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우주와 삶에 대한 경외감 높여주는 최선의 대답”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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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저자 리처드 도킨스 방한… 장대익 교수와 대담

세계적 석학 리처드 도킨스(오른쪽)는 25일 장대익 서울대 교수와의 대담에서 “나는 도발적이고 도전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비판도 받았지만 단지 명확하게 말하고 명쾌하게 글을 썼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세계적 석학 리처드 도킨스(오른쪽)는 25일 장대익 서울대 교수와의 대담에서 “나는 도발적이고 도전적이라는 평가와 함께 비판도 받았지만 단지 명확하게 말하고 명쾌하게 글을 썼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최근 자서전이 번역 출간된 것을 계기로 내한한 세계적 석학 리처드 도킨스(76)가 25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에서 진화심리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장대익 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46)와 공개 대담을 했다. ‘무신론의 기수’로 불리는 도킨스는 청중 200여 명 앞에서 장 교수의 물음에 유머를 섞어가며 답했다.》
 

 ―지구 온난화나 생태계 파괴 등 과학기술로 생겨난 문제를 과학이 풀 수 있다고 보는지.

 “과학은 나쁜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지만 반대로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도 알려준다. 진리 탐구를 멈춰서는 안 된다.”

 ―과학은 삶의 실존적 조건과 의미에 대해서는 침묵하는가.

“그처럼 근본적이고 심오한 질문에 답변하는 건 간단치 않다. 그러나 과학이 못 하면 다른 어떤 학문이나 종교도 답하지 못한다. 우주의 탄생에 대해 물리학은 최선의 질문과 답을 제공하고 있다. 도덕적 딜레마를 푸는 데도 과학적 원칙이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랑과 행복을 느끼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알게 된다고 해서 사랑하면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런 감정을 이해하려는 과학의 노력이 사랑과 행복의 가치를 손상시킨다고 착각하는 이들이 있다. 진화에서 감정이 갖는 의미를 이해한다고 감정의 가치가 훼손되는 건 아니다. 수만 년을 날아온 별빛이나 화석을 통해 수백만 년 전의 생물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건 우주와 삶에 대한 경외감을 증폭시킨다.”

 ―당신의 여러 저서 중 찰스 다윈에게 딱 한 권 선물할 수 있다면 무엇을 고를 텐가.

 “‘이기적 유전자’다. 다른 책은 사실 다윈이 다 알고 있는 이야기다. ‘이기적…’은 (다윈이) ‘나의 이론이 다른 식으로 표현됐구나’ 하고 생각하실 게다.”

 이날 청중의 반응은 뜨거웠다. 도킨스는 어린 시절에 무슨 장난감을 갖고 놀았느냐는 주부의 질문에 “기차요! 그리고 꼭두각시 인형”이라고 답하며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외국에서 자랐다는 청년이 “‘만들어진 신’을 읽고 무신론자가 된 이후 주변 (종교인과의) 관계가 멀어졌는데 (회복시킬) 방법이 있느냐”고 묻자 “매우 슬픈 질문”이라며 말을 이어갔다. 그는 “특히 미국에서 ‘도킨스재단’(도킨스가 세운 재단으로 학교의 지적설계론(창조론) 교육을 반대하는 활동 등을 함)으로 그런 고민을 호소하는 편지가 많이 온다”며 “우주의 본질에 대한 철학적 의견의 차이가 가족과 친구들의 사랑과 우정을 손상시킨다는 건 비극이다. 관용이 중요하다”라고 답했다.

 ―동물학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과정은….

 “옥스퍼드대 학부생 시절 2학년부터 일대일 튜터링(개인지도) 시스템에 참여하게 됐다. 튜터(지도선생)가 매주 1시간 논문에 관해 학생과 논쟁하고 영감을 준다. 튜터가 준 논문 목록을 들고 도서관에 가서 일주일 동안 읽는다. 그건 교과서에서 지식을 그냥 가져오는 것과 다르다. 노벨상을 받은 니콜라스 틴베르헌이 내 튜터였는데 그게 전환점이었다.”

 ―연구뿐 아니라 과학적 세계관을 전파하는 커뮤니케이터 역할도 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그런 노력을 폄훼하기도 하지 않나.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미국 국립과학자협회 회원이 못 된 것도 그런 질투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세이건이 (대중에게) ‘별을 보라’고 한 뒤 미국의 우주 탐험 계획이 나왔다. 대중과의 소통이 과학자의 책임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종교의 미래는 어떻게 전망하나.

 “더 나쁜 종교, 덜 나쁜 종교가 있지만 나는 종교가 없어지는 것을 보기를 원한다. 내 생전이 아니라면 내 손자 세대에라도. 그러나 미국에서는 무신론에 반대하는 거센 역풍이 불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종교 관련 인사가 나한테 좋은 얘기 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웃음)”

 ―과학자, 저술가로서 앞으로의 계획은….(청중)

 “어린이를 위한 책을 쓰려고 한다. 밤낮, 계절, 지진 등에 대해 신화에서 과학으로 이어지며 답하는 책이다. 우주에서는 인간의 삶이 어떤 것일지에 대한 책도 쓰려 한다. 생명은 지구에서만 가능한 것일까, 이성의 결합에 의한 번식은 계속될까, 지능과 언어는 다른 행성에서도 독립적으로 진화해 발생할까…, 이런 것들이다.”

조종엽기자 jjj@donga.com
 

○ 리처드 도킨스는…

1941년 영국의 식민지이던 아프리카 케냐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대에서 생물학 교수로 일하며 동물행동학 분자생물학 집단유전학 발생학을 두루 연구하고 성과를 냈다. 현재 같은 대학 ‘뉴칼리지’의 펠로로, 세계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는 대중적 과학 저술가다. 1976년 생명체는 유전자를 운반하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책 ‘이기적 유전자’가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이후에도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논증한 ‘만들어진 신’을 출간했다. ‘눈먼 시계공’ ‘지상 최대의 쇼’를 비롯해 저서 대부분이 국내에 번역돼 있다.
#리처드 도킨스#이기적 유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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