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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한눈에 볼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졌다. 갈수록 빨라지는 변화는 두 눈을 부릅떠도 포착하기 힘들다. 사실은 모두가 이런 망망대해에서 ‘눈먼 자’로 살고 있는 건 아닐까.서울 종로구 학고재 갤러리에서 지난달 25일부터 열리고 있는 엄정순 작가의 개인전 ‘보푸라기-촉각적 사건’은 “우리는 세상의 어느 일부분에 닿고 있는가”를 묻는다. 불교 경전 ‘열반경’ 속 ‘맹인모상(盲人摸象·장님 코끼리 만지기)’ 이야기에서 착안해 코끼리를 주제로 한 조각과 회화 등 39점을 선보인다.관람객은 작품을 자유롭게 손끝으로 더듬으면서 교감할 수 있다. 갤러리에서 만난 엄 작가는 “작가는 모든 감각을 다 써서 작품을 만들지만, 관람객이 이를 만지는 행위는 그동안 금기시됐다”며 “관람객의 감상도 작품의 일부다. 눈으로만 판단해선 편견에 갇히기도 쉽다”고 말했다. 전시는 ‘눈에만 의존해선 결코 세상 전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메시지로 이어진다.전시장에서 시각과 촉각은 거의 동등한 위치에 놓인다. 조각상 ‘코없는 코끼리 4’를 받치고 있는 뒤집힌 사다리꼴 모양의 대좌는 작품의 중요한 요소를 이룬다. 관람객이 코끼리 상 가까이 다가설 때 신발 앞코가 부딪히는 부분을 없애 접근 장벽을 허물었다.작품을 만진 뒤에 남은 ‘흔적’은 다시 작품이 된다. 회화 연작 ‘무늬 없는 리듬’은 2023년 광주비엔날레를 찾은 관람객들이 양모와 천으로 이뤄진 코끼리 설치물을 만지면서 생겨난 보푸라기를 핵심 재료로 활용했다. 엄 작가는 “당시 일주일도 안 돼서 작품 전체에 보푸라기가 생겼다. 문득 보푸라기가 버려야 할 대상이 아닌, 사람의 체온이자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한 올 한 올 아껴 모은 보푸라기를 뭉치거나 엮어 재료로 썼다”고 설명했다.점자책 1000여 권이 선풍기 바람에 흔들리는 공간도 눈길을 끈다. 맹인모상 이야기를 작가가 각색해 점자로 쓰고, 바로 아래 같은 내용을 흑연을 사용해 손글씨로 썼다. 점자를 손으로 훑고 책장을 넘기는 동안 흑연은 뭉개지고 여백은 까매진다. 그러다 눈에 들어 오는 벼락같은 한 문장. “이제 책을 덮으시게나. 자네의 그 검게 얼룩진 손끝 속에 보이지 않는 코끼리가 서 있으니.” 28일까지.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2일(현지 시간) 이란 테헤란에 있는 ‘그랜드 바자르’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점포가 무너지는 등 여러 훼손을 당했다. 7세기부터 상업 활동이 이어져 온 이 대형 전통시장은 이란이 1977년 국가유산으로 지정한 곳이다. 문화유산 피해는 이란뿐만이 아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화이트 시티’도 이란 공습의 희생양이 됐다. 20세기 초 바우하우스 양식 건축물이 밀집한 이곳은 미사일 공격으로 1930년대 건물 2채가 파괴됐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길어지며 해당 지역의 문화유산들이 위기에 빠졌다. 이미 여러 유적이 피해를 입었으며, 박물관 등은 소장품을 안전지역으로 옮기고 있으나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유네스코는 “모든 문화유산은 1954년 헤이그 협약과 1972년 세계유산 및 자연유산 보호 협약에 따라 보호된다”며 긴급 성명을 발표했으나, 사실상 강제력은 없다.● 중동 세계유산 1·2위 보유국들 이란은 중동 국가 가운데 세계유산을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다. 고대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수도인 ‘페르세폴리스’와 이슬람 건축 예술의 정수로 꼽히는 ‘이맘 광장’ 등 29개나 된다. 그중 하나인 ‘골레스탄 궁전’은 폭격 여파로 곳곳이 부서졌다. ‘이란의 베르사유 궁전’으로 불리는 이 궁전은 페르시아 전통과 서구 예술이 결합한 카자르 왕조 시대(1789∼1925년) 걸작. 페르시아식 스테인드글라스 ‘오르시(orsi)’가 산산조각 났으며, 정교한 거울 장식도 떨어져 나갔다.이스라엘도 2001년 등재된 고대 도시 ‘아크레 구시가지’ 등 세계유산만 9개다. 중동에서 두 번째로 많다. 피해를 입은 바우하우스 센터는 소셜미디어에서 “화이트 시티는 근대성과 희망, 재건의 상징”이라며 “그 소실을 애도한다”고 했다.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사해 사본’ 등이 소장된 이스라엘국립박물관과 이란국립박물관, 페르세폴리스박물관 등은 현재 문을 닫고 소장품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중동 전체가 화약고가 될 위험이 커지며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UAE) 등도 비상이 걸렸다. 카타르국립박물관, 도하 이슬람예술박물관 등이 잠정 폐관한 상태다.● “문화유산은 인류 공동 책임”그랜드 바자르 등이 타격을 입은 날, 유네스코는 성명을 발표해 문화유산 보호를 호소했다. 유네스코 측은 “잠재적 피해를 방지하고자 세계유산과 국가적인 유적의 지리 좌표를 모든 관계 당사자들에게 전달했다”고 했다. 앞서 무함마드 사드 알 루마이히 카타르 국립박물관 최고경영자(CEO)도 “문화유산 보호는 법적 준수를 넘어선 공동의 도덕적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헤이그 협약은 “종교, 예술, 과학, 자선 목적의 건물과 기념물 등은 가능한 한 공격하지 않도록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제27조)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한 세계유산 전문가는 “미국과 이란, 이스라엘 모두 헤이그 협약 당사국이지만 국제법 특성상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한계를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중동 지역에서 군사 작전 중 고의적으로 파괴되거나 부수적으로 훼손되는 문화유산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달 카타르 국립박물관에서 열린 ‘무력 충돌 중 문화유산 보호 세미나’에서 사이드 빈 압둘라 알 수와이디 국제인도법 국가위원회 위원장은 “문화유산이 상대편에 대한 복수나 선전, 불법적 이득을 위한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고 했다. 중동 전문가인 이예지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특임강의교수는 이러한 문화유산 공격에 대해 “공동체적 기억과 정체성을 약화하려는 상징적 메시지가 담긴 경우가 많다”며 “시리아 내전 당시 이슬람국가(IS)가 팔미라의 신전을 의도적으로 파괴한 사건이 대표적”이라고 했다. 이어 “분쟁이 장기화되면 국가 통제력이 약해지고 무장 세력의 자금이 부족해져 문화유산 약탈 및 불법 거래 문제로 확대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남사친’ 현호가 이성으로 보이기 시작한 지온. 고백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거절당할까 봐 발만 동동 구른다. 그러던 중 고백의 성공 확률을 높여준다는 인공지능(AI) ‘고백 보험’ 광고를 마주하게 된다. 주저 없이 AI 보험 설계사 ‘아이라’와 계약을 체결한다. “이제 나만 믿고 따라와. 지온이 좋아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게.” 아이라는 그야말로 천군만마였다. 상대의 심리 패턴을 분석해 맞춤형 고백 전략을 추천해 주고, ‘데이터 지우개’로 소셜미디어에서 퍼지는 소문까지 삭제해 줬다. 심지어 고백이 실패해 어색한 사이가 돼버리면 기억까지 지워준다. 지온은 고백 보험에 의존해 현호에게 고백하고, 멀어지고, 기억 삭제하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깨닫는다. 누군가의 마음을 완전히 조작하거나 예측할 수 없으며, 나의 진심을 남에게 맡길 수는 없다는 것. 10대의 풋풋한 사랑을 소재로 풀어냈지만, 여전히 거절이 쓰라린 어른에게도 생각거리를 준다. 고백 또는 제안의 진짜 가치는 성공 여부가 아니라, 끙끙 앓으며 내 마음을 다듬고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시간에 있는지도 모른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JTBC가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겨울올림픽에 이어 북중미 월드컵 중계권의 재판매를 놓고 벌이는 지상파 방송사들과의 협상이 난항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JTBC는 2026년부터 2032년까지 열릴 모든 올림픽과 월드컵의 중계권을 사들였는데, 첫 중계인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겨울올림픽은 저조한 시청률과 중계 파행으로 논란을 낳았다. JTBC는 6월 시작되는 북중미 월드컵의 중계권 재판매 협상을 위해 최근 지상파들을 잇따라 접촉하고 있다. JTBC 측은 6일 서울 여의도 KBS 본사를 찾아 협상을 벌일 예정이었으나 막판에 일정이 연기됐다. 앞서 4일에는 MBC 측과 접촉했으나 진전을 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JTBC가 요구하는 중계권료와 지상파 측이 제시한 중계료 차이가 커서 협상은 타협점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상파 내부에서는 “JTBC가 재판매 가격을 지나치게 높게 설정해 수용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KBS의 제3노조인 같이노조는 이날 성명을 내고 “(중계권 재판매 협상의) 본질은 한 유료 민영방송의 잘못된 경영 판단을 공적 재원, 시청자의 수신료로 메워보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수신료로 JTBC의 ‘도박빚’을 갚을 순 없다’는 제목의 성명에서 “JTBC가 사운을 건 도박을 했고, 이제 그 도박 빚에 허덕이는 상황”이라며 “중계권 재판매 협상은 한마디로 비싸게 계약한 중계권을 같이 떠안자는 취지”라고 주장했다. 앞서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도 “우리는 JTBC의 들러리가 될 수 없다”는 성명을 내고 “사태의 근본 책임은 지상파 3사의 ‘코리아풀(Korea Pool)’ 공동협상 체계를 일방적으로 무너뜨린 JTBC에 있다”고 했다. 노조는 “중계권료를 천정부지로 올려놓고 심지어 패럴림픽 (중계권)은 구입조차 하지 않은 JTBC의 졸속 협상에 대해 냉정하고 엄중한 평가가 선행되지 않는 한 월드컵 중계 협상은 결코 있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밀라노 겨울올림픽은 중계 채널이 JTBC와 네이버 두 곳뿐이어서 시청자들이 주요 경기나 장면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 스키·스노보드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낸 최가온 선수 경기의 경우, 최 선수가 결선 1차 시기에서 넘어진 후 JTBC가 중계를 쇼트트랙 경기로 돌려 정작 시청자들은 최 선수의 금메달이 확정된 3차 시기 연기를 실시간으로 보지 못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유네스코한국위원회는 제22대 사무총장에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67)이 임명됐다고 6일 밝혔다. 임기는 4년. 홍 신임 사무총장은 제37대 국립외교원장과 국정기획위원회 외교안보분과위원장, 청와대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 등을 지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어린이 무용수 육성에 힘쓴 신순심 무용가가 4일 별세했다. 향년 89세.이화여대에서 발레를 전공한 고인은 1962년 초·중등생으로 구성된 리틀엔젤스예술단을 창단하고 초대 단장을 맡아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 등 무용계 인재를 배출했다. 1966년 미국 백악관 특별공연 ‘꼭두각시’를 포함해 여러 레퍼토리를 개발했다. 빈소는 이대서울병원, 발인은 7일 오전 5시. 02-6986-4440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지금의 내가 도달한 지점에서 이 음악들을 다시 바라보고, 진실에 더 가까이 가고자 앨범 ‘슈베르트’를 녹음하게 됐습니다.”‘건반 위의 구도자’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씨(80)가 이달 26일 앨범 ‘슈베르트’를 선보인다. 올해로 데뷔 70주년을 맞는 그가 슈베르트 음반을 발매하는 건 13년 만이다. 백 씨는 유니버설뮤직을 통해 “음악이 스스로 노래하도록 두는 것과 그 침묵을 견딜 수 있는 자신감, 성실한 탐구 끝에 도달한 태도야말로 13년 전과 지금을 가르는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에서야 나는 무엇을 하려 애쓰기보다 ‘하지 않으려 해야 한다’는 깨달음에 이르렀다”고 전했다.이번 신보에는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13번과 14번, 18번, 20번이 수록됐다. 13번은 밝고 목가적, 20번은 침잠하듯 평온한 분위기를 띤다. 백 씨는 “13번은 가장 이르게 배운 피아노 소나타 중 하나로써 늘 사랑해왔고, 20번은 오랫동안 답을 찾지 못해 남겨두었던 곡”이라고 했다. 백 씨는 10세에 해군교향악단(현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주하면서 피아니스트 인생을 시작했다. 2023년 작고한 배우 윤정희 씨의 남편이기도 하다. 다음 달부턴 전국 12개 도시에서 리사이틀 투어가 열린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저는 여러분께 ‘본질적인 취재(original reporting)’에 전념하는 어떤 언론 조직이든 지원해 달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기자들이 직접 취재하고, 사실에 바탕을 둔 보도를 하는 진짜 신문을 구독해 주시길 바랍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회장 겸 발행인인 아서 그레그 설즈버거(46·사진)가 2일(현지 시간) “NYT가 아니어도 상관없다”며 어떤 신문이라도 구독하고 지원해 달라는 광고를 내보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설즈버거 회장은 NYT가 운영하는 팟캐스트에서 내보낸 약 1분 길이의 음성 광고에서 “보통 이런 광고에선 우리 신문(NYT)을 구독하는 게 왜 중요한지 얘기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메시지를 전하려고 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어떤 링크를 클릭해 달라는 게 아니다. 진짜 신문을 보라. 전국지도 좋고, 특히 지역 신문들은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며 “NYT를 후원하면 그 자금으로 기자들을 현장에 파견해 인공지능(AI)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사실과 맥락을 찾아내겠다”고 강조했다. 미 현지에선 설즈버거 회장의 광고에 대해 “작지만 반가운 한 걸음”이란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하버드대 저널리즘 연구조사기관 ‘니먼랩’은 “대다수 미국인은 어떤 뉴스 매체에도 비용을 지불하거나 후원하지 않는다”며 “오늘날 언론 산업이 겪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평했다. 설즈버거 회장은 1896년 NYT를 인수한 아돌프 옥스의 4대 후손이다. 2018년 취임 뒤 유료 구독 모델과 디지털 콘텐츠 강화에 힘써, 하락세를 겪고 있던 NYT를 위기에서 구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경기 남양주 봉선사의 15세기 동종(銅鐘·구리로 만든 종·사진)이 1963년 국가지정유산 보물이 된 지 약 63년 만에 국보로 승격된다. 국가유산청은 “조선의 제8대 국왕 예종이 부왕(父王) 세조의 명복을 빌고자 봉선사를 지은 뒤 모신 남양주 봉선사 동종을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고 4일 밝혔다. 1469년 제작된 높이 약 2.3m의 동종은 “조선 전기 동종의 양식을 완성한 작품”으로 꼽힌다. 고려 시대 종과 비교해 입구가 넓어졌고 몸통에는 가로 띠, 보살입상 등 조선시대 등장한 종 구성 요소가 들어 있다. 봉선사 동종은 제작 시기와 제작 배경, 봉안처 등이 명확하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도 높다. 강희맹(姜希孟·1424∼1483)이 짓고 정난종(鄭蘭宗·1433∼1489)이 쓴 주종기(鑄鍾記)에 따르면 동종을 만든 장인 중 일부는 서울 종로구 흥천사명 동종, 옛 보신각 동종 제작에도 참여한 것으로 확인된다. 유산청은 고려시대 상감 청자인 ‘청자 상감쌍룡국화문 반’과 조선시대 만들어진 초상화와 보관함을 포함한 ‘유효걸 초상 및 궤’도 각각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예고 기간 30일간 각계 의견을 검토한 뒤 문화유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보 및 보물 지정이 완료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경기 남양주 봉선사의 15세기 동종(銅鐘·구리로 만든 종)이 1963년 국가지정유산 보물이 된 지 약 63년 만에 국보로 승격된다.국가유산청은 “조선의 제8대 국왕 예종이 부왕(父王) 세조의 명복을 빌고자 봉선사를 지은 뒤 모신 남양주 봉선사 동종을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고 4일 밝혔다. 1469년 제작된 높이 약 2.3m의 동종은 “조선 전기 동종의 양식을 완성한 작품”으로 꼽힌다. 고려 시대 종과 비교해 입구가 넓어졌고 몸통에는 가로 띠, 보살입상 등 조선시대 등장한 종 구성 요소가 들어있다. 봉선사 동종은 제작 시기와 제작 배경, 봉안처 등이 명확하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도 높다. 강희맹(姜希孟·1424~1483)이 짓고 정난종(鄭蘭宗·1433~1489)이 쓴 주종기(鑄鍾記)에 따르면 동종을 만든 장인 중 일부는 서울 종로구 흥천사명 동종, 옛 보신각 동종 제작에도 참여한 것으로 확인된다.유산청은 고려시대 상감 청자인 ‘청자 상감쌍룡국화문 반’과 조선시대 만들어진 초상화와 보관함을 포함한 ‘유효걸 초상 및 궤’도 각각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예고 기간 30일 간 각계 의견을 검토한 뒤 문화유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보 및 보물 지정이 완료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저는 여러분께 ‘본질적인 취재(original reporting)’에 전념하는 어떤 언론 조직이든 지원해 달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기자들이 직접 취재하고, 사실에 바탕을 둔 보도를 하는 진짜 신문을 구독해 주시길 바랍니다.”미국 뉴욕타임스(NYT) 회장 겸 발행인인 아서 그레그 설즈버거(46)가 2일(현지시간) “NYT가 아니어도 상관 없다”며 어떤 신문이라도 구독하고 지원해 달라는 광고를 내보내 화제를 모으고 있다.설즈버거 회장은 NYT가 운영하는 팟캐스트에서 내보낸 약 1분 길이의 음성 광고에서 “보통 이런 광고에선 우리 신문(NYT)을 구독하는 게 왜 중요한지 얘기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메시지를 전하려고 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어떤 링크를 클릭해 달라는 게 아니다. 진짜 신문을 보라. 전국지도 좋고, 특히 지역 신문들은 지원이 절실한 상황”며 “NYT를 후원하면 그 자금으로 기자들을 현장에 파견해 인공지능(AI)으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사실과 맥락을 찾아내겠다”고 강조했다.미 현지에선 설즈버거 회장의 광고에 대해 “작지만 반가운 한 걸음”이란 반응이 나오고 있다. 하버드대 저널리즘 연구조사기관 ‘니먼랩(Nieman Lab)’은 “대다수 미국인은 어떤 뉴스 매체에도 비용을 지불하거나 후원하지 않는다”며 “오늘날 언론 산업이 겪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평했다.설즈버거 회장은 1896년 NYT를 인수한 아돌프 옥스의 4대 후손이다. 2018년 취임 뒤 유료 구독 모델과 디지털 콘텐츠 강화에 힘써, 하락세를 겪고 있던 NYT를 위기에서 구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접시 위에 단정히 놓인 뽀얗고 탱탱한 생선살. 그 옆엔 싱그러운 소스에 버무려 소담히 얹은 대추와 도라지.보기만 해도 군침 도는 이 생선은 조선 고관대작이 앞다퉈 맛보려 했다는 ‘종어(宗魚)’다. 1938년 동아일보 기사에서도 “한양 고관들의 미각을 가장 자극한 생선으로 이에 비할 놈이 없다”고 했을 정도다.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마주한 종어구이는 지난해 가을에 저장해 둔 남도 유자를 우린 간장에 하루 잰 뒤 구워냈다. 향긋하고 부드러워, 코도 입도 즐겁다. 국가유산진흥원 산하 한국의집이 45년 만에 전면 리모델링을 마친 뒤 조만간 선보일 만찬 코스 중 하나이다.최근 10년 새 복원과 양식에 성공한 종어 요리를 비롯해 국가무형유산 ‘조선왕조 궁중음식’ 이수자인 김도섭 총괄셰프의 지휘 아래 11일부터 한국의집에서 선보이는 새로운 요리들을 미리 맛봤다.● 한식 전문가도 “말로만 듣던 생선”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종어는 “육질이 연하고 가시와 비늘이 거의 없어 조선시대 임금의 수라상까지 올랐으나, 1970년대 산업화로 멸종됐던” 토종 민물고기. 학계에선 일제강점기 ‘식재료의 상품화’가 진행되며 종어가 과대평가됐단 의견도 있으나, 과거 여러 문인들은 종어를 상당한 별미로 여겼다. 조선 후기 문신 조면호(趙冕鎬·1803∼1887)는 문집 ‘옥수집(玉垂集)’에서 글쓰기의 충만함을 구운 종어의 맛에 빗대어(硏冰牋雪我何如…懸知勝似炙鯮魚) 표현하기도 했다.한국의집이 쓰는 종어는 전북 김제의 한 양식장에서 매주 3회 직송된다. 그 맛은 굳이 따지면 몸통은 장어, 부레·껍질은 복어와 비슷하다. 뼈는 억세고 껍질은 미끄러워 손질 중 방심했다간 생선이나 손이 다칠 수 있어 다루기 쉽지 않다.요리 경력 37년 차인 김 셰프도 “말로만 듣던 종어”를 실제 조리해본 건 처음이라고 한다. 그는 “종어나 해삼처럼 과거 정말 귀했던 식재료는 조리법 기록도 거의 없어 찜과 탕, 구이 등 여러 조리법을 실험하며 고민했다”며 “1마리당 납품가가 10만 원대로 도미나 민어의 3배이고 돌돔보다도 비싸다”고 했다.● 조상들이 즐기던 ‘봄나물’ 한 상이번 신메뉴에선 각종 봄나물 요리도 근사하다. 요즘 소셜미디어에선 ‘봄동 비빔밥’이 화제인데, 한국의집 만찬에서도 선조들이 봄을 맞아 먹었다는 나물들이 다채로웠다.특히 방풍나물과 쑥갓, 취나물 등을 정갈하게 올린 봄나물밥과 봄나물전 신선로, 봄나물 복어강정 등은 별미 중의 별미. 김 셰프는 “조상들은 입춘이 되면 다섯 가지 매운맛이 나는 나물로 ‘오신반(五辛盤)’을 만들어 먹었다”며 “봄나물은 산에서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였기에 양반뿐 아니라 백성들도 새 계절의 기운을 얻고자 즐겨 먹었다”고 설명했다.식사와 함께 곁들이는 보(褓)김치도 특별하다. 배추에 밤이나 잣, 해산물 등을 하나하나 싸서 익히기에, 과거엔 부잣집이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한국의집은 고객 1명당 1포기의 보김치를 고스란히 즐길 수 있도록 별도로 ‘보김치 담당자’도 뒀다. 일주일에 1000개 이상 만들 예정이다.그 밖에 해삼찜, 게살사슬적 등 우리 밥상에 자주 오르지 않는 식재료와 조리법으로 완성한 메뉴들이 많다. 한국의집 측은 “K푸드와 미식을 향한 관심이 높아진 지금, 다이닝뿐 아니라 한식 아카데미까지 확장해 전통 한식을 확산시키는 데 힘쓰겠다”고 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접시 위에 단정히 놓인 뽀얗고 탱탱한 생선살. 그 옆엔 싱그러운 소스에 버무려 소담히 얹은 대추와 도라지.보기만 해도 군침 도는 이 생선은 조선 고관대작이 앞다퉈 맛보려 했다는 ‘종어(宗魚)’다. 1938년 동아일보 기사에서도 “한양 고관들의 미각을 가장 자극한 생선으로 이에 비할 놈이 없다”고 했을 정도다.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한국의집’에서 마주한 종어구이는 지난해 가을에 저장해 둔 남도 유자를 우린 간장에 하루 잰 뒤 구워냈다. 향긋하고 부드러워, 코도 입도 즐겁다. 국가유산진흥원 산하 한국의집이 45년 만에 전면 리모델링을 마친 뒤 조만간 선보일 만찬 코스 중 하나이다.최근 10년 새 복원과 양식에 성공한 종어 요리를 비롯해 국가무형유산 ‘조선왕조 궁중음식’ 이수자인 김도섭 총괄셰프의 지휘 아래 11일부터 한국의집에서 선보이는 새로운 요리들을 미리 맛봤다.● 한식 전문가도 “말로만 듣던 생선”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종어는 “육질이 연하고 가시와 비늘이 거의 없어 조선시대 임금의 수라상까지 올랐으나, 1970년대 산업화로 멸종됐던” 토종 민물고기. 학계에선 일제강점기 ‘식재료의 상품화’가 진행되며 종어가 과대평가됐단 의견도 있으나, 과거 여러 문인들은 종어를 상당한 별미로 여겼다. 조선 후기 문신 조면호(趙冕鎬·1803~1887)는 문집 ‘옥수집(玉垂集)’에서 글쓰기의 충만함을 구운 종어의 맛에 빗대어(硏冰牋雪我何如…懸知勝似炙鯮魚) 표현하기도 했다.한국의집이 쓰는 종어는 전북 김제의 한 양식장에서 매주 3회 직송된다. 그 맛은 굳이 따지면 몸통은 장어, 부레·껍질은 복어와 비슷하다. 뼈는 억세고 껍질은 미끄러워 손질 중 방심했다간 생선이나 손이 다칠 수 있어 다루기 쉽지 않다.요리 경력 37년차인 김 셰프도 “말로만 듣던 종어”를 실제 조리해본 건 처음이라고 한다. 그는 “종어나 해삼처럼 과거 정말 귀했던 식재료는 조리법 기록도 거의 없어 찜과 탕, 구이 등 여러 조리법을 실험하며 고민했다”며 “1마리당 납품가가 10만 원대로 도미나 민어의 3배이고 돌돔보다도 비싸다”고 했다.● 조상들이 즐기던 ‘봄나물’ 한 상이번 신메뉴에선 각종 봄나물 요리도 근사하다. 요즘 소셜미디어에선 ‘봄동 비빔밥’이 화제인데, 한국의집 만찬에서도 선조들이 봄을 맞아 먹었다는 나물들이 다채로웠다.특히 방풍나물과 쑥갓, 취나물 등을 정갈하게 올린 봄나물밥과 봄나물전 신선로, 봄나물 복어강정 등은 별미 중의 별미. 김 셰프는 “조상들은 입춘이 되면 다섯 가지 매운맛이 나는 나물로 ‘오신반(五辛盤)’을 만들어 먹었다”며 “봄나물은 산에서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였기에 양반뿐 아니라 백성들도 새 계절의 기운을 얻고자 즐겨 먹었다”고 설명했다.식사와 함께 곁들이는 보(褓)김치도 특별하다. 배추에 밤이나 잣, 해산물 등을 하나하나 싸서 익히기에, 과거엔 부잣집이나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한국의집은 고객 1명당 1포기의 보김치를 고스란히 즐길 수 있도록 별도로 ‘보김치 담당자’도 뒀다. 일주일에 1000개 이상 만들 예정이다.그밖에 해삼찜, 게살사슬적 등 우리 밥상에 자주 오르지 않는 식재료와 조리법으로 완성한 메뉴들이 많다. 한국의집 측은 “K푸드와 미식을 향한 관심이 높아진 지금, 다이닝뿐 아니라 한식 아카데미까지 확장해 전통 한식을 확산시키는 데 힘쓰겠다”고 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미국 그래미상 수상 횟수만 도합 23회.”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미국의 재즈 거장 2명이 올해 잇달아 한국을 찾는다. ‘살아있는 재즈의 전설’ 허비 행콕(86)과 ‘최초의 퓰리처 음악상 재즈 뮤지션’ 윈턴 마살리스(65)가 이달과 5월에 내한 공연을 갖는다. 먼저 트럼펫 연주자 마살리스는 25, 26일 서울 강서구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자신이 창설한 15인조 빅밴드 ‘재즈 앳 링컨센터 오케스트라(JLCO)’와 함께 방한해 연주를 선보인다. 피아니스트 행콕은 5월 24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일대에서 열리는 ‘제18회 서울 재즈페스티벌 2026’ 무대에 오른다. 미 시카고 출신인 행콕은 칙 코리아와 키스 재럿, 매코이 타이너 등과 더불어 20세기 세계 재즈계를 이끈 피아니스트로 꼽힌다. 1962년 데뷔 이래 그래미상을 거머쥔 횟수만 무려 14차례에 이른다.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의 핵심 멤버로 활동했으며, 1970년대 이후엔 “록과 전자음악, 힙합 등 다양한 음악적 요소를 재즈에 접목해 재즈 장르의 지형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1973년 발매된 앨범 ‘헤드 헌터스(Head Hunters)’는 재즈 역사에서 손꼽히는 명반 중 하나다. 행콕이 ‘재즈의 혁신가(The Innovator of Jazz)’라면, 마살리스는 전통적 재즈를 고수한 ‘재즈의 수호자(The Guardian of Jazz)’로 불린다. 미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의 재즈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난 마살리스는 10대 시절부터 전통적인 재즈 음악을 계승하는 데 힘썼다. 재즈와 클래식 음악을 넘나드는 레퍼토리와 연주 기법을 선보여 “재즈를 클래식의 반열로 격상시켰다”고 평가된다. 마살리스는 1982년 데뷔 음반을 발표한 지 1년 만에 클래식과 재즈 그래미상을 동시에 수상한 최초의 아티스트가 됐다. 1997년엔 오라토리오 ‘블러드 온 더 필즈’로 재즈 음악가로는 처음으로 클래식계에만 주어지던 퓰리처 음악상도 받았다. 특히 이번 마살리스 공연은 한국에서는 JLCO와 24년 만에 호흡을 맞추는 무대다. 한 재즈 관계자는 “마살리스가 우리나라에서 JLCO와 연주하는 마지막 무대일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전했다. 마살리스는 2026∼2027 시즌을 끝으로 약 40년간 자리를 지켜 왔던 JLCO 예술감독 겸 음악감독에서 물러날 예정이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우리나라 돈으로 약 20경 원. 얼마나 큰지 가늠조차 어려운 이 금액은 미 국방부가 최근 20년간 ‘전쟁 대비’를 위해 쓴 돈이다. 해마다 국방부에 투입되는 예산은 법무부와 교육부, 노동부, 국토안보부, 재향군인청, 국무부, 상무부의 예산을 전부 합친 것보다 많다고 한다. 이렇게 비대한 재원이 정말로 국가 안보를 위해 필요한 걸까. 미 국방 예산과 군수산업을 연구하는 두 저자는 “국민을 보호한다는 명분 뒤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집단이 있다”고 고발한다. 거대한 방산 기업과 정치인, 연구기관, 로비스트가 공유하는 복잡한 이해관계로 인해 전쟁을 멈출 수 없게 됐다는 주장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든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든, 모두 대선 후보 시절엔 평화를 외치면서도 막상 취임 뒤엔 무력행사를 서슴지 않는 것도 이러한 악순환과 관련이 깊다고 봤다. 책에 따르면 현재 미국은 “위협이 존재해서 무기를 제조하는 게 아니라, 무기를 팔고자 위협을 제조해야 하는” 이른바 ‘전쟁 기계(War Machine)’가 됐다. 국방비와 무기 판매량은 군산복합체와 결탁해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싱크탱크들은 복잡한 계산과 분석 결과를 제시하면서 ‘강경 대응’을 주장하지만, 그 자금줄 끝엔 어김없이 록히드 마틴이나 레이시온 등 거대 방산 기업의 이름이 등장한다고 한다. 실은 방산업계가 ‘전쟁 벌이기’에 유리한 정책을 위해 의회와 행정부를 압박하는 데는 믿는 구석이 있다. 저자들은 군산복합체 내부의 ‘회전문’ 시스템에 관해 폭로한다. 의원과 보좌관, 국방부 관리들이 훗날 정부를 떠나 방위산업계에 들어가면 두둑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구조가 고착화돼 있다. 1000명에 이르는 로비스트가 펜타곤 계약업체들을 위해 일하고 있으며, 그중 상당수가 전직 군 고위 간부나 의회 보좌관 출신이다. 그러나 막대한 군사비가 망가트리는 건 미국 영토 바깥만이 아니다. 책에 따르면 미 국방 예산이 1조 달러를 넘어서는 동안 미국 내 복지 제도와 기초과학 연구 등 사회적 인프라가 무너졌다. 2023년 기준으로 1억4000만 명의 미국인이 빈곤 위기에 놓여 있으며, 노숙인 수는 77만 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두 저자는 “펜타곤에 공공 투자의 대부분을 쏟아붓는 잘못된 선택 때문에 연방정부가 사회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심각하게 약화됐다”고 지적한다. 특히 방위 산업에 실리콘밸리의 ‘빅테크’ 기업들이 뛰어들면서 악화일로를 달린다는 분석이 흥미롭다. 팔란티어, 안두릴 등의 기업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자율 살상 무기를 개발해 국방부로부터 수조 원의 계약을 따낸다. 그러면서 “정밀 타격과 드론 공격으로 더 인도적인 전쟁이 될 것”이라는 논리를 펼친다. 그러나 책은 무기에 탑재된 AI가 제대로 검증되지 않은 채 전쟁터에 투입된 점을 짚으면서 “기술은 전쟁의 문턱을 낮춰 민간인 피해를 양산할 뿐”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대(對)이란 공격이 임박했다는 우려가 나오는 지금, 책은 무거운 질문을 남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03년 이라크 침공 이후 최대 규모의 공군력을 중동에 집결시키면서 “모든 군사적 옵션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악순환을 부추기는 선택은 세계 시민은 물론이고 미국인들에게도 상흔을 남길 수밖에 없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우원식 국회의장이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 비상임위원 2명 추천안을 결재하면서 그동안 5개월째 ‘개점휴업’ 상태였던 방미통위가 본격적으로 가동될 것으로 전망된다. 방미통위가 정부여당 추천 위원 대부분으로 구성되며 일각에선 합의제 기구라는 기존 설립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 의장은 27일 더불어민주당의 윤성옥 방미통위 비상임위원 추천안과 국민의힘의 이상근 비상임위원 추천안에 대해 결재를 진행했다. 방미통위 비상임위원은 상임위원과 달리 국회 본회의 표결을 거치지 않아도 된다. 국회는 전날(26일) 본회의를 통과한 민주당의 고민수 상임위원 추천안과 함께 윤성옥 이상근 비상임위원 추천안을 청와대로 보냈고, 청와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다음 달 1∼4일 싱가포르·필리핀 순방을 마치는 대로 임명 절차를 밟을 계획이다. 이로써 방미통위는 의사정족수 4인을 넘어서 5인 체제로 구성될 예정이다. 현재 대통령 몫 2인인 김종철 위원장과 류신환 비상임위원으로만 위원회가 구성돼 있어 지난해 10월 출범 이후 안건을 처리할 수 없었다. 방미통위 안건은 위원 4명 이상 출석과 출석 위원 과반 찬성으로 처리가 가능하다. 회의가 열릴 경우 허위조작정보 근절법 관련 법령 및 방송3법 후속 시행령과 규칙 제정·개정, KBS1을 비롯해 기간이 만료된 지상파 등의 재허가 및 재승인 심사, 각종 불공정행위 조사 후속 처분 등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방미통위 규칙 제정을 통해 개정 방송법에 따른 공영방송 이사회 구성과 사장 선출 절차를 진행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방미통위 관계자는 “구체적 회의 개최 시기와 안건 논의 순서 등은 위촉된 위원들이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방미통위 설치 취지에 반하는 일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원래 옛 방통위는 5인 상임위원의 합의제 기구였으나 정파적 파행 운영이 계속됐고, 여당을 비롯한 정치권은 ‘합의제 기구의 대표성과 민주성을 높인다’는 등의 명분 아래 대통령 몫 2명, 여당 몫 2명, 야당 몫 3명 총 7인으로 위원 수를 늘렸다. 그런데 이번 방미통위 구성으로 야당 추천 위원은 1명만 포함되게 된 것. 박성우 우송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이대로 회의 개최를 강행한다면) 방미통위에서 이전과 같은 (정파적 운영) 문제가 반복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야당이 추천한 천영식 상임위원 추천안이 부결돼 야당은 반발하고 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여야가 합의한 일정이었던 우리 당 추천 방미통위 상임위원을 의총에서 선동해 본회의에서 부결시켰다”고 비판했다.구민기 기자 koo@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한 번 북을 울림에 교활한 왜적의 갑옷을 두들겨 팰 수 있고, 두 번 북을 울림에 우리 강토를 회복하며, 세 번 북을 울림에 동경만에서 말에게 물을 먹일 수 있다.” 일제강점기 비밀결사단체인 ‘조선민족대동단’의 총재였던 독립운동가 김가진(1846∼1922)이 무정부장이던 독립운동가 박용만(1881∼1928)에게 보낸 비밀 편지가 처음 공개됐다. 동농문화재단과 조선민족대동단기념사업회는 “서울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에서 특별전 ‘조선민족대동단―혈전을 불사코자’를 열고 김가진의 편지를 106년 만에 처음 공개한다”고 26일 밝혔다. 1920년 3월 12일 쓴 편지엔 중국·미국과의 연대에 관한 구상, 러시아 인접 지역을 군사 거점으로 삼는 전략, 연길·간도 일대에서의 무장투쟁 계획 등이 담겼다. 조선민족대동단은 1919년 3·1운동 이후 무장투쟁 노선을 표방하며 조직된 비밀결사단체다. 비밀 인쇄소를 운영하고 군자금을 모았으며, 상하이 교민을 대상으로 시국 강연회를 열었다. 이번 특별전엔 관련 자료 30여 점도 출품됐다. 이른바 ‘제2의 독립만세운동’이 벌어진 1919년 11월 28일에 발표된 ‘대동단선언’ 원본(사진)도 공개됐다. 김가진이 친필로 쓴 ‘시국강연회’ 원본도 전시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조선 시대 ‘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謙齋 鄭敾)은 36세에 금강산으로 향했다. 늦가을로 물든 금강산을 유람하며 힘 있는 바위산과 부드러운 흙산을 13점의 화폭에 담았다. 노년에 이르러서는 당대 문인들이 사랑한 개성의 명승, 박연폭포로 시선을 옮겼다. 둔중한 암벽 사이로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는 짙은 먹과 흰빛으로 기록됐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이 6개월에 걸친 리모델링을 마치고 상설전시관 서화실을 26일 새롭게 선보였다. 전면 개편은 2017년 이후 약 9년 만. 정선이 청년 시절에 금강산을 묘사한 ‘신묘년풍악도첩(辛卯年楓嶽圖帖)’과 무르익은 노년에 그린 ‘박연폭포’를 포함해 옛 글씨와 그림 70건을 선보인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까치호랑이 그림과 일월오봉도도 전시됐다. 바뀐 서화실에선 일반적인 상설 전시와 달리 분기별로 ‘원포인트 기획전’을 열기로 했다. 빛 노출에 취약해 3개월마다 교체해야 하는 서화의 약점을 역으로 활용한 셈이다. 첫 전시로 ‘겸재 정선: 아! 우리 강산이여!’가 열리며, 5월 4일부터는 ‘단원 김홍도, 시대를 그리다’가 이어진다. ‘추사 김정희와 그의 시대’(8∼11월)가 뒤를 잇는다. 유홍준 관장은 25일 간담회에서 “계절마다 놓치지 말아야 할 명작이 나오기 때문에 ‘N차 관람’이 필수”라며 “다른 기관이나 개인이 소장한 작품까지 적극 빌려와 선보이겠다”고 했다. 자칫 따분할 수 있는 서예 공간은 누구나 알 법한 유명인의 글씨 위주로 구성했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와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석봉 한호(石峯 韓濩) 등의 글씨가 대거 나왔다. 조선 22대 국왕 정조(正祖)가 붉은 비단에 묵직한 필치로 써 내린 작품이 특히 돋보인다. 부임지로 가는 신하를 격려하며 맡은 소임을 다하길 당부하는 편지가 적혔다. 짜임새 있는 글씨가 은은하게 빛나는 용 문양과 어우러져 위엄을 풍긴다. 전시실 한쪽 벽면을 통으로 채운 ‘옛 비석의 벽’ 공간도 주목할 만하다. 5세기 고구려에서 19세기 조선 후기에 이르는 비석 속 서예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도록 벽을 장식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조선 시대 ‘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謙齋 鄭敾)은 36세에 금강산으로 향했다. 늦가을로 물든 금강산을 유람하며 힘 있는 바위산과 부드러운 흙산을 13점의 화폭에 담았다. 노년에 이르러서는 당대 문인들이 사랑한 개성의 명승, 박연폭포로 시선을 옮겼다. 둔중한 암벽 사이로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는 짙은 먹과 흰빛으로 기록됐다.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이 6개월에 걸친 리모델링을 마치고 상설전시관 서화실을 26일 새롭게 선보였다. 전면 개편은 2017년 이후 약 9년 만. 정선이 청년 시절에 금강산을 묘사한 ‘신묘년풍악도첩(辛卯年楓嶽圖帖)’과 무르익은 노년에 그린 ‘박연폭포’를 포함해 옛 글씨와 그림 70건을 선보인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까치호랑이 그림과 일월오봉도도 전시됐다.바뀐 서화실에선 일반적인 상설 전시와 달리 분기별로 ‘원포인트 기획전’을 열기로 했다. 빛 노출에 취약해 3개월마다 교체해야 하는 서화의 약점을 역으로 활용한 셈이다. 첫 전시로 ‘겸재 정선: 아! 우리 강산이여!’가 열리며, 5월 4일부터는 ‘단원 김홍도, 시대를 그리다’가 이어진다. ‘추사 김정희와 그의 시대’(8~11월)가 뒤를 잇는다. 유홍준 관장은 25일 간담회에서 “계절마다 놓치지 말아야 할 명작이 나오기 때문에 ‘N차 관람’이 필수”라며 “다른 기관이나 개인이 소장한 작품까지 적극 빌려와 선보이겠다”고 했다.자칫 따분할 수 있는 서예 공간은 누구나 알 법한 유명인의 글씨 위주로 구성했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와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석봉 한호(石峯 韓濩) 등의 글씨가 대거 나왔다. 조선 22대 국왕 정조(正祖)가 붉은 비단에 묵직한 필치로 써 내린 작품이 특히 돋보인다. 부임지로 가는 신하를 격려하며 맡은 소임을 다하길 당부하는 편지가 적혔다. 짜임새 있는 글씨가 은은하게 빛나는 용 문양과 어우러져 위엄을 풍긴다.전시실 한쪽 벽면을 통으로 채운 ‘옛 비석의 벽’ 공간도 주목할 만하다. 5세기 고구려에서 19세기 조선 후기에 이르는 비석 속 서예의 흐름을 살펴볼 수 있도록 벽을 장식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한 번 북을 울림에 교활한 왜적의 갑옷을 두들겨 팰 수 있고, 두 번 북을 울림에 우리 강토를 회복하며, 세 번 북을 울림에 동경만에서 말에게 물을 먹일 수 있다.”일제강점기 비밀결사단체인 ‘조선민족대동단’의 총재였던 독립운동가 김가진(1846~1922)이 무정부장이던 독립운동가 박용만(1881~1928)에게 보낸 비밀 편지가 처음 공개됐다.동농문화재단과 조선민족대동단기념사업회는 “서울 강북구 근현대사기념관에서 특별전 ‘조선민족대동단―혈전을 불사코자’을 열고 김가진의 편지를 106년 만에 처음 공개한다”고 26일 밝혔다. 1920년 3월 12일 쓴 편지엔 중국·미국과의 연대에 관한 구상, 러시아 인접 지역을 군사 거점으로 삼는 전략, 연길·간도 일대에서의 무장투쟁 계획 등이 담겼다.조선민족대동단은 1919년 3·1운동 이후 무장투쟁 노선을 표방하며 조직된 비밀결사단체다. 비밀 인쇄소를 운영하고 군자금을 모았으며, 상하이 교민을 대상으로 시국 강연회를 열었다. 전시를 기획한 이동국 전 경기도박물관장은 “역사의 베일에 가려진 조선민족대동단의 내력을 재조명하는 자리”라고 설명했다.이번 특별전엔 관련 자료 30여 점도 출품됐다. 이른바 ‘제2의 독립만세운동’이 벌어진 1919년 11월 28일에 발표된 ‘대동단선언’ 원본도 공개됐다. 김가진이 친필로 쓴 ‘시국강연회’ 원본도 전시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