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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최측근인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미국을 방문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등과 만나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최종 조율에 나선다. 27일 시작된 판문점 북-미 실무접촉에서 어느 정도 틀을 잡은 ‘비핵화 초안’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의 재가를 받는 수순에 돌입한 것이다. 김영철은 29일 오전 9시 45분(현지 시간) 고려항공 JS151편으로 중국 베이징 서우두(首都) 공항에 도착했다. 대미외교 담당인 최강일 외무성 북아메리카국 부국장도 동행했다. 김영철은 공항에 도착한 뒤 중국 측 인사와 만났고, 오후에는 주중 북한대사관으로 들어갔다. 당초 이날 오후 1시 25분 워싱턴행 중국국제항공 비행기 탑승객 명단에 김영철의 이름이 있었으나 베이징에 도착한 뒤 30일 오후 10시 35분 뉴욕행 중국국제항공으로 바꿨다. 하지만 그 뒤 다시 이를 취소하고 다른 비행기 편을 예약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김영철이 미국행 비행기 편을 바꿔가며 중국에 체류한 것은 중국의 속도조절 요청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북-미 정상회담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상황에서 비핵화 로드맵을 놓고 북-중 간 막판 논의가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영철은 이날 공항을 나와 베이징의 영빈관인 댜오위타이(釣魚臺)로 향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외교부는 정례 브리핑에서 김영철과 중국 측의 회동 여부에 대해 “이 부분에 대해 제공할 정보가 없다”고 답을 피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9일 오후 7시 반경 트위터에 “(북-미) 정상회담과 그 이상(more)에 대한 회의가 진행 중이다. 북한의 김영철 부위원장이 뉴욕으로 향하고 있다”며 “내 편지에 대한 확실한(solid) 답장에 감사한다!”라고 적었다. 김영철이 김정은의 ‘친서’를 백악관 또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의제를 논의하는 판문점 접촉과 별개로 의전과 경호 문제를 다루는 싱가포르 북-미 실무 접촉도 시작됐다. ‘김정은의 집사’인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이 이끄는 북한 대표단과 조 헤이긴 백악관 부비서실장의 미 대표단은 29일 싱가포르 모처에서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정상회담 준비가 진행되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당초 예고했던 추가 대북제재 발표를 무기한 연기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행정부가 해외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의 추방과 제재 품목을 불법으로 이송하는 것을 차단하는 대북제재 36건을 발표하려다 미뤘다고 보도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 베이징=정동연 특파원}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 재검토를 위협한 데 이어 중국과의 밀착을 과시하면서 미국을 상대로 잇따라 견제구를 날리고 있다. 중국과의 밀착은 미국에 대한 협상력을 높이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첫 방중 이후 미국과의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질 때마다 중국을 ‘전가의 보도’ 삼아 입지를 다지는 식이다. 청와대는 북-미 양측에 ‘역지사지’를 강조하며 중재에 나섰다.○ 밀월 과시하는 북중 14일 북한 전역의 시도당위원(책임자)으로 구성된 노동당 친선 참관단이 중국을 방문하면서 북-중은 한층 활발해진 교류관계를 과시하고 있다. 3월 25일 김정은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간 첫 만남을 시작으로 쑹타오(宋濤) 대외연락부장의 방북, 다롄(大連) 2차 정상회동 등 공개된 북-중 교류 행사만 이번이 4번째다. 특히 이번 참관단의 방문은 북-중 경제협력의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국이 친선 참관단에 농업, 과학기술, 인문 분야의 대규모 협력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북 인프라 투자 등이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비핵화 완료 전 단계에서 중국에 경제적 지원을 요청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북-중 간 최고위급부터 실무급까지 경제협력의 토대가 촘촘하게 마련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은 미국에 강경 태도 철회를 요구하는 등 북한과 보조 맞추기에 나섰다.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17일 “북한이 자발적으로 취한 (비핵화 관련) 조치는 충분히 긍정할 만하다”며 “다른 관련국들, 특히 미국은 현재 나타난 평화의 기회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말했다. 왕 위원은 “한쪽(북한)이 유연성을 보일 때 다른 한쪽(미국)이 오히려 강경하면 안 된다”며 “역사적으로 이미 이 분야에 교훈이 있다. 같은 현상이 재연되는 걸 보고 싶지 않다”고도 말했다. 2005년 북핵 6자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와 경제 보상을 맞바꾸는 9·19공동성명이 합의됐지만 같은 해 미국이 마카오 방코델타아시아(BDA)를 ‘돈세탁 우선 우려 대상’으로 지정해 북한 비자금을 동결한 사건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16일 시 주석과 만난 일부 북한 참관단이 허리를 90도로 굽혀 악수한 것이 중국에 대한 북한의 시각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대북제재에 동참한 중국에 노골적 적대감을 드러냈던 북한은 중국의 지원을 통해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력을 높이려 하고, 중국은 남북미중 4자 구도를 유지해 한반도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차원에서 전략적 동맹을 강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지사지 강조하며 중재 나선 청와대 청와대는 북-미 간 갈등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중재 역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당장 백악관과 평양 사이의 견해차를 좁히기 위한 물밑 대화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전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개최한 청와대는 “다가오는 북-미 정상회담이 상호 존중의 정신하에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한미 간과 남북 간에 여러 채널을 통해 긴밀히 입장을 조율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청와대 관계자는 “우리 정부나 문재인 대통령이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해나가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이라며 “상호 존중의 정신은 좀 더 쉽게 얘기하면 역지사지를 하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22일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과 아직 한 번도 이뤄지지 못한 남북 정상 간 ‘핫라인’ 통화 등을 통해 북-미 간 이견 좁히기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에 따라 서훈 국가정보원장,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간의 3각 라인이 다시 한번 활발하게 움직이며 북-미 간 간극을 좁히는 데 적극적인 중재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신나리 journari@donga.com·한상준 기자 /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북한이 16일 남북 고위급 회담 돌연 연기에 이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비핵화 접근법을 싸잡아 비난하며 북-미 정상회담에 응할지 재고하겠다고 한 것은 준비된 전술적 행동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이 “핵무기를 미국에 가지고 와서 해체하라”며 비핵화 요구 수위를 높이자 회담 결렬 가능성을 거론하며 백악관에 기대치를 낮추라고 요구한 것. 외교가에선 비핵화 로드맵 채택을 놓고 양측의 본게임이 이제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식 비핵화 드라이브에 김정은식 ‘옐로카드’ 이날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발표한 담화문에는 최근 미국의 비핵화 드라이브에 대한 김정은의 분노가 가감 없이 담겨 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핵무기 종말처리장’으로 통하는 미 테네시주 오크리지로 핵무기 반출을 요구하고, ‘리비아식 핵 포기’를 주장하자 강하게 받아쳤다. 김계관은 담화에서 “대국들에 나라를 통째로 내맡기고 붕괴된 리비아나 이라크의 운명을 존엄 높은 우리 국가에 강요하려는 심히 불순한 기도의 발현”이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어 볼턴 보좌관을 3번이나 특정해 비난하면서 ‘핵 개발 초기 단계’였던 리비아와 ‘핵보유국’인 북한을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지 말라고 일갈했다. 미국이 연일 쏟아낸 비핵화에 대한 경제 보상 제안도 일단 거절하는 듯했다. 김정은이 지난달 병진노선을 폐기하고 경제 총력 노선을 선언한 것을 무색하게 했다. 담화는 “(우리가) 언제 한번 미국에 기대를 걸고 경제건설을 해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런 거래를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 ‘자존심 레드라인’ 넘지 말라는 북한 북한은 이날 한반도 비핵화 국면 이래 처음으로 북-미 정상회담 ‘재고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북한은 김계관 부상의 담화문에 앞서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이날 오전 한미 연합 공군훈련인 ‘맥스선더’를 ‘고의적인 군사적 도발’로 규정하고 “조미 수뇌상봉(북-미 정상회담)의 운명에 대해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놨다. 김계관 담화를 오전 11시 18분 추가로 내며 북-미 정상회담에 응할지 다시 생각해 보겠다며 강도를 높였다. 북한은 대화에 나선 자신들의 입장에 대해 ‘아량 있는 노력’ ‘대범한 조치’ ‘평화 애호적인 노력과 선의’라고 표현했다. 미국의 대북 압박에 의해 떠밀려나온 것이 아니라 스스로 대화에 나섰음을 강조한 것. 미국이 원하는 방식대로 비핵화를 밀어붙였다간 언제든 대화판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 셈이다. 이런 북한의 반발은 결국 미국의 요구치가 확대되는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핵과 미사일뿐만 아니라 생물, 화학무기의 폐기까지 언급하며 압박하자 “더는 밀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협상력 제고 위한 ‘공개적 신경전’ 가능성 커 하지만 북한은 이렇게 미국과 날을 세우면서도 “트럼프 행정부가 조미 관계 개선을 위한 진정성을 갖고 조미 수뇌회담에 나올 경우”라고 밝히며 회담 국면은 깨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결국 북한의 이날 잇따른 엄포는 비핵화 논의가 절정에 치닫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공개 경고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양측이 구체적인 합의문 작성 수순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비핵화 수위 및 조건과 관련한 ‘디테일의 악마’를 놓고 수싸움이 펼쳐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외교가에선 북한과 미국이 대북제재 완화 시점 등 특히 비핵화에 따른 반대급부와 관련해서 의견 차가 크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미국이 북한이 특히 민감해하는 인권 문제까지 건드린 게 반발을 불렀다는 전언도 있다. 김정은이 최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다롄에서 만나 “트럼프 행정부가 (비핵화 협의 과정에서) 승전국처럼 군다”며 불만을 표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듯하다. 그렇다고 김정은이 비핵화 협상을 코앞에 두고 ‘싱가포르 회군’을 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자신의 시그너처 브랜드인 핵-경제개발 병진노선을 없애고 주민들에게 비핵화 원칙을 천명한 마당에 지금은 돌아갈 수 없는 강을 이미 건넜다는 얘기다. 한 대북 전문가는 “김정은은 결국 회담장에 나오기 전까지 트럼프 행정부 내 강경파들을 꼭 집어 비난하면서 미국 협상팀의 분열을 노리며 북한의 몸값을 높이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신진우 기자}

북한과 미국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에 전문가 사찰단 파견 여부를 놓고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비핵화 시작 단계’부터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북한이 주도하는 선전장이 될 것으로 보이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가 북한의 비핵화 검증 의지를 가늠할 리트머스 시험지가 된 것. 특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마치 비핵화 협상 전쟁에서 이긴 ‘승전국’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져 미국의 밀어붙이기식 비핵화 압박에 순순히 응하지만은 않을 태세다. ○ 풍계리 폐기 검증 이견 보인 北-美 통일부는 15일 “북측이 판문점을 통해 보낸 통지문에서 23일부터 진행될 북부(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의식에 남측 1개 통신사와 1개 방송사의 기자를 4명씩 초청한다고 알려왔다”고 밝혔다. 당초 김정은이 언급했다는 전문가는 초청 대상에서 빠진 것이다. 핵실험장 폐기 검증을 위해 전문가 파견 의사를 밝힌 유엔 산하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기구(CTBTO)도 북한으로부터 아직 초청을 받지 못했다고 14일(현지 시간) 자유아시아방송(RFA)에서 밝혔다. 그러나 북한은 핵시설 폐쇄를 제한적인 범위 내에서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굳히고 있다. 미국의 북한 전문매체 38노스는 북한이 이달 초부터 이미 핵실험장 폐기 절차를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38노스는 7일 촬영된 상업용 위성사진을 토대로 “북쪽과 서쪽, 남쪽 입구의 일부 건물에 대한 철거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가 포착됐다”며 “광산 수레용 궤도가 제거됐고, 수레들도 해체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핵실험장의 통제센터와 행정지원구역 등 아직 남아 있는 주요 건물은 23∼25일 북한이 초청한 기자들이 참관하는 가운데 폭파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백악관 관계자는 동아일보에 보낸 e메일 논평에서 “북한의 핵실험장 폐기 계획을 환영하지만 국제적 전문가들이 사찰하고 완전한 확인 절차를 거친 폐쇄는 북한 비핵화의 주요 절차다”라고 강조했다.○ 北 “미국의 승전국 같은 태도 수용 어려워” 미국이 북한에 핵실험장 폐기 검증 요구를 꺼내든 것은 최근 미 워싱턴 조야에서도 트럼프식 ‘완전한 비핵화’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확산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미 의회에서 대북제재 해제의 키를 쥐고 있는 인물 중 한 명인 밥 코커 미 상원 외교위원장은 이날 “북한이 비핵화에 전념하지 않는다면 어떤 제재 완화도 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 상원 외교위원회 코리 가드너 동아시아태평양소위원장도 “북핵 위협의 수준이 높은 만큼 제재 완화 조건도 엄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핵 폐기에 대한 구체적인 검증 조치를 놓고 북-미가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다음 달 12일 정상회담 직전까지 다시 한번 긴장 국면으로 진입하는 ‘북핵 롤러코스터 정세’가 펼쳐질 가능성이 나온다. 실제로 김정은은 7, 8일 중국 다롄(大連)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 미국이 ‘영구적 핵폐기(PVID)’를 요구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 미국이 승전국과 같은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도 김정은과 회담 후 트럼프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미국이 북한의 합리적인 안보 우려를 고려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이날 미국에서 나오는 북한인권 문제 제기에 대해 “대화를 앞두고 상호 존중과 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힘쓰는 대신 주먹을 휘두르고 있다. 미국이란 나라는 분명 꼬물만 한 도덕성도 없는 깡패 국가”라고 비난했다. 며칠 전 김정은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만난 뒤 노동신문이 “만족할 만한 합의를 했다”고 보도한 것과는 온도 차가 있다. 문병기 weappon@donga.com·신나리 기자 /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북한이 보유한 모든 핵무기를 폐기해 미 본토로 가져와야 한다는 비핵화 방법론을 제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공개적으로 북한의 핵무기 반출지를 특정한 것은 처음이다. 볼턴 보좌관은 13일(현지 시간) ABC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북한의 비핵화 절차가 완전하게 진행되는 것을 보길 원한다”며 “비핵화 결정을 이행한다는 것은 모든 핵무기를 해체해 테네시에 있는 오크리지(국립연구소)로 가져간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또 “이는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 능력을 제거하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다음 달 12일 북-미 정상회담이 한 달도 채 남지 않는 상황에서 비핵화 방법론을 두고 양측이 치열한 물밑 신경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14일까지 트럼프 행정부가 공개한 비핵화 방법론에 공식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어 볼턴 보좌관은 “북한은 매우 광범위한 (핵)프로그램이 있고, 누구도 이것(북핵 프로그램 폐기)이 쉽다고 믿지 않는다”며 “(제대로 된 비핵화 검증을 위해) 북한은 (핵과 미사일) 시설의 위치를 모두 공개해야 하고 개방적 사찰을 허용해야 한다”고도 했다. 일각에서 제기한 북한에 대한 무조건 원조, 즉 ‘마셜플랜’ 식 지원은 불가하며 투자가 지원 모델이라고 못 박았다. 볼턴은 별도로 가진 CNN 인터뷰에서 북한 비핵화에 대한 보상과 관련해 “나라면 우리에게 경제적 원조를 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에 대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초기 조치로서 비핵화가 시작됐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 뉴욕=박용 특파원}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북한에 비핵화 조치 급부로 ‘번영’을 돕겠다고 약속하면서 대북 금융·경제제재에도 변화의 바람이 예고되고 있다. 북한이 ‘한국과 같은 수준의 번영’을 누리려면 미국이 주도해 온 대북제재를 풀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 금융·원유 관련 제재는 마지막에 풀어줄 듯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은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대한 궁극적인 방향성을 제시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당장 제재를 풀겠다는 입장으로 해석하기엔 이르다는 것. 정부 당국자는 “미국은 비핵화를 한 다음에 제재를 해제하겠다는 것이지 초기에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이 해제 열쇠를 쥐고 있는 제재는 행정명령이나 입법으로 명문화한 독자적 대북제재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다. 특히 북한의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실험이 쇄도하던 2016년과 2017년 당시 안보리 결의들은 대부분 미국이 작성한 초안을 토대로 작성됐고 독자 대북제재는 유엔 결의들을 보완하는 성격이 짙다. 비핵화 협상력과도 직결되는 대북제재를 미국이 쉽게 풀어줄 리 만무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나마 북-미 양자 문제라는 측면에서 미국의 독자 대북제재가 순차적으로 풀리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지난해 11월 9년 만에 재지정된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와 같은 상징적 조치들이 우선적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이러한 제재들은 상징적 조치라서 풀더라도 그 효과는 상대적으로 미미할 수도 있다. 더군다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아닌 북한 선박 운항 금지 등을 명시한 ‘대북 차단 및 제재 현대화법(H.R.1644)’과 같은 법을 수정하려면 수개월에 걸쳐 의회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해제가 쉽지 않다는 의미다. 오히려 북한이 해제를 바라는 원유 공급 제한 및 해외 노동자 취업 금지 등을 규정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들은 유엔이 기존 결의들을 무효화시키는 새로운 결의를 만들어 낼 수는 있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광물 수입 금지, 해외 파견 북한 근로자의 송환조치, 합작투자 금지가 핵심 제재 3종 세트”라면서 “북한이 상당한 비핵화 성의를 보였을 때에 한해 원유 정제제품 관련 제재 조치를 풀어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베트남 모델 구현하나 국제사회 제재가 단계적으로라도 해제된다면 북한이 어떤 개발 모델을 채택할지도 관심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언급한 “과거 미국의 적국이었지만 지금은 우방국이 된 나라”의 대표적인 예는 베트남이다. 베트남전 당시 미국의 지원을 받았던 월남과 싸웠던 베트남은 대표적인 반미(反美) 국가였다. 그러나 1995년 미국과 수교를 체결했고,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시장 경제를 받아들여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현재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 번영을 이루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으로선 ‘롤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것. 이에 대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도 13일 “북한이 비핵화 이후 베트남식 모델을 따를 가능성이 가장 높다”며 “그 길을 북한은 물론이고 한국과 미국도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전했다. 여기에 베트남은 숙련된 인력과 낮은 인건비로 제조업에서도 강점을 가지고 있어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기업들도 베트남에 대규모 제조 공장을 가동 중이다. 이는 개성공단을 통해 제조업 분야의 장점을 보여준 바 있는 북한이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경제 발전 모델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비핵화 담판이 타결된다면 북한은 가장 먼저 제조업에 대한 미국 자본이나 기업의 투자를 요청할 것”이라며 “이를 토대로 순차적인 번영을 꾀하는 것이 김정은의 구상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다만 중국과의 관계는 베트남과 다를 가능성이 크다.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베트남은 최근 반중(反中) 노선을 강화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급격히 중국과 다시 가까워진 북한은 한동안 미국과 중국 사이의 줄타기를 통해 체제 안전은 물론이고 최대한의 경제적 지원을 이끌어낼 것으로 보인다.신나리 journari@donga.com·한상준 기자}

역사적인 첫 북-미 정상회담의 무대는 ‘6월 12일 싱가포르’로 결정이 났다. 막판 결정 직전까지 판문점과 평양 등을 놓고 추측이 난무했지만 결국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미국도, 북한도 아닌 제3국인 싱가포르에서 핵 담판을 벌이기로 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6·13지방선거 하루 전날이기도 하다.○ 돌고 돌아 결국 싱가포르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 시간) 트위터를 통해 “크게 기대되는 김정은과 나의 회담이 싱가포르에서 6월 12일 열릴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를 세계 평화를 위한 매우 특별한 순간으로 만들도록 노력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몇 시간 전까지 “며칠 내에 밝힐 것”이라며 뜸을 들이던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가장 애용하는 미디어 수단 중 하나인 트위터를 통해 전 세계에 깜짝 발표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9일 판문점을 북-미 정상회담 후보지에서 제외하면서 회담 장소와 시기를 두고 막판까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상황이었다. 각료회의를 주재하면서 ‘회담 장소가 비무장지대(DMZ)냐’는 기자의 질문에 “거기는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시작된 일이었다. 지난달 30일 “DMZ가 회담 장소가 되면 엄청나게 축하할 일이 될 것”이라고 한 지 열흘도 안 돼 판문점 카드를 접었다. 그 직후 워싱턴에선 싱가포르가 0순위로 부상했다. CNN은 정상회담 추진 사정에 밝은 익명의 두 관계자를 인용해 “관리들이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북-미 회담을 싱가포르에서 개최하는 방안을 추진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도 트럼프 행정부 관리의 말을 인용해 “싱가포르가 가장 유력한 정상회담 개최지”라고 보도했다. CNN의 싱가포르 개최설 보도가 나온 지 8시간여 만에 평양 카드가 잠시 나오기도 했다. 트럼프가 10일 북한에 억류됐던 한국계 미국인 3명을 직접 마중 나간 자리에서 “방북 용의가 있느냐”는 질문에 “가능한 일이다(It could happen)”라고 답하면서부터다. 특히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방북 후 귀국길에 기자들과 만나 “실무팀이 정상회담 직전 한 차례 더 방북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평양행에 힘을 싣는 듯했지만 결과는 중립외교 무대인 싱가포르였다. ○ 회담 장소에서 이긴 美, 비핵화 회담도 우위 선점? 싱가포르는 북-미회담 거론 단계부터 유력 후보지로 거론됐다. 세계적인 교통의 요지인 동시에 국제적 규모의 컨벤션을 치를 수 있는 인프라가 풍부한 게 최대 장점. 2015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 전 대만 총통 간 양안 분단 66년 만의 첫 정상회담도 이곳에서 열렸다. 여기에 싱가포르는 북한의 여섯 번째 교역국이자 대사관을 두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김정은의 전용기로도 한 번에 날아갈 수 있다. 외교가에선 어디서 하느냐에 따라 핵 담판의 성패가 좌우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장소 선점에서 우위를 점하는 쪽이 회담의 본질인 비핵화와 평화체제 문제에 대한 발언권을 더 세게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소식통은 “김정은은 끝까지 평양을 원했지만 결국 싱가포르로 서로 양보하는 선에서 만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며 “지금부터 북-미 간 치열한 막판 전략 싸움이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 지방선거 전날 열리는 북-미 회담 이번 북-미 정상회담은 국내 정치 지형에도 파장을 일으킬 수밖에 없게 됐다. 북-미 정상회담이 예정된 6월 12일은 6·13지방선거 하루 전날이다. 지방선거가 한반도 대화 국면에 따라 휘둘릴 수밖에 없게 됐다. 이 때문에 청와대는 백악관에 “5월 말 또는 6월 초 북-미 정상회담을 가지는 게 좋겠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북-미 정상회담 일정이 확정되면서 지방선거에 만만치 않은 파장을 일으키게 됐다. 청와대는 북-미 정상회담 일정 확정에 대해 “개최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와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가 성공적으로 안착하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신나리 journari@donga.com·한상준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 시간) 오전 8시 31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한에 억류됐던 한국계 미국인 3명과 함께 돌아오고 있다.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 일시와 장소도 확정됐다”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이 평양에 도착하고 불과 12시간 뒤에 나온 소식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귀국 중간 경유지인 일본 요코타(橫田) 미 공군기지에서 “며칠 내로 (정상회담) 날짜와 일정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우리 모두가 기다렸던 억류자들이 건강하게 풀려났다. 폼페이오 장관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만남도 성공적이었다”고 적었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명자 신분이던 3월 31일 첫 방북에 이어 김 위원장과의 2번째 만남이었다. 풀려난 미국인은 한국계 김동철, 김상덕(미국명 토니 김), 김학송 씨다. 폼페이오 장관은 9일 오전(한국 시간) 일본 요코타에서 ‘에어포스2’를 타고 출발해 오전 8시경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했다. 그가 타고 간 비행기는 보잉 757기를 VIP용으로 개조한 미국 부통령과 국무장관 전용기다. 공항에서 폼페이오 장관 일행을 맞이한 북한 인사는 외교 사령탑인 리수용 북한 노동당 중앙위 국제담당 부위원장과 올해 비핵화 협상 전면에 나선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었다. 김영철은 폼페이오 장관이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 일할 때 물밑에서 함께 비핵화 협상을 이끌었다. 곧바로 고려호텔로 이동한 폼페이오 장관은 1시간 정도 김영철과 비공개로 회담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 자리에서 “수십 년간 우리는 적국이었다. 이제 이런 갈등을 해결하고 세계를 향한 위협을 치워내 북한 국민이 가능한 한 모든 기회를 누리도록 협력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 과정에 많은 도전이 있겠지만 당신(김영철)은 우리 두 나라 정상의 성공적인 회담 개최를 추진하는 과정의 훌륭한 파트너였다”고 찬사를 보냈다. 김영철은 “평양에서는 모든 게 잘되고 있다. 이제는 나라의 경제 발전에 모든 노력을 집중할 것”이라면서도 “우리가 협상에 나선 이유가 미국의 제재 때문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폼페이오 장관도 “아직 해결할 문제가 많이 남았다”고 답했다. 북한과의 최종 담판을 위해 트럼프 대통령이 보낸 측근들이 폼페이오 장관의 수행원으로 함께 움직였다. 매슈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선임보좌관은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백악관의 한반도 정책을 총괄해 왔다. 브라이언 훅 국무부 선임 정책보좌관은 이란의 핵합의 준수 여부를 확인하고 조정하는 공동위원회의 미국 측 대표를 맡았던 국무부 내 핵 협상 최고 전문가다. 리사 케나 국무부 집행사무국 및 공공외교 담당 차관은 북한의 핵 폐기에 미국이 제시할 보상에 대한 조언을 맡았다. 평양에 13시간 머문 폼페이오 장관은 김정은 위원장과 90분간 면담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한 트럼프 대통령의 최후통첩 카드를 전달하고 회담 의제와 일시, 장소 등을 최종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4월 말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보다 강도 높은 ‘PVID(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주장하고, 생화학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 폐기를 요구하자 북한은 강하게 반발했다. 북-미 정상회담 일정 발표가 늦춰지는 사이 김정은 위원장이 7일 중국을 찾아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며 북-미 회담 성사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하지만 폼페이오 장관이 미국인 억류자들과 함께 귀국하며 회담 일정과 장소 확정을 알려 북-미 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손택균 sohn@donga.com·주성하·신나리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두 번째 방중(訪中)에서 선택한 교통수단은 전용열차가 아닌 전용비행기 ‘참매1호(IL-62)’였다. 간간이 지방 시찰에 활용한 전례가 있지만, 김정은이 비행편을 이용해 외국을 방문한 것은 2011년 집권 후 처음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 냉전 이후 항공기를 타고 외국에 나간 북한 최고지도자도 김정은이 처음이다. 김일성이나 비행기 납치나 폭발 사고 등을 우려했던 김정일은 모두 기차를 타고 시베리아까지 이동했다. 조선중앙TV와 조선중앙통신은 8일 오후 “7일 오전 전용기를 타시고 평양을 출발해 현지시간으로 낮 12시 최고령도자동지께서 타신 전용기가 대련국제비행장에 착륙했다”며 김정은의 방중 소식을 전했다. 1박2일간 머문 김정은은 일본 NHK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20분경 랴오닝(遼寧)성 다롄(大連)국제공항을 떠난 것으로 보인다. 통상 북한 최고지도자가 중국 국경을 모두 넘어간 뒤에야 방문 사실을 공개하는 관례대로 이날도 오후 8시 넘어 북한과 중국 정부가 김정은의 방중을 공식 확인했다. 앞서 8일 다롄국제공항에서 북한 고려항공 소속 비행기 2대가 나란히 포착되면서 북측 최고위급 인사의 방문이 높게 점쳐졌다. 꼬리에 편명 P-914가 적힌 ‘일류신(IL)-76’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호와 붉은 문양이 선명히 새겨진 참매1호였다. IL-76은 관용차 등을 싣고 왔을 수송기로 추정된다. 이날 공개된 참매1호는 올해 2월 9일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 참석차 특사로 방한한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북측 고위급 대표단이 타고 온 참매2호와 닮은 듯 다르다. 동체 오른편 중앙에 새긴 국호 옆에 인공기 대신 휘장으로 보이는 붉은색 문양이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2014년과 2015년 공군 지휘관들의 전투비행술 경기대회를 참관할 때 전용기를 타고 비행장을 찾았으며, 2016년 2월 ‘광명성 4호’ 위성 발사 때도 참매1호를 타고 동창리 발사장으로 이동했다.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이례적으로 해외 방문에 전용기를 이용한 데는 몇 가지 의도가 있다고 보고 있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전용기를 타고 방문함으로써 ‘나는 선대 지도자와는 다르다’는 차별화로 자신감을 보여줄 수 있고,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일정에 맞춰 가야 할 만큼 중요했던 북-중 정상 간 만남의 시급성이 있었다”고 짚었다. 또 여기에 싱가포르 등 제3국에서 열릴 수도 있는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전용기 성능 점검 및 예행연습차 가장 안전한 ‘테스트 베드(시험대)’로 중국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대영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연구위원도 “노후화된 전용기가 항속거리(약 9200km)는 길어도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날아갈 수 있는지 검증하려는 목적도 있었을 것”이라며 시범 비행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김 위원은 “최근 북한 조종사들이 간 거리를 보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나 중국 베이징 정도”라며 “비행시간이 짧은 전용기 조종사들의 노하우도 축적할 겸, 안전성을 검증하는 테스트 격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최고위 인사가 북에 억류된 미국인 석방을 위해 극비리에 평양으로 향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막판에 난기류를 탔던 북-미 정상회담 논의에도 다시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7, 8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동에 이어 8일 시 주석과 트럼프 미 대통령의 통화, 그리고 억류자 석방까지 연쇄적으로 이어지며 북-미 정상회담 장소와 시기 공개가 임박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 트위터를 통해 억류자 석방을 기정사실화하며 “채널 고정”이라고 했고, 그의 측근인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도 방송 인터뷰에서 “억류자들이 오늘 풀려날 것”이라고 말했다. 판문점을 통해 석방될 것이라는 보도까지 지난 주말 나왔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계속되는 언론의 질문에 “확인 중”이라는 답만 내놓아 반발이 커져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억류자 석방 문제를 섣불리 예고하면서 결국 “리얼리티쇼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최고위급 인사, 특히 북핵 문제를 다루는 것으로 알려진 인사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격 방북하면서 며칠간의 관측은 없던 일이 됐다. 북한에 억류 중인 미국인은 3명이다. 목사인 김동철 씨는 2015년 10월 함경북도 나선에서, 중국 연변과학기술대 교수 출신인 김상덕 씨는 지난해 4월 한 달간의 방북 일정을 마치고 출국하다가 북한 당국에 체포됐다. 평양과학기술대에서 농업기술 보급 활동을 하던 김학송 씨는 지난해 5월 중국 단둥의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평양역에서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최근 노동교화소에서 출소한 뒤 평양 모처로 옮겨진 것으로 알려져, 북한이 미국에 인도하기 위해 준비한다는 관측도 나왔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대북 압박 수위를 높일 때 지난해 석방 직후 사망한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사건을 자주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신년 의회 국정연설에서 웜비어 부모를 초청해 연설 중 소개했다. 트럼프가 강조한 인권 문제를 북한이 억류자 석방으로 화답하면서 북-미 정상회담 개최에도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워싱턴 일각에선 억류자 석방을 위해 평양에 간 인사가 다름 아닌 북핵의 실무 지휘자인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란 말이 나오면서 더욱 그렇다. 폼페이오가 갔다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다시 만나 비핵화와 관련된 미국의 입장을 다시 설명하며 회담의 최종 조율 작업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북한이 억류자의 석방 과정에 들어간 만큼 이미 북-미가 정상회담과 관련해 큰 틀에서 공감대를 이뤘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억류자를 석방하는 트럼프식 ‘세리머니’를 펼치며 북-미가 꽁꽁 숨겨왔던 회담 장소와 시기를 깜짝 공개해 회담의 흥행성을 극대화할 것이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2일 네 번째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정상회담 사이에는 전화 통화로 ‘핫라인’을 유지했다. 지난해 북한의 대형 도발 직후 ‘몰아서’ 의견교환을 했던 양 정상은 올해 한 달에 한 번 이상꼴로 자주 통화하며 비핵화 템포를 맞추고 있다. 취임 후 약 1년 동안 총 13번의 통화 가운데 한미 정상의 통화가 집중됐던 시기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발사 이후 연속 도발 국면과 올해 대화 국면으로 나뉜다. 지난해 7월 28일 화성-14형이 발사됐을 때부터 마지막 도발인 11월 29일 전후로 6차례 통화한 두 정상은 1월 김정은의 신년사 이후 대화 국면에 접어들어 6일 현재까지 6차례 통화를 했다. 지난해 9월은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많이 접촉한 달이다. 북한이 6차 핵실험과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급 ‘화성-12형’ 발사 실험을 감행하면서 세 차례 통화에 더해 유엔총회 참석차 뉴욕에서 정상회담도 가졌다. 11월 29일 북한이 75일간의 도발 휴지기를 깨고 ICBM ‘화성-15형’을 발사했을 때도 도발 당일 통화한 뒤 이틀 연속 수화기를 들었다. 두 정상은 두 번째 통화에서 1시간가량 대북 제재와 압박을 지속하자는 기조를 재확인했다. 올해 북한이 대화 모드로 돌아선 뒤 한미 정상은 한 달에 최소 한 번 이상 통화하며 대북 해법을 조율하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을 마친 다음 날인 지난달 28일에는 역대 최장시간(75분)을 통화했다. 정상 간 통화 외에도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워싱턴으로 날아가 백악관, 국무부 인사들과 줄기차게 접촉하는 것도 한미 간 활발한 의사소통을 보여준다. 22일 워싱턴에서의 한미 정상회담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는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 즉 비핵화 협상의 틀을 만드는 중요한 자리다. 한미 정상 외에도 청와대-백악관 라인과 외교, 정보라인 간 물밑 교류도 활발하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북한이 한국보다 30분 느렸던 자체 표준시 ‘평양시간’을 5일 0시를 기점으로 앞당기면서 남북한의 시곗바늘 각도가 같아졌다. 2015년 8월 15일 광복 70주년을 맞아 일본 제국주의 잔재 청산 등을 이유로 서울보다 30분 늦은 표준시를 설정한 지 약 2년 9개월 만의 환원이다. 조선중앙통신은 5일 오전 ‘다시 제정된 평양시간 시작’이라는 기사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평양시간이 고쳐져 5일부터 정식 실행됐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평양시간을 고침에 따라 4일 23시 30분이 5일 0시로 됐다. 이로써 북과 남의 표준시간이 통일됐다”며 “역사적인 제3차 북남수뇌상봉 이후 민족의 화해단합을 이룩하고 북과 남이 하나로 합치고 서로 맞춰나가는 과정의 첫 실행조치”라고 평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채널 고정(stay tuned)!’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 저녁(현지 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이렇게 적으며 북한에 억류 중인 한국계 미국인 김동철, 김상덕(미국명 토니 김), 김학송 씨의 석방 가능성을 직접 시사했다. ‘stay tuned’는 트럼프 대통령이 특정 사안에 대한 발표가 임박했을 때 즐겨 쓰는 표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모두가 알고 있듯 과거 전임 정부가 북한 노동교화소에 수감 중인 (미국인) 인질을 석방해 달라고 줄기차게 요청했지만 아무 소용없었다”고 지적한 뒤 계속 주목하라고 밝혀 석방 협상 결과가 가시화됐음을 암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 이후 CNN도 협상 과정에 관여한 익명의 미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북한에 억류 중인 한국계 미국인의 석방이 임박했다고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3월 북-미 정상회담 관련 논의를 위해 스웨덴을 방문했을 때 미국인 석방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북-미 관계 진전에 걸림돌이었던 이들이 곧 풀려난다면 이달에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게 확실하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이 미국에 유화 제스처를 취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관계자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만약 북한이 세 미국인을 석방한다면 호의로 받아들여질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벌써부터 ‘계속 주목하라(stay tuned)’는 트윗을 올리며 전임 행정부가 해내지 못한 일을 자신은 해냈다는 식으로 선전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물밑 채널을 가동하기 전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지속적으로 억류자 석방을 요구해 왔다. 특히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지난달 초 비밀리에 방북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직접 미국인 억류자 석방을 요구한 뒤 석방 협상이 급진전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에 억류 중인 한국계 미국인 3명은 노동교화소에 수감돼 있었으나 최근 석방돼 평양 외곽에 있는 한 호텔에서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본보 1일자 A5면 참조). 목사인 김동철 씨는 2015년 10월 함경북도 나선에서, 중국 연변과학기술대 교수 출신인 김상덕 씨는 지난해 4월 한 달간의 방북 일정을 마치고 출국하다 각각 북한 당국에 체포됐다. 평양과학기술대에서 농업기술 보급 활동을 하던 김학송 씨는 지난해 5월 중국 단둥의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평양역에서 체포됐다. 최성룡 납북자가족모임 대표는 3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북한에서 치료와 교육을 받으면서 관광도 하는 ‘강습 과정’ 기간은 대개 10∼15일이다. 이미 세 사람의 석방 준비가 완료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특사가 가서 억류자들을 데려오는 방식을 택할지, 아니면 모처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세 사람을 인계하는 방식을 택할지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 신나리 기자}

‘스위스 유학생’ 출신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과연 영어로 ‘프리 토킹’을 할 수 있을지는 또 다른 관심거리다. 그렇게 된다면 문재인 대통령과의 ‘도보 다리’ 회담의 영어 버전을 트럼프 대통령과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영어 실력을 가늠해볼 수 있는 최근 장면은 2013년 9월 미국 프로농구 선수를 지낸 데니스 로드먼의 방북 영상이다. 김정은은 로드먼이 짧은 문장을 이야기하면 바로 알아듣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말이 빨라지거나 복잡한 문장이 되면 고개를 저으며 뒤에 있는 통역을 바라봤다. 농구 경기를 함께 관람하면서도 간단한 대화는 나누는 듯했지만 항상 남성 통역관이 따라다녔다. 당시 평양 외교공관의 한 소식통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김정은이 스위스 유학 시절 배운 독일어 실력이 영어 실력보다 더 나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2012년 4월 1일 스위스 일간지 ‘르 마탱’에 따르면 김정은은 1993년부터 2000년까지 스위스 베른 등에서 유학했지만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외국어 능력 향상도 체류 기간에 비하면 부족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비핵화 문구를 가다듬는 정상회담에서는 김정은과 트럼프 사이 통역이 배석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정상회담에서는 상대방 언어를 구사하더라도 반드시 통역을 둬서 뜻을 명확히 전달하는 게 원칙이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서울과 평양 간) 경평 축구보다 농구부터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지난달 27일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스포츠 교류가 화제로 오르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같이 말했다. 김정은은 미국 농구선수 데니스 로드먼을 북한으로 초청했을 정도로 ‘농구광’이다. 이어 김정은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세계 최장신인 리명훈 선수(235cm)가 있을 때만 해도 우리가 강했는데, 은퇴한 뒤 약해졌다. 이제는 남한의 상대가 안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남한에는 (키가) 2m가 넘는 선수들이 많죠?”라고 물었다. 문 대통령은 30일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김정은과의 대화 중 일부를 공개했다. 두 정상의 집무실에 설치된 ‘핫라인’도 화제에 올랐다. 김정은은 “이 전화는 정말 언제든 걸면 받는 것인가”라고 물었고 문 대통령은 “그런 건 아니고 서로 미리 사전에 약속을 하고 전화를 걸고 받는 것”이라고 답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에 대해 “솔직담백하고 예의가 바르더라”고 표현했다. 문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경호하는 주영훈 경호처장은 “(평화의집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 만찬장으로 올라갈 때 문 대통령에게 먼저 타시라고 김 위원장이 손짓을 했다”며 “이어 리설주 여사가 타려고 하자 김 위원장이 슬그머니 손을 뒤로 잡아당기며 김정숙 여사가 먼저 타도록 했다”고 했다. 새소리, 바람소리를 배경으로 두 정상이 30분간 진행했던 ‘도보다리 단독 정상회담’에 대해 문 대통령은 “사실 그렇게 좋은지 몰랐다. 회담이 끝나고 청와대로 와서 방송을 보니 내가 봐도 보기가 좋더라”고 했다. 도보다리 회동은 청와대 의전비서관실 윤재관 행정관의 제안으로 추진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실무 논의에서 의전을 놓고 이견이 있었지만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이 ‘남측 제안대로 하자’며 손을 들어줬다”고 전했다. 김씨 일가 3대의 의전을 담당한 김창선이 2월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과 함께 방남해 우리 측의 경호·의전을 경험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것. 또 김창선은 두 정상이 소나무 식수를 할 때 사용한 백두산 흙에 대해 “백두산이 화산재로 덮여 있어 흙이 없다. 그래서 만경초라는 풀을 뽑아 그 뿌리에 있는 흙을 털어서 가져온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한편 두 정상은 도보다리 회동 직후 10여 분간 별도의 단독 대화를 더 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이날 라디오 인터뷰에서 “두 정상이 평화의집으로 오셔서 공동 서명을 바로 안 하시고 다시 접견장에 들어가셔서 배석 없이 얘기를 좀 더 나누셨다”고 전했다. 조 장관은 이 자리에서 두 정상이 북-미 정상회담 준비, 판문점 선언 이행 등과 관련한 논의를 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한편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이날 김일성이 조직한 항일단체인 ‘조국광복회’ 결성 82주년 기념일인 5월 5일부터 한국보다 30분 느린 ‘평양시’를 앞당겨 남북 시간대를 통일한다고 밝혔다. 전날 청와대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울과 평양 시계가 2개여서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고 밝힌 지 하루 만에 북한이 후속 조치에 나선 것이다.한상준 alwaysj@donga.com·신나리 기자}
남북이 30분 차이 나는 시간대부터 통일하기로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30분 늦은 평양 표준시를 서울 표준시에 맞추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현재 서울이 오전 6시면, 평양은 오전 5시 반이다. 북한은 2015년 8월 광복 70주년을 맞아 일본 제국주의 잔재 청산 등을 이유로 서울보다 30분 늦게 표준시간을 설정했다. 윤영찬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은 29일 브리핑에서 “김 위원장이 27일 오후 남북 정상 내외 간 환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북과 남의 시간부터 먼저 통일하자’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김정은은 “평화의집 대기실에 시계가 2개 걸려 있었다. 하나는 서울 시간, 다른 하나는 평양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이를 보니 매우 가슴이 아팠다”며 “같은 표준시를 쓰던 우리 측이 바꾼 것이니 우리가 원래대로 돌아가겠다. 이를 대외적으로 발표해도 좋다”고 말했다고 윤 수석은 전했다. 김정은의 제안은 남북 동질성을 확보하는 효과와 동시에 향후 경제협력 등 실익을 고려한 포석으로 보인다. 주변 국가들과 30분 차이가 나는 표준시를 국제기준에 맞춰 재조정함으로써 북한의 협상 의지와 정상국가화 목표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을 보다 호의적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도 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왜 자꾸 갈라져 가는 걸 만드는지 모르겠습니다. 남북은 같은 땅이고 불과 몇 미터 걸어왔을 뿐인데 시간이 왜 이렇게 다를까요. 이번 계기에 시간을 통일합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7일 오후 만찬에 앞서 환담장에서 전격 제안한 표준시 통일은 ‘철저히 계획된 통 큰 결단’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남북 교류가 촉진될수록 금융, 경제협력 등의 분야에서 동일한 표준시를 사용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봤을 수 있다. 북한은 2015년 8월 15일 광복 70주년을 맞아 표준시 기준을 기존 일본의 중앙 자오선이었던 동경 135도에서 한반도를 지나는 중앙 자오선인 동경 127.5도로 바꿨다. 일제가 동북아 침략 전쟁 당시 편의를 위해 도쿄시로 통일했던 게 문제니 변경하겠다는 주장이었다. 당시 우리 정부는 북한의 일방적인 변경에 대해 “개성공단 출입 등 남북 교류에 지장이 생기고 금융, 항공(관제) 등 기회비용 측면에서 손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가 29일 “표준시 통일은 북측 내부적으로도 많은 행정적 어려움과 비용을 수반하는 문제임에도 국제사회와의 조화와 일치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의미이자 향후 남북, 북-미 간 교류 협력의 장애물들을 제거하겠다는 결단”이라고 평가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물론 북한이 표준시를 한국보다 30분 늦춘 이후 남북경협 분야에서 딱히 큰 문제가 생긴 적은 없다. 북측이 남측에 개성공단 통행 계획서를 제출할 때 평양 시간에 맞춰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 개성공단이 2016년 2월 폐쇄되고 남북 관계가 경색 국면에 들어서면서 문제가 표면화되지 않은 점도 한몫했다. 이 때문에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의 표준시 통일 제안이 비핵화 정국에서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카드 아니냐고 보고 있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는 “‘통 큰 양보를 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전략이다. ‘살라미’ 식으로 계속 조금씩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줘 남한 사람들을 무장 해제시키고 비핵화 검증 등에 대한 주목도를 분산시키려는 것”이라고 했다.신나리 journari@donga.com·김성모 기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7일 ‘판문점 선언’ 이후 북한의 비핵화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의 다음 달 개최가 가시화되고 있으며, 김정은은 이에 앞서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시행과 함께 현장 공개까지 약속했다. 세종연구소 진창수 소장, 이상현 연구기획본부장, 정성장 통일전략연구실장, 우정엽 연구위원이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 모여 비핵화 프로세스에 대한 평가와 전망을 담은 긴급 좌담회를 가졌다. ○ “CVID가 아닌 CVIID로 나아가야” 정 실장: 완전한 비핵화가 선언문 문구에 들어갔다. 이것이 미국이 요청하는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와 동일한지는 논란이 있지만, 미국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을 감안하면 김정은이 CVID를 받아들였다고 본다. 이 본부장: 미국에서는 요즘 CVID에 ‘I(instant·신속한)’가 붙은 ‘CVIID’가 거론된다. 시간을 끌지 말고 신속한 비핵화 검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진 소장: 완전한 비핵화가 무엇인지 해석을 놓고 논란이 있지만 우리 대북 특사단이 평양에 갔을 때보다 관련 표현이 진일보한 것은 확실하다. 비핵화를 차치하고서라도 긴장 완화 이런 부분은 진전된 부분이 있다. 우 연구위원: 북한 내부 정치적 상황 때문에 선언문에는 담지 못한 김정은 발언들이 중요하다. 30분간의 ‘도보다리 회담’을 통해 우리가 북-미 정상회담에도 관여할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중요하다. 정 실장: 북한이 당 전원회의를 통해 병진노선을 포기한 것은 결국 핵을 북-미 협상장에 놓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노선 변경은 상당한 지속성을 갖는다. 올해 안에 종전선언을 하겠다는 것도 김정은이 비핵화에 대해 확실한 약속을 해서 나오는 말일 가능성이 크다. ○ “북한, 개방해도 10, 20년 내 붕괴는 안 될 듯” 우 연구위원: 미국 워싱턴에서는 최근 모습을 보고 “김정은이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라는 평가가 확산되고 있다. 정치적 정통성이 부족한 데다 ‘어린 친구’로 봤던 게 사실인데 그런 기류는 확실하게 변하고 있다. 진 소장: 김정은은 꼼꼼히 챙기는 실무형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회견 당시엔 후보자)과 만나고, 당 전원회의도 하고, 우리와 정상회담도 가졌다. 이런 모든 것을 다 ‘시간 벌기’라고 하기엔, 이렇게 큰 대사기극을 벌이긴 (현실적으로) 어렵다. 일단 진정성이 있다. 정 실장: 건강은 확실히 안 좋은 것 같다. 얼마 걷고 난 뒤에 숨을 헐떡이는 모습을 보였다. 김여정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도 자신이 집무를 못하게 됐을 때의 대비책인 것 같다. 진 소장: 결국 경제(개방)를 해서 북한 사회가 신흥개발국처럼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 중국식 사회주의가 성공할 수 있겠느냐엔 의문이 간다. 정 실장: 북한은 과거 소련 등 사회주의 국가보다 주민통제가 강하다. 일반적인 사회주의 국가에서 청년동맹 등 근로단체 가입률은 60∼70%이지만 북한은 거의 100%다. 북한이 개방을 한다 해도 10∼20년간 붕괴는 없을 것이다. ○ “트럼프-김정은 낮은 수준 비핵화 합의 가능성도” 우 연구위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외교안보에 대한 기본 이해가 부족하고, 대내외적인 여러 문제에 놓여 있다. 어느 정도 정치적 성공만 거두게 되면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더라도 합의해 줄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이 점을 파고들 것이다. 이 본부장: 북-미 정상회담은 트럼프와 김정은 모두 성공해야 하는 회담이다. 하지만 그 성공의 내용이 걱정스럽다. 완전한 비핵화에 못 미치는 원론적 합의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비핵화 합의에는 꼭 시한이 들어가야 한다. 정 실장: 트럼프가 최근 트위터 등을 통해 밝히는 것을 보면 계속 북한과 접촉하고 있으며 비핵화 등을 빼면 많은 부분 조율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이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과 수시로 만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는데, 결국 북-미 회담 결렬 시에 대한 보험용인 것 같다. 진 소장: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밝혔고, 시한의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정치적으로 득점하기 위해 트럼프가 회담에 나갈 가능성이 크다. 또 결국 (미국 내) 정치적 고려를 감안하면 북-미 정상회담도 50∼60% 타결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 “남북관계 복원, 비핵화보다 앞서가면 안 돼” 우 연구위원: 남북 정상회담에 가졌던 미국의 우려는 미국이 할 수 없는 부분을 한국 정부가 약속하는 것이었는데, 회담 결과를 보면 미국이 크게 우려할 만한 대목은 없는 것 같다. 경협 등이 포함됐지만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해제되지 않는 한 이행되기 어렵다. 우리가 비핵화가 북한의 이익이라는 것을 북에 설명하고, 이를 통해 비핵화를 최대한 빠르게 진척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진 소장: 국제사회에서 중국 러시아 일본이 방해자가 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이 국제사회를 배려해준다는 측면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간다는 이미지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한미 정상회담 때도 북한과 협상하지만 북한과 같지 않다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 또한 국내 정치도 여야가 너무 (북한 문제에) 극명하게 다른데 이는 우리 미래를 위해서도 좋지 않다. 대통령이 야당도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이 본부장: 비핵화가 최우선 목표라는 건 미국과 공유해야 한다. 또 남북관계 개선이 비핵화보다 한 걸음 앞서가려는 경향이 있는데 한 걸음만 늦게 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원하는 평화협정 등을 이룰 수 있다.황인찬 hic@donga.com·신나리 기자}

노무현 정부 시절 외교통상부 내 ‘(대미)자주파 대 (한미)동맹파 갈등’을 촉발한 핵심 인물 김도현 삼성전자 상무(52·사진)가 주베트남 대사로 임명됐다. 외교부는 29일 김 대사를 비롯한 대사 19명과 총영사 4명 등 총 23명의 공관장 인사를 단행했다. 김 신임 대사는 1993년 외무고시 27회로 외무부에 들어가 경수로사업지원기획단 파견을 거쳐 이라크, 러시아, 우크라이나, 크로아티아 등에서 근무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 ‘자주파 외교관’으로 분류되는 그는 참여정부 출범 1주년을 한 달 정도 남겨두고 외교부 북미국의 과장급 인사가 사석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젊은 보좌진에게 대통령이 휘둘린다” 등 노 전 대통령과 청와대의 대미 외교정책을 비판한 것을 청와대에 투서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일로 윤영관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이 물러났고 조현동 전 외교부 기획조정실장 등 북미라인 인사들이 대거 교체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으로 투서를 받고 관련 사건 조사를 총지휘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김 신임 대사 임명에 대해 “외부 추천이 있었다. 경력이나 언어, 지역 전문성을 포괄적으로 고려했다”고 말했다. 또 삼성이 베트남에 대규모 휴대전화 생산기지를 두고 있기 때문에 ‘이해 상충’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도 “오해 소지는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공직자의 책임감이나 외교부 시스템으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외교가에선 김 대사가 어떤 성향인지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뻔히 알고 있는데, 북-미 정상회담 등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중차대한 이벤트를 앞두고 굳이 이 시점에 인사를 내야 했느냐는 말도 나온다. 이날 발표된 인사에서 다자통상외교 최전선인 제네바대표부 대사로는 백지아 외교안보연구소장이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임명됐다. 백 신임대사는 외시 18회로 뉴욕, 유엔, 태국 등을 거쳐 외교부 국제기구국장과 기획조정실장 등을 역임했다. 이하는 다른 지역 대사 및 총영사 인사 내용. ▽대사 △주그리스 임수석 △주노르웨이 남영숙 △주몽골 정재남 △주볼리비아 김학재 △주브라질 김찬우 △주브루나이 윤현봉 △주사우디아라비아 조병욱 △주세네갈 최원석 △주싱가포르 안영집 △주알제리 이은용 △주이란 유정현 △주카타르 김창모 △주코스타리카 윤찬식 △주쿠웨이트 홍영기 △주튀니지 조구래 △주트리니다드토바고 성문업 △주파푸아뉴기니 강금구 ▽총영사 △주광저우 홍성욱 △주두바이 전영욱 △주우한 김영근 △주이스탄불 홍기원 ▽실장급 △국립외교원 외교안보연구소장 김인철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남북 정상이 27일 판문점 선언을 통해 “2007년 ‘10·4공동선언’에서 합의된 사업들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남북 경제협력의 닻이 올랐다. 관심을 모았던 남북연락사무소는 개성에 설치하기로 하면서 각종 제재로 발이 묶여 있던 개성공단도 재가동이 임박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대북제재를 어떻게 피할 수 있을지가 관건 남북 관계 개선 관련 6번째 합의로 등장한 경협은 당초 의제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를 풀지 못하면 논의가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날 선언문에 명시되면서 단순한 남북 관계 개선을 넘어 대북제재 완화 또는 해제를 염두에 두고 합의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2007년 10·4공동선언에서 합의했던 남북 경협사업은 네 가지로 요약된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개성공단 2단계 개발 착수 △개성∼신의주 철도,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보수 문제 협의 및 추진 △농업·보건의료·환경보호 등 협력사업 진행 등이다. 이 중 이번 선언에서 1차적으로 동해·경의선을 복구하겠다고 밝힌 것과 달리 개성공단은 언급이 없다. 개성공단은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 도발 등에 대해 박근혜 정부가 강경 대응하면서 2016년 2월부터 가동이 전면 중단된 상태. 전체 부지(66.1km²) 가운데 3.3km²만 개발됐고, 입주하기로 한 기업의 절반도 채 입주를 못 했다. 그럼에도 남북의 재가동 의지는 개성 연락사무소를 설치하겠다는 문구로 확인된다. 문재인 대통령도 선언문 서명 직후 기자회견에서 “남북 경협 추진을 위한 남북 공동 조사 연구작업이 시작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여건이 되면 각각 상대방 지역에 연락사무소를 두는 것으로 발전해 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종욱 인천대 중국학술원장도 “개성으로 연락사무소 설치를 협의한 것은 개성공단과 별개로 해석하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굵직한 경협, 비핵화 북-미 회담에서 빅딜 가능성 개성공단을 다시 돌리는 일은 남북 간 합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유엔이 북한에 대량 현금 제공을 금지하는 결의안을 냈고, 지난해 회원국의 북한 내 금융 업무를 금지시켰기 때문이다. 미국의 독자 대북제재도 넘어야 할 산이다. 청와대가 이날 회담 후 배포한 설명자료에서 “현 상황에서 추진 가능한 사업이 무엇인지, 아울러 어떤 방식으로 추진할 것인지에 대해 북측과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한 것도 난관이 있음을 시사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경협은 대북제재, 더 나아가 비핵화 문제와 별개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제재의 키를 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비핵화 담판을 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장은 “남북 간 다양한 경협 중 굵직한 것들은 결국 비핵화와 연결돼 있어 양자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조금밖에 없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만약 북한이 먼저 경협을 논의하자고 제시했다면 북한이 필요한 게 뭔지를 가장 여실히 보여준다”며 “비핵화를 하면 우리는 경제 개발을 하고 싶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이어 “단기적으로는 제재가 있기 때문에 문제지만 제재 공조를 무너뜨리려고 한다면 그게 또 문제가 돼서 북-미 대화가 중요해진다”고 설명했다. 북-미 간 빅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SOC 경협 의지 밝힌 김정은 이번 공동선언문에 유일하게 적시된 경협사업은 동해북부선 및 경의선 철도를 복구다. 김 위원장이 정상회담에서 “평창 올림픽에 다녀온 사람들 얘기로 남측의 철도와 교통편이 아주 잘돼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 교통이 불편해서 걱정이다”라고 솔직히 밝힌 것은 일종의 복선이었다. 경의선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문산∼개성(27.3km) 구간이 이어지면서 물리적인 철로 연결이 마무리돼 가장 먼저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부산으로부터 북한을 관통해 러시아까지 이어지는 동해북부선은 철로를 새로 깔아야 한다.신나리 journari@donga.com·강성휘·최고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