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

김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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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국제부 기자입니다. 예술가의 이야기를 따로 모아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kimmin@donga.com

취재분야

2026-02-26~2026-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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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일반17%
미술17%
무용15%
문학/출판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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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5%
칼럼2%
역사2%
  • [책의 향기]아일랜드 걸으며 온전한 ‘나’를 만나다

    아일랜드 코크의 좁고 어두운 펍에서 리베카 솔닛은 한 걸인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굽은 무릎 탓에 게처럼 걷는 걸인을 동네 아이들은 두려움의 눈길로 봤다. 걸인의 걸음걸이는 19세기 중반 아일랜드 대기근과 연관돼 있었다. 당시 아일랜드에서는 장례식을 치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다. 가난한 부부는 죽은 막내아들을 차마 구덩이에 버릴 수 없어 관을 만들었지만 아이의 몸을 담기에 작았던 것. 결국 아이의 다리를 분질렀다. 하지만 아이는 살아있었고 훗날 코크를 떠도는 걸인이 됐다. 솔닛은 과거의 죽은 기록인 줄 알았던 역사가 누군가의 기억에 남아있다는 사실에 매료된다. 아일랜드를 여행 중인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칠 걸인의 모습에서 역사와 기억에 관한 사유를 펼쳐나간다. 이 책은 솔닛이 26세이던 1987년, 족보를 연구하던 삼촌 덕분에 아일랜드 여권을 받게 되면서 떠난 여행으로 시작됐다. 한 달간 대부분을 걸어서 아일랜드를 누빈 그는 풍부한 조사와 현지 취재를 바탕으로, 길에서 혹은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떠올린 단상을 적어둔다. 1997년 출간된 이 책은 4년 뒤 솔닛에게 명성을 안겨준 ‘걷기의 인문학’으로 발전됐다. 자신이 자란 미국 캘리포니아는 ‘뿌리 없는’ 지역이라 고백하는 그가 아일랜드로 떠난 것이 자신의 혈통을 찾기 위해서는 아니다. 오히려 그는 길을 걸어가며 정해진 개념과 정의를 풀어헤친다. 더블린의 자연사박물관 구석에 진열된 나비 한 마리를 보고 반(反)제국주의자였던 로저 케이스먼트의 이야기로 흘러가는 식이다. 공식적 역사의 샛길로 향하며 살아있는 생생한 장면들을 건져낸다. 절정에 달하는 건 켄메어 환상열석(還狀列石)을 마주할 때다. 온갖 거창함과 장식이 사라진 벌거벗은 풍경 앞에서 그는 내면의 깊은 곳으로 파고든다. 혈통이라는 것이 믿으면 만들어지는 ‘신앙 고백’에 불과하지는 않은지 돌아보며 ‘몸 하나만 남은 존재’가 되는 자유로움을 느낀다. 사회가 규정해주는 존재가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는 ‘나’의 온전함을 이야기한다. 국내에서 솔닛은 페미니스트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유의 과정을 따라가면 고정된 개념에 그를 가두는 것이 오독임을 느낀다. 2017년 국내 강연에서도 페미니즘에 관한 질문만 받자 당황한 듯 “내가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다 갖고 있지 못하지만, 그런 척해야 하는 자리인 것 같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이 책은 솔닛의 서술이 분열이나 편들어 주기가 아니라 가부장제와 제국주의 체제에서 배제된 인간의 이야기란 무엇인지 찾아가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책의 막바지에서 그는 아일랜드의 ‘트래블러’를 이야기한다. 유럽의 집시처럼 아일랜드를 떠돌아다니며 생활하는 트래블러를 통해 유럽과 영국의 비주류로 간주된 아일랜드에서조차 차별받는 존재들이 있음을 말한다. 관광객을 위한 여행책자에서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틈바구니를 파헤치는 과정은, 지역을 속속들이 체득하는 여행의 지적 흥미를 일깨워준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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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의 캔버스엔 제주 바람이 휘몰아친다

    변시지 화백(1926∼2013)은 1975년 제주도로 귀향한 뒤 황토빛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 그림을 본 일본인 화랑 대표는 변 화백에게 돈 봉투를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 “이런 식의 그림은 일본 시장과 맞지 않으니 더 이상 거래가 어렵겠습니다.” 지금까지 거래해온 것에 대한 인사치레의 돈 봉투를 끝으로 그림을 더 이상 사지 않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변 화백은 꿋꿋이 자신만의 언어를 전개해 나갔다. 제주의 산방산, 형제섬을 배경으로 휘몰아치는 바람을 거친 붓질로 담아낸 그림들은 그에게 ‘폭풍의 화가’라는 별명을 안겨 주었다. 이 시기 그려진 주요 작품 40여 점을 16일부터 서울 종로구 가나아트센터 전관에서 열리는 ‘변시지, 시대의 빛과 바람’전에서 감상할 수 있다. 제주 서귀포에서 태어난 변 화백은 다섯 살 때인 1931년 가족과 일본으로 이주했다. 1945년 오사카미술학교를 졸업하고 도쿄대 교수 데라우치 만지로(1890∼1964)의 문하생이 되어 서양 근대미술을 배웠다. 1948년 당시 일본 아카데미 화단의 주류였던 ‘광풍회’전에서 23세로 최연소 수상하고 이듬해 심사위원을 맡았다. 당시 심사위원은 보통 50대 이상이었다. 1957년 귀국한 뒤에는 창덕궁 비원(후원)을 소재로 한 작품을 선보였다. 이때만 해도 후기 인상주의 스타일로 그림을 그렸는데, 국내에 머물러도 일본의 화랑에서 꾸준히 전시를 하며 사랑을 받았다. 그러다 고향으로 돌아가 화단이나 시장과도 멀리한 채 독자적인 조형 언어를 추구해 나간 것이다. 전시장의 작품들을 통해 그의 실험 과정을 볼 수 있다. 특히 평소 즐겨 쓰던 노란색뿐 아니라 흰색, 흑색, 녹색, 적색 등 다양한 색을 사용했다. 그의 미세한 색 터치는 도록으로는 좀처럼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 시기 작품이 변 화백 작고 후 이 정도 규모로 서울에서 전시되는 것은 처음이다. 그가 국내 화단과도 가깝게 지내지 않고, 또 제주 시절 그림은 일본에서도 외면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 그림에서는 세상과 단절하며 자신의 길을 찾아나간 과정에서 느낀 심상이 전해진다. 11월 15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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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기생충-BTS 열풍 이어 ‘미술 한류’ 바람도 불까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방탄소년단(BTS)의 케이팝을 잇는 다음 타자는 ‘미술 한류’가 될 수 있을까. 한국 문화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LACMA)이 국립현대미술관과 공동으로 대규모 한국 미술 기획전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2일 미술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LACMA는 2022년 ‘한국의 20세기 미술’전과 2024년 ‘한국 동시대 미술’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마이클 고번 LACMA 관장이 지난해 방한했으며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을 만나 기획전 개최를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한국의 20세기 미술’전은 미국에서 최초로 한국의 근대미술을 조망하는 기획전이어서 관심을 모은다. 미국 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 우리나라의 삼국시대∼조선시대 예술이나 동시대 예술을 연구하고 작품을 수집하는 경우는 종종 있어 왔다. 그런데 20세기를 비롯한 근대미술에 대한 조명은 이번이 처음이다. 구체적인 전시 내용은 두 미술관이 논의하고 있는데 대략 조선시대 말부터 20세기 전반을 다룰 것으로 전해졌다. 청전 이상범(1897∼1972) 소정 변관식(1899∼1976)을 비롯해 이쾌대(1913∼1965) 등 20세기 대표 작가의 작품 100여 점을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LACMA 측은 한국 미술사에서 중요성에 비해 간과된 시기를 조망하는 만큼 학술 세미나 개최, 전시 도록 출간은 물론이고 참고서적 출간도 검토 중이다. LACMA는 지난해 6∼9월 한국의 서예를 조망한 ‘선을 넘어서: 한국의 서예(Beyond Line: The Art of Korean Writing)’전을 열어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주요 서예 작품 90여 점을 선보였다. 이 전시는 LACMA의 단독 개최였다. 반면 2022년과 2024년 열릴 두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공동 주최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축적한 한국 근현대미술 연구 및 전시 성과를 통해 한국 미술을 더 잘 알릴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965년 개관한 LACMA는 미국 서부 최대 규모의 공립 미술관으로 고대부터 동시대까지 작품 약 1만4000점을 소장하고 있다. 한인이 많이 살고 있는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인구 다양성 표방에 중점을 둔 미술관이다. 북미에서 가장 많은 한국 미술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으며 한국 미술 큐레이터도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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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캔버스로 옮겨온 ‘거리 낙서’ 전세계 매혹

    국제미술 최전선에 있는 조형 언어가 궁금하다면 이 전시를 꼭 보라고 권하고 싶다. 이 전시는 예술 마니아들이 올해 최고 기대작으로 손꼽은 기회이기도 하다.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8일 개막한 ‘장 미쉘 바스키아―거리, 영웅, 예술’전 이야기다. 전시는 미국 뉴욕 출신 예술가 장미셸 바스키아(1960∼1988)의 회화, 드로잉 등 150여 점을 선보인다. 작품 보험가액 1조 원, 전시장 보험료만 5억 원에 달하며 바스키아의 국내 전시로는 최대 규모다.○ 세계 관객 사로잡은 슈퍼스타 바스키아는 이미 ‘20세기를 대표할 작가’로 기록되며 전 세계를 매혹하고 있다. 2017년 영국 런던 바비컨센터 회고전은 미술관 사상 최다 관객(약 22만 명)이 들었다. 2019년 프랑스 파리 루이뷔통재단 미술관 전시도 그해 파리 최다 관객(67만6503명)을 기록했다. 같은 해 일본 도쿄 모리미술관의 ‘바스키아 인 저팬’전은 국내 팬도 바다를 건넜다. 국내 전시도 개막 첫 주말 사전 예약 티켓 대부분이 매진됐다. 9일 오전 찾은 전시장에서는 개관 전부터 줄 선 관객을 볼 수 있었다. 특히 10∼30대 관객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는데, 이는 그가 1980년대 뉴욕의 대중문화를 흡수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바스키아는 거리에서 그라피티로 활동을 시작했고, 거리의 언어를 캔버스로 옮겨 스타가 됐다. 개념에 갇히지 않은 폭발적인 언어는 시대를 뛰어넘어 21세기의 관객과 소통하고 있다. 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 가수 비욘세와 제이지 등 유명 연예인이 그의 팬을 자처한다.○ 생생한 충돌의 언어 전시는 바스키아의 작품 세계를 보기에 아쉬움이 없을 만큼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초반에는 바스키아의 ‘SAMO’ 그라피티 사진이 보인다. 무작위의 벽에 스프레이 캔을 들고 쓴 글귀는 그가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주변 맥락 속에서 시각 언어를 만들어냈음을 보여준다. 그 다음 ‘Old Cars’ 등의 작품으로 거리의 언어가 캔버스로 옮겨진 과정을 볼 수 있다. 때 묻은 흔적, 상반된 형태의 충돌, 완성되지 않은 문장은 작품이 무한정 발산하도록 만든다. ‘A’ 등의 알파벳을 배치하는 등의 표현을 바스키아는 ‘눈으로 하는 랩(Eye Rap)’이라고 말했다. 바스키아가 20세기 대표 작가로 꼽히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1980년대 미국은 개념을 중심으로 한 ‘미니멀리즘’ 예술이 대세였다. 시각 언어를 최소화한 것이 ‘미니멀리즘’이라면 바스키아는 그 후 부상한 ‘신표현주의’의 출현을 예고했다. 내년 2월 7일까지. 1만∼1만5000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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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보 경복궁 근정전이 아파트 한채 값?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돈화문 등 국보 및 보물로 지정된 주요 목조 문화재의 재산 가치가 턱없이 낮게 책정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1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이 문화재청으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주요 궁·능 문화재 국유재산가액’ 자료에 따르면, 조선시대 국왕 즉위식이나 대례를 거행했던 근정전의 국유재산가액은 32억9110만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복궁 내 자경전은 12억6904만 원, 사정전은 18억7524만 원, 수정전은 8억7670만 원이었다. 창덕궁의 정문이자 현존하는 궁궐 대문 중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인 돈화문의 국유재산가액은 14억4670만 원이었다. 국유재산가액은 문화재의 화재보험 가입 기준이 되는 금액으로 문화재청이 자체적으로 책정한다. 가액이 낮게 책정되면 화재가 났을 경우 받을 수 있는 보험금도 적다. 김 의원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 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압구정 현대아파트(11차)의 평균 거래가격이 44억 원이 넘는다. 문화재 재산 가치가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화재청은 “문화재 가치를 반영해 가액을 매길 경우 보험료가 비싸지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해명했다.최고야 best@donga.com·김민 기자}

    • 2020-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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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복궁 근정전 재산가치 33억, 압구정 아파트보다 싸다고?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돈화문 등 국보 및 보물로 지정된 주요 목조 문화재의 재산가치가 턱없이 낮게 책정됐다는 지적이 나왔다. 12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이 문화재청으로부터 제출받아 공개한 ‘주요 궁능문화재 국유재산가액’ 자료에 따르면, 조선시대 국왕 즉위식이나 대례를 거행했던 근정전의 국유재산가액은 32억9110만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경복궁 내 자경전은 12억6904만 원, 사정전은 18억7524만 원, 수정전은 8억7670만 원이었다. 국유재산가액은 문화재의 화재보험 가입 기준이 되는 금액으로 문화재청이 자체적으로 책정한다. 가액이 낮게 책정되면 화재가 났을 경우 받을 수 있는 보험금도 적다. 창덕궁의 정문이자 현존하는 궁궐 대문 중 가장 오래된 목조 건물인 돈화문의 국유재산가액은 14억4670만 원이었다. 창덕궁 내 인정문은 23억5319만 원, 부용정은 8815만 원이다.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 큰 행사를 치르던 창경궁 명정전은 12억5510만 원, 왕비의 침전인 통명전은 10억3519만 원이다. 덕수궁 중화전 및 중화문은 23억6382만 원, 함녕전은 10억1699만 원 등이었다. 김 의원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서울 압구정 현대아파트(11차)의 평균 거래가격이 44억 원이 넘는다. 문화재 재산가치가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문화재청은 “문화재는 사실상 값으로 매길 수가 없기 때문에 일반 화재보험 논리와는 맞지 않는다. 문화재 가치를 반영해 가액을 매길 경우 보험금액이 높아지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해명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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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스타 지성인’ 수전 손택의 일대기

    1947년, 14세이던 수전 손택은 소설가 토마스 만을 만난다. 10대 소녀가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만날 수 있었던 건 전화 한 통 덕분이었다. 손택은 그의 소설 ‘마의 산’을 읽고 전율을 느낀 뒤 전화번호부에서 이름을 찾아 무작정 전화를 했다. 이 당돌한 소녀를 만은 집으로 초대했다. 그러나 이 만남에서 손택은 실망하고 당황했다. 카프카와 톨스토이를 좋아하던 그에게 만은 고작 고등학교 교과과정을 물었던 것. 흥미로운 여고생 정도로 취급당한 이 경험을 손택은 훗날에도 우스갯소리로 넘기지 못했다. 강한 자아와 인정 욕망, 이것이 그녀를 스타 지성인이자 뜨거운 행동가로 만들었다. 이 책은 ‘20세기 문단에서 극찬과 동시에 가장 엇갈린 평가를 받은’ 손택의 삶을 시간순으로 추적한다. 2004년 그가 세상을 떠나고 처음 출간된 전기로 독일 비평가가 집필했다. 손택이 남긴 글과 풍부한 주변 인터뷰를 토대로 했다. 때때로 과장되거나 언급하지 않은 이야기를 들춰내려는 시도가 돋보인다. 손택은 ‘캠프에 관한 단상’ ‘사진에 관하여’ 같은 에세이로 명성을 얻었지만, 패션지 ‘보그’에 모델로 등장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그의 스타성은 대단해서 출판사는 책 뒤표지에 유려한 추천사 대신 그의 사진을 싣기도 했다. 그는 내전이 한창이던 유고 사라예보에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연출하고 9·11테러 직후엔 미국 부시 정부의 전쟁 선동을 비판해 살해 협박까지 받았다. 유방암 투병 과정에서는 에세이 ‘은유로서의 질병’을 써서 ‘환자들을 위한 운동가’가 됐다. 손택이 대중과 지성이라는 양극단 사이에서 어떻게 줄다리기를 해나갔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소설가 네이딘 고디머는 손택을 이렇게 기억했다. “수전은 자신의 지성을 대의명분을 위해 싸우는 데 사용했습니다. 개인으로만 살기를 거부한 것이 그의 남달랐던 점입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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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모이’ ‘조선말 큰사전’ 원고 보물 된다

    최초의 한글사전인 ‘말모이’와 조선어학회의 ‘조선말 큰사전’의 원고가 보물로 지정된다. 8일 문화재청은 ‘말모이 원고’와 ‘조선말 큰사전 원고’ 2종 4건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밝혔다. 근대문화재가 보물로 지정되는 것은 17년 만이다. 두 문화재는 일제강점기 우리말을 지켜낸 국민적 노력의 결실을 보여주는 자료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말모이 원고’의 경우 한글학자 주시경(1876∼1914)이 제자들과 1911년 집필을 시작했다. 240자 원고지에 단정한 붓글씨로 쓰인 원고는 사전 출간을 염두에 둔 구성이 특징이다. 그러나 1914년 주시경이 세상을 떠나고, 제자 김두봉이 3·1운동을 계기로 망명하면서 편찬자들이 뿔뿔이 흩어져 정식 출간되지 못했다. 이후 조선어학회의 ‘조선말 큰사전’ 편찬의 결정적 디딤돌이 됐다. ‘조선말 큰사전 원고’는 조선어학회(한글학회 전신)가 1929∼1942년 작성한 사전 원고의 필사본 교정지 총 14책이다. 오랜 기간 다수의 학자가 참여해 손때가 묻은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제작 과정에서 범국민적 움직임도 있었다. 각계 인사 108명이 결성해 사전편찬 사업을 시작하고, 영친왕이 후원금 1000원(현재 약 958만 원)을 기부했으며, 국민들이 지역별 사투리와 우리말 자료를 모아 학회로 보내 힘을 보탰다. 이번 보물 지정 예고는 근대문화재의 역사적·학술적 가치 재평가 차원에서 이뤄졌다. 그간 근대문화재 중 국보는 0건, 보물은 33건에 불과하며 이 가운데 26건은 안중근 의사 유묵이다. 황정연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연구사는 “등록문화재 제도가 생긴 2005년부터 국보·보물 지정이 전혀 없었다”며 “근대문화재의 역사성에 대해 본격적인 재평가가 이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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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년 전 ‘황금광시대’, 현재와 묘하게 닮았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최장의 장마까지 2020년은 이상한 해로 기억될 듯하다. 그럼 100년 전 서울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8일 서울 종로구 일민미술관에서 개막한 ‘1920 기억극장 ‘황금광시대’’전은 지금과 기묘하게 닮은 1920년 경성을 광화문사거리로 소환한다.》 황금광시대 전시의 뼈대는 신문 잡지 같은 인쇄매체다. 1920, 30년대 발행된 이들 매체의 기록을 재해석해 전시실 3곳에서 모두 5개의 장면으로 구성했다. 출발은 잡지 ‘삼천리’에 실린 목병정의 글 ‘삭주 금광 채광관’이다. 이 글은 당시 경성을, 조선을 ‘황금광시대’라고 부른다. ‘지금 조선은 그야말로 황금광시대다. … 눈코 박힌 사람이 두셋만 모여 앉은 자리에서 금광 이야기 나오지 않는 곳이 없으리만치 금광열(熱)이 뻗치었다.’ 1929년 세계 대공황 이후 한반도에 불어닥친 금광 열풍을 기록한 신문과 잡지에서는 말 그대로 ‘황금에 미친 시대’에 대한 자조 섞인 풍자와 세태가 보인다. 코로나19로 경제는 거꾸로 성장하는데, 주식과 부동산 투자 광풍이 부는 현재와 묘하게 닮았다. 각 전시실은 현대 미술가들이 1920년대 기록을 토대로 서울의 현재 모습을 재해석한 작품 등으로 구성됐다. 1전시실에는 미디어아티스트 그룹 뮌(MIOON)의 설치 작품 ‘픽션 픽션 논픽션’이 자리 잡았다. 2전시실에서는 안무가 이양희가 100년 전 가상의 카바레 공간을 재현한 ‘클럽 그로칼랭(열렬한 포옹)’에서 안무를 선보인 영상 작품 ‘연습 NO.4’와 ‘언더그라운드 카페’가 전시된다. 이 작품 뒤쪽으로 “참된 삶은 문화와 예술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사회에서 가능하다”는 소신을 지녔던 일민 김상만(1910∼1994)의 컬렉션 중 회화 작품 50여 점이 설치됐다. 김환기의 ‘학 구성’(1957년)과 박수근의 ‘제비’(1960년대), 남관의 ‘동양의 환상’(1962년)부터 황용엽의 ‘인간’(1985년) 등 다채로운 구성이 돋보인다. 이 밖에도 고려시대 청자, 표암 강세황(1713∼1791) 화첩 등도 볼 수 있다. 3전시실에는 소설가 조선희의 장편소설 ‘세 여자’(2017년)를 전시로 구현했다. 이 소설에는 1922년 창간된 잡지 ‘신여성’의 편집장이자 동아일보 최초의 여성 기자인 허정숙이 등장한다. 이에 착안해 전시 공간은 신여성의 1920년 편집실을 재현했고 소설 속 세 여자 이야기에 관한 기록과 소품으로 연출했다. 또 권하윤 작가가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토대로 만든 설치 작품 ‘구보, 경성 방랑’도 볼 수 있다. 마지막 장면인 ‘수장고의 기억: 일민 컬렉션’은 조선의 공예품과 민예품을 유머러스하게 설치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동안 일반 관람객에게 공개하지 않던 일민미술관의 숨은 공간을 엿볼 수 있다. 2층 전시실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일민미술관(옛 동아일보 사옥) 건물이 지어진 1926년 모습 그대로를 확인할 수 있다. 12월 27일까지. 5000∼7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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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제국 칙서 활용해 한글 서체 만들었어요”

    “대한제국 공식 문서에서 보기 드문 단아한 한글을 공유하기 위해 ‘재민체’를 만들었습니다.” 박재갑 서울대 의과대학 명예교수와 국민대 사회문화디자인연구소 김민 교수팀이 한글날을 맞아 새로운 글씨체인 ‘재민체’를 개발했다. 재민체는 서울대학교병원이 소장한 대한의원 개원칙서(등록문화제 제449호)의 한글을 재해석해 만든 디지털 폰트다. 이 칙서에는 한글과 한문이 혼용됐다. 박 교수와 김 교수팀은 6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의학박물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재민체를 발표했다. 재민(在民)은 두 교수의 이름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왔다. 국립암센터 초대원장과 국립의료원장을 지낸 박 교수가 재민체를 만든 것은 서예에 취미를 갖게 된 뒤였다. 그는 “서예를 배우며 왜 한문만 쓰느냐는 의문이 생겨 서울대병원 시계탑건물(옛 대한의원 자리)에 걸린 ‘개원칙서’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대한의원 개원칙서는 백성의 건강과 생명을 염려한 순종 황제의 뜻을 기록한 만큼 이것을 쓴 사자관(寫字官)은 최고의 문필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김 교수는 디자인 재능 기부 활동을 통해 박 교수와 인연을 맺었다. 개원칙서에 등장하는 한글 자소는 총 33자다. 연구팀은 이 글자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내 고문헌의 한글을 비교해 재민체 2350자를 개발했다. 새 폰트는 8일부터 한국저작권위원회 웹사이트의 공유마당에서 무료로 내려받을 수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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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점 찍듯 툭툭 던진 붓… 화폭 가득 넘치는 힘

    간결한 선의 수묵화에 통기타와 램프가 보인다. 캠핑하는 사람들 그림이다. 또 다른 그림에서는 배경을 칠하고 흰 옷은 그대로 둔 채 다양한 붓 터치로 음악과 춤의 역동성을 표현했다. 1980년대 한국화에서 보기 힘든 일상의 흥이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이 그림들에는 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1979년 이후 그림’이라고 날인돼 있다. 서울 서대문구 황창배미술관은 황창배 작가(1947∼2001) 19주기를 맞아 6일부터 ‘1979년 이후 그림’전을 연다. 황창배가 1979년부터 1983년까지 제작한 회화 17점과 전각(篆刻)작품 10여 점을 소개한다. 전시 작품에는 그가 직접 ‘1979년 이후 그림’이라고 전각으로 새긴 인장이 찍혀 있다. 1979년은 그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던 걸까. 그 1년 전인 1978년 황창배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 ‘비(秘)’를 출품해 대통령상을 받는다. 이는 작가로 주목받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는 같은 해 12월, 42일간 이탈리아 스위스 영국 이집트를 여행한다. 당시 기억을 황창배는 이렇게 썼다.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아무것도 그리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작품의 지역성’ 문제가 나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각국 예술품, 지역 주민과 직접 대해보는 길밖에 돌파구가 없다고 생각했다. 낭만에 가득 찬 자아도취적 외국 등불 스케치는 하지 않기로 했다.” 이때부터 그는 동양화적 관습에서 벗어나려 시도한다. 계획을 하고 그리면 습관이 튀어나와 아무것도 전제하지 않고 작업에 들어갔다. 우선 점부터 찍으며 그림을 시작했다. 이 때문에 실패한 그림도 많았다. 이재온 황창배미술관장은 “1983년까지의 그림 중 작가가 스스로 만족한 그림에만 ‘1979년 이후 그림’이라고 인장을 찍었다”고 설명했다. 소규모 전시지만 작가 고유의 조형 언어가 형성되는 초기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이 기간 작가는 첫 번째 개인전(1981년)을 동산방화랑에서 열었고, 1987년 두 번째 개인전에서 ‘숨은그림찾기’ 시리즈를 통해 화단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임연숙 세종문화회관 예술교육팀장(한국화 박사)은 “그의 초기 작품은 화선지에 수묵이라는 단조로운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급격한 경제 개발에 따른 사회의 화려하면서도 어두운 일면, 인간 욕망의 단면을 자유로운 선묘와 경쾌한 색감으로 표현했다”며 “수묵화가 죽은 언어가 아닌 시대를 표현하고 호흡하는 시각언어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무료. 11월 7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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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문가도 풀지 못하는 ‘남파 간첩의 암호’를 해독하라!

    남파 간첩들이 비밀 지령을 받는 수단인 난수에 대해 알아본다. 난수는 숫자나 문자, 단어 등을 나열해 조합한 암호로, 해독을 위한 올바른 키를 갖고 있지 않은 한 암호의 규칙성이 없어 해독이 불가능하다. 전문가와 함께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는 북한 간첩의 암호를 해독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한데 모두를 소름 돋게 한 암호의 내용은 바로 ‘한국 고위층 암살’ 지령이었다고 해 관심을 모은다. 이어 김일성의 특별 지시로 창단된 스키부대의 여단참모장이 최초로 방송에 출연해 이목을 집중시켰다. 스키부대에서 승승장구해 최연소로 여단참모장 자리에 오른 그는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하던 딸이 몰래 중국으로 넘어가자 딸을 찾기 위해 두만강을 건너 탈북을 한다. 그리고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딸은 물론 아내와 아들까지 가족을 모두 한국에 데려올 수 있었던 사연을 생생하게 전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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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TS, 빌보드 싱글차트 다시 맨위에

    그룹 방탄소년단(BTS)의 ‘Dynamite’가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다시 정상에 올랐다. 28일(현지 시간) 빌보드는 ‘Dynamite’가 다음 달 3일자 ‘핫100’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이 노래는 지난달 5일자 ‘핫100’ 차트에서 한국 가수 최초로 1위에 오른 뒤 2주 연속 정상을 지켰다. 이후 발매 3, 4주 차에는 2위로 내려앉았다가 5주 차 만에 역주행으로 정상을 탈환했다. 방탄소년단은 트위터를 통해 “아미 여러분 덕분에 또 한 번의 기적이 일어났다”고 밝혔다. 빌보드는 18일 새롭게 발매된 네 가지 리믹스 버전(Bedroom, Midnight, Retro, Slow Jam)의 음원 판매량이 순위를 견인한 것으로 분석했다. 리믹스 버전 신규 발매 후 한 주간 ‘Dynamite’의 다운로드 횟수는 96%나 증가했다. 앞서 지난달 28일에는 풀사이드·트로피컬 리믹스가, 같은 달 21일에는 원곡과 어쿠스틱, 일렉트로닉댄스뮤직 리믹스가 모두 할인가인 69센트에 공개된 바 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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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중앙박물관 ‘조국 흑서’ 서민 특강영상 비공개 논란

    국립중앙박물관이 유튜브 채널에서 서민 단국대 교수(사진)의 특강 영상에 대해 부정적 댓글 등이 달렸다며 일시적으로 비공개해 논란이 일고 있다. 박물관은 올해 초 서 교수를 9월의 특강 인물로 선정해 8월 사전 녹화한 영상을 이달 2일부터 매주 수요일 유튜브 채널에 공개했다. 마지막 편인 4회 ‘책은 왜 읽어야 하는가’는 23일 업로드됐다. 이후 ‘세금 살살 녹는다’ ‘정파성을 띠며 피로감을 주는 인물이 중앙박물관 유튜브에 등장…’ 등의 비난 댓글 2개가 달렸다. 그러자 박물관은 24일 오후 서 교수의 영상 4편을 비공개로 전환했다가 28일 오전 재공개했다. 이에 대해 서 교수가 최근 현 정부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자 중앙박물관이 영상을 지운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박물관 측은 “서 교수 특강 영상에 평소와는 달리 부정적인 댓글 2개와 ‘싫어요’가 20개 이상 달려 담당자가 상부에 보고한 후 영상을 검토하기 위해 비공개 처리했다. 그 후 영상 내용에 문제가 없어 28일 오전 다시 공개했다”고 밝혔다. 서 교수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권경애 변호사, 김경율 경제민주주의21 대표 등과 함께 지난달 25일 이른바 ‘조국 흑서’라고 불리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출간해 현 정부를 비판했고, 영상 비공개 하루 뒤인 25일 출간 기념 기자회견을 가졌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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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킹키부츠’ 유쾌하게, ‘검객’ 짜릿하게… 코로나 우울증 날린다

    《추석은 왔지만 추석 같지 않다. 종택(宗宅)의 종손은 방문 자제를 당부하고 노모는 휴대전화 영상통화로 “난 괜찮다”며 귀향을 만류한다. 차례상은 ‘음복(飮福) 도시락’으로 대체되고 깊은 산속, 바다 건너로 사람들은 ‘추캉스(추석+바캉스)’를 떠난다. 그래도 쇼는 계속돼야 한다. 중추절 연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지키며 온·오프라인으로 눈과 마음을 채울 공연 전시 영화를 추려봤다.》○ 킹키부츠(뮤지컬) 파산 위기의 신발 공장을 물려받은 찰리가 드래그 퀸(여장 남자) 롤라를 만나 드래그 퀸이 신는 ‘킹키부츠’ 만들기에 도전한 실화를 유쾌하게 그렸다. 팝스타 신디 로퍼가 작곡한 노래는 귀에 쏙쏙 꽂힌다. 2014년 국내 초연 때 익살스러운 연기로 객석을 들었다 놓은 강홍석, 뛰어난 가창력으로 열연한 최재림이 롤라로 무대에 선다. 박은태가 새 롤라로 합류했다. 찰리 역은 이석훈 김성규. 30일∼10월 4일 공연 전 좌석 30% 할인. 11월 1일까지 서울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6만∼14만 원. ○ 베르테르(뮤지컬) 올해 창작 20주년을 맞이한 작품으로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무대에 옮겼다. 고전적인 연출과 서정적인 음악에 순수하고도 가슴 아픈 이야기가 어우러진다. 섬세한 감정을 노련하게 표현하는 엄기준, 부드러운 목소리의 카이, 애절한 연기를 선보이는 유연석과 깊이를 더해가는 규현, 주목받는 배우 나현우까지 5명이 베르테르를 연기한다. 롯데는 김예원 이지혜. 11월 1일까지 서울 광림아트센터 BBCH홀. 6만∼14만 원. ○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영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어쩌면 지구인의 외피를 뒤집어쓴 외계 생물의 비유일 수도 있다. 할리우드에서 좀비나 ‘맨인블랙’ 시리즈, ‘잇’으로 형상화되던 타자(他者)에 대한 두려움이 표현된 한국 영화는 ‘지구를 지켜라’(2003년) 정도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은 외계 생물과 대놓고 맞서는 흔치 않은 한국형 코믹 스릴러다. 지구 멸망을 목표로 나타난 외계의 ‘언브레이커블’에 여고 동창들이 한판 붙는다. 29일 개봉.○ 검객(영화)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하는 코로나19에 명절 스트레스까지 쌓인다면 연휴는 괴로울 뿐이다. 이 악몽을 떨쳐내기에 칼싸움만큼 시원한 것도 없다. 조선 최고 검객이지만 광해군 폐위 이후 세상을 등진 태율(장혁)이 딸을 납치한 청나라 황족 구루타이(조 타슬림)를 쫓는다. 딸을 구하는 이야기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도 거듭된, 기시감 강한 소재. 하지만 장혁의 고난도 검투(劍鬪) 액션은 머리를 텅 비우게 할 만큼 쾌감이 있다. 23일 개봉.○ 오페라 콘체르탄테 투란도트(클래식) 오페라 팬이 아니더라도 음악을 곁들인 드라마를 좋아하거나, 방송에서 들려오는 ‘성악적 발성’에 귀가 붙들린다면 이 공연을 추천한다. 10월 2일 오후 4시 서울 롯데콘서트홀. ‘콘체르탄테’란 무대장치 없이 콘서트 형식으로 공연하는 오페라를 말한다. 오페라 전성기의 마지막 거장 푸치니가 최후로 남긴 걸작 ‘투란도트’의 주요 장면을 오케스트라 반주로 감상할 수 있다. 테너 아리아 ‘잠들지 말라’는 유명하다. 테너 이현종, 소프라노 조현애 정꽃님, 김봉미가 지휘하는 베하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위너오페라합창단이 출연한다. 3만∼12만 원.○ 임동식 개인전 ‘일어나 올라가’(전시) 제5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자 임동식 작가가 국내에 들여온 ‘자연미술’의 역사를 볼 수 있다. 1970년대 중반 ‘한국미술청년작가회’의 안면도 꽃지해변 작업으로 자연미술의 가능성을 본 임 작가는 1980년대 홍명섭 등과 ‘야투(野投)―야외현장미술연구회’를 결성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건립할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와 연계한 전시로 당시의 생생한 기록을 엿볼 수 있다. 11월 22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 무료.○ 내 나니 여자라(전시) 수원시립미술관 개관 5주년 기념 전시.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을 매개로 여성에 대한 동시대적 정서를 고찰한다. 윤석남 임민욱 이미래 이은새 등 동시대 여성 작가 13인(팀)의 회화 설치 미디어 등 작품 48점을 선보인다. 여성의 이야기를 듣고 여성의 존재와 정체성을 생각해 보자고 제안한다. 11월 29일까지. 경기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1000∼4000원.김재희 jetti@donga.com·유윤종 문화전문기자·김민 기자}

    • 2020-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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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적? 서양적?… 이분법을 향한 분노를 담다

    “서로 다른 온도 차로 인해 발생하는 물의 응결은 조용하고 신중한 소통의 모델이다. 다름을 인지하고 유지한다면, 눈물과 땀이 흐르더라도 공존할 수 있다.” 국내 공공 미술관에서는 5년 만인 미술가 양혜규(49)의 개인전은 이 말과 함께 문을 열었다.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29일 개막하는 ‘MMCA 현대차 시리즈 2020: 양혜규-O₂&H₂O’전 이야기다. 양혜규는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 재개관전에 작품을 선보이는 등 국제 미술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3년 전부터 준비한 전시는 신작을 포함한 약 40점의 작품으로 국내 관객을 만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먼저 대형 작품 ‘침묵의 저장고-클릭된 속심’을 마주한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블라인드를 활용한 설치 작품으로, 양혜규 하면 많은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소재다. “누군가는 서양적, 다른 이는 동양적이라 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보는 시각에 따라 서구적인 오피스 공간을, 또 동양적인 대나무발을 연상케 한다. 이렇게 명확히 규정할 수 없는 개념 사이의 틈과 경계를 작가는 겨냥하고 있다. 또 다른 대표작인 ‘소리 나는 가물(家物)’도 이러한 연장선에 있다. 다리미, 마우스, 헤어드라이어, 냄비의 형태를 확대하고 왜곡해 살아있는 생물처럼 만든 조각들은 생물이란 무엇이고 무생물이란 무엇인가, 어떤 것이 동양적이고 어떤 것이 서양적인가를 되묻는다. 이들 작품과 함께 “다름을 인지하고 유지하자”는 작가의 말을 통해 이분법이나 규정을 향한 거부를 감지할 수 있다. 좌우 중 한쪽을 ‘선명하게’ 선택하라는 이분법, 혹은 ‘모난 정이 돌 맞는다’며 남들과 같아지기를 강요한 사회에 대한 세대적 분노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보다 더 눈에 들어오는 건 화려한 시각 언어다. 블라인드와 도금된 방울, 인조 짚단처럼 독특한 소재를 활용한 조각 작품들은 깔끔한 마무리로 ‘예쁘게’ 보이는 데도 노력한다. 이런 유머러스한 비주얼이 관객들을 먼저 매혹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신작 ‘오행비행’은 이번 전시의 의도가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O₂&H₂O’라는 제목처럼 작가는 ‘현실의 추상화’를 시도했다고 설명한다. 현수막과 애드벌룬으로 만든 작품은 각각 오방색이 상징하는 다섯 가지 원소(물, 나무, 불, 흙, 철)를 시각화했다. 그 가운데 스피커 작품 ‘진정성 있는 복제’에선 인공지능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전 지구’를 표방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지워가다 보면 결국 남는 것은 혹시 텅 빈 목소리가 아닐까? 무료. 내년 2월 28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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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수근 예술세계는 가슴 치는 인간드라마”

    “수상자 통보를 받고 하루하루가 긴장된 시간이었습니다. 예상 못 했던 축복 아래서 지난날을 반추해 보고, 또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하는지 고민도 해봤습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 앞에, 비할 데 없는 영광된 자리에 섰습니다.” 26일 강원 양구군 박수근미술관에서 열린 제5회 박수근미술상 시상식에서 수상자 임동식 작가(75)는 “박수근 화백의 작품은 그림인 동시에 가슴을 치는 ‘인간 드라마’”라며 “우리로 하여금 감성을 일깨우고, 들뜬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그의 예술세계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이라고 말했다. 박수근미술상은 박수근 화백(1914∼1965)의 예술혼을 기리기 위해 제정돼 동아일보와 양구군, 강원일보, 서울디자인재단, 박수근미술관이 공동 주최한다. 시상식은 박 화백의 기일이 있는 매년 5월 개최했지만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이날 열렸다. 조은정 박수근미술상 운영위원장은 “국내에 많은 미술상이 있지만 박수근미술상은 까다로운 심사를 거친다”며 “오로지 예술가의 길을 가는 작가에게 주는 상이 박수근미술상임을 증명하는 자리가 바로 지금”이라고 했다. 엄선미 박수근미술관 관장은 “임 작가의 회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풍경 자체를 숙고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조인묵 양구군수는 “미술사적 가치와 그간의 화업(畵業)을 인정받게 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고 말했다. 박 화백의 장남 박성남 화백은 “(전 수상자인) 황재형 김진열 이재삼 박미화 작가의 ‘꽃다발’이 임 작가에게 안긴 것을 보니 포스트 박수근의 ‘한 뼘 잇기’가 놀랍고 감사하다”고 밝혔다. 임 작가에게는 박 화백의 작품 ‘아기 보는 소녀(1963년)’를 조각으로 형상화한 상패와 창작지원금 3000만 원이 주어졌다. 그는 내년 5월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갤러리 문’과 박수근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다. 이날 시상식에는 수상자 가족과 류철하 이응노미술관 관장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양구=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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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이방인 시선으로 본 ‘코로나 한국’

    깨끗한 가을 하늘이 펼쳐지는 날들이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의 공포는 여전하다. 마스크를 끼고 손을 씻으며 매일 아침 확진자 수를 확인하는 것 외엔 별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모든 상황이 처음인 날들을 세계가 함께 지나고 있다. 저자는 코로나19 속 서울의 일상을 느린 호흡으로 기록한다. 그 누구도 향방을 예측할 수 없는 신종 바이러스 아래, 암흑을 손으로 더듬어가듯 매일을 관찰했다. 그 속에는 일상이 낱낱이 공개됐던 슈퍼 전파자, 신천지 집단감염 등 벌써 오래전 일처럼 느껴지는 사건도 등장한다. 적응할 새 없이 잇따라 벌어지는 각종 사건 속에 하루 이틀 정도의 대화 소재가 돼 넘어갔던 일들이 다시 소환되는 것이다. 담담한 문장 사이에서 드러나는 건 터무니없는 인간사의 단면이다. 코로나19의 첫 사망자는 20년 넘게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1957년생 남성. 밥을 제대로 먹지 못했던 그의 체중은 42kg이었다. 통계와 공식 발표에는 전달되지 않는 ‘벌거벗은 유인원’, 인간의 모습이 생생히 살아난다. 그는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나타난 이유는 인간도 한낱 동물임을 상기시켜 주기 위해서”라고 쓴다. 콜롬비아 보고타 출신인 저자는 현재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 이방인의 시선으로 한국에서의 삶을 그린 ‘한국에 삽니다’로 2016년 콜롬비아 소설문학상을 수상했다. 저자는 33세이던 2010년 영국 문학지 그랜타가 ‘스페인어권 최고의 젊은 작가 22인’에 선정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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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대 안에도 백두대간이 있다, 그러니 용기를 내시라[한국미술의 딥 컷]

    《예술은 박제된 장식이나 글로 된 관념이 아닌 삶에서 배태된다. 한없이 관념적으로 보이는 ‘다다이즘’도, 마르셀 뒤샹의 ‘샘’도 세계대전이 일으킨 허무가 낳은 예술이었다. 한국 미술사는 과연 우리들의 삶과 함께 흘러가고 있을까. 예술가 황재형(68)은 이 시대의 민낯을 보기 위해 모든 것을 뒤로하고 탄광에 뛰어들었다. 한국 미술의 ‘딥 컷(Deep Cut)’, 숨은 보석인 황재형의 작품세계를 지면에는 시원하게, 동아닷컴에는 심층적으로 소개한다.》 1982년 9월. 서른 살 황재형은 아내와 두 살배기 아이를 데리고 강원도 탄광촌으로 향했다. 현실에 대한 깊은 절망감을 안고 있었다. 대학에선 밤낮 술을 먹으며 세상이 뒤집어지는 이야길 했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가장 뜨거운 진실을 찾겠다며 그는 현장으로 향했다. 1년만 있어보자고 다짐한 것이 길어져 작가는 지금도 태백에 살고 있다. 그가 탄광에 간 것은 단순한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도시와 산업으로 만들어진 포장을 벗겨낸 시대의 민낯을 보기 위해서였다. 황재형은 “희망이 없어지는 곳이 바로 ‘막장’이며, 광부는 서울이나 부산에 더 많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가로 5m, 세로 2m의 대작은 ‘백두대간’이다. 작가는 이 그림을 1993년 시작해 20년 넘게 그리고 있다. 풍경을 감상하려는 그림이었다면 오랜 세월을 들일 필요가 없다. 그림 속 백두대간은 우리가 휴양하러 찾는 피안의 자연이 아닌 인간의 조건이다. 바다 속 땅이 용솟음칠 때부터 인간이 묵묵히 흘려온 땀과 역사가 담긴 거대한 몸이다. 세상은 황재형을 ‘탄광촌의 화가’라 말한다. 그러나 그의 그림 속 산은 산이 아니고, 광부도 광부가 아니다. 단순한 기록을 위한 그림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현대미술의 문을 연 화가 폴 세잔(1839~1906)의 ‘생 빅투아르 산’이 ‘개별성의 산’이라면 황재형의 산은 ‘한국인의 땀과 살과 주름’에서 배어 나온 산이다. 우뚝 솟아 굽이치는 산맥의 힘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사를 두터운 물감에 담은 그림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몸속에도 장엄한 백두대간이 자리하고 있다고. 그러니 용기를 내라고. ::황재형 작가::△1952년 전남 보성 출생△1982년 중앙대 회화과 졸업, 강원 태백 탄광촌으로 이주서울 덕수미술관 ‘임술년 창립’전△1991년 서울 가나아트센터 ‘쥘 흙과 뉠 땅’△2010년 서울·뉴욕 가나아트센터 ‘쥘 흙과 뉠 땅’△2013년 전북도립미술관·광주시립미술관 ‘삶의 주름, 땀의 무게’△2017년 강원 양구 제1회 박수근미술상 수상작가전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20-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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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의 몸 속에도 장엄한 산맥이 있다…삶에서 배태된 황재형의 예술[한국미술의 딥 컷]

    가로 5m, 세로 2m에 달하는 이 대작은 황재형 작가(68)의 작품 ‘백두대간’이다. 작가는 이 그림을 1993년 시작해 수십 년에 걸쳐 그리고 있다. 단순히 보기 좋은 풍경을 감상하려는 그림이라면 오랜 세월을 들일 필요가 없다. 우뚝 솟아 굽이치는 산맥의 힘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인간사를 두터운 물감에 담은 그림은 이렇게 말한다. 당신의 몸속에도 장엄한 백두대간이 자리하고 있다고. 그러니 용기를 내라고. 세상은 황재형을 태백과 탄광촌의 화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의 그림 속 산은 산이 아니고, 광부도 광부가 아니다. 단순한 기록을 위한 그림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현대미술의 문을 연 화가 폴 세잔(1839~1906)의 ‘생 빅투아르 산’이 ‘개별성의 산’이라면, 황재형의 산은 ‘한국인의 땀과 살과 주름’에서 배어 나온 산이다.○ 시대의 민낯을 찾아가다. 1982년 9월 작가는 가족과 함께 강원도 태백 탄광촌으로 이주했다. 안경을 쓰면 광부로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콘택트렌즈를 끼고 일을 했다.화가 황재형을 세상에 알린 것도 이 작품이다. 태백 황지탄광에서 갱도 매몰 사고로 사망한 광부 김봉춘 씨의 작업복을 극도로 확대했다. 낡아서 헤어지고 구멍 난 옷 그림자 아래 김 씨의 증명사진 속 얼굴이 보이는 작품이다. 작가는 이렇게 썼다.“광부의 아내가 라면을 끓여 내온 밥상 틈에 박힌 고춧가루와 흰 밥알을 보며 남보다 더 고생하며 살았다 자부한 자신에게 구역질이 났다. … 그 잠시의 경험으로 작품을 시도했지만 광부의 작업복을 통해서는 광부의 작업복 밖에 표현할 수 없음에 남들이 보지 않는 변소에서 눈물을 숨길 수 밖에 없었다”(샘터, 1985년 3월호)렌즈를 끼고 일하다 시력을 잃을 뻔하는 등 이어진 삶이 강렬해 그의 작품을 ‘탄광 노동자의 현실 고발’로만 기억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가 탄광을 전전한 이유는 도시를 비롯한 각종 포장을 벗겨낸 시대의 민낯을 보기 위해서였다. 탄광촌에 왜 갔냐는 물음에 대해 황재형은 ‘진정성을 찾고 싶어서’라고 했다.“1980년대 사회나 현실에 대한 절망감이 너무 깊었다. 진정성, 진실을 알고 싶었지만 그것은 누가 이야기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서울에선 밤낮 술만 먹으며 세상 뒤집어지는 이야길 하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4.19 세대들의 변절도 봤다. 가장 뜨거운 진실은 현장에 있다니 그것을 찾겠다고 직접 호랑이 굴에 들어간 것이다.”황재형은 현대 사회 인간의 노동이 놓인 조건, 그 민낯을 보기 위해 온갖 포장을 벗겨낸 벌거벗은 막장으로 향했다.“광부, 그들과 함께 생활하며 사치스런 감상은 무너졌다. 구경하며 짬짬이 한 일과는 전혀 다른 작업량. 갈증, 호흡 곤란, 작업 장소에서 부적당한 큰 키. 내게 중요한 첫 경험은 점심 시간에 이루어졌다. 부옇게 탄진이 날리는 갱도에서 버려진 갱목을 놓고 안전등을 서로에게 비추며 앉아 먹었던 점심은 삶의 연민과 진실이었다.” (샘터, 1985년 3월호)이 과정에서 경계했던 것은 ‘대상화’, 광부의 삶을 그림의 소재로 이용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광부로 일하던 어느 날 황재형은 탄광 옆 판자 건물 속 목욕하는 선탄부들의 소리를 듣는다. 땀 흘려 일하고 난 ‘숭고한 모습’을 그리고 싶다는 욕망이 솟아 문고리를 붙잡았다. 수십 분을 고민했지만, ‘황재형, 너 지금 이 사람들을 대상화하려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어 끝내 포기했다.시인 신경림은 그에 대해 이렇게 썼다.“황재형은 목에 힘을 주고 광부들을 지도하겠다고 설치는 화가가 아니라 그들 속에 들어가 거꾸로 그들로부터 삶의 진실을 배워 화폭에 옮겨 놓는 화가임을 확인했다.”(1991년 가나아트센터 ‘쥘 흙과 뉠 땅’전 도록)이데올로기적 시각에서 벗어나서 바라보면 그림 속 광부의 삶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모두의 이야기가 된다. 누구나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사회 속에서 살고 직장을 다니지만, 때때로 그 삶에 매몰되다 보면 자아나 본성을 잃어버린다. 그런 세상 속 광부들에게 이야기와 위로를 건네고 싶다고 작가는 말한다.“세상 어디든 희망 없는 곳이 바로 ‘막장’이다. 광부는 서울이나 부산에 더 많을 수 있다.”○ 당신의 몸속에 백두대간이 있다대작 ‘백두대간’의 시작은 광부 동료들과 탄광 일을 마친 어느 날이었다. 하루의 노동을 술 한 잔으로 달래고 헤어지던 어두운 밤, 황재형은 산골을 타고 짐승처럼 울부짖는 회오리 바람을 마주했다.“바람이 깊은 계곡을 타고 나오며 눈보라 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해저에서부터 지각 변동을 타고 솟아나온 카르스트 지형이다. ‘이것이야 말로 속에서 역동적으로 끌어 올려지는 용솟음이 아닌가, 내가 정말 그려볼 장소를 만났구나. 저 생명력을 그려보자’는 생각이 들었다.”다음날 아침 작가는 화구를 들고 다시 산에 올랐다. 캔버스를 펼치고 그림을 그리려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젯밤의 에너지는 온데 간데 없고 차분하고 고요한 아침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이게 뭐야? 이러면 일반 풍경화 달력 그림이지 뭐야 이게! 내가 느꼈던 건 이게 아닌데 안되겠어.’가져온 짐을 다시 꾸려 하산하려던 작가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모든 건 내재되는 것이다. 슬픔도 기쁨도 광란도 폭풍우도 자연이 담고 있다. 밖으로 나왔을 땐 현상에 불과한 데, 왜 겉모습만 보고 실망해서 가려 하나?’이 때의 깨달음은 ‘백두대간’에 20년이 넘는 시간을 매달리게 만들었다. 오랜 시간의 고뇌와 씨름은 작품 속 공간이 태백산맥을 넘어서게 만들었다. 그림은 산을 기록한 것이 아니다. 그 산은 우리가 휴양하러 찾는 피안의 자연이 아닌 인간의 조건이다. 바닷속 땅이 용솟음 칠 때부터 인간이 묵묵히 흘려온 땀과 역사가 담긴 거대한 몸이다.사람의 몸으로서 자연은 어떤 의미일까? 작가는 구부러진 산맥과 구릉을 할머니의 손에 비유했다.“그 손을 보면 마디가 지고 구릉이 진다. 내 코 앞에 손을 놓고 보면 바로 그것이 산의 모습이다. 나의 조상으로부터 흘러 내려와 골골이 사무치고 구릉으로 내닫는 묵묵한 생명력이 산인 것이다.”그림 속 아버지의 얼굴에는 백두대간의 산맥의 구릉처럼 만들어진 주름이 졌다. 그 주름 속엔 그가 겪은 삶의 굴곡들이 있다. 그럼에도 맑은 눈은 희망과 생명력을 말한다.“계급의 간극도 삶의 주름이요, 척박한 막장 환경을 편안해 하는 굴욕적인 적응력도 삶의 주름이라는 억지가 언제부턴가 피어 올라왔다…온갖 삶의 주름은 얼굴의 주름처럼 앙금으로 남았다. 놀라운 건 삶의 주름이 그렇다 해도 그것은 주름일 뿐 존재와 본질은 변함없이 희망을 이야기 한다.” (2013년 광주시립미술관 개인전 ‘삶의 주름 땀의 무게’ 윤범모의 글에서 황재형 작가의 말)그림 ‘백두대간’은 말한다. 삶과 역사의 모든 굴곡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몸 속에는 백두대간이 있다고. 태고부터 흘러 내려온 생명력이 내재되어 있다고. ○ 아름다움은 삶에서 나온다그는 1997년 ‘태백미술연구소’를 만들고 매년 미술 캠프를 열고 있다. 처음 열었을 땐 교사 7명에 학생 2명이 찾았지만, 지금은 40여 명이 찾는다. 이는 관념이나 장식을 위한 예술이 아닌 삶과 맞닿은 아름다움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작가의 작업 세계와도 맞닿아있다.“오랜 세월 동안 예술이 특권적인 것으로 이야기 되어 왔다. 특히 한국에서는 현실과 상관없는 ‘유미주의’처럼 여겨지곤 한다. 그것은 서구의 예술 관념이 일본을 통해 한국으로 오면서 굴절되어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그의 말처럼 국제 미술사는 특정 계층의 역사를 벗어나 보편적 인권의 확장을 기준으로 재편되고 있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여성은 물론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등 각 지역별 주체의 맥락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국내 미술사는 일제시대와 미술수첩을 통해 제한적으로 받아들여진 미술사, 이 때문에 관념적으로 예술을 접근한 관점으로 쓰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가운데 어디에도 ‘한국’을 찾을 수 없었던 작가들이 저마다의 길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이 중 황재형 작가는 삶의 처절한 현장을 찾아 나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현실의 인간에서 만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찾고자 했다. 미술사가 전하현은 그의 작업에 대해 “삶에서 배태된 예술을 추구하는 한국 미술사에서 보기 드문 예”라며 “이런 작가가 있다는 것은 한국의 큰 문화적 자산”이라고 말했다.김민기자 kimmin@donga.com}

    • 2020-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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