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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남은 대작(代作)화가의 그림을 직접 그린 것처럼 속여 고액으로 판매했다.”(노정환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 “조영남 그림은 그의 저작물이며 조수 사용을 밝혀야 할 법적 의무도 없다.”(강애리 변호사) 지난달 28일 오후 2시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는 사기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인 가수 조영남의 상고심 공개 변론이 열렸다. 조영남은 1심 유죄, 2심 무죄였다. 검찰 측과 변호인은 ‘그림은 손으로 그리는 것인가’ ‘프로와 아마추어의 기준’ 같은 미술계의 흥미로운 주제를 놓고 공방을 벌였다. 이날 법정에서 오간 주요 쟁점을 통해 현대미술에 대한 인식차를 살펴봤다.● 조수냐, 대작화가냐“피고인(조영남)은 전문 교육을 받지 않은 반면, (그림을 그린) 송모 씨 등은 전업 화가로 지식과 기술을 더 갖췄기에 대작화가다.” 이날 검찰은 송 씨 등이 조영남의 조수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미대를 졸업하거나 전업 화가인 이들에게 전공자가 아닌 조영남이 지시나 감독을 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변호인은 “송 씨 등은 지시를 벗어나거나 자신의 개성을 드러낸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며 이들은 조수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조영남이 컨셉트를 구상하고 지시했으므로 작품은 그의 단독 저작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림은 손으로 그리는 것?’양측의 주장은 예술작품에 대한 한국사회의 엇갈린 시각을 반영한다. 검찰은 밀레와 반 고흐의 작품 사진을 나란히 보이며 “회화는 누가 그리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그림이 탄생하므로 직접 그리는지가 중요하다”는 논리를 폈다. 참고인으로 나온 화가 신제남도 “조영남은 본업이 가수이며 그림은 아마추어 수준”이라면서, 프로와 아마추어의 기준을 묻는 대법관에게 이렇게 답했다. “전공, 전시 경력, 협회 가입 여부 등의 근거가 있어야 프로다. 그것이 부족하면 아마추어다.” 검찰 측 주장은 ‘그림은 손으로 그려야 한다’는 인식에 기반을 둔다. ‘손기술’이 중요하다고 보기에 전문 교육을 받았는지를 강조한다. 그러나 ‘미술을 전공해야 예술가가 된다’는 논리는 유독 한국에서 강한 편견이라는 게 미술계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1000억 원대에 작품이 거래되는 장미셸 바스키아(1960¤1988)도 비(非)전공자이며 백남준(1932~2006)도 미술이 아닌 미학과 음악사를 전공했다. 변호인은 “20세기 이후 현대미술의 창작성은 손이 아닌 작가의 인식과 철학에 존재한다”며 “조영남은 작품의 본질이 칠하는 행위가 아닌 사상에 있다는 생각에 조수의 도움을 받은 것”이라고 반박했다.● “활발한 논의로 간극 좁혀야”변호인은 “이 사건이 유죄라면 데미안 허스트도 국내에선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말했다. 영국의 유명 작가 허스트는 작품 제작을 공장에 맡긴다고 알려져 있지만 문제가 된 적은 없다. 예술에 대한 인식 차이가 송사(訟事)로 번진 일은 외국에서도 있었다. 19세기 말 영국에서는 화가 휘슬러와 평론가 존 러스킨이 명예훼손 소송을 벌였다. 러스킨의 변호인은 “이틀 만에 그린 그림에 200기니(옛 영국 화폐단위)나 받는 게 공정하느냐”고 휘슬러를 비난했다. 당시 아카데미 화가들은 수개월간 역사화 한 편을 그리곤 했다. 휘슬러는 “손으로 그린 시간이 아닌 일생에 거쳐 깨달은 지식의 가치에 매긴 값”이라고 응수했다. 휘슬러는 승소했다. 익명을 요구한 미술계 인사는 “이번 사건으로 현대미술의 개념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오가서 간극이 좁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법원 선고는 25일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좀처럼 출구가 보이지 않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모든 분야에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걷게 만들고 있다. 코로나19의 확산 추이에 따라 문을 열고 닫기를 반복하는 미술관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국경을 넘어야 하는 국제 기획전은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아시아 8개국(한국, 인도네시아, 대만, 일본, 필리핀, 홍콩, 말레이시아, 중국) 출신 작가 15개 팀이 참가한 ‘또 다른 가족을 찾아서’전은 한때 무산 위기도 겪었지만 ‘랜선 큐레이팅’과 ‘온라인 개막식’ 등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지난달 22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막했다. ‘또 다른…’전은 2017년 시작한 ‘아시아 집중 프로젝트’의 두 번째 전시다. 세대나 사회·경제적 계급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장으로서 미술관을 제시하는 것이 기획 의도였다. 당초 개막일은 4월 3일이었지만, 작품 배송과 설치가 이뤄져야 할 3월 모든 일정이 중단됐다. 전시를 기획한 박주원 학예연구사는 “처음엔 일주일 뒤면 다시 진행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개막일이 네 차례 변경됐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중국 한국을 넘어 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며 작품 운송도 어려워졌다. 배송료가 당초 예산의 3배로 불어나 ‘플랜B’를 찾아야 했다. “‘작가와 작품이 오지 못하면 전시를 할 수 없는가’라는 고민 끝에, 작품 제작을 위한 매뉴얼을 만들었다. 작가의 구체적 방향 제시에 따라 한국에서 작품을 구현하는 식이었다.” 이를 위해 화상 카메라와 마이크로 소통하는 ‘랜선 큐레이팅’을 도입했다. 영상 작품의 경우 온라인으로 데이터를 받아 매뉴얼대로 전시장에 설치했다. 다만 회화 작품은 전시장에 걸지 못했다. 3월 작가와 전시팀이 모여 갖기로 했던 토론회도 온라인으로 열었다. 이 과정에서 각국의 코로나19 상황도 자연스럽게 공유됐다. 필리핀 작가는 “3주 동안 이동이 금지되어 갖고 있던 음식을 소분해서 먹었다”고 했고, 인도네시아 작가는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에게 접촉 없이 음식을 주는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작품을 직접 보지 못한 작가들을 위해 온라인 화상회의 형태의 개막식도 열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수도권 확산으로 전시는 다시 문을 닫은 상태. 전시팀은 전시장을 가상현실(VR)로 보여주기 위해 3차원(3D) 스캐닝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연계 프로그램도 대체할 방법을 찾는 중이다. 박 학예사는 “전시 준비 과정에서 모두가 고립되고 불안하지만 함께 같은 일을 하고 있다는 마음으로 서로에게 지지를 보냈다”며 “팬데믹 상황을 극복하는 것도 결국은 사람 간의 신뢰와 연대임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스스로의 모습을 낯설게 본 ‘자화상’을 그려 온 정의철 작가(42)가 ‘다르게 보기’를 시도했다. 그 결과물을 서울 서초구 갤러리쿱에서 5일 개막한 ‘연상록 정의철 2인전’에서 볼 수 있다. 정 작가는 아세테이트지판 위에 그림을 그린 뒤, 굳은 물감 덩어리를 통째로 떼어내 뒤집어서 패널에 붙이는 기법을 활용한다. 물감 덩어리의 속살이 결과물로, 형태를 먼저 그린 뒤 배경을 칠했다. 이전까지는 거울 속 낯선 자신의 모습을 주로 표현했는데 이번엔 작업실과 집을 오가며 만난 풍경을 담았다. 그는 “10여 년 동안 그려온 자화상을 벗어나 대상을 통해 나를 돌아보려 시도했고, 전시장의 작품들은 그 과정에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남과 다른 표현을 하기 위해 고유한 내 몸의 감각이 중요했다”며 “풍경을 보더라도 사진을 남기지 않고 몸이 느낀 감각을 통해 표현하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연상록 작가(51)는 충남 금산군 적벽강 근처의 작업실에서 본 자연 풍경을 화폭에 담은 ‘고개 넘어 가는 길’ 시리즈 등을 선보인다. 흑백 톤의 질감을 살린 그림이나 풍경을 단순화한 추상화가 주를 이룬다. 전시는 17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팬데믹 상황에서도 유일하게 서울에서 공연을 이어가고 있는 ‘오페라의 유령’ 월드투어가 국립현대미술관(MMCA)을 찾았다. MMCA는 월드투어 팀과 협업해 만든 온라인 공연 ‘MMCA 라이브 × 오페라의 유령’을 12일 오후 4시 유튜브와 네이버TV를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MMCA 라이브’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 국립현대미술관이 마련한 온라인 공연 시리즈다. 온라인 공연은 MMCA 서울관을 배경으로 주연 배우 3명이 대표곡을 선보이는 무대와 비하인드 영상으로 약 30분간 구성된다. 클레어 라이언(크리스틴 역)의 ‘다시 돌아와 주신다면’, 라이언과 맷 레이시(라울 역)의 듀엣곡 ‘바람은 그것뿐’, 조너선 록스머스(유령 역)의 ‘밤의 노래’ 등이다. 음악감독 데이비드 앤드루스 로저스의 피아노 연주 영상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7년 만에 내한한 ‘오페라의 유령’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월드투어가 잠정 중단된 상태다. 국내 공연도 4월 연기자가 의심 증상을 보여 한때 중단됐지만, 재개된 후 주 8회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손 소독제 사용, 마스크 착용, 반복적 방역 작업으로 한국에서 안전한 뮤지컬 공연이 이뤄지고 있다”고 1일 보도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수십 년 동안 제대로 언급되지 않은 편견과 불평등의 직접적인 결과입니다. … 일상에서 두려움 없이 경찰을 마주할 수 없다면 어떻게 개인의 삶을 제대로 시작할 수 있을까요?” 버락 오바마와 미셸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부부가 졸업하는 고등학생들에게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를 언급하며 정치에 관심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한국 시간으로 8일 오전 유튜브로 중계된 가상 졸업식 ‘디어 클래스 오브 2020(Dear Class of 2020)’을 통해서다. ‘디어 클래스 오브 2020’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학교에서 졸업식을 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유튜브가 주최한 온라인 졸업식이다. 오바마 부부 외에도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CEO), 비욘세, 레이디 가가 등이 참여했다. 이 중 다수는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을 언급하며 젊은이들의 참여를 칭찬하고 격려했다. 가가는 “플로이드의 죽음을 계기로 2주 전 써둔 원고를 새로 고쳐 썼다”며 “여러분은 미국이 진화하고 사회가 변화하는 아주 중요한 전환점을 목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감정이 북받친 듯 떨리는 목소리로 “미국의 인종차별은 오래된 나무로 가득한 숲과 같다”며 “이 숲을 벗어나 새로운 숲을 만들어 낼 변화의 씨앗이 바로 여러분”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연사로 초청된 방탄소년단(BTS)은 12분 동안 축사를 했다. 리더 RM은 “저희에게 많은 것을 이뤘다고 하지만 저희는 여느 또래와 마찬가지로 학사모를 벗지 못한 채 날것의 세상과 마주하는, 아직도 서툰 20대”라고 했다. 이어 “우리도 중요한 계획들이 물거품이 되면서 혼란을 겪었고 그 불안과 상실감은 아직 마음 어딘가에 남아 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추스르고 새로운 음악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고 했다. 유튜브는 팝스타들과 함께 졸업식의 ‘애프터 파티’ 격인 온라인 공연을 마련했고, BTS가 피날레를 장식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소셜미디어가 온통 검은색으로 뒤덮이고 있다. 먼 한국 땅에서도 암울한 미국의 분위기가 물리적 거리와 시차를 넘어 고스란히 전달된다. 타인의 고통에 침묵하지 않고 동조하며 이를 알리는 시민들의 존재가 미국을 지탱하는 힘인지도 모른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자신을 직시하며 소신껏 목소리를 내는 움직임 말이다. 저자는 ‘레드넥(redneck·미국 남부의 빈곤한 백인 농민, 노동자를 비하하는 말)’의 딸이다. 캔자스의 시골 농장에서 태어난 그는 ‘균등한 기회’ ‘낙수효과’ 등으로 일컬어지는 아메리칸 드림의 허상을 자신의 삶으로 고발한다. 그의 주변인들은 10대에 임신하고, 뼈 빠지게 일하며, 의료보험 없이 신이 부르면 죽음을 맞는 인생을 살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라는 미국의 중심에서 동떨어져, 일할수록 가난의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삶이다. 주어진 대로 살았더라면 자신도 10대에 낳게 됐을 가상의 아기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태로 책은 전개된다. 이 책을 ‘백인 빈곤 여성’의 범주로 한정시키는 것은 또 다른 인종주의로 느껴진다. 이러한 분류를 넘어 차별과 배제의 시스템을 고발하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한 인간의 이야기로 읽고 싶다. ‘흑인의 삶은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집회에 흑인만 참가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그들의 움직임은 결국 인종을 넘어 소외된 모든 이의 목소리에 힘을 보태기 위한 것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깊게 팬 주름과 소나무 껍질처럼 메마른 피부. 슬픔에 탄식하거나 때로 통곡하는 듯한 표정. K팝과 K뷰티를 자랑하는 한국인의 깊은 곳엔 이 얼굴들이 자리한다고 그림은 말한다. 한국 미술의 ‘딥 컷(Deep Cut)’, 숨은 보석인 권순철 화백(76)의 작품 세계를 지면에는 시원하게, 동아닷컴에는 심층적으로 소개한다.》 정체성은 동시대(컨템퍼러리) 미술에서 여전히 중요한 화두다. 짐바브웨의 코끼리 똥으로 작품을 만든 크리스 오필리는 1998년 영국 저명 현대미술상인 터너상(賞)을 받았다. 독일 작가 안젤름 키퍼(75)는 나치와 전쟁의 역사를 직시한 작품들로 거장의 반열에 올랐다.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는 미국의 인종주의를 고발한 아서 자파(59)에게 황금사자상을 주며 ‘흑인의 삶은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시위를 예견했다. 국제 미술계를 주도하는 미술관들은 유럽 백인 중심의 미술사를 반성하고 지역 미술사 발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내에서도 한때 ‘우리 것’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맹목적인 국가주의나 이를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사대주의의 이분법에 빠지고 말았다. 세계적 보편성을 바탕에 둔 한국의 정체성 탐구는 소수의 영역이었다. 권순철은 이런 척박한 토양에서 1960년대부터 수십 년간 한국인의 얼굴과 넋, 산을 그리며 원형(原型)을 찾아갔다. 병원 기차역 시장 같은 길거리 스케치로 시작한 얼굴에 6·25전쟁, 4·19혁명 등의 역사가 얽혔다. 그림 속 얼굴은 ‘불쌍한 이웃’이 아니라 고된 역사를 겪어낸 한국인의 자화상이다. 1일 작업실에서 만난 작가는 “일제강점기부터 역사를 몸으로 겪은 얼굴에는 숭고함이 있다”고 말했다. “과거 서울의 터미널이나 기차역에 가면 지방에서 자식들 보러 상경한 촌로들을 볼 수 있었다. 모든 것들을 겪으면서도 땅과 가족을 지키며 살아온 초연한 얼굴엔 압도적 기운이 있다. 이 얼굴의 겉모습뿐 아니라 정신까지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세계적인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권순철의 ‘얼굴’은 한국인의 고통 기쁨 울분 즐거움, 그 모든 것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보편적 인류의 이야기로 나아가고 있다.::권순철 화백::▽1944년 경남 창원 출생▽1984년 서울대 미술대 회화과 및 동 대학원 졸업▽1989년 프랑스 파리로 이주▽2003년 프랑스 트루아 현대미술관 개인전▽2006년 프랑스 파리 몽파르나스 미술관‘경계선: 소나무협회 그룹전’▽2016년 대구미술관 개인전김민 기자 kimmin@donga.com}

“3,40년 동안 뉴욕현대미술관(MoMA)는 특정한 미술사의 내러티브(영미권 백인 남성 중심의 미술사)와 연결지어 생각됐다. 모마는 그러한 주입식 미술사를 버리고 라틴아메리카나 아프리카, 아시아 작품을 더 연구하고 전시할 것이다. 이를 통해 정해진 미술사가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는 미술사의 장이 될 것이다.” 지난해 글렌 로리 미국 뉴욕현대미술관장은 ‘새로운 모마’에 대해 전 세계를 돌며 설파했다. 위의 발언은 한국을 찾았던 지난해 4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이다. 로리 관장의 말처럼 국제 미술계는 유럽·미국 중심 미술사의 오류를 인정하고, 지역 미술사를 다시 보는 중이다. 동시대 미술에서 그런 움직임의 일환이자 중요한 화두가 바로 ‘정체성’ 문제다.국내 문화계에서도 한 때 ‘한국적인 것을 찾자’는 움직임이 활발했다. 그러나 이 움직임은 국제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맹목적인 국가주의나, 이를 외면하는 사대주의의 이분법으로 빠지고 말았다. 세계적 보편성을 바탕에 둔 한국의 정체성 탐구는 소수의 영역이었다. 권순철 작가(76)는 이런 척박한 토양에서 한국의 원형(原型)을 찾고자 했다. 1960년대부터 시작한 한국인의 얼굴과 넋, 산을 통해서다. 권 화백을 1일 경기 양주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1989년 이후 프랑스에 정착해 한국을 오가던 그는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한국에 머물고 있다.● 길거리 스케치로 시작된 얼굴 찾기 권 화백이 서울대 회화과를 다니던 1960년대 말~1970년대 무렵, 예술가들은 미국의 추상표현주의나 파리의 앙포르멜 등 추상미술에 몰두했다. 그 또한 “추상 미술을 그리다가 머리가 아프면 길거리로 나가 스케치를 했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연건동에 서울대 문리대가 있을 무렵이었다. 권 화백은 서울대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그렸다. 한국 전역의 중환자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그런 가운데 ‘한국성’에 대한 문화계의 고민에 권 작가도 영향을 받았다. 미술학원에 가면 줄리앙이나 비너스 석고상을 그리는 관습을 이상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국전에 출품된 작품에도 인물은 서양인 닮은꼴 이었다. 서양 미술을 받아들이면서 실종된 ‘한국적인 얼굴’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권 화백은 하게 됐다. 이후 서울대병원은 물론 서울역, 동대문시장 등 거리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을 스케치북에 담았다.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은 1986년 개인전 서문에서 “그는 언제, 어디서나 스케치북과 한 두 권의 책을 그것도 겨울에는 목장갑을 낀 손으로 들고 다녔다”고 회고했다. 자신을 그리고 있다는 걸 눈치 챈 행인에게 스케치북을 빼앗길 뻔 한 적도 있었다. 권순철의 ‘얼굴 탐구’는 단순한 겉모습 수집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한국인의 골상을 연구하기 위해 해부학적 자료를 찾는가 하면, 석사 논문으로 ‘한국 미술에 나타난 얼굴 형태에 관한 고찰’(1971)도 썼다.● 시대와 정신을 담은 얼굴그의 ‘얼굴’ 작품을 가까이서 보면 산맥처럼 겹겹이 쌓인 물감을 발견할 수 있다. 다양한 색채와 질감이 마치 추상 작품을 마주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런데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서면 캔버스 위에 떠 있는 듯한 얼굴이 보인다. 해부학적 뼈대에서 출발해 그림의 논리를 고려하며 쌓아 올린 작품이기에 가능한 효과다. 이런 작업 방식은 단순한 묘사를 넘어 ‘정신’을 담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에서 비롯한 것이다. 1일 작업실에서 만난 그는 “일제시대나 한국 전쟁, 4·19 혁명 같은 굴곡진 역사가 담긴 얼굴이 한국적이라 생각했고, 그림 속의 얼굴에도 역사를 넣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그림에 정신성을 담고자 하는 표현 방식은 폴 세잔(1839~1906)의 영향이다. 세잔은 기존의 조형 언어를 벗어나 원근법을 파괴하고, 개인이 보는 방식의 산을 만들어냈다. 이 때문에 “세잔을 모르면 현대미술을 이해할 수 없다”고도 한다. 권순철은 세잔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칼 융이 말하는 ‘집단 무의식’을 개개인의 몸을 통해 표현하고자 한다. 또 앞서 인체를 그렸던 프란시스 베이컨(1909~1992)이나 에곤 실레(1890~1918)와도 다르다. 두 작가의 인체는 ‘육체’에 가깝다. 폭력적으로 비틀거나(베이컨), 성적인 요소를 강조(실레)하며 시대적 상황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권 화백은 오히려 수많은 얼굴과 정신을 겹쳐가며 ‘원형’(原型)을 찾고자 한다. 이런 탐구는 얼굴을 넘어 인체 작업으로도 확장되고 있다.● 미술사 차용과 정체성은 현대미술의 화두 작가가 자신의 의도에 맞게 과거 미술사의 방식을 차용하고, 이를 통해 정체성을 탐구하는 것은 최근 현대 미술가들이 자주 사용하는 방식이다. 영국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83)는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조형 언어를 속속들이 탐구하고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또 젊은 미술가들은 에드바르 뭉크(1863~1944) 등 표현주의 미술가들의 언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한다. 권순철은 세잔이 생빅투아르 산에 담은 ‘정신성’에서 영향을 받았다.또 정체성이나 시대적 상황을 감각적으로 담는 것 또한 중요한 문제다. 1998년 영국의 현대미술상인 터너상을 수상한 크리스 오필리(52)는 자신의 선조가 살았던 짐바브웨의 코끼리 똥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영국에선 쓸모없는 코끼리 똥이 짐바브웨에서는 거름은 물론 연료이자 건축 재료로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5년 테이트모던에서 회고전을 연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작가 마를렌 뒤마(66) 또한 얼굴로 시대성을 표현한다. 그가 그린 얼굴은 주로 언론에 보도된 기사나 대중 매체에 등장한 이미지를 변형시킨 것들이다. 종이 위에 잉크의 번짐 효과를 활용한 그림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현대 사회의 조건 속에서 불안한 사람들의 심리를 보여준다. 권순철은 시대적 상황과 역사를 물감에 담아 쌓아 올리는 방식을 통해 궁극적으로 보편성을 추구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일제시대부터 역사를 몸으로 겪은 얼굴에는 숭고함이 있다. 과거 서울의 터미널이나 기차역에 가면 지방에서 자식들 보러 상경한 촌로들을 볼 수 있었다. 모든 것들 겪으면서도 땅과 가족을 지키며 살아온 초연한 얼굴엔 압도적 기운이 있다. 이 얼굴에 정신까지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세계적인 아름다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세계적 대지 미술가 그룹 ‘크리스토와 잔클로드’의 크리스토(1935∼2020·사진)가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자택에서 별세하자 미술계에 애도의 물결이 이어지고 있다. 크리스토는 그의 부인이자 예술적 동반자였던 잔클로드(2009년 사망)와 함께 호주 시드니 해안의 100만 제곱피트 절벽부터 프랑스 파리 퐁뇌프 다리 등을 천으로 감싸 전 세계인들을 깜짝 놀라게 한 ‘스타’였다. 두 사람은 평생 정부 지원금이나 후원금을 받지 않았다. 오직 상상으로 출발한 작품은 토지 소유주부터 지역 주민, 그리고 관련 부처와 협의하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 완성됐다. 설치 비용은 작품의 드로잉과 작은 모델을 컬렉터와 미술관에 판매한 대금으로 충당했다. 이 시간은 짧게는 수년에서 수십 년까지 걸렸다. 대표작 ‘퐁뇌프 포장’(1985년)도 10여 년이 걸렸다. 대부분의 시간은 프랑스와 파리시의 협조 요청에 쓰였다. 1980년 자크 시라크 파리시장의 허가를 받았지만, 이후엔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허락을 기다려야 했다. 두 정치인의 미묘한 경쟁으로 허가가 늦어지자 크리스토는 “프랑스는 여전히 미테랑이 왕인 군주국가”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독일 베를린의 ‘라이히슈타크 포장(1995년)도 수년간 서독 정부의 허가를 기다리다가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에야 실현됐다. 생전 크리스토는 “나의 미학은 과정에 있다”고 했다. 1979년 기획한 미국 센트럴파크의 ‘The Gates’를 2005년 실현한 뒤에는 “이 작품은 수많은 서류 작성과 협상의 지난한 과정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작품”이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부고 기사에서 많은 사람들의 행동을 이끌어 낸 크리스토를 “미술계의 피리 부는 사나이”라고 표현했다. 작업실에서 조용히 제작된 뒤 새하얀 갤러리의 벽에서 공개되는 예술의 과정이 때로는 ‘그들만의 리그’로 느껴지기도 한다. 크리스토와 잔클로드는 이런 예술을 일상에서 가까이 마주하며 당신도 그 일원이 될 수 있다고 따스한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1962년 처음 구상해 유작이 된 ‘개선문 포장’은 2021년 9월 공개될 예정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경남 양산 통도사 성보박물관에서 특별한 옻칠 민화들을 볼 수 있다. 5월 29일 개막한 ‘통도사 옻칠 민화 특별전’은 통도사 방장 성파 스님의 작품 1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금강산도’ ‘일월오봉도’ ‘연화도’ ‘책가도’ ‘문자도’ ‘화조도’ 등 다양한 민화를 선보인다. 성파 스님은 “통도사 전각의 벽화들이 민화가 불교와 인연이 깊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며 “민화에는 중생 교화의 부처님 가르침이 들어 있다. 민화의 속뜻을 알면 불교에 대한 이해도 깊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통도사에도 익살스러운 표정의 호랑이가 까치를 바라보는 벽화 ‘까치호랑이’, 거북이 등에 올라 용궁으로 가는 토끼를 그린 ‘별주부도’ 등 민화풍의 그림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스님의 민화는 물감 대신 옻칠을 이용한 것이 특징이다. 1983년 옻을 사용한 작품으로 개인전을 처음 연 이후 국내외에서 옻과 불교미술을 접목한 전시도 10여 차례 열었다. 옻칠 불화, 민화, 서예, 천연염색 등 전통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2017년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성파 스님은 “불교뿐 아니라 우리 전통 미술의 우수성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전시는 6월 28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 마들렌 시장은 농부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이 세상에는 쓸모없는 풀도, 악한 사람도 없습니다.” 여기서 쓸모없는 풀이란 잡초나 쐐기풀을 말한다. 17, 18세기 영국에서는 서민들을 잡초나 쐐기풀에 빗대었고, 빅토르 위고는 쐐기풀을 가장 좋아했다. 미국 시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천대받는 풀에 대한 연민을 표현했으며, 프랑스의 역사가 쥘 미슐레는 초원을 “모두가 서로에게 귀 기울이는 사회”라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한국인 독자의 머리에는 김수영 시인(1921∼1968)의 ‘풀’도 떠오른다. 나무도 꽃도 아닌 ‘풀’을 소재로 한 문화사 책이다. 지극히 미시적인 소재에서 시작해 유럽의 다양한 예술가들의 단면을 들여다본다. 위고는 물론 에밀 졸라, 보들레르, 헤르만 헤세 등 대문호의 문장도 등장한다. 마르셀 프루스트의 나라에서 나올 법한 섬세한 서술이 돋보이며, 잘 알려진 예술가들의 소소한 생각을 엿보는 재미도 있다. 저자는 근대사와 미시사를 전공하는 프랑스의 역사학자로 투르대, 판테옹소르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퇴직 후에도 연구와 저술을 이어가고 있다. 감각과 욕망, 시간, 공간 인식, 유혹 등의 단순한 주제에서 사고를 확장시켜 나간다. 대표작 ‘악취와 향기’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에 영향을 줬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경남 양산 통도사 성보박물관에서 요즘 특별한 옻칠 민화들을 볼 수 있다. 29일 개막한 ‘통도사 옻칠 민화 특별전’은 통도사 방장 성파 스님의 작품 1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금강산도’, ‘일월오봉도’, ‘연화도’, ‘책가도’, ‘문자도’, ‘화조도’ 등 다양한 민화를 선보인다. 성파 스님은 “통도사 전각의 벽화들이 민화가 불교와 인연이 깊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며 “민화에는 중생교화의 부처님 가르침이 들어있다. 민화의 속뜻을 알면 불교에 대한 이해도 깊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통도사에도 익살스러운 표정의 호랑이가 까치를 바라보는 벽화 ‘까치호랑이’, 거북이 등에 올라 용궁으로 가는 토끼를 그린 ‘별주부도’ 등 민화풍의 그림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스님의 민화는 물감 대신 옻칠을 이용한 것이 특징이다. 1983년 옻을 사용한 작품으로 개인전을 처음 연 이후 국내외에서 옻과 불교미술을 접목한 전시도 10여 차례 열었다. 옻칠 불화, 민화, 서예, 천연염색 등 전통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2017년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성파 스님은 “불교뿐 아니라 우리 전통 미술의 우수성을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전시는 6월28일까지. 김민기자 kimmin@donga.com}

“수인(水印) 판화는 서양보다 1000년 정도 앞선 판화 기술입니다. 서양식 판화보다 훨씬 쉬워 간단한 도구로 고도의 기술을 터득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미술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판화가 아닌 동양의 전통 판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중국에서 수인판화를 연구하고 이를 현대미술에 접목한 김상연 작가(54·사진)는 “동양 판화를 직접 해보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시각으로 세상을 살아왔는지 알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1994∼1999년 중국 선양(瀋陽) 루쉰미술대, 중국미술대 등에서 전통 판화를 연구했다. 수인 판화는 기름을 사용하지 않고 물을 물감의 용해 재료로 사용해 찍는 방법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서양 판화는 기름을 용해 재료로 사용한 유인(油印) 판화로 압착기계(프레스)를 사용해 그림을 찍는다. 종이 위에 한 번 찍으면 선명하게 형태가 나온다. 반면 수인 판화는 기계를 사용하지 않고 종이에 번지는 속성을 활용해 손으로 직접 판의 물감을 묻혀가며 오랜 과정을 거쳐 완성시킨다. 이 때문에 매순간 집중력이 요구된다. 김 작가는 “수인 판화는 석판이나 목판, 동판 등 각기 다른 판과 종이, 물감 등 재료 자체의 속성이 서로 만났을 때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를 복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물질을 다루는 단순한 차이가 세상을 보는 시각의 차이까지 연결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내용을 30일부터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열리는 ‘현대미술 속에 감춰진 동양 판화의 비밀’ 강좌를 통해 시민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매주 토요일 총 6회 진행되는 이번 강좌는 다양한 재료를 이용해 판화를 직접 찍어보는 체험 형식으로 이뤄진다.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판과 종이, 물감을 선택해 자신만의 작품을 완성하게 된다. 김 작가는 “미술 교육의 대부분이 서양 미술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어 동양인의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적지 않다”며 “시민이나 전문 미술인도 직접 판화 기술을 체험해보면서 예술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얻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백남준(1932∼2006)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1984년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 대한민국 서울에서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생중계된 작품이다. 이어진 ‘바이바이 키플링’(1986년)과 ‘세계와 손잡고’(1988년) 등 ‘우주 오페라 3부작’은 백남준 마니아라면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각각 30∼80분 길이의 3부작 영상을 모두 본 경험은 의외로 많지 않다. 백남준의 대표작을 푹신한 소파에 앉아 볼 수 있는 자리가 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에 마련됐다. 백남준아트센터는 12일부터 ‘백남준 티브이 웨이브’전을 열고 있다.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까지 백남준이 선보인 방송 및 위성방송 작품을 중심으로 그의 텔레비전 탐구와 실험을 조명하는 전시다. 전시장 한쪽에 설치된 3개의 ‘백‘s 비디오 박스’에서 텔레비전을 보듯 영상 작품 13점을 리모컨으로 선택해 시청할 수 있다. 1969년작 ‘9/23/69: 데이비드 애트우드와의 실험’과 ‘매체는 매체다’부터 요제프 보이스와 협력한 ‘카셀 도큐멘타6: 위성 텔레캐스트’(1977년) 등 마니아의 구미가 당길 만한 작품이 많다. ‘바이바이 키플링’에서는 인공위성을 위해 굿판을 벌이는 한국 무당 등 유머러스한 장면도 많다. 이번 ‘소파 관람’은 작품에 관객의 참여를 유도했던 백남준의 모습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지난해 백남준아트센터에 합류한 공간디자이너가 좁은 곳에서 많은 작품을 볼 수 있도록 고심한 결과다. 김성은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백남준이 평소 자신의 작품을 30분만 꾸준히 지켜봐 달라고 했듯이 이 같은 경험을 관객이 해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3월 7일까지. 무료.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가 칸, 베니스국제영화제 등 세계 20개 영화제의 주관 단체와 유튜브가 개최하는 ‘We are One(우리는 하나)’ 온라인 영화제에 참여한다. 26일(현지 시간) 미국 연예매체 인디와이어 등에 따르면 봉 감독과 송강호가 포함된 ‘We are One’ 영화제 참석자 명단이 최근 확정됐다. 참석자에는 봉 감독 외에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스티븐 소더버그 등 유명 영화감독도 포함됐다. 이번 영화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으로 많은 국제영화제가 줄줄이 취소, 연기되자 국제영화제 주관단체들과 유튜브가 전 세계 영화 팬을 위로하고 코로나19 극복 기금을 모으기 위해 힘을 합쳐 마련했다. 총괄 기획은 뉴욕 트라이베카영화제를 개최하는 트라이베카 엔터프라이즈가 맡았다. 영화제는 29일부터 열흘간 유튜브로 진행된다. 35개국의 장편영화 31편, 단편영화 72편이 상영되며 참석자들의 대담 프로그램도 15건 열린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세상에서 흑과 백의 중용을 지키는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100주년을 맞은 동아일보의 개방형 아트 플랫폼 ‘한국의 상’에 도예가 김선미(52)의 새 작품 두 점이 전시된다. ‘합(合)’이 제목인 두 작품은 받침대 위에 놓인 용기가 얇게 덮인 모양을 하고 있다. 25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김 씨는 “덮여 있지만 완전히 덮이지 않은 모양에서 조금이라도 마음과 귀가 열려 있는 상태를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도자기를 불에 구우면 예상과 다르게 나오는 경우가 많아 늘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자기는 나의 첫 의도와는 달리 조금만 삐끗해도 잘못 구워지거나 터질 우려가 있죠. 모든 가능성을 대비한다는 생각으로 살아야 하는 게 도자기예요. 늘 계획대로 되지 않으니 종교가 있어도 작업할 때만큼은 ‘가마신’에게 기도를 하죠.” 이번 작품도 긍정적 의미의 즉흥성으로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작업뿐 아니라 사람을 대할 때도 느낌이 중요하잖아요. 처음의 느낌과 감각, 즉흥적인 촉이 중요해요. 이번 작업도 흙을 던져 형태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윗부분이 덮이는 방식이 달라졌어요. 5개 정도를 만들어 그중 잘된 것을 골랐습니다.” 또 평소 작업과는 달리 더 거칠고 투박한 형태로 만든 것에 대해서는 “첫 번째 개인전에서 보여줬던 작품을 이어가려고 한 것”이라고 했다. “본격적으로 생활 도자기를 하기 전에 도자 조각을 제작한 적이 있어요. 약 20년 전인데 마음을 덮는 작업을 하고 싶어서 시작한 시리즈입니다.” 그는 동아일보 100주년을 기념하는 접시 ‘승(昇)’도 제작했다. 2500개의 그릇을 만드는 작업이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는 가운데 빠른 시간에 많은 물량을 만들어야 해서 걱정이 많았다고 그는 털어놨다. 붉은색과 금색으로 번영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동아일보와 신동아 구독자였고, 시아버지는 국내 최초 광고인인 김용중 씨(1917∼2004)로 동아일보 광고대상 심사위원장도 하셨어요. 그런 인연을 생각하며 작업을 하기 시작했는데, 시간 내에 완성된 걸 보니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100주년을 맞은 동아일보에 그는 “남들이 안 쓸 듯한 기사를 써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저는 소시민이자 구독자의 입장에서 보통 사람들이 다루지 않을 것 같은 기사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단순히 좋은 이야기보다 까다로운 이야기를 흥미롭게 풀어, ‘신문사에서 이런 것도 기사로 낼 수 있구나’라고 느낄 수 있었으면 해요. 과도하게 눈치를 보면 모두가 같아질 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면서 예술계에 대해서도 이면의 이야기들을 풀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예술이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이면의 것들이 많아요. 저도 교만했던 시절이 있지만 그 전에 너무 어려웠던 시절도 있었죠. 이런 것들을 어느 정도까지는 공유하고 공감대를 형성할 분위기가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전시는 6월 26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내가 마흔을 넘길 수 있을까.” 조각가 류인(1956∼1999)은 이따금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대학생 시절 사진 속 작품 옆에 선 그는 왜소하고 마른 체구가 마치 소년 같다. 작업 노트엔 진찰 약속과 복용해야 할 약 목록이 적혀 있다. 어릴 때부터 병약했던 그는 요절할 운명을 예감한 듯 짧은 기간에 많은 작품을 남겼다. 15년가량의 작업 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 ‘류인―파란에서 부활로’가 서울 송파구 국민체육진흥공단 소마미술관(관장 민도평)에서 열리고 있다. 작가 사후 미술관에서 회고전이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류인의 작품과 자료 100여 점을 소개하는 전시는 처녀작인 ‘자소상’으로 시작한다. 공모전 수상작인 ‘여인입상’을 비롯해 설치작품 ‘흙―난지도’ 등 총 4점이 작가 사후 최초로 공개됐다. 또 전시장 밖에 설치된 ‘부활―그 정서적 자질’은 서울 예술의전당이 소장하고 있던 작품으로 처음으로 자리를 옮겨 다른 작품들과 함께 전시된다. 두 번째 공간에서 보이는 ‘파란 I’(1984년)과 ‘입산’ ‘하산’ 등의 작품은 작가가 대학원 재학 시절 제작한 작품이다. 홍익대 조소과를 나온 류인은 동대학원에 입학하기 전 네 번이나 재수를 했다고 한다. 이 시기 고민 끝에 나온 작품들로, 초기 단정한 신체 조각에서 벗어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신체의 일부분만 표현하거나 인체의 비율을 왜곡해 자신만의 표현을 찾아가는 과정이 드러난다. ‘급행열차―시대의 변’은 류인을 미술계에 강렬하게 각인시킨 화제작이다.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려는 듯 몸부림치는 신체들이 기찻길 위에 줄지어 서 있어 시선을 사로잡는다. ‘급행열차’와 함께 전시된 ‘푸짐한 식사’는 쟁반 위에 뚜껑이 열린 듯 표현된 두상을 올려 두어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정나영 전시학예부장은 “류인은 신체 자체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기보다 그것을 생략하고 왜곡하거나 오브제로 대체해 1980, 90년대 사회상을 표현한 작가”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에 마련된 아카이브 섹션에서는 류인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작업했는지를 돌아볼 수 있다. 독일 표현주의 작가인 빌헬름 렘브루크(1881∼1919)를 연구했고, 자코메티나 로댕의 책을 수집한 흔적도 남아 있다. 또 인터뷰 영상을 통해 동료 조각가들이 본 류인의 생전 모습도 가늠해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소마미술관에서 2007년부터 시작한 ‘작가 재조명’ 기획 시리즈의 다섯 번째 전시다. 2007년 ‘김주호, 박한진, 이건용―쉬지 않는 손, 머물지 않는 정신’이 첫 전시였다. 이후 ‘신성희-한순자’(2009년), ‘김차섭, 전수천, 한애규―긴 호흡’(2014년) 등 2인전, 3인전 형식으로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에서 새롭게 조명할 가치가 있는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작가정신과 시대정신을 부각시켜 살폈다. 그러다 2018년부터는 한 작가의 세계관과 작품세계를 보다 깊이 있게 들여다보자는 취지로 개인 회고전으로 전환했다. 그 첫 전시는 ‘황창배―유쾌한 창작의 장막’이었고 두 번째 회고전 작가가 류인이다. 한국 근대미술의 유명 작가인 류경채(1920∼1995)의 아들이기도 한 류인은 1981년 학부를 졸업했다. 1983년 목우회 특선, 1983년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을 수상하는 등 일찌감치 주목받았지만 1999년 간경화로 사망했다. 전시는 10월 4일까지. 1000∼3000원.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이 책을 읽고 나면 적어도 두 가지 일을 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첫째 욕실 샤워기 헤드 교체하기, 둘째 손에 양념을 푹푹 묻혀가며 김치 담그기. 이 일들은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집 안의 생태계와 관련이 있다. 1676년 네덜란드 델프트의 직물 거래 상인 안톤 판 레이우엔훅이 미생물을 발견하는 순간으로 책은 시작한다. 레이우엔훅은 직접 만든 현미경으로 후추물 속 세균을 관찰했다. 저 멀리의 자연이 아닌 집 속 미생물을 맨눈으로 관찰한 첫 시도였다. “생태학자들이 먼 곳만 보는 습관이 있다”고 지적하는 저자는 자신과 연구진이 관찰한 집 속 생태계를 소개한다. 미국의 가정집을 “코스타리카의 우림이나 남아프리카 초원을 다루듯” 연구한 결과는 놀라웠다. 수백 종으로 예상됐던 집안 생물은 20만 종 이상이었으며 발견된 세균의 종은 지구상의 조류와 포유류의 종보다 더 많았다. 책의 주제만 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집콕’(집에만 머무르기)이 일상이 된 지금, 몰라도 될 불편한 진실을 파헤친다는 오해가 들지도 모르겠다. 특히 샤워기 헤드에 관한 연구 결과를 다룬 부분에선 약간의 공포감마저 느낀다. 시시각각 물이 뿜어지는 샤워기 헤드 속 세균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두꺼운 생물막을 형성한다. 쉽게 말하면 “세균들이 수도관 안에 힘을 합쳐 똥을 싸서 쉽게 부수기 힘든 아파트를 짓는다”는 것이다. 이 속에서 ‘식사 중’인 세균들은 샤워할 때 우리 몸으로 와르르 쏟아진다. 물론 이 중에는 세로토닌 생산을 촉진하는 좋은 미생물도 들어 있지만 말이다. 흥미로운 건 소독된 수돗물에서 유해 세균이 더 많이 발견됐다는 사실이다. 지하수에서 끌어온 물은 그 안의 생물 다양성 덕분에 유해 세균이 적었다. 무슨 균이든 일단 없애고 보자는 화학적 살균이 오히려 더 큰 해악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모든 집의 불청객 바퀴벌레도 마찬가지. 인간이 독한 약을 개발할수록 바퀴벌레는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로 대응하며 끈질기게 살아남고 있다. 일련의 연구 끝에 저자는 우리 몸의 생물 다양성을 회복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 방법 중 하나는 놀랍게도 발효식품이며 대표 사례로 김치가 등장한다. 유명한 포크록 밴드 ‘에이빗 브라더스’의 첼리스트 조권과 그의 어머니 권수희와 식사하던 저자는 한국 사람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손맛’ 이야기를 듣게 된다. 김치 담그는 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보면 같은 재료를 써도 김치 맛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어쩌면 손맛이 미생물과 관련이 있으며 더 나아가 ‘집 맛’이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김치와 비슷한 발효식품인 빵을 연구한 결과 놀랍게도 제빵사의 손은 평균 25%, 최대 80%가 발효에 관련된 미생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매일 빵 반죽에 손을 담그고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 집 안과 몸에 유익한 종이 더 많이 살도록 하는 방법 중 하나가 ‘김치 담그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 밖에 책은 집 속의 곰팡이, 절지동물, 꼽등이는 물론 고양이의 장(腸) 속까지 들여다본다. 이 과정을 통해 나만의 것인 줄 알았던 집이 사실은 공존하는 생명으로 가득 찼음을 깨닫고, 겸허함을 느끼게 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이 책을 읽고 나면 적어도 두 가지 일을 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첫째 욕실 샤워기 헤드 교체하기, 둘째 손에 양념을 푹푹 묻혀가며 김치 담그기. 이 일들은 놀랄 정도로 다양한 집 안의 생태계와 관련이 있다. 1676년 네덜란드 델프트의 직물 거래상인 안톤 판 레이우엔훅이 미생물을 발견하는 순간으로 책은 시작한다. 레이우엔훅은 직접 만든 현미경으로 후추물 속 세균을 관찰했다. 저 멀리의 자연이 아닌 집 속 미생물을 맨눈으로 관찰한 첫 시도였다. “생태학자들이 먼 곳만 보는 습관이 있다”고 지적하는 저자는 자신과 연구진이 관찰한 집 속 생태계를 소개한다. 미국의 가정집을 “코스타리카의 우림이나 남아프리카 초원을 다루듯” 연구한 결과는 놀라웠다. 수백 종으로 예상됐던 집안 생물은 20만 종 이상이었으며 발견된 세균의 종은 지구상의 조류와 포유류의 종보다 더 많았다. 책의 주제만 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집콕(집에만 머무르기)’이 일상이 된 지금, 몰라도 될 불편한 진실을 파헤친다는 오해가 들지도 모르겠다. 특히 샤워기 헤드에 관한 연구 결과를 다룬 부분에선 약간의 공포감마저 느낀다. 시시각각 물이 뿜어지는 샤워기 헤드 속 세균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두터운 생물막을 형성한다. 쉽게 말하면 “세균들이 수도관 안에 힘을 합쳐 똥을 싸서 쉽게 부수기 힘든 아파트를 짓는다”는 것이다. 이 속에서 ‘식사 중’인 세균들은 샤워할 때 우리 “으로 와르르 쏟아진다. 물론 이 중에는 세로토닌 생산을 촉진하는 좋은 미생물도 들어있지만 말이다. 흥미로운 건 소독된 수돗물에서 유해 세균이 더 많이 발견됐다는 사실이다. 지하수에서 끌어온 물은 그 안의 생물 다양성 덕분에 유해 세균이 적었다. 무슨 균이든 일단 없애고 보자는 화학적 살균이 오히려 더 큰 해악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이야기다. 모든 집의 불청객 바퀴벌레도 마찬가지. 인간이 독한 약을 개발할수록 바퀴벌레는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로 대응하며 끈질기게 살아남고 있다. 일련의 연구 끝에 저자는 우리 ”의 생물 다양성을 회복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 방법 중 하나는 놀랍게도 발효식품이며 대표 사례로 김치가 등장한다. 유명한 포크록 밴드 ‘에이빗 브라더스’의 첼리스트 조권과 그의 어머니 권수희와 식사하던 저자는 한국 사람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손맛’ 이야기를 듣게 된다. 김치 담그는 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쳐보면 같은 재료를 써도 김치 맛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어쩌면 손맛이 미생물과 관련이 있으며 더 나아가 ‘집 맛’이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김치와 비슷한 발효식품인 빵을 연구한 결과 놀랍게도 제빵사의 손은 평균 25%, 최대 80%가 발효에 관련된 미생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매일 빵 반죽에 손을 담그고 있기 때문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 집안과 “에 유익한 종이 더 많이 살도록 하는 방법 중 하나가 ‘김치 담그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밖에 책은 집 속의 곰팡이, 절지동물, 곱등이는 물론 고양이의 장(腸) 속까지 들여다본다. 이 과정을 통해 나만의 것인 줄 알았던 집이 사실은 공존하는 생명으로 가득 찼음을 깨닫고, 겸허함을 느끼게 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017년부터 제주도에 머물면서 매일 산책하는 중문 거리와 집에서 보이는 풍경을 그림에 담았습니다.” 2017년 이화여대에서 정년퇴임하고 ‘제주살이’를 시작한 한국화가 김보희(68)가 개인전 ‘Towards’를 위해 서울을 찾았다. 서울 종로구 금호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는 신작 33점 등 미공개작 36점과 드로잉 2점, 대표작 17점으로 구성됐다. 캔버스 8점을 이어 붙여 높이 3m, 폭 5m가 넘는 대작 ‘The Terrace’가 눈길을 끈다. 자신의 정원에서 본 풍경에 상상력을 가미했다. 14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캔버스마다 시점을 다르게 해 원래라면 보이지 않는 푸른 바다를 더했다”고 설명했다. 3층 전시장에는 푸른 바다와 노을이 지는 도시 제주의 단면들을 담았다. 앞서 그의 작품 ‘향하여(Towards)’는 2017년 11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가 방한했을 때 청와대 대통령 부인 접견실에 걸려 주목받았다. 청와대가 삼청동 한 갤러리에서 대여했는데 이후 한 소장가에게 팔렸다고 한다. 서울에 있을 때보다 하루가 더 빨리 간다는 그는 “늘 정착하고 싶었던 제주도에 고생해서 겨우 왔으니 더 열심히 작업하겠다”고 했다. 전시는 7월 12일까지. 3000∼5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