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엽

조종엽 차장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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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종엽 차장입니다.

jjj@donga.com

취재분야

2026-03-04~2026-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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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소설을 통해 본 조선시대 ‘길 떠난 여성’들

    여성과 길의 관계는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조선 사대부가의 여성은 ‘별일’이 있어야 길을 떠날 수 있었지만 근현대 문학은 대도시나 해외에서 활약하는 신여성을 그렸다. 고전 소설에서 길 떠나는 여성은 어떻게 그려졌을까. 정선희 홍익대 교수(47)는 8일 한국학중앙연구원과 한국고전여성문학회가 연 학술대회 ‘길 위의 여인들’에서 ‘길 떠나는 여성들: 피화(避禍)와 가출, 납치, 유배, 축출’을 발표했다. 발표에서 정 교수는 삼대록(三代錄)계 국문 고전소설을 살폈다. ‘○씨삼대록’ 같은 제목을 갖고 있는 삼대록계 소설은 할아버지부터 손자에 이르는 집안의 이야기를 다루며 17세기 후반∼18세기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소설 속 여성들은 왜 집을 떠났을까. 먼저 ‘가출’이다. ‘유씨삼대록’의 진양공주와 유세창의 아내 설초벽, 유세필의 아내 박 씨 등은 시가 어른들을 설득해 자발적으로 집을 나간다. 남편이 자신을 소외시키거나 난(亂)이 벌어졌을 때 가출해 자신만의 공간이나 친정 등에서 사는 것. 정 교수는 “친정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크고, 효심이 지극한 여성 등장인물이 이런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화(禍)를 피하기 위해 집을 나서기도 한다. ‘조씨삼대록’의 유현의 아내 정 씨, ‘임씨삼대록’의 임월혜, 주난벽 등이다. 이들은 남편이나 시부모 살해, 간통 등의 누명을 쓰고, 밤에 몰래 도망 나오거나 강에 몸을 던진다. 이 밖에 납치, 유배, 축출 등의 이유로 집을 떠난다. 집을 나선 소설 속 여성들은 주로 암자나 산 등 인적이 드물고 도승이 있는 초월적 공간에서 출산을 하거나 도술을 배우며 액운이 다하기를 기다렸다. 악녀로 규정되는 여성들은 오랑캐 땅에서 왕비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음란함을 무기로 왕들을 유혹해 권력을 잡은 뒤 자신을 축출한 가문에 복수하고자 했다. 정 교수는 “여성들이 길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이야기는 당대인들의 운명론적 세계관과 초월적 가치관을 보여 주는 한편으로 당대 여성 독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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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경아 한림대 교수 “청년에 참여기회 주는 정치마당 절실”

    “돈도 실력이야. 능력이 없으면 너희 부모를 원망해”라는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의 말이 청년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촛불집회의 정서 저간에 ‘수저계급론’이나 ‘헬조선’ ‘n포 세대’ 등으로 요약되는 청년 세대의 불만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은 낯익다. ‘촛불 이후’ 청년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청년세대를 인터뷰하며 연구해 온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57)를 최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만났다. 그는 먼저 “촛불집회에 나오고 싶어도 못 나오는 대학생들이 많다”는 얘기부터 꺼냈다. “많은 학생들이 수업이 없는 주말과 방학에 아르바이트를 몰아서 하며 생활비와 학비를 벌고 있어요. 호프집, 예식장, 빵집 같은 곳에서 8∼12시간씩 일합니다. 남학생은 공사 현장에서, 여학생은 공장에서 생산직 미숙련 노동자로 일하기도 합니다. 이런 젊은이들은 촛불집회 참여는 꿈도 못 꾸는 거지요. 이게 현실입니다.” 신 교수는 청년들의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청년층은 중장년층에 비해 정치에 무관심해 선거에서 표의 영향력이 작고, 이에 따라 정책의 우선순위에서도 뒤로 밀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촛불집회에서 드러난 것처럼 청년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라는 게 신 교수의 말이다. 실제 청년들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정치 관련 정보를 주고받으며 잘 알고 있지만, 기성 정치를 불신하고 거기서 희망을 갖지 못할 뿐이라는 것이다. 신 교수는 “‘부정축재자 재산을 몰수해 사회에 환원하자’는 주장을 하는 군소정당에 가입해 활동 중인 학생도 만났다”며 “학생은 기성 정당에는 공감하지 못했고 ‘공정’을 강조하는 그 정당의 유인물을 보고 취지에 공감해 가입했다고 했다”고 전했다. 문제는 기성 정치권이다. 신 교수는 여야를 막론하고 선거철에만 청년 세대를 이용할 뿐 실제 그들의 의견을 반영하지도, 정치적 대표자로 성장할 기회를 주지도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젊은이들이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면 정치 세력이 암암리에 허위 정보를 올리는 등 구성원들에게 정치적인 싸움을 건다”며 “반대하는 구성원이 나가면 특정 세력에 점령돼 ‘××빠’의 공간이 돼 버린다”고 했다. 표를 염두에 둔 접근이 아니라 청년들의 자율적인 정치적 조직화를 지원해야 한다는 게 그의 쓴소리다. 정부의 역할도 강조했다. 차기 정부가 청년을 위한 부처를 설치하는 등 청년 문제 해결에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은 수많은 비정규직 청년의 삶과 직결되지만 최저임금위원회에 2015년까지 청년은 한 명도 들어가 있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정부를 포함해 기존의 청년 고용 관련 위원회와 협의회는 회의가 몇 번 열리지도 않는 등 유명무실했다는 비판도 잊지 않았다. 공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청년을 적극 포함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청년 내부에도 다양한 집단이 각자의 문제를 겪고 있어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가장의 실직이나 가정의 해체를 겪으며 자란 청년들이 많습니다. 복지가 미비한 상황에서 사적 보호망인 가족마저 무너진 것이죠. 중간층도 한순간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괜찮은 직장에 취업한 청년들이 기업의 병영 문화를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오기도 합니다.” 신 교수는 청년들이 졸업 뒤 직장을 가지고 독립하는, 지금은 무너져가는 생애 과정의 ‘사이클’을 복원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대안은 중소기업 육성이다. 몇 해 전 연구차 스웨덴과 덴마크를 다녀왔다는 그는 “두 나라 모두 세계적인 복지국가지만 경제가 대기업 중심인 스웨덴은 청년 실업률이 비교적 높은 반면 종업원 5인 이하 기업이 전체의 90%를 넘는 덴마크는 낮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공공 영역과 대기업의 고용 확대를 말하지만 이로써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신 교수는 “연구개발(R&D) 예산이 일부 대기업에 집중 지원되는 등 극단적인 대기업 우선 정책 대신 중소기업을 육성해 ‘강소(强小·작지만 강한) 기업’이 많이 나오면 청년들이 취업할 양질의 일자리가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지금 청년들의 분노는 불평등보다도 불공정에서 나온다”며 “이들이 직장을 갖고, 결혼해 아이를 낳도록 돕는 데 전력투구해야 한국의 미래가 있다”고 강조했다.  ○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20여 년 동안 가족·젠더(gender)·노동사회학을 연구해 온 중견 사회학자다. 한국여성연구소 부소장, 한국여성단체연합 노동위원회 연구위원, 상지대 민주사회정책연구원 연구교수 등을 지냈다. 다양한 집단을 심층 인터뷰하는 질적 연구를 주로 해 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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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벨문학상 알렉시예비치 등 해외문학 거장 15명 서울 온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와 프랑스 작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를 비롯한 해외 문학 거장들이 5월 한자리에 모인다. 대산문화재단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5월 23∼2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빌딩 내 컨벤션홀과 세미나룸에서 ‘2017 서울국제문학포럼’을 연다고 7일 밝혔다. 올해 포럼은 ‘새로운 환경 속의 문학과 독자’를 주제로 열린다. 프랑스 파리7대학 명예교수로 정신분석 및 페미니즘의 대표적 이론가인 줄리아 크리스테바, 소말리아 작가로 아프리카 탈식민주의 문학의 거장인 누르딘 파라, 미국의 계관시인으로 두 차례 추대된 로버트 하스, 인도의 대표적 작가 아미타브 고시 등 해외 작가 15명이 참석한다. ‘허삼관 매혈기’로 국내 독자에게도 친숙한 중국의 위화(余華), 체 게바라의 아들로 쿠바에서 다수의 문학상을 받은 오마르 페레스, 일본의 대표적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최연소로 받았던 히라노 게이치로(平野啓一郞) 등도 참여한다. 한국에서는 고은 유종호 정현종 현기영 김혜순 황석영 오정희 은희경 씨를 비롯해 문인 30여 명이 참가한다. 기조강연, 부문별 발제와 토론, 문학의 밤 행사 등이 열리며, 5월부터 포럼 홈페이지에서 사전 신청하면 참관할 수 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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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비행기]블랙리스트와 태극기 집회

    최근 발간된 북한 인권 관련 소설집 ‘금덩이 이야기’를 기획한 방민호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를 2일 만났다. “북한은 인권 논의 자체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인권이 잔인하게 유린되는 사회이기 때문에….” 대화 중 “교수님, 그런데 북한 인권을 말하시는데도 블랙리스트에 오르셨네요?” 했더니 “그러게요, 하하하” 한다. 기자도 ‘하하하’ 따라 웃었다. 근래 ‘어린 왕자’를 새로 번역한 문학평론가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와 최근 전화 통화할 일이 있었다. “교수님, 그런데 블랙리스트에 오르셨던데요?” “젊은 사람들이 피해를 많이 봤지, 나야 뭐 유신시대부터 단련이 돼서, 하하하.” 기자도 따라 웃었다. 소설가 김훈 씨는 6일 신간 ‘공터에서’ 간담회에서 ‘태극기 집회’ 참여자들의 정서에 공감하면서도 “어릴 적 박정희 대통령 해외 순방 행사에 동원돼 태극기 흔들던 자리에서 태극기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내가 너무 오래 산 것 아닌가, 어디에 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싶어서 정신을 못 차렸다”고 했다. 이번엔 웃지는 못했다. 아, 어렵다, 어려워.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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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훈 “참혹한 시대 이어온 갑질… 남루한 사람들의 고통 그려”

    “역사의 하중, 시대가 개인에게 가하는 고통을 견딜 수 없어서 도망 다니고, 시대를 부인하고, 미치광이가 돼 바깥을 떠도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소설가 김훈 씨(69)가 2011년 ‘흑산’을 낸 지 6년 만에 장편소설 ‘공터에서’(해냄)를 발간했다. 6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이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공터에서’는 1910년생으로 만주와 상하이 등지를 떠돌다 귀국해 6·25전쟁을 겪은 마동수와 가족의 삶을 그렸다. 마동수는 흥남 철수로 피란했지만 남편과 자식을 잃은 이도순을 부산에서 만나 두 아들 장세와 차세를 낳는다. 김 씨는 “돌아가신 내 아버지는 1910년 우리나라가 망해서 없어지던 해 태어났고, 나는 그 나라를 다시 만들어 정부 수립을 하던 1948년 태어났다”며 “이번 소설은 내가 살아온 시대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소설 속 마동수는 김 씨의 부친인 김광주 씨(1910∼1973)를 모티브로 형상화했다. 김광주 씨는 광복 뒤 언론사 문화부장으로 일했으며, 한국 무협지의 효시로 알려진 ‘정협지’(1961년)와 단편소설 등을 썼던 소설가다. 마동수와 김 씨는 만주 길림에서 의원을 운영하던 형이 의학 공부를 권유해 상하이로 건너갔고, 아나키스트 조직 등에 관여하면서 문예운동을 벌였다는 점에서 이력이 상당히 겹친다. 김훈 씨는 “마동수는 내 아버지와 그 시대 많은 아버지를 합성해 만든 인물”이라며 “중국에서 돌아온 그들은 크고, 몽롱하고, 가파른 말투를 사용하는 언어의 협객들이면서 현실에서는 뿌리 뽑힌 이들이었다”고 했다. 또 “그 시대 상하이에서 돌아온 이들이 한 말은 대부분 과장이고 허장성세였다”며 “아버지 역시 내가 보기에는 나라를 잃고 방황하는 수많은 유랑청년 중 하나였다”고 덧붙였다. 소설에는 말의 이미지가 많다. 주인공의 성이 마(馬)씨이고 소설 마지막 부분이나 표지에도 말이 등장한다. 김 씨는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면 늙은 말이 갈기가 눈을 덮은 채 힘없이 광야를 헤매다 터덜터덜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며 “아버지의 모습을 말에 투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설 제목에 대해서는 “공터는 역사적 구조물이 들어서지 않은, 집 사이의 버려진 땅으로 아버지가 살아온 시대를 비유했다”고 했다. 자신도 “계속 철거되는 가건물에서 살아왔다는 비애감이 든다”고 했다. 김 씨는 “이 땅에서 70년 가까이 살면서 우리 시대의 야만성과 폭력이 소름끼치게 무섭다”고 말했다. 그는 6·25전쟁을 소설에 담기 위해 당시의 신문을 읽었다고 한다. 김 씨는 “1·4후퇴 당시 고관대작들이 징발한 군용차 관용차에 응접 (가구) 세트와 피아노를 싣고 피란민 사이로 먼지를 날리며 남쪽으로 질주해 내려갔다”며 “이 같은 ‘갑질’이 악의 유습으로 지금까지도 내려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내 소설에 영웅이나 저항하는 인간은 나오지 않는다”며 “나나 부친이나 모두 시대의 참혹한 피해자”라고 말했다. 김 씨는 최근 정국에서 촛불집회와 탄핵반대 집회에 관한 물음에도 답했다. 그는 양 집회를 현장에서 관찰해 봤다고 한다. 그는 ‘태극기 집회’에 관해 “우리 세대는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가 안 되던 시절 사춘기를 보냈다. 상사 해외 주재원으로 가발을 수출하며 달러를 한국에 송금한 사람들이 내 친구들이고, 이들이 태극기 집회에 나간다”며 “이들이 집회에서 ‘우리가 쌓아온 것이 다 무너져 간다’고 한탄하는 건 기아와 적화(赤化)에 대한 두려움이 근원적인 정서가 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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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장집 교수 “다당제 등장이 촛불 성과… 中道 중심으로 경쟁하는 구도 필요”

     《 지난해 10월 29일 1차 촛불집회 이후 100일이 흘렀다. 촛불집회에 대한 찬반을 막론하고 한국 민주주의는 커다란 변화에 직면했다. 촛불은 무엇이었나? 광장의 에너지로 무엇을 개혁해 우리 사회의 새로운 구조를 각인해야 하는가? 학계와 문화계 인사 인터뷰 시리즈를 통해 촛불 100일과 이후 우리 사회의 길을 물었다. 》   “너무나 평범한 대선이 벌어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촛불 민심의 실망은 분명하다. 지금 보수 여당과 정부를 가리키고 있는 민심(民心)의 손가락질은 정권 교체 뒤 현 야당으로 향할 것이다.” 격동의 현대 한국 정치 연구에 평생을 바친 대표적 학자이자 현실 정치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해온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74).  촛불집회 100일을 앞두고 3일 서울 종로구 연구실에서 동아일보와 만난 그는 한국 민주주의의 앞날을 우려하고 있었다. 그는 “촛불이 제기했거나 잠재한 이슈와 현 정치권의 발언 사이에 굉장한 거리가 있다”며 “근본적 개혁을 함축하고 있는 촛불의 요구를 읽고, 그에 대응하는 모습을 정치권에서 발견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먼저 촛불집회를 평가해 달라. ‘촛불 혁명’이라는 표현도 있는데…. “권위주의의 복원 시도를 중단시키고 민주주의를 되찾았다는 점에서 그렇게 불러도 된다고 본다. 과거 민주화 투쟁과 달리 피를 흘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부분적으로 민주주의의 힘이기도 하다.” ―촛불집회를 이끈 동력은…. “정치적 분노뿐 아니라 사회, 경제적 불만이 깊숙이 깔려 있다. 성장을 가져온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을 실존의 차원에서 겪는 이들의 누적된 분노가 촛불의 동력이 됐다. 그런 이슈가 집회의 구체적 구호로 부각되지 않은 게 또 이번 촛불의 특징이다. 실체적 요구가 등장하면 분열될 수 있으니 일단 박근혜 대통령 탄핵, 퇴진으로 요구를 통일한 것이다. 시위대가 전략적으로 움직였다.” ―그런 분노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지금 정당이나 대권 주자들이 제시하는 어젠다, 개혁안, 정책을 보라. 너무나 평범하다. 현 야당이 선거에서 이기고 정권 교체가 됐다고 치자. 그 뒤에 무엇을 보여줄 수 있겠나. 촛불이 기껏 ‘최순실 농단’ 하나 해결하려고 온 나라를 들었다 놨을까.(선거 전 탄핵이 인용되고) 대선 정국이 펼쳐질 때부터 민심의 실망은 시작될 것이다.” 그의 연구실은 촛불집회가 매주 열린 광화문광장 인근에 있다. 넓지 않은 공간임에도 평소 성격을 보여주는 듯 깔끔했다. 양편 서가에 해외에서 발간된 정치학 서적이 가득했다. 말투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고, 사전에 전달한 질문지와 인터뷰 내용이 사뭇 달라졌음에도 준비된 답변처럼 정돈돼 있었다. ―뭘 개혁해야 하나. “1960, 70년대 형성된 ‘박정희 패러다임’, 곧 국가와 재벌의 연합을 해체해야 한다. 재벌은 국가와 결합해 여러 특혜 속에 경제를 주도했고, 반대급부로 권력에 ‘준조세’를 내는 등 상호의존적 동맹 관계를 만들어 왔다. 이 유착을 끝내고, 대기업은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정치 제도는 어떤가. “(우리 정치사의) 양당은 사실상 같은 패러다임에 머무르면서도 과도하게 이념 대립적이고 투쟁 일변도의 정치 행태를 만들어 왔다. 내용 없는 극단 투쟁을 한 거다. 촛불의 긍정적 효과 중 하나가 다당제의 등장이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는 4개 안팎의 정당이 온건, 합리적이면서 국정 운영 능력이 있는 센터(중도·中道)를 중심으로 경쟁하는 정치 구도가 필요하다.” ―좀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내게) 맘대로 정부 형태를 선택하라면 비례대표제로 운영되는 의회중심주의(의원내각제)가 최선의 정치 구조다. 양당제가 지속되면 분단 상황에서 양극화된 이데올로기 투쟁이 재연될 거다. 촛불 이전으로 돌아가는 거다.” ―최근 ‘결선투표제’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공동대표도 비슷한 주장인데 그를 염두에 둔 것인가. “아니다. 다당제를 전제로 한 말이다. 지금 현실적으로 개헌까지 하고 대선을 치를 수 없다. 당장 의회중심주의 구현이 힘들다면 프랑스식의 ‘준대통령제’나 다당제 상황에서 대표성을 높이기 위한 결선투표제가 차선으로 필요하다. (지금과 같은) 단순다수제는 양당제로 귀결된다. 물론 결선투표제도 대선이 2, 3개월 남은 상황에서 어느 세월에 선거제도 바꾸고 하겠느냐며 반대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현실은 그냥 이대로 간다고 본다.” ―그럼 개헌은 언제 해야 하나. “다음 정권에서 다 열어놓고 해야 한다. 이번 대선에 개헌 공약이 나오고 집권했을 때 정부가 중심이 돼 개헌한다든가, 대통령 임기를 마치지 않고서라도 하든가의 방식이 있을 것이다.” ―대통령 4년 중임제 도입은…. “그런 주장이 은근히 많은데 난 동의하기 힘들다. 대통령으로 집중된 권력구조를 혁파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실상 대통령 임기를 8년으로 늘리자는 것 아닌가.” 대권(大權) 주자들에 대한 평가가 궁금했지만 최 교수는 “정권 교체를 바랄 뿐이다. 후보들 간에 충분히 경쟁해야 할 시점에서 누군가를 편드는 듯한 인상을 주고 싶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 접근한 후보가 있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도 특유의 진중한 태도로 고개를 저었다. 대권에 대한 전망도 물었다. 우선 그는 “이번 선거는 여당의 궤멸 속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구조적으로 어드밴티지를 갖는(유리한) 선거”라고 했다.  ―보수층 민심이 결집해 이변이 연출될 가능성도 있지 않나. “가능성이 적다. 선거마다 보이지 않아도 ‘틀’이라는 게 있다. 그러나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는 정당 정치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좋은 보수 후보가 진보 후보와 비슷한 득표를 하기를 바란다.” ―지지율 1위인 민주당의 어깨가 무겁다. “야당이 배전의 노력을 통해 제대로 된 대안을 만들 사명이 있는데 아직은 부족하다. 사태의 본질을 꿰뚫고 실제 정책으로 만들 정치력과 결단력이 없다면, 집권한다 해도 더 큰 위기를 맞을 것이다.” ―국민의당이나 이른바 ‘중간 지대’는 어떻게 보나. “국민의당은 양당제 구조에서 온건 비판 세력으로 자기 위치를 정립하려는 의미 있는 시도를 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정당 기반이 약하다. 중간 지대는 양당 정치의 동요 과정에서 과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당장은 ‘중간 지대’가 누구를 대표하는지 정립이 안 돼 있다.” ―세대교체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좋은 문제 제기가 아니다. 교체는 연령의 문제가 아니다. 버니 샌더스(미국 민주당의 진보 정치인으로 올해 76세)도 있지 않은가.” ―정당이 당장 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무엇인가. “지금대로라면 대선 후보들은 작은 정책 대안을 모아 패키지 선거 공약을 내세울 것이다. 집권 뒤에는 결과적으로 좁은 분야의 전문가인 관료 지배적 형태가 나타나고, 이는 어느 정당이 집권해도 별 차이는 없을 거다. 지금처럼 폐쇄적이고 당파적으로 대선 캠프를 운영한다면 새로운 인적자원을 끌어낼 수 없다. 이것부터 달라져야 한다.”조종엽 jjj@donga.com·이지훈 기자}

    • 2017-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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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빌어먹을 입자’ 힉스, ‘신의 입자’가 되기까지

     지난해 중력파 검출 발표 전까지 최근 물리학계의 최대 성과는 역시 2012년 실험으로 힉스 입자가 발견된 것이다.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피터 힉스의 이름을 딴 힉스 입자는 우주 탄생 초기 다른 기본 입자들에 질량을 부여해 입자들이 원자를 형성하도록 했다. 우주를 지금처럼 만든 입자인 셈이다. 가설로만 존재하다가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존재를 입증했다. “원래 내가 생각한 별명은 ‘빌어먹을 입자’(Goddamn Particle)였는데, 편집자가 언어순화를 위해 damn을 뺐고…”(리언 레더먼) 힉스 입자에 다소 선정적인 느낌이 없지 않은 ‘신의 입자’(God Particle)라는 별명을 붙인 게 1993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이다. 저자인 레더먼은 미국 페르미연구소 소장을 지냈고, ‘뮤온 중성미자’ 관련 연구로 1988년 노벨상을 받은 미국의 실험물리학자다. “신의 입자라는 별명은 떼돈을 벌고 싶어 하는 출판사의 욕망에 제가 동조한 거지요.”(2001년 노벨 재단과 레더먼의 인터뷰에서) 책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로부터 뉴턴, 패러데이, 러더퍼드를 거쳐 20세기 양자역학과 힉스 입자까지 2600년에 걸친 물리학의 역사를 풀어낸다. 노벨상 메달을 경매에 부치기도 한 괴짜 레더먼과 베테랑 과학저널리스트인 딕 테레시의 입심이 만만찮다. “반양성자는 물고기처럼 양식할 수 없고 철물점에서 팔지도 않는다”처럼 위트 있는 문장이 ‘입자 가속기는 어떻게 작동할까’ 하는 주제가 가져다주는 두통을 덜어주고, “빔의 지름은 콜라를 마시는 스트로 굵기에서 머리카락 굵기로 가늘어진다”는 표현에서 보이듯 가능하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쓰였다. “레더먼: …쿼크와 렙톤은 물질을 이루고 광자와 W, Z입자, 중력자는 힘을 매개합니다. 그런데 현대물리학에서는 힘과 입자의 구별이 확실치 않아요. 둘 다 입자로 간주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거든요. 데모크리토스: 어쩐지 내 이론이 더 낫다는 느낌이 드는군. 내 이론은 복잡하고 자네는 단순함을 추구한다더니, 결국 내 이론보다 훨씬 복잡하잖아.”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입자’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와 저자의 가상 대화 형식을 빌린 부분이다. 저자도 ‘표준이론’이 복잡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모양.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등 우주의 근본을 탐구한 철학자들과 현대물리학의 유사점이 놀랍다. 저자가 이론을 검증해 생명을 불어넣지만 대중적으로는 그보다 덜 알려지는 경향이 있는 실험물리학자의 비애를 털어놓는 부분은 웃음이 난다. 돼지(실험물리학자)가 애써 찾은 송로버섯(새로운 발견)은 농부(이론물리학자)의 것이 된다는 것. “이론물리학자는 해가 중천에 떠야 연구실에 나타나고…, 실험물리학자들은 늦게 출근하는 법이 없다. 비결은 간단하다. 아예 집에 가지 않으니까!” 그들은 또 실험을 위해 10t짜리 기중기가 머리 위를 오락가락하는 곳이나 방사능 위험 지역 가까이에서 일한다고. 한국 과학자들도 교양서를 심심찮게 내지만 이 책처럼 두툼하고 난해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책장이 비교적 쉽게 넘어가는 책은 별로 많지 않다. KAIST에서 이론물리학을 전공하고 30년 가까이 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친 역자의 번역도 흠잡을 데가 없다.조종엽기자 jjj@donga.com}

    • 2017-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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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통한 北인권 고발은 이 시대 작가들의 임무”

     “지원물자도 지원물자 나름이야. … 많든 적든 일단 사랑의 선물이라고 이름 붙은 걸 먹으면 그 값을 몇 곱절 해야 되거든. 글쎄 먹어 없어지지 않는 옷이나 물건 같은 거라면 받는 게 낫지. 나중에 장마당에 내다 팔아도 돈이 되니까.” 2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탈북 작가 도명학 씨(52)가 자신의 소설 ‘잔혹한 선물’을 낭독했다. 북한의 소위 ‘돌격대 공사’가 얼마나 잔혹하게 이뤄지는지를 세밀하게 묘사한 소설이다. 도 씨는 2006년 탈북하기 전 반체제작품을 쓴 혐의로 3년간 투옥됐다. 북한 인권을 소재로 남한 출신 작가 7명과 탈북 작가 6명이 쓴 소설을 모은 소설집 ‘금덩이 이야기’(예옥)가 최근 발간됐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후원으로 2015년 ‘국경을 넘는 그림자’에 이어 두 번째 발간이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도 씨는 “무거운 이야기들이지만 때로 해학적인 부분도 넣어 ‘슬픈 재미’를 주려 했다”고 말했다. 소설집의 표제작은 맏딸은 굶어 죽고, 작은 딸은 실종된 상황에서 아내를 남겨둔 채 정치범관리소에 수용된 노인의 비극적인 사연을 그렸다. 탈북 작가 이지명 씨(64)는 요덕 수용소에 수용됐던 탈북자 이영국 씨의 증언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다. 이 씨는 “북한에서는 김 씨 일가를 찬양하는 희곡을 써야 했다”며 “북한의 참혹한 인권 실태를 문학을 통해 한국은 물론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감에 용기와 정열이 솟구친다”고 말했다. 아직은 주목을 덜 받지만 탈북 작가들의 창작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지명 씨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국제PEN 망명북한펜센터가 문학지 ‘망명 북한 작가 PEN문학’을 2013년부터 매년 내고 있다. 개인과 사회단체 후원으로 비용을 충당한다.  이달에는 영문 번역판도 낸다. 정부 후원은 없느냐고 묻자 이지명 씨는 “없다. 대한민국은 참 멋있는 나라여서…”라며 웃었다. 남한 출신인 소설가 이경자 씨(69)는 탈북자에 관한 소설을 쓰려는 소설가와 일종의 취재원이 된 탈북자의 이야기를 담아 ‘나도 모른다’를 썼다. 이 씨는 “북한 인권과 탈북자들의 고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어떻게 담보되고 슬픔의 뿌리는 무엇인지 드러내는 것이 작가로서 나의 임무”라고 말했다. 이번 소설집을 기획한 방민호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52)는 “인권은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아야 할 인간의 기본 선(線)”이라며 “탈북 작가 층이 형성되고 있는 오늘날 북한 인권을 문학으로 담는 게 문학인 된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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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와 추억을 남기고 떠난 시인 오규원 시인 10주기 행사 다채

     ‘두두시도 물물전진(頭頭是道 物物全眞·사물 하나하나가 전부 도이고 사물 하나하나가 전부 진리라는 뜻)의 세계’를 추구했던 오규원 시인(1941∼2007)의 10주기를 맞아 추모시집이 발간되고 다양한 추모행사가 열린다. 오 시인이 교수로 재직했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의 제자 등이 구성한 ‘오규원 10주기 준비위원회’는 시인의 기일인 2일 추모 시집 ‘노점의 빈 의자를 시라고 하면 안 되나’를 발간한다. 이수명, 김행숙 씨를 비롯한 시인 48명이 ‘버스 정거장에서’ 등 오 시인의 시 4편 중 한 편을 모티브 삼아 쓴 시를 묶었다. 문학과지성사는 오 시인의 첫 시집 ‘분명한 사건’을 복간한다. 오 시인이 찍은 사진 56점을 모은 ‘무릉의 저녁’(눈빛)도 발간된다. 갤러리 류가헌(서울 종로구 자하문로)은 26일까지 특별전 ‘봄은 자유다 마음대로 뛰어라’에서 이 사진들과 오 시인의 육필 등을 전시한다. 2일 오후 6시에는 류가헌에서 시 낭독회를 연다. 오규원 시인은 경남 밀양 태생으로 1968년 ‘현대문학’에 시 ‘몇 개의 현상’이 추천완료돼 등단했다. ‘날(生·생)이미지’의 시 철학을 바탕으로 날것 그대로의 현상을 옮기는 시를 썼다. 문장사 대표를 지내면서 ‘김춘수 전집’ 등을 냈고, 1982년부터 20년 동안 서울예대 문창과 교수로 일하며 많은 문인을 길러냈다.조종엽기자 jjj@donga.com}

    • 2017-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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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절망의 시대 극복할 희망의 메시지 던져”

     독일에서는 1770년을 ‘위대한 탄생의 해’라고 부른다. 베토벤과 헤겔, 그리고 프리드리히 횔덜린(∼1843)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횔덜린은 독일 현대시를 열어젖혔고, 유럽 현대시의 선구자로 불리기도 하지만 난해함 탓에 대중적이진 않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가 1977년 낸 비평서 ‘궁핍한 시대의 시인’의 제목을 횔덜린의 시구에서 따왔고 김지하 시인이 ‘횔덜린을 읽으며/운다’고 노래한 것을 비롯해 우리 현대시에도 적지 않게 영향을 줬다. “밤은 깜깜하지요. 그러나 다음 날이 새는 것을 기다리는 시간이고, 생각할 기회를 주는 게 밤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역사의 혼란도 미래를 예비하는 과정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절망하지 마라’ ‘고통은 우리를 죽이지 않는다’ ‘미래에 대한 신뢰를 가져라’. 횔덜린의 시는 이런 메시지를 던집니다.” 국내 횔덜린 연구의 선구자인 장영태 홍익대 명예교수(73·전 총장)가 그의 시 300여 편을 처음으로 모두 번역해 ‘횔덜린 시 전집 1·2’(책세상)를 냈다. 장 교수는 3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횔덜린의 시는 구절구절 번득이며 우리를 깨치게 만든다”고 했다. 독일 남부 라우펜의 수도원 관리인의 아들로 태어난 횔덜린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와 나폴레옹 전쟁을 겪은 공화주의자였다. 당대에는 혹평을 받았지만 20세기 들어 주목받았다. “횔덜린은 하늘에서건 땅에서건, 집단이건 개인이건 간에 지배가 없는 세상을 바란 것 같아요. 알프스 산맥이나 라인 강처럼 거대한 자연을 통해서 말하는 것은 눈앞의 현실에 매이지 말라는 것, 역사조차도 자연에 의존해 진전돼야 한다는 것이지요.” 장 교수는 “최근에도 ‘위대한 시인은 수원(水源) 같은 이로, 역사가 바뀌고 요동치는 국면을 대변하고, 이름 짓는 사람’이라며 호머, 보들레르와 함께 횔덜린을 꼽는 한 시인의 글을 읽었다”고 말했다. 시 번역은 언어의 운율이 희생되는 탓에 ‘불가능한 작업’이라고들 한다. 장 교수는 ‘의역하고자 하는 욕망을 억제하고 원어에 순응한다’는 원칙을 지키려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의 맛은 더욱 살아났다. 가령 ‘파트모스―홈부르크의 방백에게 바침’의 첫 구절은 ‘신은, 가까이 있지만 붙잡기 어렵다’라고 풀어쓰지 않고 원어의 순서를 살려 ‘가까이 있으면서/붙들기 어려워라, 신은.’이라고 옮겼다. 판독상의 학술적 논란을 정리한 ‘도이처 클라시커’사의 전집을 번역 저본으로 삼았고, 보통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석과 해설을 담았다. 장 교수는 “횔덜린은 한때 ‘말하려는 것이 있어도 못 하는 이들을 대신해’ 썼지만 시를 선동의 도구로 삼은 것은 아니다”라며 “고대 그리스처럼 독일의 문화가 꽃피기를 바라는 희망을 담았다”고 말했다. 횔덜린은 사랑하던 이가 갑자기 죽은 뒤 32세 때부터 정신착란 증세로 평생 고통받았다. 장 교수는 횔덜린 최후의 시들은 수묵화처럼 담백하다고 했다. “좋아하는 시구요? 너무 많은데…. ‘순수한 원천의 것은 하나의 수수께끼./노래 역시 그 정체를 밝힐 수 없다. 왜냐하면/…’(‘라인강―이작 폰 징클레어에게 바침’에서) 어때요? 원천은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인간은 궁극적으로 그에 도달할 수 없다는 얘기예요. 시도 마찬가지죠. 인간이 뭐든 다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은 오만입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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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추→밤→배→감? 차례상 과일, 종류-순서 따로 없었다

    《 “조율이시(棗栗梨枾·대추 밤 배 감)가 맞아, 조율시이가 맞아?” 하루 지나면 설이다. 누군가의 정성과 노력이 담긴 차례상이지만 그 앞에서는 심심찮게 진설(陳設·제사 때 법식에 따라 상을 차리는 것)법에 대한 집안 어른들의 논쟁이 벌어진다. 가가례(家家禮)라고 해 ‘도랑을 건너면 다르다’는 게 진설법이다. 그중 가장 의견이 분분한 게 차리는 사람 입장에서 제일 앞줄인 ‘과(果)’다. 》  어떤 집은 대추 밤 배 감 순으로 놓지만 어떤 집은 감과 배가 바뀌고, 기타 과일을 그 뒤에 놓는 집이 있는가 하면 대추-밤과 배-감 사이에 잡과를 놓는 집도 있다. 물론 홍동백서(紅東白西·붉은 과일은 동쪽, 흰 과일은 서쪽에 놓음)를 따르기도 한다. 국가장에 조언하기도 했던 관혼상제 전문가 김시덕 박사(55·대한민국역사박물관 교육과장)로부터 차례상 차림에 관한 얘기를 20일 들어봤다. “과 줄을 순서대로 조율시이로 쓴 가장 오래된 기록은 언제 것일까요? 16세기? 18세기?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최고(最古)는 겨우 1919년 것이에요.” 김 박사는 지난해 ‘국학연구’에 이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해당 기록은 경북 경산의 유학자 정기연 선생(1877∼1952)이 1919년 놀이로 진설법을 익히도록 창안한 습례국(習禮局)의 진설도다. 그럼 조선의 유학자들이 펴낸 수많은 예서(禮書)에는 어떻게 돼 있을까? “고려 말 들어온 주자의 ‘가례(家禮)’ 이후 모든 예서가 ‘과, 과, 과, 과’입니다. 과일을 6종류 또는 4종류 올린다고 돼 있을 뿐이지 구체적으로 어떤 과일을 놓아야 할지 정하진 않았다는 얘기예요. 조선 후기 학파와 무관하게 사용된 예서 사례편람(四禮便覽)도 마찬가지죠.” 김 박사는 “19세기 중반 쓰인 ‘금곡선생 문집’에 집안 제사에 조율시이를 차린다고 나오지만 이게 늘어놓는 순서는 아니다”며 “이전까지는 이것저것 집에 있는 과일로 차리다가 19세기 들어 이 4종류 과일이 제사상, 차례상 차림으로 정착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것도 단지 조선에서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었던 까닭이다. “대추, 밤, 감의 특징이 뭘까요. 말리거나 묻어 오래 보관할 수 있다는 거예요. 쉽게 말해 벽장 속에서 꺼낼 수 있는 과일을 차린 거지요.” 좌포우해(左脯右해)니 두서미동(頭西尾東)이니 하는 방식이 집집마다 퍼진 것은 오히려 1970년대 이후일 가능성이 있다고 김 박사는 본다. “1960년대부터 학자들이 전국을 돌며 제사 상차림을 조사했어요. ‘집안에 이러이러한 차림법이 있습니까’ 하고 물으면, 없어도 이후로는 그렇게 차릴 수 있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조사자로부터 ‘역전파’가 된 거죠.” 김 박사는 “주자의 가례도 기존 중국 예서의 논리를 과감히 뒤집은 책”이라며 “복잡한 진설법에 구애받지 말라”고 당부했다. “조리된 음식을 사서 차례상에 올려도 되느냐는 질문도 많이 받아요. 조선시대 종부(宗婦)들이라고 다 직접 음식을 했을까요? 하인들이 다 했죠. 음식을 주문해서 상에 올리는 것도 정성입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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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학은 우주와 삶에 대한 경외감 높여주는 최선의 대답”

    《최근 자서전이 번역 출간된 것을 계기로 내한한 세계적 석학 리처드 도킨스(76)가 25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서 진화심리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46)와 공개 대담을 했다. ‘무신론의 기수’로 불리는 도킨스는 청중 200여 명 앞에서 장 교수의 물음에 유머를 섞어가며 답했다.》  ―지구 온난화나 생태계 파괴 등 과학기술로 생겨난 문제를 과학이 풀 수 있다고 보는지. “과학은 나쁜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지만 반대로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도 알려준다. 진리 탐구를 멈춰서는 안 된다.” ―과학은 삶의 실존적 조건과 의미에 대해서는 침묵하는가. “그처럼 근본적이고 심오한 질문에 답변하는 건 간단치 않다. 그러나 과학이 못 하면 다른 어떤 학문이나 종교도 답하지 못한다. 우주의 탄생에 대해 물리학은 최선의 질문과 답을 제공하고 있다. 도덕적 딜레마를 푸는 데도 과학적 원칙이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과 행복을 느끼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알게 된다고 해서 사랑하면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런 감정을 이해하려는 과학의 노력이 사랑과 행복의 가치를 손상시킨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있다. 진화에서 감정이 갖는 의미를 이해한다고 감정의 가치가 훼손되는 건 아니다. 수만 년을 날아온 별빛이나 화석을 통해 수백만 년 전의 생물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건 우주와 삶에 대한 경외감을 증폭시킨다.” ―당신의 여러 저서 중 찰스 다윈에게 딱 한 권 선물할 수 있다면 무엇을 고를 텐가. “‘이기적 유전자’다. 다른 책은 사실 다윈이 다 알고 있는 이야기다. ‘이기적…’은 (다윈이) ‘나의 이론이 다른 식으로 표현됐구나’ 하고 생각하실 게다.” 이날 청중의 반응은 뜨거웠다. 도킨스는 어린 시절에 무슨 장난감을 갖고 놀았느냐는 주부의 질문에 “기차요! 그리고 꼭두각시 인형”이라고 답하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외국에서 자랐다는 청년이 “‘만들어진 신’을 읽고 무신론자가 된 이후 주변 (종교인과의) 관계가 멀어졌는데 (회복시킬) 방법이 있느냐”고 묻자 “매우 슬픈 질문”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그는 “특히 미국에서 ‘도킨스재단’(도킨스가 세운 재단으로 학교의 지적설계론(창조론) 교육을 반대하는 활동 등을 함)으로 그런 고민을 호소하는 편지가 많이 온다”며 “우주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의견의 차이가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과 우정을 손상시킨다는 건 비극이다. 관용이 중요하다”라고 답했다. ―동물학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과정은…. “옥스퍼드대 학부생 시절 2학년부터 일대일 튜터링(개인지도) 시스템에 참여하게 됐다. 튜터(지도선생)가 매주 1시간 논문에 관해 학생과 논쟁하고 영감을 준다. 튜터가 준 논문 목록을 들고 도서관에 가서 일주일 동안 읽는다. 그건 교과서에서 지식을 그냥 가져오는 것과 다르다. 노벨상을 받은 니콜라스 틴베르헌이 내 튜터였는데 그게 전환점이었다.” ―연구뿐 아니라 과학적 세계관을 전파하는 커뮤니케이터 역할도 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그런 노력을 폄훼하기도 하지 않나.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미국 국립과학자협회 회원이 못 된 것도 그런 질투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세이건이 (대중에게) ‘별을 보라’고 한 뒤 미국의 우주 탐험 계획이 나왔다. 대중과의 소통이 과학자의 책임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종교의 미래는 어떻게 전망하나. “더 나쁜 종교, 덜 나쁜 종교가 있지만 나는 종교가 없어지는 것을 보기를 원한다. 내 생전이 아니라면 내 손자 세대에라도. 그러나 미국에서는 무신론에 반대하는 거센 역풍이 불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종교 관련 인사가 나한테 좋은 얘기 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웃음)” ―과학자, 저술가로서 앞으로의 계획은….(청중) “어린이를 위한 책을 쓰려고 한다. 밤낮, 계절, 지진 등에 대해 신화에서 과학으로 이어지며 답하는 책이다. 우주에서는 인간의 삶이 어떤 것일지에 대한 책도 쓰려 한다. 생명은 지구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이성의 결합에 의한 번식은 계속될까, 지능과 언어는 다른 행성에서도 독립적으로 진화해 발생할까…, 이런 것들이다.”조종엽기자 jjj@donga.com ○ 리처드 도킨스는…1941년 영국의 식민지이던 아프리카 케냐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대에서 생물학 교수로 일하며 동물행동학 분자생물학 집단유전학 발생학을 두루 연구하고 성과를 냈다. 현재 같은 대학 ‘뉴칼리지’의 펠로로, 세계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대중적 과학 저술가다. 1976년 생명체는 유전자를 운반하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책 ‘이기적 유전자’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이후에도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논증한 ‘만들어진 신’을 출간했다. ‘눈먼 시계공’ ‘지상 최대의 쇼’를 비롯해 저서 대부분이 국내에 번역돼 있다.}

    • 2017-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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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0년대 시인들은 시대의 그림자와 공습하듯 맞서 싸우며 새 시대 열었다”

      ‘네 검은 날개에 붉은 해를 싣고 올 날을 위하여’(백무산 시 ‘까마귀’에서)  ‘벌판 한군데 눈이 꿈틀거리더니/새가 움터 날아오른다/그 자리가 뻥 뚫린다/…/뻥/뻥/뻥/뚫린다’(황인숙 ‘봄’에서) 각각 시집 ‘만국의 노동자여’(1988년)와 ‘슬픔이 나를 깨운다’(1994년)에 실린 시다. 발간 시점은 불과 6년 차이지만 두 시구 사이의 거리는 아득하다. 새가 ‘붉은 해’를 내려놓고 ‘뻥뻥’ 자국을 남기며 발랄하게 날아오르는 일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1990년대 시 문학사를 처음으로 본격 조명한 ‘공습의 시대’(문학동네)를 최근 낸 시인이자 평론가 이수명 씨(52)를 24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그는 “1990년대 시는 단순히 앞뒤 시대 사이에 끼인 과도기가 아니다”라며 “당대 시인들은 이전 시대의 거대한 사유와 ‘공습하듯’ 맞서 싸우며 21세기의 자유로운 인식과 새로운 감각을 창출해 냈다”고 말했다. 1980년대는 민중시와 실천을 중시하는 리얼리즘 시가 지배적이었다. 이 씨에 따르면 억압적 세계와 맞서 시로 투쟁을 벌인 ‘거인’들의 시대다. 21세기는 정체성과 고정된 의미를 거부하는, 부유하는 ‘유령’들의 시대다. 1990년대는 거인과 유령 사이에서, 이도저도 아닌 것으로 치부돼 왔다. 1990년대의 특정 시인이나 경향에 집중한 부분적 연구는 있었지만 주요 시인들을 통해 시대의 정수를 분석하고 제시한 책은 찾기 힘든 것도 이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날 아침 나는 학교에 가지 않았습니다/우체국 뒷길을 맴돌다/수채구멍 속에서 나온/개구리 한 마리를 밟아 죽이고/집으로 돌아왔습니다/…/그리고 나는 불을 질렀습니다”(박상순, ‘빵공장으로 통하는 철도로부터 4년 뒤’에서) 책은 1990년대 초반 발표된 이 시가 개인과 공동체와의 긴장을 표현한 것이라고 봤다. 이 씨는 “정치적 해방으로 개인이 자연스레 출현했다는 인식은 2000년대의 상황을 근거로 막연히 역산한 것에 불과하다”며 “시인들은 공동체의 억압적 측면과 대결하면서 지금의 개인을 찾아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자유로운 발화(진이정 시인), 세계나 체제로 묶이지 않는 발랄한 감각(황인숙), 중심에 복속되지 않는 인식(최정례) 등이 조명된다. 시인들은 점조직처럼 움직였고, 전투는 고독했다는 게 이 씨의 말이다. 실제로 책이 다루는 13권 시집의 시인들은 대체로 낯설다. 김기택 함성호 황인숙 시인을 제외하면 장경린 노태맹 김언희 함기석 강정 서정학 허연 등 지금까지 비교적 덜 주목받은, “그 가치만큼 평가받지 못했던”(이수명)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 씨 자신도 1990년대에 시집 2권을 냈다. “그때는 존재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고 무엇과 대결하는지도 잘 몰랐었지요. 지금 와서 보니 그게 시대의 그림자였구나 싶은 게지요.” 이 씨는 기회가 닿는다면 2000년대 시문학사도 쓰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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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에 시집온 몽골공주들, 남편 편들어 元관리와 맞섰다

     고려 공민왕의 반원 정책을 지지했던 정치적 조력자이자 죽은 뒤에도 공민왕이 초상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반면 1274년 10월 고려 왕실에 시집온 첫 번째 몽골 공주인 제국대장공주(1259∼1297·齊國大長公主)는 통상 몽골의 이익을 대변했던 것으로 이해된다. 고려 내에서 몽골 공주의 정치적 위치는 어떤 것이었을까. 이명미 서울대 박사(사진)는 이화여대 사학과와 이화사학연구소가 24일 여는 학술대회 ‘13∼14세기 몽골과 동아시아 교류사’에서 이에 주목한 연구를 발표한다. ‘고려 왕실에 하가(下嫁)해 온 몽골 공주들: 그 정치적 위치와 고려-몽골 관계’라는 제목의 발표문에서 이 박사는 “몽골 공주와 몽골 조정을 대리하는 다루가치와의 갈등으로 볼 때 몽골 공주로서 갖는 권리와 권력은 상당 부분 남편이자 황제의 부마인 고려 왕에게 직결돼 있었다”고 밝혔다. 충렬왕과 혼인한 제국대장공주(몽골 이름 쿠틀룩케르미쉬·忽都魯揭里迷失) 역시 달리 볼 만한 점이 있다고 이 박사는 분석했다. 고려에 시집온 다른 몽골 공주들이 당시 몽골 황제와 3∼8촌이었던 데 비해 제국대장공주는 원 세조 쿠빌라이의 딸이어서 위세가 가장 강성했던 공주다. 이 박사는 몽골이 고려 내정에 간섭하기 위해 파견한 다루가치 흑적(黑的)과 제국대장공주의 갈등에 주목했다. 흑적은 고려 부임 7개월 만인 1275년 7월 몽골로 돌아가 황제에게 고려에 대해 이것저것 일러바쳤고, 이에 따라 원 세조는 제후국인 고려 왕자의 호칭, 관직명이 황제 국가와 같다는 문제 등을 지적하는 조서를 보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제국대장공주는 흑적의 귀국을 만류했고, 그럼에도 흑적이 돌아가자 그가 황제에게 고려를 헐뜯는 걸 우려해 수하를 보내 흑적의 움직임을 감시했다. 몽골 공주지만 고려 왕실의 편에 선 듯한 행보를 보인 것이다. 이 박사는 “몽골 공주는 황제의 입장을 바로 대리한다기보다 몽골의 분봉(分封) 체제에서 제국에 대한 자기 몫의 권리와 권력을 갖는 존재였다”며 “고려 왕비가 된 공주 역시 몽골 중앙 조정과 부딪히면서 남편인 고려왕의 권력이 어그러지는 것을 막기도 했다”고 설명했다.조종엽기자 jjj@donga.com}

    • 2017-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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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한권에도 꽃 한송이 피우듯 심혈”

     22일 별세한 박맹호 회장의 주변인들은 그를 ‘영원한 청년’으로 기억했다. 스마트폰이 노인들에게 대중화되기 전 박 회장은 “회장님이 이게 뭐가 필요하시느냐”는 말에도 고집을 부려 스마트폰을 산 뒤 매일 사용법을 익혔다고 한다. “젊은 세대와 소통하려면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흥행 영화, 오페라뿐 아니라 평소 즐기지 않는 드라마도 화제가 된다면 억지로 봤다는 것이다. 민음사에서 오래 일했던 직원은 “박 회장은 문화에서 항상 첨단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박맹호 민음사 회장의 별세 소식에 평소 가깝게 지내온 문인 등 문화계 인사와 지인들은 이날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하며 고인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영원한 청년은 항상 곁에서 따뜻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큰형’이기도 했다.  ‘삼국지’를 민음사에서 냈던 소설가 이문열 씨(69)는 박 회장을 37년 전부터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꼭 만나며 교분을 나눴다고 했다. 이 씨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잘 판단이 안 서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 여러 번 박 회장께 충고를 구했다”며 “사려 깊고 생각이 반듯한 분이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출판계에 박 회장만 한 분이 다시 나오려면 오래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권영빈 KBS 교향악단 이사장(74·전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은 민음사 사무실이 서울 종로구 청진동에 있던 때를 떠올렸다. 당시 잡지 ‘세대’의 편집자였던 권 이사장은 ‘한국의 시인선’의 표지 장정을 거들면서 박 회장을 만났다. 권 이사장은 “당시 민음사 사무실은 고은 시인, 김승옥 소설가 등이 모이는 문인과 예술가의 사랑방이었다”고 했다.  그는 “박 회장은 책 한 권에도 기획부터 장정까지 심혈을 기울여 꽃을 한 송이 피우듯 냈다”고 했다. 민음사 계간지 ‘세계의 문학’ 창간 당시 편집위원으로 일했던 문학평론가 유종호 씨(82·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는 “기획력이 뛰어났고 디자인 감각이 있어서 책을 만드는 데도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냈다”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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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정보는 어떻게 인류를 변화시켜왔나

     서양도 파발마와 전령으로 급한 소식을 전했고, 기껏해야 봉화 정도가 있던 시대에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이미 북소리로 일상 언어를 전했다. 자음과 모음이 사라진 ‘둥둥둥’ 소리로 어떻게 말을 전했을까. 비밀은 성조의 등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아프리카인들의 언어에 있었다. 북소리의 고, 중, 저로 말의 성조를 표현하면 사람들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던 것이다. 다만 너무 짧게 표현하면 성조가 비슷한 다른 말과 헷갈리기 때문에 쉬운 말도 복잡하게 했다. ‘무서워하지 말라’ 대신 ‘입까지 올라온 심장을 제자리에 돌려놓으라’는 식이다. 북으로 전달하는 메시지는 말로 전달하는 것보다 8배나 길어야 했다. 1949년 ‘아프리카의 북’을 펴낸 영국인 선교사 존 캐링턴은 같은 사실을 수학적으로 표현한 ‘하틀리의 공식’을 알게 된다. 일정한 양의 정보를 전달할 때 기호의 종류가 적을수록 더 많이 전송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는 북’은 사실상 모스 부호와 원리가 동일하다. 모스 부호는 말이 아니라 알파벳을 표현한다는 점만 다르다. 점과 선, 즉 0과 1로 모든 정보를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은 정보의 역사에서 분기점이 된다. 정보통신기술(ICT)을 통한 연결과 융합으로 4차 산업혁명이 일어나 우리의 일상을 바꾸게 될 것이라는 예측이 현실화되고 있는 요즘이지만 ‘정보’는 여전히 전문가의 영역으로 느껴진다. 책은 정보의 역사를 대중적으로 다뤘다. 정보 이론의 기초를 확립한 사람은 미국의 응용수학자이자 컴퓨터과학자인 클로드 섀넌(1916∼2001)이다. 그는 1949년 논문 ‘커뮤니케이션의 수학적 이론’을 통해 정보의 양을 측정하는 단위로 ‘비트(bit)’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그의 이론은 정보와 불확실성, 정보와 엔트로피, 정보와 카오스를 잇는 다리를 놓았다. 책의 부제 ‘인간과 우주에 담긴 정보의 빅 히스토리’에서 알 수 있듯, 정보의 역사는 통신의 역사 이상이다. 수학, 암호, 언어, 심리, 철학, 유전, 진화, 양자역학을 정보라는 틀로 바라볼 수 있다. 우주가 정보로 해석되고, 생명도 DNA라는 정보를 전달하는 기계라는 점을 고려하면 정보의 역사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인 셈이다. “바벨의 도서관이 모든 책을 소장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첫 느낌은 주체할 수 없는 행복이었다. 모든 개인적이거나 세계적인 문제의 명확한 해결책은 도서관에 있는 육각형 진열실들 중 어딘가에 있었다.” 저자는 보르헤스의 단편 ‘바벨의 도서관’을 인용하며 그에 관한 성찰로 책을 끝맺는다. 그 귀중한 책들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다면 무슨 소용일까, 이미 모든 것이 쓰였다면 존재는 무슨 의미가 있는가. “우리는 모두 바벨의 도서관의 이용자이면서 사서이기도 하다. 모든 것은 아직 쓰이지 않았고, 우리는 도서관의 서가를 뒤지거나 재배치할 것이다.” 저자는 ‘나비 효과’라는 말을 대중적으로 알린 저서 ‘카오스’를 썼던 미국의 저명 과학 저널리스트다. 방대하면서도 깊이 있는 내용을 명료한 문장으로 풀었다. 번역 감수를 맡은 김상욱 부산대 물리교육과 교수는 “정보과학 대가들의 생각은 세상의 모든 사고와 논리는 정보 처리에 불과하며, 정보는 수로 나타낼 수 있으므로 사고와 논리는 곧 계산이라는 데 이른다”며 “책은 정보의 어떤 측면이 세상에 변화를 일으켰는지 보여준다”고 했다.조종엽기자 jjj@donga.com}

    • 2017-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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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실과 부닥치며 내공 쌓은 50대, 기존정당 탈당해 대선 새판 짜야”

     “광장의 민의는 새로운 문법의 정치와 접속하는 걸 원하고 있다. 정치의 세대교체를 통해 시대를 바꿔야 한다.” 18일 한국정치학회·사회학회 주최 시국 대토론회에서 “60대 이상 정치인은 조건 없이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던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19일 오후 서울대 연구실에서 진행된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50대 연합 기수론’을 다시 강조했다. 송 교수는 이날 “세대 경험은 정치인의 중대한 결단에 반드시 작용한다”며 “60대 이상의 세대는 감각의 한계 탓에 4차 산업혁명 등으로 급변하는 세상에서 신세계를 열 능력이 없다”고 말했다. 그가 대안으로 주장하는 50대 정치인들은 대부분 구(舊) ‘386세대’다. “그 세대는 청년기에 책을 덮고 현실을 몸으로 체험한 세대로 천둥벌거숭이처럼 원초적인 면이 있었고, 무르익지 않았는데 정권을 잡아 서툰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라면서도 “그로부터 10여 년 동안 현실과 부닥치며 내공을 쌓고 세련돼졌다”고 했다. 그는 대선 관련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로 60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출마가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50대 주자들이 소속 정당을 뛰쳐나와 함께 기존 정당과 대적하는 신선함을 보여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을 제외한 정당들은 지향과 기반이 뚜렷하지 않은 ‘월세 정당’에 불과해 강자에 맞서 대선의 새로운 판을 짜야 승산이 있다는 설명이다. 송 교수는 안희정 충남도지사와 남경필 경기도지사를 50대의 중심 인물로 꼽으면서 문 전 대표 중심의 판세를 바꾸지 않으면 세대교체가 어렵다고도 했다. “안 지사는 이후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고 해도 문 전 대표가 당내에 견고하게 다져놓은 ‘성곽’을 넘어설 수 없다.” 송 교수는 특히 문 전 대표에 대해 비판적인 것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대패(大敗)라는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고, 야당에서 오래 생존한 조직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과거의 언어에 머무르고 있어 갑갑하다”고 말했다. 그는 “문 전 대표의 말은 미래의 씨앗이 보이지 않는 ‘도라지 위스키 시대’의 말 같다”고도 했다. 세간의 말이 많아 판단 유보라고 했던 이재명 경기 성남시장에 대해서는 “검증이 안 됐고, 포퓰리즘을 유발할 수 있다”고 했다. 송 교수는 전날 토론회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전 상임공동대표를 언급하지 않은 것에 대해 “안 전 대표는 과거에 비해 정치력은 성장했지만 상징적 자원은 오히려 잃었다”며 “그 갭(격차)을 메울 설득력 있는 정책과 말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신랄한 촌평도 이어졌다. “정치력이 없다. 대선은 70, 80%는 자신의 힘으로 돌파해야 하는 것인데 지지자들이 열광할 만한 철학을 단 한 번도 보여주지 못하고 오히려 스스로 함정에 빠지고 있다. 설 전까지 새로운 언어를 들려주지 못한다면 반 전 총장은 사실상 끝이다.” 25일 기존 칼럼과 새로 쓴 글을 묶은 신간 ‘촛불의 시간’을 내는 그는 “‘군주의 시간’이 지나고 ‘시민의 시간’이 찾아왔다. 50대 주자들이 무정형인 광장의 에너지에 형태를 부여할 수 있는 정치적 비전을 발휘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학문 영역을 넘어 이례적으로 현실 대선 주자를 구체적으로 촌평한 것에 대해 “토론회에서 학자들이 원론적인 논의를 하는 건 당연하다”며 “하지만 지금 시국에서는 진짜 필요한 ‘센’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하는 것도 학자와 지식인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이지훈 easyhoon@donga.com·조종엽 기자}

    • 2017-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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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언제나 새로운 글로 세상을 밝혀주길”

     “오늘의 영예는 시작점에 불과하고 앞으로 계속 시험대를 마주하겠지요. 그 앞에서 좌절하거나 회의에 빠지지 않고 문학의 소용(쓰임새)에 대한 답을 찾는 길을 계속 걷겠습니다.”(김녕 씨·문학평론) 글쓰기의 길에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이정표를 세운 당선자들은 물이 가득 찬 큰 양동이를 안은 듯 기쁨과 포부가 출렁거리는 소감을 밝혔다.  18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1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에서 김녕 씨를 비롯해 위수정(중편소설) 김홍(단편소설) 김기형(시) 정진희(시조) 김명진(희곡) 이인혜(시나리오) 박소정(동화) 김세나 씨(영화평론) 등 9명이 상패와 상금을 받았다. 수상자들은 벅찬 기쁨을 전했다. 김명진 씨는 “문학은 저 멀리 있는 짝사랑의 대상이었는데 당선이 현실이 되니 혼란스럽고 흥분된다”고 말했다. 위수정 씨는 “어릴 적 오빠의 책장에 꽂힌 오정희 은희경 작가의 작품을 읽으며 문학에 빠져들었는데 이분들이 심사위원이어서 더 기쁘다”고 밝혔다. 박소정 씨는 “아이들과 함께 지내며 아이들이 즐거워할 만한 일이 적은 곳은 어른들한테도 살기 어려운 세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글을 쓰면서 이곳(세상)을 더 좋아하게 됐다”고 했다. 각오도 다졌다. 김세나 씨는 “삶이 방향감각을 잃었을 때 책과 영화에서 길을 찾았다”며 “예민하고 날카로우면서도 폭넓은 시선으로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겠다”고 말했다. 김홍 씨는 “변화를 위해 김홍이라는 필명을 쓰기로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달라지는 게 없다는 걸 안다”며 “올바른 선택을 하며 열심히 쓰겠다”고 했다. 이인혜 씨도 “앞으로 좋은 글로 수상에 보답하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시, 시조 부문 당선자는 소감도 시적이었다. 김기형 씨는 “무게도 형체도 없이 나의 시간에 나타난 시를 따라서, 징후처럼 감기는 감각을 믿고 계속해서 남아 있겠다”고 말했다. 정진희 씨는 “시인의 가슴을 통과하면 언어는 희망과 사랑, 따뜻한 길이 된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닿는 시를 쓰는 시인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심사위원인 소설가 은희경 씨는 격려사에서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뒤 22년 동안 ‘내 마음에 차는 글을 쓰고 있는가’ 하는 고민에 자주 시달렸다”며 “글 쓰는 일은 언제나 새롭고 그래서 두렵지만 그게 문학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김순덕 동아일보 논설주간은 축사에서 “수상자들은 글을 쓸 때 정말 사는 듯한 기분이 들고, 쓰지 않고는 못 사는 분들”이라며 “앞으로 가끔, 글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고통스러울 때 여러분은 동아일보가 찾아낸 보석이라는 것을 기억해달라”고 말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심사위원인 소설가 오정희 씨, 시조시인 이근배 이우걸 씨, 동화작가 황선미 씨, 극작가 배삼식 씨, 영화감독 이정향 씨와 문학평론가 황종연 동국대 교수, 시인이자 소설가인 이장욱 씨를 비롯해 200여 명이 참석했다.조종엽기자 jjj@donga.com}

    • 2017-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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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성학 “강력하고 민주주의 원칙 지키는 링컨 같은 지도자 필요”

     “작금의 한국 정치 상황은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 연습장’과 같습니다. 미국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처럼 강력하면서도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키는 지도자가 나와야 격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통일의 심포니를 연주할 수 있습니다.” 국제정치학자 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69)가 ‘한국의 지정학과 링컨의 리더십’(고려대 출판문화원)을 최근 냈다. 강 교수는 2011년 영국에서 낸 ‘Korea's Foreign Policy Dilemmas’(한국의 외교 딜레마)가 지난해 중국 사회과학원 출판사에서 번역 출간된 것을 비롯해 각종 저서가 일본과 중국, 영어권 국가에서 발간된 한국의 대표적 국제정치학자다. 2014년 정년퇴임하고 한국지정학연구원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는 그를 17일 서울 종로구의 지정학연구원에서 만났다. 강 교수는 “21세기 들어 지정학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강 교수에 따르면 지정학은 국제정치학이 성립되기 전 19세기 말∼20세기 초에 유행한 패러다임이었다. 냉전 시대 미국과 소련의 전략적 핵 경쟁 속에서는 의미가 축소됐지만 재래식 군비 경쟁의 귀환, 대륙국가 중국의 해양 진출로 인한 미국과의 긴장 고조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물론 한반도가 그 복판에 있다. 책의 부제도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변화와 국가통일의 리더십’이다. “이전 책 ‘새우와 고래싸움’에서도 말했지만 새우였던 한국이 만약 돌고래가 됐다고 쳐도 범고래와 같은 강대국 앞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오히려 범고래를 만나면 돌고래보다 새우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지요.” 강 교수는 “대륙 강대국의 완충지대(buffer zone)면서 해양 강대국의 교두보(bridgehead)라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상은 임진왜란 이래 변한 적이 없다”면서 “장기적인 전쟁을 독자 수행하는 능력이 없는 한국은 대외정책에서 기본적으로 겸손해야 한다”고 말했다.  ‘용(用)미’ ‘용중’ ‘용일’ ‘용러’와 같은 말은 환상이고 착각에 불과하다는 게 강 교수의 주장이다. “주변국을 바보로 아는 인식이지요. 진지하고 성실한 외교를 추구하면서도 국가의 이익을 얻어낼 수 있는데 과도하게 비타협적인 자세를 취해 무리가 생기기도 합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외교란 없습니다.” 강 교수는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끌었고, 미국을 단일한 연방국가로 지켜냈으며, 패배가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선거 민주주의의 원칙을 지킨 링컨의 리더십이 한국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링컨 대통령은 ‘무장한 예언자’ 같은 이였습니다. 국민에게 자신의 비전을 제시하고 설득해 국민의 생각을 바꾼 ‘변환적 리더십’의 모범이지요.” 강 교수는 앞으로 1년 동안은 매달 심포지엄을 열어 윈스턴 처칠의 리더십을 연구할 계획이라고 했다. 조종엽기자 jjj@donga.com}

    • 2017-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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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비 ‘문학3’ 창간… “문학에서 각자의 삶 발견할 수 있길”

     문학이 위기라지만 역설적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블로그에는 문학적인 글이 넘쳐난다.  기존 문학의 형식에서 벗어나 감동을 준 글들이 여러 차례 출판을 거절당한 끝에 발간돼 독자의 사랑을 받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기성 문단과 대중의 괴리가 뚜렷해지는 요즘 ‘독자가 작가, 비평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내세운 문예지가 16일 창간됐다.  출판사 창비는 17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난해 창비 50주년을 맞아 공언했던 새 문학 플랫폼 ‘문학3’을 출범한다”고 밝혔다. 문학3 기획위원들은 이날 간담회에서 “오늘날 문예지의 비평은 작품과 현실을 연결시키지 못했고, 광고 문구나 주례사식 해설에 그치기도 했다”며 “소비의 영역에 갇힌 독자가 문학에서 자신의 삶을 발견하지 못하면서 문학은 ‘그들만의 리그’가 됐다”고 출범 이유를 설명했다. 문학3은 △매년 1, 5, 9월 3차례 동명의 종이잡지를 발간하고 △참여형 인터넷 홈페이지 ‘문학웹’() △오프라인 현장에서 활동하는 ‘문학몹’을 운영할 예정이다. 문학3은 계간 ‘창작과 비평’과는 독립적으로 운영된다. 문학웹은 19일부터 독자에게 개방된다. 기존 문학 장르를 벗어난 다양한 형태의 창작물을 자유롭게 올릴 수 있는 ‘그냥 올려본다’ 게시판, 단어 3개를 화두로 현안을 토론하는 ‘키워드 3’ 게시판, 자유로운 기획물을 200자 원고지 300장 분량으로 연재하는 ‘3×100’ 코너 등이 운영될 예정이다. 문학웹에서 논의된 주요 내용은 종이잡지에 실리게 되며, 신설 팟캐스트 ‘중계방송’에서도 다뤄진다. 문학3 종이잡지의 편집회의에도 독자가 참여한다. 문학웹이나 SNS를 통해 제안받은 의제 중 4, 5개 정도를 추린 뒤 제안한 독자 20명가량이 기획회의에 참여하게 된다. 첫 회의는 ‘문단 내 성폭력, 문학과 여성들’을 주제로 2월 17일 열린다. 종이잡지에는 ‘중계’라는 제목의 독자리뷰 좌담도 게재된다. 창간호에는 영화감독, 대안학교 학생, 국문학도 등이 같은 호에 게재된 소설과 시를 읽은 뒤 나눈 대화가 실렸다.  문학몹은 촛불집회 현장에서 낭독회 등 문학 관련 퍼포먼스를 펼치는 등의 방식으로 각종 오프라인 현장에서 문학적 실천을 기획하고 벌일 예정이다. 문학3은 “문학은 고상한 성벽이 아니다”라며 “독자의 삶과 문학을 접목하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밝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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