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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 현시점에서 2025년 국내 상영작 가운데 가장 많은 관객이 본 영화가 됐다. 일본 작품이 11월 말에 국내 연간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한 건 처음이다. 애니메이션 영화가 연간 국내 1위에 오른 경우도 2004년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이 운영을 시작한 이후로 최초다.22일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귀멸의 칼날’의 누적 관객 수는 563만8000여 명으로, 기존 박스오피스 1위였던 ‘좀비딸’(563만7000여 명)을 뛰어넘었다. ‘귀멸의 칼날’의 성공은 TV애니메이션에 이어 전체 시리즈의 대단원으로 향하는 새로운 에피소드를 선보인 데다, 대형 스크린에 어울리는 화려한 작화와 액션 연출로 관객들을 불러모았기 때문이란 평이 나온다. 특히 여러 다양한 굿즈 이벤트 등을 통해 관객들의 ‘N차 관람’ 비율을 높인 점도 주효했다. 다만 ‘귀멸의 칼날’이 마지막까지 올해 흥행 1위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는 아직 단언하기 어렵다. 다음 달 7일 강력한 도전자인 영화 ‘아바타: 불과 재’가 개봉하기 때문이다. 역대 세계 흥행 기록 1위와 3위에 올라 있는 아바타 시리즈는 국내에서도 1편이 1362만 명, 2편이 108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반면 ‘좀비딸’까지 밀리면서 연말에 ‘귀멸의 칼날’을 뒤집을 한국 영화는 사실상 없어졌다. 저예산 독립 영화를 제외하면, 장편상업영화라 부를 만한 작품도 내달 3일 개봉하는 배우 하정우의 연출작 ‘윗집 사람들’과 허성태 주연의 코미디 영화 ‘정보원’, 홍경 주연의 ‘콘크리트 마켓’ 정도다. 게다가 할리우드 기대작들이 줄줄이 개봉하면 상영관을 제대로 잡는 것조차 어려울 수 있다. 이럴 경우 2025년 국내 박스오피스 ‘흥행 TOP5’에서 살아남을 한국 영화도 ‘좀비딸’ 하나뿐일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재 ‘야당’(337만 명)이 5위지만, 아바타는 물론 당장 26일 개봉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토피아2’에도 밀릴 공산이 크다. 영화계 관계자는 “한국 영화는 ‘위기론’에도 불구하고 지난 3년간 국내 ‘흥행 TOP5’에서 절반 이상을 차지해 왔다”며 “올해는 개봉 작품 수가 크게 줄어든 한국 영화가 상업적인 경쟁력마저 심각하게 흔들린 해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1933년 5월 10일, 독일 베를린 아우구스트 베벨 광장에 모인 수만 명의 군중이 책들을 불태웠다. 독일 나치의 선전장관 괴벨스가 “비(非)독일인의 영혼을 정화시킨다”며 선동해 일어난 ‘베를린 분서 사건’이다. 전쟁과 책의 상관관계를 떠올리자면 대개 이와 비슷한 장면을 생각할 것이다. 전쟁은 늘 악역이며 책은 희생자인 그림. 그러나 영국 역사학자인 저자는 이러한 통념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저자는 전시에 쓰이고 읽힌 책들을 추적하며, 사회의 여러 층위에서 책이 ‘전쟁의 적극적 행위자’로 기능해온 역사를 보여준다. 책은 우선 군사적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40년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이 노르웨이 해안을 점령한 독일군을 몰아내기 위해 작전을 준비하며 가장 중요한 참고 자료로 채택한 건 오래된 스칸디나비아 관광 안내서였다. 다른 국가의 지리 정보가 많지 않던 시대에 책이 전황을 뒤집는 전략적 자원이 됐던 셈이다. 특히 전쟁 양상이 정보전으로 진화한 20세기, 도서관은 전쟁의 주요 거점이 됐다. 당시 군 고위층에게는 도서관이 소장한 과학 정기간행물이 매우 중요했다. 과학계가 공유하던 지식을 확보하는 게 전쟁의 중요한 목표였기 때문이다. 1920년대 영국학술원은 세계 각지의 도서관 150곳과 그 안에 있는 간행물 2만5000종의 목록을 모았다. 독일 도서관들은 전국 상호대차 서비스를 마련해 각 간행물을 연구기관에 배포하기도 했다. 책은 후방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히틀러의 저서 ‘나의 투쟁’이나 ‘빨간 책’으로 불리는 마오쩌둥(毛澤東)의 어록처럼 지도자들은 애국심을 끌어올리기 위해 책을 활용했다. 당시 종이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음에도 출판업이 황금기를 누린 이유다. 산문으로 표현하기에는 위험한 감정을 ‘시’가 대체했다는 점도 흥미롭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뒤 한 달 동안 독일에서만 무력을 예찬하는 시가 5만여 편이나 쓰였다고 한다.“책이 본질적으로 평화로운 것이라는 가정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다”는 저자의 의도처럼 책에 대한 낭만을 걷어내는 책이다. 두께가 상당하지만 평이한 문체 덕에 읽기 어렵지 않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오즈의 최고 권력자 ‘마법사’(제프 골드블럼)가 숨겨온 진실을 알게 된 글린다(아리아나 그란데)와 엘파바(신시아 이리보). 엘파바는 마법사와 정면으로 맞서기로 결심하지만, 글린다는 끝내 마법사 편에 남는다.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한 두 사람에게 세상은 각기 다른 이름을 붙인다. ‘사악한 서쪽 마녀 엘파바’와 ‘착한 마녀 글린다’. 지난해 11월 개봉한 영화 ‘위키드’는 이 대목에서 끝이 났다. 1년간의 인터미션 뒤 돌아온 속편 ‘위키드: 포 굿’은 글린다와 엘파바의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하는 과정을 본격적으로 다룬다. 19일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먼저 개봉한 이번 작품은 동명의 뮤지컬 2막 부분을 영화화했다. 두 주인공의 선택이 어떻게 ‘선’과 ‘악’이라는 틀을 쓰게 되는지에 집중하며, 전편에서 던진 ‘편견에 맞서는 용기’라는 주제를 제대로 이어받았다. 특히 ‘위키드: 포 굿’에선 글린다의 감정을 보다 깊이 있게 따라간다. 글린다는 모두로부터 “착하다”는 찬사를 들으며 살아가지만, 많은 이들의 기대에 맞추려는 부담감에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런 그의 불안감은 엘파바를 지켜보며 더욱 커진다. 엘파바는 마법사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사악한 마녀’라는 이름을 기꺼이 짊어진다. 대척점에 선 두 사람의 갈등은 피예로 왕자(조너선 베일리)를 둘러싼 삼각관계, 엘파바 동생의 죽음 등을 거치며 정점에 다다른다. 그러나 서로를 오해하고 미워하면서도 끝내 서로를 이해한다. 클라이맥스에 흐르는 배경음악(OST) ‘포 굿(For Good)’은 두 사람의 애틋하면서도 애증스러웠던 관계를 잘 보여주는 곡. 여기에 원작 작곡가 스티븐 슈워츠가 영화를 위해 새롭게 작곡한 엘파바의 ‘노 플레이스 라이크 홈(No Place Like Home)’, 글린다의 ‘더 걸 인 더 버블(The Girl in the Bubble)’이 더해져 인물의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한다. 서사적 완결성은 살짝 미흡한 감이 없지 않다. 두 주인공이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이 다소 성급한 데다, 생략된 감정선이 많다. 이들과 대립하는 마법사와 마담 모리블(양쯔충·楊紫瓊)도 비교적 쉽게 몰락하면서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또 전편의 ‘디파잉 그래비티(Defying gravity)’처럼 압도적인 ‘킬링 넘버’가 부재한 점도 아쉽다. 전체적으로 서정적인 곡들이 중심을 이루며, 화려한 뮤지컬 장면을 기대했다면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뮤지컬과 원작 팬층이 워낙 두꺼운 만큼 흥행 성과에 관심이 모인다.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위키드: 포 굿’은 개봉 첫날에만 10만8828명의 국내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로 출발했다. 다만 전편 ‘위키드’는 세계적으로 총 7억5885만 달러(약 1조1114억 원)를 벌어들였지만, 국내 관객은 약 224만 명에 그쳤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오즈의 최고 권력자 ‘마법사’(제프 골드브럼)가 숨겨온 진실을 알게 된 글린다(아리아나 그란데)와 엘파바(신시아 이리보). 엘파바는 마법사와 정면으로 맞서기로 결심하지만, 글린다는 끝내 마법사 편에 남는다.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한 두 사람에게 세상은 각기 다른 이름을 붙인다. ‘사악한 서쪽 마녀 엘파바’와 ‘착한 마녀 글린다’.지난해 11월 개봉한 영화 ‘위키드’는 이 대목에서 끝이 났다. 1년 간의 인터미션 뒤 돌아온 속편 ‘위키드: 포 굿’은 글린다와 엘파바의 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하는 과정을 본격적으로 다룬다. 19일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먼저 개봉한 이번 작품은 동명의 뮤지컬 2막 부분을 영화화했다. 두 주인공의 선택이 어떻게 ‘선’과 ‘악’이라는 틀을 쓰게 되는지에 집중하며, 전편에서 던진 ‘편견에 맞서는 용기’라는 주제를 제대로 이어받았다.특히 ‘위키드: 포 굿’에선 글린다의 감정을 보다 깊이있게 따라간다. 글린다는 모두로부터 “착하다”는 찬사를 들으며 살아가지만, 많은 이들의 기대에 맞추려는 부담감에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런 그의 불안감은 엘파바를 지켜보며 더욱 커진다. 엘파바는 마법사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사악한 마녀’라는 이름을 기꺼이 짊어진다.대척점에 선 두 사람의 갈등은 피예로 왕자(조나단 베일리)를 둘러싼 삼각관계, 엘파바 동생의 죽음 등을 거치며 정점에 다다른다. 그러나 서로를 오해하고 미워하면서도 끝내 서로를 이해한다. 클라이맥스에 흐르는 배경음악(OST) ‘포 굿(For Good)’은 두 사람의 애틋하면서도 애증스러웠던 관계를 잘 보여주는 곡. 여기에 원작 작곡가 스티븐 슈워츠가 영화를 위해 새롭게 작곡한 엘파바의 ‘노 플레이스 라이크 홈(No Place Like Home)’, 글린다의 ‘더 걸 인 더 버블(The Girl in the Bubble)’이 더해져 인물의 감정을 풍부하게 표현한다.서사적 완결성은 살짝 미흡한 감이 없지 않다. 두 주인공이 관계를 회복하는 과정이 다소 성급한 데다, 생략된 감정선이 많다. 이들과 대립하는 마법사와 마담 모리블(양쯔충·楊紫瓊)도 비교적 쉽게 몰락하면서 긴장감을 떨어뜨린다. 또 전편의 ‘디파잉 그래피티(Defying gravity)’처럼 압도적인 ‘킬링 넘버’가 부재한 점도 아쉽다. 전체적으로 서정적인 곡들이 중심을 이루며, 화려한 뮤지컬 장면을 기대했다면 밋밋하게 느껴질 수 있다.그럼에도 뮤지컬과 원작 팬층이 워낙 두터운 만큼 흥행 성과에 관심이 모인다.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위키드: 포 굿’은 개봉 첫날에만 10만8828명의 국내 관객을 동원하며 박스오피스 1위로 출발했다. 다만 전편 ‘위키드’는 세계적으로 총 7억5885만 달러(약 1조 1114억 원)를 벌어들였지만, 국내 관객은 약 224만 명에 그쳤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선생님!” 18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스물다섯 살 배우 김향기(25)를 이렇게 불러봤다. 2006년 영화 ‘마음이…’로 데뷔했으니, 연차로는 어느덧 20년 차에 이른 ‘고참 배우’니까. 장난 반 진심 반 부른 호칭에 그는 쑥스러운 듯 웃음을 터뜨렸다. 강아지 마음이와 함께 뛰놀던 꼬마 ‘소이’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그가 이번에 보여줄 영화는 굳세고 당찬 ‘엄마’다. 이달 26일 개봉하는 영화 ‘한란’에서 그는 딸 해생(김민채)과 생이별하게 되는 엄마 아진 역을 맡았다. 이 영화는 1948년 제주에서 토벌대를 피해 한라산으로 피신한 모녀의 생존 여정을 담은 작품이다. 김 배우는 “지금 시점에서 제주4·3을 ‘사건’으로 바라보기보단,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로서 ‘감정’을 표현해 내는 데 집중했다”고 했다. 이번 작품이 특별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딸을 연기한 김민채 양(7)이 데뷔 당시 그의 나이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김 배우는 “‘마음이…’ 때가 많이 생각났다”며 “민채가 지칠 때마다 어머니께 의지하는 걸 보면서 ‘그때 우리 엄마도 힘들었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마음이…’ 촬영 때가 여섯 살이었어요. 그때 촬영 현장에서 엄마랑 열매를 따서 스태프분들과 나눠 먹었던 게 굉장히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그래서 이번 ‘한란’ 촬영 때도 민채랑 도토리를 줍고 풀도 관찰하면서 많이 친해졌죠.” 김 배우는 나이에 맞지 않게 연기한 작품의 스펙트럼이 넓은 배우이기도 하다. 천만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2017∼2018년)나 한국형 블록버스터 ‘한산: 용의 출현’(2022년)에도 참여했지만 ‘영주’(2018년)나 ‘아이’(2021년) 등 독립영화에 가까운 소규모 영화에도 자주 출연해 왔다. 그는 “일부러 그렇게 계획을 짠 건 아니다”며 “시나리오를 보면서 마음이 끌리는 대로 움직인다”고 했다. 실은 김 배우도 20대 초반에 배우로서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성인 배우로서 갈망하는 새로운 이미지와 대중이 사랑하는 자신의 이미지에 상당한 간극이 있다고 느꼈다. “당시에는 제안받는 역할을 맡았을 때 온전히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고도 했다. 하지만 재작년 즈음부터 생각이 바뀌었단다. “그 시기마다 제게 들어오는 작품엔 마땅한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또 따지고 보면 강렬한 장르가 아니라서 도드라지지 않았을 뿐, 다양한 역할을 해오기도 했고요. 제 나이에 맞는 역할을 연기하면서 저의 최대치를 보여드리면 자연스럽게 다른 장르도 맡겨주시지 않을까요?”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선생님!”18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스물다섯 살 배우 김향기(25)를 이렇게 불러봤다. 2006년 영화 ‘마음이…’로 데뷔했으니, 연차로는 어느덧 20년차에 이른 ‘고참 배우’니까. 장난 반 진심 반 부른 호칭에 그는 쑥스러운 듯 웃음을 터뜨렸다. 강아지 마음이와 함께 뛰놀던 꼬마 ‘소이’로 깊은 인상을 남겼던 그가 이번에 보여줄 영화는, 선생님답게 굳세고 당찬 ‘엄마’다. 이달 26일 개봉하는 영화 ‘한란’에서 그는 딸 해생(김민채)과 생이별하게 되는 엄마 아진 역을 맡았다. 이 영화는 1947년 제주에서 토벌대를 피해 한라산으로 피신한 모녀의 생존 여정을 담은 작품이다. 김 배우는 “지금 시점에서 제주 4·3을 ‘사건’으로 바라보기보단,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물로서 ‘감정’을 표현해내는 데 집중했다”고 했다.이번 작품이 특별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딸을 연기한 김민채 양(7)이 데뷔 당시 그의 나이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김 배우는 “‘마음이…’ 때가 많이 생각났다”며 “민채가 지칠 때마다 어머니께 의지하는 걸 보면서 ‘그때 우리 엄마도 힘들었겠다’ 싶었다”고 말했다.“‘마음이…’ 촬영 때가 여섯 살이었어요. 그때 촬영 현장에서 엄마랑 열매를 따서 스태프 분들이랑 나눠먹었던 게 굉장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그래서 이번 ‘한란’ 촬영 때에도 민채랑 도토리를 줍고 풀을 관찰하면서 많이 친해졌죠.”김 배우는 나이에 맞지 않게 연기한 작품의 스펙트럼이 큰 배우이기도 하다. 천만 영화 ‘신과 함께’ 시리즈(2017~2018)나 한국형 블록버스터 ‘한산: 용의 출현’(2022년)에도 참여했지만, ‘영주’(2018년)나 ‘아이’(2021년) 등 독립영화에 가까운 소규모 영화에도 자주 출연해왔다. 그는 “일부러 그렇게 계획을 짠 건 아니다”라며 “시나리오를 보면서 마음이 끌리는 대로 움직인다”고 했다.실은 김 배우도 20대 초반에 배우로서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성인 배우로서 갈망하는 새로운 이미지와 대중이 사랑하는 자신의 이미지에 상당한 간극이 있다고 느꼈다. “당시에는 제안받는 역할을 맡았을 때 온전히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고도 했다. 하지만 재작년 즈음부터 생각이 바뀌었단다.“그 시기마다 제게 들어오는 작품엔 마땅한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또 따지고보면 강렬한 장르가 아니라서 도드라지지 않았을 뿐, 다양한 역할을 해오기도 했고요. 제 나이에 맞는 역할을 연기하면서 저의 최대치를 보여드리면, 자연스럽게 다른 장르도 맡겨주시지 않을까요?”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영화를 만드는 건 제가 하는 일(what I do)이 아니라, 저 자신(who I am)입니다.” 미국 아카데미상에 4차례 후보에 올랐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던 할리우드 스타 톰 크루즈(63)가 아카데미 공로상을 받았다. 데뷔 44년 만에 생애 처음으로 품에 안은 오스카다. 17일(현지 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크루즈는 전날 밤 미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레이 돌비 볼룸에서 열린 제16회 거버너스 어워즈(Governors Awards)에서 이 상을 수상했다. 미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이사회가 선정하는 아카데미 공로상은 영화계에서 평생 뛰어난 업적을 쌓은 인물에게 수여된다. 크루즈가 무대에 오르자 어워즈에 참석한 영화인들은 약 2분간 기립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객석에 있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등도 환한 표정으로 기뻐했다. 눈시울이 붉어진 크루즈는 “영화는 저를 세계 곳곳에 데려다주고,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도록 도왔으며, 우리가 얼마나 많은 면에서 닮았는지 보여줬다”며 “우리가 어디에서 왔든, 영화관 안에서 우리는 함께 웃고 함께 느끼고 함께 희망을 품는다”고 했다.“그게 바로 영화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영화에 대한 제 사랑은 아주 어린 시절 시작됐죠. 인간을 이해하고 캐릭터를 창조하고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갈증이 불타올랐습니다. 저는 그저 그 열망을 쭉 따라왔을 뿐이에요.” 액션 영화에서 거의 모든 스턴트 연기를 직접 하는 크루즈는 “영화를 더 강력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할 것”이라면서 “다만 더는 뼈가 부러지는 일이 없길 바란다”며 웃었다. 올 6월 아카데미 측은 공로상 선정을 발표하며 “크루즈는 역사상 가장 잘 알려진 배우이자 높은 흥행 수익을 올린 인물”이라며 “영화 제작에 대한 놀라운 헌신과 극장 관람 경험에 대한 신념, 스턴트 커뮤니티에 대한 기여는 우리 모두에게 영감을 줬다”고 찬사를 보냈다. 1981년 데뷔한 크루즈는 지금까지 아카데미상과 인연이 없었다. 영화 ‘7월 4일생’(1990년)과 ‘제리 맥과이어’(1997년), ‘매그놀리아’(2000년) 등으로 남우주연상 또는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하지 못했다. 2023년엔 ‘탑건: 매버릭’이 작품상 후보에 오르며 프로듀서로 이름을 올렸으나 분루를 삼켰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영화를 만드는 건 제가 하는 일(what I do)이 아니라, 제 자신(who I am)입니다.”미국 아카데미 상에 4차례 후보에 올랐지만 번번히 고배를 마셨던 할리우드 스타 톰 크루즈(63)가 아카데미 공로상을 받았다. 데뷔 44년 만에 생애 처음으로 품에 안은 오스카다.17일(현지 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크루즈는 전날 밤 미 로스앤젤레스 할리우드 레이 돌비 볼룸에서 열린 제16회 거버너스 어워즈(Governors Awards)에서 이 상을 수상했다. 미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이사회(AMPAS)가 선정하는 아카데미 공로상은 영화계에서 평생 뛰어난 업적을 쌓은 인물에게 수여된다.크루즈가 무대에 오르자 어워즈에 참석한 영화인들은 약 2분 간 기립해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객석에 있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등 환한 표정으로 기뻐했다.눈시울이 붉어진 크루즈는 “영화는 저를 세계 곳곳에 데려다주고,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도록 도왔으며, 우리가 얼마나 많은 면에서 닮았는지 보여줬다”며 “우리가 어디에서 왔든, 영화관 안에서 우리는 함께 웃고 함께 느끼고 함께 희망을 품는다”고 했다. “그게 바로 영화가 중요한 이유입니다. 영화에 대한 제 사랑은 아주 어린 시절 시작됐죠. 인간을 이해하고 캐릭터를 창조하고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갈증이 불타올랐습니다. 저는 그저 그 열망을 쭉 따라왔을 뿐이에요.”액션영화에서 거의 모든 스턴트 연기를 직접 하는 크루즈는 “영화를 더 강력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할 것”이라며 “다만 더는 뼈가 부러지는 일이 없길 바란다”며 웃었다.올 6월 아카데미 측은 공로상 선정을 발표하며 “크루즈는 역사상 가장 잘 알려진 배우이자 높은 흥행 수익을 올린 인물”이라며 “영화 제작에 대한 놀라운 헌신과 극장 관람 경험에 대한 신념, 스턴트 커뮤니티에 대한 기여는 우리 모두에게 영감을 줬다”고 찬사했다.1981년 데뷔한 크루즈는 지금까지 아카데미상과 인연이 없었다. 영화 ‘7월 4일생’(1990년)과 ‘제리 맥과이어’(1997년), ‘매그놀리아’(2000년)으로 남우주연상 또는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하지 못했다. 2023년엔 ‘탑건: 매버릭’이 작품상 후보에 오르며 프로듀서로이름을 올렸으나 분투를 삼켰다. 이날 크루즈에게 트로피를 건넨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이게 그의 첫 오스카 수상이지만, 내가 보고 경험한 바로는 분명 마지막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영화 ‘버드맨’으로 유명한 이냐리투 감독과 크루즈가 함께 한 영화 ‘Judy’(가제)는 내년 공개될 예정이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홍콩 알마드그룹의 에이드리언 청 회장(46)은 아시아의 대표적인 ‘미술시장 큰손’으로 꼽힌다. 재벌 3세인 그는 20년 가까이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들을 아시아에 소개해 왔으며, 후원하는 작가만 1000명이 넘는다고 한다.그런 청 회장이 최근 가장 관심을 가진 분야는 다름 아닌 ‘숏폼 콘텐츠’다. 17일 서울 송파구의 한 호텔에서 만난 청 회장은 “스토리텔링형 세로 콘텐츠가 새로운 트렌드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실제로 지난달 알마드그룹은 글로벌 숏폼 지식재산권(IP) 미디어 기업인 ‘크리스프 모멘텀’의 지분 24%를 확보했다. 청 회장은 “크리스프는 저가 드라마를 대량 생산하는 다른 숏폼 플랫폼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어떻게 숏폼 콘텐츠에 관심을 갖게 됐나.“미술과 숏폼도 공통점이 있다. 형태의 차이일 뿐 본질은 ‘스토리텔링’이다. 다만 Z세대의 콘텐츠 소비 패턴엔 ‘Micro Instant Escapism(일상 속 작은 탈출)’이란 명확한 의도가 있다. 가령 기다리는 버스가 오지 않을 때 소비할 수 있는 ‘간식’ 같은 콘텐츠가 필요하다.”―세계 숏폼 시장은 드라마박스나 릴숏 등 중국 플랫폼 기업이 휩쓸고 있다.“지금까지 소개된 숏폼 콘텐츠는 아주 제한적이다. 앞으로 ‘저가 드라마’를 넘어 미술이나 다큐멘터리 등 여러 장르로 확장할 수 있다. 우리는 ‘예술적인 스토리텔링’을 숏폼 형태로 소개할 생각이다. 기존 숏폼 콘텐츠에서 우려되던 ‘과도한 오락성’도 상쇄시킬 수 있다.”―예술적인 스토리텔링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우리는 올해 미국 에미상을 수상한 일본 인터랙티브 콘텐츠 ‘화이트 래빗’을 세로형 애니메이션으로 재구성했다. 한국 웹툰 ‘좀비신드롬’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제작했다. 초기엔 웹툰 등 기존 콘텐츠를 숏폼 애니메이션 등으로 바꾸는 걸로 시작하지만 내년엔 오리지널 IP를 80개 이상 제작할 예정이다.”―한국을 아시아 시장의 첫 거점으로 삼은 이유는 뭔가.“한국은 숏폼 시장 자체는 크지 않지만, 공급 측면에서 잠재력이 뛰어나다. 한국 콘텐츠들은 감정적 요소들을 아름다운 비주얼로 만들어 내거나, 긴장감 넘치는 장면을 표현해 내는 것에 장점을 지녔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기업들과 협업해 숏폼 콘텐츠를 제작한 뒤 세계로 수출하는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홍콩 알마드 그룹의 에이드리언 청 회장(46)은 아시아에서 대표적인 ‘미술시장 큰손’으로 곱힌다. 재벌 3세인 그는 20년 가까이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들을 아시아에 소개해 왔으며, 후원하는 작가만 1000명이 넘는다고 한다.그런 청 회장이 최근 가장 관심을 가진 분야는 다름 아닌 ‘숏폼 콘텐츠’다. 17일 서울 송파구의 한 호텔에서 만난 청 회장은 “스토리텔링형 세로 콘텐츠가 새로운 트렌드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실제로 지난 달 알마드 그룹은 글로벌 숏폼 지적재산권(IP) 미디어 기업인 ‘크리스프 모멘텀’의 지분 24%를 확보했다. 청 회장은 “크리스프는 저가 드라마를 대량 생산하는 다른 숏폼 플랫폼과는 다르다”고 설명했다.―어떻게 숏폼 콘텐츠에 관심을 갖게 됐나.“미술과 숏폼도 공통점이 있다. 형태의 차이일뿐 본질은 ‘스토리텔링’이다. 다만 Z세대의 콘텐츠 소비 패턴엔 ‘Micro Instant Escapism’(일상 속 작은 탈출)이란 명확한 의도가 있다. 가령 기다리는 버스가 오지 않을 때 소비할 수 있는 ‘간식’ 같은 콘텐츠가 필요하다.”―세계 숏폼 시장은 드라마박스나 릴숏 등 중국 플랫폼 기업이 휩쓸고 있다. “지금까지 소개된 숏폼 콘텐츠는 아주 제한적이다. 앞으로 ‘저가 드라마’를 넘어 미술이나 다큐멘터리 등 여러 장르로 확장할 수 있다. 우리는 ‘예술적인 스토리텔링’을 숏폼 형태로 소개할 생각이다. 기존 숏폼 콘텐츠에서 우려되던 ‘과도한 오락성’도 상쇄시킬 수 있다.”―예술적인 스토리텔링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우리는 올해 미국 에미상을 수상한 일본 인터랙티브 콘텐츠 ‘화이트 래빗’을 세로형 애니메이션으로 재구성했다. 한국 웹툰 ‘좀비신드롬’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제작했다. 초기엔 웹툰 등 기존 콘텐츠를 숏폼 애니메이션 등으로 바꾸는 걸로 시작했다. 내년엔 오리지널 IP를 80개 이상 제작할 예정이다.”―한국을 아시아 시장의 첫 거점으로 삼은 이유는 뭔가.“한국은 숏폼 시장 자체가 크지 않지만, 공급 측면에서 잠재력이 뛰어나다. 한국 콘텐츠들은 감정적 요소들을 아름다운 비주얼로 만들어내거나, 긴장감 넘치는 장면을 표현해내는 것에 장점을 지녔다. 한국 기업들과 협업해 숏폼 콘텐츠를 제작한 뒤 세계로 수출하는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고교생인 한 소년이 정신과 진료실을 찾았다. 동행한 엄마는 “아들이 툭하면 머리가 아프다며 학교를 못 가겠다고 한다”고 마뜩잖은 눈길을 보냈다. 상담 내내 큰 반응이 없던 소년이 의사와 나눈 첫 대화는 소년이 갖고 다니던 책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에 대해서였다. 성폭력 피해자인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로, 저자는 소설 발표 뒤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어진 두 번째 대화에서 소년은 자신의 일기장을 꺼내 보였다. 그 일기는 펼치자마자 역한 냄새가 났다. 소년은 자주 팔에 상처를 냈고, 그 피로 일기를 써왔던 것. 그리고 그 일기엔, 1년 전 버스 안에서 겪은 성폭행의 기억들이 담겨 있었다. 대만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인 저자가 24명의 아이들을 통해 살펴본 ‘청소년 자해’에 대한 임상 르포다. 저자는 대만에 약 300명뿐인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 중 한 명. 옹알이 단계의 영아부터 20대에 접어든 이들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겪은 심리적 고통을 분석했다. 책엔 차마 읽고 있기 미안할 정도로 안타까운 사연들이 등장한다. 클레이 인형을 칼로 난도질해대던 네 살 ‘샤오처’는 사실 통학버스 운전기사에게 성폭행을 당한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칼을 휘둘렀다. 자해는 실은 ‘살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이 밖에도 집단 따돌림을 당한 고교생, 키워준 할머니를 잃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아이, 관심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한 다섯 살 아이 등을 소개한다. 현지에선 2020년 출간됐는데, 관련 문제를 아주 깊이 있게 다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에게 이 책이 무겁게 와닿는 건, 한국의 심각한 청소년 자해 문제 때문일 테다. 지난달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1∼2025년 학교에서 자살 시도 및 자해를 한 학생이 3만 명이 넘었다. 만약 어딘가에서 ‘죽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있다면, 실은 ‘살고 싶어 했던 아이들’이라는 이 책의 이야기가 도움이 되길 바라 본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올해는 디즈니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콘텐츠를 제작한 지 5년이 되는 해입니다. 앞으로 아태 지역 작품을 글로벌 프랜차이즈 수준으로 확장시키겠습니다.” 13일(현지 시간) 홍콩 디즈니랜드 호텔 콘퍼런스 센터에서 ‘디즈니+ 오리지널 프리뷰 2025’가 개최됐다. 루크 강 월트디즈니 아시아태평양 총괄 사장은 한국과 일본, 중국, 미국, 멕시코 등에서 모인 취재진과 관계자 400여 명 앞에서 이 같은 포부를 전했다. 디즈니가 디즈니플러스의 아시아 지역 콘텐츠로만 쇼케이스를 여는 건 처음이다. 2022년과 2024년 싱가포르에서 진행됐던 ‘아시아태평양 지역 디즈니 콘텐츠 쇼케이스’와 달리, 올해는 픽사나 마블 등 월트디즈니 스튜디오 작품은 소개하지 않았다. 업계에선 “디즈니가 넷플릭스의 독주에 맞서기 위해 아시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사업에 공격적으로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이날 디즈니플러스가 가장 정성을 쏟아 소개한 신작은 다음 달 24일 공개하는 한국 시리즈 ‘메이드 인 코리아’였다. 우민호 감독과 주연 배우인 현빈과 정우성, 우도환이 무대에 오르자 행사장에선 뜨거운 열기의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1970년대 한국이 배경인 ‘메이드 인 코리아’는 야망 가득한 중앙정보부 소속 백기태(현빈)와 그를 막으려 모든 걸 내던진 검사 장건영(정우성)의 이야기가 뼈대를 이룬다. 프리뷰에서 소개한 작품들을 살펴보면, 디즈니플러스가 ‘장르 다변화’로 전략를 바꾸고 있는 점도 눈에 띄었다. 지금까지 다소 ‘남성 취향 액션물’에 집중해 왔다면, 이제 로맨스나 판타지 등으로 영역을 넓히는 모양새다. 가상의 제국이 배경인 ‘재혼황후’나 1930년대 경성을 무대로 한 뱀파이어 이야기 ‘현혹’, 무속인 서바이벌 예능 ‘운명전쟁49’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 배우 지창욱와 일본 배우 이마다 미오가 출연하는 로맨스 코미디 ‘메리 베리 러브’는 디즈니플러스 최초의 다국적 합작 드라마다. 일본 애니메이션에 대한 디즈니 측의 관심도 엿볼 수 있었다. ‘디즈니 트위스티드 원더랜드’ ‘캣츠아이’ ‘메달리스트2’ ‘도쿄 리벤저스3’ 등 다양한 일본 애니메이션을 선보일 예정이다.강 사장은 “일본 애니메이션은 전체 시청의 약 60%가 아태 외 지역에서 이뤄진다”고 강조했다.홍콩=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나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결혼기념일이 아닌데도요/지난밤 그는 제 목을 졸랐어요/악몽 같았어요/하지만 그는 틀림없이 미안해할 거예요/왜냐면 오늘 나에게 꽃을 보냈거든요.” 미국 시인 폴레트 켈리가 쓴 시(詩) ‘나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I got flowers today)’의 일부다. 가정폭력을 겪었던 시인이 쓴 이 시는 배우 이유미가 7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당신이 죽였다’에 출연한 계기였다고 한다. ‘당신이 죽였다’는 폭력 가정에서 자란 조은수(전소니)와 가정폭력을 겪는 조희수(이유미)가 희수의 남편 노진표(장승조)를 죽이기로 결심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 배우는 1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나 “연기하기 너무나 조심스러웠는데, 감독님께서 이 시를 손편지에 써주셨다”며 “엄청나게 큰 설득과 위로가 됐다”고 출연 배경을 밝혔다.“지금도 ‘감히’라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 피해자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가정폭력을 경험하지 않은 제가 제대로 연기할 수 있을지 걱정됐거든요. 그런데 점점 희수를 구원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제가 희수를 연기해서 이 친구를 좀 더 행복하게 만들어 주고 싶었어요.” 원래 성격은 희수와 달리 당찬 성격이라는 이 배우. 그는 이번 작품에서 ‘희수’와 ‘인간 이유미’를 분리하려고 뭣보다 노력했다고 했다. 그는 “감정 소모가 심한 연기이다 보니 잘 해내고 싶은데 지쳐 버릴까 봐 걱정됐다”며 “다행히 오히려 건강하게 촬영했다”고 말했다. 앞서 이유미는 영화 ‘박화영’에서 가출 청소년 윤세진 역을 맡는 등 상처가 깊은 역할을 많이 연기했다. 특히 전환점이 된 작품은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이다. 그는 게임 참가자 지영 역을 맡아 2022년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인 제74회 에미상에서 ‘게스트 여배우상’을 수상했다. 이 배우는 “오징어게임 이후 삶에 무게가 생겼다”며 “예전보다 더 착하고 멋지게, 정직하게 살며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고 했다.“제가 평상시에 정말 잘 넘어지거든요. 그런데 연기라는 하나의 꿈을 바라보고 걷는 것만큼은 꾸준히 쉬지 않고 잘 걸어왔구나 싶어서 칭찬해 주고 싶어요.”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나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결혼기념일이 아닌데도요/ 지난밤 그는 제 목을 졸랐어요/ 악몽 같았어요/ 하지만 그는 틀림없이 미안해 할 거예요/ 왜냐면 오늘 나에게 꽃을 보냈거든요.”미국 시인 폴레트 켈리가 쓴 시(詩) ‘나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I got flowers today)’의 일부다. 가정폭력을 겪었던 시인이 쓴 이 시는 배우 이유미가 7일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당신이 죽였다’에 출연한 계기였다고 한다. ‘당신이 죽였다’는 폭력 가정에서 자란 조은수(전소니)와 가정폭력을 겪는 조희수(이유미)가 희수의 남편 노진표(장승조)를 죽이기로 결심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이 배우는 1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나 “연기하기 너무나 조심스러웠는데, 감독님께서 이 시를 손편지에 써주셨다”며 “엄청나게 큰 설득과 위로가 됐다”며 출연 배경을 밝혔다.“지금도 ‘감히’라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 피해자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가정폭력을 경험하지 않은 제가 제대로 연기할 수 있을지 걱정 됐거든요. 그런데 점점 희수를 구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제가 희수를 연기해서 이 친구를 좀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었어요.”원래 성격은 희수와 달리 당찬 성격이라는 이 배우. 그는 이번 작품에서 ‘희수’와 ‘인간 이유미’를 분리하려고 뭣보다 노력했다고 했다. 그는 “감정소모가 심한 연기다보니 잘해내고 싶은데 지쳐버릴까봐 걱정됐다”며 “다행히 오히려 건강하게 촬영했다”고 말했다.앞서 이유미는 영화 ‘박화영’에서 가출청소년 윤세진 역을 맡는 등 상처가 깊은 역할을 많이 연기했다. 특히 전환점이 된 작품은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게임’이다. 그는 게임 참가자 지영 역을 맡아 2022년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인 제74회 에미상에서 ‘게스트 여배우상’을 수상했다. 이 배우는 “오징어게임 이후 삶에 무게가 생겼다”며 “예전보다 더 착하고 멋지게, 정직하게 살며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고 했다.“제가 평상시에 정말 잘 넘어지거든요? 그런데 연기라는 하나의 꿈을 바라보고 걷는 것만큼은 꾸준히 쉬지 않고 잘 걸어왔구나 싶어서 칭찬해주고 싶어요.”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2일 오후 경기 화성에 있는 한 스튜디오 라커룸. 앞면에 ‘BLACK Queens(블랙 퀸즈)’라 새겨진 유니폼 15개가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같은 유니폼을 입은 ‘추추트레인’ 추신수 선수(43)는 “정말 할 만큼 해서 은퇴 뒤에 다신 배트를 안 잡겠다고 다짐했는데…”라며 미소 지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골프 여제’ 박세리 선수(48)는 “입던 옷 입는 게 가장 나다운 것”이라며 웃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와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우리를 열광시켰던 두 스포츠 스타가 여성 야구를 위해 뭉쳤다. 두 선수는 25일 오후 10시 처음 방영하는 채널A 예능 프로그램 ‘야구여왕’에서 여성 사회인 야구단 ‘블랙 퀸즈’의 단장(박세리)과 감독(추신수)을 맡았다. 채널A ‘야구여왕’은 ‘육상 카리나’라 불리는 김민지와 소프트볼 선수 출신 한화 이글스 치어리더 노자와 아야카 등 여러 종목의 여성 운동선수들이 야구에 도전하는 프로그램. 박 단장과 추 감독 외에도 프로야구 인기스타였던 윤석민과 이대형 등이 코치로 합류했다. 실은 박 단장과 추 감독은 처음엔 출연 제의에 손사래를 쳤다고 한다. 추 감독은 현재 SSG랜더스 구단주 보좌역 겸 육성총괄을 맡고 있고, 고정 예능도 처음이다. 박 단장 역시 대외 활동이 많은 데다, 타 종목에 관여하는 것에 부담이 컸다. 몇 차례 거절하다가 출연을 결심한 건 ‘여성 사회인 야구단’이 가지는 의미 때문이었다. “일단 감사했어요. 출연자들이 선수 출신이어도 낯선 종목 도전이 쉽지 않잖아요. 야구인으로서 죄송하기도 했습니다. (여성 야구단의 존재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거든요.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은 여성 야구를 알리고 싶단 사명감도 생겼습니다.”(추 감독) “여성 사회인 야구가 존재한다는 건 알았지만, 널리 알려지지 못한 게 아쉬웠어요. ‘야구여왕’을 통해 여성 야구가 더 활성화됐으면 좋겠단 생각에 승낙했습니다.”(박 단장) 예능이지만 ‘블랙 퀸즈’는 실제로 공식 경기를 치른다. 국내에서 50번째로 창단한 여성 사회인 야구단이 됐다. 단장의 적극적인 영입과 입단 테스트를 거쳐 선발된 선수는 모두 15명. 당시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신소정 선수(아이스하키)와 송아 선수(테니스)다. 박 단장은 “소정이는 자세도 안정적이고 파워가 있다”며 “묵묵하고 우직해 더 인상 깊었다”고 했다. 추 감독은 “송 선수가 테니스 출신이라 기대가 컸는데, 역시나 에이스”라고 했다. 하지만 글러브도 배트도 처음 잡아본 이들이 많다 보니 금방 성과가 날 리가 없다. 특히 리듬체조나 복싱, 사격 등 개인 종목 출신들은 ‘팀 플레이’ 자체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하지만 각자의 길에서 쌓은 장점들이 모여 하나로 융합하는 과정이 큰 감동을 준다. 추 감독은 “개인 종목 선수들은 동료에게 피해를 줄까 봐 실수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며 “단체 운동은 그런 게 아니란 걸 이해시키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선수 출신이라 누구도 훈련과 경기에 허투루 임하지 않는 게 매력이에요. 처음엔 한두 달 만에 시합을 뛸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거짓말처럼 하루가 다르게 성장합니다. 선수 특유의 ‘진정성’ DNA 덕에 가능한 게 아닐까 싶어요.”(박 단장) 박 단장은 이번 출연을 통해 야구에 대해 관심이 더 커졌다고 한다. “자꾸 프로 경기도 챙겨 보게 되더라”는 그가 꼽은 야구의 매력이 뭘까. 박 단장은 “골프가 죽어 있는 공을 살리는 스포츠라면, 야구는 살아 있는 공으로 플레이하는 운동”이라며 “뭣보다 한 팀으로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건 저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라 뭉클했다”고 말했다.이제 첫발을 내딛지만, 이들의 목표는 거창하다. ‘여성 야구 전국대회 우승’이다. 하지만 추 감독은 더 먼 미래도 그려 본다. 출연자 가운데 ‘진짜 야구인’이 탄생하길 조심스레 기대했다. “조금만 더 욕심을 낸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 출연자 중에 여성 야구 국가대표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두가 그런 진심으로 운동하고 있습니다.”화성=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서양미술의 발전사를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이번 전시에) 각 시대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작품을 엄선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제자였던 베르나르디노 루이니. 그의 많은 작품은 한때 스승의 이름으로 알려졌다가 뒤늦게야 루이니의 것으로 규명됐다. 막달라 마리아가 이전의 삶을 버리고 예수를 따르기로 결심한 순간을 그린 ‘막달라 마리아의 회심’(1520년경)이 대표적인 사례다. 5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개막한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에선 이 ‘막달라 마리아의 회심’을 만날 수 있다. 이 밖에도 올해 개관 100주년을 맞은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미술관의 소장품 65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개막식을 찾은 록사나 벨라스케스 미술관장을 만나 이번 전시의 의의에 대해 들어봤다. 이번 전시는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신고전주의 △사실주의∼인상주의 △20세기 모더니즘 등 서양미술사 600년을 망라하는 콘셉트로 구성했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와 에드가르 드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등 서양미술사를 대표하는 작가만 60명이다. 전시작의 가치는 어림잡아도 2조 원이 넘는다. 벨라스케스 관장은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폭넓은 컬렉션 덕에 이런 전시가 가능했다”며 “미술관 소장품이 3만5000점에 이른다”고 소개했다. 샌디에이고 미술관에서 한 번도 해외로 반출하지 않았던 여러 작품들이 국내 팬을 찾았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안토니 반 다이크의 ‘헨리에타 마리아의 초상’(1636∼1638년경)과 라울 뒤피의 ‘파리의 센강’(1904년경) 등 28점이다. 벨라스케스 관장은 “이렇게 많은 작품들을 외부 전시하는 것도 한국이 처음”이라며 2023년 10월 샌디에이고 미술관에서 열린 한국 전통 회화전이 계기라고 설명했다.“국립현대미술관과 함께 개최했던 전시 ‘생의 찬미’였습니다. 개막식에만 관람객이 800명이 넘게 몰렸어요. 그때부터 서울과 한국 문화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됐지요.” 관장이 개인적으로 애정을 가진 작품은 뭘까. 고심 끝에 엘 그레코의 종교화 ‘참회하는 성 베드로’(1590∼1595년경)를 꼽았다. 그는 “강한 신체와 옷의 질감까지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는 색채와 붓터치를 보라”며 극찬했다. 또 청각장애를 앓게 된 프란시스코 데 고야가 그림 속 인물이 말을 거는 듯한 장면을 묘사한 ‘아라곤의 초상’(1795년경), 클로드 모네가 생전 전시나 판매하지 않았던 초기작 ‘샤이의 건초더미’(1865년) 등도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들이다.후반부에 배치된 호아킨 소로야의 ‘라 그란하의 마리아’(1907년)와 윌리암 아돌프 부그로의 ‘양치기 소녀’(1885년)도 샌디에이고의 자랑이다. ‘라 그란하의 마리아’는 미술관의 제1호 소장품으로, 현지 최고 인기작이기도 하다. 벨라스케스 관장은 “소로야의 작품을 기증 받은 뒤 많은 기증이 잇따랐고, 이를 바탕으로 100년간 컬렉션을 꾸려나갈 수 있었다”고 했다. 샌디에이고 미술관은 현재 전시 공간을 2배로 확장하는 대규모 공사를 준비하고 있다. 실제 공사는 2027년 시작될 예정. 벨라스케스 관장은 “지난 100년이 지역 사회에서 기반을 닦는 시간이었다면, 앞으로 100년은 세계 관람객이 미술을 향유하는 공간으로 도약하는 시기가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은 내년 2월 22일까지 열린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지난해 말을 기점으로 한국은 전체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누군가는 “한국은 망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던져야 할 질문은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닐까. 서울대 보건환경연구소 인구정책연구센터 소속인 두 저자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 나섰다. 그동안 인구 문제는 ‘극복해야 할 재난’으로 규정돼 왔다. 그러나 저자들은 인구 감소가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인정한다. 그러면서 “인구는 줄어드는 숫자가 아니라 사회의 구조를 바꾸는 신호”라며 “인구의 ‘양’보다는 ‘질’을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책은 우선 고령층이 ‘사회적 짐’이라는 인식을 깬다. 저자들은 “베이비붐 세대는 ‘가난한 노인’이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현재 노인이 되어가는 베이비붐 1세대(1955∼1964년생)는 실제로 산업화 세대(1945∼1954년생)와 달리 금융 자산 보유율이 높고, 부채 비중도 크지 않다. 또 건강 관리가 잘되고 있어 앞으로 이들이 절감해줄 것으로 기대되는 의료비가 약 652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또 청년들에겐 활동 영역을 넓혀 세계 인구 지형에서 생존 전략을 찾으라고 제안한다. 잘파 세대(1990∼2010년생)는 한국에서 가장 인구가 적은 세대지만, 최근 태어나는 영유아 수가 줄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중심 세대로 활약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한국 청년 세대는 어느 나라보다도 훨씬 역동적이기 때문에, 시야를 글로벌로 확장하면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고 권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묘지 정원사로 일하는 유리는 매일같이 잔디를 깎고, 수풀을 다듬는다. 종종 수많은 묘지에 꽃을 심고, 직원들과 함께 굴착기로 매장용 구덩이를 파기도 한다. 얼마 전엔 어떤 분이 유리에게 손짓을 하더니 “남편이 살아 있었다면 오늘이 아흔 번째 생일”이라고 했다. 유리는 그의 남편을 위해 함께 건배를 했다. 묘지는 모두 무섭고 썰렁할 것 같다는 생각은 오산. 유리는 “일을 하며 여가를 즐기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유리의 이야기를 포함해 죽음에 대한 다양한 주제를 묶은 책이다. 옛날엔 사람들은 죽으면 어떻게 된다고 생각했는지, 실제 누군가 죽었을 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등 죽음과 관련된 인류학적 지식으로 가득하다. 만약 죽음이 너무 무섭다면? 죽음과 관련된 유머를 모아놓은 페이지를 먼저 보면 된다. “깨가 죽으면, 주근깨(죽은깨)” 같은 농담에 피식피식 웃다 보면 다른 내용도 궁금해질 테니까. 죽음이 무엇인지 궁금해하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평소에 차마 말 못해 줬던 정보들을 전하는 안내서다. 뭣보다 죽음과 관련이 있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쉽고 생생하게 들려준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프랑스 파리에서 성공한 사업가 ‘장’(멜빌 푸포)과 이상적인 결혼생활을 하던 ‘파니’(루 드 라주). 어느 날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던 ‘알랭’(닐스 슈네데르)과 거리에서 마주친 뒤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 우연은 축복일까, 비극일까.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2012년)로 낭만적인 시간 여행을 그렸던 할리우드 거장 우디 앨런 감독(90)이 다시 파리를 찾았다. 12일 국내 개봉하는 영화 ‘럭키 데이 인 파리’는 그의 50번째 장편 연출작. 프랑스 제목은 ‘뜻밖의 행운’이란 뜻인 ‘Coup de Chance’. 행운처럼 찾아온 사소한 우연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파장을 암시한다.‘미드나잇 인 파리’ 제작진이 다시 한 번 의기투합한 이 작품은 파리의 가을이 배경이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2008년·스페인 바르셀로나), ‘로마 위드 러브’(2013년·이탈리아 로마) 등처럼 영화 배경이 된 유럽 도시의 매력을 포착해내며 또 하나의 ‘도시 연가’를 완성했다. 다만 이번 영화는 ‘쌉싸래한’ 우디 앨런 식 유머의 농도가 옅은 편이다. 후반부는 장이 부인의 불륜을 의심하며 벌어지는 사건 위주여서, 웰메이드 스릴러로 평가되는 감독의 전작 ‘매치 포인트’(2006년)와 견주는 이도 많다. 2023년 제80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한 뒤 같은 해 프랑스에서 개봉했는데, 국내에선 올해 상반기에 수입됐다. 해외 영화계에선 이번 작품이 앨런 감독의 마지막 영화가 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2014년부터 불거졌던 그의 성추문 의혹이 점점 커지면서 제작 자금 확보에 줄줄이 실패한 데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은퇴를 시사하기도 했다. 다만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미 연예매체 버라이어티 등에 따르면 앨런 감독은 최근 스페인 마드리드시로부터 150만 유로(약 25억 원)를 지원받는 데 성공해 차기작 제작에 나설 계획이라고 한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

지난달 30일 경기 가평군에 있는 ‘자라섬 워케이션 센터’. 북한강이 보이는 통유리창 안 실내엔 노트북을 편 채 업무를 보는 이들이 상당했다. 휴양지에서 일(Work)과 휴가(Vacation)를 함께 할 수 있게 만들어진 장소답게, 업무를 마친 몇몇은 북한강을 따라 산책을 가기도 했다. 한 이용객은 “자연 속 공간에서 기분 좋게 일하고, 쉬고 싶을 땐 휴식을 취할 수 있어 힐링이 된다”며 “센터 근처에 사는 분들이 부럽다”고 했다. 자라섬 워케이션 센터는 한국관광공사의 ‘BETTER里(배터리)’ 사업을 통해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해당 사업은 인구감소지역에 스타트업을 유치해 지역 활력을 높이고자 마련됐다. 2023년부터 경북 영주시, 충북 제천시 등 전국 7개 지역에서 시행하고 있는데, 가평은 올해 신규 대상지로 선정됐다. 현재 7개의 관광 스타트업이 가평군에서 활발하게 사업을 벌이고 있다.‘BETTER里’ 사업의 목표는 수도권 당일치기 여행 이미지가 굳은 가평을 ‘체류형 여행지’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예약 플랫폼을 운영하는 ‘디어먼데이’와 워케이션 전문 기업 ‘스트리밍하우스’가 협업해 일과 숙박, 축제를 즐기는 인프라를 마련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인 자라섬 워케이션 센터는 8월 가오픈 이후 9, 10월 이용객이 100명을 넘었다. 참여 기업들이 주력한 또 다른 분야는 ‘액티비티’. 자라섬과 아침고요수목원 등 자연이 풍부한 지역 특색을 살리려는 의도다. 이를테면, 러닝 전문 기업 ‘문카데미’는 9월 28일 열렸던 ‘가평자라섬 전국마라톤대회’와 연계해 원데이 상품을 선보였다. 이용객들은 참가 신청부터 전문 코치와 함께하는 사전 훈련, 완주 기념 만찬 등을 즐길 수 있었다. 1500만 반려인 시장을 겨냥한 프로그램도 눈길을 끈다. 반려동물 여행 기업 ‘반려생활’은 가평의 대표 상품인 이른바 ‘빠지’(수상레저)를 반려견과 함께 즐기는 ‘가평 댕댕이 빠지 체험’을 7∼9월 운영했다. 구명조끼를 입은 강아지가 보트를 타는 모습이 소셜미디어에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강종순 한국관광공사 관광기업창업팀장은 “기업들의 프로젝트가 시너지 효과를 내며 장기 체류하는 관광객들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BETTER里’ 사업은 단발성에 그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첫해는 관광공사가 이끌어 가지만, 이듬해부터는 지방자치단체가 주도적으로 사업을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한국농산어촌네트워크의 ‘일편단쉼’은 이런 의미에서 지역 상생형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가평에 정착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숲 명상 등 귀촌 체험형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다. 일회성 방문이 아니라 ‘살아 보기형 관광’을 제안하는 것. 사업이 끝난 뒤에도 마을이 직접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적극 돕고 있다. 김소민 한국농산어촌네트워크 대표는 “마을이 상품 개발부터 운영까지 모두 경험하며 운영 주체가 되는 협업 체계를 만든 게 가장 큰 수확”이라며 “이러한 모델이 계속해서 사업을 지속할 동력이자 자산이 될 것”이라고 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