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日, 소녀상보다 위안부 피해 기록물 더 두려워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31일 03시 00분


코멘트

박인환 강제동원조사위원장

위원회 활동 종료를 하루 앞둔 30일 박인환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지원위원장이 지하에 보관된 자료 34만 건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위원회 활동 종료를 하루 앞둔 30일 박인환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지원위원장이 지하에 보관된 자료 34만 건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34만 건. 국무총리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가 세든 서울 종로구 에스타워 지하 6층에 보관된 강제동원 피해조사 자료 건수다. 30일 이 자료실에서 만난 박인환 위원장(62)은 “여긴 일본의 양심적인 정치인과 지식인이 과거사 문제로 한국을 찾으면 꼭 들르던 ‘성지’였다”며 얘기를 시작했다.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와 태평양전쟁전후국외강제동원희생자지원위원회의 뒤를 이어 2010년 문을 연 위원회는 31일 활동을 마친다. 확보한 자료는 모두 국가기록원으로 옮겨진다. 박 위원장은 “저 자료는 이제 오랫동안 묻히지 않을까 싶다”며 “위원회가 문을 닫아도 일제강점기 우리가 당한 피해를 입증하는 증거와 팩트를 확보하는 노력만큼은 이어져야 한다”고 했다.

검사 출신으로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인 그는 2012년 위원장에 취임했다. 그는 “4년 동안 일해 보니 일본이 두려워하는 것은 ‘소녀상’이 아니고 ‘기록’이더라”고 얘기했다. 얼마나 자주 집회를 열었느냐가 아니라 정확하고 풍부한 자료를 얼마나 확보했느냐가 ‘무기’라는 것이다. 그는 “광복 70년이다. 기억은 점점 더 흐려질 텐데 기록과 증거가 없으면 일본이 아니라 우리 후손에게도 지난 과거를 입증하지 못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현직 의원 15명을 포함해 위원회를 찾았던 일본인은 자료를 보고 고개를 숙이면서도 “강제동원 피해를 신고하면 다 인정해주느냐?”고 묻는다고 했다. 이들은 위원회가 심사를 거쳐 기각시키는 비율이 상당하는 것을 보여줘야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위안부 문제에서 박 위원장이 꼽는 최고의 성과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 구술집 ‘들리나요?’를 펴내고 영어판을 미국의 학계 정치계 언론계 외교가에 배포한 일이다. 박 위원장은 “참담한 과거를 털어놓은 할머니의 얘기를 정부의 기록물로 만들어 세계에 알리는 것이 가해자가 가장 겁내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이번 위안부 협상 결과에 대해 “일본이 많은 부분에서 물러서도록 한 성과가 작지 않지만 조금 성급하게 접근한 것 아닌가 하는 점은 아쉽다”고 평가했다. 위로금 지급을 해본 입장에서 가장 우려되는 건 지원재단을 우리나라에 설립한다는 점이다. 그는 “가해국인 독일은 재단을 만들어 배상했다”며 “우리나라에서 만든 재단이 어떻게, 언제까지 사업을 벌일지 등이 앞으로 갈등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런 연장선에서 가장 아쉬운 것 중 하나는 7만6000여 건, 6200억 원에 이르는 우리 정부의 강제동원 위로금 지급을 정작 우리 정부가 제대로 홍보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위원회는 강제동원 피해를 접수해 사망은 2000만 원, 장애는 300만∼1800만 원까지 지급했다. 박 위원장은 “피해국 스스로 국민에게 위로금 형태로 배상하는 사례로 국제사회에 내놓을 만한데 정부는 ‘예산 부담’으로 보더라”고 했다.

한시적 기구로 출범한 위원회는 설움도 적잖게 당했다. 강제동원 피해자 유골 안치 과정에서는 외교당국이 “상대국을 자극한다”며 홍보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들리나요?’ 영어판 배포에도 외교부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고 한다. 박 위원장은 기관별로 입장이 다르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위원회 업무를 행정자치부에 넘겨주며 꼭 한 가지만은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역사에 대한 우리 국민의 관심은 조금 감성적이지 않나 싶어요. 차분하면서도 냉정하게 관심을 가지는 민족이 결국 역사의 승자가 됩니다. 진실을 찾겠다고 꾸준히 설득했을 때 많은 자료를 제공해준 것도 결국은 일본이었습니다.”

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박인환#소녀상#위안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