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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금니 아빠’ 이영학(35)은 여중생 딸의 친구인 김모 양(14)에게 수면제를 먹여 잠재운 뒤 이틀에 걸쳐 성적 학대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기구를 이용한 학대 정황도 나왔다. 이영학은 잠에서 깬 김 양이 저항하자 끈 같은 도구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 이영학이 딸까지 동원해 김 양을 유인하고 살인까지 한 결정적 동기는 결국 자신의 비뚤어진 욕구 탓으로 보인다. 12일 수사당국에 따르면 이영학은 지난달 30일 낮 12시 20분경 딸 이모 양(14)을 통해 집으로 온 김 양이 수면제를 먹고 잠들자 옷을 벗긴 뒤 몸을 만지는 등 성적 학대 행위를 이어갔다. 이영학은 다음 날 오전까지 비슷한 행위를 반복했다. 특히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 부검 결과 ‘기구를 사용한 학대’로 추정되는 정황도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과수는 특정하기 힘든 기구로 김 양에게 성적인 학대가 이뤄진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경찰은 범행이 이뤄진 이영학의 집에서 다수의 음란기구를 발견했다. 다만 직접적인 성폭행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이영학이 성적 학대를 하는 동안 딸은 이 사실을 보지 못했다. 이영학이 김 양을 범행 대상으로 정한 건 김 양에게서 지난달 숨진 자신의 아내를 연상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영학은 살인과 사체유기 혐의를 받고 있다. 성적 학대가 사실로 확인되면 준강간이나 강제추행 혐의가 추가돼 죄가 더 무거워진다. 경찰은 이영학과 딸 이 양의 심리 상태와 자세한 범행 동기 등을 파악하기 위해 이날 프로파일러를 투입했다. 경찰은 13일 오전 수사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아빠의 범행’ 적극 은폐한 이 양 이 양이 아버지의 범행을 적극적으로 은폐하려 한 행적도 포착됐다. 친구인 김 양이 자신이 건넨 수면제를 먹고 안방에 쓰러진 걸 알면서도 애타게 찾는 김 양 친구들에게 태연히 거짓말을 하며 따돌렸다. 김 양이 아직 살아 있었던 1일 오전 이 양이 김 양의 친구 A 양(14)과 주고받은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보면 이 양은 지속적으로 거짓 정보를 제공했다. 김 양 실종 소식을 접한 A 양이 1일 오전 10시경 “김 양 봤어?”라고 따져 묻자 이 양은 “나 어제 ○○이랑 놀았었거든. 2시쯤 친구 만난다고 급하게 갔어. 그 뒤로 전화가 끊겼더라구. 그게 마지막이었는데”라고 답했다. 이 양은 A 양이 집요하게 납치 가능성을 제기하자 “왜 추석연휴 때 나갔지? (휴대전화 전원을) 일부러 끈 거 같다. 착했는데 만약 가출이라면 그런 면이 있을 줄은 몰랐네”라며 김 양이 가출했을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A 양이 계속해서 김 양을 걱정하자 이 양은 “만약에 진짜 멀리 있으면 어른 되어서 만나는 거 아니겠지? 내가 너무 앞서갔네^^ 좀 빨리 돌아왔음 좋겠네 하하”라고 말했다. 김 양은 이날 오전 11시 53분부터 오후 1시 44분 사이에 살해됐다. A 양은 이 양이 아버지와 함께 김 양의 시신을 옮기기 직전인 1일 오후 5시경 다시 이 양에게 “○○이랑 헤어졌을 때 어느 쪽으로 갔는지 봤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이 양은 대뜸 엄마의 자살 소식을 꺼내며 화제를 돌렸다. 이 양은 “우리 어머니 돌아가신 건 아니? 우울증이 심하셨대”라고 말했다. 이날 서울북부지법은 경찰이 신청한 이 양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법원은 “소년법에 따라 이 사건 피의자인 이 양은 구속하여야 할 부득이한 사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각 사유를 밝혔다. 한편 이영학의 아내 최모 씨(32)의 성폭행 고소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경찰이 의붓시아버지 B 씨(59)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등을 수차례 신청했지만 검찰에서 기각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씨는 “총기 위협 등에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지만 “강간인지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기각된 것으로 전해졌다. ○ 속속 드러나는 이영학의 ‘이중생활’ 딸 수술비 명목으로 후원금을 받은 이영학이 10여 년간 기초생활수급자로 분류돼 매달 170만 원가량의 복지 혜택을 받은 사실도 확인됐다. 서울 중랑구에 따르면 그는 2005년부터 올해 9월까지 생계급여 100만 원과 장애수당, 주거수당까지 포함해 매달 170만 원가량을 받았다. 이영학이 ‘부정수급’으로 타낸 돈은 약 2억 원에 이른다. 그는 고급 승용차 여러 대를 운전했는데 2000cc 미만의 외제차 한 대만 자신의 이름으로 등록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소득 산정 기준에서 제외됐다. 중랑구 관계자는 “(이영학이) 지적·정신장애 2급이었기에 본인 소유 차량은 재산 산정 기준에서 제외됐다”며 “은행계좌엔 소득이 거의 0원인 것으로 보아 차명계좌를 활용해 돈을 모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지훈 easyhoon@donga.com·구특교 기자}
2015년 9월 24일 오전 5시경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한 주택가. 군복무 중이던 A 씨(당시 20세)가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정기휴가를 나온 A 씨는 전날 오후 대학축제에서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만취한 채 귀가하던 A 씨는 다세대주택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인기척이 들리면 도망친 뒤 다른 주택에 들어가는 식이었다. A 씨는 문이 열린 채 모기장만 쳐있는 다섯 번째 집을 찾았다. 양모 씨(38)의 집이었다. 오전 5시 30분경 몰래 집안으로 들어간 A 씨는 부엌에 있는 흉기를 들고 문이 열린 안방으로 들어갔다. 양 씨의 약혼녀 박모 씨(당시 33세)가 홀로 자고 있었다. 9년간 만난 두 사람은 2개월 후 결혼할 예정이었다. A 씨는 다짜고짜 누워있는 박 씨를 향해 흉기를 휘둘렀다. 비명소리를 듣고 다른 방에서 일하다 잠든 양 씨가 달려왔다. 양 씨의 눈앞에 지옥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박 씨는 피를 흘리며 문 밖으로 기어 나오고 있었다. A 씨는 뒤에서 박 씨의 등과 옆구리를 찔렀다. 이어 양 씨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양 씨가 밀려 쓰러졌는데도 A 씨는 계속 흉기를 휘둘렀다. 얼굴과 손 등을 칼에 찔리면서도 양 씨는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흉기를 빼앗은 뒤 정신없이 A 씨의 왼쪽 옆구리를 찔렀다. A 씨는 옆으로 쓰러졌고 잠시 후 숨졌다. 박 씨 역시 결국 현장에서 숨을 거뒀다. 조사 결과 A 씨는 이들과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 양 씨는 ‘묻지 마 살인’ 탓에 사랑하는 약혼녀를 눈앞에서 잃었다. 자신의 집에 침입해 예비신부를 살해한 군인을 격투 끝에 숨지게 한 이른바 ‘공릉동 살인사건’의 전모다. 이 사건의 당사자인 양 씨가 2년 만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살인사건 가해자이지만 이례적으로 정당방위를 인정받았다. 서울북부지검 형사2부(부장 김효붕)는 양 씨를 ‘죄가 안 됨’으로 불기소 처분했다고 11일 밝혔다. 검찰은 양 씨가 A 씨를 살해한 건 명백하나 예비신부 박 씨가 살해당하고 자신의 목숨까지 위협받는 상황에서 범행이 불가피했다며 살인죄의 위법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양 씨가 흉기로 찌르는 행위 말고는 위험을 제거할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었고 이는 사회 통념상 인정되는 정당방위라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살인을 하고도 법률적으로 처벌을 받지 않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라며 “다양한 외국 사례를 검토하고 국민의 법 정서가 변화한 점도 고려했다”고 밝혔다.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어금니 아빠’ 이모 씨(35)에게 살해된 김모 양(14)이 실종신고 후 12시간 넘게 생존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양이 살아 있을 당시 경찰은 이 씨 집에서 불과 120m 떨어진 곳 주변까지 탐문했지만 이 씨의 집까지 확인하진 못했다. 경찰이 더 적극적으로 수색했다면 김 양을 살릴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은 김 양이 1일 오전 11시 53분에서 오후 1시 44분 사이 살해된 것으로 조사됐다고 10일 밝혔다. 당초 김 양이 살해된 시점은 지난달 30일 오후 3시 40분에서 오후 7시 46분 사이로 추정됐다. 이 씨의 딸 이모 양(14)의 진술이 근거였다. 그러나 이 씨는 추가 조사에서 “1일 오전 11시 53분 딸을 집 밖으로 내보낸 뒤 김 양을 살해했다”고 진술했다. 김 양의 어머니는 지난달 30일 오후 11시 20분 “딸이 친구를 만나고 멀티방에 간다고 한 뒤 돌아오지 않고 있다”고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다. 결과적으로 김 양을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적어도 12시간 있었던 셈이다. 경찰은 신고 접수 후 김 양 가족의 동의를 받아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했다. 하지만 김 양의 전화는 꺼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확인된 위치는 서울 중랑구 망우사거리. 경찰은 1일 새벽까지 2, 3시간가량 주변을 수색했다. 하지만 김 양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망우사거리에서 직선으로 120m 거리에 있는 이 씨의 집에 김 양이 갇혀 있었지만 확인하지 못했다. 경찰은 다음 날도 서두르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야간 근무로 밤을 새웠기 때문에 오전에 쉬고 오후 4시경부터 김 양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뒤져봤다”고 말했다. 경찰은 1일 오후 9시가 돼서야 김 양 어머니에게 연락해 “딸이 이 양 집에 갔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고도 하루가 더 지난 2일 오전 11시에야 경찰은 이 씨의 집을 찾아갔다. 인기척이 없어 다시 돌아간 경찰은 이날 오후 9시에야 집에 있던 이 씨의 형을 설득해 집 내부를 살펴볼 수 있었다. 그때는 이 씨 부녀가 김 양의 시신을 이미 강원 영월군의 야산에 유기한 뒤였다. 김 양 가족들은 실종신고 당일인 지난달 30일 동네 곳곳에서 김 양을 찾아 헤맸다. 한 주민은 “김 양의 어머니가 ‘딸이 가출할 애가 절대 아닌데 이상하다’며 걱정 가득한 얼굴이었다”고 전했다. 김 양의 친구는 “너무 착하고 순한 성격이라 연락 없이 집에 안 들어올 아이가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 양의 어머니가 실종신고 후 이 양에게 전화해 딸의 행방을 물었을 때 이 양은 “모른다. 저 위로 올라간 것 같다”며 거짓말을 했다. 이 씨는 10일 오전 서울 중랑구 자택에서 진행된 현장검증에서 김 양에게 수면제를 먹인 뒤 딸과 함께 잠든 김 양을 옮기는 모습을 태연하게 재연했다. 이 씨는 김 양의 목을 조르는 시늉을 하며 장롱에서 끈 모양의 의류를 꺼내 목을 졸랐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양은 김 양이 수면제를 먹고 안방에서 잠들어 있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버지 이 씨에게 김 양의 상태를 전혀 묻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안방에서 이 씨와 김 양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하기 싫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씨의 범행 동기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경찰은 “이 씨가 일부 언급한 내용이 있지만 도저히 신뢰하기 어려울 정도의 수준이어서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찰은 또 “이 씨가 자신의 온라인 대용량 저장공간에 성관계 동영상을 다수 보관하고 있는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영상에는 지난달 6일 투신자살한 아내 최모 씨(32)의 성관계 모습도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씨가 인터넷에서 1인 성인 마사지숍을 운영했다는 흔적도 새로 발견됐다. 경찰은 이 씨가 최 씨를 이용해 성매매를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 중이다.권기범 kaki@donga.com·김예윤·구특교 기자}

인하대 최순자 총장은 2015년 취임 후 ‘공부 잘하는 대학, 잘 가르치는 대학’을 위해 대학의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최 총장은 10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학은 학생 잠재력을 극대화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며 “인하대는 스스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인재 육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공부 잘하고 잘 가르치는 대학’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인하대는 성적이 부진한 학생이 학업을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지난해 1학기 3차 학사경고를 받은 학생 23명 가운데 14명을 내가 직접 인터뷰했다. 부모 이혼, 아버지 사업 실패 등 여러 배경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후 지도교수 등이 이들 학생과 면담해 학업을 계속하도록 여러 방면으로 도왔다. 가르치는 측면에서는 지난해 교학부총장을 단장으로 하는 대학교육 총괄조직 대학교육혁신단을 출범했다. 혁신단 산하에 교수학습개발센터와 인하MOOC(온라인공개강좌)센터, 교육혁신팀 등을 두고 전문 교수 및 학습 지원을 펼친다. 교수학습개발센터는 1997년 국내 대학 최초로 만들었다. 지난해 정부의 ‘한국형 MOOC 참여 대학’에 선정돼 ‘사회의 탐색’과 ‘세상을 바꾸는 스타트업 이야기’ 과목을 시작했는데 호응이 좋아 올해는 ‘생각보다 가까운 FTA’ 등 과목을 늘렸다.” ―학생 실력 향상을 위해 새로 시작한 사업에 대한 반응이 좋은데…. “지난해 시범 운영한 ‘인하-동동(同動)’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함께(同)+움직이다(動)’라는 뜻으로 학생들이 스스로 만든 학습공동체에서 공부하도록 해 학습 효과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아울러 다양한 기업과 연계한 문제 해결 프로젝트(Problem Solving Project)를 활성화해 학생이 졸업 후 현장 실무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항공, 물류, 부품소재 같은 미래를 이끌 융·복합 산업과 관련해 ‘Problem Solving 경진대회’를 열어 학생 역량을 키워줄 생각이다.” ―‘교육한류 수출 1호’로 우즈베키스탄에 세운 인하대 IUT가 내년에 첫 졸업생을 배출한다. “IUT는 한국과 우즈베키스탄의 첫 교육협력사업이자 대학단위 교육시스템을 수출한 첫 사례다. 우즈베키스탄 정부와 대학 설립 협정을 맺고 2014년 10월 개교했다. 현지 학생과 학부모 반응이 좋아 지난달 정원을 330명에서 400명으로 늘렸다. 올해 ‘3+1 조인트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1∼3학년은 IUT에서, 4학년은 인하대 본교에서 수업을 받는 방식이다. 내년에 배출될 첫 졸업생들이 IUT와 인하대에서 배운 것을 바탕으로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눈에 띄는 활약을 해주길 기대한다.” ―최근 주목받는 연구는 무엇인가. “인하대와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추진하는 ‘심(深)우주 탐사 국제공동연구센터’다. 아시아 대학 최초로 NASA 랭글리센터와 공동연구를 위한 우주행동협정(SAA)을 체결한 데 따른 것이다. 인하대는 심우주 탐사 발사체 개발을 위한 ‘헬리오스 프로젝트’에 2년간 참여한다. 우리 정부는 올 4억5000만 원을 비롯해 6년 동안 연구비 34억5000만 원을 지원한다.” 최 총장은 인터뷰를 마치며 “우리 사회가 대학을 평가할 때 취업률을 너무 중요하게 보는 것 같다. 대학교육이 취업률 높이는 데 치중하고 있는 점이 다소 안타깝다”고 말했다.박희제 min07@donga.com·구특교 기자}

추석 연휴가 마무리되고 있다. 그러나 열흘간 쉰다는 게 먼 나라 이야기인 사람도 많았다. 특히 59개 공공기관의 첫 합동채용을 앞둔 취업준비생에게 이번 연휴는 휴식이 아니라 마지막 담금질 시간이었다. 이번 합동채용으로 3000∼4000명이 취업한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연휴를 잊은 이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추석을 하루 앞둔 3일 오전 8시경 서울 동작구 노량진동 학원가. 청년들은 공시생(공무원 시험 준비생)을 상징하는 트레이닝복에 슬리퍼를 신고 학원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김모 씨(24·여)도 머리카락을 질끈 묶고 학원에 있었다. 강의실은 이미 공시생으로 가득했다. 김 씨는 시험이 50일가량 남아 긴장이 가시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내일은 오전 7시부터 나와서 자리를 잡아야겠다”며 “저녁에는 학원이 문을 닫아 근처 대학 도서관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정오 무렵 노량진 명물인 ‘컵밥’ 가게들은 공시생들로 북새통이었다. 한 가게 사장은 “역대 최장 연휴라지만 시험 준비생들이 줄어든 것 같지는 않다”며 이마의 땀방울을 닦아냈다. 사법시험은 폐지됐지만 서울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도 연휴와는 거리가 멀었다. 카페마다 두꺼운 책을 탁자에 놓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들어찼다. 10년째 법무사 시험을 준비하는 오모 씨(48) 역시 신림동에서 연휴를 보냈다. 고향은 경남이지만 명절에 언제 내려갔는지 까마득하다. 오 씨는 “나이도 많은 데다 직장도, 아내도 없어 고향에 가면 부모님과 친척 눈치만 봐야 한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대신 추석 당일 저녁에 친한 고시생들과 맥주 한 모금 함께 하며 향수를 달랬다. 다음 달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대표 학원가인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일대는 연휴 내내 불야성이었다. 학원들은 각종 ‘추석 특강’을 내세우며 쉼 없이 움직였다. 학원 앞은 여느 때처럼 자녀들을 태우러 온 학부모 차로 정체를 빚었다. 박모 양(18·고3)은 명절이면 부모님 고향인 대전에 갔지만 올해는 가족 모두 가지 않았다. 대전의 할아버지는 “명절보다는 손녀 대학 진학이 우선”이라고 선언했다. 박 양은 “친구들과 ‘코인 노래방’에 잠시 들르는 걸로 스트레스를 날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향에 갈 생각을 미룬 채 아르바이트에 열중하는 청년들도 적지 않았다. 4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에서 만난 임모 씨(25)도 연휴를 아르바이트로 보냈다. 연휴에는 시급을 평소의 1.5배로 준다. 부산이 고향인 임 씨는 “정규직 공채를 준비하며 아르바이트도 하는데 시급을 이만큼 주는 때도 드물어 자원했다”면서 “나 같은 사람에게는 반가운 연휴”라며 웃었다. 상당수 근로자 역시 긴 휴식은 꿈같은 얘기였다. 지하철 근로자가 그랬다. 서울 강남구 서울교통공사 수서차량기지 기관사 218명 가운데 이번 연휴에 92명이 일했다. 5일 만난 22년 경력 최병진 차장(50)은 ‘징검다리 근무’로 연휴 기간에 6일을 일한다. 이날도 오전 근무를 한 최 차장의 옷은 땀으로 젖어 있었다. 충남에 있는 아버지 산소 벌초도 못했다. 그는 열차 운전을 하며 “추석 때 쉬지는 못해도 추석 연휴를 즐기는 시민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었다”는 안내 방송을 틈틈이 했다. 이날 오전 그의 코멘트는 “가을볕에 알곡이 익어가듯 풍요로운 추석에 가족과 함께 웃음 풍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였다.구특교 kootg@donga.com·김예윤·최지선 기자}

지난달 28일 오후 경찰청 과학수사관리국 증거분석실. 165m²(약 50평) 남짓한 공간에서는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서울 노량진 독서실 같은 분위기 속에 중년 여성 40여 명이 각자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모니터에는 수십 개의 점이 찍힌 각양각색 지문이 보였다. 지문의 각 지점을 짚어내는 마우스 클릭 소리만 여기저기서 이어졌다. 이들은 돋보기로 융선(지문 곡선)을 들여다보거나 각도기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특징을 잡아냈다. 최근 잇따라 쪽지문(조각 지문)을 통해 장기 미제(未濟)사건 범인이 밝혀지면서 지문감정관이 ‘해결사’로 떠올랐다. 그 지문감정관이 바로 여기서 일한다. 지난달 12년 만에 구속된 ‘강릉 노파 살인사건’ 범인을 찾아낸 곳도 여기다. 3년간 유사 후보지문을 3000개 넘게 재검색했다. 분석실 끝자리에서는 강릉 노파 살인사건 범인 지문을 찾아낸 김분순 지문감정관(49·여)이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 융선이 갈라지거나 끊어지는 곳, 합쳐지는 곳 등을 점으로 표시해 뒀다. 특징점이다. 특징점과 특징점 방향을 나타내는 선이 여기저기 표시돼 거미줄처럼 보였다. 같은 지문을 찾기 위해선 특징점 12개 이상이 일치해야 한다. 7월 그 순간을 떠올리면 김 감정관은 아직도 가슴이 두근두근한다. “어어, 이거 같은데…” 침을 꼴깍 삼키고 다시 한 번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같았다. 모니터 좌측 범인의 쪽지문과 우측 유사 후보지문의 특징점 15곳이 정확히 일치했다. 융선이 흘러가는 형태와 융선 사이 간격과 기울기까지 똑같았다. “찾았다!” 주변 동료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범인은 그동안 용의자로 지목되지도 않던 인물이었다. 다른 감정관들이 그전 2년간 2000여 개 유사 지문을 분석했지만 일치된 것을 찾지 못했다. 현장에서 채록한 지문은 1cm 크기 쪽지문. 그것도 반쪽만 흐릿하게 남아 있었다. 테이프에 적힌 ‘점착테이프1종 9002인증업체’란 글씨가 겹쳐 분석을 더 까다롭게 했다. 20년 경력 베테랑 김 감정관은 포기하지 않았다. 쪽지문 융선 문형과 특징점을 외웠다. 방에 누워 천장을 쳐다보면 무늬가 ‘범인 지문’으로 보였다. 1000개에 이르는 유사 후보지문을 추가로 확인했다. 지문 분석은 몸이 고된 일이다. 감정관들 책상에는 대부분 약통이 하나씩 놓여 있다. 10시간 이상 확대경과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바람에 눈 건강이 좋지 않다. 일반인보다 노안도 빨리 온다. 허공에 동그라미를 그려 보는 감정관도 보였다. 상상도 범인 지문을 찾는 데 좋은 방법이다. 김 감정관도 강릉 노파 살인사건 범인이 어떻게 테이프를 잡았을지 상상하며 지문을 추적했다. 지역과 나이, 손가락 위치 등 조건을 다양하게 바꿔 가며 후보군을 좁혔다. 책상에 놓인 추리소설을 손에 든 그는 “추리소설에서 단서를 찾아가는 과정을 익힌 것도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조대희 증거분석계장은 “자동지문검색시스템(AFIS)으로 불리는 지문 검색기술이 향상됐고 감정관들 노력이 결합돼 범인을 검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AFIS는 현장 지문과 유사점이 높은 순서대로 점수를 매겨 후보지문을 추출해 준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AFIS 분석 전후 과정은 감정관들 몫이다. 하나하나 육안으로 지문을 비교, 대조하고 최종 판정해야 한다. 감정관들이 대부분 손목에 보호대를 찬 까닭도 여기에 있다. 1mm라도 다른 곳에 특징점을 찍으면 배열이 완전히 달라져 버린다. 일치하는 지문이 없으면 마우스로 특징점 찍는 과정을 반복한다. 긴장된 상태로 하루 10시간가량 이렇게 하다 보면 손목에 병이 날 수밖에 없다. 손목터널증후군이 ‘직업병’이다. 하루 평균 1인당 2건도 안 되는 지문을 처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일치하는 지문을 수사팀에 넘겨도 끝은 아니다. 발뺌하는 범인 때문에 법정 증인으로 서기도 한다. 30년 경력 전모 감정관(49·여)은 “법정에서 ‘실수한 거 아니냐’며 취조를 당하거나 보복 위험 때문에 압박감도 느낀다”고 털어놨다. 지문만 보다 보니 특이한 습관도 생겼다. 전 감정관은 “공공장소에서는 지문이 남지 않게 물건을 잡고 혹여 지문이 남으면 옷으로 닦은 뒤 이동한다”고 말했다. 수사팀 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지만 자부심만큼은 대단하다. 공소시효가 1년도 남지 않은 ‘구로구 호프집 살인사건’ 범인을 역시 쪽지문으로 찾아낸 천소라 감정관(49·여)은 “잔혹하게 살해된 사건의 경우 피해자들 생각에 새벽까지 남아 지문을 좇게 된다”며 “내 눈이 버텨주는 한 지문 분석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모텔 객실에 몰래카메라(몰카)를 설치해 투숙객들의 성관계 장면을 찍은 모텔 직원 등 4명이 경찰에 붙잡혔다. 또 당국의 인가를 받지 않고 중국에서 들여온 몰카를 국내에 유통시킨 수입·판매업자 3명이 검거됐다.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는 1일 경기 평택시와 인천 남구의 모텔 직원으로 일하면서 모텔 객실에 몰카를 설치해 50쌍의 성관계 장면을 촬영한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박모 씨(36)를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박 씨는 지난해 2월부터 올해 8월까지 탁상시계형 몰카를 모텔 객실에 설치했다. 또 공중화장실에 충전용 어댑터형 몰카를 설치한 혐의도 받고 있다. 또 이모 씨(34·구속)는 올해 3∼9월 대구의 클럽 등에서 만난 여성 12명과 모텔에서 성관계하는 장면을 62차례에 걸쳐 몰카로 촬영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씨는 몰카가 장착된 손가방을 썼다. 경찰은 성매매업소의 성행위 장면과 여자친구와의 성관계 장면을 각각 몰래 촬영한 혐의로 조모 씨(35)와 김모 씨(38)를 불구속 입건했다. 조 씨와 김 씨는 둘 다 손목시계형 몰카를 사용했다. 이들 4명 중 일부는 몰카 영상을 컴퓨터에 종류별로 구분해 저장해 뒀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이 찍은 몰카 영상이 인터넷 등에 유포된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번 경찰 수사로 확인된 몰카 장비는 대부분 시계, 지갑, 안경, 가방 등 평범한 물품에 바늘구멍(지름 1mm) 크기의 초소형 렌즈가 숨겨져 있는 것들이다. 몰카 탐지 장비를 사용하지 않으면 육안으로 발견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코앞에 몰카 장비가 있어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 씨 등은 몰카 판매업자에게 장비 수리를 맡겼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경찰은 당국의 ‘적합인증’과 ‘안전확인’을 받지 않은 몰카를 중국에서 수입해 유통시킨 수입·판매업자 홍모 씨(41) 등 3명을 검거했는데, 홍 씨의 컴퓨터에서 몰카 범행 영상이 나온 것이다. 홍 씨는 몰카 장비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범행 영상을 자신의 컴퓨터에 저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경기 수원서부경찰서는 휴대전화 카메라로 여성의 신체 일부를 몰래 촬영한 혐의로 이모 씨(26)를 검거했다. 이 씨는 올해 2∼5월 수도권 일대 지하철 안에서 휴대전화 무음 카메라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해 여성 23명의 신체 일부를 몰래 촬영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씨는 피해 여성들의 가방 안쪽에 ‘관심 있으면 연락해주세요’라는 글과 연락처가 적힌 포스트잇을 붙였다가 피해 여성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청에 따르면 몰카 범죄는 2011년 1535건에서 2016년 5170건으로 5년 동안 약 3.4배로 증가했다. 그런데 현행법상 인증을 받은 몰카 장비를 유통하거나 판매, 구입하는 것은 처벌 대상이 아니다. 경찰 관계자는 “몰카 장비 구입이 워낙 쉽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은 몰카 범죄가 상당할 것”이라며 “(몰카 장비 등록제 등) 관련법이 시급히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최근 몰카 수입·판매 등록제를 도입하고 몰카 유통 이력 추적 시스템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구특교 kootg@donga.com / 수원=남경현 기자}
“24년 만에 장사를 접네요. 문재인 대통령도 다섯 번이나 오셨는데….” 말끝을 맺지 못한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폐업을 사흘 앞둔 주인의 심경이 그대로 느껴졌다. 27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고깃집에서 만난 사장 정모 씨의 표정은 어두웠다. 20년 넘게 운영한 식당의 문을 곧 닫기 때문이다. 30일이 식당의 마지막 영업일이다. 정 씨 식당은 좌석이 200개가 넘는다. 일대에서 가장 크다. 1인분(150g)에 4만9000원짜리 꽃등심 등 한우와 수입 쇠고기가 주메뉴다. 값비싼 고기만 있는 건 아니다. 9000∼1만 원의 갈비탕 육개장 비빔밥 등도 내놓는다. 점심때면 근처 직장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고기 메뉴의 1인분 가격이 대부분 3만 원을 넘다 보니 단체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겼다. 고기 판매가 50% 이상 줄었다. 30명이 넘던 식당 직원을 20명가량으로 줄였지만 버틸 수가 없었다. 대통령이 바뀌면 나아질 거라는 희망도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악화됐다. 1년이 한계였다. 정 씨는 “청탁금지법 시행 후 매출액은 줄고 인건비와 고깃값까지 오르면서 더 이상 상황이 바뀌지 않았다”며 폐업 이유를 설명했다. 길 건너 다른 한식당도 29일 문을 닫는다. 한식당 사장 최모 씨(55·여) 역시 1년 정도 버티면 빛이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직원 수를 줄이고 단가를 낮추며 하루하루 버텼다. 하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최 씨는 “30년 넘게 자리를 지킨 식당인데 (청탁금지법) 시행 후 매출이 3분의 1 이상 떨어지면서 더 이상 운영이 불가능하다”며 “자리를 옮겨 저렴한 국밥집 등 다른 가게 창업을 고민해야 할 것 같다”라며 울먹였다. 근처 일식당 사장 이모 씨(67)도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원래 직원이었던 그는 한 달 전 식당을 인수했다. 1958년 영업을 시작한 곳이라 단골이 꽤 있는 식당이었다. 청탁금지법 영향이 있었지만 열심히 하면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았다. 이 씨는 “하루 매출이 200만 원은 나와야 현상 유지가 가능한데 100만 원 내기가 쉽지 않다”며 “(청탁금지법 탓에)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하소연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국민의당 손금주 의원에게 제출한 ‘청탁금지법 시행 전후 소상공인(소기업) 경영실태 2차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소기업·소상공인의 66.5%가 법 시행 후 경영 상태가 악화됐다고 응답했다. 청탁금지법 시행 6개월 후인 올 3월 기준 조사다. 시행 3개월인 지난해 12월(59.8%)보다 높아졌다. 영업이익은 평균 16% 줄었다고 답했다. 기업들의 단체 회식 및 접대가 줄어든 게 직격탄이었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분석 대상 기업의 73%가 접대비를 줄였다. 접대비는 15% 이상 감소했다. 구특교 kootg@donga.com / 세종=최혜령 / 김지현 기자}
“탕탕탕! 탕탕탕!” 6발의 총성이 울렸다. 불과 2m 앞에 있던 한국인 관광객 허모 씨(당시 64세)가 풀썩 쓰러졌다. 땅 위로 피가 흘러 나왔다. 오토바이를 타고 접근해 총을 쏜 괴한 2명은 재빨리 방향을 바꿔 사라졌다. 허 씨는 그 자리에서 숨졌다. 2014년 2월 18일 오후 7시경 필리핀의 관광도시인 앙헬레스의 한 호텔 앞에서 벌어진 일이다. 허 씨는 이날 귀국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다. 닷새간의 필리핀 여행 마지막 날이었다. 평소 알고 지내던 현지 사업가 신모 씨(43)의 초대를 받고 온 여행이었다. 허 씨는 “함께 저녁을 먹자. 호텔 앞에서 만나자”는 신 씨 연락을 받고 일행들과 도로변에서 기다리다가 변을 당했다. 한국 경찰은 난감했다. 범행 무대는 치안이 허술한 필리핀이었다. 범인의 흔적도 찾기 어려웠다. 경찰은 허 씨가 일행 3명과 함께 있었지만 총탄 6발이 모두 허 씨에게 집중된 점을 주목했다. 청부살인 가능성이 의심됐다. 허 씨를 필리핀으로 초대한 신 씨가 용의선상에 올랐다. 조사결과 신 씨는 허 씨로부터 사업자금으로 5억 원을 투자받았지만 도박으로 거의 탕진한 상태였다. 돈을 갚기로 한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경찰은 신 씨를 상대로 “돈을 갚지 않으려고 허 씨를 청부살해한 것 아니냐”고 추궁했다. 하지만 신 씨는 “내가 형님을 왜 죽이느냐”며 전면 부인했다. 이를 뒤집을 증거가 없었다. 범행 동기만으로 신 씨를 범인으로 단정 지을 수 없었다. 하지만 신 씨에게 약점이 있었다. 그는 필리핀에서 제법 활발하게 사업을 했다. 그런데 영어가 서툴렀다. 혼자서는 현지인과 잘 대화하지 못했다. “수시로 영어 통역을 대동한다”는 주변의 진술이 나왔다. 경찰은 신 씨가 청부살해범과 거래하기 위해 통역을 동원했을 가능성에 희망을 걸었다. 앙헬레스 한인타운을 샅샅이 수소문했다. 수사 착수 1년 2개월 만인 2015년 4월 경찰은 당시 통역을 했던 필리핀인 운전기사 A 씨를 만났다. “신 씨는 그를 찰리라고 불렸어요. 찰리.” A 씨는 신 씨가 청부살인범을 만났던 날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찰리는 청부살인업자의 가명이었다. 하지만 통역의 이 같은 진술에도 신 씨는 여전히 살인교사 혐의를 부인했다. 허 씨에게 총을 쏜 범인을 잡지 못한 탓에 경찰은 신 씨의 ‘잡아떼기’ 전략에 속수무책이었다. 경찰은 현지 탐문 조사 끝에 한국인 사업가와 일하는 필리핀인 B 씨를 만날 수 있었다. ‘찰리’의 친구였다. 그는 오랜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찰리가 ‘미스터 신(Mr. Shin)’의 부탁을 받고 한국인을 죽인다며 나한테서 총을 빌려갔어요.” B 씨는 찰리의 실명과 나이 등 신상정보까지 진술했다. B 씨 도움으로 찰리가 허 씨를 살해할 당시 오토바이를 몰았던 공범도 찾아냈다. 이번만큼은 신 씨도 빠져나갈 수 없었다. 경찰은 찰리와의 대화 내용, 오토바이 운전자의 진술서 등을 내밀며 신 씨를 압박했다. “죄책감 때문에 고통스러웠습니다.” 신 씨는 사건 발생 3년 4개월 만인 올해 6월 살인교사 혐의를 자백했다. 당시 신 씨는 30만 페소(약 740만 원)를 주고 청부살인범을 고용했다. 신 씨는 경찰 조사에서 “범죄율이 높은 필리핀에서는 청부살인을 저질러도 적발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어렵게 신 씨의 입을 열었지만 경찰에겐 마지막 관문이 남았다. 허 씨를 죽인 ‘찰리’를 검거하지 않은 채 살인교사범을 먼저 구속하기가 쉽지 않았다. 검찰도 처음에는 “살인범의 실체가 불분명하다”며 보강 수사를 지시했다. 경찰은 신 씨를 출국금지한 뒤 추가 증거를 찾기 시작했다. 신 씨가 찰리에게 살인을 청부하며 스마트폰으로 허 씨 사진을 보낸 사실과 사건 발생 직전 원화를 페소로 환전한 명세 등의 증거가 새로 발견됐다. 신 씨는 18일 살인교사 혐의로 구속됐다.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지난달 27일 오전 5시경. 서울 강북구 주택가에서 개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냥 개 짖는 소리가 아니었다. 소리가 계속되자 일부 주민은 집 밖으로 뛰어나오기까지 했다.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소리가 나는 집을 찾았다. 집 안에는 7kg가량 나가는 프렌치불도그 한 마리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호흡은 거의 멈춘 상태였다. 반려견 주변에는 휘어진 우산대가 버려져 있었다. 현관문 우유 투입구도 산산조각이 났다. 경찰은 반려견을 동물병원으로 옮겼지만 결국 죽었다. 경찰 조사 결과 30대 남성 A 씨가 여자친구 집에 홀로 있다가 반려견이 자신을 물었다는 이유로 우산으로 심하게 때린 것으로 나타났다. 동물학대방지연합이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반려견 사체 부검을 의뢰한 결과 반려견의 온몸에 피하출혈이 있었다. 간 파열도 심각해 일부가 자궁 안쪽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A 씨는 반려견을 죽인 후에도 대수롭지 않은 듯 생활했다. 게임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모바일 메신저 단체 채팅방에 “사고로 여자친구네 강아지를 죽여 버려 (게임) 캐릭터를 정리하고 게임을 접어야 할 것 같다”며 “어이가 없네요. 사람이 물려서 몇 대 때렸다고 죽었는데 사람이 (보상을) 해야 한다니”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서울 강북경찰서는 A 씨를 동물학대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수사 중이라고 24일 밝혔다.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그제부터 ‘마수대’가 난리예요. 빨리 채팅방 없애고 텔레그램으로 옮겨요.” 상대방의 문자에는 잔뜩 긴장감이 느껴졌다. ‘프로’의 냄새도 났다. 경찰 마수대(마약수사대) 같은 표현이 쉽게 나왔고 익숙한 듯 텔레그램 ‘망명’을 알려줬다. 18일 낮 12시 즉석만남 애플리케이션(앱) 대화방에서 나눈 대화 내용이다. 여성으로 위장한 기자가 방 이름을 ‘시원한 술’로 입력하자 1분도 안 돼 남성이라고 밝힌 A 씨가 메시지를 보냈다. 시원한 술은 필로폰을 뜻하는 은어다. A 씨는 마약을 함께 투약하기 위해 접근한 것이다. A 씨는 곧바로 텔레그램(암호화된 메신저 프로그램)으로 옮기자고 유도했다. 전날 같은 앱에서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큰아들이 마약 투약을 같이할 사람을 찾다가 경찰에 체포됐다. A 씨를 따라 텔레그램 채팅방에 접속했다. 1분이 지나면 대화 내용이 자동 삭제되도록 설정됐다. A 씨는 자신을 서울 강남구에 거주하는 30대 남성이라고 소개했다. 6개월 전부터 10일에 1번씩 필로폰을 투약한다고 밝혔다. 동반 투약자 ‘검증’은 까다로웠다. A 씨는 기자에게 ‘마약을 주사기로 투약했냐, 흡입했냐’ ‘1회에 얼마나 투약했냐’ 등을 꼼꼼히 물었다. 마약 관련 ‘은어’를 어떻게 알았는지도 질문했다. 비공개 번호로 전화를 거는 치밀함도 보였다. 그러면서 A 씨는 “경찰의 위장수사가 많다. 적발되면 구속될 가능성이 높아 까다롭게 인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채팅방을 만들고 만남 약속을 잡기까지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채팅앱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온라인을 통한 마약 거래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고 있다. 마약을 지칭하는 ‘시원한 술’ ‘얼음’ ‘작대기’ 같은 은어로 검색하면 마약 거래 관련 글과 영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구매자는 판매자가 올려둔 텔레그램 아이디(ID)로 접촉해 대화를 주고받는다. 거래가 성사되면 가상화폐인 비트코인이 오간다. 마약 전달은 던지기(특정 장소에 숨기면 구매자가 찾아가는 거래)가 고전적이나 소량인 경우 택배를 많이 이용한다. 마약거래를 하며 성관계가 가능한지를 묻기도 했다. A 씨는 만남을 약속하자 키와 몸무게, 가슴 크기를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마약을 투약한 뒤 성관계를 할 수 있으니 어느 정도 외모를 알고 만나야 한다고 설명했다. 유튜브에서도 검색 한 번이면 마약 판매상들이 올린 수십 개의 영상과 글을 볼 수 있었다. 한 영상에는 판매자가 직접 마약 제조 기계를 사용해 마약을 만드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영상에는 판매자의 텔레그램 아이디와 함께 ‘샘플 가능, 당일 가능’이라는 광고 글이 있었다. 이를 보고 메시지를 보내자 5초 만에 ‘필로폰은 1g에 70만 원이고 입금은 비트코인으로 받는다’는 답장이 도착했다. ‘(경찰 단속이 심해져) 던지기는 당분간 힘드니 택배로 보내겠다’고 덧붙였다. 이어 ‘새벽에 입금하면 당일 배송도 가능하다. 1통(10g)을 한 번에 구입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부추겼다. 검경 마약 합동수사반에 따르면 온라인 마약사범 검거자는 2012년 86명에서 2016년 1120명으로 4년 만에 10배 이상 급증했다. 거래 수법도 은밀하고 교묘해지면서 수사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거래는 대부분 텔레그램 등 암호화된 공간에서 진행되고 인증 절차 중 수상한 점이 생기면 곧바로 접속을 끊는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장은 “온라인에서는 범죄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덜하기 때문에 마약의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다”며 “해당 사이트의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국제 공조를 더 공고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13일 오전 서울 강남구 개원중 2교시 쉬는 시간. 휠체어를 탄 2학년 김상윤 군(14)이 같은 반 우석민 군(14)의 도움을 받아 4층 음악실로 가고 있었다. 선천성 연골종증을 앓고 있어 뼈가 쉽게 부러지는 상윤 군은 잘 걷지 못한다. 얼마 전에는 오른쪽 팔이 골절돼 깁스를 했다. 1년 반째 상윤 군의 도우미를 자처하는 석민 군이 복도의 학생들을 요리조리 피하며 ‘휠체어 운전’을 시작했다. 상윤 군이 “석민이는 1년 반 ‘무사고 택시운전사’”라며 엄지를 세웠다. 석민 군은 “경사로를 오를 때마다 팔 아파 죽어”라면서도 “속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상윤이”라고 화답했다. 최근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 여부를 놓고 어른들은 갈등하지만 개원중 학생들은 자연스레 공존을 깨치고 있다. 일반학교인 개원중은 비장애 학생 700여 명과 장애 학생 12명이 다닌다. 상윤 군과 다른 1명은 일반학급에서 모든 수업을 듣고 나머지 10명은 특수학급과 일반학급을 오가며 공부한다. 개원중이 통합교육 모범학교로 불리게 된 건 최근이다. 3년 전 부임한 나승표 교장은 “비장애 학생에게 장애 학생을 끼워 맞추는 식의 통합교육은 안 된다”고 강조했다. 같은 공간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서로 부대끼며 소통할 때 ‘더불어 사는 삶’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매 학기 초 비장애 학생과 담임교사는 특수교사로부터 같이 공부할 장애 학생의 특성을 배운다. 매주 축구와 댄스 수업도 장애 학생과 함께한다. 장애 학생을 위한 행사에는 비장애 학생이 반드시 동참한다. 7일 ‘장애인 양재천 걷기 대회’에서도 비장애 학생들은 스스로 만든 응원 손팻말을 들고 함께 걸었다. 5월 한 반에서 장애 학생을 멀리하는 조짐이 보이자 청각장애인 교육교사를 초청해 장애아에 대한 이해를 돕는 강연을 듣게 했다. 지적장애 1급 딸이 개원중에 다닌다는 한 어머니는 “특수학교에 자녀를 보낸 학부모들도 우리를 부러워한다”고 말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통합교육을 배우는 곳도 있다. 서울 동작구 구립 상도어린이집에서는 2012년부터 매주 삼성학교 청각장애 아동 6명이 찾아와 함께 지낸다. 15일 오전 요리시간. 청각장애가 있는 김예리 양(5)이 선생님 말을 알아듣지 못해 단무지를 빼고 김밥을 말았다. 윤희주 양(5)이 예리 양을 정면으로 보며 “단무지를 넣어서 만들래”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희주 양의 입 모양을 보고 뜻을 알아차린 예리 양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김밥에 단무지를 넣었다. 아이들은 눈빛과 몸짓으로 말이 통했다. 놀이시간에 징을 치던 홍서우 양(6)이 혼자 놀던 청각장애아 이하엘 군(6)에게 장구채를 쥐여줬다. 징을 한 번 치곤 하엘 군을 슬쩍 바라보니 하엘 군이 알았다는 듯 장구를 쳤다. 징과 장구 소리가 묘하게 어울렸다. 이완정 인하대 아동심리학과 교수는 “아이들은 장애아를 그저 조금 ‘다른’ 친구로 받아들일 뿐”이라며 “장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담은 어른들의 언행이 아이들로 하여금 장애에 대한 편견을 갖게 한다”고 지적했다.구특교 kootg@donga.com·이지훈 기자}

자폐성장애와 다운증후군이 있는 유정이(가명·17)는 일반학교에 다니다 두 달 전 집에서 버스로 2시간 거리인 특수학교로 옮겼다. 엄마 장모 씨(40)는 “아이가 갑상샘 약을 복용하고 있어 집에서 뛰어가 약을 전해줄 수 있는 학교에 보내고 싶었는데…. 아이가 너무 힘들어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학교 가는 걸 좋아하던 유정이는 언제부터인가 등교를 꺼렸다. 등굣길에 경기를 일으킨 날도 있었다. 면역력이 떨어져 입원도 했다. 이상하다 여겼지만 언어 구사력이 달리는 아이는 학교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말하지 못했다. 5월 어느 날 유정이는 얼굴 오른쪽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 집에 왔다. 같은 반 아이한테 맞은 거였다. 도우미 학생마저도 유정이를 괴롭혔다. 담임교사에게 이를 알렸지만 학교폭력위원회는 열리지 않았다. 학교에 항의하자 교감은 “이렇게 문제를 만들면 어쩌려고 그러냐. 고등학교는 안 보낼 건가”라고 말했다. 장애아동 10명 중 7명은 1994년 도입된 통합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다닌다. 그러나 많은 일반학교는 이들을 맞을 ‘준비’가 제대로 돼있지 않다. 교육부에 따르면 전체 특수교육 대상자 중 70.6%가 일반학교에 다닌다. 이 중 17.4%인 1만5590명은 특수교사가 없는 학교에 다닌다. 지적장애 1급인 진호(가명·19)를 일반학교에 보냈던 엄마 김모 씨(50)는 학기마다 학교에 불려가 ‘아이가 기물을 파손하거나 다른 학생을 다치게 하면 학부모가 모든 책임을 진다’는 내용의 각서를 썼다. 특수학급이 있는 서울 영등포의 초등학교 교사 이모 씨(28·여)는 “장애학생이 소리 지르거나 물건을 부수는 등 돌발행동을 하면 교사 혼자 감당하기 힘들어 학부모에게 연대책임을 지우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수업시간에도 장애학생은 ‘방해물’ 취급을 받기 일쑤다. 국어, 영어, 수학 같은 주요 과목을 제외하곤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은 통합학급에서 함께 수업을 받는다. 장애학생을 고려해 교사가 거듭 설명하면 비장애학생들은 “진도가 느리다”며 불만을 토로할 때가 많다. 시험이나 입시를 앞두고 ‘알아듣지도 못하는 장애학생과 함께 수업할 필요가 있느냐’는 항의 전화가 학교에 많이 온다고 한다. 통합학급 수업이라도 장애학생은 따라가기 힘겹다. 발달장애가 있는 성현이(가명·16)는 수업 때마다 딴짓을 하거나 책상에 엎드려 잔다. 교외활동에서도 장애학생은 소외된다. 교사들은 장애학생을 학교 밖으로 데리고 가는 걸 꺼린다. 자폐성장애 1급 지현이(가명·15) 엄마 한모 씨(50)는 현장학습 때마다 교사들 도시락을 싸와 현장에서 대기해야 했다. 학교에서 “아이를 현장학습에 보내고 싶으면 와서 직접 관리하라”고 했다. 1박 이상 하는 수학여행은 보낼 엄두도 못 낸다. 진정한 통합학습을 위한 여러 방안이 나오지만 특수교사 충원이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교육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전국 특수교사는 필요한 수의 60%대에 그친다. 교사나 비장애학생의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뜨리는 노력도 절실하다. 교사를 위한 장애 이해도 교육과정이 개설돼 있지만 들어야 할 의무는 없다. 비장애학생은 매 학기 한 차례 장애 인식 교육을 받는 데 그친다. 이마저도 동영상을 보거나 책을 읽는 게 전부다. 통합교육에 힘쓰는 양강중 김봉선 교사(52)는 “비장애학생이 장애를 직접 경험하게 해 단순한 배려가 아닌 이해와 공존의 필요성을 깨닫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이지훈 easyhoon@donga.com·구특교 기자}
서울북부지검은 2012년 19대 총선 당시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 보좌진의 아버지 서모 씨가 후보 단일화를 대가로 통합진보당 후보에게 금품을 건넨 혐의에 대해 내사 중이라고 14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서 씨는 우 원내대표가 출마하려던 서울 노원을 지역구에 출마를 준비 중인 통진당 예비후보 조모 씨에게 수천만 원을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조 씨는 당시 민주통합당과 통진당의 후보 단일화에 반발해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조 씨는 총선 후보 등록 마감을 앞둔 2012년 3월 말 선거비용을 보전받기로 한 뒤 출마 포기에 합의했고 총선이 끝난 뒤 2012년 말 서 씨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수천만 원을 받았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검찰은 우 원내대표는 피진정인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우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어 “저와는 무관한 일”이라며 “사건이 당사자들의 조사만으로 마무리돼가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서 씨에 대해 “17대 국회부터 함께 일해 온 보좌진의 아버지로 지역에서 오랫동안 당원 활동을 하신 분인데 ‘아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으로 몇 차례에 걸쳐 금품을 제공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구특교 kootg@donga.com·박성진 기자}
정기국회 첫날부터 바른정당은 이혜훈 대표의 금품 수수 의혹이라는 악재를 만나 휘청이고 있다. 당초 이 대표는 1일 바른정당 의원들의 만찬을 주재할 예정이었다. 최근 보수통합론 등을 놓고 의원 20명이 이견을 표출하자 단합대회를 겸한 자리였다. 그러나 한때 주재자를 주호영 원내대표로 바꿨다가 오후 늦게 모임을 취소했다. 바른정당의 한 의원은 “억울할 수도 있지만 가능한 한 빠르게 논란을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게 좋다”며 “주말 동안 거취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당내에서는 비상 상황이 된 만큼 지도부를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하고, 김무성 유승민 의원 등이 전면에 나서 당을 수습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바른정당이 내세우는 ‘보수 개혁’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지상욱 의원은 이날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길이 험하고 풍파가 많겠지만 거기에 굴하지 않고 보수 개혁의 길은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날 관련 의혹을 적극적으로 해명했던 이 대표는 이날 본회의에는 출석했지만 하루 종일 침묵을 지켰다. 한편 검찰은 공연기획사 회장인 A 씨(65·여)가 전날 이 대표에게 금품을 제공했다며 제출한 진정사건을 이르면 4일 배당할 방침이다. 검찰에서는 이 사건을 정치인의 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을 담당하는 공안2부(부장 진재선)가 맡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금품 제공의 대가성을 밝히는 데 무게중심을 둔다면 특별수사부가 나설 수도 있다. 이 외에 이 대표는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단체(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 관련 계좌를 통해 금품을 수수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로 경찰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가 지난해부터 첩보를 입수해 진행해온 사건으로, A 씨 건과는 별개 사건이다.송찬욱 song@donga.com·전주영·구특교 기자}
서울 영등포구에서 여행사를 운영하던 중국동포 출신 김모 씨(46·여). 한국을 찾는 중국동포들이 늘면서 여행사도 갈수록 바빠졌다. 2012년 김 씨는 중국동포를 대상으로 항공권이나 여행상품을 판매할 직원 한 명을 새로 뽑았다. 중국동포 A 씨(37·여)였다. A 씨는 일이 많을 때 밤늦게까지도 혼자 일하는 성실한 직원이었다. 김 씨가 암 치료를 위해 병원에 입원했을 땐 병간호를 맡기도 했다. 주위에 “직원을 참 잘 뒀다”는 소문까지 났다. 가족 없이 혼자 살던 김 씨는 A 씨를 친동생처럼 느껴졌다. 수입이 크게 줄어 자신의 급여를 챙기지 못해도 A 씨 급여는 거르지 않았다. 2013년 A 씨가 돈이 없어 한국 국적 취득에 어려움을 겪자 김 씨는 자기 집을 담보로 맡기고 빌린 돈으로 A 씨를 도왔다. 여기까지 놓고 보면 세상에 둘도 없는 사장과 직원이었다. 하지만 A 씨의 본모습은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야 드러났다. 김 씨를 언니처럼 따르며 여행사 업무를 자신의 일처럼 여기던 A 씨 모습은 치밀한 ‘연기’였다. 김 씨의 마음을 얻은 뒤 여행사 돈을 훔치기 위한 목적이었다. 30일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따르면 A 씨는 2012년부터 올해까지 약 200회에 걸쳐 1억 원 이상의 여행사 돈을 훔친 혐의(업무상횡령 및 상습절도)로 수사를 받고 있다. 조사 결과 A 씨는 훔친 돈을 백화점과 강남 피부숍 등에서 사용했다. 백화점 직원 B 씨는 “A 씨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백화점에 들러 쇼핑을 즐겼다”고 말했다. A 씨의 범행은 취업 1년도 안돼 시작됐다. 항공권을 판매한 뒤 장부를 조작하고 수수료를 챙겼다. 중국동포를 상대로 한 여행사가 주로 현금 거래를 한다는 점을 노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범행은 대담해졌다. 바로 옆에 앉은 김 씨와 대화하면서 책상서랍에 있던 5만 원권 현금다발을 슬쩍하기도 했다. 이런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수십 회 포착됐다. 양말 속에 돈을 집어넣고 화장실에 간다며 엉거주춤 걷는 모습도 보였다. A 씨의 범행은 한 손님이 “돈을 보낸 계좌번호가 다르다”는 말을 김 씨에게 하면서 발각됐다. 그러나 A 씨는 “큰 돈을 한 번에 가져간 적 없다. 조금씩 필요할 때 생활비로 가져가 썼을 뿐”이라며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

29일 오후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 결심공판이 열린 인천지법 413호 법정. 공범 박모 양(19)에게 무기징역과 전자발찌 30년 부착을 구형하는 인천지검 나창수 검사(43)의 목소리가 떨렸다. “피고인은 건네받은 시신 일부를 보며 좋아하고 서로 칭찬할 때 부모는 아이를 찾아 온 동네를 헤맸다”며 울먹였다. 나 검사는 “아이가 그렇게 죽으면 부모의 삶도 함께 죽는 것…”이라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무기징역 구형에 박 양은 충격을 받은 듯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왼손으로 눈가를 훔쳤다. 박 양은 “너무 어린 나이에 하늘로 간 피해 아동과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면서도 “사체유기는 인정하지만 살인은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법정의 방청객 여러 명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 “박 양이 시켜…실험동물 된 느낌” 박 양의 결심공판에는 주범 김모 양(17)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김 양은 범행 계획부터 실행, 사후 처리까지 사실상 박 양의 지시에 따라 살인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검사의 질문에 답하는 내내 김 양은 피고인석의 박 양을 단 한 차례도 쳐다보지 않았다. 김 양은 “(박 양과) 계약연애를 시작한 후 관계의 주도권을 가진 박 양이 손가락과 폐, 허벅지살을 가져오라고 했다”며 “사람 신체 부위를 소장하는 취미가 있다고 했고, 폐와 허벅지 일부를 자신이 먹겠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또 김 양은 “박 양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계획하고 있냐고 끊임없이 물었고 범행 장소, 범행 대상, 사체유기 방법 등을 의논했다”며 “(내가) 실험동물이 된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김 양은 박 양이 살인을 방관한 적이 있는 것처럼 말하면서 ‘원한이 있는 사람을 망치로 죽인다’ ‘사람을 도축하듯이 없애버릴 수 있으니 알아보라’는 얘기도 했다고 밝혔다. 또 “‘너보다 어리고 약한 애가 합리적’이라며 범행 대상을 골라줬고 폐쇄회로(CC)TV가 없어서 시신을 유기해도 걸리지 않을 장소가 학원 옥상이라고 알려줬다”고 진술했다. 김 양은 또 박 양이 기습적으로 키스를 한 뒤 계약연애를 제안했고 범행 뒤 “제가 형을 살고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다. 절 좋아한다고 했다”고 밝혔다. 김 양은 “처음엔 친구를 숨겨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진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싶다”고 진술했다. 김 양은 “범행 일주일 전 박 양과 나눈 트위터 내용만 봐도 (진실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두 사람의 트위터 메시지는 미국 연방수사국(FBI)이 확보해 분석 중이다. 검찰은 30분에 걸쳐 최후 의견을 밝혔다. 검찰은 “피고인은 사실상 성인이고 아이큐가 125”라며 “기억력이 뛰어나고 논리적이며 불리한 내용은 빼고 역할극 부분만 선택해 왜곡된 진술을 했다”고 말했다. 박 양은 지금까지 김 양과 나눈 모든 대화나 메시지가 온라인 역할극의 일부라 주장했다. 하지만 김 양은 “박 양이 시종 진지했다”며 역할극 주장을 반박했다.○ 주범, 18세 미만이라 징역 20년 이어 열린 김 양의 결심공판에서 김 양은 살인을 계획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실제 범죄가 계획과 달리 이뤄졌고 제가 피해자에게 동물을 만지지 않게 했다면 범죄가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김 양은 동성 연인인 박 양과 공모해 피해 아동을 유인한 뒤 목 졸라 살해하고 신체 일부를 잔혹하게 훼손했다”며 징역 20년에 전자발찌 30년 부착을 구형했다. 검찰이 직접 살인을 저지른 김 양에게는 징역 20년을 구형하고 공범인 박 양에게는 무기징역을 구형한 것은 나이 때문이다. 소년법에 따르면 범행 당시 나이가 만 18세 미만인 경우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해당하는 죄를 저질러도 최대 형량은 징역 15년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처럼 잔혹한 살인의 경우에는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정강력범죄법)에 따라 최대 형량은 징역 20년까지 올라간다. 김 양과 박 양이 살인을 저지른 시점은 올해 3월 29일. 당시 김 양은 2000년 10월생으로 만 16세, 박 양은 1998년 12월생으로 만 18세였다. 따라서 김 양은 소년법과 특정강력범죄법에 따라 최대 형량인 징역 20년을 구형받았다. 검찰은 김 양에 대해 “죄질이 불량해 무기징역을 구형해야 하지만 범행 당시 16세이므로 최상한인 징역 20년을 구형한다”고 밝혔다. 박 양은 만 18세 이상이라 사형 구형도 받을 수 있었지만 검찰은 그보다 낮은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선고 공판은 9월 22일이다.○ 탄식, 박수 그리고 눈물 이날 방청객 50여 명의 3분의 2는 사건이 발생한 동네 주민이었다. 김 양의 입에서 끔찍한 내용의 진술이 나올 때마다 방청석에선 깊은 탄식이 흘러 나왔다. 견디다 못해 재판 도중 법정을 나서는 이도 있었다. 검찰이 박 양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하자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졌다. 눈물을 흘리는 방청객도 많았다. 고모 씨(45·여)는 “솔직히 박 양이 무기징역을 받을지 예상하지 못했다. 막혔던 속이 뚫리는 느낌이었다”며 “두 명 다 무기징역을 받아야 정상인데 김 양이 미성년자라는 이유만으로 감형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피해 어린이 가족을 돕는 김지미 변호사는 김 양의 진술을 언급하면서 “(결국) 박 양의 존재로부터 시작됐다. 만약 박 양이 없었다면, 김 양이 박 양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번과 같은 사건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가족들은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한 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가족들은 중형 선고만이 아니라 다시는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인천=김단비 kubee08@donga.com / 구특교·차준호 기자}

고압 분무기는 평소 방역이나 농약 살포 작업에 쓰이지만 전쟁이 나면 생화학 무기를 살포하는 무기가 될 수 있다. 차량용 내비게이션에 장착되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은 순항미사일 유도장비로 활용이 가능하다. 또 공장에서 합금을 제조할 때 들어가는 텅스텐 분말은 미사일 부품으로 쓰인다. 정부는 이런 물품과 관련 기술의 수출을 통제하고 있다. 전쟁을 수행하는 데 쓰이는 전략물자이기 때문이다. 한국을 상대로 전쟁이나 테러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는 북한 등에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북핵 위기 등 안보 위협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전략물자 불법 수출 사범이 급증한 것으로 28일 확인됐다. 경찰청에 따르면 1∼7월에만 112명에 달해 지난해 1년 동안 검거된 전략물자 불법 수출 사범 78명을 훌쩍 넘어섰다.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불법 수출되는 전략물자는 동선을 추적할 수 없기 때문에 북한으로 유입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수출대행업체 A사는 지난해 8월 산업통상자원부의 허가를 받지 않고 100만 달러(약 11억3000만 원) 상당의 순도 97% 이상 몰리브덴 파우더 200kg을 중국에 수출했다가 올해 3월 인천삼산경찰서에 적발됐다. 윤활유 재료로 주로 사용되는 몰리브덴 파우더는 미사일 부품의 내열재로도 쓰이는 전략물자다. 불법 수출 당시 A사 제품은 세관을 무사통과했다. 관세청에서 물품을 분류하는 코드 기준과 전략물자 통제 기준이 연결돼 있지 않았던 탓이다. 정부 당국자는 이날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산업부와 관세청의 통제 시스템 연동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다”고 털어놨다. 몰리브덴 파우더처럼 산업 또는 생활 용품으로 사용되면서 동시에 전쟁에 필요한 장비 생산에도 쓰이는 이중용도 전략물자는 2426개에 달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략물자 불법 수출이 성행해도 단속이 어렵다. 통신업체 B사는 2012년부터 3년 동안 산업부 허가 없이 전략물자인 네트워크 암호화 프로그램과 관련 기계 700여 대를 중국 러시아 인도 등 19개국에 수출했는데 올해 4월에야 인천 중부경찰서에 적발됐다. 이 장비는 군용 통신 암호화 장비로 쓰일 수 있는 전략물자다. B사는 2012년 이전에도 전략물자를 불법 수출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공소시효(5년) 이전 사건이라 처벌을 받지 않았다. 보안당국은 특히 중국으로 불법 수출된 전략물자의 북한행을 우려하고 있다. 올 6월 중국의 단둥 둥위안이라는 회사가 북한에 탄도미사일 유도장치에 쓰이는 무선항법 보조기구 79만 달러(약 8억9270만 원)어치를 수출한 사실이 밝혀졌다. 이 무선항법 보조기구가 어디서 중국으로 흘러들어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또 미사일 부품으로 쓰이는 전략물자가 중국에서 파키스탄을 거쳐 북한으로 들어가기도 했다. 또 한국산 전략물자가 해외의 복잡한 경로를 거쳐 이슬람국가(IS) 등 극단주의 무장단체로 유입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과거 미국이 확보한 시리아의 미사일에 한국에서 생산된 전략물자가 장착됐던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략물자를 허가 없이 수출하면 대외무역법에 따라 7년 이하의 징역이나 물품 가격의 5배에 해당하는 벌금에 처해진다. 하지만 적발된 업체는 대부분 가벼운 처벌을 받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초범은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수출액이 크면 벌금형에 처해지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조동주 djc@donga.com·구특교 기자}

“질 좋은 우리 농산물로 요리를 하면 맛이 저절로 살아납니다.” 2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2017 A FARM SHOW―농림식품산업 일자리 박람회’를 찾은 스타 요리사 강레오 씨는 박람회장 무대 위에서 싱싱한 채소를 들어 보였다. 부대 행사로 열린 요리쇼 ‘강레오와 함께하는 셰프의 테이블’에서 그는 충남 예산의 고추와 파, 전남 무안의 전복, 완도의 세모초 등 지방자치단체들의 특산물을 활용한 전복초 요리를 선보였다. 채널A 프로그램 ‘유쾌한 삼촌―착한농부를 찾아서’에 출연하는 강 씨는 “방송을 통해 농촌 160여 곳을 방문했는데 우리 농산물의 품질이 정말 좋다는 것을 느꼈다”며 “훌륭한 농산물을 재배하는 농민들의 장인정신에 감탄한다”라고 덧붙였다. 요리쇼에서 만난 장옥자 씨(64)는 “귀농·귀촌에 대한 정보도 유익하고 재밌는 볼거리도 많은 박람회였다”고 말했다.○ 농업으로 준비하는 일자리 박람회를 찾은 관람객들은 “농식품업 분야의 다양한 일자리 정보를 얻을 수 있어 희망을 봤다”고 입을 모았다. ‘농협사료’ 채용 부스를 운영한 김일영 농협사료 계장은 “3일간 부스에 100명 넘는 사람들이 쉴 틈 없이 찾아와 식사도 거른 채 상담을 해야 했다”며 “첫 취업을 하려는 청년들은 물론이고 새 삶을 시작하려는 장년층도 몰려 왔다“고 말했다. 경기 화성에서 2시간여를 달려 왔다는 이지연 씨(28·여)는 “동물소재과학과 전공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를 찾는 중”이라며 “농업 관련 채용은 다른 분야에 비해 정보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이렇게 한자리에서 많은 정보를 얻어 갈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은퇴 후 재취업을 고려 중이라는 김성수 씨(58)는 “나이 때문에 안 될 거라 생각했는데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일자리를 추천해줘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농업 분야의 창업을 꿈꾸는 사람도 많았다. 수경재배 스마트팜을 선보인 ‘대산정밀’ 부스에선 10여 명의 관람객이 한꺼번에 질문을 던지는 광경이 목격됐다. 이기범 씨(54·여)는 “스마트팜을 통해 작물 재배를 자동화하고 소비자들도 스마트 기기로 채소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새 사업 소재를 얻어 간다”고 말했다. 친환경 목장인 ‘은아목장’ 부스 앞에서 만난 대학생 채민걸 씨(24)는 “창업관에서 이미 성공한 농산업 기업을 만나볼 수 있어, 농업 분야로의 진출을 꿈꾸는 내 진로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귀농·귀촌 팁부터 우리 농산물 구입까지 ‘귀농·귀촌관’에선 농촌에서 제2의 삶을 시작하려는 관람객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상담을 받았다. 경상남도 부스에서 상담을 받은 신영재 씨(49)는 “지금까지는 제대로 된 정보가 없어 귀농·귀촌에 선뜻 나설 수 없었지만 이번 박람회에서 작물 선정은 물론이고 현지 주민들과 관계 맺는 법까지 알게 됐다. 곧 귀농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경남 부스의 지정숙 굿데이영농조합 사무국장은 “첫날에만 50명이 개별 상담을 받을 만큼 귀농·귀촌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진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농업 분야의 미래 유망 직업에 대한 관심도 컸다. 26일에는 살림전문가 이효재 씨가 샐러드 만들기 강연을 통해 ‘채소 소믈리에’에 대해 설명했다. 자리가 부족해 선 채로 강연을 듣는 관람객만 수십 명이었다. 26, 27일 이틀 연속 박람회를 찾았다는 방성미 씨(50·여)는 “피아노 강사 일을 30년 해 왔지만 이제는 색다른 일을 하고 싶어 박람회를 찾았다”며 “채소 소믈리에에 도전하기 위해 자격증을 딸 생각”이라고 말했다. 지자체 특산물을 파는 ‘에이팜 마켓’도 하루 종일 북적거렸다. 특히 한산 모싯잎으로 만든 모시떡을 파는 충남 서천군 부스에는 떡을 먹어보고 사가려는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서천군농업기술센터에서 일하는 나승연 씨(47)는 “서천군 농가가 직접 재배한 콩으로 만든 콩가루만 사용해 더욱 맛이 좋다”고 말했다. 본보의 박람회 기사를 보고 경기 오산에서 찾아왔다는 윤금자 씨(79·여)는 “인공지능 등 새로운 기술을 도입한 농촌이 다양한 일자리도 창출하는 걸 보고 우리 농업이 이만큼이나 발전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뿌듯한 박람회였다”고 말했다.손가인 gain@donga.com·김단비·구특교 기자}
어려운 아동을 돕겠다며 모금한 후원금을 횡령한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S사단법인의 후원자 일부가 피해 사실을 알고도 어쩔 수 없이 계속 기부금을 내고 있다. 신용카드 할부로 1, 2년 치 후원금을 한 번에 납부해 매달 일정액이 자동 결제되는 것이다. S사단법인 측은 “취소가 불가능하다”고 밝혀 후원자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22일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에 따르면 S사단법인이 2014∼2017년 4만9000여 명의 후원자를 상대로 모금한 128억 원 중 67%인 86억 원가량이 카드 할부로 납부됐다. 통상 구호단체들은 계좌 이체 방식으로 후원금을 모금하지만 S사단법인은 “안정적으로 도와달라”며 카드 할부를 독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예컨대 후원자가 1년 약정으로 120만 원을 일시불 결제하면 매달 10만 원씩 자동으로 카드 결제가 되는 방식이다. 후원자가 잔액을 모두 인출하면 후원금이 더 이상 빠져나가지 않는 계좌 이체보다 모금 기관에 유리한 방식이다. 경찰 관계자는 “카드 할부로 기부금을 받는 것은 드문 사례”라며 “일부러 이런 방식을 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카드 결제로 피해를 본 후원자들이 만든 온라인 카페는 경찰 수사 결과가 발표된 지 열흘 만에 회원이 2000명을 넘어섰다. 피해 후원자들은 S사단법인을 상대로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 중이다. S사단법인은 후원자들에게 “법인 계좌가 정지돼 카드 취소가 불가능하다”는 답변만 내놓고 있다. 하지만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S사단법인이 이미 할부금을 지급받기는 했지만 자발적으로 취소하고 돈을 내놓으면 피해자들이 후원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부터 매달 5만 원씩 후원금을 카드 할부로 납입해 온 황모 씨(29·여)는 “어려운 아동을 돕는다는 마음에 후원했다 사기당한 것도 마음 아픈데 후원한 걸 취소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처했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S사단법인은 홈페이지에 “후원이 끊길까 걱정된다”는 취지의 사과문을 올려 후원자들의 비난을 사고 있다. 법인은 “오해가 있었다. 설립 후 4년간 지원금 및 교육 콘텐츠 30억 원 상당을 아동들에게 지원했다”며 경찰 수사 결과를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128억 원을 모금해 약 2억 원만 기부금으로 사용하고 10억 원 안팎을 횡령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14일 S사단법인 회장 윤모 씨(54)와 대표 김모 씨(37·여)를 업무상 횡령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3년간 3만 원씩 기부해온 후원자 이모 씨(48)는 “마음이 치유되면 다른 곳에 기부를 이어갈까 고민했는데 사과문을 보니 기부에 대한 마음이 아예 사라졌다”고 말했다.구특교 기자 koot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