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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하는 장면을 그림으로 남긴 유명한 화가들이 많다. 르누아르, 마티스,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예술가들이 독서라는 사적이면서도 정적인 순간에 주목한 건, 읽는 행위가 주는 감성이 그만큼 매력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매개로 자기 안에 깊이 몰입한 사람에겐 보는 이까지 끌어당기는 어떤 힘이 있다. 사색 속의 고요함, 집중, 몰두와 평안. 책 읽는 모습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건 최근 뜻밖에 목격하게 된 ‘독서의 장면’ 때문이다. 내년에 학교 입학을 앞둔 둘째와 함께 도서관에 갔는데, 몇 권 재밌어 보이는 책을 뽑는가 싶더니 혼자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언젠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바로 그때가 될 것이라고 미처 예상치 못했던 순간이었다. 아이들이 어릴 땐 부모가 곁에 끼고 책을 읽어주는 게 일이고, 나 역시 그랬다. 목이 아플 때까지 읽어줬다. 심지어 만화책도 읽어달라고 해서 연기와 내레이션을 동시에 하다 “이건 진짜 아니지 않냐?”고 묻기도 여러 번 했다. 한글을 빨리 뗐으면서도 꽤 오랫동안 책만 들면 읽어달라고 조르던 첫째를 겨우 떼놓자, 다섯 살 터울인 둘째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런데 마침내, 둘째까지 ‘읽기 독립’의 문턱에 들어선 것이었다. 혹시 눈이 마주치면 다시 “읽어줘”라고 나올까 봐 아이를 몰래 흘끔거렸다. 다행히 아이는 엄마의 존재조차 잠시 잊은 듯, 골똘히 책장을 넘겼다. 가끔 키득거리기까지 하면서. 두 아이를 키우면서 신통방통한 장면을 많이 봤지만 그때 느낀 감정은 또 특별했다. 열람실은 조용했지만, 내 내면은 자축의 팡파르로 소란스러웠다. 하지만 그게 단순히 육아의 한고비를 또 넘겼다는 안도감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독서는 세상을 지적으로 탐험하는 출발점이다. 그러니까 정서적·지적 독립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거기엔 ‘읽기 독립’이 있다. 혼자 책을 읽는 아이는 한 인격체로서 세상을 자신만의 속도와 방식, 방향으로 섭렵해 나갈 수 있게 된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새로운 문장, 자극, 상상, 발견이 계속될 것이고, 어느새 아이가 인식하고 체험하는 세상의 진폭은 부모의 것을 훌쩍 넘어설 것이다. 그러니 사실 아이가 처음으로 혼자 책을 읽는 순간은 골방이나 도서관 한 구석에서 벌어졌다 대충 잊혀질 일이 아니라, 각별히 기억되어지고 축하받을 만한 순간인지도 모른다. ‘읽기 독립’ 파티를 해도 모자랄 중요한 순간 말이다. 하지만 온갖 파티와 축하가 넘치는 세상에서 왜 ‘읽기 독립 파티’ 같은 게 없는 건지, 이젠 너무 잘 안다. 그런 걸 하자고 하는 순간, 아이는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할 것이고 다시 ‘엄마가 읽어줘’라고 태세를 전환하겠지. 그래서 다들 눈물 나게 기쁜 이 장면을 마치 아무렇지 않은 척, 못 본 척 쉬쉬하며 넘어간다. 그래도 기억한다. 아이가 처음 책을 혼자 읽게 된 날. 읽는 것과 일평생 계속 좋은 친구가 되기로 한 날. ‘읽는 사람’으로의 첫발을 뗀 날.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바이올리니스트 김현서 양(15·사진)이 25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열린 제58회 파가니니 국제 콩쿠르에서 역대 최연소로 3위에 올랐다. 김 양은 청중상, 최연소 결선 진출자상 등 2개 부문 특별상도 함께 차지했다. 2010년생인 김 양은 대회 최연소 참가자이자 역대 최연소 수상자가 됐다. 3위 및 특별상 상금으로 총 1만5000유로(약 2511만 원)를 받으며 부상으로 산타 체칠리아 국립 아카데미 오케스트라 등 세계 각지에서 연주할 기회를 얻는다. 1954년 시작된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는 2년마다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열리는 세계적인 바이올린 경연 대회다. 한국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가 2015년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바 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옛날부터 달에 살아온 달토끼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한다. 별 씨를 뿌리고 꽃이 피어나면 방아를 찧어 별 가루를 내고, 그걸 반죽하고 잘 구워서 새 별을 다는 일이다. 고되고 힘들지만 그만큼 보람찬 일을 평생 해온 달토끼는 이제 나이가 들어 후계자를 찾는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이을 달토끼의 후계자. 후계자 조건은 까다롭다. 총명하고 용감하고 성실하고 끈기 있고 건강하며 용모도 단정해야한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지원자가 안 나타난다. 기다리다 못해 직접 현장 채용으로 찾기에 나서지만, 만난 건 ‘진심으로 달토끼가 되고 싶다’는 거북이뿐이다. 아무리 지원자가 없어도, 어떻게 거북이가 달토끼가 될 수 있을까. 산속으로 바다로 계속 달토끼 후계자를 찾으러 돌아다니는 원조 달토끼. 후계자 조건을 거의 다 포기하고 이젠 ‘토끼이기만 하면 된다’고 기준을 낮추지만 여전히 따라다니는 건 거북이뿐이다. 토끼 분장까지 하고 나선 거북이의 진심이 통할까. 안 되는 게 없는 세상, 경계 없는 도전정신의 중요성을 재밌게 일러준다. 이야기 곳곳에 전래동화에 대한 오마주가 나와 읽는 재미를 더한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매 순간 음악에 진심을 담으려 노력했는데 좋은 결과가 따라줘 너무 감사합니다.” 제65회 동아음악콩쿠르에서 피아노 부문 1위를 차지한 노윤서 씨(23·서울대 대학원 1년)는 세 번의 동아음악콩쿠르 도전 끝에 올해 입상에 성공했다. 그는 “본선에서 리스트 작품을 연주했는데 경연이란 걸 잊고 내 이야기를 풀어 낸다는 마음으로 깊이 빠져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아트센터 도암홀에서 제65회 동아음악콩쿠르 시상식이 개최됐다. 동아일보사가 주최하고 포스코가 협찬, 서울교육대학교·서울아트센터 도암홀이 후원한 올해 콩쿠르에선 총 21명이 입상의 영예를 안았다. 부문별 격년제로 개최하는 콩쿠르는 9월 21일부터 10월 21일까지 서울교육대에서 1, 2차 예선을 거친 8개 부문 28명이 19∼21일 본선에 올라 기량을 겨뤘다. 작곡 부문 1위 수상자인 김진호 씨(32·브레멘대 2년)는 “귀국길에 비행기를 놓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좋은 결실을 맺었다”며 “특히 올해 신설된 ‘김순남 작곡상’을 수상해 영광”이라고 말했다. 올해 작곡 부문 1위에겐 특별상인 ‘김순남작곡상’과 ‘TIMF 앙상블상’이 함께 수여됐다. 바순 1위에겐 곽정선바순상이 함께 수여됐다. 아래는 부문별 수상자. ▽클라리넷 △1위 김민석(19·한양대 2년) △2위 최지웅(19·한예종 2년) △3위 공성민(20·서울대 3년) ▽오보에 △1위 박형준(23·연세대 3년) △2위 정유민(22·서울대 3년) △3위 최세린(23·한예종 3년) ▽바순 △1위 문서영(17·한예종 1년) △2위 이소영(22·서울대 3년) ▽피아노 △1위 노윤서(23·서울대 대학원 1년) △2위 여윤지(21·서울대 2년) △3위 지인호 (22·서울대 4년) ▽작곡 △1위 김진호(32·브레멘대 2년) △2위 공태현(23·한양대 4년) ▽플루트 △1위 최예은(19·서울대 3년) △2위 박지성(20·한예종 1년) △3위 남예원(19·한예종 3년) ▽여자성악 △1위 윤예영(23·한예종 4년) △3위 윤재원(28·한예종 졸업) ▽남자성악 △1위 박상민(29·서울대 졸업) △2위 정강한(20·서울대 3년) △ 3위 박성민(24·서울대 4년) 31일부터 동아음악콩쿠르 홈페이지(www.donga.com/concours/music)에서 심사위원별 채점표와 심사평을 확인할 수 있다. 제9회 동아주니어음악콩쿠르 시상식도 이날 같은 곳에서 함께 거행됐다. 올해 처음으로 초등부를 저학년부와 고학년부로 세분화했으며, 초·중·고등부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부문으로 치러졌다. 9월 8∼10일 예선을 거친 52명이 9월 21일 본선에 올랐고, 고등부 피아노 부문 1위 마경록(16·홈스쿨링)을 비롯한 38명이 입상했다. 중등부 각 부문 수석 입상자에게 라율인재상이, 피아노 부문 1위 입상자 전원에겐 코스모스악기상이 수여됐다. 수상자 명단은 동아주니어음악콩쿠르 홈페이지(www.donga.com/concours/juniormusic)에서 확인할 수 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매 순간마다 음악에 진심을 담으려 노력했는데 좋은 결과가 따라줘 너무 감사합니다.”제65회 동아음악콩쿠르에서 피아노 부문 1위를 차지한 노윤서 씨(23·서울대 대학원 1년)는 세 번의 동아음악콩쿠르 도전 끝에 올해 입상에 성공했다. 그는 “본선에서 리스트 작품을 연주했는데 경연이란 걸 잊고 내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마음으로 깊이 빠져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아트센터 도암홀에서 제65회 동아음악콩쿠르 시상식이 개최됐다. 동아일보사가 주최하고 포스코가 협찬, 서울교육대학교·서울아트센터 도암홀이 후원한 올해 콩쿠르에선 총 21명이 입상의 영예를 안았다. 부문별 격년제로 개최하는 콩쿠르는 9월 21일부터 10월 21일까지 서울교육대학에서 1, 2차 예선을 거친 8개 부문 28명이 19∼21일 본선에 올라 기량을 겨뤘다.작곡 부문 1위 수상자인 김진호(32· 브레멘대 2년) 씨는 “귀국길에 비행기를 놓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좋은 결실을 맺었다”며 “특히 올해 신설된 ‘김순남 작곡상’을 수상해 영광”이라고 말했다. 올해 작곡 부문 1위에겐 특별상인 ‘김순남작곡상’과 ‘TIMF 앙상블상’이 함께 수여됐다. 바순 1위에겐 곽정선바순상이 함께 수여됐다. 아래는 부문별 수상자. ▽클라리넷 △1위 김민석(19· 한양대 2년) △2위 최지웅(19·한예종 2년) △3위 공성민(20· 서울대 3년) ▽오보에 △1위 박형준(23·연세대 3년) △2위 정유민(22·서울대 3년) △3위 최세린(23· 한예종 3년) ▽바순 △1위 문서영(17·한예종 1년) △2위 이소영(22· 서울대 3년) ▽피아노 △1위 노윤서(23·서울대 대학원 1년) △2위 여윤지(21·서울대 2년) △3위 지인호 (22·서울대 4년) ▽작곡 △1위 김진호(32· 브레멘대 2년) △2위 공태현(23· 한양대 4년) ▽플루트 △1위 최예은(19· 서울대 3년) △2위 박지성(20·한예종 1년) △3위 남예원(19· 한예술종 3년) ▽ 여자성악 △1위 윤예영(23· 한예종 4년) △3위 윤재원(28· 한예종 졸업) ▽ 남자성악 △1위 박상민(29· 서울대 졸업) △2위 정강한(20· 서울대 3년) △ 3위 박성민(24· 서울대 4년) 31일부터 동아음악콩쿠르 홈페이지(www.donga.com/concours/music)에서 심사위원별 채점표와 심사평을 확인할 수 있다. 제9회 동아주니어음악콩쿠르 시상식도 이날 같은 곳에서 함께 거행됐다. 올해 처음으로 초등부를 저학년부와 고학년부로 세분화했으며, 초·중·고등부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부문으로 치러졌다. 9월 8∼10일 예선을 거친 52명이 9월 21일 본선에 올랐고, 고등부 피아노 부문 1위 마경록(16· 홈스쿨링)을 비롯한 34명이 입상했다. 중등부 각 부문 수석 입상자에게 라율인재상이, 피아노 부문 1위 입상자 전원에겐 코스모스악기상이 수여됐다. 수상자 명단은 동아주니어음악콩쿠르 홈페이지(www.donga.com/concours/juniormusic)에서 확인할 수 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서울국제음악제(SIMF·포스터)가 30일부터 11월 6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과 세종문화회관,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다. 올해로 17회째를 맞은 이번 축제의 주제는 ‘춤곡’(Dance with Me). 왈츠, 탱고, 발레 등 서양 음악사에 깊이 녹아든 ‘춤’과 관련된 다양한 무대가 마련됐다. 류재준 음악감독은 “활기 있고 즐거운 주제를 드리고 싶어 주제를 춤으로 선택했다. 이번 음악회를 통해 힘을 얻을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30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개막공연은 ‘춤과 호른’을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작곡가 김홍걸이 대규모 관현악 연주로 편곡한 ‘탱고의 역사’를 베를린 필하모닉 호른 수석을 지낸 라데크 바보라크 지휘로 감상할 수 있다.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과 세종문화회관 세종체임버홀에서 각각 31일과 11월 1일 열리는 공연은 SIMF 실내악으로 진행된다. 스트라빈스키의 관현악곡 ‘봄의 제전’을 실내악으로 편곡해 선보이는 등 독일과 러시아 작곡가들이 남긴 춤곡이 연주된다. 이어 11월 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선 SIMF 오케스트라와 함께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왈츠의 왕’ 등 왈츠의 역사를 조망하는 무대를 선보인다. 11월 5일 공연에선 세계적인 첼리스트 게리 호프먼이 ‘베토벤과 함께 춤을’이란 주제로 베토벤 첼로 소나타 전곡을 연주한다. 다음 날인 6일 폐막 음악회에선 SIMF오케스트라가 한일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일본 현대음악의 거장 다케미쓰 도루의 비올라 협주곡 ‘가을의 현’을 국내 초연한다. 류 감독은 “지난 기억을 모두 부둥켜안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자는 의미를 담은 곡으로, 한일 수교 60주년의 의미와 서울국제음악제의 취지에 잘 어울리는 곡”이라고 설명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나무 이발사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일까. 말 그대로 나무의 이파리를 단정히 가꿔 새로운 스타일을 선물해 주는 이다. 예약 손님 확인은 매일 아침 찾아오는 참새가 맡고 있다. 하루 일정을 확인한 뒤엔 고양이 조수와 함께 이발소를 나선다. 오랫동안 앞머리를 길러온 어린이 나무, 이발소 단골 손님으로 뽀글머리를 즐기는 할머니 나무, 샛노란 색으로 염색하며 새로운 분위기를 내는 은행나무. 나무 이발사는 그 어떤 나무에게라도 척척 새로운 스타일을 선물해 준다. 줄기가 엉켜버린 나무, 찬 바람에 메마르고 푸석해져 버린 나무, 나뭇잎이 너무 덥수룩하게 자라 붙어버린 나무를 관리해 주는 것도 나무 이발사의 몫이다. 최선을 다해 일하긴 하지만, 모든 이발이 다 성공적인 건 아니다. 가끔 어떤 손님은 불만을 드러낸다. 오늘도 마지막 손님은 새로운 스타일이 싫은지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하지만 괜찮다. 이파리는 결국 다시 자라니까. 길가의 나무를 보며 미용사가 된 듯 자유롭게 상상력을 펼치게 해주는 책. 이파리가 자라듯 매일 쑥쑥 자라는 아이들이 떠오른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국어책을 툭하면 ‘북어’ ‘불어’ ‘불에’로 만들어 놓는 장우. 걸리면 지우개로든 수정테이프로든 박박 지우게 할 거라고 하신 선생님께 드디어 딱 걸렸다. 다른 아이들도 다 재밌어 했는데, 왜 자신에게만 뭐라 하냐고 항의해 보지만 통하지 않는다. 사물함에 있던 다른 교과서까지 모두 걸려서 과학을 ‘(방사능)과핵’, 음악을 ‘음(치)학(생)’, 미술을 ‘(학교탈출)마술’로 만들어 놓은 것까지 힘겹게 다 지워야 했다. 하지만 사회 시간이 되자마자 장우는 다시 펜을 든다. ‘하지만 난 봤다 사회 시간이 되자마자/장우 사회 책이/사회(의 쓴맛)이 되는 걸’(표제작 ‘사회의 쓴맛’) 기존 형식을 탈피한 기발한 동시집. ‘애들이랑 얼음땡 하는데/재원이가 얼음! 하고 얼음이 됐다가/온난화, 온난화! 하면서 혼자 녹아버렸다’(‘얼음땡’)처럼 웃음 터지게 하는 구절로 가득하다. 초등학교 학급에서 벌어지는 소란스러운 풍경을 감칠맛 나게 그려내는데, 때론 개구지고 때론 뾰로통해지는 아이들의 표정이 눈에 선히 보이는 것 같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유행은 돌고 돈다더니, 이런 유행까지 돌아올 줄은 몰랐다. 요즘 ‘교환 독서’란 게 유행이라는데, 쉽게 말하면 책 한 권을 친구들 여러 명이서 돌려보는 것이다. 줄도 긋고 짧은 메모도 남기면서 서로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어서 인기라고 한다. 물질 과잉과 실시간 피드의 시대에 한 권의 책을 여러 명이 돌려서 읽고, 심지어 그 책에 남은 상대의 흔적을 따라 시차를 두고 독서를 한다니. 이런 걸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고 해야 하나. 텍스트힙에 힘입은 교환 독서가 생기기 이미 오래전, 아이디 공유할 넷플릭스도 전자책 플랫폼도 없던 시절, 친구 책 돌려 읽는 게 일상이던 때가 있었다. 자습시간이면 몰래 풀하우스나 언플러그드 보이 같은 만화책을 시계 방향으로 일사불란하게 돌려 읽고, 하나둘 사 모은 소장 책을 서로에게 사적으로 대출하거나 대출받으며 지내곤 했다. 친구들끼리 돌려 읽는 책의 대출 기한은 대부분 무제한이다. 책을 빌리거나 빌려줄 때 서로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아도 왠지 그 책을 다시는 돌려받지 못할 수 있겠단 예감을 하곤 한다. 과연 상대는 책을 받자마자 그 책 읽는 것을 삶의 최우선 순위로 삼을 것인가? 반대로 나는 이 책을 되돌려받는 데 모든 것을 걸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 확실시됐다. 세상은 너무나 분주하고, 우리의 관심은 언제나 빌린 책 같은 것보다 더 중요한 뭔가에 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 불안함을 기꺼이 잠재우는 건 상대와 나 사이에 놓인 인간적 신뢰, 즉 우정이었다. 우리의 관계가 이어지는 한 그 책이 내 책장에 꽂혀 있든, 상대의 책장에 꽂혀 있든 그건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있다. 그래서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며 책장을 옮기는 동안 내 서가에는 계속 내 것 아닌 누군가의 책이 몇 권씩 꽂혀 있었다. 그런 식으로 내 책 역시 다른 이들의 책장에 흘러들어갔다. ‘빌린 책’은 내 세계에 흔적을 남긴 타인의 취향이라 볼 때마다 묘한 이질감과 채무감을 준다. 그러면서도 매번 돌려주는 걸 까먹는 건, 결국 이렇게 될 줄(=장기연체) 예감하면서도 그들이 기꺼이 책을 건네주었단 그 사실, 책보다 훨씬 중요한 게 이 관계에 놓여 있다는 무해한 믿음 덕분이었다. 몇 년 전 꼭 읽고 싶은 책 두 권이 같은 시기에 나온 적이 있었다. 한 권을 먼저 샀는데 회사 동기가 같은 고민을 하다 다른 한 권을 먼저 샀다는 걸 알게 됐다. 취향이 비슷한 친구가 있다는 건 경제적으로도, 자아효능감 측면에서도 좋다. 이럴 때 서로의 안목을 칭찬하는 건 칭찬을 빙자한 자기 과시이기도 하니까. 우리는 회사 모처에서 다 읽은 책을 교환했다. 성공적이란 느낌을 주는 인생의 드문 거래 중 하나였고, 여전히 내 서재엔 원래 샀던 책이 아니라 그때 빌린 그 책이 꽂혀 있다. 활자를 매개로 연결된 우정은 품이 넓고 느슨하며 자유롭다. 읽을 때까지 기다려 주고, 돌려줄 때까지 기다려 주고, 설령 너무 오래 걸려도 기다려 준다. 요즘 유행하는 교환 독서에 꽂힌 이들이든, 빌려주고 빌리며 옛날 식으로 읽는 이들이든, 내 책이 아닌 누군가의 책이 서가에 꽂힌 이들은 행복한 사람들이다. 인생의 좋은 벗인 책, 그리고 그 책을 함께 읽어주는 더 다정한 벗들이 있다는 뜻이니까.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어느 날 로미에게 온 초대장. 예상치 못했지만, 오늘 꼭 가야만 하는 초대다. 로미는 손때 묻은 찻잔과 주전자 등 익숙한 물건들을 챙겨서 여행에 나선다. 고단한 여행길에서 손에 익은 물건들은 위로가 되니까. 로미는 풍경을 보며 천천히 걷는다. 때로는 시간이 멈춘 것처럼 잠시 쉬어 가기도 하고, 꼭 필요하지 않은 물건은 누군가에게 건네기도 하면서 마음이 점차 가벼워진다. 이 여행이 점점 끝나 간다는 것을 로미는 느낀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 로미의 곁을 지켜준 반려동물 토마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것. 토마를 꼭 안아 준 로미는 마침내 초대 받은 그곳에 잘 도착한다. 생의 마지막 장소. “이제 나를 위해 울지 않아도 돼요. 나는 이곳에 잘 도착했답니다.” 로미가 입었던 수의만 남은 자리에 따뜻한 햇살과 노란 꽃들이 만발한다. 생의 마지막 여정을 훌쩍 떠난 여행처럼 잔잔하고 따뜻한 색감으로 그려냈다. 로미가 누운 자리가 비춰지는 마지막 장면이 주는 여운이 깊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체코 필하모닉은 슬라브 오케스트라이면서도 서구 문명과 전통의 일부에 속해 있습니다. 이 두 요소의 결합은 빈 필하모닉이나 로열 콘세르트헤바우(RCO)의 소리와는 다른 흥미로운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어요. 체코 필하모닉이 그런 고유한 특성을 지닌 오케스트라란 사실이 매우 기쁩니다.” 세계적인 지휘자 세묜 비치코프(73)가 이끄는 유럽의 명문 악단 체코 필하모닉이 28, 2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과 롯데콘서트홀에서 내한 공연을 갖는다. 비치코프는 최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교향악단의 사운드가 점점 비슷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개인이 고유한 목소리를 지니듯 오케스트라도 고유한 음향을 지녀야 한다”며 “지휘자의 책임은 자신의 개성을 오케스트라의 위대한 전통과 뚜렷한 정체성에 통합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태생의 미국인인 비치코프는 2018년부터 체코 필하모닉 상임지휘를 맡고 있다. 1985년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하며 데뷔한 뒤로 런던 심포니, 빈 필하모닉,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뉴욕 필 등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와 협업을 이어온 지휘자다. 절묘한 균형감과 예리한 해석으로 정평이 나 있다. 이번 내한 공연에선 체코 필하모닉의 음색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대표 레퍼토리를 선보인다. 첫째 날인 28일에는 1990년 체코 민주화를 상징하는 음악인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전곡을 연주한다. 80분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의 작품이다. “체코가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를 받던 당시 나라를 지키기 위한 민족적 정서가 뚜렷하게 담겨 있는 곡입니다.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 조국이 있고 거기서 느끼는 감정은 뿌리와 소속감, 자부심, 그리고 어두운 역사로 인한 아픔 등으로 비슷하기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곡이기도 하죠. 체코 필하모닉 단원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이 음악을 접했던 이들이기에 그 연주는 엄청난 감동과 풍요로운 경험을 줍니다.” 둘째 날에는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과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을 연주한다. 비치코프는 “투어를 할 때는 체코 필하모닉이 지닌 최고의 강점을 보여주는 음악을 연주하려 한다”며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은 체코 필하모닉의 면모를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 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차이콥스키가 “첫사랑 같은 음악”이라고도 했다. “열두 살에 처음 차이콥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본 뒤 당장 중고 악보를 샀어요. 밤마다 몰래 악보를 펼친 뒤 지휘 흉내를 냈습니다. 본질적으로 진실되고 삶을 사랑하는 기쁨을 아는 고귀한 사람이었고, 그게 그의 음악에 반영됐기 때문에 전 세계의 마음을 울릴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치코프는 지금 현 시대에 클래식 음악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모든 사람이 클래식 음악을 알진 못합니다. 물론 나이가 들어서 알아도 괜찮지만, 어지러운 세계일수록 위대한 음악은 갈등과 모순을 품고 해답을 찾아내죠. 훌륭한 예술을 이른 시기에 접할수록,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한다고 확신합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체코 필하모닉은 슬라브 오케스트라이면서도 서구 문명과 전통의 일부에 속해있습니다. 이 두 요소의 결합은 빈 필하모닉이나 콘세르트헤바우의 소리와는 다른 흥미로운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체코 필 하모닉이 그런 고유한 특성을 지닌 오케스트라란 사실이 저는 매우 기쁩니다.” 세계적인 지휘자 셰몬 비치코프(73)가 이끄는 유럽의 명문 악단 체코 필하모닉이 다음달 28~29일 서울 예술의전당콘서트홀과 롯데콘서트홀에서 내한 공연을 갖는다. 체코 필하모닉 상임 지휘자인 비치코프는 최근 본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교양악단의 사운드가 점점 비슷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지만 개인이 고유한 목소리를 지니듯 오케스트라도 고유한 음향을 지녀야한다”며 “지휘자의 책임은 자신의 개성을 오케스트라의 위대한 전통과 뚜렷한 정체성에 통합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 태생 미국인으로 2018년부터 체코 필하모닉 상임지휘를 맡고 있는 비치코프는 1985년 베를린 필하모닉을 지휘하며 데뷔한 이후 런던 심포니, 빈 필하모닉,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뉴욕 필 등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와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내한 공연 첫번째 날인 28일 1990년 체코 민주화의 상징적인 음악인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 전곡을 연주한다. 80분에 달하는 방대한 규모의 작품이다. 그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를 받던 당시 나라를 지키기 위한 민족적 정서가 뚜렷하게 담겨 있다”며 “이름은 다르지만 모두 조국이 있고 거기서 느끼는 감정은 뿌리와 소속감, 자부심, 그리고 어두운 역사로 인한 아픔 등으로 비슷하기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곡”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체코 필하모닉 단원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이 음악을 접하며 이들이기에 그들의 연주는 엄청난 감동과 풍요로운 경험을 준다”고 말했다. 두 번째 날에는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과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을 연주한다. 그는 “투어를 할 때는 체코 필하모닉이 지닌 최고의 강점을 보여주는 음악을 연주하려한다”며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은 체코 필하모닉의 면모를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 중 하나”라고 말했다. 비치코프는 차이콥스키가 “첫사랑 같은 음악”이라고 말했다. 그는 “열두 살 처음 차이콥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본 후 당장 중고 악보를 샀고 밤마다 몰래 악보를 펼친 뒤 지휘 흉내를 냈다”며 “그는 본질적으로 진실되고 삶을 사랑하는 기쁨을 아는 고귀한 사람이었고 그게 그의 음악에 묻어났다. 그랬기 때문에 전 세계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사람이 클래식 음악을 알진 못합니다. 물론 나이가 들어서 알아도 괜찮지만, 모순이 많은 세계에서 위대한 음악은 갈등과 모순을 품고 해답을 찾아냅니다. 어려운 때 일수록 가장 뛰어난 클래식 음악이 주는 정신적 양식이 더 필요하죠. 훌륭한 예술을 이른 시기에 접할수록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한다고 확신합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한국계 미국 바이올리니스트인 해나 조(조수진·31)가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인 오스트리아 빈 필하모닉의 정식 단원이 됐다. 빈필이 한국계 연주자를 정식 단원에 임명한 건 1842년 창단 이후 처음이다. 클래식 음악계에 따르면 빈필은 22일 해나 조를 제2 바이올린 파트의 정식 단원으로 임명했다. 단원 148명으로 구성된 빈필에 입단하기 위해선 빈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 단원에 합격한 뒤 수년간 수습 활동을 병행해야 한다. 이후 빈필 단원들의 투표를 거쳐 정식 단원 자격을 얻은 뒤 총회에서 최종 승인을 받아야 한다. 서울 출신인 해나 조는 미국으로 건너가 세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했고 12세에 솔리스트로 데뷔했다. 뉴욕 줄리아드 음악원, 맨해튼 음대 등을 거쳐 2019년 빈필 아카데미에 입학했으며, 2022년 빈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에 입단했다. 지난해 11월 빈필 단원 투표를 거친 뒤 10개월 만에 정식 단원으로 최종 승인을 받았다. 해나 조는 11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2025 빈 필하모닉 내한 공연’에도 참여할 예정이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여느 날과 다름없는 행복도서관의 연말. 사서에게 계인이란 어린이가 와서 ‘도서관의 악몽’이란 책을 찾아 달라고 부탁한다. 지하 서고에서 책을 찾은 사서가 책을 대출하기 위해 바코드를 찍는 순간, 갑자기 도서관 벽에 금이 가며 세상이 흔들린다.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었던 사서가 깨어나자 놀라운 풍경이 벌어진다. ‘행복’도서관은 ‘항복’도서관이 돼 있고, 여기저기 책이 쏟아진 채 엉망진창이다. 아이들은 초콜릿 과자를 먹은 손으로 침 묻혀 책장을 넘기기 내기를 하고 있고, 친구와 사이좋게 책을 나누자며 읽은 책을 반으로 찢기도 한다. 말 그대로 악몽 같다. 사실 계인의 정체는 ‘외계인’. 계인이가 해마다 연말에 ‘도서관의 악몽’이란 책을 빌릴 때마다, 도서관은 이렇게 난장판이 된다. 사서는 어린 외계인 어린이의 비밀을 지켜주면서도, 도서관을 도서관답게 지킬 수 있는 묘책을 생각해 낸다. 그의 계획은 성공할 수 있을까. 도서관은 책을 매개로 상상과 모험을 떠나는 역동적인 곳이지만, 엄연히 지켜야 할 예절이 있는 공공장소이기도 하다. 도서관에서 지켜야 할 예절을 재밌는 상상을 바탕으로 풀어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콘텐츠 음악을 주로 해왔기 때문에 음악으로 시작해 음악으로 끝내야 하는 관현악곡 작곡을 처음 해봤습니다. 내내 채점 받는 초등학생의 기분으로 작업했습니다.” 영화 ‘기생충’,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음악감독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작곡가 정재일이 처음으로 관현악곡 신곡을 선보인다. 지난해 서울시향 음악감독인 얍 판 츠베덴의 의뢰를 받고 작곡한 오케스트라 곡 ‘인페르노(Inferno·지옥)’이다. 24, 25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서울시립교향악단 연주회에서 처음으로 공개된다. 23일 서울 종로구 더프리마아트센터에서 열린 ‘2025 서울시향 신작 발표 기자간담회’에 츠베덴 감독과 함께 참석한 그는 “처음으로 풀 오케스트라를 위한 음악을 만든 것이라 지옥 같은 절망의 나날을 많이 보냈다”며 “리허설 때도 마치 시험 성적표를 받는 기분으로 연주를 들었다”고 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1년여의 작업 끝에 완성된 이 곡은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지옥의 풍경을 음악으로 형상화했다. 정재일은 “18분 길이,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되는데 음들이 천천히 퇴적되다가 화산처럼 폭발하는 등 다양한 모습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곡을 의뢰했던 츠베덴 감독은 “흥미롭고 강렬한 음악을 작곡할 수 있는 음악가를 늘 찾아다녔는데 그가 적임자였다”며 “신곡은 아주 강렬하면서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시대에 위안을 줄 음악”이라고 평했다. 정재일은 “여전히 ‘내가 제대로 작품을 만들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지만 세계적인 거장이 함부로 말씀할 리가 없다 싶어 안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곡은 한국 초연에 이어 다음 달 27일 서울시향 미국 투어 연주회의 일환으로 뉴욕 카네기홀에서도 연주된다. 서울시향은 멘델스존, 라흐마니노프 등의 작품과 함께 ‘인페르노’를 선보인다. 츠베덴 감독은 “충분히 멘델스존이나 라흐마니노프의 곡과 함께 연주될 만한 곡”이라며 “정재일만의 이야기와 개성이 담긴 독특한 작품에 미국 관객들도 만족할 것”이라고 말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바이올리니스트 김연아 양(11·사진)이 체코 프라하에서 13일(현지 시간) 열린 안토닌 드보르자크 국제 청소년 라디오 콩쿠르 ‘콘체르티노 프라가’에서 역대 최연소로 우승했다. 김 양은 결선 무대에서 프라하 방송교향악단과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다. 우승자에게는 장학금 5000유로(약 817만 원)와 체코 남부 보헤미아 페스티벌 출연 기회 등이 주어진다. 1966년 제정된 이 대회는 16세(현악 및 건반 부문) 또는 18세(관악 부문) 이하를 대상으로 한 청소년 콩쿠르다. 올해는 유럽과 아시아, 미국 등지에서 약 60명이 참가했으며 현악·건반 부문 4명, 관악 부문 4명이 결선에 진출했다. 김 양은 지난해 이탈리아 로마의 한 공항에서 비발디의 ‘사계’를 즉흥 연주하는 유튜브 영상이 1억9000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올리며 큰 주목을 받았다. 국내에선 서울시향, 과천시향 등과 협연 무대를 가지기도 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절. 프랑스 중위 알랭 르레이가 독일 콜디츠 수용소에 끌려온다. 가장 다루기 어려운 연합군 포로들이 보내지는 곳이었다. 그는 이미 한 번 다른 수용소를 탈출한 전력이 있었는데, 콜디츠에 오자마자 다시 탈출하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제네바 협약에 따라 당시 수용소는 포로들의 운동시설을 확보해야 했다. 급증하는 포로들로 인해 독일군은 임시로 사냥터 두 곳에 철망을 두르고 운동장을 만들었다. 르레이는 이곳의 허점을 놓치지 않았다. 몰래 구한 민간인 복장을 걸친 뒤 축제 행렬에 합류해 탈출했다. 수감된 지 불과 46일 만. 포로들은 그가 친 ‘홈런’에 환호했고, 독일군은 진상 조사로 난리가 났다. 당시 나치 수용소 중에 가장 많은 탈출이 이뤄져 대담한 저항을 상징하는 공간이 된 콜디츠.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각국, 각 계층의 다양한 인간 층위가 역사의 굴곡 속에서 역동적으로 어우러졌던 장소이기도 하다. 영국 저널리스트 출신인 저자가 공문서, 생존자 인터뷰 등의 취재와 고증을 통해 콜디츠의 역사를 생생하게 복원했다. 탈출 시도가 많았던 만큼 방법도 다양했다. 수십 개의 굴을 파거나 신분증을 위조하는 건 예사였다. 글라이더로 날아서 탈출하려는 시도도 있었단다. 포로들끼리 음악회를 열기도 했고 유치한 장난을 모의해 독일 경비병을 놀리기도 했다. 장교와 달리 하급 병사에겐 탈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당시 사회상을 반영한다. 수용소를 배경으로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들의 면면을 흥미롭게 되살려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인간들의 명절이 시작됐다. 달큼한 냄새를 맡고 마을로 내려온 토끼가 파전을 집어 먹고 “이 맛이 으뜸이로다!” 반한다. 고소한 육전 냄새에 끌려 전을 훔쳐먹은 호랑이는 “그 맛이 최고로다!” 감탄한다. 전 맛을 잊지 못한 둘은 다음 해까지 명절을 기다리느니, 직접 전을 만들기로 한다. 고소한 냄새가 산에 퍼지면서 토끼와 호랑이 사이엔 누가 더 전을 잘 부치는지 경쟁이 붙는다. 공정한 경쟁을 위해 심판으로 거북이를 세우지만, 거북이는 고민이다. 토끼 편을 들자니 호랑이가 무섭고, 호랑이 편을 들자니 토끼 꾀가 무섭기 때문이다. 거북이가 낸 묘안은 바로 인간들에게 직접 심사를 받자는 것! 결국 토끼와 호랑이의 전 대결 심사위원으로 전 잘 부치기로 소문난 전 대감 댁 업둥이가 위촉된다. 나이는 어려도 연중 두 번의 차례상과 열두 번의 제사상으로 다져진 전의 달인. 눈 감고도 육전, 파전, 버섯전, 무전, 호박전을 척척 부친다. 공평하게 승자를 가리기로 하고 업둥이 앞에서 최선을 다해 전을 부치는 둘. 과연 승자는 누가 될까. 명절 필수 음식인 전을 주제로 토끼와 호랑이가 벌이는 요리 대결을 판소리처럼 구성진 문체로 흥겹게 그려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독일 레퍼토리는 제 뿌리와 성장 배경, 독일에서 만났던 스승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왜 그 시대, 그 지역에서 이런 음악이 나왔는지에 대한 이해가 있어선지 더 끌립니다.” 독일 정통 음악의 계보를 잇는 뮌헨 출신 첼리스트 다니엘 뮐러 쇼트가 다음 달 1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연다. 독일 음악사를 가로지르는 굵직한 대표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쇼트는 ‘세계 오케스트라들의 섭외 1순위’로 불릴 정도로 국제 무대에서 각광받고 있는 스타 연주가. 무대 장악력과 정교한 해석을 바탕으로 뉴욕 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 등 정상급 오케스트라와 자주 협연한다. 내한 공연을 앞두고 18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 응한 쇼트는 “빈 고전주의 걸작에서 낭만적 모더니즘 걸작을 모두 더해 다양한 작곡 스타일의 발전을 보여주고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공연의 뼈대는 베토벤 ‘첼로 소나타 3번’과 브람스 ‘첼로 소나타 2번’. 그는 “베토벤은 피아노와 첼로가 동등한 언어를 나누는 균형 잡힌 소나타 형식을 만들어 냈다. 당시로선 혁명적이었다”며 “반면 브람스의 F장조 소나타는 좀 더 교향곡적인 형식으로 오케스트라 색채를 내는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했다. 이 밖에도 베베른의 세 개의 소품, 슈만 환상 소곡집 등도 선보일 예정이다. 쇼트는 “베베른은 응축되고 짧지만 그 안에 누구나 강렬히 느낄 경험을 담고 있다”며 “슈만은 가장 시적인 방식으로 대조를 보여준다”고 했다. “모든 작품을 좋아하지만 특히 베베른의 음악은 아주 짧은 몇 분 안에 여러 요소와 풍부한 표현이 담겨 있어요. 연주자나 청중 모두에게 굉장한 집중을 요구하죠.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것 같은 특별한 경험을 줍니다. 그런 ‘틀을 깨는 경험’은 늘 즐겁습니다.” 쇼트는 2000년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음반을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첼로란 악기가 가진 레퍼토리의 한계를 뛰어넘는 폭넓은 작업을 이어 왔다는 평을 받는다. 첼로만의 매력에 대해 “누구나 어린 시절 악기를 고를 때 특정한 ‘목소리’와 연결되는 순간이 있는데, 내겐 그게 늘 첼로였다”고 떠올렸다. “바이올린보다 훨씬 육체적인 악기고, 더 어둡고 깊은 음색을 냅니다. 활을 현에 올리는 순간, 특별한 분위기를 조각해낼 수 있어요. 감정을 자유롭게 깊이 담아 연주할 수도 있고요.” 특히 쇼트가 현재 사용하는 첼로는 역사상 최고의 현악기 명장 중 한 명인 마테오 고프릴레르(1659∼1742)의 작품이다. 그는 “지난 20년간 이 환상적인 악기와 함께할 수 있어 늘 감사하다”며 “한국 관객에게도 이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 드릴 수 있어 기쁘다”고 기대했다. 쇼트는 음악뿐만 아니라 문학이나 미술 등에도 조예가 깊다. 프로그램의 작곡가와 작품에 대한 해설이나 음반 해설집은 대부분 직접 집필한다. “글을 쓰거나, 때론 그림을 그리면서 해석이 더 명확해지는 경험을 합니다. 그림이나 글, 소리 사이엔 수많은 연결고리가 있어요. 다양한 예술 형식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습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독일 레퍼토리는 제 뿌리와 성장배경, 독일에서 만났던 스승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왜 그 시대, 그 지역에서 이런 음악이 나왔는지에 대한 이해가 있어선지 더 끌립니다. ”독일 정통 음악의 계보를 잇는 뮌헨 출신 첼리스트 다니엘 뮐러 쇼트가 다음 달 12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가진다. 독일 음악사를 가로지는 굵직한 대표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쇼트는 ‘세계 오케스트라들의 섭외 1순위’로 불릴 정도로 국제 무대에서 각광받고 있는 스타 연주가. 무대 장악력과 정교한 해석을 바탕으로 뉴욕 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 등 정상급 오케스트라와 자주 협연한다. 내한 공연을 앞두고 18일 동아일보 서면 인터뷰에 응한 쇼트는 “빈 고전주의 걸작에서 낭만적 모더니즘 걸작을 모두 더해 다양한 작곡 스타일의 발전을 보여주고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공연의 뼈대는 베토벤 ‘첼로 소나타 3번’과 브람스 ‘첼로 소나타 2번.’ 그는 “베토벤은 피아노와 첼로가 동등한 언어를 나누는 균형잡힌 소나타 형식을 만들어냈다. 당시로선 혁명적이었다”며 “반면 브람스의 F장조 소나타는 보다 교향곡적인 형식으로 오케스트라 색채를 내는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했다. 이밖에도 베베른의 세 개의 소품, 슈만 환상 소곡집 등도 선보일 예정이다. 쇼트는 “베베른은 응축되고 짧지만 그 안에 누구나 강렬히 느낄 경험을 담고 있다”며 “슈만은 가장 시적인 방식으로 대조를 보여준다”고 했다.“모든 작품을 좋아하지만 특히 베베른의 음악은 아주 짧은 몇 분 안에 여러 요소와 풍부한 표현이 담겨 있어요. 연주자나 청중 모두에게 굉장한 집중을 요구하죠.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것 같은 특별한 경험을 줍니다. 그런 ‘틀을 깨는 경험’은 늘 즐겁습니다.”쇼트는 2000년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음반을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첼로란 악기가 가진 레퍼토리의 한계를 뛰어넘는 폭넓은 작업을 이어왔다는 평을 받는다. 첼로만의 매력에 대해서 “누구나 어린 시절 악기를 고를 때 특정한 ‘목소리’와 연결되는 순간이 있는데, 내겐 그게 늘 첼로였다”고 떠올렸다.“바이올린보다 훨씬 육체적인 악기고, 더 어둪고 깊은 음색을 냅니다. 활을 현에 올리는 순간, 특별한 분위기를 조각해낼 수 있어요. 감정을 자유롭게 깊이 담아 연주할 수도 있고요.”특히 쇼트가 현재 사용하는 첼로는 역사상 최고의 현악기 명장 중 한명인 마테오 고프릴러(1659-1742)의 작품이다. 그는 “지난 20년간 이 환상적인 악기와 함께 할 수 있어 늘 감사하다”며 “한국 관객에게도 이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드릴 수 있어 기쁘다”고 기대했다. 쇼트는 음악뿐 아니라 문학이나 미술 등에도 조예가 깊다. 프로그램의 작곡가와 작품에 대한 해설이나 음반 해설집은 대부분 직접 집필한다. “글을 쓰거나, 때론 그림을 그리면서 해석이 더 명확해지는 경험을 합니다. 그림이나 글, 소리 사이엔 수많은 연결고리가 있어요. 다양한 예술 형식에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습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