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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를 생각하면 쇠붙이로 무장한 전경들이 교정의 푸른 나무들 앞에 줄지어 서 있는 풍경이 떠오릅니다. 단단한 철의 장막과 푸른 생명의 대비가 강렬해서 제목도 ‘청동정원’이라고 지었습니다.” ‘서른, 잔치는 끝났다’의 최영미 작가(53·사진)가 자전적 성격의 두 번째 장편소설 ‘청동정원’(은행나무)을 출간했다. 지난해 여름부터 1년간 계간지 ‘문학의오늘’에 ‘토닉 두세르’란 이름으로 연재한 소설을 다듬어 단행본으로 묶었다. 맛있는 음식과 옷에 탐닉하고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던 80학번 여대생 ‘애린’이 격동의 시대에 휘말려 변모하다가 작가가 돼 자기 목소리를 찾아가는 청춘소설이자 성장소설이다. 최 작가는 1988년 여름 원고지 450장 분량의 초고를 썼으나 25년 동안 비밀 일기처럼 남몰래 보관해 두었다. 그는 “첫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낸 1994년엔 1980년대와 너무 가까웠다. 그래서 손대기가 너무 뜨거웠다. 지금에야 비로소 80년대가 제대로 보인다”고 했다. “큰 강물이 흘러가고 나니 작은 물줄기들이 보여요. 운동을 한 사람들은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였죠. 애린이처럼 주변부에서 묵묵히 도와주는 사람들의 고민이 더 깊었습니다. 시대에 묻힌 주변부의 작은 목소리들을 제 문장으로 복원하고 싶었어요.” 1985년부터 1990년까지를 다룬 5장 ‘쇠와 살’ 부분은 연재할 때도 쓰지 못했다가 단행본 출간을 앞두고서야 겨우 담았다.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이 녹아든 자전적 소설이지만 개인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그는 기자나 역사학자처럼 이 소설을 썼다. 그는 신문사 자료실을 찾아 당시 기사를 꼼꼼히 찾아 읽고, 1980년 광주항쟁을 묘사하기 위해 현장에 있었던 동창을 찾아가 녹취했다. 그는 “한 문장을 쓰기 위해 한 권의 책을 읽듯이 꼼꼼하게 고증을 했다”며 “80년대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도 책을 읽으면서 당시를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26년 만에 숙제를 끝내니 후련하다는 그는 직접 고른 소설의 문장을 인용해 달라고 했다. “스무 살의 자유는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었다. (중략) 이십여 년의 시행착오를 겪고서야 나는 자유를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노는 법을 터득했다.”(46쪽)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길거리에서 남의 가게 간판을 달아주는 막노동꾼으로, 공사판 철근장이로, 답답하고 위험한 철길을 달리는 노동자로, 힘든 사회복지사로, 밥 먹듯이 한뎃잠을 자는 희망버스 기획자로, 빈 들녘을 지키는 산골 마을 농부로, 가난한 시인으로….’ 노동자 시인동인 ‘일과시’가 창간 20주년 기념 시집 ‘못난 시인’(실천문학사·사진)을 펴냈다. ‘일과시’의 유래는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노동자 대투쟁’ 이후 기업마다 노조가 만들어지고 노보가 제작됐다. 노보에 글을 쓰거나 노동문학회에서 활동하던 노동자 시인들이 모여 동인을 만들었다. ‘일과시’는 일하면서 시 쓰는 사람이란 뜻. ‘일과시’는 1993년 첫 시집 ‘햇살은 누구에게나 따스히 내리지 않았다’를 시작으로 2005년까지 8권의 시집을 냈다. 지난해 20주년 기념 시집을 내기로 했다가 준비가 늦어져 올해 발간했다. 여기엔 10명이 각 10편씩 모두 100편의 시를 실었다. 시집에 실린 시들은 투박하지만 정직하다. 김해화 시인은 전국을 다니며 공사판 철근장이로 일한다. 그는 밀린 임금을 요구하다가 현장소장이 휘두른 물건에 맞아 숨진 동료를 추모하는 시를 썼다. ‘밤낮없이/너는 죽어버려서 떠날 수 없고/나는 살아 있어서 떠날 수 없는 공사장/누운 채 비에 젖는다//죽은 너는 좀 짧고/살아 있는 나는 좀 길다/같이 녹슨다’(‘산 철근이 죽은 철근에게’ 중) 간판장이로 일하는 김용만 시인은 ‘섬진강 시인’ 김용택 시인의 동생이다. 그는 전국으로 흩어진 여섯 남매 이야기를 시로 풀었다. ‘우리 여섯 남매/전국적으로 흩어져/보고 싶어도 살기 위해/그야말로 전국적으로 산다//(중략) 우리는 가난 때문에/뿔뿔이 흩어져/그야말로 전국을 점령했다’(‘전국적으로’ 중) 노동의 최전선에서 일궈낸 그들의 노동시는 어떤 의미일까. “일하는 사람들이 현장에서 느낀 기쁨과 슬픔, 보람, 아픔을 시로 쓰고 노래하며 세상 사람들과 소통할 때 세상도 일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알 겁니다.”(서정홍)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여러분, 한국어로 번역된 소설을 읽으면서 저의 낭독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일본 소설가 쓰지하라 노보루 씨(69)가 가와바타 야스나리 상 수상작인 자신의 소설 ‘고엽 속의 푸른 불꽃’을 일본어로 낭독하기 시작했다. 한국 독자들은 낭독 목소리에 귀를 열고 한국어로 번역된 소설을 눈으로 따라 읽었다. 행사장에 온 출판사 마음산책 박지영 편집자는 “일본어를 알아들을 수 없으니 작가의 목소리에 더 집중하게 된다”며 “낭독자가 지금 어떤 문장을 읽고 있는지 신기하게도 다 알 수 있는데 문학이기에 가능한 일 같다”고 말했다. 21일 서울 주한 일본대사관 공보문화원에서 쓰지하라 씨와 함께 한국과 일본의 대표적인 여성 소설가 정이현(42), 에쿠니 가오리 씨(50)가 ‘문학은 개인의 통로’라는 제목의 낭독회를 열었다. 한일문화교류회의(위원장 정구종)와 일한문화교류회의(위원장 가와구치 기요후미)가 공동 주최한 이번 행사는 한일 문학가들의 교류가 이어져 양국 간의 넓고 큰 소통의 장이 열리길 바라는 자리였다. 지난해에도 일본 요코하마에서 쓰지하라 씨의 사회로 에쿠니 씨와 정 씨가 ‘말의 음률을 타고’를 주제로 낭독회를 열었다. 정 씨는 한국어로 소설집 ‘말하자면 좋은 사람’ 중 ‘또다시 크리스마스’를, 에쿠니 씨는 일본어로 나오키 상 수상작 ‘울 준비는 되어 있다’ 중 ‘생쥐 마누라’를 낭독했다. 참가 작가들은 한일 양국의 소통과 교류를 기대했다. 정 씨는 “문학은 서로 이어지는 길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 외국인과도 닿을 수 있게 이어주는 것이 바로 문학이라는 공통 언어”라고 말했다. 에쿠니 씨는 “문학이 통로라면 그 통로는 자기 안으로 들어가는 작은 길이란 생각을 했다. 소설을 읽으면 자신에게 들어가는 작은 길을 걷는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전혀 모르는 것이 포인트”라고 말했다. 한편 22일 오후 8시에는 서울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한일 문화교류 ‘동행’ 공연이 열린다. 한국은 중요무형문화재 승무 예능보유자 이애주 씨의 ‘태평무’와 디딤무용단의 구정놀이,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강강술래 등을 선보인다. 일본은 중요무형문화재 종합지정 보유자 사쿠라마 우진 씨의 ‘노(能)’ 등을 준비했다. 정구종 위원장은 “한일 간 정치, 외교적인 냉기류는 아직 풀리지 않고 있으나 문화교류는 스스럼 없이 두 나라 사이를 넘나들면서 정서의 공유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고 말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7월에 별세한 김종철 전 한국시인협회장의 유고시집 ‘절두산 부활의 집’(문학세계사·사진)이 출간됐다. 유고 시집에는 고인이 세상을 떠나기 2주일 전인 6월 22일 연세의료원 암병동에서 마지막까지 다듬은 유고시 ‘절두산 부활의 집’ 등 미발표시 37편, 발표했지만 시집으로 묶지 못한 시 43편 등 모두 80편의 시가 실렸다. 시인은 세상과 작별 준비를 하면서도 시집을 완성하는 데 힘을 다했다. 그는 서문에 “이것저것 끌어 모아 시집을 낼까 두렵다. 그래서 작은딸의 힘을 빌려 눈에 뜨이는 원고부터 힘겹게 정리했다”고 적었다. 문학평론가 김재홍 씨는 “(김 시인이 30여 년간 추구해온) ‘못’ 시학의 정점이자 완결판에 근접했으며 영원한 이별을 통한 죽음과의 친화, 죽음 길들이기와 화해가 주된 내용”이라고 평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소설가 복거일(68)이 제17회 동리문학상, 시인 김명인(68)이 제7회 목월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수상작은 복거일의 장편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문학동네)와 김명인의 시집 ‘여행자 나무’(문학과 지성). 동리·목월 문학상은 경북 경주 출신인 소설가 김동리(1913∼1995)와 시인 박목월(1916∼1978)을 기리기 위해 경주시와 동리·목월기념사업회가 제정했다. 경주시와 경북도, 한국수력원자력 월성원자력본부가 공동 주최를 맡고 있다. 상금은 각 7000만 원. 시상식은 12월 5일 경주시 The-K 경주호텔에서 열린다. 》 ▼ “생애 첫 문학상 즐겁고 고마워” ▼동리문학상 복거일“문학상은 처음 받아봅니다. 생각지도 못한 상이 오니까 참 즐겁네요. 높이 평가해줘서 정말 고맙습니다.” 수상 소감을 묻자 소설가 복거일의 목소리가 크고 밝아졌다. 그는 “아무리 성스러운 것이라도 문학 앞에 수식어를 붙이지 말자고 생각했고 민족문학, 노동문학의 대척점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상복도 없었다”고 했다. 올해 출간된 수상작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는 앞서 나온 ‘높은 땅 낮은 이야기’(1988년), ‘보이지 않는 손’(2006년)에 이어지는 자전적 소설의 완결작이다. 주인공 현이립은 30대 젊은 청년에서 말기 간암 판정을 받은 병든 노인이 됐다. 소설 속 주인공은 말기 간암 판정을 받았지만 항암 치료를 받기를 거부한다. 복 작가도 사정이 똑같다. 그도 꼭 써야 할 작품을 쓰기 위해서 치료도 받지 않고 글쓰기에 몰두하고 있다. 복 작가는 수상작을 ‘지식인 소설’이라고 불렀다. 그는 “주인공이 과학과 경제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데, 이번엔 주류 소설 요소를 잘 융합하고 싶었다. 독자들이 비교적 쉽게 접근한 것 같아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복 작가는 생전 동리 선생을 만나본 인연은 없지만 문학을 공부할 때 큰 영향을 받은 작가로 동리 선생을 꼽았다. 그는 “‘사반의 십자가’를 보면 선생은 토속적인 작가였지만 안목은 늘 세계를 향해 열려 있었다. 요즘 젊은 작가들이 국경 바깥으로 시선을 돌리지만 동리 선생은 반세기 전에 전범(典範)을 보이셨다”고 했다. 동리문학상 심사위원회(이어령 김지연 김주영 문순태 전영태)는 “‘모든 사람은 죽음이 끝이나 작가는 죽음이 끝이 아니다’라는 명제를 복거일은 이 작품을 통해 힘차게 선언한다”며 “몇 차례의 봄을 맞을 수 있을지 기약하기 어려운 사내가 이 우주의 나이인 137억 년의 100억 곱절의 세월 뒤에 나올 일을 걱정하고 있다”고 평했다. ▼ “지훈 제자로 목월상 받아 기뻐” ▼목월문학상 김명인올해 목월문학상 수상자인 김명인 시인은 대학 4학년이던 1968년 5월 먼발치에서 박목월 시인을 바라봤다. 당시 목월은 그의 은사인 조지훈 시인 영결식에서 조시(弔詩)를 낭독했다. 김 시인은 “선생의 목소리가 하도 맑고 청아하고 뚜렷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지훈 선생의 제자로 목월 선생 이름의 상을 받게 되니 무척 기쁘다”고 말했다. 수상 시집인 ‘여행자 나무’는 지난해 등단 40주년을 맞아 발표한 김 시인의 열 번째 시집이자 2012년 고려대 교수직에서 정년퇴임 후 쓴 첫 시집이다. 그는 시집에 수록된 시 ‘살’에서 “말씀드리면 머지않아 내 살도 새털처럼 가벼워져/푸른 하늘에 섞이는 걸까?/털리는 것이 아니라면 살은 아예 없었던 것/이승에서 꿔 입는 옷 같은 것”이라고 썼다. 이태수 시인은 늙어가는 육신에 대한 사유를 담은 시에 대해 “삶을 담담한 시선으로 성찰하면서 오랜 연륜이 안겨준 원숙한 깨달음의 경지, 죽음(소멸)마저도 너그럽게 끌어안는 순응과 달관의 미학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김 시인은 30년째 살고 있는 집에 작은 집필실을 마련하고 걷고 읽고 쓰는 생활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는 “보다 웅숭깊고 투명해지는 세계가 펼쳐지길 바라고 있다”며 “돌은 길항하는 정서, 상충되는 모습인데 앞으로 내 시에서 통합해 보려고 한다”고 했다. 특색 있는 시집도 낼 계획이다. 그는 “정지용 선생의 ‘유리창’처럼 10행 안에 최대한 시적 분위기를 가두는, 서사 리듬 삶과 이미지가 집약되는 세계를 묶은 시집을 내년 초에는 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목월문학상 심사위원회(신달자 문효치 신규호 이태수 정호승)는 “김명인의 시는 중후하면서도 섬세하다. 꾸준하고 성실한 정진을 거듭하면서 흐트러짐이 없는 지속성 속의 변모를 끊임없이 추구하는가 하면, 내면 탐색의 폭이 넓으면서도 치밀하다”고 평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마르지 않는 한국 문학의 샘’ 소설가 이청준(1939∼2008)을 추억하는 후배 소설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의 소설은 후배들에게 소설을 쓰게끔 충동을 불러일으켰고 좋은 소설가가 되게끔 자극했다. 그리고 현재 진행형이다. 17일 광주 조선대에서 열린 제6회 이청준문학제 ‘내가 읽은 이청준’ 시간에 소설가 이승우(55), 이기호(42), 정용준(33) 등이 참가했다. ‘생의 이면’으로 해외 문학계의 뜨거운 찬사를 받은 이승우는 “나를 소설가로 만든 것이 이청준 선생”이라고 했다. 그는 이 선생과 같은 전남 장흥 출신이다. “저에게 쓰기에 대한 최초의 충동을 불러일으킨 소설은 이청준 선생님의 ‘나무 위에서 잠자기’입니다. 이 소설은 어떤 이야기의 재미나 감동, 어떤 사상의 심오함이 아니라 그것들을 전달하기 위해 동원하고 배치하고 설계하는 작가의 수고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이승우는 1981년 첫 소설 ‘에리직톤의 초상’으로 ‘한국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당시 심사위원이 이청준 선생이었다. 그는 “편집부 직원에게 전해 들은바 이 선생이 내 소설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셨다”며 “끈기 없는 내 성격상 그때 떨어졌으면 포기했을지도 모르니 내게 소설가란 이름을 붙여 주신 분”이라고 했다. 습작 시절부터 이청준의 소설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며 공부했다. 그는 “글의 길이 막힐 때마다 선생의 소설을 펼쳐 읽으면, 신기하게도 막혔던 글의 길이 희미하게 보이고 그러면 그 희미한 빛에 의지해서 다시 쓰면서 최초의 소설을 완성할 수 있었다”고 했다. ‘바벨’을 쓴 소설가 정용준도 스승 이승우 소설가의 추천으로 ‘소문의 벽’을 읽게 됐다. 그는 “‘소문의 벽’을 읽고 소설이 인간을 다루고 인간의 삶을 탐구할 때 얼마나 강력해지는지 알았다. 좋은 소설에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모순이 있고 그 모순 속에 인간이 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이기호는 이청준 연작소설 ‘가위 밑 그림의 음화와 양화’에 대해 “기억과 망각의 가위눌림 속에서 하나의 그림을 보여주고자 분투하는 작가 자신의 모습이 있다”고 했다. 그는 “1980년대 리얼리즘 소설, 후일담 문학이 득세하던 시기에 반대 방향으로 가려 했던 작가의 윤리 의식을 볼 수 있다”며 “소설은 내용이 아니라 문장이고, 새로운 태도나 내면을 만드는 것이 작가의 문장인데, 이 선생의 소설은 문장의 힘이 지면을 뚫고 나온다”고 했다.광주=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얇은 담배 종이가 찢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성냥개비로 담배 가루를 파낸다. 깔아둔 종이판에 담배 가루가 흩어진다. 들리는 것은 고요함뿐. 탁자 옆에 앉아 우린 이미 한 대를 피웠다.”(6쪽) 그들이 피운 것은 마리화나(대마초)였다. 주인공 ‘나’는 이별을 통보하러 애인 ‘에바’를 찾아간다. 하지만 헤어지자는 말을 꺼내지 못하고 애인이 건네준 마리화나를 입에 문다. 그러고 환각 속으로 깊이 빠져든다. 소설은 그 환각을 불규칙적으로 줄바꿈하며 감각적이고 몽환적인 문장으로 옮겼다. “느낌은 내 안에 있고, 광경은 내 밖에, 그리고 이것들은 서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것을 말해야 한다. 나는 너를 보고 있지만 너를 느끼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볼 수 없는 리듬을 느낀다.”(39쪽) 헝가리어로 사랑을 뜻하는 ‘세렐렘(Szerelem)’의 저자 나더시 페테르(외래어 표기법에 따른 표기)는 매년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꼽히는 헝가리의 대표 작가다. 그의 소설이 국내에 번역된 것은 처음. 소설 읽기의 즐거움은 타인의 인생을 대신 살아보는 대리체험에 있다. 마리화나가 명백히 불법인 우리나라에서, 사이키델릭한 도취 상태에 빠져 거품처럼 부유하는 사랑의 실체를 포착하는 것만으로 훌륭한 문학적 체험이 아닐까. 문학을 통해 맛보는 타락은 무죄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영국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2세’ 발췌문에서 당신은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폐위되어 감옥에 갇힌 왕이 이렇게 독백을 시작합니다. ‘내가 거하는 이 감옥을 세상에 어떻게 비교할지 곰곰이 궁리해 보았다. 세상은 사람들로 넘쳐나는데 이곳은 나 외에 어떤 생명체도 없으니 비교할 수 없구나.’” 미국 인디애나주립대 영문학 교수인 저자는 2003년 죄수들에게 이런 문제를 냈다. 죄수 대부분은 짧게 휘갈긴 답을 제출했다. 그런데 살인죄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독방에 갇힌 래리 뉴턴은 달랐다. 종이 앞뒤로 꽉꽉 자신의 생각을 채웠다. “무(無)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거나 만족할 때까지… 사람들은 그 어떤 것으로도 기뻐할 수 없을 거라는 결론에 이르는 것 같습니다. 즉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까지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 것 같기도 합니다.” 빈민 출신이었던 저자는 자원봉사 활동의 일환으로 1983년부터 교도소에서 기초 문학 프로그램을 교육했다. 2003년부터는 시카고 시와 인디애나 주의 여러 교도소에서 셰익스피어를 강의했다. 특히 가장 위험한 죄수들을 독방에 장기간 격리 수용하는 ‘슈퍼맥스’에서 셰익스피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거기서 뉴턴을 만났다. 교도소에서 셰익스피어와 죄수가 만나는 풍경은 독특했다. 저자는 복도 가운데 의자에 앉고, 죄수들은 복도 양옆으로 나란히 붙은 독방 안에서 갇힌 상태로 토론했다. 셰익스피어를 읽고 얘기를 나눴을 뿐인데 죄수들은 조금씩 바뀌어 갔다.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일단 복수부터 생각했던 죄수들이 왜 자신이 복수하고 싶은지 스스로 묻기 시작했다. 프로그램에 참가한 죄수 20명은 그동안 교도소 내에서 600건의 범죄를 추가로 저질렀으나 참가 이후 2건으로 줄었다. 일부는 몇 년간 단 한 건의 폭력도 행사하지 않았다. 뉴턴은 독방에 갇혀 매일 자살 충동에 시달리던 죄수였다. 뉴턴의 삶은 불우했다. 부모의 보살핌, 학교 교육도 받지 못한 채 10세 때 절도죄로 소년원 생활을 시작했고, 17세 때 친구들과 총기로 대학생을 살해했다. 그는 ‘킬러 도그(살인견)’라 불리며 독방에서 매일 자살하거나 극악한 추가 범죄를 저질러 사형당할 생각에 몰두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를 만난 뒤 점차 바뀌었다. 문학박사의 꿈을 키우고 “다시는 살인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또 저자와 함께 ‘죄수들을 위한 셰익스피어 전집 안내서’를 완성한다. 이 같은 셰익스피어 프로그램은 2003년부터 10년간 1000여 시간, 500여 회에 걸쳐 진행됐다. 범죄자만의 독특한 셰익스피어 해석은 재미를 준다. 맥베스가 덩컨 왕을 살해하는 장면을 읽고선 뉴턴은 이렇게 해석했다. “이 공포와 혼란과 불안이라니! 작가(셰익스피어)가 실제로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더라도 그럴 가능성이 있었던 게 틀림없어요. 마치 사람을 죽이려는 시도를 해봤거나, 살인하려는 순간에 그 공포와 극심한 불안을 극복할 수 없었던 것처럼요!” 무엇보다 뉴턴이 남긴 이 한마디가 책을 덮고도 오래도록 귓가를 울렸다. “모든 사람들이 삶을 제대로 누리고 살 기회를 흘려보내고 있다. 그들은 그저 무수한 자신들의 감옥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고 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다자이 오사무는 천재 소설가였다. 그는 가짜 제국주의자였고 가짜 일본 공산당원이었으며 가짜 군인이었다. 그는 처와 연애와 창녀를 진짜 사랑했다. 그리고 그는 자살했다.” ‘무진기행’을 쓴 김승옥 작가(73)는 2011년경 출판사 열림원 편집부에 일본 천재 작가 다자이 오사무(1909∼1948)를 정의한 짧은 글을 보냈다. 노작가는 오사무를 정말 좋아해 많은 영향을 받았다며 그의 작품 선집을 내자고 제안했다. 2012년 본보와 인터뷰에서 “오사무가 유물론에 심취했다가 결국 신에 귀의한 점에서 나와 공통점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출판사와 선집을 내기로 한 노작가는 뇌중풍으로 불편한 몸에도 직접 작품을 고르고 번역가를 섭외했다. 그는 당시 시대 상황을 잘 이해하는 번역자가 필요하다며 선배 소설가 이호철(82), 문학평론가 전규태(81)에게 번역을 맡겼다. 1930년대에 태어난 두 사람은 일본 소설을 원서로 읽은 세대. 전 평론가는 “오사무의 작품이 여러 번 번역됐지만 이번에 진짜 오사무를 만날 수 있도록 번역에 완벽을 기했다”며 “번역하면서 다시 한 번 그의 섬세한 감수성과 스토리텔러로서의 천부적 재능을 흠뻑 느꼈다”고 평했다. 1909년 태어난 다자이 오사무는 1936년 단편집 ‘만년’으로 문단에 데뷔한 후 ‘인간실격’ 등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쳐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떠올랐다. 하지만 자기애와 자기혐오 사이를 오가며 고통 받다가 1948년 애인과 함께 투신자살해 생을 마감했다. 열림원은 최근 ‘다자이 오사무 컬렉션’이란 이름으로 1939∼1941년 발표한 단편소설을 담은 ‘달려라 메로스’, 전후 몰락하는 일본 귀족을 다룬 ‘사양’, 여성 1인칭 시점으로 쓴 단편소설을 묶은 ‘여학생’ 등 3권을 출간했다. 내년 가을까지 ‘만년’ ‘인간실격’ ‘비용의 아내’ ‘석별’ ‘쓰가루’ ‘옛날이야기’ ‘사랑과 고뇌의 편지’를 더 내 모두 10권으로 완간한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정도상 작가(54)는 2005년 중학생이던 큰아들을 잃었다. 아들은 짧은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영혼으로 하나’였던 아들의 죽음은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다. 2012년 청소년들의 자살이 잇달았다. 그는 아들을 잃은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쓴 소설이 최근 출간한 ‘마음오를꽃’(자음과모음·사진)이다. 정 작가는 기자간담회에서 “아들을 잃고 몸소 겪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청소년에게 자신의 자살로 부모가 어떤 일을 겪게 되는지, 가정이 어떻게 파괴되는지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자살을 결정하는 순간에 한 걸음만 뒤로 물러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으로 썼습니다.” 주인공 소년, 소녀는 우리 곁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남부럽지 않은 환경에서 살지만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소년 우규. 어머니를 ‘엄마느님’이라 부르며 과보호 속에 컸다가 친구들의 미움을 산 소녀 나래. 둘은 자살로 목숨을 끊고 ‘가운데 하늘’인 저승에서 다시 만난다. 이곳에서 세상의 가족과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뒤늦게 참회한다. 정 작가는 경전 ‘티베트 사자의 서’와 제주도 설화 ‘서천꽃밭’을 기본 얼개로 소설을 썼다. 제목 ‘마음오를꽃’은 서천꽃밭에 피는 환생의 꽃 중 하나. 뼈오를꽃 살오를꽃 피오를꽃 숨오를꽃을 먹어 육체를 완성하고 마지막에 ‘마음’을 만들어주는 마음오를꽃을 먹으면 인간계로 환생한다. “자살하면 이생을 다시 살아야 하는 형벌인 환생을 하게 됩니다. 세상을 잘 견뎌내는 힘이 무엇인지 아이들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문학평론가 김치수 이화여대 명예교수(사진)가 14일 별세했다. 향년 74세. 1940년 전북 고창군에서 태어난 고인은 중앙고와 서울대 불어불문학과를 거쳐 프랑스 프로방스대에서 불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와 이화여대에서 후학을 지도했고, 한국불어불문학회 회장과 세계기호학회 이사 등을 지냈다. 4·19세대인 고인은 대학 시절인 1963년 시인 최하림, 평론가 김현, 소설가 김승옥과 함께 한국 문단 최초로 한글세대의 등장을 알린 동인지 ‘산문시대’를 창간했다. 하숙집에서 합숙하며 산문시대를 만든 ‘문우(文友)’들은 훗날 한국 문단의 거목이 됐다. 1970년 평론가 김병익 김주연 씨 등과 계간 ‘문학과 지성’의 창간을 주도했고 1975년 출판사 ‘문학과 지성’ 설립에도 앞장섰다. 고인은 2006년 이화여대 정년퇴임을 계기로 한 인터뷰에서 “디지털 시대에 문학의 영토가 좁아질 수는 있겠지만 문학은 죽지 않는다고 확신한다”며 문학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토로했다. 대한민국 옥조근정훈장(2006년)과 올해의 예술상(2006년), 프랑스 정부 문화훈장(1995년)을 받았다. 유족으로 용대(KAIST 전기및전자공학과 교수) 용욱 씨(미국 뉴욕 맨해튼칼리지 토목공학과 교수)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17일 오전 8시. 02-2072-2091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는 매년 10월이면 고은 시인 등 한국 작가의 수상 가능성을 점치는 언론 보도가 쏟아진다. 그리고 기대는 곧 실망으로 바뀐다. 정작 세계 문학계에서는 한국 작가의 수상 가능성을 한국인들의 염원보다 낮게 본다. 어떻게 하면 수상 가능성을 높일 수 있을까. 국내외 출판계와 한국문학번역원 전·현직 관계자들에게 수상 가능성이 있는 한국 작가와 선결 과제를 물었다. 》 ○ “한국 노벨문학상 2018년을 노려라” 한국문학번역원을 비롯해 전문가 집단은 노벨상 수상 가능성이 높은 작가로 10명 정도를 꼽았다. 1세대 후보군으로 고은(81) 황석영(71) 이문열(66)이 꼽혔고, 차기 후보군에 이승우(55) 은희경(55) 신경숙(51), 차차기 후보군에 김영하(46) 박민규(46) 한강(44) 김애란(34)이 들었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노벨상을 받으려면 최소 요건인 ‘6과 6.6’을 채워야 한다고 말한다. 숫자 6은 6년 주기를 뜻한다. 1994년 이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시아권 작가는 오에 겐자부로(일본·1994년), 가오싱젠(중국·프랑스로 망명·2000년), 오르한 파무크(터키·2006년), 모옌(중국·2012년)으로 6년 주기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역대 노벨문학상 흐름을 보면 지역과 국가를 안배한다”며 “작품의 질은 기본이고 4, 5년간 꾸준히 요건을 채워 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최근 10년간 수상자들의 평균 나이는 70세다. 이를 감안하면 2018년경 고은 황석영 이문열, 셋 중 한 사람에게 기회가 올 가능성이 높다. ○ 스웨덴어 번역 평균 6.6권을 채워라 두 번째 숫자 6.6은 최근 10년간 노벨상을 받은 작가들이 수상 전 스웨덴어 번역본을 낸 작품 수다. 노벨문학상 심사위원들은 모두 스웨덴 사람들이다. 모국어인 스웨덴어로 번역된 책에 더 눈길이 갈 뿐 아니라 스웨덴 내에서의 평가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문학번역원에 따르면 1960∼2004년 수상자들은 노벨상을 받기 전 평균 5권을 스웨덴어로 번역해 현지 출간했다. 스웨덴어 번역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최근 10년간 그 수치는 6.6권으로 늘었다. 스웨덴어 번역본이 없는 상태에서 상을 받은 이는 그리스 작가 이오르고스 세페리아데스(조지 세페리스·1963년)와 오디세우스 엘리티스(1979년) 단 둘뿐이다. 한국 작가 중 6.6권에 도달한 이는 한 명도 없다. 문학상 수상에 가장 근접했다는 고은 시인도 4권, 황석영 이문열 작가는 각각 2권이고, 차기 후보군인 이승우, 신경숙 작가의 작품은 번역조차 되지 않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이 출간될 때마다 스웨덴어로 번역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등으로 번역된 작품도 중국이나 일본의 10분의 1 수준이다. 지금까지 스웨덴어 번역은 안데르스 칼손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 한국학과 교수와 그의 아내인 박옥경 씨의 작업에만 전적으로 의존해 왔다. 김윤진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출판본부장은 “일본어와 중국어를 제외하면 한국 소설을 번역할 현지 전문 번역가가 10명도 안 된다”며 “영어, 프랑스어로 번역된 작품을 스웨덴어로 번역하는 중역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외 문단과 교류 확대, 국내 문화 전체 질 업(UP) 아시아 지역 노벨상 수상 작가들은 수상 이전에 국제 문학상을 다수 수상했고, 해외 문단과 활발하게 교류해 왔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세계문학계의 헤게모니를 영미권이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키는 프란츠 카프카 상, 세계환상문학 대상, 스페인예술문학 훈장, 카탈루냐 국제상 등을 수상했다. 유력한 후보인 중국 시인 베이다오도 뉴욕주립대 등에서 교수로 일하며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 수차례 문학상을 받았다. 한국은 그나마 고은 시인이 노르웨이 비에른손 훈장(2006년)을 받고 해외에서 시낭독회를 개최해 왔다. 스웨덴 한림원의 문학상 관계자를 만난 김주연 전 한국문학번역원장(숙명여대 명예교수)의 결론은 이렇다. “문학상 심사 관계자들은 한국 문학, 나아가 문화 수준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요. 민족문학적 사고를 철저히 버리고 인류 보편의 명제와 정서에 입각한 세계문학으로서 한국 문학을 꾸준히 가꾸어 나가야 합니다.”박훈상 tigermask@donga.com·김윤종 기자}

‘그래픽 노블의 거장’ 프랑스 작가 자크 타르디(68)의 작품이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 출판사 ‘길찾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포로수용소에 수감된 젊은 포로들의 참혹한 삶을 통해 전쟁의 참상을 고발한 ‘포로수용소’(사진)를 펴냈다. ‘포로수용소’는 타르디 부친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했으며 2012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작가의 최근작이다. 타르디의 부친은 1935년 19세 때 프랑스 전차병으로 전쟁에 나갔다가 4년 8개월간 포로수용소에서 생활했다. 타르디는 흑백만화의 힘을 빌려 포로수용소에 갇힌 청춘들의 잔혹한 삶을 생생하고 강렬하게 고발한다. 타르디는 올 1월 열린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 주요 이벤트 작가로 초청받았다. 지난해 프랑스 최고 영예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수상을 거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수상 거부 이유는 이랬다. “사상의 자유, 창작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정부를 비롯해 어떠한 정치세력이 주는 상도 받지 않겠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팔은 개뿔. 팔 하나 잃으면 잃는 거지 뭐. 팔 하나 잃는 것보다 더한 일도 있어. 사람한테는 팔이든 뭐든 두 개씩 있지만, 팔이든 뭐든 하나만 있어도 남자는 남자야. 개뿔 같은 소리. 그 얘긴 하고 싶지 않아.” 잠시 뒤 그가 말을 이었다. “그래도 아직 그거는 두 개야.”(111쪽) 쿠바 키웨스트에서 낚싯배를 모는 바다 사나이 해리 모건. 그는 여름이면 낚시꾼을 배에 싣고 데리고 다니면서 돈을 번다. 여름 한 철 번 돈으로 1년 동안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하는데, 어느 날 수고비를 모두 떼이는 사기를 당한다. 결국 생계를 위해 거절해왔던 밀수업에 손을 댔다가 총에 맞아 한 팔과 배까지 모두 잃는데…. “내 집에서 행복을 누릴 기회가 다시 있을까? 어째서 난 출발점보다 더 못한 곳으로 돌아왔을까?” ‘노인과 바다’로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국내 초역 소설. 헤밍웨이가 1934년 단편소설과 1936년 후속편으로 발표한 중편소설을 1937년 한데 묶은 책이다. 소설은 시나리오로 각색돼 4번이나 영화화됐다. 1944년 당시 최고의 배우 험프리 보가트가 주인공 해리를 맡아 화제가 됐다. 당시 상대역이 훗날 보가트와 결혼한 로런 바콜이다. 삶이 버겁다고 느껴질 때, 하드보일드 소설의 주인공이 돼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1993년 서른여섯 구효서 작가는 실험을 감행했다. 당시 신세대 작가로 불린 그는 소설집 ‘확성기가 있었고 저격병이 있었다’에서 파격적인 글쓰기를 선보였다. 바코드 기호, 컴퓨터 화면을 소설 속에 그대로 옮기고 군대 사체검안서, 공문서, 계약서 형태로 글을 썼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선배 문인과 평론가들의 욕뿐이었다. 훗날 등단한 후배들이 “그 소설 정말 좋았다”며 엄지를 치켜세웠지만 실험을 멈춘 뒤였다. 21년이 흘러 그도 내일모레면 환갑이다(정확히는 57세). 한국을 대표하는 중견 작가가 됐지만 무언가 허전했다. 그는 “장난, 유희, 도발 같은 파괴적인 엉큼한 취향이 내 안에 있었다. 항상 그것이 고개를 들려고 했는데 가장 노릇, 가장적 작가로서 의식이 있다 보니 늘 저 밑에 가려져 있었다”고 했다. 그가 “쓰고 싶은 소설을 쓰겠다”며 실험을 감행했다. 독자의 심장을 쥐락펴락하는 서사, 읽는 맛을 돋우는 구수한 입담은 새 소설에 없다. 최근 출간된 소설 ‘타락’(현대문학)은 그의 대표작 ‘비밀의 문’ ‘랩소디 인 베를린’ 등과 비교하면 전혀 다른 사람이 쓴 것 같다. 서사는 납작하고 한 편의 정물화를 감상하듯 이미지가 풍성하다.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 낯선 이국 땅 버스정류장에 선 ‘산’의 두 팔 위에 ‘이니’란 여인이 뚝 떨어진다. 둘은 교외의 오래된 집에서 동거를 시작한다. 사랑의 크기를 키우지도 않는다. 잘 씻지도 먹지도 않고 출생 이전 자궁으로 죽음으로 다가서려 한다. 이소연 평론가는 작품 해설에 “독자는 그 앞에 놓여 있는 작품과 더불어 한 작가가 구축해온 세계 자체가 와해되는 놀라운 광경을 필경 목도하고 만다”고 썼다. ―새로운 구효서가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정통소설을 쓴 것을 후회하거나 가치를 폄하하고 싶지 않다. 다만 지금 하고 싶은 방향이 생겼다. 작가란 무엇인지, 소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끝없이 질문을 던졌는데, 나이가 드니까 조금 무뎌졌다. 남들이 알아주는 맛, 돈 맛…, 그것 달콤하잖아. 그런데 이제는 비겁하지 말고 솔직해보자, 문학과 일대일로 맞대면하자고 결심했다. 더 미룰 수가 없었다.”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소설만 잘 팔린다. 솔직히 빨리 읽히지 않았다. “재밌으면 빠르게 읽히고, 공감과 감동도 빨리 오고, 더 많은 사람이 읽고, 그러면 책이 더 잘 팔리겠지. 하지만 거부하고 싶다. 내 소설은 현실에 대한 정직한 반영이었다. 이번엔 일부러 모호하게, 묘하게, 아슴아슴하게 만들었다. 소설에 구체적인 지명도 없고 캐릭터도 순수기호로만 남았다. 독자는 읽으면서 낯설고 이상해서 짜증 나서 책을 버릴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면 목적은 달성했다.” ―쉽게 안 써졌겠다. “일종의 ‘몰자각의 글쓰기’를 했다. 내 안의 자각, 자의식을 최소화하고 직관적으로 용인하려 했다. 주관을 최소화하면 소설이 어떤 무늬로 달라질까 궁금했다. 글 쓰는 속도가 빨라지면 어느새 옛날 습관처럼 쓰고 있었다. 그러면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고, 다시 앉아서 쓰다가 습관이 나오면 멈추고 다시 일어서길 반복했다.” 인터뷰하던 날 작가는 멋스러운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아들뻘이 입는 유행 타는 옷이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아들과 옷을 돌려 입는다고 했다. “신체의 ‘조락(凋落)’을 생각하면 서글퍼진다. 고목에서 새순이 나는 것처럼 회춘하고 싶었다”고 했는데, 옷맵시를 보니 엄살 같았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바스러져 버린 과거를 찾으러 가는 과거로의 여행자, 파트리크 모디아노. 모디아노가 르 클레지오보다 먼저 노벨문학상을 받아야 했다.” 파트리크 모디아노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전하는 뉴스에 프랑스 현지 독자들이 달아놓은 댓글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보다 6년 늦었지만 프랑스 문단과 독자의 평가는 그에 못지않다. 모디아노의 어린 시절은 순탄치 않았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이던 1945년 7월 30일 프랑스 파리 교외 불로뉴비양쿠르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는 유대계 이탈리아인으로 사업가였고 벨기에인 어머니는 무명 영화배우였다. 아버지는 살벌했던 유대인 검거를 피하기 위해 가짜 이름을 여러 개 바꿔 써가며 도망 다녔고, 어머니는 순회공연으로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았다. 부부는 모디아노를 낳았을 때 가족수첩에조차 가족의 본명 대신 가명을 적어 넣어야 했다. 어린 시절 경험은 훗날 그의 작품 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2011년 한 인터뷰에서 “결국 우리는 태어난 시간과 장소에 의해 결정된다”고 했다. 그의 작품을 여러 권 번역한 김화영 고려대 불문과 명예교수는 “어린 시절 겪은 혼란 속에서 어떤 것은 기억나고 어떤 것은 기억나지 않는 공중에 붕 뜬 것 같은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는 희미한 과거, 존재들의 사라짐, 공허함의 과정 속에 부재하는 정체성을 추적하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반복했다”고 말했다. 모디아노는 15세 되던 해에 그의 문학 인생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와 마주치게 된다. 어머니의 친구이자 ‘지하철 안의 자지(Zazie dans le metro)’로 유명한 소설가 레몽 크노를 기하학 개인교사로 만난 것이다. 그를 통해 모디아노는 유서 깊은 갈리마르 출판사의 칵테일파티에 참석해 문단의 저명인사들을 알게 되고, 1963년 대학입학자격시험에 합격하지만 진학 대신 소설가의 길을 걷기로 한다. 그리고 5년 후인 1968년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첫 소설 ‘에투알 광장’을 발표했다. 이 소설로 로제 니미에 상과 페네옹 상을 수상한 그는 이후 글쓰기에만 전념했다. 모디아노는 파리에 살면서 파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주로 쓴다. 명성에 비해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편이다. 김화영 교수는 “파리에 살면서 딱 한 번 TV에 나온 것을 봤는데, 명쾌한 문장을 구사하는 모디아노가 끊임없이 말을 더듬으며 한 문장도 제대로 끝맺지 못하는 모습이 오히려 감동적이었다. 다음 날 그의 눌변이 시청자를 가장 많이 감동시켰다는 신문기사들이 보도됐다”고 전했다. 모디아노는 2012년 프랑스 르피가로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글쓰기를 안갯속에서 운전하는 일에 비유했다. “당신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저 계속 가야 한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죠.” ▼ ‘어두운…’ ‘도라 브루더’ 등 10여권 국내에 번역 출간 ▼모디아노 작품은 국내에 10여 권이 번역돼 있다. 1978년 공쿠르상 수상작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비롯해 ‘도라 브루더’ ‘신원 미상 여자’ ‘작은 보석’ ‘한밤의 사고’ ‘혈통’과 어린이용 그림책 ‘그 녀석 슈라에겐 별별 일이 다 있었지’(이상 문학동네), 모디아노의 글에 장 자크 상페의 그림을 더한 ‘우리 아빠는 엉뚱해’(별천지), 소설 ‘슬픈 빌라’(책세상)와 ‘아득한 기억의 저편’(자작나무)이다. 노벨상 수상을 계기로 모디아노의 작품은 국내에 더 쏟아질 예정이다. 문학동네는 9일 “‘잃어버린 젊음의 카페에서’ ‘팔월의 일요일들’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청춘시절’ ‘지평선’까지 5권의 책을 더 출간할 것”이라고 밝혔다. 벨기에 영화배우 출신의 어머니를 둔 모디아노는 영화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프랑스 누벨바그의 거장 루이 말 감독의 영화 ‘라콩브 뤼시앵’(1974년)의 시나리오를 썼다. 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레지스탕스에 가담하려고 했다가 오히려 친나치 의용대 활동을 한 청년의 이야기를 다뤘다. 영화 ‘가스코뉴의 아들’ ‘여행 잘하세요’ 등의 시나리오도 썼다. 모디아노는 직접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1997년 영화 ‘범죄의 계보’에서 프랑스 여배우 카트린 드뇌브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작품 중 ‘청춘시절’ ‘슬픈 빌라’ ‘잃어버린 대학’ 등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파리=전승훈 특파원김상운 sukim@donga.com·임희윤 기자}

소설 ‘미스터 폭스, 꼬리치고 도망친 남자’(다산책방)의 주인공인 인기 작가 세인트 존 폭스. 그에겐 예술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상상의 존재인 ‘뮤즈’ 메리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메리가 실체를 갖춘 모습으로 그의 앞에 나타나 반기를 든다. 별다른 이유 없이 소설 속 여주인공을 잔혹하게 살해하는 그를 향해 “당신은 연쇄살인마야”라며 이야기 대결을 제안한다. 메리는 수다스럽다며 아내의 목을 잘랐다가 평생 공포와 후회 속에 살아가는 의사 이야기로 폭스를 비꼰다. 폭스는 유명 작가인 자신을 흠모해 습작품을 보낸 메리의 원고를 불태우는 이야기로 반격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심장을 스스로 버린 소녀와 예술 작품에 넣을 심장을 구하러 다니는 소년의 사랑 같은, 기괴한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영국 여성 작가 헬렌 오이예미가 ‘미스터 폭스…’의 한국 출간을 맞아 방한했다. 그는 지난해 10년에 한 번씩 선정하는 ‘영국을 대표하는 젊은 작가 20인’에 올랐고, ‘서머싯 몸’ ‘조라 닐 허스턴·리처드 라이트 레거시’ 등 젊은 작가에게 주는 상을 대부분 수상했다. 고교 시절 쓴 소설을 포함해 지금까지 장편 소설만 5편을 썼다. 7일 서울 주한 영국문화원에서 만나 상상력의 원천을 탐구했다. “여성 피살 사건을 보도한 신문기사를 보면 로맨스와 폭력이 얽혀 있었어요. 마침 뒤 모리에의 소설 ‘레베카’와 잔혹동화 ‘푸른 수염’을 읽었는데, 여성을 살해하는 사건 속에 담긴 로맨스와 폭력의 연관성을 우화적으로 다뤄보고 싶었어요.” 오이예미는 나이지리아 출생으로 네 살 때 부모와 함께 영국으로 이민 왔다. 그리고 독서를 통해 작가로 성장했다. “삶이 진정 시작하는 때는 도서관 대출 카드를 처음 손에 쥔 날이란 말이 있어요. 부모님의 대출 카드까지 동원해 잔뜩 빌린 책을 읽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어요. 하루는 성에 갇힌 공주도 됐다가 다음 날은 100살 먹은 노인이 되는 식이었죠.” 오이예미는 문단 데뷔도 파격적으로 했다. 고교생이던 그는 도입부만 쓴 소설을 출판사에 보냈다. 다음 날 덜컥 그 작품과 다음 작품의 판권까지 사겠다며 40만 파운드(약 6억8000만 원)에 계약하자는 파격적 제안을 받았다. 곧장 교사에게 과제를 빼달라고 부탁하고 나머지 소설을 완성해 출판사에 보냈다. 그 작품이 첫 소설 ‘이카루스 소녀’다. 그는 “실제 손에 쥔 돈은 그만큼 되지 않는다. 그래도 대학 진학 비용을 해결하기에 충분했다”며 웃었다. 오이예미는 9일 경기 파주출판도시 ‘2014 파주북소리’ 축제에 참가해 ‘살인자의 기억법’ 등을 쓴 김영하 작가와 대담을 나눈다. 그는 “김 작가의 작품을 읽었는데, 스타일이 흥미로웠다. 왜 영화나 다른 매체가 아닌 소설을 선택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 “당신은 왜 소설을 택했느냐”고 되물었다. “소설이 나를 택했어요.”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선생의 유지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제28회 인촌상 시상식이 8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롯데호텔 크리스털볼룸에서 열렸다. 이 상은 일제강점기 암울한 시대에 동아일보를 창간하고 경성방직과 고려대를 설립한 민족 지도자 인촌 선생의 뜻을 잇기 위해 1987년 제정됐다. 해마다 인촌 선생의 탄생일(10월 11일)에 맞춰 시상식을 열고 있다. 인촌상은 재단법인 인촌기념회(이사장 이용훈)와 동아일보사가 제정해 운영한다. 이 이사장은 이날 시상식에서 △안병영 연세대 명예교수(교육) △한글학회(언론·문화) △김경동 KAIST 초빙교수(인문·사회) △유진녕 LG화학 기술연구원장(과학·기술) 등 부문별 수상자에게 상패와 기념메달, 상금 1억 원을 각각 수여했다. 이 이사장은 “인촌 선생이 추구한 민족 정체성 확립과 실력 양성은 앞으로도 난관 극복을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며 “수상자들은 이런 방향에서 우리 사회에 크게 공헌한 분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황식 전 국무총리는 축사에서 “지금이야말로 인촌 선생이 몸소 실천했던 공선사후(公先私後)와 신의일관(信義一貫)의 정신이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앞서 인촌상운영위원회(위원장 이돈희)는 외부 심사위원 17명을 위촉해 △교육 △언론·문화 △인문·사회 △과학·기술 등 4개 부문에 걸쳐 6월부터 부문별로 세 차례 회의를 열어 최종 후보를 선정한 뒤 수상자를 확정했다. 교육 부문에서 수상한 안병영 연세대 명예교수는 “지난 정부에서 교육부 수장으로 일하면서 겪은 가장 어려운 점은 교육계 내 이념 갈등이었다”며 “인촌의 상생정신에 따라 교육 문제에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언론·문화 부문 수상단체인 한글학회의 김종택 회장은 “한글학회의 인촌상 수상을 일제강점기 당시 한글학회 전신인 조선어학회를 지원한 인촌 선생이 가장 기뻐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인문·사회 부문에서 상을 받은 김경동 KAIST 초빙교수는 “문화 독립운동을 전개한 인촌 선생의 뜻을 이어받아 우리나라 인문·사회과학의 서구 종속성을 탈피하는 데 정진하겠다”고 다짐했다. 자동차용 2차전지와 3차원(3D) TV 핵심 소재인 편광필름패턴(FPR)을 개발한 공을 인정받아 과학·기술 분야에서 수상한 유진녕 LG화학 기술연구원장은 “자율과 창의, 집단 지성을 활용해 세상에 없는 제품과 산업을 만드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개척자)가 되겠다”고 말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수상자와 가족, 역대 수상자를 비롯해 각계 인사 300여 명이 참석했으며, 바리톤 공병우 씨와 실내악단 ‘조이 오브 스트링스’가 축하공연을 펼쳤다. ▼ 주요 참석자 명단 ▼▽정·관·법조계=김수한 전 국회의장, 현승종 고건 김석수 전 국무총리, (이하 가나다순) 강인섭 전 국회의원, 김병국 전 청와대외교안보수석비서관, 김시중 전 과학기술처 장관, 박기정 이북5도위원회 함경북도 도지사, 서남수 전 교육부 장관, 이경재 전 방송통신위원장, 정성진 전 법무부 장관, 조강환 전 방송위원회 부위원장, 조완규 전 교육부 장관, 최광식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최시중 전 방통위원장 ▽학계 교육계=강상진 연세대 교수, 강성모 KAIST 총장, 권대봉 고려대 교수, 권숙일 대한민국학술원 회장, 권순달 수원대 교수, 권오경 한양대 교수, 권오상 고려사이버대 교무처장, 김도훈 숙명여대 교수, 김병완 고려대사범대부속고 교감, 김병윤 KAIST 연구부총장, 김병철 고려대 총장, 김상식 고려대 산학협력단장, 김상용 고려대 대외협력처장, 김성중 중앙중 교장, 김우경 고려대 의료원장, 김용민 포스텍 총장, 김인환 고려대 보건과학대학장, 김정기 위덕대 총장, 김정은 고려사이버대 연구개발처장, 김종길 고려대 명예교수, 김종필 중앙고 교장, 김중순 고려사이버대 총장, 김학준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김흔 중앙고 전 행정실장, 남시욱 세종대 석좌교수, 도성재 고려대 교무부총장, 류시혁 고려사이버대 총괄행정실장, 명순구 고려대 교무처장, 민성혜 고려사이버대 학생처장, 박동원 고려중앙학원 사무국장, 박명규 서울대 교수, 박명식 고려중앙학원 본부장, 박연정 고려사이버대 대외협력처장, 배규한 국민대 교수, 백완기 고려대 명예교수, 서상희 고려대 KU-KIST 융합대학원장, 송현 한글문화원 원장, 신광순 서울대 명예교수, 신영호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장, 신용하 울산대 석좌교수, 양재진 연세대 교수, 어윤대 전 고려대 총장, 유병현 고려대 기획예산처장, 유평준 연세대 교수, 유혁 고려대 정보대학장, 육정수 배재대 초빙교수, 윤병길 고려대사범대부속고 교장, 윤재풍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윤주명 순천향대 교수,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 이동관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총장, 이동렬 고려대 임상치의학대학원장, 이두희 고려대 경영대학장, 이승무 진명여고 교장, 이재열 서울대 교수, 이정복 서울대 명예교수, 이주현 고대부중 교장, 이태수 서울대 명예교수, 장승문 중앙중 교감, 전명식 고려대 미래전략실장, 전영우 수원과학대 초빙교수, 정갑영 연세대 총장, 정근식 서울대 교수, 정낙철 고려대 교수, 정무권 연세대 교수, 정원주 고려대 정보전산처장, 정일균 서울대 교수, 정종욱 고려사이버대 기획예산처장, 정철영 서울대 교수, 조광 고려대 명예교수, 조도현 전 아주대 교수, 조성관 고려사이버대 기획행정실장, 진덕규 이화여대 석좌교수, 최동훈 고려대 교수, 최덕 명지대 교수, 최승일 고려대 세종캠퍼스 부총장, 최희조 세종대 석좌교수, 하연섭 연세대 교수, 한용진 고려대 사범대학장, 홍두승 서울대 교수,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 홍정선 인하대 교수 ▽경제계=권영운 LG화학 기술연구원 상무, 권이상 전 경방 감사, 금동화 한국공학한림원 부회장, 김선휘 삼양염업 고문,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김이환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부회장, 김재억 삼양밀맥스 고문, 김재열 삼성엔지니어링 사장, 김준 경방 사장, 목상균 전 삼양사 감사, 안병모 비오엠 건축사 사무소 대표, 양재룡 전 한국은행 금융통계부장, 오윤택 회계법인 바른 대표, 이병연 세화애드컴 대표, 이준용 대림산업 회장, 이중홍 경방 회장, 조덕규 전 건설공제조합 이사장, 조혜성 LG화학 기술연구원 상무, 황인석 LG화학 기술연구원 상무 ▽언론·출판·문화·체육계=권이혁 서울대 명예교수, 고승철 나남출판 대표, 김광희 전 동우회장, 김달수 울산김씨대종회장, 김병건 동아꿈나무재단 이사장, 김상준 울산김씨대종회 상근부회장, 김석득 한글학회 명예이사, 김성수 울산김씨대종회 서울지역종친회장, 김승곤 한글학회 재단이사, 김은구 대한언론인회장, 김인호 전 동아일보 광고국장, 김은 인촌기념회 이사, 김정일 전 동아애드넷 대표, 김정태 동아꿈나무재단 이사, 김종완 전 재외동포재단 이사, 김종태 평화의마을 대표, 김준하 전 대한언론인회 이사, 김차균 한글학회 부회장, 김태선 동우회장, 문명호 공정언론시민연대 공동대표, 문영복 전 한국방송광고공사 이사, 박문두 경일상사 대표, 박붕배 한글학회 재단이사, 박오학 전 동아일보 전무, 박청수 원불교 교무, 박충서 동아꿈나무재단 사무국장, 성기옥 세계화교육문화재단 회장, 성낙오 대한언론인회 편집위원장, 송영언 동아프린테크 사장, 신광식 전 KBS 국장, 신홍순 전 예술의전당 사장, 어경택 화정평화재단 감사, 여영무 뉴스앤피플 대표, 오동춘 한글학회 감사, 오웅진 예수의꽃동네유지재단 이사장, 윤양중 일민문화재단 이사장, 이규민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이대훈 전 동아일보 이사, 이명득 전 동아일보 시설본부 국장, 이연택 대한체육회 명예회장, 이영탁 세계미래포럼 이사장, 이오영 한글학회 재단이사, 이재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장, 이종석 위암장지연선생 기념사업회장, 이종세 대한체육회 홍보위원장, 이종수 한글학회 재단감사, 이철승 서울평화상문화재단 이사장, 이현락 전 경기일보 사장, 이현복 한글학회 명예이사, 임연철 전 국립중앙극장장, 장석준 한국자원봉사협의회 상임대표, 전만길 전 대한매일신보 사장, 전용호 한국어문언론인협회 부회장, 정동환 한글학회 재단감사, 정재도 한글학회 명예이사, 정출도 전 전국문화원연합회 사무총장, 정형민 국립현대미술관장, 차재경 세종대왕기념관 관장, 최규철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고문, 최이식 전 전북도교육위원, 최홍식 한글학회 재단이사, 한돈희 인촌기념회 감사, 홍성훈 수당재단 사무국장, 홍원기 대한언론인회 명예회장김상운 sukim@donga.com·박훈상 기자}

유리창에 성에가 낀 고요한 겨울밤, 눈을 기다리는 ‘나’는 잠들지 못하고 있다. 그는 서랍 속 여름옷을 꺼내 펴보거나 부엌 싱크대 물을 틀며 서성이고 있다. 밤이 깊어질수록 그는 희박해지고, 희미해진다. 그는 마지막 애인에게 미안한 일이 많았다며 꽃을 선물하고 싶어 한다. 결혼식 부케용으로 인기인 리시안셔스의 꽃말은 변치 않는 사랑이다. ‘이달에 만나는 시’ 10월 추천작은 성동혁 시인(29)의 ‘리시안셔스’다. 2011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한 시인의 첫 시집 ‘6’(민음사)에 실렸다. 추천에는 김요일 신용목 이건청 이원 장석주 시인이 참여했다. 성 시인은 시집의 ‘시인의 말’에 딱 한 줄 ‘이곳이 나의 예배당입니다’라고만 썼다. 그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다섯 번의 수술을 거치며 신에 대한 믿음과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이 커졌다. 시집을 엮으며 이 시집이 하나의 아름다운 기도문이 되길, 하나의 아름다운 편지가 되길 바랐다”고 했다. “맥박이 희미해질 때가 있었어요. 저를 살리려고 여러 사람들이 헌혈을 하고 기도를 했어요. 수술실 안에서 열아홉 시간을 보냈어요. 깨어 보니 중환자실이었어요. 인공심폐기를 끼고 움직일 수도 없는 순간이었지만 전 다짐했어요. 이곳을 나가면 수술실 밖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꼭 사랑한다고 말해야지. 이 시는 제가 희박해지고 희미해진 순간, 저를 붙들고 있던 사람에게 건네는 꽃다발 같은 거예요. 제가 잠든 후에야 잠들던 사람에게 쓴 편지 같은 거예요.” 장석주 시인은 “성동혁 시를 읽는 일은 불편하다. 그의 몽환적 화법이 낯설기도 하거니와 어린아이의 연약함을 유지한 채 괴물 같은 자기 운명과 싸우는 모습이 애처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라운 직관으로 생의 본질들을 꿰어내는 흔치 않은 시적 재능이 번뜩인다”고 했다. 이원 시인은 “성동혁의 첫 시집으로 한국시의 청교도 계보는 더 깊은 방향으로 써지게 됐다. 성동혁은 세상 너머까지 다다르는 희박한 언어를 만들어낸다”고 평했다. 신용목 시인은 손택수 시집 ‘떠도는 먼지들이 빛난다’(창비)를 추천하면서 “시어는 무거워지고 시는 가벼워지는 시대에 가벼운 시어로 무거운 시를 완성할 줄 아는, ‘삶의 장인’”이라고 했다. 김요일 시인은 안성덕 시인의 첫 시집 ‘몸붓’(문학의전당)을 꼽았다. “오일장에서 불콰하게 한잔 걸치고 구성진 노래 부르며 멀어지는 사내의 뒷그림자를 닮았다. 능청스레 풀어놓은 그의 시편들은, 맛있는 비빔밥처럼 풍자와 은유가 제대로 버무려져 읽는 내내 ‘얼쑤’ 하며 맞장구치게 한다.” 이건청 시인은 김영석 시집 ‘고양이가 다 보고 있다’(천년의시작)를 골랐다. 그는 “공고하면서도 단아한 서정시의 광채를 본다. 등단 45년 만에 다섯 번째 시집을 펴낸 노시인의 정련된 서정이, 파격과 일탈과 무잡스러움이 판치는 요즘 한국시 속에서 귀한 개성으로 읽힌다”고 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검찰은 김혜경 한국제약 대표(52·여)와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73·사망)의 관계를 둘러싼 무성한 소문의 실체를 확인 중인 것으로 7일 알려졌다. 그동안 전 구원파 신도들 사이에선 “김 씨가 유 전 회장과 최측근 이상의 관계였다”는 얘기들이 나왔고, 일부 언론에서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인천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이헌상 2차장)은 최근 김 씨 관련 옛 호적부에 1998년생인 김 씨 아들의 아버지로 ‘일본인 이름’이 적혀 있으며 그 이름은 유 전 회장이 과거 일본에서 썼던 것과 같은 것으로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 전 회장은 1941년 2월 11일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1945년 광복 후 한국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검찰은 어떤 연유로 유 전 회장의 일본 이름이 옛 호적부에 올라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의 아버지는 7일 채널A와의 통화에서 “딸이 미국에서 대학에 다닐 때 비슷한 또래인 재일교포 김철 씨와 연애를 해서 두 아이를 낳았다. 하지만 두 아이를 낳고 얼마 안 돼 김철 씨가 폐결핵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또 그는 “(딸의 두 자녀가) 유 전 회장의 아이라는 것은 터무니없는 얘기다. 혹시 (유 전 회장의 일본 이름이) 호적에 올라가 있다면 다른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김 씨가 자녀의 유학 문제로 유학원과 민사소송을 벌일 당시 법원에 제출한 소송기록 중 미국에서 작성한 딸(2000년생)의 출생신고서엔 아버지가 ‘HOON KIM(김훈)’으로 적혀 있다. 그는 1961년 2월 11일 일본 태생으로 유 전 회장과 생년만 다르고 생월일은 같았다.최우열 기자 dnsp@donga.com·박정훈 채널A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