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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이 세계적인 거장인 건 알고 있었어요?”5일 서울 강남구 영화배급사 NEW 사무실. 올해 프랑스 칸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된 영화 ‘상자 속의 양’ 주인공인 쿠와키 리무(10)는 질문을 듣고 당황한 듯 눈을 굴렸다. 옆자리에 있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64)이 “그냥 아저씨인 줄 알았지?”하며 웃자, “그건 아닌데…. 진짜에요?”라고 되물었다.고레에다는 세계적인 감독이지만 아역 발굴에 탁월하기로도 유명하다. 그런 그가 캐스팅 때 보는 건 오로지 첫인상. ‘아무도 모른다’의 야기라 유야, ‘괴물’의 구로카와 소야와 히이라기 히나타 등 그를 거쳐간 아역배우들이 모두 그랬다. 이번에 그의 직감은 말간 얼굴을 한 쿠와키에게로 향했다. 200대 1 경쟁률을 뚫고 캐스팅된 쿠와키는 고레에다 감독의 첫 공상과학(SF)물 아역이 됐다.10일 개봉하는 ‘상자 속의 양’은 2년 전 발견한 한 중국 스타트업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사진과 동영상을 바탕으로 고인의 모습을 인공지능(AI)으로 만드는 이 기업을 본 뒤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에 돌입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는, 불의의 사고로 아들을 잃은 오토네(아야세 하루카)와 켄스케(야마모토 다이고)가 아들과 꼭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 카케루(쿠와키)를 집에 들이며 벌어지는 이야기다.다만 영화는 의외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한 가정의 회복을 다룰 것처럼 보였던 영화는 점차 카케루 내면 변화에 집중한다. 제아무리 똑같은 겉모습을 하고 있다지만 카케루는 죽은 아이가 아니다. 자신 또한 스스로 인간과 다른 존재란 걸 깨닫고, 이내 부부의 보호에서 벗어나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다른 휴머노이드 아이들과 무리를 이뤄 사는 삶이다.이때 주목해야 할 점은 오토네와 켄스케 부부다. 고레에다 감독은 이 작품을 ‘AI 영화’로만 해석하는 것을 경계하며 “자아를 갖게 되는 휴머노이드에 중심을 두기보다는 ‘휴머노이드를 원하는 인간들과 그들의 마음’을 그려내려 애썼다”며 “영화를 볼 때 부부에게로 시선이 갔으면 했다”고 말했다.영화 속 인간들은 생전의 좋은 기억들만 골라 죽은 아이를 되살려내고, 카케루에게 진짜 아들의 영혼을 투영하면서 다시 한번 행복한 가정이 될 것이란 희망을 욱여넣는다. 하지만 영화는 인간의 바람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파고들면서, 부부가 카케루를 통해 비로소 상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쫓는다. “죽은 사람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란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도가 통하는 순간이다.“아이가 다시 돌아왔을 때 부모 각자가 깊이 후회하는 지점이 있어요. 아빠는 아이에게 사과하고 싶어하고, 엄마는 상처줬던 말을 뼈저리게 후회하죠. 부모는 이 실패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겠지만 안타깝게도 다시 상처를 주고요. 쉽게 성장하지 못하고 또 다른 후회를 반복하는 인간의 모순을 보여주고 싶었어요.”이번 영화는 명작으로 불리는 감독의 전작들에 비하면 아쉽다. 솔직히 범작(凡作)에 가깝다. 가족애나 상실, AI 윤리, 자연 등 여러 소재가 뒤섞이다 보니 다소 산만하다. 여러 문제의식을 끝내 한 줄기로 수렴시키지 못한 듯하다. 다만 수많은 화두 속에 길을 잃었다면, 고레에다 감독의 출발점을 참고하면 좋겠다.“돌아가신 아버지가 눈앞에 나타난다면 정말로 전하고 싶은 말이 하나 있어요. 그럼에도 죽은 사람은 어디까지나 죽은 사람의 것이라 생각해요. 그런 기술은 사람의 이기심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요.”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올해 미국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대규모 해고 칼바람이 불었다. 오라클은 3월 약 3만 명을 해고했고, 아마존 역시 1만6000명의 감원을 진행했다. 그 배경에는 인공지능(AI)과 자동화가 있었다.“기계가 인간 노동을 대체할 것”이라는 비관론이 퍼지는 건 당연한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통념에 의문을 제기하는 두 책이 국내에 출간됐다. 저자들은 “인간 노동이 없어지진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이 분석하는 현실이 그리 마냥 낙관적이진 않다.● 은폐되고 묵인되는 인간 노동‘로봇은 오지 않는다’가 주장하는 바는 명확하다. AI는 인간 노동을 ‘대체’가 아닌 ‘은폐’한다는 진단이다. 디지털 노동 연구자인 저자는 틱톡, 페이스북 등 다양한 실사례와 연구 조사를 바탕으로 디지털 기술 뒤에 숨겨진 노동 공급망을 추적했다. 이를 통해 “AI 산업은 보이지 않는 인간 노동 위에서 유지된다”는 결론을 얻었다. 일례로 자동화된 듯한 정보기술(IT) 산업을 보자. 이 산업 아래에는 알고리즘이 학습할 데이터를 정리하는 데이터 라벨링 노동자, 혐오·폭력 콘텐츠를 걸러내는 검열 노동자 등 수많은 인간들이 존재한다. 노동의 형태가 더 잘게 분절돼 보이지 않을 뿐이다. 더 큰 문제는 파편화된 업무로 인해 작업자조차 이 노동의 최종 목적을 알지 못하며, 이들 노동의 대가는 저임금으로 치부된다는 사실이다.더 나아가 저자는 ‘일로 인정되지 않는 노동’도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소셜미디어 플랫폼이다. 플랫폼의 가치 생산에는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이 수행하는 클릭, 검색이나 ‘좋아요’ 누르기 등의 행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놀이라고 생각했던 이런 일들이 사실상 플랫폼 경제를 떠받치는 노동이 되고 있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현대 사회는 노동의 종말이 아니라 노동이 일상 전체로 확장되는 ‘과잉 고용의 시대’에 들어섰다”고 진단한다. 사라지는 건 노동 그 자체가 아니라, 노동의 가시성(可視性). 우리는 어쩌면 노동자란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하는 단계에 진입하고 있는 게 아닐까.● 여전히 중요한 ‘사람을 대하는 일’앞선 책에 뒤통수가 얼얼했다면, ‘사람의 마지막 직업’은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지 모르겠다. 미 존스홉킨스대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는 상호 소통과 공감을 바탕에 둔 일, 그러니까 사람을 대하는 일을 ‘연결 노동’이라 명명한다. 상담사, 의사, 교사 등 연결노동의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 100여 명과 인터뷰하며 연결노동의 중요성을 피력한다.저자 또한 인간 노동이 해체돼가는 사실을 부정하진 않는다. 교육 현장은 더 이상 인간의 지혜를 배우는 공간이 아니다. 교사의 가르침 대신 콘텐츠가 제공되기 때문이다. 앱 중심의 교육이 이뤄지는 실리콘밸리의 실험학교에선 효율적인 업무 배분에 따라 ‘지식 전달자 교사’와 ‘상담사 교사’로 나뉘어 있기도 하다. 의료계 또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즉각적인 처방을 내리는 데에 익숙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다만 책은 여전히 많은 이들이 사회와 소통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 역시 짚어낸다. 2021년 네덜란드에선 계산원과의 소통을 유도하는 ‘대화형 계산대’가 다시 도입됐다. 카운터 옆에는 아예 대화 테이블이 마련돼 있는데, 홀몸노인들이 많은 지역에 주로 설치됐다고 한다. 이곳 계산원을 부르는 별칭은 ‘외로움에 맞서는 슈퍼마켓 점원’. 자동화 시대에 인간 노동이 향할 방향에 대해 고민해보게 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소피,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김초엽 소설가의 팬이라면, 낯익은 문장일 것이다. 그의 첫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수록작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 나오는 글귀다. 3일 이 소설을 바탕으로 한 동명의 애니메이션이 개봉했다. 메가폰을 잡은 이는 허평강 감독(44·사진).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이 연출가를 2일 서울 중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가 책을 접한 건 2019년 제작사 추천이었다고. 7개의 단편 중 ‘순례자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시초지에서 고향 행성으로 돌아오지 않는 순례자들을 다룬 단편을 읽으며 허 감독의 머릿속엔 다채로운 이미지가 떠올랐다. 이듬해 김 작가와 애니메이션 판권 계약을 맺고 제작에 돌입했다. 허 감독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동안 ‘대’ 김초엽 작가님이 되셨다”면서도 “이 점을 의식했다면 과감한 도전은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영화는 원작의 큰 설정들을 대범하게 변주한다. 일례로 원작에서 소피는 편지를 받는 수신자에 그치지만, 영화에선 행성의 규칙에 의문을 갖고 시초지로 향하는 적극적인 캐릭터로 탈바꿈한다. 허 감독은 “원작을 읽으며 ‘소피가 누구이길래 데이지가 이런 편지를 남긴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영화는 데이지와 소피의 관계성을 추가하며 감성적인 터치를 더했다.각색을 포함한 제작 기간은 6년. 짧지 않은 시간이다. ‘아날로그 작업’을 고수했기 때문이었다. 이 애니메이션은 연필로 그려진 600컷의 러프 스케치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제작비가 넉넉지 않은 탓이었지만, 2006년 이래 일본 TV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일해 온 허 감독에게 수작업은 큰 장애물이 아니었다. 클래식한 그림체를 원했던 그의 의도와도 어딘지 맞는 방식이었다.“일본에서 주로 거대 자본 기반의 하이퀄리티 필름을 맡아 왔어요. 그런데 기교가 화려할수록 메시지가 심플하게 다가가지 않는 경우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 작품은 더 클래식한 그림체가 맞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요즘의 미감과는 거리가 있는 편이라 호불호는 갈릴 수 있다. 캐릭터 디자인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귀마와 요괴 캐릭터의 초기 디자인을 맡았던 위현송 씨가 참여했다. 허 감독이 그에게 주문한 건 딱 두 가지였다. “너무 예쁘지 않을 것”, 그리고 “대신 그들의 결핍이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울 것”. 허 감독은 “핸디캡이 있는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소녀들의 이야기이기에 완벽하진 않아도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원했다”고 말했다.‘데스노트’, ‘명탐정 코난’ 등을 연출하며 일본 콘텐츠 산업에 깊숙이 몸담았던 허 감독은 이 영화가 한국에서 첫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그에게 한국 콘텐츠 시장은 어떤 매력으로 다가올까. “일본은 실패하지 않는 게 중요해요. 드라마만 봐도 원작 판매 부수에 따라 영상화가 결정되죠. 그래서 프로듀서와 배우의 ‘촉’을 믿고 도전하는 한국 시장만의 매력을 느낍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소피,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김초엽 소설가의 팬이라면, 낯익은 문장일 것이다. 그의 첫 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수록작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 나오는 글귀다. 3일 이 소설을 바탕으로 한 동명의 애니메이션이 개봉했다. 메가폰을 잡은 이는 허평강 감독(44).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이 연출가를 2일 서울 중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났다.그가 책을 접한 건 2019년 제작사 추천이었다고. 7개의 단편 중 ‘순례자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시초지에서 고향행성으로 돌아오지 않는 순례자들을 다룬 단편을 읽으며 허 감독의 머릿속엔 다채로운 이미지가 떠올랐다. 이듬해 김 작가와 애니메이션 판권 계약을 맺고 제작에 돌입했다. 허 감독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동안 ‘대’ 김초엽 작가님이 되셨다”면서도 “이 점을 의식했다면 과감한 도전은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영화는 원작의 큰 설정들을 대범하게 변주한다. 일례로 원작에서 소피는 편지를 받는 수신자에 그치지만, 영화에선 행성의 규칙에 의문을 갖고 시초지로 향하는 적극적인 캐릭터로 탈바꿈한다. 허 감독은 “원작을 읽으며 ‘소피가 누구이길래 데이지가 이런 편지를 남긴 걸까’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영화는 데이지와 소피의 관계성을 추가하며 더 감성적인 터치를 더했다.각색을 포함한 제작기간은 6년. 짧지 않은 시간이다. ‘아날로그 작업’을 고수했기 때문이었다. 이 애니메이션은 연필로 그려진 600컷의 러프 스케치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제작비가 넉넉치 않은 탓이었지만, 2006년 이래 일본 TV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일해온 허 감독에게 수작업은 큰 장애물이 아니었다고. 클래식한 그림체를 원했던 그의 의도와도 어딘지 맞는 방식이었다.“일본에서 주로 거대 자본 기반의 하이퀄리티 필름을 맡아왔어요. 그런데 기교가 화려할수록 메시지가 심플하게 다가가지 않는 경우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 작품은 더 클래식한 그림체가 맞다고 생각했어요.”다만 요즘의 미감과는 거리가 있는 편이라, 호불호는 갈릴 수 있다. 캐릭터 디자인엔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귀마와 요괴 캐릭터의 초기 디자인을 맡았던 위현송 씨가 참여했다. 허 감독이 그에게 주문한 건 딱 두 가지였다. “너무 예쁘지 않을 것”, 그리고 “대신 그들의 결핍이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울 것”. 허 감독은 “핸디캡이 있는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소녀들의 이야기이기에 완벽하진 않아도 사랑스러운 캐릭터를 원했다”고 말했다.‘데스노트’, ‘명탐정 코난’ 등을 연출하며 일본 콘텐츠 산업에 깊숙이 몸담았던 허 감독은 이 영화가 한국에서 첫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다. 그에게 한국 콘텐츠 시장은 어떤 매력으로 다가올까. “일본은 실패하지 않는 게 중요해요. 드라마만 봐도 원작 판매 부수에 따라 영상화가 결정돼죠. 그래서 프로듀서와 배우의 ‘촉’을 믿고 도전하는 한국 시장만의 매력을 느낍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에서 회원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했다. 티빙은 3일 “전날 신원 미상의 해커가 개인정보가 저장된 데이터베이스(DB)에 접속해 개인정보 파일을 외부로 전송했다”고 밝혔다. 유출된 개인정보는 회원 아이디(ID)와 이름, 생년월일, 성별, 휴대전화 번호, 이메일, 환불 계좌번호, 비밀번호, 연계정보(CI), 중복가입확인정보(DI) 등이다. 티빙 측은 이와 관련해 “주민등록번호와 결제 관련 유효 정보는 유출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현재 티빙은 구체적인 피해 규모를 파악하고 있다. 4월 기준 티빙의 월간활성이용자(MAU) 수는 약 770만 명이며 이 중 상당수 이용자가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티빙에 따르면 회사는 2일 사고를 인지한 뒤 관련 법령에 따라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신고했으며, 3일 오전 1시경 홈페이지에 공지했다. 이후 정확한 사고 원인과 영향 범위 등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티빙 측은 “현재 공격자 인터넷 프로토콜(IP)의 접근을 차단하고 클라우드 접근 통제 정책을 변경했다”며 “피해 예방을 위해 동일한 계정 정보를 사용하는 다른 서비스의 비밀번호는 바꾸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티빙은 피해 구제를 위한 고객센터도 운영 중이다. 최주희 티빙 대표이사는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고로 이용자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보안 체계를 원점에서 재점검해,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민관합동조사단을 구성하고 티빙의 회원정보 유출 사고 조사에 착수했다. KISA는 ‘피해사실 조회’ ‘환불’ 등의 키워드를 활용한 보이스피싱 등 범죄가 우려되므로 주의가 필요하다고 공지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한채연 기자 chaezip@donga.com}

“밖에…, 밖에!” 2일 서울 동작구 롯데시네마 신대방. 상영관에 20여 명이 모여 있는데 누군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불쑥 들어와 외쳤다. “밖에 사람이 아닌 것들이 있어요!” 상영관 문밖에선 그르렁대는 소리가 들리는데…. 로비에 놓인 자신의 가방에 이 사태를 해결할 키(key)가 있다며 도와달라는 이 남자. 나중에 알게 된 그의 이름은 ‘서영철’이었다. 영화 ‘군체’를 봤다면 익숙할 이름이다. 배우 구교환이 연기한 서영철은 영화 속 집단지성 좀비 사태를 만들어낸 장본인. 지난달 21일 이 영화관에서 개막한 ‘인사이드 더 플레이: 군체’는 영화의 세계관을 일부 차용해 만든 이머시브 공연이다. 관객에게 주어진 무대는 6개의 상영관과 로비, 복도. 제한 시간은 90분이다. ‘군체’ 속 좀비들로부터 도망쳐야 하는 이 미션에 2일 참여해 봤다. 시작은 상영관이다. 관객들은 편집된 ‘군체’ 영상을 보게 되는데, 영화 속 사건 발생지인 둥우리빌딩이 롯데시네마 건물로 매끄럽게 치환된다. 이를 통해 좀비를 마주쳤을 때 몰입감이 극대화된다. 사실적인 분장을 하고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좀비 떼를 보면, 여유로운 표정을 짓던 관객들도 필사적으로 도망치고야 만다. 여기에 온몸을 부르르 떨며 진화하는 군체의 시그니처 포즈를 목격하는 순간, 영화관은 욕설과 비명이 난무하는 공간으로 바뀐다. 관객의 목표는 생존. 좀비에게 붙잡혀 생존자 표식인 등 뒤 벨크로를 뜯기면 안 된다. 하지만 마냥 숨어 있는 건 불가능하다. 관객들 사이에 섞여 있는 배우들로 인해 돌발 상황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거칠지만 압도적인 무력을 지닌 행동대장 ‘여포’와 내부 분열을 조장하는 3선 국회의원 ‘최호성’, 냉철한 판단력을 지닌 보안팀장 ‘김준영’ 등과 호흡하며 다양한 탈출 방법을 시도해야 한다. 생존 확률을 높이고 싶다면, 공연 시작 전 영화관 곳곳을 둘러보는 걸 추천한다. ‘인사이드 더 플레이’는 영화관이란 공간의 가치를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하기 위해 기획됐다. 영화관과 영화의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해 공연으로 확대한 국내 첫 시도이기도 하다. 비슷한 사례로는 2007년 영국 런던에서 시작된 ‘시크릿 시네마’가 있다. 빈 건물을 영화 세트장처럼 꾸민 뒤 주연 배우들과 임무를 수행하는 공연이다. 현재까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8일 후’ 등 60여 편을 활용해 150만 명 넘는 관객들을 끌어모았다. 순간의 선택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재미에 N차 관람을 하는 이들도 많다. 특히 후반부에는 관객들이 ‘미끼반’ ‘제거반’ ‘탈출반’으로 나뉘어 움직이는데, 이때 마음 가는 배우를 따라가면 된다. 기자는 김준영이 이끄는 서영철 제거반에 참여했는데, 진화한 좀비들의 계략에 걸려들어 실패했다. 좀비가 된 관객도 할 일은 있다. 특별한 장치를 착용한 뒤 서영철의 지령을 받아 생존자를 찾아 나서야 한다. 집단지성의 미래를 꿈꿨던 서영철의 구호를 외치며.“우리는, 하나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밖에…, 밖에!”2일 서울 동작구 롯데시네마 신대방. 상영관에 20여 명이 모여있는데 누군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불쑥 들어와 외쳤다. “밖에 사람이 아닌 것들이 있어요!” 상영관 문밖에선 그르렁대는 소리가 들리는데…. 로비에 놓인 자신의 가방에 이 사태를 해결할 키(key)가 있다며 도와달라는 이 남자. 나중에 알게 된 그의 이름은 ‘서영철’이었다.영화 ‘군체’를 봤다면 익숙할 이름이다. 배우 구교환이 연기한 서영철은 영화 속 집단지성 좀비 사태를 만들어낸 장본인. 지난달 21일 이 영화관에서 개막한 ‘인사이드 더 플레이: 군체’는 영화의 세계관을 일부 차용해 만든 이머시브 공연이다. 관객에게 주어진 무대는 6개의 상영관과 로비, 복도. 제한시간은 90분이다. ‘군체’ 속 좀비들로부터 도망쳐야 하는 이 미션에 2일 참여해 봤다.시작은 상영관이다. 관객들은 편집된 ‘군체’ 영상을 보게 되는데, 영화 속 사건 발생지인 둥우리 빌딩이 롯데시네마 건물로 매끄럽게 치환된다. 이를 통해 좀비를 마주쳤을 때 몰입감이 극대화된다. 사실적인 분장을 하고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좀비떼를 보면, 여유로운 표정을 짓던 관객들도 필사적으로 도망치고야 만다. 여기에 온몸을 부르르 떨며 진화하는 군체의 시그니처 포즈를 목격하는 순간, 영화관은 욕설과 비명이 난무하는 공간으로 바뀐다.관객의 목표는 생존. 좀비에게 붙잡혀 생존자 표식인 등 뒤 벨크로를 뜯기면 안 된다. 하지만 마냥 숨어있는 건 불가능하다. 관객들 사이에 섞여있는 배우들로 인해 돌발상황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거칠지만 압도적인 무력을 지닌 행동대장 ‘여포’와 내부분열을 조장하는 3선 국회의원 ‘최호성’, 냉철한 판단력을 지닌 보안팀장 ‘김준영’ 등과 호흡하며 다양한 탈출 방법을 시도해야 한다.생존 확률을 높이고 싶다면, 공연 시작 전 영화관 곳곳을 둘러보는 걸 추천한다. ‘인사이드 더 플레이’는 영화관이란 공간의 가치를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하기 위해 기획됐다. 영화관과 영화의 지적재산권(IP)을 활용해 공연으로 확대한 국내 첫 시도이기도 하다. 비슷한 사례로는 2007년 영국 런던에서 시작된 ‘시크릿 시네마’가 있다. 빈 건물을 영화 세트장처럼 꾸민 뒤 주연배우들과 임무를 수행하는 공연이다. 현재까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28일 후’ 등 60여 편을 활용해 150만 명 넘는 관객들을 끌어모았다.순간의 선택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재미에 N차 관람을 하는 이들도 많다. 특히 후반부에는 관객들이 ‘미끼반’ ‘제거반’ ‘탈출반’으로 나뉘어 움직이는데, 이때 마음가는 배우를 따라가면 된다. 기자는 김준영이 이끄는 서영철 제거반에 참여했는데, 진화한 좀비들의 계략에 걸려들어 실패했다. 좀비가 된 관객도 할 일은 있다. 특별한 장치를 착용한 뒤 서영철의 지령을 받아 생존자를 찾아 나서야 한다. 집단지성의 미래를 꿈꿨던 서영철의 구호를 외치며.“우리는, 하나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티빙’에서 회원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했다.티빙은 3일 “전날 신원 미상의 해커가 개인정보가 저장된 데이터베이스(DB)에 접속해 개인정보 파일을 외부로 전송했다”고 밝혔다. 유출된 개인정보는 회원 아이디(ID)와 이름, 생년월일, 성별, 휴대전화 번호, 이메일, 환불 계좌번호, 비밀번호, 연계정보(CI), 중복가입확인정보(DI) 등이다. 티빙 측은 이와 관련해 “주민등록번호와 결제 관련 유효 정보는 유출되지 않아, 결제와 관련된 2차 피해로 번질 가능성은 적다”고 해명했다.현재 티빙은 구체적인 피해 규모를 파악 중이다. 4월 기준 티빙의 월간활성이용자(MAU) 수가 약 770만 명인 점을 고려하면, 상당수 이용자가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티빙에 따르면 회사는 2일 사고를 인지한 뒤 관련 법령에 따라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에 신고했으며, 3일 새벽 1시경 홈페이지에 공지했다. 이후 정확한 사고 원인과 영향 범위 등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티빙 측은 “현재 공격자 IP(인터넷 프로토콜)의 접근을 차단하고 클라우드 접근 통제 정책을 변경했으며, DB 접속에 대한 모니터링도 강화했다”며 “피해 예방을 위해 동일한 계정 정보를 사용하는 다른 서비스의 비밀번호는 바꾸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티빙은 피해 구제를 위한 고객센터도 운영 중이다. 고객센터로 들어온 내용을 바탕으로 구제 절차를 위한 지원을 제공할 계획이다. 개인정보 악용으로 의심되는 전화나 메일 등을 받았을 경우에도 고객선터로 접수 가능하다. 티빙 관계자는 “이번 보안 사고로 고객들께 심려를 끼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고객 보호 조치를 최우선으로 시행하는 동시에, 확인되는 사실은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저는 멀리 안 봤어요. 정말 바로 앞만 보고 버텼어요.”‘국민 여동생’이란 수식어로 오랫동안 불려 온 배우 박보영(36)이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착하고 사랑스러운 이미지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지만, 여전히 스스로의 연기에 박한 점수를 준다. 촬영장에서 ‘컷’ 소리를 들은 뒤 ‘잘했다’고 여긴 적이 많지 않다고. 자신에게 한 가장 큰 칭찬이 ‘나쁘지 않은데?’란다. 어느덧 20년 차 배우가 된 그를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2006년 EBS 청소년 드라마로 데뷔한 박 배우는 상당히 빨리 인지도를 쌓았다. 2008년 출연한 영화 ‘과속스캔들’이 관객 수 800만 명을 넘기며 흥행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때 나이가 18세였다. 배우로서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킨 작품이지만, 그는 할 수만 있다면 이 작품에 다시 도전하고 싶다고 한다. “풋풋한 맛이 있긴 한데, ‘좀 더 잘할 순 없었니’ 하는 마음이 자꾸 든다”면서. 늘 목말랐던 것 중 하나도 연기 변신이었다. 사실 ‘늑대소년’(2012년)과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2015년), ‘열정같은 소리하고 있네’(2015년)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해왔지만, 기존 이미지가 워낙 강하다 보니 배우로서 돌파구가 필요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악역이나 어두운 배역의 대본을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 2년 전 디즈니플러스 ‘골드랜드’ 대본을 만나 첫 범죄물에 도전했다. 우연히 금괴를 손에 넣은 김희주 역을 맡아 평범했던 인간이 욕망에 사로잡히는 과정을 그렸다. 4월 말 처음 공개된 작품은 최근 10부작이 완결됐다. 박 배우는 “대본을 읽을 때 전혀 제가 떠오르지 않아서 상상이 잘 안 되는 작품이었다”면서도 “피 칠갑할 기회가 많지 않다 보니 한번쯤은 제 낯선 얼굴을 드러내 보는 게 이번 작품의 목표였다”고 밝혔다.“새로운 캐릭터에 욕심이 있다고 해도 만약 시청자분들이 ‘너의 이런 모습을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다’고 하시면 다시 밝은 작품으로 돌아왔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진 않은 것 같아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이제 나이 들어가는 저의 얼굴, 기존과는 다른 모습도 받아주시는 것 같아요.” 실제로 최근 필모그래피는 연기 변신에 대한 고민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정신병동 이야기를 다뤘던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2023년)와 1인 2역을 연기한 ‘미지의 서울’(2025년)이 대표적이다. 박 배우는 “어릴 때는 로맨틱 코미디가 가장 재밌었는데, 최근 몇 년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관심이 갔다”며 “오락 작품을 했을 때와 다른 결의 뿌듯함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그런데 요즘은 ‘내가 뭐라고 메시지를 드리나’ 싶어서 다시 밝은 작품으로 돌아가 일상의 재미를 드리고 싶다”며 웃었다. 박 배우는 평소에도 연기에 대한 고민이 많다고 한다. ‘지난번과 너무 비슷한 연기 아닌가?’ ‘방금 너무 기계적으로 연기했나?’ 하는 걱정들이 시시각각 찾아온단다. 매 순간 고비가 오는 것 같지만 “버티면 장땡”이란 긍정적인 생각으로 무장한다. 관객들 덕분이다. “제 출연작을 보고 ‘내 인생작이 됐다’고 말씀해주는 분들이 있어요. 제가 상상하지 못할 만큼 작품의 힘이 그분들께 크게 작용하더라고요. 살아갈 힘을 얻었고, 오늘내일을 버티는 힘이 됐다는 말은 저에게도 큰 힘이 돼요. 스스로 얻는 성취감은 그 다음이고요.”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저는 멀리 안 봤어요. 정말 바로 앞만 보고 버텼어요.”‘국민 여동생’ 이란 수식어로 오랫동안 불려 온 배우 박보영(36)이 올해로 데뷔 20주년을 맞았다. 착하고 사랑스러운 이미지로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지만, 여전히 스스로의 연기에 박한 점수를 준다. 촬영장에서 ‘컷’ 소리를 들은 뒤 ‘잘했다’고 여긴 적이 많지 않다고. 자신에게 한 가장 큰 칭찬이 ‘나쁘지 않은데?’란다. 어느 덧 20년차 배우가 된 그를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2006년 EBS 청소년 드라마로 데뷔한 박 배우는 상당히 빨리 인지도를 쌓았다. 2008년 출연한 영화 ‘과속스캔들’이 관객 수 800만 명을 넘기며 흥행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때 나이가 18세였다. 배우로서 이름을 확실히 각인시킨 작품이지만, 그는 할 수만 있다면 이 작품에 다시 도전하고 싶다고 한다. “풋풋한 맛이 있긴 한데, ‘좀 더 잘할 순 없었니’ 하는 마음이 자꾸 든다”면서.늘 목말랐던 것 중 하나도 연기 변신이었다. 사실 ‘늑대소년’(2012년)과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2015년), ‘열정같은 소리하고 있네’(2015년) 등 다양한 장르를 도전해왔지만, 기존 이미지가 워낙 강하다 보니 배우로서 돌파구가 필요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악역이나 어두운 배역의 대본을 찾아다녔다. 그러던 중 2년 전 디즈니플러스 ‘골드랜드’ 대본을 만나며 첫 범죄물에 도전했다. 우연히 금괴를 손에 넣은 김희주 역을 맡아 평범했던 인간이 욕망에 사로잡히는 과정을 그렸다. 4월 말 첫 공개된 작품은 최근 10부작이 완결됐다. 박 배우는 “대본을 읽을 때 전혀 제가 떠오르지 않아서 상상이 잘 안 되는 작품이었다”면서도 “피칠갑할 기회가 많지 않다 보니 한 번쯤은 제 낯선 얼굴을 드러내보는 게 이번 작품의 목표였다”고 밝혔다.“새로운 캐릭터에 욕심이 있다고 해도 만약 시청자분들이 ‘너의 이런 모습을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됐다’고 하시면 다시 밝은 작품으로 돌아왔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렇진 않은 것 같아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이제 나이 들어가는 저의 얼굴, 기존과는 다른 모습도 받아주시는 것 같아요.”실제로 최근 필모그래피는 연기 변신에 대한 고민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정신병동 이야기를 다뤘던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2023년)와 1인 2역을 연기한 ‘미지의 서울’(2025년)이 대표적이다. 박 배우는 “어릴 때는 로맨틱 코미디가 가장 재밌었는데, 최근 몇 년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관심이 갔다”며 “오락 작품을 했을 때와 다른 결의 뿌듯함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는 “그런데 요즘은 ‘내가 뭐라고 메시지를 드리나’ 싶어서 다시 밝은 작품으로 돌아가 일상의 재미를 드리고 싶다”며 웃었다.박 배우는 평소에도 연기에 대한 고민이 많다고 한다. ‘지난 번과 너무 비슷한 연기 아닌가?’ ‘방금 너무 기계적으로 연기했나?’ 하는 걱정들이 시시각각 찾아온단다. 매 순간 고비가 오는 것 같지만, “버티면 장땡”이란 긍정적인 생각으로 무장한다. 관객들 덕분이다. “제 출연작을 보고 ‘내 인생작이 됐다’고 말씀해주는 분들이 있어요. 제가 상상하지 못할 만큼 작품의 힘이 그 분들께 크게 작용하더라고요. 살아갈 힘을 얻었고, 오늘 내일을 버티는 힘이 됐다는 말은 저에게도 큰 힘이 돼요. 스스로 얻는 성취감은 그 다음이고요.”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공식 북-미 정상회담은 2019년 2월 27∼28일 베트남에서 열린 ‘하노이 회담’이 마지막이다. 결국 실패로 끝난 이 회담을 두고 당시 많은 언론은 그 책임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돌렸다. 그가 대량살상무기 실험을 준비하기 위해 시간을 번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다. 미국 국무부 관리로 북한 당국자들과 수차례 만났던 저자는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저자는 김 위원장이 강조해 온 비핵화에 대한 공개적인 약속 등으로 미뤄 볼 때 실제로 그가 합의를 원하고 있었다고 봤다. 오히려 비판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향한다. ‘2분짜리 사나이’로 불릴 정도로 특유의 성급함을 가진 트럼프로 인해 협상은 4시간여 만에 결렬됐고, 이는 비핵화의 결정적 기회를 무너뜨린 순간이 됐다는 지적이다. 트럼프 행정부를 포함해 미국 행정부 6대에 걸친 35년 북핵 협상 실패의 역사를 담은 책이다. 저자는 미국, 한국, 북한 관계자를 총 300회 이상 인터뷰하면서 북-미 핵 협상의 막전막후를 재현한다. 그 과정에서 벌어진 미국의 외교적 사투와 오판, 내부 분열 등을 보여주면서 ‘왜 북한 비핵화 실패는 반복되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간다. 저자는 ‘하노이 노딜 회담’과 함께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도 중대한 실패라고 지적한다. 북한이 먼저 비핵화 태도를 보이기 전까지 대화를 거부하고 제재를 유지하는 정책이지만, 사실상 ‘방치’였다는 것이다. 이 시기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트럼프와 오바마 행정부 사례는 아주 달라 보이지만, 미국 외교정책의 공통된 한계를 보여준다. 바로 ‘북한의 동기를 제대로 읽지 못했다’는 점이다. 저자가 만난 미국의 관료들은 대개 북한의 핵 위협을 단순한 호전성 분출로, 북한 지도자를 충동적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저자는 “미국은 북한과의 직접적 경험 대신 근거 없는 신화나 시대에 뒤떨어진 냉전적 정보에 의존해 정책을 수립해 왔다”며 “북한 지도자들을 우리가 바라는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상대해야 한다”고 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2022년 1월 7일 유튜브에서 크게 화제가 됐던 9분 남짓의 영상이 있다. ‘The Backrooms (Found Footage)’란 제목으로, 노란 복도가 끝없이 이어지는 기묘한 공간을 담고 있다. 이는 당시엔 미국의 10대 소년이던 케인 파슨스(21)가 무료 3D 프로그램을 활용해 집에서 제작한 작품이었다. 해당 영상을 업로드한 지 2개월도 안 돼 조회수 1780여 만 회(현재 7885만 회)를 기록하자, 여러 영화사가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결국 파슨스는 17세의 나이에 공포영화 ‘유전’, ‘미드소마’를 제작한 A24와 최연소 감독으로 계약을 맺었다. 지난해 메가폰을 잡아, 27일 국내 개봉한 영화 ‘백룸’이 그 결과물이다. 본래 백룸은 인터넷 괴담에서 시작된 개념이다. 기본 설정은 ‘현실 세계에서 일종의 버그가 생기면 백룸이란 가상 공간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주로 텅 빈 쇼핑몰이나 오래된 사무실 등을 배경으로 하는데, 익숙하지만 불안한 분위기를 풍기는 게 특징이다. 여러 온라인 크리에이터들이 백룸 세계관을 바탕으로 2차 창작물을 만들며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됐고, 파슨스 감독도 그중 하나였다. 영화는 이 세계관에 주요 서사를 부여해 장편영화로의 도약을 시도한다. 내용은 이렇다. 1990년대 건축가 클라크(추이텔 에지오포)가 우연히 가게 지하실 벽 너머에 있는 기묘한 공간을 발견하고, 이로 인해 점점 미쳐 간다. 그의 정신과 담당 의사인 메리(레나테 레인스베)는 실종된 클라크를 찾아 그 공간으로 들어가게 된다. 작품의 백미는 큰 스크린으로 구현된 백룸이다. 무한하면서도 결코 벗어날 수 없을 듯한 공간 자체가 주는 압박감은 상당하다. 텅 빈 방이 주는 음산함에 더해 난데없이 놓인 가구들과 정체불명의 낙서들 또한 불쾌감을 자극한다. 영화는 클라크 시점에서 앵글을 끌고 가며 문을 열 때마다 펼쳐지는 다른 차원의 공간을 관객들로 하여금 간접 체험하게 만든다. 제작진은 이번 촬영을 위해 약 843평 규모의 세트장을 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 ‘백룸’이 기존 유튜브 영상을 뛰어넘는, 하나의 제대로 된 창작물이 됐다고 보기엔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영화는 개인의 트라우마와 한 공간의 역사를 뒤섞어 놓았는데, 메시지를 설명하는 방식이 매우 불친절하다. 게다가 기존 영상을 모르는 관객이라면 영화의 세계관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흥미로운 건, 디지털 지식재산권(IP)의 확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백룸’ 외에도 최근 북미권에선 공포영화 ‘톡 투 미’(2023년), ‘셸비 오크스’(2024년), ‘아이언 렁’(2026년) 등 유튜버 출신 신인 감독들의 데뷔작이 속속 나오고 있다. “나는 유튜브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파슨스 감독의 말은 달라진 창작 생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일지도 모른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2022년 1월 7일 유튜브에서 크게 화제가 됐던 9분 남짓의 영상이 있다. ‘The Backrooms (Found Footage)’란 제목으로, 노란 복도가 끝없이 이어지는 기묘한 공간을 담고 있다. 이는 당시엔 미국의 10대 소년이던 케인 파슨스(21)가 무료 3D 프로그램을 활용해 집에서 제작한 작품이었다. 해당 영상을 업로드한 지 2개월도 안 돼 조회수 1780여만 회를 기록하자, 여러 영화사가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결국 파슨스는 17세의 나이에 공포영화 ‘유전’, ‘미드소마’를 제작한 A24와 최연소 감독으로 계약을 맺었다. 지난해 메가폰을 잡아, 27일 국내 개봉한 영화 ‘백룸’이 그 결과물이다.본래 백룸은 인터넷 괴담에서 시작된 개념이다. 기본 설정은 ‘현실 세계에서 일종의 버그가 생기면 백룸이란 가상 공간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주로 텅 빈 쇼핑몰이나 오래된 사무실 등을 배경으로 하는데, 익숙하지만 불안한 분위기를 풍기는 게 특징이다. 여러 온라인 크리에이터들이 백룸 세계관을 바탕으로 2차 창작물을 만들며 하나의 문화 현상이 됐고, 파슨스 감독도 그중 하나였다.영화는 이 세계관에 주요 서사를 부여해 장편영화로의 도약을 시도한다. 내용은 이렇다. 1990년대 건축가 클라크(추이텔 에지오포)가 우연히 가게 지하실 벽 너머에 있는 기묘한 공간을 발견하고, 이로 인해 점점 미쳐간다. 그의 정신과 담당 의사인 메리(레나테 레인스베)는 실종된 클라크를 찾아 그 공간으로 들어가게 된다.작품의 백미는 큰 스크린으로 구현된 백룸이다. 무한하면서도 결코 벗어날 수 없을 듯한 공간 자체가 주는 압박감은 상당하다. 텅 빈 방이 주는 음산함에 더해 난데없이 놓인 가구들과 정체불명의 낙서들 또한 불쾌감을 자극한다. 영화는 클라크 시점에서 앵글을 끌고 가며 문을 열 때마다 펼쳐지는 다른 차원의 공간을 관객들로 하여금 간접 체험하게 만든다. 제작진은 이번 촬영을 위해 약 843평 규모의 세트장을 제작했다고 한다.하지만 영화 ‘백룸’이 기존 유튜브 영상을 뛰어넘는, 하나의 제대로 된 창작물이 됐다고 보기엔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 영화는 개인의 트라우마와 한 공간의 역사를 뒤섞어 놓았는데, 메시지를 설명하는 방식이 매우 불친절하다. 게다가 기존 영상을 모르는 관객이라면 영화의 세계관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그럼에도 이 영화가 흥미로운 건, 디지털 지적재산권(IP)의 확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백룸’ 외에도 최근 북미권에선 공포영화 ‘아이언 렁’(2026년), ‘톡 투 미’(2025년), ‘셸비 오크스’(2024년) 등 유튜버 출신 신인감독들의 데뷔작이 속속 나오고 있다. “나는 유튜브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는 파슨스 감독의 말은 달라진 창작 생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일지도 모른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배우 전지현(45)이 영화 ‘군체’로 11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2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응한 그는 “오랜만이다 보니 이런 시간들이 참 귀한 시간처럼 느껴진다”며 반갑게 웃어 보였다. 21일 개봉한 연상호 감독의 ‘군체’는 전 배우의 영화 ‘암살’(2015년) 이후 첫 영화다. 이 작품이 제79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공식 초청돼 그는 배우로서 처음 칸 레드카펫을 밟기도 했다. 전 배우는 “팬데믹 이후로 영화산업이 많이 주춤했다 보니 시나리오를 검토할 기회도 적었다”며 “오랜만에 영화로 관객들을 뵙다 보니 개인으로서나 여배우로서 의미가 크다”고 했다. 전 배우는 영화에서 생명공학과 교수 권세정 역을 맡았다. 생존자들은 그를 중심으로 뭉쳐 정체불명의 감염병이 만든 좀비떼들 사이에서 생존해 나간다. 연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일면식 없던 전 배우를 캐스팅하기 위해 당시 함께 ‘북극성’을 촬영하고 있던 배우 강동원에게 귀띔을 부탁했다고 한다. 그는 “연 감독의 모든 작품을 다 봤던 팬으로서 꼭 한번 작업해 보고 싶었다”면서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린 상태였기 때문에 강동원 씨가 크게 도움은 안 됐다”며 장난스레 웃었다. 그는 국내에서 ‘액션 장인’으로 불리는 몇 안 되는 여배우다. 이번 작품에선 일부러 액션을 절제했다지만, 그의 깔끔한 움직임에 ‘역시 전지현’이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저는 옛날부터 한 장르에 국한돼 있는 배우는 좋은 배우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배우는 시장이 넓어야 된다고 믿었고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해외에서 작업할 기회가 있으면 참여하려고 노력했고, 자연스럽게 액션 연기에도 익숙해졌던 것 같아요. 대사로 전달하지 않아도 액션이란 장르 속에서 관객을 공감시킬 수 있도록 저만의 스펙트럼을 쌓아 오려 했죠.” 1997년 잡지 모델로 데뷔한 그는 단숨에 CF 스타로 등극한 이후부터 현재까지 30년 가까이 톱스타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는 ‘톱스타’란 수식어에 대해 “많은 기회가 주어졌기에 부담감마저 감사하다”며 “어릴 때부터 활동하느라 사회생활은 많이 못해 봤지만 작품과 캐릭터를 통해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고 말했다. 전지현의 대표작으로는 ‘엽기적인 그녀’(2001년), ‘도둑들’(2012년) 등이 꼽힌다. 하지만 배우 스스로 가장 큰 변환점이 된 작품으로는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2013∼2014년)를 꼽았다. 그는 “제가 가진 성향을 최대치로 폭발시켜 주는 역할이었다”며 “그 역할 후에야 제 안에 있지만 표현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자연스럽게 드러낼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전 배우도 이제 어느덧 중년배우가 됐다. 그는 “과거에 얽매여 있거나 너무 앞서 나가 힘들어하지 않으면서도 지금의 제가 가진 감정을 잘 전달할 수 있는 역할을 맡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뭣보다도 “잘 사는 것”이 그가 가진 최고의 목표라고 한다. “저에게도 ‘스타’가 있고, 그분들은 저의 한 시절을 안고 계신 분들이에요. 그분들이 무너지면 제가 무너지는 기분이 들어요. 저도 오랜 시간 활동하면서 어떤 분들의 과거를 담고 있는 사람이 됐을 테니 더 책임감을 느낍니다. ‘잘 살아야겠다’고요.”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한국계 미국인 건축가인 강대화 씨(49·사진)가 영국 왕립건축가협회(RIBA)가 선정한 올해의 런던 건축상을 받았다. 25일(현지 시간) RIBA에 따르면 강 건축가가 설계한 ‘옛 전쟁부(OWO·Old War Office) 대형 안뜰과 파빌리온’이 14일 ‘2026 영국 RIBA 런던 어워드’에서 입상했다. 이 작품은 영국 육군 담당 부처인 전쟁부 청사였으나, 현재 래플스 호텔로 쓰이는 OWO 건물의 앞마당이다. RIBA 저널에 따르면 심사위원단은 그의 건축이 “또렷하게 현대적 개성을 드러내면서도 기존 분위기에 겸손하게 녹아들어 격식 있는 역사적 공간에서 능숙하게 구현됐다”고 평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제79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크리스티안 문지우 감독(루마니아)의 영화 ‘피오르’가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문지우 감독은 2007년 영화 ‘4개월, 2주, 그리고 2일’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뒤 감독상, 각본상 등 칸에서만 4번째 수상이다. 23일(현지 시간) 프랑스 칸의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폐막식에서 ‘피오르’는 최고상인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호명됐다. ‘피오르’는 루마니아계 노르웨이인 부부가 외딴 마을로 이주하며 종교적인 문제 등으로 이웃들과 충돌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문지우 감독은 무대에 올라 “영화는 세상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문제들을 이야기해야 한다”며 “우리는 주변 사람들, 사랑하는 이들을 관찰함으로써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이어 “오늘날 세상은 분열되고 급진화되고 있다”며 “이 영화는 모든 형태의 극단주의에 반대하는 하나의 선언이고, 관용과 포용, 공감에 대한 메시지”라고 했다.칸에서 한국인 최초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박찬욱 감독은 폐막식 직후 열린 간담회에서 “솔직하게 황금종려상은 누구에게도 시상하고 싶지 않았다”며 “왜냐하면 제가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는 상이기 때문”이라며 큰 웃음을 안겼다. 그러면서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줘야 하기 때문에, 주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좋은 영화가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없었다”며 지난해 개봉한 자신의 영화 ‘어쩔수가없다(No Other Choice)’의 제목을 재치 있게 활용했다. 올해 심사위원대상은 ‘미노타우로스’(감독 안드레이 즈뱌긴체프)가 받았으며, 감독상은 ‘라 볼라 네그라’(하비에르 암브로시, 하비에르 칼보)와 ‘파더랜드’(파베우 파블리코프스키)가 공동 수상했다. 남우주연상은 ‘카워드’의 에마뉘엘 마키아와 발랭탱 캉파뉴가, 여우주연상은 ‘올 오브 어 서든’의 비르지니 에피라와 오카모토 다오가 나란히 받았다. 한국 작품으로는 4년 만에 경쟁부문에 진출한 나홍진 감독의 ‘호프’는 수상 명단에 오르지 못했다.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됐던 연상호 감독의 ‘군체’는 21일 국내 개봉해 나흘 만에 관객 100만 명을 넘어섰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제79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크리스티안 문지우 감독(루마니아)의 영화 ‘피오르드’가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문지우 감독은 2007년 영화 ‘4개월, 2주, 그리고 2일’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뒤 감독상, 각본상 등 칸에서만 4번째 수상이다. 23일(현지 시간) 프랑스 칸의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열린 폐막식에서 ‘피오르드’는 최고상인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호명됐다. ‘피오르드’는 루마니아계 노르웨이인 부부가 외딴 마을로 이주하며 종교적인 문제 등으로 이웃들과 충돌하는 이야기를 그렸다.문지우 감독은 무대에 올라 “영화는 세상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이해하기 위해 중요한 문제들을 이야기해야 한다”며 “우리는 주변 사람들, 사랑하는 이들을 관찰함으로써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이어 “오늘날 세상은 분열되고 급진화되고 있다”며 “이 영화는 모든 형태의 극단주의에 반대하는 하나의 선언이고, 관용과 포용, 공감에 대한 메시지”라고 했다.칸에서 한국인 최초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박찬욱 감독은 폐막식 직후 열린 간담회에서 “솔직하게 황금종려상은 누구에게도 시상하고 싶지 않았다”며 “왜냐하면 제가 한번도 받은 적이 없는 상이기 때문”이라며 큰 웃음을 안겼다. 그러면서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줘야 하기 때문에, 주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좋은 영화가 있었기 때문에 할 수 없었다”며 지난해 개봉한 자신의 영화 ‘어쩔수가없다(No Other Choice)’의 제목을 재치 있게 활용했다.올해 심사위원대상은 ‘미노타우로스’(안드레이 즈비아긴체프 감독)가 받았으며, 감독상은 ‘라 볼라 네그라’(하비에르 암브로시·하비에르 칼보)와 ‘파더랜드’(파베우 파블리코프스키)가 공동 수상했다. 남우주연상은 ‘카워드’의 에마뉘엘 마키아와 발렌틴 캉파뉴가, 여우주연상은 ‘올 오브 어 서든’의 비르지니 에피라와 오카모토 다오가 나란히 받았다.한국 작품으로는 4년 만에 경쟁부문에 진출한 나홍진 감독의 ‘호프’는 수상 명단에 오르지 못했다.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됐던 연상호 감독의 ‘군체’는 21일 국내 개봉해 나흘 만에 관객 100만 명을 넘어섰다. 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달에서 화성으로.’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현재 이런 기치 아래 달에 상주 기지를 건설하는 아르테미스 계획을 진행 중이다. 올 4월 유인 달 궤도 비행을 하고 돌아온 아르테미스 2호도 이 계획의 일부라 할 수 있다. 화성 정착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시대, 진화생물학자인 저자는 ‘어떻게 갈 것인가’를 넘어 ‘어떻게 머물 것인가’로 관심사를 확장한다. 희박한 대기, 우주 방사선, 독성 물질이 포함된 토양 등 화성의 환경은 지구와는 사뭇 다르다. 책은 다양한 연구 결과 등을 바탕으로 우주 환경이 인간에게 일으킬 변화에 대해 탐구했다. 일단 인간의 신체는 출발할 때부터 변화를 맞는다. 현재의 기술로 화성까지 가는 시간은 약 6∼9개월. 이 기간 동안 우리는 약한 중력을 견뎌야 하는데, 이는 지구에서 장기간 누워 있는 상태와 유사하다. 침상 연구 결과에 따르면 피실험자들은 2주 만에 뼈가 약해지고 근육이 위축됐다. 나아가 우주에 머물다 보면 척추디스크가 덜 눌리면서 키가 커지고, 혈액이 머리 쪽으로 쏠리며 눈이 붓게 된다. 더 큰 변화는 2015년 진행된 ‘나사의 쌍둥이 연구’에서 드러난다. 우주정거장에 있는 형과 지구에 있는 일란성 쌍둥이 동생을 1년간 비교한 연구 결과, 우주 방사선에 노출됐던 형의 유전자 일부가 변형됐다. 그리고 유전자 중 약 7%는 지구로 귀환한 뒤에도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다. 즉, 우주 체류가 인류의 유전자까지 바꿀 수 있다는 뜻이다. 인류의 ‘번식’에도 상당한 위험이 따른다. 여성의 골반뼈는 상당히 약한 상태가 돼 출산이란 강한 힘에 노출되면 골절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화성에서 출산은 제왕절개를 통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그렇게 태어난 아기는 중력이 지구의 8분의 3인 환경에서 자라나 지구인보다 더 약한 상태로 발달하게 된다. 어쩐지 쉽지만은 않을 것 같은 미래다. 실제로 책은 우주 생활의 윤곽을 그리고 있지만, 독자로선 오히려 지구를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이 푸른 별의 환경에 맞춰진, 어쩔 수 없는 지구인이니까.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는 둥우리 빌딩. 한 회의 참석자를 시작으로 사람을 좀비로 만드는 의문의 감염체가 순식간에 확산된다. 건물은 봉쇄됐고, 생존자들은 스스로 좀비 무리를 뚫고 탈출해야만 한다. 그런데 무지성인 줄 알았던 좀비들이 하나둘 각성하기 시작한다. 새로운 좀비물을 시도한 영화 ‘군체’가 21일 국내 개봉했다. ‘부산행’(2016년)과 ‘반도’(2020년) 등을 통해 K좀비 신드롬을 일으켰던 연상호 감독의 신작이다. 지난 10년간 국내에서도 좀비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꽤나 흔해진 소재라 색다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연 감독은 20일 간담회에서 “제가 만든 영화 중 처음으로 좀비가 주인공인 작품”이라고 자부했다.● 점점 진화하는 좀비들 감독의 자신감대로 ‘군체’ 속 좀비들은 다르다. 전작들이 고전적인 좀비에 충실했다면, 이번에는 좀비들끼리 ‘소통’을 한다. 이들은 서로 연결돼 집단으로 움직이며, 실시간으로 감각과 정보를 공유하며 끊임없이 진화한다. 일례로 극 초반부만 해도 좀비들은 마네킹으로도 유인할 수 있지만, 이내 인간을 구별해 내는 지능을 갖게 된다. 이처럼 좀비에게 ‘예측불허’라는 특성을 부여함으로써 ‘군체’의 좀비는 기존과 다른 보폭의 속도감으로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연 감독이 좀비 세계관을 확장하려고 노력한 흔적은 비주얼로도 드러난다. 살벌하게 분장한 좀비들이 유기적으로 소통하는 광경은 상당히 기괴하다. 또 일종의 네트워크 망 역할을 하는 끈적한 점액질과, 한 몸인 것처럼 뭉쳐 다니는 좀비들도 전작과 차별화된다. 종전엔 브레이크 댄서나 스턴트맨들과 좀비 액션 작업을 했다면, 이번엔 군무처럼 보이기 위해 현대무용가 20명의 도움을 받아 동작을 만들었다고 한다.‘군체’는 앞서 제79회 칸 국제 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받아 16일(현지 시간) 현지에서 먼저 공개됐다. 당시 관객석에선 7분가량 기립 박수가 이어졌다. 연 감독은 ‘부산행’, ‘반도’에 이어 좀비 영화로만 세 번째 칸의 부름을 받았다.● 전지현과 구교환의 힘 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영화는 ‘진화한 좀비’란 콘셉트 외에는 특장점이 거의 전무하다. 우선 스토리의 기본 골격은 ‘부산행’의 문법을 답습했다. ‘부산행’ 석우(공유)는 권세정(전지현)이 이어받았고, 부인을 지키려 화끈한 액션을 선보인 상화(마동석) 캐릭터는 장애인인 누나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지는 최현석(지창욱)으로 갈음한다. 여기에 고구마 캐릭터, 무능한 정부 관계자 등 인간군상마저 다소 도식적이다. 예상 가능한 신파적 전개도 엇비슷하다. 하지만 뻔한 스토리텔링에도 작품의 오락적 재미를 이끄는 건 배우들이다. ‘암살’(2015년) 이후 11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전지현은 극의 무게중심을 잡는 기둥이다. 그가 맡은 세정 역은 생명공학과 교수로, 좀비들의 진화 형태를 파악하며 생존자들을 진두지휘한다. 이른바 ‘지능캐’라 “일부러 액션을 절제했다”고 하지만, 그는 작은 액션만으로도 시선을 붙잡는 힘이 있다. 전 배우와 비견되는 또 다른 키맨은 배우 구교환이다. 구 배우가 연기한 서영철은 좀비 감염체를 만들어낸 매드 사이언티스트. 시작부터 끝까지 원톱 빌런으로 활약하면서, 다소 뜬금없는 서영철의 목적성을 연기력으로 설득시킨다. 연 감독은 서영철과 그의 지시 아래 움직이는 좀비 무리를 통해 급격히 발전하는 인공지능(AI)으로 인해 개인의 개별성이 사라지는 세상을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는 둥우리 빌딩. 한 회의 참석자를 시작으로 사람을 좀비로 만드는 의문의 감염체가 순식간에 확산된다. 건물은 봉쇄됐고, 생존자들은 스스로 좀비 무리를 뚫고 탈출해야만 한다. 그런데 무지성인 줄 알았던 좀비들이 하나둘 각성하기 시작한다.새로운 좀비물을 시도한 영화 ‘군체’가 21일 국내 개봉한다. ‘부산행’(2016년)과 ‘반도’(2020년) 등을 통해 K좀비 신드롬을 일으켰던 연상호 감독의 신작이다. 지난 10년간 국내에서도 좀비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꽤나 흔해진 소재라 색다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연 감독은 20일 간담회에서 “제가 만든 영화 중 처음으로 좀비가 주인공인 작품”이라고 자부했다.● 점점 진화하는 좀비들감독의 자신감대로 ‘군체’ 속 좀비들은 다르다. 전작들이 고전적인 좀비에 충실했다면, 이번에는 좀비들끼리 ‘소통’을 한다. 이들은 서로 연결돼 집단으로 움직이며, 실시간으로 감각과 정보를 공유하며 끊임없이 진화한다. 일례로 극 초반부만 해도 좀비들은 마네킹으로도 유인할 수 있지만, 이내 인간을 구별해내는 지능을 갖게 된다. 이처럼 좀비에게 ‘예측불허’라는 특성을 부여함으로써, ‘군체’의 좀비는 기존과 다른 보폭의 속도감으로 긴장감을 극대화한다.연 감독이 좀비 세계관을 확장하려고 노력한 흔적은 비주얼로도 드러난다. 살벌하게 분장한 좀비들이 유기적으로 소통하는 광경은 상당히 기괴하다. 또 일종의 네트워크 망 역할을 하는 끈적한 점액질과, 한 몸인 것처럼 뭉쳐 다니는 좀비들도 전작과 차별화된다. 종전엔 브레이크 댄서나 스턴트맨들과 좀비 액션 작업을 했다면, 이번엔 군무처럼 보이기 위해 현대무용가 20명의 도움을 받아 동작을 만들었다고 한다.‘군체’는 앞서 제79회 칸 국제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초청받아 16일(현지시간) 현지에서 먼저 공개됐다. 당시 관객석에선 7분가량 기립 박수가 이어졌다. 연 감독은 ‘부산행’, ‘반도’에 이어 좀비 영화로만 세 번째 칸의 부름을 받았다.● 전지현과 구교환의 힘아쉬운 점도 적지 않다. 영화는 ‘진화한 좀비’란 콘셉트 외에는 특장점이 거의 전무하다. 우선 스토리의 기본 골격은 ‘부산행’의 문법을 답습했다. ‘부산행’ 석우(공유)는 권세정(전지현)이 이어받았고, 부인을 지키려 화끈한 액션을 선보인 상화(마동석) 캐릭터는 장애인인 누나를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지는 최현석(지창욱)으로 갈음한다. 여기에 고구마 캐릭터, 무능한 정부 관계자 등 인간군상마저 다소 도식적이다. 예상 가능한 신파적 전개도 엇비슷하다.하지만 뻔한 스토리텔링에도 작품의 오락적 재미를 이끄는 건 배우들이다. ‘암살’(2015년) 이후 11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온 전지현은 극의 무게중심을 잡는 기둥이다. 그가 맡은 세정 역은 생명공학과 교수로, 좀비들의 진화 형태를 파악하며 생존자들을 진두지휘한다. 이른바 ‘지능캐’라 “일부러 액션을 절제했다”고 하지만, 그는 작은 액션만으로도 시선을 붙잡는 힘이 있다.전 배우와 비견되는 또 다른 키맨은 배우 구교환이다. 구 배우가 연기한 서영철은 좀비 감염체를 만들어낸 매드 사이언티스트. 시작부터 끝까지 원톱 빌런으로 활약하면서, 다소 뜬금없는 서영철의 목적성을 연기력으로 설득시킨다. 연 감독은 서영철과 그의 지시 아래 움직이는 좀비 무리를 통해 급격히 발전하는 인공지능(AI)으로 인해 개인의 개별성이 사라지는 세상을 그리고 싶었다고 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