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창

박희창 기자

동아일보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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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희창 기자입니다.

ramblas@donga.com

취재분야

2026-01-10~2026-02-09
칼럼100%
  • “소외계층 친구 돕자”… 어린이 13명, 지리산 ‘모금 종주’

    6일 경기 구리시 대안학교 ‘두레학교’ 학생 13명이 서울 종로구 옥인동 아름다운재단 사무실을 찾아 후원금 301만9250원을 전달했다. 또래 친구들을 위해 어른도 힘들어하는 지리산을 직접 오르며 모금한 돈이다. 이들은 올해 5월 22일부터 25일까지 지리산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총 31km를 완주하면서 178만5500원을 모금했다. 만나는 등산객에게 “우리가 100m 오를 때마다 100원씩을 기부해 달라”고 요청하는 방식으로 모았다. 또 인터넷 포털과 학교 인근에서 추가로 모금 활동을 벌여 123만3750원을 보탰다. 두레학교는 2007년부터 소외계층 청소년들을 돕는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매년 3박 4일 동안 ‘막무가내대장부’ 팀을 구성해 지리산 종주에 나서고 있다. 학생들은 산을 오르내리며 마주치는 등산객과 주변에 있는 친구, 가족에게 그 취지를 설명하고 기부를 권유했다. 그렇게 기부 약속을 받고 종주에 성공하면 약속받았던 기부금을 받는 형식. 지리산 종주를 통해 두레학교 학생 126명이 지난 6년 동안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한 금액은 모두 3106만5367원에 달한다. 학생들이 모금한 기금은 지금까지 총 60여 명의 소외계층 학생들의 여행을 지원하는 데 사용됐다. 학생들과 함께 지리산 종주에 나섰던 두레학교 박수백 교사(32)는 “지리산 등정을 위해 사전에 학교 인근 야산에서 ‘지옥훈련’을 하는 등 많은 준비를 했지만 지리산을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힘든 상황이 많았다”며 “또래 친구들을 도우려는 아이들의 마음이 등정을 성공으로 이끄는 데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지리산 종주 후에도 아이들이 직접 학교 앞에서 소책자를 나눠주며 모금 활동에 열을 올렸다”고 덧붙였다. 두레학교 9학년 김한준 군(15)은 “처음에 지리산에 갔을 때는 너무 힘들어서 ‘왜 왔을까’라고 후회도 했지만 돌아와서 우리가 모은 기부금을 보고 큰 보람을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 2012-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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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변만화]웹툰 ‘조이라이드’ 1000회 돌파 윤서인 씨

    “지난 1000일 동안 꾸준히 해 온 무엇인가가 있습니까?” 대부분의 사람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한다. 혹 ‘일기’라고 대답할 사람이 있다면, 하나 더 묻고 싶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일기를 쓰고 있는지. 야후에 ‘조이라이드’를 연재하는 웹툰 작가 윤서인 씨(37)는 1000일 동안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하루에 한 편씩을 내놓았다. 올해 2월엔 드디어 1000회를 돌파했다. 그는 “아침에 눈을 떠 화장실을 가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한 일이 돼 버렸다. 이제는 일주일에 두세 번만 그리라고 하면 더 힘들 것 같다”며 웃었다. 정식 연재는 2008년 5월 21일부터 시작했지만, 2000년 3월부터 자신의 홈페이지에 ‘조이라이드’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 기간까지 합치면 10년이 넘는다. ‘조이라이드’에서 윤 씨는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그 안에서 작가가 느낀 생각들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담아낸다. 주요 등장인물도 윤 작가 자신인 ‘조이’와 그의 부인이다. “능력 있는 아들은 ‘장모 꺼’, 잘생긴 아들은 ‘며느리 꺼’, 찌질한 아들이 ‘엄마 꺼’”처럼 주변에서 들었던 이야기들을 비롯해 동일본 대지진 등 다양한 사회적 이슈도 모두 소재가 된다. “컴퓨터를 켜면서도 내가 그날 무엇을 그릴지 나도 모른다”는 그는 “어떻게 매일 그리냐고 많이들 묻는데, 그릴 것이 너무나 많다. 시간만 많으면 하루에 2개도 그릴 수 있을 것 같다. 사는 것이 다 드라마다”라고 했다. 윤 작가는 MBC 오디션 프로그램 ‘스타 오디션―위대한 탄생’의 시청 소감을 담은 웹툰 ‘윤서인의 위대한 시청소감’도 매주 그리고 있다. 매회 방송이 끝날 때마다 그날의 주요 장면과 에피소드에 대한 소감을 자신의 블로그와 MBC 홈페이지 등에 올린다. 해당 프로그램의 PD가 먼저 연락을 해 왔다고 한다. “처음에는 의무감으로 봤지만 이제 ‘본방 사수’는 기본이죠. 도전자들의 캐릭터 하나하나에 정이 들다 보니, 이제는 끝나고 나면 어떤 이야기부터 해야 할지 모를 정도예요.” 처음에는 누리꾼들이 “왜 윤서인이냐”고 했지만 이제는 “본방보다 만화로 된 후기를 더 기다릴 정도”라는 반응도 나온다. 지난달 가수 김태원 씨의 멘티로 본선 진출을 확정한 도전자 이태권 씨 특유의 무심한 표정을 그려내자 누리꾼들은 이를 여러 사이트로 퍼 나르며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해당 프로그램에서 멘터로 등장하는 작곡가 방시혁 씨도 자신의 트위터에 윤 작가의 웹툰을 링크했다. 윤 작가는 “만화계라고 부를 수도 없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인 만큼 오히려 방송 후기 만화 등 다양한 시도를 통해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07년 그는 ‘친일파 작가’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일본 여행 후기를 만화로 연재하면서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며 일본의 좋은 점을 부각시켰는데 비난이 쏟아졌다. 윤 작가는 “그 당시에는 손이 떨려서 키보드를 제대로 칠 수 없을 정도로 무섭고 힘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 만화에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고 했다. 그는 “‘조이라이드’는 내 이야기를 그냥 하는 만화였는데, 그런 일을 겪고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얼마나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이 많다”고 덧붙였다. 2004년 야후코리아에 입사했던 그가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만화가로 나선 것은 2009년 1월이었다. 2년이 흘렀지만 그의 이름이 달린 다른 작품은 여전히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앞으로는 남녀노소를 떠나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평범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아름다운 만화’를 그려보고 싶다. 앞으로 4칸의 운세만화로 독자들에게 찾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조이라이드’는 지금처럼 매일 죽을 때까지 연재할 계획이다. “그리는 것 자체가 너무 즐거워요. 그리고 2002년이 2003년 같고, 2003년이 2004년같이 너무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가잖아요. 그러다 보니 정신을 차려 보면 할아버지가 되어 있을 것 같고, 예전에 내가 어떻게 살았나 이런 것들이 궁금할 것 같아요. 그래서 하루하루 무엇을 하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림일기로 기록을 남기는 거죠.”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

    • 2011-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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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영균 논설위원의 추천! 이번주의 책]쿨하게 사과하라 外

    “김태호 12번, 신재민 14번, 조현오 27번.” 무엇을 말하는지 궁금하실 것이다. 작년 8월 이명박 정부가 개각을 단행한 뒤 이어 열린 국회 인사 청문회에서 후보자들이 ‘죄송하다’거나 ‘미안하다’고 말한 횟수다. 당시 언론은 이 청문회를 ‘사과 청문회’라거나 ‘죄송 청문회’라고 비틀었다. 열 번, 스무 번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국민들의 용서를 구하기는커녕 짜증과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역효과였다. 김태호 신재민 후보 등이 중간에 낙마했다. 2008년 5월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버락 오바마는 크라이슬러 공장을 방문하던 중 한 여기자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그러나 오바마는 여기자에게 “잠시 기다리세요. 스위티(sweetie)”라며 나중에 답변하겠다고 했다. 여기자는 그날 오바마로부터 아무런 답변을 듣지 못했다. 약속위반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스위티’라는 표현이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여성에게 쓸 표현이 아니었다. 오바마의 정치적 신뢰를 떨어뜨릴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성희롱으로 문제 삼을 수도 있었다. 논란이 일고 민주당은 혼란에 빠졌다. 오바마는 바로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인정하고 여기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구체적인 사과의 메시지를 음성 녹음기에 남겼다. 직접 전화함으로써 오바마는 일이 더 커지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죄송하다고 십수 차례 머리를 조아린 청문회 후보자들은 용서를 받지 못한 반면 전화를 건 오바마의 사과가 받아들여진 것은 왜일까. 어떻게 사과해야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여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는 단지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사과가 아니라 미안하다는 감정 표현의 수단에 불과하다고 본다. ‘미안하다’는 말을 사과의 전부로 보는 것은 심각한 착각이라는 것이다. ‘미안해’는 사과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과를 하고 싶다면 사과의 충분조건마저 충족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과해야 할까. 심리학자 게리 채프먼과 제니퍼 토머스는 2006년 출간한 ‘사과의 다섯 가지 언어’에서 사과를 위한 다섯 가지 표현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미안해’ 다음에 하지만, 다만 같은 말을 덧붙이지 말라. 둘째, 무엇이 미안한지 구체적으로 표현하라. 셋째,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명확히 하라. 넷째, 개선 의사나 보상 의사를 표현하라. 다섯째, 재발 방지를 약속하라. 여섯째, 용서를 청하라 등이다. 그러나 사과문을 잘 썼다고 해서 사과가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다. 저자들은 사과할 때 타이밍이 특히 중요하다고 한다. 빠르게 사과한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서둘러 사과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누구나 사과를 해야 할 때가 있을 것이다. 기업이나 조직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은 자존심 때문에 사과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소통능력이 좋은 사람들은 기꺼이 사과를 하고 관계를 복원시키는 데 성공한다. 오바마처럼 대중 앞에 고개를 숙일 줄 아는 리더들이 각광을 받는가 하면 위기 시에 사과를 통해 위기를 돌파하는 기업도 적지 않다. 제대로 사과할 줄 아는 것은 리더들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될 수도 있다. 사과의 기술이 필요한 때다.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 ■ 파괴적 혁신 실행 매뉴얼‘파괴적 혁신’없이 살아남는 기업 없다스콧 앤서니 외 지음·이성호 김길선 옮김420쪽·2만4000원·옥당미국 백화점 업계를 주도하던 시어스는 월마트에 시장을 내줬다. 메인컴퓨터를 생산하는 IBM은 초기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고배를 마셨다. 복사기 시장을 석권했던 제록스도 존폐의 위기에 놓인 적이 있다. 모두 파괴적 혁신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생긴 결과다. 파괴적 혁신은 기존 제품을 개선해 내놓은 존속적 혁신과 대비된다. 파괴적 혁신은 시장이 외면하고 안 될 것이라고 말하는 곳에서 나타난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기존 기업이 파괴적 혁신에 대응하지 못하는 이유는 “초기 단계에서는 파괴적 혁신을 시도할 시장 규모가 너무 작고, 전망도 불투명해 투자할 가치를 느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설사 가치를 느끼더라도 혁신 제품을 변형해 기존 제품 라인에 끼워 넣음으로써 파괴적 에너지를 날려 버린다. 파괴적 혁신을 추진하려면 “기존 고객과 프로세스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고 독립적인 조직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 슈퍼리치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다억만장자들이 사회변혁 나선다면?랄프 네이더 지음·강경미 옮김544쪽·2만7000원·꾸리에워런 버핏의 호소에 억만장자 17명이 하와이 마우이 섬의 한 호텔에 모였다. 이들은 사회적 불평등과 부정의 주범으로 시장만능 자본주의와 기업에 대한 특혜를 지목한다. 그리고 대기업에 의해 장악된 금권정치를 극복하고 공동체적 가치를 복원해 전면적인 국가개혁을 실현하기 위한 ‘대전환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미국의 대표적 소비자 권익 보호 운동가로 사회 변혁을 꿈꿔온 저자가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풀어낸 유쾌한 상상. 억만장자들이 사회 변혁을 주도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리며 그들의 입을 통해 자신만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우리는 부자를 없애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부자를 계속 배출할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를 만들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 등장하는 그 어떤 누구도 실제 삶은 아니며, 이 책에 묘사된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어떤 책임도 질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그렇게 하기를 바란다”고 덧붙인다.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 2011-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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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사회]역사의 증인 TIME

    1963년 11월 22일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암살 사건이 미국을 넘어 세계를 뒤흔들었다. 대중은 당연히 시사주간지 타임이 그 주의 표지로 케네디 대통령을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타임은 케네디의 암살에 표지를 내주지 않았다. 창간 이래로 죽은 사람의 이미지를 표지에 올리지 않는 것을 불문율처럼 지켜왔기 때문이다. 이 책은 타임의 역사와 그 속에 남겨진 현대사의 기록을 담았다. 저널리스트인 노베르토 앤젤레티와 알베르토 올리바가 6년 동안 타임을 거쳐 간 기자와 사진작가, 에디터들을 인터뷰하고 이를 바탕으로 내용을 구성했다. 2000년 예루살렘의 통곡의 벽 앞에서 기도하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비롯한 600여 장의 사진과 일러스트레이션이 시각적인 충족감과 흥미를 준다. ‘타임’을 창간한 헨리 루스와 브리턴 해든은 표지를 유난히 강조했다. 두 사람은 ‘표지는 잡지의 개성을 전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1923년 3월 3일 창간호의 조지프 캐넌 하원의장을 시작으로 매주 그 주의 뉴스 중에서 가장 중요한 뉴스의 주인공을 선정해 표지에 올렸다. 1927년부터는 표지에 빨강 테두리를 둘렀다. 빨강 테두리는 그 안에 담긴 정보는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고 그 밖의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그들의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만큼 현재까지 총 4000여 장이나 되는 타임의 표지에는 현대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제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 베트남전쟁, 워터게이트 스캔들, 걸프전쟁, 달 착륙과 베를린 장벽의 붕괴, 9·11테러 등이 모두 타임의 표지를 거쳐 갔다. 베트남전쟁은 타임의 ‘얼굴’을 59회나 장식했다.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 타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올해의 인물’은 사실 우연의 산물이었다. 1927년 5월 대서양 단독 비행에 성공한 찰스 린드버그의 성공담을 부실하게 다룬 것을 만회하려고 임시변통으로 만든 것이었다. 더욱이 루스는 ‘올해의 인물’에 반대했다. 해마다 린드버그에 맞먹는 영웅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그는 결국 ‘올해의 인물’ 선정이 독자들에게 단순히 훌륭한 행위에 대한 상이 아니라 영향력에 대한 인정으로 비쳐야 한다는 조건을 달고 제안을 받아들였다. 책은 가로 23.5cm, 세로 31cm 크기. 가방 안에 넣고 다니며 지하철 안에서 보기에는 적합지 않다. 하지만 그 크기와 무거움은 타임이 지닌 전통과 영향력을 대변하는 듯하다.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 2011-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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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크로드와 둔황’ 특별전…스님도 시인도 “말로 못할 감동”

    “30년 전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을 읽고 인도를 가려는 마음을 냈고, 1980년 단수여권을 들고 인도를 순례하며 내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10일 오후 경남 양산시 통도사 주지 정우 스님을 비롯한 신도 700여 명이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문명전 ‘실크로드와 둔황-혜초와 함께하는 서역기행’을 관람했다. 혜초 스님이 직접 쓴 오언시에 대해 신도들에게 한참 동안 설명하던 정우 스님은 “생과 사를 초월해 구법일념 하나만으로 살다 가신 혜초 스님의 삶에 가슴이 떨린다”고 말했다. 스님과 함께 전시를 둘러본 차미숙 씨(44)는 “2004년 9월에 실크로드 중로를 따라 직접 카슈가르 등을 다녀왔더니 ‘왕오천축국전’이 더욱 보고 싶었다”며 “직접 보니 불교를 보는 눈도 넓어지고 더 공부를 하고 싶다는 동기 부여가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집에 가면 혹시라도 잊어버리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왕오천축국전’ 원본 앞에 적힌 설명을 종이에 옮겨 적던 조의숙 씨(55)는 “혜초 스님은 신라 분으로 우리 조상이고 ‘왕오천축국전’도 우리 불교의 발자취와 문화가 담긴 유산인데, 이 두루마리가 프랑스에 있다는 사실을 들으니 조금 아쉽다”고 말했다. 강원 설악산 백담사 회주(會主)인 오현 스님도 신달자 오세영 시인 등 문인 10여 명과 함께 ‘실크로드와 둔황’ 특별전을 찾았다. 오현 스님은 “내가 죽을 때까지 말해도 이 감동을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고 전시를 둘러본 소회를 밝혔다. 손에 쥔 노트에 꼼꼼히 설명을 받아 적으며 전시를 둘러본 신달자 시인은 “자신이 속한 세계를 넘어 다른 곳으로 끊임없이 나아가려고 하는 것이 인간이 가진 본성 중 가장 강력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또 아직도 열리지 않는 막고굴에 내가 동경하는 무엇인가가 있을 것 같다. 이것 가지고 시 한 편을 써야겠다”며 웃었다. 세계 최초로 공개 전시되고 있는 왕오천축국전 원본은 20일까지 연장 전시된 뒤 짧은 귀향을 마치고 21일 프랑스로 돌아간다. ‘실크로드와 둔황’ 특별전은 4월 3일까지 계속된다.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 2011-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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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고]정채규 한규규 강자 모친상·남호 금영 의정 호정 현정 조모상·고한석 장모상

    ◇정채규 유앤솔루션 대표 한규 전자부품연구원 전문위원 강자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모친상·남호 동광제약 사원 금영 씨티재활의학과요양병원 간호사 의정 우리금융정보시스템 대리 호정 우리은행 대리 현정 LG히다찌 대리 조모상·고한석 인제대 의대 교수 장모상=9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2일 오전 5시 반 02-3010-2236}

    • 2011-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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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각이 쑥쑥!… 열려라, 책세상!]철거촌 친구들, 어떻게 살까

    어른들에게 닥친 삶의 변화가 아이들의 삶까지 뒤틀어버린 한국 사회의 자화상을 5편의 이야기 속에 풀어냈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부모가 불법체류자라는 이유로 ‘불법 아이’ 취급을 받는 소년, 재개발 때문에 살던 집을 떠나 철거민촌에 사는 소년 등 늘 우리 곁에 함께 있지만 애써 보려 하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이 오롯이 그려진다. 그 아이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동안 뉴스에 등장하는 사회 문제가 결국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나’와 연결된 우리 자신의 이야기임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기자로 일하고 있는 저자가 취재한 내용을 동화라는 그릇에 담아냈다.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 2011-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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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리스도인은 선한 이웃으로 살아갈 책임있다”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를 보면 이 세 종교는 동일한 하나의 명령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제입니다.” 세계 개신교회의 대표 기구인 세계교회협의회(WCC) 올라브 d세 트베이트 총무(51·사진)가 9일 5박 6일 일정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트베이트 총무는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연지동 기독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어디 있든지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이웃’으로 살아갈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트베이트 총무는 2013년 10월 3일부터 12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릴 WCC 10차 총회에 보수적 성향의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한국 교회의 정서와 맞지 않는다’며 반대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 대해 “반대 의견은 이 행사에 대한 또 다른 형태의 관심을 보여주는 것으로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WCC와 부산 총회에 비판과 의구심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우리와 논의할 수 있는 자리로 오기 바란다”고 말했다. WCC 총회는 7년마다 각국의 교회 대표, 신학자 등이 한자리에 모여 세계교회의 구체적인 선교 방향과 전략을 협의하는 자리로, 2013년 10차 총회에는 국내외에서 7000명 이상이 참가해 다양한 형태의 예배, 기도모임, 전시회, 워크숍, 세미나, 강연회 등을 진행한다. 트베이트 총무는 내한 기간에 이번 총회의 준비상황을 점검하고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조용기 서울 여의도 순복음교회 원로 목사 등을 만난다. 이와 함께 가톨릭 주교회의, 정교회 등도 방문할 예정이다.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 2011-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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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방떡소녀’ 조수진씨 별세… 추모 물결

    ‘오방떡소녀’라는 필명으로 인터넷에 암 투병기를 만화로 연재했던 웹툰 작가 조수진 씨(32·사진)가 5일 별세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후 누리꾼들의 추모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조 씨는 서울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하던 2005년 임파샘암 3기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꿋꿋하게 투병생활을 하며 인터넷 포털 다음의 카페 ‘암과 싸우는 사람들’과 자신의 블로그에 투병기를 만화로 연재해 암 환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조 씨는 블로그와 카페에 연재했던 만화를 엮어 카툰집 ‘암은 암, 청춘은 청춘’ ‘오방떡소녀의 행복한 날들’을 펴냈고 KBS 1TV ‘아침마당’ 등 방송에도 출연해 밝고 씩씩한 모습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왔다. 8일 현재 주인이 사라진 그의 블로그에는 최근 게시물에 600건 이상의 댓글이 달리는 등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누리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누리꾼 ‘윤정맘’은 “제가 많이 힘겨웠을 때 마음의 봄바람 같은 아가씨였는데…. 그동안 당신께서 보여주신 그 의연하고 밝은 삶의 모습에 경의를 표합니다”라고 추모했다. 누리꾼 ‘세라’는 “지금은 만화가를 못하지만, 천국 가서 대단한 만화가가 될 수 있을 거예요”라는 글을 남겼다.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 2011-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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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사]경희대

    ◇경희대 △서울부총장 김정만 △재정〃 이준규 △후마니타스칼리지 대학장 도정일 △공공대학원장 이동수 △후마니타스칼리지 서울캠퍼스학장 정연교 △이과대〃 유건호 △한의과대〃 김남일 △동서의학대학원장 손낙원 △후마니타스칼리지 국제캠퍼스학장 이영식 △생명과학대〃 백광희 △연구산학협력처장 겸 산학협력단장 김영진}

    • 2011-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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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세 미국여성 ‘셀프출판 신데렐라’

    17세 때부터 작가를 꿈꿔 온 미국 미네소타 주 오스틴에 살고 있는 어맨다 호킹 씨(26·사진). 불과 1년 전만 해도 가난한 작가 지망생에 불과했다. 그의 원고는 뉴욕의 출판사들로부터 번번이 퇴짜를 맞기 일쑤였다. 그는 디지털 셀프출판으로 눈을 돌려 지난해 4월 15일 ‘마이 블러드 어프로브스(My Blood Approves)’ 3부작의 1권을 킨들용 전자책(e북)으로 처음 펴냈다. 그리고 1년도 채 안 돼 그는 2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인기 소설가로 거듭났다. 처음부터 책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간 것은 아니다. 지난해 4월 말 2권 ‘페이트(Fate)’를 내놓았지만 2주 동안 45부 판매에 그쳤다. 다음 달에 3권 ‘플러터(Flutter)’를 출간했을 때까지만 해도 판매된 책은 몇백 부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해 6월부터 판매량이 조금씩 늘기 시작하더니, 2010년 한 해 동안 16만4000권이 팔렸다. 올해 1월에는 45만 부가 넘게 판매됐다. 지금까지 그가 쓴 책 9권의 판매량은 90만 부. 그중 99퍼센트 이상이 전자책이었고, 폭발적인 인기에 힘입어 그의 책들은 모두 종이책으로도 출간됐다. 호킹 씨는 최근 USA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셀프출판은 나에겐 아주 훌륭한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블로그와 페이스북, 트위터를 통해 내가 직접 적극적으로 홍보한 게 성공의 핵심이었다”며 “트롤, 뱀파이어, 좀비 등이 등장하는 대중적인 장르의 작품을 쓴 것도 성공 요인 중 하나”고 덧붙였다. 그의 책은 대부분 99센트(약 1100원)에서 2.99달러(약 3300원)로 가격대가 낮다. 하지만 2.99달러짜리 책 한 부를 팔 때마다 책 가격의 70%를 인세로 갖고, 99센트짜리는 30%를 가져간다. 호킹 씨는 앞의 인터뷰에서 “나 스스로가 전자책에 지불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합리적인 가격대가 그 정도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자신이 책값을 결정한다. 호킹 씨는 셀프출판에 대해 지나친 환상을 갖는 것은 경계했다. 그는 3일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려 “대부분의 작가가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내지만 모두가 억만장자가 되는 게 아니듯, 셀프출판을 통해 모두가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여전히 작가가 되는 것은 힘든 일이고 편집, 교열 등 모든 것을 혼자 하려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밝혔다.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 2011-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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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00자 다이제스트]노비-광대-기생 등 조선시대 최하층의 삶

    노비, 광대, 기생, 백정, 공장, 무당, 승려, 상여꾼 등 조선시대 신분제의 최하층에서 가장 멸시를 받았던 ‘팔천(八賤)’의 삶을 들여다본다. 말을 알아듣는 꽃, ‘해어화(解語花)’로 불렸지만 기생은 그저 왕족과 고관들의 노리개에 불과했다. 조선시대 내내 사대부들은 불법으로 관기를 첩으로 들였고, 지방 수령들은 관기의 수효를 맞추기 위해 간통한 여자를 잡아 강제로 기생으로 만들었다. 저자는 “조선의 양반들이 소리 높여 동방예의지국을 떠벌일 수 있던 이면에는 팔천으로 대표되는 강고한 노예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 2011-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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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사회]‘미인 권하는 사회’… 몸에 집착하는 한국인

    《“그녀의 다리는 멋져 다리는 멋져, 10점 만점에 10점.” 2PM의 노래 ‘10점 만점에 10점’이다. 노래는 연인과 함께 걸으면서도 지나가는 여성들을 훔쳐보며 ‘점수’를 매기는 남성들의 속내를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대상화되는 여성들도 이 ‘점수’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수많은 여성이 오늘도 사과 반쪽으로 점심을 때우며 다이어트에 열을 올리고, ‘어느 성형외과가 쌍꺼풀 수술을 잘하더라’ 하는 이야기에 자신도 모르게 귀를 기울인다.》 이 책은 오늘날 거의 모든 한국 여성의 숙명이자 굴레가 되어버린 미인강박증의 뿌리를 역사 문화적으로 고찰한다. ‘예뻐져야 한다’는 강박의 뿌리는 서양 문물이 물밀듯이 들어오던 일제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급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한 여성들의 몸 가꾸기 문화가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다양한 사례를 통해 지적한다. “왜 우리가 몸에 대해 그렇게 지나치게 집착하는지를 제대로 알고, 그러한 앎을 통해 한층 더 행복한 삶을 사는 방법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구체적인 길을 찾아보려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1부 ‘S라인의 탄생’에서는 ‘예쁜 여자’의 기준이 근대에 들어 새롭게 만들어지는 과정을 살펴보고, 2부 ‘예쁜 여자 되기’는 예쁜 여자의 기준이 변하면서 그에 맞는 외모를 갖추기 위해 쏟아진 몸 가꾸기 관련 정보와 상품, 의학 기술 등을 담았다. 3부 ‘미녀는 괴로울까’에서는 그렇게 예쁜 여자가 되고 난 뒤의 여성들의 운명을 짚어본다.20세기 직전까지 한국 여성은 S라인보다는 소문자 b라인에 가까운 상박하후(上薄下厚)의 체형을 아름다운 몸으로 여겼다. 1920년대 서양 문물의 유입과 함께 치마 길이가 짧아지면서 남성들은 여성들의 각선미를 따지기 시작했고, 1930년대부터는 가슴 부위의 곡선미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1914년 ‘매일신보’가 ‘예단일백인’이라는 특집 기사를 통해 기생들의 외모를 소개한 것을 계기로 대중매체들도 유명 인사들의 ‘미인관’을 빈번히 싣기 시작했다. 이들은 ‘개인의 취향’이라는 조건을 달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미인의 기준을 상세하게 언급했다. 이는 그 시대 사람들의 미와 미인에 대한 의식을 ‘반영’하면서 동시에 ‘형성’시키는 역할을 했다. 춘원 이광수는 “체격이 팔다리나 몸통이 자로 잰 듯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게 바로 맞고, 몸 쓰는 것, 걷는 것 등 모든 동작이 날씬하여 남의 눈에 조금도 거슬리게 보이지 않고… 또 취미와 그 정신이 아울러 고상하다면 그야말로 내가 찾는 미인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얼굴은 둥글둥글한 타원형의 윤곽에다가 눈은 어디까지든지 크고 처진 듯하며 코나 귀가 복스럽게 예쁘고 살결이 하얀 분”이어야 한다며 얼굴 생김새에 대한 여러 가지 기준도 빠뜨리지 않았다. 소설가 현진건은 “첫째로 키가 조금 큰 듯하고 목선이 긴 여자가 좋다. 제아무리 얼굴이 예쁘장하고 몸맵시가 어울려도 키가 땅에 기는 듯하고 목덜미가 달라붙은 여자는 보기만 해도 화증이 난다”며 노골적으로 밝히기도 했다.‘삼천리’ 1935년 10월호엔 요즘 여성잡지에 실려도 손색이 없을 만한 미용체조법이 소개됐다. ‘하나, 가슴을 앞으로 그냥 내밀며, 양손을 위로 쭉 뻗었다가, 손끝이 발가락에 닿을 때, 양손을 아래로 뻗으며, 전신을 굽힌다. 이 운동을 계속하면 가슴의 모양이 곱게 발달되고 미끈한 각선미를 갖게 된다.’ 눈, 코, 다리, 가슴 부위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성형외과수술 방법이 잡지와 신문 등의 지면에 소개되면서 여성잡지에 실린 성형외과 정보를 보고 자신의 몸을 고치려는 여성들도 생겨났다. 1920년대 말∼1930년대 초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쌍꺼풀수술을 한 주인공은 바로 최초의 미용사이기도 했던 오엽주였다. 일본에서도 여배우 몇 명이 겨우 쌍꺼풀수술을 할 정도였던 시절, 오엽주가 도쿄에서 수술을 하고 돌아오자 서울의 공안과 병원은 그를 특별 초빙해 자세한 이야기를 들은 뒤 쌍꺼풀수술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인 오엽주의 삶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여성들은 그만큼 많은 남성들의 욕망의 대상이 되고, 그들의 욕망 앞에서 조금만 방심하면 ‘남성 편력’으로 이어졌다. 그런 여성들을 당시 사람들은 ‘팔자 사납다’ ‘문란하다’고 생각했다.2008년 베이징 올림픽 여자 역도에서 금메달을 딴 장미란 선수는 그해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아름다운 챔피언의 몸매 5인’ 중 한 명으로 선정됐다. 저자는 “어느 누구도 그녀의 큰 몸집을 게으름이나 무능력의 증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현재의 고착화된 미적 기준들에 종속되지 말고 아름다움의 형태를 좀 더 다원화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 그렇게 ‘n개의 아름다움’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앞으로 절실하다”고 말한다.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 2011-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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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복을 빕니다]시사만화가 백인수 화백

    시사만화가 백인수 화백(사진)이 3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9세.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박정희 군사정권 초기인 1963년 12월부터 1997년 3월까지 34년 동안 동아일보에 시사만화 ‘동아희평(東亞戱評)’을 연재하며 신랄하고 재치 있는 풍자로 잘못된 정치와 사회 현상을 비판했다. 단 한 컷의 그림 속에 날카로움을 담아냈던 그의 만화는 역사의 고빗길마다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안겼다. 1987년 박종철 군 물고문 치사사건이 벌어졌을 때는 현장 상황을 설명하는 생생한 삽화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고인은 풍자 인물화에도 일가를 이뤘다. 2001년에는 ‘21세기 한국을 빛낼 인물들’을 주제로 1960년대 이후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이끌어온 78명의 인물화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1986년 서울언론인클럽 만화상, 1990년 서울시문화상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금순 씨와 아들 낙천 씨(사업), 딸 혜련 혜숙 혜선 씨 등 1남 3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은 5일 오전 8시. 02-2072-2014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 2011-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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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혜초의 개척정신 학생들이 본받길…”

    “혜초 스님이 천축을 방문할 당시의 나이가 20세, 왕오천축국전을 쓰신 것이 24세 때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의 대학교 학부생과 같은 나이에 학문적, 구도적 열정을 가지고 위험을 무릅쓰고 구도행각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 학생들도 혜초 스님의 개척자 정신을 본받아 학문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2일 오후 동국대 김희옥 총장(63)이 취임 이후 첫 공식행사로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세계문명전 ‘실크로드와 둔황-혜초와 함께하는 서역기행’을 관람했다. 20여 명의 학생과 함께 꼼꼼히 전시를 둘러본 김 총장은 “1300년 전 스님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불교가 어떻게 우리 문화의 꽃을 피우는 데 기여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동국대생 백혜원 씨(21)는 “새삼 우리 문화의 위대함을 깨달을 수 있었고, 그동안 너무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닌가 반성하게 됐다. 총장님과 함께 설명을 들으며 총장님에게도 허물없이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동국대는 이번 전시를 계기로 학생들이 혜초 스님의 실크로드를 직접 찾아 그 정신과 여정을 체험하는 탐험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원로 스님이자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월주 스님도 이날 230여 명의 신도와 함께 ‘실크로드와 둔황’ 특별전을 찾았다. 월주 스님은 왕오천축국전 원본 앞에서 “혜초 스님의 유려한 필체와 고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직접 설명을 하기도 했고, 신도들은 스님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천천히 전시를 둘러보았다. 스님은 전시실을 나서며 “답사를 통해 문화 교류에 앞장섰던 혜초 스님의 정신은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전북 전주에서 함께 전시를 보기 위해 올라온 신도 김종하 씨(73)는 “1997년에 중국에 있는 둔황 석굴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이렇게 다시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전시를 보게 되니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18일부터 열리고 있는 이번 특별전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왕오천축국전을 세계 최초로 공개 전시하고 있다. 왕오천축국전 원본은 17일 프랑스로 돌아갈 예정이었으나 관람객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20일까지 연장 전시된다. ‘실크로드와 둔황’ 특별전은 4월 3일까지 계속된다.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 2011-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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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변만화] 포털 연재 ‘지킬박사는 하이드씨’ 이충호 씨

    《“저 지 작가한테 관심 없어요! 그리고 저 쉬운 여자 아니에요!” 출판사 ‘마녀도서관’에 다니는 한그루 부장은 지난달 25일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다. 이름에서 어렴풋이 느껴지듯 한 부장은 만화 주인공이다. 마녀도서관 역시 만화 속 출판사다. 그러나 한그루의 트위터는 실제 계정(@hangeuru)이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 속 캐릭터에게 트위터 계정을 만들어준 것이다. 이런 재미있는 발상을 한 사람은 이충호 작가(44). ‘마이 러브’ ‘까꿍’ ‘무림수사대’ ‘이스크라’ 등으로 폭넓은 고정 팬을 갖고 있는 만화가다. 한창 트위터에 맛을 들인 그는 지난달 22일 새 웹툰 ‘지킬박사는 하이드씨’를 다음에 연재하면서 한그루 트위터를 만들었다. 가상의 만화 속 주인공의 트위터를 독자들이 직접 찾아 팔로하는 데서 이 작가의 인기를 엿볼 수 있다.》 이번 작품은 한그루가 ‘하이두’라는 인격을 동시에 지닌 작가 ‘지길’과 사랑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중인격자와의 삼각관계’라는 쉽지 않은 상황에서 힘겨운 선택을 하는 인물의 모습을 통해 웃음과 질문을 동시에 던진다. 이 작가는 “그루는 세상이 정해 놓은 규칙이 아니라 자기만의 선택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이야기가 본격 진행되지 않은 연재 초반인데도 반응은 뜨겁다. ‘마이 러브’와 ‘까꿍’으로 국내 만화 시장에서 드물게 100만 부 이상의 단행본 판매를 기록했던 이 작가의 명성을 확인시켜준다. 이 작가는 오프라인에 이어 온라인에서도 성공을 거둔 드문 케이스로 늘 거론돼 왔다. 2001년 만화잡지 기가스에 연재했던 ‘블라인드 피쉬’를 끝으로 이 작가의 작품은 잡지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2005년부터 소설가 황석영 씨의 원작을 만화로 옮긴 ‘황석영 이충호 만화 삼국지’를 집필하며 창작 만화와는 멀어진 것 아니냐는 시선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웹툰으로 무대를 옮겨 2007년 ‘무림수사대’, 2009년 ‘이스크라’를 내놓으면서 건재를 알렸다. 캐릭터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특유의 이야기와 그림 솜씨는 웹툰의 형식에서도 힘을 발휘했다. 글과 그림의 디테일은 컷마다 높은 완성도를 자랑했다. 현대를 배경으로 한 무협 만화 ‘무림수사대’는 2010년 대한민국 콘텐츠 어워드 만화부문에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수상했다. 이 작가는 “‘무림수사대’ 연재를 시작하자 학습만화를 그리다 순수 창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에 사람들이 벽을 가지고 대하는 것이 느껴졌다. 누군가는 ‘그림 잘 그리네, 이 신인 작가 누구야’라는 말도 했다. 그래서 무엇이든 제대로 보여주고 싶다는 욕심을 더 가졌다”고 말했다. 출판 만화 작가로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던 그가 ‘무림수사대’를 시작으로 웹툰으로 자리를 옮긴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가 가지는 가장 큰 욕망은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출판 만화 시장이 하향세를 그리기 시작했고 작품을 내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어요. 웹툰은 가장 격렬하게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잖아요. 이제는 소통에 대한 갈증이 도가 지나칠 정도로 해소됐습니다.(웃음)”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애니메이션이나 판타지 영화의 장면이 저절로 떠오른다. 만화계 일부에서 만화가 영화나 드라마의 하위 콘텐츠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불만 섞인 소리가 나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그는 “한발 떨어져서 생각해보면 결국 만화가들이 이야기의 원천 소스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괜찮은 이야기를 풀어놓을 테니 가져가고 싶으면 가져가 보라는 식으로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온·오프라인을 다 섭렵한 작가답게 만화 산업의 어려움에 대해서도 그는 한마디를 잊지 않았다. “예전에는 원고료가 충분하지 않더라도 단행본을 통해 어느 정도 수입을 확보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만화가들이 너무 가난하다”는 것이다. 그의 말은 만화 속 정제된 대사를 보는 것처럼 매번 똑 떨어졌다. 인터뷰에서 빠질 수 없는 질문 하나. ‘이충호에게 만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예전에는 나의 존재 가치를 드러내는 도구였습니다. 하지만 ‘체 게바라 평전’을 읽으며 나도 만화를 통해 세상에 무엇인가를 던져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나이를 먹으며 연륜도 쌓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바뀐 만큼, 이제는 내 만화가 조금 더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작은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 2011-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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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커버그 이야기’ 만화로도 나왔다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가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 이어 만화책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캐나다의 만화책 제작사인 블루워터 프로덕션은 48쪽짜리 전기 만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조자’(사진)를 출간했다. 제롬 마이다 씨가 글을 쓰고 살 필드 씨가 그림을 그렸다. 가격은 6.99달러(약 7900원).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마이다 씨는 “저커버그는 지구상에서 가장 어린 억만장자이자 이미 전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지만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이 많이 없다”며 집필 배경을 소개했다. 마이다 씨는 “옳건 그르건 그는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사람들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또 많은 사람이 그에게 배신감을 느꼈다”며 “그 과정을 최대한 공정하게 담으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 만화책을 기반으로 애니메이션 영화도 제작될 것으로 보인다. 블루워터 프로덕션은 “한 애니메이션 제작업체가 저커버그의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기로 하고 이 만화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블루워터 프로덕션은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 미셸 오바마 미국 대통령 부인, 토크쇼의 여왕 오프라 윈프리 등의 전기 만화를 출간한 바 있다.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 2011-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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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해대상 코이랄라씨 등 4명

    만해사상실천선양회는 제15회 만해대상 수상자로 아누라다 코이랄라 ‘마이티네팔 재단’ 이사장(62·평화부문·사진)을 비롯해 4명을 선정했다고 1일 밝혔다. 실천부문에는 스리랑카의 고고학자인 시리세나 반다 헤티아라치 박사(72), 문학부문에는 중국 소설가 모옌(莫言·56) 씨와 이근배 시인(71)이 공동 수상자로 뽑혔다. 만해대상은 만해 한용운 선생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으로 각 부문 수상자에게는 3000만 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시상식은 8월 만해축전 기간에 강원 인제군 백담사 만해마을에서 열린다.}

    • 2011-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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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사]고려대

    ◇고려대 △국제대학원장 박성훈 △미래전략위원장 박정호 △기획예산처장 김동원 △교무처장 정영환 △학생처장 이원규 △총무처장 김규혁 △대외협력처장 조용성 △정보전산처장 정원주 △연구처장 남기춘 △입학처장 최정환 △국제처장 이재원 △의무교학처장 박건우 △산학협력단장 김상식}

    • 2011-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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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혜초 ‘한국 종교 화합의 만남’을 주선하다

    “혜초 스님의 ‘왕오천축국전’은 단순히 불교 문화재가 아니라 우리 선조들의 자랑스러운 민족유산이자 세계 3대 여행기 중 하나로 우리 모두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지켜야 할 세계적 보물입니다.”(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 “전시 관람을 통해 불교 개신교 천주교 민족종교 등 각 종교의 역사에 대해 서로 이해하고 교류를 확대해 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천도교 임운길 교령) 7대 종단협의체인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의 종교지도자들이 28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세계문명전 ‘실크로드와 둔황-혜초와 함께하는 서역기행’을 관람했다. KCRP 회장인 천주교의 김희중 대주교,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김영주 목사,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한양원 회장, 천도교 임운길 교령, 최근덕 성균관장 등 20여 명이 전시장을 찾았다. 원불교의 김주원 교정원장은 다른 일정이 있어 참석하지 못했다. 이날 관람은 자승 스님의 초청으로 이루어졌다. 조계종 측은 “종교인들이 함께 모여 왕오천축국전과 한국 문화의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돌아보자는 취지에서 이 자리를 마련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불교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됐고 한국 사람들이 지닌 신심(信心)의 깊이가 가슴에 와 닿아 참 좋았다”며 “이렇게 종교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진정한 코이노니아(koinonia·협동 또는 친교)”라고 화답했다. 종교지도자들은 특히 신라 승려 혜초(704∼780년경)가 727년 완성한 왕오천축국전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최 성균관장은 “보기 드문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이것은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길로, 유교도 이 안에 함께 담겨 있다”고 말했다. 전시를 둘러본 뒤 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로비에서 간단한 다과회가 열렸다. 김 대주교는 “문화는 오랜 세월 축적되어 만들어진 하나의 결실로, 어떤 문화에 대해 함부로 피상적인 판단을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많은 분들이 직접 왕오천축국전을 보면서 기록문화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되새길 수 있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 회장은 “전설이나 구전으로만 듣던 이야기들을 직접 눈으로 보니 정말 살아있는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고 감동을 표현했다. 이번 전시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하고 있는 왕오천축국전을 세계 최초로 공개 전시하는 자리. 지난해 12월 한국에 들어온 왕오천축국전은 17일 프랑스로 돌아간다. ‘실크로드와 둔황’ 특별전은 4월 3일까지 계속된다.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 2011-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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