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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 다시 김인식 감독(69)이다. 김인식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장이 내년 3월 열리는 제4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감독으로 5일 선임됐다. 단기전인 국제대회에서 김 감독의 지도력은 이미 검증돼 있다. 처음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 금메달을 시작으로 2006년 제1회 WBC 4강, 2009년 제2회 WBC 준우승, 지난해 프리미어12 우승을 이끌었다. 그렇지만 김 감독은 한국 나이로 어느덧 70세다. 2009년 한화 감독을 마지막으로 프로야구 현장에서도 물러나 있다. WBC 감독직은 엄청난 부담 속에 자기를 희생해야 하는 자리다. 한국 야구는 왜 다시 한 번 김 감독에게 큰 짐을 지워야 했을까. 가장 큰 이유는 대안 부재다. KBO는 물론 김 감독도 현역 프로야구 감독 몇몇에게 WBC 사령탑을 맡아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소속팀에 신경 쓰는 것만으로도 벅차다는 게 이유였다. 작년까지만 해도 KBO 야구규약에는 ‘국가대표 감독은 현역 프로야구 감독으로서 전년도 우승 구단, 준우승 구단 감독 순으로 KBO 총재가 선임한다’고 돼 있었다. 이에 따라 2013년 열린 제3회 WBC 사령탑은 전년도 한국시리즈 우승팀인 삼성의 류중일 감독이 맡았다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 대표팀 역시 전년도 우승을 차지했던 류 감독이 다시 이끌었다. WBC 1회전 탈락으로 체면을 구겼던 류 감독은 아시아경기에서는 금메달로 명예회복에 성공했다. 하지만 올해 3회 KBO 이사회는 ‘대회 개최시기와 비중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KBO 총재가 대표팀 감독을 선임한다’고 규정을 개정했다. 국가대표팀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겠다는 게 내세운 명분이었지만 현실적으로는 현역 감독들이 대표팀 감독 겸직에 큰 부담을 호소했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구본능 KBO 총재께서 한 번만 더 맡아달라고 해서 수락을 했다. 벌써부터 걱정이 많지만 남은 기간 동안 철저히 준비해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겠다”고 말했다. 떠맡듯 다시 대표팀 사령탑에 복귀했지만 김 감독만큼 해외파 등 국내외 여러 선수들을 아우를 만한 사람을 찾기 힘든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김 감독에 따르면 메이저리그 시애틀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대호는 최근 김 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부상만 없다면 대표팀에 합류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 직전에는 오른 손목 수술 후 재활 중인 미네소타 박병호로부터 “감독 선임을 축하드린다”는 내용의 문자를 받았다. 김 감독은 “‘몸 상태가 어떤지 궁금하다. 가끔 연락하기 바란다’고 답장했다”며 웃었다. 김 감독은 “막상 선수 구성을 생각하니 믿을 만한 오른손 투수가 없는 게 가장 큰 걱정이다. 세인트루이스 마무리 투수 오승환이 불법 도박으로 물의를 일으키긴 했지만 국가를 위해 봉사할 마음이 있다고 한다면 반드시 뽑아야 하는 게 아닌가 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WBC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일본, 도미니카공화국, 쿠바 등 전 세계 16개국이 참가해 정상을 가리는 세계 최고의 야구 국가대항전이다. 메이저리그 사무국(MLB) 주도로 2006년 창설돼 2009년 2회 대회가 열렸고, 이후 4년에 한 번씩 열린다. 2017 WBC는 제4회 대회로 1라운드는 내년 3월 초 서울 고척 스카이돔과 일본 도쿄돔, 미국 마이애미 말린스파크, 멕시코 과달라하라 등 4곳에서 열린다. B조에 속한 한국은 3월 7~10일 고척 스카이돔에서 대만, 네덜란드 등과 함께 풀 리그를 벌인다. 1라운드 각 조 상위 두 팀은 3월 12~15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리는 2라운드에 진출한다. 2라운드에서 2위안에 오르면 3월 20~22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으로 이동해 준결승과 결승전을 치른다. 한국 대표팀은 1월 말 최종 엔트리를 확정한 뒤 2월 중순 훈련에 돌입할 예정이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고생은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이 했는데 제가 박수를 받고 있네요. 혹시 4년 뒤 도쿄 올림픽에 제가 나가야 되는 건가요?” 환영사를 위해 단상에 선 ‘역도 여제’ 장미란(33·용인대 교수)의 농담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졌다. 4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브라질 음식점 ‘텍사스 데 브라질’에서는 지난달 끝난 리우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들을 위한 파티가 열렸다. 장미란이 이사장으로 재직 중인 장미란재단과 이 재단을 후원해온 비자코리아, 썬앳푸드 등이 함께 마련한 ‘리우에서 돌아온 우리들의 밤’ 행사였다. 장미란은 “결과도 중요하지만 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고 국민들에게 감동을 안겨준 선수들의 땀과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자 자리를 마련했다. 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항상 선수들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열심히 지원해 주시는 선수지원단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전해 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이날 행사는 여러모로 특별했다. 무엇보다 올림픽 메달리스트와 비메달리스트, 인기 종목과 비인기 종목에 대한 차별이 없었다. 행사 취지에 공감한 많은 선수들이 편한 마음으로 이 자리를 찾았다. 여자 골프 금메달리스트 박인비와 남자 펜싱 금메달리스트 박상영, 여자 역도 동메달리스트 윤진희, 여자 유도 은메달리스트 정보경 등 리우 올림픽에서 빼어난 성적을 올린 선수들도 참석했지만 메달을 따지 못한 선수들이 더 많이 초대받았다. 여자 펜싱 남현희는 딸 공하이 양과 함께 자리했고, 남자 육상의 김덕현과 윤승현, 남자 체조의 박민수, 여자 탁구의 서효원과 양하은, 여자 배구의 김수지와 남지연 등이 자리를 빛냈다. 리우 올림픽 남자 사이클 개인도로에 출전했지만 실격을 당했던 서준용은 “뜻밖에 초대를 해주셔서 깜짝 놀랐다. 이런 관심이 4년 뒤 도쿄 올림픽을 향한 큰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리우 올림픽에 출전했던 선수들에 대한 소개가 끝난 뒤엔 리우까지 날아와 선수들의 식사와 몸 관리를 책임진 태릉선수촌 조리사들과 물리치료사들도 단상에 올랐다. 리우 현지 코리아하우스에서 선수들의 식사 및 도시락 보급을 담당했던 신승철 검식사는 “우리가 정성껏 만든 음식을 선수들이 먹고 좋은 성적을 낼 때 가장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김미현 물리치료사는 “대회 초반 기대만큼 메달이 나오지 않아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여느 대회에 비해 큰 부상을 당한 선수들이 없어 다행이었다. 선수들이 최선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게 우리도 절실한 마음으로 도왔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이날 행사 자리에는 “할 수 있다”라는 말을 유행어로 만들며 극적인 역전 금메달을 따낸 박상영의 부친 박정섭 씨도 함께했다. 박 씨는 “아직 어린 상영이가 장미란 이사장의 모습을 보고 많이 배웠으면 좋겠다. 선수 때와 은퇴 후의 모습이 정말 본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리우 올림픽 기간 중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으로 뽑힌 유승민도 “비인기 종목 활성화를 위해 경기장 안팎에서 노력하는 장미란재단은 전 세계에 널리 알릴 만한 롤 모델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장미란재단에서 지원하는 선수들의 멘토 역할을 잘 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시간이 되는 대로 활동에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어제 잘 맞다가 오늘 안 맞는 게 골프다. 반대로 안 되던 골프가 하루 지나면 잘되기도 한다. 후자의 주인공은 박성현(23·넵스)이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장타 여왕 박성현이 전날 부진을 딛고 하루 만에 선두로 올라섰다. 박성현은 2일 충남 태안 골든베이 골프장(파72)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한화금융클래식 2라운드에서 버디 7개와 더블보기 1개 등으로 5타를 줄였다. 전날 2오버파의 부진 속에 공동 35위에 머물렀던 박성현은 중간 합계 3언더파 141타로 김지현(23·롯데) 장수화(27·대방건설) 등과 함께 공동 선두로 나섰다. 이에 비해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장타 1위 렉시 톰프슨(21·미국)은 하루 전과는 극과 극의 모습을 보였다. 전날 강풍 속에서도 무결점 플레이로 5언더파 67타를 치며 단독 선두로 나섰던 톰프슨은 2라운드에서는 경기 내내 퍼팅 난조에 시달리며 단 하나의 버디도 잡지 못했다. 3오버파 75타를 기록한 톰프슨은 박성현 등에 1타 뒤진 4위로 처졌다. 올해 22개 대회에 출전해 절반인 11개 대회에서 컷 탈락했던 장수화는 이날 하루에만 4타를 줄이며 선두 경쟁에 뛰어 들었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더워서 그랬다. 다른 의미는 없다.” 지난달 30일 SK와의 광주 경기에 앞서 머리를 바싹 밀고 그라운드에 나타난 김기태 KIA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취재진의 거듭된 질문에도 “나만의 스타일”이라고도 했다. 맞는 말이다. 김 감독에겐 그만의 스타일이 있다. 김 감독은 전지훈련지의 따가운 햇살 아래에서도 선크림을 바르지 않는다. “찢어져서 30바늘 정도는 꿰매야 부상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도 농담처럼 한다. 그런 그에게 삭발 정도가 뭐 대수겠는가. 선수 시절에도 그는 종종 삭발을 했다. LG 수석코치를 맡았던 2011년에도 머리를 하얗게 밀었다. 그렇지만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김 감독은 “선수 시절 후배들이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동참해 달라고 해서 삭발을 하고 운동장에 나갔는데 막상 가서 보니 나만 머리를 빡빡 밀었더라”고 농담조로 말한 적이 있다. 2012년 지휘봉을 잡았던 LG 선수들이 단체로 삭발한 모습을 보고는 “나도 여러 번 해봤지만 별로 권할 게 못 되더라”며 웃어넘기기도 했다. 김 감독의 반응은 이번에도 비슷하다. 머리를 깎았다고 해서 분위기를 심각하거나 무겁게 만들지 않는다. 하지만 수장의 삭발은 큰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프로야구 35년 역사에서 삭발한 감독을 보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김 감독이 삭발을 통해 선수단에 전하는 가장 큰 메시지는 절실함이다. KIA는 요즘 SK, LG와 치열한 4위 싸움을 벌이고 있다. 매 경기 결과에 따라 순위가 요동친다. 포스트시즌 진출과 탈락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체력이 떨어진 요즘 같은 시점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누가 더 절실하게 이기려 하느냐는 것이다. 무덤덤하게 보이려 애쓰지만 김 감독의 머릿속은 항상 복잡하게 돌아간다. 지난해 3피트 라인 항의를 하다가 그라운드에 드러누운 것이나(이때 ‘눕기태’란 별명을 얻었다), 3루수를 포수 뒤에 위치시키는 기상천외한 시프트(규칙 위반으로 실행하진 못했다)를 지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상대적으로 약한 전력으로 강한 상대를 이기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는 것이다. 감독의 절실함을 받아들이는 것은 선수들의 몫이다. 김 감독과는 반대로 메이저리그에서는 없던 머리카락이 돋아난 선수가 있다. 9차례 올스타 선정에 빛나는 19년 차 베테랑 카를로스 벨트란(텍사스)이다. 원래 민머리인 그는 지난달 29일 클리블랜드전에서 단정한 헤어스타일로 카메라에 잡혀 화제가 됐다. 알고 보니 그는 마커펜으로 머리를 검게 칠하고 나타나 주변 선수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 것이었다. 텍사스는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선두를 질주하며 잘나가고 있다. 최고참급인 벨트란은 마지막까지 편하게 잘해 보자며 서슴없이 스스로를 망가뜨린 것이다.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하는 야구에서 개성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김 감독과 벨트란은 모자를 벗었을 때 드러나는 머리카락으로 강한 메시지를 전했다. 바로 ‘팀 퍼스트’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더워서 그랬다. 다른 의미는 없다.” 30일 SK와의 광주 경기에 앞서 머리를 바싹 밀고 그라운드에 나타난 김기태 KIA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취재진의 거듭된 질문에도 “나만의 스타일”이라고도 했다. 맞는 말이다. 김 감독에겐 그만의 스타일이 있다. 김 감독은 전지훈련 지의 따가운 햇살 아래에서도 선크림을 바르지 않는다. “찢어져서 30바늘 정도는 꿰매야 부상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도 농담처럼 한다. 그런 그에게 삭발정도가 뭐 대수겠는가. 선수 시절에도 그는 종종 삭발을 했다. LG 수석코치를 맡았던 2011년에도 머리를 하얗게 밀었다. 그렇지만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김 감독은 “선수 시절 후배들이 분위기 쇄신 차원에서 동참해달라고 해서 삭발을 하고 운동장에 나갔는데 막상 가서 보니 나만 머리를 빡빡 밀었더라”고 농담조로 말한 적이 있다. 2012년 지휘봉을 잡았던 LG 선수들이 단체로 삭발한 모습을 보고는 “나도 여러 번 해 봤지만 별로 권할 것 못 되더라”며 웃어넘기기도 했다. 김 감독의 반응은 이번에도 비슷하다. 머리를 깎았다고 해서 분위기를 심각하거나 무겁게 만들지 않는다. 하지만 수장의 삭발은 큰 의미를 가질 수밖에 없다. 프로야구 35년 역사에서 삭발한 감독을 보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김 감독이 삭발을 통해 선수단에 전하는 가장 큰 메시지는 절실함이다. KIA는 요즘 SK, LG와 치열한 4위 싸움을 벌이고 있다. 매 경기 결과에 따라 순위가 요동친다. 포스트시즌 진출과 탈락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중이다. 체력이 떨어진 요즘 같은 시점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누가 더 절실하게 이기려 하느냐는 것이다. 항상 무덤덤하게 보이려 애쓰지만 김 감독의 머리 속은 항상 복잡하게 돌아간다. 지난해 3피트 라인 항의를 하다가 그라운드에 드러누운 것이나(이 때 눕기태란 별명을 얻었다), 3루수를 포수 뒤에 위치시키는 기상천외한 시프트(규칙 위반으로 실행하진 못했다)를 지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상대적으로 약한 전력으로 강한 상대를 이기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는 것이다. 감독의 절실함을 받아들이는 것은 선수들의 몫이다. 김 감독과는 반대로 메이저리그에서는 없던 머리카락이 돋아난 선수가 있다. 9차례 올스타 선정에 빛나는 19년차 베테랑 카를로스 벨트란(텍사스)이다. 원래 민머리인 그는 지난 달 29일 클리블랜드전에서 단정한 헤어스타일로 카메라에 잡혀 화제가 됐다. 알고 보니 그는 마커펜으로 머리를 검게 칠하고 나타나 주변 선수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한 것이었다. 텍사스는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선두를 질주하며 잘 나가고 있다. 최고참급인 벨트란은 마지막까지 편하게 잘 해 보자며 서슴없이 스스로를 망가뜨린 것이다.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하는 야구에서 개성을 드러내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김 감독과 벨트란은 모자를 벗었을 때 드러나는 머리카락으로 강한 메시지를 전했다. 바로 ‘팀 퍼스트’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중 누구 연봉이 더 높을까.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46·스위스)은 29일 발간된 스위스 ‘블리크’지와의 인터뷰에서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올해 연봉은 200만 스위스프랑(약 23억 원)보다 조금 적게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부패 스캔들로 축구계에서 퇴출된 제프 블라터 전 FIFA 회장이 지난해 받은 360만 달러(약 40억5000만원)보다는 훨씬 적은 금액이다. 블라터 회장 시절 FIFA는 회장 및 집행위원들의 연봉 공개를 거부했지만, 올해 2월 취임한 인판티노 회장은 조직의 투명성을 위해 연봉이 확정되면 공개하기로 약속했다. 반면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63·독일)의 연봉은 22만5000유로(약 2억8300만 원). IOC 위원들은 무보수 명예직이지만 IOC는 위원장에 대해서만큼은 1년 내내 직무 상태로 규정해 이 액수를 연간 보수로 책정했다. 지난해 IOC가 발표한 보상 정책에 따르면 IOC 집행위원은 회의 참석 때만 일당 개념으로 하루에 900달러(약 101만 원)씩을 받는다. 일반 IOC 위원은 그 절반인 450달러(약 51만 원)를 받는다. 대신 항공료와 숙박료는 IOC가 일괄 계산한다.이헌재 기자 uni@donga.com}
FIFA 회장과 IOC 위원장 중 누구 연봉이 더 높을까?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46·스위스)은 29일 발간된 스위스 ‘브릭’지와의 인터뷰에서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올해 연봉은 200만 스위스 프랑(약 23억 원)보다 조금 적게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부패 스캔들로 축구계에서 퇴출된 제프 블라터 전 FIFA 회장이 지난해 받은 360만 달러(약 40억 5000만원)보다는 훨씬 적은 금액이다. 블라터 회장 시절 FIFA는 회장 및 집행위원들의 연봉 공개를 거부했지만, 올해 2월 취임한 인판티노 회장은 조직의 투명성을 위해 연봉이 확정되면 공개하기로 약속했다. 반면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63·독일)의 연봉은 22만 5000유로(약 2억 8300만 원). IOC 위원들은 무보수 명예직이지만 IOC는 위원장에 대해서만큼은 1년 내내 직무 상태로 규정해 이 액수를 연간 보수로 책정했다. 지난해 IOC가 발표한 보상 정책에 따르면 IOC 집행위원은 회의 참석 때만 일당 개념으로 하루에 900달러 씩(약 101만 원)을 받는다. 일반 IOC 위원은 그 절반인 450달러(약 51만 원)를 받는다. 대신 항공료와 숙박료는 IOC가 일괄 계산한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는 전 세계에서 2만 명에 가까운 선수와 관계자들이 모여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중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기사화하지 못한 이야기도 적지 않다. 17일간의 리우 올림픽 취재를 마감하면서 묻어버리기 아까운,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리우의 뒷이야기’들을 소개한다. ○ 6동 605호의 방장과 방졸 리우 올림픽 선수촌에서 최고의 명당은 6동 605호였다. 2명이 한방을 쓰는 선수촌에서 이 방의 방장과 방졸은 모두 금메달을 따냈다. 태권도 여자 49kg급에서 방졸인 김소희(22·한국가스공사)가 먼저 금메달을 따냈고, 이어 방장인 오혜리(28·춘천시청)가 태권도 여자 67kg급에서 정상에 오른 것. 방졸이 방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진 않았을까. 김소희는 “먼저 금메달을 땄지만 인터넷에 달린 악플(악성 댓글)을 읽느라 미처 거기까지 신경 못 썼다”며 웃었다. 둘은 태릉선수촌에서도 한방을 썼다.○ 007이 된 손연재 손연재(22·연세대)는 취재진뿐만 아니라 대한체육회에도 리우 도착 일시를 정확히 알리지 않았다. 이 같은 ‘007작전’에는 러시아의 입김이 작용했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상파울루에서 손연재가 러시아 선수들과 훈련할 때 한 한국 방송사가 비밀리에 이를 촬영했다. 이에 대해 러시아 선수단이 손연재 측에 불쾌감을 표했다”고 전했다. 손연재는 어머니도 놀라게 했다. 일본 언론과 일본어로 인터뷰한 딸의 모습을 본 손연재의 어머니는 “우리 딸이 어렸을 때 조금 배운 일본어인데, 아직도 잘하네”라며 놀라워했다.○ 자원봉사요원으로 위장한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으로 선출된 유승민 삼성생명 탁구단 코치가 리우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선수촌 내 버스 터미널이었다. 오가는 선수가 많아 얼굴을 알리기에 적합했기 때문. 그곳에서 자신을 자원봉사요원인 줄 알고 “경기장 가는 버스가 어떤 거예요”라고 묻는 선수들에게 유 위원은 길을 알려준 뒤 ‘한 표’를 부탁했다. 25일간의 그런 노력에 처음엔 모른 척하던 북한 선수들도 유 위원에게 “추천했습네다(찍었습니다)”라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사진 한 장이 만든 월드 스타 경기 도중 낙차사고를 당해 병원 신세를 진 사이클 박상훈(23·서울시청)은 메달의 꿈은 접었지만 선수촌에서 인기인이 되는 행운을 얻었다. 사고 사진을 본 많은 외국 선수가 그에게 “큰 사고를 당했는데 괜찮은가” “불굴의 의지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기 때문. 사고 사진은 끔찍해 보였지만 다행히 단순 타박상에 그쳤다. 사이클 대표팀 관계자는 “우리 상훈이가 ‘월드스타’가 됐네요”라며 웃었다. 여자 기계체조 이은주(17·강원체고)도 북한 홍은정(27)과 찍은 ‘셀카’로 깜짝 스타가 됐다. ‘올림픽의 가장 상징적인 사진’이라고 극찬한 외신 보도에 대해 정작 이은주는 얼떨떨하다는 반응. “기념으로 찍은 사진 한 장이 이렇게 큰 반응을 얻을 줄이야…. 너무 놀랍네요. 호호.” ○ 완판된 한국 도시락 이번 대회에 참가한 한국 선수단이 가장 좋아한 메뉴는 코리아하우스에서 만든 한식 도시락. 여자 배구 선수 김연경은 “선수촌 음식은 메뉴도 많지 않은 데다 너무 짜서 먹을 게 없었다. 코리아하우스 도시락이 있어 하루 한 끼는 든든하게 먹었다”고 말할 정도. 워낙 인기가 있다 보니 한국 출신 외국 지도자들 중에서도 이 도시락을 구하려는 사람이 많았다. 4년 전 런던 올림픽 때까지 진종오(37)를 지도했던 김선일 대만 사격대표팀 감독은 “4년 전까진 나도 편하게 도시락을 구했는데”라며 볼멘소리. 김 감독은 지인에게 부탁해 결국 도시락 하나를 얻어냈다. ○ 한밤중에 찾아온 손님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75kg급 동메달리스트 김현우(28·삼성생명)를 힘겹게 한 건 판정 논란만이 아니었다. 계체를 하루 앞둔 자정 무렵 세계반도핑기구(WADA) 검사관이 불쑥 찾아와 도핑 검사를 하겠다며 소변 샘플을 요청한 것. WADA의 불시 검사는 간혹 있지만 계체를 하루 앞두고, 그것도 한밤중의 검사 요구는 김현우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 선수단 덮친 리우의 검은손 무도인들도 리우 현지의 검은손을 피하진 못했다. 미국 전지훈련을 마치고 대회 중반 리우에 합류한 안한봉 레슬링 감독(48·삼성생명)은 도착 하루 만에 현지용으로 지급받은 휴대전화를 도난당했다. 앞서 오세아니아 주짓수(브라질 유술) 챔피언 제이슨 리(뉴질랜드)는 납치강도를 당했다. 남자 유도 동메달리스트 디르크 판 티헐트(벨기에)는 휴대전화를 훔친 도둑을 잡으려다 오히려 폭행당했다. ○ 사진사로 변신한 회장님 한국 양궁이 사상 최초로 전 종목 석권의 쾌거를 이룬 13일 리우 삼보드로무 경기장. 양궁 남자 단체전이 열린 7일부터 한국 선수단의 모든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본 정의선 대한양궁협회장(현대자동차 부회장)은 기쁨에 겨워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였다. 현대차 전속 사진사의 카메라를 빌려 사진사로 변신한 것. 선수들의 모습을 직접 카메라에 담던 정 회장은 “선수들 사진 찍느라 고생 많았다”며 사진사의 사진도 찍어줬다. 정 회장은 평소 선수들과 카톡을 주고받을 정도로 친근하게 지낸다. ○ 미우나 고우나 ‘리우’랑 놀아야지 신태용 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46)의 애완견 이름은 ‘리우’다. 올림픽에 오기 전 신 감독은 리우를 쳐다보며 “리우야! 집에서 응원 좀 열심히 해라. 성적 안 나오면 집에서 같이 쫓겨난다”고 했다. 8강에서 온두라스에 패한 다음 날 신 감독에게 리우의 운명을 물었다. “조별예선에서 8강까지의 경기가 리우가 아닌 브라질의 지방 도시에서 열리는 바람에 리우에는 가지도 못했다. 4강에 올라갔으면 리우에 갈 수 있었을 텐데. 집에 가서 리우랑 놀면서 아쉬움을 달랠 수밖에….” 정리=이헌재 기자 uni@donga.com}

“그동안 이렇게 철저하게 열심히 운동한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늘 좋은 결과를 얻는 건 아니지만 잘 끝난 걸 보면 운도 따른 것 같다.” 박인비(28)는 올림픽 금메달의 원동력을 이렇게 말했다. 올해 초 허리 통증에 시달린 뒤 다시 왼손 검지까지 다친 박인비는 5월 이후 3개 대회에서 컷을 통과한 적이 없다. 5월 볼빅 챔피언십에서 84타를 치고 기권한 뒤 그는 골프를 고문에 비유하며 답답함을 털어놓기도 했다. 박인비를 담당했던 한 종합병원에서는 무리한 출전이 병을 키울 수 있다며 올림픽에 나가지 말고 3주 이상 깁스를 하라고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골프 인생의 기로에 설지도 모를 상황에서 오랜 고민에 빠졌던 박인비는 지난달 11일 “그동안 내가 골프로 쌓았던 것들을 모조리 잃을 수도 있지만 단 몇 %의 가능성만 있더라도 나서겠다”며 올림픽 출전을 결정했다. 그러나 이달 초 제주 삼다수 마스터스에서 56일 만의 복귀전을 치렀지만 예선 탈락했다. 그래도 박인비는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대회 2라운드 후반 9홀을 모처럼 1언더파로 마쳐 자신감을 얻었다. 박인비는 어떤 목표를 설정하면 집요하게 준비하는 스타일이다. 지난해 8월 커리어 그랜드슬램 여부가 걸려 있던 브리티시여자오픈에 대비하기 위해 연초부터 두꺼운 옷을 여러 벌 겹쳐 입고 공을 쳤다. 쌀쌀한 대회 장소에 적응하기 위해서였다. 당시에도 박인비는 허리 통증을 견뎌내며 대기록을 세웠다. 박인비는 리우 올림픽 대비를 위한 최적의 훈련장으로 인천의 잭니클라우스 골프클럽을 선정했다. 올림픽 골프장처럼 바닷가에 자리 잡고 있어 강한 바람에 대처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일주일에 3, 4차례 일반 내장객이 찾기 이전인 오전 6시에 남편이자 스윙코치인 남기협 씨(35)와 18홀 연습 라운드를 한 뒤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수백 개씩의 공을 치며 잃어버린 샷 감각을 찾는 데 집중했다. 올 들어 무뎌진 퍼팅을 고민스러워하던 박인비는 리우에서 전성기 때를 떠올리는 컴퓨터 퍼팅을 과시했다. 21일 마지막 라운드에서 그는 3번홀 2.7m, 4번홀 4.2m, 5번홀 7.5m 버디 퍼팅을 쏙쏙 넣으며 독주를 시작했다. 박인비와 같은 조였던 세계 1위 리디아 고와 저리나 필러(미국)는 줄줄이 무너졌다. 필러는 “인비에게 퍼팅 레슨을 받고 싶다”며 웃었다. 리디아 고는 박인비에게 5타 뒤진 은메달리스트가 됐고, 동메달은 박인비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펑산산(중국)에게 돌아갔다. 박인비는 강력한 경쟁자를 만나면 더욱 경기에 집중하는 스타일이다. 그는 “상대 선수가 긴장하는 걸 보면 나는 더 강해진다”고 말한다. 3라운드에서 박인비가 스테이시 루이스(미국), 마지막 날에는 리디아 고와 같은 조가 된 것도 이런 점에서 승부욕을 자극하는 요소가 됐다. 루이스와 리디아 고는 박인비와 치열한 라이벌 구도를 그렸던 상대였기 때문이다. 박인비는 남편 남기협 씨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4년 동안 무관에 허덕이던 박인비는 2012년 남 씨와 투어 생활을 동행한 뒤 재기에 성공했다. 올해 초 시아버지가 간암으로 갑자기 돌아가셔서 빈소를 지켰던 박인비는 “남편과 남편 선배(김응진 씨)의 도움으로 스윙을 교정한 효과를 봤다”며 고마워했다. 캐디 브래드 비처(34)는 올해로 10년째 박인비 곁을 지키며 메이저 대회 7승을 포함해 17승을 합작했다. 리우 올림픽 금메달은 비처에게도 또 다른 의미였다. 선수촌에서 생활을 한 그는 “메이저대회는 1년에 5번 열리고, 올해 우승을 못 해도 내년이 있다. 하지만 올림픽은 4년에 한 번이다. 평생 한 번뿐일지도 모르는 올림픽에서 딴 금메달이라니, 정말 환상적이다”라고 말했다. 비처는 또 “지난 한 달간 인비는 예전의 샷을 되찾기 위해 정말 많은 노력을 했다. 10년간 같이했지만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걸 본 건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비처는 박인비의 멘털(정신력)을 최고 강점으로 꼽았다. 그는 “인비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엄청난 부담을 안고 치른 이번 올림픽에서 보여준 모습이 바로 그 증거”라고 했다. 올림픽 기간 동안 박인비는 선수촌이 아닌 별도의 숙소에 머물며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남기협 씨와 그의 소속인 갤럭시아SM 직원들은 끼니때마다 박인비가 즐기는 한식을 제공했다. 이번 쾌거로 은퇴설도 잠재우게 된 박인비는 대한골프협회의 금메달 포상금 3억 원을 받게 됐다. 한편 양희영은 펑산산에게 1타 뒤진 공동 4위에 올랐다. 전인지는 공동 13위, 김세영은 공동 25위로 마쳤다.김종석 kjs0123@donga.com / 리우데자네이루=이헌재 기자}

‘골프 여제’ 박인비가 금메달을 확정 짓고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번쩍 들어올리는 순간 박세리 여자 골프 대표팀 감독(39)은 왈칵 눈물을 쏟았다. 박인비가 18번홀 그린 밖으로 걸어 나오자 전인지, 김세영, 양희영을 끌어안고 또 눈물을 흘렸다. 항상 단단해 보이기만 하던 박세리의 눈물이라니. 박 감독은 경기 뒤 “너무 많은 부담을 갖고 대회를 치렀다. 선수들이 마음 편하게 잘해줬다. 더 표현할 방법이 없다. 사랑한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박 감독이 펑펑 눈물을 쏟은 것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US오픈에서 처음 우승했을 때 이후 처음이다. ‘맨발 투혼’으로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1998년 7월 7일. 당시 무려 연장 20홀을 치르는 격전 끝에 정상에 오른 박세리는 아버지 박준철 씨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달라는 요청에 박 감독은 “선수 때 우승 했던 기쁨보다 지금의 감동이 더 크다”고 말했다. 그는 “부담이 컸을 텐데 고맙게도 잘해줬다. 후배들 덕분에 국가대표 감독이라는 직함을 얻게 됐고, 책임감을 갖고 했다. 역대 최고의 순간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기간 동안 그는 ‘엄마 리더십’으로 후배들을 이끌었다. 별도로 마련한 숙소에서 선수들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했다. 부대찌개, 된장찌개, 제육볶음 등을 손수 요리해 선수들을 먹였다. 신선한 과일을 고르려 직접 마켓을 돌아다녔다. “후배들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겸손해하던 그는 “나도 선수생활을 오래 해 봐서 후배들의 마음을 잘 알겠더라. 최대한 편하게 해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강한 비바람이 예보돼 오후로 예정돼 있던 티타임이 오전으로 당겨진 21일에도 박 감독은 선수들을 위해 직접 샌드위치를 만들어 손에 들려 보냈다. 또 경기 중 출출할 때 먹을 영양 바 등 간식도 세심하게 챙겼다. 대표팀 막내인 전인지는 “엄마보다 더 신경을 많이 써 주신다”고 말했다. 대회 기간 다른 숙소에서 아버지와 함께 지낸 김세영은 “아버지가 음식을 만들어 주시는데 박 감독님이 너무 그립다”고도 했다. 양희영의 말처럼 이들이 함께 지낸 일주일은 “영원히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일주일”이었다. 리우데자네이루=이헌재 기자 uni@donga.com}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 금메달리스트인 유승민 삼성생명 코치(34)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으로 선출됐다. 유 위원은 19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선수촌 내 프레스룸에서 열린 IOC 선수위원 투표 결과 후보자 23명 중 2위를 차지했다. 4명을 뽑는 이번 선거에서 유 위원은 펜싱 브리타 하이데만(독일), 수영 주르터 다니엘(헝가리), 육상 장대높이뛰기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와 함께 IOC 선수위원으로 뽑혔다. 한국인 IOC 선수위원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선출돼 임기가 만료된 문대성 위원(태권도)에 이어 두 번째다. 이로써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한국 스포츠는 든든한 지원군을 얻게 됐다. IOC 선수위원은 임기가 8년이라는 것을 제외하곤 일반 IOC 위원과 동등한 자격과 권한을 갖는다. IOC 총회에서 결정하는 각종 사안에 투표권을 행사하고, 올림픽 개최지 선정 및 종목 결정에도 참여한다. 유 위원은 “대한민국의 스포츠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정말 열심히 해서 임기가 끝나는 8년 뒤엔 일반 IOC 위원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리우데자네이루=이헌재 기자 uni@donga.com}

“100명이 지나간다고 하면 절반은 인사도 안 받아요. 50명 중 45명은 그냥 ‘Hi(안녕)’ 하고 지나가죠. 나머지 5명만 ‘내가 왜 널 찍어야 하느냐’ 하고 관심을 보여요. 그럼 그 5명에게 진심을 담아 저를 소개하는 거죠.”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서의 자존심 따위는 일찌감치 버렸다. 누구든 그의 이야기를 들어만 준다면 시간 장소를 불문하고 매달렸다. 그런 노력과 진정성이 있었기에 선수들의 지지를 얻어 IOC 선수위원으로 뽑힐 수 있었다. 19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한 호텔에서 만난 유 위원은 그간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줬다. 유 위원이 한국을 대표해 IOC 선수위원 후보가 됐을 때 당선을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번에 출마한 세계 각국의 후보(23명) 중에는 쟁쟁한 이름이 많았다. 육상 여자 장대높이뛰기의 전설적인 선수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 일본의 육상 영웅 무로후시 고지, 유럽올림픽위원회 선수위원장인 탁구 선수 출신 장미셸 세브(벨기에), 미국프로농구(NBA) 선수 출신 루이스 스콜라(아르헨티나)…. 인기와 지명도에서 누구 하나 만만한 사람이 없었다. 네 차례 올림픽에 출전해 금 은 동메달을 한 개씩 딴 유 위원은 한국에서는 스타일지 몰라도 올림픽 선수촌에서는 동양에서 온 평범한 전직 올림피안에 불과했다. “처음엔 저도 쉽지 않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막상 현장에 와 보니 선수들이 IOC 선수위원 선거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더라고요. 그래, 발로 뛰면 되겠다고 생각했죠.” 선거운동이 시작된 지난달 24일부터 선거가 끝난 17일까지 그는 쉬지 않고 선수촌을 돌아다니며 선수들을 만났다. 매일 오전 7시에 나가 오후 10시가 돼서야 숙소로 돌아왔다. 끼니도 수시로 거르고 생면부지의 어린 선수들을 만나 지지를 호소했다. “선수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버스정류장 앞에서 매일 웃는 얼굴로 선수들을 만났어요. 솔직히 투표 전날까지도 제가 왜 그 자리에 있었는지 모르는 선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진심은 통하는 것 같더라고요. 투표 마감 전날 한 아프리카 선수가 오더니 ‘하루도 쉬지 않고 밝게 웃어준 모습에 감동받아 네게 표를 던졌다’라고 하더라고요.” 유 위원의 진심과 작전이 통했다. 선수 1명은 선수위원 투표에 모두 4장의 표를 던질 수 있다. 대개는 같은 나라 선수, 같은 종목 선수, 그리고 ‘스타성’이 뛰어난 선수에게 투표한다. 그리고 나머지 한 장은 발로 뛰며 얼굴을 익힌 선수에게 던지기 마련이다. 투표 결과 5185명의 유권자 중 유 의원은 1544표를 받아 23명 중 2위를 차지했다. 이변이었다. 1위 펜싱의 브리타 하이데만(34·독일)의 1603표와는 100표도 차이가 나지 않았다. “저를 지지했건, 그렇지 않았건 25일 동안 제 인사를 받아준 모든 선수에게 감사할 뿐이에요. 선수 유승민이 눈빛이 날카로운 사람이었다면 행정가 유승민은 따뜻한 눈빛으로 많은 선수를 대변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8년의 임기가 끝날 때 모든 선수로부터 박수 받을 수 있게 정말 열심히 뛰려고요.” 하루아침에 신분이 바뀌었다. 전날까지 그는 선수촌 식당 이용에도 규제를 받았다. IOC 선수위원 당선 후 그는 새로운 출입 카드를 받았다. 새 카드로는 선수촌과 경기장은 물론이고 메인프레스센터 등 올림픽과 관련된 모든 장소를 자유롭게 갈 수 있다. 유 위원은 “기쁜 것도 사실이지만 책임감이 더 무겁게 느껴진다. 당장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이 우리나라에서 열리지 않나. IOC와 우리나라의 가교 역할을 잘하면서 선수들의 권익 보호에도 나설 생각이다. 대한민국의 스포츠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유 위원이 IOC 선수위원으로 선출됨에 따라 IOC 선수위원을 꿈꿨던 ‘피겨 여왕’ 김연아(26)가 선수위원이 될 수 있는 길은 사실상 막혔다. IOC 선수위원은 국가당 한 명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리우 올림픽 사격 남자 권총 50m 금메달로 세계 사격 역사상 최초로 3연패를 달성한 진종오(37·kt)는 유 위원의 임기가 끝나는 2024년 IOC 선수위원에 도전장을 낼 수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이헌재 기자 uni@donga.com}

탁구 신동→올림픽 금메달리스트→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19일 IOC 선수위원으로 선출된 유승민 삼성생명 코치(34)는 선수 출신 행정가로 엘리트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끊임없는 노력과 진정성으로 지금의 성과를 이뤄내고 있다. ● 누구도 예상 못한 극적 역전승 유 위원이 한국을 대표해 IOC 선수위원 후보가 됐을 때 당선을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번에 출마한 세계 각국의 후보(23명) 중에는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와 일본의 육상 영웅 무로후시 고지, 유럽올림픽위원회 선수위원장인 탁구 선수 출신 장 미셸 세이브(벨기에), 미국프로농구(NBA) 선수 출신 루이스 스콜라(아르헨티나) 등이 있었다. 4차례 올림픽에 출전해 금, 은, 동메달을 한 개 씩 딴 유 위원이지만 이들에 비해선 인지도가 높지 않았다. 하지만 유 위원은 선거 운동 시작일인 지난 달 24일부터 선거가 끝난 17일까지 쉬지 않고 선수촌을 돌아다니며 선수들을 만났다. 오전 7시에 나가 밤 10시가 돼서야 숙소로 돌아왔고, 끼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생면부지의 어린 선수들을 만나 지지를 호소했다. 유 위원은 “선수들이 가장 많이 오가는 버스 정류장 앞에서 매일 웃는 얼굴로 선수들을 만났다. 투표 날 한 아프리카 선수가 오더니 ‘하루도 쉬지 않고 밝게 웃어준 모습에 감동받아 네게 표를 던졌다’고 하더라. 그런 진심이 통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선거 운동 내내 안쓰러운 정도로 열심히 했다. 그 보상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 선수 시절부터 타고난 승부사 선수 시절부터 그는 독종이었다. 18살에 출전한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1회전에 탈락한 뒤에는 “바다에 빠져 죽겠다”고 난리를 피우기도 했다. 강인한 승부근성을 앞세워 4년 뒤 열린 아테네 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에서 중국의 벽을 넘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중국의 왕하오를 이긴 결승전은 한국 탁구 역사에 명승부로 남아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단체전 동메달과 은메달에 힘을 보탰다. 런던 올림픽이 끝난 뒤엔 약 2년 간 독일 프로팀에서 뛰다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부터 지도자로 변신했다. 유 위원은 “선수 유승민이 눈빛이 날카로운 사람이었다면 행정가 유승민은 따뜻한 눈빛으로 많은 선수를 대변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며 “모든 선수들로부터 박수 받는 선수위원이 되기 위해 정말로 열심히 할 것”이라고 했다. ● 멀어진 김연아, 가까워진 진종오 유 위원이 IOC 선수위원으로 선출됨에 따라 IOC 선수위원을 꿈꿨던 ‘피겨 여왕’ 김연아(26)가 선수위원이 될 수 있는 길은 사실상 막혔다. IOC 선수위원은 국가 당 한 명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유 위원이 이번에 당선되지 않았다면 김연아는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IOC 선수위원에 도전할 계획이었다. 선수 시절 최고 스타였던 데다 세계적인 지명도와 인지도도 갖춰 무난히 당선이 예상됐다. 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이기 때문에 당선 가능성은 더 높았다. 평창 올림픽이 김연아에게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다. IOC 선수위원 출마는 현재 올림픽 출전 선수나 직전 올림픽 출전 선수에게만 자격이 주어지는데 국가 당 한 명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리우 올림픽 사격 남자 권총 50m 금메달로 세계 사격 역사상 최초로 3연패를 달성한 진종오(37·kt)는 8년 뒤 IOC 선수위원에 도전장을 낼 수 있다. 현재 국제사격연맹(ISSF) 선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진종오는 2020년 도쿄 올림픽 출전을 공언했는데 2024년에는 유 위원의 임기가 끝나기 때문에 시기적으로도 딱 맞아 떨어진다. 리우데자네이루=이헌재 기자 uni@donga.com}

“선수 유승민이 눈빛이 날카로운 사람이었다면, 행정가 유승민은 따뜻한 눈빛으로 모든 선수를 포용하는 사람이 되겠다.” 19일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선수위원에 당선된 유승민(34·삼성생명 코치)은 메인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평창올림픽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IOC와 선수들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 대한민국의 스포츠 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유승민과의 일문일답. -IOC 선수위원에 당선된 소감은. “그 동안 응원해 주시고 관심 가져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 지난 달 23일 브라질에 도착해서 24일부터 선거 운동 시작해 어제까지 굉장히 열심히 했다고 자부한다. 기쁘기도 하지만 책임감이 더 무겁다. 제가 할 수 있는 노력 다해서 대한민국 스포츠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 -무루호시 고지(일본), 로베트트 샤이트(브라질) 등 유력한 후보들을 제쳤다. “현장에 와 보니 선수들이 IOC 선수위원 선거에 대해 잘 모르더라. 일단 발로 뛰는 게 중요하겠다 생각해 하루도 빠짐없이 오전 7시에 나와 저녁 늦게까지 선수들을 찾아다니며 인사했다. 진심으로 웃고 힘을 실어줬다. 제가 항상 같은 자리에서 밝게 웃어줘서 저를 찍었다는 선수도 있었다. 그런 진심이 통했기에 기대 이상의 좋은 결과을 얻은 것 같다.” -한국 선수들 사이에서는 유승민 후보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더라. “저를 뽑아준 선수건 아니건 제 인사를 25일간 지겹게 받아준 선수들에게 감사한다. 저도 선수 생활을 오래해서 올림픽 때 선수들이 얼마나 민감하고 방해받고 싶지 하지 않는지 잘 안다. 그래서 굉장히 조심스럽게 선거 운동을 했다. 사실 선거가 끝날 날까지 제가 왜 거기 서있는지 모르는 선수도 있었다. 마지막 날 투표 해달라고 하니까 ‘아, 네가 그래서 거기 있었구나’ 하는 친구도 있었다. 저를 지지해준 선수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당선을 기대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기대를 안 해주셨기 때문에 부담 없었다. 저도 한국에서 올 때부터 어려울 거라는 전망 많이 들었다. 하지만 응원해주는 가족들과 친구들로부터 힘을 많이 얻었다. 어쨌거나 대한민국을 대표해 나왔는데 어설프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루가 길고 외로웠지만 최선을 다했다.” -한국 스포츠에서는 큰 경사다. 앞으로 한국 스포츠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할 생각인가. “지금 저희가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있다. 저도 언론이나 접해 보면 IOC와의 가교 역할이 중요하다고 느낀다. 행정가로서 아직 업무를 해 보진 않았지만 최대한 빨리 업무 익혀서 도움 될 수 있도록 하겠다.” -선수들에게 어떤 부분을 어필했나. “이번에 선수들 만나면서 많은 질문을 받았다. 선수들의 가장 큰 이슈는 도핑 같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과연 선수위원회가 선수들 위해서 뭘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선수들이 자기 커리어를 쌓기 위해 노력한다면 선수위원회는 그런 선수들을 도와야 한다. 선수들과 IOC가 더욱 가까워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향후 일정은 어떻게 되나. “솔직히 집에 가장 먼저 가고 싶다(웃음). 21일에 IOC 총회를 마치고 나서 선수위원회 미팅을 갖는다. 이후 폐막식에 참석하게 된다. 원래 후보자 AD였는데 업그레이드 카드로 바꿔주더라. 식사 티켓도 없어 쿠폰으로 먹었는데 이제는 선수촌 식당에서 그냥 밥을 먹을 수 있게 됐다.” -외로운 싸움이었을 텐데 누가 도움이 많이 됐나. “선거 룰이 워낙 엄격했다. 식당이나 식당 앞 도로에서 선거 운동을 할 수도 없었다. IOC와 관련된 언론 인터뷰도 금지됐다. 후보자들끼리도 너무 힘든 거 아니냐며 탄식을 내질렀다. 하지만 함께 선거운동을 하면서 서로 의지하고 격려하고 정보를 공유했다.” -2004년 올림픽 금메달과 지금 선수위원 당선의 느낌이 어떻게 다른다. “2004년에는 팀하고 같이 나가서 팀과 응원 받으면서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혼자 비행기 타고 와서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선거를 혼자서 치렀다. 하루가 너무 길었고 힘들었다. 그 때마다 강문수 총감독이 항상 해주신 말씀을 떠올렸다. ”한 번 더(One more)“였다. 남들보다 한 번 더, 일 분 더 하면 이룰 수 있다고 하셨다. 일찍 들어가고 싶을 때도 선수 한 명이 더 나타나면 다가가 말을 걸었다.” -처음 IOC 선수위원 도전을 생각을 어떻게 했나. “4년 전 런던 올림픽 출전 때 좀 힘들었다. 후배와 경쟁해 단체전 한 자리를 잡아야 했다. 그 때 버틸 수 있었던 이유가 4년 뒤 IOC 선수위원에 도전해 보고 싶어서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문대성 선수위원과 한 방을 썼다. 그 때 문 선배를 보고 꿈을 키웠다.” -임기가 끝나는 8년 뒤 어떤 선수위원으로 기억되고 싶나. “8년 뒤 정말 열심히 해서 정식 IOC멤버가 되는 꿈을 꾸고 있다. 아시아 사람으로 IOC 위원이 돼 스포츠 계에 기여하고 싶다. 선수들에게도 약속한 게 있다. 정말 너희를 우해서 열심히 해 보겠다는 것이다. 열심히 선수위원으로 활동해서 모든 선수들이 박수 쳐 줄수 있는 위원 되고 싶다.” -정말 진심이 통했던 거 같다. “선수 때는 시합이 끝나면 항상 후회라는 게 남았다. 하지만 어제 선거가 종료되는 순간 너무 기분이 좋았다. 너무 좋아서 진짜 후회가 안 남을 거 같았다. 떨어지면 억울할 거 같긴 했다. 너무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모든 걸 다 걸고 선수들에게 저의 진심을 보여준 선거였다.”리우데자네이루=이헌재 기자uni@donga.com}

2004년 아테네 올림픽 남자 단식 금메달리스트 유승민(34·삼성생명 코치)이 한국인 두 번째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선수위원에 당선됐다. 유승민은 19일 오전(이하 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선수촌 내 프레스룸에서 발표한 선수위원 투표에서 후보자 23명 중 2위를 차지해 IOC 선수위원으로 선출됐다. 유승민은 23명의 후보 중 펜싱 브리타 하이데만(독일)에 이어 두 번째로 호명됐다. 3위는 수영 다니엘 지우르타(헝가리), 4위는 육상 장대높이뛰기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가 차지했다. 한국 선수로 IOC 선수위원에 당선된 것은 아테네 올림픽 태권도 금메달리스트 문대성이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선출된 이후 두 번째다. 투표는 이번 올림픽에 참가한 전체 선수들을 대상으로 지난달 24일부터 17일 자정까지 진행됐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부터 신설된 IOC 선수위원은 올림픽 참가 선수들이 직접 뽑는다. 여름 종목 8명, 겨울 종목 4명 등 총 12명의 선수위원이 활동할 수 있다. 여름 올림픽에서는 상위 4명까지, 겨울 올림픽에서는 2명까지 뽑는다. 임기는 8년이다. IOC 선수위원은 여름·겨울 올림픽 개최지 투표 등 IOC 위원과 똑같은 권리와 의무를 지닌다. 한국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겨울올림픽 때 쇼트트랙 선수 출신의 전이경, 2006년 토리노 겨울 올림픽 때 썰매의 강광배가 도전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새로 IOC 위원으로 당선된 유승민은 사실상 한국의 유일한 IOC 위원 역할을 하게 됐다. 현대 한국에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문대성 전 국회위원이 있지만 이 회장은 와병 중으로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문 위원은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직무가 정지된 데다 리우 올림픽이 끝나면 임기도 끝난다. 어릴 적부터 ‘탁구 신동’으로 불렸던 ‘탁구 신동’으로 불렸던 유승민은 18세이던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 처음 올림픽 무대에 출전했다. 2002년 부산 아시아경기에서 중국을 꺾고 복식 금메달을 따냈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다시 한 번 만리장성을 넘어 단식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유남규 이후 16년 만의 쾌거였다. 2008년 베이징 대회에서는 단체전 동메달에 힘을 보탰고, 마지막 올림픽이었던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단체전 은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런던올림픽 이후 국내 무대를 떠나 독일 프로팀에서 20개월 활약하다가 현역에서 은퇴했고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부터 지도자로 나섰다.리우데자네이루=이헌재 기자uni@donga.com}
“올림픽 골프를 TV로 볼 생각이 없다”며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불참한 로리 매킬로이(27·북아일랜드)는 112년 만에 올림픽 무대로 돌아온 남자 골프를 정말 안 봤을까. 리우 올림픽 남자 골프 우승자인 저스틴 로즈(36·영국)에 따르면 매킬로이는 자신이 뱉은 말을 뒤집고 TV 앞에 앉았다. 15일 끝난 리우 올림픽 남자 골프에서 우승한 로즈는 “금메달을 딴 뒤 많은 축하 메시지를 받았다. 매킬로이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경기를 본 게 틀림없다. 매킬로이는 올림픽에 출전하지 않았지만 골프가 올림픽에서 성공하길 바란다는 뜻도 밝혔다”고 전했다. 리우 올림픽 개막 전만 해도 골프의 흥행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세계랭킹 1~4위를 포함해 미국프로골프(PGA)에서 뛰는 톱 랭커 20여 명이 빠졌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자 최종 라운드 입장권이 매진될 정도의 대성공이었다. 최경주 한국 대표팀 감독은 “3만 명 정도가 들어온 것 같다”고 했다. 시청률도 대박이었다. 골프채널과 NBC에 따르면 최종 라운드는 미국에서만 880만 명이 시청했다. 올 시즌 PGA 투어에서 마스터스 최종 라운드를 제외하고는 최고 시청자 수로 4년 전 런던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시청자(820만 명)를 모았던 남자 테니스 앤디 머리와 로저 페더러의 경기보다 많다. 18일 막을 올린 여자부는 세계의 톱 랭커들이 대거 출전해 더욱 관심을 모으고 있다. 1라운드를 치른 박인비는 “올림픽에서는 평소 스포츠, 특히 골프에 관심이 없던 국민들도 경기를 주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인비와 김세영은 이날 나란히 5언더파 66타를 치며 공동 2위에 자리했다. 선두는 6언더파 65타를 기록한 에리야 쭈타주깐(태국)이다. 세계랭킹 1위인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는 2언더파 69타로 공동 11위에 올랐다. 리우데자네이루=이헌재 기자 uni@donga.com}

김연경(28)은 의연했다.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았다. 누구보다 간절히 승리를 원했던 그는 동료들부터 먼저 챙겼다. 그리고 승자인 네덜란드 선수들에게 축하의 악수를 건넸다. 16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지뉴 경기장에서 열린 리우 올림픽 여자 배구 네덜란드와의 8강전. 김연경은 이날 양 팀을 통틀어 가장 많은 27득점을 올리며 고군분투했지만 한국의 1-3 패배를 막지 못했다. 그렇게 메달을 목에 걸겠다는 그의 꿈은 40년 만의 여자 배구 올림픽 메달 꿈과 함께 사라졌다. 김연경이 없었다면 코트는 울음바다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김연경이 중심을 잡은 한국 선수들은 다 같이 의연함을 잃지 않았다. ● 팬들 인증샷까지 응해준 뒤 라커룸서 펑펑“죄송하다”, “미안하다”. 리우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들에게서 자주 들었던 이 말을 김연경은 이날 경기가 끝난 뒤 딱 한 번만 했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취재진에게 팬들의 기대에 보답하지 못했다고 말할 때뿐이었다. 그는 “이번에 진짜 많은 관심을 받아서 좋은 결과로 보답했어야 했는데 거기에 못 미쳐서 죄송하게 생각한다. 보내주신 응원에 감사드린다. 한국 여자 배구에 더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미안함보다는 고마움과 아쉬움을 이야기한 김연경은 틀에 박힌 답변보다는 자기 생각을 솔직히 표현했다. 이번 대회 자신이 맡았던 주장 역할에 대해 “솔직히 힘들었다”고 했다. “한 경기를 잘하면 갓연경(신+김연경)이 되고 한 경기를 못하면 한순간에 기량이 떨어지는 선수가 되는 등 경기 때마다 많은 이야기들이 나와서 힘들었다”며 그간의 마음고생을 털어 놓기도 했다. 후배 선수들에 대해서는 “안정적인 면이 떨어졌다. 국내 프로리그에선 통하지만 대표팀에서는 안 통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며 냉정하게 평가했다. 한국 여자 배구의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떳떳이 밝혔다. 그는 “결국 해외에서 뛴 경험을 토대로 큰 대회에 나와야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많은 선수들이 기회가 되면 (해외로)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믹스트존을 빠져나가다 네덜란드 선수단을 발견한 김연경은 안면이 있는 네덜란드 코치의 어깨를 먼저 툭 친 뒤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다시 한번 축하 인사를 전했다. 자원봉사자와 경기 스태프들의 사진 촬영 요청에도 친절히 응했다. 패배의 안타까움 속에서도 김연경은 올림픽 자체를 만끽하는 월드 스타의 ‘품격’을 드러냈다. 김연경의 리더십은 대회 내내 코트 안팎에서도 빛났다. 세계 최고의 공격수인 그는 소속 구단(터키 페네르바흐체)의 경기 일정이 끝나자마자 귀국해 대표팀에 합류했다. 연일 강행군이 이어지는 가운데서도 그는 “어차피 해야 할 건데 뭐”라는 말로 피곤한 기색을 감췄다. 때로 투덜거리는 동료들에게는 “여기서 안 아픈 선수가 어디 있냐”며 분위기를 다잡곤 했다. 끝까지 의연했던 그가 뜨거운 눈물을 쏟아낸 것은 라커룸에 들어가서였다. 김연경은 “평소에는 잘 울지 않는다. 그런데 올림픽만 오면 울게 된다. 정말 앞으로는 더 좋아질 것이다”라고 했다. 자신의 두 번째 올림픽을 끝낸 김연경은 그렇게 한국 여자 배구의 다음 도전을 기약했다.리우데자네이루=이헌재 uni@donga.com·강홍구 기자}

“새로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아이들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것이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한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31·미국). 왕좌에서 스스로 내려온 그의 꿈은 소박했다. 수영장에서 그는 항상 최고였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기량으로 올림픽 역사상 가장 많은 23개의 금메달을 땄다. 리우 올림픽에서도 남자 계영 400m와 800m, 접영 200m, 개인혼영 200m, 혼계영 400m 등 5종목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공식적으로 은퇴 의사를 밝힌 이튿날인 16일(현지 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이파네마 해변의 오메가 하우스에서 만난 펠프스는 ‘보통 사람’으로 돌아와 있었다. 회색 반팔 셔츠에 흰색 바지를 입고 나타난 그는 친절했다. 올림픽을 치른 데다 연이은 인터뷰로 다소 피곤한 얼굴이었지만 시종 옅은 미소를 보이며 질문에 답했다. ▼ “3개월 된 아들 기저귀 갈아주는게 기쁨” ▼오랜 친구와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동아일보와 스포츠동아, 채널A 등과 함께한 이날 인터뷰에서 펠프스는 “수영장을 떠나는 건 슬픈 일이지만 그동안 내가 원했던 모든 것을 이뤘다. 너무 행복했기에 지금이 끝내기에 가장 적절한 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은퇴가 끝은 아니다. 새로운 시작”이라고 했다. 그의 새로운 인생에서 두 가지 중요한 키워드는 가족과 수영을 가르치는 일이다. 펠프스는 “많은 아이들이 익사 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아이들이 안전하게 수영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다”며 남은 인생을 아이들을 가르치며 보낼 것이라고 밝혔다. 펠프스는 지난해 2월 미스 캘리포니아 출신의 니콜 존슨과 약혼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올림픽 직전인 올해 5월 아들 부머를 얻었다. 펠프스는 “4주 동안 떨어져 있다 어제 모처럼 봤는데 많이 자라 있었다. 부머의 기저귀를 갈아 줬는데 내게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그렇게 작은 것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는 또 그동안 올림픽에서 딴 28개의 메달(금메달 23개,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로 무엇을 할 거냐는 질문에 “아들에게 보여줄 것”이라고 답했다. 4년 후 도쿄 올림픽에서의 그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펠프스는 이 질문에 웃음을 띠며 “아마 도쿄에 가겠지만 수영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해설가로 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펠프스는 올림픽이 그의 인생에 어떤 의미였는지에 대해서도 감회를 말했다. “(첫 올림픽이었던) 시드니 올림픽이 어제처럼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말한 그는 “다른 선수들과 경쟁해 금메달을 따고 싶었다. 5개의 다른 도시에서 열린 5번의 올림픽에 나갔다. 완벽한 커리어였다. 그게 내가 (런던 올림픽 은퇴 후) 다시 올림픽에 돌아온 이유이고, 지금 다시 떠나려는 이유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우상인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의 등번호와 똑같은 23개의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리우데자네이루=이헌재 uni@donga.com·강홍구 기자}

김현우는 스승에게 울면서 “죄송하다”고 했다. 안한봉 감독은 그런 김현우를 끌어안고 “내가 더 미안하다. 힘이 없는 감독이라…”라고 했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선 아무 일 없이 넘어가나 했다. 하지만 한국은 또 오심의 희생양이 됐다. 그동안 한국이 올림픽에서 당한 오심들을 돌이켜 보면 피가 끓을 지경이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겨울 올림픽 쇼트트랙에선 김동성이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고도 실격 판정을 받았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선 체조 양태영이 심판의 점수 처리 실수로 금메달을 놓쳤다. 국제체조연맹(FIG)까지 오심을 인정했지만 금메달은 돌아오지 않았다. 4년 전 런던 올림픽에선 펜싱 신아람의 ‘1초 사건’과 유도 조준호의 ‘청기백기 사건’이 터졌다. 2014년 소치 올림픽에서 피겨 김연아가 은메달로 밀린 것도 여전히 논란거리다. 하지만 한국은 한 번도 오심을 바로잡지 못했다. 제 목소리를 낸 적도 거의 없다. “다른 선수에게 피해가 갈까 봐” “제소해도 판정이 번복되지 않기 때문에”가 이유였다.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선수단은 제프리 존스 국제변호사를 법률 담당 임원으로 선임하는 등 오심에 대한 준비를 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이전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혹시 있을 피해를 우려해 세계레슬링연맹에 제소조차 하지 않았다. 오심을 뒤집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는 국제 스포츠계에서의 한국 위상이다. 대회 때마다 10개 안팎의 금메달을 따고 메달 순위에서 10위권 안에 들지만 세계무대에서 한국은 여전히 ‘스포츠 약소국’이다. 현재 한국의 스포츠 외교는 올 스톱 상태다. 두 명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중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와병 중이고, 임기 만료를 눈앞에 둔 문대성 위원은 논문 표절 여파로 직무정지 중이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도 국제 스포츠계에서 한국을 대변할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력에 걸맞은 위상을 가지려면 IOC는 물론 각 종목 경기 단체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장기적인 안목으로 꾸준히 씨앗을 뿌려야 한다. 스포츠 강대국인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는 그렇게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막상 일이 벌어지면 우리끼리 울고불고 분노를 표출할 뿐이다. 정작 상대방은 전혀 신경도 쓰지 않는다. 안한봉 감독은 “선수들에게 매일 열심히 하라고 하는데 이런 일을 당하면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다. 한국 지도자인 게 부끄럽다”고 자학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렇게 참고만 살아야 하는 것일까.―리우데자네이루에서 이헌재 스포츠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