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한국 중국 필리핀 등 8개국에서 모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 관련 사회 활동가들이 일본을 직접 방문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에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로 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와 일본의 유명 비정부기구(NGO)인 피스보트는 1일 제12회 일본군 위안부 문제 아시아연대회의 실행위원회와 정대협이 2일 일본 중의원 회관 앞에서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점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일 계획이라고 공개했다. 참가자들은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동원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한 고노 담화의 작성 경위를 검증한다는 구실을 내세워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부정하려는 모든 시도를 규탄하기로 했다. 대만과 동티모르 네덜란드 일본을 포함해 총 8개국의 활동가와 피해자, 유족은 지난달 31일부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일련의 행사를 벌이고 있다. 이는 일본 정부가 고노 담화 작성의 검증 결과를 6월 22일 이전에 발표하겠다는 일정에 피해자 국가들이 연대해 맞대응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번 시위에서는 위안부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직접 증언하는 한편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배상할 것을 촉구하는 요구서도 일본 정부에 전달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한국의 김복동, 이용수 할머니를 포함한 한국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4개국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을 방문한 상태다. 이들 위안부 피해자는 3, 4일 이틀간 오차노미즈 여대, 도쿄외국어대, 와세다대 등 7개 학교를 돌며 피해를 증언할 계획이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북-일 간 ‘스톡홀름 합의’에 따라 북한이 일본인 납치 피해자와 행방불명자 등을 제대로 조사하는지 파악하기 위해 감시단(조사단)을 현지에 보내겠다고 1일(현지 시간) 밝혔다. 그는 이날 NHK방송에 출연해 “2008년 납치 문제 재조사 합의 때와 달리 이번에는 문서로 합의 내용을 명문화했다. 일본 측의 조사단 체류도 합의문에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필요에 따라 외무성 경찰청 등으로 구성된 조사단을 현지에 보내 조사의 실효성을 확보하겠다”고 덧붙였다. 스가 장관은 북-일 합의가 한미일 연대에 미칠 영향과 관련해 “전혀 없다. 교섭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은 관계국들과 연대하고 있다. 납북자와 (납북 가능성이 큰) ‘특정 실종자’는 (관계국들이) 인권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해명했다. 특정 실종자는 북한에 납치됐을 가능성이 있는 실종자로 약 860명(일본 경찰청 추산)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이미 지난해 일본 측에 “‘특정 실종자’ 중 상당수가 북한에 살고 있다”는 정보를 전달했다는 보도(마이니치신문)도 나오고 있어 관련 조사가 시작되면 진상 파악이 급진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스가 장관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주변국에서 우려하는 목소리는 계속 나오고 있다. 캐럴라인 케네디 주일 미국대사는 지난달 30일에 보도된 마이니치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한 일본의 노력을 지지한다”면서도 “미국과 일본은 계속해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문제를 외교안보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이 신문은 케네디 대사가 미일 간 균열을 의식해 일본에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를 중시하는 자세를 견지할 것을 촉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북한의 납북자 재조사 징후는 올해 초부터 나타났다고 1일 보도했다. 북한이 먼저 일본 측에 “일본의 대응에 따라 납치 문제에 진전이 있을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는 것이다. 2월 이후 양국은 베트남 중국 등에서 수차례 비밀협상을 벌였다. 그때마다 국가안전보위부 소속으로 알려진 ‘김정철’이라는 가명의 인물이 참석했다. 보위부는 비밀경찰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에 북한 내 피랍자 정보를 갖고 있는 기관이다. 일본 측 인사들은 김정철의 존재를 알고선 협상에 진전이 있을 것임을 직감했다.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가 방북했을 때는 ‘미스터 X’라는 보위부 소속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창구 역할을 했다. 이번 납북자 협상 때 모습을 드러낸 김정철은 ‘미스터 X’를 잇는 2세대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수년간 원산항에 정박해 있던 화물여객선 만경봉호가 나진항으로 이동한 사실이 미국과 일본의 정보위성에 포착됐다고 아사히신문이 지난달 31일 보도했다. 일본 언론들은 북한이 일본의 입항 금지조치 해제를 염두에 두고 만경봉호를 이동시킨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일본의 대표적인 북한 전문가인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사진) 규슈(九州)대 특임교수 겸 동서대 석좌교수는 북한과 일본이 납치문제 재조사와 대북 독자제재 완화를 주고받은 ‘빅딜’과 관련해 “북-일 국교정상화까지 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21일 진단했다. 북한이 제대로 조사 결과를 낼 수 있을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그는 “북한이 일본의 지원을 얻기 위해 당분간 핵실험 등을 자제하고 대화 노선으로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북한이 조사 결과를 내놓을 때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방북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오코노기 교수는 북한과 일본이 지난달 26∼28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외무성 국장급 협의에서 전격 합의한 의미에 대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가 2002년 총리로서 처음 방북해 납북자 5명을 일본으로 데리고 왔다. 그는 다시 2004년 방북해 납북자 가족을 또 데려왔다. 당시 그의 성과를 놓고 ‘홈런’이 아니라 ‘2루타’ 정도라는 비판도 있었다. 다른 생존자들이 아직 북한에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아베 총리는 고이즈미 전 총리의 뒤를 잇고 있다. 차이점은 조사 대상자가 납북자에서 북한에 있는 모든 일본인으로 확대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왜 조사 대상자 범위가 넓어졌나. “납치 피해자로 한정하면 발굴 대상자가 적다. 그렇다면 북한이 뭔가 성과를 내 일본에 제시하기 힘들다. 북한은 이번에 포괄적으로 조사해 ‘일본이 요구하는 것을 모두 시행했다’는 제스처를 보여주려 한다. 그 후 일본과 국교정상화를 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17명이 북한에 납치됐다고 판단한다. 따라서 이미 일본으로 귀환한 5명을 제외한 12명의 송환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일본이 요구하는 12명 중 요코타 메구미(橫田惠) 씨를 포함해 8명이 사망했고 나머지 4명은 북한에 입국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납북 피해자 재조사만 벌이면 북한이 일본에 줄 수 있는 ‘선물’이 거의 없다. ―북한이 일본과 스톡홀름 합의에 나선 배경은 무엇인가. “먼저 경제 부흥이다. 현재 북한은 핵실험과 장거리미사일 발사로 국제 제재를 받고 있어 경제적으로 힘들다. 한중 관계 진전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북한과 일본이 처음 국교정상화를 논의한 것은 1990년대 초였고 당시 한국과 러시아(옛 소련)가 국교정상화를 한 때였다.” ―북한이 일본과의 국교정상화에 집착하는 이유는 뭔가. “북한은 일관되게 과거사 청산 뒤 국교정상화를 주장하고 있다. 과거사 청산은 충분한 사죄와 배상을 의미한다. 결국 북한은 북한 내 일본인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국교정상화로 가고 그 과정에 경제적 지원 형태의 배상을 받는 게 목표다.” ―국교정상화를 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가. “낮다. 북한이 제대로 된 납북자 조사 결과를 낼지 의문이고 일본 국민들이 그 결과를 납득할지도 의문시되기 때문이다. 납득할 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아베 총리의 정치 생명도 위협받게 된다.” ―아베 총리가 정치적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밀어붙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납치 문제 해결은 아베 정권의 공약사항이다. 지금까지 진전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다’는 개인적 의욕도 높다. 아베 총리가 정치가로서 국민적 인기를 얻은 것도 납치 문제에 대한 그의 전향적 자세 덕분이었다. 보통 정치가라면 이처럼 집중하진 않는다.” ―아베 총리의 방북도 점쳐지고 있다. “가능하다. 특히 조사가 끝나고 결과 발표 시점에 아베 총리가 북한으로 갈 수 있다. 고이즈미 전 총리 때도 그랬다. 북한은 고이즈미 전 총리가 북한에 왔을 때에서야 ‘납북자 중 5명이 살아 있고 8명은 사망했다’는 사실을 전달했다. 이번에도 북한이 납북자, 행방불명자 등을 몇 명 찾아놓고 아베 총리가 방북했을 때 밝힐 것이다.” ―이런 때 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어떻게 되나. “일본은 분명 교섭을 중단한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했는데도 일본이 계속 북한과 손을 잡는다면 미일관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의 관계 등이 모두 틀어지기 때문이다. 북한도 이를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북한은 당분간 대화 노선으로 갈 것이다.” ―북-일 교섭이 한국과 중국에 미치는 영향은…. “결과적으로 한국과 중국이 더 긴밀한 관계를 맺게 할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한국과 관계를 강화해 북한을 붕괴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다. 북한은 변함없는 중국의 주요 동맹국이므로 중국은 남북 모두에 균형 잡힌 정책을 취할 것이다. 한국도 이를 알고 있는 게 좋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북한 내 모든 일본인 재조사를 합의한 북-일 외무성 국장급 회담은 A부터 Z까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작품이었다. 30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은 독자적인 대북 제재 해제에 신중한 자세였으나 아베 총리가 제재 해제를 교섭 카드로 활용하도록 사전 승인하는 등 합의 의지를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베 총리는 29일 협상 대표였던 이하라 준이치(伊原純一)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에게서 협상 결과를 보고받은 뒤 이를 최종 승인했다. 북-일 관계 최대 현안인 납북 일본인 피해자에 대한 재조사가 시작되면 아베 총리의 인기를 밀어올릴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2005∼2006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 당시 관방장관으로서 납북자 문제에 강경론을 펼쳐 총리 자리에 오르는 정치적 발판을 마련한 바 있다. 하지만 ‘외교적 고립’에 빠질 위험도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4차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발사를 강행한다면 아베 총리는 “섣불리 제재를 풀어줬다”는 국제적 비난에 직면하게 되기 때문이다. 북한은 합의 이후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설 의향을 보이고 있다. 귀국길에 오른 북한 측 수석대표인 송일호 북일국교정상화교섭 담당대사는 30일 중국 베이징(北京) 서우두(首都) 공항에서 기자들을 만나 조속한 시일 내에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해 납치 문제 재조사에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송 대사는 또 ‘합의에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건물 문제가 포함됐느냐’는 질문에 “합의문에 재일 조선인 지위 문제가 언급됐으며 여기에는 총련 회관 문제도 반드시 포함된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적극적 자세와 관련해 교도통신은 김정일 국방위원장(2011년 12월 사망)이 “일본과 관계 개선을 하라”는 유훈(遺訓)을 남겼고 이 내용이 일본 정부에도 전달됐다고 30일 보도했다. 김정일이 2007년 7월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지시했고 이에 따라 2008년 8월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정권과 일본인 납치문제의 재조사 시행에 합의했다고 통신은 전했다. 또 김정일이 일본과의 관계 개선 명령을 변경하지 않고 사망했기 때문에 이 지시가 아들인 김정은에게 유훈으로 계승됐다는 것이다. 북한의 전향적인 자세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산케이신문은 이날 △북한 조사를 검증할 방법이 마땅치 않은 점 △총련 본부 건물 경매 문제 △모든 납치 피해자의 귀국 등을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넘어야 할 3개의 벽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아베 총리는 30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제13차 아시아안보회의 기조연설에서 “일본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이 바다와 하늘을 지킬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또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과 관련해 필리핀과 베트남의 해법을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지지해 중국과의 대결 자세를 분명히 했다. 아베 총리는 이어 “일본은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를 달성하기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할 계획”이라며 자신이 추진하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도쿄=박형준 lovesong@donga.com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오스트리아 정신과 의사인 알프레트 아들러. 그는 지크문트 프로이트, 카를 구스타프 융과 함께 ‘정신분석학의 3대 거두’로 꼽힌다. 일본에선 아들러의 심리학을 다룬 책 ‘미움 받는 용기(嫌われる勇氣·사진)’가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12월 발매됐는데 현재 전자서점 아마존의 베스트셀러 9위에 올라와 있다. 정신분석학 서적이 베스트셀러 10위 내에 진입한 것은 이례적이다. 아들러는 의학으로 학위를 받고 의사가 됐지만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 푹 빠진 인물이다. 하지만 인간의 성 본능을 중시하는 프로이트의 주장에 거부감을 느껴 개인심리학 체계를 세웠다. 그리고 ‘열등감’이라는 키워드를 찾아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열등감을 느끼고 이러한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분투하면서 발전을 이뤄나간다는 것이다. 어려운 주제를 다루지만 의외로 무척 쉽고 재미있다. 공동저자 기시미 이치로(岸見一郞·58)와 고가 후미타케(古賀史健·41)가 아들러의 심리학을 재해석해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집필했기 때문이다. 기시미 씨는 교토(京都)대에서 서양 고대철학을 전공했고 1989년부터 아들러 심리학을 연구해왔다. 고가 씨는 프리랜서 작가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청년과 철인(哲人)의 대화로 이뤄졌다. 청년은 어려서부터 자신감이 없고 용모, 학력 등에 강한 열등감을 가진 인물로 설정됐다. 아들러의 연구 주제가 책의 등장인물인 청년에 투영된 것이다. 청년과 철인의 문답에 아들러 심리학의 핵심 내용이 전개된다. 예를 들면 이렇다. ▽철인=“내가 상담한 사람 중에 여학생 한 명이 있었네. 그는 사람 앞에만 서면 얼굴이 붉어지는 안면홍조증을 고쳐 달라 했어. ‘증상이 나으면 뭘 할 거냐’고 물어봤어. 그랬더니 ‘짝사랑하는 남학생에게 고백하겠다’더군.” ▽청년=“사춘기 여학생다운 상담이군요. 고백 전에 안면홍조증부터 고치는 건 당연해 보이네요.” ▽철인=“내 생각은 달라. 그 학생은 스스로 안면홍조증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에 고치면 안 돼.” ▽청년=“그럴 리가요.” ▽철인=“여학생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고백한 남학생에게 거절당하는 거야. 안면홍조증이 있으면 고백할 수 없을 테고 그럼 실연당할 리 없지. 자신과 세상에 대한 모든 불만을 안면홍조증 탓으로 돌리는 거야. 그 증상을 치료하면 불만을 돌릴 대상이 없어지고 자기주도적 삶이 더 힘들어질 수 있어.” ▽청년=“그럼 그대로 방치해 둬야 하나요.” ▽철인=“먼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해. 그리고 결과가 어떻게 되든 앞으로 나아가려는 용기를 가져야 돼.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이를 ‘용기 부여’라고 부르지.” 책 제목 ‘미움 받는 용기’가 열등감 극복의 단초가 됨을 알 수 있다. 여학생의 안면홍조증은 고쳐졌을까. 철인은 “모른다”면서도 힌트를 준다. “고교생 모임이 있었는데 짝사랑하던 남학생이 먼저 여학생에게 ‘사귀자’고 말했다더군. 안명홍조증이 더이상 필요 없어졌으니 분명 나았을 거야.”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일본이 근로 시간과 관계없이 성과에 따라 월급을 주는 새로운 임금 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골자는 하루 8시간을 초과해 근무하더라도 잔업 대금을 주지 않는 것이다. 정부는 성장전략 중 하나로 추진하고 있지만 노동계는 반발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28일 도쿄(東京) 총리관저에서 열린 산업경쟁력회의에서 “성과로 평가하는 새로운 노동시간 제도의 선택지를 만들 필요가 있다”며 새 임금 제도 검토를 지시했다. 노동 규제를 담당하는 후생노동성은 이날 회의에서 새로운 성과급제의 대상자를 ‘세계 수준의 고도 전문직’으로 한정하는 안(案)을 제시했다. 예를 들면 연봉 수천만 엔을 받는 외환딜러, 펀드매니저, 자산운용가 등이다. 하지만 함께 참석한 민간 위원들은 “성과급제 대상자가 너무 한정적이어서 효과가 없다”며 반대 의견을 밝혔다. 민간 위원들은 지난달 ①연봉 1000만 엔(약 1억 원) 이상 고수입자 ②노사가 합의한 일반 사원으로 대상자를 제시한 바 있다. 민간 위원들은 28일 회의에서 연봉에 관계없이 일정한 책임을 갖는 리더로 대상자 폭을 대폭 넓히자는 의견을 냈다. 후생노동성은 노사 대표로 구성되는 심의회를 만들어 추가 논의를 거친 다음 내년 정기국회에 노동기본법 개정안을 제출할 방침이다. 정부와 사측은 새 제도가 인건비 절감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며 반기고 있다. 하지만 일부 정치계와 노동계는 신중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이시이 게이치(石井啓一) 정조회장(정책위의장)은 28일 기자회견에서 “제대로 논의하지 않고 도입하면 서비스 잔업 합법화, 장시간 근로의 일상화로 이어질 수 있다. 꼭 필요한 곳으로 한정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동계도 “운영하다 보면 성과급 대상자가 확대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북한과 일본이 26∼28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북-일 국장급회담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 전면 재조사에 전격 합의했다. 일본은 납치 피해자 재조사가 시작되는 시점부터 대북 독자 제재 조치를 해제하고 대북 지원을 검토키로 했다. 납치 피해자 재조사는 2008년 김정일-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정권 시절에 합의한 뒤 6년 만이다. 외교가에서는 재조사 진전에 따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연내 방북설까지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일본의 섣부른 합의로 한미일 대북 제재 공조체제가 깨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납치 조사-제재 해제 맞교환 아베 총리는 29일 저녁 국장급회담 결과를 설명하는 임시 기자회견을 열어 “납치 피해자와 납치 의혹을 배제할 수 없는 행방불명자를 포함해 모든 일본인에 대한 포괄적 전면 조사를 실시하기로 (북한이) 약속했다. (북한에) 특별조사위원회가 설치돼 조사가 시작된다”고 발표했다. 조사위 출범 시점은 3주 안팎으로 전해졌다. 조선중앙통신도 이날 같은 시간에 “우리 측은 포괄적이며 전면적인 조사를 진행해 최종적으로 일본인에 관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의사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특별조사위를 설치하고 납치 피해자 및 행방불명자, 1945년 전후 사망한 일본인 유골 및 묘지, 북한 잔류 일본인과 배우자 등에 대한 포괄적인 조사를 진행키로 했다. 북한은 특별조사위의 조사 및 확인 상황을 일본 측에 통보하고 일본인 유골 처리와 생존자가 발견되면 귀국시키는 방향에서 거취 문제를 협의하겠다고 약속했다. 일본은 그 대신 특별조사위가 조사를 시작하는 시점에 △북-일 간 인적 왕래 규제 △송금 및 휴대금액 제한 규제 △인도주의적 목적의 북한 국적 선박의 일본 입항금지 조치 등을 해제하기로 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일본 측은 적절한 시기에 공화국에 대한 인도주의 지원 실시를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양측 불신의 벽 넘을지 주목 북-일 양국의 구체적인 발표 내용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일본이 인도주의 지원 실시를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힌 반면에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현 시점에서 인도적 지원을 실시한다는 구체적인 전망이 없다. 조사 상황을 봐가며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이 때문에 두 나라 사이에 모종의 이면 합의가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북한이 해결을 강하게 요구하는 도쿄(東京)의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중앙본부 건물 경매 문제도 이면 합의의 한 대상으로 거론된다. 조선중앙통신은 또 2002년 9월 북-일 평양선언에 따라 재일조선인들의 지위 문제를 성실히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역시 급속히 세력이 약화되고 있는 총련계 교포들의 이탈을 막고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관심을 선전하기 위한 퍼포먼스로 풀이된다. 다만 앞으로 북한의 재조사 결과를 일본이 곧이곧대로 수용할지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자국민 17명을 납치 피해자로 공식 인정하고 있다. 이 중 5명이 2002년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북한은 나머지 12명 중 8명은 사망했고 나머지 4명은 북한에 입국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또 북한은 2004년 5월 사망했다는 요코타 메구미(橫田惠) 씨의 유골을 일본에 송환했으나 유전자(DNA) 감식 결과 다른 사람의 유골로 판명돼 일본 국민의 공분을 샀다. 일본 민간단체는 약 860명이 북한에 납치된 것으로 의심되는 ‘특정 실종자’라고 발표했다.○ 한국은 “돌출 행동에 불쾌” 외교부는 이날 북-일 합의가 가져올 파장을 놓고 대응책 마련에 들어갔다. 공식 입장은 내지 않았지만 아베 총리의 돌출 행동에 불쾌하다는 속내를 비쳤다. 북한의 도발 위협에 맞서 국제사회가 단호하게 한목소리를 내야 할 상황에서 일본이 돌출 행동을 하는 것은 문제라는 것이다. 외교 당국자는 “북핵 6자회담의 고비마다 일본이 납북자 문제로 결론 도출을 가로막았는데 또다시 시선을 분산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일본이 납북자 조사 재개에 맞춰 인적 왕래 규제를 풀고 여행객의 휴대 가능 현금과 송금 제한을 해제하면 만성적인 외화 부족에 허덕이는 북한에 숨통을 틔워주게 된다. 또 인도적 지원까지 이뤄지게 되면 북한은 북핵 6자회담 및 남북대화 복귀 필요성을 그만큼 덜 느낄 수 있다. 다른 정부 당국자는 스웨덴의 북-일 교섭 과정에 대해 “일본이 북한과의 접촉에 대한 정보를 한국과 충분히 공유하고 있지 않은 것 같다”고 우려했다. 미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주목된다. 양국이 전날 교섭을 끝내고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연막을 피우다 29일 갑작스레 합의 내용을 발표한 것은 미국 측에 사전 설명할 시간을 벌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스가 관방장관은 한미일 대북 공조가 흐트러질 수 있다는 지적에 “외교 루트를 통해 조정을 한 끝에 나온 판단이다”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날 기자회견 사실조차 사전에 통보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도쿄=배극인 bae2150@donga.com 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일본 극우 정당인 일본유신회의 두 공동대표가 28일 분당에 합의했다. 창당 한 달 만에 제3당으로 올라선 일본유신회의 돌풍은 1년 6개월 만에 끝나고 일본 정계는 여당인 자민당 1강 체제 아래 야당 재편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유신회의 공동대표인 하시모토 도루(橋下徹) 오사카(大阪) 시장과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의원은 이날 나고야(名古屋)에서 회담한 뒤 분당하기로 합의했다. 이시하라 공동대표는 기자들에게 “(헌법 개정을 통한) 자주 헌법 제정을 용인하지 않는 정당과 함께할 수 없다. 하시모토 공동대표에게 분당하자고 말했고 의견일치를 봤다”고 말했다. 자주 헌법 제정을 용인하지 않는 정당은 야당인 결속당을 의미한다. 중도 성향으로 호헌을 주장하는 결속당은 “야당 통합”을 주장하며 일본유신회와 통합 논의를 했다. 하시모토 공동대표는 통합에 긍정적이었지만 이시하라 공동대표는 결사반대였다. 표면적 이유는 결속당 통합 문제였지만 속내는 ‘손을 잡아 봐야 이득이 없다’는 정치적 계산이 깔린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5월 “전쟁터에서 위안부는 필요했다”는 하시모토 공동대표의 망언 이후 일본유신회의 인기는 추락하기 시작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1990년대까지만 해도 기술력 차이가 커 일본 기업이 해외에서 수주한 프로젝트에 한국 기업의 부품이나 원자재가 공급됐다. 그런데 요즘은 한국의 기술력이 높아져 한일 기업이 공동 컨소시엄을 구성해 제3국 입찰에 참여하는 단계까지 왔다.” 후지타 토오루(藤田徹) 포스코재팬 고문(사진)은 지난달 17일 도쿄(東京) 주오(中央) 구에 있는 포스코재팬 회의실에서 본보 기자와 만나 한일 기업의 협업 역사에 대해 이처럼 설명했다. 그는 1973년 스미토모(住友)상사에 입사해 해외업무부 아시아 담당 부장, 종합연구소 시니어 애널리스트 등을 지내고 2009년 정년퇴직했다. 그 사이 스미토모상사 서울지점과 한국의 한 종합상사에서도 일했다. 한일 기업 모두에 밝은 경영 전문가다. 인터뷰는 한국어로 진행됐다. ―정치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직접적인 영향은 거의 없는 것 같다. 기업들은 자기 회사의 세계 전략에 따라 투자하거나 협업을 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 진출한 일본 제조업체들은 삼성 LG 같은 큰 수요처가 있기 때문에 한국에 투자했다. 한국 기업이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는 제품 역시 일본에서 반드시 수입해야 하는 물건이 대부분이다. 정치 관계가 나빠 반일 데모가 일어난다고 해서 비즈니스를 중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일 기업이 협력하면 어떤 점이 좋은가. “에너지와 자원 관련 부분에 협력 시너지가 크다. 양국 모두 자원이 없기 때문에 그쪽 분야에 관심이 높다. 가장 경쟁력 있는 한일 기업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하면 제3국에서 사업 수주 성공률을 높일 수 있다. 2008∼2013년 한일 기업 간에 그런 사례가 20건 이상 있었다.” ―한일 기업은 어떤 차이가 있나. “예전부터 일본 기업은 조직으로, 한국 기업은 개인으로 일한다는 말이 있다. 일본은 결정할 때까지 시간이 걸리지만 그 사이 여러 부서와 의논한다. 사장이 최종 결재 도장을 찍을 때면 관련 부서는 모든 내용을 다 알고 있다. 사업 중간에 그만두는 실패 사례가 많지 않은 것이다. 한국은 힘이 있는 오너가 있어 추진력 있게 일을 진행시킨다. 하지만 오너가 은퇴하거나 돌아가시면 회사 방향이 완전히 바뀌는 때가 많다.” ―유사한 점도 많은 것 같다. “겉으로 매우 비슷해 보인다. 외모와 문화가 비슷하고 기업 제도도 비슷하다. 하지만 유사점이 많다고 해서 똑같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예를 들어 한일 모두 정년퇴직 제도가 있지만 실제 운영은 다르다. 내가 알고 지내는 한국인 중 정년퇴직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일본에선 거의 대부분 정년을 채웠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중국과 일본의 중첩된 방공식별구역(ADIZ)에서 중일 항공기가 30m까지 접근하며 신경전을 벌였다. 자칫 우발적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사태가 벌어지자 양국은 서로 항의하며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일본 방위성은 24일 동중국해 공해 상공을 비행 중이던 자위대기 2대에 중국의 Su-27 전투기 2대가 이상(異常) 접근했다고 발표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 전투기 1대가 일본 해상자위대의 OP3C 정찰기에 약 50m까지, 항공자위대의 YS-11EB 정보수집기에는 약 30m까지 다가왔다. 중일 항공기가 이처럼 근접해 비행한 것은 지난해 11월 중국의 ADIZ 설정 이후 처음이다. 당시 중국 전투기는 유도미사일을 탑재한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근접 비행을 한 현장은 중일 중간선 부근에서 중국이 개발 중인 가스전 등에 가까운 곳으로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에서 수백 km 떨어져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중일 ADIZ가 중첩되는 이 지역에서 20일부터 연합 군사훈련을 벌이고 있으며 일본 군용기는 정찰 비행 중이었다.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일본 방위상은 “우발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위험한 행위였다”며 24일 항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중국 국방부는 25일 “자위대기가 중국 방공식별구역을 침입해 중-러 군사훈련을 정찰하고 방해했다”며 일본 측에 항의했다. 한편 미군의 고고도 무인정찰기(UAV)인 글로벌호크 1대가 24일 일본 아오모리(靑森) 현 미사와(三澤) 주일 미군기지에 처음 배치됐다. 이번에 배치된 1대와 28일 도착할 1대 등 총 2대의 글로벌호크가 다음 달부터 10월까지 북한과 중국의 군사 활동을 감시할 예정이다. 애초 괌에 배치돼 있었으나 태풍 우려로 일시적으로 거점을 옮기는 것이다. 일본 방위성은 향후 미국으로부터 글로벌호크를 도입해 2018년까지 미사와의 자위대 기지에 50여 명 규모의 운용 부대를 창설할 예정이다. 글로벌호크는 약 18km 상공에서 30시간 정도 정찰 비행을 할 수 있다. 지상 30cm 크기의 물체를 구별할 수 있는 고해상도 카메라로 서울의 10배 면적을 24시간 만에 훑어볼 수 있다. 글로벌호크 일본 배치는 중국을 자극할 것으로 예상된다.도쿄=박형준 lovesong@donga.com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koh@donga.com}
북한 평양의 23층 아파트 붕괴 사고와 관련해 인민군 간부와 기술자 등 최소 5명이 숙청됐다고 도쿄신문이 25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북한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아파트 건설 공사를 실질적으로 지휘한 인민군 7총국장은 해임과 동시에 강제수용소행 처분을 받았고 설계와 시공을 담당한 기술자 4명은 총살됐다고 전했다. 사고 원인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건설 관계자의 시멘트 등 자재 빼돌리기가 있었다고 신문은 전했다. 작업원들은 도시락 통에 시멘트를 담아 빼돌려 암시장에 내다 팔았고 배낭 1개 분량의 시멘트가 암시장에서 2달러(약 2050원)에 거래되기도 했다는 것. 이를 통해 작업원들은 월급의 6, 7배에 이르는 이익을 남기기도 했다. 또 신문은 붕괴된 아파트 1층에 군의 건설 지휘부가 있었기 때문에 일부 지휘부 구성원도 주민들과 함께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전체 23층 아파트였지만 사고 당시 4층까지만 공사가 완전히 끝난 상태였다며 “사망자 수가 500명에 이른다는 정보가 평양에서 퍼지고 있다”고 신문은 소개했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문제로 러시아에 제재 조치를 취한 일본에 강한 불쾌감을 나타냈다. 일본은 과거사 갈등을 겪고 있는 한국과 중국뿐만 아니라 쿠릴 열도 4개 섬(일본명 북방영토) 협상을 벌여 온 러시아와도 사이가 틀어지는 양상이다. 동아시아에서 더 고립되자 일본은 최근 한국과 북한에 우호적인 손짓을 보내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24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경제포럼에서 일본의 러시아 제재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했다. 그는 “일본이 (러시아 제재에) 동참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다. 일본은 쿠릴 열도 협상도 중단하겠다는 것이냐”고 말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공들이는 쿠릴 열도 협상 중단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이에 앞서 일본 정부는 지난달 29일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러시아 정부 관계자 23명의 일본 입국 비자 발급을 중단하는 제재 조치를 내렸다. 아베 총리는 2012년 12월 취임 이후 푸틴 대통령과 5차례나 정상회담을 했을 정도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왔으나 미국 주도의 러시아 제재에서 발을 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는 중국과 부쩍 가까워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크림 반도를 합병한 뒤 미국 등 서방의 경제 제재를 받고 있고 중국은 점차 본격화하고 있는 미국의 대중국 봉쇄에 맞서기 위해 서로 손을 잡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20∼26일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가 있는 동중국해에서 사상 최대 연합 군사훈련을 벌이고 있다. 10년 넘게 끌어온 중-러 천연가스 협상도 최근 타결했다. 이에 따라 중-러가 미국 견제를 위해 ‘신(新)밀월’을 맞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 언론은 푸틴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군사훈련을 참관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내보내는 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점차 외톨이가 되고 있는 아베 정권은 탈출구를 마련하기 위해 북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일본은 26∼28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북한과 두 번째 외무성 국장 회담을 연다. 올해 초 북한의 ‘대화 재개’ 요청에 일본이 적극 화답하면서 3월 말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북-일 정부 간 협의가 열린 데 이어 두 달 만에 또 회담을 하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스톡홀름 협상에서 납북 피해자의 안부 재조사를 문서로 확약할 것을 요구할 방침이라고 산케이신문이 24일 보도했다. 북한 측은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 구에 있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중앙본부 건물과 토지의 경매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과거사 갈등을 빚고 있는 한국에도 비교적 전향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아베 내각은 15가지 집단적 자위권 행사 사례집에 “해외에서 일본인의 생명이 위협받았을 때 ‘영역국의 동의’에 기반해 일본인을 구출한다”는 내용을 넣었다고 아사히신문이 24일 보도했다. 앞서 아베 총리의 자문기구인 안보법제간담회는 15일 보고서에서 ‘재외 일본인 보호와 구출을 위한 자위권 발동과 관련해 예외적으로 영역국 동의를 받지 않을 수도 있다’는 내용을 포함시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가 한국 동의 없이 한반도에 진입할 가능성에 한국이 반발하자 이를 의식해 ‘영역국의 동의’ 표현을 사례집에 넣은 것으로 풀이된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난징(南京)대학살은 없었다” 등의 망언을 한 일본의 인기작가 햐쿠타 나오키(百田尙樹) NHK 경영위원이 이번에는 남태평양의 도서 국가들을 비하하는 막말을 했다. 햐쿠타 위원은 24일 기후(岐阜) 시에서 열린 자민당 집회 강연에서 자신을 개헌파로 소개한 뒤 “군대는 집으로 비유하면 방범용 열쇠로 (군대를 보유하는 것은) 열쇠를 확실히 채우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군대가 없는 남태평양 도서국인 바누아투와 나우루의 국명을 거론하면서 “집으로 비유하면 가난한 연립주택 같은 것으로 도둑도 들지 않는다”며 두 나라를 비하했다. 특정 국가를 비하한 이 발언은 향후 외교 문제로까지 비화될 가능성이 있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 이후 원전 가동을 금지한 첫 판결이 나왔다. 후쿠이(福井) 현 지방법원은 21일 간사이(關西)전력에 대해 오이(大飯)원전의 3, 4호기를 가동하지 말라는 판결을 내렸다. 두 기의 원전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정기검사를 위해 가동을 멈췄다가 2012년 7월 재가동에 들어갔다. 그 후 지난해 9월 정기점검을 위해 다시 가동을 멈춘 상태다. 원전 주변 주민 189명은 “건설 당시 지진을 제대로 감안하지 않아 내진 설계가 충분하지 않고 원자로의 냉각 방법 등에서도 안전 대책이 충분하지 못하다”며 2012년 11월 운행 재개 금지를 요청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간사이전력은 “안전상 문제없다”고 반론을 펼쳤다. 일본 법원은 이날 1심에서 원전 반경 250km 이내 권역의 위험성을 인정하며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현재 원전의 운전 재개를 판단하기 위한 안전심사를 진행 중인 원자력규제위원회의 다나카 슌이치(田中俊一) 위원장은 21일 기자회견에서 “사법부의 판단에 대해 드릴 말이 없다. 오이원전은 종전과 마찬가지로 심사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선 1960년대부터 원전 관련 소송이 줄을 이었다. 그중 이시카와(石川) 현 호쿠리쿠(北陸)전력의 시가(志賀)원전과 후쿠이 현 고속증식로 ‘몬주’ 등 2건에서만 원고가 이겼다. 하지만 그 2건도 고등법원과 대법원에서 다시 판결이 뒤집혀 원고가 패소했다. 대지진 이후 ‘원전 철폐’를 외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나온 이번 후쿠이 현 지방법원의 판결은 일본 전역에서 진행 중인 약 30건의 원전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원전 운영에 대한 불신도 커지고 있다. 21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2011년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당시 일본 정부가 고농도 방사성 물질의 인위적 방출 계획에 대한 정보를 통제해 일반인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수많은 주민들이 아무것도 모른 채 대량의 피폭을 당할 뻔했다. 신문에 따르면 대지진이 일어난 뒤 사흘이 지난 2011년 3월 14일 새벽 원전 3호기의 냉각수가 고갈돼 원자로 내부 압력이 높아졌다. 당시 도쿄전력은 인위적으로 증기를 빼내 압력을 떨어뜨리고자 했다. 그 경우 방사성 물질도 함께 배출된다.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을 언론에 알리지 말도록 지시했다. 그날 오전 다행히 격납용기 내부 압력이 떨어져 결국 인위적인 증기 배출은 실시하지 않았다. 한편 후쿠시마 제1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21일 오염수 처리와 관련해 원자로 건물로 유입되기 전 단계의 지하수를 퍼올려 바다로 방출하는 ‘지하수 우회(바이패스)’ 작업을 시작했다. 해양 방출 전 방사성 물질 농도를 검사한 결과 모두 기준치를 밑돌았다고 도쿄전력은 밝혔다. 현재 제1원전의 1∼4호기 원자로에는 하루 약 400t의 지하수가 유입되고 있으며 지하수 해양 방출 작업이 본격화하면 하루 100t 정도 지하수 유입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도쿄전력은 보고 있다.도쿄=박형준 lovesong@donga.com}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뒤 나흘이 지난 2011년 3월 15일 오전 6시 15분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2호기에서 충격음이 들렸다. 2호기 격납용기 하부에 틈이 생겨 압력이 ‘제로’가 됐다는 정보도 긴급대책실에 들어왔다. 만약 2호기 격납용기가 폭발했다면 대량의 방사능이 유출될 판이었다. 요시다 마사오(吉田昌郞·2013년 사망) 발전소장은 먼저 압력계측기를 확인했다. 격납용기 상부는 덜 망가져 압력이 남아 있었다. 긴급대책실의 방사선량도 거의 상승하지 않았다. 여러 사실을 종합해 요시다 소장은 ‘격납용기는 폭발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그는 사내 TV 방송으로 “제1원전 구내에 대기해 다음 지시를 기다리라”고 근무자들에게 명령했다. 사태가 악화되면 제1원전에서 약 10km 떨어진 후쿠시마 제2원전으로 직원을 대피시킬 생각은 했지만 ‘아직은 아니다’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그 무렵 현장직원 90%에 해당하는 약 650명이 제2원전으로 대피하기 시작했다. 특히 간부 직원들도 몸을 피했다. 제2원전으로 이동한 근무자가 돌아오기 시작할 무렵 제1원전 2호기에서 흰 증기 형태의 물질이 분출했고 4호기에서 불길이 솟았다. 직원들이 제1원전을 방치한 뒤 상태가 훨씬 악화된 것이다. 아사히신문은 정부의 사고조사·검증위원회가 요시다 소장을 조사한 뒤 만든 청취결과서를 입수해 20일 이같이 보도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동일본 대지진 때 지방정부가 학생들을 무조건 기다리게 했다가 지진해일(쓰나미)로 수많은 희생자를 낸 데 책임을 묻는 소송에 휘말렸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으로 학교에서 희생된 초등학생의 부모들은 당시 학교 측에서 학생들을 운동장에서 대기시켜 놓고 시간을 허비하는 바람에 대피 시기를 놓쳤다며 지방정부를 상대로 23억 엔(약 232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19일 가호쿠(河北)신보에 따르면 미야기(宮城) 현 이시노마키(石卷) 시 오가와(大川)초교 학부모 19명은 올해 3월 10일 센다이(仙臺) 지방법원에 소장을 접수했다. 피고는 현과 시 등 지방정부다. 대지진 당시 오가와초교는 해안에서 4km 떨어진 곳에 있어 고지대로 대피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는데도 학교 측은 지진 발생 뒤 쓰나미가 학교를 덮치기까지 약 45분 동안 학생들을 운동장에 모아놓기만 해 많은 학생이 목숨을 잃었다고 원고 측은 주장했다. 2011년 쓰나미로 학생 108명 중 74명, 교사 13명 중 10명이 사망되거나 실종됐다. 소송이 제기된 뒤 19일 처음 열린 구두 변론에서 시 측은 “아동들이 쓰나미에 휩쓸리라고는 예측할 수 없었다. 일단 교정에 모이게 한 뒤 피난시킨 교직원의 대응에 과실은 없었다”며 반론을 폈다. 현 측도 “오가와초교 부근에는 쓰나미 기록이 (지금까지) 없었다”며 안전에 소홀한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제삼자로 구성된 사고검증위원회는 3월 시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피난 의사 결정이 늦은 점이 (인명 피해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많은 분들이 불쾌한 느낌을 가진 데 대해 편집장으로서 책임을 통감합니다.” 일본 주간지 ‘빅코믹스피리츠’ 편집부는 연재만화 ‘맛의 달인’의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묘사와 관련해 19일 발매호에서 이 같은 견해를 밝힌다고 아사히신문이 18일 보도했다. 앞서 12일 연재된 ‘맛의 달인’에선 후쿠시마 원전 인근 마을을 방문한 주인공이 코피를 흘리고 마을의 전 촌장이 “코피는 피폭 때문”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포함돼 파문이 일었다. 이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까지 파문 진화에 나섰다. 아베 총리는 17일 후쿠시마 현을 시찰한 자리에서 기자들과 만나 만화 관련 파문에 대해 “근거 없는 풍문을 불식하기 위해 알기 쉽게 정보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빅코믹스피리츠 편집부는 만화 내용에 대한 전문가 13명의 찬반 의견과 후쿠시마 현, 원전에 인접한 기초자치단체인 후타바(雙葉) 정 등을 10여 쪽 분량의 특집으로 따로 다룬다. 이와 함께 19일 발매 뒤 한동안 ‘맛의 달인’ 게재를 중단하기로 했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자문기구가 일본인 납북 피해자 구출 상황에선 자위대가 당사국(한국)의 동의 없이 자위권을 발동할 수 있다고 의견을 냈다. 일본 정부가 이를 받아들인다면 한반도에 속하는 북한에 일본 자위대가 무단으로 들어가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산케이신문은 “당사국의 동의가 없어도… 다른 구제수단이 없으면 자위권의 행사가 허용되는 경우도 있다”는 내용이 총리에게 제출된 집단적 자위권 관련 보고서에 포함돼 있다고 18일 보도했다. 보고서를 만든 ‘안전보장 법적기반 재구축에 관한 간담회’의 한 위원은 “자위대가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을 구출하는 것을 상정한 문구”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 고위 관료는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헌법에서 한반도 전체를 한국 영토로 보기 때문에 (자위대가 북한에서 일본인을 구출하려 해도) 한국의 동의가 필요할지 모른다”고 말했다. 한반도에 자위대가 발을 내딛는 상황을 우려하는 한국 정부를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베 총리가 이 보고서를 기초로 15일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을 위한 ‘기본적 방향성’을 밝힌 사실에 비춰 보면 보고서에 담긴 내용들이 향후 아베 정권이 확정지을 집단적 자위권 행사 방안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또 자위대가 북한에 무단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한국에도 ‘일본 국민 보호’ 등을 명분으로 들어올 가능성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일본 집권 여당인 자민당의 2인자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간사장은 17일 요미우리TV에 출연해 “몇 년이 지나고 국민 의식이 변했을 때는 유엔군이나 다국적군에 ‘일본만 참가하지 않는다’는 것이 변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아베 내각은 (다국적군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긋고 “그 뒤에 어떻게 될지는 다음 정권이 (선거에서) 무엇을 호소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시바 간사장의 발언은 자위대가 미래에 다국적군에 참가해 전쟁에 나설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시진핑(習近平·사진) 중국 국가주석은 15일 중국국제우호대회 및 중국인민대회우호협회 창설 60주년 행사에서 “대국이라 할지라도 전쟁을 좋아하면 필히 망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일본’을 지칭하진 않았지만 같은 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해 헌법 해석을 바꾸겠다는 방침을 공표한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일본을 향한 경고로 해석된다. 16일 신화(新華)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행사에서 “복잡 다변한 국제 지형 속에서 각국 인민은 우호적 교류를 강화하고 함께 손잡고 협력해야 한다”며 “중국 민족의 피 속에는 타인을 침략하고 힘으로 패권을 쟁취하는 유전자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나라가 강해지면 패권을 추구하는’(國强必覇) 논리를 수용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아베 총리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시도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일본이 주장하는 중국 위협론을 불식시키려는 발언으로 풀이된다. 일본에서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 추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16일 사설에서 “아베 총리가 추진하려는 것은 헌법 96조에 규정된 개헌 절차에 따라 국민에게 물어야 할 평화주의의 대전환을 여당 간 협의와 각의(국무회의) 결정에 의해 끝내 버리자는 것이다. 입헌주의에서 일탈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도쿄신문도 1면 머리기사에 ‘전쟁터에 국민을 보내는 길을 텄다’는 제목을 달아 아베 총리를 비판했다. 반면 보수 성향의 요미우리신문과 산케이신문의 논조는 반대였다. 요미우리신문은 집단적 자위권의 한정적 용인 방침을 지지하는 사설을 실으며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은 일미동맹을 강화하고 억지력을 높이고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집단적 자위권 허용 뒤 일본이 전쟁에 참여한다면 1954년 자위대 창설 이후 60년간 전투에서 사망한 적이 없는 자위대원들이 피를 흘려야 한다. 홋카이도(北海道)에 주둔하는 40대 육상자위대 간부는 16일 보도된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간부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일반대원은 절반 이상이 (집단적 자위권 행사 용인을) 바라지 않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한편 헌법 해석을 담당하는 내각법제국의 고마쓰 이치로(小松一郞) 장관은 16일 건강을 이유로 물러났고 후임으로 요코바타케 유스케(橫(전,창)裕介) 내각법제국 차장이 곧바로 임명됐다. 고마쓰 전 장관은 외무성 출신으로 법제국 경험이 전혀 없지만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찬성한 덕분에 아베 총리에게 발탁된 ‘낙하산 인사’로 분류된다.도쿄=박형준 lovesong@donga.com 베이징=고기정 특파원}
15일 오후 5시 반경 일본 도쿄(東京) 나가타(永田) 정 총리관저 브리핑룸. 일본 국내외 기자들이 “저게 뭐야”라며 웅성거렸다. 평상시와 달리 단상 뒤에 그림이 그려진 대형 패널 2개가 설치돼 있었기 때문이다. 오후 6시 정각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입장했다. 그는 “오늘 ‘안전보장 법적기반 재구축에 관한 간담회’로부터 보고서를 받았다. 국민 여러분께 직접 설명하고 싶다”며 운을 뗐다. 이어 옆 패널을 가리키며 “해외에 150만 명의 일본인이 살고 있다. 갑자기 분쟁이 일어날 수 있다. 미군 함대가 일본인을 이송하다 공격을 당해 일본에 보호를 요청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이 무력공격을 당하지 않으면 자위대는 일본인이 탄 미군 함대를 지킬 수 없다. 이게 현행 헌법의 해석이다”고 말했다. “여러분의 엄마 아빠 손자 손녀 그리고 친구가 이 같은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며 집단적 자위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패널 설치는 아베 총리가 “국민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겠다”며 직접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그는 “아프리카 등지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일본 젊은이들이 많다. 무장세력이 공격을 해도 자위대가 그들을 구할 수 없다”며 감성에 호소하는 연설을 이어갔다. 정치 전문가들은 “아베 총리가 노련해졌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1차 아베 내각 때(2006년 9월∼2007년 9월) 아베 총리는 집단적 자위권과 개헌을 밀어붙이다 참의원 선거 대패를 맛본 경험이 있다. 2차 내각에선 여론의 향방을 봐가며 능수능란하게 우회 전략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간담회는 이미 2월 초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논의를 끝냈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3개월이 지난 뒤에서야 보고서를 받았다. 보고서에 함구령을 내려놓고 연립 여당인 자민당 및 공명당과 미리 조율하는 데 그만큼 시간을 들인 것이다. 애초 아베 총리는 간담회 보고서에 기초해 ‘정부 방침’을 밝힌 뒤 각료 전원의 합의를 얻는 ‘각의 결정’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확정지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각종 여론조사에서 집단적 자위권 허용과 관련해 반대가 찬성보다 더 높게 나오자 또다시 우회했다. 15일 기자회견에서 ‘정부 방침’이 아니라 ‘기본적 방향성’이라는 이름을 붙여 집단적 자위권을 허용해야 하는 이유를 일본인 이송과 자원봉사 젊은이 2개 사례로 설명한 것이다. “사례만 언급하면 집단적 자위권 행사 범위가 대폭 줄어든다”며 측근들 반대도 있었지만 아베 총리는 국민적 반대 돌파에 더 비중을 뒀다. 일단 헌법 해석을 바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해 놓으면 앞으로도 비슷한 방식으로 헌법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아베 총리의 우회 전략은 이미 수차례 목격됐다. 아베 총리는 2012년 12월 총리 취임 후 “전후체제를 탈피하겠다”며 공공연히 헌법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전쟁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헌법 개정 절차를 규정한 ‘헌법 96조’를 수정하는 것으로 전략을 바꿨다. 헌법 개정 문턱을 낮춰 놓으면 추후 헌법 개정을 더 쉽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모든 무기 수출을 금지한 ‘무기수출 3원칙’을 대폭 완화할 때도 이름이 주는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 ‘방위장비 수출 3원칙’이라고 발표했다.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