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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다음 달 10일 이후 평양을 방문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남북 정상회담을 갖기로 했다. 하지만 북한은 “제기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일정에 오른 모든 문제들이 난항을 겪을 수 있다”며 대북제재 해제를 압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남북 정상회담 일정을 늦추며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방북과 북-미 정상회담 등을 통해 한반도 정세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은 13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4차 남북 고위급회담을 갖고 “남북 정상회담을 9월 안에 평양에서 갖기로 합의했다”는 공동보도문을 발표했다. 남측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북측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이 수석대표로 참석한 고위급회담은 3시간 반 동안 이뤄졌다. 우리 측은 다음 달 14일 전후를 정상회담 날짜로 제안했으나, 북측은 추석 직전인 21일 개최를 주장하며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리선권은 회담을 마친 뒤 “9월 안에 (정상회담이) 진행된다. 날짜도 다 (협의)돼 있다”고 밝혔다. 회담 후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현실적인 여건상 9월 초는 어려울 것이다. 초청국인 북쪽 사정을 감안해 날짜를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회담에서 다음 달 18일 시작되는 유엔 총회에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하면서 남북미 정상회담으로 종전선언과 비핵화 협상 성과를 이끌어 내자고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북한은 구체적인 비핵화 논의보단 대북제재로 막혀 있는 남북 경제협력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데 방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조 장관은 회담을 마친 뒤 대북제재로 막혀 있는 개성공단 내 남북 공동연락사무소에 대해 “개성에서 연락사무소 구성 운영 합의서 체결 문제를 논의 중”이라며 “개·보수 공사가 끝나는 대로 조만간 개소식을 개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문병기 weappon@donga.com·신나리 기자 / 판문점=공동취재단}

남북이 다음 달 10일 이후 평양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열자는 데 원론적으로 합의하면서 멈춰 있던 비핵화 시계를 움직이기 위한 외교전이 재개되고 있다. 그러나 북측이 남북관계 개선을 막는 장애물을 해결해야 일이 순리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경고해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행이 녹록지는 않음을 시사했다. 북한이 ‘가을 회담’이라는 ‘궤도’는 이탈하지 않으면서도 경제협력 등 반대급부를 강하게 요구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北, 끝내 ‘회담 날짜’에 도장 안 찍어 13일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북측 수석대표로 나선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은 회담 말미에 “북남회담과 개별 접촉에서 제기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예상치 않았던 문제들이 탄생될 수 있고 또 일정에 오른 모든 문제들이 난항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양측은 구체적인 회담 시기를 발표하지 못했다. 청와대가 전날 “회담 일시가 정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힌 것을 비춰볼 때 남북 간 적지 않은 이견이 있었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회담 사정에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남북 정상이 만나서 논의할 의제와 향후 전망에 대해서는 의견이 비슷했지만 회담 전 거쳐야 할 과정에 있어서 생각이 달랐다”고 전했다. 정상회담 목표를 위한 선행 절차를 놓고 입장이 갈렸다는 이야기다. 리선권은 “일정에 오른 모든 문제를 진척시키는 데 있어서 쌍방 당국이 ‘제 할 바’를 옳게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북측이 정상회담과 관련해 고심하고 있는 비핵화 관련 일정으로는 북-미, 북-중 간 대화가 꼽힌다. 회담 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과 북-미 2차 정상회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 일정 등이 조율되기를 바란다는 의미다. 중재 역할을 자임한 우리 정부에는 남북경협 사업 속도를 저해하는 대북제재 완화와 종전선언에 대한 미국의 양보를 설득하라고 요구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날 회담에서 북한의 비핵화는 원론적인 수준에서만 언급됐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북측 나름대로 비핵화와 관련해서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고, 우리는 북-미 간 진행되는 협상이 좀더 빨리 이뤄질 수 있게 해야 되고 남북관계가 북-미관계와 함께 선순환 구도를 구축하는 게 필요하다고 논의했다”고 말했다. ○ 굳이 추석 앞두고 회담하자는 북한 이날 합의한 세 번째 남북 정상회담은 사실상 다음 달 중순 이후가 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9·9절(정권수립일) 70주년과 문 대통령의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동방경제포럼, 유엔총회 참석 등을 피하면 남는 때는 14일부터 21일 사이다. 다만 동방경제포럼은 남북 정상이 모두 참석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우리 측은 문 대통령과 김정은의 외교 일정을 감안해 다음 달 14일 또는 17일을 회담 날짜로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북측은 유엔총회 참석 제안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며 추석 직전인 21일경 개최하기를 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은 외교 일정상 9월 중 회담이 가능한 마지막 날짜를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리선권은 이날 여러 차례 도발적인 발언들로 회담의 순조로운 성사 여부가 남측의 노력에 달렸다는 점을 강조했다. 리선권은 이날 회담 시작과 함께 “다 보는 데서 우리가 일문일답, 견해, 토론하면 기자들이 듣고서 잘못된 추정을 할 수 없을 것”이라며 회담 전체를 언론에 공개하자고 제안했다. 북측의 입장이 잘못 전달됐다며 그 책임을 남측에 돌리면서 비공개가 관례인 외교 회담을 다 공개하자는 갑작스러운 제안을 꺼내놓은 것. 조 장관이 “제가 수줍음이 많아 기자들, 카메라 지켜보는 앞에서 말주변이 리 단장보다 못하다”고 완곡하게 거절하자 “시대, 또 민족을 선도하자면 당국자들 생각이 달라져야 된다”며 훈수를 두기도 했다. 리선권은 또 회담 후 “기자 선생들 궁금하게 하느라 날짜를 말 안 했다. 날짜 (협의가) 다 돼 있다”고 말했지만 조 장관은 “잠정적 날짜는 없다”고 반박했다. 한편 워싱턴포스트(WP)는 남북 고위급회담 소식을 전하며 “남북 정상이 (올해) 세 번째 만남을 갖게 됐다”면서도 “북한 선전매체들은 최근 한국 정부가 대북제재에 동참하고 있다는 점을 비판했다. 둘로 나뉜 한반도의 평화 프로세스가 부드럽게 진행되고 있다는 뜻만은 아니다”라고 보도했다.신나리 journari@donga.com·한기재 기자 / 판문점=공동취재단}

북한산 석탄의 국내 반입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정부의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이행 수단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대두되고 있다. 관세청은 지난해 10월 의심정보가 입수된 후 10개월 만에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관련 업체의 일탈 행위로 책임을 돌리고 있다. 하지만 석탄 원산지 신고서가 위조돼도 세관당국이 이를 검증하지 못했고, 수사가 미진하다며 검찰이 재차 보완수사를 지휘하면서 사건을 질질 끄는 등 정부가 북한 눈치를 보느라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대북제재 공조에 제대로 나서지 않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금수품목 지정 전부터 러시아산으로 둔갑 관세청 조사 결과를 보면 북한산 석탄과 선철의 러시아 환적은 지난해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북한산 석탄에 대한 전면 수출 금지를 규정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2371호가 채택되기 넉 달 전이다. 당국에 적발된 A 씨(45·여) 등 국내 수입업자 3명과 법인 3곳은 금수품목으로 지정되기 전부터 이미 북한산 석탄을 러시아산으로 속여 반입했다. 관세청이 세 차례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선하증권, 상업송장, 휴대전화 채팅 및 녹취파일을 분석한 결과 밀반입에는 총 14척의 배가 연루되어 있다. 석탄이 처음 적재된 북한 송림, 원산, 청진, 대안항에서 러시아로 향한 배가 7척, 러시아에서 배를 바꿔 국내 당진, 포항, 인천, 동해 등으로 들어온 배가 7척이다. 피의자들은 한국에서 통관 절차를 거칠 때 위조된 러시아산 원산지 증명서를 들이댔다. 러시아산 무연성형탄(일명 조개탄)에 대한 수입검사가 강화되자 북한산 성형탄을 들여올 때는 원산지 신고가 필요 없는 세미코크스로 품목을 위장하기도 했다. 이들이 북한산 물품을 러시아를 거쳐 제3국으로 수출하는 중개무역을 주선하면서 수수료조로 석탄 일부를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러시아산 원료탄을 구입해 북한으로 수출한 뒤 현금 대신 북한산 선철이라는 현물을 받아 대금 지급에 대한 단속을 피하기도 했다. 다만 관세청과 외교부는 이 과정에서 신용장을 발급한 은행들은 불법 행위를 모르고 내줬다는 점에서 수사 대상도, 제재 위반 보고 대상도 아니라고 분명히 했다. ○ 수사 의지 없이 한계 드러낸 정부 조사가 지지부진했던 관세청은 최근 중요 피의자가 원산지 증명서 조작 등을 실토하면서 북한산 석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피의자의 진술이 없었다면 비슷한 유엔 안보리 위반 사례가 발생해도 못 찾아내거나 이번처럼 수사 장기화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관세청이 내놓은 수사 장기화 사유는 크게 다섯 가지다. 중요 피의자들의 혐의 부인 등으로 인한 지연을 시작으로 △방대한 압수자료 분석 △성분 분석만으로는 원산지 확인 △검찰의 공소 유지를 위한 정밀 수사 △러시아와의 국제공조 어려움 등이다. 범죄를 원천적으로 막을 방법도, 해당 위험 선박들에 대한 국제사회의 조치 공조도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는 대부분의 다른 수사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될 수 있는 것이라서 또 다른 변명거리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수사를 맡은 대구세관이 첩보 입수 넉 달 뒤인 올해 2월 처음 검찰에 피의자들에 대한 구속 의견을 건의했다가 보완수사 지휘를 받고 다시 5개월이나 보완수사에 매달린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10개월 동안 잠자고 있던 수사가 국내외 언론의 문제 제기로 1개월도 안 돼 결과가 나온 셈인데, 결국 정부가 이 문제를 제대로 조사할 의지가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해 10월부터 수차례 경고에도 불구하고 의심 선박들에 대한 선별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사실상 국내 입출항을 방치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의미다. 석탄 문제 해결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이 거세지자 정부 당국은 “안보리 결의에 따라 전 세계에서 선박을 붙잡고 있는 나라는 우리뿐이다. 정부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언론이 호도하고 있다”는 식으로 주장해왔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산 석탄이 유통되는 과정 전반을 점검하고, 의심정보를 입수하고도 국내 유통을 여러 차례 막지 못한 경위부터 철저히 규명해야 한국이 대북제재망을 허물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박강수 인턴기자 성균관대 철학과 4학년}

가을 남북 정상회담 개최 준비가 공식화되며 남북 협력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북한이 13일 남북 정상회담을 논의할 고위급회담을 제안하면서다. 북한이 종전선언 채택을 놓고 미국과 좀처럼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는 가운데 남북관계를 북-미 비핵화 협상을 돌파구로 삼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북한은 당초 예정된 남북 경의선 도로 현대화 공동조사를 일방적으로 연기하면서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놓을 생각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10일 “남북 정상회담을 가을에 한다는 것은 4월 27일 정상회담의 결과가 기본”이라며 “13일 모여서 한 번 생각들을 내놓고 얘기하면 정리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소는 일단 판문점 선언의 합의 내용이 평양이니 평양을 기본으로 하되, 그렇다고 평양에만 국한된다, 그렇게 확정된 사안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북한이 제안해 판문점에서 열릴 예정인 13일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남북 정상회담 일정이 확정되길 기대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북한이 고위급회담을 제안하면서 정상회담 논의를 의제로 삼자는 내용을 공문에 포함했다”면서 “시일이 촉박한 만큼 이번 고위급회담에서 정상회담 일정이 확정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종전선언 채택을 위한 구상이 핵심 의제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종전선언과 한반도 평화협정은 판문점 선언의 중요한 대목 중 하나다”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북한의 남북 정상회담 논의를 위한 고위급회담 제안이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앞둔 6월 초와 유사한 상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당시 비핵화 의제를 놓고 북-미 협상이 교착되자 북한은 전격적으로 남북 고위급회담을 제안한 바 있다. 이후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미국을 방문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에 이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면담하며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북-미 관계 정상화의 맞교환을 뼈대로 한 공동성명을 이끌어냈다. 최근 비핵화 협상이 종전선언 채택 여부를 놓고 다시 평행선을 긋고 있는 가운데 북한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통해 2차 북-미 정상회담과 이를 위한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제안한 상황이다. 다만 북한은 당초 이날로 예정됐던 경의선과 동해선 북측 구간 도로 현대화를 위한 공동조사를 돌연 연기했다. 특유의 ‘밀당(밀고 당기기)’ 전략을 통해 협상판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의지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특히 이란을 방문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알리 라리자니 이란 의회 의장을 만나 “미국과 협상에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비핵화에 동의했지만 미국이 우리에 대한 적대를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핵지식을 보존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병기 weappon@donga.com·신나리 기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금수품목인 북한산 석탄이 원산지 증명서를 위조하는 방식 등으로 국내로 반입됐다고 관세청이 10일 공식 확인했다. 특히 북한산 석탄 외에 철광석을 녹여 만든 선철도 러시아산으로 위장돼 국내에 반입돼 유통됐다. 북한산 석탄과 선철은 모두 유엔 대북제재에 따라 수입이 금지된 품목들이다. 하지만 남북 관계에 악영향을 줄 것을 우려한 정부가 대북제재 단속망을 허술하게 가동해 북한산 석탄이 반입됐는데도 이에 대한 보완책 발표 없이 일부 수입업체들의 일탈로 규정한 데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덮어 두려다 파장이 확산되자 석탄 수입업체를 대상으로 ‘꼬리 자르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관세청은 이날 정부대전청사에서 브리핑을 하고 “북한산 석탄과 선철 등을 반입한 범죄 사례 7건을 적발해 수입업자 3명과 관련 수입업체 법인 3곳에 대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4월부터 10월까지 3개 법인이 국내에 반입한 북한산 석탄과 선철은 3만5038t, 66억 원 상당이다. 관세청이 적발한 7건 가운데 지난해 8월 유엔 대북제재 결의에 따라 석탄과 선철이 금수품으로 지정된 이후 이뤄진 밀반입은 4건이다. 관세청은 수입업자들이 북한산 석탄을 러시아에서 환적해 한국으로 수입하면서 러시아산으로 원산지 증명서를 위조하거나 증명서 제출이 필요 없는 세미코크스로 허위 신고했다고 밝혔다. 유엔 안보리가 북한산 석탄을 금수품으로 규제하면서 가격이 하락하자 일부 수입업자들이 싸게 사들여 팔기 위해 대북 제재망을 뚫고 금수품을 반입했다는 것. 이런 식으로 북한산 석탄을 납품받은 한국전력의 자회사인 한국남동발전은 북한산이라는 점을 알지 못한 것으로 보고 기소 대상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부터 북한산 석탄 해상 밀무역에 대한 경고가 이어졌는데도 원산지 확인이나 의심 선박에 대한 검색 강화 조치를 제대로 하지 않은 정부도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부는 유엔 안보리 제재위에 해당 위반 선박들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고하는 한편 국내 입항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북한 금수품 반입을 막기 위한 대책에 대해선 “모든 범죄를 수사기관이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국이 대북제재를 어긴 한국 업체와 개인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을 가동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신나리 journari@donga.com / 대전=김준일 기자}

다음 달 9일 건국절(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일) 70주년을 맞는 북한에 중국인 관광객들이 대거 몰릴 것으로 보인다. 올해만 세 차례 열린 북-중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 관계에 훈풍이 불고 중국인의 북한 관광이 활성화되면서 대북제재 및 압박 기조가 더 느슨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의 북한 전문 매체 NK뉴스는 7일 북한 고려항공과 여행 협력사 등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다음 달 베이징(北京)발 평양행 고려항공은 이미 모두 예약이 완료된 상태”라고 전했다. 여행사 ‘고려투어’ 관계자는 “4월 국제 마라톤이 열렸던 때와 비교해도 매우 독특한 상황이다. 비행기와 열차가 완전히 매진됐다”고 말했다. 5년 주기로 열리는 건국절 매스게임 등 대형 이벤트들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잡는 것으로 보인다. 또 NK뉴스는 “이번 주 북측 비무장지대를 찾는 중국인 관광객이 하루에 1000명 정도”라고 보도했다. 한 소식통은 “많을 때는 관광객이 2000명까지도 몰린다”고 말했다. 이런 까닭에 평양과 중국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을 오가는 항공 노선도 임시 증편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고려항공은 두 도시를 오가는 항공편을 기존 주 2회에서 주 3회로 최근 늘린 것으로 전해졌다. 북-중 접경지대에서의 ‘단기 관광’도 활발하다. 중국 국가통상구 사무처는 지린(吉林)성 국경지역의 경제무역 및 관광산업 발전을 위해 6월 1일부터 올해 말까지 솽무펑(雙目峰) 통상구를 임시 개방하는 데 동의하고, 북-중 양측의 경제무역·관광 및 문화체육 교류 인원이 통행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늘어나 북한의 관광 수입이 증가하면 대북제재로 인한 고통도 경감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신나리 journari@donga.com·한기재 기자}
경북 포항에 정박했다가 7일 떠난 진룽호를 비롯해 유엔 안보리 금수품목인 북한산 석탄을 운반한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들이 연일 제지 없이 국내를 거쳐 정상 운항하고 있다. 석탄 환적지에서 문서로 북한산 석탄의 국적이 위조되는 정황들이 포착돼도 정부는 계속 “조사 중이다. 서류상으로는 문제없다”는 해명을 반복하고 있다. ‘신분 세탁’을 거쳤을 수 있는 북한산 석탄이 통관 서류상 문제가 없다면 국내로 꾸준히 반입되고, 추후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위반으로 한국이 제재를 받아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다. ○ 정보당국, 입항 알려지자 뒤늦게 관심선박 지정 4일 입항한 진룽호는 7일 오후 포항에서 러시아 나홋카항으로 되돌아갔다. 미 연방정부가 운영하는 미국의소리(VOA)가 7일 위성사진 자료를 이용해 보도하면서 입항 사실이 알려졌다. 이 방송은 “1일 러시아의 나홋카항에 머물렀으며 검은색 물질 바로 옆에 선박이 정박해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며 러시아에서 석탄을 싣고 포항에 입항했다고 전했다. 그러자 외교부는 이날 정례브리핑을 통해 “진룽호는 이번에 (서류상) 러시아산 석탄을 적재하고 들어왔으며, 관계기관의 선박 검색 결과 안보리 결의 위반 혐의는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 배가 지난 10개월간 북한산 석탄을 운반했는지 여부를 아직도 조사 중인데, 유독 이날은 포항에 입항한 지 사흘 만에 북한산이 아니라 러시아산 석탄을 운반했다고 결정한 것. 이날 중국인으로 보이는 진룽호 선원에게 기자가 영어로 “북한산 석탄을 하역하고 있느냐”고 묻자 “절대 아니다. 우린 러시아에서 왔고 석탄도 러시아산”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포항신항센터가 이날 작성한 ‘요주의 선박 및 북 연계선박 입출입 현황’에 따르면 진룽호는 ‘308 관심선박’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신항 관계자는 “국가기관으로부터 ‘관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취지의 연락을 받고 관심선박으로 지정했다. ‘308’은 국내 정보당국이 부여하는 코드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포항신항 측은 또 진룽호에 타고 있는 중국인 11명 등 선원 13명에 대해 당초 국내 상륙허가서를 발급했다가 뒤늦게 회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방송 “러시아에서 서류 위조해 석탄 수출” 외교부와 관세청이 이번 진룽호의 석탄을 러시아산이라고 밝히는 근거는 석탄 그 자체가 아니라 원산지를 표기한 문서다. 그런데 세관당국은 문서 자체가 위조됐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별도 조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10월과 이번 입항 시 수입신고서의 내용은 엇비슷한데 지난해엔 북한산 석탄을 싣고 왔다는 정보가 사전에 수집됐다는 점에서 (이번과)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산이라는 정보가 없어서 선별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걸로 해석된다. 이와 관련해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북한 평안북도의 무역일꾼 등을 인용해 북한이 러시아 무역회사에서 서류를 위조해 석탄 원산지를 바꿔 각국에 수출해왔다고 전했다. RFA에 따르면 러시아 회사가 북한산 석탄이 도착하면 선박과 도착 시간 및 체류 시간, 석탄 하역량, 석탄 품질을 분석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서류를 작성한 뒤 러시아 석탄으로 위장하는 서류 작업까지 준비한다는 것. 한 소식통은 RFA 인터뷰에서 “2016년부터 경제제재가 본격화돼 석탄 수출길이 막히자 북한의 무역회사들이 러시아 나홋카항과 블라디보스토크항에 석탄을 보낸 뒤 러시아산으로 서류를 위장해 다른 나라로 수출해왔다”며 “수출용 석탄적재장을 중국과 가까운 남포항과 송림항에서 2016년부터 러시아와 가까운 청진항과 원산항으로 옮겼다”고 설명했다. 청진항과 원산항은 6월 27일 유엔안보리 산하 대북제재위 전문가 패널들이 제출한 보고서에서 북한 선박들이 러시아 항구를 향해 북한산 석탄을 처음 실었던 출항지로 지목된 곳이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 / 포항=김자현 기자한성희 인턴기자 한양대 경영학부 4학년}

6일 오전 채택된 싱가포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의장성명에서 결국 북한에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촉구하는 표현이 빠졌다. 당초 초안에는 들어있던 CVID가 사라지고 두루뭉술한 ‘완전한 비핵화(CD)’만 남게 된 것. 판문점 선언,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명시된 표현이라지만 미국이 원하는 수준의 비핵화 프로세스가 여전히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ARF 막판까지 “우리는 CD라는 표현을 바라지만 의장성명에 CVID가 들어갈 것”이라며 정반대의 예상을 내놨다. 비핵화 국면을 다루는 한국 외교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비판이 많다.○ 북한의 물밑외교전으로 CVID 삭제 올해 ARF 의장국인 싱가포르가 4일 열린 외교장관회의 내용을 정리해 발표한 의장성명은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 공약과 추가 핵·미사일 실험을 자제하겠다는 약속을 준수하라”고 돼 있다. 지난해 성명에서 “(북한의) CVID 달성에 대해 일부 장관들의 지지를 확인했다”고 한 데 비해 수위가 낮아졌다. CVID 대신에 ‘완전한 비핵화’(CD)가 들어간 것은 ARF 기간 북한의 치열한 물밑 외교와 한국 정부의 사실상 묵인, 대북제재 유지를 강조하다가 CVID를 넣는 데 전력을 쏟지 못한 미국의 방조 등 3박자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북한은 그간 국제사회에서 통용돼 온 CVID를 극렬히 반대해왔다. 검증과 불가역성을 수용할 경우 비핵화 주도권을 미국에 넘겨줄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북-미 정상의 싱가포르 공동성명에서 CVID가 빠졌을 때 미국은 ‘북측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설정된 표현일 뿐 완전한 비핵화가 사실은 CVID를 포함하는 개념’이라고 자주 해명했지만 이는 김정은의 버티기를 꺾지 못한 데 따른 변명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여전하다. 이 때문에 이번 성명은 북한의 의도가 십분 반영됐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ARF 기간 동안 펼쳤던 활발한 양자회담이 먹힌 셈이다. 비비언 발라크리슈난 싱가포르 외교장관은 6일 트위터에 “6월 북-미 정상회담 당시 마지막으로 만난 리 외무상과 어제(5일) 만찬을 하게 돼 기쁘다. 우리는 서로 북한의 발전에 대한 매우 흥미롭고 솔직한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의장성명 채택 전 회의 내용을 종합하는 의장국을 만나 막판 뒤집기 또는 입장 굳히기를 시도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한국 정부 “애초부터 CVID 넣을 생각 없어” 매년 ARF 의장성명에 북한의 비핵화를 촉구하는 내용을 담는 것은 한국 외교부의 핵심 과제였다. 해마다 이를 넣느냐 마느냐를 놓고 북핵기획단장 등 핵심 인사가 끝까지 회의장을 지키며 회원국들을 단속하고 최종안을 확인한 뒤 귀국했다. 외교부는 ARF 의장성명 채택 직후 “ARF에는 완전한 비핵화가 사용됐지만, 동아시아정상회의(EAS)나 아세안+3 외교장관회의 의장성명에는 CVID가 사용됐다”고 해명했다. 또 “ARF 의장국 입장에서는 북한이 참여하는 역내 유일한 다자협의체라는 점 등을 감안해 균형된 표현을 사용하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이해된다”고도 평가했다. ARF 기간 내내 외교 당국자들이 보여준 안이한 상황 인식도 당분간 논란거리가 될 듯하다. 강경화 장관은 5일 결산 브리핑에서 “우리 입장에서는 남북,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의 표현을 따서 완전한 비핵화(CD)가 문안에 들어가는 것을 바라지만 의장성명은 회의장에서 나온 발언을 따서 만들기 때문에 CVID가 문안에 들어가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도 “남북, 북-미 회담에서 사용됐던 가장 좋은 레퍼런스(완전한 비핵화)가 들어갔으면 좋겠으나 27개국 분위기를 반영해 CVID를 넣어도 완전한 비핵화가 그 개념을 포괄하기 때문에 굳이 막을 이유는 없다고 이해해도 상관없다”고 말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싱가포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의 회담을 고대했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5일 빈손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강 장관은 6월 취임 1주년 간담회 때부터 11년 만의 남북 외교장관 회담 성사에 강한 의지를 밝혔지만 리 외무상의 거절로 짧은 회동에 만족해야 했다. 북한이 참여하는 유일한 다자협의체인 ARF에서 비핵화 중재 역할을 자임한 한국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면서 외교적 한계를 노출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1개국 만나면서 ‘코리아 패싱’한 北 강 장관은 5일 싱가포르에서 가진 결산 브리핑에서 남북 회담 무산에 대한 아쉬움을 표했다. 다양한 외교채널을 통해 타진했지만 3일 ARF 환영만찬장에서 조우한 리 외무상이 우리 측의 대화 의지에 ‘아직 응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밝혔다는 점도 소개했다. 강 장관은 “충분히 그 뜻을 존중해 드려야 할 것 같다”면서 “진솔한 분위기에서 한반도 정세 진전 동향과 향후 협력 방향에 대해 짧지만 허심탄회하게 생각을 교환했다. 언젠가는 남북 외교당국이 서로 협의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리 외무상의 태도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 이행에 임하는 북한의 폐쇄적인 소통 기조를 엿볼 수 있다. 북-미 교착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굳이 한국을 따로 만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북한은 한국을 제외하고 11개 나라와 전례 없이 활발한 양자 외교장관 회담을 펼쳤다. 3일 싱가포르에 도착한 리 외무상 및 북측 대표단이 ARF를 계기로 이틀 동안 회담을 가진 곳은 중국, 인도네시아, 태국, 인도,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필리핀, 유럽연합(EU), 뉴질랜드 등이다. 이들 중 대다수는 북한이 ARF에 앞서 먼저 회담을 갖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북한이 ARF 폐막 후 양자 공식 방문으로 싱가포르에 이어 6일 이란까지 찾을 것으로 알려지면서 제재 완화 또는 체제 보장에 대한 지지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광폭 행보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북-중과 종전선언 주파수 맞추려고 한 한국 북한의 ‘코리아 패싱’에도 정부는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부각하며 북한이 요구하는 동시적 비핵화 조치에 결과적으로 힘을 실었다. 강 장관은 “북한만이 일방적으로 비핵화를 하는 게 아니라 북한이 원하는 평화체제, 안전보장 차원에서도 논의가 함께 이뤄질 것”이라며 비핵화와 함께 종전선언이 필요하다고 워싱턴을 압박하고 있는 북한, 중국과 주파수를 맞췄다. 정부 당국자들은 “종전선언을 동시 논의한다고 미국이 주도하는 대북제재 이행을 소홀히 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고 했지만, 정작 ARF에서 미국과도 비핵화 이슈를 놓고 별다른 진전 없이 원칙론만 재확인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청와대는 “북-미 간 쟁점이 분명하게 드러났다”며 ARF에서 벌어진 북-미의 치열한 신경전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내비쳤다. 종전선언과 대북제재를 놓고 북-미 간 전선(戰線)이 명확해졌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친서 교환으로 대화 의지는 재확인된 만큼 양측 간 외교적 해결 노력이 본격화될 계기가 마련됐다는 논리다. 종전선언을 요구하는 북한과, 종전선언에 앞서 비핵화 신고 단계 이행이 필요하다는 미국이 대치를 거듭하고 있는 만큼 2차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정치적 해법’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1차 정상회담 이후 비핵화 프로세스에 별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트럼프와 김정은이 다시 만나 북한의 핵무기 및 핵시설 신고 등 가시적 성과를 도출하지 못한다면 종전선언 채택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정상회담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많다. 문재인 대통령의 가을 평양 방문 역시 북-미 대화에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관계자는 “남북 정상회담은 이번 ARF 이후 북-미가 어떤 구상을 갖느냐에 따라 시기나 의제가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싱가포르=신나리 journari@donga.com / 문병기 기자}
“아무래도 조선말이 더 편하시죠?” 4일 오후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회의에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북한대표단에 소속된 수행원 강명철이 7장짜리 한글(한국어) 연설문을 배포하면서 한국 기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참가국 27번째 중 15번째로 발언한 리 외무상 연설 후 미디어센터를 찾은 그는 일본 등 다른 외신 기자들이 접근하자 “한국 기자들을 불러달라”고 부탁한 뒤 이같이 말했다. 강 수행원은 “아무나 주면 안 되는데”라며 취재기자들의 비표를 일일이 보며 한국 국적임을 확인한 뒤 “우리 (외무상) 동지가 발표한 성명이니 입장을 잘 좀 보도해 주시라”고 말했다. 그동안 어떤 질문에도 입을 열지 않던 북한 대표단 관계자들이 자신들이 필요할 때 한국 기자를 불러 모은 것도 눈길을 끌었다. 한글본이 동나자 두툼한 종이 뭉치 속에 준비해온 영문본을 외신기자들에게 뿌려 연설문을 둘러싸고 쟁탈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북한이 유일하게 참여하는 역내 다자안보협의체인 ARF는 이렇게 해마다 북한 대표단의 동선과 그들을 쫓는 국내외 취재진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이날 오후도 올해 북측 대표단 대변인 격인 정성일 외무성 연구원이 앞서 강 수행원이 나눠준 동일한 연설문을 들고 호텔 로비에서 기자들을 맞았다. 그는 북한의 양자회담 일정을 밝힌 뒤 남북 회담, 북-미 회담 무산 배경을 묻는 질문에 “제가 오늘 드릴 수 있는 말씀은 이게 다입니다”라며 돌아섰다. 싱가포르=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4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포토세션이 진행되고 있던 싱가포르 엑스포 컨벤션센터. 비핵화 로드맵을 놓고 치열한 기 싸움을 벌이던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짧게 조우했다. 외교장관회의를 앞두고 열린 기념촬영장에서 폼페이오 장관이 먼저 리 외무상을 찾아가 악수를 건넨 것.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도 폼페이오 장관은 리 외무상의 등을 두들기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리 외무상도 웃으며 손을 잡았다. 헤더 나워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폼페이오 장관이 ‘우리는 곧 다시 만나야 한다’고 말하자 리 외무상이 ‘동의한다. 해야 할 많은 건설적인 대화가 있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기념촬영 이후엔 성 김 주필리핀 미대사가 리 외무상에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서한을 전달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군 유해송환을 계기로 1일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의 답신이다. 여성 외교장관 기념촬영으로 청중의 눈과 귀가 무대 위에 쏠려 있는 사이 김 대사는 리 외무상에게 다가가 밀봉되지 않은 회색 서류봉투를 건네며 짧은 대화를 나눴다. 자리로 돌아간 리 외무상이 봉투 속 내용물을 확인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ARF 회의 일정을 마친 직후 트위터에 “우리는 간단하고 정중한 대화를 나눴다”고 밝히며 트럼프 대통령의 답서를 전달했다고 직접 밝혔다. 이번 회의에서 기대를 모았던 북-미 외교장관의 양자회담은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양측 정상이 친서를 주고받으면서 어떤 식으로든 대화의 끈은 이어갔다. 교착상태인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의 동력을 정상 간 소통으로나마 유지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례적인 서한 전달 방식도 눈길을 끌었다. 친서는 통상 대통령 특사가 안전장치가 된 서류 가방에 담아 옮기거나 밀봉된 상태로 전달하는 것이 관례. 하지만 밀봉돼 있지도 않은 서류 봉투를 공개 행사장에서 전달한 것을 놓고 트럼프의 친서를 급히 전달해야 했던 미국의 상황을 보여준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일각에선 국제사회의 시선이 쏠린 다자 외교무대에서 두 장관이 최소한의 친밀한 분위기를 공개적으로 연출한 만큼 교착상태인 북-미 비핵화 후속 협상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물밑접촉이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싱가포르=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북한산 석탄을 국내에 들여온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 3척이 북한산 석탄 수입을 전면 금지한 지난해 8월 이후 최소 52차례 국내 주요 항구들을 드나든 것으로 나타났다. 자유한국당의 북한석탄대책 태스크포스(TF·단장 유기준 의원)는 5일 “샤이닝리치호와 진룽호, 안취안저우66호 등 국내에 북한산 추정 석탄을 하역한 선박들이 유엔 대북제재 결의로 북한산 석탄 수출을 금지한 지난해 8월 이후 52회에 걸쳐 국내에 입항했다”며 출입항 기록을 공개했다. 특히 샤이닝리치호는 북한산 석탄 반입 논란이 불거진 뒤인 3일 평택항에 입항했다가 4일 출항했지만 정부는 억류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유엔 안보리는 지난해 12월 대북제재 결의안을 통해 석탄의 불법 수출에 관여한 선박이 자국 항구에 입항하면 나포, 검색, 억류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TF는 또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가 북한산 석탄을 베트남과 러시아에 하역해 대북제재를 위반한 것으로 지목한 카이샹호와 스카이레이디호 등도 지난해 8월 이후 각각 8회, 11회 국내에 입항했다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5일 “미 행정부가 대북 감시활동을 다시 강화하기 시작했다”며 “해상에서 석탄이나 반입·반출 금지 물자의 환적을 적발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4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북측의 선의의 조치들에 대한 화답은커녕 미국에서는 오히려 제재를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최고야 best@donga.com / 싱가포르=신나리 기자}
북-미 외교장관의 싱가포르 회동으로 기대를 모았던 3일,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회담은커녕 조우조차 없었다. 대북제재에 쐐기를 박겠다고 ARF를 찾은 미측에 맞서듯 리 외무상이 양자회담 계기마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완화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폼페이오 장관은 ARF 회원국 외교장관들이 모두 모이는 환영만찬에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회담은커녕 인사도 안 한 北-美 비핵화가 먼저냐 체제 보장이 먼저냐를 놓고 줄다리기를 벌이는 북-미 간의 만남 여부는 ARF 개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이날 오전 차례로 도착한 리 외무상과 폼페이오 장관은 양자 대면 없이 치열한 외교전을 펼쳤다. 대북제재를 강조해 북한의 비핵화 조치를 촉구하려는 미국과 체제 보장을 요구하는 북한이 지지 세력을 모으는 기 싸움을 벌인 것. 지난해까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로 사실상 ‘왕따 신세’였던 리 외무상은 이날 하루 베트남, 중국, 인도네시아 등 7개국과 양자회담을 가지며 활발한 행보를 보였다. 비핵화 협상이 소강 국면에 접어든 상태에서 미국은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마지막 지렛대로 대북제재를 꺼내 들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그들(북한)은 유엔 안보리 결의 하나 또는 둘 다 위반하고 있다. 비핵화라는 궁극적인 결과를 달성하기까지 아직 갈 길이 남아 있다”고 경고했다. 국무부 고위 관계자도 “이번 ARF에서 제재 이행 의무를 상기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리 외무상은 이날 유엔의 대북제재 완화를 요구했다고 일본 교도통신이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그는 한 아세안 회원국과의 회담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 중단을 언급하면서 “북한 핵문제에 대해 많은 진전이 이뤄졌는데도 왜 아직 유엔 제재가 해제되지 않느냐”고 반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이 미군 유해 송환 직후 “북한이 한 약속들이 지켜질 것이라는 추가적 증거에 대해 매우 희망적”이라고 말한 지 이틀도 채 되지 않아 북-미 간 논의가 도돌이표로 변했다.○ 종전선언으로 북-미 달래기 나선 韓中 냉랭한 외교라인과 달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미군 유해 송환을 기점으로 친서를 주고받으며 유화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백악관은 “계획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2차 정상회담 개최설까지 제기된 상황이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트위터에 “폼페이오 장관에게는 방북 일정이 끝나자마자 비판을 보냈던 북한이 트럼프에게 찬사를 보내는 것은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요구하는 관료들 사이에서 트럼프를 떼어 놓으려는(decouple) 시도”라고 경계했다. 종전선언도 한반도 주변국으로부터 끊임없이 화두에 올랐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이날 남북미 외교장관과 연쇄 회동을 하며 ‘4자 종전선언’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였다. 한중 외교장관 회담에서 왕 부장은 “종전선언은 비핵화를 견인하는 데 있어 긍정적이고 유용한 역할을 할 것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한 북측 관계자는 북-중 회담 내용에 대해 “조선반도의 평화 보장과 관련돼서 두 나라 사이에 전략전술적 협동 토의를 했다”고 밝혀 종전선언이 심도 있게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 환영 만찬장에서 강경화 외교장관이 리 외무상에게 별도 남북 외교장관 회담 필요성을 밝혔지만 북측은 응할 입장이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우리 외교당국자가 밝혔다. 싱가포르=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종전선언 문제에 관련 당사자들이 모여 앉아 진중한 토론을 하고 전쟁을 끝내려는 제스처는 긍정적”이라며 종전선언에 중국이 참여할 뜻을 드러냈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하기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한 왕 부장은 2일 기자회견에서 ‘연내 추진하려는 종전선언에 중국이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기자단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왕 부장은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데는 법적인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모든 관련 당사자들이 모여 앉아 진중한 토론을 하고 관련 당사자들이 문서에 서명함으로써 확인돼야 한다”고 했다. 남북미중 4자 종전선언을 추진하려는 북한에 힘을 실어주면서 연내 종전선언 추진을 꺼리는 대미 압박용 메시지로 풀이된다. 정부도 비핵화와 동시에 반대급부도 논의돼야 한다는 방향으로 기울고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1일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비핵화와 함께 체제보장에 대한 논의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강 장관은 인터뷰에서 “북한이 대량살상무기(WMD) 프로그램이나 핵을 가지려 했던 것은 체제보장, 즉 억지력을 보장받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강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리용호 북한 외무상과의 남북 외교장관회담을 염두에 둔 유화적인 제스처로 보인다. 전날까지 북측으로부터 회신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날 긍정적인 메시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회담 가능성이 닫히지는 않았다. 강 장관은 2일 오후 러시아, 일본과 잇달아 외교장관회담을 가지면서 대북제재 이행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예정돼 있던 중국과의 회담은 중국 측 사정으로 하루 순연됐다. 특히 북한산 석탄 반입 문제는 일본과 러시아를 막론하고 양자회담에서 중요하게 다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은 “북한산 석탄의 국내 반입과 관련해 미국이 이 문제에 관심이 많다”며 환적 문제에 대한 언급은 피하고 ‘유체이탈’식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일본 외상과의 회담을 앞둔 이날 오전 강제징용 재판거래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외교부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하면서 회담 테이블에는 재판 관련 논의가 올랐다. 고노 장관은 “강제징용 문제가 양국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길 바란다”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싱가포르=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사진)의 지난달 초 방북 이후 20여 일 만에 북-미 고위급이 재회하게 될 싱가포르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분위기는 사뭇 냉랭하다. 6월 같은 장소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때와는 다르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 움직임이 공개되면서 미국이 대북 압박 기류를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 국무부의 제재 강화 연타 북한이 매년 유일하게 참여하는 역내 다자안보협의체인 ARF에서 북-미 비핵화 협상 재개는 바람 앞의 등불 신세다. 미 국무부 고위 관계자가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북-미 외교장관회담 가능성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낮췄기 때문. 이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폼페이오 장관과 리용호 북한 외무상의 양자회담이 가능할 수는 있지만 확정된 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도 “북-미 접촉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지만 계획된 (회담) 일정은 없다”고 밝혔다. 6월 정상회담 전후만 하더라도 “만나길 고대한다”는 답변이 나왔을 텐데 그만큼 김정은을 바라보는 워싱턴의 심기가 편치 않다는 것이다. 올해 ARF는 한반도 대화라는 국면 전환 속 북한에 대한 주변국들의 태도 변화나 북-미 외교장관 회담 가능성 등이 주요 관전 포인트로 꼽히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이 북한과의 회담에 공개적으로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최근 북한의 ICBM 제조 및 비밀 핵시설 가동 정황과도 연결된다. 여기에 미국이 대북제재 강화와 함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다시 들고나오면서 외교장관 회담은커녕 ARF가 이전의 ‘북한 성토장’으로 바뀔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1일 ARF 의장성명서 초안을 공개하며 “CVID를 명기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촉구하고 강조하는 방향으로 성명이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성명 초안엔 △북-미 정상회담 성과 환영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약속에 유의할 것 △납치 문제 조기 해결 등의 내용과 함께 CVID에 대한 노력을 지지한다는 문구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 북-미 사이서 눈치 보는 한국, 국무부 “9월 종전선언 어렵다” 전달받아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북-미 사이에서 정부 대표단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부는 회원국들이 ARF 폐막을 전후로 내는 의장성명에 대해 “이번에는 남북, 북-미 대화에 대한 지지나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지가 담겨 큰 갈등 상황은 없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었다. 그러나 CVID가 의장성명에 명시될 것이 점쳐지면서 북한이 반발할 가능성이 커졌다. 또 추진 중인 남북, 남북미 외교장관회담 성사 여부는 물론이고 앞으로의 대화 국면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간 정부는 의장성명 초안 작성 과정에서 한반도 대화 분위기와 긴장 완화를 부각시키려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북한의 도발에 대한 비난과 함께 강력한 제재 및 압박 필요성을 넣으려고 했던 노력과는 정반대다. 당시에는 우리 정부가 마련한 한반도 이슈 관련 문구가 그대로 성명에 반영됐지만 올해는 달라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부 관계자는 “싱가포르를 비롯한 몇몇 회원국이 초안을 마련할 때 (우리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대북제재 강화와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적시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고 귀띔했다. 미국은 가시적인 비핵화 조치가 없으면 여전히 북측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최근 “북한이 비핵화와 관련한 실질적인 조치를 하지 않고 있고, 미국이 요구해 온 핵·미사일 리스트를 제출할 수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는 상황에서 종전선언은 검토할 수 없다는 게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이라며 “우리 정부에도 이 같은 방침을 전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비핵화 조치가 진전되지 않는 한 미국에 종전선언을 촉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싱가포르=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양제츠(楊潔篪·사진) 중국 외교담당 정치국 위원이 이달 11∼12일 극비리에 한국을 찾아 종전선언을 포함한 비핵화 이슈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30일 확인됐다. 당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세 번째 방북 직후라 중국이 한국과의 긴밀한 소통 필요성을 느껴 급히 방한한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 고위급 외교소식통은 이날 “쿵쉬안유(孔鉉佑) 중국 외교부 부부장이 25일부터 27일까지 방북하기 전 양 위원을 수행해 한국을 비공개로 다녀갔다”고 말했다. 양 위원은 앞서 3월 방한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만났으며, 이번 일정을 비공개로 해달라고 우리 정부에 요청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이번 회동에서는 한국에 대한 중국의 사드 보복조치 해제 차원에서 5가지 조치가 심도 있게 논의됐다고 한다. 이 조치들은 △중국인 한국 단체관광 정상화 △롯데마트 원활한 매각 절차 진행 △선양롯데월드 공사 재개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 문제 △한중 환경 문제 등이다. 양 위원의 방한 상황을 잘 아는 소식통은 “5개 조치는 상당 부분 진척됐다. 그런데 양 위원이 방한해 이런 조치를 논의했다는 게 알려지면 중국 내 여론이 나빠질 수도 있어 비공개 면담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외교가에서는 양 위원 정도의 거물이 직접 방한해 사드 보복조치 해제 5개항에 대해 설명한 만큼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북한 비핵화 이슈와 관련해 모종의 요구가 있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특히 한반도 비핵화 협상 및 종전선언에서의 중국 참여를 보다 확실히 하고자 하는 강도 높은 요구가 있었다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또 다른 소식통은 “한국이 듣기 싫은 소리, 불편한 이야기를 강한 톤으로 하고 돌아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남북미 3자 종전선언 등에 무게를 실었던 정부가 양 위원으로부터 4자회담과 같은 구속력 있는 협상 틀을 본격화하도록 요구받았을 수 있다는 것. 이와 관련해 베이징 소식통은 “종전선언과 관련된 모든 사항을 열어놓고 협의를 진행 중이다. 종전선언은 법적 제도적 종결이 아닌 평화체제 구축 의지를 확인하는 차원의 정치적 선언으로 추진되는 것”이라고 말했다.신나리 journari@donga.com·이정은 기자}
북한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공동성명을 이행하는 첫 조치로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 유해 55구를 27일 송환했다.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인 이날 북측이 싱가포르 성명 이행의 첫발을 떼면서 지지부진했던 북-미 협상과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에 다시 속도가 붙을지 주목된다. 이날 오전 5시 55분 미군 C-17 글로브마스터 수송기가 유엔군사령부 및 미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 및 실종자확인국(DPAA) 관계자들을 태우고 경기 평택 오산미군기지를 이륙해 북한 원산비행장으로 향했다. 오전 11시 수송기는 미군 유해 55구가 안장된 나무상자들을 싣고 미군 전투기 2대의 엄호를 받으며 오산기지로 돌아왔다. 백악관은 송환 직후 성명을 내고 “북한의 행동과 긍정적 변화에 고무됐다”고 밝혔다. 또 “오늘 조치는 북한에 남은 유해 송환과 아직 집에 돌아오지 못한 약 5300명의 미국인을 찾기 위한 중대한 첫걸음”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미 측은 유해 확인 절차를 밟은 뒤 다음 달 1일 오후 5시 오산기지에서 빈센트 브룩스 주한미군사령관이 주관하는 공식 송환행사를 개최할 계획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27일(현지 시간) 트위터에 “이번 조치는 많은 (미군) 가족에게 위대한 순간이 될 것”이라면서 “김정은에게 고맙다(Thank you to Kim Jong Un)”라고 직접 사의를 표했다.신나리 journari@donga.com·주성하 기자}

북한이 27일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약속한 미군 유해 송환을 했다. 미국은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 해체 작업에 이어 한 달 넘게 지지부진하던 유해 송환까지 이뤄지자 “의미 있는 조치”라며 반색했다. 교착상태에 빠졌던 북-미 비핵화 협상이 변곡점을 맞을 것이라는 기대도 높아졌다. 하지만 북한은 6·25전쟁 정전협정 65주년에 맞춰 유해를 송환하면서 미국이 종전선언에 나서야 한다고 거듭 압박하고 있다. 종전선언을 채택하기 위해선 북한의 비핵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미국은 노골적인 대가를 요구하는 북한의 ‘유해 송환 선물’에 마땅한 대응 카드를 찾지 못해 고심이 깊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김정은, 유해 송환도 ‘살라미식’으로 이날 오전 11시 북한 원산에서 유해함을 싣고 온 미군 수송기 C-17은 우리 영공에서부터 주한미군 F-16 전투기 2대의 호위를 받으며 경기 평택시 오산공군기지에 안착했다. 의장대를 따라 연합사 소속 군인들이 11명씩 5줄을 맞춰 행진하며 약식 의장 행사를 거행했다. 정복을 입은 이들은 차례로 수송기 안으로 들어가 푸른 유엔기로 조심스럽게 감싼 유해함을 들고 나와 차량으로 옮겼다. 도열한 장병들은 유해를 운구하는 차량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거수경례로 예를 표했다. CNN은 수송기가 원산을 떠나기 전 유해함을 하나씩 개봉해 사진을 찍는 절차를 거쳤다고 전했다. 포렌식(증거 분석) 전문팀을 오산기지로 파견한 미군은 앞으로 5일간 군복 잔해나 군번줄, 서류 대조 등을 통해 정밀 유해 검사를 진행한 뒤 다음 달 1일 오산기지에서 추모식을 갖고 하와이로 유해를 옮겨 DNA 정밀검사를 거칠 예정이다. 우여곡절 끝에 60여 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오는 유해를 맞게 된 미국의 반응은 뜨겁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트위터에 “김정은에게 고맙다”고 했고 백악관은 대변인 공식 성명을 내 “북한의 행동과 긍정적 변화에 고무됐다”고 밝혔다. 당초 기대에는 못 미치지만 북한이 유해 중 일부를 돌려보내면서 주춤했던 북-미 비핵화 대화도 재개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3차 방북에서 합의한 비핵화 워킹그룹 회의가 조만간 시작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생큐 김정은” 했지만 고민 깊은 트럼프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북한이 이날 보낸 미군 유해는 55구로 당초 예상했던 200구에 못 미친다. 이 때문에 북한이 싱가포르 공동성명 합의사항 중 가장 쉬운 유해 송환조차도 ‘살라미식’으로 쪼개 이행하며 미국에 체제 보장을 위한 종전선언 채택을 압박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는 해석이 많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북한은 대화 판을 깨지 않되 언제든 복구할 수 있는 미사일 엔진 실험장을 적절히 해체하고 유해도 조금씩 송환해서 협상의 완급을 조절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더 큰 문제는 단계적 동시적 비핵화 해법을 고수하며 협상 판을 흔들고 있는 북한을 상대로 미국이 선(先)비핵화 조치를 이끌어낼 협상카드가 여전히 마땅치 않다는 점. 북한이 비핵화 핵심 조치에서 벗어난 유해 송환으로 사안의 본질인 미국의 ‘완전한 비핵화(CVID)’ 요구를 비켜가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은 싱가포르 공동성명 합의를 나름대로 이행하고 있다. 하지만 유해 송환을 제외하고는 미국의 성에 차지 않는 조치가 많다는 게 미국의 고민”이라고 말했다. 유해 공동발굴사업을 위해 북한에 전달해야 할 비용도 문제다. 대북 압박의 유일한 수단인 대북제재를 미국 스스로 완화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북한이 유해 송환에 드는 비용을 활용해 촘촘한 제재를 흔들려고 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 평택=외교부 공동취재단한성희 인턴기자 한양대 경영학부 4학년}
북한 강원 원산에서 미군 유해 55구가 송환되는 동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향한 곳은 평안남도 회창군에 있는 중국 인민지원군 참전 사망자 묘역이었다. 정전협정 체결 65돌을 맞아 미국에는 ‘선물’을 안기고 중국과는 양국 우호를 다지는 등 ‘김정은식 등거리 외교’를 선보인 것이다. 조선중앙통신은 27일 김정은이 6·25전쟁에서 숨진 마오쩌둥의 장남 마오안잉(毛岸英)의 묘를 찾아 추모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은 “조국해방전쟁 시기 중국의 당과 정부와 인민은 건국 초기의 많은 곤란을 무릅쓰고 아들딸들을 서슴없이 파견해 피로써 도와주고 전쟁 승리에 불멸의 공헌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조중 관계는 결코 지리적으로 가까워서만이 아니라 서로 피와 생명을 바쳐가며 맺어진 전투적 우의와 진실한 신뢰로 굳게 결합돼 있다”고 강조했다. 김정은이 미중을 향해 동시에 유화적인 태도를 취한 것은 조속한 시일 내에 종전선언을 추진하기 위한 양동전략이라는 분석이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동북아연구실장은 “미국에 종전선언 요구로 압박을 가하면서 동창리 서해위성발사장 폐쇄 작업이나 유해 송환처럼 정상 간 약속을 이행하되, 그 과정에서 중국이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를 말끔히 씻어줄 전형적인 김정은식 등거리 외교”라고 설명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마크 램버트 미국 국무부 동아태부차관보 대행이 최근 방한 기간 정부 인사들과 만나 이례적으로 동남아시아 지역 정보기술(IT) 역량 강화(capacity building)에 대한 협력을 협의한 것으로 26일 알려졌다. 북한이 동남아에 IT 분야 노동자들을 대거 파견한 만큼 외화벌이 창구를 틀어막아 대북제재 고삐를 죄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램버트 대행은 방한 기간 “해킹에 취약한 동남아 국가들의 IT 역량을 강화하는 데 협력해 달라”고 제안했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와는 북한이 동남아에 파견한 IT 인력들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고 전해졌다. 지난해 12월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 2397호에 따라 북한 노동자들이 내년 12월 27일까지 본국으로 복귀해야 하는데 그 전까지 동남아에서 활동하는 북한 IT 관련 종사자들의 활동과 이들에 대한 제재 문제를 협의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가 23일(현지 시간) 발령한 대북제재주의보엔 IT 분야 북한 합작기업(Morning-Panda Computer Company Limited) 한 곳과 거래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북한의 IT 노동자들이 파견된 국가로는 앙골라, 방글라데시, 중국, 라오스, 나이지리아, 우간다. 베트남 등 7개국을 적시했다. 이 중 동남아 국가가 3곳이다. 2016년 정보당국에 따르면 북한은 IT 인력 1500명 이상을 10여 개국에 파견해 연간 4000만 달러(약 450억 원)를 벌어들이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북한의 IT 해외노동자들이 전 세계 금융·안보망을 뚫고 해킹을 시도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예의주시하고 있다.신나리 journari@donga.com·이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