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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윤봉길 의사가 도시락 폭탄 투척 후 체포되자 당시 중국군 고위 간부가 윤 의사의 의거를 기리는 글을 쓴 사실이 밝혀졌다.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는 1932년 중국에서 발행된 ‘군사잡지(軍事雜誌)’ 제46기에 수록된 기사 ‘한국 지사 윤봉길의 짧은 전기’(韓志士尹奉吉傳略)를 11일 공개했다. 기사에는 ‘참모본부 고급참모 린이창(林毅强)’이란 중국 군인이 쓴 “천둥소리가 잠든 봄을 일깨웠으니, 폭탄 하나가 갇혔던 망국의 한을 열어젖혔노라. 정성과 충정을 조선 천지에 알렸으니, 가신 이의 향기가 길이 기억되리라”란 시가 적혀 있다. 기사에는 윤 의사의 출생지, 성장과정, 망명 이후 행적 등도 기록됐다. 사업회는 “윤 의사가 만주지역 독립군 기지를 둘러본 기록도 담겨 있어 사료적 가치도 높다”고 밝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가족이라는 가장 근본적이고 작은 사회 안에서조차 소속감과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흔들리는, 뿌리 없는 식물과도 같은 존재의 불안을 다룬 작품이 많았다. 많은 사람이 아프고 앓고 있다.”9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열린 201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예심에 참여한 심사위원들은 사회적 주제보다 개인의 내면, 아픔을 다룬 작품이 많았다고 전했다. 낯선 이국땅을 배경으로 외국 인명이 등장하는 작품도 늘었다. ‘세월호 침몰’ 등 한국 당대 현실이 고통스럽고 부조리해 오히려 다루기 어려웠고, 척박한 사회 속에서 사람들이 힘을 잃고 희망도 없이 지내는 모습을 작품에 담았다는 것이다. 》 올해 응모자는 총 2006명. 편수는 모두 5709편이다. 분야별로는 중편소설 250편, 단편소설 541편, 시 4050편, 시조 420편, 희곡 85편, 동화 224편, 시나리오 94편, 문학평론 12편, 영화평론 33편이었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시나리오가 12편 늘었고 다른 부문은 조금 줄었다. 올해도 미국 일본 프랑스 스페인 뉴질랜드 캄보디아 등 해외 각국에서 82명이 e메일로 응모작을 보내왔다. 예심에는 김경주 김민정 시인(시 부문), 김숨 박성원 정이현 작가(중편소설), 김미월 백가흠 이기호 편혜영 작가(단편소설), 정윤수 영화감독과 조철현 타이거픽쳐스 대표(시나리오)가 참여했다. 시 부문 응모작은 시의성 있는 소재나 생활에 밀착되어 있는 응모작이 많았다. 김경주 시인은 “최근 뉴스에 오르내리는 사건 사고를 시적 정황으로 파악하고 시로 옮기려는 태도가 눈에 띄게 많았다”며 “상대적으로 신선한 시어에 대한 고민, 생동감 있는 시적 전개를 보여준 시가 보이지 않은 것은 좀 유감스럽다”고 했다. 김민정 시인은 “800편 가까운 투고작을 읽어나가면서 절박함이란 말을 가장 많이 떠올렸던 것 같다. 부유하는 바다 위의 스티로폼 조각처럼 저마다 무엇을 주제로 시를 써야 하는지 헤매는 것 같았고, 개인적 감정의 울분과 토로가 대부분을 이루었다”고 했다. 단편소설은 소소하고 범상한 일상 속 일화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 많았다. 백가흠 작가는 “2000년대 한동안 천착했던 판타지, 역사물들은 거의 자취를 감추었고 청년실업, 노동 문제를 다룬 리얼리즘도 관심이 줄어든 듯하다. 서사 본연, 개인 이야기에 집중된 경향”이라고 말했다. 편혜영 작가는 “신체적·정신적 통증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았다. 질병이나 사고로 인한 가족 해체를 다룬 작품이 다수 눈에 띄었으며 청년실업의 문제보다 중년 이후의 실직이나 구직활동을 다룬 작품도 많았다”고 했다. 김미월 작가는 “강렬하거나 특이하고 엽기적인 내용을 다룬 작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소설가나 소설가 지망생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작품이 유난히 많은 것도 하나의 경향이 되었다 할 만하다”고 했다. 이기호 소설가는 본심 진출작 선정 기준에 대해 “자기 목소리를 내는 문장과 참신한 내면, 구성의 완성도를 고려했다”고 밝혔다. 중편소설은 하나의 경향을 꼽기 어려울 만큼 소재, 배경, 주제가 다양했다. 박성원 작가는 “일본, 이스라엘, 시리아, 남아메리카 북부 히스파니올라 섬 등 이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 많았다”며 “‘혼자서 여행 오셨나 봐요’처럼 우연을 가장한 서사가 대부분이라 왜 이국을 배경으로 했는지 모를 소설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정이현 작가는 “사회적 이슈가 된 사건을 직접적으로 그려낸 작품은 예년에 비해 많이 눈에 띄지 않았다.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 대부분이 미학적 거리를 확보하지 못하고 개인적 회고담 수준에 머물러 있어 아쉬웠다”고 했다. 김숨 작가는 “순수한 시대, 순수한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도 여럿 있었지만 신파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며 “주제가 분명하고 인물을 선명하게 형상화시킨 완성도가 높은 작품 위주로 본심에 올렸다”고 밝혔다. 시나리오를 심사한 정윤수 감독 역시 “거대한 사회구조를 다룬 작품이 줄고 개인적인 일상을 드라마로 엮은 이야기가 많았다”고 했다. 조철현 대표는 “죽음을 맞이한 주인공이 세상이 자기를 기억해주길 바라는 시나리오처럼 노인을 주인공으로 하거나 죽음을 소재로 쓴 시나리오가 늘었다”고 했다. 이날 예심 결과 중편소설 6편, 단편소설 8편, 시 8편, 시나리오 12편이 17∼19일 열리는 본심에 올랐다. 시조 희곡 동화 문학평론 영화평론 부문은 예심 없이 본심을 진행한다. 당선자는 이달 말 개별 통보하며 당선작은 내년 1월 1일자 신년호에 게재한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참척(慘慽)의 슬픔, 그 안에 갇혀 발버둥치는 젊은 부부를 보고 있자니 애가 탄다. 혀는 마르고 손은 땀으로 축축해진다, 그래도 읽었다. 2014년 3월 오전 기차 탈선 사고가 있었다. 사망자와 부상자가 속출한 대형 사고였다. 기차에 불이 붙었고 열차 안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연기가 가득했다. 기차에 탄 조안은 생후 8개월인 아들과 함께 시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조안은 화마로부터 아들을 구하기 위해 창밖으로 아들을 던졌다. 결과는 기차간에서 다섯 명이 죽었지만 서른 두 명은 살아남았다. 아들은 죽고 조안은 살았다. “세상에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훨씬 나은 일도 있는 것이다.” 조안은 특정 부분만 기억하지 못하는 심인성 기억상실을 앓는다. 조안의 남편 희중은 기차표를 끊어 아내와 아들만 먼저 보냈다. 그도 곧 따라갈 작정이었다. 아들이 죽자 희중은 아이의 신발을 놓고 “아이가 돌아와 생애 첫 신발을 신고, 그 다음엔 한 치수 더 큰 신발을 신고”, “눈앞에서 마구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이는 듯”해 그저 술만 찾는다. 아내에겐 살아 돌아와 “정말로 고맙다”면서 죽은 아기에겐 “정말로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섬뜩한 속내도 드러낸다. “나라면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라고요! 나라면 혼자서만 죽지도 않고, 혼자서만 살아남지도 않았을 거라고요!” 참척의 슬픔, 아픔, 고통을 다룬 소설은 충분했다. 그럼에도 이번 소설은 ‘특별하다’고 말하고 싶다. 소설은 23년 전 희중의 과거까지 끄집어낸다. 어린 희중이 친구들 관심을 끌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 때문에 10대 소녀 살인사건 용의선상에 오른 그의 아버지는 자살한다. 그의 아버지는 진짜 범인이었을까, 아니면 아들 거짓말의 희생양일까. 아버지가 죗값을 치렀다면 희중의 아들은 죽지 않았을까. 세상이 다시 완전해지려면 누군가 꼭 죗값을 치러야만 하는 것일까. “고작 팔 개월을 살았던 아들이 팔십 년이 지난다고 해도 돌아오지 못할 방”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계속 들려오고, 헛것이 “산 사람은 죽은 사람이랑 같이 살아갈 수 없다는 거지. 그러니까 산 사람이 살려면 죽은 사람을 한 번 더 죽여야 한다는 거지”라며 찌르듯 말하며 부부를 참혹의 극한으로 몰고 간다. 우리는 부부의 숨통 트기를 도울 수 있을까. “수많은 사람이 죽었어도 기차는 여전히 달리고 있고, 사람들은 여전히 그 기차를 탔다. 대체 세상에, 달라지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소설 속 문장이 상기하듯 소설을 세월호와 따로 생각하긴 어렵다. 소설은 2012년 10월부터 6개월간 문학동네 인터넷 카페에 연재됐다. 즉, 세월호 사고에 앞서 썼고, 마지막 교정을 보던 시점에 세월호가 터졌다. 김인숙 작가는 책 출간 시점을 출판사에 맡겼고 ‘작가의 말’도 넣지 않았다. 김 작가는 “현실에서 소설과 비슷한 일이 일어나니 어찌해야 할 바를 몰랐다. 세월호를 상기할 수 있는 소설일 수도 있는데 슬픔에 대한 위로가 될지 두렵고 송구하다”며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로 상처 받은 사람이 굉장히 많은데, 그런 상처를 치유하고 싶다”고 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이달에 만나는 시의 12월 추천작은 박장호 시인(39)의 ‘태양은 뜨자마자 물든 노을이었다’다. 2003년 ‘시와세계’를 통해 등단한 시인의 두 번째 시집 ‘포유류의 사랑’(문예중앙)에 실렸다. 추천엔 김요일 신용목 이건청 이원 장석주 시인이 참여했다. 박 시인은 이번 시집을 “몸이라는 이름의 입체적인 구멍을 사랑이라는 이름의 에너지가 지나간 흔적”이라고 소개했다. 시인은 첫사랑의 기억을 떠올리며 추천작을 썼다. “노을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내를 통해 알게 됐어요. 노을을 넋 놓고 바라보는 모습을 아내가 보고 알려준 것이지요. 자기부정에 익숙한 제게도 어딘가 감상할 수 있는 노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고 입술이 제 마음이 물든 노을이란 정서적 발견을 했어요. 고백하지 못한 마음이 물든 노을. 다가서고 싶은데 다가서지 못하고 멀리서 바라만 보았던 첫사랑의 기억이 이 시를 쓰게 한 것 같아요.” 장석주 시인은 “‘나’는 자연이 깃들어 만든 몸, 자연 그 자체이다. ‘몸’이 나무로 직립해 있으니 ‘누가 내게 이토록 기다란 다리를 주었을까요’라는 시구는 자연스럽다. 박장호는 사물들을 고집스럽게 시적 주체가 가진 몸의 표상으로 되돌림으로써 그만의 물활론적 상상세계를 건설한다”고 추천했다. 김요일 시인은 “참으로 새롭고, 황홀하다. 이제야 ‘재떨이가 있는 금연구역’ 같은 곳에서 세상과 등 돌리고 앉아 언어와 사랑에 빠진 등 넓은 시인의, 혼자 소유하던 어깨 너머의 아름다운 세상을 독자들도 제대로 바라보고 느낄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신용목 시인은 박지혜 시집 ‘햇빛’(문학과지성사)을 추천하면서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말 속으로 들어와 슬픔을 말할 때, 행간에는 모든 의미의 옷을 벗은 채 하얀 속살로 떨고 있는 한 줄기 빛이 앉아 있다. 그 빛이 모든 마음이 머물다 가는 자리라는 것을 이 시집은 추위에 파랗게 얼어가는 입술로 속삭인다”고 했다. 이건청 시인은 정진혁 시집 ‘자주 먼 것이 내게 올 때가 있다’(현대시학)를 꼽았다. “일상 속에서 가져온 시적 제재들이 선연한 이미저리(Imagery)들로 호명되고 있으며, 시어들이 적당한 무게의 정서와 의미들을 실어 나르며 단아한 구조를 이뤄내고 있다. 단아한 구조는 오늘의 한국 시가 지향해야 할 중요한 요소의 하나라고 믿는다.” 이원 시인은 김희업 시집 ‘비의 목록’(창비)을 골랐다. 그는 “김희업은 칼의 저밈과 비의 스밈을 엮어 ‘엄격한 위로’라는 이종교배 미학을 구축해냈다. ‘깊이가 깊을수록 칼은 본분을 다한 것’이라는 몸의 운명을 ‘바퀴도 없이 미끄러지는’ 노동의 삶 속으로 확장시켰다”고 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영국 출신 세계적 베스트셀러 여성 작가 2명의 신작 장편소설이 나란히 출간됐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조앤 K 롤링이 필명 로버트 갤브레이스로 내놓은 두 번째 추리소설 ‘실크웜’(문학수첩)과 올해 ‘미 비포 유’로 국내 독자를 사로잡은 조조 모이스의 신작 ‘원 플러스 원’(살림)이다. 해당 출판사도 초판을 각각 2만 부, 1만5000부를 찍으며 흥행에 기대를 걸고 있다. 보통 3000부 안팎을 찍는 것에 비하면 5∼7배 수준이다. 실크웜은 사설탐정 ‘코모란 스트라이크’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다. 문학수첩 윤소라 팀장은 “6만 부가량 팔린 전작 ‘쿠쿠스 콜링’이 탐정 스트라이크의 캐릭터를 설명하느라 사건 전개가 조금 느렸다면 이번 책은 빠르게 질주한다”며 “늘 전작보다 ‘재밌고 잘 빠진’ 작품을 내놓는 작가를 고려할 때 판매량도 배 이상 더 나갈 것”이라며 자신했다. 스트라이크는 ‘거시기 털 같은’ 머리카락에 블랙 유머를 구사하는 전직 헌병대 특별조사팀 출신이다. 30대 중반의 거구로 전쟁에서 오른쪽 다리를 잃어 의족을 차고 있다. 유명 로커의 사생아이기도 하다. 추리소설의 흥행은 주인공의 매력이 결정짓는데 스트라이크의 개성도 어디서든 빠지진 않는다. 줄거리는 이렇다. ‘봄빅스 모리’란 소설을 완성한 소설가 오언 퀸은 편집자와 크게 다툰 후 사라졌다가 시신으로 발견된다. ‘봄빅스 모리’에는 잔인하고 변태적인 이야기가 가득한데, 숨진 퀸 주변의 출판계, 문학계 인사들의 스캔들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소설이 출간되면 인생을 망칠 사람들이 모두 스트라이크의 용의선상에 오른다. 묘사가 서늘할 정도로 생생하다. 퀸의 시신이 발견된 장면에선 잔혹한 고어 영화를 상영하듯 묘사하는데, 순화된 표현만 옮겨보자면 ‘사람의 옷을 입혀 놓은 도살된 돼지’ 같다. 독자가 스트라이크보다 먼저 범인을 잡고 싶다면 용의자들과의 첫 만남 때 그의 특징을 잘 기억해두자. 난도가 아주 높진 않다. 저널리스트 출신인 조조 모이스는 10번째 소설 ‘미 비포 유’에서 사랑 이야기 속에 삶과 죽음이란 묵직한 주제를 녹여내는 비상한 재주를 선보였다. ‘미 비포 유’는 올 1월 국내 출간돼 입소문이 나면서 4월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교보문고 순위에선 13주간 1위를 기록했다. 신작 ‘원 플러스 원’은 가족애를 다룬다. 가사도우미, 바텐더, 청소부 등 닥치는 대로 일해야 하는 싱글맘 제스는 별거 중인 남편이 전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니키와 10대 시절 낳은 딸인 수학 천재 탠지를 키운다. 늘 “다 잘될 거야”를 입에 올리지만 현실은 벅차다. 탠지의 수학 재능을 알아본 명문학교 세인트앤에서 입학을 제안하지만 비싼 학비를 감당하기 어렵다. 제스 가족은 탠지를 스코틀랜드에서 열리는 수학 올림피아드에 참가시켜 우승상금 5000파운드로 학비를 해결하기로 한다. 고물 승용차를 타고 영국을 가로지르는 여정을 시작하는데 기업 내부정보를 누설했다가 교도소에 갈 위기에 처한 남자 에드가 합류하면서 로드무비가 펼쳐진다. 가족이란 주제를 오글거림 없이 감동의 경지로 끌어올린 작가의 내공이 상당하다. 살림출판사 이성훈 본부장은 “스토리와 소재는 익숙하지만 캐릭터나 문체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인다”며 “‘미 비포 유’ 이전에 쓴 책도 출간해 달라는 독자의 요구가 많아 적극 검토 중이다”고 밝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종간’은 발행인의 유지였고, 애매한 ‘휴간’보다는 ‘종간’을 통해 하나의 매듭을 짓고, ….” 최근 발간된 시 전문 계간지 ‘시인수첩’ 2014 겨울호에 실릴 뻔한 종간사의 한 대목이다. ‘시인수첩’을 발간하는 출판사 문학수첩은 시인수첩 발행인이던 고 김종철 전 한국시인협회장의 유언에 따라 겨울호를 마지막으로 시인수첩을 종간하려 했다. 암으로 투병하던 김 시인이 6월 21일 부인인 강봉자 문학수첩 대표이사, 김병호 시인수첩 편집장에게 “시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잡지, 최고가 아니라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시 전문지로 사랑을 받고 싶었는데 이젠 더이상 그 꿈을 이어가기 어렵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 부인과 편집장이 몇 번이나 되물었지만 종간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후 김 시인은 7월 5일 별세했다. 문학수첩은 그러나 마지막 호로 삼으려던 겨울호 출간을 앞두고 종간사를 권두언으로 고쳐 실었다. 권두언에는 “‘시인수첩’을 시작했던 고인이 스스로 그 매듭을 짓고자 했던 것이 고인의 바람이었으나, 유족들은 시의 행간을 읽어내듯 고인의 유지가 지닌 더 깊은 뜻을 이어가기로 하였다”고 썼다. 강 대표이사는 “고인은 남은 사람에게 부담이 될까 봐 종간을 선언했지만 속마음은 그게 아니었을 것”이라며 “광고가 없는 시인수첩 발간이 경제적으로 부담되긴 하지만 종간을 아쉬워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계속 발행하는 것이 도리”라고 말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영국 출신 세계적 베스트셀러 여성 작가 2명의 신작 장편소설이 나란히 출간됐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조앤 K 롤링이 필명 로버트 갤브레이스로 내놓은 두 번째 추리소설 '실크웜'(문학수첩)과 올해 '미 비포 유'(살림출판사)로 국내 독자를 사로잡은 조조 모예스의 신작 '원 플러스 원'이다. 해당 출판사도 초판을 각 2만 부, 1만5000부를 찍으며 흥행에 기대를 걸고 있다. 보통 3000부 안팎을 찍는 것에 비하면 5~7배 수준이다. 실크웜은 사설탐정 '코모란 스트라이크'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다. 문학수첩 윤소라 팀장은 "6만 부 가량 팔린 전작 '쿠쿠스 콜링'이 탐정 스트라이크의 캐릭터를 설명하느라 사건 전개에 굼떴다면 이번 책은 빠르게 질주한다"며 "전작보다 '재밌고 잘 빠진' 작품을 내놓은 작가를 고려할 때 판매량도 배 이상 더 나갈 것"이라며 자신했다. 스트라이크는 '거시기 털 같은' 머리카락에 블랙 유머를 구사하는 전직 헌병대 특별조사팀 출신이다. 30대 중반의 거구로 전쟁에서 오른쪽 다리를 잃어 의족을 차고 있다. 유명 록스타의 사생아기도 하다. 추리소설의 흥행은 주인공의 매력이 결정짓는데 코모란의 개성도 어디서든 빠지진 않는다. 게다가 섹시한 여비서 로빈 엘라코트와 미묘한 연애 기류도 재밌다. 줄거리는 이렇다. '봄빅스 모리'란 소설을 완성한 소설가 오언 퀸은 편집자와 크게 다툰 후 사라졌다가 시체로 발견된다. '봄빅스 모리'에는 잔인하고 변태적인 이야기가 가득한데, 숨진 퀸 주변의 출판계, 문학계 인사들의 스캔들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소설이 출간되면 인생을 망칠 사람들이 모두 스트라이크의 용의선상에 오른다. 묘사가 서늘할 정도로 생생하다. 퀸의 시체가 발견된 장면에선 잔혹한 고어 영화를 상영하듯 묘사하는데, 순화된 표현만 옮겨보자면 '사람의 옷을 입혀놓은 도살된 돼지' 같다. 독자가 코모란보다 먼저 범인을 잡고 싶다면 용의자들과의 첫 만남 때 그의 특징을 잘 기억해두자. 난이도가 아주 어렵진 않다. 저널리스트 출신인 조조 모예스는 10번 째 소설 '미 비포 유'에서 사랑 이야기 속에 삶과 죽음이란 묵직한 주제를 녹여내는 비상한 재주를 선보였다. '미 비포 유'는 올 1월 국내 출간돼 입소문이 나면서 4월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교보문고 순위에선 13주간 1위를 기록했다. 신작 '원 플러스 원'은 가족애를 다룬다. 가사도우미, 바텐더, 청소부 등 닥치는 대로 일해야 하는 싱글맘 제스는 별거 중인 남편이 전 부인과 사이에서 낳은 아들 니키와 10대 시절 낳은 딸인 수학천재 탠지를 키운다. 늘 "다 잘 될거야"를 입에 올리지만 현실은 벅차다. 탠지의 수학 재능을 알아본 명문학교 세인트 앤에서 입학을 제안하지만 비싼 학비를 감당하기 어렵다. 제스 가족은 탠지를 스코틀랜드에서 열리는 수학 올림피아드에 참가시켜 우승상금 5000파운드로 학비를 해결하기로 한다. 고물 승용차를 타고 영국을 가로지르는 여정을 떠나는데 기업 내부정보를 누설했다가 교도소에 갈 위기에 처한 남자 에드가 합류하면서 로드무비가 펼쳐진다. 가족이란 주제를 오글거림 없이 감동의 경지로 끌어올린 작가의 내공이 상당하다. 살림출판사 이성훈 본부장은 "스토리와 소재는 익숙하지만 캐릭터나 문체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인다"며 "'미 비포 유' 이전에 쓴 책도 출간해달라는 독자의 요구가 많아 적극 검토 중이다"고 밝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마치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기분이다. 순식간에 인생 여정이 180도 바뀌어 버린 날. 무언가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지 않으면 세상 모든 화살이 나에게만 돌아오는 것 같았다.’ 21일 서울 구로구 서울남부교도소에서 만난 수용자 한모 씨(47)가 노트에 쓴 일기다. 그는 “한때 마음을 잘못 먹어서 여기에 왔다. 줄곧 남 탓만 했는데 종교, 인문학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박찬국 서울대 교수의 ‘초인수업’을 읽고 있었다. “지금까지 안락함만이 행복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짧게 살아도 자신의 생명력이 고양되는 삶을 살아야 그것이 행복임을 배우고 있어요. 중학교 때 추운 크리스마스 새벽 신문을 돌리던 날이 비록 힘들었지만 행복했음을 이제 알았습니다.” 오카자키 다케시는 저서 ‘장서의 괴로움’에서 옥중에서 역작을 써내거나 전 생애를 결정짓는 독서체험을 한 경우가 적지 않다며 이상적인 서재로 교도소를 소개한다. 실제로 교도소 밖 사람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손에서 놓은 지 오래지만 교도소 안 독서 열기는 뜨거웠다. 교도소 수용자는 교도소 비치도서를 읽거나 영치금으로 책을 직접 구입해서 읽는다. 서울남부교도소의 수용자는 1000여 명. 월평균 비치도서 대출이 300여 권이고 자비부담 도서 구입이 1100여 권으로 수용자 한 명당 1.4권의 책을 읽는 셈이다. 성인 월평균 독서량 0.8권에 비해 두 배에 가까운 수치다. 독서와 멀게 만드는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쓸 수 없고 TV도 정해진 시간 외엔 볼 수 없어 자연스럽게 책이나 신문 잡지를 읽는다. 서울남부교소도의 올해 수용자 자비부담 구입 도서 1위는 남성 잡지 ‘맥심’이다. 그 외 상위권도 만화나 무협소설이 차지했다. 이를 제외한 일반도서 중 ‘교도소 베스트셀러’에는 혜민 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을 비롯해 강신주의 ‘강신주의 감정수업’, 최윤식의 ‘2030 대담한 미래’ 등이 올랐다. 상위 20권까지의 책을 보면 종교 인문학 문학 실용서 등이 고른 분포를 보였다. 최찬희 사회복귀과장은 “잘못된 길로 한참 간 수용자들이 교도소에 와서야 비로소 멈추고 자기 수양의 시간을 갖다 보니 책 ‘멈추면…’의 제목에 많이 공감한 것 같다”며 “수용자의 연령, 학력, 관심사가 워낙 다양해 교도소 베스트셀러도 다양한 서적이 고르게 포함됐다”고 말했다. 의정부교도소에 수감 중인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옥중에서 집필한 책 ‘새로운 모색, 사회적 기업’을 출간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교도소에 입감된 고위 관료나 경제인들은 다른 수용자보다 더 독서에 열을 올린다. 교도소에 복역 중인 한 사회지도층 인사의 독서 목록을 확인해 보니 그는 올해만 40여 권의 책을 구입해서 읽었다. 구입 도서도 인문학 책인 ‘강의: 나의 동양 고전 독법’부터 베스트셀러 ‘살인자의 기억법’까지 다양했다. 서울남부교도소는 독서가 수용자 감화에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고 독서와 관련한 편의를 최대한 제공하고 있다. 일주일에 2, 3권의 책을 읽는 수용자 신모 씨(57)는 “인생에 걸림돌 같던 교도소가 독서를 통해서 내게 디딤돌이 됐다”며 “방황하는 인생의 여정을 독서와 인문학이 밝혀주고 있다”고 말했다.▼“인문학과 만나니 새로운 내가 보여”▼서울대 교수들이 여는 교도소 인문학 강의2013년 7월부터 10주 간격 진행… 책 읽은 뒤엔 독후감 써 낭독“톨스토이는 평생 자아를 찾으려 했어요. 인간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인간의 참모습을 찾을 때 행복합니다. 한 번 왔다가 가는 인생에서 나를 알아가는 것은 중요한 가치입니다. 고민해보세요. 가슴속에서 따뜻한 것이 차오를 겁니다.” 21일 서울남부교도소 집중인성교육실. 박종소 서울대 노어노문학과 교수가 러시아 문호 톨스토이를 주제로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었다. 강의가 오전 10시부터 2시간 가까이 진행됐지만 푸른 수의를 입고 하얀 운동화를 신은 수용자 32명은 박 교수의 한마디라도 놓칠까 봐 열심히 메모하며 집중했다. 강의에 참석한 수용자들은 30∼60대로 사기 절도 폭력 성폭력 살인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왔다. 수용자를 위한 특별교육 프로그램 ‘마아트’(Maat·도(道)를 뜻하는 고대 이집트어)는 지난해 7월부터 서울대와 법무부의 업무협약으로 시작됐다. 기수별로 서울대 교수 10명이 무보수로 인문학 강의를 10주간 진행한다. 현재는 4기. 수용자 최모 씨(61)는 “교도소에서 인문학과 독서를 만나 새로운 나를 찾고 있다”며 “복역 기간 4년이 짧은 것 같다”고 했다. 수용자는 정해진 책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한다. 우수한 독후감은 직접 수용자가 강의 시간에 낭독한다. 헨리 나우웬의 ‘탕자의 귀향’을 읽은 한 수용자는 “교수님들이 이끄는 길을 따라가 보니 내게 마음의 장애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지금의 자리에서 인간의 바른 문양을 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고 썼다. 프로그램 주임교수인 배철현 서울대 교수는 “사람마다 이기심이란 감옥에 살고 있는데, 교도소는 인간을 집중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며 “어쩌면 수용자들은 자신을 깊숙이 묵상하고 변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사람들”이라고 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1억 원 모금 프로젝트 ‘기적의 책 캠페인’이 6월 시작된 뒤 이달까지 총 4419만3000원을 모금했다. ‘책 한 권, 벽돌 한 장, 책으로 이루는 꿈’이라는 모토로 푸르메재단(이사장 김성수)과 교보문고(대표 허정도), 동아일보가 펼치고 있는 이 캠페인은 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지원한다. 매달 선정한 ‘기적의 책’ 20종을 교보문고 오프라인 14개 점포에서 구매할 때마다 권당 1000원이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짓고 있는 푸르메어린이재활병원에 자동으로 기부된다. 이번 달엔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 ‘감옥에서 만난 자유, 셰익스피어’ 등 20권이 기적의 책으로 참여한다. 캠페인에 뜻을 같이하는 유명 인사들은 ‘책 읽는 미러클 맨’으로 참가해 매달 마지막주 토요일 교보문고에서 책을 낭독하고 독자들과 뜻을 나눈다. 지금까지 가수 션,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 문화평론가 김갑수, 시인 정호승, 산악인 엄홍길 등이 참가했다. 푸르메재단 백경학 상임이사는 “글과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과 출판사에서 소중한 기금을 지원해줘 더 의미 있는 캠페인”이라며 “1억 원이 채워질 때까지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한다”고 밝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오늘도 많이 감사합니다사랑의 잔소리를 사랑으로 듣지 못한나의 잘못을 용서하세요각자의 마음 아름답게 정리하여환희 웃는 얼굴로다시 만납시다, 우리-환자의 편지 중“새 책이 나오니까 나도 한 송이 동백꽃이 된 것 같아요. 친한 신부님에게 문자를 보낼 때 ‘동백섬에 사는 동백 아가씨 기억나요?’라며 농담하곤 했는데. 이젠 ‘국민 동백꽃 이모’로 불렸으면 좋겠어요. 하하하.” 24일 동백꽃이 활짝 핀 부산 수영구 수영로 성베네딕도 수녀원에서 전화를 받은 이해인 수녀(69)의 목소리는 그의 시 ‘동백꽃에게’의 표현대로 ‘해를 닮은 웃음소리’와 같았다. 그는 올해 칠순과 수녀원 입회 50주년을 맞아 신작 산문과 시 100편, 일기 100편을 묶은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마음산책)을 최근 출간했다. 1976년 이 수녀의 첫 시집 제목은 ‘민들레의 영토’였다. 그는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의 서문에서 “봄의 민들레처럼 작고 여린 모습의 그 수련생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인내의 소금을 먹고 하늘을 바라보는 한 송이 동백꽃이 된 것 같습니다. (중략) 필 때도 질 때도 아름답고 고운 동백꽃처럼 한결같은 삶을 살고 싶습니다”라고 썼다. “소녀도 할머니가 되면 화려한 원색에 눈이 가잖아요. 어떤 꽃은 미운 모양으로 지는데 동백꽃은 필 때나 질 때나 똑같아요. 한 생을 이별할 때도 밝고 환하게 명랑하게 씩씩하게 보이고 싶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책 제목에 담았어요.” 책에는 시 ‘유언장을 쓰며’도 수록됐다. “내가 친필로/꾹꾹 눌러쓴 하얀 유언장이/나를 쳐다보며/지금은 그냥 그렇게/살아 있으라고 하네/정리를 다 마쳤으니/이젠 좀 편히 웃어도 된다면서!” 암 투병 중이던 그가 지난해 12월 유언장 공증을 받으러 변호사 사무실을 찾은 날 쓴 시다. “갑자기 쓰러질 수 있다 생각하니 마음이 좀 급했어요. 제가 문인(文人)으로 이름을 조금 알렸지만 유언장에는 ‘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녀회 절차에 따라 간소하게 장례를 치러 달라, 저작권 수익도 수녀회에 양도해 달라’는 내용을 담았어요.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 홀가분했어요.” 혹시 마지막 책이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수녀는 웃으며 답했다. “늘 이번이 마지막일까, 유작이 될까 생각해요. 근데 우리 집안이 워낙 장수해서 빨리 죽진 않을 거예요. 명랑한 게 덕목이니까요. 하하하.” 밝은 목소리와 달리 책엔 투병의 고통도 담겨 있다. ‘오늘은 내내 슬픈 생각만 하며/눈을 감았다 떴다……/웃지도 못하고 하루가 가네’(아픈 날의 고백). 그런데 수녀는 힘든 하루를 보내면서도 남을 먼저 챙긴다. 병원 검사 결과가 좋게 나온 날(2012년 7월 24일 일기)에는 ‘같은 의사에게 같은 수술을 한 탤런트 김자옥 님은 폐로 암이 전이되어 수술하고 다시 항암치료 중이라니 마음이 안 좋다’며 좀처럼 기뻐하지 않는다. 이 수녀는 “김자옥 씨가 의기소침하던 내게 방사선 치료 할 때 창세기의 ‘빛이 있어라’를 묵상하며 견디면 된다고 오히려 위로했다”며 “부고를 접하고 마음이 아파 김 씨 사진을 인터넷으로 찾아서 보면서 기도했다”고 말했다. 책은 올해 10월 30일자 일기까지 담았다. 이날 일기에 세월호 침몰 당시 가장 먼저 119에 신고한 최덕하 군의 어머니와 주고받은 문자 내용을 최 군 어머니의 허락을 얻어 책에 공개했다. “시대의 비극이 있을 때마다 추모하는 마음을 담은 글을 썼는데, 세월호 때는 글이 도저히 써지지 않았어요. 시대적 비극이 우리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고 같이 기도했으면 합니다. 따라 죽고 싶은 고통 속에서 신앙적 의미를 찾아낸 덕하 어머니께 저부터 많이 배웠고요.”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소지품을 좀 볼 수 있을까요.” 시인 겸 평론가인 권혁웅 한양여대 문예창작과 교수(47)를 만나 당돌하지만 소지품을 보여 달라고 부탁했다. ‘백과사전파 문인’으로 불리는 그는 최근 사물을 소재로 한 감성사전 ‘생각하는 연필’(난다)을 출간했다. 2008년 인간의 몸을 다룬 ‘두근두근’(개정판 ‘미주알고주알’), 지난해 동물에 대해 엮은 ‘꼬리치는 당신’(마음산책)에 이어 세 번째 감성사전이다. 김소연 시인은 지난해 추천사에서 그를 ‘집대성의 대가’라고 불렀는데, 소지품 검사를 통해 그 비결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는 “보여줄 게 없다”고 싱긋 웃더니 답했다. “감성사전을 쓰면서 트위터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트위터는 (트윗 한 번에) 140자밖에 안 되니까 중언부언하지 않고 요점이나 핵심을 찌르는 글쓰기를 할 수 있었죠. 사람들 반응도 즉시 확인할 수 있었고요.” 권 교수는 감성사전을 “뜻풀이뿐 아니라 다른 사물과 인간의 삶을 연결해주는 특별한 사전”이라고 정의했다. 책들에는 메모, 산문시, 에세이, 자연과학, 인문학까지 거의 모든 것을 관통하는 내용이 그림과 함께 담겨 있다. 그의 트위터에서 반향을 일으킨 내용을 소개한다. ‘∞=8: 무한대 기호∞는 누운 8자 모양이기도 하다. 당신이 여전히 팔짱을 끼고 있다면, 이런 말도 하는 것이겠지. 우리의 멀어짐은 어쩌면 팔자라고.’(69쪽) ‘스케치의 힘: 왜 화가가 대상을 스케치할 때 여러 번 선들을 그리잖아요? 대상을 보여주는 명료한 선 하나를 잡아내기 위해서죠. 당신이 그 사람 앞에서 여러 번 말을 더듬을 때에도 그래요. 당신의 마음을 전하는 가장 분명한 고백을 하기 위해서인 거죠.’(192쪽) 정보도 소홀하지 않다. ‘꼬리치는 당신’에서 코끼리에 대해 이렇게 썼다. ‘코끼리는 일생 동안 이를 여섯 번 간다. 마지막으로 난 이가 닳아 없어지면 굶어 죽는다. 보통 50년 넘게 살지만 임플란트 코끼리였다면 수명이 훨씬 길었겠지.’ 감성사전에 담은 정보들은 그가 가진 1만354권의 장서에서 왔다. 그는 창문을 빼고 벽을 온통 책으로 가득 채운 집에서 산다. 대학생 시절 장서가 500권이 넘을 때부터 데이터베이스 작업으로 정리해 책 권수도 정확하다. 그는 “감성사전을 쓰면서 인터넷 정보도 살펴봤는데 틀린 게 많다. 주요 정보는 책에서 얻는다”고 했다. 감성사전을 읽으면 모방 욕구가 샘솟는다. 기자도 합체 로봇을 보면서 “합체 로봇은 신혼생활이다”로 시작하는 메모를 쓰기도 했다. 그는 서문에서 “한 사물을 들어올리면 세상 전체가 함께 딸려온다는 것을 행복하게 체험하는 경험이었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고 썼다. “한 사물을 던져져 있는 사물로만 여기지 말고 사물과의 관계를 통해서 사람과의 관계, 세상을 보는 관점도 파악했으면 합니다. 짧은 글들이니까 아무 데서나 읽을 수 있어요. 화장실에서 배변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재밌는 책도 될 수 있고요.”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소설의 무대인 래트브리지(Ratbridge)는 일찍 치즈 산업이 발달했지만 새로운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매연과 쓰레기 문제로 물과 환경이 오염된 곳이다. 이곳에 사는 인간들은 ‘육각형 엉덩이’ 같은 괴상한 유행도 프랑스 파리 것이라고 하면 맹목적으로 좇는 엉터리들이다. 경찰은 더하다. 그들은 팔각형 바퀴가 달린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데, 엉덩이가 아파서 지르는 소리 때문에 도둑들은 미리 도망친다. 또 치즈 껍질을 끓여 추출한 기름을 덜 숙성된 치즈에 넣어 불량치즈를 만든 뒤 파는 악덕 인간도 있다. 하긴 이곳에선 쥐가 인간보다 지능이 높다. 인간과 달리 동물과 괴물들은 개성 만점, 매력 만점이다. 원제도 ‘Here be monsters!’다. 지하 파이프 수리를 담당하는 변종 괴물 ‘박스트롤’은 수줍음이 많아서 상자를 옷처럼 입고 산다. 수십 m 지하의 넓은 동굴에는 양배추를 머리에 쓰고 다니는 ‘캐비지헤드’가 모여 살면서 채소를 키운다. 하수구에는 커다랗고 착한 눈을 가진 덩치 큰 민물 바다소가 산다. 이 정도는 평범한 수준의 괴물이나 동물이다. 조금 더 센 생명체를 소개하면, 목초지와 숲에는 두 발 달린 ‘야생 치즈’가 풀을 뜯어 먹고 산다. 정작 주인공 소개가 늦었다. 소년 아서는 윌리엄 할아버지와 함께 지하 세계에 산다. 아서는 지상으로 나올 수 없는 할아버지를 대신해 날개 달린 기계를 몸에 매달고 음식을 구하러 다닌다. 그러던 중 ‘야생 치즈’를 불법으로 사냥하는 악당 스내처 일당과 마주친다. 용감한 아서가 이들과 맞서 싸우는 활약과 모험이 큰 줄거리다. 스내처 일당은 훔친 ‘크기를 바꾸는 기계’를 이용해 박스트롤과 캐비지헤드의 크기를 줄이는 대신 자신의 말을 듣는 다른 동물의 크기를 키워 래트브리지를 장악하려고 한다. 아서가 크기가 작아진 박스트롤과 캐비지헤드를 다시 원상태로 되돌리기 위해 빵빵하게 육각형으로 부풀린 인간들의 엉덩이 크기를 줄이는 등 책에는 시종 기발하고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번뜩인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아서의 모험과 함께 저자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가 또 다른 볼거리다. 패션 디자인과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한 저자는 래트브리지 지상과 지하의 지도, 등장인물과 상황을 묘사한 흑백 드로잉 500여 점을 직접 그려 수록했다. 상상력이 부족한 어른들도 래트브리지 세계에 빠지도록 돕는다. 어린 자녀나 조카용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어른도 읽길 권한다. 래트브리지 인간들은 지나가는 괴물들을 도통 쳐다보지 않는다. 하찮게 여기기 때문이다. 반면 아서와 괴물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은 ‘함께’다. “함께 작업하는 게 우리 특기”라며 우정과 헌신으로 스내처 악당에 맞선다. 어려움에 빠진 친구를 돕고, 다른 사람과 연대하는 기본적 덕목을 어른들은 잊고 사는 게 아닌지. 스톱 애니메이션 제작사 라이카 스튜디오가 동명의 영화로 제작해 62개국에서 개봉했다. 국내에서도 6일부터 상영하고 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새 도서정가제 시행을 하루 앞두고 20일 온라인 서점이 최대 90%까지 할인 행사를 진행하면서 소비자들의 주문이 폭주해 홈페이지 서버가 다운되는 일이 발생했다. 새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 할인율이 최대 15%로 제한되기 때문에 그전에 싼값에 책을 사려는 독자가 한꺼번에 몰렸기 때문이다. ‘마지막 파격 세일! 인기도서 6000종 최대 90% 할인’을 내건 ‘예스24’는 오전 11시 반부터 밤까지 ‘주문 폭주로 서비스가 원활하지 않다’는 안내 공지와 함께 장시간 여러 차례 사이트 접속이 중단됐다. 예스24에 따르면 이날 판매량은 전날보다 2배 이상 늘었다. 예스24는 이미 13∼19일 일주일간 판매량이 평소보다 2.2배 늘어난 상태였다. 소비자들은 40% 할인 중인 윤태호 작가의 만화 ‘미생’ 전집과 90% 할인하는 ‘칼 비테의 자녀교육 불변의 법칙’ 등을 주로 구입했다. 인터넷 교보문고 역시 최성수기인 3월 평균보다도 2배 이상 많은 소비자가 몰렸다. 점심시간부터 서버 다운이 간헐적으로 일어나며 장애를 겪었다. ‘1만 종 반값 행사’를 벌인 알라딘도 이날 오후부터 홈페이지 접속이 원활하지 않았다. 알라딘 관계자는 “할인폭이 큰 구간(舊刊) 베스트셀러 위주로 책이 판매됐다”고 밝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월북 시인인 백석(白石·1912∼1996)의 시집 ‘사슴’ 초판본(사진)이 경매에서 7000만 원에 낙찰됐다. 19일 서울 종로구 삼일대로 경매회사 코베이에서 열린 경매에서 ‘사슴’은 5500만 원으로 출발해 7000만 원에 한 전문 수집가에게 낙찰됐다. 코베이 관계자는 “2011년 윤동주 시인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본이 1700만 원에 낙찰된 적이 있다. ‘사슴’ 낙찰가는 근대 문학 자료 중 최고가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1936년 1월 20일 선광인쇄주식회사에서 100부 한정판으로 찍은 이 시집의 초판본 가격은 당시 2원(圓)이었다. 총 4부로 구성된 시집에는 ‘가즈랑 집’ ‘머루밤’ ‘절간의 소 이야기’ 등 33편의 시가 실려 있다. 저작 겸 발행자로 백석이 기재돼 있어 자비로 시집을 펴낸 것으로 보인다. 낙찰된 시집 안에는 ‘이원조씨 백석’이라고 적혀 있어 백석이 이육사 시인의 동생인 문학평론가 이원조(1909∼1955)에게 직접 준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에서 함께 유학한 두 사람은 세계 문학에 대해 자주 의견을 나눴던 것으로 알려졌다. 발간 부수가 워낙 적어 윤동주 시인도 시집을 구하지 못해 도서관에서 필사를 했다고 한다. ‘사슴’ 초판본은 국립중앙도서관, 고려대도서관 등에 7권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경매에 나온 것은 처음이다. 2005년 계간지 ‘시인세계’ 여름호에 따르면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거나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시집” 1위에 오르기도 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2014년 서울에는 비가 끊이지 않고 내린다. 이상기후 속에 초대형 금융 건물이 갑자기 살아 움직여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린다. ‘한국 히어로’ 화이트 폭스는 어벤져스 영웅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헐크,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등 어벤져스 영웅들이 한국에 속속 도착하는데…. 세계적인 콘텐츠 기업 마블이 지난달부터 마블코믹스의 첫 웹툰 버전 ‘어벤져스: 일렉트릭 레인’을 다음 만화속세상을 통해 총 20회 분량으로 연재하고 있다. ‘트레이스’의 고영훈 작가가 작품을 맡았다. 영화 ‘어벤져스’는 2012년 개봉해 국내에서 700만 관객을 동원하고 속편도 일부 장면을 한국에서 찍었다. 17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사무실에서 C B 세블스키 마블 부사장(크리에이터&콘텐츠 개발부문 총괄)과 고 작가를 만났다. ―출판만화 중심인 어벤져스를 웹툰으로 옮긴 이유가 궁금하다. ▽세=우리의 ‘빅 파더’ 스탠 리(마블 원작자로 슈퍼 히어로의 아버지로 불림)는 늘 ‘창문 밖의 세상을 응시하라’고 말한다. 웹툰을 즐기는 한국인들이 익숙한 형식으로 어벤져스 영웅들을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 ―수많은 웹툰 작가 중에서 고 작가를 선택한 이유는…. ▽세=여러 작가의 작품을 봤지만 고 작가만이 히어로의 액션을 카메라 앵글처럼 유려하게 연출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마블은 독자에게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같은 체험을 주길 원한다. ▽고=어렸을 때부터 동경했던 마블을 작업한다니 기뻤지만 부담이 더 컸다. 원작이 세계적 인기작인 데다 한국에도 골수팬이 워낙 많아서다. 웹툰으로 옮길 때는 마블을 처음 접하는 독자도 즐길 수 있게 그들의 눈높이에서 그리려고 노력했다. ―다음 만화속세상에서 스크롤로 내려보는 웹툰이 마블코믹스에 어울리느냐는 반응도 많다. ▽세=마블코믹스 하면 좌우로 넘겨보는 ‘와이드 스크린’ 방식을 떠올리지만 위아래로 보는 ‘롱스크린’도 액션을 스펙터클하게 만들 수 있다. 고 작가의 작품이 모바일로 볼 때 최적화돼 있어 만족한다. ―한국 히어로 화이트 폭스의 앞으로 활약이 궁금하다. ▽세=마블 세계관을 충분히 이해하고 창조됐다. 마블 히어로는 비극적인 과거를 갖고 있는데, 구미호 콘셉트인 화이트 폭스의 뒷이야기도 공개될 것이다. 웹툰 연재가 끝나면 화이트 폭스는 한국을 떠나 마블 히어로의 일원으로 마블 시리즈에서 활약할 것이다. ▽고=한국 귀신 구미호를 슈퍼히어로로 재해석했다. 한국 히어로지만 머리색이 회색이어서 다른 문화권에서도 낯설지 않을 것이다. ―10대 무슬림 소녀 히어로 ‘카말라 칸’의 등장이 화제가 됐다. 다양한 히어로가 출연하는데 마블의 창의성은 어디서 오나. ▽세=모든 것은 에디터 3500명의 머릿속에서 나온다. 새로운 것을 창조하라고 요구하지 않고 그저 자유로운 아이디어를 받아들일 뿐이다. 우리는 직원을 뽑을 때 종교 인종 성별 나이 학력을 보지 않는다. 얼굴을 보지 않고 인터넷과 전화 통화로만 뽑다 보니 마흔 살 신입 직원도 있고 고등학생인 경우도 있다. ―슈퍼 히어로의 트렌드는 어떻게 변할까. ▽세=한동안 어둡고 고뇌하는 히어로가 인기였지만 이젠 어두운 현실을 잊게 해줄 스파이더맨, 데어데블 같은 유머러스한 캐릭터가 인기 있다. 또 여성 팬이 늘면서 강하고 지적이고 리더십 있는 여성 히어로도 늘 것이다. ―한국은 정부까지 나서 웹툰을 지원한다. 성공 가능성을 얼마나 보나. ▽세=한국 웹툰은 소재가 너무 한국적인 것이 흠이다. 나루토, 블리치 같은 일본 만화는 경계 없이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콘텐츠라 성공할 수 있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한국작가회의가 창립 40주년을 맞아 ‘한국작가회의 40년사: 1974-2014’와 ‘증언: 1970년대 문학운동’을 출간했다. 작가회의는 1974년 11월 18일 표현의 자유와 문학의 현실 참여를 표방하며 설립된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후신이다. 17일 서울 마포구 토정로 작가회의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시영 작가회의 이사장은 “역사 속에서 돌출된 거리의 조직으로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며 “앞으로 이 땅에 민주주의가 글자 그대로 실현돼 (작가회의가) 현실에서 역사로 옮겨지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한국작가회의 40년사’는 작가회의 역사를 1970년대부터 10년 단위로 사실 위주의 편년체로 정리한 정사(正史)다. 문학평론가 오창은 이성혁 소종민 홍기돈이 시대별로 집필했다. 야사(野史)격인 ‘증언’은 1974년 창립 초창기에 활동한 원로·중견작가인 고은 구중서 박태순 백낙청 신경림 양성우 염무웅 이호철 황석영 작가의 증언이 실렸다. 책에는 외환위기 직전 서울대 명예교수인 백낙청 전 작가회의 회장이 고교 동창인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에게 후원금 5억 원을 받은 이야기 등 흥미로운 뒷이야기들이 담겼다. 작가회의는 22일 40주년 기념식 ‘문학과, 희망의 백년대계’를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 갖는다. 또 ‘젊은 작가 포럼’ 작가들이 “미래에 대한 전망이 없는 시대에 문학은 가장 늦게 전진하지만 모든 사유와 감각의 웅덩이를 채우며 가장 아름답고 부드럽게 나아간다”는 내용의 ‘젊은 문학 선언’도 발표한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찌는 듯한 더위, 비자까지 받고 가서/면(面) 이발관에서 머리도 한번 깎고/한 달을 살다 왔다/죽는 줄 알았다.’(‘눌려서 떡이 된 오리온 초코파이 정(情)’에서) 1998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명국 시인(42)이 16년 만에 첫 시집 ‘베트남 처갓집 방문’(실천문학사)을 냈다. 시집에는 한국 농촌 사람들의 애환과 베트남 아내와 결혼 후 방문한 베트남 농촌의 모습이 담겨 있다. 전북 고창 토박이인 시인은 농사를 짓고 시를 쓰면서 어머니, 베트남 아내, 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 “베트남 처가에 갈 때 꼭 시집을 들고 가고 싶습니다. 한국 사위가 시인인 줄 알고 계시는데, 비록 돈을 조금밖에 벌지 못하지만 사위를 자랑스러워 하셨으면 좋겠어요.” 김 시인은 26세에 등단했지만 “글이 생존에 보탬이 안 됐다. 실력도 노력도 부족했다”며 오랫동안 시를 쓰지 않았다. 2007년 같은 마을에 살던 베트남 이주 여성의 소개로 지금 아내와 결혼하면서 다시 쓰기 시작했다. 2009년 베트남 처가를 처음 방문할 땐 두꺼운 대학 노트 한 권을 들고 갔다. “국제결혼을 했다는 사실이 조금 부끄럽기도 했어요. 하지만 현재 내 모습이니까 드러내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때부터 시가 열심히 써졌어요. 베트남에 머문 한 달 동안 노트 가득 시를 썼습니다.” 김 시인은 처음 베트남 처가 식구를 만났을 땐 “무슨 돈 이야기만 나오면 서로 시무룩해져서/어떤 때는 일 년 치 생활비를 미리 갖다 주러 온 기분밖에 들지 않는 곳이다”(‘베트남 처갓집 방문’)라며 어색해했다. 밥을 먹을 때도 “먹는 것도 다르고 식성도 달라 상 두 개씩 놓고 따로 먹는다”(‘밥상’)고 거리감을 드러냈다. 그 후 2년마다 처가를 방문하면서 시인은 조상에게 제사를 모시고, 오리를 잡아 사위를 대접하고, 집 안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외손자 사진을 걸어두는 모습을 보며 사람 사는 곳 같았던 과거 한국 농촌을 추억한다. “벌어먹고 살기가 힘든 게 여기나 저기나 매한가지/그렇게 서로들 서로를 동경하며 살아가고 있었을 뿐”(‘집 걱정’)이라며 처가 식구를 품는다. 시인은 묵은 김치로 능숙하게 찌개를 끓여내고 아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아내에 대한 시도 썼다. 시에 대한 아내의 반응을 물었더니 “아기 엄마는 시 쓰지 말고 돈이나 벌자는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며 “그래도 먼 나라로 시집와서 잘 적응해주니 그저 고마울 뿐”이라고 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유명 인물의 일대기를 글과 그림으로 전달하는 그래픽 평전이 인기다. 그래픽 노블 형식을 차용한 그래픽 평전은 성인을 위한 문자 위주의 두꺼운 전기와 어린이용 만화 위인전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전기로 분량은 100쪽가량이다. 출판사 푸른지식은 올해 그래픽 평전 시리즈를 내놓았다. 출판 불황 속에도 4월 출간된 ‘찰스 다윈 그래픽 평전’(유진 번 글·사이먼 거 그림)은 초판 2000부가 모두 팔려 추가 제작에 들어갔다. 108쪽 분량으로 1만2000원이다. 앞서 출간된 문자 위주의 ‘다윈평전’이 1295쪽 분량에 5만 원, ‘찰스 다윈 평전’이 1, 2권 합쳐 2000쪽이 넘는 데다 각 권 3만5000원인 데 비하면 두께와 가격 부담이 훨씬 가벼워졌다. 푸른지식 편집부는 “기존 평전처럼 찰스 다윈의 삶을 일대기 순으로 풀기보다 가상채널 ‘유인원-TV’의 원숭이 제작진이 등장해 야생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설정으로 찰스 다윈의 업적과 삶을 풀어냈다”며 “2000년대 이후 그래픽 노블이 대중화하면서 독자들이 이런 형식을 통해 지식을 얻는 데 익숙해졌다”고 말했다. 그래픽 노블은 만화와 소설의 중간 형태로 소설처럼 길고 구성이 복잡한 만화책을 뜻한다. 그래픽 평전은 특히 유명 예술가를 다룬 책이 많다. 출판사 어젠다는 ‘디스 이즈’ 시리즈를 출간하고 있다. 영국 미술사가 캐서린 잉그램과 일러스트레이터 앤드루 레이가 함께 만든 이 시리즈는 예술가의 일대기와 작품 사진으로 이뤄진 일반 평전과 달리 군데군데 삽입된 강렬한 일러스트가 눈길을 끈다. 표지도 인물 사진 대신 일러스트를 사용했다. ‘디스 이즈 워홀’ 편을 보면 20세기 미국 미술가 앤디 워홀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을 일러스트로 묘사했다. ‘침대 주변 곳곳에 붙여둔 만화책 속 영웅들과 할리우드 스타들이 노니는 일종의 상상의 세계에서 살았다’는 서술과 함께 방안 모습을 묘사한 일러스트를 담는 식이다. 어젠다의 김지훈 대표는 “제본, 디자인, 일러스트가 특이하다보니 기본 서지 정보만 제공하는 인터넷 서점보다 직접 만져보고 고르는 오프라인 서점의 판매 비중이 높다”고 했다. 출판사 미메시스도 올해부터 ‘아티스트 그래픽 노블’ 시리즈로 ‘뭉크’(스테펜 크베넬란 지음)와 ‘반 고흐’(바바라 스톡 지음)를 출간했다. 예술적 성취가 뛰어나지만 어둡고 우울한 삶을 산 예술가를 만화적 상상력을 가미해 친숙하게 그려내는 것이 특징이다. 미메시스 홍유진 팀장은 “예술가의 화풍 변화에 따라 그래픽 노블도 화풍이나 색감에 변화를 줘 직관적으로 작품 세계를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그래픽 평전은 외국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는 수준에 아직 머물러 있다. 푸른지식 윤미정 대표는 “백남준 이중섭 이상 같은 한국 예술가의 일대기를 다룬 그래픽 평전을 쓰고 그릴 국내 작가를 찾고 있다”며 “요즘 독자들은 문자만으로 돼 있는 책을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그래픽 평전의 인기는 갈수록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강박적으로 새 신발만 신는 남자 K가 있다. 그는 ‘인생은 대용품들의 축제야’, ‘나는 나라는 사람의 가장 오래된 대용품이지’란 두 개의 문장을 품고 산다. 그의 비밀은 그가 열세 살 때 신은 운동화 속에 숨어 있다. K에겐 ‘머리 좋고 착한’ 친구가 있었다. 친구는 키가 작았지만 발 크기가 비슷해 서로 신발을 바꿔 신기도 했다. 둘은 서울로 정밀 지능검사를 받으러 가는 버스 안에서도 신발을 바꿔 신었다. K는 친구에게 고백한다. 출생 신고가 늦어 열세 살이 아니라 열네 살이고 그래서 지능지수가 높게 나왔다고. 진짜 머리 좋고 착한 아이는 바로 너라고. 하지만 고백 직후 버스가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떨어져 친구는 죽고 K만 구조된다. K는 착하고 머리 좋은 아이들은 어른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에 가위눌려 살며 새 신발만 신게 된다. 이 책에 수록된 은희경 작가의 단편 ‘대용품’의 내용이다. 이 프로젝트 소설집은 문학과지성사와 패션지 아레나옴므+가 손잡고 소설과 패션의 컬래버레이션으로 진행했다. 유명 소설가 7명이 참가해 4가지 주제 ‘들다’ ‘쓰다’ ‘신다’ ‘입다’ 중 하나를 선택해 단편소설 한 편을 쓰고 잡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소설가들은 백일장 경연하듯 패션 소품을 정해 각자의 색깔로 단편을 썼다. 김중혁(‘종이 위의 욕조’)은 잃어버린 가죽가방, 정이현(‘상자의 미래’)은 레이밴 보잉 선글라스, 정용준(‘미드윈터’)은 털모자, 편혜영(‘앨리스 옆집에 살았다’)은 깔창이 남긴 족적, 백가흠(‘네 친구’)은 하이힐과 단화, 손보미(‘언포게터블’)는 슈트를 골랐다. 오랜 여운은 ‘기억’에서 나온다. ‘상자의 미래’에선 첫 남자의 기억 때문에 레이밴 보잉 선글라스만 보면 가슴 설레는 쉰세 살 여성이, ‘네 친구’에선 낯선 여자의 구두를 놓고 ‘망각 속에 가라앉은 시간’까지 되돌리며 기억을 떠올리려는 여성이 등장한다. 당신의 기억 속엔 어떤 소품이 있나. 이 책을 보면서 패션을 소비하고 싶다는 욕구보다 같은 주제로 한 번 쓰고 싶다는 욕구가 드는 걸 보면 나에겐 역시 패션보단 문학이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책은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남녀 성(性)의 특징, 진화심리학, 연애의 단계를 조명한다. 인간이 동물에게 욕정을 느끼지 않는 이유를 재밌게 ‘썰’로 풀면서 자연스럽게 진화심리학 이론의 기초를 녹여 넣었다. 남녀의 차이도 딱딱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마사지걸과 마사지맨이 손님을 대할 때 느끼는 성적 흥분의 차이를 통해 적나라하지만 쉽게 그 차이를 전달한다. 아이돌 1세대 H.O.T.와 핑클부터 현역 아이돌 인피니트와 걸스데이까지 노래 가사 속에서 요즘 남녀의 심리도 풀어낸다. 저자는 숙명여대 의사소통센터 김성한 교수(50)다. 고려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콘라트 로렌츠의 ‘공격성에 대하여’를 읽으며 진화심리학에 눈을 떴다. 박사논문 ‘도덕의 기원에 대한 진화론적 설명과 다윈주의 윤리설’을 쓰고 도널드 시먼스의 ‘섹슈얼리티의 진화’를 번역하며 전문성을 다졌다. 12일 만난 이 꽃중년 교수는 유쾌한 말투로 묻는 질문에 척척, 하지만 반전 있는 답을 들려줬다. ―제자들 반응이 어떤가. “학생들과 상담을 해보면 별의별 질문을 다 한다. 남녀 관계의 솔직한 경험까지 고민상담을 해온다. 학생들에게 미리 원고를 보여줬는데 보통 연애지침서는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만 하는데, 책은 진화심리학을 바탕으로 조언해주니까 설득력이 있다고 했다. 다만 인터넷에서처럼 툭툭치는 문체로 쓰지 않았다며 아쉬워했다. 아, 먹물로 살다 보니까 그런 글쓰기까진 쉽지 않았다.” ―모태솔로가 사회적 문제다. 이 책만 읽으면 애인이 생길 수 있나. “여성이 남성에게 원하는 것은 신체적 건장함, 능력, 헌신 등 세 가지 요소다. 앞의 둘은 후천적으로 바꾸기 어려우니 헌신이 마지막으로 남은 것인데 사실 여성들은 헌신에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이 책은 연애를 돕는다기보다 왜 연애를 못하는지를 알게 해준다.” ―여대의 중년 남자 교수가 연애지침서를 썼는데 가족 반응은 어땠나. “결혼을 아직 못해서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지키는 사랑을 하고 싶었는데 연애에 한 번 실패했다. 헤어지면 그 사람을 잊어야 하는데, 동물이 아니라 인간이기에 사랑은 영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새 나이가 들었고, 별다른 생각이 없게 됐다.” ―총각임을 만천하에 공개하면서 책을 낸 진짜 이유가 무엇인가. “진짜 이유는 농활(농촌돕기) 때문이다. 책을 통해 조금이라도 유명해지면 그것을 이용해서 학생들을 더 농활운동으로 끌어오고 싶다. 농활의 장점은 무척 많다.” 그가 들려준 농활의 장점은 무척 다양했는데 그가 지난해 출간한 ‘어느 철학자의 농활과 나누는 삶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