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윤

이지윤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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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장바구니에 담은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leemail@donga.com

취재분야

2026-04-25~2026-05-25
미술32%
역사22%
문화 일반18%
인사일반13%
문학/출판9%
음악4%
언론2%
  • 풍요로운 욕망 속에 자리잡은 허무함

    16, 17세기 유럽 부유층과 학자들은 세계의 온갖 진귀한 박물(博物)을 긁어 모았다. 이를 오늘날 박물관의 시초로도 여겨지는, 이른바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에 보관했다. 그 안에는 열대 바다의 화려한 조개껍데기와 동아시아에서 온 도자기, 희귀한 곤충 표본 등 그야말로 세상 모든 것이 있었다.서울 영등포구 더현대 서울 ALT.1 미술관에서 열리는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톨레도 미술관 명작전’에 전시된 ‘과일, 꽃, 조개껍데기’는 ‘호기심의 방’의 회화 버전이라고 봐도 손색없다. 튀르키예를 통해 유럽에 전해진 튤립, 밀림의 새빨간 앵무새, 중국 청화백자 등 이국적인 생물과 소품으로 가득하다. 각각이 겹치지 않게끔 따로따로 배치해, 마치 수집품 진열장을 들여다보듯 면밀히 살피게 된다.이 그림은 생생한 묘사와 색채의 향연으로 정평이 난 네덜란드 화가 발타사르 판 데르 아스트(1593∼1657)가 1620년대에 그렸다. 당대 네덜란드는 세계를 무대로 무역망을 구축했고 천문학과 자연사, 물리학 등 과학혁명의 산물을 적극 받아들였다. 아마추어 자연 연구가와 수집 애호가들은 표본 수집을 넘어 앵무새나 도마뱀 같은 이국적인 생물을 반려동물로 기르기도 했다고 한다.다만 판 데르 아스트는 정물화를 통해 이 같은 경제적 풍요 이면의 도덕적 성찰까지 짚어내려 한 듯하다. 작품을 소장한 미국 털리도(톨레도) 미술관은 “화려한 꽃 사이 배치된 시든 잎이나 곤충은 세속적 가치의 유한함과 죽음의 필연성을 경고하는 윤리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며 “화가는 사물 묘사를 넘어 화려한 번영 뒤에 숨은 인생의 허무함을 투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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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6년 발간된 첫 ‘한글 해부학 교과서’ 국가등록문화유산 된다

    한글로 쓰인 우리나라 최초의 해부학 교과서가 국가등록문화유산이 된다.국가유산청은 “1906년 근대 서양식 의료기관인 제중원에서 간행된 ‘해부학(제중원 한글의학교과서)’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했다”고 14일 밝혔다. 인체 구조와 기능을 과학적·체계적으로 설명한 ‘해부학’은 의학용어를 한자나 외래어가 아닌 ‘밥통(위)’ 등 순우리말로 풀어 썼다. 당시 세브란스 병원의학교와 여러 선교 의료기관에서 교재로 사용했다. 유산청은 “서양 의학이 국내에 도입되던 초기 교육 실태를 보여주고, 근대 의학 지식이 대중화되는 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고 설명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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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일, 꽃, 앵무새와 시든 잎…“화려함 뒤 인생의 허무함 투영”

    16, 17세기 유럽 부유층과 학자들은 세계의 온갖 진귀한 박물(博物)을 긁어모았다. 이를 오늘날 박물관의 시초로도 여겨지는, 이른바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에 보관했다. 그 안에는 열대 바다의 화려한 조개껍데기와 동아시아에서 온 도자기, 희귀한 곤충 표본 등 그야말로 세상 모든 것들이 있었다. 서울 영등포구 더현대 서울 ALT.1 미술관에서 열리는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톨레도 미술관 명작전’에 전시된 ‘과일 꽃 조개껍데기’는 ‘호기심의 방’의 회화 버전이라고 봐도 손색 없다. 튀르키예를 통해 유럽에 전해진 튤립, 밀림의 새빨간 앵무새, 중국 청화백자 등 이국적인 생물과 소품으로 가득하다. 각각이 겹치지 않게끔 따로따로 배치해, 마치 수집품 진열장을 들여다보듯 면밀히 살피게 된다.이 그림은 생생한 묘사와 색채의 향연으로 정평 난 네덜란드 화가 발타사르 판 데르 아스트(1593~1657)가 1620년대에 그렸다. 당대 네덜란드는 세계를 무대로 무역망을 구축했고, 천문학과 자연사, 물리학 등 과학혁명의 산물을 적극 받아들였다. 아마추어 자연 연구가와 수집 애호가들은 표본 수집을 넘어 앵무새나 도마뱀 같은 이국적인 생물을 반려동물로 기르기도 했다고 한다.다만 판 데르 아스트는 정물화를 통해 이같은 경제적 풍요 이면의 도덕적 성찰까지 짚어내려 한 듯하다. 작품을 소장한 미국 털리도(톨레도) 미술관은 “화려한 꽃 사이 배치된 시든 잎이나 곤충은 세속적 가치의 유한함과 죽음의 필연성을 경고하는 윤리적 메시지를 담고 있다”며 “화가는 사물 묘사를 넘어 화려한 번영 뒤에 숨은 인생의 허무함을 투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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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벼슬 없는 선비에 금관조복… ‘빼앗긴 나라’ 충절 그렸다

    푸르게 곧추선 소나무 한 그루 곁에 금관을 쓴 남자가 서 있다. 조선시대 고위 관료가 설날이나 경축일, 종묘사직에 제사 지낼 때 입던 붉은 조복(朝服)을 입은 채다. 양손에 임금을 만날 때 드는 홀(笏)을 쥐고서 정면을 응시하는 눈빛이 강직하다. 주변으로는 화사한 봄꽃이 산길 곳곳에 작게 장식돼 있다.조선 태조와 고종 등의 어진을 그린 것으로 유명한 초상화가 석지 채용신(石芝 蔡龍臣·1850∼1941)은 1916년 4월 유학자 이덕응(1866∼1949)의 초상화를 그렸다. 전북 유형문화유산인 이 그림이 그려진 건 이덕응이 51세 때. 이덕응은 덕흥대원군의 후손이자 독립운동가 연재(淵齋) 송병선의 제자로, 일제강점기 고종을 향해 망배(望拜·조상, 부모 등을 그리워하며 올리는 절) 의식을 치르고 후학 양성에 힘쓰면서 조국에 충절을 바친 인물로 알려져 있다.그런데 이 초상화엔 의아한 점이 두 가지 있다. 실제 이덕응은 관직에 오르지 못했기에 고관의 전유물인 조복을 입을 일이 없었다. 1895년 복제 개혁을 거치면서 금관조복은 공식적으로 폐지되기까지 했다. 게다가 조선시대 일반적인 초상화가 실내를 배경으로 그려진 것과 달리 야외 풍경 속에 놓여 있다. 이 유학자는 어쩌다 뜬금없는 복장과 장소로 초상화에 기록된 것일까.12일 ‘제15회 국립중앙박물관회 학술상’에서 최우수상 격인 천마상으로 선정된 논문 ‘밖으로 나온 초상: 1916년 이덕응 초상에서 금관조복과 산수의 의미’는 바로 이런 의문점들을 분석한다. 적격한 후보가 없으면 수상자를 선정하지 않는 천마상이 수상자를 배출한 건 2014년 이후 12년 만이다. 심사 과정에서 “초상화 연구를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논문에 따르면 이덕응 초상은 단순한 인물 기록화가 아닌, 이른바 ‘이미지 메이킹’을 의도한 전략적 도구였을 가능성이 크다. 조선시대 초상화에서 금관조복은 국왕과의 긴밀한 관계를 강조하는 상징물로 여겨졌다. 비록 이덕응은 관직을 지내지 않았으나, 일제강점기 조국과 고종황제를 향한 충심을 시각적으로 표현해 “자기 정체성과 서사를 강화”했다는 분석이다. 논문을 쓴 민길홍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사진)은 12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동아일보와 만나 “이 그림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이덕응은 전북 진안 화양산에 황단(皇壇)을 차려 고종에게 의식을 거행하는 인물로서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며 “초상화 속 산수는 기록상 확인되는 옛 황단 모습과 흡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채용신은 여러 면에서 기존 초상화 양식을 깨면서 새로운 양식을 개척했다. 조선의 초상화는 인물 외형 기록에 집중하는 탓에 보통 배경은 텅 빈 실내가 대부분이었다. 바닥에 화문석(花紋席)을 까는 정도였다. 반면 채용신은 야외를 배경으로 택했다. 주인공이 지닌 물건도 이덕응 초상을 기점으로 기존 흉배나 허리띠에서 안경, 홀, 부채 등으로 다양해진다. 국립전주박물관 학술총서 ‘석지 채용신 초상화’에 따르면 당대 채용신은 초상화 주문자가 직접 옷과 소품, 자세를 고르도록 선택지를 제시했다고 한다.19세기 이후 초상화는 정세 혼란, 사진 도입 등 영향으로 급감했다. 하지만 이처럼 서사화된 초상화는 당대에 초상화 수요가 시들해진 가운데서도 독보적인 입지를 점했을 것으로 보인다. 민 연구관은 “인물을 사실적으로 재현할 사진 기술이 도입된 시기에 채용신은 사진기가 담아낼 수 없는 영역을 활용해 초상화를 특화하고 상업적으로도 전략화했다”고 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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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5년간 역사적 상흔 화폭에 남들 뭐라해도 내 존재방식… 그동안 고생 위로받는 기분”

    “45년 작가 인생에서 제대로 주목받아 본 건 처음입니다. 주변에선 ‘아직도 똑같은 거 그리고 있냐. 캔버스가 아깝다’고도 했죠. 하지만 분단이 남긴 상흔을 자꾸만 이야기하는 것, 그건 내 존재 방식이에요. 그간의 고생을 박수근 선생에게 위로받는 기분입니다.”미술 작가 손기환 씨(70)가 제11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로 13일 선정됐다. 동아일보와 강원 양구군, 강원일보가 공동 주최하고 양구군립박수근미술관과 박수근미술상운영위원회가 주관하는 이 상은 박수근 화백(1914∼1965)의 예술 정신을 기리고자 2014년 제정돼 2016년 제1회 수상 작가를 배출했다.손 작가는 목판화와 만화, 네오팝 등 대중 친화적인 형식을 끊임없이 시도하면서 한반도 분단과 전쟁, 일상 속 권력 등에 관한 묵직한 사유를 제시해 왔다. 심사위원장인 이지호 전남도립미술관장은 “동시대적인 화법(畫法)을 통해 근현대사의 균열과 아픔을 여러 각도로 탐색하는 손 작가의 작품 세계는 박수근이 보여준 서민적 삶에 대한 공감과 소박한 현실미를 계승하고 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8일 경기 안성 시내에서 차로 10km쯤 더 들어간 한갓진 마을에 있는 작업실에서 만난 손 작가는 ‘멍울이 느껴지는’ 소회를 밝혔다. 오래된 쌀 창고를 개조한 작업실에서 평소 즐겨 쓰는 원색의 물감통과 세월이 담긴 수집품들 가운데 마주 앉은 그는 “아직도 수상 사실에 얼떨떨하다”고 했다. 이어 “1985년 공수부대원의 훈련 장면을 그린 ‘타타타타!!’가 경찰에 압수돼 뉴스에 난 뒤로 세간의 관심은 처음”이라며 “보람과 부담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고 털어놨다. 손 작가는 1980년대 한국 민중미술의 흐름 속에서 예술 인생을 시작했다. 홍익대 서양화과에 재학 중이던 1982년 국립현대미술관 단체전으로 정식 데뷔했다. 이후 동시대 정치 사회 현실을 비판하는 팝아트 그림과 목판화를 다수 발표했다. “일상적 풍경 이면의 구조적 문제, 정치적 함의를 절제된 방식으로 드러내는 손기환의 작업은 박수근의 현실 인식 방식과 상응한다”는 심사평도 이와 무관치 않다.6·25전쟁과 민주화운동 등 “반복되는 역사와 현재의 불안”은 손 작가의 오랜 화재(畫材)이자 삶의 화두. 세상을 떠난 부친은 이북에 가족을 둔 실향민이었고, 손 작가가 비무장지대(DMZ)에서 군 복무하며 목격한 무력 충돌은 후유증을 남겼다. 팝아트와 목판화는 묵직한 화두를 비교적 친근하게 꺼낼 판이 돼줬다. 목판화는 현재 영국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팝아트 기반 회화는 서울시립미술관 등에 소장돼 있다. “역사적 갈등이 남긴 상처가 지금도 사회 곳곳에 잔존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분단문학은 있어도 ‘분단미술’은 없으니 나라도 끝까지 붙잡고 있어야지요.” 그림의 소재는 한길을 걸었지만, 형식적 실험은 끊이지 않았다. 딱지본 표지와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 사진, 선전물 등을 폭넓게 참고하며 수십 년간 회화 형식을 발전시키는 데 몰두했다. 작업실 한쪽 벽면을 빼곡히 채운 고전 애니메이션 레이저디스크(LD)와 눈길 닿는 구석구석 붙여둔 판촉물, 포스터 등 자료는 자기 혁신적 변주에 대한 열정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그중 가장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시도는 만화적 연출이다. 손 작가의 그림에는 마블 코믹스의 ‘캡틴 아메리카’처럼 익숙한 캐릭터가 등장하고, 컷 분할이나 압축적 장면이 적극 활용돼 시선을 잡아끈다. 그는 “어떻게 하면 관람객에게 더 가까워질지 고민한 결과”라며 “어린 시절 부모님 몰래 저금통을 털어 읽었을 만큼 만화책을 좋아했던 영향도 크다”고 했다. 최근엔 안성 작업실과 전남 해남군의 작가 레지던시를 오가며 신작을 만드는 데 매진하고 있다. ‘땅끝마을’이 있는 해남에서 일생의 화두는 재차 부풀고 있다. 그는 “한반도 최남단이라는 장소성과 분단의 문제를 연결 지어 보려 노력 중”이라고 했다. 관람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인간적인 형식’에 대한 고민도 크다. 인공지능(AI)을 비롯한 기술 발전은 ‘그림은 반드시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구축돼야 한다’는 손 작가의 신념에 균열을 냈다. 고심의 손길이 닿은 작품들은 내년 5월 강원 양구군 박수근미술관에서 열리는 수상작가전에서 선보여질 예정이다. 제11회 박수근미술상은 운영위원회(위원장 김성호 성신여대 초빙교수)가 추천위원 7명을 위촉했고, 추천위원이 후보 7명을 선정한 뒤 심사위원회를 거쳐 수상자를 선정했다. 운영위원회는 김성호 위원장을 비롯해 고원석 라인문화재단 디렉터, 김주원 한빛교육문화재단 이사, 박남희 백남준아트센터 관장, 박진흥 박수근미술관 명예관장, 변종필 서귀포공립미술관장 등이 맡았다. 올해 박수근미술상 시상식은 28일 양구군 박수근미술관 야외공원에서 열린다.안성=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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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가정폭력 벗어나는 길 ‘가족과의 절연’

    가정의 달이라지만 아동학대, 부부폭력 뉴스가 무참히도 연일 쏟아진다. ‘집안일’이란 명목 아래 묻히고 마는 가정폭력은 더욱 많다. 가족이란 이유만으로 평생 이런 상황을 견뎌야만 할까.책은 ‘가해 가족과 연결된 마지막 다리를 무너뜨리는 것’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가족이 가장 안전하고 따뜻한 공간’이라는 통념은 “터무니없는 신화”에 불과하며, 건강한 거리 두기가 축복이 될 수 있다는 제안이다.저자는 30여 년 경력의 미국 출판 편집자이면서 “우리 집이 정상적이라는 착각이 나를 침묵하게 했다”고 밝힌 가정폭력 피해 생존자이기도 하다. ‘절연’을 충동적 파괴 혹은 도의를 등진 행위가 아닌 생존의 첫 단계로 바라보고,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이들을 돕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한다.책에는 학대와 트라우마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상태를 진단하고, 필요하다면 관계를 끝낼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 담겼다. 학대자의 잘못을 목록으로 작성해 보고, 학대자가 관계를 이어가고자 한다면 지켜야 할 규칙을 정해 알리는 식이다. 저자는 “어린 시절 주입돼 자신을 끊임없이 질책하고 비난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차단하는 것도 관건”이라고 말한다.그렇다고 ‘득이 되지 않는 가족 관계는 모조리 단절하라’는 건 아니다. 풍부한 사례를 바탕으로 적절한 거리 두기와 상담 치료 등 여러 대안도 제시한다. 학대자가 규칙을 따른다면 그와 화해할 수도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최우선시할 것은 “타인의 기대가 아니라 자신의 안전과 존엄”임을 강조한다.절연 이후 찾아오는 상실감과 죄책감까지도 세심하게 다뤘다. 내면에 뿌리내린 ‘피보다 진한 것은 없다’는 관념은 절연을 자책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생물학적 가족이 아니더라도 마음을 기댈 ‘우리 종족’, 즉 선택적 가족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어쩌다 그런 고통을 겪게 된 우리가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은 가정폭력 너머 각종 친밀한 폭력에 놓인 적 있는 이들에게 따스한 위로가 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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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앙일보, ‘M&A 매각설’ 유포자 고소… 중앙그룹, 차입금 부담에 중앙일보-JTBC 사옥 매각 추진

    중앙일보가 8일 자사의 인수합병(M&A) 매각설을 허위로 작성해 유포한 성명불상자를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 혐의로 서울 마포경찰서에 고소했다.중앙일보에 따르면 6일 오후 ‘중앙일보가 M&A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는 취지의 메시지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등을 통해 유포됐다. 중앙일보는 해당 오픈채팅방에 불특정 인원 1600여명이 참여하고 있었고, 이후 다수의 다른 채팅방 등으로 같은 내용이 2·3차 유포됐다고 설명했다. 중앙일보 측은 “회사와 일체 관련이 없는 명백한 허위 사실에 해당한다”며 “전파 가능성이 큰 오픈채팅방에 마치 기정사실인 것처럼 허위 사실을 적시해 회사가 심각한 내부 경영 위기나 지배구조의 불안정을 겪는 것처럼 오인하게 만들었다”고 밝혔다. 한편 중앙그룹은 중앙일보·JTBC 사옥 등 핵심 자산의 매각을 추진하기로 했다. 재무구조 악화로 신용등급이 하향된 중앙그룹이 핵심 부동산을 매각해 자산 유동화에 나서는 것으로 보인다.투자은행(IB) 및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중앙그룹은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중앙일보 빌딩과 JTBC 빌딩, 경기 고양시 JTBC스튜디오 일산 등 3개 자산을 매각하기 위한 자문사로 컬리어스인터내셔널코리아를 선정했다. 중앙그룹은 3개 자산을 묶어 5000억 원대에 파는 것을 희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사옥을 판 뒤 그곳을 다시 임차하는 ‘세일 앤 리스백(Sale & Leaseback)’ 방식으로 거래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자산을 처분해 현금을 확보하면서도 기존 업무 공간은 그대로 사용하겠다는 것이다.중앙그룹이 사옥 매각에 나선 것은 재무 부담 때문으로 풀이된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중앙일보는 계열사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2022년 말 1130억 원이었던 순차입금이 지난해 말 기준 2583억 원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부채비율(총부채를 자기자본으로 나눈 값)은 182.2%에서 312.9%로 높아졌다. JTBC, 콘텐트리중앙 등 계열사에 대한 보증 규모는 지난해 말 2250억 원이었다. 한국신용평가는 4월 20일 내놓은 보고서에서 중앙일보 회사채 신용등급을 ‘BBB/안정적’에서 ‘BBB/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권혁민 한국신용평가 수석애널리스트는 보고서에서 “과중한 재무 부담과 계열사에 대한 지원 부담 등을 감안할 때, 신용등급 전망은 부정적”이라며 “차입 및 보증 규모 확대, 금리 상승에 따른 이자 비용 증가로 재무구조 개선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이에 대해 중앙홀딩스 측은 “재무 건전성을 개선하고 핵심 사업에 대한 투자 여력을 확보하려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다만 자산 유동화와 관련된 구체적인 사항은 확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 2026-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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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성대군 굿당의 ‘무신도’ 국가유산 된다

    세종대왕의 여섯째 아들인 금성대군(錦城大君)을 모신 굿당의 ‘무신도(巫神圖·무속 신앙의 신을 그린 그림)’가 국가민속문화유산이 된다. 국가유산청은 “전남 나주 금성산의 산신 ‘금성대왕(錦城大王)’과 금성대군을 함께 모신 서울 은평구 금성당(錦城堂)의 무신도를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 예고했다”고 6일 밝혔다. 금성당은 원래 금성대왕을 모시다가 이후 금성대군까지 모신 것으로 알려졌다. 굿당 내에 봉안돼 있던 무신도는 안료 분석 결과 1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당시 제의에도 사용돼 유·무형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지금은 서울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금성당 무신도엔 맹인도사와 맹인삼신마누라 등 인간의 운수와 질병을 관장하는 신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얼굴형은 둥글게, 손가락은 길고 복스럽게 표현돼 불교 회화를 제작하던 화승(畫僧)이 그렸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유산청은 “지금까지 알려진 19세기 무신도가 매우 드물어 희소성이 크다”며 “음영법을 활용한 풍부한 입체감 등은 일반 무신도에 비해 높은 수준의 묘사력을 보여준다”고 지정 이유를 설명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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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관 80돌 국립민속박물관, 세계로 ‘창’ 활짝

    “박물관은 더 이상 자국 문화만 자랑하거나 다른 문화를 전리품처럼 전시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비슷하면서도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서로를 연결하는 공공의 장이 돼야 합니다.” 국립민속박물관(민박)이 개관 80돌을 맞아 지난달 24일 열린 기념식에서 장상훈 관장은 ‘세계로 열린 창’이 민박의 새 목표라고 밝혔다. K컬처가 세상을 움직이는 오늘날, 박물관이 단지 민족문화 보존 역할에 머물러선 안 된다는 것. 장 관장은 2031년 개관하는 세종시 민박 신관에 세계 민속을 전담하는 상설전시관을 마련할 계획을 밝히면서 “역사적으로 세계 문화의 중심이었던 나라들은 타 문화의 이해와 수용에 인색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민족 넘어 세계 문화로 확장 1946년 4월 ‘국립민족박물관’이란 이름으로 첫발을 뗀 민박은 최근 국제 문화 플랫폼으로 영역을 넓히는 모양새다. 지난해부터는 세계 각지의 유서 깊은 축제 문화를 조사하고 있다. 올해 파주관에서 브라질 삼바와 리우 카니발을 소개하는 기획전을 3개월간 열었고, 페루 ‘태양의 날’ 축제도 쿠스코역사박물관과 함께 조사하고 있다. 세계문화박물관으로의 변모는 박물관이 옛것을 보존하는 동시에 “문화 다양성과 상호 이해를 증진하는 곳이 돼야 한다”는 최근 세계적인 흐름과도 관련이 깊다. 전 민박 관장인 천진기 무형문화유산위원회 위원장은 “타 문화를 이해 못 해 벌어지는 지구적 비극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박물관이 제시해야 한다”면서 “우리도 진정한 세계의 주인공이 되려면 ‘K컬처가 최고’란 관점을 넘어 다문화 이해를 도모할 때”라고 했다. 해외 주요 민속학·인류학 박물관들도 다문화 전시와 연구에 천착하고 있다. 프랑스 인류학박물관은 지난해 특별전 ‘이주, 인류의 오디세이’를 열고 선사시대 고인류의 이주부터 현대 난민의 망명에 이르는 움직임을 조명했다. 영국박물관은 전쟁과 디아스포라를 주요 의제로 삼고 지난해 상설전시관 내 ‘수단: 갈등과 공동체, 돌봄’ 공간을 마련했다. 런던의 수단 출신 전문가와 커뮤니티가 전시 기획과 구성에 참여했다.● “글로벌 시야 넓혀야 MZ 눈높이 맞춰” 앞서 민박에서도 해외 역사와 문화를 다룬 전시가 없었던 건 아니다. 인류 생존과 경제 활동에 필수적 존재였던 소금을 주제로 한 특별전 ‘호모 소금 사피엔스’(2018년)가 대표적이다. 민박 연구원들이 페루와 파푸아뉴기니, 인도 등 11개국을 오가며 2년에 걸쳐 조사한 내용이 근간이 됐다. 하지만 5년 이상 중장기 연구 프로젝트의 부족, 여전히 빈약한 해외 문화 소장품 문제를 지적하는 의견도 적잖다. 1974년 개관 이래 다문화 연구와 전시를 중점 사업으로 키워 온 일본 오사카 국립민족학박물관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 박물관은 2022년부터 6년 계획으로 국내외 대학 등과 손잡고 ‘탈민족주의 시대의 민족성’을 연구하고 있다. 지역·분야별 전문가를 양성하고 매년 외국인 객원 연구원을 초청해 협력 연구도 한다. 세계를 아우르는 소장품이 약 35만 점으로, 민박이 소장한 세계 민속자료 수(1만4000점)의 25배에 이른다. 이관호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한국위원회 부위원장은 “제국주의 역사가 있는 나라와 비교하면, 세계 문화를 적극 이해하려는 정치·경제적 여건과 노력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며 “앞으론 중장기 연구와 전문가 양성에 적극 투자해 박물관의 글로벌 시야를 넓혀야 젊은 관람객과 외국인 관람객의 눈높이에도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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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속박물관 80돌 “이젠 세계로”…세종 신관에 세계민속관 추진

    “박물관은 더 이상 자국 문화만 자랑하거나 다른 문화를 전리품처럼 전시하는 장소가 아닙니다. 비슷하면서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서로를 연결하는 공공의 장이 돼야 합니다.”국립민속박물관(민박)이 개관 80돌을 맞아 지난달 24일 열린 기념식에서 장상훈 관장은 ‘세계로 열린 창’이 민박의 새 목표라고 밝혔다. K컬처가 세상을 움직이는 오늘날, 박물관이 단지 민족문화 보존 역할에 머물러선 안 된다는 것. 장 관장은 2031년 개관하는 세종시 민박 신관에 세계 민속을 전담하는 상설전시관을 마련할 계획을 밝히면서 “역사적으로 세계 문화의 중심이었던 나라들은 타문화의 이해와 수용에 인색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민족 넘어 세계 문화로 확장1946년 4월 ‘국립민족박물관’이란 이름으로 첫발을 뗀 민박은 최근 국제 문화 플랫폼으로 영역을 넓히는 모양새다. 지난해부터는 세계 각지의 유서 깊은 축제 문화를 조사하고 있다. 올해 파주관에서 브라질 삼바와 리우 카니발을 소개하는 기획전을 3개월간 열었고, 페루 ‘태양의 날’ 축제도 쿠스코역사박물관과 함께 조사 중이다.세계문화박물관으로의 변모는 박물관이 옛것을 보존하는 동시에 “문화 다양성과 상호이해를 증진하는 곳이 돼야 한다”는 최근 세계적인 흐름과도 관련이 깊다. 전 민박 관장인 천진기 무형문화유산위원회 위원장은 “타문화를 이해 못해 벌어지는 지구적 비극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박물관이 제시해야 한다”면서 “우리도 진정한 세계의 주인공이 되려면 ‘K컬처가 최고’란 관점을 넘어 다문화 이해를 도모할 때”라고 했다.해외 주요 민속학·인류학 박물관들도 다문화 전시와 연구에 천착하고 있다. 프랑스 인류학박물관은 지난해 특별전 ‘이주, 인류의 오디세이’를 열고 선사시대 고인류의 이주부터 현대 난민의 망명에 이르는 움직임을 조명했다. 영국박물관은 전쟁과 디아스포라를 주요 의제로 삼고 지난해 상설전시관 내 ‘수단: 갈등과 공동체, 돌봄’ 공간을 마련했다. 런던의 수단 출신 전문가와 커뮤니티가 전시 기획과 구성에 참여했다.● “글로벌 시야 넓혀야 MZ 눈높이 맞춰”앞서 민박에서도 해외 역사와 문화를 다룬 전시가 없었던 건 아니다. 인류 생존과 경제 활동에 필수적 존재였던 소금을 주제로 한 특별전 ‘호모 소금 사피엔스’(2018년)가 대표적이다. 민박 연구원들이 페루와 파푸아뉴기니, 인도 등 11개국을 오가며 2년에 걸쳐 조사한 내용이 근간이 됐다. 하지만 5년 이상 중장기 연구 프로젝트의 부족, 여전히 빈약한 해외 문화 소장품 문제를 지적하는 의견도 적잖다.1974년 개관 이래 다문화 연구와 전시를 중점 사업으로 키워온 일본 오사카의 국립민족학박물관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 박물관은 2022년부터 6년 계획으로 국내외 대학 등과 손잡고 ‘탈민족주의 시대의 민족성’을 연구하고 있다. 지역·분야별 전문가를 양성하고 매년 외국인 객원 연구원을 초청해 협력 연구도 한다. 세계를 아우르는 소장품이 약 35만 점으로, 민박이 소장한 세계 민속자료 수(1만4000점)의 25배에 이른다.이관호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한국위원회 부위원장은 “제국주의 역사가 있는 나라와 비교하면, 세계 문화를 적극 이해하려는 정치·경제적 여건과 노력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며 “앞으론 중장기 연구와 전문가 양성에 적극 투자해 박물관의 글로벌 시야를 넓혀야 젊은 관람객과 외국인 관람객 눈높이에도 맞출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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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종 삼촌 금성대군 모신 ‘금성당 무신도’, 국가유산 된다

    세종대왕의 여섯째 아들인 금성대군(錦城大君)을 모신 굿당의 ‘무신도(巫神圖·무속 신앙의 신을 그린 그림)’가 국가민속문화유산이 된다.국가유산청은 “전남 나주 금성산의 산신 ‘금성대왕(錦城大王)’과 금성대군을 함께 모신 서울 은평구 금성당(錦城堂)의 무신도를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 예고했다”고 6일 밝혔다. 금성당은 원래 금성대왕을 모시다가 이후 금성대군까지 모신 것으로 알려졌다.굿당 내에 봉안돼 있던 무신도는 안료 분석 결과 1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분석됐다. 당시 제의에도 사용돼 유·무형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지금은 서울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금성당 무신도엔 맹인도사와 맹인삼신마누라 등 인간의 운수와 질병을 관장하는 신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얼굴형은 둥글게, 손가락은 길고 복스럽게 표현돼 불교 회화를 제작하던 화승(畫僧)이 그렸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유산청은 “지금까지 알려진 19세기 무신도가 매우 드물어 희소성이 크다”며 “음영법을 활용한 풍부한 입체감 등은 일반 무신도에 비해 높은 수준의 묘사력을 보여준다”고 지정 이유를 설명했다.국가민속문화유산 지정은 예고 기간 30일간 각계의 의견을 수렴 및 검토한 뒤 문화유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완료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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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와 현재, 영광과 폐허가 공존하는 꿈의 풍경

    클래식 음악에서 ‘카프리치오(capriccio)’라는 제목이 달린 곡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말년 오페라 ‘카프리치오’, 니콜로 파가니니의 ‘24개의 카프리스’ 등이 그렇다. 기상곡(奇想曲)으로도 불리는 이 음악 용어의 뜻은 ‘기이하거나 독특한 상상을 음악으로 옮긴 곡’. 그런데 18세기 유럽에선 음악뿐 아니라 그림에서도 카프리치오 열풍이 불었다. 서울 영등포구 더현대 서울 ALT.1 미술관에서 열리는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톨레도 미술관 명작전’에 전시된 ‘음악회가 있는 건축적 환상’(1716∼1717년)은 카프리치오 회화의 특징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화면 속 풍경은 이탈리아 어딘가쯤 있을 듯 느껴지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고대 그리스·로마 유적은 아니다. 과거와 현재, 현실과 이상, 영광과 폐허가 공존하는 환상적 풍경이다. 이를 그린 이탈리아 화가 조반니 파올로 파니니는 카프리치오 장르를 회화적으로 정교하게 완성한 미술가로 꼽힌다. 1710년대 초반 로마로 이주한 뒤 건축가와 무대 디자이너로 활동한 경험이 토대가 됐다. 실무를 통해 원근법과 공간 구성 능력을 익혔고, 고대 로마 유적을 깊이 있게 탐구했다. 고전 건축의 구조를 면밀히 분석하는 직업적 훈련은 로마 유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상상력을 자유롭게 결합한 화풍을 다지게끔 했다. ‘음악회가 있는 건축적 환상’ 속 고대 유적이 실제보다 더욱 장대하게 느껴지는 것도 파니니가 치밀하게 계산한 결과다. 거대한 아치 사이로 보이는 하늘과 깨알같이 그려진 인물들은 건물의 위용을 돋보이게 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파니니의 또 다른 그림 ‘파르네세의 헤라클레스가 있는 유적’에서도 특유의 구조적 과장이 나타난다. 기둥과 벽체는 실제보다 높고 깊게 배열돼 있고, 환상적 분위기를 배가하는 조각상은 공간 구성에 맞춰 임의로 배치됐다. 두 작품을 소장한 미국 털리도(톨레도) 미술관은 “관람객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 개방감과 깊이를 경험하게 된다”며 “파니니가 건축 요소를 회화적 구성의 재료로 삼아, 건축적 이해를 토대로 상상적 공간을 구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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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제보다 더 환상적인 풍경…카프리초 장르를 회화로 정교하게 완성한 파니니

    클래식 음악에서 ‘카프리초(capriccio)’라는 제목이 달린 곡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말년 오페라 ‘카프리초’, 니콜로 파가니니의 ‘24개의 카프리스’ 등이 그렇다. 기상곡(奇想曲)으로도 불리는 이 음악 용어의 뜻은 “기이하거나 독특한 상상을 음악으로 옮긴 곡.” 그런데 18세기 유럽에선 음악뿐 아니라 그림에서도 카프리초 열풍이 불었다.서울 영등포구 더현대 서울 ALT.1 미술관에서 열리는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톨레도 미술관 명작전’에 전시된 ‘음악회가 있는 건축적 환상’(1716~1717)은 카프리초 회화의 특징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화면 속 풍경은 이탈리아 어딘가쯤 있을 듯 느껴지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고대 그리스·로마 유적은 아니다. 과거와 현재, 현실과 이상, 영광과 폐허가 공존하는 환상적 풍경이다.이를 그린 이탈리아 화가 조반니 파올로 파니니는 카프리초 장르를 회화적으로 정교하게 완성한 미술가로 꼽힌다. 1710년대 초반 로마로 이주한 뒤 건축가와 무대 디자이너로 활동한 경험이 토대가 됐다. 실무를 통해 원근법과 공간 구성 능력을 익혔고, 고대 로마 유적을 깊이 있게 탐구했다. 고전 건축의 구조를 면밀히 분석하는 직업적 훈련은 로마 유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도 상상력을 자유롭게 결합한 화풍을 다지게끔 했다.‘음악회가 있는 건축적 환상’ 속 고대 유적이 실제보다 더욱 장대하게 느껴지는 것도 파니니가 치밀하게 계산한 결과다. 거대한 아치 사이로 보이는 하늘과 깨알같이 그려진 인물들은 건물의 위용을 돋보이게 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파니니의 또다른 그림 ‘파르네제의 헤라클레스가 있는 유적’에서도 특유의 구조적 과장이 나타난다. 기둥과 벽체는 실제보다 높고 깊게 배열돼 있고, 환상적 분위기를 배가하는 조각상은 공간 구성에 맞춰 임의로 배치됐다. 두 작품을 소장한 미국 털리도(톨레도) 미술관은 “관람객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 개방감과 깊이를 경험하게 된다”며 “파니니가 건축 요소를 회화적 구성의 재료 삼아, 건축적 이해를 토대로 상상적 공간을 구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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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 갓 닮은 서양식 펠트 모자… 개항기 이색 공예문화 특별展

    1884년 조선을 찾은 미국 수학자 퍼시벌 로웰(1855∼1916)은 고종에게서 모자를 선물받았다. 고향에서 쓰던 중산모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소재가 판이했다. 조선 갓에 쓰는 가느다란 말총으로 몸통을 엮고, 안쪽 윗부분엔 한지를 학 무늬로 오려 붙였다. 로웰은 이 모자에 대해 책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이렇게 썼다. “어느 날 새로운 종류의 모자, ‘하이브리드’가 수도에 모습을 드러냈다. … 모자의 외형은 외국인에게서, 재료는 현지에서 비롯했다. 우리가 늘 쓰던 펠트 모자가 그런 영광을 얻을 것이라고는 상상치 못했다.” 로웰의 서양식 말총 모자를 비롯해 개항기의 이색적 공예 문화를 조명한 특별전 ‘더 하이브리드’가 서울 종로구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지난달 28일 개막했다. 박물관 측은 “서구 문물이 유입된 뒤 전통 공예 재료와 제작 기법은 근대 서양의 복식 및 가구, 소품 등과 결합했다”며 “이러한 ‘전환기 공예’는 교류의 매개이자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시각 언어”라고 했다.전시엔 과거 외국 사절에게 선물로 줬거나 1900년 프랑스 파리 세계박람회에 출품된 공예품 108점이 공개됐다. 고종이 미국 출신 선교사이자 독립운동가인 호머 헐버트(1863∼1949)에게 하사한 것으로 알려진 ‘나전 칠 길상무늬 삼층장’과 1899년 순종이 영국 총영사 존 조던의 부인에게 선물한 ‘은제 컵홀더’ 등을 만나 볼 수 있다. 헐버트의 삼층장은 높이가 1.75m로, 우리 전통 가옥보다 서양 건축에 맞춰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환기 공예품에는 ‘근대 자주국으로서의 정체성’이 담긴 사례가 많다. 고종과 고위 관료들이 입었던 서양식 군복과 예복에는 황실을 상징하는 이화무늬 단추가 달려 있고, 국가를 나타내는 무궁화가 금실로 수놓아져 있다. 채영 전시기획과장은 “당시 공예 전반에는 새로운 국가 체제의 위계와 권위를 시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상징물이 쓰였다”며 “근대 국가로서 ‘훈장’ 체계를 도입해 태극 무늬 등을 새기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서양이 우리 공예 문화를 받아들여 재해석한 사례들도 눈길을 끈다. 19세기 프랑스 국립 도자 제작기관인 세브르 제작소는 고려청자에서 영감을 얻어 ‘서울 화병’, ‘울산 화병’ 등으로 명명한 도자를 만들었다. 청자와 유사한 형태로 모양을 빚은 뒤 플랑베 유약(구리 성분의 붉은 유약)을 발라 완성했다. 7월 26일까지.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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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대’를 그린 단원 김홍도… 국중박서 만난다

    백성의 삶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포착했던 ‘조선 풍속화의 대가’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를 조명한 전시가 4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막했다. 유홍준 관장은 이날 박물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상설전시관 서화실의 2번째 ‘원포인트 기획전’으로 ‘단원 김홍도, 시대를 그리다’를 8월 2일까지 선보인다”고 밝혔다. 이번 기획전은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 ‘단원풍속도첩’ 속 대표작이 전시돼 이목을 모은다. 25점으로 이뤄진 화첩 가운데 아이가 신명 나게 춤추는 장면을 그린 ‘무동(舞童)’(사진)과 ‘씨름’ 등 11점이 관람객을 만난다. ‘무동’은 역동적 몸짓에 따라 펄럭이는 옷자락이 절묘하게 표현된 수작이다. 유 관장은 “김홍도는 모든 장르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 단군 이래 최고의 화가 중 한 명”이라고 평했다. 김홍도가 노년에 그린 작품들도 공개된다. 예순의 나이에 완성한 ‘기로세련계도(耆老世聯契圖)’가 대표적이다. 박물관 측은 “산수와 인물을 담아내는 김홍도의 종합적인 예술 역량과 원숙한 필치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명작”이라고 설명했다. 스승인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과 긴밀하게 교류한 흔적이 담긴 ‘서원아집도(西園雅集圖)’도 전시됐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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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펠트 모자에서 갓의 향기가?”…개항기 이색 공예전 ‘더 하이브리드’ 개막

    1884년 조선을 찾은 미국 수학자 퍼시벌 로웰(1855~1916)은 고종에게서 모자를 선물 받았다. 고향에서 쓰던 중산모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소재가 판이했다. 조선 갓에 쓰는 가느다란 말총으로 몸통을 엮고, 안쪽 윗부분엔 한지를 학 무늬로 오려 붙였다. 로웰은 이 모자에 대해 책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이렇게 썼다.“어느 날 새로운 종류의 모자, ‘하이브리드’가 수도에 모습을 드러냈다. (…) 모자의 외형은 외국인에게서, 재료는 현지에서 비롯했다. 우리가 늘 쓰던 펠트 모자가 그런 영광을 얻을 것이라고는 상상치 못했다.”로웰의 서양식 말총 모자를 비롯해 개항기의 이색적 공예 문화를 조명한 특별전 ‘더 하이브리드’가 서울 종로구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지난달 28일 개막했다. 박물관 측은 “서구 문물이 유입된 뒤 전통 공예 재료와 제작 기법은 근대 서양의 복식 및 가구, 소품 등과 결합했다”며 “이러한 ‘전환기 공예’는 교류의 매개이자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시각 언어”라고 했다.전시엔 과거 외국 사절에게 선물로 줬거나 1900년 프랑스 파리 세계박람회에 출품된 공예품 108점이 공개됐다. 고종이 미국 출신 선교사이자 독립운동가인 호머 헐버트(1863~1949)에게 하사한 것으로 알려진 ‘나전 칠 길상무늬 삼층장’과 1899년 순종이 영국 총영사 존 조던의 부인에게 선물한 ‘은제 컵홀더’ 등을 만나볼 수 있다. 헐버트의 삼층장은 높이가 1.75m로, 우리 전통 가옥보다 서양 건축에 맞춰 제작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환기 공예품에는 ‘근대 자주국으로서의 정체성’이 담긴 사례가 많다. 고종과 고위 관료들이 입었던 서양식 군복과 예복에는 황실을 상징하는 이화무늬 단추가 달려 있고, 국가를 나타내는 무궁화가 금실로 수놓아져 있다. 채영 전시기획과장은 “당시 공예 전반에는 새로운 국가 체제의 위계와 권위를 시각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상징물이 쓰였다”며 “근대 국가로서 ‘훈장’ 체계를 도입해 태극 무늬 등을 새기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서양이 우리 공예 문화를 받아들여 재해석한 사례들도 눈길을 끈다. 19세기 프랑스 국립 도자 제작기관인 세브르 제작소는 고려청자에서 영감을 얻어 ‘서울 화병’, ‘울산 화병’ 등으로 명명한 도자를 만들었다. 청자와 유사한 형태로 모양을 빚은 뒤, 플람베 유약(구리 성분의 붉은 유약)을 발라 완성했다. 7월 26일까지.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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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중박 원포인트 기획전 2탄은 김홍도…‘무동’ 등 대표작 선봬

    백성의 삶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포착했던 ‘조선 풍속화의 대가’ 단원 김홍도(檀園 金弘道)를 조명한 전시가 4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막했다.유홍준 관장은 이날 박물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상설전시관 서화실의 2번째 ‘원포인트 기획전’으로 ‘단원 김홍도, 시대를 그리다’를 8월 2일까지 선보인다”고 밝혔다.이번 기획전은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 ‘단원풍속도첩’ 속 대표작이 전시돼 이목을 모은다. 25점으로 이뤄진 화첩 가운데 아이가 신명나게 춤추는 장면을 그린 ‘무동(舞童)’과 ‘씨름’ 등 11점이 관람객을 만난다. ‘무동’은 역동적 몸짓에 따라 펄럭이는 옷자락이 절묘하게 표현된 수작이다. 유 관장은 “김홍도는 모든 장르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 단군 이래 최고의 화가 중 한 명”이라고 평했다.김홍도가 노년에 그린 작품들도 공개된다. 예순의 나이에 완성한 ‘기로세련계도(耆老世聯契圖)’가 대표적이다. 박물관 측은 “산수와 인물을 담아내는 김홍도의 종합적인 예술 역량과 원숙한 필치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명작”이라고 설명했다. 스승인 표암 강세황(豹菴 姜世晃)과 긴밀하게 교류한 흔적이 담긴 ‘서원아집도(西園雅集圖)’도 전시됐다.이번 전시는 박물관 내 서화실에서 약 3개월마다 특정 화가나 주제를 집중 조명하는 기획전 중 하나로 마련됐다. 앞서 첫 전시로 ‘겸재 정선: 아! 우리 강산이여!’가 개최됐다. 8월부터는 ‘추사 김정희와 그의 시대’가 열린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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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동감 넘치는 원숭이와 새… 후대 작가들의 교과서

    2009년, 어느 미술 시장에 나온 네덜란드 화가의 1690년 작 그림이 미국 털리도(톨레도) 미술관의 시선을 단번에 잡아끌었다. 화면 속 원숭이는 미술관에 소장된 18세기 모자이크 거장 자코모 라파엘리의 작품 ‘마이크로 모자이크 박스’ 속 원숭이와 똑 닮아있었다. 흰 초승달 무늬, 구부린 왼팔, 앉아있는 벽까지 흡사했다. 미술관 측은 “라파엘리가 이 그림을 자신의 모델로 삼았음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고 설명한다.서울 영등포구 더현대 서울 ALT.1 미술관에서 열리는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톨레도 미술관 명작전’에 전시된 ‘벽 위의 다이애나원숭이와 하늘을 나는 네 마리의 새’는 유럽 동물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멜히오르 더혼데쿠터르(1636∼1695)의 작품이다. 라파엘리를 비롯한 여러 후대 작가들이 동물을 그릴 때 그의 그림을 참고했다고 여겨진다.더혼데쿠터르는 과거 네덜란드에서 유행한 ‘버드 피스(bird piece)’ 장르의 대가였다. 닭과 오리 같은 가금류부터 야생 새, 이국적인 새 등 온갖 조류의 부드럽고 윤기 나는 깃털을 풍부한 색감과 섬세한 붓질로 표현했다. 개나 양, 소 등 동물을 그리는 데도 탁월했다. ‘벽 위의 다이애나원숭이…’ 속 새와 원숭이는 마치 건드리면 움직이기라도 할 듯 사실적이고 생동감이 넘친다. 작가는 동물화를 그리던 아버지와 유명 화가인 삼촌 얀 밥티스트 베이닉스에게 그림을 배웠다.그의 작품 속 동물들은 자연 상태의 생명체 그 자체로 묘사됐다. 과거 원숭이가 주로 술에 취하거나 장난치는 모습으로 그려져 인간의 어리석음을 풍자하는 소재로 쓰인 것 등과는 다르다. 더혼데쿠터르는 생동하는 동물의 다양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데 매진했다고 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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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붓끝에 담은 생동감…살아 움직이는 더 혼데쿠터의 동물화

    2009년, 어느 미술 시장에 나온 네덜란드 화가의 1690년작 그림이 미국 톨레도 미술관의 시선을 단번에 잡아끌었다. 화면 속 원숭이는 미술관에 소장된 18세기 모자이크 거장 자코모 라파엘리의 작품 ‘마이크로 모자이크 박스’ 속 원숭이와 똑 닮아있었다. 흰 초승달 무늬, 구부린 왼팔, 앉아있는 벽까지 흡사했다. 미술관 측은 “라파엘리가 이 그림을 자신의 모델로 삼았음이 거의 확실해 보인다”고 설명한다.서울 영등포구 더현대 서울 ALT.1 미술관에서 열리는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톨레도 미술관 명작전’에 전시된 ‘벽 위의 다이애나원숭이와 하늘을 나는 네 마리의 새’는 유럽 동물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멜키오르 더 혼데쿠터(1636~1695)의 작품이다. 라파엘리를 비롯한 여러 후대 작가들이 동물을 그릴 때 그의 그림을 참고했다고 여겨진다.더 혼데쿠터는 과거 네덜란드에서 유행한 ‘버드 피스(bird piece)’ 장르의 대가였다. 닭과 오리 같은 가금류부터 야생 새, 이국적인 새 등 온갖 조류의 부드럽고 윤기 나는 깃털을 풍부한 색감과 섬세한 붓질로 표현했다. 개나 양, 소 등 동물을 그리는 데도 탁월했다. ‘벽 위의 다이애나원숭이…’ 속 새와 원숭이는 마치 건드리면 움직이기라도 할 듯 사실적이고 생동감이 넘친다. 작가는 동물화를 그리던 아버지와 유명 화가인 삼촌 얀 밥티스트 웨닉스에게 그림을 배웠다.그의 작품 속 동물들은 자연 상태의 생명체 그 자체로 묘사됐다. 과거 원숭이가 주로 술에 취하거나 장난치는 모습으로 그려져 인간의 어리석음을 풍자하는 소재로 쓰인 것 등과는 다르다. 더 혼데쿠터는 생동하는 동물의 다양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데 매진했다고 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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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미술에 반한 글로벌 아트페어 책임자 8명 “내 지갑이 위험”

    “이 투어, 위험하다(This tour is quite dangerous).”25일 서울 종로구 서촌의 화랑 ‘페이지룸8’에 들어선 외국인 8명이 “내 지갑이 위험하다”며 일제히 장난치듯 볼멘소리를 했다. 벽에 걸린 한국인 작가들의 작품을 매의 눈으로 빠르게 스캔하더니, 몇 점을 콕 집어 화랑 관계자에게 작가 이름과 가격을 물었다. 스마트폰 메모장과 사진첩은 작품 정보, 화랑 상호로 빼곡했다.아트 바젤 홍콩, 프리즈 아부다비, 미국 언타이틀드 아트 등 세계적인 아트페어의 총괄 디렉터와 수석 매니저가 24일부터 27일까지 서울에 모였다. 요즘 ‘핫한’ 신진·중견 화랑이 밀집된 종로, 용산 등을 누비며 각 화랑의 특징과 전속 작가를 샅샅이 살피기 위해서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5년째 진행 중인 해외 인사 초청 프로그램 ‘다이브 인투 코리안 아트’로, 한국 미술의 글로벌 네트워크를 강화해 해외 진출을 돕고자 마련됐다.이번 프로그램에서 아트페어 관계자들이 찾은 19개 화랑은 학고재나 갤러리현대처럼 굵직한 곳부터 2020년대 문을 연 신예 갤러리까지 다양했다. 그중에서도 한국적 색채가 두드러지는 화랑에 대한 호응이 컸다.창문으로 주변 한옥이 내다보이는 종로구 팔판동 화랑 ‘WWNN’에서 열리고 있는 우리가 사는 도시에 관한 기억과 인식을 다룬 전시도 관심이 높았다. 홍콩 아트 센트럴의 코리 앤드루 바 디렉터는 “한국 미술에 이미 왕관(crown)은 씌워졌다”며 “다른 도시와 비교해 전시 주제와 작품이 주변 환경 및 역사와 긴밀히 연결돼 있는 게 강점”이라고 평했다.전통 회화적 요소를 현대적으로 풀어낸 작업을 마주할 때도 이들의 눈은 반짝였다. 다보격(多寶格·장식장의 일종)과 십장생을 재해석한 손동현 작가의 개인전이 대표적이다. 유럽 최초 아시아 현대미술 전문 아트페어인 아시아 나우의 창립자 알렉산드라 팡은 “한국 미술은 고유한 뿌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서구 시장에서 어렵지 않게 받아들여진다”며 “K뷰티, K팝이 그렇듯 한국 미술은 더 이상 일시적 유행이 아니다. 거장의 단색화부터 젊은 작가의 디지털아트까지 폭넓게 소비되고 있다”고 말했다.국내 화랑들은 “글로벌 아트페어들과 접점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환영했다. 해외 아트페어는 공식 승인이나 초청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네트워크가 큰 무기가 된다. 정재호 갤러리2 대표는 “아트페어 참가 여부를 승인하는 위원회에 ‘아는 얼굴’이 있는지가 화랑에는 중요하다”며 “이들이 직접 화랑에 들러 공간까지 경험할 기회는 드물어 의미가 크다”고 했다. 함윤철 제이슨함 대표도 “한국 미술이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구축하려면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너무 멀고 벅차게 느껴질 때가 있다”며 반가워했다.나흘간 진행된 프로그램엔 관계자 간 네트워킹 행사 등도 포함됐다. 프리즈 아부다비의 알라누드 압둘라흐만 알 함마디 부디렉터는 “아트페어에 새 피를 수혈해줄 가능성을 엿보는 재미가 컸다”며 감탄했다. 김장호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는 “지속적인 관계 형성과 신뢰 구축은 추후 전시 협업, 아트페어 참여 등으로 이어질 바탕이 될 것”이라며 “향후 한국 미술의 글로벌 확장을 위한 ‘플랫폼’이 되길 기대한다”고 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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