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경

정미경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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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미경 기자입니다.

mickey@donga.com

취재분야

2025-11-13~2025-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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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ood&Dining]카카오엔터와 물류 협약… hy, 배송망 활용 신사업

    hy(옛 한국야쿠르트)가 3월 사명 변경 후 물류 사업, 프로바이오틱스 B2B, 금융사 제휴 서비스 등 다양한 새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hy는 7월 카카오엔터프라이즈와 전략적 물류 체계 구축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 회사는 업계에서 유일하게 자체 배송망을 갖추고 있다. 1만1000명의 ‘프레시 매니저(FM)’는 전국 단위 물류 네트워크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hy의 통합 물류 체계 구축을 위한 정보기술(IT) 플랫폼을 지원한다. 시스템 구축이 완료되면 FM과 IT 플랫폼이 연동된 근거리 ‘퀵커머스’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hy는 8월 신한라이프와 ‘고객 기반 확대를 위한 제휴 협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정기구독 서비스와 보험을 결합한 제휴 상품을 선보인다. hy의 인기 제품 ‘헬리코박터프로젝트 윌’과 ‘장케어프로젝트 MPRO3’를 정기 배송으로 신청하는 고객에게 위, 장 건강 보장 혜택을 제공하는 상품이다. 오프라인 조직인 ‘hy FM’과 ‘신한라이프 FC’를 결합한 사업모델 발굴에도 협력하기로 했다. 김병진 hy 대표이사는 “기존 사업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고객에게 차별화된 가치와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신한라이프와 제휴를 맺게 됐다”고 말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2021-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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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량-사료-애완-학습… “메뚜기 사육은 톡톡 튀는 미래 먹거리”

    “미스터 메뚜기입니다.” 경기 광주시에서 메뚜기 농장을 경영하는 복현수 씨(38)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그는 농장 2곳 6000m²(약 1800평)에서 벼메뚜기 10만 마리와 풀무치 10만 마리를 키운다. 하루 종일 메뚜기에게 둘러싸여 사는 그의 꿈은 ‘메뚜기 월드’를 조성하는 것이다. 사육 규모를 현재 벼메뚜기 10만 마리를 포함해 20만 마리를 200만 마리로 늘리고 종류도 6, 7종에서 최대 20종까지 늘릴 계획이다. 곤충 사육은 농업계의 블루오션으로 통한다. 식용 사료용 학습용 애완용 등 활용도가 무궁무진한 국내 곤충 시장 규모는 2018년 기준으로 2650억 원에 이른다(서울대 자료). 2030년에는 2.5배 늘어난 6500억 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메뚜기는 ‘해충’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복 씨는 “알고 보면 이로운 곤충”이라고 말한다. 그가 메뚜기에 주목한 것은 높은 영양 성분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식용곤충으로 허가받은 9종의 곤충 중에서 메뚜기의 단백질 함량이 가장 높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국내 곤충 사육 농가는 2000여 곳에 달한다. 이 중에서 메뚜기 사육 농가는 20여 곳도 안 된다. 시장잠재력이 큰데도 불구하고 메뚜기 농가가 적은 것은 온도 습도 햇볕 등 사육 조건을 맞추기가 까다로운 곤충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17일 복 씨의 농장을 찾았을 때 그는 고민에 싸여 있었다. 최근 폭염으로 메뚜기가 더위를 먹어 떼죽음을 당한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메뚜기 사육 6년 차지만 아직 모르는 게 많습니다. 메뚜기는 부화해서 성충이 되기까지 2개월 반 정도 걸리죠. 이 기간 동안 그 어떤 복병을 만나 사육에 차질을 빚을지 모릅니다. 최적의 사육 조건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해야 합니다.” 대학에서 축산학을 전공한 복 씨는 사료회사와 양돈회사에서 7년여를 근무한 샐러리맨 출신이다. 어느 날 “곤충은 미래 식량”이라는 내용의 자료를 접한 것이 그의 인생 항로를 바꿔 놓았다. 고민 끝에 농장을 임대차해 도전하기로 했다. “2년 반 동안 직장생활과 메뚜기 농장을 병행했습니다. 오전 5시에 일어나 메뚜기 농장으로 이동해 먹이를 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회사에 출근했습니다. 퇴근길에도 농장에 먼저 들러 먹이를 주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2018년 6월 아예 퇴사를 하고 전업농이 됐습니다.” 처음에는 벼메뚜기 위주로 사육했다. 식용으로 건조시켜 온라인 스토어를 개설해 판매했다. 여름 곤충인 벼메뚜기 특성상 겨울에는 사육이 어렵다. 그런데 고객 주문은 꾸준히 밀려들었다. 그래서 메뚜기와 비슷한 풀무치로 영역을 확대했다. 자연 햇볕이 중요한 메뚜기와 달리 풀무치는 인공조명으로도 사육이 가능하다. “풀무치를 시험 사육해 인터넷에 500마리 한정으로 올렸더니 순식간에 매진됐습니다. 인공조명 시설을 갖춘 풀무치용 두 번째 농장을 마련했죠. 이들 곤충의 먹이로 쓰이는 옥수수, 피 등의 사료도 농장에서 직접 키워 경영비를 절감하고 있습니다.” 최근 급성장하는 시장은 희귀 반려동물 먹이용이다. 도마뱀, 타란툴라 등을 키우는 애호가들이 늘면서 이들 동물의 먹이로 메뚜기 풀무치 등이 각광받는다. 복 씨는 “식용은 배설물을 배출한 뒤 건조해 판매하는 반면 먹이용은 사육망 박스에 산 채로 넣어 배송한다”고 차이점을 설명했다. 자녀 체험 학습용이나 취미용으로 곤충을 사육하는 가정이 늘면서 먹이를 함께 넣은 2만 원 상당의 메뚜기 사육통 세트도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장마로 사육에 고전했지만 메뚜기 판매로 5000여만 원의 수익을 올렸다. 올가을에는 현재 임차 형태에서 벗어나 경기 이천시에 농장 부지를 구입해 이전할 계획이다. 토지 구매 자금은 2019년부터 혜택을 받는 청년창업농 영농정착지원 사업의 창업자금 융자(최대 3억 원 한도)로 충당했다. 이 사업의 또 다른 혜택인 월 최대 100만 원의 정착지원금은 농장 운영과 생활비로 절반씩 쓰고 있다. 메뚜기 사업 초기에 막노동과 간판 그리기 등의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로 생활이 힘들었을 때 정착지원금은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지금은 저의 3대 목표인 사육 대량화, 안정화, 연중 사육에 근접해 가는 과정입니다. 오늘도 이 꿈을 이루기 위해 메뚜기처럼 팔짝팔짝 뛰어오르며 도전할 겁니다.”광주=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2021-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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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신이 뭐길래” 접종 때문에 이혼하는 미국 부부들

    “기분이 착잡했습니다. 백신을 맞고 나면 기뻐야 정상인데 말이죠.” 미국 워싱턴 주에 사는 제임스 씨(54)는 4월 코로나19 백신을 맞았을 때 기분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백신을 맞는 것은 지극히 옳은 선택인데 왜 우울한 기분이 들었을까요. 제임스 씨는 아내 몰래 백신을 맞았습니다. 아내 알리나 씨는 ‘안티 백서(anti-vaxxer)’라고 불리는 백신 접종 거부자. 아내는 자신의 접종 거부는 물론 남편에게도 “백신을 맞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아내로부터 “만약 나 몰래 백신을 맞으면 이혼”이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제임스 씨는 “백산을 맞은 뒤 ‘아, 이제 나는 이혼이구나’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고 합니다. 제임스 씨처럼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둘러싼 부부 갈등이 이혼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부부 중 어느 한 명이 열렬한 백신 거부자일 경우 접종 여부가 가정불화의 원인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최근 허핑턴포스트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으로 인해 가정불화를 겪는 부부 5쌍의 사연을 조명했습니다. 5쌍 부부 중 3쌍이 이혼 수속을 밟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백신 거부론이 강한 나라입니다. 우리 나라와 사정이 많이 다르죠. 오랫동안 미국의 백신 거부론이 안전성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면 도널드 트럼프 시대를 거치면서 음모론에 뿌리를 둔 거부론이 급속히 파고들었습니다. 뉴스맥스, OAN 등 극우 언론매체나 인터넷 사이트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백신 거부 논리들은 의학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음모론적 색채를 띠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국제 비영리 정보분석 기구 ‘퍼스트 드래프트’의 보고서에 따르면 음모론과 안전성 문제는 이제 거의 같은 비중으로 백신 거부 논리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알리나 씨가 접종 거부자가 된 것은 2016년 우연히 ‘백스트(Vaxxed)’라는 다큐멘터리를 시청한 뒤부터였습니다. 백신이 자폐증을 유발한다는 내용의 다큐입니다. 이후 소셜미디어에 돌아다니는 각종 백신 정보를 익힌 알리나 씨는 백신 음모론으로 눈을 돌리게 됐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아내는 “백신은 세계 질서를 뒤엎기 위한 사악한 계략”이라는 주장이 담긴 수백 건의 비디오와 자료들을 그에게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놀란 제임스 씨는 밤을 새워가며 반박 자료를 만들어 아내에게 보여줬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퍼지자 알리나 씨는 산 속에 통나무집을 빌려 접종 거부자 모임을 열고 “종말에 대비한다”며 채소밭을 가꾸고 닭을 키웠습니다. 접종 며칠 뒤 이혼 절차를 밟기 시작한 제임스 씨는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당신의 근거 없는 백신 논리 때문에 우리 결혼 생활이 끝장 나도 되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내는 “나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을 수도 있다”도 답했습니다. 제임스 씨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수많은 부부들을 인터뷰한 허핑턴포스트 기자는 제임스 씨 부부가 결코 놀랍거나 드문 사례가 아니라고 합니다. 놀라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제임스 씨가 최종적으로 백신 접종을 택했다는 점입니다. 대부분 경우 이혼 위협을 받는 배우자는 “내가 이혼을 감수하면서까지 백신을 맞아야 하나”는 생각에 접종을 포기한다는 것이죠, 40대 중반 캐리 씨의 경우는 남편이 접종 거부자입니다. 남편 앤서니 씨는 2월 무증상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2주 격리 기간 동안 “왜 나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가”에 대해 인터넷을 뒤지며 자료를 찾던 그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당국의 사망자 집계는 조작된 것이다” 등의 정보를 믿게 됐습니다. 캐리 씨에게 “백신을 맞으면 2년 내에 사망한다”고 주장을 펴기 시작한 그는 아내가 자기 몰래 접종을 완료하자 “당신은 곧 죽게 됐다”며 통곡을 했습니다. 또 “만약 8살짜리 딸도 접종시킬 경우 이혼 도장을 찍으라”는 서면 통보장을 아내에게 보내왔다고 합니다. 더 심한 경우는 부모와 자식 간 갈등입니다. 부모가 접종을 반대할 경우 자식은 부모와 대립해야 합니다. 미국의 접종 거부자들은 40~60대 중장년층 공화당 지지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자녀들은 어린 시절 자신에게 삶의 가르침을 줬던 부모와 가장 기초적인 의학 상식을 두고 싸우는 것이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다”고 합니다. 백신 접종을 둘러싼 부모 자식간 갈등 사례들도 분석한 허핑턴포스트는 “절연(絶緣)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전합니다. 아만다 씨(26)의 사례도 그 중 하나입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백신에 위치 추적 마이크로칩 물질이 내장돼 있다고 믿습니다. 정부가 국민을 감시하기 위한 장치라는 것이죠. 어머니는 딸은 물론 암 투병 중인 남편(아만다 씨 아버지)의 접종마저 막고 있습니다. 눈물로 설득도 해보고 소리를 질러가며 싸움도 해봤지만 어머니는 자신의 생각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무력감을 느낀 아만다 씨는 어머니를 더 이상 찾지 않고 관계를 끊기로 결심했습니다. 열렬한 백신 접종 거부자가 있는 가정의 구성원들은 대응 매뉴얼이 없는 점을 가장 안타까워합니다. 인터넷이나 소셜미디어에는 접종 거부자들의 신념을 고취시키는 거짓 정보는 난무하지만 접촉 빈도가 높은 가족 구성원들이 이들을 어떻게 설득시켜 접종 대열로 이끌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접종 문제로 갈등을 겪는 가정을 위한 지원 상담 네트워크도 갖춰져 있지 못합니다. 8월 중순 현재 1회 이상 접종 60%, 2회 접종 완료 51%(미질병예방센터 통계) 수준에서 좀처럼 상승하지 못하는 미국의 접종률을 올리기 위해서는 매일 얼굴을 마주 대하는 가족 설득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런 설득 과정을 ‘재교육(deprogram)’ 또는 ‘온건화(deradicalization)’라고 부릅니다. 미국 백신 거부자들의 그릇된 신념을 깨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보여줍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2021-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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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이든 “카불이 함락돼도 난 집으로”… 소문난 윌밍턴 ‘집돌이’[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카불 미대사관은 지금 당장 철수합니까?” “탈레반이 이렇게 빨리 진격할 줄 예상하지 못했습니까?”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을 영영 잃은 겁니까?”12일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습니다. 아프간 수도 카불 함락이 초읽기에 들어간 날입니다. 그러나 “다음 일정이 있다”며 질문을 받지 않고 급히 마스크를 쓰고 외출 준비를 하는 대통령. 그가 향한 곳은 델라웨어 주 윌밍턴에 있는 자신의 집이었습니다. 당초 이날 연설의 주제는 제약사들의 약값 인하였습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아프간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한가한 주제였지만 기자들은 대통령의 연설이 이어지는 동안 참을성 있게 기다렸습니다. 연설이 끝나면 아프간에 대한 질문을 하려는 것이었죠. 하지만 기다린 보람도 없이 대통령이 준비해온 약값 원고만 읽고 자리를 뜨자 기자들로부터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또 윌밍턴?” 미국이 지난 20년 동안 전쟁을 벌여온 아프간이 인권 유린으로 악명이 높은 탈레반에 의해 점령되는 위기에 처했는데도 백악관에서 상황을 주시하기보다 고향 집을 찾은 대통령을 두고 불만이 터져 나옵니다. 윌밍턴에 꿀을 발라놨는지 시간만 나면 그곳을 향합니다. 이날도 윌밍턴에서 백악관으로 컴백한지 이틀 만에 기자회견 후 또다시 윌밍턴에 갔습니다. 기자들은 물론 백악관 직원들까지 자주 집을 비우는 대통령을 두고 수군거립니다. 백악관 조리사들은 취임 후 8개월이 지났지만 거의 ‘집밥’을 먹지 않는 대통령의 식성을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CNN 조사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1월 취임 후 8월 둘째 주까지 29차례의 주말 중 65%에 해당하는 19번을 윌밍턴에서 보냈습니다. 목요일이나 금요일 윌밍턴에 가서 월요일에 다시 워싱턴으로 돌아오는 일정이 대부분입니다. 윌밍턴에서 지낸 날짜 수가 백악관에서 보낸 날보다 많습니다. 취임 후 지금 시점까지 백악관을 비운 날이 역대 대통령 중 가장 많습니다. 2월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첫 타운홀 미팅에서 백악관 생활을 ‘도금새장(gilded cage)’에 비유했습니다.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갇혀있는 기분이라는 겁니다. 취임 1개월 밖에 안 됐는데 벌써 답답함을 토로한다는 것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8년간 부통령을 지내면서 수없이 드나들었으니 백악관 생활에 꽤 익숙할 텐데 말이죠.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을 잘 모른다”고 합니다. 부통령 시절 방문했을 때도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웨스트윙의 일부 공간을 제외하고는 내부를 돌아다닌 적도 없고 백악관이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관심도 두지 않았다고 합니다. 일각에서는 백악관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바이든 대통령의 이런 성격을 두고 부통령 시절 몸에 밴 ‘보스 존중 신드롬’이라고 분석합니다. “백악관은 보스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내가 침범할 수 없다”는 심리가 확고하다는 것이죠. 반면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권력 2인자 자리를 거치지 않고 최고의 위치에 올랐기 때문에 오히려 적응이 빨랐다는 것이죠. 대통령의 개인사로 설명하려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1972년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첫 번째 부인과 딸이 윌밍턴 교회 뒤뜰에 묻혀 있습니다. 지금도 이 교회에서 주말 예배를 보고 묘지를 찾습니다. 당시 엄마를 잃은 두 아들을 돌보기 위해 상원의원이던 그는 워싱턴에서 살기보다 왕복 4시간이 걸리는 윌밍턴까지 매일 열차로 오가는 고된 일정을 택했습니다. 열차와 쌓은 인연 덕분에 ‘암트랙(전미여객철도공사) 조’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였죠. 대통령이 된 지금은 열차로 이동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용 헬기 머린원이나 전용 비행기 에어포스원을 이용하면 됩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한번 움직일 때마다 큰 비용이 들어갑니다. 수십 명의 수행 인력을 대동하기 때문입니다. 잦은 고향 출타로 인한 연료비와 경호비용 등은 모두 국민 세금에서 충당된다는 점이 공화당에게 좋은 공격 포인트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물론 고향을 자주 찾은 것은 바이든 대통령뿐만이 아닙니다. 역대 대통령들은 좋게 말하면 “정국 구상,” 실상은 휴식을 취할 목적으로 자주 고향에 갔습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텍사스 크로포드 목장,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캘리포니아 산타바버라 목장을 즐겨 찾았습니다. 고향은 아니지만 재임 중 매사추세츠 마서스비니어드 섬을 즐겨 찾던 오바마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이곳에 집까지 장만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빈번한 윌밍턴행(行)도 마찬가지로 격무에 시달리는 일정에서 벗어나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한 목적일 것입니다. 한번은 백악관 언론 브리핑에서 기자가 “대통령은 왜 그렇게 델라웨어에 자주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젠 사키 대변인의 답변은 이렇습니다. “그의 집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자를 향해) 당신도 집에 가고 싶죠? 대통령도 마찬가집니다. 똑같은 인간이니까요.” 바이든 대통령이 윌밍턴에 가서 하는 일을 보면 확실히 인간적입니다. 윌밍턴 지역에 집 뿐만 아니라 별장도 갖고 있는 그는 부인 질 여사와 자전거를 타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아이스크림을 사먹는 장면이 자주 카메라에 잡힙니다. 가장 행복한 순간을 “목욕가운 차림으로 부엌 식탁에서 모닝커피를 마실 때”라고 합니다. 1996년 지어진 윌밍턴 자택은 바이든 대통령이 문손잡이 디자인까지 직접 결정했을 정도로 애착이 큽니다. 자식에 손자까지 모두 이 집에 모여 일요일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것은 바이든가(家) 전통이라고 하죠. 그러나 마러라고 리조트나 뉴저지 골프장을 자주 찾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빈번한 ‘워싱턴 공백’을 대선 유세 때 문제 삼았던 바이든 대통령이 비슷한 전철을 밟는다면 비난을 피하기 힘듭니다. 게다가 최근 바이든 행정부가 ‘제2의 백악관’이라고 불리는 윌밍턴 자택의 출입객 명부를 공개하기를 거부하면서 정보 투명성 문제까지 불거지고 있습니다. 카불 함락에 빗대 “제2의 사이공 모먼트(미국의 치욕적인 베트남 철수작전)”라는 소문이 파다한데 윌밍턴에서 아무리 “아무 문제없다”고 얘기한들 믿을 사람은 없겠죠. 위기 상황일수록 컨트롤센터에서 진두지휘하는 대통령의 모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 2021-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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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옛날이여”… 형 따라 몰락 기로에 선 CNN 쿠오모 앵커[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형, 이런 면봉이었어? 아니면 이만한 면봉? 이것도 아니면 이만한 사이즈?” 동생은 점점 더 큰 면봉을 보여줍니다. 나중에는 성인 머리 사이즈만한 초대형 면봉을 가지고 나옵니다. 동생의 장난에 형도 척척 장단을 맞춥니다. “동생아,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는 전혀 힘들지 않아. 작은 면봉을 콧속에 찔러 넣기만 하면 돼. 나처럼 콧구멍이 작은 사람도 문제없더라. 너도 알다시피 나는 쿨한 녀석(cool dude)이잖아.”지난해 5월 CNN 앵커 크리스 쿠오모(50)가 진행하는 뉴스 프로그램 ‘쿠오모 프라임타임’에 형 앤드류 쿠오모 뉴욕주지사(64)가 출연했습니다, 당시 뉴욕의 코로나19 검사율을 높이기 위해 쿠오모 주지사가 솔선수범해 콧속에 면봉을 밀어 넣는 항체검사를 한 것을 두고 인터뷰가 진행됐습니다. 이렇게 형제 사이에 주거니 받거니 인터뷰가 이뤄지는 것은 극히 드문 일입니다. 인터뷰 분위기도 지나치리만큼 자유분방해 미국에서 큰 화제가 됐습니다. 뉴스 인터뷰라기보다 개그 코너에 가깝다는 평이 많았습니다. 일명 ‘쿠오모 형제의 코미디 아워(시간)’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인터뷰를 두고 비판이 적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를 코미디 소재로 삼을 수 있느냐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유명 앵커 동생이 정치인 형을 출연시켜 업적 홍보 기회를 준 것은 적절치 못하다는 비판도 나왔습니다. 그러자 동생 쿠오모 앵커가 발끈하며 반박에 나섰습니다. “지금 미국은 위로와 웃음이 필요하기 때문에 인터뷰를 재미있게 꾸몄다”고 했습니다. 쿠오모 형제의 인기에 워낙 높아 비판론은 흐지부지 사라졌습니다. 그로부터 1년 3개월 후 뉴욕 검찰의 수사 결과 쿠오모 주지사의 성추행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면서 쿠오모 형제의 인기는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쿠오모 주지사는 거센 사퇴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까지 사퇴를 촉구합니다. 동생 쿠오모 앵커의 신세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저녁 9시 황금시간대에 방송되는 ‘쿠오모 프라임타임’ 앵커 직에서 물러나라는 요구가 빗발칩니다. 그의 고용주인 CNN도 비판을 면치 못하는 상항입니다.일각에서 쿠오모 앵커에 대한 동정론도 나옵니다. “연좌제도 아닌데 형의 잘못에 동생까지 연대책임을 지고 사퇴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죠. 하지만 쿠오모 앵커가 형의 성추행 대책 모의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동정론은 설 곳이 없어졌습니다. 저널리스트로서의 기본적인 자질조차 의심받고 있습니다. 수사 결과에 따르면 쿠오모 앵커는 성추행 의혹 무마 대책회의에 수차례 참가하고 언론 발표문도 직접 작성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쿠오모 앵커가 썼다는 발표문은 ”나(쿠오모 주지사)는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장난 치고 농담을 주고받는 것을 즐긴다. 나의 의도는 분위기를 돋우려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행동에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던 것 같다“는 내용입니다.언론감시단체인 포인터 인스티튜트는 ”형의 행동 때문에 쿠오모 앵커를 탓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자신의 행동 때문에 탓하는 것이다“고 비판했습니다. 쿠오모 앵커가 앞으로 공인들의 성추행 사건을 보도할 때 공정성을 유지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죠. MSNBC의 유명 칼럼니스트는 ”언론인이 정치인에게 조언을 해주고 발표문을 작성해준다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고 비윤리적인 행동“이라며 ”쿠오모 앵커는 앞으로 정치 분야 취재를 금지시키거나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쏟아지는 비난에 쿠오모 앵커는 침묵 전략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형의 성추행 사건 조사 결과는 핫뉴스이므로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쿠오모 프라임타임‘에서는 일체 언급이 없었습니다. 관련 뉴스가 실종되면서 프로그램 연결 때 어색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앞뒤 시간대 앵커들이 서로 교대할 때 온에어(방송 중) 상황에서 농담이나 대화를 주고받습니다. ’쿠오모 프라임타임‘의 다음 시간대인 ’돈 레몬 투나잇‘의 앵커 레몬은 쿠오모 앵커와 웃으며 잡담을 나눈 뒤 프로그램 시작과 함께 ”오늘의 톱뉴스는 쿠오모 주지사 성추행 사건 조사 결과입니다“라며 정색 모드로 돌변합니다.CNN의 소극적인 대응도 논란거리입니다. 쿠오모 앵커가 형에게 도움을 준 것이 처음 알려진 것은 5월 워싱턴포스트(WP) 보도를 통해서입니다. WP에 따르면 쿠오모 앵커는 형에게 사퇴 압력을 거부하고 미국 사회에 번지고 있는 ’취소 문화‘(자신에게 동조하지 않는 상대편 세력을 삭제해버리는 문화 현상)의 희생양이라는 이유로 성추행 사실을 부인하도록 충고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WP 보도 이후 쿠오모 앵커의 자질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 CNN은 ”앞으로 형 쿠오모 주지사에 대한 취재를 금지시키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게 무슨 징계냐“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이번 수사 결과 발표 후에도 CNN은 쿠오모 앵커에 대한 공개 질책 수준의 징계 절차를 밟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이미 WP 보도 때 우리는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CNN의 이중 잣대“라는 비판이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성추문이나 경쟁사인 폭스뉴스 경영진의 성추행 사건 때는 상세 보도와 비판의 칼날을 들이댔던 전력이 있으니까요. CNN 내부에서도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쿠오모가 스타 앵커가 아닌 일반 직원이었다면 이렇게 덮고 지나갈 수 있겠느냐는 거죠. 지난해에는 띄워주기 바빴던 쿠오모 형제 때문에 이렇게 골머리를 썩게 될 줄은 CNN은 당연히 몰랐겠죠.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2021-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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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군인들 “NO의 자유를 달라” 백신 의무접종 반발[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얼마 전 아프리카 소말리아 해역 파병 부대인 청해부대에서 80%가 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습니다. 대부분 부대원들은 무사히 완치됐지만 군은 부실한 방역 체계에 대한 비판을 피할 수 없었죠. 미국 군대의 코로나19 상황은 어떨까요. 주한미군은 한국이 아직 접종 기미도 없던 지난해 12월 본국에서 백신을 수송해와 접종을 시작했습니다. 그 때 벌써 접종을 시작했다면 7,8개월이 지난 지금쯤 미군은 매우 높은 접종률에 도달했을까요. 그렇지 못합니다. 육해공군 해병대, 현역군 방위군에 따라 조금씩 수치가 다릅니다만 종합적으로 봤을 때 7월말 현재 1회 이상 접종자는 51%(군사전문지 밀리터리타임스 보도 통계)입니다. 군인 2명 중 1명꼴로 접종하지 않았다는 말이죠, 이는 미국 평균 접종률(1회 이상) 57%보다 낮습니다. 지난해 12월 비영리 군 이익관련단체 블루스타패밀리즈가 현역 군인 67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군인의 49%, 군 가족의 54%가 “접종 계획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일부 군인들 사이에서는 “먼저 맞았다가 ‘기니피그(실험 대상)’ 신세가 되기 싫다”는 의견도 나온다고 합니다. 미 군부가 일선 군인을 대상으로 화학 실험을 실시한 사례가 있기 때문에 백신 접종에 대한 막연한 공포감이 가시지 않는 것이죠. 과거 화학 실험의 대표 사례로는 미 육군이 1955~75년 메릴랜드 주 에지우드 애버딘 세균실험장에서 250여개의 화학전 약물들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7000명 군인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적이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군인들의 백신 거부감에 대해 “대부분 근거가 없다”고 강조합니다. 근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반대 분위기가 강한 것은 “군인들의 젊은 연령대 때문”이라고 분석합니다. 대다수 군인들은 젊고 건강에 대한 확신이 강해 백신에 의존할 필요가 없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겁니다. 현재 미군 사병의 평균 연령은 27세, 장교급은 34.5세로 미국 중위 연령(나이순으로 줄 세웠을 때 중앙에 위치하는 연령) 38세보다 낮습니다. 미군은 의무 접종이 아닙니다. 군뿐만 아니라 미국 전체가 정부가 강제성을 부여한 의무 접종이 아닌 자발적 희망 접종 시스템으로 운영됩니다. 물론 한국도 명목상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백신이 부족한 한국은 사전 예약 단계부터 북새통을 이루지만 여러 이유로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불신이 깊은 미국은 다릅니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여러 묘수를 짜내고 있지만 임팩트 있는 ‘한 방’이 없습니다. 그러자 최근 바이든 대통령은 정부의 권한 행사가 용이한 공무원과 군에 대한 접종 의무화 지침을 발표했습니다.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군은 군대로 반발이 큽니다. 공무원 부문에서는 미국노동총연맹산업별조합회의(AFL-CIO) 등 지난 대선 때 바이든 대통령을 지지했던 노동조합 단체들이 나서 정부에 ‘우려’ 의견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군 쪽에서는 정치인들이 군 의무 접종을 금지하는 법안(HR 3860)을 발의했습니다. 법안은 “아무도 그 어느 누구에게도 백신을 접종하도록 강요할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일선 군인들은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의무 접종이 실시되면 군을 그만 두겠다”는 운동을 벌이고 있는 정도입니다. 군을 그만둔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모병제인 미국에서 백신 접종 문제가 전력(戰力) 손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접종 의무화 정책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최근 1만3000명이 주둔한 콜로라도 주의 포트카슨 기지가 ‘군인들이 접종을 거부하는 12가지 이유’라는 홍보물을 제작했습니다. ‘이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접종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해 만든 홍보물이었지만 오히려 반대 이유 자체가 관심을 끌고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자면 “백신이 식품의약국(FDA) 정식 승인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거나 “나는 위험 그룹으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또는 “나는 이미 코로나19를 앓았기 때문” 등 건강 안전 상 이유에서부터 “마스크 착용이 필수라면 굳이 접종할 이유가 있나” 등 심리적 이유까지 다양했습니다. 그중에는 “내가 군에게 ‘싫다(NO)’고 말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포트카슨 측은 백신의 안전성 문제보다 자유 선택권을 이유로 반대하는 군인들이 더 많았다고 밝혔습니다. 집단 조직 문화와 상명하복 시스템이 중시되는 군대에서 자유의사 표시 영역으로 남아있던 백신 접종마저 선택권을 빼앗지 말라는 의미겠죠. 백신 접종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건강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미국처럼 개인의 권리 존중을 무엇보다 중시하는 나라에서 세밀한 여론 분석 없이 의무화 정책을 밀고 나갔다가는 만만찮은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2021-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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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MZ에서 듣는 클래식 선율…제 4회 ‘PLZ 페스티벌’ 개막

    강원도 비무장지대(DMZ) 접경 지역에서 클래식 선율을 듣는 ‘PLZ(Peace & Life Zone) 페스티벌’이 열린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PLZ 페스티벌은 강원도 ‘평화 5군’으로 불리는 고성 인제 양구 화천 철원의 역사 명소에서 열리는 온-오프라인 음악 축제다.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며 우리 시대의 화두인 평화와 공존의 가능성을 모색해보자는 취지다. 올해 행사는 ‘평화와 생명의 땅’을 모토로 열린다. 24일 철원 화강문화센터에서 개막공연이 열렸으며, 10월 말까지 강원 5개 지역을 돌며 진행된다. PLZ 페스티벌은 지난해까지 야외 음악회 형태로 열렸다. 올해 개막공연도 천년고찰이자 6·25전쟁 당시 많은 부상자를 치료했던 철원 도피안사(到彼岸寺) 야외무대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신종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지침에 따라 철원 화강문화센터로 변경 개최됐다. PLZ 페스티벌은 세계적인 클래식 음악가들의 공연을 접할 수 있는 기회다. 올해 행사에는 빈필하모닉 제1악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라이너 호넥이 예술감독을 맡아 이끄는 비엔나-베를린 챔버오케스트라, 올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과 두 부문의 청중상을 차지하며 주목받고 있는 프랑스 출신의 피아니스트 조나탕 푸르넬, 3위에 오른 일본 피아니스트 무카와 게이고 등이 해외에서 참가 소식을 전해왔다. 국내에서는 9월 11일 양구 파로호 꽃섬에서 열리는 ‘피아노데이’ 행사에 김희진 상명대 교수, 강우성 강원대 교수, 아비람 라이헤르트 서울대 교수 등이 예정돼 있다. PLZ 페스티벌과 함께 국제평화음악캠프(8월 11~13일)도 열린다.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이 캠프에는 음악 전공 여부에 상관없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마스터클래스, 음악을 통한 평화교육, 유엔세계평화의 날 캠페인 참여 및 바디 퍼커션과 음악코딩 등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임미정 PLZ 페스티벌 예술감독은 개막식 인사말에서 “역사의 현장이자 생명의 장소에서 아름다운 음악 메시지와 평화 이야기를 전해드리겠다”고 밝혔다. PLZ 페스티벌 공연은 무료로 진행된다. 행사 일정과 참가 신청 등은 홈페이지(www.PLZfe.com)에 나와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으므로 홈페이지를 통한 사전 확인이 필요하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2021-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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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암 소식 끊이지 않는 미국 앵커들… CNN 아만푸어도 투병 사실 공개[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CNN 유명 앵커 크리스티안 아만푸어(63)가 난소암을 진단받았다고 밝혔습니다. 그녀는 최근 자신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약 한달 동안 앵커 데스크를 비운 이유를 설명하면서 암 투병 사실을 털어놨습니다. 그동안 암 진단을 받았고, 곧바로 수술을 받았으며 앞으로도 후속 치료가 예정돼 있다고 합니다. 그녀는 투병 사실을 공개하기로 한 것에 대해 “다른 이들, 특히 여성들에게 조기 진단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라고 했습니다. 아만푸어를 계기로 투병 중인 또 다른 유명 언론인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NBC 저녁뉴스 앵커 출신의 톰 브로커(81)입니다. 암에 맞서는 아만푸어의 선배 격인 그는 10년 가까이 혈액암의 일종인 ‘다발골수종(multiple myeloma)’과 싸우고 있습니다. 1982년부터 2004년까지 22년 동안 ‘NBC 나이틀리 뉴스’를 진행했던 브로커는 미국인들에게 매우 친숙한 얼굴입니다. 올해 초 60여 년간의 언론인 생활을 마치고 은퇴한 그는 71세였던 2013년 ‘MM’이라고 불리는 다발골수종을 진단받았습니다. 우리 몸의 면역 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백혈구의 일종인 형질 세포입니다. 이 세포가 비정상적으로 분화되고 증식하면서 생기는 병이 다발골수종입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급증 추세입니다. 통증 없는 암은 없겠지만, 다발골수종은 특히 엄청난 통증을 수반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발골수종 커뮤니티에 따르면 말 그대로 “뼈가 부서지고 으스러지는 고통”이라고 합니다. 브로커는 투병 중에도 다발골수종의 위험성과 조기 진단의 필요성, 고액의 치료비 문제 등을 알리기 위한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다발골수종협회 교육 동영상에도 자주 출연합니다. 주변에서는 그를 “교통 경찰”이라고 부를 정도입니다. 몸에 밴 저널리스트로서의 기질 때문인지 비슷한 병을 앓고 있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 병원에 가봐라” “저런 치료제가 있다”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죠. 통증이 너무 심할 때는 의학용 마리화나를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플로리다에 거주하고 있는 그는 주 정부를 상대로 복잡한 마리화나 사용 법규 개선을 위한 운동도 벌이고 있습니다. 직업적으로는 기자 시절 주요 취재 대상이었던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 평전을 쓰고 있다고 합니다. 브로커는 최근 환우 커뮤니티 사이트인 서바이버닷넷과의 인터뷰에서 삶의 좌우명을 “꼿꼿하게 버티자(Stay Vertical)”라고 소개했습니다. 중병을 앓는 상황에서 정력적인 활동들을 펼치는 이유에 대해 “병에 의해 지배되는 삶이 싫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브러커는 자신이 많은 혜택을 누리는 부유층이라는 점을 인정합니다. 자신처럼 “최고의 병원에서 최고의 의료진으로부터 치료받을 수 있는 환자는 흔치 않다”는 것이죠. 앵커 직을 오래 유지했던 그는 8500만 달러(980억원) 상당의 재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주요 질병, 특히 암 치료비는 일반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라는 것이 그의 주장입니다. 자신 같은 유명인의 역할은 고액의 치료비 문제를 자주 거론하고 사회적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이라고 합니다.2015년 발간된 브로커의 자서전 제목은 의미심장합니다. ‘행운의 삶, 방해 받다(A Lucky Life Interrupted).’ 언론인으로 승승장구해온 삶이 병으로 인해 중단됐다는 뜻이겠죠. 다발골수종을 진단 받고 2년 뒤에 나온 자서전이라 그런지 이에 대한 내용이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여느 암 환자와 마찬가지로 극도의 심리적 혼란을 겪은 과정이 잘 나와 있습니다. 자서전에 따르면 브로커는 병이 알려지면 쏟아지게 될 동정의 눈길이 싫어 끝까지 함구할 생각도 했다고 합니다. 증상이 심할 때는 움직이기조차 힘들어 부인이 대소변 처리를 도와준다고 합니다. 소변 배출도 쉽지 않아 엉거주춤한 채로 오래 유지하고 있어야 해 브로커 부부는 “태극권 기공 소변 자세(Tai Chi Pee)”라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서로를 위로한다고 합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이 에피소드를 자서전에서 가장 가슴 울컥하는 장면으로 꼽았습니다. 미국 방송계에는 ‘묘한 우연’이 있습니다. 브로커나 아만푸어 외에도 뉴스 진행자들의 암 소식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지난해에는 NBC 아침 뉴스 프로그램인 ‘투데이’의 기상 앵커인 알 로커가 전립선암 진단으로 방송을 중단했다가 최근 복귀했습니다. 2012년에는 ABC ‘굿모닝 아메리카’의 여성 앵커 로빈 로버츠가 골수암 치료를 받았습니다. 로버츠는 앞서 2005년에도 유방암을 이겨낸 전력이 있습니다. 2013년 ABC의 또 다른 여성 앵커 에이미 로박이 유방암 진단을 받고 성공적인 치료를 받은 뒤 지금은 시사 프로그램 ‘20/20’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NBC ‘투데이’를 오래 진행했던 브라이언 검블은 2009년 폐암을 이겨냈습니다. 2005에는 브로커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ABC 월드뉴스 투나잇’의 앵커 피터 제닝스가 폐암으로 세상을 달리했습니다. 이 정도로 많다보니 ‘앵커직과 암 발병 사이에 관계가 있나’ 하는 의문이 들기까지 하지만 전문가들은 ‘TV 효과’라고 설명합니다. TV 화면에서 자주 접하는 앵커들에게 친근함과 신뢰감을 느끼고, 그들의 암 소식에 더 마음이 쓰이게 된다는 것이죠. 앵커를 비롯한 기자 등 언론인의 역할은 객관적 시각에서 사회 현상을 전하는 것이지만, 때로는 그들 자신이 뉴스의 주인공이 돼 다른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때도 있습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2021-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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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ood&Dining]더울수록 불티… 맥주의 친구 ‘안주형 스낵’ 각광

    1인 가구와 혼술족, 홈술족이 늘면서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스낵류가 인기다. 스낵은 식품업계에는 날씨가 더워질수록 매출이 증가하는 제품으로 알려졌다. 더운 날씨에 빙과류, 음료 등의 매출이 증가하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스낵 매출이 느는 것은 의외다. 이는 주류업계 매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여름철 맥주 판매량이 증가하면서 덩달아 안주 매출도 늘기 때문이다. 주류업계에서 6∼9월은 성수기로 다른 계절보다 맥주 판매량이 10∼20% 늘어난다. 오리온이 최근 3년간 자사 스낵 매출을 분석한 결과 2∼5월에 비해 6∼9월의 매출이 평균 10%가량 높았다. 포카칩, 오징어땅콩, 썬 등 ‘안주형 스낵’들이 인기가 높은 편이다. ‘포맥(포카칩+맥주)’이라는 신조어를 유행시킬 정도로 맥주와 잘 어울리는 스낵으로 포카칩은 최근 3년간 2∼5월에 비해 6∼9월의 매출이 평균 15% 이상 높았다.오리온은 4월 포카칩 브랜드에서 33년 만에 신제품 ‘콰삭칩’을 내놓으며 여름 성수기 공략에 나섰다. 1.3∼3mm인 기존 감자칩 두께를 0.8mm로 크게 줄인 ‘콰삭칩’은 선보인 지 1개월 만에 누적 판매량 200만 봉을 넘을 정도로 감자스낵 시장에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회사 측은 “열대야가 지속되며 시원한 맥주를 찾는 소비자가 늘고 있기 때문에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스낵이 각광받고 있다”며 “‘포맥’에 이어 ‘콰맥(콰삭칩+맥주)’ 트렌드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2021-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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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업난-영농정착 지원 영향 3년새 청년농 1만5000여 명 늘어

    “처음에는 ‘이 마을에 청년농부가 나 혼자면 어떻게 하나’라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30여 가구가 있는 마을에 다섯 가구는 저 같은 20, 30대 귀농인 가족이 정착해 살고 있었습니다.” A 씨(28)가 대도시 생활을 접고 전북지역으로 귀농한 것은 2018년 봄. 귀농하기 전 6개월 동안 주말마다 사전 답사를 하며 철저히 조사했다. 그가 관심 있게 알아본 것 중 하나는 같은 동네에 사는 동료 청년농업인의 존재였다. 과학으로 농사를 짓는 요즘 시대에 유망 작물과 농법 등에 대한 정보를 교환하려면 비슷한 또래의 인적 네트워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는 단지 A 씨만의 고민이 아니다. 처음 농촌에 정착할 때 동료 청년농이 주변에 있다면 심리적 안정감을 찾는 데도 도움을 준다. 귀농에 도전하는 이들에게 반가운 소식이 있다. 노년층만 남아있던 농촌에 다시 청년이 돌아오는 추세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30대 이하 농림어업 취업자 수는 2010년대 후반부터 반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화의 영향으로 그동안 농가 인구는 꾸준히 감소해 왔다. 1960년 전체 인구의 72%였던 농촌 인구는 2010년 16%까지 감소했다. 특히 두드러진 것이 핵심 노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20∼40대 청장년층의 탈출이었다. 농촌의 ‘역피라미드 구조’가 고착화됐다. 양극화 현상도 진행됐다. 대농과 영세농은 증가한 반면 중간 그룹은 감소한 것. 통계청 농업총조사에 따르면 40세 미만의 농가 중에서 경지 규모 5.0ha 이상인 대농의 비중은 2000년 3.7%에서 2015년 6.9%로 늘었다. 0.5ha 이하 영세농의 비중도 33.8%에서 48.5%로 증가했다. 반면 대농과 영세농 사이에 끼인 중간 그룹의 비중은 줄어들었다. 청년층 감소와 양극화라는 양적·질적 위기 속에서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 것은 2017년 3분기쯤부터다. 우리 주변에서 “청년농부”라는 단어가 자주 들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탈도시화 현상, 고학력 취업난 가중, 귀농 및 청년 정책 활성화 등이 이유로 꼽힌다. 청년농 중에서 특히 독립경영체로 창농한 자영업자군, 가족 농업활동에 참가하는 무급가족종사자군이 두드러진 증가세를 보였다. 청년농 유입에 맞춰 정부의 지원사업도 본격화됐다. 현재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농촌 청년불패’(농림축산식품부), ‘청년농부사관학교’(농협 미래농업지원센터), ‘청년공동체 활성화 사업’(행정안전부), ‘신규농업인 현장실습교육’(농촌진흥청) 등이 진행되고 있다. 그중 하나인 농식품부의 영농정착지원사업은 2017년 시범사업을 거쳐 2018년부터 본격 시행됐다. 영농정착지원사업만의 차별화 포인트를 찾는다면 초기 정착기 3년 동안 생활자금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현재 생활비를 지원하는 정부 프로그램은 영농정착사업이 유일하다. 40세 미만을 대상으로 선발된 청년농에게 매달 100만 원(1년 차), 90만 원(2년 차), 80만 원(3년 차)씩 지급된다. 최대 3억 원 한도의 창업자금 융자지원, 농지은행 비축농지 임대 우선지원, 농신보(농림수산업자신용보증기금) 우대보증, 영농기술 교육 프로그램도 연계 운영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선발 인원이 1800명(올해 기준)으로 많고 신청서 접수도 내년 1월에 진행되므로 지금부터 준비하면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2021-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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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포장… 온라인 판매… 카페… “분산투자로 ‘다마불사’ 만들었죠”

    비무장지대(DMZ)와 가까운 경기 연천군에 사는 이은하 씨(42). 유행한다는 창업 품목은 거의 다 해봤다. 주스 전문점도 했고, 치킨집도 해봤다. 실패의 연속이었다. 경쟁이 너무 치열했기 때문이다. 2018년 자영업을 포기하고 남편과 함께 귀농을 선택했다. 시가의 전문 분야인 마 재배로 눈을 돌렸다. 시부모님은 연천에서 5만9500m²(약 1만8000평) 규모의 마 농사를 짓고 있다. 15일 마 농사 현장을 찾은 기자에게 이 씨는 이렇게 말했다. “시가의 마 농사에 합류했지만 저의 관심사는 조금 달랐습니다. 시부모님의 관심이 ‘어떻게 마를 잘 키울까’였다면 저는 ‘어떻게 잘 팔까’에 주목했습니다. 부가가치를 높여 제값 받고 팔아보자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마는 요즘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웰빙 식품이다. 식이섬유가 많아 변비 해소, 피부 미용, 소화 촉진 등에 효과가 좋다. 하지만 판매 경로가 제한적이다. 대다수 마 농가는 서울 경동시장 같은 도매시장에 한꺼번에 물량을 넘긴다. 그러다 보니 도소매가 차이가 매우 크고 수급 조절도 힘들다. 이 씨의 부가가치 제고 전략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소비자 직거래로 관심을 돌렸다. 원래는 대량으로 도매시장에 넘겼지만 최근 유통업계에서 소포장 상품이 인기인 것을 감안해 1kg들이 상자에 담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도매시장에 넘겼을 때 5만 원이었을 상품을 소포장으로 나눠 행사장에 가져가 판매해서 26만 원으로 만들었으니까요. 특히 상품 가치를 높이기 위해 농산물우수관리(GAP) 인증을 받고 소포장을 했더니 까다롭기로 유명한 백화점 행사장에 들어갈 기회를 얻었습니다.” 둘째, 소포장에 뛰어들면서 온라인이 대세라는 판단을 내렸다. 온라인 판매에서는 브랜딩이 중요하다. 이 씨는 이름 없는 마 농가가 아니라 시아버지 이름을 따서 ‘장기선 마농원’이라는 온라인 사이트를 만들고 상표등록도 마쳤다. “온라인 고객은 편리함을 중시합니다. 소포장은 땅에서 캐낸 생(生)마 상태로 판다면 온라인에서는 진공 포장한 깐 마가 잘 팔립니다. 바로 마 주스로 만들어 마실 수 있으니까요. 한 잔 주스용 7개 세트(2만4000원 정도)가 최대 히트 상품입니다.” 지난해 폭우로 인한 뿌리작물 침수 사태로 상품 공급이 어려워져 지금은 온라인 판매가 잠정 중단됐지만, 9월 마 수확기가 되면 정상 재가동될 예정이다. 그렇다고 풀 죽어 있을 수만은 없다. 요즘 이 씨는 ‘마 카페’ 메뉴 개발에 전력을 쏟고 있다. 2019년 연천군 농업기술센터와 경기농업기술원에서 주관하는 로컬푸드 곁두리카페 사업에 선정돼 농장 근처 마을 한복판에 마 음료 디저트 전문 카페를 열었다. 시골 한가운데 카페가 있다는 의외성 덕분에 연천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동네 사랑방 역할도 겸하고 있다. “마에 흑임자, 단호박 등을 추가하면 맛이 고소하고 달달한 음료가 됩니다. 나중에 집에서 만들어 먹겠다며 마 한 상자를 사 가시는 고객도 많습니다. 그럴 때면 마의 대중화에 기여한다는 생각에 뿌듯합니다.” 그는 마 음료에 그치지 않고 마 빵, 마 잼 등 각종 디저트류도 직접 개발했으며, 마의 끈적이는 성분을 이용해 앞으로 스틱젤리 생산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자영업을 하던 시절에는 ‘오늘 하루를 어떻게 넘길까’가 당면 과제였습니다. 마에 뛰어든 지금은 장기 비즈니스 계획을 세울 수 있어 행복합니다.” 이 씨가 미래에 대한 꿈을 꿀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영농 정착지원 사업이다. 2018년부터 3년간 월 최대 100만 원의 생활지원자금을 받았다. “혜택 기간이 끝나니까 정말 섭섭하더라고요. 정착 초기 막막할 때 든든한 버팀목이 됐습니다. 게다가 농지은행을 통해 마 농토도 저리로 임대받았죠. 무엇보다 가장 큰 도움은 소포장, 온라인 유통, 마 카페 오픈 등 저의 비즈니스 마인드를 넓혀준 겁니다. 저는 그걸 ‘분산투자’라고 부릅니다. 주식에만 분산투자가 있으란 법이 있나요? 농사에도 있습니다.”연천=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2021-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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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가 모든 걸 결정”…‘브리트니 사태’에 유력 정치인들 나섰다[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이건 정말 미친 짓이다. 빨리 멈춰야 한다.”(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힘을 합치면 해낼 수 있다.”(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미국 정가에서 여성 팝가수 브리트니 스피어스(40)가 화제입니다. 정치적 성향이 달라도 너무 다른 크루즈 의원과 워런 의원이 얼마 전 한 목소리로 ‘브리트니 대책’을 촉구하는 이색 풍경이 펼쳐졌습니다. 이들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정치인들이 너도나도 ‘브리트니 문제’를 거론합니다. 점잔 빼는 워싱턴 정치인들이 팝스타에게 이렇게 관심을 두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지난해부터 스피어스를 둘러싼 여러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베이비, 원 모어 타임(Baby, One More Time)’ ‘톡식(Toxic)’ 같은 신나는 댄스곡으로 10대 후반에 인기 정상에 오른 그녀는 2000년대 중반부터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속성 결혼했다가 이혼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는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돌연 삭발을 하고 몸무게가 크게 느는가 하면 갖가지 기행(奇行)으로 파파라치의 표적이 됐습니다. 2008년 아버지가 ‘후견인(conservator)’으로 지정돼 안정을 찾는 듯 보였습니다. 쉬는 동안에도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를 열심히 하며 자신의 근황을 알려줬습니다. 한물 간 팝스타 정도로 여겨졌던 ‘브릿(스피어스의 애칭)’이 화제의 인물이 된 것은 지난달 법정 진술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후견인 지위를 박탈해달라며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고등법원에 제기한 소송이었습니다. 법정에 직접 출석하지 않은 원격 비디오 증언이었지만 폭발력은 대단했습니다. 속기록에 따르면 스피어스는 30여분 동안 진술하면서 판사로부터 “제발 천천히 말하라”는 주의를 두 차례나 받았습니다. 가슴 속에 맺힌 게 많은 듯 했습니다. 핵심 내용은 “아버지가 후견인이 된 뒤부터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박탈당하고 살아왔다”는 것이었습니다. “정서 불안으로 가족의 보호가 필요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후견인이 됐지만 13년이면 충분하다. 이제 풀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마지막에 “아버지가 나의 삶에 관련된 모든 결정을 하기 때문에 마음대로 결혼할 수도 없고, 임신하지 못하도록 내 몸 속에 심어놓은 피임기구(IUD)조차 제거할 수도 없다”고 증언하는 부분이 클라이맥스였습니다. 인스타그램에서는 고통 받는 삶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는데 실제 상황은 그게 아닌 듯 했습니다. 들리는 얘기에 따르면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내용은 모두 아버지의 검열을 받는다고 합니다. 스피어스가 후견인 제도 때문에 노예처럼 살고 있다‘는 소문은 지난해부터 조금씩 들려왔습니다. 아버지가 그녀의 생활을 관리하기 위해 고용한 로펌의 직원이 한 팟캐스트 방송에 관련 내용이 담긴 오디오 파일을 전달하면서부터입니다. 그녀의 팬들 사이에서 ’브리트니를 해방시켜라(Free Britney)‘ 운동이 시작됐습니다. 올해 1월 뉴욕타임스가 제작한 다큐멘터리 ’프레이밍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공개되면서 팬층을 넘어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그녀의 이름이 회자(膾炙)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성적(性的) 대상으로 소비되면서 정서 불안을 겪은 개인사를 담은 다큐는 스피어스 근황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했고, 동정 여론에 힘을 얻은 스피어스는 소송을 벌이게 된 것입니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다큐에 이은 제2탄 격으로 아버지의 후견인 제도 악용을 고발하는 심층 기사를 실었습니다. 딸의 돈을 착복하고 자유를 말살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스피어스는 소송을 통해 “큰 패배, 작은 승리”를 얻었다는 평을 듣습니다. 재판부는 아버지의 후견인 지위를 일단 유지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스피어스에게 변호인 선임 자격을 줬습니다. 지금까지는 아버지가 고용한 변호사를 통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확실히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 것이죠. 뿐만 아니라 워싱턴의 주목을 끄는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작지만 값진 승리”라는 평이 나옵니다. 유력 정치인들이 스피어스에게 동정의 눈길을 보내지만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별로 도와 줄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후견인 제도는 개인의 재정 상황과 일상 생활에 관련된 결정권을 주 정부가 지정한 후견인에게 일임하는 제도입니다. 본래 결정력이 떨어지는 고령층과 알츠하이머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 제도는 연방정부가 아닌 주가 관할권을 갖습니다. 스피어스의 상황이 나아지려면 법률적 개선이 이뤄져야 하지만 그녀가 거주하는 캘리포니아 주는 관련 법률이 전근대적이고, 몇 차례 개혁 기회가 있었지만 무산됐습니다. 현재로선 연방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관련 청문회를 연다든지, 제도 운영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는 정도입니다. 그래도 워런 의원의 말처럼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제한적이지만 없는 것 보다는 낫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우리 모두 ’몰락한 스타의 극적인 재기 스토리‘는 좋아하니까요.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2021-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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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 사는 게 복수’…아마존 CEO 전처의 남다른 기부 철학[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최고경영자(CEO)의 전처 매켄지 스콧(51)의 기부 선행이 화제입니다. 스콧은 2019년 베이조스와 이혼하면서 받은 합의금(아마존 전체 주식의 4%)을 잇따라 기부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혼 후 2년 동안 약 10조 원(85억 달러)을 기부했습니다. 지난달에는 286개 사회단체에 3조 원을 내놓았죠. 스콧이 총 세 차례에 걸쳐 통 큰 기부를 하면서 일관되게 유지해온 기부 전략이 있습니다. 기부금을 받는 사회단체들로부터 “게임 체인저다” “혁명적이다” 등의 칭찬을 받고 있습니다. 미 언론과 자선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그녀의 독특한 기부 방식에 대해 알아볼까요. 스콧의 기부는 ‘쓰리 노(3개의 아니오)’라고 불립니다. 기존의 기부 관행과는 3가지 측면에서 다르다는 것이죠. 우선 ‘비신청(No Solicitation)’ 방식입니다. 지금까지 사회단체들은 기부금을 받기 위해 대규모 자선재단 같은 기부자에게 신청하는 절차가 필요했습니다. 자선재단들은 접수된 후보들 중에서 수혜 대상을 결정해왔죠. 하지만 스콧은 “영세한 사회단체들이 신청 절차에 과도한 에너지를 쏟는다”며 “우리가 기부를 받을만한 곳들을 찾아내겠다”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이를 위해 스콧은 기부 자문단을 가동시켜 평판조사를 하고 후보를 물색합니다. 자문단에는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현장 실무자와 기금 전문가, 자원봉사자가 100명 이상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기부금을 받을만한 사회단체의 리더십, 예산 운용 능력, 영업 실적을 집중적으로 살피고, 도움이 필요한 커뮤니티와 사회 분야를 개발합니다.380여개 사회단체에 4조5000억 원을 내놓았던 지난해 12월 기부 때 당초 6490개 단체를 1차 후보에 올린 뒤 2차 심사 때 822개로 줄여나갔습니다. 이 중에서 438개 단체는 실적 증거 부족, 경영의 비효율성 등의 이유로 유보 판정을 받았습니다. 자선 전문가들은 스콧의 비신청 방식에 대해 “기부금을 받기 위해 치열한 로비와 뒷거래가 벌어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평가합니다. 신청 과정을 없앴기 때문에 기부금을 받는 단체들은 자신들이 선정됐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선정 소식을 접하는 순간 각양각색의 반응이 터져 나옵니다. 170억원을 받게 된 ‘캔디드’라는 사회단체의 대표는 선정 통보 e메일을 스팸인 줄 알고 버렸다가 나중에 제3자가 알려줘 부랴부랴 휴지통 메일들을 샅샅이 뒤졌다고 합니다. 스콧 측이 보내온 선정 통보 e메일의 낯선 주소를 보고 열어보지도 않은 곳들이 많다고 하죠. 80억 원 상당의 기부금을 받은 ‘리페어 더 월드’라는 종교단체의 대표는 이 뉴스를 전해준 스콧 측 대리인과 통화하면서 감격에 겨워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 또 다른 특징은 스콧은 자선재단을 운영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현재 갑부들이 펼치는 기부 활동의 90% 정도는 자신 소유의 재단을 통해 운영됩니다. 빌&멜린다게이츠재단이 대표적이죠. 스콧의 전 남편인 베이조스 아마존 CEO 역시 자신이 설립한 ‘베이조스어스펀드’에 기금을 신탁해 환경단체들에게 나눠줍니다. 이를 전문 용어로는 ‘기부자 지정 펀드(DAF)’라고 하죠. 반면 스콧은 ‘비지정 펀드(Non-DAF)’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신속성을 중시하기 때문입니다. DAF는 체계적인 기금 운영이 가능하지만 집행 속도가 느리고, 외부인이 재단 내부 활동을 확인하기 힘들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물론 비지정 방식도 잡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스콧처럼 빨리 나눠주는 것이 목표라면 적절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용처 제한 규정이 없다는 것도 특징입니다. 기부자가 사용처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지 않는(NSA·No Strings Attached) 방식입니다. 스콧으로부터 기부금을 받은 단체들은 나중에 성과와 교훈, 사용 내역을 정리한 5쪽 미만의 보고서 제출이 유일한 조건이라고 합니다. 국제 반노예 활동기구인 ‘프리덤 펀드’의 대표는 “기부금을 가지고 다양한 모험적 시도를 하고 싶은 사회단체들에게 세세한 사용 조건은 족쇄가 될 수 있다”며 “스콧은 기부금이 효율적으로 사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말했습니다. 스콧은 이 단체에 400억 원을 기부했습니다.스콧이 운영하는 ‘미디엄’ 블로그를 보면 “나를 주목하지 말고 기부를 받게 된 묵묵히 일하는 사회단체들에게 관심을 가져달라”고 합니다. 이렇게 겸손하니 좋은 평을 받지 않을 수 없죠. 반면 전 남편 베이조스 CEO의 평판은 악화 일로입니다. 이혼 과정에서 불륜 사실이 낱낱이 드러났던 베이조스는 지난해 첨단 대기업 CEO들의 의회 청문회 때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해 이미지가 추락했습니다. 지난해 3월 “‘베이조스어스펀드’에 100억 달러를 내놓겠다”고 발표했지만 그의 재산 규모로 볼 때 “너무 적다”는 평이 나오고 있습니다. 1회분 기부 후 후속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말이 있지만 미국에도 “잘 사는 게 최고의 복수(Living well is the best revenge)”라는 명언이 있습니다. 남다른 기부 철학을 실천하고, 자선 분야에서 일하는 시애틀 과학교사 출신 남성과 재혼도 한 스콧을 보면 “잘 사는 게 뭔지 알게 된다”고 미국인들은 입을 모읍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2021-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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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블랙 글램’ 육상 스타 샤캐리의 용기 있는 고백…미국을 움직이다[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경기 전 족히 한두 시간은 거울 앞에 앉아있었을 듯한 ‘풀메(풀메이크업),’ 대회 때마다 달라지는 머리 색깔, 너무 길어 일상 생활에 불편을 초래할 듯한 인조 손톱…. 미국 여성 육상선수 샤캐리 리처드슨(21)은 ‘블랙 글램(화려하게 치장한 흑인)’을 대표하는 스포츠 스타입니다. 말도 당차게 잘 합니다. 자신을 “저 아가씨(That Girl)”라고 불러달라고 합니다. “나를 주목해 달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미국은 리처드슨처럼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고 언변도 뛰어난, 즉 상품적 가치가 높은 스포츠 스타를 좋아합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스포츠 선수들의 TV 출연이 붐을 이루고 있지만 미국은 스포츠의 엔터테인먼트화, 비즈니스화가 고도로 발전했습니다. 리처드슨은 최근 도쿄올림픽 대표 선발전 100m 결선에서 1등으로 골인했다가 도핑 테스트에서 마리화나 사용이 드러나 자격이 박탈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의 정신 건강 문제를 당당히 밝히면서 많은 미국인들의 공감을 사고 있습니다. 일찌감치 흥행성을 인정받은 리처드슨이 마리화나 파문 때문에 올림픽 출전이 불투명해지자 국민적 실망감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백악관도 관심을 보입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는 여성이자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뛰는 선수인데 안타깝다”고 밝혔습니다. 리처드슨처럼 실력도 외모도 뛰어난 여성 정치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 하원의원은 “미국 도핑방지위원회(UADA)는 리처드슨에게 내린 출전 정지 결정을 재고해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국민 청원도 뜨겁습니다. UADA,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세계반도핑기구(WADA) 등을 상대로 벌이는 리처드슨 지지 운동이 인터넷에서 여러 개 생겨났습니다. 시민단체 ‘무브온’이 조직한 가장 큰 규모의 40만 명 서명 운동 ‘샤캐리를 뛰게 하라’는 개시 하루 만에 33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불법 약물 사용은 스포츠 스타들에게 불명예의 극치인데 리처드슨의 경우는 왜 이렇게 동정론이 들끓고 있는 걸까요. 아직 미래가 밝은 젊은 선수라는 점, 경기 직전 오래 전 헤어진 친어머니가 죽었다는 비보를 접하고 충격을 덜기 위해 마리화나를 피웠다는 안타까운 사연, 부인하거나 변명하지 않고 순순히 “내 책임”이라며 시인했다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리처드슨은 마리화나를 사용한 이유에 대해 “가족을 잃은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이겨내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했습니다. 심리적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중요한 스포츠에서 자신의 허약한 멘탈을 드러내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미국 스포츠계는 “불굴의 투지” “정신력의 승리” 같은 ‘멘탈 갑’ 수사(修辭)들이 우리나라보다 덜 강조되기는 합니다만, 뛰어난 기량의 선수들이 많은 만큼 경쟁이 치열하고 부담감도 큽니다. 많은 선수들이 개인 사정에 관계없이 자신만만한 겉모습을 내보여야 한다는 것 때문에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지난달에는 아시아계 테니스 스타인 오사카 나오미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오사카는 프랑스오픈 기자회견을 거부하고 윔블던대회 출전도 포기했습니다. 오사카와 마찬가지로 ‘소수인종 롤 모델’로 각광 받던 리처드슨이 비슷한 정신적 고민을 호소하자 미국인들은 이들의 약한 멘탈을 비판하기보다 이해의 눈길로 바라봅니다. 과거에는 선수들이 정신적 스트레스나 피로감을 숨기는데 급급했다면 리처드슨이나 오사카 같은 신세대 스타들은 이를 공개적으로 밝히며 치료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과 미디어의 집요한 캐묻기식 취재 경쟁을 자제해줄 것을 호소합니다.이들의 호소가 공감을 살 수 있는 것은 불안한 정신 건강이 단순히 스포츠 분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미국 사회 전반의 문제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10대 후반부터 30대까지의 MZ세대는 ‘우울증을 달고 사는 세대’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미국심리학회(APA) 조사에 따르면 MZ세대 중에서 자신의 정신 건강 상태가 “보통이거나 나쁘다”고 답한 비율은 27%인 반면 40대 이상 연령층에서는 13%였습니다. “전문가로부터 심리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MZ세대에서 70%가 넘는 반면 중장년층에서는 10~20%이었습니다. “나에 대해 쉬운 판단을 내리지 말아 달라. 나도 사람이다. 내가 바로 당신이다. 단지 조금 빨리 달릴 뿐(Don‘t judge me because I am human. I am you - I just happen to run a little faster).” 리처드슨은 마리화나 사용 시인 직후 TV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법 약물 사용은 분명히 책임이 뒤따르는 일이지만 그녀만큼 많은 미국인들에게 정신 건강 문제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스포츠 스타는 흔치 않습니다.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2021-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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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년농부 지원’ 밑천 삼아 딸기 스마트팜 일군 스타농부

    경기 포천시 영중면에 있는 ‘포천딸기힐링팜’에 가면 6644m² 규모의 거대한 스마트팜 시설이 맞아준다. 스마트팜 앞쪽에는 ‘청년농업인 대상 수상’이라는 긴 현수막이 걸려 있다. 주인공은 ‘힐링팜’을 경영하는 안해성 농부(38). 조만간 현수막을 몇 개 더 설치해야 할 것 같다. 안 씨는 24일 환경부 주최 에코디지털 탄소중립 공모전에서 환경부장관상도 받았다. 도시농업박람회 농업영상 공모전 최우수상, 농산업 창업아이디어 경영대회 우수상, 대통령 농특위 공모전 입상 등 농업에 뛰어든 지 2년도 안 된 그의 수상 경력은 화려하다. 안 씨의 배경은 독특하다. 서울대 지질학과 대학원 졸업에 현대건설 인공지능 빅데이터 연구원. “이렇게 똑똑한 젊은이가 농사를 짓겠다고?” 2019년 가을 그가 딸기 농사를 짓겠다고 인사하러 왔을 때 마을 주민들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안 씨는 25일 ‘힐링팜’을 찾아간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동네는 풍광은 수려하지만 대규모 돈사(豚舍)가 많아 악취가 심한 편입니다. 모두 떠나려는 곳에 정착하겠다고 하니 놀라는 것도 당연합니다.” 지금은 현수막이 내걸릴 정도로 ‘동네 자랑’이 됐다. 아버지가 카센터를 접고 2000년대 초 귀농했기 때문에 “농업은 앞으로 내가 할 일”이라는 결심은 언제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안 씨는 지금 포천에서 가장 큰 규모의 딸기 농사를 짓고 있다. 직접 시공에 참여한 스마트팜에서 모두 생산된다. 정보통신기술(ICT) 기반으로 설계돼 온도, 습도부터 일조량까지 원격제어가 가능하다. 농장 안팎에 부착된 센서를 통해 수집된 기후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컴퓨터에 전송해 딸기 재배에 최적의 환경을 찾는다. 스마트팜을 구경하러 오는 예비 농업인, 단체 연수생들이 늘면서 관광 체험학습 기회도 제공하게 됐다. 안 씨는 스마트팜을 최고 자랑거리로 여긴다. 직접 설계한 데다 지난해 1월부터 토목공사, 골조 양액 시설 등 10개 업체를 분리 발주시켜 8월에 완공했다. 설치 비용은 총 4억여 원. 만약 시공업자에게 설계부터 사후 관리까지 모든 과정을 맡기는 턴키 계약 방식을 택했다면 비용이 5억 원 이상 들었을 것이라고 한다. “10억∼20억 원이 들어가는 최첨단 유리온실만이 스마트팜이라고 여겨 엄두를 못 내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ICT 복합 환경제어 시설만 설치하면 2억 원 정도로 한국형 스마트팜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안 씨는 초기 정착 과정에서 농림축산식품부의 ‘청년후계농 영농 정착 지원사업’을 연구해 활용했다. “농사는 매달 들어가는 고정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매달 최대 100만 원씩 받는 정착지원금은 생활비, 유류비, 농기자재 수리비 등으로 썼습니다. 창업 자금도 3억 원을 저리로 융자받아 토지를 구입했죠. 농업진흥청과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등이 제공하는 6개월 이상 코스의 청년귀농 장기 교육을 이수한 것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연구실을 떠나 농사꾼으로 변신한 안 씨는 다른 사업도 준비하고 있다. 자신이 터득한 비법을 전수하는 농업 교육 및 컨설팅 사업이다. 기자와 만나는 중에도 각종 기관과 학교들로부터 스마트팜 및 창농 강연 요청 전화가 걸려왔다. 이달에만 600여만 원의 강연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소통하는 것을 좋아하는 그는 ‘안스팜티비’라는 유튜브 채널도 지난해부터 운영 중이다. 젊은 농업인들 사이에서 유튜브 스타인 그는 사업계획서 작성법부터 창업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와 스마트팜 시공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 “처음에는 반대하시던 부모님이 이제 고개를 끄덕이십니다. ‘네가 이래서 농사를 짓겠다는 거구나’ 하고 말씀하세요. 재래식 농법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연구하고 비즈니스 모델로 접근하는 아들을 신뢰하는 거죠.” 月 100만원 정착금 - 3억 융자에 컨설팅까지… ‘영농 집중’ 도우미청년후계농 영농정착지원사업…정부, 창농 초기 소득 불안정 보전올해는 1800명까지 지원 확대…심리안정-자신감 향상에도 도움 A 씨는 3년 전 30세의 나이에 회사원 생활을 접고 농사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초기 창농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이 기간 동안 수입이 불안하다는 게 가장 마음에 걸렸다. 가정을 꾸리고 식구가 늘어난 때였기 때문에 창농 실패는 곧 생존의 문제와 직결됐다. 청년농업인이라면 누구나 겪게 되는 이런 고민에 답해주는 프로그램이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청년후계농 영농정착 지원사업’이다. 청년층의 농업 분야 창업 활성화와 조기 경영안정화를 위해 월 최대 100만 원의 생활안정자금을 3년간 지원한다. 청년농업인을 돕는 사업은 중앙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꽤 많이 있다. 대부분은 농기자재, 온실 설치 등을 현물 지원하거나 농업실습 및 교육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영농정착 지원사업은 유일하게 ‘생활비’를 대주는 프로그램이다. 이 돈으로 마트에 갈 수 있고, 분유 값도 충당할 수 있다. 물론 농기계를 수리할 수도 있고 유류비로도 사용할 수 있다. 영농정착 지원사업은 생활비와 함께 융자 및 교육 컨설팅도 병행한다. 토지 농기계 영농시설 등을 마련할 수 있도록 고정 금리 2%대로 최대 3억 원의 창업자금을 융자해준다. 농지은행을 통해 비축 농지도 우선적으로 임차할 수 있다. 이 밖에 영농기술 교육 및 영농 경영 투자 컨설팅도 받을 수 있다. 생활비 지원의 경우 (농협) 바우처 카드를 발급받게 된다. 이 카드에 월 최대 100만 원씩 꼬박꼬박 적립돼 편의점, 마트, 대형 할인점, 식당 등에서 사용할 수 있다. 원래 사용 용도가 아닌 유흥비로는 쓸 수 없다. 생활비는 3년 동안 연차별로 차등 지급된다. 1년 차는 100만 원, 2년 차는 90만 원, 3년 차는 80만 원이다. 3년 차까지 100만 원 일률 지급, 5년으로 혜택 기간 연장 방안 등의 개선안이 논의되고 있다. 영농정착 지원사업은 2018년 시작돼 매년 1600명씩 선발해오다가 올해는 1800명으로 늘렸다. 올해까지 총 6600명의 청년농이 혜택을 받았다. 지자체 산하 농업기술센터 등에서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 프로그램에 대해 아직 모르는 이들이 많다고 농식품부 관계자는 귀띔했다. 올해 선발자를 보면 지역은 경북(304명), 전북(294명), 전남(282명) 등의 순이었으며, 생산 품목은 채소류(26.1%)가 가장 많고 과수류(15.5%), 축산(13.3%) 등이 뒤를 이었다. 신청 자격은 만 18세 이상 40세 미만이며 농산물품질관리원이 인증하는 농업경영체로 등록된 상태여야 한다. 본인 명의의 독립적인 영농 기반을 갖추고 있고 본인이나 배우자의 직계존속으로부터 임차 형태의 농업에 종사한다면 혜택을 받기 힘들다. 김정희 농식품부 농업정책국장은 “영농 초기 소득이 불안정한 청년농의 소득을 직접적으로 보전해준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농외소득 활동을 줄이고 영농에 집중할 수 있고 심리적 안정감 및 자신감 향상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포천=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 2021-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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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디펜던스 데이?” “피스데이?” 뭐라고 부르나…독립기념일 앞둔 미국의 고민[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일주일 후면 미국 독립기념일입니다. 영어로는 ‘인디펜던스 데이’라고 하죠. 그런데 요즘 미국에서 다른 이름으로 불러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독립기념일 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공휴일도 개명해야 한다고 하네요. 우리나라는 대체공휴일 문제로 뜨겁지만 미국은 조금 다른 앵글의 ‘공휴일 고민’이라 할 수 있죠. 미국인들이 많이 읽는 ‘아메리칸 헤리티지’라는 역사 사전에는 ‘미국의 폭력’이라는 챕터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첫 문장으로 “미국 역사에서 폭력은 가장 원초적 문제였다”고 나와 있습니다. 널리 알려졌듯 미국 역사는 침략의 역사이고, 정복의 역사입니다. 아메리카 대륙에 첫 발을 디딘 개척자들은 원주민과 싸웠고, 식민 상태에 벗어나기 위해 미국은 영국과 대결했으며, 남북전쟁 때는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져 피 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였습니다. 노예 제도를 둘러싼 흑백 대립도 심각했습니다. 미국인들은 “폭력을 통해 현재의 민주주의를 얻었다”고 위로하지만 과거가 피로 점철됐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입니다.문제는 공휴일의 대부분이 폭력의 역사, 그리고 그 안에서 이름을 날렸던 인물들을 기리는 날이라는 것입니다. 대부분 국가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폭력적 면모를 갖고 있지만 짧은 기간 안에 국가를 세우고 분열을 잠재웠던 미국은 폭력의 강도가 매우 높습니다. ‘휴일 개명(Rename Holidays)’은 휴일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이름에서 폭력적 색채를 덜어내야 한다는 운동입니다. 지난 수십 년간 꾸준히 전개돼온 운동이지만 최근 갑자기 뜨거워졌습니다. 사회적 분위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이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요즘 미국은 ‘우오크(woke)’ 즉 ‘깨어나라’ 정신이 대세입니다. 약자 입장에서 세상을 봐야 한다는 일종의 ‘정치적 올바름’ 운동이지요. 강자의 역사를 기념하는 날인 휴일을 이름만이라도 약자를 배려하는 식으로 바꿀 것을 우오크 시대 정신은 요구하고 있습니다. 독립기념일의 배경에는 독립 전쟁이라는 영국과의 폭력적 대결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개명론자들은 독립기념일이 결국 후세에 평화를 물려주기 위해 싸운 날이라는 점을 강조해 ‘피스데이 원(평화의 날 1)’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피스데이’ 뒤에 ‘원’이 붙는 것은 두루뭉술한 의미의 ‘피스데이’는 웬만한 곳에 다 갖다 붙일 수 있는 다목적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피스데이 투’도 있고, ‘쓰리’도 있습니다. 미국의 현충일 격인 ‘메모리얼 데이(전몰자 추도기념일·5월 마지막 주 월요일)’에는 ‘피스데이 투,’ ‘마틴 루터 킹 데이(마틴 루터 킹 목사 기념일·1월 세 번째 주 월요일)에는 ’피스데이 쓰리‘라는 이름이 적절하다고 합니다. 킹 목사는 사회적 약자인 흑인 인권을 위해 싸웠으므로 그의 기념일은 개명 대상이 아닐 수도 있지만 특정 인물을 기리는 날은 결국 개인 우상화 위험이 있다 해서 ’피스데이‘군에 합류하게 됐습니다.가장 확실하게 개명 움직임이 일고 있는 날은 ’콜럼버스 데이(10월 두 번째 주 월요일)‘입니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것을 기념하는 날로 1937년 연방 공휴일로 지정됐습니다. 많은 지자체들이 회의를 거쳐 ’콜럼버스 데이‘라고 하지 않고 ’인디지너스 피플스 데이(원주민의 날)‘라고 부를 것을 정식 결의했습니다. 그러자 콜럼버스가 태어난 나라인 이탈리아가 들고 일어났습니다. 미국 내 이탈리아 커뮤니티는 “왜 수십 년 동안 잘 불러오다가 갑자기 없애느냐”고 반발했습니다. 꼭 개명을 해야 한다면 ’원주민의 날‘이 아닌 ’이탈리아 유산의 날(이탈리안 헤리티지 데이)‘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입니다. 이렇게 개명은 쉽지 않습니다. 반대하는 이익 집단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휴일 개명 운동은 이념 대결 양상도 보이고 있습니다. 개명을 주장하는 쪽은 진보 세력이고, 반대하는 쪽은 보수파입니다. 보수 운동가들은 “왜 역사를 부정하느냐”며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온 휴일 이름을 바꿔 혼란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역사수정주의에 입각해 미국의 과거사를 일일이 들춰보자면 사실 남아나는 게 없을 정도로 대부분의 공휴일은 개명 대상입니다.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부활절, 재향군인의 날, 대통령의 날 등이 모두 개명 대상으로 오르내립니다. 최근 뉴저지 주 랜돌프 고교 사례는 휴일 개명이 얼마나 쉽지 않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총 학생수 1500여명의 이 작은 학교가 전국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이유는 가을부터 시작되는 올해 학사 일정을 공개하면서 공휴일 명칭을 생략했기 때문입니다. 각각의 공휴일 명칭을 쓸 경우 누군가의 반발을 살 것을 우려해 아예 생략하고, ’학교 문 닫는 날(School Closed)‘ ’쉬는 날(Days Off)‘ 등의 큰 제목 아래로 날짜만 공고했습니다. 오랫동안 익숙하게 봐온 공휴일 명칭이 사라진 것에 반발한 학부모들이 생략 결정을 내린 학교 이사회 퇴진을 위한 서명 운동에 돌입하면서 학교가 이념 대결의 장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공휴일 개명은 역사 바로 잡기 차원에서 바람직한 일입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유지돼온 휴일 이름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고 쉽게 고쳐지기도 힘듭니다. 바짝 코앞으로 다가온 독립기념일부터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 2021-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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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나 살 좀 빼고 몸이 좋아지고 싶어”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부쩍 살이 빠진 모습으로 등장했습니다. 비만 문제가 심각한 미국이 김 위원장의 체중 감소를 그냥 지나칠 리 없습니다. 이리저리 뜯어보며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Diet or Health Scare? Kim Jong Un Is Looking Noticeably Slimmer.” 누군가 살이 쪽 빠진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가장 먼저 드는 궁금증은 “다이어트 때문인가, 아파서 그런가”입니다. 김 위원장의 체중 감소를 바라보는 미국 언론 역시 대부분 제목이 비슷합니다. 전문가들의 추측은 다이어트 쪽이 우세합니다. 건강 문제 때문이라면 아예 공식석상에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죠. 미 언론에 김정은 건강이상(설) 기사가 나올 때마다 ‘health scare(건강 우려)’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됩니다. ‘몸무게를 줄이다’는 ‘lose(잃다)’ 또는 ‘shed(덜어내다)’ weight라고 합니다. △“The baggy suit is hanging a bit more loosely.” “배기 스타일의 슈트가 좀 더 느슨하게 걸려 있다.” 한 외신은 김 위원장의 살 빠진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초고도 비만이어서 원래 꽉 끼지 않는 배기 스타일을 즐겨 입죠. 이 배기 스타일의 슈트가 ‘더 헐렁해진 듯하다’고 합니다. 이렇게 ‘hang’은 ‘(옷을 몸에) 걸치다’고 할 때도 씁니다. 옷을 멋지게 소화하는 사람을 “옷걸이가 좋다”고 하죠. △“Kim Jong Un appears to have lost some weight-and that could have geopolitical consequences.” “과연 우리가 김 위원장의 체중 문제까지 세세하게 상관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도 있습니다. 물론 핵무기를 가진 북한 지도자의 건강 문제는 안보상의 이유로 중요하지만 시곗줄을 더 바짝 조인 것까지 체크해 가며 살 빠진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입니다. 워싱턴포스트의 기사 제목입니다. “김 위원장이 살이 좀 빠졌다. 그리고 그것은 지정학적으로 중대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런 걸 ‘비꼬는(sarcastic)’ 제목이라고 합니다. “그게 뭐 대수냐”는 의미죠. 정미경 콘텐츠기획본부 기자·前 워싱턴 특파원 mickey@donga.com}

    • 2021-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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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햄버거’ ‘슈퍼히어로’의 공통점은?…美떠들썩하게 만든 대형 오보[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햄버거’와 ‘슈퍼히어로’ 둘의 공통점이 뭘까요. 어린이들이 좋아한다는 것? 맞습니다만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최근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2건의 대형 오보 사건의 ‘주인공’이라는 것입니다. 이 오보 사건을 계기로 가짜뉴스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우선 ‘햄버거’ 사건. 얼마 전 폭스뉴스는 정정 보도를 냈습니다. 폭스뉴스의 대표 앵커가 직접 발표한 정정 보도는 “며칠 전 우리 보도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That is not the case)”라는 것입니다. 발단은 사흘 전 폭스뉴스가 방송한 “조 바이든 행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붉은 고기(쇠고기 돼지고기 등) 공급 제한 정책을 추진하려고 한다”는 뉴스였습니다. 이 뉴스는 “고기 섭취를 줄이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2020년 미시건대 연구 결과를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정정 보도는 “연구결과 내용은 맞다. 하지만 마치 그것을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인 것처럼 보도한 것은 틀렸다”고 했습니다. 오류를 인정한 것은 다행입니다만 “너무 늦었다”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원래 보도 내용이 폭스뉴스의 다른 프로그램들을 통해 널리 퍼진 후 정정 보도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재탕 삼탕 수준이 아니라 “바이든 행정부가 당장 이번 독립기념일부터 햄버거와 스테이크를 금지시킬 수 있다”는 식으로 확대 발전됐습니다. 어떻게 산출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이 “1개월에 1개씩”이라는 구체적인 햄버거 규제 량까지 추산해 보여줬습니다. 미국인들이 즐기는 햄버거다 보니 정치권도 가세했습니다. 공화당 정치인들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햄버글러<햄버거와 버글러(도둑)의 합성어>”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바이든, 내 부엌에서 떨어져”라는 경고도 나왔습니다. 원래 보도 내용의 파급력이 컸기 때문인지 정정 보도는 묻혀 버렸고, 정정 보도가 있었는지도 모르는 미국인들이 많았습니다. 햄버거 정정 보도 다음날 뉴욕포스트 기사가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기사는 “중남미 불법이민자 자녀들이 머무는 임시 수용소의 ‘환영 선물 키트’에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저서 ‘슈퍼 히어로는 어느 곳에나 있다’가 포함돼 있다”는 기사였습니다. 해리스 부통령의 책은 ‘부모나 선생님, 주변 사람들이 모두 어린이들에게는 슈퍼 히어로일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기사는 임시 수용소에 입소하는 어린이들이 이 책을 의무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점을 은연중에 부각했습니다. 기사에는 수용소 침대에 이 책이 놓여 있는 로이터통신 사진도 곁들여 있었습니다. 뉴욕포스트 1면 머리기사로 실렸고 온라인판에도 보도됐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이민정책 전반을 위임받은 해리스 부통령은 종합적인 이민 대책을 내놓지 못한 상황에서 이런 기사까지 나와 이미지는 더욱 나빠졌습니다. 그동안 공화당은 바이든 대통령 시대에 물밀 듯 국경을 넘어오는 이민자 급증 사태를, 민주당은 이민자를 곧바로 본국에 소환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이 도널드 트럼프 시대와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을 문제 삼아왔습니다. 해리스 부통령은 양당의 협공에도 불구하고 국경 지역 방문도 하지 않아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뉴욕포스트 기사는 해리스 부통령이 주어진 임무에는 소홀한 채 저서 배포를 통한 자기 홍보와 이윤 추구에 골몰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이 기사는 ‘햄버거’ 사건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오류 문제가 떠올랐습니다. 기사를 쓴 기자가 “회사 측 강요에 못 이겨 썼다”고 폭로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기자는 이 기사가 보도된 다음날 자신의 트위터에 “카멀라 해리스 기사는 틀린 기사다. 나는 이 기사를 쓰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이를 거부하지 못했다. 그것이 나의 한계점이었다.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고 밝혔습니다. 뉴욕포스트는 사흘 뒤 “우리는 기자에게 사실 관계가 틀린 기사를 쓰도록 강요하지 않는다”고 반박했습니다. 양쪽의 진실 공방이 가열되는 가운데 기자가 사표까지 감수하며 폭로한 것이니만큼 회사 측 강요가 있었던 것만은 확실하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입니다.왜 해리스 부통령의 책이 이민자 수용소에 비치돼 있었는지 워싱턴포스트가 팩트체킹한 기사에 따르면 한 지역 단체가 수용소 도서관에 기부한 여러 권의 책들 중에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뉴욕포스트 기사에 나온 대로 이민자 ‘환영 선물 키트’에 포함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이 기사는 뉴욕포스트에서 20여년의 취재 경력을 가진 여기자가 썼습니다. 어떻게 베테랑 기자가 거짓 기사를 썼는지 시사 잡지 베니티페어가 뉴욕포스트의 사내 분위기를 추적해보니 발단은 해리스 부통령의 책이 이민자 침대에 놓여 있는 로이터통신 사진이었다고 합니다. 사내 결정권자들은 이 사진에 큰 관심을 보이며 해당 기자에게 “왜 이 책이 여기에 있는지 취재해서 기사를 써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회사 측 강요 내지 회사와 기자의 합의 하에 가공의 스토리를 만들어 낸 것으로 보입니다.폭스뉴스와 뉴욕포스트는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회사입니다. 연이어 터진 오보 스캔들에 소셜미디에서는 “머독은 창피한 줄 알라” “머독은 괴물” “다음에는 또 무슨 거짓말을 퍼뜨릴 거냐” 등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민주주의의 독”이라며 머독 소유 언론사들에 대한 불매 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뉴욕타임스와 CNN은 머독 언론 왕국의 실체를 파헤치는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공동 제작 중입니다.머독은 미 언론계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아왔습니다. 좀처럼 외국 자본이 뚫고 들어오기 힘든 미국 언론산업에 호주 출신의 머독은 영국을 거쳐 성공적으로 입성했기 때문입니다. 머독은 많은 비판을 받는 만큼 호기심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미디어 재벌 가문 내부의 암투를 그린 HBO 드라마 시리즈 ‘석세션’이 머독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흔히 가짜뉴스 하면 ‘듣보잡’ 매체나 소셜미디어에서 흘러 다니는 정보를 생각하기 쉽지만 이번 오보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은 크고 잘 알려진 매체들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머독 소유 매체들이 원래 높은 질의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곳은 아닙니다만, 뉴스 신뢰도에 중대한 타격을 입은 것은 분명합니다. 전문가들은 바이든 행정부와 머독 매체들 간의 갈등은 앞으로 더욱 가열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가짜뉴스를 선별할 줄 아는 언론 이용자의 부지런함이 어느 때보다 필요해 보입니다.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 2021-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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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곱창밴드 영부인’…리사이클링 패션으로 호평[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정치는 ‘어떻게 보이느냐’가 좌우하는 세계다. 나는 옷을 입을 때마다 이 원칙을 염두에 둔다.” 패셔니스타로 이름을 날린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는 자서전 ‘비커밍’에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하버드 법대 출신의 공부벌레로 외모를 꾸미는 일에는 관심 없던 그녀가 남편의 정치 입문과 함께 패션의 정치적 효과를 깨닫게 됐다는 것이죠.미셸의 이런 메시지에 공감하는 사람을 꼽으라면 최근 조 바이든 대통령의 첫 해외 순방인 주요7개국(G7) 정상회의에 동행한 퍼스트레이디 질 바이든 여사일 것입니다. 영국 콘월에서 열린 G7 회의에서 보여준 그녀의 분별 있는 패션 센스가 화제입니다. 전임 퍼스트레이디였던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처럼 주변을 압도하는 화려한 패션 감각은 갖추지 못했지만, 또 그런 타고난 몸매도 나이도 아니지만, 본인 특유의 적재적소 형 패션으로 남편의 든든한 정치적 조력자가 되고 있다는 평을 듣습니다. 바이든 여사는 G7에서 ‘패션 리사이클링’이 무엇인지 보여줬습니다. 대개 유명인들은 한 번 입고 공개석상에 등장했던 옷을 다시 입는 것을 꺼립니다. 하지만 ‘한번 입었다고 해서 비싼 옷들을 옷장 속에서 썩힐 필요는 없다’는 것이 질의 패션관인 듯 합니다. G7 때 입었던 대부분 옷들이 ‘재활용’ 패션입니다. G7 개막 리셉션에서 입었던 오스카 드 라렌타표 꽃무늬 원피스는 지난해 남편의 대선 승리 후 대국민연설 때 입은 옷입니다. 당시 눈도장이 확실히 찍혔던 의상인데도 카메라 플래시가 집중적으로 터지는 G7 개막식에서 또 다시 선보인 것이죠.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부부를 만날 때 입은 등 쪽에 ‘LOVE’라고 새겨진 자딕앤볼테르 브랜드의 재킷은 2019년 남편 대선 유세 때 처음 입은 뒤 몇 차례 입었습니다. 케이트 미들턴 왕세손비와 함께 지역 초등학교 방문 때 선보인 핑크색 재킷과 안에 받쳐 입은 흰색 원피스는 4월 일리노이 주 대학 방문 때 입었던 적이 있습니다. 바이든 여사는 역대 최초의 ‘직장인 퍼스트레이디’라는 점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삼고 있습니다. 노던버지니아커뮤니티칼리지(NOVA)에서 영어를 가르치죠. 대부분 직장 여성이 그렇듯 ‘출근 옷’이 필요하고, 매번 꼼꼼히 따져가며 옷을 차려입을 시간적 여유도 없을 것입니다. 한번 입은 옷을 입고 또 입는 것에 개의치 않는 것도 이런 ‘직장인 마인드’ 때문인 듯 합니다. 퍼스트레이디 담당 백악관 스타일리스트는 “바이든 여사는 패션에 무신경한 편”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그를 가리켜 “주저하는 패셔니스타(Reluctant Fashionista)”라고 부릅니다.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세간의 주목을 받는 퍼스트레이디라는 직함 때문에 얼떨결에 패션 리더로 주목받고 있다는 것이죠. ‘곱창밴드’ 사건은 어쩌다 보니 패셔니스타가 된 그녀의 면모를 잘 보여줍니다. 질은 지난 밸런타인데이 때 한국에서 ‘곱창밴드’로 불리는 천 고무줄 밴드로 머리를 묶고 마카롱 가게에서 남편에게 줄 선물을 고르는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가 어마어마한 환호를 받습니다. 유행이 지난 아이템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철칙인 냉엄한 패션의 세계에서 1980~90년대 유행했던 곱창밴드로 머리를 묶은 그녀의 소박한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죠. 일명 ‘곱창밴드 영부인’의 탄생입니다.그녀의 소감은 “얼떨떨하다”였습니다. 인기 토크쇼 ‘켈리 클락슨 쇼’에 출연한 그녀는 “딸 애쉴리로부터 곧바로 ‘엄마, 소셜미디어에서 난리 났어’라는 전화를 받았다”며 “그게 왜 화제가 되는지 당시에도 몰랐고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고 털어놨습니다. 진행자 켈리 클락슨은 한술 더 떠 “기왕에 추억 소환이라면 곱창밴드 외에 ‘바나나 클립(헤어 집게)’도 다시 유행시켜 주세요”라는 애교 섞인 주문까지 했습니다. 비주얼이 중시되는 현대 정치에서 퍼스트레이디에게 패션은 사치가 아닌 필수가 되는 추세입니다. 패션에 유달리 관심이 많던 미국 퍼스트레이디로는 재클린 케네디 여사(남편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 베티 포드 여사(남편 제럴딘 포드 대통령), 낸시 레이건 여사(남편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등이 꼽힙니다. 반면 패션과 담 쌓고 살았던 퍼스트레이디로는 로절린 카터 여사(남편 지미 카터 전 대통령)가 있습니다. 그래도 전담 스타일리스트와 미용사가 있고, 의상 구매 담당자도 대기하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 백악관 안주인들은 금세 ‘환골탈태’합니다. 도수 높은 안경에 값싼 기성복 슈트 차림으로 놀림을 받았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퍼스트레이디를 지내면서 갈고 닦아 나중에는 패션지 표지 모델로 등장했습니다.질 여사는 대중의 관심이 지나치게 패션에만 집중되는 것에 대해 불편감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얼마 전 퍼스트레이디 대변인은 “앞으로는 패션에 대해 코멘트하지 않겠다”고 밝혔습니다. “코멘트하지 않겠다”는 것은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었는지, 왜 그 옷을 선택했는지 등에 대해 언론에 설명하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퍼스트레이디 담당 공보팀은 언론의 요청이 있을 때마다 디자이너 이름, 옷을 입은 사연 등의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관례입니다. 어떤 때는 언론 요청이 없어도 백악관이 먼저 나서 패션 보도 자료를 뿌리기도 하죠. 앞으로는 시시콜콜하게 이런 정보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겁니다. 새로운 유형의 퍼스트레이디로서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제스처로 보입니다. 하지만 성공할지는 미지수입니다. 미국 퍼스트레이디의 최우선 역할은 ‘패션 내조’라는 인식이 너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으니까요. 바이든 여사에게 앞으로 3년 반은 패션과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적당한 균형을 잡아가는 시간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 2021-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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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가 궁금해할까봐 말해주는데, 우리 헤어졌어”[정미경의 이런영어 저런미국]

    대중과 접촉할 기회가 많은 정치인들은 물리적 공격의 표적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최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한 남성으로부터 뺨을 맞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런 공격을 당하면 창피하기도 하고 화도 나겠죠. 노련한 정치인들이 이 상황을 어떻게 넘어가는지 볼까요. △“That was a size 10 shoe he threw at me, you may want to know.”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2008년 이라크 방문 기자회견 중 ‘신발 세례’를 받았습니다. 옆에 서 있던 이라크 총리의 도움으로 신발을 용케 피한 부시 전 대통령은 기자들을 향해 “혹시 여러분이 궁금해할까봐 말씀드립니다. 저 사람이 던진 신발 사이즈는 10이네요”라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수습합니다. 우리는 종종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선수를 쳐 답해줄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상대방이 더 이상 꼬치꼬치 캐묻지 않죠. “혹시 네가 알고 싶어 할까봐 말해주는데…”라는 뜻으로 “You may want to know”를 씁니다. △“This guy owes me bacon now.” 2003∼2011년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지낸 할리우드 배우 아널드 슈워제네거는 2003년 롱비치에서 유세 연설을 하려고 단상에 오를 때 ‘계란 세례’를 받습니다. 슈워제네거는 “그 사람 나한테 베이컨 빚졌어”라며 웃어넘깁니다. 계란과 베이컨은 아침식사 메뉴로 잘 어울리는 ‘단짝’이죠. “어디 베이컨도 한번 던져 봐라. 내가 눈 하나 깜짝 하나”라는 의미겠죠. △“It could’ve been worse. Imagine a tuna sandwich!” 2013년 줄리아 길라드 당시 호주 총리는 ‘샌드위치 세례’를 받습니다. 길라드 총리는 “내가 배고픈 줄 알았나봐”라며 재치 있게 넘어갑니다. 당시 소셜미디어에서도 재미있는 반응이 많았는데요. “그만하길 다행이야. 참치 샌드위치였다고 상상해봐!”라는 댓글이 눈에 띕니다. 날아온 샌드위치는 이탈리아식 소시지인 살라미를 넣은 것이었죠. 만약 참치, 야채 등을 넣고 질척하게 버무린 샌드위치였다면 더 ‘끔찍한 장면’이 연출됐을 것이라는 위로성 댓글입니다. 속으로는 살짝 재미있어 하면서 겉으로는 위로하고 동정하는 척할 때 “It could’ve been worse(그 정도인 게 다행이야)”라고 합니다. 정미경 콘텐츠기획본부 기자·前 워싱턴 특파원}

    • 2021-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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