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형

김재형 기자

동아일보 산업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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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7~2025-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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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로운 길 즐긴 개척자들 “우린 메달 받을 자격있다”

    지난 8년 세월이 몇 초 동안 스쳐가는 듯했다. 뜨거운 땡볕이 내리쬐는 아스팔트 도로에서 바퀴 달린 썰매를 타며 메달의 꿈을 키워온 시절. “안 될 거다”라는 주변의 차가운 시선에 오기로 맞섰던 나날들. 보란 듯이 주먹 쥔 두 손을 하늘을 향해 뻗었다. 25일 낮 12시 10분경 강원 평창 슬라이딩센터. 막 결승선을 통과한 파일럿 원윤종(33)은 세상을 향해 당차게 선언했다. “우린 충분히 메달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평창 올림픽 폐막을 앞두고 이틀 연속 한국 겨울올림픽의 새 역사가 쓰였다. 원윤종이 이끄는 한국 봅슬레이 4인승 대표팀(서영우 전정린 김동현)은 이날 아시아 첫 메달을 은빛으로 장식했다. 전날 열린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에서는 이상호(23)가 은메달을 따내며 한국 설상에 새 이정표를 세웠다. 봅슬레이 4인승에서 한국 대표팀 ‘원팀’(파일럿 이름)은 최종 합계 3분16초38을 기록해 독일의 니코 발터 조와 ‘100분의 1초’까지 똑같아 공동 은메달을 수상했다. 독일의 프란체스코 프리드리히 조는 이보다 0.53초 앞서 정상에 올랐다. 체육교사를 꿈꾸다 2010년 봅슬레이에 입문한 원윤종은 당시 처음 나간 아메리칸컵에서 썰매가 뒤집어졌을 때 타국 선수들로부터 “왜 여기 와서 남의 주행을 방해하느냐”는 멸시를 받기도 했다. 원윤종의 단짝 서영우(27)는 봅슬레이 입문 초창기에 하루 8끼를 먹으며 무모할 정도로 살을 찌웠다. 2인승 출전을 포기하고 4인승에 승부를 걸었던 김동현(31)과 전정린(29)도 감개무량해했다. 하루 앞서 이상호는 한국이 겨울올림픽에 참가한 지 58년 만에 최초로 설상 종목 메달을 일궈냈다. 그 시작은 고향인 강원 정선의 고랭지 배추밭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당시 이상호는 아버지 이차원 씨의 손을 잡고 배추밭을 개조해 만든 눈썰매장을 찾아 스노보드를 배웠다. 그래서 생긴 별명이 ‘배추보이’다. 배추밭에서 꿈을 키운 이상호는 시상식을 마친 뒤 올림픽 기간 식사를 책임진 주방장이 직접 배추로 만들어준 꽃다발을 받고는 활짝 웃었다. 평창에서 새롭게 태어난 영웅들은 메달 색깔에 연연하지 않았다. 과거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은 은메달을 목에 걸면 마치 죄인이라도 된 듯 고개를 숙였다. “응원해준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게 단골 레퍼토리였다. 하지만 평창에서는 달랐다. 후회 없이 도전한 만큼 시상대에 오른 것 자체를 무한한 영광으로 여겼다. 국가관이 약해진 게 아니라 선수들도 무엇보다 행복의 가치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됐다. 1등만 기억하는 비정한 세상에 대한 일반 젊은이들의 반감은 운동선수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작용했다. 한국은 평창 올림픽에서 역대 최다인 17개의 메달을 따냈다. 과거 스피드스케이팅과 쇼트트랙 메달 쏠림 현상에서 벗어나 썰매와 설상 종목, 컬링에서도 값진 메달을 추가했다. 최준서 한양대 교수(스포츠산업 전공)는 “겨울스포츠는 선진국의 전유물로 불린다. 이번에 한국 스포츠의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는 게 큰 수확이다. 선배 세대와 다른 젊은 선수들이 그 주역”이라고 평가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한 적극적인 소통과 자신감 표출도 과거와는 달라진 점이다. 이상호는 경기 전 두 엄지에 네일아트로 태극기와 스노보더를 그린 사진 하나를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더 이상 한국이 설상의 변방국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이 손톱을 보여주며 ‘나 대한민국 선수야’라는 것을 자랑하려 했습니다.” ‘금메달의 신화’를 쓴 윤성빈(24·강원도청)도 “스켈레톤을 시작했을 때부터 유럽 톱 랭커를 못 넘을 산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말해 왔다. 신세대 선수들은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맞아 예전과 비교할 수 없는 체계적인 지원 속에 결실을 볼 수 있었다. 이번 올림픽에서 봅슬레이스켈레톤 국가대표팀엔 스태프를 포함해 19명의 코치진이 포진했다. 4년 전 소치 올림픽엔 이용 감독을 포함해 두 명의 코치가 전부였다. 스노보드 알파인 대표팀도 외국인 기술전담, 왁스장비 전문 코치는 물론이고 전담 체력 트레이너, 마사지사까지 5명의 코칭스태프가 가세했다. 원윤종은 경기를 뛴 건 4명이었지만 메달을 따낸 건 감독과 코치 등 대표팀 전원이었다고 강조한다. “개개인의 기량은 유럽, 북미 선수들을 앞서지 못합니다. 하지만 네 명이 뭉치는 힘은 우리가 강해요. 선수 네 명뿐 아니라 코칭스태프, 연맹, 후원단체 등 체계적으로 우리를 지원해준 많은 분이 함께 만든 은메달이라고 생각합니다.”평창=김재형 monami@donga.com·임보미 기자}

    • 2018-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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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성빈 “노메달 두쿠르스, 여전히 내 우상”

    “이 순간을 즐겨라!” 윤성빈에게 스켈레톤 황제 자리를 내어준 마르틴스 두쿠르스(34·라트비아)는 배포가 큰 축하의 인사를 보냈다. 속은 쓰렸을지 모르지만 전임 ‘황제’는 위엄을 잃지 않았다. 21일 강원 평창 알펜시아 메인프레스센터(MPC)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윤성빈이 전한 두쿠르스의 이번 대회 마지막 모습이다. 스켈레톤 8년 천하의 주역인 두쿠르스는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4위에 그치며 무관의 굴욕을 당했다. 이미 직전 월드컵 시즌에도 세계랭킹이 4위로 처지며 윤성빈이 최정상에 오르는 걸 지켜봐야 했다. 여러모로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지만 윤성빈의 금메달을 진심으로 축하해 준 것이다. 윤성빈은 그런 두쿠르스를 우상으로 꼽는다. 처음 금메달을 확정하고 주변의 축하인사를 받을 땐 기쁨이 컸다. 하지만 대기실에서 그런 자신을 씁쓸하게 지켜보고 있을 두쿠르스를 생각하니 왠지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윤성빈은 “그가 메달 하나쯤은 가져갔으면 했다”며 “4차 레이스가 끝나고 대기실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의 두쿠르스를 봤을 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여전히 그는 내 우상이다”라며 두쿠르스를 치켜세웠다. 윤성빈은 올림픽 이후 목표에 대해 내년 2월 캐나다 휘슬러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 우승’을 내걸었다. 이번 올림픽으로 명실상부하게 스켈레톤 황제 자리에 오른 그가 처음으로 치르게 될 타이틀 방어전인 셈이다. 윤성빈은 “아직 이 종목에서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딴 선수가 없다. 세계선수권에 집중해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며 “다음 세계선수권은 내년 2월 좋은 기억이 있는 대회 장소에서 열려 자신 있다”고 말했다. 세계선수권이 열리는 휘슬러에서 윤성빈은 직전 시즌을 포함해 총 2번 월드컵 대회에서 정상을 밟았다. 윤성빈은 10년 뒤를 내다봤다. 윤성빈은 “지금까지 몸 관리를 잘해왔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며 “스켈레톤은 선수가 자기 관리만 잘하면 오래할 수 있는 종목이다. 그래서 10년은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평창=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 2018-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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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인승 메달 가능하다” 한국 봅슬레이, 메달 향한 질주 시작

    한국 봅슬레이 2인승의 원윤종(34·파일럿)과 서영우(27·푸시맨)가 다시 메달을 향한 질주를 시작했다.봅슬레이 4인승 공식 연습주행 첫날인 21일 오전 강원 평창 슬라이딩센터. 기존 2인승 멤버에 김동현(31·브레이크맨)과 전정린(29·푸시맨)이 합류한 한국 봅슬레이 4인승 대표팀은 가볍게 몸을 풀었다. 19일 2인승 경기에서 올림픽 한국 최고 성적(6위)을 내고도 고개 숙였던 원윤종 서영우은 마음을 다잡은 듯 다부진 표정이었다.이날 한국 대표팀은 1·2차 연습 주행에서 각각 14위(49초78)와 4위(49초53)를 기록했다. 특히 제대로 속도를 높인 두 번째 주행에서 원윤종은 2인승 공동 금메달의 주역인 프란체스코 프리드리히(독일)와 저스틴 크립스(캐나다·이상 파일럿)를 크게 앞질렀다.그동안 한국 봅슬레이 4인승은 한때 월드컵 세계 1위에 올랐던 2인승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금메달 전망과 관심의 주 대상도 2인승이었다. 하지만 국가대표팀 내부에선 4인승 메달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용 봅슬레이스켈레톤 총감독도 올림픽 직전 “4인승에서도 동메달 이상의 성적을 기대한다”고 말했다.한국은 4명이 함께 호흡을 맞춘 기간이 어느 팀보다 더 길다는 강점이 있다. 보통 각국의 4인승 대표팀은 2인승 멤버에 나머지 두 명을 추가한다. 그 두 명을 누구로 하고 또 역할 분담을 어떻게 할지를 놓고 수많은 조합을 짜고 시간을 들인다. 그러다보니 대회를 몇 주 앞두고 멤버 확정이 되기도 한다. 한국은 이미 1월부터 이 4명이 평창에서 호흡을 맞춰왔다.파일럿이었던 김동현은 이번 대회 4인승 경기를 위해 월드컵 시즌 중이었던 지난해 12월에 조기 귀국했다. 포인트를 쌓아 2인승에 나가는 대신 브레이크맨으로 4인승 멤버에 합류해 메달을 노려보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다. 전정린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각오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이상균 대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 이사는 “파일럿 원윤종이 부담을 내려놓고 좋은 주행만 하면 4명의 호흡이 좋기 때문에 충분히 메달을 노려볼 수 있다”며 “관건은 1·2차 주행 그중에서도 1차 출발 기록이다. 한국 4인승의 메달 여부가 결정 나는 승부처이다”고 내다봤다. 이날 첫 공식 주행 연습을 마친 봅슬레이 4인승 대표팀은 23일까지 4번의 연습 주행을 더 이어간 뒤 25일(1·2차) 26일(3·4차) 본 레이스에 나선다.평창=김재형기자 monami@donga.com}

    • 2018-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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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키점프 맏형 “베이징 하늘도 날겠다”

    “7번째 올림픽(2022년 베이징)에 나간다면 메달까지 노려보겠습니다.” 한국 스키점프 1세대 최흥철(37·사진)의 다음 이정표는 4년 뒤 베이징 올림픽이었다. 19일 강원 평창 스키점프센터에서 극적으로 6번째 올림픽 단체전 비행을 마친 그는 자신의 스키점프 여정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날 비행으로 최흥철의 각오는 더 뜨거워졌다. 그는 국제대회 점수가 낮아 이번 대회 개인전에 나서지 못했다. 18일 국제스키연맹(FIS)은 그의 단체전 출전을 특별히 허용했다. 이에 최흥철 최서우(36) 김현기(35) 등 스키점프 삼총사가 재결합했고, 여기에 노르딕복합 박제언(25)까지 가세해 4인 단체팀이 급조됐다. 최흥철은 “극적으로 6번째 올림픽 비행을 하고 나니 다음 올림픽에 나서고픈 의욕이 샘솟는다”고 말했다. 베이징 겨울올림픽이 열리는 4년 뒤면 최흥철은 마흔을 넘긴다. 하지만 스키점프에 인생을 다 건 최흥철은 나이를 전혀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평창 올림픽에 출전해 역대 겨울올림픽 최다 출전 기록(8회)을 세운 일본 스키점프 가사이 노리아키(46)보다 열 살 가까이 어리다고 말한다. 그런 가사이도 “2026년 올림픽까지 뛰고 싶다”고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최흥철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메달이 계속 미련으로 남는다. 아직 최고의 순간은 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나이에 연연하지 않고 가장 높고 멀리 뛸 그날을 위해 계속 뛰겠다”고 말했다. 최서우, 김현기도 맏형 최흥철과 다르지 않다. 김현기는 “이젠 베이징 올림픽을 위해 뛸 것이다”며 “그 이후 혹시 현역에서 은퇴하더라도 내 인생의 전부였던 스키점프를 위해 일하겠다”고 말했다. 다만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삼총사의 단체전 비행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이번처럼 한국 스키점프 선수만으로는 단체전 최소 인원(4명)을 맞추기 어려울 수 있어서다. 다음 올림픽 때까지 이들과 함께할 후배 스키점퍼가 육성돼야 7번째 단체전 출전이 가능하다. 평창=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 2018-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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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영화처럼 날다… ‘국가대표’ 해피엔딩

    27년 전 좁디좁은 9인승 승합차에서 함께 ‘인간 새’의 꿈을 꾸던 스키점프 삼총사가 평창에서 다시 뭉쳤다. 영화 같은 ‘비상(飛上)’을 했다. 스키점프 단체전이 열린 19일 평창 알펜시아 스키점프센터. 한국의 최서우(36)와 김현기(35·이상 하이원)에 이어 올림픽 출전이 좌절됐던 최흥철(37)까지 나섰다. 예견되지 않은 등장이었다. 영화 ‘국가대표’의 실제 주인공인 이들의 결합은 극적이었다. 최흥철은 월드컵 랭킹 점수가 낮아 평창 무대에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전날 국제스키연맹(FIS)은 “최흥철의 단체전 출전만 허용해 달라”는 대한스키협회의 구제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동안 대한스키협회는 안방 흥행을 위해선 스키점프 1세대인 그의 출전이 필요하다며 FIS를 끊임없이 설득했다. FIS는 결국 대회 전날 출전국 전원의 동의를 얻어내 이를 허용했다. 4명이 필요한 단체전 인원을 맞추기 위해 노르딕복합(크로스컨트리+스키점프)의 박제언(25)까지 합류했다. 1998년 나가노 올림픽 단체전부터 시작된 최흥철과 최서우, 김현기 3인방의 6번째 올림픽(단체전) 비행은 이렇게 이뤄졌다. ‘국가대표’의 한 축 강칠구(34)는 2016년 은퇴 후 대표팀 코치로 이들과 함께하고 있다. 최흥철의 감회가 남달랐다. 그는 올림픽 출전권이 없는데도 지난해 말부터 사비를 들여가며 국제대회에 출전해 경기 감각을 익혔다. 최흥철은 “기회가 주어질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놓지 않았다. 평창에서 동생들과 함께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사실에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맏형의 복귀에 최서우 김현기 또한 가슴이 벅차올랐다. 김현기는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성적도 중요하지만 함께 뛸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20년 전 ‘한국 무대에서 꼭 함께 날자’라던 우리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다”라고 감격했다. 이들은 27년을 동고동락하며 한국 스키점프의 역사를 써온 ‘역전의 용사’다. 스키점프로 맺어진 이들의 인연은 1991년 시작됐다. 무주리조트가 인근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스키점프 꿈나무를 모집했다. 그때 합격한 선수들이 지금의 세 선수다. 강 코치는 1994년 팀에 합류했다. 1996년 첫 유럽 전지훈련 때 코치가 몰던 승합차를 타고 10대 초반의 삼총사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유럽 대륙을 돌아다녔다. 주니어 스키점프 대회를 휩쓸었다. 차에서 쪽잠을 자며 버텼지만 세계무대에서 비행할 수 있다는 사실 하나로 웃음 짓던 시절이다. 당시 삼총사는 주니어 무대를 휩쓸며 차 한가득 트로피를 챙겼다. 스키점프를 시작한 지 몇 해 지나지 않아 유럽 무대 데뷔전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은 기적에 가까웠다. 당시 이들의 여정을 이끌었던 이상오 국제스키점프 심판(52)은 “삼총사를 포함해 6, 7명의 선수가 저와 코치 한 명이 탄 승합차에 몸을 구겨 타고 유럽 곳곳을 돌며 꿈을 키웠다”며 “트로피가 쌓이면 그 추운 날씨에도 트렁크를 반쯤 열어 짐을 싣고 다녔다. 그래도 모두 가슴만은 뜨겁던 시절”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먹지 않아도 배부르던 때였다. 하지만 국가대표가 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비인기 종목의 현실에 눈을 뜨게 됐다. 훈련을 하기 위해 돈을 벌고 돈을 벌기 위해 대회에 나가 입상해야 했다. 1년에 한두 벌의 유니폼으로 대회를 치렀다. 찢어진 곳을 기우다가 도저히 안 되면, 그냥 옷이 찢어진 채로 비행했다. 김현기는 “선수들 모두 바느질 선수가 됐다. 조금 커도 바로 수선을 할 수 있을 정도다”라고 말했다. 2008년 한국에 스키점프 실업팀(하이원)이 만들어지기까지 상황은 바뀌지 않았다. 이런 환경에서도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뒀다. 특히 2003년 이탈리아 타르비시오 겨울유니버시아드에선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뤄냈다. 그해 아오모리 겨울아시아경기 단체전에서도 정상을 밟았다. 이런 기적 스토리는 2009년 영화 ‘국가대표’의 주제가 됐다. ‘국가대표’는 해피엔딩이었지만 현실은 영화와 달랐다. 영화 흥행 직후 일부 기업체와 체결한 후원 계약(스폰서)은 몇 년을 넘기질 못했다. 사람들의 관심은 급속도로 식어갔다. 기대감에 부풀던 삼총사의 가슴은 다시 멍들어갔다. 평창 올림픽은 그런 그들을 다시 비상케 한 원동력이었다. 안방에서 올림픽 비행을 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가슴 벅찼던 삼총사다. 그 결전의 무대를 1년 앞둔 지난해 이들은 큰 위기를 겪는다. 스키점프는 대한스키협회가 뽑은 메달 유망 종목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 결과 이들의 유럽 대회 출전비용은 턱없이 적게 배정됐다. 세대교체도 난항이다. 이 와중에 그동안 대표팀을 정신적으로 이끌어왔던 맏형 최흥철이 출전권을 따내지 못했다. 최서우만 자력으로 올림픽 출전권을 따냈고 개최국 출전권 한 장은 월드컵 포인트가 더 높았던 김현기의 몫이었다. 이런 시련에 대해 삼총사는 평창에서 단체전 비행을 하기 위한 서막이었다고 말한다. 이젠 웃을 수 있다. 비록 이날 단체전 1차 성적이 최하위(12개 팀 중)로 나와 결선(8팀 진출)에는 나서지 못했지만 그들은 또 한번 함께 꿈꾸었다. 최흥철은 경기 뒤 “세 명이서 단체전에 출전한 것은 2016년이 마지막이었다. 언제 다시 단체전에 뛸지 모르는 만큼 오늘 경기가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고 말했다.평창=김재형 monami@donga.com·김동욱 기자}

    • 2018-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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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넘볼 수 없는 황제의 질주… 압박감 없었나 묻자 “전혀!”

    《 스켈레톤 황제의 질주는 압도적이었다. 윤성빈(24·강원도청)은 16일 4차 주행까지 합계 3분20초55의 기록으로 한국 썰매 역사상 최초로 금메달을 따냈다. 이는 2위 니키타 트레구보프(3분22초18·러시아)보다 1초63이나 앞서는 기록이다. 100분의 1초 싸움을 벌이는 스켈레톤의 올림픽 역사상 1, 2위가 이 정도 격차를 보인 적이 없다. 타의 추종을 불허한 윤성빈 기록에 숨어있는 뒷이야기를 풀어봤다. 》 ① 4초59(출발 최고기록)를 이끈 65cm(허벅지 둘레) 2013년 대림건설이 평창 슬라이딩센터를 설계할 당시 한국 썰매 종목 코치진은 초반 구간을 직선이 아니고 굽어지게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건장한 체격의 유럽 선수들은 출발 기록이 월등해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안방의 이점을 살리려는 의도였다. 실제 경기장은 스타팅 하우스(1번 코스)를 나오자마자 2번부터 급경사로 휘어지는 코스로 완성됐다. 하지만 정작 평창 올림픽이 열린 5년 뒤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굵은 허벅지를 자랑하는 윤성빈이 코스를 가리지 않는 새로운 최강자로 떠올랐다. 평창 올림픽의 총 4차례 주행 모두에서 4초7 이하의 출발 기록을 보인 건 윤성빈과 마르틴스 두쿠르스(라트비아·4위)밖에 없었다. 특히 윤성빈은 2차 레이스에서 평창의 스타트 레코드인 4초59를 기록했다. 둘레가 65cm에 이르는 윤성빈의 허벅지 파워는 출발부터 스피드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② 하루 8끼로 만든 최적의 몸무게 87kg 2013년 초 미국과 캐나다를 돌며 윤성빈은 70kg대 초반의 몸무게를 80kg대 후반으로 늘렸다. 장비도 노하우도 부족한 시절이라 몸무게를 늘려 가속도를 높이는 것이 세계의 벽을 단기간에 뛰어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윤성빈은 한 달여 동안 하루 8끼를 먹으며 몸집을 불렸다. 한때는 90kg을 넘기도 했다. 이런 시행착오를 겪으며 이제는 자신의 기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87kg 안팎의 몸무게를 유지한다. 윤성빈은 급격하게 살찌우던 시기를 극기의 시간으로 기억한다. 타고난 재능을 실력으로 완성시키기 위해 윤성빈이 피땀 흘린 노력의 결과다. 외국 초행길을 헤쳐 가며 마트에서 음식을 사고 먹기를 반복했던 그 모습에서 수식어 ‘천재’ 속에 숨겨진 윤성빈의 악바리 근성을 엿볼 수 있다. ③올림픽 공식 훈련은 2회, 총 훈련횟수는 380번 2017∼2018시즌 월드컵에서 4차례 우승하며 사상 최초로 세계랭킹 1위 등극을 눈앞에 두고 있던 1월, 윤성빈은 7차 월드컵 레이스(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우승한 뒤 남은 8차 레이스를 포기하고 귀국했다. 남은 대회를 건너 뛴 대신 평창 트랙에서 막바지 실전 훈련에 몰입했다. 평창 슬라이딩센터의 개장 이후 그는 이곳에서 총 380회의 주행 연습을 했다. 머리가 아닌 몸이 먼저 반응하며 라인을 찾아갈 정도로 트랙을 익혔다. 윤성빈은 올림픽 경기 전 12일부터 14일까지 진행된 6번의 스켈레톤 공식 주행 연습에 두 차례만 참여했다. 13일 두 번의 연습 주행에서도 그는 베스트 주행 라인을 타지 않았다. 굳이 적수들에게 자신의 비기를 보일 필요는 없었다. 공식 연습 주행 2번과 총 트랙 훈련 380번은 올림픽 금메달을 향한 윤성빈의 강단과 치밀한 전략을 대변한다. ④ 징크스 ‘0(제로)’가 빚어낸 4연속 1위 윤성빈은 강철 멘털의 소유자로 유명하다. 힘든 내색도 없고, 경기 전에 긴장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선수들이라면 누구나 하나쯤 있다는 징크스도 없다. 레이스를 펼치기 전 하나라도 어긋나면 경기력이 떨어지곤 하는 특별한 ‘루틴(습관)’도 없다. 올림픽 경기 직후 “압박감은 없었느냐”는 외신의 쏟아지는 질문에 “전혀!”라고 딱 잘라 말했던 윤성빈이다. 윤성빈은 올림픽 기간 이틀간 총 4번의 주행을 펼치는 동안 1∼5위 선수 중 유일하게 1차보다 2차 주행 성적이 더 좋게 나온 선수였다. “주행할수록 편안해진다”는 윤성빈의 강심장을 엿볼 수 있다. 24세의 나이에도 마음만큼은 여물고 당찬 윤성빈이다. 윤성빈은 4번의 주행 모두 1위를 차지한 한결같은 최강자였다. ⑤ 24세 역대 최연소 올림픽 스켈레톤 챔피언, 10년 장기 집권 전망 윤성빈은 평창 올림픽까지 나온 역대 올림픽 스켈레톤 금메달리스트 7명 중 가장 나이가 어리다. 그가 앞으로 세계 스켈레톤계를 휘어잡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용 봅슬레이스켈레톤 총감독은 장담했다. “앞으로 적어도 10년 이상 윤성빈의 시대가 될 것이다.” 평창=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 2018-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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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들의 금빛질주 차마 쳐다보지 못한, 엄마

    어머니는 아들의 레이스를 차마 눈에 다 담지 못했다. 윤성빈(24·강원도청)이 금빛 질주를 펼친 16일. 설날 이른 아침 모두의 시선은 평창 올림픽 슬라이딩센터를 향했다. 하지만 어머니 조영희 씨(45)만은 경기장에서 눈을 돌렸다. 가슴으로 아들의 경기를 본 어머니의 모습을 따라가 봤다. 이미 하루 전 1, 2차 레이스를 마치고 이날 3차 레이스 첫 주자로 나선 윤성빈이 몸을 풀기 시작한 오전 9시 20분. 출발선에서 아들의 등장을 기다리던 조 씨는 왈칵 눈물을 쏟았다. 경기를 보지 못하고 길가로 나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너무 긴장돼서 못 보겠어요.” 슬라이딩센터는 16개 구간으로 이루어졌다. 출발부터 골인 지점까지 트랙 뒤편에 난 길을 따라 걸을 수 있다. 조 씨는 경기를 보지 않고 골인 지점을 향해 30여 분을 말없이 걸었다. 조 씨가 5번 구간을 지날 때였다. 멀리서 썰매가 얼음판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제야 고개를 돌렸지만 눈으로 잡을 수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본 건 채 1초도 되질 않았다. 우두커니 선 채 하염없이 아들의 뒷모습을 좇았다. 장내에 윤성빈이 3차 레이스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내 음성이 들렸다. 2012년 말 미국 파크시티 경기장에서 생애 첫 주행을 마친 윤성빈은 조 씨에게 전화했다. 겁먹은 목소리로 “엄마…”를 찾았다고 했다. 짧은 한마디에도 조 씨는 아들의 두려움을 가늠할 수 있었다. “한 번만 더 생각해 보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그로부터 6년이 지났다. 이제 아들은 얼음판을 당당히 질주한다. 그런데 정작 조 씨는 그런 아들을 지켜보는 걸 힘들어했다. 오전 11시 15분부터 마지막 4차 레이스가 시작됐다. 걸어서 골인 지점에 도착한 조 씨는 11시 10분경 자리에 앉았다. 손에 쥔 태극기를 흔들기도 했다. 주변은 “윤성빈”을 외치는 관중들의 응원 소리에 귀가 먹먹할 정도였다. 다른 선수들의 경기가 지나고 11시 52분경 드디어 윤성빈의 마지막 레이스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좌석 맞은편 대형 스크린에 4차 레이스를 준비하는 윤성빈의 모습이 잡혔다. 조 씨는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윤성빈!” 주먹 쥔 손을 뻗으며 힘껏 아들의 이름을 외쳤다. 하지만 또 눈물이 터져버렸다. 곧이어 곁에 있던 딸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아들의 출발 모습도, 경기 모습도 쳐다보지 못했다. 몇 분 뒤 옆에 있던 딸이 조 씨의 얼굴을 억지로 돌려 스크린을 보게 했다. “봐봐. 오빠가 1위잖아.” 조 씨의 얼굴엔 울음과 웃음이 교차했다. 조 씨는 길게 울먹였다. “지금 허리가 너무 아프다는데…. 꼭 한 번 안아주고 싶어요. 김치찌개를 좋아하는데 끓여주고 싶네요.” 조 씨는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한편 가슴 졸였던 순간을 끝내고 승리의 감격을 맛본 어머니는 한결 편안하게 지난날을 떠올렸다. 큰일을 해낸 아들과 함께 17일 강원 용평리조트에서 ‘P&G 생큐맘 인터뷰’에 나선 조 씨는 “성빈이의 태몽으로 큰 바위에 호랑이가 올라가는 꿈을 꿨다. 친할아버지는 돼지꿈을 꾸셨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조 씨는 “지난해 어버이날 사진촬영을 했는데 당시 성빈이가 ‘어무이, 이제부터 효도할게요’라는 애정 어린 편지를 남겼다”며 “정이 많은 아이”라고 자랑했다. 어머니에 따르면 윤성빈은 어릴 적부터 운동을 좋아하고 특별하게 투정을 부리지 않은 아이였다. 조 씨는 “운동을 잘한다고 칭찬해주면 성취감 때문에 더 열심히 노력했다”고 회고했다. 조 씨는 또 “고등학생이던 성빈이가 스켈레톤을 시작했을 때 주위에서 ‘과연 할 수 있을까’, ‘너무 늦지 않았어’라는 회의적 시각이 많았지만 아이가 도전하겠다고 하기에 100% 믿음을 갖고 응원했다”고 말했다. 윤성빈은 “어머니가 뒤에서 묵묵히 지지하고 기다려 주신 것을 잘 알고 있다. 쑥스러워서 말을 못했지만 사랑하고 감사한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어머니 앞에서 새로운 각오도 빼놓지 않았다. 윤성빈은 “잘하는 선수로 길게 가고 싶다. 지금을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 더 잘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얼굴에 다시 한번 환한 미소가 번졌다.평창=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 2018-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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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년 전만 해도 돈 없어 눈물 흘렸다”

    “4년 전, 눈물 흘리고 땅에 주먹 벽치고 그런 적 많았다. 돈이 없어 할 수 없는 것들이 산더미였던 옛적 일이다.” 윤성빈(24·강원도청)의 금메달은 혼자 핀 꽃이 아니었다. 이용 봅슬레이스켈레톤 국가대표팀 총감독(사진)은 17일 강원 강릉 올림픽파크 내 코리아 하우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 썰매에 새 역사가 쓰인 데에는 체계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 감독은 “선수 기량이 올라가려면 현실적으로 썰매도, 러너(썰매 날)도 사야 한다”며 “현재 국내외 코치 17명에 영상 장비 등을 갖춰 윤성빈을 지원했고 그곳에서 기적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썰매 불모지였던 한국 봅슬레이스켈레톤 국가대표팀에 이 감독이 말한 지원의 물꼬가 트인 건 2014년. 당시 원윤종(파일럿)과 서영우(브레이크맨, 이상 봅슬레이 2인승), 스켈레톤의 윤성빈이 국제무대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하면서 현대자동차가 지원사격에 나섰다. 이때부터 썰매뿐만 아니라 대표팀의 외국인 코치 비용 등을 지원해준 것이다. 이 감독은 또 “국가대표 전용숙소 2층서 자고 1층서 밥 먹고 지하 1층서 웨이트했다”며 “이는 대한체육회가 선수들이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기 위해선 뭐가 필요한지 6개월 전부터 협의하면서 대비책을 마련해준 것이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한국 썰매가 다른 비인기 종목이 일어설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도 전했다. 이 감독은 “아직 일어나지 못한 불모지 종목이 많다”며 “올림픽 끝나면 우리 종목이 보여줬으니 일어나지 못한 종목을 정부가 과학적으로 시스템적으로 잡아주면 베이징 때는 봅슬레이스켈레톤이 아닌, 스키 등에서도 메달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평창=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 2018-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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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01초 당기려 유니폼 박음질… 그 열정이 ‘황제의 자격’

    ‘스켈레톤의 신성’ 윤성빈(24·강원도청)이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 연휴 때 새 역사 창조에 나선다. 15일 평창 슬라이딩센터에서 시작되는 평창 겨울올림픽 남자 스켈레톤에서 한국 썰매 사상 첫 메달에 도전한다. 이번 시즌 월드컵에서 수년간 ‘황제’ 자리를 지키던 마르틴스 두쿠르스(34·라트비아)를 밀어내고 세계랭킹 1위에 오른 윤성빈은 네 번의 레이스에서 금빛 질주를 펼치겠다는 각오다. 윤성빈은 100만 명에 1명 있을까 말까 한 ‘천재’로 불릴 정도로 그 성장세가 가팔랐다. 주행 능력이나 신체 구조가 남달라 단기간에 최정상급 선수로 올라섰다. 2014년 소치 올림픽까지만 해도 그저 운동신경 좋은 초짜에 불과하던 그가 어떻게 4년 만에 정상급 선수로 우뚝 섰을까. 2012년부터 윤성빈의 성장 과정을 지켜본 조인호 감독(40·현 대표팀 및 강원도청 감독)이 꼽은 윤성빈의 남달랐던 장면을 소개한다.○ 2014년 소치 올림픽: ‘0.01초’를 줄이는 디테일 두꺼운 허벅지는 윤성빈의 엄청난 장점이었지만 문제는 유니폼이었다. 맞춤형 유니폼이 아니어서 허리가 남아돌았다. 그래서 주행을 하면 헐렁한 유니폼이 펄럭이면서 시간을 깎아 먹었다. 100분의 1초 싸움을 하는 스켈레톤 종목엔 치명적이었다. 이 ‘디테일’을 메울 노하우가 당시 한국 스켈레톤엔 없었다. 올림픽 주행 이틀 전. 당시 조 감독의 끈질긴 구애 끝에 주행의 대가로 불리던 제프 페인(48·캐나다)이 숙소를 찾았다. 은퇴한 뒤 다른 대표팀을 지도하던 그는 재봉틀에 윤성빈의 옷을 올려놓고 수선법을 가르쳤다. 앳된 얼굴의 스무 살 청년 윤성빈은 페인의 손동작도 놓치지 않았다. 이날 윤성빈이 페인에게 배운 건 수선법만이 아니었다. 당시 세계 5개 경기장의 트랙 레코드를 세울 정도로 주행 실력에 정평이 나 있던 페인이었다. 윤성빈은 그런 페인에게 알짜배기 주행법을 소개받았다. 페인은 태블릿PC로 자료화면을 띄워 설명했고 윤성빈은 그의 말에 귀 기울였다. 날씨에 따라 또 트랙에 따라 어떤 러너(썰매 날)를 골라야 하는지도 전수받았다. 윤성빈의 눈은 이글이글 타올랐다. 조 감독은 “0.01초를 줄이는 노하우가 필요했고 당시 우리 팀엔 없었다. 재능 있는 후배의 빈 곳을 채우고 싶다는 생각에 페인에게 간청해 윤성빈에게 부족했던 작지만 큰 결점을 메워 나갔다”고 말했다.○ 2013년 1, 2월 캐나다 휘슬러: 극한의 살찌우기 “제가 월드컵에 나갈 수 있을까요. 전 꼭 나가고 싶습니다.”(윤성빈) “그럼 몸무게 10kg부터 찌우고 시작하자!”(조 감독) 윤성빈이 2012년 말 캐나다 휘슬러에서 열린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IBSF) 월드컵 경기를 처음 본 직후였다. 월드컵 출전권이 없어 미국과 캐나다를 돌며 트랙을 분석하던 윤성빈의 당시 몸무게는 70kg 초반대였다. 소치 올림픽이 1년여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 윤성빈의 주행 속도를 높일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스켈레톤 선진국이야 선수 몸무게가 적어도 고급 장비를 쓰거나 축적된 주행 노하우를 전해주면 그만이었다. 당시 한국의 여건은 그렇지 못했다. 윤성빈의 몸무게를 80kg 후반대로 만드는 것이 당시에 할 수 있는 유일한 성장법이라 판단했다. 그날부터 아침잠이 많은 윤성빈은 잠을 줄여가며 하루 8끼를 챙겨 먹었다. 그렇게 미국과 캐나다를 돌며 2개월이 지나자 어느새 윤성빈의 몸무게는 85kg에 달했다. 그해 2월 윤성빈은 캐나다 휘슬러에서 열린 대륙간컵에서 생애 첫 금메달을 목에 거는 ‘작은 기적’을 썼다.○ 2012년 10월 미국 파크시티: 생애 첫 썰매 주행 2012년 10월 미국 파크시티 경기장. 윤성빈은 이곳에서 생애 첫 주행을 했다. 조 감독에게 물려받은 윤성빈의 유니폼은 다 해져 있었다. 그 유니폼의 오른팔 부위에는 테이프가 겹겹이 붙어 있었다. 찢어진 유니폼에 임시방편으로 붙여 놓은 것이었다. 그곳에 하도 테이프를 덧대다 보니 두툼한 보호대처럼 보일 정도였다. 일주일에 100달러(약 11만 원)를 주고 빌린 낡은 썰매를 썼다. 지금 윤성빈의 트레이드마크인 아이언맨 헬멧도 없었다. 대신 스키헬멧에 턱 끈을 붙여 썼다. 그렇게 윤성빈은 첫 주행을 시작했다. 중간에 트랙 벽에 부딪혀 완주하지도 못했다. 트랙을 빠져나온 윤성빈은 조 감독에게 말했다. “제가 할 만한 종목은 아닌 것 같아요….” 무던하기로 소문난 윤성빈이 그런 말을 할 정도였다. “이 종목을 이해하면 재미있을 거야 조금만 참자.” 어쩌면 윤성빈의 선수 생활에 가장 큰 고비는 첫 주행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윤성빈은 이를 극복하고 끝내 평창에 섰다.평창=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 2018-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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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문가 “날씨 추울수록 윤성빈 유리”

    “제가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스켈레톤 남자 공식 연습 경기가 열린 13일 강원 평창 슬라이딩센터에서 연습 주행을 모두 마치고 믹스트존에 나타난 윤성빈(24·강원도청)은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센터 개장 후 지금까지 이곳에서 380번 트랙을 돌면서 구간별 특징을 몸이 먼저 기억할 정도로 평창 트랙에 도가 튼 윤성빈이다. 이날 마지막 올림픽 리허설에서 윤성빈은 힘 쏟지 않고 뛰고도 2위를 기록했다. 이날 맞수 마르틴스 두쿠르스(34·라트비아)도 모니터로 윤성빈의 주행을 꼼꼼히 살폈다. 관심사는 이번 대회 썰매 종목의 승부처로 불리는 ‘마의 9번 코스’에서 윤성빈이 어떤 주행을 펼치는지였다. 이미 지난해 2월 테스트 이벤트 때부터 유명세를 치른 9번 코스다. 속도를 높이면 벽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고 그렇다고 속도를 줄이면 기록이 늦어져 선수들 사이에서는 ‘악마가 유혹하는 곳’이라 불린다. 앞서 열린 남자 루지 경기에서도 ‘루지 황제’ 펠릭스 로흐(29·독일)가 이 코스의 마수에 걸려 쓴잔을 들이켰다. 3차까지 1위를 달리던 로흐는 마지막에 9번 코스를 돌다가 실수를 연발해 5위로 주저앉았다. 윤성빈은 자신만의 9번 코스 주행법을 터득해 그의 말대로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무난하게 금빛 레이스를 펼칠 것으로 점쳐진다. 김준현 전 스켈레톤 국가대표 선수는 “이미 성빈이는 9번 코스를 수없이 돌며 자기만의 ‘금빛 주행라인’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기 당일 날씨가 추울수록 윤성빈이 유리하다는 전망도 있다. 곽송이 스켈레톤 해설위원은 “윤성빈은 강한 빙질에 익숙하다. 보통 혹한으로 얼음이 강해지면 약간의 실수로도 썰매가 뒤틀릴 수 있다”며 “윤성빈은 이런 실수까지도 막을 수 있는 물오른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썰매 종목 사상 최초의 메달에 도전하는 윤성빈의 레이스는 15일(1·2차, 오전 10시)과 16일(3·4차, 오전 9시 반)에 펼쳐진다.평창=김재형 monami@donga.com·김성모 기자}

    • 2018-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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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6세 스키점퍼 日 가사이 “은퇴?… 2026년까지 뛸 것”

    46세 스키점퍼 가사이 노리아키(일본·사진)의 각오는 여전히 뜨겁다. 최근 그는 평창 알펜시아 스키점프센터에서 열린 노멀힐 남자 결선에서 순위권과는 거리가 먼 21위를 기록했다. 이 경기 이후 공개 인터뷰에서 그는 평창이 마지막 올림픽이 아님을 강조했다. 오히려 다다음 올림픽까지 내다봤다. “(2026년 겨울올림픽 유치를 준비하고 있는) 삿포로까지 계속하고 싶습니다.” 가사이는 개회식에 나선 기수 중에서 나이가 가장 많다. 이런 이유로 외신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그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평창 올림픽 참가자(2915명)의 47.8%가 가사이의 올림픽 데뷔 이후 태어났다”고 소개했다. 가사이의 올림픽 첫 비행은 26년 전인 1992년 알베르빌 대회였다. 그가 삿포로를 자신의 은퇴 무대로 꼽은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가 태어난 해인 1972년 일본에선 삿포로 겨울올림픽이 개최됐다. 당시 일본은 남자 스키점프 노멀힐에서 금, 은, 동메달을 휩쓸었다. 그 얘기를 듣고 자란 가사이는 그 영광의 무대인 삿포로에서 마지막 올림픽 비행을 꿈꾼다. 희망대로 2026년 대회까지 그가 올림픽 비행을 이어간다면 가사이는 겨울올림픽에 10번 출전한 선수가 된다. 이미 그는 평창 노멀힐 대회 출전으로 역대 겨울올림픽 최다 출전 기록을 세웠다. 평창=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 2018-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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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은 눈의 여왕들 납시는 날

    12일 강원 평창에 ‘설원의 여왕’이 대거 등장한다. 이날 오전 10시 15분 알파인스키 여자 대회전 경기가 열리는 용평 알파인 경기장엔 소치 올림픽에 이어 2연패를 노리는 ‘스키 요정’ 미케일라 시프린(23·미국)이 출격한다. 그는 현역 알파인 스키 기술계(회전, 대회전)의 최고 여자 스키 선수로 손꼽힌다. 그의 메달 전망은 밝다. 이번 시즌(2017∼2018) 월드컵 종합 랭킹 1위에 오른 시프린이다. 특히 주 종목이 아닌 활강 부문에서도 5위에 오르며 이번 대회 전 종목(5개 종목) 석권을 노린다. ‘스키 여제’ 린지 본(34·미국)은 몸 관리를 위해 주 종목인 속도계(활강, 슈퍼대회전)와 복합 경기에만 나서기로 해 시프린과의 대결이 미뤄졌다. 오후 1시 반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 예선전이 열리는 휘닉스 스노경기장에는 ‘천재 스노보더’ 클로이 김(18)이 올림픽 데뷔전을 치른다. 작은 체구에 앳된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는 세계 스노보드계를 휩쓴 최고 실력자로 평가받는다. 부모가 모두 한국인인 한국계 미국인 클로이 김은 이미 15세 때인 2015년 ‘겨울 X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일찌감치 천재성을 뽐냈다. 2016년 2월 US그랑프리에선 여자 선수로는 최초로 2연속 세 바퀴(1080도) 회전에 성공하며 100점 만점을 받았다. 그는 최근 평창에서 공개 인터뷰를 통해 “부모님의 나라에 와서 정말 좋다. 올림픽 첫 출전도 정말 기대된다”며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겠다. 기쁘고 재미있게 해보려고 한다”고 각오를 전했다. 오후 9시 50분부터는 알펜시아 스키점프센터에서 최고의 여자 ‘인간 새’를 가리는 노멀힐 예선과 결선이 열린다. 월드컵 최다승 기록(53승) 보유자인 다카나시 사라(22·일본)가 소치 올림픽에서 4위에 그친 설움을 풀지 주목된다. 2017∼2018 월드컵 시즌에 7번 정상을 밟으며 이번 올림픽 금메달 1순위 후보로 손꼽히는 마렌 룬드비(24·노르웨이)는 다카나시의 최대 적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한국 유일의 여자 스키점퍼인 박규림(19·상지대관령고)도 생애 첫 올림픽 비행을 펼친다. 평창=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 2018-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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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오르다, 하나된 평창

    성화 릴레이의 끝은 차가운 얼음이었다. 그 위에서 여왕은 춤을 췄다. 그 손끝에서 어둠은 빛이 되었다. “여왕이 돌아왔습니다. 김연아!” 2018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이 열린 9일 강원 평창 올림픽스타디움. 성화대 근처는 조명이 없어 어두웠다. 실루엣만 살짝 보였을 뿐인데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관중들은 어둠 속에서도 그를 알아보았다. 이윽고 ‘김연아’ 이름을 불렀다. 이날 최고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김연아는 하얀 천사였다. 코트, 드레스, 머리띠, 장갑, 스케이트화 등 김연아가 입은 모든 것이 흰색이었다. 전 세계 70억 명 앞에서 여왕의 퍼포먼스가 이어졌다. 부드럽고 빛나는 연기를 마친 김연아는 빙판 위에 설치된 얼음꽃 모양의 점화 지점에 불을 붙였다. 30개의 링으로 덮인 기둥을 타고 불꽃이 솟아올랐다. 곧 달항아리 안에서 올림픽의 시작을 알리는 성화가 타올랐다. 30개의 링은 30년 전에 열린 1988 서울 올림픽의 성화가 평창 겨울올림픽으로 이어져 다시 타오른다는 의미다. 개회식 전부터 가장 유력한 성화 점화자로 꼽혔던 김연아가 2018 평창 겨울올림픽 최종 점화자로 나섰다. 김연아에 앞서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의 박종아(한국)와 정수현(북한)이 앞선 주자들로부터 성화를 건네받을 때까지만 해도 남북 공동 점화가 이어지는 듯했다. 남북이 한반도기를 들고 공동 입장했기에 더욱 그랬다. 그러나 박종아와 정수현은 ‘빛의 계단’을 뛰어 올라가 성화대 앞에 섰다. 그러고는 어둠 속에 기다리고 있던 김연아에게 성화를 건넸다. 김연아는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 금메달과 2014 소치 겨울올림픽 은메달을 따낸 피겨 여왕이다.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수많은 팬을 거느리고 있는 한국 겨울 스포츠의 상징적 인물이다. 김연아는 지난해 10월 그리스 올림피아 헤라신전에서 채화된 성화를 한국으로 가져와 비행기에서 내리는 역할을 맡았다. 평창 겨울올림픽 성화의 시작과 끝은 김연아였다. 평창 올림픽을 지켜줄 성스러운 불꽃이 타올랐다.평창=김동욱 creating@donga.com·김재형 기자}

    • 2018-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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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국가대표’의 그들, 올림픽 마지막 비행

    살을 에는 칼바람 속에서 발을 동동 굴러가며 스키점프대 위에 선 최서우(36)를 응원하는 한국 팬들이 눈에 띄었다. 이날 최서우는 예선전에 나선 57명의 선수 중 가장 먼저 스키점프대 위에 섰다. 아파트 15층 높이(약 47m)에서 89m를 날아간 최서우는 안방 팬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평창 올림픽에서의 첫 비행을 끝마쳤다. 영화 ‘국가대표’의 주인공 최서우 김현기(35·이상 하이원)가 8일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올림픽 비상을 시작했다. 1991년 ‘인간새’를 꿈꾸며 스키점프에 입문했던 둘은 어느새 30대 후반으로 접어들어 사실상 이번이 그들의 마지막 올림픽 무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최서우와 김현기는 이날 오후 평창 알펜시아 스키점프대에서 열린 노멀힐 남자 개인 예선전에서 각각 94.7점(39위)과 83.1점(52위)을 받았다. 최서우는 본선에 진출할 수 있는 50위 안에 들었지만, 김현기는 예선 탈락했다. 둘은 1996년 나가노 대회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겨울올림픽에 참가해 왔던 한국 스키점프 1세대. 이들과 동고동락해 왔던 최흥철(37)은 이번 대회 출전권을 따내지 못했고, 강칠구(34)는 2016년 지도자의 길을 걸으면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이에 따라 스키점프 현역 선수로 남아 있는 최서우 김현기의 올림픽 행적은 한국 겨울올림픽의 새 역사로 기록됐다. 여름·겨울을 통틀어 6회 연속 올림픽 출전을 기록한 선수는 남자 스피드스케이팅의 이규혁(40)이 유일하다. 이들이 20년 넘게 올림픽 비행을 이어 올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인고의 세월을 이겨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보통 한 명의 스키점프 선수를 육성하는 데 최소 5년 이상이 걸린다. 이 시간을 이겨내야 스키점프대에서 점프를 할 수 있다. 어린 나이에서부터 세간의 이목을 끄는 ‘천재 선수’가 이 종목에서 유독 드문 이유도 이 때문이다. 더군다나 한국은 스키점프가 비인기 종목이라 최서우 김현기는 사람들의 관심 밖에서 외롭게 성장통을 앓아야만 했다. 1991년 스키점프에 입문한 이후 최서우와 김현기는 10여 년을 암흑 속을 개척해 나가야 했다. 열정과 패기 하나로 시작하긴 했지만 변변한 훈련 시설도, 장비도 없이 뛰어든 그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2008년 한국에 스키점프 실업팀(하이원)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늘 생계비 걱정이 가득했다. 한 달에 6만 원밖에 안 되는 훈련비로 근근이 생활했던 그들이다. 돈이 없어 찢어진 점프복을 손수 기워 가며 경기에 나섰다. 막노동을 전전하기도 했고, 놀이동산에서 인형 탈을 쓰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어야만 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끝내 ‘인간새의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최서우와 김현기는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겨울올림픽에서부터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이 대회 노멀힐 남자 개인전에서 최서우가 결승 34위에 올라 역대 한국 스키점프가 기록한 올림픽 최고 기록을 세운 것이다. 같은 대회 단체전(최서우·김현기·최흥철·강칠구)에서 기록한 8위는 한국 설상 종목 사상 첫 올림픽 10위권 진입이었다. 스키점프 입문 10여 년 만에 이룬 이들의 ‘작은 기적’이었다. 최서우와 김현기는 이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영화 ‘국가대표’가 2009년 개봉하면서 큰 관심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한때뿐이었다. 영화 개봉 직후 물밀듯이 들어오던 스키점프 지망 원서도, 선수들에 대한 지원도 2, 3년 새에 금방 시들해졌다. 이와 함께 “이제는 좀 바뀌나”라는 기대감에 풍선처럼 마음이 부풀었던 둘은 다시 또 고개를 떨구고 앞날을 걱정해야만 했다. 오히려 상실감은 더 커졌다. 평창 겨울올림픽은 최서우 김현기에게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게 한 계기였다. 그동안에는 꿈꿔 보지 못한 안방에서의 올림픽을 놓칠 수 없었다. 또한 이번을 계기로 다시 한번 한국 스키점프가 발전할 수 있는 동력을 찾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도 생겼다. 안방에서 멋진 비상을 보여주면, 스키점프의 바통을 이어받을 훌륭한 꿈나무도 생길 수 있다는 꿈을 꾸고 있는 최서우와 김현기다. 최서우는 이번 올림픽에 임하는 각오로 “한국의 1세대 스키점프 선수로서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갔던 선수로 남고 싶다”고 밝혔다. 김현기는 “스키점프가 그 자체로 삶이 됐다. 이것 하나만 보고 산다”며 “이번 올림픽에서 정말 후회 없는 멋진 비상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최서우는 10일 노멀힐 본선 경기에 이어 16일 라지힐 남자 개인 예선에도 노멀힐에서 탈락한 김현기와 함께 나선다. 화려하진 않았지만 끈질겼던 그들의 비행이 종점을 향해 가고 있다.평창=김재형 monami@donga.com·임보미 기자}

    • 2018-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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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맨주먹 출발한 태극전사들, 신화창조의 날이 왔다

    “캐나다에 있을 때는 한국 겨울스포츠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어요. 그래서 지금 제가 한국 대표팀의 일원으로 올림픽에 참가한다는 것이 더욱 놀랍네요.”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 나서는 남자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골리 맷 달튼(32)의 말처럼 한국은 겨울스포츠 강국이 아니다. 한국이 역대 겨울올림픽에서 획득한 메달은 총 53개이며 종목은 3개(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다. 이 중 메달 42개가 쇼트트랙에서 나왔다. 캐나다 출신으로 특별귀화한 달튼은 평창 올림픽을 변화의 출발점으로 전망했다. 그는 “여러 종목에서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올림픽에 나서는 선수가 많다. 내가 올림픽에 출전한 캐나다 선수들을 보고 선수의 꿈을 키웠듯 한국 선수들의 노력은 어린 친구들을 겨울스포츠로 빠져들게 만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9일 시작되는 평창 올림픽을 위해 태극전사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간난신고의 세월을 보냈다. 이들이 불모지 한국에서 평창 올림픽을 기회로 삼아 겨울스포츠를 도약시키기 위해 흘린 눈물과 땀방울은 ‘금메달’ 이상의 값어치가 있다. 남북 단일팀이 구성되면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여자 아이스하키의 골리 신소정(28)은 “이렇게 주목받는 게 처음이라 기쁘기는 한데…. 경기 내용으로 관심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한국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에게는 이번 올림픽이 기적과도 같은 순간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유일한 여자 아이스하키팀이 국가대표팀이다. 실업팀은 물론이고 초중고교, 대학 팀도 없다. 3년 전만 해도 대표 선수로 뛸 수 있는 16세 이상 선수가 10여 명에 불과해 엔트리(23명)를 채울 수도 없었다. 서울 태릉빙상장에서 훈련할 때는 학생 선수들로 인해 오후 8∼10시에 야간훈련을 해야 했다. 무거운 장비를 짊어진 채 훈련장으로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싣던 선수들의 수입은 하루 훈련수당인 6만 원이 전부였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선수들은 올림픽을 위해 꿈을 포기하지 않았다.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한수진(31)은 피아니스트의 꿈을 접고 일본 아이스하키클럽에서 유학을 하며 실력을 키웠다. 유학 시절 그는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만두 가게에서 일했다. 어머니는 한국인, 아버지는 미국인인 랜디 희수 그리핀(30)은 듀크대 대학원 생물학박사 과정을 휴학하고 올림픽을 위해 한국행을 택했다. 그리핀은 “어머니의 나라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에 나서고 싶다는 생각으로 어려움을 참아냈다”고 말했다. 한국 남녀 아이스하키는 우여곡절 끝에 올림픽 개최국 자동출전권을 얻어 평창 올림픽에 나선다.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을 끝으로 자동출전권을 폐지했던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은 평창 올림픽을 앞두고 자동출전권을 부활시키면서 ‘한국 남녀 대표팀의 경기력 향상’이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를 위해 남자 대표팀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 우승컵인 스탠리컵을 들어올렸던 백지선 감독(51)을 영입했다. 백 감독은 ‘패배의식’에 젖어 있던 선수들에게 열정(passion)과 연습(practice), 인내(perseverance)를 강조하며 정신력과 기량을 모두 끌어올렸다. 대표팀은 지난해 4월 사상 최초로 IIHF 세계선수권 톱디비전에 진출하는 기적을 만들었다. 설상 종목에서도 역사를 만들고 있다. 썰매 불모지인 한국에서 봅슬레이와 스켈레톤은 사상 첫 메달에 도전한다. 이 종목 1세대 이용 총감독과 조인호 감독은 2005년부터 아스팔트 맨바닥에서 모형 썰매를 타며 스켈레톤과 봅슬레이 종목을 개척했다. 2010년 5월 강원도에 국내 최초로 스타팅 훈련장이 마련되면서부터 한국 썰매의 싹이 텄다. 그해 봅슬레이 2인승 원윤종(33)과 서영우(27)가 합류하면서 한국 봅슬레이 간판팀이 탄생했다. 2013년엔 스켈레톤 윤성빈(24)이 가세해 ‘한국 썰매 신화’의 서막이 열렸다. 하지만 원윤종 조와 윤성빈이 훈련을 시작할 때만 해도 훈련 환경이 척박했다. 당시 이들이 받은 선수 지원금은 한 달에 40만 원 안팎. 썰매가 없어 국제 대회를 나갈 때면 낡은 썰매를 빌려 타야만 했다. 윤성빈의 ‘호랑이 연고’는 열악했던 당시 상황을 보여주는 사례다. 경기 전에 몸에 바르는 웜업 크림 대신 윤성빈은 알싸한 냄새를 풍기는 연고를 발라 해외 선수들의 눈총을 받았다. 하지만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떠오른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윤성빈은 “내 성적이 좋아지니까 그 연고를 어디서 구했는지 물어보고, 그 연고를 바르는 선수가 늘어났다”며 웃었다. 대학 때까지만 해도 80kg 안팎의 몸무게를 유지했던 원윤종과 서영우는 썰매의 가속도를 높이기 위해 몸무게를 100kg 가까이 늘려야 했다. 하루 세 끼에 더해 간식 야식까지 5번 더 먹었다. 하루에 밥을 열 공기 먹은 적도 있다. 체계적 식단을 만들어 줄 사람이 없어 이용 총감독이 사비 등으로 마련한 음식을 먹으며 살을 찌웠다. 윤성빈도 75kg이던 몸무게를 90kg까지 늘렸다가 최고 속도를 내는 데 알맞은 86kg을 유지하고 있다. 태극전사들이 흘린 땀방울이 이제 결실을 맺을 순간을 맞았다. 평창 올림픽이 드디어 막이 오른다. 강릉=정윤철 trigger@donga.com·평창=김재형·임보미 기자}

    • 2018-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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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창 겨울올림픽 가즈아!]태극 전사들 “金세배 드릴게요”

    《‘8-4-8 프로젝트.’ 대한민국은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금메달 8개와 은메달 4개, 동메달 8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 가장 많은 메달을 기대하는 종목은 역시 쇼트트랙이다. 한국은 1992년 알베르빌 올림픽을 시작으로 2014년 소치 올림픽까지 역대 겨울올림픽에서 획득한 총 26개의 금메달 중 무려 21개를 쇼트트랙에서 따냈다.》최민정(20·성남시청)과 심석희(21·한국체대)의 ‘쌍두마차’가 버티고 있는 여자 대표팀은 자타 공인 세계 최강이다. 전통적인 강세 종목이었던 1500m와 1000m, 그리고 3000m 계주는 물론이고 취약 종목으로 꼽혔던 500m에서도 메달을 기대할 만하다. 평창 올림픽(2월 9∼25일)이 자신의 첫 올림픽인 최민정은 2017∼2018 국제빙상경기연맹(ISU) 1∼4차 월드컵에서 금메달 8개를 쓸어 담았다. 특히 1차 월드컵에서는 여자부에 걸린 4개의 금메달을 독식했다. 그동안 취약 종목이었던 500m에서도 금메달을 수확한 것이 고무적이다. 컨디션에 따라 한국 선수로는 여름·겨울 올림픽을 통틀어 첫 단일 대회 4관왕까지도 노려볼 수 있다. 소치 대회에서 ‘노 메달’ 수모를 당했던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도 임효준(22·한국체대)과 황대헌(19·부흥고), 서이라(26·화성시청) 등을 내세워 명예 회복에 나선다. 자기 기량을 발휘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는 선수들이다. 이번 평창 올림픽 쇼트트랙의 첫 금메달이 걸려 있는 10일 남자 1500m에서 금맥이 터진다면 이후 메달 전선에도 파란불이 켜질 수 있다. 스피드스케이팅도 금메달 도전 종목이다. ‘빙속 여제’ 이상화(29·스포츠토토)의 겨울올림픽 3연패 여부는 평창 올림픽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2010년 밴쿠버와 2014년 소치 여자 500m에서 연속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이상화는 평창 올림픽에서 전무후무한 대기록에 도전한다. 이 종목 세계랭킹 1위인 고다이라 나오(일본)를 넘어서는 게 관건이다. 평창 올림픽에서 처음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매스스타트 역시 전략 종목이다. 남자 장거리 스피드스케이팅의 간판 이승훈(30·대한항공)은 이 종목 세계 랭킹 1위로 초대 챔피언 등극을 노리고 있다. 여자 매스스타트의 김보름(25·강원도청) 역시 유력한 메달 후보다. 설상 종목에서 메달을 노리는 선수들도 있다. 강원도 정선 고랭지 배추밭에서 썰매를 탔다고 해 ‘배추보이’라는 별명이 붙은 스노보드 알파인의 이상호(23·한국체대)와 한국 남자 모굴의 간판 최재우(24)도 한국 선수 스키 종목 첫 메달에 도전한다. 한국 스켈레톤의 간판 윤성빈(24·강원도청)은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주목받는 한국 선수다. 그는 평창에서 한국 썰매 종목 사상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따낼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윤성빈은 지난달 20일 최종 확정된 2017∼2018시즌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IBSF) 월드컵 순위에서 세계 1위(랭킹포인트 1545점)에 올랐다. 8년 동안 왕좌를 지키며 ‘스켈레톤의 황제’로 불리던 마르틴스 두쿠르스(34·라트비아·1440점)를 따돌렸다. 윤성빈의 1위 등극은 8차까지 이어진 이번 월드컵에서 마지막 대회를 건너뛰고도 성취한 것이라 그 의미가 더 깊다. 앞서 7차 대회까지 윤성빈은 금메달 5개와 은메달 2개를 획득하며 독주 체제를 구축했다. 윤성빈은 8차 월드컵을 앞두고 평창 올림픽 준비를 위해 조기 귀국을 선택했다. 그만큼 이번 올림픽에 쏟는 그의 열정은 남다르다. 2015∼2016시즌, 2016∼2017시즌 연속 두쿠르스에 이어 2위를 했던 윤성빈은 안방에서 치러지는 평창 올림픽에서 기분 좋게 황제 대관식을 치르겠다는 각오다. 사실 스켈레톤을 비롯해 봅슬레이와 루지 등 썰매 종목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낯선 종목이었다. 2009년 한 인기 예능프로그램에 봅슬레이 종목이 소개되면서 잠깐 관심을 끌긴 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전용 트랙 하나 없이 한국 썰매 국가대표팀은 맨바닥에서 굵은 땀방울을 쏟아가며 ‘인간 승리의 스토리’를 써나가고 있다. 윤성빈의 키는 178cm. 이 키로 그는 고등학교 시절 덩크슛을 했을 정도로 타고난 순발력과 하체근력을 지녔다. 이는 초반 스퍼트가 중요한 스켈레톤에서 매우 유리하게 작용한다. 스켈레톤은 출발 기록을 0.1초 줄이면 최종 기록은 0.3∼0.4초까지 줄일 수 있다. 윤성빈은 특유의 하체 힘을 이용해 빠른 스타트로 대회마다 경쟁자들을 압도해왔다. 실제 그는 올해 5차 대회까지 열린 2017∼2018시즌 월드컵 무대에서 단 한 번도 스타트 기록이 2위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다. 캐나다 휘슬러에서 열린 3차 대회 2차 시기에선 ‘4초50’의 번개 스타트로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이 기록은 윤성빈이 이번 시즌 기록한 최고 성적. 맞수 두쿠르스의 시즌 최고 기록이 4초56인 것을 고려하면 그의 기록이 얼마나 빠른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탁월한 주행능력 또한 윤성빈의 강점이다. 그는 전 세계 어느 트랙에서도 적응이 매우 빠르다고 소문난 선수다. 그가 입문 5년 만에 세계 1위에 오를 수 있게 한 주요 원동력 중 하나다. 여기에 그의 주행 능력이 더 빛을 발할 수 있게 최고의 코치진까지 확보했다. 지난해 하반기 한국 대표팀에 합류한 리처드 브롬리 코치(영국)는 썰매 제작 능력까지 갖춘 장비 전담 코치로 경기장 날씨와 습도에 따라 썰매의 날을 달리해 장착한다. ‘100분의 1초’ 싸움을 해야 하는 스켈레톤에서 이처럼 미세한 부분까지 선수에게 맞게 조율해줄 수 있는 코치진의 실력은 메달 색깔 차이로 이어질 수 있다. 윤성빈은 육체적 능력 못지않게 담대한 성격도 장점으로 꼽힌다. 윤성빈은 어떤 경기,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철 멘털 소유자다. 자칫 평창 올림픽이 안방에서 열리는 올림픽이니만큼 부담도 될 법하지만 그는 좀처럼 흔들림이 없다. 여기에 지기 싫어하는 강한 승부욕으로 윤성빈은 어느새 두쿠르스를 뛰어넘은 최강자로 우뚝 섰다. 이런 윤성빈에게 안방 트랙의 이점까지 더해지니, 그의 금메달 소식이 더욱더 기대되고 있다. 전 세계에 16개밖에 없는 전용 트랙은 길이와 곡선 설계 등이 모두 달라 해당 트랙에 얼마나 적응하는지가 승부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2016년 문을 연 평창 슬라이딩 센터는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 연 공식 썰매 트랙이다. 윤성빈을 비롯한 한국 썰매 국가대표팀은 올해 초부터 이곳에서 트랙 적응 훈련을 계속해 오며 올림픽에서 ‘최고의 레이스’를 펼칠 수 있도록 준비해왔다. 윤성빈을 비롯한 스켈레톤팀은 1월부터 총 380회의 홈 트랙 주행을 마쳤다. 썰매 대표팀과 윤성빈은 자신감에 가득 차있다. 1일 강원 평창 용평리조트 타워콘도에서 열린 봅슬레이스켈레톤 국가대표 미디어데이에서 이용 한국 봅슬레이스켈레톤 국가대표 총감독은 “윤성빈은 더 이상 두쿠르스 얘기를 안 해도 될 것 같다. 자기와의 싸움을 극복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성빈도 “지금은 완전히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한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맨땅에서 피와 땀, 눈물로 성장한 한국 썰매 그리고 스켈레톤의 윤성빈은 평창에서의 금빛 질주를 꿈꾸고 있다.김재형 monami@donga.com·평창=이헌재 기자}

    • 2018-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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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상도 못 막아” 투지의 루지

    한국 루지 국가대표팀 주요 선수들이 저마다 부상을 안고 평창 겨울올림픽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 뒤늦게 알려졌다. 6일 대한루지경기연맹에 따르면 평창에 출전하는 남녀 대표 선수 5명 중 3명이 몸을 다친 상태다. 여자 아일린 프리쉐(26)와 성은령(26), 남자 박진용(25)이 뼈와 인대, 팔꿈치 등에 이상이 생겼다. 귀화 선수인 프리쉐는 지난해 10월 왼쪽 발등을 다쳐 여기에 철심을 박는 수술을 받았다. 지금은 발 상태가 좋아져 경기력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지만 그동안 프리쉐는 고통을 감수하며 훈련에 매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주세기 루지 대표팀 코치는 “의료 진료를 통해 경기를 뛰는 데 큰 무리가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며 “프리쉐는 자신이 오랫동안 꿈꿔 온 올림픽을 위해 막판 각오를 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프리쉐와 함께 여자 루지의 쌍두마차로 불리는 성은령은 지난해 말 십자인대가 끊어졌다. 여기에 남자부 박진용 또한 비슷한 시기에 팔꿈치 부상과 엄지손가락 골절을 당했지만 이를 극복하고 현재 막바지 올림픽 훈련을 하고 있다. 한 연맹 관계자는 “성은령은 부상 당시 수술까지 고려했지만 올림픽을 뛰고 싶다는 본인의 의지가 워낙 강해 재활 치료를 받으며 운동을 계속해왔고 지금은 거의 회복됐다”며 “그 외 박진용까지 모두 코앞으로 다가온 본무대를 위해 악착같이 부상을 극복하고 땀 흘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 2018-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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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반도’ 유니폼 입고 “팀코리아” 외친 단일팀

    “짧은 시간이었지만 북한 선수들이 우리 시스템과 전술에 맞춰 잘 연습했다. 북한 선수들이 잘 따라왔다. 이전에는 이런 강국과의 대결에서 이길 거라곤 생각 못 했지만 이제는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올림픽 역사상 첫 단일팀의 첫 경기를 지휘한 세라 머리 감독은 스웨덴과의 경기를 마친 뒤 웃으며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은 4일 인천 선학경기장에서 세계 5위의 강호 스웨덴과 친선경기를 치렀다. 객석에는 대형 한반도기가 걸렸고 남북 선수들은 빙판에 일렬로 도열해 국가 대신 ‘아리랑’을 불렀다. 선수들은 팀 구호인 ‘팀 코리아’를 외치고 빙판에 들어섰다. 1피리어드 한국 박종아의 추격 골이 터지자 벤치에 있던 단일팀 선수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앉아있던 북한 선수들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졌다. 단일팀은 선전을 펼쳤지만 스웨덴에 1-3으로 패했다. 그러나 대한아이스하키협회 관계자는 “짧은 훈련 기간 등 우려했던 것보다는 경기력이 나쁘지 않다”고 평가했다. 단일팀(총 35명)은 북한 선수들(12명)이 지난달 25일 충북 진천선수촌에 도착하면서부터 합숙훈련을 했다. 그러나 한 팀으로 섞여 빙상훈련을 한 것은 지난달 28일부터로 8일에 불과하다. 당초 머리 감독은 “북한 선수 중 전력에 도움이 되는 선수는 2, 3명 정도이며 1∼3라인에 들어올 만큼 좋은 선수는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그는 북한 선수 4명을 엔트리에 배치했다. 부상으로 빠진 한국 공격수들을 대신해 정수현과 려송희(이상 레프트 윙)를 각각 2, 3라인에, 김은향(센터)과 황충금(수비수)을 4라인에 배치했다. 이 중 황충금을 제외하고는 모든 선수가 경기에 출전했다. 미국 입양아 출신이었던 박윤정도 한국 국적을 회복해 이날 대회에 출전했다. 머리 감독은 정수현과 려송희를 같은 라인에 동시 투입해 빠른 스피드를 살린 반격을 노리는 등 공격수 실험에 주력했다. 4월 국제아이스하키연맹(IIHF) 세계선수권 디비전2 그룹A(4부 리그)에서 2골 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북한 팀 내 포인트 1위에 오른 정수현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머리 감독은 “정수현은 터프하고 빠른 경기를 펼쳤다. 정수현이 앞으로도 열심히 한다면 2라인으로 계속 기용하겠다”고 말했다. 정수현은 “북남 선수들이 힘을 합쳐 달리면 좋은 결실을 맺을 것이라 본다”고 답했다. 단일팀은 1피리어드에만 3골을 내줬지만 이후 안정을 되찾으며 한 골도 내주지 않았다. 단일팀 결성 전 한국 대표팀은 지난해 7월 스웨덴과의 두 차례 평가전에서 0-3, 1-4로 모두 패했다. 박종아는 “지난해 스웨덴과 경기하면서 수비력 부족 문제를 인식했다. 수비에 중점을 두고 연습하다 보니 좀 더 좋은 성과를 거둔 것 같다”고 말했다. 머리 감독은 “지난 몇 년간 훈련했던 선수들과 같이 무대에 나갈 수 없다는 것이 속상하지만 최선을 다하면 선수들에게 뛸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거라고 얘기했다. 언어 문제가 힘들어 영어로 훈련을 진행했다. 우리의 목표가 메달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이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날 경기는 전 좌석이 매진됐다. 민중당 소속 청년들도 800명가량 참석했다. 경기 전에는 보수단체 회원 150여 명이 한반도기를 찢고 밟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인천=정윤철 trigger@donga.com / 김재형 기자}

    • 2018-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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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캡틴 만난 정현 “고기 좀 사주세요”

    “잘 지내셨죠. 흐흐.”‘캡틴’을 만난 정현(22·한국체대)의 얼굴에선 밝은 미소가 넘쳤다. 그런 제자를 바라보는 옛 스승은 흐뭇하기만 했다.정현은 1일 저녁 서울 송파구의 한 식당에서 삼성증권팀 시절 3년 가까이 자신을 가르쳤던 김일순 전 감독(49)과 재회했다. 김 전 감독은 정현이 호주오픈 16강전에서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를 꺾은 뒤 방송 카메라에 남긴 ‘캡틴 보고 있나’ 메시지의 주인공. 정현은 당시 “삼성증권 팀이 해체된 뒤 마음고생이 심하셨던 감독님에게 나중에 잘되면 뭔가 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켰다”고 설명했다. 이런 사연이 화제가 되면서 김 전 감독은 며칠 동안 휴대전화를 꺼두며 잠수까지 탔다. 주인공은 정현 하나여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이날 김 전 감독은 삼성증권 감독 출신인 주원홍 전 대한테니스협회장이 마련한 축하 모임에 선뜻 나서 큰일을 해낸 제자의 어깨를 두드려 줬다. 두 달 만에 정현을 봤다는 김 전 감독은 “TV로 볼 때는 잘 몰랐는데 얼굴도 많이 타고 꽤 수척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와인 잔에 김 전 감독이 따라준 사이다를 받아 건배를 한 정현은 “캡틴이라는 표현은 감독님과 카톡 대화를 나눌 때 쓰는 말이다. 이렇게 앞에 계시면 감독님이라고 부른다”며 웃었다.김 전 감독이 발 상태를 묻자 정현은 “다음 주부터 공도 칠 것 같다. 어려서 회복이 빠르다”며 안심을 시켰다. 김 전 감독은 “이젠 유명인이 된 만큼 몸 관리를 더 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귀국하면 돼지고기를 먹고 싶다고 했는데 너무 바빠 구경도 못 했다는 정현은 “감독님이 좀 사달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에 김 전 감독은 “상금도 많이 받았는데 네가 쏴야 하지 않니. 지하철 타고 다닐 때 연예인처럼 마스크는 쓰지 말라”고 말했다. 중학교 때 미국 유학을 갔다 적응에 애를 먹고 귀국한 정현은 고1 때인 2012년부터 김 전 감독과 인연을 맺었다. 정현은 “힘든 시기에 나를 잡아주신 감독님이 안 계셨다면 이런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다”고 고마워했다. 김 전 감독은 “현이는 쉽게 만족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더 기대가 된다. 결과에 너무 부담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이가 우리 모두의 꿈을 이뤄주는 그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안양여상 1학년 때 일치감치 태극마크를 단 뒤 10년 가까이 활약한 김 전 감독은 경기 시흥에서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유소년을 지도하고 있다.이날 행사에는 정현 아버지 정석진 씨와 어머니 김영미 씨를 비롯해 윤용일 전 삼성증권 코치, 조윤정 임규태 등 삼성증권 출신 선수, 재미교포인 김인곤 미주대한테니스협회장 등이 참석했다.한편 정현은 2일 공식 기자회견을 가진 뒤 이날 오후에는 모교인 수원 삼일공고 환영행사에 참석했다.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취재진 질문에 그는 “어릴 때는 안 그랬는데 대학생 이후부턴 바퀴벌레가 나오면 라켓으로 덮어놓고 어머니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며 “모기도 손으로 잡는 걸 싫어해 휴지로 싸서 잡는다”고 고백(?)하는 등 특유의 재치 있는 입담을 과시했다.김종석 kjs0123@donga.com·김재형 기자}

    • 2018-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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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현 귀국 후 첫 기자회견,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뭐냐는 질문에…

    2일 서울 중구 반야트리 클럽 앤 스파에서는 정현(22·한국체대)의 귀국 후 첫 공식 기자회견이 열렸다. 정현의 의류 후원사인 라코스테가 주최한 이 행사는 그의 메이저 대회 4강 진출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됐다. 정현은 이 행사에서도 특유의 당당하고 재치있는 입담을 뽐냈다. 행사장에는 본격적인 기자회견에 앞서 정현을 응원하는 지인들의 영상이 흘러나왔다. 특히 정현은 5일 군 입대를 앞둔 같은 테니스 선수인 친형 정홍이 “(너가) 내 동생이어서 참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영상이 나오자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정현은 “형을 비롯해 영상에 나온 제 지인들은 하나같이 참 뻣뻣하고 어색하다”며 “행사가 끝나면 연락을 해서 좀 놀려야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1만5000명의 관중 앞에서도 당당했던 그였지만 알고 보니 벌레 앞에선 한없이 작아지는 남자였다. 무서워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어릴 때는 안 그랬는데 대학생 이후부턴 바퀴벌레가 나오면 라켓으로 덮어놓고 어머니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며 “모기도 손으로 잡는걸 싫어해 휴지로 싸서 잡는다”고 고백(?)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한국 테니스의 선구자가 된 정현은 어린 선수들에게 조언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가 로저 페더러(37·스위스)와 나파엘 나달(32·스페인)을 보며 테니스 선수의 꿈을 꾸었듯, 이젠 그를 동경하며 성장해갈 한국의 ‘정현 키즈’들이다. 정현은 “여기저기서 조언을 듣는데 그게 오히려 어린 선수들에겐 혼란을 가져다 줄 수 있다”며 “어릴 때부터 주관을 가지고 좋은 조언을 귀담아듣고, 자기 기준에 아닌 것 같으면 걸러낼 줄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테니스 동호인들에게 보내는 훈련팁(Tip)도 빼놓지 않았다. 정현의 활약과 함께 테니스붐이 일기 시작하면서 국내 동호인들의 열기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정현은 “자신의 리듬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며 “온몸에 힘을 뺀 상태를 계속 유지하면서 (스윙하는)리듬이 경쾌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현은 “쏟아지는 관심이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는데 훌륭한 선수 모두는 이런 부담감을 극복하고 더 높은 위치로 올라갔을 것”이라며 “감사하게 생각하며 열심히 하겠다”고 각오를 전했다.김재형기자 monami@donga.com}

    • 2018-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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