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금지법 1년만에 매출 절반으로… 수십년 전통 음식점들 잇달아 문닫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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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소상공인 긴 한숨

“24년 만에 장사를 접네요. 문재인 대통령도 다섯 번이나 오셨는데….”

말끝을 맺지 못한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폐업을 사흘 앞둔 주인의 심경이 그대로 느껴졌다. 27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고깃집에서 만난 사장 정모 씨의 표정은 어두웠다. 20년 넘게 운영한 식당의 문을 곧 닫기 때문이다. 30일이 식당의 마지막 영업일이다.

정 씨 식당은 좌석이 200개가 넘는다. 일대에서 가장 크다. 1인분(150g)에 4만9000원짜리 꽃등심 등 한우와 수입 쇠고기가 주메뉴다. 값비싼 고기만 있는 건 아니다. 9000∼1만 원의 갈비탕 육개장 비빔밥 등도 내놓는다. 점심때면 근처 직장인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청탁금지법 시행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고기 메뉴의 1인분 가격이 대부분 3만 원을 넘다 보니 단체 손님의 발길이 뚝 끊겼다. 고기 판매가 50% 이상 줄었다. 30명이 넘던 식당 직원을 20명가량으로 줄였지만 버틸 수가 없었다. 대통령이 바뀌면 나아질 거라는 희망도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악화됐다. 1년이 한계였다. 정 씨는 “청탁금지법 시행 후 매출액은 줄고 인건비와 고깃값까지 오르면서 더 이상 상황이 바뀌지 않았다”며 폐업 이유를 설명했다.


길 건너 다른 한식당도 29일 문을 닫는다. 한식당 사장 최모 씨(55·여) 역시 1년 정도 버티면 빛이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직원 수를 줄이고 단가를 낮추며 하루하루 버텼다. 하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최 씨는 “30년 넘게 자리를 지킨 식당인데 (청탁금지법) 시행 후 매출이 3분의 1 이상 떨어지면서 더 이상 운영이 불가능하다”며 “자리를 옮겨 저렴한 국밥집 등 다른 가게 창업을 고민해야 할 것 같다”라며 울먹였다.

근처 일식당 사장 이모 씨(67)도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 원래 직원이었던 그는 한 달 전 식당을 인수했다. 1958년 영업을 시작한 곳이라 단골이 꽤 있는 식당이었다. 청탁금지법 영향이 있었지만 열심히 하면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의 벽은 높았다. 이 씨는 “하루 매출이 200만 원은 나와야 현상 유지가 가능한데 100만 원 내기가 쉽지 않다”며 “(청탁금지법 탓에)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고 하소연했다.

중소벤처기업부가 국민의당 손금주 의원에게 제출한 ‘청탁금지법 시행 전후 소상공인(소기업) 경영실태 2차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소기업·소상공인의 66.5%가 법 시행 후 경영 상태가 악화됐다고 응답했다. 청탁금지법 시행 6개월 후인 올 3월 기준 조사다. 시행 3개월인 지난해 12월(59.8%)보다 높아졌다. 영업이익은 평균 16% 줄었다고 답했다. 기업들의 단체 회식 및 접대가 줄어든 게 직격탄이었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분석 대상 기업의 73%가 접대비를 줄였다. 접대비는 15% 이상 감소했다.

구특교 kootg@donga.com / 세종=최혜령 / 김지현 기자
#청탁금지법#매출#음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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