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김순덕 대기자

대기자

구독 238

추천

안녕하세요. 김순덕 대기자입니다.

yuri@donga.com

취재분야

2024-04-20~2024-05-20
칼럼100%
  • [김순덕 칼럼]청와대黨-조국黨, 국회까지 장악할 셈인가

    우리나라 총선에는 공식이 있다. 공천 때마다 파동이 일어난다. 찍을 때마다 찍을 사람이 없다. 그럼에도 국민은 현명했다. 꼭 4년 전인 2016년 3월 18일, 미래통합당의 전신 새누리당의 김무성 대표는 ‘비박(비박근혜) 공천 학살’ 결과를 수용 못 한다며 “독재정권 때나 하는 짓”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로 찍은 유승민 의원을 불출마시키려고 친박(친박근혜)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공천 보이콧도 불사한 날이었다. 막장 공천은 집권여당이 20대 총선에서 참패한 결정적 이유로 꼽힌다. 대통령의 불통과 쌍벽을 이루는 친박 패권주의, 지긋지긋한 계파 갈등에 국민이 분노하면서 민심은 야당 심판론에서 정권 심판론으로 급격히 돌아섰다. 친박만 몰랐을 뿐이다. 그때의 교훈 때문일까. 계파 갈등 없는 더불어민주당의 2020년 공천 과정은 상대적으로 조용하다. 친문(친문재인) 강화, 청와대 대거 진출, 운동권 86세대 물갈이 없는 공천으로 친문 패권주의는 욱일승천할 일만 남았다. 되레 공천 파동이 없다는 게 문제다. 공천 룰을 담은 특별당규는 현역 의원의 경우 경선을 원칙으로 한다. 실제론 현역 의원 과반이 경쟁 없이 본선행 티켓을 확보했다. 친문이 벼슬이어서다. 대통령 절친을 위해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받을 사람들까지 공천받고 선거에 나온다는 건 삶은 소대가리가 웃을 일이다. 평소 다른 소리를 낸 비문(비문재인) 의원들만 탈락됐을 뿐이다. 그런데도 몇몇 당사자 말고는 입을 닫는다. 대통령 권력에 맞서는 당 대표는 물론 없다. ‘민주당의 유승민’ 같은 금태섭 의원조차 “선거 전까지 죽은 듯 있겠다”며 순종하는 분위기다. 정당의 목적과 조직과 활동은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헌법이 규정하고 있다. 국민 세금이 정당에 지원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계파 이익을 앞세우는 정당이 민주적일 순 없다. 비민주당도 대통령 임기 후반에는 불안한지 ‘문재인 청와대’는 국회까지 진군나팔을 불고 있다. 무려 53명이 출사표를 던져 후보자 등록을 일주일 남짓 앞둔 17일까지 28명이 공천받았다. 역대 정부와 비교할 수도 없는 대규모로 문재인청와대당, 약칭 문청당을 차려도 될 판이다. 그중 11명은 경선도 없이 전략공천이나 단수공천으로 본선에 직행했다. “특별한 경우 아니면 전략공천 없다” “청와대 출신이라고 우대는 없을 것”이라던 이해찬 대표를 믿은 이들만 바보 된 꼴이다. 이런 특혜 공천이 어떻게 가능했는지도 궁금하다. 박 전 대통령은 참모들 전략공천이나 단수공천은 엄두도 못 냈지만 총선 경선 개입 혐의로 공직선거법 위반 징역 2년을 살았다. ‘청와대’가 국회 진출해 뭘 할 것인지는 더 궁금하다. 2017년 9월 민주당 적폐청산위원회가 이명박(MB) 정부의 ‘대통령실 전출자 총선 출마 준비 관련 동향’ 문건을 공개하며 퍼부은 비난을 상기하면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문건에 거론된 출마 준비자가 달랑 11명이었는데도 민주당은 “VIP 국정철학 이행과 퇴임 이후 안전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당선율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적혀 있다”며 “사실이라면 이 대통령은 탄핵을 통해 물러났어야 할 대통령”이라고 포화를 내뿜었다.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독재정부를 막는 것이고, 그 핵심 기제가 국가권력의 독점을 막는 3권 분립이다. 대통령의 일개 참모 조직이 내각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은 것도 모자라 입법부까지 장악하겠다는 건 친문 패권주의의 3권 분립 무력화나 다름없다. 문 대통령 퇴임 이후 안전핀 역할을 위해 청와대당을 만들고, 검경과 사법부의 목줄을 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만들고, 그래도 만족 못해 어제 민주당은 비례위성정당 더불어시민당을 만들었다. 선거법 개정 명분을 뒤집고 민주당이 손잡은 ‘시민을 위하여’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지지 집회를 주도했던 ‘개싸움국민운동본부’가 주축이다. 비례의석 한 석도 놓칠 수 없어 조국당까지 동원하는 것을 보면 문 대통령이 탄핵당할까 봐 몹시 두려운 모양이다. 돌아보면 국민의 선택은 언제나 위대했다. 그러나 총선에서 승리한 정당은 그 깊은 뜻을 겸허히 받아들이지 못해 이내 손가락을 자르고 싶게 만들었다. 민주당은 야당의 공천 파동을 비웃을 때가 아니다. 오만한 권력은 심판받는다는 것을 친문 패권주의 세력도 알아야 한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0-03-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순덕의 도발]돌아온 친문 패권주의…비례정당 꼼수가 대수냐

    집권세력 내에서 비례정당의 필요성을 맨 처음 거론한 사람을 기억하시는지? 윤건영과 손혜원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미래통합당의 비례정당 비난에 열을 올리던 2월 21일 대통령의 복심(腹心) 윤건영 전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 그 전날엔 대통령 부인의 절친 손혜원 의원은 ‘신호’를 쏘아 올렸다. 과연 우연이었을까. 13일 마침내 민주당이 범여권 비례연합정당 참여를 선언했다. 미래통합당의 비례정당 창당을 핑계 삼고, 민주당의 권리당원 투표 결과를 명분 삼아서다. 윤건영이 “비상한 상황이 벌어진다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손혜원이 “당 외곽에서 민주당을 위한 비례정당 만드는 것을 검토하려 한다”고 운을 뗀 지 꼭 3주 만이다. ● 대통령-부인의 복심들 “비례정당 만들라” 당시만 해도 윤건영은 서울 구로을 민주당 후보자로 전략공천 받지 않은 상태였다. 매일 대통령을 만나는 남자였다고 해도 당에서 보면 공천을 고대하는 을(乙)의 처지다. 그때 윤건영의 말을 “개인 의견”이라며 깔아뭉갰던 당 핵심인사들이 지금 청와대를 제대로 쳐다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친 김에 13일 방송인터뷰에서 윤건영은 정국 전망과 청와대 구상까지 밝혔다. “청와대에 7년 넘게 계셨는데 이번에 (국회) 입성하면 당정청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할 것 같다”는 진행자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아주 중요한 포인트”라고 답한 것이다.“집권 후반기가 될수록 당정청의 긴밀한 협력이 이완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당선된다면 (나에게) 충분히 역할이 있을 걸로 보고 (진행자의 말은) 아주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당정청의 긴밀한 협의라는 부분이다.”● 文의 남자 윤건영이 국회로 가는 까닭은 청와대엔 국회의원 출신 대통령비서실장이 있고 정무수석도 있다. 강기정 정무수석은 작년 초 취임 인사로 “대통령 뜻을 국회에, 국회의 민의를 대통령께 잘 전하겠다”고 했다. 그럼에도 왜 윤건영이 굳이 국민의 대표자로 선출돼 당정청 가교 역할을 해야 하는 걸까. 윤건영의 천기누설이 시사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① 문 대통령이 퇴임해도 ‘친문 패권주의’는 계속된다. ② 민주당의 제1당 유지는 민주당보다 청와대에 더 중요하다. ③ 비례정당이라도 만들어 친문세력이 행정부, 사법부에 이어 입법권력까지 장악해야 한다. ● 운동권 시절부터 지켜온 패권주의 악습2011년 8월 당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혁신과 통합’을 통해 정계 입문할 때부터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온 사람이 윤건영이다. 친문 세력이 대통령과 연결되는 고리가 ‘부산-대선캠프-민주당-노무현 정부-노무현재단-학생·노동운동’의 여섯 개 고리인데 윤건영은 송인배 전 비서관과 더불어 유이(唯二)하게 여섯 개 모두 연결된다. 댓글 조작 사건으로 2월 대법원에서 유죄 선고를 받은 ‘드루킹’ 김동원은 “과거 민정수석에게 가던 정보가 국정상황실로 들어가서 윤 실장이 사실상 넘버원”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첫 비서실장 임종석이 비(非) 친문이고, 친문 핵심 양정철이 청와대에 안 들어가는 바람에 친문 패권주의가 사라진 듯했지만 잠시였을 뿐이다. 청와대 2기에 노영민 비서실장이 합류하는 등 친문 패권주의는 계속 강화됐다. 계파 패권주의란 권력을 독점한 패권적 지위를 이용해 사적(私的) 이익을 앞세우는 것을 말한다. 민족해방(NL)을 외쳤던 운동권 시절부터 그들은 자기 진영만이 선(善)이고, 자기네 계파가 조직 내 우위를 차지하는 것이 진보라고 믿는 패권주의 악습을 고수해 왔다. ● 권력은 부패한다. 친문 패권주의도 마찬가지친문 패권주의가 강화되면서 야당이 ‘3대 친문 게이트’라고 주장하는 사건 중 2개에 윤건영의 이름이 거론된다. 유재수 전 금융위원회 국장의 청와대 감찰 무마 의혹 사건과 울산시장선거 청와대 개입 의혹 사건에서다. 윤건영은 이번 총선 출마를 결심한 계기가 검찰 조사에 있다고 했다. 청와대에 있는 것이 대통령에게 도움이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는 거다. 자못 충정어린 얘기지만 실제로 2년 남짓 남은 청와대보다 4년이 보장되는 금배지가 더 튼튼한 보호막이 될 터다. 문 대통령은 퇴임 후 조용히 잊혀지고 싶다고 말해 국민을 놀래켰다. 그러나 친문 세력은 친문 패권주의를 잃을 수 없다. 청와대는 물론 행정부와 사법부 장악만으로는 부족하고, 집권 말로 갈수록 집권당도 못 믿는다. 윤건영 같은 친문 세력이 국회를 장악해 차기 청와대까지 주물러야 한다. “미래한국당의 입법권력 찬탈을 저지하자”는 최재성 의원 발언을 보라. 친문에게는 국민의 대표기관 국회가 입법권력으로, 정권 교체가 왕위 찬탈로 뵈는 것이다. ● 총선 승리는 청와대에 더 절박하다물론 윤건영은 문재인 정부에선 어떤 불법행위도 없다고 강조를 했다. 그런데도 미래통합당이 제1당이 되면 대통령 탄핵을 추진할 수 있다고 밝히자 그는 2월 20일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이 명령하지 않은 탄핵은 월권”이라고 격하게 반발했다. 바로 그날 손혜원이 처음 비례정당을 언급했다. 다음날 윤건영도 비례정당의 필요성을 거론하고 나섰다. 희한하지 않은가. 미래통합당의 비례정당을 가짜정당이라고 비난해온 민주당은 이제 와 비례정당을 추진한다는 게 면구스러울 것이다. 청와대는 그런 여유가 사치다. 반드시 제1당이 돼서 국회의장 의사봉을 차지해야만 야당이 대통령 탄핵을 추진해도 막는 게 가능하다. 3대 친문 게이트 특검을 막기 위해서도 제1당은 필수다. 민주당의 이번 공천 특징이 친문 강화다. 금태섭 의원처럼 입바른 소리나 하는 자는 공천 못 준다. 그놈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군소정당들과 여대야소를 만든대도 안심할 수 없다(2월 26일 민주당 친문 핵심들과의 회동에서 이인영 원내대표는 “정의당이나 민생당이랑 같이 하는 순간, X물에서 같이 뒹구는 것”이라고 했다). 꼼수로 ‘비례민주당’ 만드는 게 대수냐. 괜히 군소야당 끌어들여 연합정당 꾸렸다가 민주당이 한 석이라도 놓치면 위험해질 판이다. ● 문 대통령이 먼저 비례정당 생각했을까여기서 잠깐. 비례정당의 필요성을 이처럼 절절하게 깨달은 사람이 과연 문 대통령일까 궁금해진다. 지금까지 문 대통령에게서 이렇듯 발칙한 ‘정치적 셈법’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어쩌면 손혜원의 절친 김정숙 여사가 비례정당을 원했을 수도 있지만 내막은 알 수 없다. 차라리 윤건영을 비롯한 이른바 ‘청와대’가 고심한 결과로 보는 게 합리적 추론이다. 문 대통령과 새정치민주연합 시절 정치를 함께 했던 김한길은 “문재인이라는 정치인은 지난 5년 간 친문패권을 더 튼튼하게 만든 것 외에는 한 일이 없다”고 했다. 2017년 대선 때 문 대통령을 깎아내리는 발언일 수도 있다. 그러나 좌파 논객 진중권도 최근 “조국의 법무부 장관 임명 강행을 주장한 것도 윤건영이었다”며 “문 대통령에게는 당정에 스며든 586 전대협 출신을 통제할 능력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암만 문빠라 해도 문 대통령의 성품을 평가하지, 정치적 두뇌를 높게 치진 않는다. ● 친문 패권주의는 사라지지 않는다그들 말이 맞는다면, 문 대통령은 고 노무현 대통령처럼 그들의 ‘도구’일 뿐이다. 젊은 날 총학생회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선거공학, 정치공학을 익힌 그들은 문 대통령을 택군(擇君)해 권력을 쥘 수 있었다. 문 대통령이 ‘청와대’ 중심으로 국정을 운영한 것도 선거 빚 때문이라고 보면 국정운영에 대한 숱한 의문이 풀리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친문 세력의 DNA는 변하지 않는다. 총선을 앞두고 친문 패권주의는 대놓고 당당하게 돌아왔다. 문제는 갈수록 위력을 발휘하는 그들의 패권주의 때문에 나라가 뒤집힐 판이라는 점이다. 2012년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가 패배한 뒤, 대선평가위원회는 가장 큰 패배 요인으로 계파 갈등을 꼽았다. 친문 패권주의가 기승을 부린 탓에 정작 유능한 인재는 선거운동에 끼지를 못해 ‘이길 수밖에 없는 선거’에서 패배했다는 분석이다. 똑같은 상황이 지금 문재인 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다. ● 전체주의냐, 자유민주를 지킬 것이냐 경제와 안보만 뒤흔들린 게 아니다. 반대를 용납하지 않는 친문 세력, 견해가 다른 사람을 토착 왜구로 모는 친문 패권주의는 전체주의로 가는 길이다. 악다구니처럼 달려드는 문빠가 무서워 민주당 의원들은 물론 지식인들도 입을 다무는 세상이 됐다. 그들만의 공정(公正)이 온 국민의 가치관을 뒤집어놓는 바람에 많은 이들이 내가 이상해졌나, 정신이상이 될까 걱정한다. 아닌 건 아니라고 똑 부러지게 말하는 진중권의 독설이 되레 위안을 줄 정도다. ‘검사내전’을 쓴 김웅 전 부장검사는 야당에 입당하면서 “사기꾼 때려잡는 게 내 전문”이라는 말로 ‘친문 이익패거리’의 사기 행각을 지적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만들기 위해 군소야당에 비례대표제로 사기 쳤던 그들이 이제 꼼수 비례정당까지 만들어 사기를 계속할 태세다. 4월 총선은 대한민국이 전체주의로 갈 것이냐,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것이냐의 변곡점이 될 수도 있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0-03-14
    • 좋아요
    • 코멘트
  • [김순덕의 도발]공적 마스크가 드러낸 ‘문재인 사회주의’

    9일부터 또 하나의 새로운 나라가 시작된다. 정부가 마스크 생산과 유통, 판매와 분배까지 100% 관리하는 문재인표 사회주의다.단순히, 저렴한 마스크를 골고루 쓸 수 있도록 하는 차원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3일 “어떤 사람은 여러 차례 줄서서 기다려도 구입하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으로 구입해야 하는 불평등한 상황을 반드시 개선해주기 바란다”고 밝혔다.정부가 지정한 공급처에서 사는 공적 마스크(1500원), 좀 비싸지만 줄 서지 않고 살 수도 있는 사적 마스크가 공존하는 것은 ‘불평등’하니 종식시켜야 한다는 ‘마스크 사회주의’로 가는 것이다. ●마스크는 의료진 공급이 우선이어야코로나19로 마스크 품귀 현상이 일어나는 건 세계적 현상이다. 공급이 수요를 못 따르니 값이 뛰고, 시중에서 동이 나는 건 안타깝지만 당연하다. 그래서 더 불안해지고, 기를 쓰고 마스크를 구하려 들며, 정부는 뭐 하느냐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더 중요한 사실은, 마스크를 안 써도 되는 사람들이 마스크에 매달리는 바람에 정작 의료진에게 돌아갈 마스크가 부족하다는 점이다.미국에선 2월 29일 국가의사(surgeon general)가 “마스크 사기를 멈춰 달라!”고 트위터로 외쳤다. “일반인이 마스크를 쓰는 건 감염 방지에 효과적이지 않지만 의료진이 마스크를 못 쓰면 사회 전체가 위험해진다”는 이유에서다.● 시작부터 잘못된 마스크 만능주의한국에선 정반대다. 이덴트는 마스크 생산 중단을 선언하면서 “정부가 의료기관에 마스크 판매하는 것조차 불법이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개탄했다. 벌써 마스크 공장이나 판매처에선 “이 나라가 독재국가냐” “민주주의, 자본주의가 아니라 공산주의 공출제”라는 아우성이 나온다.정부는 처음부터 ‘마스크 방역’을 지나치게 강조한 게 잘못이라는 의식이 없는 듯하다. 방송에선 시도 때도 없이 “외출할 때는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캠페인을 벌여 불안을 부추겼다. 문재인 대통령은 건강한 국무위원들과 함께 하는 국무회의에서도 마스크를 썼다. 그러니 공급이 수요를 당해낼 리 없다.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진작 밝힌 마스크 필수 착용 대상은 환자, 환자를 돌보는 사람이나 의료인이다. KF80 이상 보건용 마스크 착용이 필요한 경우는 기침 등 호흡기 증상이 있거나, 감염 의심자를 돌보는 경우, 의료기관 방문자, 감염 전파 위험이 높은 직업군 종사자(대중교통 운전사나 판매원, 대면서비스 종사자 등)로 분명히 알리고 있다. 나머지는 마스크를 안 써도 된다는 의미다. ●정부가 “마스크 안 써도 된다” 할 수 없는 이유중국 편향적이어서 신뢰를 잃은 세계보건기구(WHO) 말고,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도 ‘마스크는 환자가 남들에게 감염시키지 않으려고 쓰는 것’이라고 적어놨다. 코로나19 환자는 반드시 마스크를 써야 하지만 그것도 격리될 때까지고, 격리돼 있을 때는 쓸 필요가 없다. 심지어 ‘N95 마스크는 오직 의료종사자에게만 권장되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게 팩트다.정부로선 이제 와서 마스크 안 써도 된다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중국에 마스크를 퍼 나르다가 제 국민이 쓸 마스크가 부족해지니 딴소리라고 비판받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정부는 온 국민이 마스크를 사서 쓸 수 있도록 이른바 ‘공적 마스크’ 관리에 나선 것이다.공적(公的) 마스크가 온 국민의 지탄을 받는 공적(公敵) 마스크가 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부가 무능하면 차라리 가만히 있는 게 낫다. 민간인을 배제한 채 대뜸 ‘듣거라’ 식으로 명령을 내리면 재앙이 닥친다는 걸 이번처럼 명확히 보여준 적도 흔치 않다.● 무능한 정부는 가만있는 게 낫다“2월 27일부터 마스크의 절반은 우체국, 농협 등 공적 판매처에서 판다”는 ‘공적 마스크’ 발표가 나오고도 마스크는 여전히 귀한 몸이었다. 기획재정부 주도의 태스크포스에 식품의약품안전처, 산업통산자원부,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등 높은 관리들이 책상머리에서 숫자만 써댄 결과라고 본다.가령 이미 잡혀있는 수출 계약을 깨야 하는 공장이 있다면, 정부가 위약금이라도 줄 건지 외교적 방법은 없는지 TF는 지혜를 모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들은 대뜸 매점매석, 불법수출, 탈세 단속처럼 국민 때려잡기에나 나섰다.정부가 발표하면 국민은 무조건 따르는, 국가주도 자본주의도 아닌 문재인 특색의 사회주의가 이런 식이다. 의도했던 결과라도 착착 나왔으면 또 모른다. 야당의원 주장대로 청와대는 마스크를 잔뜩 쟁여놓고 국민만 공적 마스크를 사라고 했다면, 6·25 때 한강 다리를 먼저 넘은 이승만 대통령이 떠오를 판이다. ●공산주의 말고 건강한 시민의식으로9일부터는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된다. 마스크 국내 생산 1000만 장이 매일 나온다지만 국민 5200만 명이 평등하게 나눠 쓰려면 주당 1장으로도 모자란다. 마스크에서 ‘평등’이나 ‘공적’을 찾아선 안 된다는 얘기다.정세균 총리는 8일 “나부터 면마스크를 쓰겠다”고 모범을 보이듯 말했다. 70세 넘은 나이 때문에 취약계층이라고 주장하면 할 수 없지만, 호흡기 질환이 없거나 의료기관을 방문할 때가 아니면 총리라고 마스크를 쓸 필요는 없다.공적 마스크가 보여준 문재인식 사회주의 폐해를 이미 체험한 이상, 정부보다는 건강한 시민정신에 의지하는 게 나을 것 같다. 모두에게 닥칠 수도 있는 위험을 줄이기 위해, 또 나보다 더 마스크가 필요한 사람을 위해, 우선 건강한 시민부터 마스크 사기를 관두는 것이다.마스크는 의료진과 환자에게 양보하고, 건강한 시민들은 손 씻기에 열중했으면 좋겠다. 그것이 외환위기 때로 치면 ‘금 모으기 운동’과 다름없다. 그런 의미에서 공직자들부터 제발 마스크를 벗기 바란다.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0-03-08
    • 좋아요
    • 코멘트
  • [김순덕의 도발] ‘차이나게이트’ 주시하되 反中은 반대다

    설마 조선족 댓글부대라는 게 있겠어? 신문 칼럼 ‘청와대가 펄쩍 뛴 차이나게이트’ 관련 자료를 찾을 때만 해도 중국의 선거 개입이 세계적 이슈라는 걸 미처 몰랐다. 중국의 사이버전(戰)부터 시작해 이리저리 구글링해보니 ‘디지털 선거 개입’은 프리덤하우스에서 2019년의 주요 현상으로 다룬 심각한 문제였다. “디지털 플랫폼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신종 전쟁터다.” 이렇게 시작하는 프리덤하우스 보고서가 맨 앞에 예로 꼽은 것이 중국이었다. 호주 연방선거 석 달 전인 2019년 2월, 중국 정부가 호주 의회와 주요 정당 세 곳의 컴퓨터 네트워크를 사이버공격 했다고 호주 정보기관이 발표했다는 거다.● 中 통전공작, 국가안보실이 모를까? 디지털 시대, 사이버공격은 전쟁의 새 문법이라고 본다. 진짜 심각한 건, 아닌 척하면서 야금야금 남의 나라를 잡아먹는 중국의 사회주의혁명식 통일전선전술이다. 투명하고 당당한 외교가 아닌, 공작정치 같은 공작외교 말이다. 미국 의회 산하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는 2018년 8월 24일 ‘중국의 해외 통일전선 공작’ 보고서를 발표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이나 국정원 등 관계기관에서 숙독하지 않았다면 자폭하기 바란다. 구글 창에 China‘s Overseas United Front Work만 치면 바로 뜨는 이 39쪽짜리 영문 자료를 찾아보고, 한국에선 중국이 어떻게 해왔을지 문제의식을 갖지 않았다면 당신들은 국록을 먹을 자격이 없다. 미국과 호주, 뉴질랜드, 대만을 집중 조사한 이 보고서는 중국공산당 중앙통일전선공작부가 온갖 투명하지 못한 방식으로 정관계 인사에게 접근해 중국의 영향력을 극대화시켜 왔음을 낱낱이 분석해 놨다. 선거 개입은 그 일부다. ● 미안하지만 경향신문, 잘못 보셨다5일 오후 경향신문 인터넷판은 <’차이나게이트‘ 군불 때는 보수…코로나 이후 ’혐오정서‘에 편승>이라는 기사에서 내 칼럼을 거론했다. 미안하지만 나는 군불을 때는 게 아니다. 중국 혐오 정서에 편승할 생각도 없다. 오히려 조선족과 중국에 대한 반중(反中)정서가 생기는 것을 진심으로 반대한다. 나는 중국이 해외에서 통전 공작을 벌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대통령 행사가 탁현민의 연출임을 알고 나니 광채가 사라지듯, 일단 알면 대처할 수 있다. 미국이 2018년 외국영향력투명화법안, 고등교육스파이 및 절취금지법을 만든 것도 보고서의 영향이 크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최근 주지사회의에서 “중국공산당이 미국의 지방정부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정치적 영향력을 뻗치려 하고 있다”고 경고했는데, 이 보고서를 보면 경각심이 안 생길 수가 없다. ● 외국영향력투명화법 필요하다보고서가 나온 뒤 호주의 맬컴 턴불 총리는 “중국과의 합법적 문화교류를 반대하지 않지만 은밀하고, 강압적이고, 부패한 방식으로 전개하는 통전공작은 단호히 거부할 것”이라고 국민 앞에 밝혔다. 이미 반(反)외국간섭법을 두고 있는 호주는 국가보안법개정안(간첩활동 및 외국관여법), 외국영향력투명화법을 발효시켜 더는 중국이 호주에 검은돈과 영향력을 뿌리지 못하게 했다. 뉴질랜드에선 중국 인민해방군 정치공작부 출신이 과거를 감추고 하원의원으로 당선된 사실이 드러나 충격파를 안겼다. 중국이 의도적으로 뉴질랜드에 이민을 보내고, 현지 사회단체를 장악하게 만든 다음 정계에 진출시킨 건 물론이다. 뉴질랜드는 외국 기부금 상한선을 1500NZD(약 120만 원)에서 50NZD(약 3만7000원 너무 적죠?)로 대폭 낮추는 것으로 외국 자금 특히 중국공산당의 정치헌금이 2021년 선거에서 힘을 못 쓰게 정비를 했다.● 中 통전부가 한국에선 놀고 있겠나 미국과 호주, 뉴질랜드, 대만에서 열심히 뛰는 중국 통전부가 우리나라에서만 손가락 빨며 놀고 있을 리 없다. 어찌 보면 중국공산당은 시진핑의 중국몽을 위해 음지에서 충성을 다하는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그런 중국의 의도를 뻔히 알면서 사적(私的) 이익을 위해 친중 정책이나 사업을 강행하는 정치판이다. 순결한 척하는 그들이 음성 자금이나 이권을 챙긴 게 없는지 의심스러워서다(이쯤 되면 차이나게이트다).대만의 집권 민진당은 중국공산당의 통전공작에 2018년 11월 지방선거에서 패배했다. 불행 중 다행일지, 그때 통전공작이 드러나는 바람에 미 국방부가 다음 선거를 지켜주겠다고 나섰고 올 1월 미국과 공조함으로써 차이잉원 총통은 재선에 성공할 수 있었다. ● 대만에서 딱 걸린 중국 댓글부대구글에서 50 cent party를 치면 주르륵 뜰 정도로 중국의 댓글부대는 유명하다. 중국은 대만도 같은 한자를 쓴다고 안심한 모양이지만, 중국이 번잡한 획수를 줄여 간체화(簡體化)해서 쓰는 반면 대만은 옛날 그대로인 번체(繁體)를 쓴다. 대만사람인 척하고 중국인 댓글부대가 퍼부은 악플이 딱 걸린 것도 이 때문이다(지금 우리나라에서 ’나는 개인이오‘ 같은 조선족의 말투가 딱 걸린 것과 닮은꼴이다). 대만에서 벌어지는 중국의 댓글공작이 대한민국에는 절대 없다고 믿을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중국 교포나 중국 유학생들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갖지는 말았으면 한다. 설령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을 가장한 댓글부대라 해도, 중국에서 돈을 주니까(또는 애국심을 보여야 하니까) 악플을 다는 것이지 사람이 나빠서는 아닐 것이다. 우리도 남의 나라에서 살 때 차별받으면 분하고 억울한데 그들도 그렇게 만들어선 안 될 일이다. 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죄(罪)지, 중국인에게 무슨 죄가 있겠나. ● 좋은 정부 만나 착하게 살고 싶다중국이 우리나라에 하는 짓은 무섭고 화가 나지만 그렇다고 나라를 옮길 순 없다(이건 일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더구나 통전공작은 중국공산당이 하는 짓이므로 중국이 민주화되면 달라질 것이라고 믿고 싶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그래서 중요하다. 반일(反日), 반미(反美)가 국익에 도움 되지 않듯이 반중(反中)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사방에서(심지어 북한조차), 아무나 흔들어대는 나라가 됐지만 여기서 대한민국의 국운이 다하진 않을 것이다. 나라가 부강해지면 아무나 흔들어댈 리가 없다. 내 평생 이토록 나라걱정 해보기는 처음이라는 사람들이 요즘 적지 않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많이 배웠다. 투표 잘해 좋은 정치 만날 때까지 아무쪼록 강하고도 착하게, 잘 버텨야 한다. 우선 코로나19부터 이겨내고!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0-03-05
    • 좋아요
    • 코멘트
  • [김순덕 칼럼]청와대가 펄쩍 뛴 ‘차이나게이트’

    지금까지 청와대가 이렇게 신속하게 나선 적이 있었나 싶다. 지난달 2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등장한 이른바 ‘차이나게이트’. 청와대 관계자는 2일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월요일 브리핑 때 기자들이 입장을 묻기는 했다. ‘중국의 조직적 여론 조작 및 국권 침탈 행위를 엄중히 수사하라’는 청원은 중국발 트래픽 증감을 지적하며 중국의 인터넷 댓글 공작에 대한 대응을 촉구한 충격적 내용이다. 주말 동안 포털 사이트를 도배한 ‘조선족 댓글부대’ 주장과 맞물려 코로나19의 공포를 잠시 잊게 했을 정도다. 가짜뉴스 퇴치는 이렇게 하는 거라고 청와대가 모범을 보인 것일 수도 있다. 게시판에는 주요 내용이 허위 사실이면 답변하지 않는다고 공지했는데 모처럼 속 시원한 반응이었다. 그럼에도 중국의 여론 조작 여부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가 청원 사흘 만에 딱 잘라 부인한 건 이례적이다. “중국발 청와대 방문 비율이 2월 0.06%이고 2019년엔 월평균 0.1%”라고 자료까지 준비해 놨다. 하지만 조선족 글의 필자는 댓글부대 대다수가 한국에 유학 중인 대학생들이라고 썼다. 중국서 접속한 기록이 미미하다는 사실은 중국의 개입을 부정하는 합리적 근거가 되기 어렵다는 얘기다. 물론 조선족이라고 해서 댓글을 달면 안 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중국 정부의 의도에 따른 작업일 경우엔 문제의 차원이 달라진다. 책임 있는 청와대 당국자라면 차이나의 ‘차’자만 나와도 펄쩍 뛸 게 아니라 “진상을 소상히 파악해 국민에게 알리겠다”고 해야 마땅한 이유다. 투명하지 못한 방법으로 세계의 여론에 개입해 중국몽(夢)을 구현하는 것이 중국공산당 통일전선 공작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 산하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가 2018년 8월 24일 발표한 ‘중국의 해외 통일전선 공작’ 보고서를 청와대 국가안보실이 모를 리 없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공산당 중앙통일전선공작부를 획기적으로 확대 개편해 중국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마법의 비밀 병기’로 이용하고 있다고 2017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도 폭로한 바 있다. 지구촌 곳곳의 중국 교포와 유학생들을 동원해 중국에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는 건 기본이다. 거부하면 비밀요원에게 찍힌다는 외신도 있다. 정치인과 관료, 학자들을 음성적 자금이나 이권으로 사로잡아선 중국 관련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것도 통전부 임무다. 호주가 지난해 외국영향력투명화법, 대만이 올 초 반(反)침투법을 발효시킨 것도 이 때문이었다. 특히 친중(親中) 정권을 세우기 위해 중국이 남의 나라 선거에 개입한다는 데는 모골이 송연해진다. 2018년 말 마코 루비오 등 미 상원의원 6명은 “중국공산당이 11월 대만 지방선거에 영향력을 뻗쳐 반(反)중국적인 집권당을 패배시켰다”며 트럼프 행정부에 대책을 요구했다. 워싱턴에선 러시아의 2016년 미 대선 개입에 비해 덜 알려진 중국의 선거 개입이 우방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어 더 위험하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통전부 해외 공작 말고도 중국은 우마오당(五毛黨)이라는 댓글부대를 운영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00년대 초부터 지방정부들이 댓글 하나에 5마오(0.5위안)씩 주고 인터넷 여론 관리를 시켜 ‘50센트 정당’이라고도 하는데 요즘 중국 청년 중에는 시진핑의 애국심 교육 덕분에 돈 안 받고도 악플 공작을 즐기는 ‘50센트 2.0’이 적지 않다. 대만과 캄보디아, 뉴질랜드 선거까지 손을 뻗친 중국이 턱밑의 한국에 대해선 손놓고 있다고 믿기는 참으로 어렵다. 국내에 한국말을 아는 중국 교포가 34만 명, 중국인이 21만 명이다(2019년 등록외국인). 이 중 조선족과 유학생 일부가 댓글조직으로 활동한다고 보는 게 합리적 의심일 수 있다. 만에 하나, 청와대가 이를 알고 있다면 미국을 들끓게 했던 러시아게이트처럼 차이나게이트로 확대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대만 차이잉원 총통의 1월 재선은 미 국방부와의 공조를 통한 중국 개입 방지, 페이스북 등의 자정(自淨), 그리고 시민사회의 눈을 부릅뜬 감시가 있어 가능했다고 미 외교위원회는 분석했다. 미래통합당이 댓글에 국적 표시하는 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힌 정도로는 턱도 없다. 중국공산당의 통전 공작이 어디까지 파고들었는지, 국운을 건 실태 파악을 문재인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0-03-0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순덕의 도발]시진핑 방한에 목매달지 말라

    청와대가 ‘중국인 입국 금지 요구’에 대한 최종 금지판을 내놨다. 문재인 대통령은 28일 여야 대표들과 회동에서 “(중국인 입국을) 전면 금지할 경우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의 금지대상국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전날 중앙일간지 출신 강민석 대변인은 “중국 눈치 보기라는 일각의 주장은 유감”이라고 말함으로써 절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위해 알아서 기지 않았음을 분명히 했다. 중국인 전용 입국장 같은 ‘특별입국절차’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에 충분했다는 데 동의할 수 없다. 환추시보가 중국의 삐뚤어진 입이긴 해도 “외교보다 방역”이라고 한 말이 옳다. 그러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눈치를 보느라 중국인 전면 입국 금지를 안 시킨 게 아니라는 데는 나도 동의한다.● 시진핑이 중국인…訪韓 금지 할 수 있나 4월 시진핑의 일본 국빈 방문 전, 그러니까 3월쯤 한국을 먼저 방문할 것을 필사적으로 추진 중인 문재인 정부다. 시진핑이 중국인인데 덜컥 중국인 입국 금지를 시켰다가, 시진핑 방한 무렵에 더구나 중국발(發) 코로나가 종식되지도 않은 상황에 슬그머니 입국 금지령을 해제할 수 있겠나. 일본이 후베이성 체류자에 대해서만 입국 금지 조치를 하고 있는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그 나라도 내심 복잡할 것이다. 27일 NHK는 ‘외교장관이 26일 통화에서 시진핑의 4월 방일을 위해 의사소통을 계속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이틀 전만 해도 연기될 듯한 분위기였다. ‘일본 정부는 우선 시 주석의 방일과 관련한 중국 측의 반응을 주시할 방침’이라는 보도를 보면, 코로나19 때문에 매년 3월 개최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인민정치협상회의까지 연기한 판에 시진핑 방일이 가능하겠느냐는 뉘앙스가 역력하다. ● 시진핑이 바이러스를 몰고 온다면일본이 진짜 두려워하는 것은 만에 하나, 시진핑 방일단이 묻혀 올 수도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다. ‘닛케이 아시안리뷰’는 1월 30일자에 벌써 “시진핑이 황궁을 방문해 나루히토 천황과 만찬을 가질 것이고, 대규모 수행단과 함께 다른 도시들도 방문한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시진핑을 수행하는 중국인들이 사전 준비단을 포함해 수백 명이다. 베이징뿐 아니라 중국 각지에서 활약하는 관료와 기업인들도 몰려온다. 물론 엄격한 건강 체크는 받을 것이다. 코로나19가 무서운 건 무증상 바이러스 때문이다. 발열이나 기침 같은 증상이 없어 본인도 감염을 모르는 상태에서도 타인을 감염시킬 수 있다. 방일 준비단이나 수행단에 순결한 감염자가 포함돼 황궁을 방문해선 천황을 감염시킨다면, 일본에 대재앙이 아닐 수 없다. ● “과거에도 訪日 연기” 소개하는 일본닛케이는 “중국에서 감염병이 종식되기 전에 국빈 방문이 이뤄진다면 일본의 위기관리는 엄청난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고 두려움을 감추지 않았다. 17년 전 중국에서 사스가 창궐했을 때도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사스가 잦아든 다음인 2003년 5월에야 러시아, 카자흐스탄, 몽골, 그리고 프랑스에서 열린 주요 8개국(G8) 정상회의를 방문했다며 “혹여 정상회담에 바이러스를 묻혀 가는 악몽이 생기지 않을까 후진타오의 부인까지 엄격한 검사를 받았다”고 친절히 소개까지 했다. 니혼게이자이 신문은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과거에 국내 사정을 이유로 방일을 연기한 사례가 있다”고 굳이 전하기도 했다. 장쩌민 국가주석이 1998년 9월 방일을 예정했다가 그해 여름 창장(長江) 유역에 홍수가 나자 두 달 후로 일본 방문을 연기했다는 거다. 제발 알아서 오지 말아 달라는 속내가 뚝뚝 묻어난다. ● 시진핑 訪日 연기, 누가 먼저 발설하나산케이신문이 24일 일본과 중국에서 모두 연기하자는 말을 먼저 꺼내지 않으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한 건 눈물겹기까지 하다. 중국으로선 시진핑의 방일 연기를 먼저 언급할 경우, 코로나19를 제압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국제사회에 주게 되니 절대 못할 일이다. 시진핑이 국빈 방문에서 나루히토 천황과 악수까지 한다면 ‘코로나 종식 선언’을 국제적으로 연출할 수 있어 어떻게든 성사시켜야 마땅하다. 일본으로선 ‘무리 안 하셔도 된다’고 말을 꺼낼 경우, 일본이 먼저 연기론을 꺼냈다고 중국에 외교적으로 이용당할 수 있다. 일본 측에서 겉으로는 “공은 중국에 있다. 일본으로선 예정대로 준비를 할 수밖에 없다”며 얌전히 끌려가는 모양새인 것도 이 때문이다. ● 확진자 2000명 넘는 한국, 시진핑이 오겠나이 와중에 코로나19 확진자가 2000명이 넘어버린 한국을 시진핑이 방문한다는 건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다. 중국인 유학생들이 한국이 더 위험하다며 안 오는 판국이다. 전 세계의 4분의 1이 넘는 50여 개국에서 한국 출입을 제한했고, 중국에선 한국인 집에 봉인 딱지까지 붙였다. 코로나 감염이 피크에 도달할 것이라는 3월에 설령 시진핑이 방한을 하겠다면, 이번엔 일본에서 결사반대할지 모른다. 문재인 대통령은 20일 시진핑에게 전화해 “중국의 어려움이 우리의 어려움”이라고 했다. 우리 국민의 안전과 방역도 그만큼 시급해졌으니 중국인 입국 금지 조치에 대해 양해하여 달라는 전화인 줄 알았다. 중국인 입국 금지를 요청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73만여 명이나 됐던 시기여서다. 이날 청와대 발표문 맨 끝에 “시 주석의 방한 문제와 관련, 두 정상은 금년 상반기 방한을 변함없이 추진하기로 하고 구체적인 시기는 외교 당국간에 조율하기로 했다”는 대목을 보면 청와대가 얼마나 시진핑의 방한에 목매달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중국 정부의 발표문에는 시진핑의 방한에 대한 언급이 한 글자도 없기 때문이다. ● 이래도 중국에 목매달 것인가이런 굴욕을 겪으면서까지 문재인 정부가 시진핑 방한에 매달리는 이유가 궁금하다. 취임 첫해인 2017년과 2019년 12월 두 번이나 중국을 방문했던 대통령으로선 집권 중반을 넘기도록 시진핑 답방을 성사시키지 못한 것이 못내 아플 것이다. 박근혜 정부 때 시진핑은 북한보다 한국을 먼저 방문한 첫 국가주석이었다. 그가 작년 6월 북한을 방문하고도 아직까지 청와대를 찾지 않았으니 친중(親中) 정부로선 마치 조선시대 책봉을 못 받은 왕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지금 인터넷에는 중국의 마수를 경고하는 가짜뉴스까지 돌아다니는 상황이다. 문 대통령이 지난 대선 때 조선족 댓글 부대와 중국의 개입으로 당선됐고 그 빚 때문에 아무 소리 못한다는 믿기 힘든 내용이다. ● 짜파구리도, 짜장면도 이젠 싫다가짜뉴스엔 안 속는다 해도, 지금 국민들 사이엔 짜파구리도 싫어졌다는 민심이 들끓고 있다. 청와대는 총선 전 트럼프-김정은 회담이 물 건너갔으니 시진핑이라도 방한해야 4월 총선에 이롭다고 믿고 싶겠지만 그 반대가 될 공산이 크다. 설사 시진핑이 일본 빼고 한국만 온다고 해도 집권여당의 득표에 도움 되지 않을 게 뻔하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인해 우리 국민은 중국과 문재인 정부의 맨얼굴을 똑똑히 봤다. 그것만으로도 코로나19는 역사의 물줄기를 바꿨다고 본다. 그러고도 문재인 정부가 시진핑 방한 성사에 목매단다면, 국민은 이 정부가 정말로 중국에 말 못할 빚을 졌다고 믿을 것이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0-02-28
    • 좋아요
    • 코멘트
  • [김순덕 칼럼]“경제 반등” 반나절 만에 비상경제시국이라고?

    홍남기 경제부총리 체면이 우습게 됐다. 17일 오후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코로나 사태’에 따른 우리 경제의 영향 및 대응책까지 밝혔던 부총리였다. 이달 초부터 피해 기업에 대한 세관 지원, 금융 지원, 관광 외식업 지원 등을 시행 중이라며 “투자, 내수, 수출을 독려하기 위한 종합적인 경기 대책, 패키지 대책을 이달 중 마련해 시행하겠다”고 보고를 했다. 다 듣고 난 문 대통령은 일부 언론 때문에 공포와 불안이 부풀려져 경제심리와 소비심리가 위축됐다며 언론을 탓했다. 모두발언에선 ‘비상하고 엄중한 상황’이라고 했지만 부총리의 빈틈없는 보고를 받은 뒤 대통령 생각이 바뀌었나 싶었다. 그랬던 대통령이 다음 날 오전 국무회의에서 돌연 ‘비상경제시국’을 선언한 것이다. 반나절 만에 왜 대통령의 인식이 달라졌는지는 알 수 없다. 업무보고 자료 첫머리에는 ‘선제적 정책대응으로 경기 반등 발판 마련’이라고 명시돼 있다. 한 달 전 문 대통령이 “우리 경제가 반등하는 징후가 보인다”고 했던 발언의 복사판이다. 대통령 뜻대로 가던 경제가 하루도 안 돼 ‘비상한 상황’으로 돌변해 ‘비상한 처방’이 필요해진 형국이다. 하룻밤 자고 나면 문 대통령 발언이 달라지는 일은 과거에도 없지 않았다. 참모진 혹은 비선 실세의 ‘정무적 판단’에 따라 대통령 태도가 달라진 것이면 위험하다. 한국 경제가 옳게 가고 있다며 대통령 눈과 귀를 가려온 세력이 코로나19를 구실로 경제 실정(失政)을 감추고, 예산 폭탄으로 총선에 개입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결국 홍남기는 어제 노란 점퍼 차림으로 ‘코로나19 대응 경제관계장관회의 겸 경제활력대책회의’를 열어야 했다. “이달 말 투자·소비 활성화 등 전방위적 1차 경기대책 패키지를 마련해 발표하겠다”라고, 이틀 전 자신의 말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관료적으로 되풀이하는 모습은 암담하다. ‘경제비상시국 인식’ 같은 윗분의 말씀을 복창하는 경제사령탑에게서 한국 경제의 희망은 찾기 어렵다. 대통령이 열거한 소비쿠폰 남발이나 청와대 대변인이 언급한 추경 편성 언저리에서 대책이 나올 게 뻔하다. 뒤늦게라도 경제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관노(官-勞) 주도 기조의 변경을 선언했다면 경제심리는 당장 살아났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코로나19 사태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고 프레임을 짜고 있지만 국민을 속이는 일이다. 통계청이 경기 정점을 2017년 9월이라고 확정한 대로 우리 경제는 1970년 이래 가장 긴 경기 하강을 하고 있다. 정부가 입만 열면 경기 하락의 이유로 들이대는 세계 경기 둔화, 반도체 가격 하락, 미중 무역분쟁 발생 이전에 문재인 정부 출범의 여파로 한국 경제는 이미 주저앉고 있었다. 국가미래연구원의 이종규 연구원은 그 이유를 ‘체제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민간 경제주체의 소유권을 침해할 가능성이 커진 것을 민간에선 체제 불확실성으로 받아들여 투자를 기피한다는 것이다. 2017년 중반기 이후 설비투자지수가 기업경기실사지수 하락 이상으로 크게 부진한 것이 간접적 증거다. 반(反)시장 정책에 기업이 위협을 느껴 투자를 안 하고 있고, 그래서 수출도 내수도 부진해 민간경제 활력이 떨어졌음을 청와대는 왜 외면하는지 기이하다. 다음 달부터 대통령이 사실상 전권을 행사하는 국민연금의 기업경영 개입이 한 예다. 어제도 청와대는 코로나19 관련 경제계 간담회 건의를 전폭 수용하겠다며 “자율적 회식은 주 52시간제와 무관하다는 것을 적극 홍보해 달라”고 강조했다. 주 52시간 강제 자체가 기업의 투자 의욕을 위협하는 규제인데 정부를 믿고 실컷 회식하라는 얘기 같다. 간지럽고 허망하다. 그러니 아무리 정부가 ‘민간경제 활력 제고를 통한 경기 반등’을 강조해도 정부 활력 비대화에 그치는 것이다. 시장경제가 반드시 갖춰야 할 요건으로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이 꼽힌다. 정부가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삭제하려 들고, 재산권까지 위협하는 것은 ‘체제’가 뒤집힐 문제다. ‘문재인 청와대’를 잘 아는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해방 직후 실패했던 사회주의 혁명을 그들이 다시 해보겠다는 것”이라고 이번 총선의 의미를 지적했다. 코로나19 대책이라는 총선용 돈질에서 시장경제 체제를 지키려면 국민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0-02-2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순덕의 도발]진중권은 왜 집권세력을 ‘자유주의세력’이라고 했나

    요즘 진중권의 글을 보는 낙으로 산다는 사람이 많다. 나도 그렇다. 13일 한국일보에 쓴 ‘진중권의 트루스 오디세이-기득권이 된 운동권, 진보는 보수보다 더 뻔뻔했다’도 엄지척이다. 단 한 가지, ‘한국사회의 주류가 보수주의 세력에서 자유주의 세력으로 교체된 것’이라는 대목만 빼고.현 집권세력이 자유주의 세력이라고? 내가 잘못 봤나, 진중권이 잘못 썼나 싶어 다시 봤다. 자유주의 세력이 등장하는 문단을 통째로 옮기면 다음과 같다.“앞만 보고 걸었는데 사회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사실 탄핵을 기점으로 이 사회에는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큰 변화가 있었다. 그새 한국사회의 ‘주류’가 보수주의 세력에서 자유주의 세력으로 교체된 것이다. 탄핵 이후 보수는 휘날리는 태극기와 함께 지리멸렬해졌고, 아직도 그 상태에 머물러 있다. 그 사이에 자유주의 세력은 날로 지배를 공고히 했고, 지금도 승리하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그들의 교만한 자신감은 하늘을 찌를 것처럼 보인다.”● 현 정부는 헌법에서 ‘자유’를 빼려 했다지금 한국사회에서 가장 억압받는 것이 자유주의다. 문재인 정부는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자유’를 빼려다 실패하자 중고교 역사교과서에서 기어코 ‘자유’를 빼버렸다. 올해부터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는 대한민국 정치체제를 기존 ‘자유민주주의’ 아닌 ‘민주주의’로 기술했다. 자유주의는 모든 가치 중에서 자유, 특히 개인의 자유를 중시한다. 국가와 종교, 사회가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는 게 너무나 당연했던 16세기 서양에서 자유주의는 민주주의보다 먼저 등장했다. 이 자유주의가 선거로 대표를 뽑는 민주주의와 19세기 말 발전적으로 통합한 것이 자유민주주의다. ● 개인의 선택권 뺏는 전체주의로 가나문재인 정부는 여기서 자유주의를 빼고 싶어 안간힘을 썼다. 그래서 사회민주주의를 하겠다는 건지, 인민민주주의로 가겠다는 건지는 아직 모른다. ‘자유란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권리’라고 한 조지 오웰의 명언만 봐도, 문재인 정부와 이 정부를 지지하는 주류집단이 반(反)자유주의세력이라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박지향 서울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8월 우리 신문 기고에서 현 정부의 전반적 성향을 사회민주주의로 판단했다. “사회민주주의의 특성 가운데 가장 뚜렷한 것은 국가의 비대화다. 개인을 신뢰하지 않기에 개인의 선택권을 줄이고 권력을 국가에 집중하려 한다. 경제도 정부가 간섭하고 통제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높은 세금을 통해 평준화를 실현하려 한다.” 작년 여름까지는 사민주의라고 친다. 그러나 조국 사태를 겪으면서 한참 더 나갔다. 국민연금을 통한 사기업 지배, 자율형사립고 폐지, 검찰 개악을 포함한 사법부 장악 등을 보면 국가주의, 인민민주주의, 전체주의로 가는 형국이다. ● 민주당 집권했다고 자유주의 세력이냐?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좌파는 ‘자유주의정권’으로 간주한다. 손호철 서강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그는 2010년 논문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 사이에서-한국 ’자유주의정권‘ 10년의 정치’에서 “한국의 이념적 스펙트럼에서 진보-보수의 이분법이 부적합하며 대신 한나라당 같은 ‘냉전적 보수’와 민주당 같이 탈냉전적이지만 신자유주의와 시장에 우호적인 ‘자유주의’(개혁)세력, 그리고 신자유주의와 시장에 비판적인 ‘진보’세력이라는 3분법이 더 적합하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김-노 정부가 민주화운동 출신 대통령이 이끌었고 자유권 확장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세력이라는 데는 동의해줄 수 있다. 문재인 정부와 비교하면 훨씬 자유주의적이라는 점도 맞다. 그러나 그 연장선에서 문재인 정부까지 자유주의세력이라고 한다는 건 자유주의에 대한 모독이다. ● 좌파는 정의당도 자유주의로 본다한때 정의당에 몸담았던 진중권의 시각에선 현 집권세력이 자유주의세력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진짜 좌파가 쓰는 ‘전문용어’는 보통사람이 쓰는 말과 많이 다르다. 2018년 11월 (좌파)지식인선언네트워크 토론회에서도 윤홍식 인하대 교수는 “문재인 정부는 좌파정부가 아닌 자유주의정부인데 혹시 지식인이나 진보진영에서는 좌파정부가 집권한 것으로 착각하는 건 아니냐”고 했다. 심지어 ‘사회주의자’라는 인터넷 공간에선 “정의당은 애초 진보가 아니며 자유주의세력”이라고 비판한다. 민노총 정책연구원 정책자문위원이자 북경대 맑스주의학원 법학박사인 김정호는 작년 11월 ‘래디앙’에 쓴 글에서 ‘자유한국당으로 대표되는 반동 보수세력’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정부로 대표되는 자유주의세력’이라고 적었다. ‘변혁진영’을 자처하는 그들 주장대로 ‘재벌 해체, 공기업화’로 국가를 ‘민주적개조’ 하자는 것은 좋게 말해 인민민주주의, 까놓고 말해 사회주의로 가자는 얘기다. 이런 세력이 주장하는 대로 우파 야당을 반동 보수, 집권세력을 자유주의세력이라고 써줄 순 없다. ● 反자유주의세력 야권통합이 필요1980년대 등장한, 현재의 집권세력으로 자리 잡은 운동권은 ‘변혁’운동을 했다는 점에서 1970년대까지의 민주화운동과 구별된다. 이들은 단순히 독재정권을 타도하고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 정부를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해결하는 변혁적 수준의 진보적 운동, 즉 체제를 바꾸는 혁명을 원했던 그들에게 자유주의라는 수식어는 과분하다. 안타깝게도 한국당 같은 우파 정당도 자유주의세력이라고 할 순 없었다. 과거 우파 기득권세력은 자유주의를 반공주의나 자유시장주의 정도로 간주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증진하는 데 더 큰 가치를 두는 사회적 자유주의, 진보적 자유주의, 좌파 자유주의가 진짜 자유주의라고 주장하는 건 너무 나갔다. 그냥 심플하게,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중시하기에 권력 억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국가권력 비대화를 추구하는 현 정부와 주류세력은 결코 자유주의세력이랄 수 없다는 얘기다. 야권이 진정 정권교체를 원한다면 반(反)자유주의세력에 맞선 통합을 해야 한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0-02-13
    • 좋아요
    • 코멘트
  • [김순덕의 도발] ‘선거개입 의혹’ 대통령이 말하지 않는 이유

    동아일보가 7일 전격 공개한 ‘청와대 선거개입 의혹 사건’ 공소장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문재인 대통령의 30년 지기 송철호 울산시장 당선을 위해 대통령비서실 7개 조직과 황운하 전 울산지방경찰청장 등은 순차 공모해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했다. 처음 하명수사 의혹이 불거졌던 지난해 11월,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간단했다. 비서실장을 불러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우선 궁금해서라도 알아보는 게 상식이다). ● 대통령은 사실이 궁금하지 않다 하명수사 없었다는 보고를 받았다면 국민 앞에 그렇게 밝히면 된다. 관련 참모진은 부인하고 있는데 검찰이 철저히 수사해 진상을 규명하라고. 만일 있었다는 보고를 받았다면 난감했을 것이다. 그래도 숨김없이 밝히고 국민 앞에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청와대가 “지극히 일상적 업무 처리”라고 자체조사 발표를 한 건 벌써 두 달 전 일이다. 그 후 공소장이 공개되고 국민 분노가 들끓으면, 혹시 비서실이 대통령을 속이는 건 아닌지 다시 한번 확인해보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1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도, 11일 부처 업무보고에서도 침묵으로 일관했다.문 대통령이 사실 확인을 하지 않았다면, 이유는 한 가지라고 본다. 궁금하지 않은 것이다.● 언제부터, 어디까지 알고 있는가핵심은 문 대통령이 언제부터, 어디까지 알고 있었느냐다. 공소장에 따르면 대통령의 복심 윤건영이 실장으로 있는 국정기획상황실도 선거 전에 9번, 선거 뒤 2번이나 보고를 받았다. 윤건영이 대통령에게 이 사실을 전혀 보고하지 않았다고 치자. 공소장엔 송철호가 2017년 10월 청와대를 방문해 임종석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을 만났다고 나와 있다.“송철호는 대통령비서실장 임종석, 대통령비서실 내 사회수석비서관실 산하에 있으면서 보건복지 분야를 총괄하는 사회정책비서관 등을 만나 피고인 장환석(당시 균형발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에게 했던 같은 취지(산재모병원 예타 발표 연기와 공공병원 공약 수립)의 부탁을 했다.” 이날 송철호가 대통령까지 만났는지는 공소장에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청와대에 혼자 찾아온 오랜 절친을 대통령이 얼굴 한번 보지 않고 보냈다면 되레 이상하다. ● “문재인 청와대는 거짓말하지 않는다”물론 공소장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고 볼 순 없다. 공소장은 어디까지나 검찰이 조사를 통해 파악한 혐의 내용일 뿐, 법원은 재판을 통해 검찰의 주장과 피고인의 변호 내용을 듣고 판단할 것이다. 불구속 기소된 청와대 보좌진 3인(백원우·장환석·한병도)의 변호인도 11일 “공소장은 법적요건을 구비하지 못한 검찰의 주관적인 의견서”라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대통령을 언급함으로써 대통령이 선거 개입에 관여했다는 인상을 줬다며 “촛불혁명 정부로서 선거왜곡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작년 12월 국민소통비서관 윤도한이 “문재인 대통령의 청와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명언을 남긴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드루킹 댓글 조작 항소심과 관련해 지난달 김경수 경남지사의 유죄를 인정하는 발언을 했던 차문호 재판장이 10일 돌연 교체됐다. 김경수가 댓글 조작프로그램 킹크랩을 봤다는 사실은 인정된다고 이례적으로 밝혔던 그가 선고를 앞두고 이례적으로 쫓겨난 거다. 이런 식이면, 더구나 7월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출범하면, 선거 개입 사건 재판이 공정하게 진행된다고 장담할 수 있겠나. ● “공공병원=산재모병원” 대통령은 안다돌이켜보면, 문 대통령은 선거 개입 의혹과 관련해 희한한 발언을 했다. 1월 14일 신년 회견에서다. “지난해부터 하명(수사) 의혹과 관련해 청와대는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왔는데 대통령도 그 선상에서 보고 있는지, 공공병원 사업이 표류되지 않을지”를 묻는 질문에 “검찰 수사 중인 사건에 대해 제가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도 이렇게 말한 것이다. “공공병원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산재모병원’이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타당성 평가라는 벽을 넘지 못해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못하다가 지난번에 정부가 각 지자체들로부터 의견을 들어 예타면제사업을 허용했는데, 산재모병원이 포함됨으로써 가능하게 됐다. 검찰은 그 과정에서 미흡한 일이 있지 않았느냐 하는 부분들을 수사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즉, 김기현 전 울산시장이 추진했던 산재모병원과 송철호 현 시장의 선거공약인 공공병원이 같은 것임을 대통령은 알고 있다는 얘기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대통령은 묻지도 않은 ‘산재모병원’을 발설하고 말았다. 김기현의 산재모병원은 탈락했고 송철호의 산재모병원은 허용됐다. 같은 병원이 괜히 탈락됐다가 괜히 허용됐겠나. 이를 가능케 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기관은 우리나라에 하나뿐이다. 청.와.대.● “청와대가 범죄조직 운용한 셈”어쩌면 비서실은 대통령을 기쁘게 하기 위해 깜짝쇼를 벌였을 지 모른다. 직속 부하들의 선거 개입을 대통령이 모르고 있다면 핫바지라는 얘기지만(더 중요한 다른 문제들은 제대로 보고받는지 모르겠다), 대통령이 알고도 모르는 척 하는 것보다는 낫다. 대통령이 알았든 몰랐든, 청와대의 선거 개입이 사실이든 아니든, 그런 의혹이 나왔다는 자체가 헌정사에 수치스러운 일임은 틀림없다. ‘공정한 선거관리의 총책임자’로서 대통령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대통령비서실이 국민에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깊이 사과한다”는 대통령 발언이 필요한 이유다. 2012년 이명박(MB)청와대의 민간인 사찰이 드러났을 당시 문 대통령은 “개인에 의해 우발적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청와대가 정부 안에 범죄조직을 운용한 셈”이라며 MB가 관여한 사실이 드러나면 탄핵도 가능하다고 분명히 말했다.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번 공소장 공개로 인해 4월 총선에선 대통령비서실이 울산 선거처럼은 개입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공소장은 “대통령비서실은…권한의 악용이 최대한 억제되도록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통제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분명히 못 박았다. 이것만으로도 ‘윤석열 검찰’, 큰일을 했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0-02-11
    • 좋아요
    • 코멘트
  • [김순덕의 도발] 우한폐렴, 독재자 무너뜨리나

    독재 정권은 우발적 사고로 붕괴된다. 2011년 튀니지가 노점상 청년의 분신(焚身) 자살에 의해 무너졌듯, 중국 시진핑 체제도 우한 폐렴의 ‘내부 고발자’ 리원량의 죽음으로 무너질 수 있다. 34살 젊은 나이에 우한 폐렴으로 세상을 떠난 그는 중국 후베이성 중앙병원의 안과 의사였다. 작년 12월 30일 저녁 단체 채팅방에 “화난 수산물시장을 다녀온 환자들이 사스 증상을 보이니 검진할 때 보호장비를 쓰라”는 문자를 보냈다가 다음날 중국 공안의 경고를 받았다. 입 닥치지 않으면 유언비어 유포죄로 처벌하겠다는 거다. ● ‘내부고발’ 은폐한 중국 정부리원량은 입 다물고 진료만 하다 감염돼 병원에 실려 갔다. 중국 보건당국은 1월 11일 우한 폐렴 첫 사망자 발생을 발표하면서도 자신들의 잘못을 말하지 않았다. 중국 정부가 리원량을 유언비어 유포자로 체포하면서 ‘내부 고발’을 은폐했다는 사실은 31일에야 그 젊고, 정직하고, 정의감 넘치는 의사가 병원 중환자실에서 자신이 겪은 일을 SNS 동영상에 올리면서 알려질 수 있었다. 그가 7일 오전 2시58분 경 결국 숨졌다고 우한중심병원이 밝혔다. 그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도 적지 않다. 제대로 말도 못하는 상태에서 문자 인터뷰를 통해 “진실이 가장 중요하다. 건강한 사회는 하나의 목소리만 있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던 의사였다(불현듯 “당신이 검사냐”하며 상관에게 대든 우리나라 검사가 떠오른다). ● 억울한 죽음은 혁명을 부른다 중국 땅에도 자신의 업(業)에 목숨 거는 의사가 있음을 세상에 알린 리원량은 진정 의사다운 의사였다. 유언비어 유포죄로 처벌하겠다는 압박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지만 “만일 그때 모두가 이 사실을 중시했다면 오늘의 전염병 폭발은 없었을 것”이라며 그는 죽을 때까지 안타까워했다. 리원량의 죽음에 중국 인민들의 분노가 끓어오른다. SNS 추모글에 중국 정부의 책임을 묻는 주장도 등장했다. 관영매체 중에서도 어용으로 꼽히는 환추시보 사설에서 조의를 표했을 정도다. 그럼에도 중국 정부는 그 분노가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향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조절하고 있을 것이다. 2010년대 초 ‘아랍의 봄’은 튀니지 노점상 청년의 분신자살에 촉발됐다. 오랜 독재와 부패, 경제난과 실업난에 지친 튀니지 사람들은 2010년 12월 17일 부패 공무원의 단속을 받고 제 몸에 불을 붙인 무함마드 부아지지의 동영상을 보고는, 더는 못 참겠다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중국정부의 책임을 묻는 중국인민들벤 알리 정권의 강경 진압에도 시위는 멈추지 않았다. 이듬해 1월 4일 부아지지가 끝내 숨지자 아예 독재자 퇴진운동으로 확산됐다. 다급해진 벤 알리는 13일 새벽 사과성명을 TV로 생중계했으나 군부는 그날 중립을 선언했다. 결국 다음날 벤 알리는 사우디로 망명했다. 부아지지의 분신 28일 만이었다.2011년 부아지지의 죽음처럼, 1987년 ‘탁 치니 억 하고 죽은’ 대학생 박종철의 죽음처럼, 청년의 희생은 혁명을 몰고 오는 가장 아픈 폭탄이다. ‘우발적 사고’ 같은 사망사건이 일어나고, 시위가 확대되면서 독재정권이 유화적 대책을 내놓으면, 군부 등 지배엘리트는 냉혹하게 계산한다. 어느 편에 설 것인가.리원량의 죽음에 중국 정부가 당혹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 당장 시위가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시점이다. 단 하나, 사람이 모이는 것을 극도로 피해야 하는 우한 폐렴의 속성상,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기 힘들다는 점만 빼고(이 대목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운도 좋다 싶다).● 중국몽은 깨질 수 있다…그럼 대깨문은?하늘의 명(天命)을 받은 천자(天子)가 나라를 다스린다고 믿는 중국이다. 가뭄 같은 천재지변이나 역병은 천명이 바뀐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천명이 바뀌고 왕조의 이름이 변하는 것이 혁명(革命)이다. 거의 200년에 한번씩 왕조가 바뀌어도 중국인들이 태연하게 자기 삶을 살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지난주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현대의 중국인들이 이번 전염병을 놓고 시진핑이 하늘의 분노를 산 것이라고 보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폐렴사태가 시진핑 체제의 정당성을 흔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인민들의 실망이 커지고, 공장들이 폐쇄되면서 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하면, 중국이 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하겠다는 시진핑의 중국몽(中國夢)도 깨질 수 있다. 남의 나라 걱정할 때가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4일 “정부는 비상한 각오로 신종코로나 종식에 나설 것”라고 했다. 비상한 각오 아니어도 좋다. 중국몽만 믿고 오랜 동맹을 버릴 꿈만 꾸는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들이 제발 꿈에서 깨길 바랄 뿐이다. 단 한사람도 우한 폐렴에 희생되는 일 없이.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0-02-07
    • 좋아요
    • 코멘트
  • [김순덕 칼럼]우한 폐렴이 드러낸 韓中 정권의 맨얼굴

    중국 외교부에 이렇게 보드라운 면모가 있는지 몰랐다. 중국 신종 코로나바이러스(中國新型冠狀病毒)에 대한 4일 화춘잉 대변인의 브리핑을 보고 나서다. “어떤 나라는 극단적이고 차별적인 언사를 발설했지만 일본 후생노동성 관리들은 ‘바이러스가 나쁘지, 사람이 나쁘냐’고 말해줬다”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험한 언사를 쓴 나라가 요즘 중국이 각을 세우는 미국인지 아닌지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도 1일부터 중국 후베이성 체류자에 대해 입국 금지 조치를 시행한 나라다. 한국은 4일 시작했다. 화춘잉이 일본에 감사를 표한 날, 아직 신임장도 제정하지 않은 주한 중국대사 싱하이밍은 우리 정부의 조치에 대해 “많이 평가하지 않겠다”고 불쾌감을 표했다. 바이러스가 죄(罪)이지 환자가 무슨 죄냐는 말은 백번 옳다. 한국 정부는 중국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대접을 받는지 모르겠다. 4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밝혔듯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이며 정부의 기본 책무”다. 중국 외교부도 자국민의 안전을 위해 주재국에서 열심히 홍보활동을 하도록 지시했을 것이다. 구글을 검색하면 최근 일주일 사이 아이슬란드,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국대사들의 인터뷰가 약속이나 한 듯 줄줄이 뜬다. 싱하이밍 같은 오만한 발언은 눈 씻고 봐도 없다. 아무리 우리 대통령이 시진핑 국가주석에게 “양국은 운명공동체”라며 중국 패권 쪽에 섰다고 해도, 외교부 부국장 출신의 대사가 “중한(中韓)은 명실상부한 운명공동체가 됐다”며 전염병까지 더불어 가자고 강요할 순 없다. 내정간섭을 넘어 주재국을 속국으로 보는 언사다. 그런 중국을 청와대는 “한중이 긴밀히 협력하자는 취지”라며 싸고도니 국민적 자존심이 무너진다. 그 한없는 너그러움을 왜 문 대통령을 지지하지 않는 절반의 국민이나 야당에는 보여주지 않는지 안타깝다. 더불어민주당에선 “질병보다 가짜뉴스를 차단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렇다면 “중국 정부는 공개적이고 투명하고 책임감 있는 태도로 국제협력을 하고 있다”는 싱하이밍의 말부터 차단해야 할 것이다. 작년 12월 30일 “화난 수산물시장에 갔던 일곱 명이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에 걸렸으니 공중보건 이슈로 다뤄야 한다”고 의사들 채팅방에 처음 알린 우한 중심병원 의사 리원량 등 8명을 유언비어 유포자라며 경을 친 나라가 중국이다. 우한시장 저우셴왕은 “지방정부로서 우리는 관련 정보와 권한을 얻은 다음에야 정보를 공개할 수 있었다”고 했다. 중앙정부, 즉 당 중앙 시진핑이 정보 통제를 하고 있다는 의미다. 지금도 정확한 환자 수가 공개되는지 알 수 없다. 사람 목숨이 걸린 문제까지 비밀로 유지하며 정보를 통제하고, 국민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 것이 권위주의 정권이다. 시진핑이 음력 설날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우한 폐렴 관련 소조를 구성하고 리커창 총리를 조장으로 명한 건 좋다. 3일 회의에선 “방제작업에서 형식주의와 관료주의를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고 내로남불 지시를 내렸다. “책임을 떠넘길 경우 책임자는 물론 당정 지도자도 문책하겠다”는 선언을 보면, 두 달 후 일본 국빈방문 때까지 우한 폐렴을 해결하지 못하면 자기는 쏙 빠지고 우한시장은 물론 리커창도 희생양으로 삼겠다는 소리 같다. 바로 다음 날 문 대통령도 “총리가 전면에 나서 비상하게 대응하고 있다”고 책임의 한계선을 명확히 그었다. 중국 방문이 없었다는 이유로 감염 검사도 못 받고 딸까지 감염시킨 16번 환자를 생각하면 내가 다 억울해진다. 서울의 한 보건소장은 “검사 키트가 부족해 감염 의심자에 대한 검사는 중앙 통제하에 해야 한다”며 발을 동동 구르는데 대통령은 ‘시범 보건소’를 찾아선 의료진의 과로를 걱정했다. 집권 1000일 동안 그저 일 일 일, 참 기막힌 일을 주로 하는 모습이다. “이번 감염증은 중국의 거버넌스 체계와 능력에 대한 종합적 테스트”라고 시진핑은 강조한다. 선거로 지도자의 책임을 묻는 민주주의는 혼란과 포퓰리즘을 부를 뿐이고, 공산당 일당독재야말로 실력으로 하는 통치라고 믿는 시진핑이 과연 테스트를 통과할지는 알 수 없다. 중국이 흔들리면 세계 경제보다 우리 경제가 먼저 쓰러질 우려가 있다. 중국이 흔들리지 않으면 한국이 진짜 운명공동체, 아니 조공국이 될까 더 우려스럽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0-02-0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순덕의 도발]권력은 중독된다…남산의 부장들처럼

    과거 대통령수석비서관을 지낸 이가 “하루라도 대통령을 못 보면 불안해진다”고 한 적이 있다. 차라리 불려가 깨지는 게 낫지, 대통령이 며칠 찾지 않으면 금단현상이 생긴다고 했다. 권력은 그런 것이다. 치명적 사랑이 중독 되는 것처럼 권력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몰랐으면 모를까 한번 그 맛을 본 사람은, 심지어 권력을 누리다 잃은 사람은, 기어코 권력을 찾으려 들고 찾아선 놓치지 않으려 기를 쓴다. 어떤 정권이든 결국은 비슷하다. 오죽하면 “세상이 바뀌겠어? 이름만 바뀌지…” 대사가 나왔을까. ‘남산의 부장들’ 시대를 살았던 세대는 이 영화에서 정치적 색깔을 빼고 본다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우민호 감독이 강조한 대로 “존중과 배신, 충성, 모멸, 자존심, 시기, 질투 같은 감정이 복합적으로 소용돌이치면서 인간의 감정, 관계의 균열과 파열에서 10·26이 비롯되지 않았을까” 하는 시각으로 집중하면, 심오한 심리 느와르가 보인다. ● 남자의 질투는 ‘혁명’도 불사한다이병헌은 남산의 부장 김규평 역할을 하면서 박통 저격이 대의를 위한 것인지, 감정과 욕심 때문인지 관객을 헷갈리게 만드는 게 연기 목표였다고 했다. 그의 고뇌하는 표정과 “대국적 정치를 하십시오” 같은 묵직한 대사에 꽂히면 “10·26혁명은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하여 혁명한 것”이라는 실제 인물 김재규의 최후 진술이 의미 있게 다가온다. 경호실장 곽상천과 멱살잡이를 하는 장면은 ‘우발적 폭발성’이라는 중정부장의 성격적 결함을 드러내는 복선이다. 당시 대법원 판결문에도 10·26은 우발적이라고 보기엔 상당히 계획적이고, 계획적이라고 보기엔 너무도 우발적이라고 적혀 있다. 생전의 김종필(JP)은 원작자 김충식 전 동아일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김재규가 차지철과 충성경쟁에서 지게 되니까 빵 하고 차를 쏘고 뭐가 미우면 뭐도 밉다고 영감(박정희)까지 쏜 게 10·26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김재규의 ‘김형욱 처리’와 박정희 저격의 날짜 간격이 불과 20일이다. 김재규로선 주군을 위해 어마어마한 충성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주군은 이를 인정해주기는커녕, 깜도 안 되는 경호실장 앞에서 치욕적인 모멸감을 주었다…이렇게 보면 김재규의 행동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 알고 보면 모두 불쌍한 사람이라고? 어디 김재규 뿐이랴. 차지철도, 김형욱도, 세상에 이해 못할 사람이 없다. 알고 보면 모두 불쌍한 사람인 거다.박정희는 또 어떻고! 그는 중간 실력자들끼리 끊임없이 충성경쟁을 하도록 이간질과 충동질을 하는 분할통치 용인술의 대가였다. JP라인이었던 김형욱은 권력의 칼을 쥐자 박정희와 ‘직거래’로 신뢰를 구축했다. 그 직거래가 끊기면 금단현상이 생기는 것이 21세기 대한민국 정치현실이다. 중독이 되면 같은 효과를 얻기 위해 점점 더 많은 양을 투여해야 한다. 사랑이나 권력, 승리를 경험하면 더 많은 사랑, 권력, 승리를 갈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테스토스테론이 강하게 분출돼 사람이 더 똑똑해지고, 더 용감해지지만 더러는 바보처럼 되기도 한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뇌를 들여다보면 목표와 보상을 떠올리는 데 쓰는 좌뇌 전두엽은 활성화되지만 위협을 판단하고 자가진단을 하는 우뇌 전두엽은 둔화된 것으로 나타난다. 대통령의 참모와 조직들은 경쟁적으로 대통령이 좋아함직한 보고와 행동으로 충성경쟁에 혈안이었다. 대통령을 우상처럼, 종교처럼 섬기느라 사안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박정희는 그런 충성경쟁 덕에 18년 장기집권을 할 수 있었고, 또 그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 정치의 원동력은 경제적 이해관계모든 정치의 원동력은 사적(私的) 이해관계에서 나온다고 ‘독재자의 핸드북’은 일갈한다. 프랑스혁명도 중산층의 경제적 야망에서 나왔다는 해석이 있다. 5·16쿠데타, 12·12 하극상 쿠데타 역시 군의 인사 불만이 크게 작용했다. 유신독재 시절, 박정희의 친위그룹 역시 인사에 미치는 힘을 과시해 장관과 의원들을 주물렀다. 문재인 정부에서 주류세력으로 자리 잡은 386운동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고 노무현 변호사를 인권변호사로 키운 사건, 1982년 2차 부림사건에 대해 부산지방법원 판사로서 무죄를 선고했던 서석구 변호사는 “그들의 민주화투쟁은 민주주의보다 정권장악을 위한 투쟁이 아니냐”고 했다(2014년 ‘악마의 변호인’) 청와대 행정관은 같은 편 유재수 전 금융위 국장의 비리 감찰 무마에서 “청와대가 금융권을 잡고 나가려면 유재수가 필요하다”고 했다고 공소장에 적혀 있다. 청와대가 왜 금융권을 장악해야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정치에서 사적 이해관계와 경제적 동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충분히 알 것 같다. ● 허망해도 좋다, 권력을 누릴 수 있다면원하는 것을 얻었다고 만족하는 것도 아니다.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아 가엾다 이 내 몸은 그 무엇을 찾으려고…” 영화에서 박통이 혼자 읊조리듯 부르는 ‘황성옛터’에선 권력자의 절대고독과 절대권력의 허망함이 절절히 배어나온다. 그럼에도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는 권력자는 없다. 법과 제도로 권력을 제한하거나, ‘혁명’이라도 맞지 않는 한. 현명하게도 원작자는 “이 책은 역사의 백미러 같은 것”이라고 ‘정답’을 마련해 놨다. 각자의 스펙트럼에 따라 박정희 시대의 공과를 인정하고 역사의 거울을 제대로 성찰할 때 제대로 된 미래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회사 선배이기도 한 원작자는 나의 칼럼스타일에 대해 애정 어린 걱정까지 해주었다. 그래서 여기서 그냥 안전하게, 끝).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0-01-27
    • 좋아요
    • 코멘트
  • [김순덕 칼럼]‘남산의 부장들’과 청와대 참모들

    설 대목을 겨냥해 영화 ‘남산의 부장들’이 개봉한다. 우민호 감독은 모든 세대가 대화의 소재로 삼을 수 있는 영화라며 “정치적 성격이나 색깔은 없다”고 강조를 했다. 총선을 석 달 앞둔 지금, 41년 전의 10·26사태를 다룬 영화 개봉이 정치적으로 안 읽힐 리 없다. ‘내부자들’에 나오는 불후의 명대사처럼 국민이 개돼지가 아니라면 말이다. 이마 위로 힘줄이 돋는 모습까지 연기하는 이병헌이 남산의 중앙정보부장 역할을 한다. 고뇌 끝에 독재자 대통령을 시해한 다음 실제 인물 김재규가 “자유민주주의를 위해서 혁명을 한 것”이라고 최후진술 하는 장면은 장렬하다. 태극기 시위대와 비슷한 성향이라면, 불순한 의도로 때맞춰 나온 좌파 선전물이라며 분노할 듯싶다. 반대의 성향이라면, 박정희에서 박근혜로 이어진 적폐를 이번에야말로 청산해야 한다며 총선까지 공분을 이어갈 듯하다. 해석은 각자의 몫이다. 다만 박정희 유신 독재를 경험하지 않은 청년세대 가운데 이병헌에게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보인다며 열광하는 반응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에 대한 충심에 굴욕을 견뎌가며 뛰는 모습이 겹쳐진다는 것이다. 권력의 속성은 바뀌지 않았다. 영화 속 여성 로비스트가 “세상이 바뀌겠어? 이름만 바뀌지…” 하고 내뱉는 대사 그대로다. ‘촛불혁명’이라며 집권한 문재인 정부나, 쿠데타로 집권해 18년 독재를 한 박정희 정권이나,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건 권력 유지라는 사실이 서글플 뿐이다. 1972년 10월 유신은 헌법과 법률에 명시된 3권 분립과 민주적 절차를 형해화하고 법과 제도를 박정희 중심으로 재편한 친위쿠데타였다. 그 시절, 선거 공작부터 정책 개발까지 중정이 주무르던 역할을 현 정부에선 청와대가 하고 있다. 물론 지금의 국가정보원이든 청와대든 국회의원까지 잡아다 고문하는 일은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대통령민정수석실이 동의서를 받았다며 공직자들 휴대전화를 압수해선 사적 내용까지 탈탈 터는 것도 발가벗겨져 매달린 듯한 충격과 공포를 준다는 점에선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나마 박정희는 독재를 했고, 중정은 초법적 폭압기구였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현 대통령비서실의 법률적 근거는 정부조직법 14조 ‘대통령 직무를 보좌하기 위해 대통령비서실을 둔다’가 고작인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내각을 능가하는 일을 한다. 일개 대통령 보좌 조직이 대통령의 절친 송철호를 위해 울산시장 선거에 개입한 의혹을 보면, 독재 시절 관권선거가 차라리 우습게 보일 정도다. 과거의 중정과 별도로 굴러간 ‘이규광 별동대’처럼 백원우 민정비서관도 별도의 별동대를 운영했다는 건 우연이라 치자. 울산을 오갔던 별동대원은 하명수사 관련 검찰 수사 중 목숨을 끊었다. 송철호의 여당 경쟁자들이 대통령비서실장, 정무수석 등으로부터 오사카 총영사 갈래, 공공기관 사장 할래 제안을 받았다는데도 “친한 사이에 오간 소리”라며 죄가 안 된다는 주장이니, 국민을 진짜 개돼지로 아는 모양이다. 박정희 때도 1972년 10월 비상계엄령을 선포한 다음에야 중정에서 내놓았던 개헌안, 선거제 개편, 감찰원 신설안이다. 문재인 정부가 개헌안, 선거제 개편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안을 평상시에, 청와대 비서실에서 당연한 듯 내놓은 건 정상이랄 수 없다. 특히 공수처가 전현직 공직자를 대상으로 수사와 영장청구를 하고, 판검사와 경찰에 대해선 기소까지 한다는 건 계엄 없이 3권 분립을 형해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대통령비서실의 초법적 행위가 드러나자 서둘러 공수처법안을 통과시킨 것도 모자라 친위쿠데타 하듯 검찰 직제 개편을 불사한 것도 불길하다. 박정희는 북한 김일성을 이길 수 있는 부국강병(富國强兵)의 집념을 가졌고, 중정을 주요 목표 달성에 동원했다고 원작자 김충식 전 동아일보 기자는 기록했다. 중정이 너무 지나치다 싶으면 견제할 수 있었던 김정렴 비서실장 같은 인물도 한때 존재했다. 문 대통령에게는 북한 김정은을 이겨내겠다거나 부국강병의 집념이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닌지 두렵다. “초법적 권력이나 지위를 내려놓는 것이 권력기관 개혁 요구의 본질”이라고 검찰을 압박하면서도 비서실의 초법적 권력과 지위는 눈에 안 보이는 것 같다. 현 정부를 견제할 곳은 ‘윤석열 검찰’뿐이다. 건투를 빈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0-01-2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순덕의 도발]“거짓말쟁이에게 죽음을”…이란 국민은 위대하다

    정부와 최고지도자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에 이란사람들이 분노해 시위하는 모습은 신기하다. 이란 정부는 8일 격추된 우크라이나 민항기의 잔해를 불도저로 밀어버리며 사실 은폐에 안간힘을 썼다. 이란혁명수비대 대공사령관이 사흘 만에 “실수로 격추된 사실을 알았을 때 죽고 싶었다”고 자백한 건 심지어 순수해 보인다. 내가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어서인가. 집권세력의 거짓말이나 이중적 행각쯤은 내로남불, 가볍게 넘겨버리고 더는 분노하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그런데 이란에선 가장 분노하는 대목이, 체제를 책임지는 지도부가 비행기 결함에 추락했다고 거짓말한 점이라니 신선하다. 우파든 좌파든, 이슬람이든 무종교이든, 옳은 건 옳은 것이고 거짓말은 옳지 않은 것이다. 이 지당한 사실을 인정하는 이란사람들이 고맙고 감동스럽다. 테헤란에서 반(反)정부 시위 단골 구호인 “미국에 죽음을!” 대신에 “거짓말쟁이에 죽음을!”이라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는 외신에 새삼 이란을 다시 보게 됐다. ● 이란혁명은 성직자에게 강탈당한 것2500년의 찬란한 문명을 자랑하는 이란은 1979년 이슬람 공화국으로 체제를 바꾸는 진짜 혁명을 했다. 그러나 혁명에 참여했던 사람들 모두가 지금 같은 신정(神政) 체제를 원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나는 이번에 알았다. 이란혁명은 이슬람 성직자들에게 공중납치 당했던 것이다. 반정부 시위에는 자유민주주의를 원하는 사람들은 물론 지식인과 중산층, 학생과 노조, 민족주의와 좌파 세력도 참여했다. 부패한 팔레비 국왕 축출이라는 목표는 같았다. 1979년 2월 1일 망명지에서 귀국한 이슬람 지도자 호메이니는 탄탄한 성직자조직을 통해 이란을 장악하고는 피의 전투 끝에 2월 11일 승리를 선언했다. 3월 말 이슬람 공화국으로 갈 것이냐 말 것이냐를 묻는 국민투표를 하면서도 어떤 나라로 갈 것인지 이란국민이 몰랐다는 건 기막힌 일이다. 이슬람 공화국이라고 해도 음주를 강하게 단속하는 나라쯤 될 것으로 여겼다는 1979년 외신도 있다. 투표소는 뻥 뚫린 공개적 장소였고 유권자 명부 같은 건 있지도 않았다. 국민투표는 사기였던 셈이다. ● 그들이 원한 것은 부와 권력이었다도덕적 자신감에 사로잡혀 자신들만이 나라를 운영해야 한다고 믿는 점에서 호메이니 세력은 우리의 촛불혁명세력과 다르지 않다. 자유주의 세력과 손잡고 노조 등 좌파세력과 여성운동집단을 몰아낸 다음, 호메이니 독주에 문제를 제기하는 자유주의자들을 서구 앞잡이로 몰아 숙청하는 과정은 공산당 통일전선전술과 흡사하다. 그렇다면 이슬람 성직자들은 정말 이슬람 율법에 충실한 나라를 추구했는지 의문이 든다. 이른바 민주화세력이 정말 자유민주주의에 충실한 나라를 추구했는지도 의심스럽다. 실제 원하는 것은 권력과 부(富)였고, 혁명수비대(또는 정보경찰과 공수처) 같은 폭력을 통해 국민의 머릿속까지 지배하는 전체주의 국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면 그들은 정권을 잡지 못했을 거다. 이란 성직자들의 혁명이 경제적 이유에서 비롯됐다는 연구는 너무나 많다. 1970년대 중반 국제유가 파동 여파로 대거 해고된 노동자들이 반정부 시위에 나섰듯, 성직자들은 이슬람 영향력 약화를 위해 팔레비 왕이 종교재단의 토지를 몰수해 농민들에게 분배하자 분연히 일어섰다는 분석들이다. ● 부패한 지배세력, 가난해진 이란국민 그 한이 아직도 안 풀렸는지 현재 이란 산업의 70% 이상이 정부 소유 또는 국영으로 운영되면서 지배세력의 배를 불리고 있다. 2017년 세상을 떠난 혁명 주역이자 성직자인 라프산자니 대통령의 재산이 10억 달러가 넘는다고 미국 포브스지가 추정했을 정도다. 솔레이마니가 있던 혁명수비대 역시 기업 경영을 통해 남부럽지 않은 부와 권세를 누리며 이웃 나라에 혁명을 수출하는 게 업(業)이다. 부패한 지배세력이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외면하고 국내외 세력 확장에만 매달린 결과, 천혜의 지정학적 요지에 한반도 7.5배 크기로 자리 잡은 이란의 1인당 국민소득이 2018년 고작 4800달러다. 1970년대까지 이란이 우리보다 잘살았다는 것도 나는 이번에 알았다. 애틀란틱카운슬이라는 싱크탱크가 이란과 문화적, 산업적으로, 또는 대미관계에서 비슷한 터키와 한국, 베트남을 비교했는데 1950년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이란의 60%에도 못 미쳤다. 1980년만 해도 이란의 1인당 소득(2374달러)은 터키(2169달러) 한국(1711달러) 베트남(514달러)보다 많다. 그랬던 우리나라 1인 소득이 2018년엔 이란의 무려 6배다(대한민국 만세!) ● 아무리 불행해도 권력자를 못 바꾼다면 이란에선 신앙을 하늘처럼 받드는 만큼 이란국민이 행복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소득뿐 아니라 자유와 건강, 사회적 지원, 부패 등을 두루 평가해 각국의 행복순위를 매긴 ‘세계행복리포트 2019’에서 이란은 156개국 가운데 117등이다. 이란이 중동 패권의 라이벌로 여기는 사우디아라비아(28위)보다 한참 뒤진다(한국은 54위. 스스로 행복하다고 전 세계에 광고하고 우리 대통령도 본받고 싶다는 부탄은 95위다). 프리덤하우스가 법치와 종교적 자유, 정부의 크기 등으로 매긴 2019년 ‘자유 지수’를 봐도 이란(154위)은 사우디아라비아(149위)와 별 차이 없다(궁금한 독자를 위해, 한국은 27위). 더 가난하고 불행할 뿐이다. 이란은 시아파 무슬림이고 사우디는 수니파 무슬림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왕정을 공화국으로 바꾸는 혁명까지 해봤지만, 최고지도자는 바꿀 수 없는 신정체제에서 산다는 것이 숨 막힐 듯하다.그에 비하면 우리는 선거로 정권을 바꿀 수 있어 참 다행이다…라고 써놓고 보니 우울하기 그지없다. 야당이 지리멸렬한 가운데 우습게 선거제도가 바뀌고, ‘윤석열 검찰’의 손발이 잘려나가고, 사법부와 헌법재판소는 물론 선거관리위원회까지 집권세력에 장악돼 앞으로 정권 교체가 가능할지 알 수 없다. 2016년 촛불시위가 그들만의 이념을 공유하는 혁명세력에 공중납치 됐다는 것을 이제 확실히 알겠다. ● 北 김정은 “핵 포기 없다” 다짐했을 것 더구나 우리는 핵을 움켜쥔 북한 김정은을 머리 위에 모셔놓고 사는 처지다. 김정은 입장에선 미국이 이란에 핵무기가 없어 솔레이마니를 드론 공격했다며, 절대 핵 포기 못 한다고 재차 다짐했을 것이다. 이란이 이라크 내 미군기지를 미사일 공격해도 미국서 대응하지 않는 것을 보고, 북은 오산이나 평택 군산의 미군기지를 폭격해도 미국은 물론 한국도 꼼짝 못 할 거라고 믿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남쪽 대통령은 김정은 답방을 간절히 원하는 모습이니 ‘스톡홀름 증후군’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행인지 불행인지 2020년의 국제정세는 민족주의의 귀환, 세계주의의 후퇴, 힘과 국가이익을 강조하는 지정학의 귀환이 예상된다. 국내정치에선 권위주의의 증가, 그리고 국내정치 이해관계가 국가전략을 압도하는 외교가 두드러질 것으로 아산정책연구원은 내다봤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비슷하게 한심한 짓을 하리라는 전망이다. ● ‘중동의 중국’ 이란과 중국, 그리고 한국이란은 ‘중동의 중국’이다. 아태지역의 패권을 노리는 중국이 미국의 축출을 꾀하는 것처럼, 이란도 중동과 호르무즈 해협에서 미국이 떠나기를 원한다. 셰일 혁명으로 에너지 자립을 달성한 미국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다. 그러나 미국이 동맹국을 위해 원유 수송길을 지켜주는 경찰 역할에서 손을 떼면 가장 멀리서 에너지를 수입하는 한국은 ‘참혹한’ 꼴을 당할 수 있다. 미국이 아시아를 떠나도 마찬가지다. 이란도 2500년 전 페르시아제국의 영광을 못 잊고 주변국에 테러를 수출해 이슬람 맹주를 노리는 판에, 중화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중국 옆에서 한국이 온전할 리 없다. 현재의 지정학적 역학 관계를 본다면 한국이 중국과 손을 잡는 건 고려대상도 될 수 없다고 ‘셰일혁명과 미국 없는 세계’의 피터 자이한은 지적한다. 그럼에도 친중반미반일 세력이 득세한 ‘국내적 문제’로 인해 국민이 불행해지는 길로 갈 것 같아 걱정이다. 아무리 신을 받드는 정권이라 해도, 40년간 세계 최강국 미국에 맞서 제 국민을 불행하게 만든 나라를 잘 봐주긴 어렵다. 그나마 이란에는 정부와 최고지도자의 거짓말을 용납 못 하는 국민이 있어 실낱같은 희망이 보인다. 분노할 일은 내로남불이라며 비웃을 게 아니라 분노를 해야 한다. 이란국민 만세.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0-01-14
    • 좋아요
    • 코멘트
  • [김순덕 칼럼]닉슨, 워터게이트 특검 잘라 탄핵몰렸다

    문재인 대통령의 인상이 달라졌다. 7일 신년사 영상과 1년 전 영상을 비교해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얼굴 아랫부분에 살집이 조금 생겼는데 너그러워 보이는 게 아니라 그 반대다. 강퍅하면서 권위적으로 변한 느낌이다. 탁월한 연출자 탁현민이 없어서인가 싶었다. ‘1·8 대학살’ 같은 검찰 인사를 보니 알겠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등을 놓고 대통령 턱밑까지 파고든 ‘윤석열 검찰’의 수족을 찍어내지 않고는 편할 수가 없던 것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사건을 넘겨받아 암장하려면 7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대통령의 30년 절친을 당선시키려 청와대부터 집권당까지 동원됐다는 정황이 계속 나오는데 대권 꿈을 꾼다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자기 정치나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불안하면서도 노기(怒氣)가 뻗치는 듯했다. 1974년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탄핵 위기에 몰린 건 도청 때문이 아니라 수사담당 특별검사를 해임한 사법방해 때문이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문 대통령이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 중인 윤석열 사단을 모조리 좌천시킨 것은 ‘민주적 통제’가 아니라 명백한 사법방해다. 더구나 총선을 앞두고 국민이 시퍼렇게 보는 상황에, ‘윤석열 패싱’이 가능한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통령의 대학 후배를 꽂아 넣은 건 국민을 개돼지로 여기는 것과 다름없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 싶었던 조치들이 각본을 따르듯 착착 진행되는 현실은 섬뜩하다. 돌연 연기됐던 대선 댓글 조작 사건 김경수 경남지사의 2심 선고도 1심 유죄 판결이 뒤집힐지 모른다.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대통령을 견제 못 하고, 사법부마저 독립성을 잃으면서 ‘전체주의적 민주주의’라는 소리가 나온다. 남산에 끌려가 물고문당하지도 않으면서 무슨 전체주의 타령이냐는 문파에게 최근 포린어페어스지가 소개한 독재의 정의를 알려주고 싶다. 280개 독재정권을 분석한 ‘독재는 어떻게 작동되는가’ 연구에 따르면 승자를 결정하기 힘든 선거를 하거나, 선출된 지도자가 경쟁의 룰을 바꾸는 것이 독재정권이다. 문재인 정부는 현직 의원도 산식(算式)을 알 수 없는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제1야당과 합의 없이 바꿔버렸으니 당당히 속할 만하다. 독재정권은 측근에게 공직이나 이권을 나눠 주고 반대자를 냉혹하게 처벌함으로써 장기집권을 유지한다. 이란 국민은 2019년 성장률 ―9%로 고꾸라진 ‘저항 경제’ 속에 고통받는데도 이슬람 정권이 유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혁명수비대가 기업을 운영하며 정부 사업을 도맡아선 막대한 이득을 챙길 수 있어 체제가 수호되는 것이다. 청와대가 측근들을 공기업에 낙하산 투하한 것도 모자라 총선까지 보낸다는 건 국가를 꿀단지로 본다는 얘기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공기업 정규직원을 6만 명이나 늘리고 온갖 보조금을 푸는 것도 결국 장기집권을 위한 매표 행위로 봐야 한다. 독재의 기술로는 대법원장 임명 등 최고지도자가 법과 관련된 모든 것을 장악하는 것이 필수다. 이란에선 대통령도 의원도 최고지도자가 관할하는 헌법수호위원회의 검증을 거쳐야 출마한다. 이념은 세속의 종교다. 문 대통령이 이념에 맞는 인사로 사법부와 검찰을 장악한 데 이어 공수처를 통해 목줄까지 죈다는 건 탁월한 통치술이라 할 수 있다. 절대 무너질 것 같지 않은 절대권력도 영원할 순 없다. ‘독재는…’ 연구에선 3분의 1이 쿠데타로, 4분의 1은 선거에 의해 몰락했다. 하지만 1979년 이란혁명 때처럼 언제 혁명이 일어나 독재정권을 무너뜨릴지는 예측하기 어렵다는 게 아산정책연구원 장지향 중동센터장의 연구 결과다. 언론자유를 없애 독재정권은 국민이 어떤 상태인지 모르고, 정치 엘리트는 거짓 충성경쟁에 골몰하기 때문이다. 어떤 우발적 계기로 독재정권이 국가 장악력과 여론 통제를 놓치는 순간, 혁명은 봇물처럼 터지게 돼 있다. 군과 관료 등 지배 엘리트는 주변의 움직임을 보며 어느 편에 설까 결정하는데, 당황한 독재자가 사과하거나 유화책을 내놓으면 정권은 걷잡을 수 없이 붕괴한다. 우리 대통령의 흔들리지 않는 단호함이 이런 연구 끝에 나온 것이 아니길 바란다. 듣기 좋은 보고만 하는 참모, 마사지 통계나 여론조사에 의지하다간 정말 개혁할 기회를 놓칠 수 있다. 혁명 뒤에 등장하는 정권이 이전 정권보다 꼭 나은 건 아니라는 역사의 교훈이 두려워 하는 소리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20-01-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순덕의 도발]희망찬 ‘역사의 교훈’을 찾는다면Ⅱ

    희망찬 새해는 아니어도 새해는 새해다. 새해 첫 도발을 절망적으로 끝낼 순 없어 문명사학자이자 철학자인 윌 듀란트가 쓴 ‘역사의 교훈’을 들여다봤다. ‘문명이야기’ 11권의 대작을 집필한 뒤 1968년 전체를 통독하며 얻은 깨달음을 적은 책이니 손톱만한 희망이라도 찾고 싶었다. ● 혁명지도자의 감춰진 동기는 경제다역사에 대한 가장 강력한 관찰이 담겼다는 ‘경제와 역사’ 부분은 “카를 마르크스에 따르면 역사는 활동 중인 경제다”로 시작한다. 트로이를 향해 1000석의 함선을 띄운 것은 아름다운 헬레네 때문이 아니라 경제적 야심 때문이고, 프랑스혁명도 루소의 영향이 아니라 중산층이 사업과 무역을 위한 법적 자유와 정치적 권력을 열망했기 때문에 일어났다는 대목에서 눈이 번쩍 했다. 혁명이든 쿠데타든, 거룩한 명분 뒤에 감춰진 동기는 경제라는 것이 듀란트의 혜안이다. 법무장관을 지낸 조국이 보여주듯, 한때 민주화를 외쳤다는 사람들이, 그들이 비난해마지 않는 반칙과 특권의 보수도 아니면서, 어찌 그리 대놓고 돈과 재물을 밝히는지 나는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대통령의 동네 약사부터 30년 절친까지 전리품 차지하듯 공직을 나눠먹는 모습은 인간에 대한 신뢰마저 상실케 했다.역사에 통달한 듀란트의 깨달음을 접하니 우습게 이해가 된다. 문재인 정부의 조직과 예산이 왜 자꾸 커지면서 친문인사들이 곳곳에 빨대를 꽂는 건지, 태양광부터 남북철도 같은 ‘좌파 비즈니스’를 왜 그리 극렬히 밀어붙이는지도. 이 좋은 ‘국가라는 황금거위’를 놓칠 수 없어 그들에게는 장기집권이 절실한 거였다. ● 富의 집중과 재분배가 경제의 역사역사에서 부의 집중은 정기적으로 드러나는 현상이라고 듀란트는 지적했다. 모든 경제시스템은 개인이나 집단의 이윤 동기에 기댄다는 것이 역사적 경험을 통해 입증된 사실이다. 사람은 똑같은 능력을 갖고 태어나지 않기에 부의 불평등 뿐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불평등은 문명의 복잡성과 더불어 더욱 커지게 돼 있다.자유와 평등은 슬프게도 영원한 적(敵)이어서 부의 집중은 도덕과 법이 허용하는 경제적 자유에 비례한다. 그러다 심각한 상황까지 치달으면 부를 재분배하는 정권, 또는 가난을 재분배하는 혁명이 주기적으로 나타난다. 불평등이 커지는 것을 감시하려면 1917년 러시아처럼 자유를 희생시켜야 한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싸움도 부의 집중과 분산으로 나타나는 역사의 리듬이라고 했다. 로마제국 때도, 송나라 왕안석 때도 사회주의가 등장했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돈이 너무 많이 들어 오래 못 간다는 것이 듀란트의 결론이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줄 돈이 늘면서 이를 관리할 관료도 늘어나는데 권력이 커지는 만큼 부패까지 늘어나 세금이 오르기 때문이다. 결국 국민은 일할 동기와 돈 벌 동기를 잃게 돼 경제와 더불어 정권이 무너진다는 거다. ● 지도자의 진취성이 희망이라는데 “한 세대의 평화만 주어져도 소련의 공산주의는 인간 본성에 의해 무너질 것”이라고 했던 듀란트는 소련 붕괴(1991년)를 못 본 채 1981년 눈을 감았다. 역사의 첫 번째 생물학적 교훈은 ‘삶이 경쟁’이라는 점이고, 사회는 이상(理想)이 아니라 인간 본성 위에 세워진다는 그의 용감한 지적에 경의를 표한다. 로마제국이나 20세기 소련이나 지금의 한국이나, 인간 본성과 인간이 움직이는 동기는 다르지 않다. 반란에 성공한 이들이 정권을 잡은 뒤 자기네가 비난을 퍼붓던 권력자들과 똑같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법적 정의와 평등한 기회를 통해 모든 잠재능력이 발전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사회가 경쟁에서 생존한다고 듀란트는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는 부를 재분배한 현명한 정권이 될지, 가난을 재분배한 혁명정부로 기록될지는 알 수 없다. 집권당에서 연일 ‘사회적 패권 교체’를 입 밖에 내는 걸 보면 안타깝게도 현명한 것 같지는 않다. 오직 지도자의 상상력과 진취성, 그리고 추종자들의 근면함만이 가능성을 현실로 바꿀 수 있다고 했다. 이 역사의 교훈이 2020년 대한민국에 희망이 됐으면 한다.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0-01-04
    • 좋아요
    • 코멘트
  • [김순덕의 도발]희망찬 ‘역사의 교훈’을 찾는다면Ⅰ

    ‘희망찬 새해가 밝았다’ 같은 관용구를 당연하게 쓰던 때가 있었다. 올해는 그 말을 쉽게 쓸 수가 없다. 자유민주주의에서 독재로 가는 나라들은 ①위기 때 선출된 지도자가 ②계속 적(敵)을 만들어 공격하면서 ③사법부와 언론을 장악해서는 ④선거제와 헌법을 고치는 수순을 쓴다고 지난해 소개할 때만 해도(김순덕칼럼 ), 설마 우리나라가 그리 가랴 했다. ● 다가올 ‘확실한 변화’ 불안하다진짜였다. 작년 말 선거법과 공수처법이 국회 처리되면서 2일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인사회 연설대로 ‘국정 기조의 큰 틀’은 바뀌게 됐다. 2020년엔 총선을 통해 ‘더욱 확실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으로서 헌법에 따라 권한을 다 하겠다”는 다짐을 보면 ‘윤석열 검찰’ 물갈이는 물론이고 대통령 발(發) 개헌도 가능할 것이다. 그리하여 ‘공정사회’가 이뤄지고 ‘상생 도약’하여 ‘함께 잘 사는 나라’가 되면 정말 좋겠다. 우습게도 청와대공직기강비서관이 2년 전 당시 민정수석 조국의 아들 인턴활동확인서를 가짜로 만들어준 일이 검찰 공소장에서 드러난 상태다. 대통령이 국민에 대한 사과나 청와대 기강 단속은커녕 되레 검찰을 개혁한다며 칼을 휘두르는 판이니, 멀쩡한 정신도 돌아버릴 것 같다. 이젠 내로남불 같은 관용어(慣用語 아닌 官用語) 반복하기도 싫다. 청와대라는 권력기관이 국민 위에 군림하며 법과 공정과 신뢰를 농락하면서, 또 무슨 변화를 일으켜 남북 평화공동체까지 만든다는 건지 불안하다. ● 촛불혁명 목표가 분단체제 극복?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문 대통령이 ‘촛불혁명으로 태어난 대통령’이라고 하지 않고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라고 자칭했다는 사실이다. 2016년 말 거국적 촛불시위가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낸 건 맞지만 문 대통령은 혁명 아닌 헌정질서에 따라 선출됐다. 문재인 정부는 혁명정부가 아닌 것이다. 이 지당한 사실을 굳이 강조하는 이유는 좌파의 거두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촛불)혁명의 목표는 한반도 분단체제의 극복’이라고 작년 말 한 신문 기고에서 밝혔기 때문이다(‘촛불혁명’이라는 화두). 그는 “혁명의 목표가 한반도 분단체제의 극복이라면 반혁명 세력의 반격에는 막강한 외국 세력이 동참하게 마련”이라며 선거법과 공수처법에 반대한 우파 야당과 검찰은 물론, 미국과 일본까지 싸잡아 비난했다. ● “볼셰비키혁명과 촛불혁명은 유사”촛불시위를 주도했다고 자처하는 1000여개 좌파운동단체들의 연합체가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이다. 백낙청도 어딘가에 속해있다. 이들이 혁명을 통해 체제를 바꾸려 들었고, 그 혁명의 목표가 분단체제 극복(또는 남북평화공동체 구축)이라는 걸 나는 이제야 알았다. 설마하며 의심했던 것이 마침내 확인된 거다. 단언컨대, 촛불을 들고 나왔던 시민 모두가 이들과 같은 목표는 아니었다.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가 지난해 지적한 대로 ‘대한민국은 공중 납치된 항공기’이고, 기장이 납치범으로 바뀐 것조차 승객들은 모르고 있는 형국이다.“러시아혁명에서 어떻게 볼셰비키가 혁명권력의 주체가 됐는지 전개과정을 보면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촛불혁명’과 큰 유사성을 보이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역사를 전공한 이인호는 다른 때도 아닌 김대중 정부 때 러시아대사를 지냈다. 그가 “마르크스-레닌주의 의식구조를 가진 사람들이 민주주의와 민족이라는 가치를 내세워 권력을 장악한 후 평화와 민족통일이라는 구실 아래 기존의 자유민주적 정치체제를 뒤엎기 시작한 듯하다”고 지난해 6월 안민포럼 세미나에서 지적한 것이 맞았던 것이다. ● 촛불혁명권력의 독재화는 더 흉폭 레닌은 노동자 대중이 의식화돼 자발적으로 혁명에 나서는 게 아니라고 했다. 직업적으로 혁명에 매진하는 소수의 전위부대가 혁명을 주도하면서 대중을 책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고도로 결속된 소수의 조직이 상황을 주도했고, 촛불정부가 혁명 권력을 자처하며 집권했다는 점에서 볼셰비키와 다르지 않다고 이인호는 갈파를 했다. 권력 장악 뒤 볼셰비키는 국민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않았다. 그럼에도 경쟁세력을 무자비하게 섬멸하고 역사를 왜곡해 정치도구로 쓰는 식의 거짓과 선전선동으로 독재정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제발 현 정부가 여기까지 유사하지 않기 바란다. 이인호는 당시 “촛불혁명주도세력의 목표와 대중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 사이에는 러시아혁명보다 더 큰 간극이 있어 혁명권력의 독재화는 더 빠르고 흉폭하게 진행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위헌적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위법적으로 몰아붙인 그들이 또 어떤 확실한 변화를 일으킬지 두렵다. 그래도 새해인데 첫 도발을 절망적으로 끝낼 수 없어 문명사학자이자 철학자인 윌 듀란트가 쓴 ‘역사의 교훈’을 들여다봤다(희망찬 ‘역사의 교훈’을 찾는다면Ⅱ로 이어집니다).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20-01-03
    • 좋아요
    • 코멘트
  • [김순덕의 도발]중화제국의 속국으로 살 것인가

    우리나라에서 ‘친일파’의 반대말은 ‘친중파’인 것 같다. “청산하지 못한 친일세력이 독재세력으로 이어졌다”며 우파=친일파로 낙인찍은 문재인 정부였다. 일본에는 의전 결례도 격하게 유감을 밝히면서 중국 앞에선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다. 홍콩 민주화시위와 신장 인권탄압에 대해 문 대통령이 ‘중국의 내정’이라고 말했다고 23일 중국 언론은 일제히 전했다. 보도가 맞는다면, 문재인 정부는 친중파를 넘어 종중(從中)이라고 할 판이다. ● 설마 중국의 인권탄압도 내로남불? 당연히 청와대는 부인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발언을 잘 들었다는 취지였다는 거다. 그러나 중국에 유감을 표하지도, 정정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CCTV나 영문 공식 포털엔 지금도 문 대통령의 당시 발언을 영문으로 옮긴 문장("Both Hong Kong affairs and issues concerning Xinjiang are China's internal affairs," Moon said.)이 인용부호까지 붙여 걸려 있다. 홍콩과 신장의 인권 탄압은 인류 보편적 가치의 문제여서 일본을 포함한 선진국 지도자들이 시진핑에 대놓고 지적하는 이슈다. 설령 시진핑이 내정 문제라고 해도 문명국가의 지도자라면 “잘 들었다”가 아니라 인권의 중요성을 표명했어야 옳다. 일본의 결례는 우리끼리 일이다. 그러나 홍콩과 신장 문제에서 한국이 중국 편에 섰다면 국제 망신이 된다. 중국의 언론플레이에 당했대도 마찬가지다. 청와대가 여기서 내로남불 하듯 중국서도 ‘우리 편이니까 내로남불’ 아닌지 의심스럽다. 만약 일본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벌써 나라가 뒤집어졌다. ● 조선의 근대화, 청나라가 좌절시켰다 요즘 주류계급에서 “친일파” 외치면 욕이다. 물론 일본의 식민 지배로 겪은 수난과 고통의 역사를 잊을 순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조선의 망국을 일본 때문으로 돌리지, 그 전에 청나라가 중화제국의 부활을 외치며 조선의 국권을 침탈한 역사는 잘 모른다. 1876년 개항 뒤 우리가 우리 힘으로 근대화에 매진할 수 있는 천금같은 시기가 있었다. 그 때 식민지 종주국보다 더한 간섭과 이권 탈취로 마지막 개혁 기회를 빼앗아선 조선을 망국으로 떠민 나라가 중국이었다. 중국몽(中國夢)이라는 구호 아래 중화제국을 부활시키겠다며 한반도 남북 전체를 장악하려 드는 시진핑을 보다 못해 이양자 동의대 명예교수가 역저를 재출간했다. ‘감국대신(監國大臣) 위안스카이’. 부제(副題)가 모든 걸 말해준다. ‘좌절한 조선의 근대와 중국의 간섭’.● 대원군을 강제로 수레에 태운 위안스카이“중국이나 일본보다 20년 이상 늦게 개항한 조선은 개방과 개혁 시작부터 위안스카이 등 청국 세력에 정치·군사·경제적으로 속박돼 자주적 개혁의 기회를 상실했다. 위안스카이라는 인물을 통해 당시 중국이 조선에 어떤 부정적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는 것은 오늘날의 정세와 맞물려 새로운 의미를 시사할 것이다.” 난세의 영웅(또는 간웅)으로 유명한 위안스카이(1859~1916)가 훗날 중화제국의 황제가 된 것도 젊은 날 조선에서 익힌 정치력과 권모술수 덕분이다. 청군(淸軍)이 1882년 임오군란 진압을 구실로 조선 땅을 밟을 때 그는 스물 세 살의 미관말직이었다. 군 책임자가 대원군을 본국으로 끌고 가려고 병영까지 불러놓고도 결단을 못 내리자 위안스카이는 “지체하면 변이 난다”며 덥석 대원군을 수레에 밀어 넣은 간덩어리의 소유자였다. 갑신정변 때는 본국의 승인 없이 병력을 동원해 진압하고는, 고종을 자신의 병영에 옮겨 독립당의 후환을 없앨 만큼 간교하고 치밀했다. ● 평화 외치며 무장해제 하면 다 되나 조선 종주권을 되찾은 위안스카이는 1894년 청일전쟁까지 식민지 총독처럼 군림했다. 조선과 첫 통상조약을 맺은 건 일본이지만, 아편전쟁 이래 동아시아에서 체결된 구미의 불평등조약 중에서도 유례가 없는 무자비한 조약을 강제한 나라가 중국이다. 일본과 1905년 을사늑약을 맺기 전에 우리나라는 빈사(瀕死)의 길로 들어선 형국이었다. 한 나라의 군사력은, 군 복무를 하지 않은 내가 감히 말한다면, 다른 어떤 것보다 어마어마어마하게 중요하다. 대통령이 평화를 외치기만 하면 북한 김정은이, 중국 시진핑이 천사가 될 것 같은가. 역사를 아는 우리는 1885년 위안스카이가 고종에게 “조·청(朝·淸) 양국은 존망을 같이 하는 바 조선이 만약 러시아의 침략을 받으면 청이 전력을 다해 구호할 것”이라고 올린 적간론(摘姦論) 상소를 보면 가소롭다. 청나라도, 러시아도 일본과의 전쟁에서 대패해 물러날 운명인데 누가 누구를 지켜준단 말인가.● 위안스카이의 후예가 몰려오고 있다이달 초 방한했던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우리 정관재계 인사들을 대거 급소집한 장면은 위안스카이의 환생 같았다. “대국이라고 소국을 깔보거나, 힘을 얻고 약자를 모욕하는 것에 반대한다”는 일장연설은 완전 내로남불이다. 우리 집권세력의 내로남불을 보고 왕이가 배웠는지, 운동권 청와대가 중국공산당에서 내로남불을 배웠는지는 알 수 없다. 일본 식민 지배의 만행은 후벼 파면서 중국의 악행에는 과거 현재 불문하는 것이 기막힐 뿐이다. 법과 제도에서 법치와 인권을 무시하는 중국 모델을 격하게 따라가는 데는 모골이 송연해진다. 이미 중국서 온 유학생들은 홍콩 민주화를 지지하는 우리 대학생들에게 오만방자한 행태를 서슴지 않고 있다. 중국유학생 74.6%가 공산당·공청단 소속이라는 인천대 2016년 실태조사를 보면 이유가 능히 짐작된다. 새로 올 주한 중국대사 싱하이밍은 2004년 우리 여야 의원들에게 대만 총통 취임식에 가지 말라고 종용했던 황당무례한 전력이 있다. 조공질서 속의 종주국 상전들처럼 이들의 기고만장이 하늘을 찌를 조짐이다. ● 안보 위협국이 중국인가, 일본인가반만년 역사 가운데 우리나라가 중국 앞에 당당했던 시간이 불과 수 십 년이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만으로는 불가능했다. 한미동맹이 있어 가능했고, 일본이 후방에 있어 6·25 때 중공군도 밀어내고 경제개발의 토대를 닦을 수 있었다. 앞이 안 보이던 그 엄혹한 시절, 자유세계의 편에 선 건국의 아버지들 선택에 감사한다. 그러지 않았다면 한반도 전체가 김일성왕국일 것이다. 대한민국이 탄생하기 이전, 그러니까 우리가 고칠 수도 없는 과거에 목매지 말고 현실을 바로 봤으면 한다. 지금 우리의 안보와 존립을 위협하는 나라가 일본인가, 중국인가. 내년 상반기 시진핑의 방한을 성사시키려 또 어떤 굴욕을 당할지 두렵다. ‘일본 카드’는 중국에 맞서는 힘이 될 수도 있다. 내 딸이 중국인들 발마사지나 하며 살게 될까봐 피눈물이 나서 하는 소리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19-12-28
    • 좋아요
    • 코멘트
  • [김순덕 칼럼]‘중국의 패권’에 줄 선 친중파 정권

    ‘지금 이 땅의 국민과 함께 읽고 싶은 책’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전환시대의 논리’를 꼽았을 때 알아봤어야 했다. 2017년 대선 직전 동아일보 문화부가 후보들의 정책 방향을 예측하려고 만든 기획이었다.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서울대 공대 교수들이 쓴 ‘축적의 시간’(2015년)을,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갓 출간된 ‘일의 미래’(2017년)를 소개한 데 비해 문 대통령은 1974년에 나온 리영희의 책을 들었다. “대학 시절 이 책을 읽고서 내가 상식이라 믿었던 많은 것이 실은 우물 안 편견이었음을 깨달았다”며 “새 시대의 정의와 가치를 상상할 용기를 얻었다”는 거다. 중국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을 미화하고 미국의 반공주의와 일본의 정치대국화를 비판한 책을 왜 지금 시대에 국민이 읽어야 하는지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세상이 놀랍게 달라졌는데 새롭게 지식을 축적한 책은 없는지 궁금했을 뿐이다. 23일 열린 한중, 한일 정상회담을 보니 1970, 80년대 운동권을 사로잡은 그 책이 화석처럼 청와대 뇌리에 박혀 있다는 느낌이 든다. 리영희는 2007년 “내가 20∼30년 길러낸 후배와 제자들이 남측 사회를 쥐고 흔들고 있다”고 자랑한 바 있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 전쟁이 21세기 세계질서를 좌우할 패권 경쟁으로 확대된 지금, 남측 대통령은 전환시대의 논리 속에 매우 이상적으로 묘사된 중국 모델을 따라 한 번도 경험 못 한 나라로 갈 모양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양국은 오랜 교류 역사와 유사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운명공동체”라고 말했다. 운명공동체 구축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중흥을 꾀하는 중국몽(夢)에 다른 나라를 참여시킨다는 중국의 외교 목표다. 시진핑이 “세계는 100년 만에 찾아온 대급변을 겪는 중”이라고 강조한 것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년인 2049년까지 패권국가가 되겠다는 의미로 봐야 한다. 그래서 북한 김정은도 “중국 인민이 중국몽을 실현할 것을 확신한다”고 덕담을 했지, 운명공동체라고는 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진핑이 김정은에게 “북-중은 운명공동체이자 순치(脣齒)의 관계”라고 끌어들이는 판이다. 문 대통령은 2017년에 이어 이번에도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국이 되는 데 편승하겠다고 확실히 줄을 선 셈이다. 대통령 측근 양정철이 소장인 더불어민주당의 민주연구원은 7월 중국 공산당 간부를 양성하는 중앙당교와 교류 협약까지 맺었다. 공산당의 어떤 전략을 교류했는지 모르지만, 민주당이 친여 정당들과 야합해 만든 선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친북·친중 좌파 연합정권의 장기집권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까지 처리되면 부패 척결의 미명 아래 시진핑이 정적들을 궤멸시킨 중국 국가감찰위원회 뺨치는 사정기관도 등장할 것이다. 경제 체제를 놓고 벌어지는 미중 패권 경쟁에서도 문재인 정부는 중국 모델을 충실히 따라가는 모습이다. 공산주의가 소련식, 중국식으로 갈라져 경쟁하다 중국의 승리로 끝났듯이 현재 자본주의는 미국식과 중국식으로 분화해 경합하고 있다. 능력 있는 민간 부문이 주도하는 미국식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법치와 민주주의에 기반한다. 중국식은 국가가 주도하는 정치적 자본주의로, 법을 자의적으로 적용하는 게 특징이라고 포린어페어스지 최신호는 소개했다. 민주국가의 법치는 대통령부터 노숙자까지 똑같이 적용되는 법의 지배를 의미하지만 중국의 의법치국(依法治國)은 공산당이 영도하는 중국 특색의 법에 의한 지배여서다. 선거로 뽑은 지도자가 무능한 사람으로 밝혀지는 것보다 선거 없이 집권한 지도자가 경제 실적으로 능력을 입증하는 중국 모델이 가끔 부러운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사법부까지 통제하는 국가 주도의 정치적 자본주의는 권력자들의 부패와 나쁜 정책, 나쁜 결과를 낳을 공산이 크다는 게 문제다. 국가, 인민 또는 촛불이라는 이름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견제할 대의민주주의는 그래서 필요하고도 중요하다. 어쩌면 문재인 정부는 국가 주도의 자본주의로 들어섰다고 해야 할지 모른다. 특정 업체에 특혜 대출을 해도 의법처리를 할지 말지 중국 모델에선 정치 엘리트 편의대로 판단한다니 이미 우리는 소중화(小中華)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디를 봐도 나아질 구석이 없는 나라, 희망 없이 살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 2019-12-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김순덕의 도발]선거제 개편…북한 주도 통일로 갈 수도 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지금까지 왜 선거제 개편이 없었는지 아는가. 민주화 이전과 달리 민주화 이후에는 집권세력이 정권 창출이나 연장을 위해 선거제를 바꾸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 주장이 아니다. 대한민국 선거제도 변천사를 고찰한 김용호·장성훈이 2017년 ‘현대사광장’에 쓴 내용이다. “그 결과 1987년 민주화 이후 지난 30년 동안 대통령과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기본 틀이 유지되고 있다”고 했다. ● 집권연장 위한 선거제는 ‘입법 쿠데타’ 더불어민주당이 제1야당 빼고 선거의 룰을 바꾸는 건 민주화를 거꾸로 돌리는 ‘입법 쿠데타’나 다름없다. 쿠데타라는 단어가 싫으면 청와대가 앞장선 ‘선거 유신(維新)’이라 불러줄 수도 있다. 합법적 장기집권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여당이 제1야당과 합의 없이 감행할 리 없다. 군소 야당과 야합해 공수처법까지 처리하면 검찰이 청와대 관련 의혹을 더 수사할 이유도 없어진다고 설훈 민주당 의원은 까놓고, 뻔뻔스럽게, 중앙일보에 밝혔다. 청와대의 선거 개입 의혹이 이대로 묻힐 경우, 내년 총선에선 어떤 개입이 난무할지 안 봐도 유튜브다. 그렇게 집권 연장을 해서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겠다는 건가. ● 통혁당 신영복을 존경하는 대통령 “제가 존경하는 한국의 사상가 신영복 선생은 겨울철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것을 정겹게 일컬어 ‘원시적 우정’이라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2월 평창 겨울올림픽 리셉션 환영사에서 신영복을 언급했다. 북한 김영남과 김여정이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도 신영복이 썼다는 ‘통(通)’을 모티브로 한 작품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문 대통령이 각별히 신영복을 강조한 깊은 뜻을 김영남은 알아차렸을 것이라고 이상철 일본 류코쿠대학 교수는 지적한다. “베트남 종전 뒤 북한이 베트남에 억류된 남한 외교관 석방에 협조하는 조건으로 신영복의 북송을 제안할 때 김영남은 노동당 국제담당비서였다. 기억이 생생할 것이다.” 제목도 섬뜩한 책 ‘김정은이 만든 한국대통령’에 적힌 내용이다. ● 통혁당 흐름은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져 물론 신영복은 누명을 썼다고 주장한다. 1970년 복역 중 전향서를 쓴 데 대해서도 “사상을 바꾼다거나 그런 문제는 아니고 가족들이 그게 좋겠다고 권해서 한 것”이라며 사상 전향을 부인했다. 그가 사상 전향을 했든 위장 전향을 했든, 한국사회에서 주사파의 뿌리가 통혁당이다. 통혁당은 1964년 북한 조선노동당의 지령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 전복과 공산정권 수립을 꾀한 지하조직이고, 신영복은 북이 데려가려고 했던 인사였다. 문 대통령이 신영복의 어떤 사상을 존경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통한다는 것을 북에 알리려고 무진 애를 쓴 것이다. “주모자들이 사형당한 뒤에도 통혁당 흐름은 지속돼 민주화운동, 학생운동, 노동운동 등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지속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주사파 혁명가였다 전향해 국정원 북한담당기획관 등을 지낸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장은 최근 저서 ‘미중 패권전쟁과 문재인의 운명’에서 이렇게 밝혔다. ● 선거법 개정 강행이 무서운 이유 1989~91년 자생적 주사파 조직인 자민통(자주·민주·통일그룹)을 이끌었던 그는 현 정부를 운동권파벌연대정권으로 규정한다. 김경수 경남지사, 양정철 민주원장이 자민통 출신이다. 전대협을 이들이 지도했다. 통혁당 사건에서 신영복은 한명숙 전 총리의 남편인 박성준의 ‘상부선’으로 나온다.현 집권세력의 선거법 개정 강행이 두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비례대표제와 내각제가 즐비한 유럽처럼 중도좌파 연정으로 복지국가로 간다면, 선거제 개편을 결사반대할 이유가 없다. 아니, 우리의 북쪽에 있는 나라가 3대 독재 세습에 핵까지 지닌 북한만 아니라면 지금처럼 대한민국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남한에 친북좌파 정권을 지속시키면서 이른바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가는 것, 이게 바로 북한이 주도하는 통일 전략의 하나라고 구해우 박사는 지적했다. 우리 아이들의 교과서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자유’는 이미 빠졌다. 남북평화경제를 강조하는 이 정부가 선거제 개편 뒤 친북좌파연합을 구성해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자유’를 빼면, 평화적 통일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 남북관계는 역전됐다, 북한 우위로 우리는 북이 가난하니까 체제경쟁은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2018년을 기점으로 남북관계는 역전됐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북이 우위다. 2017년 9월 6차 핵실험, 11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시험을 성공시킨 김정은은 2018년 신년사에서 ‘통일’이라는 단어를 12번이나 언급할 만큼 북한 주도 통일을 추진할 태세다. 전쟁까지 안 가고도 말 한마디에 절절맬 정도면, 게임 끝난 거다. 북은 13일에도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에서 ‘중대한 시험’을 했다고 미국에 외쳤다. 김정일 체제가 체제수호를 위해 핵을 보유하는 ‘파키스탄 모델’을 추구했다면, 김정은은 핵을 휘둘러 미군을 철수시킨 뒤 북한 주도로 통일하는 ‘신베트남 모델’을 추구한다고 분석된다.친북반미좌파 집권세력은 그래서 선거법 개정을 강행한다고 치자.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는 그 알량한 비례대표 공천권에 눈멀어 야합할 텐가. 국민이, 역사가 두렵지 않은가.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 2019-12-15
    • 좋아요
    • 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