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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력 지원 부탁드립니다.’ 지난달 21일 오전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개설된 한 카페에 올라온 글이다. 이 카페는 회원 3000여 명 대부분이 남성이다. 게시자는 글과 함께 한 기사의 인터넷접속주소(URL)를 남겼다. 해당 기사에 비판 댓글을 올리거나 해당 댓글을 추천해 달라고 요청하는 것이었다. 기사 URL은 화력을 집중시킬 ‘공격 좌표’인 셈이다. 타깃이 된 기사는 페미니즘 관련 책을 펴낸 교사 A 씨의 인터뷰였다. A 씨는 기사에서 “남성들도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청이 올라오자 회원들의 지원이 현실로 나타났다. 불과 30분 만에 비판 댓글이 무섭게 달리기 시작했다. 댓글 1만8796개(4월 30일 기준) 중 ‘페미니즘은 변형된 공산주의’(추천 1만3424개) ‘페미니즘은 지능(이 떨어져서 믿는) 문제’(추천 3597개) 등의 댓글이 상위권을 장악했다.○ 놀이와 문화가 된 ‘온라인 여론 조작’ 최근 ‘드루킹’(온라인 닉네임) 김동원 씨(49·구속 기소) 일당이 벌인 댓글 여론 조작 사건을 계기로 공공연하게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여론 왜곡 문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집단을 제물삼아 이른바 ‘좌표’를 찍어 공격하는 걸 마치 놀이나 문화처럼 인식하는 것이다. 배우 유아인 씨(32)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번 달 중순 영화 ‘버닝’의 개봉을 앞두고 주인공인 유 씨의 인터뷰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를 다룬 인터뷰 기사마다 악플이 빠지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유 씨가 자신을 비난하는 한 누리꾼의 글을 언급하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비난한 것이 화근이었다. 급기야 여성 회원 중심의 한 커뮤니티에서는 ‘여성을 비하하고 보수 성향 커뮤니티에서 추앙받는 배우’로 유 씨를 규정지었다. 이들은 유 씨가 캐스팅된 영화 버닝을 타깃으로 삼고 “유아인의 신작영화 평점 때리러(테러하러) 가자”고 공격했다. 하루에 500개가 넘는 악플과 ‘1점짜리’ 평점이 줄을 이었다. ‘영화가 망하면 유아인이 정신 차릴까?’ ‘이 영화 절대 보면 안 돼’와 같은 글도 올라왔다. 반대로 남성 회원 중심의 다른 커뮤니티가 맞대응에 나서면서 영화 평점은 널뛰기를 반복했다. ○ ‘온라인 젠트리피케이션’ 택한 시민들 댓글 공격과 평점 테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문화가 일상이 되면서 평범한 누리꾼조차 여론 조작에 둔감해지는 게 현실이다. 급기야 온라인 공론장으로서 역할을 상실한 포털 공간에서 탈출하는 누리꾼이 등장하고 있다. 이른바 ‘온라인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시 개발에 따른 땅값 상승으로 원주민이 떠나는 걸 말한다. 회원이 40만 명에 달하는 네이버의 한 부동산 카페 운영진은 최근 열성 회원들의 활동이 뜸해져 고민이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 관련 게시물마다 찬반 의견이 종종 감정싸움으로 치닫는 탓이다. 한 회원은 “한바탕 갈등 후에는 좋은 정보와 글을 올리던 회원이 하나둘 떠난다. 다른 카페 회원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몰려와 건전한 여론 형성을 방해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일부 누리꾼은 포털 운영 방침과 관련 없는 비공개 커뮤니티나 소수의 오프라인 모임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회사원 박모 씨(26·여)는 “아무래도 믿을 만한 정보와 균형 잡힌 주장이 오가는 공간으로 옮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포털사이트가 여론의 왜곡을 막는 장치를 확보하지 못하면 누리꾼들은 자기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기 어려워진다. 최근 드루킹 사태는 포털이 여론의 공론장으로 기능할 수 있는지 시험대에 선 것”이라고 말했다.김자현 zion37@donga.com·김동혁 기자}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의 전 보좌관 한모 씨가 30일 경찰에 출석했다. 한 씨는 지난해 9월 ‘드루킹’(온라인 닉네임) 김동원 씨(49·구속 기소)의 측근으로부터 500만 원을 받았다가 김 씨 구속 직후인 올 3월 돌려준 혐의(청탁금지법 위반)를 받고 있다. 경찰은 한 씨가 김 씨 일당의 댓글 여론 조작에 관여했거나 미리 알고 있었는지를 집중 조사 중이다. 조사 결과에 따라 김 의원 소환 시기가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전 9시 반경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출석한 한 씨는 취재진에게 “성실하게 사실대로 충실히 조사받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한 씨를 상대로 돈거래 배경과 청탁 유무, 댓글 작업 개입 여부 등을 강도 높게 추궁했다. ‘원격 대질신문’도 이뤄졌다. 드루킹 일당 중 불구속 피의자와 참고인을 서울지역 경찰서 여러 곳에 분산시킨 뒤 수사관을 통해 한 씨 진술을 확인하는 방식이다. 한 씨가 댓글 여론 조작에 개입한 정황이 확인되면 김 의원 수사도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김 의원은 김 씨에게 인터넷접속주소(URL) 10개를 보내고 “홍보해주세요”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김 의원이 URL을 보낸 기사 중에서 드루킹 일당의 댓글 여론 조작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한 씨의 조사 내용을 검토한 뒤 김 의원도 조만간 소환할 것이다. 일단은 참고인 신분이다”라고 말했다. 구속 기소된 김 씨의 첫 번째 공판은 2일 열린다. 빠르면 6월 중 1심 선고가 내려질 수 있다. 경찰은 김 씨의 1심 선고 이전에 추가 기소가 가능하도록 수사하겠다고 밝혔다.권기범 kaki@donga.com·김자현 기자}

27일 오전 9시 29분. 서울 구로구 서서울생활과학고 1층 강당은 학생들이 지른 탄성과 박수소리로 가득 찼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군사분계선(MDL) 콘크리트 연석 앞에서 서로의 손을 마주 잡은 순간이었다. 1학년 학생 100여 명이 남북 정상회담을 생중계로 지켜보고 있던 ‘통일관’ 여기저기서는 “진짜 통일이 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가 터져 나왔다. 같은 시각 서울 양천구 신은초교 6학년 교실에서 TV에 눈을 고정한 학생들은 두 정상이 한 번씩 MDL을 넘나들자 환호성을 질렀다. ○ 시민들 “김정은, 생각보다 멀쩡해”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MDL을 넘어 북으로 오도록 깜짝 제안한 것을 두고 시민들은 놀랍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김정구 씨(32)는 “북으로 와보라고 하는 것이 이번 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전하려고 하는 중요 메시지임을 보여준 행동 같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에게 “어렵사리 평양에서 냉면을 가져왔다. 대통령께서 편안한 마음으로 맛있게 드셨으면 좋겠다”고 한 말은 전국에 냉면 바람을 몰고 왔다. 김 위원장은 평양냉면을 멀리서 가지고 왔다고 하면서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바라보며 “아 멀다고 말하면 안 되갔구나”라고 농담해 웃음을 자아냈다. 서울시내 평양냉면집들은 점심식사로 냉면을 먹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뤄 ‘김정은 특수’를 누렸다. 서울 마포구의 평양냉면 전문점 ‘을밀대’는 한반도기를 꽂은 냉면을 손님에게 냈다. 온라인에서는 “김 위원장이 고모부(장성택)와 친형(김정남) 죽이는 것을 보면서 이상할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멀쩡해 놀랐다”거나 “하는 행동이 귀엽다. 대선 나오면 뽑아줘야겠다” “생각보다 호감” 등의 친근함을 표시한 반응도 나왔다.○ 회담 성공 기원 곳곳서 울려 퍼져 이날 오전 8시경 서울 종로구 청와대 창성동별관 앞부터 광화문 사거리까지는 전국에서 모인 대한민국재향군인회 회원과 시민 5000여 명으로 긴 띠가 만들어졌다. 11년 만의 남북 정상회담을 축하하며 문 대통령을 배웅하려 모인 사람들은 태극기를 흔들거나 ‘정상회담, 비핵화 꼭 성공해요’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 대구 북구에 사는 실향민 진병룡 씨(91)는 “(고향 땅을 밟지 못한 지) 70년이 넘었다. 지속적으로 가족들과 연락하고 서신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기회가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김경자 씨(58·여)는 “두 정상이 함께 서서 활짝 웃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나려고 한다”고 말했다. 광주와 전남지역의 천주교 성당 130여 곳에서는 일제히 타종 소리가 울렸다. 오전 9시 반에 맞춰 1분간 지속된 종소리는 한반도 평화를 염원했다. 일부 음식점과 카페에서는 ‘남북 정상회담 축하 이벤트 아메리카노 무료’ ‘막걸리 1000원 할인’ 이벤트를 내걸기도 했다. 전국 구치소와 교도소 수용자들도 남북 정상회담을 생방송으로 지켜봤다. 하지만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 수감된 박근혜 전 대통령(66·구속 기소)과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구치소에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77·구속 기소)은 생방송을 시청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유족들 “사과가 먼저, 가슴 찢어져” 북한의 도발로 자식을 가슴에 묻어야 했던 유족들은 정상회담을 장밋빛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2010년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아들을 잃은 고 서정우 하사의 어머니 김오복 씨(58)는 “북한이 의도적인 도발에 대해 사과하고 유감을 표명하는 것이 먼저다. 국가를 위해 희생한 아이들(장병들)의 아픔이 묻힌 것 같아 가슴이 찢어진다”며 눈물을 흘렸다. 천안함 폭침으로 숨진 고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 씨(75)는 폭침 주범으로 알려진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TV에 비칠 때마다 “정말 꼴도 보기 싫다”며 언성을 높였다. 판문점과 가까운 경기 파주시 임진각 일대는 정상회담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단체 간의 대립으로 긴장감이 조성되기도 했다. 찬반 단체 회원들은 서로 마주칠 때마다 곳곳에서 고성을 지르고 몸싸움을 벌였다. 김동혁 hack@donga.com·김호경 / 파주=김자현 기자 / 전국종합}
올 1월 초순 서울 영등포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신입생 예비소집이 열렸다. 70여 명의 예비 초등생이 엄마 손을 잡고 학교를 찾았다. 그러나 A 군(7)이 보이지 않았다. 예비소집에 불참한다는 부모의 연락도 없었다. 예비소집 후에도 부모와 연락되지 않았다. 아동학대나 실종 가능성을 우려한 학교 측은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A 군의 소재 확인을 요청했다. 경찰은 A 군의 주소지 등을 수소문했다. 하지만 어디서도 A 군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심지어 A 군을 봤거나 아는 사람도 없었다. 해외에 나간 기록도 없었다.○ 출생부터 미스터리 A 군의 어머니는 중국동포 출신 김모 씨(45)다. 김 씨는 1997년 한국인 정모 씨(56)와 혼인신고를 했다. 2012년 2월 김 씨는 아들을 낳았다며 주민센터에 출생신고를 했다. 바로 A 군이다. 중국 광둥(廣東)성의 한 병원에서 발급한 출생증명서를 첨부했다. 2013년 4월 김 씨는 주민센터에 양육수당을 신청했다. 2017년 12월까지 매달 10만∼20만 원의 수당이 김 씨 계좌로 꼬박꼬박 입금됐다. 경찰이 눈여겨본 건 바로 이 계좌다. 양육수당이 빠지지 않고 지급된 걸 확인하고 김 씨 계좌를 추적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놀라온 사실이 차례로 밝혀졌다. 김 씨는 2013년 중국으로 출국한 뒤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5년간 입국 기록이 없는 것이다. 더 놀라운 건 21년 전 결혼이 가짜라는 사실이다.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위한 위장 결혼이었던 것이다. 경찰은 최근 남편 정 씨의 소재를 확인하고 허위 혼인신고 혐의(공정증서 부실기재행사)로 입건했다. 정 씨는 경찰에서 “김 씨는 혼인신고 때 얼굴을 본 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고 털어놨다. 이제 경찰은 A 군의 출생 자체를 의심하고 있다. 김 씨가 출생신고까지 허위로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중국 현지 병원에서 발급한 출생신고서의 위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25일 “A 군이 실존 인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전제 아래 수사를 진행 중이다”라고 밝혔다. ○ 브로커 통한 조직적 범죄 가능성 A 군의 존재도 불확실한 가운데 어머니 김 씨까지 5년가량 해외에 있었지만 양육수당은 매달 빠짐없이 지급됐다. 영등포구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5년간 A 군 앞으로 지급된 양육수당은 총 610만 원이다.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구청 공무원은 경찰 참고인 조사를 받은 뒤에야 사실을 알게 됐다. 공무원은 경찰 조사에서 “문제가 있는 줄 전혀 몰랐다. 절차대로 진행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양육수당 지급 대상은 84개월 미만의 미취학 아동이 있는 가정이다. 신청서와 보호자 이름의 통장 사본, 가족관계증명서 등 서류만 있으면 온라인 신청이 가능하다. 신청 및 수당 지급 과정에서 서류 말고는 별도의 확인 절차가 없다. 대상 아동이 해외에 장기 체류를 하더라도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영유아보육법에 따르면 90일 이상 해외에 체류할 경우 양육수당 지급이 중단된다. 하지만 출입국 기록이 없는 경우 보호자의 자진 신고 외에는 이를 적발할 방법이 없다. 오히려 일부 지자체에서는 “이중 국적인 경우 외국 여권을 사용하면 장기 체류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며 사실상 편법을 안내하고 있다. 경찰은 김 씨가 양육수당을 신청하고 수령하는 과정에 전문 브로커가 개입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비슷한 사례를 찾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출입국 기록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지만 일일이 적발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답했다.※ 5년간 양육수당 받은 A 군은 어디에…1997년 중국동포 김모 씨, 한국 남성과 혼인신고 후 국적 취득→위장 결혼으로 확인2012년 2월 김 씨, 주민센터에 A 군 출생신고→출생증명서 첨부(위조 여부 확인 중)2013년 4월 김 씨, A 군 양육수당 신청2013년 하반기 김 씨, 중국으로 출국2017년 12월 양육수당 종료→매달 10만∼20만 원 57회 지급2018년 1월 초등학교 예비소집에 A 군 불참→경찰에 소재 파악 요청2018년 2월 경찰, 양육수당 입금계좌 추적→김 씨 출국 확인. A 군 출입국 기록 없음2018년 4월 김 씨의 위장 결혼 상대 남성 입건 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드루킹’ 김동원 씨(49)가 느릅나무 출판사의 일일 회계 기록을 남기지 않고 매일 삭제한 사실이 경찰 수사 결과 드러났다. 느릅나무 출판사는 댓글 여론 조작이 이뤄진 곳이다. 경찰은 김 씨와 ‘경공모(경제적 공진화 모임)’의 자금 출처 및 사용처를 집중 수사 중이다. 서울지방경찰청은 24일 서울 강남구 J회계법인과 경기 파주세무서를 압수수색했다. 경찰은 느릅나무 출판사의 자금 흐름이 담긴 회계장부와 세무서 신고 내용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자료는 출판사 사무실 등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김 씨가 자금 관련 자료에 대해 특별관리를 지시한 탓이다. 경찰에 따르면 경공모 회계 책임자인 ‘파로스’ A 씨는 2016년 7월부터 매일 엑셀 파일로 금전출납장과 일계표를 작성했다. 그는 자료를 J회계법인에 보낸 뒤 즉각 삭제했다. 복구가 불가능한 삭제 프로그램까지 동원했다. 회계 자료 삭제를 지시한 게 바로 김 씨다. 김 씨는 경찰에서 강연료와 비누 판매 수입으로 조직을 운영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회계 기록을 매일 삭제한 정황으로 볼 때 외부의 지원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J회계법인 관계자는 “우리는 느릅나무의 부가가치세 신고와 원천징수를 담당했는데 매출이 거의 없다시피 할 만큼 미미했다”고 말했다. 사실이라면 회계법인 자료 외 ‘비밀 장부’의 존재 가능성도 엿보인다. 실제 느릅나무 출판사 담당 회계사는 경공모 회원이다. 느릅나무 출판사와 경공모는 사실상 하나의 조직이나 다름없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또 경찰은 김 씨 등 경공모 핵심 회원의 국회 출입 기록도 확보했다. 우선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과의 접촉 기록을 확인 중이다. 김 의원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대통령 선거 전 김 씨가 사무실로 찾아와 수차례 만났다고 직접 밝혔다. 경찰은 김 씨 일당이 김 의원 말고 다른 여권 인사를 만났는지 수사 중이다. 경찰은 김 씨 측으로부터 500만 원을 받았다 돌려준 김 의원실 한모 보좌관을 조만간 소환할 방침이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경공모 핵심 회원인 B 씨(온라인 닉네임 ‘성원’)는 한 보좌관에게 500만 원을 건넸다. 이어 김 씨가 구속된 다음 날인 지난달 26일 한 보좌관이 다시 돌려줬다. 또 김 씨 측이 댓글 추천 수 조작을 위한 매크로 프로그램을 사용하기 위해 서버까지 자체 구축한 것이 확인됐다. 이들은 서버를 ‘킹크랩’으로 불렀다. 여론 조작이 상당한 규모로 이뤄졌을 가능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현재 구치소에 수감 중인 김 씨는 24일부터 외부인을 접견할 수 없다. 김 씨가 외부와 편지를 주고받는 과정에서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고 본 검찰이 법원에 접견금지를 청구한 게 받아들여졌다.조동주 djc@donga.com·김자현·허동준 기자}
“거리를 두는 게 좋겠습니다.” 올해 초 ‘드루킹’ 김동원 씨(49·구속 기소)가 이끄는 ‘경공모(경제적 공진화 모임)’ 초청 강연에 참석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게 한 측근이 이렇게 말했다. 강연은 안 전 지사가 현직에 있던 올 1월 13일 서울 경희대에서 열렸다. 경공모 회원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당시 안 전 지사를 보좌해 강연 현장을 찾은 측근은 “강연에 다녀온 직후 ‘사람들의 눈빛과 행동이 이상해 보인다. 앞으로 (경공모 사람들과) 얽히지 않도록 조심하시라’고 조언했다”고 22일 말했다. 이날 안 전 지사 측근은 김 씨와 인사를 나누고 명함도 교환했다. 강연 전 열린 간담회에서 김 씨는 안 전 지사에게 “강연을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안 전 지사는 강연료 명목으로 40만∼60만 원을 입금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강연은 더불어민주당 김경수 의원의 소개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은 “대선 이후 드루킹이 안 지사를 강연에 초대하고 싶다고 해서 연결해준 적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날 강연 일정은 충남도의 외부 강연 담당자도 모른 채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김 씨는 안 전 지사에게 인사 청탁 등 민감한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대신 이상한 분위기가 포착됐다. 안 전 지사의 측근은 “자신이 요청해 성사된 강연인데도 김 씨는 강연 자체에 별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 대신 같이 있는 사진을 많이 남기려 하는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강연이 끝나고 김 씨는 현장에서 안 전 지사와 헤어졌다. 김 씨는 “이곳에서 회원들끼리 행사가 있다. 나중에 따로 연락드리겠다”고 말하며 안 전 지사를 보냈다. 이에 대해 안 전 지사의 측근은 “실제로 김 씨가 안 전 지사에게 연락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말했다.김동혁 hack@donga.com·김자현 기자}

“내가 경찰에 잡혀가면 너희도 낙동강 오리알 신세야. 너희처럼 멍청한 애들 받아주는 교수가 있겠느냐.” 지난달 서울의 한 사립대 A 교수가 대학원 제자들에게 말했다. 이어 “증거를 없애라”라고 지시했다. A 교수는 이들의 인건비를 가로챈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던 중이었다. 제자를 연구원으로 허위 등록해 정부나 기업의 인건비 지원을 받은 뒤 가로챈 혐의다. A 교수는 증거 인멸을 지시하며 피해자인 제자들에게 공범이 될 것을 요구했다. 이어진 조사에서 교수는 범행을 부인했지만 구속됐다. 제자들의 진술 덕분이다. 대학원생 서모 씨(29)는 “그분 밑에서 배운 거라곤 사기와 횡령, 증거 인멸뿐이다. 이런 관행이 후배들에게 대물림되는 걸 막기 위해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 ‘공범이 돼라’고 강요받는 학생들 그러나 A 교수의 구속은 또 다른 고통의 시작이었다. “낙동강 오리알이 될 것”이라는 협박은 현실이 됐다. 학교 측은 법원 판결 전까지 새로운 지도교수 배정 등 후속 조치를 내릴 수 없다고 했다. A 교수와 함께 했던 대학원생의 모든 연구와 학업이 중단됐다. 장학금도 끊겼다. 학생들은 ‘비리 교수의 제자’라는 낙인까지 찍혔다. 정모 씨(29)는 “(진술을) 후회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직장까지 그만두고 어렵게 들어온 대학원인데 진로가 불안해 잠이 안 온다”고 털어놨다. 제자의 인건비를 가로채는 교수의 갑질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지금도 서울지역 사립대 2곳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똑같은 피해가 반복되지만 학생들은 2차 피해를 우려해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본보 취재팀은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A 교수와 또 다른 사립대 B 교수의 지도를 받은 재학생과 졸업생 10명을 인터뷰했다. 재학생 6명은 견디다 못해 학업 중단까지 각오한 상태이고 졸업생들은 학위 취득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난 뒤에야 피해 사실을 수사기관에 알렸다. 두 교수의 수법은 기존에 적발된 교수들과 비슷했다. 정부나 기업으로부터 연구과제를 따낸 뒤 연구원 수를 부풀려 실제 필요한 액수보다 많은 돈을 받아냈다. 또 학생들 통장으로 지급되는 인건비 중 절반 이상을 추가로 상납받았다. 학생들은 매달 160만∼180만 원을 받았지만 30만∼70만 원을 뺀 나머지를 교수에게 송금했다. 지원 기관에는 전액 수령했다고 거짓으로 서명했다. 교수들은 “내 덕분에 연구에 참여해 그거라도 벌게 된 것 아니냐”며 정당화했다. 학생 김모 씨(39)는 “선배들로부터 내려온 관행이었고 반발하기에는 (학생들의) 힘이 너무 약했다”고 말했다. 더욱 힘든 건 인격 모독이었다. “너희처럼 멍청한 애들은 밤새 일해야 한다” “내 초등학생 딸보다 영어도 못하면서 잠이 오냐” “내 신발에 먼지만도 못한 것들”이라는 등의 폭언까지 들었다. 한 학생은 “밤새워 만든 보고서를 제출했더니 교수가 책상을 내리치며 ‘가난한 너희들이 나 아니면 다른 데 가서 뭘 하겠느냐. 제대로 하라’고 욕설을 퍼부었다”고 말했다. ○ 폭로와 고발 후 닥친 잔인한 현실 학생들은 참다못해 교수의 비리를 고발했다. 하지만 학생들에겐 더 잔인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횡령 금액이 수십억 원을 넘어서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비리 교수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학교로 복귀한다. 인건비 착취 등 연구비 횡령이 유죄로 인정돼도 대부분 벌금이나 집행유예에 그친다. 학생들이 “더럽고 치사해도 조금만 참자”고 스스로를 달랠 수밖에 없는 이유다. 11일 전국대학원노동조합에 따르면 지난해 학생 연구비 횡령으로 1심 판결이 난 5건 중 실형 선고는 1건에 불과했다. 집행유예가 3건, 벌금형이 1건이었다. 연구비 10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된 서울의 한 사립대 교수는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연구비 유용이 관행처럼 행해진 점을 참작했다”는 게 이유였다. 대학도 정직 등의 징계를 내린 뒤 강단에 복귀시키는 경우가 많다. 서울의 한 사립대 관계자는 “연구과제로 들어온 금액은 교수가 따온 예산이라는 인식이 많다. 워낙 광범위한 관행이라 해임 등 무거운 처분을 내리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학생 남모 씨(28)는 “교수를 고발하지 않으면 횡령의 공범이 되고, 고발하면 지도교수를 잃고 학위 취득이나 취업 등 진로가 불투명해진다. 출구 없는 지옥과 다름없다”고 털어놨다. 현재 A 교수는 구속돼 검찰 조사를 받고 있다. B 교수는 학교 자체 감사에서 문제가 드러나 학교 측이 검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B 교수는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2차 피해 우려 때문에 고발 시기를 ‘안전한’ 졸업 후로 미루기도 한다. 또 다른 대학원에 재학 중인 안모 씨(27·여)는 “인건비 부풀리기를 알고 있지만 학위가 걸려 있어 쉽지 않다. 졸업하고 학위 취소가 불가능한 때가 되면 고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이지훈 easyhoon@donga.com·김자현 기자}
‘예비후보 ○○○입니다. 따뜻한 봄 맞으세요’ ‘여러분의 큰 사랑 받은 ○○○이 돌아왔습니다’ ‘똑! 소리 나게 일하겠습니다’ ‘내일을 위한 희망!’…. 요즘 앞자리에 02(서울)나 031(경기)처럼 지역번호가 있는 유선전화 문자메시지의 상당수는 이런 내용이다. 6·13지방선거 예비후보의 ‘문자 운동’이다. 직장인 김모 씨(26·서울 동대문구)도 10일 하루에만 선거 문자를 9통이나 받았다. 지금 사는 지역에서 온 것도 아니다. 고향인 전북지역의 예비후보들이 보낸 것이다. 김 씨는 “시도 때도 없이 오는 문자 탓에 은근히 스트레스가 생긴다. 도대체 내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도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선거가 아직 두 달 넘게 남았지만 벌써부터 ‘문자 폭탄’에 시달리는 사람이 꽤 있다. 이유가 있었다. 문자메시지를 이용한 선거운동 규정이 애매해진 탓이다. 10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공직선거법상 선거운동 차원에서 20명이 넘는 사람에게 한꺼번에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건 최대 8회까지 허용된다. 20명 이하에게 보내는 경우는 제한이 없다. 이때도 컴퓨터 등 단체발송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건 안 된다. 문제는 지난해 2월 공직선거관리규칙이 일부 바뀌면서다.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한 문자메시지 대량 발송을 제한하는 규정이 삭제된 것이다. 일단 선관위는 공직선거법에 포괄적으로 규정돼 문제없다는 의견이다. ‘컴퓨터 등’에는 휴대전화도 포함돼 프로그램을 이용한 대량 발송이 불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컴퓨터와 달리 휴대전화는 불법 프로그램 사용 단속이 쉽지 않다. 선관위 측도 적절한 단속 방법을 놓고 고심 중이다. 이미 일부 선거캠프에서는 애매한 규정을 악용하고 있다. 대량 발송 앱을 이용해 선거법에 위반되지 않는 ‘20명’ 상한선에 맞춰 문자를 보내는 것이다. 20명씩 쉴 새 없이 문자를 보내면 1시간에 최대 100만 명에게 보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모바일 메신저인 카카오톡도 선관위 규정에 따르면 여전히 전자우편이다. 전자우편은 메시지 발송에 제한이 없다. 선관위 관계자는 “카카오톡을 통한 선거운동은 마땅한 규정이 없어 보완할 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김동혁 hack@donga.com·김자현 기자}
‘5평짜리 빈민 아파트, 우리 동네엔 안 됩니다.’ 6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아파트 우편함에 꽂혀 있던 안내문의 내용이다. 안내문을 만든 건 ‘임대아파트 반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비대위는 “서울시가 청년임대주택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아파트 옆에 빈민 아파트를 신축하려 한다. 주변이 슬럼화하고 아파트 가격이 폭락할 것”이라며 공사를 반대하고 있다. 이 아파트 783가구 중 562가구가 반대의 뜻을 밝히고 있다.○ 집값 떨어지고 슬럼화한다? 최근 청년들의 주거난을 해결하기 위해 임대료가 싼 전용 주거시설 신축이 곳곳에서 추진 중이다. 하지만 대상 지역마다 주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서울 강동구 역세권 청년임대주택과 서울 성북구 행복기숙사 등은 추진 반대 주민들 탓에 수년째 공사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반대 주민들은 공통적으로 부동산 가격 하락과 지역 슬럼화 등을 가장 큰 이유로 꼽고 있다. 하지만 청년 주거시설은 기존 주택의 시세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가격을 떨어뜨린 사례는 더욱 찾기 힘들다. 지난해 2월 입주한 서대문구 가좌지구 대학생 특화 임대주택과 2014년 4월 강서구 공공기숙사가 대표적이다. 두 곳 모두 건설 전 주민 반대가 심했던 곳이다. 9일 두 지역의 공인중개사사무소 7곳은 “집값이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가좌지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100m² 크기의 아파트가 1년 전에 비해 1억 원 가까이 올랐다”고 말했다. 또 근처의 78.4m²짜리 아파트는 2017년 1월 한 채에 4억4500만 원에 거래됐으나 대학생 임대주택 입주가 끝난 2018년 1월 5억 원에 팔렸다. 같은 기간 서울의 아파트 가격이 지속적으로 오른 것을 감안해도 대학생 임대주택이 악영향을 미쳤다고 하긴 힘들어 보였다. 강서구 공공기숙사 주변 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들도 “집을 보러 오는 사람 중에 근처에 공공기숙사가 있는 걸 걱정하는 사람은 못 봤다. 대부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공기숙사 근처의 84.8m² 크기 아파트 한 채의 실거래가는 2014년 공공기숙사 입주 후 지금까지 2억 원가량 올랐다. 슬럼화 걱정도 기우라는 평가다. 가좌지구를 담당하는 마포경찰서 월드컵지구대 측은 “대학생 임대주택 입주 후에도 치안 수요는 별로 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근처 아파트 주민 장모 씨(60·여)는 “젊은 사람이 많이 모이면 술 마시고 싸움 벌어질까 걱정했는데 임대주택이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조용하다”고 말했다. 강서구 공공기숙사도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 덕분에 새로운 유흥가가 들어서지 않았다. 현재 주민들이 반대하고 있는 영등포구 청년임대주택 부지 근처에도 초등학교가 있다. 술집 등 유흥업소가 새로 들어오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환경오염 및 안전 대책은 필요 대상 지역의 주민들은 공사 과정에서 발생할 소음과 매연 피해를 주장하고 있다. 공사 기간과 입주 후 교통 혼잡도 우려하고 있다. 영등포구 청년임대주택 반대 비대위는 “공사 진동과 소음, 모래먼지로 주민들이 고통을 겪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사실 이런 피해는 기존 지역에서도 어느 정도 확인됐다. 월드컵지구대는 “가좌지구 대학생 임대주택 공사 때도 소음 민원이 수차례 들어왔다”라고 밝혔다. 이에 서울시는 “주민들이 소음이나 안전 피해를 가급적 덜 받도록 하겠다. 안전기준에 맞춰 확실히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영등포구 임대아파트 반대 비대위는 “청년을 빈민이라고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도 청년 주거 문제에 공감한다”면서도 “지역 주민들에게 피해가 생긴다면 시에서 확실한 대책 마련에 힘써 달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추진 중인 영등포 청년임대주택은 626채 규모로 올 9월 착공해 2020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다.김자현 zion37@donga.com·최지선 기자}
5일 오전 11시 반경 서울 종로구 A어린이집 앞. 길에서 고무타일이 깔린 어린이집 마당놀이터로 통하는 출입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문에 적힌 ‘영유아 안전을 위하여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하며 출입 시 문을 꼭 닫아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무색했다. 놀이터에서 몇 걸음만 걸어가면 어린이집 현관문이 보인다. 이 문을 통하면 아이들이 있는 공간으로 바로 들어갈 수 있다. 입구, 복도, 마당 등에는 폐쇄회로(CC)TV가 여러 대 설치돼 있지만 어린이집 곳곳을 활보하는 동안 아무도 제지하거나 나와 보지 않았다. 2일 서울 서초구 방배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초등생 인질극’ 이후 학부모 사이에서는 유치원과 어린이집 안전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학교보안관이라도 있는 초등학교와 달리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사실상 외부인이 드나드는 데 더 취약하다는 걱정이다. 이날 본보 기자가 서울 시내 유치원과 어린이집 5곳을 돌아본 결과 마당이나 놀이터가 있는 곳들은 외부인이 쉽게 들어올 수 있었다. 울타리가 있지만 성인 남성 키보다 훨씬 낮아 넘기 쉬워 보였다. 또 문은 5곳 모두 잠겨 있지 않았다. 서대문구 B유치원은 잠금장치 등이 달린 정문은 외부인의 접근이 어려워 보였지만 뒷마당으로 향하는 울타리문은 열려 있었다. C어린이집은 문은 열렸는데 인터폰 버튼은 작동하지 않았다. 실정은 이랬지만 한 보육교사는 “아이들과 교사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 안전하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문을 닫아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4일 아이를 직접 유치원에 데려다준 이모 씨(32·여)는 “병원에 들렀다가 오전 10시에 갔는데 유치원 출입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닫는 것을) 깜빡했다는 교사에게 싫은 소리를 하고 왔다”고 말했다. 김모 씨(35·여)는 “며칠 전 미세먼지가 사라졌다면서 출입문과 창문을 열어놓은 게 생각나 아이 어린이집에 찾아가 문을 닫아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대책을 내놓는 유치원, 어린이집도 생겼다. 일부에서는 초인종을 설치하거나 방문 시간을 제한한다. 충북 충주시 D유치원은 등·하원 시간에만 출입문을 개방한다는 통지문을 학부모에게 보냈다. 현관에는 교무실로 연결되는 초인종을 추가 설치했다. 외부인은 신분증을 확인하고 방문증을 발급해 달게 했다. 엄마들 중심의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사흘째 직접 애들을 데리고 왔다 갔다 하는데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여름이 되면 문을 매일 열어놓을 텐데 걱정이다’ ‘학교처럼 보안관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등 막연한 불안감을 토로하는 글들이 올라온다. 구로구 F어린이집 원장 이모 씨(48·여)는 “방배초 사건 이후 ‘이상한 사람이 출입할 때 제지할 수 있는 남자 직원이 있느냐’ ‘외부인 출입은 어떻게 관리하느냐’ 같은 문의 전화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신규진 newjin@donga.com·김자현 기자}

4일 오전 8시 반 서울 영등포구 A초등학교 앞. 카우보이모자를 쓴 학교보안관과 교감선생님이 교문 양쪽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근처 골목길에선 순찰 중인 경찰관 모습도 보였다. 오전 9시 학교보안관이 육중한 철문을 닫았다. 그리고 자물쇠를 채웠다. 늦게 온 학생 한 명은 보안관이 문을 열어 준 뒤에야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이 학교의 출입 관리가 깐깐한 이유가 있다. 8년 전 발생한 ‘김수철 사건’ 탓이다.○ ‘그때 그 사건’ 후 학교가 바뀌었다 2010년 6월 김수철(당시 45세)은 이 학교 운동장에서 여학생(당시 8세)을 납치해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 뒤 성폭행했다. 지금의 학교보안관 제도가 바로 김수철 사건 때문에 마련됐다. 사건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학교에는 제대로 된 출입관리 시스템이 없었다. 교문은 24시간 열려 있었고 외부인은 별다른 신분 확인 없이 학교를 드나들었다. 주민들은 학교 운동장을 지름길 삼아 동네를 왕래했다. 하지만 김수철 사건을 계기로 이 학교의 출입 관리는 180도 바뀌었다. 이날 오전 9시 15분경 은색 싼타페 차량 한 대가 교문 앞에 멈췄다. 수업을 위해 정기적으로 학교를 찾는 외부강사였다. 보안관은 신분증과 얼굴을 대조했다. 강사는 방문대장을 모두 작성한 뒤 학교 안으로 들어섰다. 보안관 원모 씨(63)는 “김수철 사건 후 학교가 보안 시스템과 시설물을 꾸준히 보완했다. 안전 매뉴얼을 철저히 따르기 때문에 이제 보안에 철저한 편이다”라고 말했다. 이 학교에는 원 씨 등 보안관 2명이 근무 중이다. 두 사람 모두 검은색 호출기를 몸에 지니고 다닌다. 자리를 비웠을 때 방문자가 정문의 호출 벨을 누르면 호출기가 울린다. 보안관들이 다른 업무 때문에 자리를 비워도 ‘안전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다. 가장 큰 변화는 교문 폐쇄다. 등하교 시간을 제외하고 학교는 모든 출입문을 걸어 잠근다. 학부모라도 출입을 원하면 반드시 신분증을 확인하고 출입기록을 작성해야 한다. 사실 교문 폐쇄나 신원 확인은 모두 교육부 매뉴얼에 있는 내용이다. A초교는 다른 학교와 달리 매뉴얼을 철저히 지킨 것이다. 그래도 빈틈은 있었다. 학부모 행사 등 불특정 다수가 학교를 방문할 때 방문증 발급 절차를 생략할 수 있는 것이다. 학교 측은 이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안전 공백’을 걱정했다. 그래서 올해 도입된 것이 가정통신문이다. 행사를 알리는 가정통신문을 보내면서 아래 부분에 절취할 수 있는 ‘방문확인증’을 붙인 것이다. A초교 교장은 “안전을 위해 여러 방안이 있겠지만 일단 매뉴얼만 지켜도 기본은 한다는 마음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두가 함께 만든 ‘안전한 학교’ A초교가 출입문을 폐쇄했을 때 일부 주민은 반발했다. 학교 후문을 통하는 코스가 근처 지하철역으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후문 폐쇄 후 한동안 주민과 보안관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하지만 ‘불편함’ 때문에 ‘안전’을 포기할 수 없었다. 학교 측은 “학생 안전이 1순위인 것이 맞다”며 수개월에 걸쳐 주민을 설득했다. 지금은 학교 옆 큰길로 돌아가는 문화가 자리를 잡았다. 학부모들도 동참했다. 이날 하교시간 10분 전 학교를 찾은 학부모 안모 씨(37·여)는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교문 앞에서 자녀를 기다렸다. 안 씨는 “조금 오래 서 있어도 불편한 게 낫다. 학교가 적극적으로 아이들 안전에 신경 쓰기 때문에 나도 기꺼이 ‘불편함’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구특교 kootg@donga.com·김자현 기자}
3일 오전 8시 반 서울 영등포구의 한 초등학교 앞. 학생들이 줄지어 등교하고 있었다. 교문 옆에는 40대 여교사가 등교 지도 중이었다. 학교 보안관은 교문 앞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노란 깃발을 들고 있었다. 트렌치코트 차림에 백팩을 멘 기자는 조심스럽게 교문 안으로 향했다. 순간 여교사와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학교 건물까지 약 100m를 걸었다. 20대 후반의 남성인 기자에게 “어떻게 오셨냐”고 묻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교장실과 교무실, 교실이 있는 복도를 지나 5층까지 올라갔다. 30분가량 오가며 교사 몇 명을 마주쳤다. 모두들 처음 본 기자에게 웃으며 목례를 건넸다. 불과 하루 전 서울 방배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인질극의 충격은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과연 이 학교만 그럴까. 이날 본보 20대 남성 기자 2명은 서울의 초등학교 12곳을 찾았다. 절반이 넘는 7곳에서 ‘무사통과’였다. 이 중 5곳은 교문에서 아무 제지가 없었다. 나머지 2곳에서는 학교보안관이 신원을 물었다. 하지만 “학부모”라는 말만 듣고 출입을 허용했다. 교육부 규정에 따르면 학교 방문자는 신분증 확인과 출입기록 작성 후 방문증을 받아야 한다. 12개 학교 모두 입구에 이런 안내문이 있었다. 하지만 신분증 제시를 요구한 건 5곳에 불과했다. 한 학교에서 교감을 만나 신원을 밝히고 물어봤다. 교감은 “교내로 들어오는 사람을 일일이 검사하는 건 불가능하다. 특히 방과 후 학교를 적극 개방하라는 게 교육청 방침이라 관리가 더욱 어렵다”고 털어놨다. 방배초등학교에서 인질극을 벌인 양모 씨(25)는 3일 경찰에서 “‘학생을 잡아 세상과 투쟁하라’는 환청이 들려 학교를 찾아갔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양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구특교 kootg@donga.com·김자현·최지선 기자}

불법 시위 주도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되자 잠적한 장옥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건설노동조합 위원장(56)의 ‘은신처’가 확인됐다. 다름 아닌 건설노조 사무실이다. 장 위원장의 모습이 포착된 건 27일 오후 건설노조 사무실이 입주한 서울 영등포구의 4층짜리 건물 옥상이다. 그는 검은색 점퍼와 바지, 하얀 운동화를 신고 나타났다. 메시지를 보는 듯 손에 쥔 휴대전화를 수시로 확인했다. 약 10분 후 장 위원장은 옥상으로 올라온 한 여성과 함께 사무실로 내려갔다. 건설노조 사무실은 이 건물 3층에 있다. 장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28일 서울 마포대교를 점거한 불법 시위를 주도한 혐의로 13일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그러나 당일 오전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지 않은 채 이날까지 보름째 잠적한 상태였다. 경찰도 장 위원장의 소재를 파악했지만 구속영장을 집행하지 않고 있다. 수사 초기도 아니고 구속영장까지 발부된 피의자의 도피를 묵인한다는 비판이 경찰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영장 발부 보름 넘도록 체포 안해… 장옥기, 평소처럼 노조 업무 ▼장옥기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건설노동조합 위원장(56)은 구속영장 발부 후 건설노조 사무실에 은신하며 평소와 다름없이 노조 업무를 보는 것으로 28일 알려졌다. 외출을 거의 하지 않는 대신 이따금 건물 옥상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 본보 기자가 확인한 27일 오후에도 장 위원장은 옥상을 산책하듯 걷고 있었다. 휴대전화도 자유롭게 사용하고 있었다. 경찰의 통신추적을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는 도로 건너편 건물 옥상에 있는 기자를 바라보는 등 주위를 경계하는 모습도 보였다. 27, 28일 이틀간 장 위원장은 옥상 말고는 바깥으로 나오지 않았다. 종종 노조원들이 과일 등을 싸들고 사무실로 들어가는 모습이 목격됐다. 지난해 11월 28일 장 위원장이 주도한 불법시위로 마포대교 일대가 3시간가량 교통이 마비됐다. 퇴근시간대 시민들은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경찰 15명 등 18명이 다쳤다. 그러나 장위원장은 13일 법원의 영장실질심사에 불참하며 “올해 말 임기를 끝마치고 자진 출석하겠다”고 밝히고 곧바로 잠적했다. 서울남부지법은 이날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장 위원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법원은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 피의자의 구속영장이 발부되면 수사기관은 지체 없이 구치소에 수감하는 것이 원칙이다. 박근혜 이명박 두 전직 대통령 역시 법원의 영장 발부 직후 수감됐다. 구속영장이 발부된 장 위원장이 버젓이 서울 도심에서 업무를 볼 수 있는 건 경찰이 사실상 묵인하고 있는 탓이다. 경찰은 장 위원장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보름이 지난 28일까지 그를 체포하지 않고 있다. 장 위원장의 은신처가 건설노조 사무실이라는 걸 진작 확인했지만 구속영장을 집행하지 않고 있다. 대신 자진 출석을 압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경찰이 장 위원장을 구속할 경우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불법집회 주도로 구속되는 첫 노동단체 간부가 된다. 경찰 관계자는 “장 위원장이 구속되면 현 정부에서 집시법 위반 ‘구속 1호’가 된다는 상징성 탓에 수뇌부에서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 노동계를 의식하는 현 정부의 눈치를 보는 것 아니겠냐”라고 말했다. 장 위원장이 은신한 건설노조 사무실로 무리하게 진입했다가 노조원의 극렬한 저항에 부딪히면 자칫 불미스러운 사태가 생길 가능성도 경찰은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2015년 서울 중구 정동 민노총 사무실 압수수색 때도 경찰과 노조원 사이에 물리적 충돌이 빚어졌다. 같은 해 조계사에 은신했던 한상균 민노총 위원장 체포작전 때도 노조원들이 경찰을 막아서며 강하게 저항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장 위원장이 광주지법에서 확정된 집행유예 처분을 취소해 달라고 27일 서울남부보호관찰소에 요청했다. 장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불법 시위를 주도할 당시 과거의 집회 관련 불법행위로 징역형이 확정돼 집행유예 상태였다. 그는 2014년 2월 전남 목포 건설 현장 시위 도중 비조합원 근로자를 집단 폭행한 혐의 등으로 2016년 7월 광주지법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이 확정됐다. 집행유예 기간에 동종 범죄를 저지르면 수사기관이 보호관찰소를 통해 법원에 집행유예 취소를 청구할 수 있다. 장 위원장의 경우 법원이 광주지법 사건의 집행유예를 취소하면 관할 검찰청이 형 집행을 위해 추적에 나선다. 추후 장 위원장이 마포대교 사건으로 실형을 선고받는다면 과거 판결 때 내려진 실형(징역 1년)이 추가된다. 경찰 관계자는 “구속영장 만기가 5월 12일까지인 만큼 보호관찰소와 협력해 체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조동주 djc@donga.com·김자현·김동혁 기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에서 한국이 미국에 농산물 시장과 자동차 부품 시장을 추가 개방하지 않기로 했다. 반면 한국이 자동차 분야에 적용해온 비관세장벽을 낮춰 미국산 차 수입이 늘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7월 미국무역대표부(USTR)의 공식 요청으로 시작된 한미 FTA 협상이 8개월 만에 타결되면서 한미 교역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산업통상자원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25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면서 기자들과 만나 “한미 FTA와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철강관세에 대해서 원칙적으로 합의하고 타결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 본부장은 26일 국무회의에서 협상 결과를 보고한 뒤 언론에 브리핑할 예정이다. 이날 김 본부장은 한미 간 협상을 통해 “5가지 성과를 거뒀다”고 강조했다. 협상 관련 불확실성을 제거해 한국 기업이 미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고 농업분야도 추가 개방 없이 지켜냈다는 것이다. 아울러 자동차 부품 중 미국산을 의무적으로 사용토록 하고 원산지 검증을 강화하라는 미국 측 요구도 막아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국가 간 이익을 교환하는 협상의 성격상 한국이 미국에 일부 카드를 양보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현재 미국은 자국에서 만든 차 가운데 한국의 안전기준을 충족하지 않아도 연간 2만5000대까지는 한국에 팔 수 있는데 이 물량을 늘려 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이건혁 gun@donga.com / 김자현 기자}

지난해 11월 28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와 마포구를 연결하는 마포대교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날 국회 앞 총파업 결의대회에 참가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건설노동조합(건설노조) 소속 조합원 수천 명이 마포대교로 진출해 왕복 10차로 도로를 막아버린 것이다. 퇴근길 시민들은 극심한 교통 체증으로 불편을 겪었다. 정부 지침에 따라 집회 및 시위에 유연하게 대처해 온 경찰은 ‘무기력한 대응’이라는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악화되는 여론 속에서 경찰은 3개월가량 수사를 벌였다. 그리고 이달 7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장옥기 건설노조 위원장(56·사진)과 전병선 전 조직쟁의실장(43)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은 13일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하지만 이 구속영장은 19일까지 집행되지 않고 있다. 두 사람이 일주일째 잠적했기 때문이다. 경찰이 신병 확보를 위해 건설노조 사무실과 주거지, 연고지 등에 수사관을 보냈지만 모두 허탕이었다. 휴대전화 연락도 되지 않는다. 위치 추적을 시도해도 휴대전화 2대를 돌려가며 전원을 꺼놓았다가 필요할 때만 켜는 행위를 반복하는 탓에 경찰 추적망을 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일단 15일 두 사람의 출국을 금지했다. 경찰 관계자는 “혹시나 종교시설로 대피할 것을 우려해 정보라인을 가동해 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종교시설로 들어가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주변인들을 대상으로 탐문을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두 사람이 정당한 법 집행을 거부할 것이라는 건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다. 지난해 12월과 올 2월 두 차례 경찰 조사에서 장 위원장 등은 불법 시위 주도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또 13일 오전 10시 반으로 예정된 영장실질심사를 30분가량 앞두고 장 위원장은 입장문을 통해 “시민들의 불편에 대한 벌을 받겠다. 다만 올해 말까지 남은 임기를 마친 뒤다”라고 밝혔다. 구속영장 집행을 거부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이다. 전재희 건설노조 교육선전실장은 “현재 장 위원장의 소재는 우리도 전혀 파악되지 않고 있다. 벌은 달게 받겠지만 조합원들에게 공약했던 것들을 지키고 나서 출석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 위원장이 도피를 이어가는 것에 대해 건설노조 내부에서도 일부 부정적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론도 비판적이다.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대부분 법 집행을 거부하는 장 위원장 등을 비난하고 있다. 최규원 씨(32·경기 성남시)는 “집회의 자유가 보장되고 자기 목소리를 낼 기회가 충분한 상황에서 불법 시위는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법을 어겼으면 그에 맞는 처벌을 받는 게 나중에 다시 목소리를 낼 때 공감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민노총 집행부가 구속영장 집행을 앞두고 자취를 감춘 건 처음이 아니다. 2015년 11월 16일 한상균 전 위원장은 서울 종로구 조계사로 도피했다. 한 전 위원장은 불법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같은 달 11일 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태였다. 이 상태에서 같은 달 14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민중 총궐기 투쟁대회’ 현장에 나와 연설까지 했다. 한 전 위원장은 조계사 은신 24일 만에야 경찰에 체포됐다. 차진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불법 집회를 열고 공권력을 피해 도주하는 것이 반복되는 건 자신의 권리 외에 타인의 권리는 무시돼도 좋다는 인식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집회 및 시위의 자유와 공권력 집행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김동혁 hack@donga.com·김자현 기자}
경찰이 국가정보원 대신 대공수사를 전담하는 방안이 추진되자 일선 경찰 사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수사역량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대공수사권을 넘겨받을 경우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이유다. 국정원 대공수사요원 중 일부가 경찰 간부로 옮겨올 계획에 대한 부정적 반응도 나온다. ‘이질감’이 있는 두 조직 출신이 상하관계를 구성해야 하는 ‘불편한 동거’에 대한 걱정이다. 대공수사 독점으로 경찰 위상이 향상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른 분위기다. 대공수사는 고도의 전문성과 오랜 경험, 휴민트(HUMINT·인적 정보) 등 긴밀한 인적 네트워크를 필요로 한다. 국정원은 대공수사 경험이 풍부한 전문 요원들을 양성했다. 하지만 전국 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를 제외하고 일선 경찰서의 보안담당 경찰관들은 사실상 대공수사 업무에서 손을 뗀 지가 오래된 상황이다. 대부분 탈북자 관리나 첩보 수집 등의 업무를 맡고 있다. 대공수사에 필요한 수단도 미흡하다는 게 경찰관들의 걱정이다. 서울의 한 경찰서에 근무하는 경찰간부는 “감청 등 수사에 필요한 법원의 영장을 확보하는 절차가 국정원에 비해 복잡하고 오래 걸린다. 국정원보다 효과적으로 범인을 검거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정원의 전문 수사인력을 경찰직으로 전환하고 대공수사기법을 전수받을 계획이다. 이 역시 반가워하는 분위기는 크지 않다. 한 경사급 경찰관은 “경찰 업무를 해본 경험이 없는 국정원 직원이 현실에 맞지 않는 지시를 내리면 반발을 살 수 있다. 국정원이 경찰을 하부 기관으로 여겨온 관행이 있어 반감을 갖고 있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한 지방경찰청의 경정급 간부는 “4급 총경은 수백 명의 부하직원을 지휘하는데 국정원의 팀장급(4급) 간부는 부하직원 수가 10명 안팎”이라며 “지휘 경험이 부족한 국정원 출신 간부가 리더십에 한계를 보일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 대공수사 요원들이 실무가 아닌 관리 업무를 맡게 되면 현장 경찰관들이 실질적인 노하우를 배우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고도의 보안이 요구되는 대공수사의 특성을 고려할 때 팀장과 과장 서장으로 이어지는 복잡한 결재구조가 유지될 경우 수사 기밀이 외부로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 지방경찰청 보안 담당 간부는 “일선 경찰서의 여러 경찰관들이 대공수사에 대거 참여할 경우 수사 관련 내용이 새어나갈 구멍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대공수사권 이전과 관련해 아직 세부 방안이 확정되지 않았다”며 “경찰의 대공수사에 부족함이 없도록 국정원과 긴밀히 협의해 보완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구특교 kootg@donga.com·이민준·김자현 기자}
1일 새해 첫날을 맞아 윤모 씨(24)는 친구와 함께 서울 강북구의 한 게임방을 찾았다. 윤 씨는 카운터 밖에 서서 스마트폰을 보는 여주인 A 씨를 봤다. 그는 게임을 멈춘 뒤 스마트폰을 들고 A 씨 쪽으로 향했다. A 씨와 가까워지자 몰래 스마트폰 플래쉬를 켜고 옆에 섰다. 여전히 A 씨는 스마트폰에 빠져 있었다. 윤 씨는 바닥에 앉아 가방에서 무언가를 찾는 듯한 연기를 시작했다. 가방 위 올려져 있던 스마트폰은 A 씨의 치마 속을 찍고 있었다. 몰래카메라(몰카) 촬영을 마친 윤 씨는 태연히 자리로 돌아가 게임을 즐겼다. 윤 씨의 ‘완전 범죄’는 A 씨 남편 B 씨(47)때문에 들통났다. 손님들을 안내한 뒤 카운터로 돌아온 B 씨는 아내 뒤에 앉아 가방을 뒤지는 윤 씨를 목격했다. 무언가 수상쩍었다. 하지만 손님인 윤 씨를 함부로 의심할 수는 없었다. 당장 신고했다간 순식간에 영상을 지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B 씨는 모르는 척 윤 씨를 지나치는 ‘기지’를 발휘했다. B 씨는 곧바로 현장 폐쇄회로(CC)TV를 확인했다. 플래쉬를 켠 채 대담하게 몰카를 찍는 윤 씨의 모습이 보였다. 조용히 건물 밖으로 빠져나가 경찰에 신고했다. 게임을 즐기던 윤 씨는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 관계자는 “윤 씨 스마트폰에는 같은 날 강남의 한 식당에서 촬영한 여성들의 치마 속 몰카 영상도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윤 씨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김자현 기자 zion37@donga.com}

“숨 못 쉬어. 빨리 빨리. 우리 죽어. 아저씨, 빨리 살려줘!” 21일 오후 3시 59분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2층 여탕에서 A 씨가 119에 전화를 걸었다. 처음 화재 신고 후 6분이 지난 때였다. A 씨는 “10명이 갇혔다”며 신고했다. ‘빨리’라는 말을 79차례 외쳤다. ‘살려줘’ ‘숨 못 쉰다’고는 각각 11차례, 5차례 말했다. 그만큼 급박했다. 제천소방서 상황실은 통화를 하면서 현장에는 “구조대 빨리 2층으로, 여자 여자 2층”이라고 지령을 보냈다. 하지만 1분 뒤 현장에 도착한 소방대는 건물 옆 액화석유가스(LPG) 탱크에 물을 뿌릴 뿐 2층에 진입하지 않았다. A 씨를 비롯한 20명은 탈출로를 찾아 헤매다가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동아일보는 27일 자유한국당 홍철호 의원실을 통해 제천 화재 당시 이뤄진 모든 119 신고 통화 녹취록을 입수했다. 첫 신고 시간인 오후 3시 53분부터 1시간 동안 이뤄진 신고는 모두 32건. 녹취록에 따르면 출동한 소방대는 현장 도착 전 이미 ‘2층 사우나(여탕)에 10명 이상이 고립돼 있다’는 정보를 상황실로부터 무전과 전화로 확인했다. 2층 상황을 알린 전화는 첫 신고 후 4시 29분까지 5차례. 대부분 “2층 여탕에 사람들이 많이 갇혀 있다. 빨리 구해 달라”는 구체적 내용이었다. 첫 신고자가 3시 59분 A 씨였다. 그는 “사우나에 불이 났으니 빨리 오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상황실 직원은 “빨리 대피하세요”라는 말을 6차례 반복했다. A 씨가 “2층 여탕에 있다”고 두 번 말했지만 직원은 “여탕은 지하에 있어요? 몇 층에 있어요 지금?”이라고 되물었다. 소방은 극도로 불안해하는 A 씨에게 “구조대원들이 올라가고 있어요”라며 진정시켰다. 하지만 그 시각 구조대는 현장에 도착조차 하지 않았다. 먼저 온 진압대는 1층 LPG 탱크에만 집중적으로 살수했고 일부 소방대원은 주변을 맴돌았다. 구조대는 오후 4시 6분 도착했지만 곧바로 2층에 진입하지 않고 건물에 매달린 생존자를 보고 밑에 매트리스를 설치했다. 이일 충북소방본부장은 2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3시 59분 여탕 내부에 사람이 있다는 신고를 받았을 당시 상황실은 신속하게 구조할 것을 무전에 이어 전화로 전달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불길이 심해 2층에 진입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당시 정문 반대편 비상계단 쪽은 불이 붙지 않아 진입이 가능했다. 현장의 ‘오판’이었다. A 씨 신고 후 “목욕탕에 사람이 갇혀 있다”는 신고가 잇따랐다. 윤모 씨(53)는 오후 4시 8분 “2층에 사람이 갇혀 전화 오고 난리다. 2층에 왜 접근을 못하고 있어요?”라고 물었다. 상황실은 “현장 도착해 1층 발화 지점에 화재 진압을 시도 중”이라고 답했다. 동문서답에 답답한 윤 씨가 “지금 2층 목욕탕에 사람이 엄청 많다. 지금 숨을 못 쉰다고 한다. 2층이 목욕탕이니까 거기를 집중적으로 좀 해보라고 하세요”라고 재차 말했다. 119는 “예, 알겠습니다”라고 답했지만 내부 진입은 바로 이뤄지지 않았다. 윤 씨 아내는 사망했다. 안모 씨 역시 아내의 전화를 받고 4시 19분 “여자 목욕탕에 사람이 갇혀 있다. 알고 있어요?”라고 신고했다. 소방은 “네, 지금 인명 검색 중”이라고 답했다. 하지만 10분 뒤 안 씨가 재차 전화해 “여자 목욕탕에 사람이 갇혀 있다는데 구출된 거예요?”라고 묻자 소방은 “지금 구조하고 있다”면서도 “몇 층에 갇혀 있다고 얘기해요?”라고 되물었다. 숱한 신고자가 여탕이 2층이라고 말해줬지만 여전히 상황 파악이 안 된 것이다. 소방은 오후 4시 36분에야 2층 여탕 통유리에 사다리를 댔다. 통유리를 깨고 여탕으로 진입한 시각은 오후 4시 43분. A 씨가 구조를 요청한 지 44분 뒤였다. 2층에서는 20명이 질식해 숨져 있었다.제천=김동혁 hack@donga.com·김자현·송영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