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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의 부인을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개그우먼 이경실 씨의 남편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서울서부지법 형사9단독 이광우 판사는 4일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된 최모 씨(59)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하고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40시간 이수를 명령했다. 재판부는 “10여 년간 알고 지낸 지인의 배우자를 심야의 승용차 안에서 추행해 죄질이 무거운데도 진심으로 사과하기보다 피해자를 부도덕한 사람으로 매도하는 등 2차 피해를 가했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최 씨는 지난해 8월 경기 용인시 한 호프집에서 지인과 이 지인의 부인 김모 씨(37) 등과 함께 술을 마신 뒤 자신의 개인 운전사가 모는 승용차에 김 씨를 태워 집으로 데려다 주다가 졸고 있던 김 씨의 신체를 만져 추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최 씨는 재판에서 김 씨를 추행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당시 자신이 4차에 걸친 음주로 만취해 심신미약 상태로 저지른 일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최 씨가 술에 다소 취하긴 했지만 다른 부부가 차에서 내리자 조수석에서 뒷자리로 옮겨 탔던 점 등에 비춰 의사결정 능력이 미약한 상태가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최 씨는 사건이 불거지자 김 씨에게 새벽에 전화를 걸어 욕설을 하는가 하면 김 씨 남편에게도 욕설과 함께 “자식을 생각하라”며 협박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드러났다. 김 씨는 사건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상담과 약물치료를 받고 있고, 욕설 전화 때문에 불안 증세에 시달리다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목사 아버지에게 폭행당해 숨진 채 1년 가까이 방치됐던 이모 양(사망 당시 13세)이 외상에 따른 충격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경기 부천소사경찰서는 “이 양을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외상에 따른 쇼크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1차 소견을 통보해 왔다”고 4일 밝혔다. 외상에 따른 쇼크사는 극심한 고통이나 스트레스로 갑작스레 혈압이 낮아지고 뇌에 혈액이 공급되지 않으면서 사망에 이르는 증상이다. 오랜 시간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하다 맞은 부위에서 오는 큰 통증을 감당하지 못해 숨졌을 수 있다는 얘기다. 국과수는 “대퇴부(넓적다리)에 비교적 선명한 출혈이 관찰됐지만 골절이 없고 복강(배 안)에도 출혈이 없었다”며 “정확한 사인은 현미경 검사 등 정밀감정을 거쳐야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양은 사망 추정일인 지난해 3월 17일 부모로부터 5시간에 걸쳐 구타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3일 체포된 아버지 이모 씨(47)는 경찰에 “나무 막대로 딸의 손바닥과 종아리, 무릎 위쪽을 수차례 때렸다”고 진술했다. 계모 백모 씨(40) 역시 “빗자루 등으로 팔과 허벅지를 여러 번 폭행했다”고 말했다. 사망 당일 이 양은 속옷만 입은 채였다. 경찰은 “이 양 부모가 ‘(딸이 돈을 또 훔치거나 가출을 할까 봐) 다시 가출하지 못하게 하려고 옷을 벗겨놓은 채 때렸다’고 진술했다”고 설명했다. 이 양 부모는 이 양의 도벽과 가출로 골머리를 앓아 왔다고 경찰에 주장했다. 이 양은 2012년부터 계모 백 씨의 여동생(39) 집에서 지냈다. 이 양의 이모부는 본보에 “이 양을 친딸처럼 생각하며 키웠는데 2013년경부터 어른들 돈에 손을 댔다”며 “2015년 들어서는 아빠 교회 헌금을 훔치다가 걸렸는데 금액이 수십만 원, 수백만 원까지 커졌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계모 쪽 친척들은 이 양을 계도하려 애썼던 것으로 보인다. 사망 6일 전인 지난해 3월 11일에도 이 양은 절도 건으로 아버지에게 맞았다. 당시 백 씨의 여동생은 속옷만 입고 있던 이 양에게 연고를 발라줬다. 이 씨는 이날 면회 온 아내 백 씨 가족들에게 “(딸 때문에) 면목이 없다”며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이 씨의 큰아들(19)과 둘째 딸(18)은 부모가 체포될 때까지 막냇동생이 폭행당하고 사망한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나타났다. 큰아들 이 군은 “(이 양 사망 건은) 매우 슬픈 일”이라면서도 “(계모 체포 등은) 우리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 군은 동생의 시신이 발견되기 전에 진행된 경찰 조사에서도 “나는 2012년경 집을 나왔기 때문에 동생 실종은 잘 모르는 일”이라고 진술했다. 이 군은 한동안 부천에서 홀로 지내다 최근 들어 친척들의 보호를 받으며 부천에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날 이 씨 부부에게 아동학대특례법상 아동학대 치사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함께 체포된 백 씨 여동생에게는 아동학대 혐의를 적용했다. 경찰은 이 양 부모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도 검토하고 있다. 사건은 11일쯤 검찰에 송치될 예정이다. 한편 이 씨 주변인들은 이 씨가 부천 S신학대에서 강사(겸임교수)로 활동하며 정교수 임용에 사활을 걸었었다고 증언했다. 개척교회 목사 활동으로는 축구 꿈나무인 큰아들과 외국 유학 중인 둘째 딸, 장래 희망이 의사였던 숨진 이 양 등 3남매를 뒷바라지하기가 경제적으로 어려워 정교수 승진을 노렸다는 것이다. S신학대 관계자는 “본교가 최근 몇 년 새 20여 명의 교수를 확충할 때 이 씨도 수차례 임용 신청을 했지만 번번이 탈락했다”고 말했다. 이 씨와 가깝게 지냈다는 교직원은 “이 씨는 올해 안에는 꼭 교수로 채용될 것으로 믿어 왔다. 딸의 죽음을 숨긴 이면엔 이런 상황이 어느 정도 작용한 것 같다”고 전했다. 이날 S신학대는 이 씨를 해임했다. 지난 1년간 이 씨 강의를 들어온 학생 100여 명에겐 외상 후 스트레스 심리 상담을 진행하기로 했다.부천=박창규 kyu@donga.com·박희제·김도형 기자}
한일 양국의 일본군 위안부 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가 내기로 한 10억 엔(약 100억 원)이 피해자 할머니에게 직접 지급될 것으로 보인다. 외교 당국자는 4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개개인에게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직접 지원의 예로는 “간병인 비용이나 의료비 지원, 위로금”을 들었다. 기념관 설립 등 추모사업 대신 현금으로 지원하겠다는 뜻이다. 지난해 12월 28일 한일 협상 타결 이후 정부가 개별 지원 방침을 명확히 거론한 것은 처음이다. 외교부는 지난해 합의 직후 위안부 할머니들을 개별적으로 면담했고 이 결과를 적극 반영했다고 밝혔다. 외교부 1, 2차관이 나눔의 집 등에서 만난 14명에 이어 국내외 개별 거주자(21명)를 일일이 면담했고 이 가운데 16명이 ‘이번 합의를 수용한다’는 뜻을 밝혔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현재 위안부 생존자는 모두 46명이다. 사망자를 포함할 것인지 등 구체적인 지원 기준은 정부가 재단을 설립한 뒤에 결정할 방침이다. 현재 여성가족부는 재단 설립 준비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하고 있다. 다만 재단 설립 비용 등에 정부 예산이 추가 투입될 수 있어 한일 ‘공동 책임’으로 비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외교부가 16명에게 설명했다고 밝힌 데 대해 “노환과 의사소통 곤란 등으로 직접 의사를 듣지 못한 경우를 고려하면 피해자 의견 직접 청취는 3건에 불과하다”며 ‘여론 호도’라고 주장했다.우경임 woohaha@donga.com / 부천=김도형 기자}

김용학 연세대 신임 총장(63)이 1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백주년기념관 콘서트홀에서 제18대 총장 취임식을 갖고 4년 임기의 총장직을 시작했다. 김 총장은 취임사에서 연세대를 존중하고 존경받는 대학, 미래를 이끌어 가는 대학으로 만들겠다는 발전 계획을 밝혔다. 이날 취임식에는 ‘선의의 라이벌’인 고려대의 염재호 총장(61)이 참석해 축사를 하고 찬송가도 함께 불러 눈길을 끌었다. 두 총장은 나이는 두 살 차이지만 같은 73학번으로 남다른 친분이 있다. 김 총장은 연세대 사회학과, 염 총장은 고려대 법대로 학부는 달랐지만 1979년 한국고등교육재단 해외유학생 장학 프로그램에 선발되면서 첫 인연을 맺었다. 이후 두 총장은 1년간 함께 유학을 준비하고 1980년 무렵 미국 유학길에 올라 김 총장은 시카고대 사회학 석사, 염 총장은 스탠퍼드대 정치학 박사 과정을 밟았다. 이들은 이때 맺은 인연으로 1994년 고등교육재단이 발간한 박사과정 논문집과 2008년 고 최종현 SK 회장 추모위원회가 발간한 ‘최종현, 그가 있어 행복했다’에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지카 바이러스의 경우 아직까지 국내 발병 사례는 없지만 한국인 관광객이 많은 태국에서 감염환자가 나타나는 등 지리적으로 근접해 들어오는 상황이다. 감염자가 발생한 나라로 태교여행이나 신혼여행을 가려던 젊은층들은 비상이 걸렸다.○ “혹시 여기도 지카 바이러스?” 문의 급증 다음 달 중순 괌으로 태교여행을 가려던 임신 20주 차 황모 씨(30)는 최근 여행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황 씨는 “여행을 가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마음 편히 놀지 못할 것 같았다”며 “환불받지 못한 숙소 대금 120만 원가량을 손해 봤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하와이를 신혼여행지로 낙점했던 예비신랑 정모 씨(30)도 다른 곳을 새로 알아보고 있다. 그는 “아기에게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바이러스라고 하니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에 지카 바이러스 문제가 없는 국가를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한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신혼, 태교여행과 관련된 고민을 문의하는 글이 31일에만 10건 이상 올라왔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일선 병원에는 임신부를 중심으로 감염 여부를 검사해 달라는 요청이 하루 평균 4, 5건씩 접수되고 있다. 멕시코 칸쿤, 동남아 등 발생 지역에 신혼여행을 다녀온 임신부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 중 실제 감염자로 추정되는 사례는 아직까지 단 한 건도 없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37도 이상의 발열 또는 발진이 있으면서 관절통 근육통 두통 결막염을 동반할 경우 유전자검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단순히 해당 국가를 다녀왔다는 것만으로는 의심환자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지카 바이러스는 중남미에 서식하는 이집트숲모기가 옮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 있는 흰줄숲모기도 옮길 가능성은 있지만 확인된 사례는 없다. 사람 간 접촉이나 공기로는 전염되지 않는다. 감염된 사람의 혈액을 수혈받는 과정에서 감염될 가능성이 있지만 매우 드물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다만, 해외 감염환자의 정액에서 바이러스가 발견된 사례가 보고돼 성관계를 통한 감염 가능성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모기에게 물린 뒤 증세가 나타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보통 2∼7일. 최대 2주 안에 증세가 나타난다. 성인의 경우 대개 경미한 증상이 지속되다가 대부분 회복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감염된 사람 5명 중 1명에게서 증상이 나타나는 데다 발열, 발진 등도 가벼운 수준이어서 감염자의 80%는 감염됐다는 사실 자체도 모르고 지나가게 된다. 증세가 나타났을 경우에도 휴식과 수분 섭취, 해열제 투약 등 감기와 비슷한 수준의 대증치료를 통해 증세를 완화시킨다.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와 노인에게 더 위험하다는 증거도 아직은 없다. 길랑바레 증후군과의 연관성 여부는 의학계를 긴장시키는 부분이다. 이 증후군은 급성으로 말초신경, 척수, 뇌신경 등을 파괴해 근육을 약화시키거나 마비시키는 희귀 질환으로, 브라질에서 지카 바이러스의 유행 뒤 갑자기 발병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서 이 둘의 인과관계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공포의 ‘소두증’ 무엇이기에 현재 가장 큰 문제는 신생아에게서 나타나는 소두증. 머리 둘레가 신생아 평균(34∼37cm)보다 작은 32cm 이하이면 일단 소두증을 의심해볼 수 있다. 신생아 2만∼3만 명당 1명꼴로 드물게 발생하는 소두증은 아기의 성장·발달 지연이나 인지능력 장애, 균형감각 상실, 청력 저하, 시각장애, 경련이나 발작 등을 유발한다. WHO에 따르면 지카 바이러스는 소두증을 유발할 가능성이 ‘강하게 의심(strongly suspected)’된다. 삼성서울병원 소아청소년과 이지훈 교수는 “임신부가 지카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이 바이러스가 태반을 통과하여 태아에게 감염되고, 이러한 태내감염이 태아 소두증을 일으키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바이러스만 소두증과 관련된 것은 아니다. 아기 두개골이 너무 일찍 붙어서 발생하는 두개골융합증, 다운증후군 같은 유전적 요인 등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 나타난다. 또 임신부가 약물이나 영양부족, 알코올에 노출되거나 신생아가 풍진, 수두 같은 여러 감염병에 걸렸을 때도 발생할 수 있다.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박중신 교수는 “소두증의 증세는 경증부터 치명적인 정도까지 매우 다양하다”며 “신경학적인 검사와 성장발달 검사를 병행해 진단한다”고 말했다.이정은 lightee@donga.com·김도형·유근형 기자}

선임 나흘 만인 지난해 12월 21일 기자들과 만난 김용학 신임 연세대 총장(63·사회학과 교수)은 “고민과 중압감 때문에 잠을 못 이루겠다”고 했다. 내부에서마저 “우린 어차피 독과점 기업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명문 사립대를 이끌게 되었는데 무슨 큰 걱정이 있을까. 하지만 다음 달 1일 취임을 앞두고 27일 김 총장이 동아일보 단독 인터뷰에서 보여준 것은 대학이 곳곳에서 마주한 도전들에 맞서야 한다는 절박한 ‘위기감’이었다.○ 시대에 뒤처진 대학의 ‘위기’ 김 총장은 ‘100세 시대’와 ‘네트워크 사회’를 심각한 도전으로 보고 있었다. 2045년이면 인공지능(AI)이 인간을 뛰어넘을 것이라는데 현재의 신입생들은 그로부터도 50년을 더 살아가야 한다. 또 서로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을 어떻게 연결하느냐, 즉 융합이 부가가치 생산의 핵심인 사회다. 그런데도 대학은 산업사회의 틀에 갇혀 변화를 주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제는 학생들이 평생 사용할 수 있는 능력,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사고능력을 가르쳐야 한다”고 밝혔다. 대학이 그동안 초중고교와 똑같이 받아 적고 외우는 ‘적자생존’(적어야 산다)의 방식으로 교육해온 것이 더이상 유효할 수 없다는 반성이다. 자신의 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 10년 전 학부 대학장 시절 동료 교수 12명과 했던 실험 교육이다. 이 수업을 통해 ‘어떤 능력을 길러줄 것인가’ 하는 목표를 세우고 토론식 수업을 했다. 철학 수업에 ‘헤겔이 된장녀를 보면 어떻게 평가했을까?’ 같은 주제도 나왔다. 헤매던 학생들은 현 사회를 분석하라는 과제에 비로소 자신만의 학습을 시도하면서 반응했다. 학습량을 3분의 1로 줄여야 했지만 스스로 생각하고 해결책을 찾는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는 확신이 생겼다. 김 총장은 “일단 학부생에게 연구비를 주면서 첫발을 뗄 것”이라고 했다. 올해 국제캠퍼스에서 서로 전공이 다른 학생 5명가량씩으로 구성된 100개 팀에 연 100만 원의 연구비를 주면서 각자 정한 과제를 해결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전반적인 교수법 변화와 관련해서는 에릭 머주어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효과를 입증한 동료 교수법(Peer Instruction·학생이 학생을 지도) 등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대학 내 연구의 위기와 관련해서는 양적 평가 대신 질적 평가를 본격화하겠다고 밝혔다. 김 총장은 “세계적 흐름에 따라 국내에서도 질적 평가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며 “우리 대학은 학과 단위에서 교수의 장기 연구계획을 받고 관리하는 방식으로 개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계 100위가 기적… 대학의 미래에 관심을” 새로운 방식으로 학생들을 길러내기만 하면 대학의 당면한 문제가 해결될까. 김 총장은 “극심한 취업난이라는 도전에 연세대도 예외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과거에는 대학 졸업생들이 2000명, 3000명을 태울 수 있는 대형 여객선(대기업)을 기다리면 됐지만 이제는 불행인지 행복인지 (모르겠지만) 자기가 뗏목을 만들어서 타야 한다”고 비유했다. 취업, 창업 등 진로 개척을 사회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김 총장은 “학교는 전국 최고 수준인 창업지원단을 통해, 그리고 해외기업 취업정보 제공을 통해 학생들을 돕겠지만 학생은 학생대로 학교에서 생활하는 동안 계속 진로에 대해 질문하고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입학처장을 지냈던 김 총장은 수험생과 학부모의 관심이 가장 큰 입시제도에 대해서는 ‘예측 가능성’의 중요성을 또 한 번 강조했다. 하지만 ‘생각하는 힘’에 초점을 맞춘 교육기조는 입시에서도 살리겠다고 밝혔다. 그는 “장시간의 면접이 학생의 역량을 평가하기에 가장 좋지만 대학은 모든 학생을 그렇게 평가할 여력이 없다”며 “여전히 논술 전형이 유의미하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학생들이 논술을 준비하기 위해 그래도 책은 읽지 않느냐는 것이다. 여러 종류의 전형이 진부해지면 안 된다는 점은 분명히 했다. 연세대 창의인재 전형으로 이른바 ‘곤충박사’ 학생이 합격하자 이듬해에 많은 학생이 비슷한 자기소개서를 내밀기도 하더라는 것이다. 또 최근 문제 유형이 단순해진 논술 출제방식에 대해서도 개선 방향을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인터뷰를 끝낼 무렵 김 총장은 “세계 대학평가에서 우리가 100위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는데 사실 여기까지 온 것이 기적이라고 본다”며 “앞으로는 200위, 300위로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것이 큰 압박”이라고 고백했다. 정원 한 명 마음대로 늘릴 수 없고 등록금 한 푼 올릴 수 없는 상태로 해외 대학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 위기감의 중요한 원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4년 동안 1도가 아니라 0.5도라도 근본적인 각도, 방향을 바꿔놓고 싶다”고 했다. 짧은 임기 동안 가시적인 성과에 목매기보다 먼 훗날 결과를 보여줄 수 있는 변화에 힘쓰겠다는 것이다. 김 총장은 “다만, 대학 스스로 노력하는 만큼 사회에서도 ‘한국의 미래’라는 시각으로 대학에 관심을 가지고 투자해 달라”고 당부했다.김도형 dodo@donga.com·정동연 기자}

행운 옛집 주연배우 우동1번지 정든집 작은거인 퇴근길…. 어둠이 깔리자 30년을 지켜온 낡은 이름들에 차례로 불이 켜졌다. 23일 밤 서울 마포구 아현초교 뒤 굴레방로에선 학교 담벼락에 등을 기댄 ‘아현동 포장마차’가 어김없이 영업을 시작했다.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던 이날 36세 동갑내기 손님 5명은 ‘옛집’에 둘러앉았다. 손때 묻어 끈적이는 나무탁자를 사이에 두고 주인 김모 씨(75·여)와 손님들은 오랜 친구처럼 얘기를 나눴다. 사장님 대신 ‘엄마’ ‘이모’로 불리는 김 씨는 핏물 고인 꽁치와 돼지고기, 물이 흥건한 꼬막으로 안주를 만들고 있었다. 10m² 남짓한 포차가 몇 달 뒤 사라진다는 사실 탓인지 단골들의 얼굴엔 아쉬움이 가득했다. 한 달에 두 번 꼭 찾아온다는 손님 강모 씨는 “흑백사진 혹은 오래된 일기장 같은 추억의 장소인데…”라며 소주잔을 들었다. ‘아포’라고 불리던 아현동 포장마차촌이 없어진다. 16곳 중 4곳이 폐업했고 나머지도 6월까지 문을 닫고 떠나야 할 처지다. 재개발의 여파다. 아포는 ‘아현동 산7번지’ 주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애오개 언덕 산동네가 다세대주택 사람들로 복작거릴 때 아포도 함께 흥했다. 이 동네 주민들과 떠난 주민들 그리고 정겨운 분위기를 찾아온 술꾼들로 10년 전까지만 해도 오전 6시까지 영업하는 포차가 많았다. 그러나 동네가 개발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아현동과 북아현동 일대 재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2000년대 후반 주민들이 동네를 떠나면서 손님이 크게 줄었다. ‘그래도 수천 가구 아파트에 새 이웃이 들어와 하루 150명씩만 우동을 팔아주면 어떨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2014년 말부터 포차촌 앞 아파트에 입주하기 시작한 이웃들은 아포의 존재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통행에 불편하다거나 미관상 좋지 않다며 일부는 구청을 찾아가 “불법 시설물을 철거하라”고 시위까지 벌였다. 원래 아포가 자리 잡은 곳은 ‘선통물천’이란 하천이 있던 곳. 1960년대 복개 이후 주민들이 쓰레기장으로 사용하던 곳에 리어카를 끌고 와 술과 음식을 판 것이 아포의 시작이다. 1991년에는 상인들이 쓰레기를 치우고 나무판자 노점을 만들었고 1999년 다시 공사를 해 컨테이너 상점이 됐지만 이 땅은 엄연한 국공유지다. 포차 존재 자체가 불법인 것이다. 상인들이 세금이라고 여기며 면적에 따라 매년 17만∼104만 원씩 낸 돈은 인도 불법 점유에 따른 변상금이었다. 마포구 관계자는 “상인들의 생계를 생각해 그동안 변상금만 받아왔지만 민원이 빗발쳐 묵인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6월 말까지 자진 퇴거할 것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고 말했다. 23일 밤 불을 켠 포차의 주인은 50대 2명, 60대 4명, 70대 5명, 80대 1명이다. 대부분 6월 이후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32년째 ‘강타 이모네’를 운영하는 전영순 씨(69·여)는 “우리가 집값에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잘 안다”면서도 “이 나이에 다른 곳에서 다시 장사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했다. 인근 지하방에 세 들어 사는 ‘행운’의 주인 송모 씨(86·여)는 당장 월세 20만 원이 걱정이다. 아포가 사라진 자리엔 무엇이 남을까. ‘짱이네’ 주인 양모 씨(69·여)가 자신의 추억담을 들려줬다. “1988년 인창고 다닐 때부터 여기서 술 먹던 애들이 여덟 명 있어. 명절만 되면 ‘고모 힘들게 일하는 게 가슴 아프다’며 10만 원씩 주던 녀석이 늦장가를 가더니 몇 달 전엔 찾아와 ‘나 애 아빠 됐어’라고 하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던지….”김도형 dodo@donga.com·이지훈 기자}

“이 추위에 딸을 군대 보내는 부모의 심정을 말로 할 수 있겠어요? 그렇지만 재수까지 하면서 나서는 길인데 응원해줘야죠.” 서울 기온이 섭씨 영하 16도까지 곤두박질치며 기록적인 한파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23일 성북구 성신여대 학생군사교육단(ROTC) 전용 기숙사. 허만준 씨(56)와 문영미 씨(52)는 전투복 차림의 딸 허하은 예비후보생(22·스포츠레저학과 2학년)과 짧은 작별인사를 나눴다. 24일부터 충북 괴산군의 육군학생군사학교에서 동계 입영 훈련을 받는 딸을 배웅하는 자리였다. 허 교육생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여대에 학군단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여군(女軍)의 꿈을 키웠다. 지난해 지원했다 떨어지자 휴학한 뒤 올해 다시 도전해 합격했다. 아버지 허 씨는 “여덟 살 많은 오빠는 인대 부상으로 군대에 보내지 못했는데 딸을 보내게 됐다”며 “아직 아기 같지만 더 성장하고 많이 배워서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며 딸의 손을 힘껏 잡았다. 이날 경기 용인시에서 역시 부모님과 함께 기숙사로 돌아온 김혜인 후보생(22·운동재활복지학과 3학년)은 지난해 입단식을 거치고 후보생으로 훈련을 받았다. ROTC는 2학년 때 교육생으로 선발해 3학년 때 후보생으로 입단하게 된다. 세 번째 훈련에 들어가는 김 후보생의 눈빛에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고등학교 시절 특공연대에 병영체험을 다녀와서는 “저렇게 당당하게 경례를 받는 곳인데 남자들은 왜 군대를 싫어하는지 모르겠다”며 군인의 꿈을 키워왔다. 이날 딸들을 배웅하러 먼 길을 함께 온 가족들은 눈물을 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야심 찬 꿈을 이루기 위해 당당하게 훈련을 떠나는 딸들을 “주변에서 다들 부러워한다”며 자랑스러워했다. 2010년 숙명여대 등에서 처음으로 60명을 선발한 여군 학군후보생은 2012년부터 매년 250명을 선발하고 있다. 매년 선발 경쟁률이 5 대 1을 넘겨 남자보다 높은 인기를 얻으면서 국방부가 다음 달 ‘여대 학군단’을 더 창단하기로 했다. 숙명여대 성신여대(2011년 창설)에 이어 세 번째 여대 학군단이다. 현재 광주여대 덕성여대 서울여대 이화여대 등 4곳이 경쟁하고 있다. ROTC를 마친 여학생들은 남학생과 동등하게 각기 병과를 부여받고 28개월 동안 장교로 복무한 뒤 전역하거나 장기 복무하게 된다. 군 당국은 군 복무가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수 있고 남성과 같은 기준으로 경쟁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여기는 점을 ‘여대 학군단’ 인기의 비결로 보고 있다. 전역하고 취업에 나서도 리더십과 조직 적응력을 갖춘 여성 인재로 평가받고 있다. 여대 측에서도 이런 장점 때문에 학군단 후보생들에게 장학 혜택과 해외연수 기회 등을 제공하고 있어 후보생들은 ‘경쟁을 뚫고 선발됐다’는 자부심도 크다. 군 당국은 여대 학군단 후보생들이 동·하계 입영훈련 결과에서 최상위권에 포함되고 임관할 때도 상위권을 차지할 뿐 아니라 부대 배치 후에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학군단 유치 경쟁에 뛰어든 한 여대 관계자는 “학군단 출신 인재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높아지고 취업 등에서도 유리한 점이 많아 놓칠 수 없는 기회다”라며 “사전 여론조사에서도 유치를 지지하는 학생이 많아 나서게 됐다”고 전했다. 학군단이 없는 여대에서는 학사장교 시험에 응시하는 학생이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4곳의 여대를 대상으로 25일부터 현지실사를 시작했다.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일곱 살짜리 아들을 폭행해 숨지게 한 뒤 시신을 훼손한 최모 씨(34)는 “권투하듯이” 아들을 때렸다고 진술했다. 또 사망 전날뿐 아니라 당일에도 아들을 무차별 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최 씨에게 살인죄를 적용했다. 22일 경기 부천원미경찰서에 따르면 최 씨는 2012년 11월 8일 아들을 폭행했다. 당초 최 씨는 전날 오후에 2시간가량 아들을 때렸다고 진술했으나 추가 조사에서 다음 날에도 폭행이 있었음이 확인됐다. 결국 최 씨의 아들은 8일 오후 숨졌다. 특히 평소 축구와 헬스 등 운동을 즐겨해 몸무게가 90kg에 이르는 최 씨는 당시 폭행 상황을 털어놓으며 “권투하듯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들에 대해 “뼈밖에 남지 않았다” “이렇게 때리다간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폭행을 멈추지 않았다. 최 씨 아들의 몸무게는 16kg으로 추정돼 두 살 아래 여동생보다 가벼웠다. 최 씨의 폭행은 아들이 다섯 살 때부터 시작됐다. 아들이 어린이집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또래 친구들과 자주 다툰다는 이유였다. 최 씨와 부인 한모 씨(34)는 교육방송 시청과 학습지 구독 등 홈스쿨링을 하겠다며 2012년 5월부터 아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이 실제로 학습지 구독 등을 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 최 씨는 여전히 아들을 살해할 마음이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아들이 위중한 상태인데도 처벌이 두려워 병원으로 옮기지 않고 방치한 점, 사망 이후 범행 은폐를 위해 잔혹한 방법으로 시신을 훼손한 점 등을 근거로 살인의 미필적 고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이날 사체손괴·유기 및 아동복지법 위반 외에 살인 혐의를 추가해 검찰에 송치했다. 한 씨에게는 살인을 제외하고 같은 혐의가 적용됐다. 살인죄가 인정되면 사형·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유기징역, 폭행·상해치사죄는 3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한다. 이날 김수남 검찰총장은 앞으로 아동 사망 사건에서 사인이 불분명한 경우 검사가 직접 검시하거나 부검을 지휘할 것을 지시했다. 또 죄질이 나쁜 아동학대 사건에 대해 ‘구속수사’ 원칙을 천명했다. 부천=김도형 dodo@donga.com / 신동진 기자}
똑같은 비극이 1년 만에 또 되풀이됐다. 21일 경기 광주시 한 아파트에서 우울증에 시달리던 40대 남성이 부인과 자녀 2명을 살해하고 투신해 자살했다. 지난해 1월 서울 서초동에서 강모 씨(49)가 부인과 두 딸을 죽인 것과 비슷한 일이 1년 만에 또 벌어진 가운데 전문가들은 그릇된 가부장 의식에 비극의 원인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경기 광주경찰서에 따르면 21일 오전 9시쯤 광주시 경안동의 24층짜리 아파트 18층에서 포클레인 운전기사인 최모 씨(48)가 부인 김모 씨(42)와 고등학교 2학년 아들(18), 초등학교 4학년 딸(11) 등 3명을 살해한 뒤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 씨는 투신 직전 112로 전화를 걸어 “내가 아내를 망치로 때렸고 아이 2명도 살해했다. 불면증 때문에 아이들을 살해했다”고 신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부엌 쪽 거실에서 누운 채 숨져 있는 부인 김 씨와 범행 도구인 피 묻은 망치를 발견했다. 딸은 안방 이불 위에서 곰 인형을 끌어안은 상태로 누워 숨져 있었고 아들도 자신의 방 이불 위에 숨져 있었다. 최 씨는 아파트 밖 인도에서 발견됐다. 경찰은 피해자 3명 모두 망치로 머리를 맞아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다투거나 반항한 흔적이 없고 모두 집 안에서의 평상복 차림이어서 잠을 자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정확한 범행 이유를 밝히기는 어려워졌지만 경찰은 최 씨가 우울증과 불면증 치료를 받아왔고 분노조절장애가 있었다는 점을 확인하고 여기에 주목하고 있다. 또 최 씨가 꾸준히 일하지 못하는 가운데 최근 부인의 렌터카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집이 넘어가게 생겼다”고 주변에 하소연하기도 한 사실을 확인했다. 이웃들은 최 씨가 평소 술에 취하면 “가족을 모두 죽여버리겠다”는 등의 폭언을 일삼았다고 얘기하기도 했지만 경찰은 이 집에서 가정폭력 사건이 신고된 적은 없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최 씨가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린 것과 대출금이 8800만 원에 이르러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어온 점 등을 중심으로 범행 동기를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우울증이나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남성이 가족을 살해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과 관련해 그릇된 가부장 의식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자신 없이는 가족이 생존할 수 없다고 여기거나 가족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생각하는 인식에 비극의 불씨가 있다는 것이다. 1심에 이어 지난해 12월 항소심에서도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서초동 세 모녀 살인 사건 범인 강 씨도 경찰에서 “내가 죽고 나면 남은 가족들이 멸시받을 것 같아 함께 죽으려 했다”고 진술한 바 있다. 광주=남경현 bibulus@donga.com / 김도형 기자}

19일 찾은 서울 강남구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상담원 A 씨(33)는 “최근까지 수도권의 아동보호 전문기관에서 일하면서 정원의 2배에 가까운 아이를 관리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소연했다. 일손이 달려 제대로 도와주지 못하는 일이 잦았다는 얘기다. 경찰의 통보를 받고 학대아동 보호·치료 업무를 실제로 진행하는 전국의 아동보호 전문기관은 현재 55곳이다. 이곳에서 피해 아동을 가해자로부터 격리해 비밀리에 보호하는 학대피해아동쉼터 37곳을 운영하는데 정원이 각 7명에 불과하다. 전국적으로 수용인원이 약 250명밖에 안된다. 2014년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아동 학대 사례가 1만 명이 넘고 14명이 사망했지만 학대 받는 아동이 갈 곳이 없는 셈이다. 경찰과 함께 학대피해 아동 조사와 치료 사업을 맡고 있는 보건복지부 산하 아동보호 전문기관은 학대아동 보호의 중심이다. 잇따르는 아동학대 사건을 분석하는 전문가들은 “방치하고 굶기고 때리는 식의 학대가 계속 이어지다가 결국 ‘끔직한 일’이 빚어진다. 학대 초기에 발견해 조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현장의 아동학대 관련 기관에서는 인원 및 시설적인 한계와 법적인 문제로 ‘격리’와 같은 대응을 취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아동보호 전문기관과 공조하는 경찰도 비슷한 상황이다. 서울의 한 경찰서 여성청소년과 담당자는 “아동학대는 기본적으로 가정 안에서의 문제라는 인식이 강하고 눈에 보이는 피해가 있는 경우가 아니면 격리 조치를 취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쉽사리 드러나지 않는 아동학대 사례가 신고까지 됐는데도 제대로 초기 개입을 하지 못하는 상황은 심각한 아동학대 사건의 출발점이 된다. 이번 부천 초등학생 시신훼손 사건처럼 극단적인 사례도 부모가 처음부터 아이를 죽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때리고 굶기는 등의 일을 반복하다 벌어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소속 신수경 변호사는 “아동학대 상황에서 부모와 아이가 ‘분리’돼야만 아이가 진술하고 보호될 상황이 마련될 수 있는데 지금은 부모가 거부하면 개입이 쉽지 않다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부모의 친권이 절대시되는 문화 속에서 현장에서는 아이를 숨기고 진술서도 제대로 못 내게 하는 부모를 맞닥뜨리기도 한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학대받는 아이를 부모로부터 떼놓은 다음에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먼저 마련하고 적극적인 격리로 문제를 풀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김도형 dodo@donga.com·전주영 기자}
경찰이 6만여 명에 이르는 성 매수자 의심 명단을 입수해 분석에 들어갔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18일 성매매 고객 명단으로 의심되는 엑셀 파일을 입수해 분석 중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파일 입수경위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성매매 조직이 관리한 고객 명단이 맞는지 진위를 파악할 계획이다. 이에 앞서 한 여론기획 전문회사는 서울 강남지역 성매매 조직의 고객 명단이라면서 6만6300여 명의 전화번호와 차량 등 특징, 상대 여성의 이름 등이 담긴 엑셀 파일을 공개했다. 이 회사는 해당 명단에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와 경찰도 대거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실제로 해당 파일에 경찰이 포함돼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그 명단에 오르게 됐는지를 파악할 방침이다. 또 명단을 공개한 업체 관계자를 대상으로 명단 입수경위도 확인할 계획이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는 수사나 내사가 아닌 진위 파악 단계”라며 “성매매 관련성이 확인되고 수사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정식으로 수사에 착수할 것”이라고 밝혔다.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서울 마포구의 도로변에서 20대 여성의 시신이 들어있는 가방이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17일 마포경찰서에 따르면 16일 오후 5시 10분경 마포구 성산동 월드컵터널 인근 도로변에 놓인 가방 안에서 김모 씨(23·여)가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이곳에서 휴식 중이던 한 택시 운전사가 가방을 발견하고 내부를 확인한 뒤 경찰에 신고했다. 가방은 가로 1m, 세로 0.5m 크기로 시신은 알몸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김 씨가 누군가에게 목이 졸려 숨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정확한 사인을 밝히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경찰은 또 가방이 발견된 현장 주변 폐쇄회로(CC)TV 등을 분석해 용의자 추적에 나섰다.김도형기자 dodo@donga.com}
경찰이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요청한 보이스피싱 조직 피의자들을 중국 공안이 대거 검거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공안의 추적을 피해 주기적으로 근거지를 옮긴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지난해 국내에서 체포영장이 발부된 피의자 6명을 포함한 보이스피싱 조직원 22명이 지난달 말 중국 하얼빈(哈爾濱) 시에서 공안에 체포됐다고 14일 밝혔다. 경찰이 지난해 중국 측에 검거를 요청한 이 조직은 당초 창춘(長春) 시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7월 근거지를 하얼빈으로 옮겼지만 공안이 꾸준히 추적해 검거에 성공한 것이다. 체포 작전에는 80명가량의 공안이 투입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들의 범죄 증거를 분석하는 한편 총책급으로 파악된 전모 씨(33)와 이모 씨(33) 등의 국내 송환 문제를 협의 중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이들의 범죄 금액은 15억 원가량이지만 경찰은 실제 피해액이 이보다 5배 이상일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인출책을 검거하는 것으로는 보이스피싱 근절이 어렵다고 본 경찰이 지난해부터 중국 공안과 적극적으로 공조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서대문서는 지난해부터 중국 옌볜(延邊) 지역 공안과 직접 연락하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이번 조직 검거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현지 조직 역시 이런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맞서고 있다는 것이 이번 사례에서 드러났다. 이들은 하얼빈으로 근거지를 옮기기 전에도 공안의 검거 작전에 대비해 8, 9개월 단위로 옮겨 다닌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 관계자는 “최근 중국에서는 공안의 압박이 커지면서 아예 중국을 떠나 필리핀 베트남 등 동남아에서 활동하는 조직도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13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제5회 영예로운 제복상 수상자들의 노력과 희생을 담은 영상이 공개됐다. 평생을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해 온 수상자들의 사연이 보는 이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줬다. 실수로 수류탄을 떨어뜨린 훈련병을 구한 김현수 상사(33)에게 훈련병들은 “앞으로도 멋진 사나이로 남아 달라”며 뜨겁게 파이팅을 외쳤다. 서해에서 전쟁 같은 작전으로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을 단속하는 한만욱 경위(44)의 활약상에는 “덕분에 큰 시름 덜고 일한다”는 어민들의 밝은 미소가 곁들여졌다. 대상을 받은 이정남 경감(55)은 233명의 목숨을 구한 마포대교 위에서 언제나처럼 매서운 강바람을 맞으며 일하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제복을 입고 일하다 순직하거나 부상한 특별상과 위민경찰관상, 위민소방관상 수상자의 모습이 화면에 비치자 시상식장은 이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시상식 내내 슬픔을 다독이던 유가족들은 시상식이 끝나고 나서야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지난해 2월 경기 화성시 엽총 살인사건 당시 부하 직원 대신 인질극 현장에 출동했다 범인의 총탄에 순직한 이강석 경정(당시 43세)의 아들 정재 군(17)은 “가족들이 모이면 아직도 그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진다. 매일 보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응급 환자 구조 헬기를 타고 전남 신안군 가거도로 출동했다 사고를 당한 고 백동흠 경감(당시 46세)의 아들 승호 군(14)도 “하늘에 계신 아빠에게 사랑한다고 꼭 얘기하고 싶다”며 울먹였다. 지난해 7월 제주 서귀포시 중앙로 단란주점 화재 진압 작전에 나섰다 끝내 가족 곁으로 돌아오지 못한 고 강수철 지방소방령(당시 48세)의 부인 진정임 씨(48)는 “화재 출동을 나갔다 오면 며칠씩 목에서 검은 잿가루가 나오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며 눈물을 흘렸다. 강 소방령 대신 시상대에 오른 딸 윤서 양(18)은 “쉬는 날에는 학교 끝날 시간에 늘 데리러 오던 자상한 아버지가 누구보다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이날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수상자 여러분의 사연을 보며 함께 이 나라에 살고 있다는 것에 한없는 자부심과 고마움을 느꼈다”며 “제복은 국민의 삶 한가운데 있는 ‘국가’”라고 강조했다. 시상식에 앞서 특별승진 임용식이 진행됐다.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과 강신명 경찰청장은 직접 새 계급장을 달아주며 격려했다. 이날 박상진 지방소방장과 한만욱 경사는 각각 소방위와 경위로, 이정남 경위와 남한수 경위는 각각 경감으로 승진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상금을 기부하겠다는 수상자도 있었다. 한만욱 경위는 해경 순직자 3명을 위해 상금(2000만 원) 전액을 내놓기로 했다. 조장석 하사도 상금 전액을 해군바다사랑장학재단에 기부하기로 했다. 전사·순직한 해군 장병의 자녀를 지원하는 장학재단이다. 이정남 경감도 상금 일부를 복지기관에 내놓고 자살 예방을 위해서도 쓸 계획이다. 심사위원장인 정상명 전 검찰총장은 “영예로운 제복상이 해를 거듭할수록 제복 공무원에 대한 국민들의 고마운 마음과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전체 제복 공무원이 국민들에게 제대로 평가받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날 시상식에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한민구 국방부 장관,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 강신명 경찰청장, 김재호 동아일보·채널A 사장 등 내외빈과 수상자 가족, 동료들이 참석했다.김도형 dodo@donga.com·김호경 기자 ▼ 박근혜 대통령 축사 전문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제복 공무원께 감사” ▼‘제5회 영예로운 제복상’ 시상식 개최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지난 한 해 국민 안전을 위해 헌신하신 공로로 수상을 하신 여러분께 감사드리며, 살신성인의 사명감으로 희생하신 순직자와 유가족 여러분께도 깊은 애도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안위보다 국민을 먼저 생각하며, 어려운 근무 환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모든 제복 공무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대내외 경제 환경의 불안정 속에 북한의 핵실험으로 안보 위기까지 몰려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보다 안전하고 풍요로운 나라로 도약해 나가려면, 우리 사회의 질서와 안정을 떠받치고 있는 제복 공무원 여러분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정부는 여러분이 보다 큰 긍지와 자부심으로 일할 수 있도록 처우 개선과 제도적 기반 정비에 더욱 노력할 것입니다. 여러분도 대한민국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는 투철한 사명감으로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해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오늘의 뜻깊은 시상식을 축하하며, 여러분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함께하기를 기원합니다.◇대상이정남 경감(서울 마포경찰서 용강지구대 순찰팀)◇영예로운 제복상김현수 상사(육군 제61사단 본부근무대 경비소대장)조장석 하사(해군 인천해역사령부 218대대 223전진기지대 의무장)남한수 경감(경북 상주경찰서 동문지구대 순찰팀)한만욱 경위(제주해양경비안전서 3012함)박상진 지방소방위(서울119 특수구조단)◇특별상서해해양경비안전본부 항공단(고 최승호 경감, 고 백동흠 경감, 고 박근수 경사, 고 장용훈 경장)◇위민경찰관상고 이강석 경정(경기 화성서부경찰서 남양파출소장)고 이기태 경감(경북 경주경찰서 내동파출소)이광덕 경위(경기 성남중원경찰서 금광지구대 순찰팀)◇위민소방관상고 이종태 지방소방경(경남 산청소방서 산악구조대)고 강수철 지방소방령(제주 서귀포소방서 동홍119안전센터)노석훈 지방소방장(광주 서부소방서 화정119안전센터)● 심사위원 명단정상명 전 검찰총장(심사위원장)이현옥 상훈유통 대표김진국 강남밝은세상안과 원장안동범 세무법인 로고스 회장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중국에서 밀수입한 가짜 발기부전 치료제를 정품처럼 속여 국내에 대량 유통한 일당이 경찰에 검거됐다. 이들은 과거 중국의 불법 의약품 판매 사이트 수사 과정에서 구매자로 위장해 연락처를 남겼던 경찰관에게 제품을 홍보하려 전화를 걸었다 덜미를 잡혔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중국에서 제조한 불법 의약품을 국내에 들여와 유통한 혐의(약사법 위반 등)로 손모 씨(69) 등 5명을 구속하고 이모 씨(55·여) 등 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2일 밝혔다. 공급 총책인 손 씨는 2014년 7월부터 이달 초까지 중국의 밀수업자로부터 가짜 비아그라와 시알리스 등을 사들여 서울 중구 을지로에 있는 사무실에 보관하면서 국내 유통업자 박모 씨(44·여·구속) 등 4명에게 팔아넘긴 혐의를 받고 있다. 손 씨에게 제품을 공급받은 박 씨 등은 인터넷에 판매사이트를 개설하고 명함 형태의 광고지를 제작해 제품을 정품인 것처럼 홍보한 뒤 이를 보고 연락한 고객 4400여 명에게 판매해 15억 원 가량을 벌어들인 혐의를 받고 있다. 박 씨 등은 오피스텔을 빌려 전화 상담실을 차리고 과거에 중국산 발기부전 치료제를 구매한 적이 있는 이들의 개인정보를 입수해 고객에게 접근하기도 했다. 이들이 유통한 의약품 가운데는 비아그라 등의 주성분인 실데나필과 타다라필이 정품의 3~5배 이상인 제품도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성분을 과용하면 심혈관계에 이상을 일으키거나 근육통을 유발할 수 있다. 경찰은 이들 제품이 중국에서 ‘황금 비아그라’, ‘황금 시알리스’ 등으로 포장돼 국내에 유입됐지만 정품은 ‘황금’ 같은 이름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고 전했다. 박 씨 등은 무좀 등에 쓰는 곰팡이균(진균) 질환 치료제를 ‘여성용 비아그라’로 속여 팔기도 했다. 이들은 지난해 6월 개인정보 명단에 있는 번호로 전화를 걸어 제품을 판매하려다 경찰 수사망에 걸려들었다. 우연히 전화를 받은 ‘고객’이 과거 불법 의약품 구매자를 가장해 유통업자를 수사한 경찰관이었던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이들이 유통·판매한 가짜 의약품의 정확한 성분을 확인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분석을 의뢰했다”며 “국내 공급 총책인 손 씨에게 의약품을 공급한 밀수업자의 소재도 추적 중”이라고 밝혔다.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8일 오후 3시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ECC 이삼봉홀. 200명 가까운 사람이 책상과 테이블을 가득 채웠지만 ‘사르륵’ 책장 넘기는 소리와 ‘사각사각’ 연필 소리만이 홀 안을 채우고 있었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컴퓨터는 책상 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이삼봉홀에서는 ‘2016년 이화 에크리’가 열렸다. 프랑스어인 ‘에크리’는 글을 쓴다는 뜻. 행사에 참석한 학생 158명은 미리 정해진 책 5권 가운데 한 권의 서평이나 기행문을 썼다. 이날의 ‘백일장’이 특별한 이유는 어떤 전자기기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3시간 동안 학생들은 오로지 자신이 가진 지식과 감성으로 글을 완성해야 했다. 디지털 정보는 마감시간을 알려주기 위한 대형 스크린의 디지털시계가 전부였다. 평소 인터넷 검색 자료를 마우스로 긁어 붙이고 편집한 뒤 키보드로 정리하는 데 익숙했던 학생들은 B4 용지 크기의 시험지에 연필로 2, 3쪽씩 글을 써 내려갔다. 길고 긴 3시간을 보낸 뒤 학생들은 “어떻게 책 읽고 생각하고 글을 써야 하는지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제러미 리프킨의 책 ‘한계비용 제로 사회’ 서평을 쓰고 나온 최윤영 씨(21·여·글로벌건강간호학 전공 2학년)는 “그동안 책을 가볍게 읽고 글쓰기 역시 다른 사람의 생각에 의존해 왔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고 얘기했다. 기행문을 써낸 학생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짤막한 여행 소감을 올리는 것과 전혀 다른 느낌을 경험했다. 지난해 스페인에 다녀온 이야기를 쓴 윤신우 씨(21·사회학 전공 3학년)는 “여행 중에도 SNS에 글을 많이 올렸지만 대부분 ‘멋있다’, ‘맛있다’처럼 좋은 것만 보여줬는데 이번엔 길을 잃고 헤매던 나쁜 경험까지 담아서 썼다”고 했다. 흔하디흔한 백일장이 특별한 행사로 눈길을 끄는 것은 학생들이 인터넷과 SNS에만 몰입하는 세태의 영향이 크다. 정보의 양은 무한대로 늘어났지만 정작 많은 학생들은 ‘나만의 것’을 만들어 내는 데 어려움을 호소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균관대는 지난해 스마트폰을 맡기고 책을 읽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에크리를 주최한 장미영 호크마교양대학장(59·여)은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하는 책이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직접 쓰는 글이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 자양분이 되는지 알려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한낮 서울 도심에서 훈련 중이던 군용 무인 정찰기가 주택가에 추락하는 아찔한 사고가 일어났다. 군 당국은 주민 신고를 받은 경찰의 통보를 받고서야 출동해 추락한 기체를 수거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과 군 당국에 따르면 7일 오후 1시 50분경 서울 은평구 녹번동의 한 빌라 주차장에 무인 정찰기가 추락해 주민들이 경찰에 신고했다. 주민들이 “날개가 있다”고 설명하는 등 비행 의심 물체로 추정돼 군과 경찰 합동조사단이 출동해 수거한 이 무인 정찰기는 2009년 우리 군이 도입한 ‘리모아이-006’ 기종이다. 중량이 3.4kg 내외인 이 무인 정찰기는 최대 시속 75km의 속도로 날며 300m 상공에서 촬영한 영상을 실시간으로 지상에 보내는 장비다. 지난해 개발을 완료하고 전력화에 나선 방위사업청이 “해외 첨단 무인기와 비교해 손색이 없는 성능을 갖췄다”고 홍보한 바 있지만 훈련 중에 갑작스럽게 추락하면서 주민들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군 관계자는 “레이더 기기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북한이 보유한 무인기와 비슷한 크기의 우리 무인 정찰기를 띄워 훈련을 하다 통신이 두절된 지 1시간 만에 찾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확한 사고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단 이날 불었던 강풍 때문으로 추정된다. 김대영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은 “자칫하면 시민들이 크게 다치거나 숨질 수도 있었던 위험한 사고”라며 “전시도 아닌 평시에 인구 밀집지역에서 훈련을 벌이는 군 당국이 보다 확실하게 안전 관리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김도형 dodo@donga.com·손효주 기자}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4시 반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이 서울 영동대교에서 전화기를 들었다. 한강 다리 14곳에 자살을 막으려 설치한 ‘SOS생명의전화’다. “하염없이 걷다보니 다리 위에까지 오게 돼 전화를 걸어봤다”고 입을 뗀 학생이 고민을 털어놓았다. 부모가 짜놓은 틀 안에서 공부하고 있지만 부모가 원하는 서울 지역 대학에 진학할 자신이 없다는 답답함이었다. 경시대회 성적마저 좋지 않아 고민이지만 부모와 대화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했다. 곧바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였던 이 학생은 차가운 강바람을 맞으며 20분 넘게 상담한 뒤 “얘기를 들어줘서 참 고맙다”며 자리를 떠났다. 이날 전화를 받은 ‘한국생명의전화’ 최정미 대리(33·여)는 “생명의 전화를 든 경우에는 상담과 더불어 경찰과 119 신고도 활용해 극단적인 선택을 막고 있다”며 “다만 이 학생처럼 추가로 가족 상담 등이 필요해 보이는 경우 곧바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2011년부터 마포대교를 비롯한 한강 다리 14곳에 ‘SOS생명의전화’를 운영하면서 자살 예방에 힘써온 ‘한국생명의전화’가 올해 전문 상담원이 상주하는 상담센터를 마련해 시범운영하기로 했다. 최 대리의 얘기처럼 일회성 상담을 넘어서 전문적인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담자는 지방자치단체나 복지단체의 지원까지 받을 수 있게 돕기 위한 노력이다. 상담센터는 ‘SOS생명의전화’ 사업을 지원하는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 예산을 지원해 버스나 컨테이너 형태로 마련된다. 서울시와 협의를 거친 뒤 올 상반기 마포대교 아래나 한강대교 아래에 설치될 것으로 보인다. 상담센터에서는 스스로 찾아오는 학생과 시민은 물론이고 자살 시도를 했다가 구조된 사람들을 위한 후속 상담 등이 이뤄진다. 시범운영 뒤에는 성과를 바탕으로 더 늘려갈 방침이다. 상담센터 설치는 최근 꾸준히 늘고 있는 청소년 자살 시도와도 연관돼 있다. 지난 5년간 4000건이 넘는 위기 상담 가운데 10대 청소년의 비율은 40.1%에 이른다. 청소년들이 자신의 위기 상황을 터놓고 이야기할 소통 창구가 부족하다는 증거다. 상담센터가 설치될 뿐 아니라 올해 가양대교 등 다리 6곳에는 ‘SOS생명의전화’가 추가 설치된다. 그러면 보행자가 다닐 수 있는 한강교량 20곳 모두에 전화 설치가 완료된다. 하상훈 한국생명의전화 원장(56)은 “전화 운영을 시작할 때는 ‘교량에까지 와서 전화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었지만 5년이 지나고 보니 고민과 갈등을 털어놓을 공간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SOS생명의전화로 상담하면서 119 출동까지 있었던 사례는 지난해 11월까지 모두 630건. 이 사람들은 모두 구조됐다.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 서상희 채널A기자}

34만 건. 국무총리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세든 서울 종로구 에스타워 지하 6층에 보관된 강제동원 피해조사 자료 건수다. 30일 이 자료실에서 만난 박인환 위원장(62)은 “여긴 일본의 양심적인 정치인과 지식인이 과거사 문제로 한국을 찾으면 꼭 들르던 ‘성지’였다”며 얘기를 시작했다.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와 태평양전쟁전후국외강제동원희생자지원위원회의 뒤를 이어 2010년 문을 연 위원회는 31일 활동을 마친다. 확보한 자료는 모두 국가기록원으로 옮겨진다. 박 위원장은 “저 자료는 이제 오랫동안 묻히지 않을까 싶다”며 “위원회가 문을 닫아도 일제강점기 우리가 당한 피해를 입증하는 증거와 팩트를 확보하는 노력만큼은 이어져야 한다”고 했다. 검사 출신으로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 그는 2012년 위원장에 취임했다. 그는 “4년 동안 일해 보니 일본이 두려워하는 것은 ‘소녀상’이 아니고 ‘기록’이더라”고 얘기했다. 얼마나 자주 집회를 열었느냐가 아니라 정확하고 풍부한 자료를 얼마나 확보했느냐가 ‘무기’라는 것이다. 그는 “광복 70년이다. 기억은 점점 더 흐려질 텐데 기록과 증거가 없으면 일본이 아니라 우리 후손에게도 지난 과거를 입증하지 못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현직 의원 15명을 포함해 위원회를 찾았던 일본인은 자료를 보고 고개를 숙이면서도 “강제동원 피해를 신고하면 다 인정해주느냐?”고 묻는다고 했다. 이들은 위원회가 심사를 거쳐 기각시키는 비율이 상당하는 것을 보여줘야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위안부 문제에서 박 위원장이 꼽는 최고의 성과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 구술집 ‘들리나요?’를 펴내고 영어판을 미국의 학계 정치계 언론계 외교가에 배포한 일이다. 박 위원장은 “참담한 과거를 털어놓은 할머니의 얘기를 정부의 기록물로 만들어 세계에 알리는 것이 가해자가 가장 겁내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이번 위안부 협상 결과에 대해 “일본이 많은 부분에서 물러서도록 한 성과가 작지 않지만 조금 성급하게 접근한 것 아닌가 하는 점은 아쉽다”고 평가했다. 위로금 지급을 해본 입장에서 가장 우려되는 건 지원재단을 우리나라에 설립한다는 점이다. 그는 “가해국인 독일은 재단을 만들어 배상했다”며 “우리나라에서 만든 재단이 어떻게, 언제까지 사업을 벌일지 등이 앞으로 갈등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연장선에서 가장 아쉬운 것 중 하나는 7만6000여 건, 6200억 원에 이르는 우리 정부의 강제동원 위로금 지급을 정작 우리 정부가 제대로 홍보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위원회는 강제동원 피해를 접수해 사망은 2000만 원, 장애는 300만∼1800만 원까지 지급했다. 박 위원장은 “피해국 스스로 국민에게 위로금 형태로 배상하는 사례로 국제사회에 내놓을 만한데 정부는 ‘예산 부담’으로 보더라”고 했다. 한시적 기구로 출범한 위원회는 설움도 적잖게 당했다. 강제동원 피해자 유골 안치 과정에서는 외교당국이 “상대국을 자극한다”며 홍보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들리나요?’ 영어판 배포에도 외교부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고 한다. 박 위원장은 기관별로 입장이 다르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위원회 업무를 행정자치부에 넘겨주며 꼭 한 가지만은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역사에 대한 우리 국민의 관심은 조금 감성적이지 않나 싶어요. 차분하면서도 냉정하게 관심을 가지는 민족이 결국 역사의 승자가 됩니다. 진실을 찾겠다고 꾸준히 설득했을 때 많은 자료를 제공해준 것도 결국은 일본이었습니다.”김도형 기자 do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