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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호가 28일(현지 시간) 칸영화제 폐막식이 열린 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남우주연상 수상자로 지명되자 동료 배우들은 감격에 휩싸였다. 영화 ‘브로커’에 함께 출연한 강동원은 그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글썽였고 영화 ‘헤어질 결심’으로 칸을 찾은 박해일도 그를 끌어안았다. 송강호는 칸영화제에 16년간 7번이나 초청된 단골손님 같은 배우다. 2006년 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감독주간에 초청된 게 시작이었다. 올해를 포함해 작품이 경쟁부문에 진출한 건 네 번. 2009년 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심사위원상을, 2007년 이창동 감독의 ‘밀양’에 함께 출연한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타면서 그에겐 수상의 기회가 오지 않았다. 2019년엔 ‘기생충’이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그의 수상이 불발됐다. 칸영화제는 한 작품에는 한 종류의 상만 주는 게 관례다. 그는 2019년 ‘기생충’ 제작보고회에서 “내가 칸에 갈 때마다 그 작품이 상을 받는 전통이 있다”고 농담처럼 말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한국 감독들은 송강호에 대한 부채 의식이 있었다. 봉 감독은 2019년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후 “이 위대한 배우가 아니었으면 내 영화는 한 장면도 완성될 수 없었을 것”이라며 공을 돌렸다. 박 감독도 2009년 ‘박쥐’로 심사위원상을 받자 “형제나 다름없는 가장 정다운 친구 송강호와 영광을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객석에선 ‘늦깎이’ 남우주연상 주인공인 송강호를 향한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다. 한국 거장들의 페르소나인 송강호가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만든 한국영화 ‘브로커’로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도 눈길을 끌었다. 송강호가 수상 소감에서 감사를 표하자 고레에다 감독은 엄지를 세우고 미소를 보냈다. ‘브로커’는 베이비 박스에 버려진 아이를 키울 양부모를 찾아주는 브로커 상현과 아이를 낳은 여성 등이 가족처럼 가까워지는 여정을 그렸다. 송강호는 상현 역을 맡았다. 폐막식이 끝난 직후 박 감독은 송강호와 나란히 한국 기자들을 만나 그의 수상을 축하했다. 박 감독은 “나도 모르게 복도를 건너 뛰어가게 되더라. 그간 많은 좋은 영화에 출연했는데…. 이렇게 기다리니까 때가 온다”며 기뻐했다. 송강호의 수상은 한국 남자배우 중 처음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연기상을 받는 역사를 썼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앞서 고 강수연이 1987년 ‘씨받이’로 베니스에서, 전도연이 ‘밀양’으로 칸에서, 김민희가 2017년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베를린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윤여정은 지난해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남자배우는 누군가 첫 수상의 관문을 열어주길 바라는 기대가 높았다. 송강호는 이날 취재진이 ‘수상이 배우 생활에 어떤 의미로 작동하길 바라나’라고 묻자 “전혀 (어떤 의미로) 작동하지 않길 바란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좋은 작품, 이야기를 새롭게 전달하려 노력하는 건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강동원 이지은(아이유) 등 수많은 깨알처럼 보석 같은 배우들을 대표해 받은 거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오랜 기다림 끝에 영예를 얻었지만 침착하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는 “상을 받기 위해 연기를 할 수가 없다”며 “좋은 작품에 끊임없이 도전하다 보면 최고의 영화제에 초청받고 수상도 하게 될 뿐이지 상이 절대적인 가치나 목표는 아니다”라고 했다. 한편 송강호 강동원 이지은, 고레에다 감독을 비롯해 박 감독과 박해일은 30일 오후 귀국한다. 칸=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이 영화를 만드는 데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은 CJ와 미키 리(이미경 CJ그룹 부회장·사진)에게도 감사를 보냅니다.” 박찬욱 감독은 28일(현지 시간) 칸영화제 감독상 수상 소감에서 특별히 이 부회장에 대해 감사를 표시했다. 앞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할 때도 이 부회장의 이름이 거론됐다. 영화계에서는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가 올해 칸영화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각각 받은 데도 그가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기생충’과 ‘헤어질 결심’ ‘브로커’는 모두 CJ ENM이 투자, 배급을 맡았다. 좀처럼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 부회장은 칸영화제에 참석해 이들 영화의 수상에 힘을 보탰다. 그는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가 칸 현지에서 처음 공개된 이달 상영회에 잇따라 참석해 배우, 감독들과 포옹하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이 부회장은 지난 20여 년간 영화 제작과 투자, 배급 등을 진두지휘하며 한국영화의 세계시장 진출에 기여했다. 2005년 ‘달콤한 인생’을 시작으로 ‘박쥐’ ‘아가씨’ 등 칸영화제에 진출한 국내 영화 12편의 제작 혹은 투자, 배급에 참여했다. ‘기생충’과 ‘헤어질 결심’ ‘브로커’ 등에는 제작총괄로 이름을 올렸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송강호의 배우 인생“청소부라도 시켜달라” 연극 입문후드라마 출연않고 영화배우 외길 걸어김지운 박찬욱 봉준호 만나 연기 변신 경남 김해(현 부산 강서구)에서 나고 자란 송강호는 중학교 2학년 때 자신의 이야기를 재밌어하는 친구들을 보며 배우의 꿈을 꿨다. 23세이던 1990년 부산에서 극단 연우무대의 ‘최선생’을 본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로 상경한다. 이듬해 연우무대 극장장이던 류태호에게 “청소부라도 시켜 달라”던 청년 송강호는 이로부터 31년 뒤 한국인 첫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의 쾌거를 이뤘다. 단 한 편의 드라마에도 출연하지 않고 줄곧 영화배우 외길을 걸은 결과다. 1991년 연극배우로 데뷔한 그는 ‘동승’을 시작으로 1996년까지 10여 편의 연극에 출연하며 실력파 배우로 이름을 알린다. 1996년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단역으로 영화에 데뷔한 그는 1997년 이창동 감독의 ‘초록물고기’에서 조폭 부하 ‘판수’ 역을 맡아 주목받았다. 이어 그해 영화 ‘넘버3’에서 말더듬이 깡패 ‘조필’ 역을 맡아 한국 대표 감초 배우로 떠올랐다. 이 영화에서 그의 “내가 현정화! 그러면 무조건 현정화야” 대사는 두고두고 회자됐다. 그는 넘버3로 그해 대종상 신인남우상, 청룡영화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송강호는 코믹한 이미지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고 ‘쉬리’(1999년)에서 국가정보원 특수요원으로 변신했다. 당시 그의 연기가 배역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평도 있었지만 ‘조용한 가족’(1998년)에서 가능성을 본 김지운 감독이 ‘반칙왕’(2000년) 주연으로 그를 캐스팅한다. 송강호의 첫 주연 작품이다. 송강호는 한 인터뷰에서 “안 아픈 손가락이 없지만 가장 힘들었던 영화는 단연 ‘반칙왕’이다. 주변 시선을 느꼈기에 스스로 더 채찍질했다”고 말했다. 이후 그는 거장 감독들의 페르소나로 자리매김한다. ‘조용한 가족’ 이후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년), ‘밀정’(2016년)에 잇달아 출연한다. 박찬욱 감독과는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 이후 ‘복수는 나의 것’(2002년), ‘박쥐’(2009년)를 찍었다. 봉준호 감독과는 ‘살인의 추억’(2005년)을 시작으로 1000만 관객을 동원한 ‘괴물’(2006년), ‘설국열차’(2013년)에 이어 칸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작품상을 동시 석권한 ‘기생충’(2019년) 작업을 함께했다.박찬욱의 감독 여정 복수 3부작 등 자신의 취향에 충실‘올드보이’ 칸 심사위원대상으로 세계 주목장르 넘나들며 할리우드 등 진출칸영화제에서만 올해 세 번째로 트로피를 들어올려 ‘깐느 박’으로 통하는 박찬욱 감독(59)은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자신의 취향에 충실한 영화를 제작해온 그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구축하며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그의 첫 장편영화 데뷔작은 29세 때 찍은 ‘달은…해가 꾸는 꿈’(1992년)이다. 가수 이승철, 나현희가 출연한 이 작품은 흥행에 참패하고 평단의 호응도 이끌어내지 못했다. 부진한 성적으로 생계형 평론가로 활동하던 그는 5년 뒤 ‘삼인조’(1997년)를 내놓았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를 충무로가 주목하는 감독 반열에 오르게 한 작품은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 관객 590만 명을 동원해 그해 최고 흥행작이 된 이 작품은 제51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다. 흥행 감독으로 입지를 굳힌 박 감독은 이후 본격적으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펼치기 시작한다. ‘복수는 나의 것’(2002년)을 시작으로 원죄와 복수, 구원을 소재로 한 ‘복수 3부작’을 선보인다. ‘복수는 나의 것’은 흥행에 실패했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스타일을 고수한 ‘올드보이’(2003년)를 선보인다. ‘올드보이’가 2004년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으며 박 감독은 칸과 첫 인연을 맺게 된다. 복수 3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한 ‘친절한 금자씨’(2005년)는 “너나 잘하세요”라는 명대사를 낳으며 제62회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박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박쥐’(2009년)는 제62회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박찬욱은 당시 인터뷰에서 “‘박쥐’는 그동안 찍었던 작품 중 가장 좋았다. 왜냐면 내 마음대로 다 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16년에는 영국 소설가 세라 워터스의 ‘핑거 스미스’를 각색한 영화 ‘아가씨’를 선보였다. 김민희 김태리 주연의 이 영화는 제69회 칸영화제에 초청됐지만 수상하지는 못했다. 최근 세계 영화계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 그는 장르를 넘나들며 영미권에도 진출했다. 미국 할리우드에선 니콜 키드먼, 미사 바시코프스 주연의 ‘스토커’(2013년), 영국 BBC 첩보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2018년)을 연출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1592년 임진왜란에서 초반에 일본군에 밀리던 조선군이 전세를 뒤집을 수 있었던 건 해전 덕분이었다. 당시 일본군은 수도인 한양까지 점령했고, 선조는 중국 국경까지 도주한 뒤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영토 정복 야심이 현실화되던 시점, 일본 함대는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과의 해전에서 연패를 당했다. 25일 출간된 이 책은 승전의 요인을 거북선에서 찾는다. 책은 ‘거북선은 적군이 배에 올라타 백병전(근접 전투용 무기를 이용한 전투)을 벌이지 못하게끔 육각형 금속판으로 선체를 덮었다’고 설명한다. 백병전을 막음으로써 칼, 검, 창 등 근접용 전투 무기를 활용한 일본군으로부터 입을 수 있었던 피해를 최소화했다는 것이다. 영국 육군사관학교 석좌교수를 지낸 군사사 전문가이자 영국 엑서터대 역사학과 명예교수인 저자는 임진왜란을 비롯해 십자군전쟁, 트로이전쟁, 제1·2차 세계대전 등 인류 전쟁의 역사는 물론이고 미래에 이어질 전쟁까지 다뤘다. 무기와 전투 기술의 역사, 동맹과 배신, 국제정치 역학 등 전쟁에 크게 영향을 미친 요소를 다각도로 짚었다. 저자는 기존 전쟁사 책이 주목하지 않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비서구 군사사에 초점을 맞춘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물과 방목지를 차지하려는 자원전쟁을 주로 벌였다. 15세기 말 아프리카 사헬 지역에 세워진 ‘송하이 왕국’의 지도자 손니 알리는 속국의 자원을 갖기 위해 재위했던 28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전쟁을 벌였다. 저자는 1998∼2000년 에리트레아와 에티오피아 간 국경 분쟁에서 10만 명이 죽고, 1996∼2003년 콩고민주공화국을 중심으로 벌어진 ‘아프리카 대전’에서는 최소 300만 명이 학살과 질병, 굶주림으로 사망했다고 지적한다. 피해 규모를 봤을 때 ‘전쟁과, 그것의 미래를 확실히 파악하려면 서양을 벗어나 훨씬 멀리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존 전쟁사의 시각을 뒤집는 새로운 분석도 흥미롭다. 중국이나 오스만 제국이 서양에 비해 요새를 축성하거나 그 양식을 혁신하는 데 소극적이었던 이유를 군사 역량이 아닌 전투 방식에서 찾는 것이 대표적이다. 오스만 제국은 야전 병력과 기동성에 초점을 뒀기 때문에 고정된 진지를 방어하는 요새에 덜 투자했다는 것이다. 요새를 짓는 것은 물론이고 부지를 확보하고 수비대를 배치하는 등 요새에 들어가는 자원에 비해 그 효과는 미미하다는 각국의 판단도 있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미래전의 주요 원인으로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유례없는 인구 증가 속도다. 2020년 78억 명이었던 세계 인구는 2050년 98억 명, 2100년 109억 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2019년 10억 명인 아프리카 인구는 2050년 24억 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예멘에서는 2015년 물 부족으로 인한 반란으로 정부가 전복됐다. 인구 증가로 인한 자원 부족이 향후 전쟁의 원인이 될 것이라는 저자의 전망은 새겨들을 만하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1592년 임진왜란에서 초반에 일본군에 밀리던 조선군이 전세를 뒤집을 수 있었던 건 해전 덕분이었다. 당시 일본군은 수도인 한양까지 점령했고, 선조는 중국 국경까지 도주한 뒤였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영토 정복 야심이 현실화되던 시점, 일본 함대는 이순신 장군이 이끌었던 해전에서 연패를 당했다. 25일 출간된 ‘거의 모든 전쟁의 역사’(서해문집)는 승전의 요인을 거북선에서 찾는다. 책은 ‘거북선은 적군이 배에 올라타 백병전(근접 전투용 무기를 이용한 전투)을 벌이지 못하게끔 육각형 금속판으로 선체를 덮었다’고 설명한다. 백병전을 막음으로써 칼, 검, 창 등 근접용 전투무기를 활용한 일본군으로부터 입을 수 있었던 피해를 최소화했다는 것이다. 영국 육군사관학교 석좌 교수를 지낸 군사사 전문가이자 영국 엑서터대 역사학과 명예교수인 제러미 블랙은 임진왜란을 비롯해 십자군전쟁, 트로이전쟁, 제1·2차 세계대전 등 인류 전쟁의 역사는 물론 미래에 이어질 전쟁까지 다뤘다. 무기와 전투 기술의 역사, 동맹과 배신, 국제정치 역학 등 전쟁에 크게 영향을 미친 요소를 다각도로 짚었다. 저자는 기존 전쟁사 책이 주목하지 않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등 비서구 군사사에 초점을 맞춘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물과 방목지를 차지하려는 자원전쟁을 주로 벌였다. 15세기 말 아프리카 사헬지대에 세워진 ‘송가이 제국’의 지도자 손니 알리는 속국의 자원을 갖기 위해 재위했던 28년 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전쟁을 벌였다. 저자는 1998~2000년 에리트레아와 에티오피아 간 국경분쟁에서 10만 명이 죽고, 1996~2003년 콩고민주공화국을 중심으로 벌어진 ‘아프리카 대전’에서도 최소 300만 명이 학살과 질병, 굶주림으로 사망했다고 지적한다. 피해 규모를 봤을 때 ‘전쟁과, 그것의 미래를 확실히 파악하려면 서양을 벗어나 훨씬 멀리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존 전쟁사의 시각을 뒤집는 새로운 분석도 흥미롭다. 중국이나 오스만 제국이 서양에 비해 요새를 축성하거나 그 양식을 혁신하는데 소극적이었던 이유를 군사 역량이 아닌 전투 방식에서 찾는 것이 대표적이다. 오스만 제국은 야전 병력과 기동성에 초점을 뒀기 때문에 고정된 진지를 방어하는 요새에 덜 투자했다는 것이다. 요새를 짓는 것은 물론 부지를 확보하고 수비대를 배치하는 등 요새에 들어가는 자원에 비해 그 효과는 미미하다는 각국의 판단도 있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미래전의 주요 원인으로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유례없는 인구 증가 속도다. 2020년 78억 명이었던 세계 인구는 2050년 98억 명, 2100년 109억 명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2019년 10억 명인 아프리카 인구는 2050년 24억 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예멘에서는 2015년 물 부족으로 인한 반란으로 정부가 전복됐다. 인구증가로 인한 자원 부족이 향후 전쟁의 원인이 될 것이라는 저자의 전망은 새겨들을 만 하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더 많은 세계인이 한국의 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 영어, 프랑스어를 비롯해 다양한 언어로 콘텐츠를 알려야 합니다.” 서울 중구 로얄호텔서울에서 26일 만난 오만 술탄 카부스대 무함마드 알 암리 교수가 말했다. 예술교육 전문가인 그는 코로나19를 계기로 각국에서 문화유산을 디지털로 전환하는 작업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암리 교수는 “한국 역시 문화유산의 디지털 전환은 물론이고 많은 문화 행사를 온라인으로 개최하고 있다”며 “한국 문화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갈수록 뜨거워지는 만큼 여러 언어로 번역해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암리 교수는 23일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제11회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 ‘문화예술교육 국제 심포지엄’ 연사로 참석해 오만의 문화예술 교육 현황과 코로나19 이후의 전망을 주제로 강연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한 이번 심포지엄에서 한국, 이집트, 말레이시아, 오만, 영국 출신 예술교육 전문가 5명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 문화예술 교육, 회복과 전환’을 주제로 강연했다. 암리 교수는 코로나19로 비대면 교육이 확산되면서 실습이 중요한 예술 교육에 한계가 있었지만 더 많은 사람이 예술을 접할 수 있게 된 건 기회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로 각국이 비대면 소통 방식을 고민하게 되면서 오만도 예술교육에 큰 변화가 있었다. 그는 “코로나19 이전에는 대학에서 하는 예술교육 대부분이 대면이었고, 온라인 수업은 한두 개에 불과했다. 코로나19가 닥친 2020년 초부터 온라인으로 강의를 들을 수 있도록 교수진과 학생에게 기술을 가르쳤고 지금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합하는 수업 방식이 보편화됐다”고 했다. 그는 온라인 교육이 확산되면서 일반인도 예술을 접하고 교육을 받기가 훨씬 수월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예술을 공부하는 데 있어 이제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마음만 먹으면 국내의 먼 곳은 물론이고 지구 반대편에서 열리는 문화 행사에도 참석할 수 있다”고 했다. 엔데믹으로 전환되면서 대면 행사와 교육이 다시 늘어나는 데 대해 암리 교수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병합된 교육 방식이 균형을 유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론 위주의 예술교육은 온라인으로, 실습은 오프라인으로 진행하는 복합적 수업 형태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이번 책이 진짜 어렵긴 한가 봐요.” 24일 동아일보와 인터뷰한 소설가 정지돈(39)은 “온라인에 책 리뷰 올라오는 속도가 전작들에 비해 확연히 느리다”며 웃었다. 그가 9일 펴낸 공상과학(SF) 소설 ‘…스크롤!’(민음사)은 기승전결의 일반적 서사구조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신간은 가상현실에서 활동하며 음모론을 척결하는 ‘미신 파괴자’들과, 가까운 미래의 서점 ‘메타북스’ 직원들의 두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에서는 파편적인 이야기들이 우연히 전개된다. 가상현실과 메타북스 두 이야기 사이의 연관성도 작품에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 실험적 문학기법으로 문지문학상,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작가답게 독특한 형식과 내용을 담았다. 그는 “소설 속 강력한 인과성은 예술이란 장르 때문에 발생하는 ‘가짜 현실’이다. 현실은 우연적으로 흘러간다. 현실에서 사물과 사람을 체험하는 방식을 그대로 재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신작은 음모론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됐다. 근미래 배경의 수사물을 쓰려고 자료조사를 하던 중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을 둘러싼 음모론에 대응하는 ‘미스버스터스(mythbusters) 팀을 만든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음모론을 파다 보니 사이키델릭 약물, 메타버스, 인공지능 등 다양한 소재들이 엮여 있었다. 내 안에서 연결된 여러 소재를 작품에 녹였다”고 말했다. 책에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가 우주의 근원이라고 주장한 ‘아페이론’ 같은 생소한 개념들이 튀어나온다. 환각제인 LSD나 실로시빈이 병을 치료하고 창의력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른바 ‘사이키델릭 르네상스’도 집필에 영향을 끼쳤다. 그는 “대학 시절 세계문학전집이 꽂힌 도서관 서가를 따라 걸으며 처음 본 작가의 소설을 전부 읽을 정도로 독서광이었다. 지금도 책을 읽으면서 모르는 단어를 검색하고 이 중 꽂히는 소재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소설에 녹인다”고 했다. 신작은 난해하고 불친절하다. 하지만 그는 예술가마다 독창적인 탐구 방식이 있고 이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있을 거라고 믿는다. “늦은 밤 혼자 침대에 누워 있어도 책 하나만 있으면 돼요. 책은 저에게 가장 좋은 피난처이자 동료거든요. 저도 그런 책을 쓰고 싶어요. 누군가는 제 책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고요. 사회에서 동떨어진, 외로운 작업을 꾸준히 해나가는 제 모습을 통해 용기와 위로를 전하고 싶습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61·사진)의 신작 장편소설 ‘행성 1·2’(열린책들)가 30일 국내 출간된다. 책은 2018년 나온 ‘고양이 1·2’, 지난해 출간된 ‘문명 1·2’와 이어지는 이야기로 전쟁과 테러, 감염병으로 황폐해진 세상이 배경이다. 주인공인 고양이 바스테트는 쓰레기와 쥐들로 덮여 있는 프랑스 파리를 떠나 미국 뉴욕으로 향한다. 그러나 뉴욕도 알 카포네라는 우두머리가 이끄는 쥐 군단이 이미 점령한 상태. 4만 명의 인간은 쥐를 피해 200여 개의 고층빌딩에 숨어 산다. 행성에서는 앞선 두 소설보다 인간의 비중이 크게 늘었다. 인간 집단을 대표하는 102개의 총회에서는 쥐를 없애고자 핵폭탄을 사용하자는 강경파가 득세한다. 바스테트는 103번째 대표 자격을 요구하지만 인간들은 고양이의 의견이라며 무시한다. 쥐 군단의 위협, 핵폭탄을 쏘려는 인간들 사이에서 바스테트는 행성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1991년 첫 장편소설 ‘개미’로 국내에 이름을 알린 베르베르는 ‘신’ ‘파피용’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기억 1·2’ 등 베스트셀러를 냈다. 그의 작품은 35개 언어로 번역돼 세계에서 2300만 부 이상 판매됐다. 국내에서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모두 1250만 부 넘게 판매됐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머플러가 예쁘다는 세연의 칭찬에 이웃주민 희란은 ‘줄까요?’가 아니라 ‘가질래요?’라 묻는다. ‘가질래요?’라는 말은 받는 사람의 마음을 더 편하게 한다고 느낀 세연은 희란이 타인을 배려하는 대화가 몸에 익은 사람임을 직감하고 호감을 갖는다. 18일 출간된 ‘표현의 감각’(애플북스)은 미묘한 언어의 차이가 불러오는 관계 변화를 그린 장편 소설이다. 언어에 민감한 여성 디자이너 세연이 감각적이고 정확한 말을 사용하는 회사 대표에게 끌리고 그와 연인이 되는 과정을 담았다. 브라운 아이즈의 ‘벌써 일년’과 ‘점점’, 버즈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을 비롯해 김종서의 ‘아름다운 구속’, 김동규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 가사를 쓴 작사가 출신 한경혜 작가의 작품이다. 21일 전화로 만난 한 작가는 “예전엔 노래 가사가 멜로디 없이 그 자체로 읽는 재미가 있고 시처럼 낭송도 가능했는데 지금은 귀에 꽂히는 게 중요해지다 보니 한글 파괴가 심각해졌다”며 “비유와 묘사의 실종, 언어 파괴에 안타까운 마음을 갖던 차에 적확한 단어 사용에 대한 소설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책은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말에 질문을 던진다. 세연은 의견을 말할 때 ‘∼것 같아요’라고 표현하는 게 싫다. 확신이 없고 자존감이 낮은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는 걸 인식한 것. ‘몹시’나 ‘무척’, ‘상당히’와 같은 다양한 부사가 있는데도 부정적 상황을 강조하는 ‘너무’만 사용하는 언어 습관에도 불편함을 느낀다. “예전에 노래 녹음을 하던 중이었어요. 한 후배가 ‘커피 마셔도 돼요?’라고 묻는데 그 말이 정말 예쁜 거예요. 그 자리에 있던 다른 후배가 ‘그 부분 들어보면 안 돼요?’라고 부정어로 묻기에, ‘너도 ‘돼요?’라고 물어 봐’라고 했어요. 우리나라에선 부정어가 지나치게 많이 쓰여요. 전 긍정어를 쓰려고 해요. 작가는 세상에 말을 거는 직업인데 기왕이면 긍정적으로 말 거는 게 좋잖아요.” ‘표현의 감각’은 소소한 표현을 맛깔 나게 살리면서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내 읽는 재미도 크다. 그는 2004년 단편소설 ‘비행’으로 등단한 후 소설가의 길을 걷고 있다. 작사가일 땐 음악을 언어로 해석한 글을 써야 했지만 지금은 원하는 소재의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독서는 제2의 창작행위’라 생각하는 그는 문학상 수상작을 빠짐없이 읽고, 독서를 할 때 메모지를 옆에 두고 생경한 단어, 감정의 동요를 일으킨 문장을 적는다. “정확한 문장을 구사하면서도 재밌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맞춤법이 틀려도 독자들은 책을 읽고, 팬들은 앨범을 사요. 전 그게 싫어요. 작사가나 작가는 언어를 도구로 쓰는 사람이기에 그 도구만큼은 제대로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적확하게 표현하면서도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어요.”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KBS 1TV ‘전국노래자랑’의 최장수 MC 송해 씨(95·사진)가 ‘최고령 음악 경연 프로그램 진행자’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등재됐다. 송 씨는 1988년 전국노래자랑 MC를 맡은 후 올해까지 34년간 진행자로 활약하고 있다. 그는 23일 “긴 세월 전국노래자랑을 아껴 주신 시청자들의 덕분이다”라고 밝혔다. 이날 KBS에 따르면 송 씨의 기네스 세계기록 등재는 4월 말 확정됐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영국 기네스협회 업무가 지연돼 발표가 늦어졌다. 앞서 올해 1월 KBS는 “최고령 MC 송해의 업적을 공인받기 위해 기네스 세계기록에 도전하고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인해 스튜디오 촬영분과 과거 방송 화면을 엮어 방송을 이어온 전국노래자랑은 6월 전남 영광을 시작으로 야외 촬영을 재개한다. 다만 송 씨는 최근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 입·퇴원을 반복하면서 전국노래자랑 하차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난 마음에 안들거든요. 가질래요?” 머플러가 예쁘다는 세연의 칭찬에 이웃주민 희란은 이렇게 묻는다. ‘줄까요?’가 아닌 ‘가질래요?’라 묻는 희란에게 세연은 단번에 호감을 갖는다. ‘가질래요?’라는 말은 원하면 얼마든지 가져가라는, 받는 사람의 마음을 더 편하게 하는 미묘한 뉘앙스를 띈다고 생각하는 세연은 희란이 타인을 배려하는 대화가 몸에 익은 사람임을 느낀 것이다. 반면 계약직인 세연을 비하하는 발언을 한 것에 대해 ‘내가 실수했나본데 미안하다’고 사과한 직장상사와는 끝내 가까워지지 못한다. ‘본데’라는 표현으로 애매하게 사과를 하는 그의 무책임함과 이기심이 매사에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18일 출간된 ‘표현의 감각’(애플북스)은 미묘한 언어의 차이가 불러오는 관계 변화를 그린다. 21일 전화로 만난 작사가 출신의 한경혜 작가는 “예전엔 노래가사가 멜로디 없이도 자립이 되고, 낭송이 됐는데 지금은 귀에 꽂히는 게 중요해지다보니 한글파괴가 심각해졌다. 비유와 묘사의 실종, 언어파괴에 안타까운 마음을 갖던 차에 적확한 단어 사용에 대한 글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한 작가는 브라운 아이즈의 ‘벌써 일년’과 ‘점점’, 버즈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김종서의 ‘아름다운 구속’ 등 수많은 히트곡을 쓴 작사가다. 책은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말들에 질문을 던진다. 세연은 누군가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물었을 때 겸손해보이기 위해 ‘~것 같아요’라고 표현하는 습관이 싫다. 확신이 없고 자존감이 낮은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는 걸 인식한 것. “대표님 너무 내 스타일인데”라고 말을 했다가도, ‘몹시’나 ‘무척’, ‘상당히’와 같은 다양한 부사가 있는데도 부정적 상황을 강조하는 ‘너무’만 사용하는 언어습관에 불편함을 느낀다. “예전에 노래 녹음을 하던 중이었어요. 한 후배가 ‘커피 마셔도 돼요?’라고 묻는데 그 말이 정말 예쁜 거에요. 그 자리에 있던 다른 후배는 ‘그 부분 들어보면 안돼요?’라고 부정어로 묻기에, ‘너도 ’돼요?‘라고 물어봐라’고 했어요. 우리나라에선 부정어가 지나치게 많이 쓰여요. 전 평소 말할 때나 글을 쓸 때 긍정어를 최대한 많이 쓰려고 해요. 작가는 세상에 말을 거는 일인데 기왕이면 좀 더 긍정적으로 말을 걸면 좋잖아요.” 미묘한 언어 사용의 차이는 사랑에 불을 지피기도, 관계의 균열을 가져오기도 한다. 세연은 모든 상황에 적확한 단어를 사용하는 회사 대표 승건에게 매력을 느낀다. 승건도 자신의 의견을 정확하지만 예의바르게 표현하는 세연이 좋아진다. 두 사람은 햇살과 햇빛, 햇볕, 또는 성격과 성질, 성정 등 일상에서 혼용해 쓰던 단어의 미세한 차이를 의식하고, 이를 제대로 사용하는 서로에게 빠져든다. 적확한 단어 사용은 작사가로서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 생각하는 한 작가의 가치가 반영됐다. “가사는 짧은 문장 안에 기승전결을 담아야 하기에 단어 하나하나가 굉장히 중요해요. 그래서인지 가사를 쓰다보면 색다르고 낯선 단어, 숨어있는 예쁜 단어 하나쯤은 쓰고 싶은 욕심이 나요. ‘화사한 미소’보다는 ‘해사한 미소’라는 표현이 더 예쁠 때가 있죠. ‘아름다운 구속’이라는 노래 제목을 지을 땐 ‘구속’이란 단어를 일부러 썼어요. 어감이 안 좋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문장의 호흡이 어긋나는 순간 의미가 확장이 되는 효과가 있다고 설득했죠.” 그는 2004년 단편소설 ‘비행’으로 등단하면서 소설가의 길을 걷고 있다. 작사가로 활동할 때는 우선 작사 의뢰가 들어와야 하고, 음악을 언어로 해석한 글을 써야 한다는 제약이 있었지만 지금은 원하는 소재의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 행복하다. ‘독서는 제2의 창작행위’라 생각하는 그는 이상문학상, 젊은작가상 등 수상작을 빠짐없이 읽고, 독서를 할 때면 메모지를 옆에 두고 생경한 단어나, 자신에게 감정의 동요를 일으킨 문장을 적는다. “정확한 문장을 구사하면서도 재밌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맞춤법이 틀리고 표현이 틀려도 독자들은 책을 읽고, 팬들은 앨범을 사요. 전 그게 싫어요. 작사가와 작가는 언어를 도구로 글을 쓰는 사람이잖아요. 그 도구만큼은 제대로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적확하게 표현하면서도 재미를 줄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어요.”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정년퇴직, 정리해고, 부도…. 평생 몸담았던 일에서 물러나야 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2020년부터 고령층(65세 이상)에 진입한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는 ‘제2의 삶’을 시작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20일 출간된 ‘은퇴하고 즐거운 일을 시작했다’(동녘라이프)는 퇴직 후 새 일을 찾아 나선 베이비붐 세대 9명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 중 삼성물산에서 정년퇴직한 후 와인 칼럼니스트 겸 와인바 사장이 된 김욱성 씨(65)와 한진중공업 필리핀 지사장에서 청소년상담사가 된 문두식 씨(69), 중소기업에 다니다 도시농부가 된 김재광 씨(68)를 20일 인터뷰했다. 김욱성 씨는 취미로 즐기던 와인을 두 번째 직업으로 삼았다. 신라호텔 해외영업·마케팅팀장으로 일한 그는 행사 케이터링을 진행하며 와인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사내 와인 동호회를 만들고 퇴근 후 학원을 다니며 프랑스어능력시험(DELF) 자격증을 땄다. 2012년 정년퇴직 후 2015년 58세에 국제와인기구와 몽펠리에대학이 운영하는 와인 석사과정에 합격해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그 후 16개월 동안 25개국 400여 개의 와이너리를 다녔다. 그는 귀국 후 2018년 서울 성동구의 와인 매장에 부사장으로 취업해 와인 판매와 교육을 담당한 뒤 지난해 동네(경기 성남시 분당구)에 와인바를 열었다. 딸의 권유로 2019년 시작한 ‘김박사의 와인랩’ 유튜브 채널은 구독자가 2만 명이 넘는다. 그는 “취미가 업이 되려면 적어도 하루 1시간씩 10년 동안은 공부해야 한다. 내가 흥미를 느끼는 주제를 잡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고 했다. 한진중공업에 입사해 한진도시가스 대표이사를 지낸 문두식 씨는 학부 때 심리학을 전공한 것을 살려 청소년상담사가 됐다. 회사에서 1년 후 퇴직하라는 통보를 받자 그는 심리학 전공자가 지원할 수 있는 청소년상담사 자격증 취득에 도전했다. 1년간 매일 6시간씩 도서관에서 공부했다. 청소년상담사 3급을 따고 경기 의정부시 청소년 상담복지센터에 취업해 2011년부터 약 300명의 청소년을 상담했다. 청소년상담사 2급 자격증과 가톨릭대 아동심리상담학 석사학위도 땄다. 그는 “기존 직업이나 전공 분야의 자격증을 취득하는 건 기본이다. 고령에도 일하려면 더 높은 급수의 자격증을 따거나, 관련 분야 대학원에서 전문성을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염료를 만드는 중소기업에 다니던 김재광 씨는 2008년 은퇴 후 귀농했다. 2002년 친구의 제안으로 전국귀농운동본부 생태귀농학교를 다니며 작물 재배법과 땅 임대 방법을 배웠다. 수도권에서 여러 사람들과 텃밭을 일구는 ‘공동체 농사’가 있다는 걸 알게 돼 도시농부의 길을 택했다. 현재 경기 고양시 일산에서 50여 명과 함께 3966m² 규모의 땅을 일구고 있다. 주민들이 친환경농업을 체험하는 고양시 프로그램 ‘행복나눔텃밭’에서 강사로 일하며 작물 재배법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최근 수도권에 ‘도시농업네트워크’가 활성화돼 도시에서도 손쉽게 농사를 시작할 수 있다”며 “텃밭활동가 같은 귀농교육자가 되고 싶다면 생태귀농학교나 도시농부학교의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도시농업관리사 자격증을 따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은퇴를 앞두고 촉박하게 취업 준비를 하기보다는 취미나 적성을 발전시킬 방법을 미리 찾고, 꾸준히 시간을 들여 준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정년퇴직, 갑작스런 회사의 퇴사 통보, 사업의 부도…. 평생 몸담았던 일에서 물러나야 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2020년을 기점으로 고령층(65세 이상)에 진입하기 시작한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는 젊음을 바쳤던 일을 뒤로하고 ‘제2의 삶’을 개척해야 하는 과제와 마주했다. 20일 출간된 ‘은퇴하고 즐거운 일을 시작했다’(동녘라이프)는 퇴직 후 새로운 직업을 찾은 아홉 명의 베이비붐 세대의 이야기를 담았다. 삼성물산에서 정년퇴직해 와인칼럼니스트 겸 와인바 사장이 된 김욱성 씨(65), 한진중공업 필리핀 지사장에서 청소년상담가가 된 문두식 씨(69), 중소기업에 다니다 귀농해 도시농부가 된 김재광 씨(68)를 20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김욱성 씨는 취미로 즐겼던 와인이 두 번째 직업이 됐다. 삼성물산에 입사해 신라호텔 해외영업·마케팅 팀장을 맡은 그는 국가 행사 케이터링 등을 진행하며 본격적으로 와인을 공부했다. 사내 와인동호회를 만들었고, 퇴근 후 프랑스어학원을 다니면서 프랑스어능력시험(DELF) 자격증도 취득했다. 그가 읽은 와인관련 서적은 30권이 넘는다. 2012년 정년퇴직한 후 2015년 국제와인기구와 몽펠리에대학에서 운영하는 와인 석사과정에 합격해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그의 나이 58세 때 일이었다. 16개월 동안 25개국 400개 이상의 와이너리를 돌았다. 그는 “20여 명의 동기들은 프랑스에서 와인을 가업으로 이어받는 집안의 20대 중반 자제들이었다. 한국에서 온 환갑의 아저씨는 나 혼자였다”고 회상했다. 유학생활을 통해 전문성을 쌓은 그는 귀국 후 2018년 서울 성동구 ‘서울숲 와인아울렛’에서 부사장으로 일하면서 고객에게 와인을 판매하고, 정규 와인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지난해에는 딸, 사위와 힘을 합쳐 동네에 와인바를 열었다. 딸의 권유로 시작한 ‘김박사의 와인랩’이라는 유튜브 채널은 구독자 2만 명을 넘었다. 그는 취미가 업이 되기 위해 ‘1만 시간의 법칙’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취미가 미래의 업이 되려면 적어도 하루에 1시간씩 10년 동안은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 나에게 흥미 있는 주제를 잘 잡아서 집중적으로 파고들어야 하고, 상당한 시간과 노력 투자, 전문적인 교육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진중공업에 입사해 한진도시가스 대표이사까지 지낸 문두식 씨는 심리학 전공을 살려 청소년 상담사로 변신했다. 직장인으로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곳까지 갔지만, 한진중공업 필리핀 지사장 시절 회사로부터 갑작스럽게 “1년 뒤 나가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그는 회사에서 준 1년의 유예기간 동안 퇴직 후 할 수 있는 일을 찾던 중 여성가족부가 청소년상담사자격증을 발급하는 것을 알게 됐다. 대학시절 심리학과에서 상담관련 공부를 했고, 심리학 전공이 자격증 시험 지원 요건이었기에 자신에게 맞는 영역이라 판단했다. 자격증을 딴 그는 의정부시 청소년 상담복지센터 상담사로 취업해 2011년부터 현재까지 약 300명의 청소년들을 상담했다. 58세의 나이에 두 번째로 갖게 된 직업이지만 실력을 연마하는데 소홀하지 않았다. 그는 청소년들과 더 잘 소통하고자 2015년 카톨릭대 상담심리대학원 아동심리상담학과 석사과정을 밟았다. 그는 “모든 정성을 다했는데 친구가 상담을 안받겠다며 거부할 때 ‘내가 뭘 잘못했지?’라는 고민이 찾아왔다. 내가 알고 있는 심리학 지식으로 한계가 있다고 느껴 대학원에 진학했다”고 말했다. 전문성을 쌓은 그는 청소년상담사 면접대비 수험서도 출간했다. 염료를 만드는 중소기업에 다니던 김재광 씨는 2008년 은퇴 후 귀농했다. 직업뿐만 아니라 자신이 꿈꾸던 삶의 방식까지 고려한 선택이다. 은퇴하기 6년 전인 2002년 친구의 제안으로 전국귀농운동본부의 생태귀농학교를 다니며 작물재배법, 땅 임대방법 등 귀농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들을 학습했다. 이후 귀촌을 하지 않더라도 수도권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텃밭을 일구는 ‘공동체 농사’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도시농부의 길을 택했다. 현재 일산에서 55명의 사람들과 1200평 규모의 땅을 함께 일구고 있다. 지자체가 텃밭을 조성해 주민들에게 도심 속 친환경농업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행복나눔텃밭’에서 도시텃밭활동가로도 일하고 있다. 매주 텃밭을 오는 주민들을 대상으로 작물재배방법을 가르친다. 그에게 귀농은 제2의 업이기 전에 삶 그 자체다. 그는 자신이 ‘작물농사’가 아니라 ‘사람농사’를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내가 직접 키운 건강한 먹거리를 나와 가족들이 함께 먹는다. 또 공동체 농사에서 함께 텃밭을 일구는 사람들과 소통을 한다”며 “마늘, 감자, 고구마 등 작물 별 공동체도 활성화돼 있고, 수도권에서도 ‘도시농업네트워크’가 활성화돼있어 귀농을 꿈꾸는 이라면 누구나 일상에서 소소하게 농사를 시작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일본 근대화가 나카무라 쓰네(1887∼1924)는 죽음과 가까운 삶을 살았다. 그는 유년 시절 가족들을 차례로 잃어 스무 살에 혼자가 됐다. 부모는 병으로 죽었고, 러일전쟁에 참전한 큰형은 전사했으며 둘째 형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전 세계에 퍼진 결핵은 나카무라를 평생 괴롭혔다. 결핵으로 37세에 눈을 감은 그는 죽기 한 해 전 대표작 ‘두개골을 든 자화상’(1923년)을 그렸다. 미열로 두 볼이 상기된 채 아무런 저항이나 분노의 기색 없이 두개골을 든 남자. 죽음을 담담히 기다리는 이 남성은 나카무라 자신이었다. 한국 국적의 도쿄경제대 명예교수인 저자는 앞서 ‘나의 서양미술 순례’와 ‘나의 조선미술 순례’를 썼다. 이번엔 자신이 나고 자란 일본, 그중 일본 근대미술에 눈을 돌렸다. 나카무라를 비롯해 책에 소개된 세키네 쇼지(1899∼1919) 등 미술가 7명은 1920∼1945년 집중적으로 활동했다. 당시 스페인독감과 결핵으로 수많은 이가 목숨을 잃었고, 일본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벌이고 제2차 세계대전에 뛰어들었다. 역병과 전쟁의 시기에 삶과 죽음을 고민하고, 전쟁의 한복판에서 정치 선전의 하수인을 자처했던 예술가들 사이에서 보편적인 미의 가치를 위해 싸운 ‘이단아’ 7인을 소개한다. 책을 관통하는 주제는 죽음이다. 나카무라가 죽기 한 해 전 두개골을 든 자화상을 그렸듯, 역병에 시달리다 요절한 근대 화가들은 일찍이 죽음을 예감하고 이를 작품으로 표출했다. 스무 살에 결핵과 스페인독감으로 죽은 세키네는 10대 때부터 죽음에 천착했다. 19세에 그린 ‘신앙의 슬픔’(1918년)은 그가 공중변소 앞에서 본 여성 행렬의 환시(幻視)를 그린 그림이다. 여성들은 밝은색의 원피스 차림이지만 장례식장에서 죽음을 애도하는 이들의 행렬을 연상케 하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다. 그는 “고독과 쓸쓸함 때문에 아무에게라도 빌고 싶은 기분이 들 때면, 저런 여인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내 눈앞에 나타난다”고 말했다. 많은 예술가들이 전의를 고양하는 작품을 그리던 시류에 저항하며 예술가의 양심을 지킨 화가들도 소개한다. 아이미쓰(1907∼1946)가 대표적이다. 일본이 국가총동원법을 제정해 침략 전쟁에 돌입하기 직전이었던 1938년, 그는 정면을 직시하는 눈알을 묘사한 ‘눈이 있는 풍경’을 그렸다. 저자는 이 작품에 대해 “황야의 한가운데 정면을 쏘아보는, 붉게 충혈된 거대한 눈알은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한 암시와 같다”고 설명한다. 군부에 협력해 살아남아야 한다고 말하는 동료 화가들에게 아이미쓰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전쟁화는 못 그려, 어쩌면 좋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2년 넘게 지속되고 있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무고한 시민들이 죽거나 다치고 있다. 책의 배경인 1920∼1945년은 스페인독감과 결핵이라는 역병, 그리고 세계대전의 암운이 드리워진 시대였다. 전염병과 전쟁, 폭력이 지속되는 지금과 그 당시가 너무나 닮아 있기에 100년이 넘은 작품들이 던지는 생각할 거리는 더 강렬하게 다가온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갑자기 충격으로 내 차가 심하게 요동치고 좌우로 흔들렸다. 내가 사고를 내다니…. 정신이 아찔하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또 너무 조급해졌나 보다.’ 1998년부터 택배 일을 시작한 26년 차 택배기사 서영길 씨(58)는 택배상자를 운반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매일 메모장에 적었다. 예정된 배송 시간을 지키려다 교통사고가 날 뻔한 순간, 이틀에 한 번꼴로 물건을 주문했던 주지 스님이 매번 박카스 두 개를 손에 쥐여주던 기억, 생굴은 상할 수 있어 바로 전달해야 하는데 고객과 연락이 닿지 않아 난감했던 날…. ‘큰딸’(35)은 메모를 보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서 씨가 말하고 큰딸이 글로 적은 ‘모두가 기다리는 사람’(어떤책)이 10일 출간됐다. 8일 두 저자를 전화로 만났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큰딸) 책은 서 씨가 25년간 택배 일을 하며 겪은 희로애락이 녹아 있다. 가장 자주 벌어지는 고객과의 마찰은 택배가 분실됐다는 고객 불만. 물건이 모이는 터미널에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 있고, 배송트럭 앞 블랙박스도 상시 녹화 중이다. 기록들이 있어도 경찰에 신고하는 ‘진상 고객’도 있다. 서 씨는 “내가 물건을 들고 건물에 들어가 빈손으로 나오는 모습을 경찰이 확인해 고객에게 설명해도 그럴 리 없다며 우길 땐 난감했다”고 말했다. “내가 갑인데 왜 택배기사가 갑 노릇을 하죠?”라며 막말을 하는 고객을 만나면 서글프다. 새벽에 술에 취해 우는 고객의 전화를 받았을 땐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다. 2000년 초 나이가 지긋했던 한 여성 고객은 “배송이 오후 7시에서 9시 사이”라고 전화로 설명했음에도 6시 50분부터 “왜 안 오느냐”고 전화로 재촉했다. 도착해 보니 오기로 한 시간에 맞춰 저녁상을 준비해 놓았던 것. 배송을 갈 때마다 고객은 6시 50분에 저녁밥을 차리고 그를 기다렸다. “그분들의 따뜻함에 이유가 없었어요. 단지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신 거죠. 저도 되돌려받기 위한 친절이 아니라 되돌려주기 위한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서 씨) “아주머니가 새우만두를 늘 싸주셨어요. 중학생 때 먹은 그 맛이 아직도 기억나요.”(큰딸) 그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7시 터미널로 출근해 배달할 물건을 차에 실은 뒤 오후 8시까지 배송을 다닌다. 하루 13시간 가까이 수십 명의 고객과 만나는 그는 “사람 때문에 힘들지만 사람 때문에 버틴다”고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비대면 배송이 되면서 문 앞에 간식 상자를 두는 고객, ‘빨리 배송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커피 쿠폰을 보내는 고객까지…. “내 일이 힘든 육체노동으로만 축약될 수 없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내가 겪은 일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다 보면 택배기사를 향한 편견이나 처우도 바뀔 거라 믿어요. 언제까지 이 일을 할 거냐고요? 다리에 힘이 풀릴 때까지요.”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갑자기 충격으로 내 차가 심하게 요동치고 좌우로 흔들렸다. 내가 사고를 내다니…. 정신이 아찔하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또 너무 조급해졌나보다.’ 1998년부터 택배 일을 시작한 25년차 택배기사 서영길 씨(58)는 택배상자를 운반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매일 메모장에 적었다. 예정된 배송시간을 지키려다 교통사고가 날 뻔한 순간, 이틀에 한 번 꼴로 물건을 주문했던 주지스님이 매번 박카스 두 개를 손에 쥐어주던 기억, 굴은 상할 수 있어 바로 전달해야 하는데 고객과 연락이 닿지 않아 난감했던 날…. ‘큰딸’(35)은 메모를 보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서 씨가 말하고 큰딸이 글로 적은 ‘모두가 기다리는 사람’(어떤책)이 10일 출간됐다. 8일 두 저자를 전화로 만났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맡은 바 소임을 다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큰딸) 책은 서 씨가 25년간 택배 일을 하며 겪은 희로애락이 녹아있다. 가장 자주 벌어지는 고객과의 마찰은 택배가 분실됐다는 고객 불만. 물건이 모이는 터미널에 폐쇄회로(CC)TV가 설치돼있고, 배송트럭 앞 블랙박스도 상시 녹화중이다. 기록들이 있어도 경찰에 신고하는 ‘진상고객’도 있다. 서 씨는 “내가 물건을 들고 건물에 들어가 빈손으로 나오는 모습을 경찰이 확인해 고객에게 설명해도 그럴 리 없다며 우길 땐 난감했다”고 말했다. “내가 갑인데 왜 택배기사가 갑 노릇을 하죠?”라며 막말을 하는 고객을 만나면 서글프다. 새벽에 술에 취해 우는 고객의 전화를 받았을 땐 당황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다. 2000년 초 나이가 지긋했던 한 여성 고객은 그에게 따뜻한 밥상을 차려줬다. “배송이 오후 7시에서 9시 사이”라고 전화로 설명했음에도 6시50분부터 “왜 안 오느냐”고 전화로 재촉했다. 도착해보니 오기로 한 시간에 맞춰 저녁상을 준비해놓았던 것. 배송을 갈 때마다 고객은 6시50분에 저녁밥을 차리고 그를 기다렸다. “그 분들의 따뜻함에 이유가 없었어요. 단지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신 거죠. 저도 되돌려 받기 위한 친절이 아니라 되돌려주기 위한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서 씨) “아주머니가 새우만두를 늘 싸주셨어요. 중학생 때 먹은 그 맛이 아직도 기억나요”(큰딸) 그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전 7시 터미널로 출근해 배달할 물건을 차에 실은 뒤 오후 8시까지 배송을 다닌다. 하루 13시간 가까이 수십 명의 고객과 만나는 그는 “사람 때문에 힘들지만 사람 때문에 버틴다.” 코로나 19로 비대면 배송이 되면서 문 앞에 간식상자를 두는 고객, ‘빨리 배송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커피쿠폰을 보내는 고객…. “내 일이 힘든 육체노동으로만 축약될 수 없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내가 겪은 일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다보면 택배기사를 향한 편견이나 처우도 바뀔 거라 믿어요. 언제까지 이 일을 할 거냐고요? 다리에 힘이 풀릴 때까지요.”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고하 송진우 선생(1890∼1945) 탄생 132주년 및 서거 77주기 추모식이 6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묘역에서 열렸다. 추모식은 재단법인 고하 송진우 선생 기념사업회(이사장 김창식)가 주최하고 국가보훈처와 광복회, 동아일보가 후원했다. 고하 선생의 손자인 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장(서울대 명예교수), 용교순 서울남부보훈지청장, 조강환 동아일보 동우회 명예회장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양준석 국민대 교양대 교수는 ‘민족과 현실에 기초한 고하 송진우의 국제정세 인식’을 주제로 추모 강연을 했다. 고하 선생은 1916년 중앙학교 교장을 지냈고 국내외 민족지도자들과 함께 3·1운동을 주도했다. 동아일보 3대, 6대, 8대 사장을 지냈다. 1963년 건국공로훈장이 추서됐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나는 아직도 머나먼 초원과 얼굴에 쏟아지는 비바람과 느낌이 다른 태양빛 아래 몸을 맡기는 것을 꿈꾼다.’ 광활한 자연과 미지의 세계에 몸을 내던지고자 하는 갈망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위 문장을 적은 이는 무엇에든 도전할 준비가 돼 있는 건장한 청춘이 아니다. 직장에서 은퇴하고, 아내와는 사별한 예순 살의 전직 기자 겸 칼럼니스트가 주인공이다. 30여 년간 프랑스 유수의 신문사와 잡지사에서 일하며 바쁘게 살아온 그는 은퇴 후 “내 나이에 장미나 키우며 살아야 하는데”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하지만 불현듯 떠났던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잊지 못하고, 다시 길 위에 섰다. 저자는 1999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시작해 2002년 중국 시안에 도달하기까지 1만2000km를 걸은 1099일의 여정을 담아 세 권의 책으로 출간했다. 4년간 네 차례에 나눠 걸었다. 1권은 여행 첫 기간인 1999년 봄부터 여름까지를 다뤘다. 저자는 실크로드를 걸으면서 짐을 도둑맞고, 짐승의 위협을 받았으며, 발의 피부가 떨어져 나가고 배 속이 뒤틀리는 듯한 복통과 싸운다. 이란 수도 테헤란까지 가려 했지만 예상 밖의 변수로 터키 에르주룸에서 멈춰야 했다. 2권은 터키 에르주룸∼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2000년 봄∼가을), 3권은 사마르칸트∼중국 투루판(2001년 여름, 가을) 및 투루판∼시안(2002년 봄, 여름)의 여정을 각각 정리했다. 출판사는 출간 20주년을 맞아 개정판을 냈다. 책은 저자가 실크로드 위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자세한 일화로 가득하다. 그가 길을 걷기 전 ‘내 박물관은 길들과 거기에 흔적을 남긴 사람들이고, 마을의 광장이며, 모르는 사람들과 식탁에 마주 앉아 마시는 수프인 것’이라고 밝혔듯, 저자는 실크로드에 살고 있는 소시민의 삶을 관찰하고 그들의 호의에 기꺼이 몸을 맡긴다. 숙소가 보이지 않아 어두컴컴한 골목을 헤매던 그에게 양갈비를 구워 주고 침대를 내어준 이부터, 친구들에게 여정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며 저자의 손을 끌고 학교로 향한 초등학생까지. 신기하다는 듯 이방인인 그를 관찰하는 눈길도 그저 반갑다. 그는 말한다.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복인가!’ 1만2000km를 걷는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다. 분쟁지역에 잠입한 테러리스트로 오해를 받기도 하고, 이슬람 문화권인 터키에서 반바지를 입은 그를 불쾌한 시선으로 바라본 사람들과 마주한다. 가톨릭 신자인 그를 개종시키려는 이슬람 사제도 만난다. 4년간의 고된 걸음은 예순이 넘은 그에게 질병도 안겼다. 탈수증과 전립선염이 겹쳐 배가 부풀어 오르고 소변을 볼 수 없었다. 발톱이 살을 파고들어 발가락 살이 너덜너덜해지는 게 일상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 걷는다. 그저 타인을 만나고, 걷기를 반복하는 4년의 시간을 통해 쫓기듯 살아온 30여 년을 뒤로한다. 느림과 침묵을 온전히 누리는 그의 여정은 훌훌 털고 배낭을 멘 채 길을 나서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통찰 역시 가슴을 일렁이게 한다. ‘사회가 얽어맨 줄을 끊고, 안락의자와 편한 침대를 외면한다. 행동하고 생각하고 꿈꾸고 걸으므로 살아있는 것이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나는 아직도 머나먼 초원과 얼굴에 쏟아지는 비바람과 느낌이 다른 태양빛 아래 몸을 맡기는 것을 꿈꾼다.’ 광활한 자연과 미지의 세계에 몸을 내던지고자 하는 갈망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위 문장을 적은 이는 무엇에든 도전할 준비가 돼 있는 건장한 청춘이 아니다. 직장에서 은퇴하고, 아내와는 사별한 예순 살의 전직 기자 겸 칼럼니스트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주인공이다. 30여 년간 프랑스 유수의 신문사와 잡지사에서 일하며 바쁘게 살아온 그는 은퇴 후 “내 나이에 장미나 키우며 살아야 하는데”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하지만 불현듯 떠났던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잊지 못하고, 다시 길 위에 섰다. 저자는 1999년 터키 이스탄불에서 시작해 2002년 중국 시안에 도달하기까지 1만2000㎞를 걸은 1099일의 여정을 담아 세 권의 책 ‘나는 걷는다 1·2·3’(효형출판)을 출간했다. 4년간 네 차례에 나눠 걸었다. 1권은 여행 첫 기간인 1999년 봄에서 여름까지를 다뤘다. 저자는 실크로드를 걸으면서 짐을 도둑맞고, 짐승의 위협을 받았으며, 발의 피부가 떨어져나가고 뱃속이 뒤틀리는 듯한 복통과 싸운다. 이란 수도 테헤란까지 가려 했지만 예상 밖의 변수로 터키 에르주름에서 멈춰야했다. 2권은 터키 에르주룸~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2000년 봄~가을), 3권은 사마르칸트~중국 투루칸(2001년 여름, 가을) 및 투루칸~시안(2002년 봄, 여름)의 여정을 각각 정리했다. 출판사는 출간 20주년을 맞아 개정판을 냈다. 책은 저자가 실크로드 위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자세한 일화로 가득하다. 그가 길을 걷기 전 ‘내 박물관은 길들과 거기에 흔적을 남긴 사람들이고, 마을의 광장이며, 모르는 사람들과 식탁에 마주 앉아 마시는 수프인 것’이라고 밝혔듯, 저자는 실크로드에 살고 있는 소시민의 삶을 관찰하고 그들의 호의에 기꺼이 몸을 맡긴다. 숙소가 보이지 않아 어두컴컴한 골목을 헤매던 그에게 양갈비를 구워 주고 침대를 내어준 이부터, 친구들에게 여정에 대해 이야기해달라며 저자의 손을 끌고 학교로 향한 초등학생까지. 신기하다는 듯 이방인인 그를 관찰하는 눈길도 그저 반갑다. 그는 말한다.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행복인가!’ 1만2000㎞를 걷는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다. 분쟁지역에 잠입한 테러리스트로 오해를 받기도 하고, 이슬람 문화권인 터키에서 반바지를 입은 그를 불쾌한 시선으로 바라본 사람들과 마주한다. 카톨릭 신자인 그를 개종시키려는 이슬람 사제도 만난다. 4년간의 고된 걸음은 예순이 넘은 그에게 질병도 안겼다. 탈수증과 전립선염이 겹쳐 배가 부풀어 오르고 소변을 볼 수 없었다. 발톱이 살을 파고들어 발가락 살이 너덜너덜해지는 게 일상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 걷는다. 그저 타인을 만나고, 걷기를 반복하는 4년의 시간을 통해 쫓기듯 살아온 30여 년을 뒤로한다. 느림과 침묵을 온전히 누리는 그의 여정은 훌훌 털고 배낭을 멘 채 길을 나서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통찰 역시 가슴을 일렁이게 한다. ‘사회가 얽어맨 줄을 끊고, 안락의자와 편한 침대를 외면한다. 행동하고 생각하고 꿈꾸고 걸으므로 살아있는 것이다.’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지선아 스무 살 된 것 축하해.’ 2년 전 7월 30일 오빠의 문자메시지가 왔다. 수신자는 당시 42세이던 이지선 한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44). 그에게는 생일이 두 개다. 2000년 7월 30일 그는 다시 태어났다. 그해 대학 4학년이던 그는 오빠 차를 타고 귀가하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전신 55%에 3도 화상을 입었다. 피부 이식수술이 마흔 번을 넘으면서 횟수를 세지 않게 됐다는 그는 고통과 인내, 깨달음으로 지난 20년을 살아왔다. 서울 송파구 카페에서 4일 그를 만났다. 그는 2003년 40만 부가 팔린 에세이 ‘지선아 사랑해’(이레)를 시작으로 지난달 27일 12년 만에 네 번째 에세이 ‘꽤 괜찮은 해피엔딩’(문학동네)을 펴냈다. 책은 사고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대학교수가 되기까지 여정을 담았다. 두 엄지를 제외한 여덟 손가락의 끝마디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을 때 팔 전체를 떼어내지 않음에 감사해야 했다. 얼굴에 이식한 인조피부가 녹아내릴 때는 ‘왜 하필 나에게?’라는 물음이 수년간 그를 따라다녔다. 그는 엄지로 자판을 두드려 글을 쓰면서 자신에게 벌어진 사고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됐다. “글쓰기를 통해, 길을 가다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친 것처럼 나와 상관없는 이의 잘못으로 사건이 벌어졌다고 객관화할 수 있게 됐어요. 내가 지은 죄가 있다거나, 하나님의 뜻이라는 타인들의 해석에서 이제는 자유로워요.” 그는 ‘당연히 내 것이라 여긴 모든 게 사실 내 것이 아니다’라는 진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얼굴에 화상을 입으면 코 안쪽 피부가 두꺼워져 얼마 전 콧구멍을 넓히는 수술을 받았다. 그는 책에 이렇게 썼다. ‘콧물이 흐른다. 기쁘다.’ “화상 치료를 위해 소독약으로 온몸을 세척할 때 치료실 바닥에서 철퍽철퍽하는 물소리가 났어요. 그 소리가 너무 공포스러웠는데 3년 전부터 목욕탕에서 물소리를 들어도 아무렇지 않게 세신을 받을 수 있게 돼 너무 감사했어요. 세상에 당연한 건 없다는 걸 알기에 행복을 더 느낄 수 있어요.” 그는 2004∼2016년 미국 보스턴대와 컬럼비아대,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사회복지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생활 12년 동안 누구도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마주친 이조차 불쑥 이런 질문을 던졌다. “꺼내놓고 싶지 않은 가장 아픈 기억을 갑자기 묻는 무례함이 견디기 힘들었어요. 미국인은 나와 다른 사람에게 호기심이 생겨도 그걸 표현하지 않는 게 예의라는 걸 알아요. 장애인도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역지사지가 필요해요.” 6년 차 교수인 그는 소외된 이들이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되고 싶다고 했다. 2019년부터 코미디언 이성미 송은이, 이영표 강원FC 대표, 가수 션과 함께 부모가 수감 중인 청소년들을 돕고 있다. “완벽한 어둠이라고 생각한 절망 속에서 ‘적어도 내 인생이 이렇게 슬프게 끝나진 않을 거야’라는 작은 기대를 품는 게 희망인 거 같아요. 그 희망이 저를 여기까지 오게 해줬어요.”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