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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A기계의 연구소장 노모 씨(53)는 지난해 9월 회사로부터 “연구 실적이 나쁘다”며 감봉을 통보받았다. 고등학교 동창이기도 한 대표이사가 7000만 원이던 연봉을 뭉텅이로 잘라 4500만 원으로 정했다. 억울했다. 노 씨는 이직을 결심하고 회사 서버에서 비밀 자료 1만8559건을 내려받았다. 여기엔 1시간에 박스 7만 장을 자동으로 접고 눌러 붙일 수 있는 ‘초고속자동접착장치’의 설계도면도 들어 있었다. A기계가 3년간 32억 원을 들여 개발해 지난해 지식경제부에서 신기술로 인증받은 기술이었다. 노 씨가 이렇게 빼돌린 설계도면을 들고 지난해 11월 찾아간 곳은 국내 유일의 경쟁사인 일본 S사의 한국지사. 설계도면을 받아든 이곳 대표 곽모 씨(54)는 노 씨를 반기며 연봉 1억 원을 주는 조건으로 채용을 약속했다. 핵심 기술을 챙긴 곽 씨는 태도를 싹 바꿨다. “실력이 부족해 채용할 수 없다”며 ‘토사구팽’한 것. 제보를 받은 경찰이 최근 수사해보니 곽 씨는 이미 넘겨받은 설계도대로 기계를 만들어 시운전을 앞둔 상태였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노 씨와 곽 씨 등을 산업기술 유출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정치인이 썼다 지운 트윗을 공개하는 ‘폴리트웁스(Politwoops)’ 한국판 사이트를 동아일보가 개설했다는 기사가 나가자 많은 독자가 환영해 주셨습니다. 그만큼 정치인의 무책임한 발언에 염증을 느낀 독자가 많았다는 뜻이겠죠. 어떤 의견이었는지 같이 들어볼까요. 적지 않은 누리꾼들이 “감시 대상을 폴리페서(Polifessor·정치교수) 폴리테이너(Politainer·정치연예인)로 확대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투표로 뽑히진 않았지만 발언의 정치적 영향력이 국회의원 못잖은 이들이죠. 이들 중 일부도 ‘아니면 말고’식의 트윗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언론학자들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건강한 공론의 장으로 기능하려면 정치인뿐 아니라 오피니언 리더들도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동아일보는 전문가에게 자문해 폴리페서와 폴리테이너도 감시 대상에 포함시킬 계획입니다. 폴리트웁스 한국판 사이트는 경박함의 극치로 치닫는 한국의 정치 커뮤니케이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로 삼기 위해 개설한 것입니다. 정치인이 무책임한 트윗을 하고 슬그머니 지우는 대신 한 번 더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을 밝히는 책임 있는 자세를 갖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동아일보 취재팀은 네덜란드의 비영리재단 ‘오픈스테이트’와 7월 공동 개설한 폴리트웁스 한국판 사이트에 모인 트윗을 분석했다. 트위터를 사용하는 19대 국회의원 282명과 광역자치단체장 10명, 안철수 후보 등 291명이 7월 21일부터 9일까지 썼다 지운 트윗은 2134개. 단순 오탈자를 수정하기 위해 지운 트윗이 많았지만 논란을 일으킬 만한 내용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논란이 우려되는 트윗을 쓴 정치인들은 9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별 문제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빅엿” “팔푼이” 대선후보 비방형 대선을 앞두고 상대 후보를 비방한 글은 4건이다. 민주통합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달 29일 “KBS가 박근혜 후보에게 빅엿(크게 엿 먹인다는 뜻의 비속어) 헌납!”이라는 트윗을 올렸다. 한 이용자가 ‘박 후보가 팝콘 아르바이트를 체험한 날 KBS에서 팝콘에 쓰인 버터향의 유해성에 대해 방송한다’라며 올린 트윗을 리트윗(RT)하며 한마디 덧붙인 것. 서기호 의원이 판사 재직 당시 남겼던 ‘가카 빅엿’ 트윗은 큰 논란을 일으켰지만 최 의원의 ‘빅엿’ 때는 잠잠했다. 해당 트윗을 8분 만에 지웠기 때문이다. 원문 작성자가 지운 트윗은 그것을 본 팔로어가 리트윗하지 않으면 모든 팔로어의 타임라인에서도 지워져 더는 볼 수 없게 된다. 대선후보를 비방한 글이 최 의원의 팔로어 6400여 명에게 전달됐는데도 ‘없던 일’이 돼 버린 것. 최 의원 비서관은 기자와 통화에서 “‘빅엿’은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를 통해 대중화된 용어라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안철수 후보의 ‘룸살롱 공방’이 한창 번졌던 8월 안 후보를 ‘팔푼이’라고 지칭했다. 하 의원 보좌관은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이 팔푼이 같다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대선후보 3인 가운데 오탈자가 아닌, 다른 이유로 트윗을 지운 이는 민주당 문재인 후보였다. 문 후보는 이달 2일 “박근혜 씨가 해명할 일 하나 늘었군요. 군사평론가 김종대는 ‘NLL이 논란이 되도록 방치한 주범은 1977년에 영해법을 제정하면서 서북해역을 영해에서 빼 버린 박정희’라고 주장했군요. 당시 퍼스트레이디 대행이 박 씨였죠”라는 글을 리트윗했다가 하루 만에 지웠다. 문 후보 캠프 관계자는 “실무자가 문 후보의 허락을 받지 않고 리트윗한 글이라 내용 진위와 관계없이 지웠다”라고 밝혔다. 이들은 대선을 앞둬 여론이 민감한 시기에 상대 후보를 비방하는 글을 올리고도 유권자에게는 아무 해명을 하지 않았다.○ 유언비어부터 막말까지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퍼뜨리고 바로잡지 않은 경우는 6건이다. 민주당 이목희 의원은 북한강과 낙동강 유역에 녹조가 생겨 시민들의 불안이 컸던 8월 5일 “수돗물에서 녹조침전물이 나온다. 인체에 독성으로 작용해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라는 한 이용자의 트윗을 리트윗했다. 사실무근으로 밝혀지자 8일 만에 지웠지만 팔로어 1300여 명에게 퍼진 뒤였다.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1년 전의 인터넷 기사를 최근 것으로 착각해 여당을 공격했다가 황급히 글을 내렸다. 지난달 8일 “이상득 전 의원의 친인척이 정부 투자금을 빼돌렸다는 얘기가 돌지만 검찰은 대선이 지난 뒤인 내년 2월에나 조사한다. 새누리당이 재집권하면 조사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쓴 이용자의 트윗과 기사 링크를 리트윗한 것. 하지만 이 기사는 2011년 12월 23일 것이었다. 여야 의원들은 8월 초 민주당 이종걸 의원의 ‘박근혜 그년’ 트윗을 놓고 막말하지 말라고 공방을 펴면서도 막말을 쏟아냈다. 새누리당 이학재 의원은 이종걸 의원을 비판하며 “이 자를 어찌해야 할까요?”라고 올렸다가 “이를 어찌해야 할까요?”로 고쳤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튀고 싶은데 튈 방법이 이런 것밖에 없을까요? 안쓰러운 마음이 앞섭니다. 임모(임수경) 의원의 경우처럼 말입니다”라고 올렸다가 1시간 뒤 지웠다. 민주당 김경협 의원은 이종걸 의원을 공격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을 “‘그년’의 홍위병”이라고 지칭하며 “노 전 대통령에게 ‘개×놈’, ‘불×값도 못하는 놈’ 등 발언했을 땐 사과도 하지 않았다”라고 비난했다. 그러곤 하루 뒤 지웠다.○ 모른 척 대신 솔직한 정정 필요 정치학자와 언론학자들은 정치인의 막말 뒤에는 억지로 이슈를 만들어 존재감을 알리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고 지적한다.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파급력을 이용해 표심을 자극하려고만 하니 정제된 발언과 의견이 주목받지 못하는 부작용이 생긴다”라고 말했다. 잘못된 정보를 신속하게 지운 것은 바람직하지만 적절한 정정과 해명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괴담을 퍼뜨렸다면 추후 당국의 해명 자료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권상희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여론을 주도하는 공인이라면 자신의 던진 말이 잘못됐다는 점을 확인하는 순간 분명하게 바로잡아야 하며 트위터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저는 올여름에 한국에 왔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오니 엄청 바쁘네요. 눈코 뜰 새 없어요. ㅠㅠ 한국 정치인들 때문이에요. -_-^ 참 제 소개부터 해야죠. 제 이름은 ‘폴리트웁스(Politwoops)’입니다. 정치(Politics), 트윗(Tweet), 탄식을 뜻하는 영어 감탄사 웁스(oops)를 합친 말이에요. 저는 정치인이 썼다 지운 트윗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모아 영구히 기록으로 남기는 일을 합니다. 네덜란드의 비영리재단 ‘오픈스테이트’에서 태어났어요. 한국에서 제 주소는 www.politwoops.com/g/korea입니다. 자랑은 아니지만 미국 영국 등 18개국에서 큰 인기를 끌어서 올해엔 미국 타임 선정 ‘50대 웹사이트’로 꼽혔어요. 제가 한국에도 보금자리를 틀게 된 건 동아일보 덕이에요. 동아일보가 선거를 앞두고 무책임한 비방 글을 올리는 정치인을 감시하자며 저를 7월 21일 한국으로 초대했습니다. 남몰래 4개월간 한국 정치인들의 트윗을 2000개 넘게 모았고 오늘 드디어 여러분께 모습을 선보이게 됐습니다. 사실 미국 등 선진국에선 별로 할 일이 없었어요. 잘못된 트윗을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라 공인의 공적 발언으로 간주해 엄중한 책임을 묻는 분위기거든요. 트위터를 유권자와의 공식적인 대화 창구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선진국 정치인들은 글을 올릴 때 무척 신중해요. 그런데 한국은 분위기가 많이 다르네요. 팔로어를 수천 명씩 둔 정치인들이 왜 그리 자기 말에 책임을 안 지는지…. ‘지우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어이없는 사례를 이루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예요. 맛보기 하나 보실래요? 지난달 3일 민주통합당 이석현 의원의 트위터에 ‘4·11총선 등에 사용된 전자개표기는 조작이 가능한 기계이기 때문에 이를 이용한 모든 선거가 부정 선거’라는 독백이 담긴 동영상 링크가 올라왔어요. 이 의원은 여기에 “정말이면 충격! 이 분야 전문가는 의견 주시길”이라고 덧붙여 리트윗(RT·자신이 본 트윗을 타인에게 보라고 추천하는 것)했고요. 이 트윗은 이 의원의 팔로어 3만6000여 명에게 순식간에 퍼졌어요. 이 동영상은 2010년 대구 수성구청장 선거 당시 촬영된 건데요, 확인해 보니 실제 개표에 앞서 투표용지가 겹치지 않도록 개표기를 조정하는 장면이었어요. 이 의원은 올린 지 1시간 뒤 소리 소문 없이 문제의 트윗을 지웠어요. 하지만 이미 팔로어 수십 명이 다시 리트윗해 링크를 퍼 나른 뒤였습니다. 이 의원은 자신의 트윗을 바로잡는 내용은 발표하지 않았어요. 이렇게 무책임한 글을 올렸다가 문제가 될 것 같으면 슬며시 지우는 행태를 감시하는 게 제 일입니다. 정치인 여러분, 공인의 책무를 잊고 무책임한 발언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다 슬그머니 지워 버리는 행태가 계속된다면, 저는 앞으로도 일복이 터질 겁니다. 잊지 마세요. ‘저는 당신이 어젯밤에 썼다 지운 트윗을 알고 있습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김준일 기자 jikim@donga.com}

#수험생 1=11년간 영화 및 드라마 15편에 조연으로 출연했지만 스타는 아님.#수험생 2=3년간 시트콤 2편에 출연한 게 연기 경력 전부지만 아이돌 스타 가수임.두 수험생이 같은 대학 연극영화학과에 나란히 지원했다. 대학은 두 수험생의 출연 경력 서류를 살피고 면접에서 공연예술에 대한 이해도와 소질, 인성 적성을 평가했다. 대본을 주고 발성도 채점했다. 합격의 여신은 한 명에게만 미소 지었다. 지난달 26일 한양대 수시모집 합격자 발표에서 연기 경력 11년인 배우 노영학 씨(19)는 떨어지고 걸그룹 ‘f(x)’의 멤버 크리스탈(본명 정수정·18) 양은 붙었다.노 씨는 고3이던 지난해에도 중앙대 동국대 건국대 연극영화학과에 불합격했다. 노 씨는 “사극 연기에 갇혀 입시에서 중요하게 보는 무대 연기를 선보이지 못했다”며 결과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노 씨의 불합격은 공교롭게도 일부 스타가수들의 합격과 대조되면서 각 대학이 연극영화학과 학생을 뽑는 기준에 대한 논란을 촉발하고 있다. 오랜 기간 배우로 활동했지만 이름이 덜 알려진 노 씨는 탈락하고 스타지만 연기 경력은 일천한 가수들은 대부분 합격하는 걸 보면 대학이 홍보 차원에서 연기력보다 인기를 선발기준으로 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건국대 영화학과에는 올해 걸그룹 ‘달샤벳’의 수빈(본명 조수빈·18) 양과 ‘걸스데이’의 혜리(본명 이혜리·18) 양이, 성균관대 연기예술학과에는 ‘카라’의 강지영 양(18)이 합격했다. 강 양이 지난해부터 일본 방송 드라마 2편에 출연한 것을 빼곤 이들의 연기 경력은 뚜렷하게 내세울 건 없다.해당 대학들은 일부 누리꾼들의 그런 비판에 펄쩍 뛴다. 한양대는 연예인의 인기도가 입시 결과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심사위원 A 교수는 “크리스탈 양이 면접을 보고 나간 뒤 입학처 직원이 귀띔하기 전까진 인기 여가수인 줄도 몰랐고 연기력이 뛰어나 뽑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교수는 연극영화학과 특기전형은 자유연기 소양면접 즉흥연기 심층면접 등 실기면접이 포함된 일반전형보다 절차가 간단하다고 덧붙였다. “애초에 유명인 위주로 뽑는 전형이기 때문에 실기가 덜 까다롭다”는 설명이다.건국대는 올해 수시 모집부터 연예인 특례 입학 제도를 없앴다. 연예인도 다른 수험생과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겠다는 취지다. 심사위원 B 교수는 “3분 내외 자유연기를 본 뒤 학생에 따라 노래나 춤을 요구한다”며 “수빈 양과 혜리 양처럼 연기 경력이 적지만 표현력과 소질을 충분히 보여주면 합격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논란에 대해 정덕현 문화평론가는 “가수와 연기자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기에 ‘가수는 실용음악학과에, 배우는 연극영화학과에 가야 한다’는 것은 낡은 사고방식”이라고 전제한 뒤 “하지만 대학 측이 홍보를 노려 스타들에게 합격 우선권을 준다면 이는 일반 수험생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태로 비판받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논란 속에서 “학위를 위한 대학 진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학교생활에 충실하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아예 대학 입시에 응시하지 않은 ‘미쓰에이’의 수지나 유승호, ‘f(x)’의 설리, 아이유 등이 ‘개념 연예인’으로 불리는 상황이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

‘무게=806t, 나이=12세(추정), 위험요인=대기 평균 수치보다 20배 많은 방사능을 뿜어냄.’ 공상과학 영화에 등장하는 괴물의 신상명세가 아니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 노원구청 뒤 공영주차장에 마련된 임시보관 건물에 1년째 모습을 숨기고 있는 폐아스팔트 얘기다. 아스팔트는 지난해 10월까진 월계동 주택가 도로에 깔려 있었다. 한 시민이 아스팔트에서 방사능이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한 뒤 11월 주민들의 반발로 도로에서 뜯겨났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당시 “인근 주민들이 받은 연간 방사선량은 안전 범위 안”이라고 발표했지만 주민 불안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대책위원회에 ‘방사능 탓에 병에 걸렸다’는 청원서를 낸 주민이 몰렸다. 주부 김모 씨(48·여)는 “월계동에서 살면서 3차례나 자연 유산했다”며 “방사능 탓이었던 것 같다”고 주장했다. 올 9월 서울시가 역학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대상 8875명의 1.1%에 해당하는 102명이 연간 법정 허용량인 1mSv(밀리시버트·방사선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 정도를 표시하는 단위) 넘게 노출됐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1만∼10만 명 중 1명이 암에 걸릴 수 있는 수준의 방사선량이다. 서울시는 “방사능 오염의 잠복기를 고려해 2∼10년간 추적 조사하겠다”면서도 “확률로만 따지면 번개에 맞아 사망할 확률(600만분의 1)보다 낮아 ‘문제가 있다 없다’ 할 수 없는 애매한 결과”라고 밝혔다. 6일 기자가 만난 월계동 주민들 가운데서도 “방사능의 위력이 과대평가됐던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강모 씨(69)는 “땅값이 떨어질까 봐 들고일어났지만 실제로 방사능에 오염됐다고 생각하는 주민들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당국의 조사 결과와 별개로 폐아스팔트는 ‘괴물’ 취급을 받으며 떠돌아다녔다. 노원구는 뜯어낸 아스팔트를 상계동 마들근린공원의 폐수영장으로 옮겼지만 열흘도 지나지 않아 구청 뒤 공영주차장으로 옮겨놔야 했다. 공원 인근 주민들이 반발하고 나선 탓이다. 이번엔 구청 주변 주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상계동 주민들은 “월계동 주민 살리자고 상계동 주민은 죽이는 것이냐”며 항의했다. 노원구는 폐아스팔트를 여러 겹으로 밀봉하고 “방사능이 유출되지 않도록 안전하게 보관하겠다”며 주민들을 달랬다. 해결된 듯 보였던 갈등은 폐아스팔트를 어디서 분류할지를 놓고 다시 불거졌다. 폐아스팔트를 일반폐기물과 10Bq(베크렐·방사성 물질의 방사능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 이상의 중저준위 폐기물로 분류하는 작업엔 한 달 이상이 걸린다. 방사능 오염을 우려해 분류작업 장소를 내주려는 곳이 없었다. 인적 드문 전방 군부대를 내달라는 요청에 국방부도 난색을 표했다. 어렵사리 공릉동 한국전력 중앙연수원 내 원자력연구소를 분류 장소로 낙점했지만 이 역시 인근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결국 폐아스팔트는 임시보관 건물에 그대로 남겨졌다. 갈등의 불씨는 아직 남아있다. 중저준위 폐기물은 이달 중하순 경북 경주시 방사성폐기물관리시설로 옮겨지지만 일반폐기물로 분류된 폐아스팔트 328t의 대책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현행법상 해당 폐기물을 처리할 근거가 없어 노원구는 환경부의 법령 검토를 기다리고 있다. 노원구 관계자는 “일반폐기물과 똑같이 처리하라는 결정이 나오면 매립지 선정을 놓고 다시 갈등이 일어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마지막 장면. 독일인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는 나치 치하에서 구해 낸 유대인들로부터 감사 선물로 금반지를 받는다. 이미 유대인 1100여 명을 구했던 그는 “이 금반지를 팔았으면 더 많은 유대인을 구해 낼 수 있었을 것”이라며 눈물 흘린다.북한 주민을 구출하는 ‘쉰들러 프로젝트’에 12년을 쏟은 갈렙선교회의 김성은 목사(48)는 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 카페에서 기자와 만나 “쉰들러의 독백은 항상 북한 주민의 얼굴과 함께 떠오른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주민 구출 작업이 못마땅한 중국 당국의 ‘입국 블랙리스트’에 올라 동남아 제3국에서 활동하고 있다.김 목사는 중국에 팔려가 착취당하던 여성들과 이들의 자녀 11명을 지난달 구출했다. 주로 한국 내 탈북자들이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이지만 고아로 자란 어린이도 있다. 이들은 현재 제3국에 머물며 한국으로 입국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 공안에 붙잡히거나 다친 탈북자는 없지만 김 목사는 구출 작전을 ‘성공’이라고 평가하지 않았다. 자금이 모자라 데리고 나오지 못한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후반 중국의 안마시술소로 끌려갔다가 구출된 한 여성은 얼마 전 낳은 아들을 중국에 두고 왔다. 김 목사는 “곧 데리러 온다”는 기약 없는 말을 남기고 홀로 국경을 넘은 이 여성과 함께 울었다고 했다.임신 6개월째에 북한에서 중국으로 팔려갔던 20대 여성 A 씨도 지난달 구출됐다. A 씨는 중국으로 팔려가자마자 자궁 적출 수술을 받고 밤낮으로 화상채팅과 성매매에 나서야 했다. ‘좋은 일자리가 있다’는 말만 믿고 의지한 곳이 음란 화상채팅 알선 업체일 줄 몰랐다. A 씨를 데리고 있던 업체는 김 목사에게 “가치가 떨어졌지만 데려온 값이 있으니 500만 원은 줘야 A 씨를 내주겠다”고 했다. 김 목사는 “중국에 인신매매된 북한 주민들은 물건 취급을 받는다”고 말했다.김 목사는 기업가였던 2000년 두만강 유역에서 선교하다 북한 주민의 실상을 알고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인민군 중대장 출신의 탈북자인 아내 박에스더 목사(43)를 만난 것도 이때였다. 김 목사는 이후 아내와 함께 북한 주민을 구출하고 탈북자들의 한국 정착을 돕고 있다.북한 동포들을 중국과 북한에서 빼내는 일은 고난의 연속이다. 공안의 눈을 피해 제3국에서 탈북자들과 접선해야 하고 폭풍우를 뚫고 배를 타야 할 때도 있다. 열 살배기 딸이 배웅할 때마다 김 목사는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김 목사는 “‘약자를 돕는 일에 위협이 따른다면 그건 정의로운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라는 신념을 되새긴다”고 했다.갈렙선교회가 맞닥뜨린 문제는 부족한 구출 자금이다. 탈북자 1인당 500만∼700만 원이었던 구출 비용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한 뒤 경계가 삼엄해져 1000만 원까지 치솟았다. 탈북자들의 남한 정착 비용까지 합하면 선교회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다.쉰들러가 유대인들로부터 받은 반지엔 ‘한 사람을 구하는 것은 세상을 구하는 것’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김 목사는 “뜻있는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단 한 명의 북한 주민이라도 더 구해 내는 게 사명”이라고 말했다. 갈렙선교회 홈페이지(www.calebmission.co.kr)와 전화(041-575-5301)를 통해 김 목사의 ‘쉰들러 프로젝트’에 동참할 수 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까지 먹고 초등학생인 의붓딸을 성폭행한 인면수심 40대에게 법원이 중형을 내렸다. 서울동부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윤종구)는 2007년부터 4년간 서울 자택에서 의붓딸 A 양(15)을 3차례 성폭행하고 강제 추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양모 씨(47)에게 징역 15년과 정보공개 10년, 전자발찌 부착 10년을 선고했다고 5일 밝혔다. 법원은 “양 씨가 10세밖에 되지 않은 의붓딸을 성폭행했고, 2010년엔 성폭행 전 병원에서 처방받은 발기부전 치료제를 복용한 점 등 나쁜 죄질을 보였다”고 중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1981년부터 2002년까지 강간 절도 등으로 9차례 교도소를 드나들었고 사이코패스 성향을 보여 재범 우려가 크다”며 “전자발찌 부착 기간에 피해자에게 접근하지 말고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외출도 하지 말라”고 명령했다. 양 씨는 경찰 조사에서 “A 양이 나를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고 아저씨라고 부르고 자주 가출해 혼을 내다가 일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지역별로 각 후보를 바라보는 시각은 엇갈렸다. 새누리당의 텃밭이었던 부산·울산·경남(PK)의 유권자들은 지역 출신 후보에 대한 선호도가 강한 편이었고 충청권에선 대형 지역 공약을 내는 후보를 밀겠다는 의지가 도드라졌다. PK 지역 응답자 상당수는 대구에 연고를 둔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보다는 각각 경남 거제와 부산 출신인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에 기대를 걸었다. 4·11총선에서 새누리당이 40개 의석 중 36개를 가져간 걸 감안하면 기류가 크게 달라진 것이다. 부산 부산진구에 사는 송모 씨(51·문재인 지지)는 “지금까지 쭉 새누리당을 지지했지만 이번엔 부산 민심을 잘 아는 PK 출신 후보들에게 기대를 건다”고 말했다. 이는 현 정권에서 신공항 건설이 무산되고 대구·경북(TK) 출신 인사가 중용되면서 ‘PK 소외론’이 확산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경남 진주에 사는 이모 씨(32·여·안철수 지지)는 “현 정권이 PK를 홀대했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며 “문 후보나 안 후보가 지역 민심을 대변하는 데 유리할 것 같다”고 했다. 충청권 유권자들은 세종시 같은 대형 지역개발 공약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었다. 대전 서구에서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정모 씨(41·여·박근혜 지지)는 “대형 사업이 지역 경기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공약에 따라 지지 후보를 바꿀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일부 유권자는 “세종시를 지킨 박근혜를 찍겠다”고 했지만 야권 후보 지지자 대다수는 ‘박근혜 역할론’에 동의하지 않았다. 대전 동구의 김모 씨(45·여·문재인 지지)는 “세종시를 공약하고 실행에 옮긴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일한 문 후보의 공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TK에선 ‘박정희 향수’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대구 남구에 사는 이모 씨(51·박근혜 지지)는 “지역경제가 침체됐으니 박정희 전 대통령처럼 리더십 있는 후보가 당선돼 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지역 젊은 유권자들은 ‘새누리당이라고 무조건 찍어주지는 않겠다’는 정서도 만만치 않았다. 최모 씨(33·여·경북 포항시·문재인 지지)는 “박 후보가 정치개혁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이곳의 20, 30대 유권자들이 등을 돌릴 것”이라고 했다. 호남지역에선 “누가 당선되든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는 응답이 많았다. 광주에 사는 차모 씨(51·박근혜 지지)는 “정치환경 탓인지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호남에선 큰 정치인이 나오지 않고 있다”며 “누가 호남민심을 대변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말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

‘컵라면과 음료수=6000원, 노래방=2000원, 입술보호제=5000원, 학용품=2000원, 비상금=5000원.’ 아무리 펜을 굴려 한 달 용돈 계획을 짜도 답이 안 나왔다. 열일곱 윤모 양은 입술보호제를 사려던 계획을 다음 달로 미뤘다. 고등학생인 윤 양이 경기 이천시의 아동복지시설 성애원에서 지내며 받는 용돈은 월 2만 원. 한창 꾸미고 싶고 먹고 싶은 것도 많은 여고생에게 부족해 보이는 액수다. 그런데 윤 양은 31일 “꼭 써야 할 곳이 있다”며 비상금 중 2000원을 꺼내놓았다. 초등학생 이모 군(12)도 저금통을 털어 500원을 냈다. 이달치 용돈의 10%다. 이렇게 성애원 아이들 45명이 원장실에 놓고 간 돈은 모두 3만5000원. 동생 삼기로 한 인도 빈민촌의 조스나 조세(9·여)에게 보낼 돈이다. 아이들이 얼굴도 모르는 제3세계 어린이의 수호천사가 되기로 결심한 사연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애원엔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18세 이하 아이들이 모여 산다. 윤 양은 부모의 얼굴도 모른다. 일시보호시설에서 쥐여준 과자 한 봉지를 들고 세 살 때 이곳에 온 게 어렴풋한 첫 기억이다. 몇 해 전 부모가 이혼하며 성애원으로 온 박모 양(16)은 친구들이 생일을 물어도 얼버무렸다. 파티를 열어줄 부모님이 곁에 없어서였다. 친구 집에 놀러갔다가 화목한 가족의 모습이라도 보는 날엔 박탈감을 속으로 삭여야 했다. 아이들의 엄마 역할을 하는 신경림 원장(56)은 고민이 깊었다. 아이들이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빈곤하다’는 생각에 휩싸이는 게 걱정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은 성애원에 종종 찾아와 봉사활동을 하는 가수 션(본명 노승환·40)과 탤런트 정혜영(39) 부부로부터 가난 탓에 학교에도 가지 못하는 제3세계 아이들의 얘기를 들었다. ‘우리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아이들은 들떴다. 2009년 12월 회의를 열어 기부를 결정했다. 용돈이 부족해진다는 점에 망설임도 있었지만 결과는 만장일치였다. 다음 날 아이들이 신 원장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꼬깃꼬깃한 1000원짜리 지폐 열다섯 장에 100원짜리 동전 7개. 돈은 국제어린이양육기구 ‘컴패션’을 통해 조스나에게 전달됐다. 처음엔 후원금 500원도 아까워하던 몇몇 아이는 조스나가 비뚤비뚤한 힌두어로 보내온 감사 편지를 받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군것질로 써버렸던 돈이 조스나에겐 수업료이자 예방접종비용이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적다고 느꼈던 용돈을 오히려 알뜰하게 쓰는 효과도 생겼다. 성애원 아이들은 매달 후원금 3만5000원을 빼먹은 적이 없다. 그 후 아이들의 일상에도 작은 기적이 일어났다. 윤 양은 장애인 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게 습관이 됐다. 이전엔 봉사활동 점수를 채우려고 형식적으로 가던 곳이다. 올 초엔 윷놀이대회 우승 상금 10만 원으로 떡볶이 재료를 사들고 장애인 쉼터를 찾아 요리 솜씨를 선보였다. 윤 양은 “100점짜리 성적표를 받았을 때보다 기분이 좋았다”고 말했다. 고등학생 손성민(가명·16) 군은 지난달 추석 연휴에 방글라데시 빈곤층 아이들을 직접 만날 기회를 얻었다. 하루 한 끼를 간신히 해결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현지 아이들의 모습은 손 군의 마음을 흔들었다. “가진 게 없어도 마음은 가난하지 않은 ‘마음 부자’가 될 거예요.” 나눔을 통해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성애원 아이들의 말이다. 컴패션 콜센터(02-740-1000)와 홈페이지(www.compassion.or.kr)를 통하면 성애원 아이들의 나눔활동에 동참할 수 있다.이천=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정수장학회를 둘러싼 정치권 논란이 애꿎은 장학생들을 난감하게 만들고 있다. 야당에서는 최근 “정수장학회가 장학생 선발 면접에서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 지지 여부와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생각을 묻는다”, “선발된 장학생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 동상에 절을 하고 박근혜 후보와 박 전 대통령 관련 행사에 참석을 강요받는 등 선거운동에 악용되고 있다”는 주장까지 제기하고 있다. 그 같은 주장의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장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생이 됐는데 주변에서 ‘이상한 장학금 받은 것 아니냐’라는 시선을 보내 곤혹스럽다”는 반응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2012년 정수장학회 47기 대학생 장학생 명단을 토대로 전체 208명의 장학생 가운데 무작위로 선정한 20명을 심층 인터뷰해 의혹을 검증했다. ○ 장학생들 “행사 참여 강요 없었다” 야권은 정수장학회 장학생의 모임인 청오회(靑五會)와 졸업생 모임인 상청회(常靑會)를 박 후보의 외곽 지원단체로 지목하면서 정치세력화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회원들이 의무적으로 박 전 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하고 추도식에 참석하는 등 정치색이 강한 행사에 동원된다는 주장이다. 본보가 인터뷰한 47기 장학생 대학생 20명은 전부 “박 전 대통령과 박 후보와 관련한 행사에 참석을 강요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서울지역 대학에 재학 중인 A 씨(22·여)는 “장학회에서 ‘참석해 달라’고 당부한 행사는 올해 5월 장학금 수여식이었을 뿐 박 후보와 무관했다”고 말했다. 장학생 일부가 장학회 주최의 행사에 참가해 박 전 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한 것은 사실로 확인됐다. 박 전 대통령의 생가 방문행사에 참석한 학생은 본보 인터뷰에 응한 20명 가운데 2명이었다. 경북지역 장학생 C 씨는 올해 청오회 대구경북지부가 주최한 팔공산 등산 행사에 참석했다. 행사엔 경북 구미시 상모동 박 전 대통령 생가 방문 일정이 포함돼 있었다. C 씨는 “행사 참여 학생 10명 중 5, 6명이 생가에 들어가 절했고 강압적인 분위기는 아니었다” 며 “나는 이번 대선에서 야권 후보를 지지하기 때문에 분향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치 공방이 가열됨에 따라 장학금 수혜 학생 대다수는 자신이 정수장학회로부터 장학금을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걸 꺼리는 분위기다. 서울 사립대 재학생 D 씨(21·여)는 친구들로부터 “정수장학회 수혜 학생들은 박 전 대통령을 숭배해야 한다는데 비정상적으로 보인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D 씨는 오해를 바로잡고 싶었지만 ‘장학회 도움을 받더니 정수장학회를 옹호한다’는 소문이 날까 봐 자신이 수혜 학생이라는 사실도 말하지 못했다. 장학생 선발 시 정치성향을 따진다는 야당 측의 주장과 관련해 서울의 한 사립대에 다니는 E 씨는 “면접관 4명이 장래희망이나 군 입대 일정, 학업 계획을 물었고 평범한 인성면접이었다”며 “장학회 운영 자체는 정치적 편향성 없이 이뤄져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장학생 전국에 고루 분포 정수장학회 고교생 장학금 혜택이 대구·경북(TK) 지역에 집중됐다는 주장도 있었지만 대학생 장학금은 비교적 전국에 고루 지급된 것으로 나타났다. 김경협 민주통합당 의원은 최근 “정수장학회가 2002∼2011년 고교생에게 지급한 장학금 30억8600만 원 중 21.8%인 6억7400만 원은 대구·경북 지역에 돌아가 서울·경기의 15.5%보다 많았다”고 지적했다. 47기 대학생 장학생들에 따르면 대구·경북 출신 학생은 31명(14.9%)으로 경기·인천 32명(15.4%)이나 부산·울산·경남 30명(14.4%)과 비슷했다. 장학생이 가장 많이 선발된 곳은 서울 55명(26.5%)이었고 충청과 호남은 각각 13%, 10.1%였다. 광주지역 출신 F 씨(21·여)는 “선발 과정에서 출신지나 부모님의 본적을 묻지 않았다”며 “청오회 선배 중 광주지역 대학 출신 교수도 여럿 있기 때문에 지역 탓에 차별받았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정수장학회가 각 대학에 보낸 선발요강에 따르면 대학이 추천한 성적 우수자를 대상으로 학점(평량평균 기준 85점 이상 및 학과 성적 상위 5% 이내)과 가정형편을 고려해 장학생을 선발한다.고현국 기자 mck@donga.com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 누군가에겐 마지막 가족사진이다. 지난달 사진관을 찾은 A 씨(41·여)가 그랬다. 그녀는 2007년 겨울 아이들에게까지 주먹을 휘두르는 남편을 피해 세 남매를 데리고 집을 나왔다. 겨울바람을 피해 쉼터에 몸을 맡겼지만 남편은 부엌칼을 들고 찾아왔다. 친구, 친정과도 연락을 끊고 서울의 한 단칸방으로 숨었다. 친구를 사귈 만하면 도망치듯 학교를 옮겨야 했던 아이들은 엇나갔다. 열아홉 큰딸은 학교를 중퇴하고 아르바이트를 찾아 나섰다. 열여섯 큰아들은 집 밖으로는 한 걸음도 나오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가 됐다. 열세 살 둘째 딸은 아빠가 꿈에 나오면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깼다. A 씨는 2010년 재혼해 막내아들 성호(가명·2)를 낳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성호가 방긋 웃으면 언니 오빠 얼굴도 밝아졌다. 하지만 A 씨와 세 남매는 다음 달부터 성호와 떨어져 지내야 한다. 헤어지게 된 두 번째 남편이 성호를 데려가기로 해서다. A 씨는 성호와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4남매와 가족사진을 찍고 싶지만 비싼 탓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기회가 찾아왔다. 둘째 딸을 후원하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가족사진을 무료로 찍어주는 사진사를 소개해 준 것. “서로 친한 척 좀 하세요. 안 친한 거 티 나요.” 사진사 김진철 씨(39)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아이들 표정이 환해졌다. 이들의 눈부신 순간이 카메라에 담겼다. A 씨는 “성호를 보고 싶을 때마다 들여다볼 가족사진이 생겼다”며 뚝뚝 눈물을 흘렸다. #. 누군가에겐 첫 가족사진이다. 25일 이 사진관에 온 김옥연 할머니(77) 얘기다. 김 할머니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노총각 딱지를 달고 사는 아들이 답답했다. 노인정 친구들이 손자 사진이라도 자랑하듯 내보이는 날에는 아들과 단둘이 사는 집이 더 휑했다. ‘거실에 가족사진 한 장 걸었으면….’ 아들 이장환 씨(51)에게 차마 말하지 못한 김 할머니의 소원이었다. 그랬던 할머니의 얼굴에 요즘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2009년 새 식구가 된 필리핀 며느리가 작년과 올해 연이어 손녀와 손자를 안겨 줬기 때문이다. 3년 만에 가족이 5명으로 늘어났다. 김 할머니는 “생애 가장 행복한 나날을 사진으로 남겨 두고 싶었다”고 말했다. #. 그는 렌즈를 통해 삶의 아름다움을 본다. 피사체는 화려한 풍광이나 웅장한 건축물이 아니다. 골목길 어디서나 마주치는, 다소 생활에 찌든 가난한 이웃들이지만 가족이라는 ‘마법 같은 사랑의 울타리’ 안에서 그들은 행복하다. 매달 넷째 주 목요일이면 형편이 어려운 가족들의 사진을 무료로 찍어 주는 봉사활동을 해 온 지 3년째. 지역 복지관과 다문화센터의 도움을 받는 가족 중 어린이재단이 추천한 이들의 사진을 찍어 준다. 그동안 그의 액자 선물을 받은 가족이 60가정을 넘었다. 가족사진 액자는 하나에 30만∼50만 원이지만 이들에겐 돈을 받지 않는다. 일반 고객의 예약이 두 달 치씩 밀려 있을 정도로 바쁘지만 봉사를 거른 적도 없다. 높은 가격뿐 아니라 세상에 모습을 보이기 싫어 가족사진을 피했던 이들에게 다시 세상에 나올 용기를 주는 게 기뻐서다. “세상 모든 가족이 집에 걸린 가족사진을 보며 힘냈으면 좋겠다”는 김 씨는 다음엔 어떤 가족에게 행복을 전해 줄지 벌써 설렌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기자도 가고 싶었다. 24일 시작하는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첫 경기 입장권을 구하기 위해 23일 한 야구표 전문 매매 인터넷 카페를 검색했다. 3만5000원인 1루 내야응원 지정석을 판다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게시자에게 전화해 보니 두 배 넘는 7만5000원을 불렀다. “잠깐만 고민하겠다”고 전화를 끊은 뒤 5분 만에 다시 전화했지만 “8만 원에 팔렸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카페에 구매 희망 글을 올렸다. 그러자 암표 판매자들이 접근해 와 본인 확인 절차를 무시할 수 있는 방법까지 상세히 안내해줬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암표 거래를 막기 위해 예매한 사람과 현장에서 표를 받는 사람이 같은지 확인한다. 하지만 이 판매자는 자신의 주민등록번호 뒤 7자리 번호와 예매번호를 알려주며 “자동 발권기에 예매번호와 예매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면 표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 프로야구는 올해 처음으로 연간 관중 700만 시대를 열며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이에 편승한 암표 판매의 그림자는 짙기만 하다. 한국시리즈가 다가오자 선을 넘은 암표상들의 활동도 드러나고 있다. 부산 동래경찰서는 23일 전국 주요 야구장에서 암표를 팔아 3억5000만 원가량의 부당이득을 챙긴 윤모 씨(47) 등 3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프로야구가 개막한 4월 초부터 플레이오프 경기가 벌어진 이달 22일까지 전국 야구경기장에서 활동했다. 경기 시작 전날부터 매표소 앞에 종이박스를 놓아 두고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기본. 이에 항의하는 시민에겐 문신을 보이며 위협했고 구장 직원이 말리면 매표소 마이크와 유리창을 부수며 난동을 부렸다. 윤 씨 등은 1장에 7000∼2만5000원인 입장권을 40∼50장 무더기로 구입한 뒤 관람객이 많은 주말에 보통 2∼3배의 웃돈을 받고 되팔았다. 인기 구단이 맞붙는 주요 경기에는 일당 20여 명이 모였다. 이들이 빼돌린 1, 3루석 표만 2000석이 넘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 때문에 ‘현장 판매분이 10분 만에 매진됐다’는 뉴스가 자주 나왔고 결국 일반 야구팬들이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비인기 구단 경기라 관객이 적어 암표가 팔리지 않으면 경기가 시작된 후에도 매표소에서 환불을 요구하며 행패를 부렸다. KBO와 각 구단은 사재기를 막기 위해 한 사람당 표를 현장에선 최대 4장, 인터넷으론 9장까지만 예매할 수 있게 제한하지만 큰 효과가 없다.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표를 사재기하는 것까지 막을 순 없는 탓이다. 실제로 인터넷 티켓 매매 사이트에선 수십 장의 표를 한꺼번에 내놓는 판매자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윤 씨 일당도 PC방에서 5000원씩 주고 고용한 학생들이나 가족을 동원해 표를 쓸어 담았다. 경찰은 중요한 경기가 열리는 날엔 특별단속을 벌이지만 암표상의 교묘한 수법을 따라잡기엔 벅차다. 8, 9일 두산과 롯데의 준플레이오프 경기가 열린 서울 잠실야구장 주변엔 경찰기동대 및 사복 단속반 150명이 투입됐지만 암표상 대부분 단속 소식을 듣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6명을 잡는 데 그쳤다. 매표소 주변을 주로 지키는 단속반을 피해 경기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거래하는 건 고전이다. 외야석 표 몇 장을 사둔 뒤 경기장 밖에서 만난 구매자를 데리고 입장한 다음 거래해 경찰의 눈을 피하는 게 요즘 수법이다. 솜방망이 처벌도 문제로 지적된다. 암표를 팔다 적발돼도 경범죄처벌법상 암표매매 혐의로 즉결심판에 넘겨져 최고 20만 원 벌금을 무는 게 전부다. 이번에 부산에서 적발된 암표상 중엔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당시 롯데가 부산 구덕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사용할 때부터 암표를 팔아온 ‘30년 암표상습범’도 있었다.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

“‘단점을 말해보라’는 자기소개서 문항에 ‘결정을 내리기까지 오래 걸린다’고 썼다가 떨어졌어요. 단점은 아예 쓰지 않는 게 좋은 건가요?” “기업이 단점을 묻는 이유는 어떻게 극복하고 보완하려는지 알기 위해서죠. ‘결정이 느리지만 깊이 있고 신중하다’고 쓰고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말로 강조해보면 어떨까요?” ‘취업 멘토’ 기아자동차 인재기획팀 서인석 대리(35)의 조언에 최용희 씨(27)가 고개를 끄덕였다. 18일 오후 3시 취업 멘토링 프로그램이 진행된 경기 부천시 원미구 상동도서관 1층 ‘청년드림 부천캠프’. 캠프에 모여든 청년들이 저마다의 궁금증을 쏟아냈다. 동아일보 청년드림센터와 현대기아자동차, 부천시 공동으로 지난달 25일 문을 연 부천캠프는 현대기아차 임직원의 취업 멘토링을 매주 한 차례 이상 진행하고 각계 전문가를 멘토로 위촉해 청년 구직자들에게 다양한 상담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날 멘토링에 참가한 명성규 씨(26)는 지난해 한 자동차회사 기술직군에 지원했다가 서류전형에서 고배를 마셨다. 서 대리는 명 씨의 입사지원서류를 꼼꼼히 읽은 뒤 “필요한 자격증이 부족했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는 “구색 맞추기용 자격증을 여러 개 따는 것보다 직무에 필요한 핵심자격증 2, 3개에 집중하는 것이 좋은 평가를 받는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서 대리는 “자동차에 들어가는 2만여 개 부품 중 하나라도 고장 나면 차가 굴러가지 않듯 취업을 준비할 때도 각 단계를 치밀하게 준비해야 한다”며 “서류에 적힌 ‘스펙’과 자기소개서에서 드러나는 회사에 대한 지식, 실무평가에서 드러나는 인성과 창의력, 면접에서 보이는 기업에 대한 애정이 전부 합격점을 받아야 취업에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서류 작성과 면접에서는 기업과 지원자 사이의 특별한 인연을 소개하거나 산업에 대한 이해 및 기업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 좋다”고 덧붙였다. 20일 오전 10시 관악구 대학동 관악문화관·도서관 1층 관악캠프에서는 삼성전자 인사팀의 김효선 씨(25·여)가 취업 준비생들의 멘토로 나섰다. 일본어와 국제통상을 전공한 권세용 씨(24)는 “무역회사에 취업하고 싶은데 전공 어학 실력이 부족해 일본어가 필요 없는 직무에서도 나쁜 평가를 받을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김 씨는 “어쨌든 일본어 등 제2외국어는 남들에게 없는 자신만의 ‘무기’”라며 “포기하지 말고 관련 어학 자격증을 준비하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또 일본어를 전공하고 최근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 1차 시험에 합격한 허정환 씨(25)는 “제주도에서 상경해 6개월 동안 토익 공부에 매달렸는데 영어가 늘지 않고 흥미도 떨어졌다”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김 씨는 “미국 드라마를 자막 없이 보거나 유학생과 언어교환 프로그램을 신청하는 등 흥미를 잃지 않고 공부하는 게 실력 향상의 비결”이라며 “관심 분야를 살려 고향인 제주도에서 해외 관광객들을 영어로 안내하다 보면 실력도 늘고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많은 지원자들이 면접이나 자기소개서에서 ‘리더’의 경험을 어필하지만 신입사원은 우선 좋은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한다”며 “제 경우도 교내 축제준비위원회에서 리더를 도와 시너지를 냈던 경험을 강조해 취업에 도움이 됐다”고 덧붙였다. 고현국 기자 mck@donga.com 부천=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동아일보 취재팀은 22일 전국 심부름센터 5곳에 “혼내줄 사람이 있는데 해줄 수 있느냐”고 문의했다. 3곳에서 “살인도 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 3곳은 하나같이 전화를 바로 받지 않고 발신자 표시로 남겨진 기자의 휴대전화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N 흥신소’는 범행 대상의 나이와 직업을 상세히 물은 뒤 “(범행 대상을) 반신불수로 만드는 데 5000만 원, 살해하는 데 1억 원 정도 든다”며 구체적인 액수를 제시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중국 칭다오(靑島) 지역에서 넘어온 히트맨(청부살인업자)들이 일처리를 마치면 바로 출국하기 때문에 뒤를 밟힐 염려도 없다”고 덧붙였다. Y 심부름센터는 “살인을 포함한 ‘임무’ 완수 여부는 동영상과 사진으로 증명하니 걱정 안 해도 된다”고 말했다.거절한 곳은 2곳이었다. 이들은 “폭행이나 살인을 해달라는 의뢰가 심심치 않게 들어온다”고 전했다. ‘K 리서치’ 심부름센터 A 대표(44)는 “‘없애고 싶은 사람이 있는데 돈은 얼마든 줄 테니 다리 한쪽이라도 부러뜨려 달라’는 의뢰 전화가 매달 한 통 이상 온다”고 말했다.이처럼 살인도 서슴지 않겠다고 공언하는 심부름센터를 이용해 실제로 아내를 살해하고 회사를 가로채려던 남편이 경찰에 적발됐다. 서울 성동경찰서는 사업가 아내를 살해해 달라며 1억9000만 원을 건넨 정모 씨(40)와 정 씨의 부탁을 받고 직접 살인을 실행한 심부름센터 운영자 원모 씨(30)를 각각 살인교사와 살인 혐의로 구속했다.남편 정 씨가 아내를 청부 살해하기로 마음먹은 건 올해 5월. 성동구에서 월수익 2억 원대의 자동차 렌트 매매 업체를 운영하는 아내 박모 씨(34)가 이혼을 요구하자 정 씨는 아내를 살해하고 업체를 독차지할 계획을 짰다. 정 씨도 강남구 논현동에서 유흥주점 3곳을 운영했지만 실적이 나빴다. 정 씨는 자신의 주점 종업원에게 ‘뒷조사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심부름센터가 있냐’고 물어 원 씨를 소개받았다.정 씨는 지난달 14일 아내 박 씨에게 “당신을 능력 있는 사업 파트너에게 데려다 줄 친구”라고 원 씨를 소개했다. 이어 원 씨는 박 씨를 성수동의 한 오피스텔 지하주차장으로 데려가 폐쇄회로(CC)TV가 잡히지 않는 곳에 차를 세우고 목 졸라 살해했다.이들은 범행을 숨기기 위해 박 씨가 가출한 것처럼 각본을 짰다. 원 씨가 시신을 경기 양주시 한 야산으로 옮겨 묻은 다음 날인 지난달 15일 정 씨는 “아내가 가출했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원 씨는 박 씨가 살아 돌아다니는 것으로 위장하기 위해 여성의류 매장이나 네일숍 등 여성이 다닐 만한 가게에 다니며 물건을 사고 박 씨의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노출을 피하기 위해 CCTV가 없는 가게만 골랐다.경찰이 박 씨 휴대전화로 전화하면 “개인적인 문제로 잠시 나와 있을 뿐이다. 곧 돌아갈 테니 걱정 마라”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경찰이 휴대전화 위치와 카드 사용기록을 추적해도 박 씨는 멀쩡히 살아 돌아다니는 것으로 보였다.하지만 박 씨가 자녀와 사업체를 남겨두고 이유 없이 사라진 점을 수상히 여긴 경찰이 집중 수사한 결과 박 씨의 카드가 사용된 가게 주변 CCTV에 항상 등장하는 원 씨가 심부름센터를 운영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점을 확인한 경찰이 추궁하자 정 씨와 원 씨는 범행을 자백했다.심부름업체의 불법 영업이 선을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5년 2월 보험금을 노린 30대 여성이 심부름센터에 의뢰해 남편을 살해하는 등 문제가 심각해지자 경찰은 집중 단속을 벌여 보름 만에 심부름센터의 불법영업 302건을 잡아냈다. 이후 ‘막가파’식 심부름업체는 자취를 감춘 듯했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들의 활동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경찰은 “계약금만 챙긴 뒤 잠적하거나 ‘청부 사실을 알리겠다’고 협박하는 사기 업체도 상당수”라며 주의를 당부했다.현재 폭행 및 살인은 물론이고 “배우자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빼내 주겠다” 등 타인 개인정보 입수를 약속하는 심부름센터의 영업행위는 모두 불법이다. 합법적으로 정보조사 영업을 하려면 사건 당사자나 담당 변호사로부터 권리를 위임받아야 한다. 가압류 및 가처분 현황과 같은 신용정보를 조사하려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신용정보업 허가를 받아야 한다.하지만 심부름센터를 차릴 땐 사업자등록증 외엔 필요 서류도, 자격 요건도 없다. 원 씨는 지난해 5월 업소를 차리기 전에도 강도와 강도강간미수 등 전과 14범이었다. 올해 6월엔 의뢰를 받고 남의 개인정보를 빼내다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입건됐지만 원 씨는 이달 7일까지 인터넷 구인 사이트에 직원 채용 공고를 내며 버젓이 심부름센터를 운영했다. 원 씨처럼 사생활 침해에 청부 살인까지 맡아서 하는 불법 업체가 언제 어디서든 문을 열 수 있는 환경인 것이다.합법 심부름센터의 모임인 한국민간조사협회 박경도 서울본부장은 “심부름센터를 개설할 때 운영자의 전과 유무와 업무 범위 등을 명확히 구분하고 처벌 조항까지 갖춘 법을 만들어 불법영업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
“죄 없는 여성을 358점으로 토막 낸 살인범이 무기징역이라니, 앞으로 10조각 낸 범인은 20년형 정도만 받는 건가요?” 아동 성폭력 추방을 위한 시민모임 ‘발자국’의 매니저 백현정 씨(34·여)는 18일 오원춘(42)이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는 소식에 분통을 터뜨렸다. 백 씨는 “잔혹하게 인명을 해쳐도 사형을 피할 수 있다는 뜻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날 판결 내용을 전해들은 상당수 시민들도 “법원이 흉악범에 대한 국민의 공분을 무시하고 관대한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이용우 한국범죄피해자지원연합회 회장은 “납득할 수 없는 판결 때문에 수원에서 희생된 20대 여성의 유가족뿐 아니라 다른 강력범죄 희생자의 가족도 큰 아픔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인간성회복추진운동협의회(인추협)도 “사법부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이 깊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인추협은 21일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광장에서 ‘폭력 없는 사회’를 주제로 궐기대회를 열고 오원춘의 무기징역 판결을 규탄할 계획이다. 온라인 여론도 들끓었다. 트위터 검색사이트인 트윗트렌드에 따르면 ‘오원춘’을 언급한 메시지가 17일까진 하루 20건 안팎이었지만 18일 1000건 이상으로 늘었다. 대체로 “감형 사유를 납득하기 어렵다”는 의견이었다. 누리꾼 ‘song***’은 “강력범죄에 철퇴를 내리겠다고 공언하더니 정작 처벌은 솜방망이”라고 비판했다. 누리꾼들은 사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였다. 다음 토론방 아고라에 올라온 “오원춘의 사형을 강력히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엔 2시간 만에 130여 건의 지지 댓글이 달렸다. 2심 재판부가 “오원춘이 인육을 매매했다고 볼 수 없다”며 감형한 것을 두고도 논란이 일었다. 오원춘이 인육을 매매하지 않았더라도 범행의 잔혹성을 볼 때 충분히 사형을 선고할 만했다는 주장이다. 누리꾼 ‘skssh****’는 “국민 세금으로 오원춘을 먹여 살리게 됐다”며 “사형 결정이 번복돼 오원춘은 두 번 태어난 셈이지만 유가족은 두 번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썼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정서 및 발달장애 학생들이 다니는 특수학교에서 교사가 학생들을 상습적으로 폭행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국가인권위원회가 조사에 나섰다. 인권위는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국립한국경진학교의 교사와 교직원 8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17일 밝혔다. 이 학교 여교사 박모 씨는 올 3월 중학교 2학년 여학생을 밀어 시멘트 바닥에 머리를 찧게 하는 등 가혹행위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엔 말을 듣지 않는다며 비닐봉지로 만든 끈으로 고등부 학생을 의자에 묶었고, 학예회 연습 중에는 “시 낭송 소리가 작다”며 고등학교 1학년 남학생의 뒤통수를 여러 차례 때렸다고 한다. 이는 인턴교사 A 씨가 박 씨의 가혹행위를 일지 형식으로 기록해 학부모들에게 전달하면서 드러났다. 학교는 박 씨에게 3개월 정직 처분을 내렸지만 학부모들은 “처벌이 가볍다”며 반발하고 있다. A 씨는 일지를 공개한 뒤 사직했다. 학부모회는 ‘여교사 최모 씨도 남학생의 성기를 발로 차 상해를 입히고, 2008년엔 남교사 백모 씨가 학생의 머리와 등을 각목으로 때리는 등 오래전부터 교사들의 가혹행위가 이어졌다’고 주장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얼마 전까진 집창촌의 상징인 빨간 전구가 밤을 밝히던 곳이었다. 이곳 사정에 밝은 이들은 사창가가 처음 터 잡은 건 광복 전후라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남영동에 모여 있던 유곽이 1940년대 후반 여인숙이 밀집한 용산역 앞으로 옮겨 집창촌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서울 용산구 한강로 용산역 앞 집창촌은 수십 년간 긴 생을 이어오다 지난해 10월 재개발로 사라졌다. 올 7월엔 건물마저 철거돼 지금은 땅을 파고 자재를 나르는 공사차량만 수시로 드나드는 축구장 4개 크기의 공터로 변했다. 그 주변에 자리 잡았던 포장마차도 마찬가지 운명처럼 보였다. 하지만 포장마차들은 사라지지 않고 8월부터 과거 집창촌 터에 새로운 포장마차촌을 형성했다. 천막 아래 간이의자를 놓고 대충 세운 게 아니다. 10cm 높이로 나무 바닥을 깔고 전기선, 상하수도관, 액화석유가스(LPG) 배관을 완비했다. 자갈 바닥은 차가 지나가도 먼지가 나지 않게 검은 고무판으로 덮었다. 입구엔 폐쇄회로(CC)TV도 달았다. 메뉴도 다양하다. 떡볶이 꼬치 조개구이 부침개…. 이렇게 들어선 포장마차가 60m²짜리 15동, 16m²짜리 10동이다. 사라진 집창촌 터에 포장마차가 자리 잡게 된 사연은 올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재개발 조합이 집창촌 건물들을 무너뜨리고 터를 닦으려면 공사용 진입로를 가로막는 포장마차를 치워야 했다. 포장마차는 원래 무허가 영업이라 버틸 근거도, 보상을 요구할 권리도 없다. 포장마차에는 위기였다. 재개발 조합은 포장마차를 철거해 달라고 용산구를 압박했다. 용산구가 봐도 이 포장마차들은 언제 철거해도 상관없는 무허가 구조물이다. 하지만 포장마차촌과 불과 40m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엔 2009년 용산 참사가 일어났던 남일당 터가 있었다.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의 생명을 앗아간 불은 사람들의 마음에 아직도 또렷하다. 구청은 강제 철거 시 참사가 재연될 수 있다고 우려해 조합 측에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 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서울시도 “임기 중 일방적인 강제 철거는 없을 것”이라는 박원순 시장의 방침에 따라 “구청이 적극적으로 중재하라”고 당부했다. 조합은 다른 방법을 궁리했다. 재개발 인허가권을 가진 용산구가 조정에 나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생계를 잃을 위기에 처한 포장마차 업주들이 전국철거민연합회 가입을 고려한다는 소식이 들렸기 때문이다. 강성 단체가 개입하면 철거가 지연될 뿐 아니라 ‘제2의 용산 참사’가 일어날 위험도 그만큼 커진다. 조합은 개발 면적 중 2년 뒤에야 공원 조성 공사를 시작할 지역을 떼어내 포장마차에 잠시 내주는 방안을 떠올렸다. 단, 공사가 시작되고 조합이 요구하면 전부 철거하는 조건을 달았다. 당장 생계를 잃을 위기에 처했던 포장마차 주인들은 조합의 제안을 환영했다. 이들은 점포별로 950만 원을 들여 수도 및 전기시설을 갖추고 월 50만 원가량을 경비 용역업체에 내며 장사하고 있다. 손님들은 어느 날부터 모여든 포장마차들을 신기해한다. 15일 오후 한 포장마차에서 두루치기에 소주를 기울이던 박모 씨(45)는 주인에게 “재개발되면서 역 앞 포장마차도 성매매업소와 함께 사라진 줄 알았는데 언제 다시 생겼냐”고 물었다. “포주들과 조폭이 손잡고 기업형으로 운영하는 것 아니냐”고 묻는 손님도 있었다. 포장마차 25동은 올 7월까지 한강대로에서 용산역으로 들어가는 길가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장사를 시작한 지 대부분 7, 8년은 넘었다. 최모 씨(52·여)는 20년 넘게 역 앞에서 떡볶이를 판 토박이다. 최 씨는 “밥벌이도, 아는 사람들도 다 여기 있는데 가긴 어딜 가느냐”고 했다. 사라진 집창촌 터에서 성매매업소를 운영했던 이들도 있다. 지금 D포장마차를 운영하는 A 씨는 7년 전까지 아가씨를 대여섯 명 데리고 있던 포주였다. 장사를 그만둔 건 2004년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되면서부터다. 하루가 멀다 하고 경찰 단속에 걸려 벌금을 물었고 ‘탕치기(성매매 여성이 선불금을 갚지 않고 달아다는 것)’도 몇 번 당했다. 결국 성매매에서 손떼고 포장마차를 차렸다. 구청과 조합, 포장마차 주인들이 서로 한발씩 물러서면서 공존의 지혜를 찾았지만 갈등의 불씨는 남아있다. 조합이 요구하면 군말 없이 철거하는 조건으로 자리를 내줬지만 포장마차들이 2년 뒤에도 버틸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 포장마차 주인은 “2년 동안 바짝 벌어서 다른 곳에 가게를 차려야겠지만 그게 어디 쉽겠냐”고 했다. 조합 관계자는 “잘 해결되길 바라지만 약속한 시점이 오면 쉽게 물러날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경찰도 포장마차 운영에 조직폭력배가 개입하거나 조합과 갈등이 빚어질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지난해 7월에도 폭력 조직 ‘용산역전 식구파’가 역 앞 포장마차에서 자릿세를 받고 재개발 이권에 개입하다 검거됐다. 용산경찰서 관계자는 “현재 포장마차촌에선 용역업체가 경비를 담당하는데 폭력 조직과 연계되지 않았는지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친구와 카카오톡으로 약속시간을 정하고 스마트폰으로 맛 좋다고 소문난 파스타 음식점을 예약했다. 지하철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을 열어 최단 경로를 검색할 때 페이스북 알림이 떴다. 모바일뱅킹으로 보낸 용돈을 잘 받았다는 어머니 쪽지다. 스마트폰 자판을 누르는 손지민 씨(29·여)와 박동희 씨(26)의 손놀림이 능숙하다. 이 장면이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손 씨는 밝기만 분간할 수 있는 1급 시각장애인, 박 씨는 빛조차 구별할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다. 15일 ‘흰 지팡이의 날(시각장애인의 날)’을 사흘 앞둔 12일 오후 서울 노원구 상계동 웹접근성평가센터에서 만난 이들은 “예전에는 시각장애인을 상징하는 흰 지팡이가 외부로 이끌어줬지만 요새는 스마트폰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들의 삶에 스마트폰이 새로운 지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친구들과 대화하고 뉴스 앱으로 새 소식을 얻는 게 비장애인들만의 세계가 아닌 것이다. 손 씨와 박 씨가 처음부터 스마트폰에 익숙했던 건 아니다. 손 씨가 실명한 건 불과 5년 전. 처음엔 텔레비전 영화자막이 잘린 것처럼 보이더니 어느 날 아침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의사들은 눈 혈관에 노폐물이 쌓이면서 망막에 염증이 생긴 것 같다고만 했다. 수술했지만 시력을 되찾지는 못했다. 대기업 생산라인에 근무하던 손 씨는 일을 그만두고 고향집에 틀어박혀 2년 동안 가족 외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인생이 끝난 줄 알았다. 그러다 지난해 시각장애인연합회 부설 사회적기업인 웹접근성평가센터에서 일하려고 면접을 보면서 새 세상에 눈을 떴다. 면접 대기실에서 본 다른 시각장애인들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웹서핑을 즐기고 있었다. 시각장애인 커뮤니티에선 온라인으로 구인정보를 얻었고 페이스북에선 새로 나온 보조기구 사용 후기를 공유했다. 글씨는커녕 전원이 들어왔는지도 알아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들이 스마트폰을 비장애인 못지않게 다루는 건 ‘음성 지원’ 기능 덕분이다. 장애인이 짚은 자판의 자음과 모음을 스마트폰이 소리 내 읽어준다. 원하는 글자를 조합해 두 번 터치하면 글자를 만들 수 있다. 손 씨와 박 씨는 조금 불편하지만 빛 없이도 글을 읽고 쓸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다시 세상으로 나가보자’고 결심할 수 있었다. 손 씨는 가장 좋아하는 글귀라며 스마트폰으로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고 쳐서 보여줬다. 아홉 글자 치는 데 45초 걸렸다. 비장애인이 입력하는 것보다는 느렸지만 그를 세상으로 이끄는 데는 충분했다. 하지만 손 씨의 시각장애인 친구 대다수는 아직 스마트폰을 쓸 엄두를 못 낸다. 우선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판 두드리는 걸 겁내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스마트폰용 앱 대부분이 음성 지원 기능을 형식적으로만 갖추고 시각장애인이 쓸 수 있을 만큼 정교하게 지원하지 않는 탓도 크다. 정부는 지난해 9월 ‘모바일 앱 접근성 지침’을 발표해 스마트폰용 앱을 만들 때 음성을 지원하게 했지만 아직 정착되지 않고 있다. 손 씨와 박 씨의 주업무는 스마트폰용 앱이 얼마나 장애인 친화적인지 평가하는 일이다. 아쉽게도 이들이 본 장애인 친화 정도는 낙제점이다. 시각장애인연합회가 공공기관에서 나온 앱 100개를 평가해보니 3개를 빼고 전부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손 씨는 “정보기술이 시각장애인을 배제하고 발전한다면 지팡이를 걷어차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라고 말했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이들에게 학교는 친구라는 이름의 ‘적’이 득실대는 곳이다. 대통령까지 나서 ‘학교폭력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지원군을 보내준다고 약속한 지 열 달이 돼 가지만 이들의 하루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더 기다릴 수도, 버틸 수도 없다. 이들은 힘을 합쳐 일진들에게 맞서기로 했다. ‘왕따 저항군’ 리더 이윤석 군(17) 정소연(16) 조성희 양(가명·17) 김성준 군(18)의 이야기다. 이들이 운영하는 인터넷 ‘왕따들의 모임(왕모)’ 카페는 저항군의 전진기지다. 2006년 처음 생겨난 이 기지에서 윤석이와 친구들은 전국에서 모인 이름 없는 왕따들과 함께 탈출 전략을 짠다. 하지만 하루 이기면 다음 날은 지기도 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평범하지만 소중한 사실을 믿기 위해 발버둥치는 분투로 채워져 있다.○ ‘왕따 저항군 리더’의 바쁜 하루 리더 윤석이의 하루는 오전 6시 반 요란한 스마트폰 벨소리로 시작한다. 요즘엔 연일 A의 전화다. 학교 가기가 죽기보다 싫다는 친구다. 어제도 학교에서 어떤 일진의 주먹이 더 강한지 직접 맞아 보고 점수를 불러야 했다. 일진들은 오늘 “빨리 와라, 펀치머신”이라고 A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다. 윤석이는 A에게 일진이 보낸 메시지를 저장해 두고 쉬는 시간마다 상담실에 가 있으라고 일렀다. 저장한 메시지는 피해를 신고할 때 증거로 낼 수 있고, 일진들도 상담실까지 따라오진 않기 때문이다. 아침을 먹을 때도 스마트폰을 놓지 못한다. 왕모 카페에 들어가 회원 수를 확인한다. 매일 조금씩 늘어 이제 1283명이다. “힘을 합쳐 왕따에서 탈출하고 싶어요”라는 신입의 글에 ‘환영한다’고 댓글을 남겼다. 카페 아이들은 영화 ‘터미네이터’의 로봇 군단에 맞서는 인간 저항군과 닮았다. 윤석이는 자신이 다니는 경기 구리시 S고등학교에서 보조상담가로 봉사활동을 한다. 선생님이 상담실을 비우면 윤석이가 친구들을 맞이한다. 친구들은 윤석이가 중학교 때 ‘은따(은근한 따돌림)’를 당했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왕따인 친구들은 윤석이를 더 믿는다. 집으로 돌아가 스마트폰을 열면 하루 동안 카페 친구들이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가 쏟아진다. “상담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을 걸어 달라”며 카페에 연락처를 남긴 뒤부터 매일 2, 3명이 윤석이를 찾는다. ‘와이파이 셔틀(스마트폰의 핫스폿 기능을 항상 켜 놓아 일진이 와이파이를 쓸 수 있게 하는 것)’로 찍혔다고 하소연하는 친구에게 요금 명세를 저장해 신고하라고 조언하다 보면 날이 어두워진다. 밤이 깊어지면 카페의 ‘죽음 or 생명’ 게시판을 꼼꼼히 본다. “괴롭힌 아이들을 차례차례 찌르고 뛰어내리고 싶다”는 거친 글들이 올라온다. 윤석이는 하나하나 댓글을 남긴다. 기껏해야 “힘내라, 나도 똑같았다”는 댓글이다. 별 것 아닌 듯하지만 윤석이는 힘없는 왕따들이 일진 ‘터미네이터’에게 반란을 일으키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왕따에서 상담가로 “조별 수업을 할 거니까 5명씩 모여라.” 선생님이 이런 말을 할 때마다 열여섯 살 소연이는 가슴이 서늘해진다. 중학교 1학년 때가 떠올라서다. 조를 짜고 나면 항상 혼자 남겨졌다. 지금은 따돌리는 친구들이 없지만 소연이는 그때를 자주 떠올린다. 처음엔 말 붙이는 친구가 없어서 심심한 게 다였다. 그런데 친구 없는 아이로 찍히자 소연이는 ‘노는 아이들’의 표적이 됐다. 쉬는 시간에 엎드려 있으면 아이들은 가위로 소연이의 머리카락을 잘랐다. 소연이는 가위 소리를 듣고도 자는 척했다. 맞는 것보단 나았다. 괴롭히던 아이 한 명은 “집을 구경하고 싶다”며 쫓아와 소연이가 기르던 토끼를 집어던져 죽였다. 부모에겐 말하지 못했다. 일이 커지면 아이들이 복수할 것 같았다. 그때 ‘친구’라는 단어는 소연이에게 ‘악마’와 동의어였다. 사람을 피했고 혼자 있는 시간엔 인터넷만 했다. 그러다 찾은 곳이 왕모 카페였다. 그곳엔 ‘또 다른 나’가 가득했다. 하소연할 곳 없는 왕따끼리 의지하며 괴롭힘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쳤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소연이는 그곳에서 처음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을 느꼈다. 열네 살이던 2010년, 소연이는 ‘반란’에 나서 봤다.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에게 저항하기로 결심한 것. 카페 친구들의 도움이 컸다. 친구들은 소연이에게 피해 신고 요령을 알려줬다. 보복을 걱정하는 소연이를 오프라인 모임에서 만나 “신고하지 않으면 괴롭힘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설득했다. 소연이는 맞아서 생긴 상처의 사진과 아이들이 보낸 욕설 문자를 모아 학교에 알렸다. 카페 친구들이 조언한 대로였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가 열렸고 그때 처음 딸의 상처를 안 엄마는 학교에서 울었다. 아이들은 소연이에게 사과하고 반을 옮겨야 했다. 아이들은 눈에서 멀어진 소연이를 더는 괴롭히지 않았다. 허무할 정도로 간단했다. 소연이는 지금은 왕모 카페에서 왕따 친구들의 문제를 상담해 준다. 주로 보복이 무서워 참고 사는 아이들이다. 학교에서도 친구가 생겼다. 미장원에서 머리카락을 자를 때마다, 토끼를 기르던 방 한 구석을 가만히 볼 때마다 문득 떠오르는 중학교 때의 아픈 기억은 조금씩 뜸해진다.○ 때론 쉬운 듯, 하지만 어려운 왕따 극복 열일곱 성희는 올해 7월 친구 앞에서 문구용 칼로 손목을 그었다. 사소한 오해였다. 친구가 “왜 험담했냐, 절교하자”는 말을 꺼냈고, 그때 성희의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일어난 일이다. 정신을 차려 보니 왼손목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자해 사건 전 성희는 종종 왕모 카페에 소설을 써서 올렸다. 악마에게 시달려 목숨을 끊으려던 한 아이가 천사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살아간다는 판타지였다. 반 아이들로부터 외면받았던 중학교 때의 경험을 녹였다. 카페 회원들이 “소설 덕분에 기운을 얻는다”고 댓글을 남기면 성희도 옛 기억을 조금씩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절교’라는 친구의 말과 함께 모든 기억이 유령처럼 부활했다. 성희가 처음 손목을 그을 생각을 떠올렸던 건 2009년 3월이다. 중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 바뀐 반에서 새 친구들과 잘 지내보려고 마음먹었지만 이미 왕따 소문이 퍼진 터라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았다. 성희는 이때 처음 ‘이렇게 살 필요가 있나’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깊어질수록 마음에는 그 누구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생채기가 생겼다. 올 7월 성희가 자해를 시도한 배경이다. 성희와 친구는 최근 화해했고 다행히 손목의 상처는 깊지 않았다. 소설도 다시 시작했다. 손목은 다른 친구들이 보지 못하도록 가리고 다녔다. 붕대를 풀 때쯤 담임교사가 성희를 불렀다. 성희가 “자살 시도 경험이 있다”는 설문 항목에 체크해서였다. 선생님은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성희를 돌려보냈다. 다음 날 반 아이들이 성희에게 몰려왔다. “너 손목 그었다면서? 한번 보여 줘 봐.” 선생님이 반 아이들에게 비밀을 말할 줄 몰랐던 성희는 다시 어지러움을 느꼈다. 힘을 내 카페 활동에 집중하고는 있지만 성희가 쓴 소설 속 주인공은 요즘 “사라지고 싶다”는 대사를 자주한다.○ “학교폭력과의 전쟁은 학생만 치르죠” 열여덟 살 성준이는 왕모 카페 친구들과 활발히 어울리지만 학교에선 왕따다. 학교 아이들은 2월에도 성준이를 때리고 욕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속으로만 앓았겠지만 이번엔 학교에 알렸다. ‘학교폭력과의 전쟁’을 선언한 학교에 기대를 걸어 보자고 마음먹었다. 선생님은 조용히 성준이를 불렀다. 학교폭력을 공연히 문제 삼으면 반 전체에 피해가 갈 수도 있다는 게 요지였다. 성준이는 수긍하면서도 “선생님들은 인사고과에 좋지 않을까 봐 폭력 신고를 받아도 쉬쉬한다”는 카페 친구들의 말을 떠올렸다. 반 아이들의 괴롭힘이 이어졌다. 성준이는 지난달 다시 용기를 내 학교에 알렸다. 성준이를 괴롭힌 아이들은 “폭력이 아니라 장난친 것뿐”이라며 빠져나갔다. 학교는 “폭력 증거가 없다”며 ‘구두 경고’ 조치만 내렸다. 성준이는 유치원 때와 비슷하다고 느꼈다. 올해는 유난히 설문조사가 많은 해였다. 학교폭력 실태 전수조사, 특별 설문조사, 2차 전수조사…. 첫 설문이 끝났을 때 선생님은 “설문지를 뒤에서부터 걷어 오라”고 했다. 피해 사실을 적은 성준이는 숨이 멎을 뻔했다. 설문지를 걷는 아이들은 성준이를 괴롭히는 패거리의 일원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성준이처럼 ‘일진에게 맞았다’고 적은 아이들은 몇 번이고 상담실에 불려갔다. 모든 학생은 누가 ‘밀고자’인지 알았고, 일진의 눈과 주먹은 다시 피해 신고 학생에게 집중됐다. 두 번째 설문부턴 성준이와 왕따 친구들 중 그 누구도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올해 3∼8월 학교폭력 가해 학생 1만7970명 중 3752명은 피해 학생에게 서면으로 사과했다. 사회봉사를 한 아이는 3076명, 특별교육은 2615명이다. 성준이는 성의 없이 갈겨쓴 사과문을 받고 싶지 않았다. 일진들에게 봉사활동을 시키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저 자신을 괴롭히는 아이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고 싶을 뿐이다. 피해 학생 1만2017명 중 일시보호 조치를 받은 아이는 1030명뿐이다. 성준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상 편집 일로 돈을 벌어 ‘왕따들을 위한 쉼터’를 만들고 싶다. 왕모 카페처럼 누구나 편하게 와서 쉬었다 가는 공간이다. 아직 이 생각에 동참하는 어른은 없다. 하지만 성준 윤석 소연 성희처럼 서로 기댈 친구가 있다는 사실 하나에 위로받는 많은 ‘왕따’는 오늘도 ‘반란’을 꿈꾼다.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