ‘지금 이 땅의 국민과 함께 읽고 싶은 책’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전환시대의 논리’를 꼽았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 2017년 대선 직전 동아일보 문화부가 후보들의 정책 방향을 예측하려고 만든 기획이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서울대 공대 교수들이 쓴 ‘축적의 시간’(2015년)을,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갓 출간된 ‘일의 미래’(2017년)를 소개한 데 비해 문 대통령은 1974년에 나온 리영희의 책을 들었다. “대학 시절 이 책을 읽고서 내가 상식이라 믿었던 많은 것이 실은 우물 안 편견이었음을 깨달았다”며 “새 시대의 정의와 가치를 상상할 용기를 얻었다”는 거다. 중국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을 미화하고 미국의 반공주의와 일본의 정치대국화를 비판한 책을 왜 지금 시대에 국민이 읽어야 하는지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세상이 놀랍게 달라졌는데 새롭게 지식을 축적한 책은 없는지 궁금했을 뿐이다. 23일 열린 한중, 한일 정상회담을 보니 1970, 80년대 운동권을 사로잡은 그 책이 화석처럼 청와대 뇌리에 박혀 있다는 느낌이 든다. 리영희는 2007년 “내가 20∼30년 길러낸 후배와 제자들이 남측 사회를 쥐고 흔들고 있다”고 자랑한 바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21세기 세계질서를 좌우할 패권 경쟁으로 확대된 지금, 남측 대통령은 전환시대의 논리 속에 매우 이상적으로 묘사된 중국 모델을 따라 한 번도 경험 못 한 나라로 갈 모양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양국은 오랜 교류 역사와 유사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운명공동체”라고 말했다. 운명공동체 구축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중흥을 꾀하는 중국몽(夢)에 다른 나라를 참여시킨다는 중국의 외교 목표다. 시진핑이 “세계는 100년 만에 찾아온 대급변을 겪는 중”이라고 강조한 것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년인 2049년까지 패권국가가 되겠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 그래서 북한 김정은도 “중국 인민이 중국몽을 실현할 것을 확신한다”고 덕담을 했지, 운명공동체라고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진핑이 김정은에게 “북-중은 운명공동체이자 순치(脣齒)의 관계”라고 끌어들이는 판이다. 문 대통령은 2017년에 이어 이번에도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국이 되는 데 편승하겠다고 확실히 줄을 선 셈이다. 대통령 측근 양정철이 소장인 더불어민주당의 민주연구원은 7월 중국 공산당 간부를 양성하는 중앙당교와 교류 협약까지 맺었다. 공산당의 어떤 전략을 교류했는지 모르지만, 민주당이 친여 정당들과 야합해 만든 선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친북·친중 좌파 연합정권의 장기집권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까지 처리되면 부패 척결의 미명 아래 시진핑이 정적들을 궤멸시킨 중국 국가감찰위원회 뺨치는 사정기관도 등장할 것이다. 경제 체제를 놓고 벌어지는 미중 패권 경쟁에서도 문재인 정부는 중국 모델을 충실히 따라가는 모습이다. 공산주의가 소련식, 중국식으로 갈라져 경쟁하다 중국의 승리로 끝났듯이 현재 자본주의는 미국식과 중국식으로 분화해 경합하고 있다. 능력 있는 민간 부문이 주도하는 미국식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법치와 민주주의에 기반한다. 중국식은 국가가 주도하는 정치적 자본주의로, 법을 자의적으로 적용하는 게 특징이라고 포린어페어스지 최신호는 소개했다. 민주국가의 법치는 대통령부터 노숙자까지 똑같이 적용되는 법의 지배를 의미하지만 중국의 의법치국(依法治國)은 공산당이 영도하는 중국 특색의 법에 의한 지배여서다. 선거로 뽑은 지도자가 무능한 사람으로 밝혀지는 것보다 선거 없이 집권한 지도자가 경제 실적으로 능력을 입증하는 중국 모델이 가끔 부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법부까지 통제하는 국가 주도의 정치적 자본주의는 권력자들의 부패와 나쁜 정책, 나쁜 결과를 낳을 공산이 크다는 게 문제다. 국가, 인민 또는 촛불이라는 이름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견제할 대의민주주의는 그래서 필요하고도 중요하다. 어쩌면 문재인 정부는 국가 주도의 자본주의로 들어섰다고 해야 할지 모른다. 특정 업체에 특혜 대출을 해도 의법처리를 할지 말지 중국 모델에선 정치 엘리트 편의대로 판단한다니 이미 우리는 소중화(小中華)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디를 봐도 나아질 구석이 없는 나라, 희망 없이 살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19-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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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선거제 개편…북한 주도 통일로 갈 수도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지금까지 왜 선거제 개편이 없었는지 아는가. 민주화 이전과 달리 민주화 이후에는 집권세력이 정권 창출이나 연장을 위해 선거제를 바꾸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 주장이 아니다. 대한민국 선거제도 변천사를 고찰한 김용호·장성훈이 2017년 ‘현대사광장’에 쓴 내용이다. “그 결과 1987년 민주화 이후 지난 30년 동안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기본 틀이 유지되고 있다”고 했다. ● 집권연장 위한 선거제는 ‘입법 쿠데타’ 더불어민주당이 제1야당 빼고 선거의 룰을 바꾸는 건 민주화를 거꾸로 돌리는 ‘입법 쿠데타’나 다름없다. 쿠데타라는 단어가 싫으면 청와대가 앞장선 ‘선거 유신(維新)’이라 불러줄 수도 있다. 합법적 장기집권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여당이 제1야당과 합의 없이 감행할 리 없다. 군소 야당과 야합해 공수처법까지 처리하면 검찰이 청와대 관련 의혹을 더 수사할 이유도 없어진다고 설훈 민주당 의원은 까놓고, 뻔뻔스럽게, 중앙일보에 밝혔다. 청와대의 선거 개입 의혹이 이대로 묻힐 경우, 내년 총선에선 어떤 개입이 난무할지 안 봐도 유튜브다. 그렇게 집권 연장을 해서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겠다는 건가. ● 통혁당 신영복을 존경하는 대통령 “제가 존경하는 한국의 사상가 신영복 선생은 겨울철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것을 정겹게 일컬어 ‘원시적 우정’이라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2월 평창 겨울올림픽 리셉션 환영사에서 신영복을 언급했다. 북한 김영남과 김여정이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도 신영복이 썼다는 ‘통(通)’을 모티브로 한 작품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문 대통령이 각별히 신영복을 강조한 깊은 뜻을 김영남은 알아차렸을 것이라고 이상철 일본 류코쿠대학 교수는 지적한다. “베트남 종전 뒤 북한이 베트남에 억류된 남한 외교관 석방에 협조하는 조건으로 신영복의 북송을 제안할 때 김영남은 노동당 국제담당비서였다. 기억이 생생할 것이다.” 제목도 섬뜩한 책 ‘김정은이 만든 한국대통령’에 적힌 내용이다. ● 통혁당 흐름은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져 물론 신영복은 누명을 썼다고 주장한다. 1970년 복역 중 전향서를 쓴 데 대해서도 “사상을 바꾼다거나 그런 문제는 아니고 가족들이 그게 좋겠다고 권해서 한 것”이라며 사상 전향을 부인했다. 그가 사상 전향을 했든 위장 전향을 했든, 한국사회에서 주사파의 뿌리가 통혁당이다. 통혁당은 1964년 북한 조선노동당의 지령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 전복과 공산정권 수립을 꾀한 지하조직이고, 신영복은 북이 데려가려고 했던 인사였다. 문 대통령이 신영복의 어떤 사상을 존경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통한다는 것을 북에 알리려고 무진 애를 쓴 것이다. “주모자들이 사형당한 뒤에도 통혁당 흐름은 지속돼 민주화운동, 학생운동, 노동운동 등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지속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주사파 혁명가였다 전향해 국정원 북한담당기획관 등을 지낸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장은 최근 저서 ‘미중 패권전쟁과 문재인의 운명’에서 이렇게 밝혔다. ● 선거법 개정 강행이 무서운 이유 1989~91년 자생적 주사파 조직인 자민통(자주·민주·통일그룹)을 이끌었던 그는 현 정부를 운동권파벌연대정권으로 규정한다. 김경수 경남지사, 양정철 민주원장이 자민통 출신이다. 전대협을 이들이 지도했다. 통혁당 사건에서 신영복은 한명숙 전 총리의 남편인 박성준의 ‘상부선’으로 나온다.현 집권세력의 선거법 개정 강행이 두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비례대표제와 내각제가 즐비한 유럽처럼 중도좌파 연정으로 복지국가로 간다면, 선거제 개편을 결사반대할 이유가 없다. 아니, 우리의 북쪽에 있는 나라가 3대 독재 세습에 핵까지 지닌 북한만 아니라면 지금처럼 대한민국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남한에 친북좌파 정권을 지속시키면서 이른바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가는 것, 이게 바로 북한이 주도하는 통일 전략의 하나라고 구해우 박사는 지적했다. 우리 아이들의 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는 이미 빠졌다. 남북평화경제를 강조하는 이 정부가 선거제 개편 뒤 친북좌파연합을 구성해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자유’를 빼면, 평화적 통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 남북관계는 역전됐다, 북한 우위로 우리는 북이 가난하니까 체제경쟁은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2018년을 기점으로 남북관계는 역전됐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북이 우위다. 2017년 9월 6차 핵실험,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시험을 성공시킨 김정은은 2018년 신년사에서 ‘통일’이라는 단어를 12번이나 언급할 만큼 북한 주도 통일을 추진할 태세다. 전쟁까지 안 가고도 말 한마디에 절절맬 정도면, 게임 끝난 거다. 북은 13일에도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중대한 시험’을 했다고 미국에 외쳤다. 김정일 체제가 체제수호를 위해 핵을 보유하는 ‘파키스탄 모델’을 추구했다면, 김정은은 핵을 휘둘러 미군을 철수시킨 뒤 북한 주도로 통일하는 ‘신베트남 모델’을 추구한다고 분석된다.친북반미좌파 집권세력은 그래서 선거법 개정을 강행한다고 치자.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그 알량한 비례대표 공천권에 눈멀어 야합할 텐가. 국민이, 역사가 두렵지 않은가.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19-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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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眞文게이트, 대통령이 알았을 리 없다

    개돼지도 학습한다. 지금 속속 불거지는 청와대 관련 의혹은 지난 정부 때 익히 겪은 바라 결말도 거의 예측할 수 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집권세력만 국민의 학습 능력을 너무 무시한다. 자유한국당이 ‘친문 게이트’로 명명한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은 이명박(MB) 정부 때 ‘영포 라인’의 민간인 사찰 사건을 보는 듯하다.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과 우리들병원 대출 의혹은 박근혜 정부 때 문고리 3인방과 비선실세 사태를 연상시킨다. 곧 2심 판결이 나올 드루킹 대선 댓글 조작 사건은 매크로 같은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활용됐을 뿐 국정원 댓글 사건의 민간판(版) 같다. 2010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민간인을 사찰했다”는 민주당 폭로가 나오자 ‘선수’들은 뒤를 봐주는 권력이 없으면 총리실 2급 공무원이 엄두도 못 낼 일임을 단박에 알아챘다. “공직윤리지원관이 범(汎)포항 인맥인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박영준 국무차장과 커넥션을 이뤄 국정을 농단해 왔다”(우상호 당대변인) “MB의 형인 이상득-박영준 라인을 주시한다”(박지원 원내대표)는 지적이 줄을 이었다. 두 달 수사 끝에 검찰은 달랑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만 직권남용, 증거인멸 혐의로 기소했다. 청와대와 관련해선 증거를 못 찾았다는 것이다. 조국의 명언대로 책략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 MB 5년 차인 2012년 “청와대에서 입막음용 돈을 줬다”는 폭로가 터져 검찰이 재수사에 나섰고, 결국 이영호 비서관과 ‘왕차장’ 박영준은 죗값을 치렀다. 만사형통(萬事兄通) 이상득도 MB 재임 중에 구속이 됐다. 그래도 MB는 환부를 도려내 임기를 마칠 수 있었다. 박근혜 정부의 검찰은 “권력 서열 1위 최순실, 2위 정윤회, 3위가 대통령”이라는 청와대 행정관의 폭로를 뭉개 환부를 키웠다. 작년 말 “청와대 권력 서열 1위는 문재인, 2위는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 3위는 김경수 경남지사”라는 대선 댓글 조작 드루킹의 발언은 음미할수록 의미심장하다.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 수사관이 폭로했던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에 권력 2위와 3위의 이름이 등장한다. 유재수 의혹과 우리들병원 의혹에는 대선캠프에서 ‘문재인 펀드’를 운용하는 등 정치자금과 금융 쪽을 맡았던 천경득 청와대 총무인사팀 선임행정관 이름이 나온다. 청와대가 “그런 유전자는 없다”며 부인한 민간인 사찰에는 MB청와대의 사찰 대상이었던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이 의혹의 핵심에 서 있다. 전임 정권 같았으면 검찰은 꼬리 자르기로 수사했다가 정권 말이나 돼서 청와대에 칼을 들이댔을 터다.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윤석열 검찰총장은 조직의 명운을 걸고 수사 중일 것이다. 숱한 선행학습 덕분에 국민은 ‘척하면 착’ 줄거리를 짐작하지만 아직은 알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2년 반이나 남아 있고, 검찰개혁이라는 이름의 검찰 장악이 예고된 상태여서다. 검찰이 어떤 수사 결과를 내놓든, 사법부가 공정하게 판결할지도 알 수 없다. 24일 드루킹 사건 2심 판결이 시금석이 될 듯하다. 올 초 1심에서 김경수에게 징역 2년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시켰던 성창호 부장판사는 집권세력으로부터 재판 불복이나 다름없는 맹비난을 받고 재판 업무에서 배제됐다. 2심 주심판사는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변경됐고 김경수는 항소심 최후진술에서도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다. 뇌물로 수표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 2015년 대법원에서 유죄 선고가 났음에도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 저는 무죄”라고 주장했던 한명숙 전 총리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2012년 MB청와대의 민간인 사찰이 드러났을 당시 문 대통령은 “개인에 의해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청와대가 정부 안에 범죄조직을 운용한 셈”이라며 MB가 관여한 사실이 드러나면 탄핵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친문 중에서도 진짜 친문들이 대거 등장하는 ‘진문(眞文) 게이트’ 의혹을 문 대통령은 언제부터,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꼼수’ 김어준의 어법을 따르자면, 각하는 그럴 분이 아니다. 문 대통령이 관여했다면 탄핵감일 것이다. 모르고 있었다면 비서들이 써준 A4 용지 원고나 읽는 핫바지라는 얘기다. 어느 쪽인가.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19-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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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민노총이 반대하면 총리 못한다고?

    살다 살다 별꼴을 다 본다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같으면 일갈했을 거다. 민노총이 반대해서 총리 지명을 못 받는다는 김진표 의원 얘기다. 나는 김진표와 일면식도 없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들으니 돌연, 그렇다면 총리감 아닌가 싶어진다. 조국 때는 반대여론이 우세했는데도 눈 하나 깜짝 않고 법무부 장관 임명을 강행했던 대통령이다. 민노총과 함께 반대의 쌍지팡이를 짚고 나선 참여연대와 경실련은 고위공직자 배출창구로서 한마디 했다고 쳐주자. 대체 민노총이 뭔데 대통령을 꼼짝 못 하게 만드는 건가. 정녕 노동자가 주인 되는 ‘노동자 세상’이 온 것인가. ● “친기업·반노동적 김진표 안 된다” 민노총의 반대 이유는 한마디로 친(親)기업·반(反)노동적이라는 거다. 하지만 민노총 성명을 보면 김진표가 노무현 정부 때 재정경제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로서 꽤 옳은 소리를 했음을 알 수 있다. “비정규직 문제도, 외국자본 투자 기피도 대기업노조 탓으로 돌리며 ‘손봐야 한다’고 주장했다”니, 김진표 틀린 것 없다. 실제로 2007년 방한한 피터 로랑지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총장은 “적대적이고 과격한 노사문제가 한국의 국제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IMD는 정부행정, 기업효율 등을 따져 국제경쟁력 순위를 발표한다. 2002년 29위였던 우리나라는 2003년 37위, 2007년엔 38위로 떨어졌다(올해 경쟁력이 궁금하신가. 28위다. 작년보다 한 계단 하락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민노총의 비정규직 입법 저지 총파업은 시대착오적인 잘못”이라고 할 만큼 민노총의 문제를 꿰뚫어 본 사람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김진표는 말로만 큰소리뿐, 대기업노조 중심의 민노총을 손보지 못했다. 그 결과가 지금 국민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은 민노총이다. ● 민노총은 촛불시위 이끌지 못했다 민노총은 자기네가 개국공신인 양 당당히 지분을 요구한다. 국회 앞 폭력시위로 위원장이 구속된 6월에도 “민노총이 촛불항쟁의 힘으로 사실상 문재인 정부를 탄생시켰다”며 수틀리면 이 정부를 끌어내릴 듯이 협박했다. 곧 위원장은 석방됐고 민노총은 재미가 난 듯하다. 착각하지 마시라. 지난 정부 말기 민노총을 비롯한 온갖 좌파 운동조직이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이라는 연대기구를 만들어 촛불시위 지도부를 자임한 건 사실이되, 이들이 시위 자체를 기획하고 대중을 이끌었다고 하긴 어렵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1987년 6월항쟁과 2016년 촛불항쟁 비교’ 연구보고서에서 분명히 밝힌 내용이다. “2016년 촛불항쟁은 1987년의 6월항쟁보다도 더 대중들의 자발적 동원에 의존한 정도가 컸다. 퇴진행동은 자발적 참여자들이 모일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역할에 머물렀다 (중략) 민노총보다는 청소년 혹은 ‘혼참러’가 더 주목받았다.” ● 민노총에 휘둘려 세계적 방향과 역행 말끝마다 촛불혁명, 촛불정부를 부르짖는 문재인 정부는 말이 씨가 됐음을 알아야 한다. 당신들은 민노총에 빚진 게 없다. 문 대통령은 41.09%의 득표율로 당선됐지, 전체 노동자 4%에 불과한 민노총에 업혀 집권하지 않았다. 취임하자마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임금피크제 폐지 같은 민노총 요구에 맞추면서 문재인 정부는 마침내 ‘성장률 1%대’라는, 한 번도 경험 못 한 나라로 들어설 조짐이다. 대통령은 뻑 하면 “방향은 맞는데 성과가 안 나온다”고 말하지만, 방향이 틀려서 성과가 안 나오는 것임을 국민은 다 안다(민노총과 문빠 빼고). 현 정부와 비슷한 시기에 탄생한 프랑스의 에마뉴엘 마크롱 정부를 보라. 그는 ‘유럽의 병자’로 전락한 프랑스를 살리기 위해 전후(戰後) 유산처럼 남아있던 ‘사회적 파트너’ 노조의 족쇄에서 벗어나기를 첫 개혁과제로 삼았다. 출범 4개월 만인 2017년 9월 노동시장개혁법을 ‘법률명령’으로 추진했고, 벌써 고용 확대가 성과로 나타난다는 외신 보도다. 물론 작년 말 ‘노란 조끼’ 시위에 이어 지금도 연금개혁을 놓고 시위가 벌어진 상태다. 하지만 세상이 달라지면 ‘제도’는 달라져야 한다. 뒤처지는 이들을 위한 제도 또한 필요하다. 프랑스가 그런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우리는 정확하게 반대로 가는 형국이다. 민노총 요구대로. ● ‘아시아 네 호랑이’ 중 꼴찌로 죽을 건가 ‘타다 제한법’이 지난주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통과됐다. 이재웅 쏘카 대표는 “할 말을 잃었다”. 4차 산업혁명적 잠재력을 지닌 혁신기업이 민노총이라는 막강한 ‘빽’을 믿는 택시 기득권에, 이들에게 기댄 집권세력과 쫄보 야당에 여지없이 밀린 것이다.마침 이코노미스트 최근호도 “한국은 엄청난 규제의 벽으로 서비스산업과 네트워크산업을 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때 ‘아시아 네 마리 호랑이’로 불렸던 싱가포르, 홍콩, 대만, 한국의 오늘을 분석한 특집에서 한국은 완전 꼴찌다(구매력지수 기준 국민소득). 그것도 정부의 비효율적, 비생산적 조치 때문에. 김진표와 함께 총리 물망에 올라 있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김진표 같은 말’조차 하지 않는 강성 좌파 운동권 출신이다. 김현미 총리가 탄생하면 민노총이야 쌍수 들고 환영하겠지만 문 정부 후반기 변화의 가능성 같은 건 물 건너간다. 집값 때려잡기 정책이나 내놓아 일산 지역구 총선 승리도 자신 못할 김현미를 총리로 세워 성공한다면, 한강이 뒤집힐 일이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19-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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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연동형 비례제로 독재 굳힌 헝가리처럼

    공수처법이 3일 국회에 부의됐다. 집권당은 군소야당 소원대로 선거법을 바꾸는 대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통해 정권 차원의 비리는 묻어버릴 태세다. 자유한국당은 이를 막겠다고 고군분투 중이다. 공수처가 설치되면 사법부는 무력화되고,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정권교체는 불가능해질 공산이 크다. 연동형 선거제를 집권세력에 유리하게 악용한 헝가리가 딱 그런 경우다. ● 집권세력에 악용되는 선거제 개편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의 김한나 연구원은 “헝가리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하에 거대한 지배적 정당이 등장해 독점적 지위를 공고화했다”고 최근 논문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정치적 결과: 헝가리, 루마니아의 선거제도 연구’에서 지적했다.작년 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용역을 받아 제출한 한국정당학회 최종보고서 역시 “헝가리의 선거제도 개편은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집권세력의 다수 의석 확보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악용된 사례”라고 강조했다. 이 보고서 역시 김 연구원이 참여했다. 선거제도 개편, 특히 계산이 복잡한 연동형 비례제 도입이 집권세력에 의해 왜곡될 수 있음을 헝가리가 보여준다. 독일처럼 연동제를 잘하는 나라만 있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 헝가리의 독재자, 연동제 도입해 연속 압승 연동형 비례제를 쉽게 말하면 소수파 배려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군소정당을 상당수 국회에 들이면서도 집권세력이 손해 안 보게 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개돼지가 알 수 없도록 표 계산을 복잡하게 하면 식으로다. 헝가리가 그랬다. 1989년 민주화 이후 2010년 선거법 개정 이전까지는 우리처럼 혼합형 선거제(지역구+비례대표제)였다. 비례의석은 병립형(지역구 당선자에 비례대표 당선자를 더하는 것)과 연동형을 혼합해 의원수를 계산했다. 동유럽의 새로운 독재자로 꼽히는 오르반 빅토르 총리는 2010년 집권 후 선거법을 고쳐 영구집권의 길을 굳혔다. 연동형만 채택하되, 지역구의 사표(死票)는 집권당에 가중치를 주는 산식(算式)으로 비례대표를 계산해 2014년과 2018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둔 것이다. ● 비례의석 작으면 제1당 유리하다다수당제이면서 비례대표 의석이 상대적으로 작을 때는 제1당이 과다하게 대표된다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논문은 분석한다. 그 결과가 헝가리의 피데스 같은 지배적 정당의 영구집권화였다. 전체 의석 중 단순다수제로 뽑는 지역구가 106석, 비례대표제가 93석인 헝가리가 이렇다면 지역구 225명에 비례대표 75명인 우리 선거법 개정안은 더 위험할 수 있다. 지역구를 줄일 수 없다는 현역의원들의 고집에 비례대표를 50석쯤에서 맞추자는 얘기도 나온다. 비례대표를 달랑 3석 늘리려면 구태여 선거제를 바꿀 이유가 뭔가. 어차피 개정안은 비례대표제라고 할 수도 없는 변종인데. ● 연동제 개정안에 민주당 꼼수 더했다민병두 민주당 의원은 2일 라디오에 나와 “우리 의석수를 줄이더라도 소수파를 배려해 국민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맞다”고 큰 양보하듯 말했다. 그렇다면 득표율 41.09%로 당선된 문재인 대통령은 왜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60%의 견해를 반영하지 않나? 대선에선 사표(死票)를 외면하면서 총선에선 비례성을 인정해야 하는가?(뒤에 다시 썼지만 그래서 비례대표제를 하는 나라는 주로 내각책임제다) 게다가 민주당은 손해 볼 것도 없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 민주당 간사였던 김종민은 “100% 연동형은 소수정당 배려제가 될 우려가 있어 연동수준을 낮췄다”고 고백한 바 있다. 연동률을 50%로 심플하게 낮춘 것도 아니다. 비례대표 의석의 절반은 정당득표율에 따라 연동형으로 배분하되 나머지 절반은 병립형으로 배분해 더불어민주당이 따블로 이득을 보도록 꼼수를 부린 것이다. 비례대표제가 아니라 ‘부분 연동형 다수대표제’라는 게 정확하다고 음선필 홍익대 교수가 논문에서 지적했을 정도다.● 패스트트랙 야합 야당은 ‘준여당’인가 군소정당은 ‘준연동제’라도 지금보다 의석수를 늘릴 수 있어 감지덕지다. 집권세력은 공수처법도 더불어 처리할 수 있어 따따블이다. 두 법안을 패키지로 패스트트랙에 태운 것이 묘혈(墓穴)을 판 묘수인지는 두고 볼 일이되, 여기 야합한 군소야당들은 ‘준여당’으로 불러야 마땅하다. 패스트트랙도 미국선 외교와 국방 법안, 영국은 경제 위기 때나 테러관련 법안만 가능하다. ‘동물국회’ 버릇을 고치자고 법안에 제한을 두지 않고 패스트트랙에 올릴 수 있게 한 것부터 잘못이었다. ● 차라리 내각제 개헌을 하든가 다당제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나라는 대개 서구의 의원내각제 국가들이다. 제1당이 과반을 넘지 못하면 연정(聯政)을 해서 총리와 내각을 배출하니 협치를 안하려야 안할 수가 없다.대통령제가 제대로 굴러가는 나라는 미국처럼 다수대표제로 의원을 뽑는 양당제를 한다. 대통령제에 비례대표제로 다당제를 만든 나라들은 대부분 중남미에 있다. 1979년 이후 대통령 6명 중 1명이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경제도 남미로 갈 판인데 문재인 정부는 정치체제까지 일치시킬 모양이다. 굳이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싶다면 차라리 내각제 개헌을 하는 게 낫다. dobal@donga.com}

    • 2019-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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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불순한 연동형 비례제, 절대 반대다

    속았다. 독일식 권역별 연동형 비례대표제라고 해서 난 상당히 선진적이고 공정한 선거법 개정안인 줄 알았다. ‘진보’를 자부하는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 시절에 내놓은 합의안이니 사특(邪慝)하진 않을 거라는 믿음도 있었다. “정당의 득표율에 의석수를 맞추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핵심”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문제는 ‘연동형’ 아닌 그냥 비례대표제도 분명 존재하는데(우리가 이미 하고 있는 비례대표제다) 무슨 차이가 있는지 밝히지 않았다는 거다. 비례대표 수를 계산하는 방법을 기자들이 묻자 심상정은 “산식(算式)이 복잡하다”며 국민은 몰라도 된다는 식으로 오만을 떨었다. ● 내 칼럼 비판한 뉴스톱에 감사하지만 29일 뉴스톱이라는 매체는 동아일보에 쓴 내 칼럼 을 놓고 “전체 의석수를 지지율에 따라 배분하는 제도에 독일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유럽 여러 나라를 줄줄이 열거한 뒤 “김순덕 대기자 같은 이들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독일만 실시한다’는 거짓말 또는 말장난을 얹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 많은 나라들이 하고 있는 비례제는 순수한,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말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24개국이 채택하고 있다. 우리처럼 소선거구에서 다수대표제로 지역구 의원을 뽑고, 비례대표를 따로 뽑는 경우를 혼합제라고 하는데, 여기서 또 연동형과 병립형이 갈라진다. 병립형이란 우리나라처럼 지역구 당선자에다 정당득표율로 얻은 비례대표를 더하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 헝가리, 리투아니아, 멕시코가 이렇게 한다. ● 정의당을 위해 연동형 도입한 셈 그럼 연동형은 뭐냐. 지역구에서 당선자가 얼마 나왔든, 전체 의석수는 정당득표율과 연동시켜 조정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렇게 연동형을 하는 나라는 독일과 뉴질랜드 2곳이라고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를 인용해 밝혔다. 뉴질랜드는 독일과 또 다르다. 독일처럼 초과의석 발생 시 조정 작업을 통해 추가의석을 주지도 않고, 독일처럼 권역별 비례대표를 뽑는 게 아니라 전국 단위로 뽑는다(김한나, 박현석의 2019년 논문 ‘연동형 비례제와 정당 민주화: 독일과 뉴질랜드 주요 정당의 공천제도 비교연구’). 독일식 연동형은 비례의석을 군소야당만 받는 게 특징이다. 오히려 지역구에서 당선자가 많이 나올수록 비례의석을 얻기 어렵다. 민노총처럼 확고한 지지층을 지닌 정의당이 연동제에 목을 맨 것도 이 때문이다. 지역구에 자신 없는 기타 정당들에도 당연히 유리하다. ● 2차대전 패전국 독일의 슬픈 연동제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도 작년 말 이슈브리핑에서 이렇게 밝혀 놨다. “연동형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는 국가는 독일을 제외하고는 그 사례가 많지 않음. 연동형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지구상의 가장 좋은 선거제도라면 모든 나라가 채택할 것인데 그렇지 않다는 것은 독일식 선거제도에도 역기능이 있다는 것으로 해석됨. 뉴질랜드는 전국명부 연동형 비례대표제, 네덜란드와 스웨덴은 지역구 의원이 없는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임”(‘권역별 비례대표 의석배분방식에 따른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편의 시사점 검토’ 김영재 민주연구원 수석연구위원·행정학박사)그렇다면 왜 독일은 다수당에 절대 불리한 이런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한 것일까. 독일에서 수학한 김종인 박사는 “2차대전 패전국이라는 특수성 때문”이라고 했다. 다시는 히틀러 같은 독재자가 나오지 못하도록 특정 정당의 권력 독점을 막기 위해서라는 이유다. 독일식 연동형은 의석 배분 과정이 매우 복잡해 선거전문가조차 혼란스러워한다는 논문도 나와 있다(김종갑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비판적 평가와 대안모델의 탐색’). 비례성을 높이려면 ‘스칸디나비아식’ 비례대표제를 택하면 된다. 비례의석 배분만 지역구선거의 의석 과점과 연동시키는 거다. ● 민주당 “좌파연정 위해 손해 감수”그럼에도 집권세력은 굳이 독일식 ‘연동형’을 고집하니 의도가 의심스러운 것이다. 첫째는 군소야당에 유리하게 선거법을 바꿔주는 조건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다. 아니라면 굳이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법안을 패키지로 패스트트랙에 올렸을 리 없다. 둘째는 정의당과의 연정으로 장기집권을 꾀하기 위해서다. 민주당이 한국당을 빼고 폭력사태를 유발해가며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패스트트랙에 올려놓은 뒤, 이 당의 전략통인 이철희 원내수석부대표가 솔직하게 밝힌 바다. “비례성이 올라가면 민주당은 다수파가 못 되지만 진보파 전체는 넉넉한 다수파가 될 수 있다. 단독 집권해봤자 100석 넘는 제1야당이 막아서면 아무것도 못한다. 진짜 20년 집권을 하려면 진보파가 넉넉한 다수파가 되고, 민주당은 진보파 연정을 주도하는 길로 가야 한다. 이거 하면 우리 의석은 손해다. 그래도 담대하게 가야 한다. 그래야 세상을 바꿀 힘이 생긴다.”(주간지 ‘시사인’ 5월 7일자) ● 대통령제+다당제, 南美의 길로 민주당이 순수하게 독일식을 받아들인 것도 아니다. 정당득표율에 따라 전체 의석수를 정하되 그중 절반만 우선 배분하고 나머지 비례대표 의석은 현행처럼 정당득표율에 따라 배분하는 ‘준연동제’다. 그래서 음선필 홍익대 교수는 ‘이른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에 관한 헌법적 검토’라는 최근 논문에서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정당득표율에 상응한 의석수보다 더 많은 지역구의석을 차지하였음에도 추가로 비례대표의석을 배분받음으로써 이득을 많이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군소야당에 유리한 연동형 비례제로 가면 다당제 시대가 열린다. 뉴스톱은 ‘내각책임제 아닌 대통령제에서도 연정이 가능하며, 연정이 되지 않은 여소야대라도 양당제보다 다당제가 낫다’고 주장했다. 나는 다당제를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러나 비례대표제를 하는 대부분의 나라가 내각책임제라는 점은 중요하다. 뉴스톱도 ‘대통령제이면서 다당제인 여러 나라들(특히 남미 지역)이 고질적 여소야대와 정당 난립에 시달리는 건 사실’이라고 적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남미로 뚜벅뚜벅 갈 모양이다. ● 집권당과 영합한 군소야당, 부끄럽지 않나연동형 비례제든, 보통 비례제든, 다수당제든, 어떤 제도로 개벽을 하든 국회의원들이 국민만 생각하며 정치 잘하면 누가 뭐라고 하겠나. “상향식 공천제도를 정당법과 선거법에 명시한 독일에서도 실제로는 정당 엘리트들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연동형 비례제와 정당 민주화’ 논문은 지적한 바 있다. 누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게 실세들이 비례대표 후보를 주무르는 우리나라에선 문재인 키드, 심상정 키드, 손학규 키드, 정동영 키드가 쏟아져 나오기 십상이다. 제2의 이석기가 나와도 국민은 알 도리가 없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목숨 걸고 단식을 한 것도 좌파 영구집권을 막기 위해서라고 믿고 싶다. 한국당을 좋아하긴 어렵지만 의원 수 늘리려 제1야당 빼돌리고 공수처까지 만들어 바칠 군소야당보다는 백번 낫다. dobal@donga.com}

    • 2019-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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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심상정과 좌파 독재를 위한 ‘야만의 트랙’

    결국 수순대로 가는 모습이다. 민주국가가 독재로 후퇴하는 공식은 ①위기 때 카리스마적 지도자처럼 등장해 ②계속 적(敵)을 만들면서 ③사법부와 언론, 군부를 제 편으로 만들어서는 ④영구집권을 위해 선거제를 바꾸는 것이라고 지난해 영국 이코노미스트지가 소개했다. 우리의 집권세력은 ③번과 ④번을 패키지로 묶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태우는 정치력을 발휘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으로 사법부와 검경을 확실히 장악하고,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개정안으로 군소야당 특히 위성 정당 같은 정의당 의석을 늘려줌으로써 좌파 독재를 꾀하는 ‘야만의 트랙’ 또는 트릭이다. 자유한국당에선 “공수처를 주고 선거법을 막자”는 소리가 나온다. 공수처는 한국당이 집권하면 폐지할 수 있다는 정치 공학적 해법인 듯하다. 그들에겐 더 중요한 선거제가 개편돼 내년 총선에서 패배하면 돌이킬 방법도 없다는 논리다. 일리가 없진 않다. 독일식 연동형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한다고 해서 내각책임제 아닌 우리나라에서 독일처럼 협치와 연정(聯政)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그렇게 좋은 제도라면 많은 나라가 도입하지 달랑 독일만 할 리도 없다. ‘초과 의석이 발생해 정치적 불안정성을 높이고 여소야대가 일상화돼 입법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민주연구원 이슈브리핑에서 지적됐을 정도다.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50% 연동률이어서 비례성이 높지도 않다. 심상정 같은 정의당 실세는 지역구에서 낙선해도 비례대표가 될 수 있게 석패율제까지 집어넣었다. 정당 민주화나 정치개혁과는 거꾸로 갈 판이다. 심상정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사법개혁의 상징’이라며 싸고돈 것은 선거법 개정 이후 닥칠 좌파연대 독재의 ‘미리 보기’였던 셈이다. 안 그래도 지금 집권세력은 공수처 설치가 다급하고 절실하다. 지난해 지방선거 직전 김기현 당시 울산시장을 겨냥한 경찰 수사가 청와대 하명(下命) 수사였다는 의혹까지 터진 상황이다. 검찰은 청와대 심장부까지 칼날을 겨누고 있다. 물론 청와대는 사실무근이라고 했다. 그러나 박형철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이 친문 핵심인 당시 백원우 민정비서관에게 김기현의 비리첩보를 받아 경찰에 보낸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반부패비서관실의 업무 범위를 넘어선 민간인 사찰이 의심스럽다. 대통령 절친인 송철호의 울산시장 당선을 위해 경찰 수사를 유도했다면 징글징글한 ‘국정의 사유화’다. 공수처가 설치되면, 검찰의 청와대 수사는 공수처로 이관된다. ‘조국보다 윗선’이라는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에 대한 청와대 특별감찰 무마 수사 또한 공수처로 넘어갈 것이다. 대통령이 공수처장을 임명하기 때문에 수사와 기소는 윗분의 뜻을 받들어 조용히 뭉개질 공산이 크다. 우리들병원의 특혜 대출 의혹을 비롯해 정권 후반기로 갈수록 온갖 비리 의혹이 튀어나와도 검찰은, 국민은 눈과 귀를 가려야 한다. 그러자고 집권세력은 세계에서도 유례가 없는 공수처를 설치하려는 것 같다. 개돼지에게 잠깐 욕을 먹고 군소야당 요구대로 의원 정수를 늘려주거나, 제1야당 요구대로 선거법 개정을 포기하면 빅딜은 가능하다. 여당과 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가칭)은 어제 한국당을 뺀 ‘4+1 협의체’에서 공수처 단일안 만들기에 들어갔다. 위헌적, 반(反)민주적 공수처를 선거제와 거래해 자기네 밥그릇 키우겠다는 야당들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한국당이 합세해 공수처의 기소권을 없애는 식으로 독기를 뺀다 해도 ‘정권 보위처’라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는다. 야만의 트랙 위에서 한국당이 사는 길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지키는 것밖에 없다. 선거법 개정 막겠다고 삼권분립까지 위협하는 공수처를 허용하는 것은 당신들 금배지 지키기에 불과하다. 현행 선거제로 총선을 치른대도 지금 같은 한국당은 승리 못 한다. 집권해서 공수처를 없애면 된다는 한국당의 착각이 더 놀랍다. 현행 선거제인 소선거구제 선거법 개정안도 1988년 3월 8일 새벽 2시 여당인 민주정의당의 날치기로 통과됐다. 지역구 의석수 1위 정당이 전국구 의석(75석)의 절반을 가져가는, 기울어진 운동장법이다. 그럼에도 유권자들은 여소야대(與小野大)를 만들어 여당을 응징했다. 국민의 현명함을 모두가 믿고 힘을 냈으면 한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19-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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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北이 원하는대로 가고 있다…정의용의 亂

    ‘문빠’를 제외한 국민이 가장 우려하는 것이 나라가 북한이 원하는 대로 가고 있다는 거다. 문재인 대통령은 19일 ‘2019 국민과의 대화’에서 남북관계가 보람스럽고 전쟁 위협도 제거됐다고 했지만 다수 국민에겐 그렇지 않다. 정부가 9·19 남북군사합의로 무장해제를 하는 사이, 북은 핵 폐기는커녕 우리 요격미사일로도 못 막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신종 단거리 탄도미사일까지 게임 체인저 3종 세트를 완성했다. 한 국가의 파워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전략이 전쟁 아니면 공갈이다. 북에서 한번 공갈을 치면 이 정부는 설설 긴다. 남북 권력관계가 역전된 것이다. 23일 0시 지소미아(GSOMIA·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에 이어 자칫하면 북의 수십 년 숙원사업인 주한미군 철수까지 실현될 조짐이다.● 김정은이 한미군사훈련 이해했다고? 그 맨 앞에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헷갈리지 말기 바란다. 국가안보실장이 국방·외교·통일·행정안전부 장관 역할을 합친 듯한 역할을 해서 엄청 높아 뵈지만 헌법기구인 NSC와 달리 국가안보실은 대통령비서실의 한 조직이다. NSC 의장인 대통령은 회의를 소집하고 주재하며 국무총리로 하여금 그 직무를 대행하게 할 수 있지만 비서인 정의용은 NSC회의에서 위임한 사안을 처리하는 상임위원회의 위원장일 뿐이다.작년 3월 6일 김정은을 만나고 돌아와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국민 앞에 밝힌 사람이 정의용이었다. 북측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고 보고한 거다. 작년 4월 진행 예정이던 한미 연합 군사훈련에 대해서도 김정은이 “예년 수준으로 진행하는 것을 이해한다”고 말했다고 정의용은 강조를 했다. 이 대목은 특히 중요하다. 최근 북이 한미연합공중훈련에 대해 격렬한 비난을 퍼부었고, 미국이 연기를 발표했는데도 19일엔 완전 중단까지 요구했기 때문이다. ● 정의용수첩 메모, 김정은 발언 맞나김정은과 면담 당시 정의용이 펼쳐놓은 수첩이 수상하다. 그가 귀국하기 전 사진으로 먼저 공개된 수첩엔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미 연합훈련으로 남북관계가 다시 단절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는 메모가 적혀 있었다. 김정은이 한미훈련을 반대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 밑에는 ‘또 한번의 결단으로 이 고비를 극복 기대’라는 메모가 있다. 김정은이 “4월 한미훈련을 앞두고 있지만 또 한번 결단을 내려 이 고비를 극복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메모다.그 아래 ‘전략무기 전개’에 밑줄이 그어져 있고 ‘작년 핵·미사일 실험은 유일한 대응조치’ ‘다른 선택 無’ ‘새로운 명분 필요’라고 적혀 있다. 김정은이 “미국이 전략무기를 전개한 데 대해 작년 북에서 핵·미사일 실험을 한 것은 유일한 대응 조치였고, 다른 선택이 없었다”고 설명한 것으로 추정된다.●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도 못 믿는다정의용은 귀국보고에서 그 메모가 김정은의 말이 아니라고 극구 강조를 했다. 김정은과 면담할 때, 한미훈련 문제가 제기될 경우 남북관계가 단절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설득해야겠다 싶어 자신이 적어놨다는 거다. 그렇다면 왜 북이 이제 와서 미-북 비핵화 협상 조건으로 한미훈련 완전 중지를 요구하는지 말이 안 된다. 그 말이 거짓이라면 정의용이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밝힌 것도 의심스러워진다. 외교관 출신인 그가 단어 하나하나의 중요성을 모를 리 없다. 김정은이 핵포기를 한다는 발언은 없다는 데 전문가들도 주목을 했다. 북에서 주장하는 ‘한반도 비핵화’란 북에 있는 핵무기를 폐기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주한미군 철수는 물론 한반도 핵우산 보장 철회, 일본과 괌에 있는 미국의 핵무기 철수까지 거의 무한대의 범위다. 북은 자기네를 불안케 하는 이런 위협 요소가 다 사라져야 핵을 가질 이유가 없어진다고 명백히 밝힌 셈이다. ● 미국선 “김정은이 비핵화 말했다” 발표 정의용이 방북 결과를 설명한다며 미 백악관에서 가진 브리핑 내용은 이와 다르다. “저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의 지도자인 김정은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김 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음을 언급하였다고 하였습니다(I told President Trump that, in our meeting, North Korean leader Kim Jong Un said he is committed to denuclearization).” 외교관들은 ‘commit’ 라는 단어를 함부로 쓰지 않는다. 트럼프로선 김정은이 자기 입으로 ‘북한 비핵화’를 책임질 것을 약속했다고 말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브리핑이다. 정의용이 대한민국 국민 앞에서와 미국 대통령 앞에서 다른 말을 한 것이다. 둘 중에 하나는 속았다고 할 수 있다. 정의용이 문 대통령에게도 거짓을 보고하진 않았을 것이다. 국민에게 한 말과 똑같이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전했다면, 문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는 물론 그 이상까지 예상하고 뚜벅뚜벅 수순을 밟아가는 것일 수 있다. ● 북은 ‘왜놈들과 협정’ 지소미아 반대했다북이 한미동맹 만큼 싫어하고 겁내는 것이 한미일 안보 공조다. 2012년 지소미아 체결 직전까지 갔을 때는 “이명박 친일친미 정권이 기어이 미제의 압제에 홀려서 우리 민족의 불구대천과도 같은 원수의 나라인 왜놈들과 협정을 맺은 것은 공화국과 인민들을 기만하고 침략행위 앞에 굴복당한 것”이라고 우리민족끼리 사이트를 통해 격하게 비난했다. 지소미아가 파기되면 주한 미군이 위험해지고 한미동맹 역시 위태로워진다는 우려가 한미 양국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북이 원하는 길이기에 청와대는 흔들리지 않고 밀어붙이는 모양새다. 그래서 국민이 불안하다는 것이다. 1년 8개월 전 북측에 핵 폐기 의지가 있다고 밝힘으로써 여기까지 밀고 온 정의용이 의심스러워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과연 정의용은 정직한 대통령특사였는가. 지나친 애국심이나 충성, 또는 고희(古稀)를 넘겨 올라앉은 고위직에 눈멀어 세상을 속인 건 아니었는가. ● 대통령 책임인가, 비서의 잘못인가국민이 뽑은 국회가 있고, 인사 청문회를 거친(물론 다 경과보고서 채택을 받진 못했다) 장관들이 존재하는데 대통령비서실이 입법·사법·행정의 상위에서, 국방·외교·안보·통일 정책까지 주도하는 것은 정상적 민주정부랄 수 없다. 민주주의의 요건인 ‘책임정치’에 어긋난다. 명나라 때 황제의 명에 따라 대규모 해상 원정에 나섰던 정화는 환관이었다. 대통령의 명에 따라 김정은을 만나 오늘의 단초를 만든 정의용도 결국 대통령비서다. 그래도 경제난은 허리띠를 졸라매며 견딜 수 있겠지만 당장 안보에서 ‘환관 통치’의 독(毒)이 퍼지는 형국이다. “지소미아와 한미동맹은 별개”라며 대통령과 국민을 오도하는 정의용의 난리(亂理·도리를 어지럽힘)를 통해. 비서의 잘못된 보고 때문인지, 비서가 대통령에 맞추느라 이 지경까지 왔는지는 알 수 없다. 이러다 10~20년 후에도 대한민국이 자유민주 체제로 존재할지 불안해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dobal@donga.com}

    • 2019-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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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몰락은 청와대에서 시작된다

    불길하다. SM그룹 우오현 회장이 장군처럼 군대를 사열하는 사진을 본 순간, 박연차 회장이 떠올랐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자였던 그가 정권 말 만취 난동을 부린 사건을 보는 것 같았다. 평소 군(軍)에 후원을 많이 해 명예 사단장이 됐다는 우 회장처럼, 태광실업 박 회장도 평소 좋은 일 많이 했다. 하지만 청와대 권력이 없으면 그런 만용은 못 부린다.기업도 아닌 군이 알아서 모셨다면 더 큰 문제다. 그래서 더욱 불길하다는 거다. 정권 말도 아닌데, 안보도 불안한 판에, 벌써 정권 말 증상이 나타났다는 것이. ● 대통령과 총리 동생, SM그룹이 우연히 모셨다고?물론, 당장 범법 행위가 드러났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SM그룹은 대통령의 동생과 총리의 동생을 동시에 고용해 9월 국회서도 거론됐던 요주의 대상이었다.해양수산부 산하 공기업인 한국해양진흥공사는 작년 7월 출범 이후 올 8월까지 28개 선사(船社)에 1조4465억 원을 지원했는데 그중 거의 10%가 SM그룹 계열사에 쏠렸다. 진흥공사 사장이 대통령의 경남고 동기인 황호선이고, 당연히 해운 경력 없는 낙하산이다. 야당은 “SM그룹이 대한민국 권력 서열 1, 2위 동생들을 영입한 덕을 본 게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낙연 총리는 두 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같은 회사에 영입된 것도 우연이라며 일축했다. 흥. 건설업으로 시작해 대관(對官) 업무에 이골이 난 준재벌기업이다. 우연이라고? ● 특별감찰관은 공석, 민정수석은 뭐했나SM그룹은 2017년만 해도 재계 서열 46위였다. 지난해 해운업 계열사인 케이엘씨SM의 선장으로 문재인 대통령의 동생을, 건설업 계열사인 SM삼환의 대표이사로 이 총리의 동생을 모시면서 그룹 서열이 37위(2018년)→35위(2019년 5월)로 뛰었고, 공공사업 수주 건수도 부쩍 늘었다. 야당 지적대로 청와대 특별감찰관이 있다면 진작 들여다봤을 기업이다. 특별감찰관은 지난 정부 때 우병우 민정수석을 들여다보다 되치기당한 뒤 지금까지 공석이다. 청와대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만 고대하는 척하며 문 정부 출범 절반이 지나도록 권력 주변 감시에 손놓은 상태다. 특별감찰관이 없으면, 민정수석이 들여다봤어야 했다. 문 대통령도 2018년 6월 18일 조국 당시 민정수석에게 “대통령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에 대해 민정수석실에서 열심히 감시해달라”고 지시한 기록이 있다. “민정수석이 중심이 돼서 청와대와 정부 감찰에서도 악역을 맡아달라”고까지 했다. 하하 그 민정수석이 무엇을 해왔는지, 지금 국민은 안다. 조국이 알지 못하거나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까지.● 대통령책임제에선 비서실장 책임이다권력 붕괴는 청와대에서 시작된다. 전임 정부의 김기춘 비서실장은 ‘윗분의 뜻’을 받드느라 비선 실세는 물론 문고리 권력도 견제하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 때 박연차의 돈을 받거나 그의 딸을 청와대 직원으로 들여놓은 것도 ‘좌희정, 우광재’였다. 대통령비서실장 책임이 크다. 문제가 생기면 내각을 해산하는 내각책임제와 달리, 대통령책임제에선 대통령을 어쩔 수 없기에 비서실장에게 책임을 묻는다. 그래서 역대 대통령들은 문제가 생기면 쓴소리 비서실장으로 교체해 심기일전을 꾀하고, 국민을 안심시켰다. 노 정부 말기, 대통령 부인이 박연차의 돈을 받았을 때 비서실장이 문 대통령이라는 기억은 하고 싶지 않다. 노영민 비서실장은 올 초, 조국 당시 민정수석 아래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유재수 감찰 무마 폭로 이후 청와대에 입성했다. 원조 친문의 귀환이고 강한 청와대를 상징한다. 대통령 지킴이를 자처해온 노영민을 청와대에 들였으니 대통령으로선 편한 실장을 택한 셈이다. ● “밀리면 끝장”이라는 노영민의 ‘환관 통치’2012년 대선, 2015년 재보선 패배 뒤 “실패했던 정무적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 여전히 비선으로 문재인을 보좌하고 있어 문제”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노영민이었다. 2017년 대선 보좌는 성공 보좌했다고? 미안하지만 나는 탄핵 여파로 거저 얻은 승리라고 본다. 노영민이 탁월한 전략가라면 대통령 발밑이 왜 벌써 무너지겠나. 대통령 임기 중반을 맞았다고 노 실장 등 청와대 3실장은 10일 초유의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인사에 책임을 지고 사퇴해도 모자랄 판에 이들은 국정 운영에다 내년 총선까지 언급하는 ‘환관 통치’를 대놓고 드러냈다. 최근 탈북 주민의 북송 결정도 청와대 안보실에서 내렸다고 통일부 장관은 고백했다.‘밀리면 끝장’으로 믿는다는 점에서 노영민의 판단은 맞다. 독재는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연구한 아산정책연구원 장지향의 논문에 따르면, 2011년 ‘아랍의 봄’도 독재자가 시위대에 양보하는 순간 운명이 결정된다. 군과 경찰 고위관료 등 집권 네트워크 내 엘리트들이 독재자를 더는 믿지 못하고 제 살길을 찾아 돌아서면서 정권은 무너지게 됐다. ● 비서진 대거 출마…청와대 탈출인가 밀린다고 다 죽진 않는다. 임기 초반부터 광우병 촛불시위로 공격받은 이명박 정부는 정권 중반 중도실용정부로 국정 방향을 전환해 결국 정권 재창출에 성공했다. 신군부정권 전두환도 6월 항쟁에 완전 손들었으나 행인지 불행인지 김영삼·김대중의 분열로 후계자 노태우에게 정권을 물려줄 수 있었다.문재인 정부도 임기가 절반이나 남았다. 국정의 방향을 바꿀 시간은 얼마든지 있다. 경제도, 외교도, 안보도 위태로운 지금, 이대로 계속 간다면 베네수엘라처럼 희망이 없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내년 4월 총선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대선도 장담 못 한다며 참모진을 대거 내보낼 태세다. 자기들이 엄청 일 잘해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고 믿는 모양이다. 착각은 자유다. 이 엄중한 시기에 서생원처럼 서둘러 청와대를 탈출하려는 것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국민은 비서실장에게 악역을 원한다다시 한번 간곡히 말씀드린다면, 국민이 비서실장에게 기대하는 것은 악역이다. 대통령이 불편해할 만큼 쓴소리 할 수 있는 사람은 대통령 부인과 대통령비서실장밖에 없다.박근혜 전 대통령은 2기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자신을 편하게 해주는 김기춘을 택했다. 너무 이른 선택이었다. 친문 원조 노영민도 다르지 않다. 대통령을 편하게 해준다고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것이 간신이고, 피곤하지 않게 해준다고 알아서 국정을 처리하는 것이 환관 통치다. 대통령이 불편해야 국민이 편해진다. 노영민이 제 할 일을 못 한다면, 비서실장을 바꿔야 한다. dobal@donga.com}

    • 201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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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환관 통치인가, 제왕적 대통령인가

    “지난 2년 반은 대전환의 시기였습니다. 과거를 극복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토대를 마련한 시기였습니다. … 함께 잘사는 나라의 기반을 튼튼하게 하는 데 주력했습니다.”(10일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 “지난 2년 반은 넘어서야 할 과거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전환의 시간이었습니다. … 함께 잘사는 나라로 가는 기반을 구축하고자 노력을 기울였습니다.”(11일 문재인 대통령) 대통령이 자기 비서실장의 기자간담회 모두발언을 다음 날 거의 그대로 따라하는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노 실장 발언 원고에서 “대통령을 보좌하는 3실장이 원팀이 되어서 무한책임의 자세로 일하겠다”는 한 대목만 빼면 대통령 말씀이라 해도 믿을 뻔했다. 청와대 3실장 간담회가 하필 대통령 모두발언이 공개되는 수석·보좌관회의 하루 전에 열려서라고 간단하게 볼 수도 있다. 노 실장으로선 대통령과 뇌파까지 통하는 관계임을 만방에 알린 셈이니 감동일지 모른다. 그러나 정상은 아니다. 노 실장은 “탕평인사를 강화하겠다”며 인사권을 과시했고 공천권까지 쥔 것처럼 총리 거취도 언급했다. 경제 체질 개선과 전쟁 위협 없는 한반도 평화를 자부한 건 물론이다. 대통령이 이런 비서진에 둘러싸여 있으니 “국민이 변화를 확실히 체감할 때까지 일관성을 갖고 달려가겠다”고 되뇌는 것도 당연하다. 비정상(非正常)도 계속되면 무감각해진다. 청와대가 소통 강화를 위해 현 정부 들어 처음 합동간담회를 열었다지만 3실장 아니라 비서실장 단독으로도 기자들 모아놓고 정견 발표를 한 전례는 찾기 어렵다. 문 대통령이 참여정부 대통령비서실장이던 2007년 3월 29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대통령 개헌안 4월 중 발의”를 선언했다가 2주 뒤 긴급간담회에서 사실상 철회를 밝힌 정도가 고작이다. 기자가 대단해서가 아니다. 노 실장이 취임 때 말했듯 “실장이 됐든 수석이 됐든 비서일 뿐”이어서다. 대통령비서실은 헌법에 명시된 정부기관도 못 된다. 정부조직법 14조에 ‘대통령의 직무를 보좌하기 위하여 대통령 비서실을 둔다’고 돼있을 뿐이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 때 정권의 2인자, 실세, 심지어 대통령급 실장이라고 불렸던 박지원 당시 비서실장도 “비서는 입이 없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 전인 2017년 5월 4일 통합정부추진위원회를 통해 “일상적인 국정 운영은 책임총리를 비롯한 내각이 담당토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원하는 국민 뜻을 잘 알기 때문일 터다. 거짓이었다. 취임사에선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최대한 나누겠다”고 했지만 대통령비서들이 제왕처럼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에게 고함치는 상황이 됐다. 유능하면 또 모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국정 운영의 중추’라고 한 것도 끔찍한데 문 대통령은 ‘국정을 이끄는 중추이자 두뇌’라고 격상까지 시켰으니 국민은 불안해 못 살 판이다. 진보적 정치학자 박상훈은 작년 5월에 낸 책 ‘청와대 정부’에서 “대통령중심제라고 비서실이 대통령을 대신해 일하는 건 대통령 권한을 대신 행사하는 일”이라고 했다. 군주정이나 권위주의에 가깝다는 지적은 섬뜩하다. 비서실 통치, 옛날로 치면 환관 통치는 박정희 독재의 유산이다. 국회와 집권당을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시키고 대통령 뜻대로 하기 위해 비서실 역할과 위상을 극대화시킨 대통령이 박정희였다. 조국이 맡았던 민정수석 자리는 1969년 3선 개헌을 밀어붙이려고 박정희가 처음 만든 권력기관이다. 문 대통령이 진정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면 청와대가 아니라 내각과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해야 할 것이다. 갈등과 이견은 국회를 통해서 풀어야지 청와대 행정명령으로 밀어붙일 일이 아니다. 정 아쉬우면 노 실장을 총리로, 수석들을 장차관으로 임명하면 될 일이다. 그럴 능력도 자신도 없지만, 민주주의야 거꾸로 가든 말든 청와대가 혁신·포용·공정·평화의 길로 흔들림 없이 달리면 새로운 대한민국이 된다고 치자. 그렇다면 왜 대통령 따님은 이 희망찬 나라를 떠나 동남아에서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19일 열리는 ‘2019 국민과의 대화, 국민이 묻는다’에서 대통령에게 누가 좀 물어줬으면 좋겠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19-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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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나꼼수 법무부’ 우리들병원 수사 막을 참인가

    법무부가 급격히 ‘나꼼수화(化)’하고 있다. 독재 시절 뺨치는 언론통제 규정을 감히 법무부 훈령으로 내놓더니, 1일 ‘버닝썬’ 수사팀 파견검사에게 복귀 명령을 내렸다. 사건의 핵심인물인 윤규근 총경 수사를 여기까지만 하라는 메시지다. ● ‘경찰총장’은 보통 경찰이 아니었다‘승리 단톡방’에서 경찰총장으로 언급된 윤 총경은 버닝썬만 개입한 경찰이 아니었다. 우리들병원의 의문스러운 1400억 원 대출과 사기 사건에 여권 인사들이 얽혀 있는데, 이 수사를 뭉개는데도 청와대 윤 총경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지난달 국감에서 야당은 이 문제를 제기해 배성범 서울중앙지검장으로부터 “제가 잘 살펴보겠다”는 확답을 받아냈다. 그런데 법무부가 살펴볼 것 없다며 급히 수사 검사를 불러들인 형국이다. 물론 법무부는 “검찰 직접수사를 축소하는 검찰개혁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내 눈엔 정권 차원의 게이트가 드러날까 봐 서둘러 꼼수를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윤 총경처럼 입 안의 혀 같은 경찰한테 수사종결권을 주어 검찰이 관여 못 하게 하는 것이 검경수사권 조정이고, 검찰개혁인 셈이다. ● 정유라 사건 초기처럼 묻힐 수도 우리들병원 사건은 지난 5월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김남우)에서 실체가 없다며 종결한 사건이었다.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10월 7일 국감에서 “혹시 우리들병원에 관련된 산업은행의 1400억 원 특혜 대출 의혹 들어보셨느냐”며 문제를 제기했지만 아직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2014년 4월 8일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의 안민석 의원이 정유라의 ‘승마 공주’ 특혜 의혹을 제기했었다. 그때 그 폭발성을 모른 채 넘어갔던 상황을 연상케 한다. 우리들병원은 이 병원 이상호 회장과 전처 김수경 씨가 친노로 유명하다. 이들이 A 씨와 동업한 사업이 실패하면서 이상호에게 신한은행 대출 260억여 원을 포함해 1000억 원이 넘는 빚이 쌓였다. 이를 갚겠다며 이상호가 2012년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에서 1400억 원을 대출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신한은행이 동업자 A 씨의 서명을 위조했고, 이를 알게 된 A 씨는 신한은행 관련자들을 사문서 위조 등 혐의로 고소했다. ●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에서 나섰다고? 조선일보 6월 11일 인터넷판에 따르면, A 씨는 자신과 알고 지내던 더불어민주당 정재호 의원(경기고양을)과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노무현 청와대 사정비서관을 맡았던 신현수 변호사 등이 이 사건과 관련해 자신과 신한은행 양측 간 중재를 시도한 정황이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검찰은 “A 씨를 VIP로 담당한 신한은행 측이 신뢰를 바탕으로 서류 작업을 했을 뿐, 범죄의 고의를 가지고 문서를 위조했다고 볼 정황과 증거가 부족하다”며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여권 인사 연루설도 실체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는 거다. 검찰은 왜 그런 결론을 내렸을까. 채이배 의원이 들이댄 자료를 보면 정황과 증거는 차고 넘친다. 검찰 이전에 경찰 수사도 중단된 적이 있었다.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은 3월 13일 “이 사건이 중간에 수사가 중단된 것은 정권 실세들의 외압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고 폭로했다. ● 언론은 이미 의혹을 보도했다퍼즐을 찾아 올라가면 주간조선 2월 17일자 단독보도가 나온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민정비서관실에서도 이 사건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당시 사건을 보고받았던 민정비서관실의 직원은 경찰 소속이었는데 지난해 8월 인사에서 경찰청 핵심 보직으로 영전했다. 그는 산업은행 대출건 및 A 씨 관련 사건을 계속해서 체크해 왔던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다.”그 경찰 소속의 민정비서관실 직원이 바로 윤 총경이었다. 우리들병원은 대통령의 사위와 관련된 사건에도 얽혀 있지만 정말이지, 거기까지 의심하고 싶진 않다. ● 검찰이 어디까지 파헤칠지 두려운가승리네 나이트클럽 버닝썬과 경찰의 유착 사건이 불거졌을 때 민갑룡 경찰청장은 “경찰의 명운을 걸고 전 경찰 역량을 투입해 범죄 조장 반사회적 풍토를 뿌리뽑겠다”고 했다. 그러나 단속 정보를 알려준 정도만 밝혀냈을 뿐 연예인들로부터 뇌물 받은 건 건드리지도 않았다. 경찰 역량이 그 수준인 것도 당연하다. 윤 총경은 노무현 정부 때도 청와대 파견 근무를 한 데다 조국 당시 민정수석과 다정하게 사진을 찍는 사이여서 경찰 내부에선 ‘정부 실세’로 유명하다. ‘경찰총장’인 그를 어찌 감히 경찰청장이 건드리겠나. 윤 총경의 뇌물 건도 검찰이 사건을 넘겨받았기에 찾아낸 것이었다. 경찰이 거의 고의적 부실 수사를 한 데는 청와대 민정라인이 개입했을 공산이 크다. 바짝 독이 오른 검찰이 여기까지 파헤칠까 봐, 아니 어디까지 밝혀낼지 알 수 없어 청와대는 긴장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법무부가 꼼수를 부렸다. 파견검사 복귀하라. 오버. ● 검찰의 힘을 빼서 경찰에 실어준다니윤 총경 사건을 보면, 정부 주장대로 검찰의 힘을 빼자고 경찰 권력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여권이 밀어붙이는 대로 경찰에 수사개시권과 종결권을 주면 윤 총경 사건은 그냥 묻히는 거다(물론 검찰도 우리들병원 사건을 그냥 묻어버렸다. 흑흑). 문무일 전 검찰총장이 경찰권력의 비대화가 국민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검경수사권 조정안에 반대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경찰이고 검찰이고, 이들이 하늘을 쓰고 도리질할 수 있는 힘은 청와대에서 나온다. 청와대가 인사권을 틀어쥐고 힘을 빵빵하게 실어주기 때문이다. 그나마 검찰은 준사법기관이라는 자존심이 있다지만 경찰의 중립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의 명운을 걸었다면 진작 명이 끊어졌어야 마땅한 현 경찰청장이 ‘사냥처럼 시작된 조국 수사’로 시작되는 민주연구원 보고서를 전 경찰간부들에게 읽힌 게 그 증거다. ● 제발 검찰‘개혁’이라고 부르지 마시라정치권에서 어떤 야합을 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검찰‘개혁’이라는 말은 빼기 바란다. 공수처 설치는 괴물 신설이고, 검경수사권 조정은 경찰의 괴물화로 귀결될 공산이 크다. 불길한 예언 같아 기록하고 싶진 않지만, 기요틴에 의지한 자는 기요틴에 목이 잘렸다는 역사가 있다. 공수처는 그렇게 되지 않기 바랄 뿐이다.dobal@donga.com}

    • 2019-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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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대통령 퇴임 이후가 그리 두려운가

    더불어민주당에서 보기 드물게 할 말은 하는 금태섭 의원이 15일 김오수 법무부 차관에게 물었다. “고위공직자를 수사대상으로 하고 기소권과 수사권을 모두 가지는 지금 정부안과 같은 공수처가 전 세계에 존재하는 케이스가, 사례가 있습니까?” 차관은 답을 못 했다. “단 한 곳인가에 그 유사한…” “대개 수사권만 갖고 있지만 기소도 일부 할 수 있는 곳이 있었던 것 같은데…” 얼버무렸을 뿐이다. 나중에 직원이 찾아줬다며 영국의 중대부정수사청을 언급했으나 여기는 공직자만 대상으로 하지 않아 답이 못 된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로 가는 문재인 정부에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세계 최초의 경험을 안겨줄 공산이 크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어제 조국을 입에 올리지도 않은 채 송구하다며 검찰개혁의 대의와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강조했다. 여권 따라 검찰개혁, 검찰개혁 하다간 노무현 정부 때 강행했다 위헌 판정으로 도로 물렸던 ‘개혁입법’처럼 될 수가 있다. 여당 법안대로 공수처가 설치되면 정부는 ‘오만한 검찰 권력’을 단칼에 무력화할 수 있을 것이다. 판검사에 대한 기소권이 있기 때문이다. 민변 출신의 황희석 검찰개혁추진지원단장은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는 공수처 수사 대상”이라고 밝혀 조국 일가 수사팀에 대한 단죄까지 예고했다. 공수처는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으로 김경수 경남지사를 법정 구속했던 성창호 판사도 직권남용죄로 기소하거나 개인 비리를 파헤칠 수도 있다. 재판의 독립을 보장하는 헌법정신이야 무시하면 그만이다. 공수처 권력이 법원과 검찰을 능가한다는 점에서 국가기관 서열이 사법부를 앞서는 중국 국가감찰위원회와 맞먹는다. 그러나 공수처는 전현직 고위공직자와 그 가족이라는 ‘귀족’만을 일반 국민과 분리해 수사한다는 것부터 ‘사회적 특수 계급의 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한다’는 헌법과 어긋난다. 문 대통령이 공수처의 이 같은 불공정성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왜 공수처를 밀어붙이는지 이유가 궁금한 것이다. 조국 사태에 항의해 삭발한 이언주 의원은 두 전직 대통령과 수백 명의 정적을 제거하고 돌아보니 임기 후가 겁이 나는 것이냐고 물었다. 좌고우면(左顧右眄)하지 않는다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보면 대통령으로선 좌를 높이고 우를 잠재울(左高右眠) 공수처가 절실할 수도 있다. 산업은행의 우리들병원 1400억 원 특혜 대출에 여권 인사 연루 의혹이 다시 불거진 상태다. 7일 국감에서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신한은행의 사문서 위조 등에 대해 ‘증거자료와 같이 혐의가 인정된다’고 적힌 서류를 읽어주며 “검찰이 5월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했다니 황당하다”고 지적해 서울중앙지검장으로부터 “잘 살펴보겠다”는 답을 받아냈다. 우리들병원은 대통령의 사위가 재직했던 한 게임업체와 관련된 벤처캐피털기업 케이런벤처스와도 관계가 있다. 6월 자유한국당에선 “케이런벤처스가 공기업인 한국벤처투자로부터 280억 원 투자를 받았다”며 특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주형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이 당시 한국벤처투자 사장이다. 물론 청와대는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그러나 조국 일가 수사하듯 서울중앙지검이 똑똑히 살펴본다면 결말은 달라질지 모를 일이다. 검찰이 수사 중이라고 해도 공수처가 신설돼 이첩을 요구한 뒤 혐의 없다며 덮어버리면 국민은 알 도리가 없다. 대통령 임기 중반이 다 된 지금, 공수처 설치를 서둘러야 할 이유가 차고 넘치는 셈이다. 공수처법안과 함께 패스트트랙에 올라간 선거법개정안의 국회 부의 시점이 11월 27일이다. 예산안 처리 시한은 12월 2일로 공수처법안이 부의 되는 3일과 맞물려 있다. 여당은 일부 야당에 의원수 확대와 쪽지예산을 얹어주며 ‘거래’를 해서는, 공수처법안까지 한꺼번에 우당탕 처리할 복안인 듯하다. 그리고 나머지 야당의 장외투쟁에 귀 막은 채 내년 총선까지만 버티면 20년 좌파 집권도 가능할 터다. 모든 정치의 원동력은 통치자의 사적(私的) 이해관계에 따른 계산과 조치라고 ‘독재자의 핸드북’이라는 책은 갈파했다. 통치자까진 아니어도 정치판 사람에게는 개인적 정치생명이 최우선이다. 그래도 명심하기 바란다. 금배지에 현혹돼 공수처를 허용한다면 한 번도 경험 못 한 나라를 만든 공범으로 기록된다는 사실을.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19-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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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나꼼수’가 주름잡는 대한민국

    신문·방송사에 견학 온 학생들을 가끔 만난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질문도 받는다. 한번은 한 남고생이 ‘김어준의 다스뵈이다’를 참고하느냐고 묻는데, 말문이 턱 막혔다. 다스뵈이다는 모르지만 형님 격인 나꼼수는 안다. 2011년 4월부터 2012년 대선 전날까지 팟캐스트로 방송되면서 새로운 미디어가 한국 정치를 어떻게 뒤흔들 수 있는지 보여준 혁명적 미디어콘텐츠였다. ● 2012년 선거 망친 ‘정치포르노’ 인쇄기술이 종교개혁을 낳았듯 신종 미디어는 신종 혁명을 낳는다. 좌파의 정권교체를 위해 ‘가카(이명박 대통령) 헌정방송’을 내걸었던 나꼼수도 혁명을 낳을 뻔했다. 방송심의를 받지 않는다는 방어벽 뒤에서 입심 좋은 김어준을 필두로 사실과 주장 분간 없이 터뜨림으로써 정치와 농담(아님 말고), 정치와 IT(정보통신기술)연예오락예능프로를 뒤섞은 ‘정치포르노’로 대중을 열광시켰다. 안타깝게도 정권교체에서 나꼼수는 자살골이었다. 2012년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지역구에 공천된 나꼼수 멤버 김용민이 “라이스 미 국무장관을 강간해 죽이자” 같은 막말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문재인 당시 상임고문은 마냥 싸고돌아 대선 표까지 깎아먹었다. 뭣이 중한지 알아보는 판단력이 의심스럽다는 거였다. 그랬던 나꼼수가 지금은 대한민국을 주름잡는 주류로 벌떡 섰다. 정권교체 뒤인 2017년 11월 ‘가카 배웅방송’을 내걸고 인터넷방송을 개시한 다스뵈이다 역시 내게 질문한 남고생 등등을 사로잡고 있을 터이다. 문제는 나꼼수가 우리 정치를, 대한민국 전체를 나꼼수 수준으로 하향평준화시킨다는 데 있다.● ‘방송의 나꼼수 현상’ 공정성 깨뜨려김어준은 tbs교통방송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2016년 9월부터 진행했지만 주진우는 작년부터 MBC TV ‘탐사기획 스트레이트’를, 김용민은 작년부터 퇴근시간대에 KBS1라디오 ‘김용민의 라이브’를 진행한다. 정권교체와 함께 전리품 챙기듯 일제히 공영방송에 진출한 거다. 정권에 밉보인 방송인이 ‘블랙리스트’로 찍혀 방송을 떠나는 것이 위헌적이면, 정권에 잘 보였다고 ‘화이트리스트’에 올라 방송을 누비는 것 역시 유치한 일이다. 더구나 국민이 수신료를 내는 KBS, 서울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tbs의 황금시간대를 나꼼수 출신이 장악했다는 건 선거공신들이 공공기관장 한자리 차지한 것과 차원을 달리한다. 군사정권 시절에도 창피했을 어용방송을, 대국민 선전선동이나 다름없는 세뇌작업을 대놓고 하는 모양새다.김어준의 뉴스공장이 9월 전체 아이템 75개 중 50개를 ‘조국 방탄’에 동원하는 식의 편파방송을 하고, 경영난 MBC가 편향성을 지닌 인물에게 사장 연봉과 맞먹는 출연료를 준다는 지적이 이번 국감에서 쏟아졌다. 김용민의 라이브 ‘청취자 청원’ 코너엔 ‘정권의 나팔수-적폐 중에 적폐’ ‘편파방송 그만하라’ 같은 항의가 수두룩하다. 방송법은 ‘방송 보도는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 방송을 감독해야 할 KBS사장, 서울시장은 문제의식은커녕 당당하다. 공영방송의 공정성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공정성을 박살내는 ‘방송의 나꼼수 현상’이다. ● 약자의 언어는 조롱…강자의 조롱은 폭력 작가 공지영은 2012년 서울 여의도 나꼼수 집회 무대에서 김어준에 대해 “저보다 가슴이 큰 B컵 좌파”라고 소개한 바 있다. B컵 좌파든 B급 좌파든, 나꼼수는 “쫄지마, 씨바”를 위악적으로 외치며 약자의 언어인 조롱으로 강자에게 빅엿을 먹인 B급 비주류 문화였다. 권력자를 제외한 만인에 카타르시스를 안겨준 공로, 인정한다. 지금은 나꼼수가 주류이고 강자가 됐다. 강자가 약자에 대해 내뱉는 조롱은 폭력이고, 오만이다. B급 문화란 싼 티와 촌티로 주류문화에 대해 냉소와 조롱, 저항을 할 때 존재의 의미가 있지, 주류가 돼서도 똑같이 굴면 사회 전체를 B급으로 추락시키는 거다. 지금 우리나라가 이런 상태다. 사람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도덕성이나 인성, 자유민주주의적 가치, 사회적 윤리와 정의는 깡그리 무시한 채 우리 편은 무조건 옳다는 ‘내로남불’이 나꼼수를 통해 퍼져나갔다. ‘작전세력’ ‘합리적 의심’ ‘무학의 통찰’ 같은 말을 덧붙여 음모론을 퍼뜨리고는, 아니면 말고! 잘못돼도 책임지지 않는 무도(無道)의 정치도 여기서 확대재생산됐다. ● 이상한 사람은 나꼼수와 얽혀있다현재 우리의 가치관을 혼돈스럽게 하는 사람들이 대개 나꼼수 사단과 얽혀있다는 것이 기이하지 않은가. 증거를 들이대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깻잎머리 나꼼수’ 조국이 대표적이다. 김용민은 2011년 6월 ‘조국 현상을 말한다’라는 책에서 조국이 2017년 좌파진영의 대선주자가 될 가능성을 짚었다. 보은 차원인지 조국은 2012년 총선에서 막말 파문으로 낙선한 김용민의 후원회장을 맡기도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빼놓을 수 없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의 1억 원 피부과 출입설을 나꼼수가 퍼뜨리지 않았다면 박원순은 지금 그 자리에 없었다. 김어준의 편파방송을 왜 감독하지 않느냐는 국감 질문에도 연간 300억 원이 넘는 서울시민의 세금을 퍼주는 그는 태연했다.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라며 쉴드를 쳐 듣는 이의 억장까지 무너뜨렸다. 심지어 조국이 법무장관 때 천거해 검찰개혁추진지원단장을 맡은 황희석 법무부 인권국장도 나꼼수와 관련이 깊다. 조국 딸의 성적이 공개됐을 때 “유출한 검사의 상판대기를 날려버리겠다”고 말해 주변을 경악시켰다는 그는 민변 시절 나꼼수 김어준·주진우의 선거법위반 변호를 맡았다. ● ‘닥치고 정치’ 문재인은 ‘진지한 나꼼수’인가 압권은 문재인 대통령이 아닐 수 없다. 김어준은 2011년에 낸 책 ‘닥치고 정치’에서 “이념과 명분과 논리와 이익과 작전과 조직으로 무장한 정치인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보편준칙을, 담담하게, 자기 없이, 평생 지켜온 사람이 필요하다”며 “문재인이란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일찌감치 대통령깜 지지 선언을 했다. 요즘 문 대통령을 보면 ‘진지한 나꼼수’라는 생각이 든다. 국민은 공정을 요구하는데 대통령은 멀쩡하게 수사 잘하는 검찰 대신 검찰 잡는 공수처 설치를 주장했다. 한일 갈등의 해법으로 남북평화경제를 들고 나오는 식의 ‘자다가 봉창’도 기막히지만 내로남불의 예를 들면 한도 끝도 없다. 너무나 진지한 표정이어서 웃을 수도 없다는 점이 더 안타깝다.‘민주주의는 곧 쇠퇴하고, 탈진하고, 자살한다. 이제껏 자살하지 않은 민주주의는 없다’는 말이 있다. 지금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밑에서 미국의 민주주의가 고생하지만 그럼에도 민주주의가 지켜진 저력은 제도 자체보다는 ‘문화’에 있다고 했다. 나꼼수의 문화혁명에 힘입어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이제 제도혁명까지 강행해 한 번도 경험 못한 나라로 끌고 갈 모양이다. ● 대한민국의 나꼼수化…행복한가?정치적 반대세력을 제거해야 할 적(敵)이 아닌 경쟁자로 인정하기, 자기 세력만 옳다는 외고집에 빠지지 않기, 겸손과 절제 등이 민주주의를 지켜온 문화다. 이런 문화의 향상을 방해하는 세력의 출현을 경계해야 한다고 최근 나온 민주주의 교본 ‘민주주의는 만능인가’라는 책은 강조를 했다. 나꼼수가 이런 문화를 개 패듯 패버린 끝에 마침내 대한민국의 나꼼수화(化)는 완수됐다. 물론 우리 사회를 퇴보시킨 원인을 나꼼수 하나에 뒤집어씌울 순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가장 강력한 문화적 코드 중 하나가 나꼼수이고, 나꼼수와 함께 나꼼수가 키워낸 세력이 대한민국을 주름잡고 있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7년 전 우리 국민은 나꼼수의 반윤리적 막말에 냉철히 부표(否票)를 던졌다. 지금 박원순 시장은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청취율 1, 2위라며 박수를 친다. 주류세력의 교체, 좋다. 그럼 B급, 아니 B컵의 주류화가 완성된 지금, 대한민국은 좋은가. 낄낄.dobal@donga.com}

    • 2019-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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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민주주의를 위해 제대로 투표합시다”

    폴란드에서 노벨 문학상이 나왔다. 1962년생 호랑이띠 여성작가 올가 토카르추크가 2018년 수상자로 선정된 거다. 폴란드에 대해 단 두 번 글을 쓴 것뿐인데 꼭 내가 잘 아는 사람이 노벨상을 탄 기분이다. 그의 수상 소감은 특별했다. “우리는 굉장히 중요한 선거를 앞두고 있어요(13일이 총선이다). 그들은 나라를 바꿔놓을 거예요. 우리 제대로 선택합시다. 민주주의를 위해 투표해 주세요.”● 손님 기다리며 소설 읽는 나라, 폴란드 폴란드에서 작가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공산체제 시절에도 택시 기사들이 손님을 기다리면서 소설을 읽고, 노동자들도 시를 읊는 나라가 폴란드다. 강대국에 세 번이나 나라가 찢겼던 시련 속에서 폴란드어로 쓰인 폴란드문학은 민족의식과 자부심을 일깨워주었다. 민주화 이후엔 좀 달라졌지만 폴란드 작가들의 사회적 영향력은 그 어떤 나라보다 크다고 한국외대 정병권 교수는 논문에 썼다. 유럽 지도를 놓고 보면 폴란드는 딱 중국(中國)이다. 독일어 지역과 슬라브어 지역 사이에 위치해 양쪽으로 문화와 이념과 심지어 군대가 제집처럼 들어오고, 또 나갔다. 2차 세계대전 전까지는 민족과 종교가 다른 우크라이나인, 백러시아인, 유태인, 독일인, 리투아니아인 등이 어울려 살았다. 가톨릭국가이면서도 유럽서 박해받던 유태인들의 피난처가 되어준 너그러운 나라였다. 폴란드 여섯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토카르추크는 그 농밀한 역사에 담긴 문화의 다원성과 민속적 다양성에 천착해온 작가다. 집권 법과정의당(PiS) 실세 야로스와프 카친스키가 유럽연합(EU)의 중동·아프리카 난민 수용방침에 격하게 반대하며 “‘무지개색 흑사병’이 우리 가족과 국가의 존립을 위협한다”고 외칠 때, “아니다”라고 말했던 용기도 폴란드의 역사와 문학에서 배웠을 것이다. ● 총선 앞둔 노벨문학상, 나라 분열시켜 개인도 그렇지만 국가도 기나긴 삶과 역사 속에 오류가 없을 수 없다. 토카르추크는 폴란드의 좋은 면뿐 아니라 어두운 면도 제대로 봐야 한다고, 겁도 없이 말해왔다. 2차 대전 중 독일에 점령됐다는 이유로 폴란드가 피해자 코스프레에 안주하며 유태인 학살에 가담한 ‘가해의 역사’를 부인하는 건 지적인 정직성에도, 타인에 대한 도덕적 예의에도 어긋난다고도 말했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며 민족의 순수함과 고결성만 강조하고 싶은 정치인에게 이렇게 정직한 작가는 불편하다. 집권세력은 토카르추크를 반역자라고까지 본다. 이번 노벨상이 폴란드를 또 분열시켰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마침 총선까지 앞둔지라 여권에선 “서구 좌파들이 민족주의 정권을 물리치려고 폴란드 스파이들을 지원한 것”이라는 험한 말까지 나왔다. 여권이 아닌 쪽에선 폴란드가 정권이 원하는 대로 규정되는 나라가 아님이 입증됐다고 환호하는 건 물론이다. ● 돈만 퍼준다면 독재인들 어떠냐고?폴란드 실세, 카친스키가 국민을 결집시킨 비법 중 하나가 ‘우리민족끼리’를 강조하면서 이민족 혐오와 증오를 증폭시키는 것이다(요즘 잘 쓰는 단어로 바꾸면 인종적 종족주의라 할 수 있다). 중동과 아프리카 난민들이 유럽으로 대거 몰려들자 카친스키는 자국의 안전과 국민 보호를 위해 난민 수용 못하겠다고 EU와 맞짱을 떴다. 당연히 국제사회의 평판은 좋지 않다. 극우 민족주의적 포퓰리즘 정당으로 분류되는 법과정의당이 야당과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사법부 적폐청산과 물갈이를 밀어붙여 삼권분립과 법치의 민주주의 원칙을 뒤흔든다고 EU는 제재까지 하고 있다(지난번 ‘도발’에 쓴 얘기다). 그럼에도 폴란드 국민은 민주주의보다는 포퓰리즘에 표를 줄 모양이다. 법과정의당은 최저임금 2배 인상, 육아수당 확대 같은 달콤한 공약으로 민심을 공략하는 데다 우리 기업들이 폴란드에 많이 진출한 데서 알 수 있듯, 아직은 경제가 잘 돌아가고 있어서다. 야당도 지리멸렬한 처지라 13일 총선에선 집권당이 승리할 것이라고 외신들은 점치고 있다. ● 그럼에도 민주주의가 중요한가사회적 약자를 좀 더 배려하는 경제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비판만 할 순 없다고 본다. 재정적 여력만 있다면, 성장의 과실을 고루 나누는 데 반대할 사람도 없다. 2011년 ‘아랍의 봄’을 촉발시켜 독재자를 쫓아냈고, 비교적 순조로운 민주화 끝에 13일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를 치르는 튀니지에서 “일자리가 없는데 민주주의가 뭔 소용이냐”는 불만이 터지는 걸 보면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면 1인당 국민총소득(GNI) 6만 달러가 넘는 홍콩의 반(反)정부 시위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3만 달러가 넘는 한국에서 ‘두 세계’의 시위가 벌어지는 것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없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치는 것 역시 사람만이 할 수 있다(우씨, ‘사람이 먼저다’를 연상시킬 의도는 없다…).다만, 어느 편이 정권을 잡았든 폴란드에는 옳은 건 옳고, 그른 건 그르다고 말할 수 있는 작가가 있어 희망이 있다. 자칭 작가라는 사람이 싸가지 없는 요설(饒舌)로 혹세무민하는 시절이어서 더 부럽다. dobal@donga.com}

    • 2019-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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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사회주의 조국이 그린 ‘한반도 새 질서’

    웬만하면 조국에 대한 관심을 끊으려 한다. 정신건강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칠뿐더러, 조국이 법무부 장관 자리에서 내려오든 안 내려오든 별로 달라질 것도 없을 것 같아서다. 대통령이 조국을 경질하지 않는 한, 조국은 대법원 판결까지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유죄 판결이 나온다면 “무고한 사람 죄인 만들었다”며 사법부에 대한 후폭풍이 엄청날 것이고, 무죄가 나와도 그 후폭풍은 만만찮을 게 틀림없다. 요컨대 나라는 이미 갈라졌고 기차는 가열차게 달리고 있다. 문제는 어디로 가느냐다. ● 법무장관 사상 고백 “난 사회주의자”조국이 한 달 전 인사 청문회에서 한 발언에 단초가 있다. 그는 “사노맹(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에서 이제는 사상 전향을 했느냐”는 질의에 “우리 사회주의 사상과 정책이 우리 대한민국 헌법의 틀하에서 필요하다는 점 말씀드린다”고 답했다.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자유주의자인 동시에 사회주의자”라고 뜻밖에 사상 고백까지 했다. 나는 우리 헌법에 명시된 양심의 자유를 존중한다. 그러나 그 양심이 대한민국과 맞지 않는다면 공직을 맡아선 안 된다고 본다. 2002년 대법원 판례는 ‘공적인 존재의 정치적 이념의 경우, 그 공적인 존재가 가진 국가·사회적 영향력이 크면 클수록 그 존재가 가진 정치적 이념은 국가의 운명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므로 더욱 철저히 공개되고 검증되어야 한다’고 나와 있다. 사회주의자라는 조국에게 전향을 강요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주의자가 법무부 장관직을 수행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대법원 판례대로 공직자의 사회주의 이념은 국가의 운명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공직자 이념은 국가 운명에 영향 미쳐조국의 사회주의 이념은 대한민국의 운명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조국은 “우리 민주주의 헌법하에서 대한민국 헌법의 틀하에서 사회주의 사상과 정책이 필요하다”고 청문회에서 분명히 말했다(자유민주주의 헌법이라고 말하지 않은 데 유의하길). 어떤 사상과 정책을 의미하는지, 그가 1993년 사노맹 사건으로 체포되기 전에 쓴 논문 ‘새로운 한반도질서와 법률투쟁의 쟁점’을 보면 짐작이 가능하다. 1991년 9월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과 1992년 2월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 발효를 앞둔 시절, 그러니까 공산주의 소련이 무너지고(좌파는 보통 ‘현실사회주의 붕괴’라고 말한다) 평화무드에 젖던 그때, 조국은 계급투쟁과 자유를 뺀 개헌을 주장했다.“남한 정부의 ‘대북외교’에서의 유화가 남한 내부의 ‘계급투쟁’에 대한 유화로 곧바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며…(중략) 민중운동은 남한 법체계의 자기모순성을 폭로하고, 나아가 변화한 조건하에서 보다 유리한 투쟁조건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영토조항 개헌·한미동맹 재검토 주장남북한 유엔 가입으로 남북 모두 ‘국가’로 사실상 승인된 이상, 북한은 국가보안법상의 ‘반국가단체’가 아니라고 조국은 지적했다. 따라서 대한민국 헌법 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폐기돼야 한다는 것이다. 힘만 생기면 북한 지역도 남한 헌법으로, 즉 자본주의식으로 규율해보겠다는 고토수복(故土收復) 의지는 남북합의서와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조국은 남북한 정부 간 ‘평화협정’ 체결을 위해 미군이 한국의 영토 영해 영공을 무제한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한 한미상호방위조약 역시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고 했다. 우리 헌법 4조(통일)와 8조(정당)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민주적 기본질서’ 개념의 전면적 재규정도 강조했다. 민정수석 때 대통령 개헌안을 추진하면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자유’를 빼려고 했던 뿌리가 상당히 깊다는 얘기다. 그 이유가 맹랑하다. 논문에서 조국이 펼친 논리는 다음과 같다. “남한 정부의 논리나 헌법학계의 통설에 따르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것은 어떠한 수식어를 붙이든 간에 ‘자본주의체제의 상부구조’를 의미하고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전면 배제한다.” ●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아는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자본주의체제, 즉 시장경제를 의미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 조국의 주장이다. 또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전면 배제해서 안 된다니, 사회민주주의도 아니고, 사회적 민주주의도 아니고, 생경하지 않은가. 한국학술지인용색인을 뒤져봤다. 방인혁, 손호철의 논문은 사회주의적 민주주의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었다. “근로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하는 노동계급의 국가활동의 기본방식. 자본주의사회에서의 이른바 ‘민주주의’,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소수를 위한 ‘민주주의’이며 따라서 그것은 본래의 의미에서의 민주주의가 아니다… 오늘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가 전면적으로 실시되고 있다.”(북한 사회과학원 철학연구소 1983). 국사편찬위원회는 심플하게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사회주의적 민주주의’라고 설명한다. 쉽게 말해 북한식 민주주의가 진정한 민주주의=사회주의적 민주주의라는 거다. 동독이 서독으로 흡수 통일되고, 소련 공산주의가 붕괴되는 판에 조국은 북한식 이념을 배제해선 안 되므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헌법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 30년 전 젊은 날만이 아니라 바로 작년까지도. ● 조국 뺀 ‘개돼지’는 사회주의로 통치?물론 조국은 청문회에서 자신이 자유주의자이자 사회주의자라고 했다.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노력과 능력에 따른 차등 보상을 근간으로 하는 자유주의는 자기네 가족만 누리고, 국가적 시스템과 통제로 결과적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주의는 개돼지 국민에게 적용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결국 조국이 그린 ‘새로운 한반도질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한계를 뛰어넘자는 것이다. 문장이 복잡하지만 조국 논문의 결론을 옮기면 아래와 같다. “유엔 가입과 합의서 채택으로 초래되는 남한 법체계의 자기모순성과 ‘세계적 기준’-소위 ‘자유민주주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기준-에의 미달을 폭로하고 법개폐를 쟁취함으로써 민중운동진영에 유리한 합법고지를 확보해야 하는 것이며, 이렇게 투쟁으로 획득한 진지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자체의 한계를 뛰어넘는 데 도움을 제공할 것이다.”● 사회주의 공직자, 조국 하나뿐인가그들이 30년 투쟁으로 획득한 ‘진지’가 이미 대한민국을 바꿔놓고 있다는 느낌이다. “양심의 자유가 국방의 의무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2004년 대법원 판결이 2018년 뒤집힌 게 한 예다.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신(新)독수리 5형제 대법관들의 안보 인식은 이렇게 다르다(그래서 조국도 대법원까지 간다면 무죄 판결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조국 한 사람이 법무장관직에서 물러나든 말든, 별로 달라질 게 없다는 우울한 예감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라 경제가 어찌되든 청와대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단언하고, 나라가 둘로 갈라졌든 말든 “국론분열 아니다”고 태연하며, 북한이 ‘끔찍한 사변’을 위협하든 말든 정부는 평화롭기 그지없다. 아무리 나라가 망한다 해도 설마 우리나라가 북한처럼 될까 싶기는 하다. 그럼에도 기록을 위해 남겨둔다. 서초동 시위에 모이는 분들은 “우리가 조국이다!” 구호만은 부디 외치지 말았으면 한다. 대한민국 국민이 강남 한복판에서 “우리가 사회주의자다!” 부르짖는 식이면 좀 그렇지 않은가. dobal@donga.com}

    • 2019-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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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책략은 진실을 이기지 못한다”

    어쩌면 문재인 정부는 ‘노무현 정부 2’가 아니라 ‘남자 박근혜 정부’로 기록될지 모르겠다. 제왕적 대통령 소리를 들었던 지난 정부에서 벌어진 일들을 거의 비슷하게, 심지어 더 고약하게 따라가는 모습은 보기에도 괴롭다. 박근혜 정부 2년 차 때 비선 실세 의혹을 폭로한 사람이 청와대 민정수석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 박관천이었다. 문재인 정부 2년 차엔 민정수석 산하 반부패비서관실 특별감찰반 수사관 김태우가 정권 실세 의혹을 폭로했다. 작년 12월 31일 조국 당시 민정수석은 국회에 출석해 “사태의 핵심은 김태우 행정요원이 자신의 비리 행위를 숨기고자 희대의 농간을 부리고 있다는 데 있다”고 밝혔다. 너무나 단정하고도 단호한 모습으로 “단언컨대 문재인 정부의 민정수석실은 이전 정부와 다르게 민간인을 사찰하거나 블랙리스트를 만들지 않았다”고 하는 바람에 설마 민정수석이 거짓말하랴, 국민은 믿을 수밖에 없었다. 법무부 장관 자리에 앉겠다고 조국이 온 국민 앞에서 태연하게 거짓을 말한 것을 보니 그때 그가 했던 말도 거짓이라는 의심이 든다. 김태우는 억울했을 것이다. 김태우가 폭로하고 조국이 부인했던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 최근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을 놓고 재판이 시작됐다. 검찰은 4월 환경부 블랙리스트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김태우가 폭로했던 유재수 부산시 경제부시장의 감찰 무마 사건은 뭉개버렸으나 ‘조국 사태’ 이후 바짝 수사 중이다. 희대의 농간은 김태우가 아닌 조국이 부렸다는 정황이 짙어졌으니 ‘공익신고자’ 김태우의 주장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박관천이 폭로했던 정윤회 문건을 당시 제대로 수사했다면 국정농단과 탄핵 사태를 막을 수 있었다고 조국도 민정수석 시절 장담을 했다. 김태우는 2월 유재수 건 검찰 고발과 함께 “청와대가 드루킹의 대선 댓글 여론조작에 대한 특검 수사 상황을 알아보라고 했다”며 조국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고 밝혔다. 그가 기자회견에서 “2018년 7월 25일 오전 11시 11분 특감반장 이인걸이 검찰 출신 특감반원 4명에게 텔레그램 단체방에 드루킹이 60기가바이트 분량의 USB를 특검에 제출했다는 언론 기사를 링크해 올리며 어떤 내용인지 알아보라고 했고, 정확히 13분 후 박모 특감반원이 내용을 보고했다”고 구체적으로 말한 것을 보면 거짓말일 것 같지가 않다. 유재수 부시장 건은 금융위원회 국장 시절 금품과 청탁을 받았다는 첩보를 청와대 직권으로 무마시켰다는 정도지만 청와대가 드루킹 수사에 개입했다면 차원이 달라진다. 2012년 대선 때 국가정보원장이 국정원 직원을 동원해 대선 개입했다고 재판받는 상황에 벌어진 일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이 2017년 대선에 민간인을 동원해 여론조작을 벌인 것도 모자라 대선 승리 후 청와대가 관여했다면 국기 문란 행위가 아닐 수 없다. 김태우는 “증거자료인 텔레그램 대화 내용은 서울동부지검에서 확보하고 있고, 해당 자료는 수원지검에서도 보관하고 있다”고 분명히 말했다. 검찰은 즉각 드루킹 특검 개입 의혹을 수사하기 바란다. 대통령의 복심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한 특검 수사를 청와대의 누가 그렇게 궁금해했는지, 적잖은 국민이 궁금해하고 있다. 조국은 김태우 때문에 국회 출석한 자리에서 “책략은 진실을 이기지 못한다”고 말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조국의 책략이 이기고 있는 형국이다. 오죽하면 정의당 당원인 동양대 진중권 교수가 “신뢰하던 사람을 신뢰할 수 없게 됐다”며 윤리적으로 완전히 패닉 상태라고 했겠나. “청와대는 문재인 정권에 친화적인 인사들의 비위는 묵인했다”는 김태우의 말대로 이 정권의 국정농단은 아직 감춰져 있을 공산이 크다. 남북경협을 예상하고 북한 골재 채취 권한을 약속한 집권당 중진 의원이 누군지,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비리 의혹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대통령 주변 비리 등 특감반에서 생산한 대부분의 첩보를 조국이 보고받아 문재인 정부의 진실을 너무 많이 알게 됐고, 그래서 대통령이 내치지 못한다는 소문이 맞는 듯하다. 홍위병은 검찰을 흔들고 야당은 무력한 상태다. 책략이 진실을 이길 수 없다는 조국의 말만은 믿고 싶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19-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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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지도자의 과거가 미래 잡아먹는다

    별일이다. 대통령은 “권력기관일수록 더 강한 민주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 검찰권력을 통제하는 건 당연하다는 의미다. 폴란드에서도 그런 말이 나온다. 사법개혁을 강행 중인 집권당, 법과정의당(PiS)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의기관에는 과거 기득권 엘리트에 복무했던 부패한 사법기관을 해체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당 대표이자 실세인 야로스와프 카친스키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헌법에 나오는 균형과 견제 제도 때문에 ‘국가 의지’를 실현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며 개헌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서 국가 의지를 ‘촛불 민심’으로 바꾸면 우리도 많이 듣던 얘기다. 유럽연합(EU)은 이런 폴란드의 사법개혁이 삼권분립과 법치를 파괴하는 것이라며 제재를 가하고 있다는 건 지난번 ‘도발’에 썼다. 독자들 중에는 왜 별로 대단치도 않은 폴란드와 비교해 억지 글을 쓰느냐는 분도 있었는데 정말이지 그런 분들께 묻고 싶다. 그럼 왜 당신의 대통령은 별로 대단치도 않은 나라와 혈세 써가며 정상회담을 했느냐고. 그리고 왜 하필 세계적으로 손가락질 받는 나라의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를 따라가느냐고. ● 댓글 급해도 세줄 요약까진 봐 주세요나날이 민주주의의 새 경지를 보여주는 대통령 덕분에 폴란드까지 훑어보게 됐으니 고맙기 짝이 없긴 하다. 디지털로 글 읽는 분들, 몇 줄 안 보고 휘리릭 내려가 냅다 악플부터 다는 독자들, 아무리 급하더라도 세 줄 요약까지는 봐주셨으면 한다. ① 폴란드와 한국은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지정학적 현실로 인해 역사적, 정서적 공통점이 적지 않다. ② 폴란드는 1989년 공산체제 붕괴 이후, 대한민국은 1945년 해방 이후 잘못된 길로 갔다며 과거 청산에 분주하다. 정권 실세의 개인적 수난사와 관련이 깊다. ③ 10월 13일 총선을 앞두고 실세는 뇌물, 법무장관은 드루킹 같은 인신공격 조작 연루가 폭로된 폴란드. 절대 신념은 절대 부패를 낳는가. ●쇼팽…조성진의 피아노를 좋아하세요2015년 10월 20일 미소년 같은 조성진이 폴란드의 쇼팽 국제피아노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 금메달을 걸어준 이가 안제이 두다 대통령이었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국 피아니스트들의 연주가 뛰어난 것을 보면 쇼팽은 한국과 폴란드의 공동 작곡가인 것 같다”라고 덕담을 한 사람 말이다. 쇼팽(1810~1849)이 그토록 사랑했던 조국(아…또 조국이다) 폴란드는 1772년과 1793년, 그리고 1795년 러시아와 프로이센, 오스트리아(2차분할 때는 제외)에 갈라져 먹혔던 약소국이었다. “폴란드는 아직 죽지 않았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외세가 힘으로 우리에게 빼앗은 것을 칼로 되찾으세”라는 폴란드 국가는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로 끝나는 우리 애국가와 참 비슷하다(“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는 좀 슬프다). “한국과 폴란드는 게걸스러운 주변 강대국들 때문에 상당 기간 동안 지도 위에서 사라져버린 적도 있었다”고 존 미어샤이머는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 한국어판 서문에서 콕 찍어 비교했다. 약소국은 죄가 없다! 평화를 사랑했을 뿐…이라고 해봤자 소용없다. 모든 나라의 운명은 가장 막강한 힘을 가진 나라의 행동 및 결정에 의해 일차적으로 결정된다는 게 미어샤이머의 ’공격적 현실주의‘ 이론이다. 그 이론대로라면 2차 세계대전 뒤 식민지 독립과 새 국가 탄생이 당시 최강국 미국과 소련의 결정에 좌우된 건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일 뿐이다(억울하면 가장 막강한 힘을 갖든가, 아니면 막강 국가의 동맹이 되든가…).●’동양의 폴란드‘라 불렸던 한국연합국 간 가장 논쟁과 갈등을 일으킨 곳이 폴란드와 ’동양의 폴란드‘라 불렸던 한국이었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세력 범위를 좌우할 지정학적 요지였기 때문이다. 1945년 2월 얄타회담은 폴란드에 대해 ①국내외 ’민주적‘ 정당 및 사회단체들과 협의해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②임시정부가 총선거를 실시해 정부를 출범시키기로 정했다. 한국에 대해선 신탁통치가 언급됐지만 결국은 폴란드 모델이 적용됐다(김진웅 경북대 교수 ’제2차 세계대전 후 폴란드와 한국에서의 정부 수립과정 비교). 종전 전에 이미 폴란드를 점령한 소련에 ‘민주적’이라는 건 공산주의를 의미한다(이 해석 역시 한국에서 그대로 적용됐다). 폴란드가 공산주의자들로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거기서 실시한 ‘자유선거’로 공산 정권을 세운 것도 이 때문이었다. 우리나라도 이렇게 될 뻔했다. 남한에 미군이 진주하고 ‘건국의 아버지들’이 소련과 북한의 억지에 결사반대해 공산화를 면했을 뿐이다. 북한은 지금도 미 제국주의가 대한민국을 지배한다며 ‘민족해방 인민민주주의혁명’을 대남전략으로 삼고 있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을 한사코 외면하는 세력은 우리도 과거 폴란드처럼 됐어야 한다는 건지, 그래서 분단 극복과 미군 철수를 외치는 건지 의심스럽다. ●과거청산법 추진하는 폴란드폴란드는 1989년 공산지도부-반체제 인사들 간의 ‘협상혁명’과 ‘선거혁명’을 통해 평화적으로 공산체제를 무너뜨린 대단한 나라다. 그럼에도 현 실세인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법과정의당 대표는 지난 30년간 폴란드가 걸어온 길이 잘못됐다며 과거청산 작업을 주도하고 있다. 시장경제를 도입하면서 과거 공산세력이 기득권을 그대로 이어왔다는 주장이다. 심지어 폴란드 민주화를 이끈 자유노조 지도자이자 대통령을 지낸 레흐 바웬사도 공산당 이중첩자였다며 압박한다. 여기엔 카친스키의 개인사가 크게 작용한다고 본다. 그는 공산세력과도 협조해야 한다는 바웬사의 자유보수 우파와 2001년 결별하고 법과정의당을 창당했다. 도덕적 가치와 정부의 경제 개입을 내건 포퓰리즘 공약으로 2005년 집권했지만 그가 밀어붙인 과거정화법, 미디어규제법 등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으로 뒤집히는 등 국정 혼란을 몰고 왔다(재집권 뒤 헌재법부터 바꿔 장악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2007년 조기 총선에서 카친스키 내각은 정권을 잃었다. 이원집정제인지라 대통령직만 유지하던 쌍둥이동생 레흐 카친스키는 2010년 러시아 땅에서 비행기 사고로 죽고 말았다(포퓰리즘으로 집권… 불의의 죽음… 좀 비슷하지 않은가). ●국정과 역사의 사유화…낯설지 않다과격성으로 민심을 잃었던 카친스키는 자신은 철저히 뒤에 숨은 채 새 얼굴을 내세워 2015년 재집권에 성공했다. 동생이 암살당했다고 믿는 그는 식민 종주국이었던 러시아는 물론, 과거 집권세력에 대한 불신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카친스키는 30년 전의 공산세력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현재의 법과 제도를 만든 것이고, 폴란드의 모든 문제가 여기서 비롯됐다고 믿는다”고 프리덤하우스는 분석했다. 이를 뒤엎으려면 세 번은 더 집권해야 하는데, 2007년엔 개혁을 세게 밀어붙이지 못해 실패했다는 ‘잘못된 교훈’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부친이 나치 독일에 저항했던 전력 때문인지 카친스키는 독일에 나치 점령 때의 피해 배상을 요구하면서, 독일이 주도하는 유럽연합(EU)과도 마찰을 빚고 있다. 국정의 사유화, 역사와 정의(正義) 사유화… 다른 나라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니 우리도 이해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아무리 세계적 흐름이라고 해도 아닌 건 아닌 거다. 백번을 양보해서 국민이 좀더 잘살게 된다면 또 모른다. ●장기집권 노리는 여당, 총선 승리할까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기득권세력의 반칙과 특권을 공격하며 깨끗한 정치, 가톨릭의 전통적 가치를 강조해온 법과정의당도 예외가 아니다. 카친스키는 집권당 초대형 빌딩 공사와 관련해 외국 사업자와 거래했다는 녹음 테이프가 올 초 폭로돼 부패 의혹을 사고 있다. 카친스키의 아바타로 이름난 즈비그뉴 지오브로 법무장관 겸 검찰총장은 10월 13일 총선을 앞두고 야당 정치인들을 음해하는 공작을 펼치다가 녹음테이프가 폭로돼 곤욕을 치르고 있다(물론 차관 해임으로 꼬리를 잘랐다). 그럼에도 법과정의당은 최저임금 2023년까지 2배 인상 같은 참 희한하게 비슷한 공약으로 총선 승리를 노린다. 우리나라 기업도 많이 진출해 2018년 경제성장률 3.4%를 올리는 등 지금까지는 호조세지만 고용주들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부담이라고 우려한다. 여당은 이번 총선에서 승리하면 개헌으로 갈 것이 분명하다. 헌법이 국가 의지(사실은 지도자의 의지) 실현을 막지 않도록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바꾸겠다고 카친스키는 공언했다.●참 닮은 폴란드와 한국…행운을 바란다부디 잘되길 바랄 뿐이다. 외침(外侵)과 고난의 역사를 지닌 폴란드와 우리나라는 국민성이 참 많이 닮았다. 폐쇄적이지만 개방적이고(임기응변에도 강하다), 비관적이지만 또 낙관적이고(폴란드 사람들도 곧잘 술로 푼다), 너그럽지만(우리끼리 잘 봐준다) 시기 질투도 적지 않다. 정치와 논쟁을 좋아해서 폴란드 사람 둘이 만나면 정당 세 개가 생긴다는 말도 있다.좋은 지도자는 국민의 좋은 점을 크게 발전시킨다. 1차 세계대전 직후 폴란드 최고지도자였고, 1926년 쿠데타로 다시 집권했던 유제프 피우수트스키는 “희생된 군인들은 어느 편에서 싸웠든 모두 사랑하는 폴란드를 위해 희생되었다”며 정치적 보복 없는 나라를 추구했다고 한다(정병권 한국외국어대 교수 ‘폴란드 민족성과 의사소통 방식’). 카친스키처럼 과거만 바라보는 지도자, 폐쇄성과 시기 질투 같은 부정적 정서를 자극하는 지도자가 나라를 발전시킬 수 있을까. 더구나 법치는 한번 무너지면 다시 세우기 어려운 법이다. 조국을 법치의 머리 위에 놓는 지도자가 국민을 행복하게 한다면… 세계민주주의 역사를 다시 쓸 일이다. dobal@donga.com}

    • 2019-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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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사법개혁’으로 독재 굳힌다, 폴란드와 한국

    지난주 유엔총회 막간에 폴란드와 정상회담이 있었다. 우리 대통령은 쇼팽 서거 170주년 콘서트를 언급하며 “한국이 폴란드 음악과 문화에 푹 빠져들었다”고 했고, 폴란드 대통령은 한국 피아니스트의 뛰어난 연주 실력을 칭찬했다(그러나 별로 중요하지 않은 행사여서 기사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유엔총회에서 평화를 극구 강조했던 대통령이 귀국하자마자 “절제된 검찰권 행사가 중요하다”는 첫 메시지를 내놨다. 귀국 첫 마디가 이럴 정도면, 분기탱천했다는 얘기다. 이 절제된 발언을 쉽게 풀면 다음과 같다. 고마 해라, 조국 수사.●법무장관-검찰총장 겸직을 시켜버려? 폴란드 같으면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을 수사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대통령 명을 받는 법무장관이 아예 검찰총장직을 겸직하도록 ‘사법개혁’을 해버렸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유엔총회까지 가서 일본도 아니고, 중국이나 러시아도 아닌 폴란드 정상을 만난다기에 뭐 쓸 게 없나 찾아보다 알게 된 사실이다. 놀랍게도 폴란드에선 우리나라 뺨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세 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폴란드는 2015년 정권 교체 후 법치를 파괴하는 사법개혁을 계속해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로 간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② 적폐청산의 일환이라는 폴란드 사법개혁은 강대국 사이에 위치한 이 나라 지정학적 역사, 최고 실세의 개인적 수난사와 관련이 깊다. ③ 실세의 아바타, 검찰총장을 둘러싸고 최악의 스캔들이 터진 상태에서 10월 13일 총선은 성공할 수 있을까.● 사법개혁이라고 다 개혁이 아니다28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정문 앞에선 두 개의 세계관 충돌이 벌어졌다. 조국 수호 집회 측에선 조국 수사와 관련 보도가 적폐라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등 이 정부의 검찰개혁을 주장한다. 조국 사퇴 집회 측은 정반대다. 검찰총장이 잘하고 있다며 검찰이 정치권력의 눈치 안 보고 제대로 수사해 법치를 수호하는 것이 검찰개혁이라는 주장이다. 개혁이라고 다 개혁이 아니다. 정부안대로 공수처가 설치돼 있다면, 그 공수처는 조국 아닌 윤석열을 잡아갈 것이 뻔하다고 본다. 전직 대통령부터 국회의원, 법관도 잘만 구속하면서 유독 제 식구들만 봐주는 집단이 검찰이다. 그런 검찰을 장악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검찰을 기소하는 기관으로 만드는 것이 공수처다(거칠게 말하면). 정권의 세퍼드가 감히 주인을 물어? 폴란드는 정권 교체 석 달 만에 입마개를 채워버렸다. 2016년 1월 법무장관이 검찰총장을 겸직하게 만든 것이다. 여당인 법과정의당(Pis)은 미국도 그렇게 돼 있다며 야당 반대에 눈 하나 깜짝 않고 한밤중에 통과시켜 버렸다(그러나 미국서 연방검찰 아닌 주 검찰총장과 지방검사장은 선거로 뽑히기에 차원이 다르다). 폴란드는 지금 정권의 세퍼드, 즈비그뉴 지오브로 법무장관 겸 검찰총장과 법치 수호 편에 선 법관들이 이 나라의 명운을 걸고 치열한 전쟁 중이다. ● 나라를 바꾸기 위해 정권이 필요한 것4년 전인 2015년 10월. 우파 민족주의 정당 Pis가 총선에 승리했다. 5월 안제이 두다라는 43세의 참신한 대통령 후보로 대선 승리를 차지한 데 이은 8년 만의 재집권이다(이 나라는 대통령에게 법률거부권 정도만 부여한 이원집정부제다). 청년일자리 120만개, 최저임금 인상과 육아수당, 폴란드 우선의 자주외교 공약 등이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새 얼굴의 대통령, 총리를 내세워 집권한 뒤 Pis의 통치방식은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책의 공식과 거의 일치한다. 미디어와 사법부를 포획하고, 경쟁자들을 밀어내며, 룰을 새롭게 씀으로써 영구집권을 꾀하는 것이다.킹 메이커인 Pis 대표 자슬로프 카진스키 의원에게 정권은 수단이다. “그는 나라를 바꾸기 위해 당과 정부를 원한 것”이라고 2016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전한 바 있다. 1989년 공산체제가 무너지고 새 정부가 들어선 뒤 폴란드가 걸어온 길이 죄다 잘못됐다는 거다(뭐가 잘못됐다는 건지, 카진스키의 개인사와 결부된 폴란드 과거청산 작업은 다음에 쓴다). ● ‘사법 독립의 원칙’ 침해는 안 된다 지금 Pis 정부가 사력을 다하는 것이 사법개혁(judicial reform)이다. 여기도 말은 개혁인데 속뜻이 행정부의 사법부 장악이면 과연 개혁이랄 수 있는지, 나는 답답한 것이다. 2017년 영국 BBC는 “폴란드 국민의 81%가 사법개혁에 찬성한다. 그러나 ‘여당 개혁안에 찬성하느냐’는 설문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폴란드 집권세력은 헌법재판소가 정부 추진 법안에 위헌판결 내리기 어렵게 헌재법을 고친 데 이어, 온갖 편법으로 대법원장을 바꾸는 등 사법부에 자기 사람들을 꽂아놓았다. 그리고도 의회(그러니까 집권당을 말한다)가 사실상 판사들을 임명하게 만드는 식의 개혁을 밀어붙여 판사들이 거국적으로 들고 일어난 상태다. 여기서 잠깐. 이 정도의 사법개혁은 우리나라에선 이미 완수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헌재든 대법원이든 대통령은 국회 동의 없이 색깔을 바꿔 버렸다. 이제 검찰만 장악하면 되는데 조국 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일이 꼬인 셈이다. 폴란드에 대해선 유럽연합의 최고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ECJ)는 6월 24일 “폴란드의 사법개혁이 사법독립의 원칙을 침해했다”고 명확히 판결을 내렸다. 그럼 우리는? ● 국제사회가 지켜보는 폴란드, 한국은?ECJ는 “외부로부터 모든 간섭과 압력으로부터의 판사의 독립은 필수적”이라고 밝혔다. 대법관 임명부터 집권세력이 좌우하는 건 삼권분립의 민주주의 원리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우리는 이미 이렇게 돼 있는데, 그것부터 잘못됐다는 얘기다. 요즘 세계적으로 포퓰리즘과 포퓰리즘이 끌고 가는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주목을 받고 있다. 폴란드와 막상막하인 헝가리가 헌법을 고쳐 권위주의 체제로 갔다면, 폴란드는 개헌 없이 몰아붙여 ‘헌정적 쿠데타’라는 평가까지 나왔다(그런데 유시민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겨냥해 “총칼은 안 들었으나 위헌적 쿠데타나 마찬가지”라니 웃기는 짬뽕이다). 실세 카진스키가 이토록 사법개혁을 밀어붙이는 건 10년 전 사법부에서 막힌 ‘국가 개조’ 실패 때문이다. 2010년 쌍둥이 동생이자 대통령인 레흐 카진스키가 러시아 땅에서 비행기 사고로 숨진 뒤 암살당했다는 음모론에 빠졌다는 지적도 있다(이 얘기 역시 다음에 쓸 예정이다). 그나마 폴란드는 EU처럼 “그건 사법개혁이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국제사회가 있다. 우리는 스스로 외쳐야 할 판이다. “그건 검찰개혁이 아니다!” dobal@donga.com}

    • 2019-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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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의 도발]유시민의 뇌피셜, 또는 변절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가장 잘 말해주는 수식어가 ‘옳은 말도 싸가지 없이 하는’ 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비노 386이었던 김영춘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이 친노 유시민에게 보낸 공개편지에서 “저토록 옳은 소리를 저토록 싸가지 없이 말하는 재주는 어디서 배웠을까”라고 개탄했대서 유명해진 표현이다. ●‘옳지도 않은 말을 싸가지 없이’ 한다 덕분에 ‘싸가지 없는 진보’는 좌파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민주당이 집권당이 되기 전엔 쇄신론이 일 때마다 “싸가지 있는 집단으로 거듭나자”는 소리도 나왔다. 유시민 자신도 “두고두고 나를 가두는 올가미가 될 것”이라며, 특히 딸을 둔 아빠로서 아파했다고 들었다.마침내 유시민이 이 말에서 벗어나게 됐다. 과거엔 옳은 말을 싸가지 없이 했지만 이젠 옳지도 않은 말을 싸가지 없이 하고 있다. 24일 ‘유시민의 알릴레오 시즌2’ 생방송에선 법무부 장관 조국의 아내인 동양대 교수 정경심이 검찰의 압수수색 전에 컴퓨터를 반출한 데 대해 유시민은 “증거 인멸이 아니라 증거를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상상초월 궤변을 쏟아냈다. “검찰이 압수수색해서 장난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정 교수가) 동양대 컴퓨터, 집 컴퓨터를 복제하려고 반출한 것이다. 그래야 나중에 검찰이 엉뚱한 것을 하면 증명할 수 있다. 당연히 복제를 해줘야 하는 거다.”●검찰이 장난칠까봐 컴퓨터 반출?별건 수사, 먼지 털이 수사 소리는 들어봤어도 검찰이 압수수색해 가져간 증거에 장난쳐서 죄를 뒤집어씌운다는 소리는 처음 듣는다. 자기 머리에서나 나온 생각을 검증된 사실처럼 말하는, 무(無)논리로 논리도 이기고 만다는 뇌피셜(腦+official)인지는 모르겠다. 검찰이 증거 조작을 하는 경우도 있음을 전임 대통령의 비선실세 최순실의 태블릿 수사에서 알았는지, 이 정부의 적폐 수사를 보고 알았는지 유시민은 분명히 밝히기 바란다. 유신독재도 아니고, 신군부독재도 아니고, 아직은 헌법상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서 검찰이 죄를 조작한다면 촛불 아닌 횃불이 타오를 일이다.그 묵직한 컴퓨터를 사람까지 동원해 빼돌린 이유가 증거보존용 복제를 위해서라는 소리도 생전 처음 듣는다. 좋게 말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상상력이고, 솔직히 말하면 웃기는 짜장면이다. 유시민이 진지하게, 근거 없이 한 말이라면 20일 “불법 정보, 허위 정보 유통으로 여론이 왜곡되고 공론의 장이 파괴되는 현상은 막아야 한다”고 다짐했던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은 즉각 가짜뉴스 규제에 나서야 한다. 만일 유시민 단속 전에 우파 유투버부터 잡는다면 역풍을 면치 못할 것이다. ●‘위선좌파’ 검찰수사 막기 총출동유시민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겨냥해 “수사를 지금이라도 멈춰야 한다”며 정경심 영장이 기각되면 검찰 책임이라고 직설을 쏘았다. 자칭 ‘어용 지식인’이니만치 문재인 대통령의 총애를 받는 조국을 지켜줌으로써 다신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같은 한을 남기지 않겠다는 충정으로 봐줄 수도 있다. 최성해 동양대 총장이 “유시민은 대통령 될 욕심이 큰 사람”이라며 “경쟁자인 조국이 낙마하는 것을 내심 원하지만 대통령이 조국을 임명한다고 하니 잘 보이려고 이런 위선 행동을 한 것”이라고 폭로하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싸가지 없는 진보도 모자라 이젠 ‘위선 좌파’로 공개 인증이다. 그래도 한때는 싸가지 없지만 옳은 말을 한다던 유시민이 왜 옳지도 않은 말을 싸가지 없이 하는 ‘변절’을 한 것일까. 2007년 그는 “싸가지 없는 진보라는 말이 맞을 수 있다”며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고 순순히 인정했다’고 오마이뉴스에 소개됐다. 자기는 논리적이라고 말을 했는데 자기 메시지에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정서적 반감을 줬다고 반성하는 모습이었다(‘민주신당’이라는, 지금은 아무도 기억 못하는 정당의 대선 예비후보 자격으로 한 인터뷰여서인지는 알 수 없다). ●정치의 나꼼수화, 국민수명 단축화방송에 시사평론가로, 잡학박사 타이틀의 예능인으로 등장하면서 현란하고도 있어 보이는 말빨로 대중을 즐겁게 했던 유시민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에 대해 “박명수 씨 어록을 들려드리자면 ‘참을 인(忍) 세 번이면 호구’ 된다. 우리도 성질 한번씩 내야 한다”거나, 김정희 추사체를 놓고 ‘기름이 쑥 빠진 글씨’라고 평하는 등 알기 쉬운 ‘지식 도매상’ 같은 말로 잘 팔리는 관종(관심종자)이 된 것도 사실이다(틀린 말도 자신 있게 하는 바람에 제작진은 팩트에 어긋난 말을 편집해내느라 고생했다는 말도 있다). 그랬던 그가 요즘은 어떤 논리로도 풀리지 않는 언사로 정서적 반감은 물론 육체적 반감까지 안겨주는 형국이다. 마치 무엇에 씌었거나, 대통령병(또는 대통령의 총애를 받고 싶은 병)에 걸렸거나, 어디서 조국 수호 지령이나 받은 것처럼. 노 정부 때는 존재하지 않았던 ‘나꼼수’가 이 정부 들어 주류로 등극하면서 지지층은 결집시키되 나머지 국민들은 기막혀 제 명에 못 살게 하거나, 최소한 조국 피로증에 걸려 더는 관심 갖지 않게 만들려는 고도의 전략적 꼼수인가 싶기도 하다.●차라리 진중권이 진보답다 싶었으나… 이런 유시민에 비하면, 말빨로 따져 손톱만큼도 밀리지 않던 동양대 교수 진중권이 조국 임명에 찬성한 정의당에 말없이 탈당계를 냈던 것은 훨씬 진중하고 진보스럽다(하고 끝내려 했더니 정의당의 만류로 탈당을 철회했다고 한다. 젠장). 35년 전 ‘서울대 민간인 폭행 사건’에서 무고한 시민을 폭행해 실형을 받고도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러시아 시인의 시구로 잘난 척 항소이유서 끝을 맺었던 유시민. 그 조국이 조국(曺國)이었음을 이제야 알 것 같다. dobal@donga.com}

    • 2019-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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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순덕 칼럼]‘검찰개혁’이라는 이름의 복수극

    법무부 장관 자리를 차지한 조국이 앉으나 서나 검찰개혁을 부르짖는 건 당연하다. 고통스러워도 내려놓을 수 없는 십자가를 진 듯, 조국은 10년 전 여한으로 남긴 고 노무현 대통령의 검찰개혁을 기필코 완수할 태세다. 그런 조국이 바로 검찰개혁의 걸림돌이라는 말들이 나온다. “조국 사퇴”는 야당의 대정부 투쟁 구호가 됐다. 그가 물러나야 검찰개혁이 가능하다는 의미라면 위험하다. 이 정부가 ‘검찰개혁’이라고 이름 붙인 검경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은 패스트트랙으로 통과되면 누구도 되돌리기 힘든 악법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검찰개혁 요구가 왜 나왔는지 돌아보면 알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조국 당시 민정수석도 “검찰이 막강한 권력을 제대로 사용했으면 최순실 게이트를 초기에 예방했을 것”이라고 했다. 모처럼 맞는 얘기였다. 그 해결책이 검찰권력의 분산·견제라는 건 한일 갈등의 해결책이 남북평화경제라는 소리만큼이나 생뚱맞다. 최순실의 남편 정윤회 문건 수사가 청와대 지라시 유출 사건으로 둔갑하고, 특별감찰관 이석수가 대통령민정수석 우병우를 감찰하다 되치기당한 건 검경수사권 조정이 안 됐거나 공수처가 없어서가 아니다. 청와대가 인사권으로 검찰의 숨통을 죄는 바람에 검찰은 알아서 길 수밖에 없었던 거다. 검찰개혁이란 검찰이 정치권력의 눈치를 안 봐도 되게끔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처럼 군부독재를 거치며 검찰을 통치수단으로 이용했던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가 그렇게 개혁을 했다. 민주화 이후 검찰조직을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게 헌법상 제4의 독립기구로 만들고, 검찰총장은 상원의 승인을 받아 임명해(칠레는 대법원이 후보 지명) 정치적 중립성과 신뢰를 확보했다는 게 조희문 한국외국어대 교수의 연구결과다. ‘검찰도 행정부’라는 문 대통령은 인사권으로 검찰을 장악하고도 배고팠던 모양이다. 수사권을 지닌 막강 경찰, 검찰 잡는 공수처를 만들어 검찰과 경쟁시키겠다는 것은 국민을 위한 개혁이랄 수 없다. 조국이 2005년 “경찰 내부개혁이 가시권에 들어오지 않은 상태에서 경찰이 검찰의 수사지휘에서 완전 해방된 채 수사종결권을 행사하게 된다면 경찰국가화의 위험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쓴 논문과도 배치된다. 더 섬뜩한 것은 정부안대로 되면 공산당 독재국가 중국의 공안 같은 경찰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은 작년 2월 국회에서 “도대체 어디서 이런 안(법무·검찰개혁위안)이 나왔는지 알 수 없어 찾아보니 중국과 대단히 유사하다”고 경악을 했다. 수사의 주체 경찰이 인민민주주의 독재의 주요 도구로 쓰인다는 점에서 북한과도 흡사하다. 경찰은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까지 넘겨받아 비대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지금도 정보경찰이 정책정보 수집이라는 명분으로 국민을 감시해 경실련과 민변, 참여연대조차 정보경찰 폐지를 요구하는 판에 경찰이 기소 여부까지 판단해 수사를 끝내게 한다는 건 법치국가 포기나 다름없다. ‘수사권은 경찰, 기소권은 검찰’이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여권의 주장도 의심스럽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28개국이 헌법이나 법률에 검사의 사법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규정하고, 27개국이 검사의 수사권을 규정하고 있다(신태훈 논문 ‘이른바 수사와 기소 분리론에 대한 비교법적 분석과 비판’). 세상에 어디 본뜰 것이 없어 대한민국 경찰이 공포의 중국 공안을 따라간단 말인가. 검찰개혁이 끔찍한 개악으로 변질된 이유는 문 대통령이 2011년 김인회 인하대 교수와 함께 쓴 ‘검찰을 생각한다’에서 찾을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을 손볼 데가 없으면 절대 안 된다며 공수처를 추진했다. 참여정부가 끝나자 검찰은 참여정부 당시의 검찰개혁에 대해 복수하듯 노 대통령 수사를 진행했다고 나온다. 노무현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검찰에 대해 이번엔 문재인 정부가 복수에 나선 셈이다. 조국은 이 정부의 수준이고, 민낯이며, 본질이다. 법무장관 자리에서 물러나야 마땅하지만 그가 사라진다고 해서 머리 셋 달린 히드라 같은 검경과 공수처를 허용해선 안 된다. 연동형 선거제에 혹해 문재인 정부의 한풀이 패스트트랙에 올라탄 일부 야당은 국민에게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 똑바로 알아야 한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19-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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