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어릴 적 농구 코트에선 대장이었으나 책상에선 집중을 못했던 카렌. 부모와 학교는 이 ‘학습 장애’를 극복하도록 카렌에게 심리상담사와 교육 전문가를 붙였다. 대학에서도 공부에 어려움을 느낀 그는 정신과를 찾았고, 의사는 단 한 번 면담한 뒤 ‘주의력결핍장애’ 진단을 내리고 중독성 치료제를 처방했다. 10mg을 복용하던 카렌은 이후 의사에게 거짓말을 해 150mg을 받아냈고, 결국 심각한 약물중독으로 치료를 받아야 했다. 질병의 ‘진단’과 ‘처방’ 체계 뒤 드리워진 어두운 이면을 직시하는 책 두 권이 나란히 출간됐다. 처방약 남용이 낳은 중독 현상을 짚은 ‘중독을 파는 의사들’과 의료계의 확진 과열을 정면으로 비판한 ‘진단의 시대’다. 두 책 모두 빠르고 편리해진 치료 시스템과 수익 추구에 매몰된 의료계, 약간의 통증도 참지 못하는 환자들이 맞물리면서 현대 의학이 마주하게 된 구조적 위기를 들여다본다.‘중독을 파는 의사들’은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정신과 교수인 저자가 실제 겪은 환자 사례를 통해 처방 약에 중독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치과에서 사랑니 수술 뒤 통증 완화용으로 처방받은 마약성 진통제에 중독된 환자, 결절 제거 수술 중 투약된 마약성 진통제 오피오이드가 극심한 금단 증세를 일으켜 재입원을 반복한 환자 등이 사례로 등장한다. 처방이 남용되는 구조적 원인으로는 오랫동안 이윤 창출에 급급했던 의료 시스템이 지목된다. 미 의료학회는 1980년대부터 “통증 환자를 위한 더 나은 치료”를 명목으로 마약성 진통제 사용을 촉구했다. 미 보건복지부 산하 식품의약국(FDA)은 마약성 진통제가 쉽게 승인받는 환경을 만들었다. 저자는 “보험사들이 중독 치료엔 인색한 반면, 통증 완화용 약물 처방에는 상대적으로 관대하다”며 ‘구조적 중독’을 비판한다. ‘진단의 시대’는 질병 진단에 너무나 대수롭지 않아진 현대 사회에 대한 경고장이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부터 유방암까지 여러 질병이 과잉 진단되고 있는 현실을 역시 사례 중심으로 분석한다. 영국에서 20년 넘게 신경과 전문의로 일하고 있는 저자는 “진단이 늘어난 건 질병이 늘었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는 어느 때보다 건강하다”며 “개개인의 신체적, 정신적 차이가 불필요하게 병리화되면서 환자를 생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발병률이 높지 않은 감염성 질환인 ‘라임병’은 과민한 진단 기준으로 인해 애매한 증상만 있어도 라임병으로 진단하기 일쑤다. ADHD 진단에 대해서는 자아를 이해하기 위한 도구를 넘어 자아를 규정하는 꼬리표가 돼 버렸다고 지적한다. 현 상태를 파악함으로써 정서를 회복하는 대신, ‘질병 정체성’의 굴레에 갇혀 더 자주 병원을 찾고 심리적 보상을 얻는 데 그친다는 설명이다. 국내에서도 항우울제, ADHD 등 정신과 약물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미미한 고통과 이상 증세마저 병으로 규정되고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의료의 본래 목적대로 진료와 처방이 환자의 회복과 안녕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처방과 진단의 속도를 늦추고 시스템을 점검해 볼 때가 아닐까. 생각해 볼 거리가 많은 책들이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의 미국판 시리즈 제작에 할리우드 유명 감독 데이비드 핀처(사진)가 참여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21일 미국 영화·텔레비전 산업 연합(FTIA) 웹사이트에 따르면 ‘오징어 게임: 아메리카’ 시리즈 프로듀서 목록에 황동혁 감독과 함께 핀처 감독이 이름을 올렸다. 미국 매체 콜라이더는 “아직 핀처 감독 본인이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이는 오징어 게임 미국판과 관련된 수개월 만의 구체적인 소식”이라고 전했다. 핀처는 영화 ‘파이트 클럽’ ‘세븐’ ‘소셜네트워크’ 등을 연출한 세계적 감독이다. 황 감독은 지난해 12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데이비드 핀처를 정말 좋아한다. (그가 ‘오징어 게임’ 속편을 연출한다면) 무척 기대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FTIA 웹사이트에 따르면 촬영은 내년 2월 26일 시작될 예정이며, 촬영지는 로스앤젤레스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오겜)의 미국판 시리즈 제작에 할리우드 유명 감독 데이비드 핀처가 참여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21일 미국 영화·텔레비전 산업 연합(FTIA) 웹사이트에 따르면 ‘오징어 게임: 아메리카’ 시리즈 제작진 명단에 황동혁 감독과 함께 핀처 감독이 올랐다. 촬영은 내년 2월 26일 시작될 예정이며, 촬영지는 로스앤젤레스(LA)다. 출연진으로는 영화 ‘반지의 제왕’ ‘타르’ ‘캐롤’ 등에 출연했고, ‘오겜 시즌3’ 마지막회에 깜짝 출연하기도 했던 명배우 케이트 블란쳇 등이 기재돼 있다.핀처는 영화 ‘파이트 클럽’ ‘세븐’ ‘소셜네트워크’ 등 작품을 연출하며 세계적 인지도를 얻은 감독이다. 황 감독은 앞서 올 6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데이비드 핀처를 정말 좋아한다. 만약 나에게 요청이 온다면 진지하게 생각해 볼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11일 서울 종로구의 한 공연장. 대형 화면과 컴퓨터, 스마트폰 등에 둘러싸인 퍼포머가 카메라를 응시한 채 움직였다. 그러자 인공지능(AI)이 동작에 맞춘 수십 가지 아바타를 자동 생성했다. 동시에 대형 화면으로도 송출됐다. 퍼포머는 여성이 됐다가 순식간에 남성이 되고, 고양이 요괴로도 변신했다. 쉼 없는 변화에 머리가 멍해질 즈음, 아바타가 허를 찌르는 질문을 던졌다. “우리가 보는 세상만이 유일하게 존재하는 세상인가?”● “창작이 인간만의 영역인가”최근 국내외에선 AI의 발전에 따라 인간과 AI가 공존하는 시대를 일컫는 신조어 ‘제노신(Xenocene)’이 주목받고 있다. 낯선 것을 뜻하는 ‘xeno’와 시대를 일컫는 ‘cene’이 합쳐진 단어다. 인류만이 세상에 영향을 미치던 ‘인류세(人類世)’가 저물고 있단 뜻도 담겼다.예술계에도 이런 인체와 생성형 AI를 실시간 결합하는 퍼포먼스가 갈수록 늘고 있다. 아트코리아랩이 AI 시대 창작을 두고 다양한 담론이 오가는 페스티벌을 연 것도 이 때문이다. 앞서 아트코리아랩 페스티벌에서 행위예술 ‘제노세노’를 선보인 아티스트 클라우딕스 바네식스는 “첨단 기술을 무대 위로 불러오면 등장인물의 심리나 목소리를 예술가 개개인이 구축할 필요가 없다”며 “이제 창작이 과연 인간만의 영역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하지만 최근 AI가 사진이나 영상, 텍스트 등을 인간 창작물과 구별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생성하는 수준에 이르자 예술가들도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 ‘퓨리서치센터’가 6월 성인 남녀 5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인간의 창작물과 AI 생성물을 구별할 자신이 있는가’란 질문에 53%가 “거의 없다”고 답했다. 한 미디어 아티스트는 “밥그릇을 두고 경쟁할 상대가 동료 예술가가 아니라 AI로 느껴질 때가 많다”고도 했다.물론 AI 생성물이 그럴듯해질수록 예술가의 적극적 판단과 개입이 더 중요해질 수도 있다. 시청각 예술 창작집단인 ‘콜렉티브 남산전골’은 “AI는 창작 과정에서 매우 유용하지만, 너무 많은 AI 생성물이 비슷한 질감과 구조를 띤다”며 “예술적 새로움을 구현하려면 인간 창작자의 감각적 개입과 개념적 설계가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했다.● “인간만의 능력은 무엇인가” 이러다 보니 예술계에선 ‘나만의 창작 방식’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늘고 있다. 디자이너 겸 구글 크리에이티브 테크놀로지스트인 샘 로턴은 “반대급부로 대중이 ‘비진정성’에 느끼는 불편함 역시 커지고 있다”며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만의 의미를 찾고 예술로 표현하는 게 더 생산적이고 유리해진 시대가 됐다”고 했다.하지만 AI는 빠르게 고도화하고 예술 영역에서도 점점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에 AI가 ‘개별 창작자’로 인정받는 미래가 그리 머지않았다는 의견도 나온다. 강이연 KAIST 석좌교수는 12일 서울 종로구 아트코리아랩에서 “AI 생성물이 인간의 의도와 설계를 따른다는 생각이 불과 5년 뒤엔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고 예견했다.강 교수는 “예술의 창작 과정이 아닌 결과물에 집중한다면 AI 역시 창작 주체가 된다. 인간 중심적으로 정의된 ‘창의성’의 개념부터 바뀌게 될 것”이라며 “구글과 오픈AI가 아직은 AI를 공동 저작자가 아닌 ‘협력적 파트너(collaborative partner)’로 인정하고 있으나, 그 기조가 계속 이어지리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미 어바나섐페인 일리노이대(UIUC)의 김주형 전기·컴퓨터공학과 부교수도 “과거엔 이족보행을 인간만의 능력으로 여겼지만, 더는 아니지 않느냐”라며 “과연 ‘인간만이 가진 능력’이란 무엇인지 고민해볼 시점”이라고 강조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약 16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목간(木簡·글씨를 쓴 나뭇조각)이 경기 양주 대모산성에서 발견됐다. 사실로 확인될 경우, 기존에 발굴된 목간 중 가장 이른 시기로 알려진 서울 몽촌토성 출토품보다도 100년가량 앞선다. 양주시와 기호문화유산연구원은 “양주대모산성 발굴조사 중 성에서 쓸 물을 모아 두던 집수 시설에서 5세기경 백제시대 것으로 보이는 목간 4점이 출토됐다”고 20일 밝혔다. 목간이 발굴된 지질층은 고구려 장수왕이 한성을 함락한 475년 이전인, 백제가 한성에 도읍을 둔 시기였던 ‘백제 문화층’이다. 목간은 당대 생활사에 관한 기록이 새겨져 있어 역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꼽힌다. 특히 한 목간에는 ‘기묘년(己卯[年])’으로 읽히는 글자가 남아 있어 해당 목간이 제작된 연대가 439년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함께 출토된 토기 조각이 5세기 백제 유물로 보이는 데다, 백제가 오늘날 충남 공주인 웅진으로 천도한 시기가 475년이기 때문이다. 조사단 측은 “2021년 서울 몽촌토성에서 발굴된 목간보다 약 100년 이상 앞선 시기의 문자 자료로 보인다”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간일 가능성이 제기된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목간엔 오늘날 충북 진천 일대로 여겨지는 ‘금물노(今勿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자문에 참여한 한국목간학회는 “그동안 고구려계로 알려진 지명이 백제 문화층에서 나온 목간에서 등장해 연구 가치가 상당하다”며 “양주 일대가 5세기 중반에 백제와 고구려의 치열한 다툼이 벌어졌던 경계였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주검을 뜻하는 ‘시(尸)’ 자 아래 ‘천(天)’ ‘금(金)’ 등 글자 20여 개가 적힌 목간도 발견됐다. 조사단 측은 “점복(占卜)에 쓰인 뼈, 도구가 함께 발견돼 당시 산성 내부에서 ‘제의적 행위’가 이뤄졌음을 짐작하게 하는 단서일 수 있다”고 했다. 양주시와 연구원은 28일 발굴 현장에서 설명회를 열어 목간을 공개하고 조사 성과도 발표할 예정이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약 16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목간(木簡·글씨를 쓴 나뭇조각)이 경기 양주 대모산성에서 발견됐다. 사실로 확인될 경우, 기존에 발굴된 목간 중 가장 이른 시기로 알려진 서울 몽촌토성 출토품보다도 100년가량 앞선다.양주시와 기호문화유산연구원은 “양주대모산성 발굴조사 중 성에서 쓸 물을 모아두던 집수 시설에서 5세기경 백제시대 것으로 보이는 목간 4점이 출토됐다”고 20일 밝혔다. 목간이 발굴된 지질층은 고구려 장수왕이 한성을 함락한 475년 이전인, 백제가 한성에 도읍을 둔 시기였던 ‘백제 문화층’이다. 목간은 당대 생활사에 관한 기록이 새겨져 있어 역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꼽힌다.특히 한 목간에는 ‘기묘년’(己卯[年])으로 읽히는 글자가 남아 있어 해당 목간이 제작된 연대가 439년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함께 출토된 토기 조각이 5세기 백제 유물로 보이는 데다, 백제가 오늘날 충남 공주인 웅진으로 천도한 시기가 475년이기 때문이다.조사단 측은 “2021년 서울 몽촌토성에서 발굴된 목간보다 약 100년 이상 앞선 시기의 문자 자료로 보인다”며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간일 가능성이 제기된다”고 설명했다.또 다른 목간엔 오늘날 충북 진천 일대로 여겨지는 ‘금물노’(今勿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자문에 참여한 한국목간학회는 “그동안 고구려계로 알려진 지명이 백제 문화층에서 나온 목간에서 등장해 연구 가치가 상당하다”며 “양주 일대가 5세기 중반에 백제와 고구려의 치열한 다툼이 벌어졌던 경계였음을 추정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주검을 뜻하는 ‘시’(尸) 자 아래 ‘천’(天), ‘금’(金) 등 글자 20여 개가 적힌 목간도 발견됐다. 조사단 측은 “점복(占卜)에 쓰인 뼈, 도구가 함께 발견돼 당시 산성 내부에서 ‘제의적 행위’가 이뤄졌음을 짐작케 하는 단서일 수 있다”고 했다. 양주시와 연구원은 28일 발굴 현장에서 설명회를 열어 목간을 공개하고 조사 성과도 발표할 예정이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관람객들이 머리에 가상현실(VR) 기기를 쓰자, 대한제국 시대 광화문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자연스럽게 미소 짓는 ‘미스 손탁’의 안내를 따라 걸음을 옮겨 전차에 올라탔다.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육조거리 상인들의 대화를 엿듣다 보니 전차가 멈춰 섰다. 위엄을 풍기며 우뚝 선 근정전 앞. “임금님께 예를 표하라”는 미스 손탁의 말이 귓가를 울리자 관람객들은 신하라도 된 듯 허리를 숙이고 두 손을 공손히 모으며 알현을 준비했다. 11일 서울 종로구 아트코리아랩에서 개최된 ‘2025 아트코리아랩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몰입형 VR 콘텐츠 ‘이머시브 궁’은 풍부한 볼거리를 실감 나게 체험할 수 있는 기회였다. 미스 손탁 등 캐릭터들의 표정과 입 모양은 인공지능(AI)에 바탕을 둔 아바타 자동 생성 기술로 무척 자연스러웠다. 왕실 연회도 실제 한국무용수의 춤을 모션캡처 기술로 본떠 세련되고 근사했다. 높은 완성도와 작품성 덕에 8월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컴퓨터 그래픽 분야 콘퍼런스 ‘시그래프(SIGGRAPH)’에서 ‘최고의 쇼’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머시브 궁’을 제작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아트코리아랩의 입주 기업인 ‘기어이 스튜디오’ 이혜원 대표는 “최신 기술이 복잡하게 사용돼 제작 기간과 비용, 난이도 측면에서 부담이 적지 않다”면서도 “시그래프에서 ‘케이판 데몬 헌터스’ 제작진이 VR 애니메이션용으로 작품을 열렬히 살펴봤다. 그만큼 잠재적 활용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날부터 나흘 동안 열린 페스티벌에는 국내 기술융합예술 장르가 불과 1, 2년 전과 비교해도 훨씬 진일보했다는 인상을 주는 작품들이 가득했다. 연극적 퍼포먼스를 혼합현실(XR) 및 AI와 매끄럽게 결합한 ‘커팅 니플 챌린지’ 시리즈가 대표적. 아트코리아랩 제작 지원을 받아 시각 예술가와 3차원(3D) 모델러, 연극 연출가 등 10명이 힘을 합쳐 만들었다. 덕분에 이달 열린 독일 라이프치히 다큐멘터리 영화제 뉴미디어 부문에 아시아권 창작자로 유일하게 초청받았다. 작품을 총괄한 유지미 작가는 “새로운 기술 트렌드를 접목한 예술을 끊임없이 실험하고 있다”며 “순수예술과 달리 해외에서도 적극 협업하려는 분위기여서 신진 예술가에게는 큰 기회”라고 했다. AI 시대 예술가로서 기술 활용에 대한 깊은 고민이 묻어나는 작품도 눈에 띄었다. ‘플라스피어’는 해저 찌꺼기와 성게, 암석을 합성한 듯 기괴한 이미지들을 관람객에게 내보였다. 경남 통영시 학림도에서 촬영한 ‘플라스티글로머레이트(암석화한 해양 플라스틱 쓰레기)’ 사진을 LoRA(Low-Rank Adaptation) 모델에 먼저 학습시켜 생성형 AI가 왜곡 없이 최종 이미지를 생성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를 만든 ‘콜렉티브 남산전골’은 “단순히 AI로 무엇을 만들지가 아니라, AI 생성 이미지가 갖는 한계를 어떻게 넘어설지를 고민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와 현대자동차 등 협업 가능성을 살피러 온 기업체와 AI 연구자들의 발길도 이어졌다. 현대자동차 제로원 관계자는 “쉽게 바뀌지 않는 기업의 사업 구조도 예술의 혁신성을 통해 바뀔 수 있다고 본다”며 “특히 기술 융합 예술 분야는 연계 가능성도 커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천연기념물인 동물이 죽었을 때 ‘멸실(滅失)’ 대신 ‘폐사(斃死)’라고 표현하는 개정안이 입법 예고됐다. 19일 법제처에 따르면 국가유산청은 이 같은 내용의 ‘자연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일부 개정안을 전날 발표했다. 그동안 유산청이 사용해 온 ‘멸실’은 일반적으로 물건이나 가옥이 재난으로 심하게 파손되거나 멸망함을 뜻해, 생명체에 쓰기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나 농림축산식품부 등도 “짐승이나 어패류가 갑자기 죽음”을 뜻하는 ‘폐사’를 사용하고 있다. 유산청은 개정 이유에 대해 “천연기념물인 동물의 사망을 지칭하는 용어는 멸실보다 폐사가 정확하므로 법률용어 변경을 통해 용어의 정확성과 효율적 적용을 도모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개정안에 대한 의견은 다음 달 29일까지 접수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국가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전국 사찰 가운데 약 65%가 산불에 피해를 입을 위험이 높은 것으로 확인됐다.김동현 전주대 소방안전공학과 교수는 18일 대전에서 열린 ‘기후위기와 문화유산’ 국제 심포지엄에서 이 같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과거 산불 발생 위치와 횟수, 산불 규모 등을 바탕으로 산불 위험 지수를 산출해 주요 사찰 98곳의 위험도를 분석했다. 그 결과 64곳(약 65.3%)의 위험도가 ‘매우 높음’ 또는 ‘높음’으로 나타났다. ‘낮음’은 5곳에 불과했다.김 교수에 따르면 위험 지수가 가장 높은 사찰은 전남 여수 흥국사였다. 고려 명종 대인 1195년 보조국사 지눌이 세웠다고 전해지는 이 절엔 보물 ‘소조사천왕상’과 ‘대웅전 관음보살 벽화’ 등이 보관돼 있다. 경북 칠곡 송림사와 경북 영천 은해사, 충남 논산 쌍계사 등도 ‘매우 높음’ 수준으로 분석됐다. 김 교수는 “최대 2km, 폭 90m 구간에 물을 뿌릴 수 있는 ‘광역 소화 시설’을 마련하는 등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국내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꼽히는 화가 김환기(1913∼1974)의 전면점화(全面點畫)가 미국 경매에서 한국 현대 미술품 경매 사상 두 번째로 높은 금액인 840만 달러(약 123억 원)에 낙찰됐다. 경매회사 크리스티에 따르면 17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20세기 이브닝 세일’에서 김환기의 1971년작 ‘19-VI-71 #206’이 낙찰됐다. 구매자는 수수료를 포함하면 약 151억 원을 지불해야 한다. 이는 한국 미술품의 역대 최고 낙찰가 기록을 갖고 있는 김환기의 ‘우주’(05-IV-71 #200)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가격이다. ‘우주’는 2019년 홍콩 경매에서 약 132억 원에 팔렸다. 역대 3위도 김환기의 작품이다. 또 다른 전면점화인 ‘3-II-72 #220’(1972년)은 2018년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85억3000만 원에 낙찰됐다.‘19-VI-71 #206’은 우주로 팽창하는 듯한 무한한 공간감을 점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가로 254cm에 세로 203cm의 큰 캔버스에 그려 넣은 대작이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국내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꼽히는 화가 김환기(1913∼1974)의 전면점화(全面點畫)가 미국 경매에서 한국 현대 미술품 경매 사상 두 번째로 높은 금액인 840만 달러(약 123억 원)에 낙찰됐다.경매회사 크리스티에 따르면 17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20세기 이브닝 세일’에서 김환기의 1971년작 ‘19-VI-71 #206’가 낙찰됐다. 구매자는 수수료를 포함하면 약 151억 원을 지불해야 한다.이는 한국 미술품의 역대 최고 낙찰가 기록을 갖고 있는 김환기의 ‘우주’(05-IV-71 #200)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가격이다. ‘우주’는 2019년 홍콩 경매에서 약 132억 원에 팔렸다. 역대 3위도 김환기의 작품이다. 또 다른 전면점화인 ‘3-II-72 #220’(1972년)는 2018년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85억3000만 원에 낙찰됐다.‘19-VI-71 #206’는 우주로 팽창하는 듯한 무한한 공간감을 점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가로 254㎝에 세로 203㎝의 큰 캔버스에 그려넣은 대작이다. 크리스티 측은 “비슷한 시기 그려진 김환기의 작품 중 200호(가로세로 259.1X193.9㎝) 이상은 30점 이내로 추정되기 때문에 희소성이 매우 높다”고 설명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5∼6세기 가야 지배층의 무덤에서 출토된 대도(大刀·사진)에 새겨진 글자가 컴퓨터 단층촬영(CT)을 통해 새롭게 드러났다.국립김해박물관은 “경남 창녕 교동 11호분에서 나온 상감명문대도(象嵌銘文大刀·칼 표면에 홈을 낸 뒤 실로 채워 글자를 새긴 칼)를 CT로 재조사한 결과, 금실로 새겨진 명문(銘文)이 ‘上[部]先人貴常刀(상부선인귀상도)’임을 재판독했다”고 17일 밝혔다. 상감명문대도의 명문을 명확히 판독한 건 1990년 처음 판독 이후 35년 만이다. 해당 글자는 크기 5∼8mm로 깨알같이 새겨진 데다 상당 부분이 소실돼 오랫동안 명문의 의미를 놓고 해석이 분분했다. 박물관은 이번 연구를 통해 명문 속 첫 번째 글자는 ‘上’으로 확정했으며, 여섯 번째 글자는 ‘常’일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두 번째 ‘咅’자는 문맥상 원래 ‘部’자였으나 일부가 소실된 것으로 분석했다. 전효수 학예연구사는 “고구려 지역 중 ‘상부’에 소속된 ‘선인’이라는 벼슬에 오른 ‘귀상’이라는 사람의 칼이란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며 “5세기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한반도 남부를 정벌한 정치적 상황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유물”이라고 설명했다.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상감명문대도는 해당 유물을 포함해 현재 3점이 남아 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전남 ‘보성 오봉산 용추동과 칼바위 일원’(사진)과 ‘여수 거문도 수월산 일원’이 국가지정자연유산 명승이 됐다. 국가유산청은 “아름다운 해안 풍광이 있고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은 두 지역을 각각 명승으로 지정했다”고 17일 밝혔다. 보성 오봉산 용추동과 칼바위 일원은 16세기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에도 나오듯 예로부터 경승지로 사랑받았다. 오봉산 일대는 칼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상 등 불교 신앙 유적이 남아 있으며, 온돌문화의 핵심 재료인 구들장 채석지도 잘 보존돼 있어 역사문화적 가치가 상당하다. 여수 거문도 수월산 일원은 탐방로에 울창한 동백나무 숲과 함께 일출 명소로 인기가 높다. 유산청은 “1885년 영국이 러시아의 조선 진출을 견제하기 위해 거문도를 불법 점령한 ‘거문도 사건’이 벌어지는 등 오랫동안 남해안 방어의 요충지로 쓰였다”며 “광나무, 다정큼나무 등 식물종이 다양하고 동박새나 흑비둘기 같은 조류도 서식해 생태학적 가치도 높다”고 설명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인근의 재개발 추진 계획에 대해 국가유산청이 “서울시는 세계유산영향평가(Heritage Impact Assessment·HIA)를 반드시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17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언론 간담회에서 허민 국가유산청장은 “15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로부터 세운4구역에 대해 HIA 실시를 강력히 요구하는 외교 공문을 전달받았다”고 발표했다. 해당 공문에는 HIA를 거쳐 유네스코의 긍정적인 검토가 끝날 때까지 사업 추진을 중지하라는 권고도 담겼다. 허 청장은 “17일 오전 이러한 내용을 서울시에 전달했다”며 “빠른 시일 내 조정 회의를 꾸릴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HIA는 세계유산협약 당사국들이 유네스코 지침에 따라 준수하는 국제 수준의 보존관리 제도다.13일 종묘를 ‘세계유산지구’로 지정한 데 이어 세계유산법 하위 법령을 구체화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앞서 유산청은 종묘를 중심으로 한 서울 종로구 훈정동 1-2 등 91필지를 ‘세계유산지구’로 지정했다. 이은복 세계유산정책국장은 “다음 달 세계유산지구 지정 행정절차를 마무리한 뒤 법령에 근거해 HIA 실시를 재요청할 것”이라며 “법적·행정적 기반도 없이 HIA 이행을 요구했다는 서울시 주장을 제도적으로 보완하려는 취지”라고 말했다. 다만 재개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강조하기도 했다. 허 청장은 “유산청이 오로지 보존만을 좇는다는 것은 오해”라며 “서울시민과 국가의 미래세대를 위해 공존 가능한 개발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지난달 30일 고시를 통해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세운4구역의 건축물 최고 높이를 기존 70m에서 145m(청계천 쪽 기준)로 상향한 바 있다. 이달 6일 대법원은 문체부가 제기한 소송에서 국가유산청과 협의 없이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밖에서의 개발 규제를 완화한 서울시 조례 개정이 유효하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내 영화 속 인물들은 도피자보다는 ‘표류자’다.” 프랑스 영화평론가인 저자가 독일의 세계적인 영화감독 크리스티안 페촐트에게 “도피는 감독님 시나리오의 기본 요소”라고 말하자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이어 페촐트는 “1970년대 아버지가 석유 파동으로 실직자가 되면서 일터에서도 집안에서도 표류했던 기억이 강렬하다”며 “그런데 당시 아버지는 절망과 행복을 동시에 느낀 것 같다. 우리 모두 표류를 두려워하는 동시에 열망하지 않는가”라고 되물었다. 영화 ‘바바라’ ‘운디네’ ‘어파이어’ 등으로 예술성을 인정받은 페촐트의 작품 세계를 인터뷰와 비평을 통해 깊이 있게 들여다본 책. 다소 난해하기도 한 그의 작품을 본격적으로 다룬 도서가 국내에 드물기에 더 눈길을 끈다. 각 장 마지막엔 페촐트가 쓴 짤막한 에세이가 실려 그의 사회적, 미학적 관점을 엿볼 수 있다. 책은 저자와 페촐트가 2017년부터 2023년까지 6년간 6번에 걸쳐 나눈 인터뷰를 토대로 쓰였다. 페촐트의 작품에 꾸준히 출연하고 있는 니나 호스, 파울라 베어 등 여성 배우와의 협업 계기 등도 짚었다. 특히 그의 영화를 본 관객이 품을 법한 의문을 해소해줄 만한 대목이 많다. 주인공 대부분이 범죄자인 이유에 대해서는 뭐라고 설명했을까.“범죄에는 해방에 대한 열망이 담겨 있어요. 이 관계에서 벗어나고 싶고, 부자가 되고 싶고…. 제 영화는 범죄가 ‘온전하게 인간적일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합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1987년 세상을 떠난 이한열 열사의 유품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메달 등이 ‘예비문화유산’이 됐다. 국가유산청은 “문화유산위원회 가결로 ‘이한열 최루탄 피격 유품’ 등 근현대문화유산 10건을 최초의 예비문화유산으로 선정했다”고 12일 밝혔다. 예비문화유산은 만들어진 지 50년이 안 된 문화유산 중 보존 가치가 높은 것을 선정해 관리하는 제도다. 지난해 9월 시행됐는데, 실제 목록이 발표된 건 처음이다. 이 열사 유품은 “오늘날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사의 중요한 상징물”로 평가됐다. 이 밖에 김 전 대통령이 2000년 한국인 최초로 수상한 ‘김대중 노벨 평화상 메달 및 증서’도 예비문화유산으로 선정됐다. 법정 스님이 생전 수행하며 썼던 의자도 ‘법정 스님 빠삐용 의자’란 이름으로 목록에 올랐다. 1976년 스님이 땔나무로 손수 만든 뒤 영화 ‘빠삐용’에 착안해 이름 붙였다고 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강아지똥’ 등 우리나라 동화책이 동티모르의 교육 소외 지역에 보급됐다.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동티모르 수도 딜리 인근의 지역학습센터에 한국 어린이 도서 150권을 보급했다”고 12일 밝혔다. 해당 사업은 교육 접근성이 비교적 낮은 동티모르의 학습 환경을 개선하고 독서 문화를 보급하고자 마련됐다. 개발협력 시민사회단체인 글로벌이너피스가 협력했다. 책은 다양성과 평화, 환경 등 UN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에 부합하는 아동·청소년용 도서로 추려졌다. 권정생 작가의 ‘강아지똥’, 백희나 작가의 ‘구름빵’, 윤여림 작가의 ‘우리는 언제나 다시 만나’ 등이 포함됐다. 한국어 학습자를 위해 동티모르 현지어인 테툼어와 한국어가 나란히 쓰였다.위원회 측은 “동티모르에서는 많은 주민이 평생 한 권의 책도 갖지 못한 채 살아가기도 한다”며 “지역사회의 학습, 문화 기반을 세우고 한국 문학을 동티모르에 소개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인근에 높이 140m가 넘는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서울시가 최근 정비계획을 변경한 것에 대해 문화유산 관련 단체 33곳이 철회를 촉구했다.한국고고학회, 한국도시사학회 등 27개 학회와 국가유산보존기술협회 등 6개 협회는 12일 서울 중구 상연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계유산 종묘의 하늘과 시야를 가리는 고층 개발의 시도를 단호히 규탄한다”며 “서울시는 종묘에 인접한 지역 건물 층고를 상향하는 규제 완화를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이들은 이날 공동으로 발표한 성명에서 “서울 도심 안에 자리하고 있는 종묘가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은 주변 난개발을 자제하면서 경관과 아울러 문화유산을 보존하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단순히 개발 이익과 관련된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과제로 생각하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번이 나쁜 선례가 돼, 5대 궁궐과 조선왕릉 주변도 거대한 콘크리트 숲에 둘러싸일지 모른다는 우려가 크다”고 덧붙였다.한국건축역사학회 소속 이연경 연세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종묘에 대해 “건물뿐 아니라 종묘제례라는 무형유산까지 함께 보존된 곳”이라며 “조선의 수도 한양이 생겨난 역사적 맥락까지 보존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서울시에는 “종묘 주변 개발 사업계획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종묘의 경관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한 건물 배치와 높이의 기준을 새로 마련할 것” 등을 요구했다. 또 향후 종묘 주변 개발 진행 경과에 따라 추가 입장을 내거나 학술 행사 등을 여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역사와 고고, 민속학 관련 학회와 문화유산 관련 협회가 모여 입장을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서울시는 지난달 30일 고시를 통해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세운4구역의 건축물 최고 높이를 기존 70m에서 145m(청계천 쪽 기준)로 상향한 바 있다. 이달 6일 대법원은 문체부가 제기한 소송에서 국가유산청과 협의 없이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밖에서의 개발 규제를 완화한 서울시 조례 개정이 유효하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1987년 세상을 떠난 이한열 열사의 유품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메달 등이 ‘예비문화유산’이 됐다.국가유산청은 “문화유산위원회 가결로 ‘이한열 최루탄 피격 유품’ 등 근현대문화유산 10건을 최초의 예비문화유산으로 선정했다”고 12일 밝혔다. 예비문화유산은 만들어진 지 50년이 안 된 문화유산 중 보존 가치가 높은 것을 선정해 관리하는 제도다. 지난해 9월 시행됐는데, 실제 목록이 발표된 건 처음이다.이 열사 유품은 “오늘날 대한민국 민주화 운동사의 중요한 상징물”로 평가됐다. 이밖에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한국인 최초로 수상한 ‘김대중 노벨평화상 메달 및 증서’도 예비문화유산으로 선정됐다. 법정 스님이 생전 수행하며 썼던 의자도 ‘법정스님 빠삐용 의자’란 이름으로 목록에 올랐다. 1976년 스님이 땔나무로 손수 만든 뒤 영화 ‘빠삐용’에 착안해 이름 붙였다고 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지난달 17일 전북 무주. 가을철 단풍으로 이름난 적상산 인근에선 MZ세대(밀레니얼+Z세대) 20명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9월 ‘반딧불 축제’가 끝나 다소 관광객이 주춤할 시기였지만, 이날부터 사흘간 이어진 ‘무주 나이트 살롱’을 즐기려 전국에서 여행객들이 찾아왔다. 이 독특한 이름의 무주 여행은 17∼18세기 함께 문화와 예술을 즐기던 프랑스 살롱 문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실제로 예술가들과 함께하며 공연과 식도락 등을 즐기는 ‘런케이션’(Learn+Vacation·배우는 휴가) 프로그램이다.‘무주 나이트 살롱’에 참가한 청년들은 무주에서 나고 자란 크리에이터 송광호 씨의 안내를 받으며 고 정기용 건축가(1945∼2011)의 ‘무주 프로젝트’ 건축물을 둘러봤다. 일러스트레이터 카콜과 함께 무주 풍경을 그려 보기도 했다. 적상산을 바라보며 맛본 지역 막걸리는 여행의 화룡점정. 한 참가자는 “무주 하면 리조트가 떠올랐는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진짜 ‘무주’를 만난 것 같다”고 했다. 최근 무주는 이런 참신한 여행 콘텐츠가 늘며 지역도 큰 활기를 띠고 있다. 스키 리조트나 반디랜드 등 기존 관광지는 계절을 타는 경향이 없지 않다. 하지만 근래 무주의 자연과 이야기를 활용한 상품이 많아지며, 사시사철 즐기는 여행지로 주목받고 있다. 장기진 무주군 관광정책팀장은 “신개념 관광 상품이 여행객들의 심리적 장벽을 허무는 계기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외국인 여행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프로그램도 있다. 무주 산골의 일상을 경험하는 ‘산산한 하루’가 대표적이다. 12년 전 귀향한 청년 부부가 운영하는 파머스에프앤에스가 현지의 ‘진짜 삶’을 진정성 있게 보여 주려고 만들었다. 실제로 6일 ‘산산한 하루’에 참여한 일본인 관광객들은 직접 빨갛게 익은 사과를 따고 무도 뽑았다. 저녁 식탁에선 농부의 설명을 들으며 손수 마련한 식재료로 만든 요리를 맛봤다. 이 프로그램들은 모두 한국관광공사 ‘BETTER里(배터리)’ 사업의 지원을 받아 마련됐다. 이 사업은 인구감소 지역에 여행 스타트업을 유치해 새로운 관광 동력을 보태는 게 목표. 2023년부터 경북 영주, 충북 제천 등 7개 지역에서 진행됐으며, 올해 무주와 경기 가평 등이 새롭게 참여했다. 참여 스타트업은 뭣보다 지역 특색을 살린 관광 문화를 정착시키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산골낭만 주식회사’는 지역에서 전승되는 민속놀이 ‘무주 안성낙화놀이’를 활용한 콘텐츠를 선보였다. 주민들이 마을의 안녕을 기리는 불꽃놀이로, 여행객들이 신나는 ‘무주의 밤’을 즐길 수 있다. ‘BETTER里’ 사업에 참여한 뒤 무주 청년 2명을 고용했다는 파머스에프앤에스의 서선아 부대표는 “지원 사업을 버팀목 삼아 신규 프로그램 개발, 인력 확대 등 다양한 도전을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런 노력 덕분일까. 지난달 무주군 무주읍은 “지역 주민이 주도하는 관광 생태계 형성” 등을 인정받아 유엔 세계관광기구(UNWTO)가 선정하는 ‘최우수 관광마을’로 뽑혔다. 강종순 관광공사 팀장은 “청년이 주도하는 기업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활발히 협업하면서, 지속 가능한 관광 산업을 구축하도록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다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