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로 앱 열어 웹서핑… 스마트폰은 ‘똑똑한 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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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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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일 시각장애인의 날… 손지민-박동희씨의 스마트라이프

시각장애인 박동희 손지민 씨(왼쪽부터)에게 스마트폰은 세상과 고통하기 위해 필요한 지팡이와 같다. 12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 웹접근성평가센터에서 박 씨와 손 씨가 스마트폰을 들어 보이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시각장애인 박동희 손지민 씨(왼쪽부터)에게 스마트폰은 세상과 고통하기 위해 필요한 지팡이와 같다. 12일 서울 노원구 상계동 웹접근성평가센터에서 박 씨와 손 씨가 스마트폰을 들어 보이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친구와 카카오톡으로 약속시간을 정하고 스마트폰으로 맛 좋다고 소문난 파스타 음식점을 예약했다. 지하철 애플리케이션(앱·응용프로그램)을 열어 최단 경로를 검색할 때 페이스북 알림이 떴다. 모바일뱅킹으로 보낸 용돈을 잘 받았다는 어머니 쪽지다. 스마트폰 자판을 누르는 손지민 씨(29·여)와 박동희 씨(26)의 손놀림이 능숙하다. 이 장면이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손 씨는 밝기만 분간할 수 있는 1급 시각장애인, 박 씨는 빛조차 구별할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다.

15일 ‘흰 지팡이의 날(시각장애인의 날)’을 사흘 앞둔 12일 오후 서울 노원구 상계동 웹접근성평가센터에서 만난 이들은 “예전에는 시각장애인을 상징하는 흰 지팡이가 외부로 이끌어줬지만 요새는 스마트폰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들의 삶에 스마트폰이 새로운 지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친구들과 대화하고 뉴스 앱으로 새 소식을 얻는 게 비장애인들만의 세계가 아닌 것이다.

손 씨와 박 씨가 처음부터 스마트폰에 익숙했던 건 아니다. 손 씨가 실명한 건 불과 5년 전. 처음엔 텔레비전 영화자막이 잘린 것처럼 보이더니 어느 날 아침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의사들은 눈 혈관에 노폐물이 쌓이면서 망막에 염증이 생긴 것 같다고만 했다. 수술했지만 시력을 되찾지는 못했다. 대기업 생산라인에 근무하던 손 씨는 일을 그만두고 고향집에 틀어박혀 2년 동안 가족 외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인생이 끝난 줄 알았다.

그러다 지난해 시각장애인연합회 부설 사회적기업인 웹접근성평가센터에서 일하려고 면접을 보면서 새 세상에 눈을 떴다. 면접 대기실에서 본 다른 시각장애인들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웹서핑을 즐기고 있었다. 시각장애인 커뮤니티에선 온라인으로 구인정보를 얻었고 페이스북에선 새로 나온 보조기구 사용 후기를 공유했다.

글씨는커녕 전원이 들어왔는지도 알아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들이 스마트폰을 비장애인 못지않게 다루는 건 ‘음성 지원’ 기능 덕분이다. 장애인이 짚은 자판의 자음과 모음을 스마트폰이 소리 내 읽어준다. 원하는 글자를 조합해 두 번 터치하면 글자를 만들 수 있다. 손 씨와 박 씨는 조금 불편하지만 빛 없이도 글을 읽고 쓸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고 ‘다시 세상으로 나가보자’고 결심할 수 있었다.

손 씨는 가장 좋아하는 글귀라며 스마트폰으로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고 쳐서 보여줬다. 아홉 글자 치는 데 45초 걸렸다. 비장애인이 입력하는 것보다는 느렸지만 그를 세상으로 이끄는 데는 충분했다.

하지만 손 씨의 시각장애인 친구 대다수는 아직 스마트폰을 쓸 엄두를 못 낸다. 우선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판 두드리는 걸 겁내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스마트폰용 앱 대부분이 음성 지원 기능을 형식적으로만 갖추고 시각장애인이 쓸 수 있을 만큼 정교하게 지원하지 않는 탓도 크다. 정부는 지난해 9월 ‘모바일 앱 접근성 지침’을 발표해 스마트폰용 앱을 만들 때 음성을 지원하게 했지만 아직 정착되지 않고 있다.

손 씨와 박 씨의 주업무는 스마트폰용 앱이 얼마나 장애인 친화적인지 평가하는 일이다. 아쉽게도 이들이 본 장애인 친화 정도는 낙제점이다. 시각장애인연합회가 공공기관에서 나온 앱 100개를 평가해보니 3개를 빼고 전부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손 씨는 “정보기술이 시각장애인을 배제하고 발전한다면 지팡이를 걷어차는 것과 다름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시각장애인#스마트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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