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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줄까요?’ 대신 ‘가질래요?’…작사가이자 소설가 한경혜가 풀어낸 언어의 미묘함

입력 2022-05-23 13:30업데이트 2022-05-2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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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혜 ‘표현의 감각’
“난 마음에 안들거든요. 가질래요?”

머플러가 예쁘다는 세연의 칭찬에 이웃주민 희란은 이렇게 묻는다. ‘줄까요?’가 아닌 ‘가질래요?’라 묻는 희란에게 세연은 단번에 호감을 갖는다. ‘가질래요?’라는 말은 원하면 얼마든지 가져가라는, 받는 사람의 마음을 더 편하게 하는 미묘한 뉘앙스를 띈다고 생각하는 세연은 희란이 타인을 배려하는 대화가 몸에 익은 사람임을 느낀 것이다. 반면 계약직인 세연을 비하하는 발언을 한 것에 대해 ‘내가 실수했나본데 미안하다’고 사과한 직장상사와는 끝내 가까워지지 못한다. ‘본데’라는 표현으로 애매하게 사과를 하는 그의 무책임함과 이기심이 매사에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18일 출간된 ‘표현의 감각’(애플북스)은 미묘한 언어의 차이가 불러오는 관계 변화를 그린다. 21일 전화로 만난 작사가 출신의 한경혜 작가는 “예전엔 노래가사가 멜로디 없이도 자립이 되고, 낭송이 됐는데 지금은 귀에 꽂히는 게 중요해지다보니 한글파괴가 심각해졌다. 비유와 묘사의 실종, 언어파괴에 안타까운 마음을 갖던 차에 적확한 단어 사용에 대한 글을 쓰게 됐다”고 말했다. 한 작가는 브라운 아이즈의 ‘벌써 일년’과 ‘점점’, 버즈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김종서의 ‘아름다운 구속’ 등 수많은 히트곡을 쓴 작사가다.

책은 일상에서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말들에 질문을 던진다. 세연은 누군가 자신의 생각이나 의견을 물었을 때 겸손해보이기 위해 ‘~것 같아요’라고 표현하는 습관이 싫다. 확신이 없고 자존감이 낮은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는 걸 인식한 것. “대표님 너무 내 스타일인데”라고 말을 했다가도, ‘몹시’나 ‘무척’, ‘상당히’와 같은 다양한 부사가 있는데도 부정적 상황을 강조하는 ‘너무’만 사용하는 언어습관에 불편함을 느낀다.

“예전에 노래 녹음을 하던 중이었어요. 한 후배가 ‘커피 마셔도 돼요?’라고 묻는데 그 말이 정말 예쁜 거에요. 그 자리에 있던 다른 후배는 ‘그 부분 들어보면 안돼요?’라고 부정어로 묻기에, ‘너도 ’돼요?‘라고 물어봐라’고 했어요. 우리나라에선 부정어가 지나치게 많이 쓰여요. 전 평소 말할 때나 글을 쓸 때 긍정어를 최대한 많이 쓰려고 해요. 작가는 세상에 말을 거는 일인데 기왕이면 좀 더 긍정적으로 말을 걸면 좋잖아요.”

미묘한 언어 사용의 차이는 사랑에 불을 지피기도, 관계의 균열을 가져오기도 한다. 세연은 모든 상황에 적확한 단어를 사용하는 회사 대표 승건에게 매력을 느낀다. 승건도 자신의 의견을 정확하지만 예의바르게 표현하는 세연이 좋아진다. 두 사람은 햇살과 햇빛, 햇볕, 또는 성격과 성질, 성정 등 일상에서 혼용해 쓰던 단어의 미세한 차이를 의식하고, 이를 제대로 사용하는 서로에게 빠져든다. 적확한 단어 사용은 작사가로서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이라 생각하는 한 작가의 가치가 반영됐다.

“가사는 짧은 문장 안에 기승전결을 담아야 하기에 단어 하나하나가 굉장히 중요해요. 그래서인지 가사를 쓰다보면 색다르고 낯선 단어, 숨어있는 예쁜 단어 하나쯤은 쓰고 싶은 욕심이 나요. ‘화사한 미소’보다는 ‘해사한 미소’라는 표현이 더 예쁠 때가 있죠. ‘아름다운 구속’이라는 노래 제목을 지을 땐 ‘구속’이란 단어를 일부러 썼어요. 어감이 안 좋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문장의 호흡이 어긋나는 순간 의미가 확장이 되는 효과가 있다고 설득했죠.”

그는 2004년 단편소설 ‘비행’으로 등단하면서 소설가의 길을 걷고 있다. 작사가로 활동할 때는 우선 작사 의뢰가 들어와야 하고, 음악을 언어로 해석한 글을 써야 한다는 제약이 있었지만 지금은 원하는 소재의 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 행복하다. ‘독서는 제2의 창작행위’라 생각하는 그는 이상문학상, 젊은작가상 등 수상작을 빠짐없이 읽고, 독서를 할 때면 메모지를 옆에 두고 생경한 단어나, 자신에게 감정의 동요를 일으킨 문장을 적는다.

“정확한 문장을 구사하면서도 재밌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맞춤법이 틀리고 표현이 틀려도 독자들은 책을 읽고, 팬들은 앨범을 사요. 전 그게 싫어요. 작사가와 작가는 언어를 도구로 글을 쓰는 사람이잖아요. 그 도구만큼은 제대로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적확하게 표현하면서도 재미를 줄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어요.”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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