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버거’ ‘슈퍼히어로’의 공통점은?…美떠들썩하게 만든 대형 오보[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정미경 기자 입력 2021-06-22 14:00수정 2021-06-2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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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독의 언론 왕국
대형 오보 사건 신뢰도 타격
‘햄버거’와 ‘슈퍼히어로’

둘의 공통점이 뭘까요. 어린이들이 좋아한다는 것? 맞습니다만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최근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2건의 대형 오보 사건의 ‘주인공’이라는 것입니다. 이 오보 사건을 계기로 가짜뉴스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최근 미국에서 화제가 된 ‘햄버거’ 오보 사건. 폭스뉴스는 “조 바이든 행정부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햄버거 제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방송했다가 사흘 후 “틀린 내용이었다”고 정정했다. 사진은 지난해 대선 유세 때 한 지역 축제에서 햄버거 패티를 굽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 AP뉴스

우선 ‘햄버거’ 사건. 얼마 전 폭스뉴스는 정정 보도를 냈습니다. 폭스뉴스의 대표 앵커가 직접 발표한 정정 보도는 “며칠 전 우리 보도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That is not the case)”라는 것입니다. 발단은 사흘 전 폭스뉴스가 방송한 “조 바이든 행정부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붉은 고기(쇠고기 돼지고기 등) 공급 제한 정책을 추진하려고 한다”는 뉴스였습니다. 이 뉴스는 “고기 섭취를 줄이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2020년 미시건대 연구 결과를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정정 보도는 “연구결과 내용은 맞다. 하지만 마치 그것을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인 것처럼 보도한 것은 틀렸다”고 했습니다. 오류를 인정한 것은 다행입니다만 “너무 늦었다”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원래 보도 내용이 폭스뉴스의 다른 프로그램들을 통해 널리 퍼진 후 정정 보도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재탕 삼탕 수준이 아니라 “바이든 행정부가 당장 이번 독립기념일부터 햄버거와 스테이크를 금지시킬 수 있다”는 식으로 확대 발전됐습니다. 어떻게 산출했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이 “1개월에 1개씩”이라는 구체적인 햄버거 규제 량까지 추산해 보여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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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뉴스가 보도한 ‘바이든 행정부의 햄버거 제한 정책’ 방송 화면. 폭스뉴스
폭스뉴스가 보도한 ‘바이든 행정부의 햄버거 제한 정책’ 방송 화면. 폭스뉴스


미국인들이 즐기는 햄버거다 보니 정치권도 가세했습니다. 공화당 정치인들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햄버글러<햄버거와 버글러(도둑)의 합성어>”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바이든, 내 부엌에서 떨어져”라는 경고도 나왔습니다. 원래 보도 내용의 파급력이 컸기 때문인지 정정 보도는 묻혀 버렸고, 정정 보도가 있었는지도 모르는 미국인들이 많았습니다.

햄버거 정정 보도 다음날 뉴욕포스트 기사가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기사는 “중남미 불법이민자 자녀들이 머무는 임시 수용소의 ‘환영 선물 키트’에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저서 ‘슈퍼 히어로는 어느 곳에나 있다’가 포함돼 있다”는 기사였습니다. 해리스 부통령의 책은 ‘부모나 선생님, 주변 사람들이 모두 어린이들에게는 슈퍼 히어로일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기사는 임시 수용소에 입소하는 어린이들이 이 책을 의무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점을 은연중에 부각했습니다. 기사에는 수용소 침대에 이 책이 놓여 있는 로이터통신 사진도 곁들여 있었습니다. 뉴욕포스트 1면 머리기사로 실렸고 온라인판에도 보도됐습니다.

최근 뉴욕포스트가 1면에 보도한 ‘이민자 임시 수용소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책’ 기사. “수용소가 배포하는 ‘환영 선물 키트’에 해리스 부통령의 책이 포함돼 있다”는 내용이다. 기사는 “Come on in(어서 와)”이라는 환영 인사에 빗대 “Kam(카멀라의 애칭) on in”이라는 제목이 달렸다. 뉴욕포스트

바이든 대통령으로부터 이민정책 전반을 위임받은 해리스 부통령은 종합적인 이민 대책을 내놓지 못한 상황에서 이런 기사까지 나와 이미지는 더욱 나빠졌습니다. 그동안 공화당은 바이든 대통령 시대에 물밀 듯 국경을 넘어오는 이민자 급증 사태를, 민주당은 이민자를 곧바로 본국에 소환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정책이 도널드 트럼프 시대와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을 문제 삼아왔습니다. 해리스 부통령은 양당의 협공에도 불구하고 국경 지역 방문도 하지 않아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뉴욕포스트 기사는 해리스 부통령이 주어진 임무에는 소홀한 채 저서 배포를 통한 자기 홍보와 이윤 추구에 골몰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이 기사는 ‘햄버거’ 사건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오류 문제가 떠올랐습니다. 기사를 쓴 기자가 “회사 측 강요에 못 이겨 썼다”고 폭로하고 나섰기 때문입니다. 기자는 이 기사가 보도된 다음날 자신의 트위터에 “카멀라 해리스 기사는 틀린 기사다. 나는 이 기사를 쓰라는 명령을 받았으며 이를 거부하지 못했다. 그것이 나의 한계점이었다. 회사에 사표를 제출했다”고 밝혔습니다.

뉴욕포스트는 사흘 뒤 “우리는 기자에게 사실 관계가 틀린 기사를 쓰도록 강요하지 않는다”고 반박했습니다. 양쪽의 진실 공방이 가열되는 가운데 기자가 사표까지 감수하며 폭로한 것이니만큼 회사 측 강요가 있었던 것만은 확실하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입니다.

해리스 부통령이 쓴 어린이 책 ‘슈퍼 히어로는 어디에나 있다’ 표지. “부모, 선생님, 주변 친지 등 누구나 어린이들의 존경을 받는 슈퍼 히어로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2019년 초판이 발행됐다. 필로멜 북스


왜 해리스 부통령의 책이 이민자 수용소에 비치돼 있었는지 워싱턴포스트가 팩트체킹한 기사에 따르면 한 지역 단체가 수용소 도서관에 기부한 여러 권의 책들 중에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뉴욕포스트 기사에 나온 대로 이민자 ‘환영 선물 키트’에 포함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이 기사는 뉴욕포스트에서 20여년의 취재 경력을 가진 여기자가 썼습니다. 어떻게 베테랑 기자가 거짓 기사를 썼는지 시사 잡지 베니티페어가 뉴욕포스트의 사내 분위기를 추적해보니 발단은 해리스 부통령의 책이 이민자 침대에 놓여 있는 로이터통신 사진이었다고 합니다. 사내 결정권자들은 이 사진에 큰 관심을 보이며 해당 기자에게 “왜 이 책이 여기에 있는지 취재해서 기사를 써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회사 측 강요 내지 회사와 기자의 합의 하에 가공의 스토리를 만들어 낸 것으로 보입니다.

폭스뉴스와 뉴욕포스트는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회사입니다. 연이어 터진 오보 스캔들에 소셜미디에서는 “머독은 창피한 줄 알라” “머독은 괴물” “다음에는 또 무슨 거짓말을 퍼뜨릴 거냐” 등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민주주의의 독”이라며 머독 소유 언론사들에 대한 불매 운동을 펼쳐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뉴욕타임스와 CNN은 머독 언론 왕국의 실체를 파헤치는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공동 제작 중입니다.

미국 영국 호주 등에 거대한 언론 왕국을 건설한 루퍼트 머독 가문. 최근 잇단 오보 스캔들로 뉴스 신뢰도에 큰 타격을 입었다. 왼쪽부터 장남 라클란, 아버지 루퍼트, 막내 아들 제임스 머독. 워싱턴포스트

머독은 미 언론계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아왔습니다. 좀처럼 외국 자본이 뚫고 들어오기 힘든 미국 언론산업에 호주 출신의 머독은 영국을 거쳐 성공적으로 입성했기 때문입니다. 머독은 많은 비판을 받는 만큼 호기심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미디어 재벌 가문 내부의 암투를 그린 HBO 드라마 시리즈 ‘석세션’이 머독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흔히 가짜뉴스 하면 ‘듣보잡’ 매체나 소셜미디어에서 흘러 다니는 정보를 생각하기 쉽지만 이번 오보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은 크고 잘 알려진 매체들이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머독 소유 매체들이 원래 높은 질의 저널리즘을 추구하는 곳은 아닙니다만, 뉴스 신뢰도에 중대한 타격을 입은 것은 분명합니다. 전문가들은 바이든 행정부와 머독 매체들 간의 갈등은 앞으로 더욱 가열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가짜뉴스를 선별할 줄 아는 언론 이용자의 부지런함이 어느 때보다 필요해 보입니다.

정미경 기자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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