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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주년을 맞아 모든 불자와 세계인이 ‘참 나’를 찾아가는 수행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마음의 갈등이 없어져야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오고 지구상 갈등과 분쟁, 폭력과 전쟁이 없어질 겁니다.”(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81) 조계종은 15∼17일 3일간 서울 광화문광장 등지에서 ‘한반도 통일과 세계평화를 위한 기원대회―세계 간화선 무차대회’를 연다. 세계 각국의 선승들이 참가하는 기원대회로 해외에서 300여 명의 스님과 이웃 종교 지도자들이 참여한다. 이 행사는 진제 스님의 오랜 발원의 결실이다. 11일 부산 해운대구 해운정사 금장실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기원대회를 준비 중인 종정 스님을 만났다. 종정 스님은 큰 행사를 앞둔 설렘에 표정도 목소리도 무척 밝았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불교계가 처음 여는 행사다. 광화문을 택한 이유가 있나. “광화문(光化門) 광장의 광화란 뜻은 ‘차별 없는 빛이 사방을 덮고 교화가 만방에 미친다’는 뜻이다. 서경(書經) 구절 ‘광피사표 화급만방(光被四表 化及萬方)’에서 차용해 붙여진 이름인데, 이는 차별 없는 불이(不二)의 자비로 일체 중생을 교화하겠다는 무차법회의 의미와도 같다. 지리적으로도 많은 시민들이 모일 수 있다. 이런 법회는 두 번 다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귀한 법회에 모든 국민들이 오셔서 좋은 수행을 하고 가길 바란다.” ―‘참나를 찾아서’란 법어집을 낼 정도로 참선수행을 강조해 왔다. “모든 갈등이 다 사람 마음 가운데 있다. 마음을 잘 쓰면 군자가 되고 못 쓰면 졸장부가 되는 거다. 밥 먹다가, 산책하다, 잠자리에 누웠을 때도 오매불망 참선을 해야 한다. 생활 속에서 마음을 닦으면 가족, 이웃 간에 성낼 일 없고 사회도 정치도 편안한 나날이 된다. 일상에 갇혀 있는 (자신의) 주인공인 참 나를 찾으면 모든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처음엔 어렵게 들려도 목마르면 물 마시고, 배고프면 밥 먹는 것도 똑같은 이치다.” ―세계 각국은 저마다 다른 수행법이 있는데, 간화선만의 특징은 무엇인가. “요즘 미국에선 심오한 진리, 고준한 법문에 매료돼 간화선을 정신문화로 주목하고 있다. 이젠 우리가 미국에 가면 개신교 신자가 돼 돌아오는 게 아니라 참선을 배우고 돌아오는 때가 됐다. 간화선은 바르게 하면 진리의 도가 열린다. 지름길인 셈이다.” ―광화문광장에 아직 세월호 유족들이 있다. 아픔이 해결되지 않고 있는데…. “16일 법문 끝에 세월호 희생자의 영가(영혼)들을 위로할 수 있는 말을 할 예정이다. 영혼들이 극락세계에서 평안하길 바란다.” ―정치권의 갈등이 심하다. “여야가 늘 원수를 만난 것처럼 대한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듯 여와 야가 둘이 아니다. 참선으로 탐하고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의 갈등을 해소해야 평등한 정치를 할 수 있다. 그런 정치를 꽃피워야 국민도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다.” ―대규모 심야 행사인데 준비에 어려움은 없었나. “질서 정연하게 잘 치러야 한다. 그날 참선 수행법을 담은 작은 책자 ‘참나를 찾아서 큰 지혜를’을 광장 양쪽에 쭉 늘어놓고 나눠 줄 예정이다.” ―한국 불교 역사상 최대 규모의 대법회로 보인다. 법어는 준비했나. “‘옛 부처님이 나기 전에 누가 우주의 주인인가. 고요하고 고요해서 그 바탕은 평안한지라. 온 세계가 한 집이요 정이 있고 정이 없는 모든 만물이 한 몸이로다’로 시작하는 법문을 준비하고 있다. 참선을 다해서 인류 평화에 공헌하자는 뜻을 담겠다.”부산=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광복 70주년을 맞아 모든 불자와 세계인이 ‘참 나’를 찾아가는 수행의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마음의 갈등이 없어져야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오고 지구상 갈등과 분쟁, 폭력과 전쟁이 없어질 겁니다.”(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81) 조계종은 15~17일 3일간 서울 광화문광장 등지에서 ‘한반도 통일과 세계평화를 위한 기원대회-세계 간화선 무차대회’를 연다. 세계 각국의 선승들이 참가하는 기원대회로 해외에서 300여 명의 스님과 이웃 종교 지도자들이 참여한다. 이 행사는 진제 스님의 오랜 발원의 결실이다. 11일 부산 해운대구 해운정사 금장실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기원대회를 준비 중인 종정 스님을 만났다. 종정 스님은 큰 행사를 앞둔 설렘에 표정도 목소리도 무척 밝았다. ―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불교계가 처음 여는 행사다. 광화문을 택한 이유가 있나. “광화문(光化門) 광장의 광화란 뜻은 ‘차별 없는 빛이 사방을 덮고 교화가 만방에 미친다’는 뜻이다. 서경(書經) 구절 ‘광피사표 화급만방’(光被四表 化及萬方)에서 차용해 붙여진 이름인데, 이는 차별 없는 불이(不二)의 자비로 일체 중생을 교화하겠다는 무차법회의 의미와도 같다. 지리적으로도 많은 시민들이 모일 수 있다. 이런 법회는 두 번 다시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귀한 법회에 모든 국민들이 오셔서 좋은 수행을 하고 가길 바란다.” ― ‘참나를 찾아서’란 법어집을 낼 정도로 참선수행을 강조해왔다. “모든 갈등이 다 사람 마음 가운데 있다. 마음을 잘 쓰면 군자가 되고 못 쓰면 졸장부가 되는 거다. 밥 먹다가, 산책하다, 잠자리에 누웠을 때도 오매불망 참선을 해야 한다. 생활 속에서 마음을 닦으면 가족, 이웃간에 성낼 일 없고 사회도 정치도 편안한 나날이 된다. 일상에 갇혀 있는 (자신의) 주인공인 참 나를 찾으면 모든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처음엔 어렵게 들려도 목마르면 물마시고, 배고프면 밥 먹는 것도 똑같은 이치다.” ― 세계 각국은 저마다 다른 수행법이 다 있는데, 간화선만의 특징은 무엇인가. “요즘 미국에선 심오한 진리, 고준한 법문에 매료돼 간화선을 정신문화로 주목하고 있다. 이젠 우리가 미국에 가면 개신교 신자가 돼 돌아오는 게 아니라 참선을 배우고 돌아오는 때가 됐다. 간화선은 바르게 하면 진리의 도가 열린다. 지름길인 셈이다.” ―광화문 광장에 아직 세월호 유족들이 있다. 아픔이 해결되지 않고 있는데. “16일 법문 끝에 세월호 희생자의 영가(영혼)들을 위로할 수 있는 말을 할 예정이다. 영혼들이 극락세계에서 평안하길 바란다.” ―정치권의 갈등이 심하다. “여야가 늘 원수를 만난 것처럼 대한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듯 여와 야가 둘이 아니다. 참선으로 탐하고 성내고 어리석은 마음의 갈등을 해소해야 평등한 정치를 할 수 있다. 그런 정치를 꽃 피워야 국민도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다.” ―대규모 심야 행사인데 준비에 어려움은 없었나. “질서 정연하게 잘 치러야 한다. 그날 참선 수행법을 담은 작은 책자 ‘참나를 찾아서 큰 지혜를’을 광장 양쪽에 쭉 늘어놓고 나눠 줄 예정이다.” ―한국 불교 역사상 최대 규모의 대법회로 보인다. 법어는 준비했나. “‘옛 부처님이 나기 전에 누가 우주의 주인인가. 고요하고 고요해서 그 바탕은 평안한지라. 온 세계가 한 집이요 정이 있고 정이 없는 모든 만물이 한 몸이로다’로 시작하는 법문을 준비하고 있다. 참선을 다해서 인류 평화에 공헌하자는 뜻을 담겠다.”부산=박훈상기자 tigermask@donga.com}

휠체어에 앉은 고정욱 작가(55)가 손으로 자신의 다리를 들었다가 놓았다. 1급 지체장애인 그의 다리는 힘없이 툭 떨어졌다. 고 작가는 학생들에게 각자 자신의 다리를 만져보라고 했다. 그는 “‘다리야 고맙다, 다리야 고맙다’고 말해 보세요. 이것만 알고 가도 강의는 대성공”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22일 서울 서대문구 인왕초등학교에서 열린 5월 기적의 책 캠페인 행사에서 고 작가가 ‘책 읽는 미러클 맨’으로 참가해 3, 4학년 240여 명을 대상으로 장애인 인식 개선을 주제로 강연을 했다. 고 작가는 사람이 나이가 들어 지팡이와 휠체어에 의존하는 사진을 보여주며 “장애는 나의 미래 모습일 수 있다”며 “장애인을 차별하는 일은 미래의 나를 차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1992년 등단한 고 작가는 ‘가방 들어주는 아이’ ‘아주 특별한 우리 형’ 등 239권의 책을 출간해 약 350만 부를 판매한 아동문학 베스트셀러 작가다. 그는 인세 수입 중 2억5000만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그의 기부 이야기를 듣고 눈이 휘둥그레진 학생들은 “작가님 멋있어요, 나도 작가 될래요”를 외쳤다. 그는 “휠체어에 앉아 있으면 불쌍하다며 돈을 주고 가는 사람도 있지만 장애인이 가난하다는 생각은 편견”이라며 “장애인도 작가나 운동선수처럼 멋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고 작가가 최근 출간한 ‘아빠의 지휘봉’(꿈틀)이 5월 기적의 책 리스트에 포함됐다. 그는 학생들에게 “책을 읽는 일도 좋지만 기부도 될 수 있다니 일거양득”이라며 “책을 사서 읽는 것만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일은 내게도 남에게도 유익한 일”이라고 했다. 기적의 책 캠페인은 푸르메재단(이사장 김성수)과 교보문고(대표 허정도), 동아일보가 지난해 6월부터 함께 펼치고 있다. 매달 선정한 기적의 책 20종을 교보문고 오프라인 14개 점포에서 구매할 때마다 권당 1000원이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짓고 있는 어린이재활병원에 자동으로 기부된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내게 내려진 바로 다음 행군 명령서는 내 이름을 한 신병이 나치 무장 친위대의 어느 훈련장에서 전차병 훈련을 받게 되었음을 명백히 말해 주었다.” 저 문장 하나가 두꺼운 자서전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1927∼2015)는 2006년 자서전 출간 직전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7세 때 나치 무장 친위대에서 복무한 사실을 고백했다. 나치의 책임을 묻는 작품 ‘양철북’으로 세계적 인정을 받은 그가 자신의 과오를 오랜 기간 감춘 사실이 드러났다. 국내에선 지난달 13일 그라스가 세상을 떠나고 뒤늦게 출간됐다. 오히려 다행이다. 친위대 복무 논란과 상관없이 차분히 읽게 됐으니. 자서전은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1939년부터 첫 소설 ‘양철북’ 초판본이 나온 1959년까지 그의 20, 30대의 삶을 다룬다. 그는 ‘믿음 깊은 소년 나치’였고 무장 친위대를 엘리트 부대로 여기고 동경했던 불명예와 부끄러움을 고백한다. 기록에 남지 않은 과오를 스스로 고백한 것이다. 책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그를 작가로 만든 굶주림이다. 그에겐 세 가지 굶주림이 있었다. 첫째는 미군 포로수용소에서 겪은 배고픔이다. 그는 굶은 적 없이 자랐지만 수용소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신을 갉아먹는 굶주림에 시달렸다. 둘째는 성욕이다. 그는 자신의 페니스에 대해 꽤 상세히 서술하며 주변 여자들에게 지독한 욕정을 품고 돈이 아닌 입으로 매음하던, 마치 발정이 나 헐떡이는 개처럼 굴었던 자신을 고백한다. 첫 굶주림은 상상으로 요리를 하거나 얼어붙은 감자를 먹으면서 몇 시간을 견뎠고, 둘째 굶주림은 자신의 오른손으로 조절했다. 낯 뜨거울 정도로 가감 없는 그의 솔직함이 인간 본질에 대한 사유를 가능케 하지 않았을까. 세 번째 굶주림은 제어할 수도, 제어해 본 적도 없었다. 바로 예술이다. 그는 이렇게 썼다. “종이란 종이는 모조리 더럽힐 정도의 중독성을 통해서도 허기를 해소할 수 없었다. 진저리가 날 정도로 포식해 봐도 그 굶주림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만족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난 언제나 좀 더, 좀 더 하며 허기를 느꼈다.” 그는 조각을 공부하다가 글로 눈을 돌린다. 시로 등단한 그는 몇 편의 시를 방송국 심야프로그램에 팔고 받은 원고료로 타자기에 쓸 종이를 샀다. ‘양철북’을 쓸 당시의 그의 회상엔 희열이 느껴진다. “한 장 한 장. 단어들과 이미지들이 재촉했고, 번갈아가며 상대의 뒤꿈치를 밟았다. 너무도 많은 것들이 냄새 맡고, 맛보고, 관찰하고, 이름 붙여지기를 원했다.” 자서전엔 문인 그라스에 관한 여러 사연이 기록돼 있다. 그는 어머니 대신에 가게 외상값을 받기 위해 여러 집을 다니면서 키운 관찰력으로 사실적인 산문 쓰기 능력을 길렀고 담배를 사면 받을 수 있는, 예술 작품이 인쇄된 쿠폰을 모아 예술 공부를 했다. 강박에 가까운 글쓰기를 위해 담배를 물게 됐다. ‘양파 껍질을 벗기며’의 후속편 격인 2008년 출간한 자전소설 ‘암실 이야기’도 함께 출간됐다. 글쓰기에 몰두하느라 4명의 여성에게서 얻은 8명의 자식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미안함을 ‘또’ 글쓰기로 풀어냈다. 성욕과 식욕, 두 욕구에 멈춰 있었다면 그는 작가가 되지 못했을 거다. 보통 사람은 왜 창작 욕구가 성욕이나 식욕처럼 본능이 될 수 없는지 좌절하다가도, 예술가의 어두운 면을 마주하니 죽을 때까지 채워지지 않을 그 허기가 간단치 않음이 느껴져 다행이다 싶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고하 송진우(古下 宋鎭禹·1890∼1945) 선생 탄생 125주년 겸 서거 70주기 추모식이 8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서 열렸다. 고하 송진우 선생 기념사업회(이사장 김창식)가 주최하고 국가보훈처와 광복회, 동아일보가 후원한 이날 추모식은 선생의 장손인 송상현 유니세프한국위원회 회장(서울대 명예교수)을 비롯해 김황식 전 국무총리,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 이인호 KBS 이사장, 남시욱 전 문화일보 사장,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 안중현 서울지방보훈청장, 안홍순 광복회 부회장, 윤주 매헌기념관장, 윤용 부정부패추방시민연합회 상임대표 등 각계 인사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김 이사장은 추모사에서 “올해는 광복 70주년이자 선생 서거 70주기를 맞는 해인데, 일본은 아베 신조 정권이 집권한 후 일제의 망령이 되살아나 위안부 문제 등 불행한 한일관계의 근대역사를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군국주의 부활의 길로 들어섰다”며 “역사는 언제나 진리와 정의가 승리한다는 선생의 정신을 잘 계승해 부강한 선진 복지국가로 가꿔나가자”고 말했다. 이날 김 이사장은 선생의 일대기를 엮은 전기 만화책 ‘항일독립과 민주건국의 등불 고하 송진우’를 영전에 봉정했다. 윤덕영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은 ‘고하 송진우의 근대국가 사상과 민족운동사에서의 위상’을 주제로 추모 강연을 했다. 송상현 명예교수는 유족인사에서 “해외에서 풍찬노숙하며 희생을 치르는 동안 국내에서 구심점을 잡은 분들 덕분에 효율적으로 광복이 왔다”며 “그런 점에서 정부도 없는 시절 동아일보 하나로 중심을 잡은 고하 선생을 추모하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기념사업회는 올해 서거 70주기를 맞아 10월 20일 ‘고하 송진우 선생의 한국 독립과 건국에 관한 이념과 사상’을 주제로 학술세미나를 연다. 고하 선생은 일제강점기 중앙학교 교장을 지내며 국내외 각계 지도자와 제휴해 3·1운동을 계획했고 동아일보 3대, 6대, 8대 사장을 지냈다. 광복 후 국민대회준비위 위원장, 한국민주당 수석총무로 활동하다 1945년 12월 극우 청년들에게 암살됐다. 정부는 1963년 고하 선생에게 건국공로훈장을 추서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히어 애프터’는 영 능력을 소재로 했다. 맷 데이먼이 죽은 사람의 메시지를 듣는 영매로 나온다. 손을 잡으면 그 사람이 떠나보낸 이의 이미지가 떠오르고, 남은 이에게 해주고픈 말이 들려온다. 꼭 해야 했던 말, 그러나 하지 못했던 말을 매개로 죽은 자와 산 자간에 교감이 이뤄진다. 살다보면 꼭 해야 할 말을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말을 하지 않아도 상대가 짐작할 거라고 믿거나 굳이 얘기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남편은 집에서 만큼은 모두 잊은 채 쉬고 싶다. 소파에 벌렁 누워 TV를 켜고 멍하니 본다. 그가 추구하는 바는 ‘편안함’이다. 아내는 그런 남편과 대화를 시도하지만 시큰둥한 반응만 돌아올 뿐이다. 아내가 원하는 것은 소통을 통한 ‘행복’이다. 그러나 단절감의 높은 벽만 확인할 뿐이다. 남편이 생략한 말은 “나 지쳤으니까 기다려줘”일 것이다. 아내 또한 “하고 싶은 말이 많으니까 얘기 좀 들어줘”라고 원하는 바를 전할 필요가 있다. 이야기의 목적이나 맥락이 명확할 때에야 남편은 집중력을 발휘하며 반응의 정도를 정할 수 있다. 하지만 상당수의 부부가 서로에게 해야 할 말은 건너 뛴 채 자기가 원하는 쪽으로 직행하고는, 그로 인해 야기되는 불만을 쏟아낸다. 탓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관계가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알기 어렵게 된다. 다툴 때마다 “(생략한 부분을) 꼭 말로 해야 알아듣느냐”고 답답해하는데 사실, 그런 능력은 영화 속의 영 능력자도 웬만해서는 발휘할 수 없다. 맷 데이먼도 손을 마주 잡아야만 영혼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마음을 읽는 능력이 언제나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밝음과 어두움을 함께 가지고 있기 마련이며 부부 사이라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말 안 해도 알아서 이해해주겠거니’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들키기 싫은 점마저 간파당할 리스크를 자청하는 셈이기도 하니까. 영화의 맷 데이먼은 요리교실에서 친해진 여성의 간청에 못이겨 죽은 아빠의 말을 전해주지만 그 과정에서 미처 예상치 못했던 괴로운 기억을 떠올린 그녀는 떠나버리고 만다. 이따금 이심전심 통하는 부부를 주변에서 발견할 수 있으나 아무나 흉내낼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흉금 없는 대화를 오랜 시간에 걸쳐 나눔으로써 서로에 대한 이해와 신뢰, 그리고 견디는 힘이 쌓인 사이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습관처럼 생략했던 말들부터 살려보면 어떨까. 그 몇 마디 말이 차근차근 쌓이는 과정에서 집안 분위기가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작가 한상복}

“이딴 만화를 싸질러 놓고 연재료를 받냐.” “초딩만도 못한 작가 놈아 좀 조져야겠다. 지금 나와 시×.” 포털사이트 연재 웹툰에 달린 독자 댓글이다. 10년 만에 급성장한 웹툰은 드라마, 영화로 제작되며 ‘콘텐츠 화수분’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웹툰에 달리는 독자의 일부 댓글에선 작가의 창작물에 대한 예의는 찾아볼 수 없다. 걸레짝 취급하는 댓글도 수시로 달린다. 댓글 기능이 있는 포털사이트 업체들은 욕설이나 비속어, 근거 없는 비방이 담긴 댓글을 관리하고 있지만 모두 막을 순 없는 실정이다. 여기에 자신의 입맛에 웹툰이 맞지 않는다거나 캐릭터나 줄거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웹툰의 평점을 최하점으로 주는 ‘별점 테러’를 놀이처럼 가한다. 인기 웹툰 작가 A 씨는 “작업이 잘 안 풀릴 때 작품을 조롱하는 댓글을 보면 당장 웹툰을 관두고 싶다”고 했다. 다른 작가 B 씨도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린 웹툰의 그림체, 캐릭터를 깔아뭉개는 댓글을 볼 때면 화가 나서 손이 달달 떨린다”며 “소신대로 웹툰을 그려야 하는데 댓글에 신경을 안 쓸 수도 없으니 스트레스가 크다”고 했다. 작가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댓글은 웹툰을 공장에서 기계로 찍어낸 상품 취급하는 글들이다. 특히 건강상의 이유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마감이 늦어질 때는 “감히 내게 만화를 제때 상납하지 못했으니 죽어버려라”는 댓글이 올라오고 비난이 쏟아진다. 2006년 한 웹툰 작가는 가족 건강 문제로 연재를 미뤘다가 “가족이 죽길 바란다”는 ‘패륜 댓글’을 보고 충격을 받아 한동안 작품 활동을 쉬기도 했다. 송형석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100개의 칭찬보다 1개의 비난이 더 오래 남는다”며 “특히 작가는 자신의 창작물을 비난하는 공격적인 댓글을 볼 때 작가 자신에 대한 비난보다 더 큰 심리적인 타격을 입는다”고 말했다. 반면 좋은 댓글은 작가와 소통하는 순기능도 있다. 웹툰 ‘여탕보고서’의 마일로 작가는 여성임에도 댓글에 달린 남성 독자의 응원과 경험담을 기초로 남탕보고서 편을 그려 인기를 모았다. 마일로 작가는 “남탕을 갈 수 없지만 독자들의 댓글 덕에 색다른 웹툰을 그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준구 네이버 웹툰&웹소설CIC 대표는 “독자가 준 아이디어로 만든 웹툰 보조 캐릭터가 주인공보다 더 인기를 모으고 스토리를 탄탄하게 만든 사례도 있다”며 “생산적인 댓글은 웹툰 콘텐츠를 더 활성화시키는 순기능을 한다”고 말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입시에선 4칸 만화도 중요해. 길지 않은 분량이지만 극적 반전을 담은 스토리텔링을 담으면 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어.” 지난달 2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만화입시 전문 A학원 강의실. 10여 명의 학생은 국영수 문제집을 푸는 대신에 만화를 그리며 일대일 첨삭지도를 받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최지영 양(18·경기여고 3년)은 “웹툰 작가가 꿈이라 만화학과에 진학하기 위해 다니고 있다”며 “학교에서도 반에서 5, 6명은 장래 희망이 웹툰 작가”라고 말했다. 웹툰이 영화와 드라마 원작으로 인기를 끄는 등 콘텐츠 시장에서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떠오르면서 ‘사교육 1번지’ 강남에도 만화입시 전문학원이 성업 중이다. A만화입시학원의 공덕희 원장은 “서울대에 만화학과가 생기지 않는 이상 강남에서 만화입시학원이 성공할 수 없다는 속설이 깨진 셈”이라며 “서대문구와 광진구에 먼저 생겼는데 너무 멀다는 강남 학부모들의 요청이 많아 대치동에 문을 열었다”고 말했다. 서초동에서 B만화유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황덕근 원장은 “(웹툰이 원작인) 드라마 ‘미생’이 인기를 끈 이후 일본 등 만화 선진국으로 자녀를 유학 보내려는 학부모의 문의가 두 배가량 늘었다”며 “부모 직업도 의사, 교수, 연구원 등 전문직종이 많다”고 말했다. 공 원장도 “요즘 강남의 학부모들은 웹툰 산업 구조부터 최근 트렌드까지 줄줄 꿰고 있을 만큼 적극적”이라고 말했다. “만화 하면 굶어죽는다”는 학부모의 부정적 인식을 바꾸는 데는 고수익을 내는 웹툰 작가의 등장이 한몫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웹툰 실태조사에 따르면 네이버 등 대형 포털의 인기 웹툰 작가는 월 500만∼600만 원의 원고료에 광고 수입 등을 더해 월 8000만 원을 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캐릭터 수입까지 하면 수억 원의 연봉을 버는 웹툰 작가도 있다”고 말했다. 재수생 김모 씨(19·여)는 “부모님도 웹툰을 즐겨 보기 때문에 웹툰 작가가 되겠다고 했을 때 반대가 없었다”고 말했다. 만화가 입시 영역으로 들어온 데는 달라진 환경도 작용했다. 과거 출판 만화 시절에는 유명 작가 문하생으로 들어가 도제식 교육을 거쳐야 했다. 최근에는 웹툰이 중심이 되고 이현세, 윤태호 등 유명 만화가들이 강단에 서면서 만화학과의 인기가 높아진 것. 만화학과들도 웹툰 수업 비중을 높이고 웹툰 작가를 교수로 초빙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만화콘텐츠스쿨 교수는 “일부 만화학과는 경쟁률이 10 대 1을 넘을 정도로 인기”라고 말했다. 현재 만화학과를 둔 대학은 전국에 18곳이다. 만화계도 이런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8월 열릴 부천국제만화축제에서 ‘대치동에 만화학원이?’(가제)라는 제목의 심포지엄을 연다. 발제를 맡은 김병수 목원대 만화애니메이션과 교수는 “웹툰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수요에 비해 실력 있는 웹툰 작가가 부족한 상황”이라며 “하지만 만화 창작은 오랜 기간 내공을 단단하게 쌓아야 하는 직업인 만큼 최근의 웹툰 붐만 고려해 진로를 결정해선 위험하다”고 말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리안 모리아티, 그레구아르 들라쿠르, 톰 페로타…. 최근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 소설 분야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이름을 올린 낯선 외국 작가들이다. 국내 출간 첫 책, 또는 두 번째 책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지난해 국내 소설은 해외 소설에 비해 부진했다. 세월호 참사로 슬픔에 빠진 국내 인기 작가의 신작 소설이 나오지 않은 데 비해 무라카미 하루키, 파울루 코엘류 등 거물급 해외 작가의 신작은 잇달아 출간됐다. 올해 역시 해외 작품이 강세를 띠고 있다. 해외 소설엔 있고, 국내 소설엔 없는 흥행 비결이 무엇일까. 베스트셀러 해외 소설을 출간한 편집자, 주요 출판사 국내 소설 편집자,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 MD 등 10명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재미 소재 마케팅 등 3가지 요소를 들었다. 》○ “한 번 펼치면 못 덮어” 해외 소설에 있는 첫 번째 비결은 ‘재미’였다. 해외 소설 편집자 A 씨는 “인기를 모은 해외 소설의 국내 후기를 찾아 읽어보면 ‘단숨에 읽었다’는 말이 많다. 책의 경쟁 상대가 스마트폰인 만큼 장르성이 강해 읽는 재미를 주는 소설이 아니면 더는 팔리기 어렵다”고 답했다. 호주 작가 리안 모리아티가 국내에서 두 번째 출간한 ‘허즈번드 시크릿’은 한 달 만에 4만 부가 팔렸다.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상위권에 오르며 기존 강자인 일본의 히가시노 게이고, 스웨덴의 요나스 요나손을 밀어냈다. 이 작품은 영미권에서 2013년 출간됐고 1000만 부 이상 팔렸다. ‘반드시 내가 죽은 뒤에 열어 볼 것’이라고 써놓은 남편의 비밀 편지를 읽은 평범한 주부가 주인공인 미스터리 소설이다. 파격적 소재도 해외 소설의 특징이다. 그레구아르 들라쿠르의 ‘행복만을 보았다’에는 어린 딸을 총으로 쏘는 아버지가 등장하고, 톰 페로타의 ‘레프트오버’에선 한순간 인구의 2%가 사라져 버린다. 해외 소설 편집자 B 씨는 “색다른 소재 안에 가족, 행복 같은 보편적인 주제를 녹여 남녀노소의 공감을 사는 것이 인기를 모은 해외 소설의 특징”이라며 “읽기는 가볍지만 소설이 주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고 했다. 해외 소설 편집자 C 씨는 “작품성과 대중성이 검증된 해외 소설의 경우 확신을 갖고 적극적인 마케팅을 할 수 있어 국내 소설보다 유리하다”고 답했다. 국내 소설 편집자 D 씨도 “예전보다 좋은 번역가가 훨씬 많아 해외 소설이 양과 질에서 국내 소설을 앞지르고 있다”고 했다.○ “작가 중심에서 독자 중심으로” 국내 소설에는 독자와의 교감이 없다는 점이 지적됐다. 국내 소설 편집자 E 씨는 “국내 작가는 여전히 순문학 중심으로 아름다운 문장에 집착하지만 요즘 독자들은 문장에 대한 미감을 잃은 지 오래”라고 답했다. 서점 MD인 F 씨는 “다양한 대중문화의 세례를 흠뻑 맛보고 자라 재미와 자극을 원하는 20, 30대와 작가들은 전혀 소통을 못하고 있다. 어둡고 암담한 현실을 주로 다루니 갈수록 국내 소설은 무겁다는 이미지만 남는다”고 했다. 출판사들이 작가 모시기에 급급해 독자를 중심에 놓는 소설을 기획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내소설 편집자 G 씨는 “영화화 같은 문학계 외부 이슈가 없으면 국내 소설은 출간돼도 주목할 만한 반응을 얻지 못한다. 출판사가 작가 중심 출판에서 독자를 위한 장르 출판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라고 말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리안 모리아티, 그레구아르 들라쿠르, 톰 페로타…. 최근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 소설 분야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이름을 올린 낯선 외국 작가들이다. 국내 출간 첫 책, 또는 두 번째 책이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랐다. 지난해 국내 소설은 해외 소설에 비해 부진했다. 세월호 참사의 여파로 국내 인기 작가의 신작 소설이 나오지 않은데 비해 무라카미 하루키, 파울루 코엘류 등 거물급 해외 작가의 신작은 잇달아 출간됐다. 올해 역시 해외 작품이 강세를 띠고 있다. 해외 소설엔 있고, 국내 소설엔 없는 흥행 비결이 무엇일까. 베스트셀러 해외 소설을 출간한 편집자, 주요 출판사 국내소설 편집자,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 MD 등 10명에게 그 이유를 물으니 재미 소재 마케팅 등 3가지 요소를 들었다. ● “한 번 펼치면 못 덮어” 해외 소설에 있는 첫 번째 비결은 ‘재미’였다. 해외 소설 편집자 A 씨는 “인기를 모은 해외 소설의 국내 후기를 찾아 읽어보면 ‘단숨에 읽었다’는 말이 많다. 책의 경쟁 상대가 스마트폰 인만큼 장르성이 강해 읽는 재미를 주는 소설이 아니면 더는 팔리기 어렵다”고 답했다. 호주 작가 리안 모리아티가 국내에서 두 번째 출간한 ‘허즈번드 시크릿’은 한 달 만에 4만 부가 팔렸다.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상위권에 오르며 기존 강자인 일본의 히가시노 게이고, 스웨덴의 요나스 요나손을 밀어냈다. 이 작품은 영미권에서 2013년 출간됐고 1000만 부 이상 팔렸다. ‘반드시 내가 죽은 뒤에 열어 볼 것’이라고 써놓은 남편의 비밀 편지를 읽은 평범한 주부가 주인공인 미스터리 소설이다. 파격적 소재도 해외 소설의 특징이다. 그레구아르 들라쿠르의 ‘행복만을 보았다’에선 어린 딸을 총으로 쏘는 아버지가 등장하고, 톰 페로타의 ‘레프트오버’에선 한 순간 인구의 2%가 사라져 버린다. 해외 소설 편집자 B 씨는 “색다른 소재 안에 가족, 행복 같은 보편적인 주제를 녹여 남녀노소의 공감을 사는 것이 인기를 모은 해외 소설의 특징”이라며 “읽기는 가볍지만 소설이 주는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고 했다. 해외 소설 편집자 C 씨는 “작품성과 대중성이 검증된 해외 소설의 경우 확신을 갖고 적극적인 마케팅을 할 수 있어 국내 소설보다 유리하다”고 답했다. 국내 소설 편집자 D 씨도 “예전보다 좋은 번역가가 훨씬 많아 해외소설이 양과 질에서 국내소설을 앞지르고 있다”고 했다.● “작가 중심에서 독자 중심으로” 국내 소설에는 독자와 교감이 없다는 점이 지적됐다. 국내 소설 편집자 E 씨는 “국내 작가는 여전히 순문학 중심으로 아름다운 문장에 집착하지만 요즘 독자들은 문장에 대한 미감을 잃은 지 오래”라고 답했다. 서점 MD인 F 씨는 “다양한 대중문화의 세례를 흠뻑 맛보고 자라 재미와 자극을 원하는 20, 30대와 작가들은 전혀 소통을 못하고 있다. 어둡고 암담한 현실을 주로 다루니 갈수록 국내소설은 무겁다는 이미지만 남는다”고 했다. 출판사들이 작가 모시기에 급급해 독자를 중심에 놓는 소설을 기획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내소설 편집자 G 씨는 “영화화 같은 문학계 외부 이슈가 없으면 국내 소설은 출간돼도 주목할 만한 반응을 얻지 못한다. 출판사가 작가 중심 출판에서 독자를 위한 장르 출판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라고 말했다.박훈상기자 tigermask@donga.com}

정희선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60·사진)은 1978년 약무사로 국과수에 입사했다. 그는 최초의 여성 법과학 부장, 최초의 여성 국과수 원장을 지내며 후배 국과수 요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2012년 7월 국과수를 떠날 때 그는 한 가지 굳은 결심을 했다. 매순간 집요하게 증거물과 씨름하는 국과수 직원들의 노고를 알리기 위해 책을 쓰기로 한 것. 현직에 있을 때도 책을 쓸까 했지만 행여나 스스로 힘들다고 투정 부리는 것 같아 접었다. 그렇게 마음먹었던 책이 3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책에는 듀스 김성재 사망 사건, 강호순 연쇄살인 사건, 서래마을 영아 살해 사건 등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발로 뛴 국과수 요원들의 활약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국과수 내 미세물질실, 범죄심리실, 영상연구실 같은 우리가 잘 몰랐던 내부 이야기도 생생한 사례와 함께 알려준다. 지난달 30일 대전에서 후학을 양성 중인 정 원장을 전화로 만났다. ―첫 책을 냈다. 과학수사와 글쓰기 중에 무엇이 더 어렵나. “3년 동안 끙끙 앓았다. 직원들이 고생했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는데 문장으로 표현이 잘되지 않아 어려웠다. 우리 직원들이 잘 조명돼야 한다,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부담감도 컸다. 드디어 책이 나왔으니 조만간 국과수에 가서 책을 전달할 생각이다.” ―국과수의 슬로건 ‘진실을 밝히는 과학의 힘’이 실감났다. “그래도 결국 사람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해양경찰 박경조 경위를 둔기로 가격한 중국인 선원을 찾기 위해 영상을 사진 1000여 장으로 쪼개어 다시 조합하고, 설날 연휴에도 석해균 선장에게 총격을 가한 해적을 찾기 위해 머나먼 아덴 만으로 날아가 멜빵에 묻은 땀에서 흔적을 찾았다. 특히 모든 게 불타 분진과 냄새만 남은 화재 현장에서 요원들은 화재 원인을 찾으려고 며칠씩 고생한다. 과학의 도움을 받았지만 결국 사람의 ‘근성’이 해낸 일이다.” ―책을 읽고 국과수 요원의 꿈을 키우는 사람이 늘겠다. “내가 항상 바라는 일이 있다. 국과수에 실력이 뛰어난 정예부대가 들어가는 것이다. 현재 일하는 곳도 국내 유일의 분석 전문가 양성 기관이다(그는 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장이다). 아직 제자 중에 국과수에 들어간 사람은 없지만 나중에 후배를 배출하면 가장 행복할 것 같다.” 정 원장은 서문에 전 상관이자 남편인 유영찬 전 국과수 소장에게 감사하다고 썼다. 무엇이 그리 감사했을까. “남편이 막 뭐라고 하면서 질책을 많이 했어요. 끝도 못 맺을 거면 시작은 왜 했냐고요. 그런데 조언이 정확해서 도움이 많이 됐어요. 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저자가 소설적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일본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의 1999년 12월 어느 날은 이렇다. 깊은 밤, 겐자부로는 자정이면 다시 잠에서 깰 아들을 기다리며 술을 마신다. 선천성 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들은 강박적으로 자정 무렵이면 꼭 잠에서 깨어나 대변을 봤다. 그는 어느 날 밤, 볼일을 끝낸 아들이 제 방으로 돌아왔을 때 침대에 눕히고 담요로 포근하게 감싸줬다. 다음 날 클래식을 좋아하는 아들과 신주쿠에 가기로 약속도 했다. 겐자부로가 잠을 자러 가는데, 아들 방 쪽에서 ‘흰빛’이 일렁거렸다. 소설 속 겐자부로의 하루는 장애 아들을 키운 체험을 바탕으로 생의 불행과 고뇌, 인간 실존 문제를 작품에 녹여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 ‘흰빛’은 겐자부로의 소설적 영감일 거다. 저자는 겐자부로뿐만 아니라 시인 김수영, 가수 마이클 잭슨, 배우 틸다 스윈턴, 화가 에드워드 호퍼 등 실존 예술가 12명의 특별한 하루를 엮어 연작 장편소설로 썼다. 성기완 시인은 “‘순간의 전기’라는 새로운 전기적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평했다. ‘흰빛’이라는 모티프가 소설의 인물들 전체를 관통한다. 참혹한 6·25전쟁을 겪은 김수영 시인이 ‘모든 통증과 설움과 분노를 바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 그날, 아버지의 꼭두각시처럼 춤 연습을 하던 마이클 잭슨에게 ‘너만의 음악’을 하라는 목소리가 들리던 그 순간 ‘흰빛’이 다가온다. 그 빛은 삶의 무게 속에서 건져 올린 영감이고 예술적 혼이리라. 의심병 탓에, 예술가의 하루가 실화에 근거했는지 인터넷을 검색해 봤다. 곧 어리석은 짓임을 깨닫고 관뒀다. 믿지 않는 자에겐 ‘흰빛’이 보이지 않을 테니.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정희선 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장(60·이하 국과수)은 1978년 약무사로 국과수에 입사했다. 그는 최초의 여성 법과학 부장, 최초의 여성 국과수원장을 지내며 후배 국과수 요원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2012년 7월 국과수를 떠날 때 그는 한 가지 굳은 결심을 했다. 매순간 집요하게 증거물과 씨름하는 국과수 직원들의 노고를 알리기 위해 책을 쓰기로 한 것. 현직에 있을 때도 책을 쓸까 했지만 행여나 스스로 힘들다고 투정부리는 것 같아 접었다. 그렇게 마음먹었던 책이 3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책에는 듀스 김성재 사망사건, 강호순 연쇄살인 사건, 서래마을 영아 살해 사건 등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발로 뛴 국과수 요원들의 활약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국과수 내 미세물질실, 범죄심리실, 영상연구실 같은 우리가 잘 몰랐던 내부 이야기도 생생한 사례와 함께 알려준다. 1일 대전에서 후학을 양성 중인 정 원장을 전화로 만났다.― 첫 책을 냈다. 과학수사와 글쓰기 중에 무엇이 더 어렵나. “3년 동안 끙끙 앓았다. 직원들의 고생했던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는데 문장으로 표현이 잘 되지 않아 어려웠다. 우리 직원들이 잘 조명돼야 한다, 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부담감도 컸다. 드디어 책이 나왔으니 조만간 국과수에 가서 책을 전달할 생각이다.”― 국과수의 슬로건 ‘진실을 밝히는 과학의 힘’이 실감났다. “그래도 결국 사람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해양경찰 박경조 경위를 둔기로 가격한 중국인 선원을 찾기 위해 영상을 100여 장 사진으로 쪼개어 다시 조합하고, 설날 연휴에도 석해균 선장에게 총격을 가한 해적을 찾기 위해 머나먼 아덴만으로 날아가 멜빵에 묻은 땀에서 흔적을 찾았다. 특히 화재 현장에서 요원들은 모든 게 불타 분진과 냄새만 남은 곳에서 화재 원인을 찾으려고 며칠씩 고생한다. 과학의 도움을 받았지만 결국 사람의 ‘근성’이 해낸 일이다.”― 책을 읽고 국과수 요원의 꿈을 키우는 사람이 늘겠다. “내가 항상 바라는 일이 있다. 국과수에 실력이 뛰어난 정예부대가 들어가는 것이다. 현재 일하는 곳도 국내 유일의 분석전문가 양성기관이다(그는 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장이다). 아직 제자 중에 국과수에 들어간 사람은 없지만 나중에 후배를 배출하면 가장 행복할 것 같다.” 정 원장은 서문에 전 상관이자 남편인 유영찬 전 국과수 소장에게 감사하다고 썼다. 무엇이 그리 감사했을까. “남편이 막 뭐라고 하면서 질책을 많이 했어요. 끝도 못 맺을 거면 시작은 왜 했냐고요. 그런데 조언은 정확해서 도움이 많이 됐어요. 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썼습니다.”박훈상기자 tigermask@donga.com}

#사례1 “그녀는 괴물 같은 소설 아마존이다.” 2011년 3월 출간된 정유정의 소설 ‘7년의 밤’ 표지에 적힌 추천사다. 추천사를 쓴 사람은 소설가 박범신이었다. 정유정은 당시 전작 ‘내 심장을 쏴라’(2009년)로 지명도를 얻었지만 대중적 인기를 모으지는 못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유정을 ‘여전사’에 비유한 박범신의 추천사는 화제가 됐고 ‘7년의 밤’도 베스트셀러가 됐다. #사례2 “나만 좋아했으면, 싶은 사람이어서. 이럴 땐 누군가를 혼자 소유하고 싶은 이 마음이 너무나 인간적이어서 내가 마음에 든다.” 2013년 2월 나온 에세이 ‘완벽한 날들’의 추천사. 미국 작가 메리 올리버가 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작가인 데다 책의 내용도 어려워 출판사는 고민이 컸다. 하지만 소설가 김연수가 감각적인 추천사를 썼고, ‘완벽한 날들’은 큰 호응을 얻기 시작했다. 책의 서문이나 표지, 혹은 띠지에 들어간 추천사는 이처럼 책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기도 한다. 출판사 관계자들이 추천사를 써줄 사람을 백방으로 찾아다니는 이유다. 누가 쓴 추천사가 가장 영향력이 있을까?○ 2015년 책 추천사 파워랭킹 동아일보 취재팀은 20∼27일 출판사 대표, 출판평론가, 서점 관계자 등 30명에게 ‘누가 추천사를 써야 책의 영향력과 판매가 높아지나’라는 내용의 설문조사를 한 결과 문학(소설 에세이)은 영화평론가 이동진, 인문·교양서는 유시민 전 의원, 과학서는 정재승 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가 추천사 필자 파워랭킹 1위를 각각 차지했다(표 참조). 문학의 경우 이동진에 이어 소설가 김연수가 2위를 차지했다. 소설가 공지영, 김훈·신경숙, 김영하 순이었다. 젊은 여성층에서 호감도가 높은 방송인 허지웅이 공동 6위를 기록한 반면에 영향력이 큰 것으로 알려진 이외수 조정래 등 유명 작가들이 공동 7위 안팎에 머문 점이 눈에 띈다. 인문·교양서의 경우 유시민 전 의원에 이어 철학자 강신주, 비평가 진중권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과학서적은 정재승 교수와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압도적인 ‘양강’ 구도를 형성했다. 장대익 서울대 교수, 김대식 KAIST 교수, 이덕환 서강대 교수가 뒤를 이었다. 경제·경영서의 경우 현직에 있는 대기업 최고경영자(CEO)가 추천사를 써줄 때 가장 파괴력이 크다는 응답이 많았다. ○ 추천사 한 줄에 200만 원? 하지만 상위 순위에 오른 추천사 필자에게 글을 받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아라크네 김연홍 대표는 “공지영 작가에게 부탁했더니 다 읽은 후 자신과 ‘결’이 맞지 않는다며 추천사를 써주지 않았다”며 “유시민 진중권 등도 마찬가지다. 추천사의 희소성이 있으니 독자가 믿는 것”이라고 말했다. 추천사를 써주면 얼마를 받을까? 출판계에 ‘추천사 품앗이’란 말이 있다. 친분이 있는 작가, 출판사끼리 새 책이 나오면 서로 추천사를 공짜로 써준다. 반면 원고료를 주고 추천사를 받을 경우 띠지에 들어가는 한 문장 추천사는 10만∼30만 원, 서문에 들어가는 긴 추천사는 최소 20만∼50만 원, 많게는 100만 원이 넘어간다. 한 대형서점 관계자는 “이외수 작가가 잘나갈 때 한 줄 추천사를 쓰면 200만 원 이상 받는다는 소문이 돌았다”고 말했다. 책을 읽지 않고 추천사에 이름만 빌려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최근 5년 사이 추천사를 돈을 받고 써주는 광고 카피로 인식하는 독자가 많아졌다는 후문이다.○ 권위와 전문성에서 확산력과 친근함으로 과거 이문열 황석영 조정래 등 대가들의 추천이 중요했다면 최근에는 추천사를 써주는 인물의 ‘확산력’이 더욱 중요해졌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추천사를 쓴 사람의 인지도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독자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느냐가 핵심”이라며 “이동진 유시민 정재승의 공통점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팟캐스트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반면에 아무리 ‘대가’라고 해도 SNS 등에서 활동하지 않으면 독자들과 교감이 적고, 추천사를 써도 구매로 연결되지 않는다. 설문 대상 출판인 중 상당수는 “연예인이 서평을 써주면 좋겠다”고 했다. 연예인이 책을 소개해 ‘초대박’이 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알랭 드 보통의 ‘불안’. 이 책은 내용이 쉽지 않아 판매부수가 적었지만 2009년 배우 장동건이 ‘박중훈쇼’(KBS2)에 나와 소개한 후 수만 권이나 팔렸다. 출판 전문가들은 가장 추천사를 받고 싶은 연예인으로 가수 유희열을 꼽았다. 이어 이적 김동률 윤상 성시경 순이었다. 방송인 김제동, 가수 이효리, 모델 장윤주의 이름도 나왔다. 글항아리 강성민 대표는 “전체 독자층 중 20, 30대 여성의 비율이 높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들이 선호할 만한 ‘다정하고 지적인 오빠’ 느낌의 인물이 추천사 필자로 선호되고 있다”고 말했다.김윤종 zozo@donga.com·박훈상 기자}

“딱 3년 안에 성공하지 못하면 만화를 그리지 않겠다.” 1974년 데뷔한 27세 청년 허영만(68)의 각오는 날이 서 있었다. 데뷔 3개월 만에 ‘각시탈’이 인기를 끌어 계속 만화를 그렸다. 40년이 흘러 청년은 머리카락이 빠지고 두꺼운 안경을 낀 중년이 됐다. 지난달 그는 커다란 벽에 지금까지 그린 만화 제목을 손으로 썼다. 모두 215편. 쓸 때마다 그의 얼굴이 벌게졌다. 공장에서 기계로 찍듯 만화를 그린 대본소 만화 시절 작품 중에는 불태우고 싶은 원고도 있어서다. 제목을 다 쓰고선 “부끄러울 정도로 너무 많이 했습니다. 참으로 부끄럽습니다”라고 썼지만 영욕의 역사가 담겨 있기에 품고 가기로 했다. 40년의 허영만 만화 인생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허영만 전―창작의 비밀’이 29일부터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다. 서울 예술의전당이 국내 만화가를 초대한 것은 처음이다. 개막을 앞둔 28일 전시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허 씨는 “첫 번째 만화 전시가 성공해야 제2, 3의 한국 만화 전시가 열릴 수 있다”며 “‘나는 아직도 진화하고 있다’란 말을 가장 좋아하는데 허영만의 과거뿐 아니라 미래도 선보이고 싶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에선 허 씨가 그린 원화 15만 장과 드로잉 5000장 중 500여 점을 선별했다. ‘각시탈’ 초판본 원화 149장은 최초로 대중에게 공개된다. 갱지, 달력, 대학노트 등에 기록한 스토리, 아이디어, 메모를 통해 그의 창작 과정도 엿볼 수 있다. 허 씨는 전시관 중 ‘창작의 비밀―캐릭터, 연출, 스토리’ 전시실에서 쉽사리 발을 옮기지 못했다. 자신의 손을 거울에 비춰 가며 도박사의 손을 생생히 묘사해 낸 ‘타짜’, 전국 야구장을 모두 취재해 야구장 모습을 사실적으로 살린 ‘제7구단’ 등의 원화를 볼 때마다 추억이 떠오르는 듯했다. 특히 그는 ‘비트’ 원화 앞에서 “제가 봐도 정말 잘 그렸다”며 “같은 오른손으로 그리지만 작품 성격에 따라 새 그림체로 그리려고 무척 노력했다”고 말했다. 허영만에게 다 있지만 딱 하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여자 캐릭터. 전시관에서 여자 캐릭터는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그는 “만화 초기엔 여성을 등장시키지만 한참 진행하다 보면 여자가 사라진다. 여자를 예쁘게 못 그리니까 자꾸 없어지는 게 단점”이라고 했다. 허 씨의 문하생 출신인 ‘미생’ 윤태호 작가가 문하생 시절 허 씨 작품에 그린 그림도 전시됐다. 허 씨가 제자에게 건넨 쪽지에는 제자에 대한 사랑과 만화가로서의 자존심이 담겨 있다. “태호, 항상 네 작품의 내면을 믿었다. 그림 좋고, 긴장감 놓치지 않는 연출 좋고, 이 시대는 당신들 것이다. ‘이끼’를 보고 있자니 흑백만화는 생명이 없어 보인다. 이제라도 칼라 공부를 해야 쓰겄다. 윤태호에게 지지 않겠다.” 그가 매일 쓰는 ‘만화일기’엔 그의 최후가 그려져 있다. 향년 107세, 작업 도중 숨을 거둔다. 그 아래 ‘만화의, 만화를 위한, 만화에 의한 인생’이라고 써 두었다. “항상 2등이란 얘길 들었는데 이젠 어깨를 겨루던 동료가 보이질 않으니 1등이 됐어요. 나는 남들이 비장하다고 할 만큼 스스로 담금질했어요. 앞으로도 조금씩 발전할 겁니다.” 7월 19일까지. 문의 070-7533-8998. 8000∼1만2000원.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대산문화재단과 한국작가회의가 다음 달 7일부터 ‘격동기, 단절과 극복의 언어’를 주제로 ‘2015년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를 개최한다. 올해는 1915년 태어난 시인 서정주 박목월, 소설가 황순원 임옥인, 극작가 함세덕, 아동문학가 강소천, 평론가 곽종원 임순득까지 모두 8명이다. 다음 달 7일 오전 10시부터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 23층 세미나실에서 심포지엄이 열린다. 기획위원장인 이숭원 서울여대 교수의 총론을 시작으로 고봉준 김진희 김응교 원종찬 이철우 정혜경 강헌국 우찬제 씨 등이 발표한다. 8일 연희문학창작촌에서 대상 문인들의 작품을 마임, 낭송, 영상, 무용 등의 공연으로 꾸민 문학의 밤을 선보인다. 부대행사로 황순원 문학그림전, 미당 서정주 탄생 100주년 기념 시 잔치 등도 열린다. 대산문화재단은 심포지엄 발제문과 토론문, 작가 연보, 연구서지를 엮은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 논문집’을 발간할 예정이다. 문의 02-721-3203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칼 멘 장사가 죽어도 길옆에 무덤./길옆에는 묻지 말고 나랏배 오고 가는/異邦(이방)바다 모래톱에 묻혀요 묻혀요./나도 사나이는 사나이/나라도 집도 없기는 없어요.”(시 ‘내 아내 내 누이 내 나라’에서) ‘향수’의 시인 정지용(1902∼1950)의 알려지지 않은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시와 산문이 발굴됐다. 1926년 11월 미용전문잡지 ‘위생과 화장’ 2호에 수록된 시 ‘내 아내 내 누이 내 나라’, 1949년 5월 잡지 ‘부인(婦人)’에 실린 시 ‘꽃 없는 봄- 봄에 부치는 노래-’, 1949년 3월 잡지 ‘신여원(新女苑)’ 1호에 수록된 산문 ‘사교춤과 훈장’ 등이다. 서지학자 김종욱 씨가 최근 본보에 공개한 이들 작품에는 지금까지 알려진 정지용의 서정적인 면모와 달리 남성적 기개를 뽐내고, 이상기후와 식량난을 걱정하고, 여성의 춤바람을 꾸짖는 모습이 작품에 담겨 있다. 》○ 정지용, “나도 사나이” ‘내 아내 내 누이 내 나라’는 정지용(사진)이 1923년 1월에 쓴 시다. 시적 화자는 빼앗긴 땅에 아내와 누이를 두고 떠나는 착잡한 마음을 노래한다. ‘복사꽃처럼 피어가는 내 아내 내 누이./동산에 숨기고 가나 길가에 두고 가나.’란 부분에서 절정에 달한다. 1913년 동갑인 송재숙과 결혼한 정지용은 1923년 5월 휘문고보 졸업을 앞두고 일본 도시샤(同志社)대로의 유학을 준비 중이었다. 이 시는 정지용의 다른 시들과 달리 강한 남성적 이미지를 풍긴다. 우국투사를 떠올리게 하는 ‘칼 멘 장사’를 언급하며 ‘나도 사나이는 사나이/나라도 집도 없기는 없어요.’라며 자신과 동일시한다. 그는 훗날 시 ‘장수산1’에서 ‘늙은 사나이’란 시어를 쓰지만 스스로를 사나이라 칭한 것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시를 검토한 정지용 연구 권위자인 최동호 경남대 석좌교수(고려대 명예교수)는 “정지용은 ‘사춘기를 훨씬 지나서부턴 일본 놈이 무서워 산으로 바다로 회피하며 시를 썼다’고 말할 정도로 순수시인이었다”며 “강한 남성적 이미지 속에서 청년 시절 지용의 뜨거운 혈기를 떠올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꽃 없는 봄- 봄에 부치는 노래-’에선 ‘三南(삼남)에 꽃이 겨울에 피었다. 그래서 그러한지 봄이 삼월이 기울어 겨울보다도 따뜻하건만 꽃이 없다.’며 이상기후를 걱정한다. 그러면서 ‘겨울에 大邱(대구)서 사과가 열렸다한다. 금년에 사과 흉년이 질까 걱정 말라. 두 벌 사과가 여는 대구에 식량문제가 緩和(완화)될까 한다.’며 1946년 대구 쌀값 폭등을 겪은 대구의 사정이 나아지길 기대한다. 최 교수는 “서정시를 쓴 그의 내면에도 조국의 현실을 걱정하는 마음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춤은 노동자와 농민, 군인과 학생의 것” 원고지 25장 분량의 산문 ‘사교춤과 훈장’은 앞서 제목만 알려졌던 것이 이번에 내용이 공개됐다. 정지용은 광복 이후 친일파 모리배의 손으로 댄스홀이 만들어진 세태와 그곳에 모인 불량 여학생, 유한마담들을 개탄한다. 그는 “여성은 체질적으로 춤을 좋아하고 남성은 모험심이 많아 훈장을 선호한다”며 봉건적인 논조를 편다. 그는 여학생에게 “왜 봉건적 탄압을 하느냐”며 항의받은 일화도 솔직하게 소개한다. 그렇다면 누가 춤을 춰야 할까. 정지용은 “누가 추어야만 옳은 춤이 되는고 하니 진정한 생산자 노동자와 농민과 조국과 인민에 봉사하는 군인과 학생이 추어야 하는 것이다”라며 “진정한 민주주의 조국의 무수한 청춘과 영웅과 선수들을 위하여서만 사교춤이 근로와 건국의 진정한 기술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시 ‘내 아내 내 누이 내 나라’는 다음 달 충북 옥천군 옥천읍 정 시인 생가 일원에서 열리는 지용제에서 낭독될 예정이다. 이번에 발굴된 시와 산문은 다음 달 출간 예정인 최 교수의 ‘정지용 전집’과 문예계간지 ‘연인’ 여름호에도 수록된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대한불교 조계종이 7월부터 예산 30억 원 이상 사찰의 재정 명세를 공개하기로 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27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각 사찰이 예산 결산을 종단에 보고하지만 앞으로 신도와 일반인이 볼 수 있도록 인터넷 홈페이지, 법회, 사보(寺報) 등을 통해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자승 스님은 “종교단체의 도덕성과 신뢰성에 대한 사회적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사찰 재정 공개는 중요한 덕목이 됐다”며 “재정 공개를 통해 불교 본연의 가치 실현, 불교 발전의 길을 열겠다”고 밝혔다. 7월부터 공개되는 사찰은 연간 예산 30억 원 이상인 사찰, 직영 사찰, 특별분담금 사찰 등이다. 대상 사찰은 총 43곳이며 조계종 예산의 60%가량을 차지한다. 서울 조계사와 봉은사, 경주 불국사, 하동 쌍계사, 구례 화엄사 등이 포함됐다. 조계종은 공개 대상을 매년 확대해나갈 방침이다. 또 재정 투명화와 방문객 편의를 위해 문화재 입장료를 받는 사찰에 신용카드 결제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하기로 했다. 현재 입장료 징수 사찰 64곳 중 신용카드 이용이 가능한 곳은 22곳(34%)에 불과하다. 조계종은 2016년도 예산 편성과 관련해 법사비, 종무활동비 등 주요 지출 항목의 구체적인 기준을 사찰에 알리고, 예결산서를 제출하지 않은 사찰을 제재하는 제도도 마련할 계획이다. 조계종은 지난달 25일 사찰재정 투명화를 의제로 열린 ‘종단혁신과 백년대계를 위한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의 논의 결과를 바탕으로 이번 재정 명세 공개 방침을 마련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감회랄 게 따로 있을까요. 시란 말을 한껏 자유롭게 풀어놓는 말의 놀이터예요. 그 공간에서 잘 놀았습니다. 전 물량에 대한 집착이 없으니까 더 잘 논 거 같아요. 세월 참 빨리 갔어요.” 등단 50주년의 감회를 물었더니 그저 활짝 웃으며 잘 놀았단다. 문학이 “온몸에 스며들어 몸을 빵빵하게 부풀렸”던 사춘기 소년은 어느새 백발이 성성한 시인이 됐지만 그 웃음만은 천진했다.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의 정현종 시인이 등단 50주년을 맞아 열 번째 시집 ‘그림자에 불타다’와 산문집 ‘두터운 삶을 향하여’를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했다. 올해 우리 나이로 희수(喜壽·77세)를 맞았다.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인근 음식점에서 그를 만났다. 그의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시절 제자들이 마련한 축하 자리였다. 표제시 ‘그림자에 불타다’엔 정 시인의 깨달음이 담겨 있다. 그는 몇 해 전 터키 카파도키아에 갔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넓게 펼쳐진 밀밭이 군데군데 검게 그을려 있었다. 그런데 유심히 살펴보니 구름의 그림자였다. ‘욕망-구름 그림자/마음-구름 그림자/몸-구름 그림자에/일생은 그을려,/너-구름 그림자/나-구름 그림자/그-구름 그림자에/세계는 검게 그을려―//그 모든 너울을 걷어낸 뒤의/구름 자체를 나는 좋아하고/그리고/은유로서의 그림자에 불타는 바이오나―//’ “우리가 그림자라 부를 수 있는 것은 헛것, 실체가 아닌 것, 나아가 무(無)입니다. 그림자를 붙들고 씨름하는 것이 일생이 아닌가 했어요. 우리는 일생 동안 너, 욕망, 마음, 시에 그을리며 사는 것이죠.” 시집엔 반백 년 시를 지어온 시인의 시론도 담겨 있다. 시 ‘인사’에선 ‘실은/시가/세상일들과/사물과/마음들에/인사를 건네는 것이라면/모든 시는 인사이다’라고 썼다. 시집에 실린 산문 ‘세상의 영예로운 것에로의 변용’에선 ‘시 쓰기는 사랑의 실천입니다’라며 ‘궁극적인 가치도 만물의 원활한 순환에 조금이라도 기여하는 것일 터입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 있는 시인 행세하는 사람들에게 ‘그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가짜 시인이니라’(‘한 비전’)라고 일침을 놓는다. “전 자신에게 집착하고, 자기 과시하는 작품을 아주 싫어합니다. 시는 아상(我相), 아집(我執)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갑니다. (시인은 팔을 양옆으로 벌리더니) 시는 이렇게 타자를 향해 마음이 퍼져 나가야 합니다. 그런 게 시예요.” 정 시인은 인터뷰를 유머로 마무리했다. 그가 들려준 시 ‘풍탁’에선 바람 불면 맑은 소리를 내는 풍탁(風鐸)이 있어 ‘내가 가까이 가니 세상없는/맑은 소리를 내는 것이었습니다./필경 내 맑은 바람기 때문인 듯하였습니다’라고 노래한다. 시인의 연세를 생각해 “바람기가 정녕 그 바람기냐”고 물었더니 “척하면 척해야지”라며 놀린다. ‘두터운 삶을 향하여’는 26년 만에 묶은 산문집으로 1987년부터 최근까지 쓴 에세이, 강연록, 발표문 등을 담았다. 2006년 11월부터 4개월간 동아일보에 연재한 ‘정현종 시인의 그림 읽기’도 수록했다. 이날 축하 자리에는 정 시인의 연세대 재직 시절 제자인 나희덕 시인, 유성호 한양대 교수 등과 ‘정현종 평론’으로 소천비평상을 수상한 최동호 경남대 석좌교수 등 20여 명이 참석했다. 나 시인은 “잔디밭이 보이면 ‘하아’라고 감탄하며 제일 먼저 발 벗고 달려가는 분이 선생님이었다”며 “온몸으로 자연을 향해 자신을 침투시키고, 시인의 무구함, 자유로움을 몸소 보여준 분”이라고 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서울 마포구 홍익대 주변 골목을 누비다 보면 눈길을 끄는 가게가 참 많다. 인터넷 검색만 하면 가격은 얼마인지, 맛과 서비스는 어떤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뚜렷한 개성을 뽐내는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이 누군지, 그에게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는 알 수가 없어 늘 궁금했다. 그런 궁금증을 풀어주는 책 ‘홍대 앞에서 장사합니다’가 출간됐다. 책은 홍대 ‘힙스터’(Hipster·트렌드를 앞서가는 사람)를 사로잡은 사장 9명의 희로애락을 담았다. 주점, 이탈리아 레스토랑, 커피전문점, 수제버거, 빵집, 치킨집 등 종류도 다양하다. 창업을 준비하는 독자라면 창업 컨설턴트가 들려줄 수 없는 사장의 좌충우돌 경험담에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마포구 상수동에서 막걸리바 ‘무명집’을 운영하는 사장 양진석 씨(41). 전남 순천 출신인 그는 30년간 식육식당을 운영하며 고기를 손질하느라 손에 상처가 아물 날 없었던 성실한 부모 아래서 컸다. 미대에 진학했다 중퇴하고 직장인, 대필 작가 등으로 일하다 2010년 가게를 열었다. ―장사하면서 책까지 썼다. “홍대 앞 작은 가게 사장들 중에는 문화·예술계에서 일하다가 밥벌이가 힘들어 가게 문을 연 사람이 많다. 문득 장사도 그들이 만드는 예술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사도 예술 못지않은 숭고한 가치가 있을까’란 질문을 갖고 홍대 앞 사장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자영업자의 무덤’이라는 홍대 앞에서 살아남은 사장들에게 공통점이 있나. “일본어로 ‘곤조(根性·근성)’라는 게 있지 않나. 그게 있었다. 그들은 ‘내 방식대로 간다’ ‘돈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게 가장 중요하진 않다’란 고집이 확고했다. 자신의 취향을 가게 브랜드로 만들고, 알바생을 안 쓰고 정직원과 일하는 등 ‘나다운 장사’를 했다. 정작 조리법엔 특별한 비법이 없었다. 사장이 직접 매일 좋은 재료를 챙기는 기본만 지켰다. 근데 기본 지키기가 가장 어렵다.” ―무명집만의 ‘곤조’가 있나. “‘오늘 하루 좋은 친구 한 명만 사귀자’란 글귀를 카운터 옆에 써뒀다. 별의별 진상 손님이 많아서 힘들다가도 친절한 손님 한 명 모시고 나면 스트레스가 눈 녹듯이 사르르 녹는다. 장사해서 좋은 점은 좋은 분이 찾아와 주고 친해질 때다.” ―홍대 앞에서 진짜 맛집을 고르는 비법을 알려 달라. “사장들끼리 밥 먹어도 일단 검색은 한다. 근데 블로그는 정말 믿을 게 못 된다. 가까운 사람에게 묻는 게 가장 정확하다.” ―대필 작가로 일했는데, 장사가 글쓰기에 도움을 주나. “손님을 택할 수 없으니 다양한 사람을 만나야 한다. 자연스럽게 사람에 대한 친화력과 관찰력이 생겼다. 그 덕분인지 사장들을 인터뷰하며 속내를 많이 끌어낼 수 있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하는 책을 계속 쓰고 싶다.” ―예비 창업자에게 팁을 준다면…. “무모하지도 말고, 겁먹지도 말라.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이다. 이렇게만 말하고 싶다. 궁금한 게 있으면 e메일(shoutsider@naver.com)과 트위터(@Huge_tong)로 문의하면 친절히 설명하겠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