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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은 독재자 몰락의 해였다. ‘아랍의 봄’은 튀니지와 이집트의 철권 통치자를 권좌에서 몰아냈고,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는 사살됐다. 북한 김정일은 자연사했지만 후세의 평가는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선 정당정치를 위협하는 시민단체의 세력화가 일어났고, 세계적으론 각국의 재정위기와 함께 ‘점령하라(Occupy)’ 시위가 확산된 해이기도 했다. 동아일보와 채널A가 선정한 국내외 10대 뉴스를 소개한다》■ 국내북한의 운명은 29세 김정은 손에…북한을 37년간 철권 통치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2월 17일 사망했다. 29세에 불과한 김 위원장의 3남 김정은이 후계자로 권력을 물려받아 현대사에 유례가 없는 ‘3대 세습’이 이뤄졌다. 극심한 혼란 속에서 2012년을 맞게 된 한반도를 전 세계가 주시하고 있다.구제역 348만마리 매몰… 침출수 유출 우려구제역 확산으로 소 15만1000마리, 돼지 331만8000마리, 염소 8000마리 등 총 348만5000마리의 가축이 매몰 처분됐다. 피해액만 3조 원에 이르러 축산 농가가 사실상 초토화됐다. 부실 매몰로 침출수 유출에 따른 2차 환경오염 우려도 나왔다. 육류와 우유 가격 폭등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저축은행 16곳 퇴출… 구명로비 수사 확대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부실을 키운 16개 저축은행이 영업정지 철퇴를 맞았다. 퇴출을 피하려 정치권과 금융당국에 로비를 한 데다 사전인출 의혹으로 사회적 파장이 컸다. 5000만 원 이상 예금자와 후순위채 투자자 등 7만여 명이 피해를 봤다. 구조조정은 일단락됐지만 추가 퇴출 우려는 남아 있다.영화 같은 ‘아덴 만의 여명’… 석 선장 ‘기적’작전명 ‘아덴 만 여명작전’. 청해부대 구축함 최영함이 1월 21일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된 삼호주얼리호 선원 전원을 피랍 6일 만에 구출했다. 석해균 삼호주얼리호 선장은 작전 과정에서 목숨을 걸고 기지를 발휘했다. 작전 과정에서 총탄 6발을 맞은 석 선장은 불굴의 의지로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평창 겨울올림픽 유치… 한국 ‘그랜드슬램’강원 평창이 7월 6일 남아공 더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2018년 겨울올림픽 개최권을 따냈다. 2010년과 2014년 대회 유치전에서 캐나다 밴쿠버, 러시아 소치에 역전패한 뒤 세 번째 도전한 끝에 쾌거를 이뤘다. 8월에는 대구 세계육상선수권을 개최해 세계 6번째로 그랜드슬램(올림픽,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 F1)을 달성했다.16명 앗아간 우면산 참사… 방재예산 확충기후변화로 100년 만의 폭우가 쏟아지면서 7월 27일 전국적인 산사태가 발생했다. 특히 서울 우면산에 시간당 100mm의 집중호우로 산사태가 나 16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이는 단순한 ‘천재(天災)’가 아니라는 지적이 일자 정부는 내년에 5조 원을 투입해 재난관리 개선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성폭행 처벌법 바꾼 영화 ‘도가니’의 힘광주 인화학교 교직원들이 장애원생들을 성폭행한 사건이 6년 만에 재조명됐다.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소설과 영화 ‘도가니’가 나오면서 사회문제가 됐다. 재수사에 나선 경찰은 성폭행 교직원 14명을 추가로 적발했다. 또 장애인이나 13세 미만 아동을 성폭행하면 실형을 받도록 법규가 바뀌는 계기가 됐다.오세훈 사퇴… 정치권 ‘빅뱅의 소용돌이’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투표율이 미달돼 오세훈 시장이 사퇴하자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졌다. ‘장외 강자’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무소속 박원순 후보에게 양보하면서 박 후보가 시장에 당선됐다. ‘정당정치의 위기’가 불거지면서 정치권은 ‘빅뱅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한미 FTA 4년만에 통과… ‘최루탄 국회’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정상 서명 4년 4개월 만인 11월 2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투자자·국가소송제(ISD)를 둘러싼 야당의 반발이 거셌고, 본회의장에서 최루탄이 터지는 헌정 사상 초유의 불상사가 벌어졌다. 미국, 유럽연합(EU)과의 FTA 완료로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61%를 자유무역지대로 확보했다.아시아 넘어… K팝 열풍 지구촌으로 확산프랑스, 미국, 영국, 아르헨티나, 페루…. 2011년 유튜브는 한국 가수들의 공연을 염원하는 세계 팬들의 플래시몹과 댄스로 들썩였다. 6월 SM엔터테인먼트 프랑스 공연을 시작으로 미국, 런던, 브라질, 스페인 등에서 케이팝(K-pop·한국대중가요) 공연이 개최되며 팝 한류가 아시아를 넘어 유럽, 남미에까지 진출했음을 증명했다.■ 국제철옹성 흔든 ‘아랍의 봄’은 진행형철옹성 같던 중동·북아프리카의 독재자들이 분노한 국민들의 힘에 도미노처럼 무너졌다. 1월 튀니지 벤 알리 대통령의 망명을 시작으로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도 쫓겨났다.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는 반군에게 비참하게 사살됐다. 예멘과 시리아에선 유혈투쟁이 현재진행형이다.日동북부 규모 9.0 강진… 원전 안전도 흔들3월 11일 일본 동북부를 덮친 리히터 규모 9.0의 초대형 강진과 뒤를 이은 쓰나미가 1만58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실종자도 3400여 명이다. 미국지질조사국이 관측을 시작한 이래 4번째 규모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까지 이어져 세계는 ‘제2의 체르노빌’ 공포에 떨었다. 원전사고 수습비용만 최대 200조 원이 넘는다.英윌리엄 왕세손, ‘평민’ 미들턴과 결혼영국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윌리엄 왕세손과 ‘평민 신부’ 케이트 미들턴이 8년 연애 끝에 4월 29일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백년가약을 맺었다. 신세대답게 왕실의 오랜 전통을 조금씩 비켜가며 21세기의 판타지를 새롭게 연출한 결혼식이었다. 왕세손비는 결혼 이후 서민적인 모습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美특수부대 ‘9·11테러 주범’ 빈라덴 사살9·11테러의 주범으로 14년 넘게 세계 테러리즘의 대명사로 군림했던 알카에다 수장 빈라덴이 5월 1일 파키스탄에서 미 특수부대의 기습을 받고 숨졌다. 산악지역 동굴이 아닌 버젓한 주택에 은신해 있던 그의 마지막을 놓고 위선 논란도 일었다. 서방세계는 “정의가 마침내 구현됐다”며 기뻐했지만 일부 이슬람권에선 애도하는 반응을 보였다.다문화 사회 겨눈 테러범 총구에 77명 희생노르웨이의 극우 민족주의자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32)가 7월 22일 오슬로의 정부청사를 테러하고 집권당 청소년 정치캠프가 열리던 우퇴위아 섬에서 총기를 난사해 77명이 숨졌다. 무슬림을 증오하고 다문화를 배격해 온 그의 범행은 포용을 통해 세계 문명을 이끌어 온 유럽의 다문화 사회에 충격을 줬다.사상 초유 美 신용등급 강등… 유로존 휘청국제신용평가회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8월 5일 사상 처음으로 미국의 장기 국가신용등급을 최상위인 ‘AAA’에서 ‘AA+’로 강등해 세계경제가 출렁였다. 그리스에서 시작된 재정위기는 아일랜드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등 다른 유럽 국가로 번져갔고 위기를 맞은 국가들의 도미노 정권 교체로 이어졌다.우주-군사 中의 굴기… 美는 아시아 회군명실상부 주요 2개국(G2) 위치에 오른 중국이 우주 해군 고속철 등 각 분야에서 야심 찬 팽창을 거듭했다. 이에 맞서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11월 호주를 방문하고 해군기지를 설치키로 하는 등 ‘아시아 회군’을 본격화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통한 중국 경제 견제 논의도 한창이다.‘1%의 땅’ 자본주의 심장부 점령한 99%9월 17일 자본주의 심장부인 미국 뉴욕 맨해튼의 주코티 공원에서 월가 점령 시위가 시작됐다. 시위대는 ‘우리는 99%다’라는 구호를 통해 상위 1%에 집중된 부의 불평등에 항의하며 거리를 점령했다. 시위는 미국 내 주요 도시와 유럽 아시아로 번졌다. 자본주의의 문제점들을 개선하려는 논의들이 시작됐다.‘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 췌장암 사망21세기 정보기술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 전 애플 최고경영자가 10월 5일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개인용컴퓨터(PC) 대중화 시대를 열었던 그는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했다. 숱한 좌절을 겪으면서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그의 드라마 같은 삶은 동시대 젊은이들에게 많은 감동과 영감을 줬다.미얀마 군정 종식… 수치 여사 보선 출마미얀마에서 근 50년간의 군사정부 시대가 종식됐다. 올 3월 출범한 미얀마 민간정부는 민주적 개혁조치를 잇달아 내놓았다.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아웅산 수치 여사는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12월 미얀마를 방문하자 미얀마에 대한 영향력 감소를 우려한 중국도 다급히 움직였다.}
북측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조문(弔問)을 놓고 남측을 향해 강경한 발언을 내놓았다. 17년 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조문 정국을 이용해 남남(南南)갈등을 부추겼던 전례를 반복하려는 의도로 분석된다.북한의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 민족끼리’는 23일 ‘남조선 당국의 태도를 지켜보고 있다’는 논평에서 “동족 대결에 환장이 된 남조선(남한) 당국은 각 계층의 조문 길을 악랄하게 가로막고 있다”며 “용납할 수 없는 반인륜적인 야만 행위”라고 비난했다. 정부가 21일 ‘북한 주민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한다’며 간접적으로 애도를 표한 것에 대해서도 “남한 당국은 ‘북 지도자와 주민에 대한 분리 대응’을 공공연히 운운하면서 불순한 속심을 그대로 드러냈다. 우리의 존엄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독이고 우롱”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남한 당국이 어떻게 나오는가에 따라 남북관계가 풀릴 수도 있고 완전히 끝장날 수도 있다”고 협박했다. 또 이 매체는 별도의 글을 통해 “조의 방문을 희망하는 남한의 모든 조의 대표단과 사절들을 동포애의 정으로 정중히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등 일부 민간단체들이 조문단 파견을 희망하고 있는 가운데 고 김대중 대통령과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유족에 대해서만 조문을 허용하겠다는 정부의 조치를 흔들어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정부는 기존 방침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이날 국회 남북관계발전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두 분 일행 외에 더 이상 조문 확대를 검토하지 않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대답했다.통일부는 조문단의 일정과 차량 등 세부사항에 관해 북측과 협의를 시작했다. 민주통합당 박지원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조문 방북 시 북한 후계자 김정은과의 면담 가능성에 대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노동신문은 21일 오후 5시 현재 연인원으로 4392만여 명이 북한 전역에서 조의를 표했다고 보도했다.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23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조문(弔問)과 관련해 북측 매체가 남측을 향해 내놓은 반응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와 놀랄 정도로 비슷하다. ‘데자뷔(기시감)’를 느낄 정도다. 같은 방식을 이용해 남한 사회를 분열해 보겠다는 의도가 여실히 드러난다.○ 17년 전과 방법·표현 모두 비슷해 북측은 19일 김 위원장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외국의 조의대표단은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23일 북한의 대남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동포애의 정’을 감안해 남한 조문단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이 사이트는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운영하고 있다. 조평통은 1994년 7월 14일 발표한 대변인 담화문에서도 “남한의 조문단이나 조문객들을 따뜻한 동포애의 정으로 맞이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남측 조문단의 신변을 보장하고 편의를 제공하겠다는 내용도 공통적으로 들어갔다. 당시에도 외국 조문단은 사절하면서 남한만 예외로 했다. 1994년 7월 9일 김일성 사망 소식이 발표된 뒤 남한에서는 조문 여부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당시 조문을 반대하던 측이 내세운 이유 중 하나가 ‘북한이 조문단을 받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북측은 이런 제약을 풀어줌으로써 남남(南南)갈등을 부채질했다. 이후 야당과 재야 단체, 대학생 단체 등에서 조문단 파견을 강행하려 하자 보수층이 격렬히 반대하고 정부가 이를 금지하면서 ‘조문 파동’으로 비화했다. 북측의 전략이 어느 정도 성공한 셈이다. 당시 정부의 조문 금지에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정부가) 애도의 뜻조차 표시하지 않은 것은 상식 이하의 불손하고 무례한 행위”라며 “남조선 통치 집단의 대범죄를 단단히 결산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23일 우리 민족끼리도 “초보적인 예의와 인륜도덕도 모르는 자들에 대해서는 단단히 계산하게 될 것이며 두고두고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비슷한 위협을 했다.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전형적인 북측의 남남갈등 유발, 통일전선전술 차원의 접근법”이라며 “1994년과 달리 최소한의 변화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 명확해졌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북측의 의도가 성공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이번에는 간접적으로나마 김정일 사망에 대해 애도를 표했고 조문 방북도 일부 허용한 것이 차이점이다. 진보 진영의 조문 열기(?)도 17년 전에 비해 훨씬 낮다는 평가다.○ “조문 확대 불가” 정부 태도 확고 김정일 조문 문제는 정리돼 가는 분위기다. 대표적인 대북지원단체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는 진보·보수·중도 진영을 아우르는 10명 안팎의 조문단을 파견하는 문제를 정부와 논의해 왔다. 정부가 남남갈등을 막기 위해 ‘답방 차원의 조문만 허용한다’는 원칙을 수정해 민화협의 조문 방북 허용을 고심한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이날 국회 답변에서 이 문제에 대해 “정부가 여러 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고심 끝에 이희호·현정은 여사 일행만 조문을 하도록 한 것”이라며 불허 방침을 재확인했다. 민화협 측도 “정부 반대를 무릅쓰고 방북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가 40여 명 규모의 조문단을 구성하기로 결정하고 통일부에 방북을 신청했지만 통일부는 “현재로서는 허용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조문 방북 문제는 조문단 구성을 놓고 막바지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방북 일정은 26∼27일이 유력하다. 이들이 북한을 방문하면 북한의 후계자 김정은과 면담이 이뤄질 것으로 보여 당국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김태웅 기자 pibak@donga.com }

“오늘 우리 혁명의 진두에는 주체혁명 위업의 위대한 계승자이며 당과 군대와 인민의 탁월한 영도자인 김정은 동지가 서 있다.”북한이 ‘김정은 시대’를 공식 선언했다.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22일 1면 전면에 걸쳐 실은 사설을 통해 김정은 시대의 정책 방향을 제시했다. 3대 세습의 정당성을 강조하면서 선군(先軍)정치·강성대국 건설 등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뜻을 잇는 ‘유훈통치’를 하겠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무엇보다 ‘체제 안정’을 이루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정일 우상화와 세습 정통성 강조사설의 대부분은 김 위원장에 대한 추모로 채워져 있다. ‘21세기의 태양’ ‘사회주의 위업의 수호자’ ‘천출(天出)장군’ ‘영웅’ ‘희세의 정치원로’ 등 온갖 수사를 동원했다. 아울러 ‘김일성조선’ ‘김일성민족’ 등 김일성 주석을 상기하는 표현도 다수 등장했다.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각인하려는 것은 ‘세습의 정당성’으로 분석된다. 사설은 “김정일 동지의 가장 고귀한 업적은 주체혁명 위업, 선군혁명 위업의 대(代)를 굳건히 이어놓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백두의 천출위인들은 넋과 인격, 영도 풍모를 그대로 닮은 또 한 분의 걸출한 영도자(김정은)를 모심으로써 수령복, 장군복을 대를 이어 누리게 됐다”고 밝혔다.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을 동격화한 것이다.▼ ‘선군’ 용어 21차례 등장… 軍 중심 김정은체제 안정 의도 ▼최진욱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소장은 “김 위원장의 업적을 많이 언급하고 있지만 이를 통해 강조하고 있는 것은 김정은”이라며 “아직 취약한 김정은 체제가 뿌리내리게 하겠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분석했다. 또 “김정은 동지를 결사옹위하는 총폭탄이 돼야 한다”며 김정은에 대한 충성을 강조했다. 지금까지 북한 당국이 주민들에게 ‘김 위원장을 지키는 총폭탄’이 될 것을 요구해온 것을 감안하면 김정일과 김정은을 동일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김광인 북한전략센터 소장은 “당장 북한은 체제 안정 외에 대안이 없는 상태”라며 “변화를 시사하면 곧바로 주민 동요로 이어질 상황에서 ‘김정은 옹위’를 주장하는 노동신문 사설이 필요했다”고 진단했다.○ 유훈통치의 핵심 개념은 선군정치이 사설에는 ‘선군’이라는 용어가 무려 21차례나 등장한다. 특히 “김정일 동지의 유훈을 지켜 주체혁명, 선군혁명의 길을 걸어 나가야 한다. 인민과 군대는 김정은 동지의 선군영도를 충직하게 받들어 나갈 불타는 결의에 넘쳐 있다”고 밝혀 김정은이 선군정치를 계승할 것임을 기정사실화했다.선군정치는 김 위원장 통치방식의 핵심으로 군을 최우선에 둔다는 것이다. 선군을 강조한 것은 김 위원장의 유훈을 그대로 받들고 동시에 군을 중시해 체제를 안정시키겠다는 의도가 함께 담겨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혁명선배를 존대한다”는 구절도 눈에 띈다. 탈북자 출신인 안찬일 세계북한인총연맹 총재는 “군 중심으로 위기를 관리하고 군의 원로들과 화합을 중시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인민군에 ‘단숨에 기질’을 발휘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김 위원장이 내세웠던 ‘속도전’보다 빠른 ‘단숨에’를 내세워 업적 쌓기에 나설 것임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강성대국과 대남정책도 이어받을 듯김 위원장의 숙원이던 ‘강성대국’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사설은 “위대한 장군님의 강성국가 건설 염원을 끝까지 실현하는 여기에 우리의 숭고한 도덕 의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김 주석 100회 생일인 내년 4월 15일까지 권력 승계를 마무리하고 강성대국을 선포한 뒤 김정은의 통치 기반을 위해 헌법을 개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남북관계에 대한 언급은 많지 않지만 ‘역사적인 6·15 통일시대’ ‘북남 공동선언 철저 이행’ 등을 통해 6·15남북공동선언을 강조했다. 또 “(김 위원장이) 강위력한 핵보유국으로 전변시킨 것은 만대에 불멸할 업적”이라고 밝혀 핵개발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노동신문 전면 사설은 ▼국가 중대발표-비전제시 등 특별한 경우에만 게재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 노동신문이 22일자 1면 전체를 통틀어 게재한 장문의 사설은 형식이나 분량 면에서 이례적이다. 북한은 국가의 중대발표나 정책, 비전제시 등 특별한 사안이 있을 때에만 1면에 이런 식의 사설을 써 왔다.북한은 1994년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을 때에도 노동신문 1면 사설을 통해 장문의 추도사를 실었다. 지도자의 업적을 장황하게 나열한 뒤 후계자의 ‘선군영도’를 강조하며 주민들의 단결을 촉구했다. 이번에도 당시의 형식 및 논리전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 지도자가 사망하고 3대 후계세습이 이뤄지는 때인 만큼 특별방송에 이어 대표적인 기관지인 노동신문 1면 사설 등을 통해 당국의 메시지를 전하려 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북한 주민들은 김정일 추모기간 동안 각 조직 단위별로 모여 이 사설의 구체적인 뜻과 실행방안을 매일 학습할 것으로 보인다. 업무 속도를 몰아친다는 뜻의 ‘단숨에 기질’을 어떻게 발휘할 것인지, ‘김정은 동지의 영도를 중심으로 전투력을 강화’할 세부적인 방안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토론도 벌이게 된다.한 대북 소식통은 “노동신문 1면 사설은 원래 북한 주민들을 교양하기 위한 목적으로 싣는다”며 “주민들은 보통 때에도 거의 매일 아침 직장에서 신문 사설에 나온 내용을 학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학습은 노동당 중앙당에서 1면 사설을 △서론 △발자취 △업적 △과업 등의 분야별로 나눠 배포한 자료에 기초해 필기와 암기 형식으로 진행된다. 내용을 잘 암기하고 있는지를 보는 문답식 학습경연도 한다. 이 소식통은 “잘 외우지 못한 사람은 사상성이 부족한 것으로 간주해 대중 앞에서 비판을 받아야 한다”고 전했다.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정부는 22일 열린 차관회의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담은 대통령령 제정안을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이날 차관회의에서는 수사권 조정안에 대해 “검·경 간에 합의를 끝내 이루지 못해 아쉽다”는 의견 외에는 별다른 견해가 나오지 않았다고 총리실 관계자는 전했다. 정부는 27일 열리는 국무회의에서 수사권 조정안을 최종 심의, 의결할 예정이다. 경찰은 수사권 조정안이 수정되지 않은 채 차관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매우 유감스러운 내용”이라고 밝혔다.}

북한 매체들이 새 지도자인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대한 우상화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22일까지 그의 생모인 고영희(사진)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는 김정은의 모계 혈통이 그의 약점이라는 점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북한 주민들은 어떤 인물이 권력의 핵심으로 떠오르면 ‘언제 노동당에 입당했고, 현직은 무엇이며, 부모는 누구냐’를 제일 먼저 따지게 된다고 한다. 그만큼 북한에서 권력자가 되려면 혈통이 중요하다는 얘기다.고영희는 제주도 출신인 재일교포 고경태의 딸로 1960년대 재일교포의 대규모 북송 때 부모와 함께 입북한 것으로 알려졌다. 만수대예술단의 무용수로 활동하던 1976년부터 김 위원장과 동거에 들어가 2004년 사망하기 전까지 김 위원장과 함께 살았다. 이런 신분과 경력을 보면 1980년대까지만 해도 북한 주민에게 ‘자본주의 문물에 젖은 불순분자’로 멸시받았던 북송교포의 딸이자 무용수에 불과한 셈이다.또 북한에서 김 위원장의 정부인은 김영숙 한 명뿐이다. 고영희는 김 위원장의 동거녀일 뿐이다. 이 때문에 김정은은 모계의 정통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향후 김정은 체제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은 뒤에는 고영희에 대한 우상화가 어떤 식으로든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북한 당국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을 발표한 19일 당 차원의 주민통제 지시를 내리는 등 철저한 체제 단속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내부에서 특별한 이상 징후가 포착되지 않는 이유는 이런 북한 당국의 강력한 통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탈북자단체인 NK지식인연대의 김흥광 대표는 2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노동당 조직지도부와 선전선동부가 19일 주민들에게 △음주가무를 금한다 △쓸데없는 이동을 금한다 △유언비어를 금한다 △조기를 게양하라 △경건한 마음으로 추모 분위기를 조성하라는 5개항의 연합 지시를 내렸다”고 전했다. 그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주민들이 휴대전화로 외부와 접촉하는 것도 엄격히 금지했다고 한다.이 같은 체제 단속은 김정은 후계구도가 완벽하게 자리 잡지 않은 상황에서 주민들이 김 위원장의 사망에 동요하거나 외부 정보가 유입돼 반체제 활동이 확산될 것을 우려한 조치로 풀이된다. 북한 당국은 김 위원장 사망 직후 북-중 접경 지역의 통제를 대폭 강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21일 정보당국 관계자에 따르면 조문을 하지 않으면 처벌하겠다는 지시가 내려와 중국에 체류 중인 북한 관리들의 귀국 러시도 이어지고 있다.대북소식지인 데일리NK도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 시군의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부가 19일 전체회의를 소집해 △김정은 동지를 받들자 △사회주의 질서를 지키자 △국경 경비를 3중 4중으로 강화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전했다. 무장 군인들이 각 지방 시내에서 경계근무를 서며 반체제 활동을 감시하고 있다는 전언도 나온다.북한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에 대한 통제도 강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21일 “북한이 외국인의 외출, 김 위원장 추도를 금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보당국은 북한이 이처럼 강력한 체제 단속에 나선 결과 평양이 비교적 평온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남성욱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은 “경제난으로 주민들의 고통과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으나 (강력한 체제 통제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그런 불만이 곧바로 체제에 대한 저항이나 체제 이완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북한은 내부 단속에 나서면서도 고려 왕궁터인 개성 만월대 유적 발굴을 위해 북한에 머물던 국립문화재연구소 관계자 13명에게는 잔류를 요청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이날 한나라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북측은 개성에서 발굴사업을 계속해도 좋지 않겠느냐는 뜻을 피력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애초 이들은 23일 복귀할 예정으로 14일 방북했다가 김 위원장 사망 소식이 알려진 뒤 20일 서울로 돌아왔다.한편 북한 매체들은 21일 김 위원장의 영정과 추모소가 평양을 비롯한 전국에 마련됐다고 보도했다. 매체들은 김 위원장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담은 대형 영정을 김일성 주석 사망 때와 마찬가지로 ‘태양상’이라고 지칭했다.조선중앙통신은 “태양상이 20일 김일성광장, 당창건기념탑 등 여러 곳에 모셔졌다”고 전했다. 조선중앙방송도 태양상 설치 소식을 전하며 20일 낮 12시 현재 연인원 500여만 명의 평양 시민들이 김 위원장을 추모했다고 전했다. 북한 매체들은 남한과 미국 정부가 20일 조의를 표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반면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 등 각국 인사들의 조문과 조의 표명 소식은 각 매체에서 비중 있게 전했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
정부는 21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과 관련해 남측 민간단체나 인사가 조의문을 보내는 것을 허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가 전날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고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유족에게만 조문 방북을 허용하기로 결정한 것을 두고 정치권의 조문 논란은 계속됐다.○ 통일부 “정치인 조문은 안 돼” 최보선 통일부 대변인은 21일 브리핑에서 “팩스나 우편 등으로 조의문을 발송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허용하겠다”며 “이를 위해서는 통일부에 대북 접촉 신청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북교류협력법에는 ‘남한 주민이 북한의 주민과 회합·통신, 그 밖의 방법으로 접촉하려면 통일부 장관에게 미리 신고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통일부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접촉 신청을 승인할 방침이지만 조의문 내용이 상식적 수준을 넘어서면 반려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아산과 노무현재단, 남북강원도교류협력협회,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등이 조의문 전달을 위한 대북 접촉을 신청한 것으로 전해졌다.정부는 이날 김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와 정 전 회장 부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측과 조문 방북에 대한 실무협상을 시작했다. 북측은 ‘외국의 조의대표단은 받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이들의 방북은 받아들일 것으로 보인다.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자유선진당 심대평 대표를 면담한 자리에서 “첩보 수준의 정보에 따르면 (북측이) 한국과 중국에서 오는 조문단은 받겠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북측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에도 ‘예외적으로 남한 조문단은 받겠다’고 밝힌 바 있다.민주통합당 박지원 의원은 이날 MBC라디오 인터뷰에서 “이 여사를 모시고 조문단으로 방북하고 싶다. 나도 정부 측에 요청을 해놓은 상태다”라고 말했다. 이 여사가 한 달 전 서울 마포구 동교동 자택을 찾은 통일부 인사에게 “방북을 하게 되면 박 의원, 임동원 전 국가정보원장,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함께 갔으면 한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그러나 최 대변인은 “정치인은 유족이 아니고 실무진도 아니다”라며 박 의원을 포함한 정치인 방북 불허 방침을 밝혔다.현대그룹은 대북사업 실무를 총괄하는 김영현 현대아산 전무가 이날 통일부를 방문해 방북 시기와 규모를 협의했다. 현 회장과 장녀인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 장경작 현대아산 사장 등 5∼10명으로 조문단을 구성할 가능성이 높다.○ 국회 차원 조문 놓고 여야 대표 설전여야는 국회 차원의 조문단을 북한에 보내는 문제를 놓고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였다. 한나라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 민주통합당 원혜영 공동대표는 이날 각각 지도부 취임 이후 처음 국회에서 만났다. 첫 번째 논의 안건도 조문단 파견 문제였다.먼저 원 대표가 “정부 차원의 조문단은 파견하지 않기로 했지만 국회 차원에서는 여야가 함께 참여하는 조문단을 구성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운을 뗐다. 이에 박 비대위원장은 “남남갈등, 국론분열이 있어선 안 된다”며 “정부가 조문단을 파견하지 않기로 한 만큼 정부의 기본 방침과 다르게 가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다.원 대표는 “국회가 정부보다 반걸음 정도 앞서가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며 박 비대위원장이 2002년 북한의 초청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난 일을 거론했다. 그러자 박 비대위원장은 “2002년은 핵문제 등이 그렇게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고 반격했다. 박 비대위원장은 최근 사석에서 “천안함, 연평도 도발로 숨진 분들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북한의 사과 없이 어떻게 조문을 할 수 있느냐”는 취지의 얘기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의 조문 방북을 허용할지도 논란거리다. 노무현재단 관계자는 “이 여사가 권 여사의 동행을 희망한다는 의사를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장인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은 “너나 할 것 없는 무질서한 방북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권 여사의 방북은 허용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란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하지만 정부는 북한이 2009년 5월 노 전 대통령 서거 때에는 조문단을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권 여사의 방북은 불허하기로 했다. 또 노무현재단이 조문 방북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서도 불허 방침을 밝혔다.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
북한의 후계자인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 공개석상에 나타난 지 1년 3개월이 됐지만 그의 ‘통치 스타일’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다. 지금까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그늘에 있었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그동안 해온 공개활동(현장시찰)을 분석해보면 그가 어떤 분야에 관심을 기울여왔고, 향후 어디에 초점을 맞출지를 가늠해볼 수 있다. 북한의 모든 기관은 최고지도자의 방문을 희망하기 때문에 어디를 선택하느냐는 고도의 정치적 결정에 따라 이뤄진다.20일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해 9월 28일 김정은의 노동당 대표자회 참석 이후 이달 14일까지 공개활동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모두 131회다. 단독으로 공개활동을 한 적은 없고 김 위원장을 수행하는 형식이었다. 분야별로 보면 군 관련이 40회(30.5%)로 가장 많고 이어 경제 관련 34회(26.0%), 외교 관련 13회(9.9%), 기타 44회로 나타났다.올해 들어서는 모두 93회의 공개활동을 했으며 군 32회(34.4%), 경제 25회(26.9%), 대외 10회(10.8%), 기타 26회로 나타났다. 김정은이 그만큼 체제 옹호의 핵심 세력인 군부의 마음을 얻는 데 주력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안정적으로 권력을 물려받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인 김정은으로서는 앞으로도 당분간 이런 행보를 계속할 것으로 전망된다.이는 김 위원장의 행보와 대비된다. 김 위원장은 올해 공개활동 143회 가운데 군 39회(27.3%), 경제 59회(41.3%), 대외 16회(11.2%), 기타 29회로 군보다 경제에 치중한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 ‘강성대국 진입’을 앞두고 경제를 살리는 데 주력했던 것으로 보인다.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북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을 발표한 이후 후계자 김정은의 찬양에 열을 올리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20일 ‘김정은 동지’ 앞에 “위대한 장군님의 가장 친혁명 동지이며 주체혁명 위업의 위대한 계승자이시며 우리 당과 군대와 인민의 탁월한 영도자”라는 긴 수식어를 붙였다. 이런 찬양은 김일성 주석이나 김 위원장에게만 사용했던 것이다.김 위원장이 1974년 김 주석의 후계자로 공인받은 뒤 10년 이상 지난 뒤에야 쓰였던 “걸출한 사상이론가” “탁월한 영도자” 같은 호칭도 김정은에게 쏟아냈다. 찬양과 호칭의 3대 세습을 통해 아직 권력승계가 불안한 김정은을 지도자로 띄우기 위한 안간힘으로 풀이된다.○ 김정일식 유훈통치 가능성북한은 김정은 체제를 안정화하기 위해 ‘신격화된 아버지 김정일’을 이용하는 유훈통치를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한다. 김 위원장도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닥쳐온 권력의 위기를 ‘유훈통치’로 극복했다.조선중앙방송이 19일 “존경하는 김정은 동지의 사상은 곧 경애하는 (김정일) 장군님의 사상과 의도이고 영도 방식은 장군님의 뜻”이라고 주장한 것은 유훈통치의 예고로 볼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유훈통치 기간 3년 동안 체제 결속을 다진다며 작은 불평과 불만도 가혹하게 처벌했다.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숨진 김 위원장이 사망하기 전에 특별한 유언을 남겼을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북한은 과거 김 위원장이 그랬던 것처럼 김 위원장의 생전 교시가 모두 유훈이라고 선전할 것으로 보인다.전문가들은 또 내년 봄부터 북한 김 위원장의 동상과 ‘영생탑’ 건립 바람이 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정은이 김 위원장의 카리스마를 활용하기 위해 동상 건립을 적극 추진할 것이라는 얘기다.○ 국가 중앙군사위원장 자리 만들 듯유훈통치 이후 권력이 안정되면 김정은은 김 위원장이 장악했던 국방위원회를 폐지하고 새로운 권력기구를 만들어 통치 기반을 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김정은이 국방위원회의 권한을 상당 부분 가져간 노동당 중앙군사위원장에 오르고 국가 중앙군사위원장 자리를 신설해 겸직하면서 선군정치의 한계를 보완하는 강성대국론을 주창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권력을 장악한 당 중앙위 군사위원들이 국가 중앙군사위원을 겸직하는 중국 모델을 따를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렇게 되면 국방위원회는 폐지되고 김정일이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김 위원장도 김 주석 사망 이후 1997년 국가의 최고 직책으로 권한이 강화된 국방위원장에 올랐다. 또 주석제를 폐지해 김일성은 ‘영원한 주석’으로 남게 했다. ○ 강성대국 진입 차질?김 위원장의 사망으로 내년 김 주석 100회 생일(4월 15일)에 맞춰 ‘강성대국 진입’을 선언하려던 북한의 계획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당초 북한 당국은 김정은 생일(1월 8일), 김 위원장 생일(2월 16일) 등 행사를 성대하게 치르고 ‘주체사상 세계대회’ ‘국제친선모임’ 등을 개최해 축제 분위기를 끌어올릴 계획을 세웠다.하지만 당장 김 위원장의 국상(國喪) 기간에 화려한 행사를 열기는 어렵게 됐다. 또 김 위원장의 사망으로 추진 동력이 약해진 데다 북한의 어려운 경제사정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 강성대국 행사가 주민들의 생활고를 가중시켜 불만이 터져 나오게 되면 김정은의 불안한 권력승계에 또 하나의 부담이 될 수 있다.조영기 고려대 교수는 “김 위원장의 사망과 함께 강성대국도 역사 속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며 “내년 목표를 강성대국 ‘완성’에서 ‘진입’으로 톤을 낮추는 등 김 위원장 생전에도 이미 추진력이 약화된 상태였는데, 김정은이 무리할 이유가 없다”고 분석했다.하지만 유훈통치를 해야 할 김정은이 김 위원장의 숙원이던 강성대국을 폐기하기엔 부담이 크다는 분석도 만만찮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장례기간이 끝나면 신속하게 권력승계 마무리 절차를 밟은 뒤 김정은 중심의 강성대국을 선포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북한은 사실상 ‘집단지도 체제’로 운영되게 됐다. 김일성 주석이 북한 정권 수립 초기 소련파, 연안파, 국내파, 남로당파 등과 연합해 통치했던 시절을 제외하면 북한은 거의 60년 동안 유일지도 체제로 통치됐다. 하지만 후계자인 김정은은 혼자서 북한을 이끌어가기에는 역부족이어서 당분간은 집단지도 체제가 불가피하다.지도부에는 먼저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 겸 국방위 부위원장, 고모인 김경희 노동당 경공업부장 등 이른바 ‘로열패밀리’가 참여할 것이 확실시된다. 장성택은 김정은의 부족한 면을 채워줄 최적의 카드다. 그는 당 행정부장으로서 공안기관인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부를 지도할 권한이 있고, 국정운영 경험과 외교 경력이 풍부하다. 김 위원장 사망 이후 김 씨 일가의 중심에 서게 된 김경희는 일각에서 ‘장성택은 김경희의 대리인일 뿐’이라는 평가도 있을 만큼 무게가 있는 인물이다.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군에서는 이영호 인민군 총참모장과 김정각 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이, 당에서는 최룡해 당 비서 겸 중앙군사위원이, 내각에서는 강석주 부총리 등이 주요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북한으로서는 ‘정치 실험’인 집단지도 체제가 안착하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남궁영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0일 “당분간은 위기 국면을 벗어나기 위해 서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겠지만 내년 중·하반기가 되면 권력투쟁, 합종연횡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며 “권력 기반이 취약한 김정은에게로 권력이 승계되는 과정에서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인 일”이라고 분석했다.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이영호 북한 인민군 총참모장(69)이 김정일 시대의 오진우 전 인민무력부장의 역할을 맡을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총참모장은 한국군 합동참모본부 의장에 해당된다. 19일 발표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의위원 232명 중에서 이영호는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영림 내각총리에 이어 네 번째로 이름을 올렸다.오진우는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뒤 장의위원 명단에 김 위원장에 이어 두 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그는 혁명1세대 출신으로 김 주석이 사망한 1994년 7월부터 자신이 숨진 1995년 2월까지 김 위원장의 버팀목이 돼 줬다. 김 위원장은 1991년 군 최고사령관에 올랐지만 사실상 민간인 출신으로 군 기반이 부족했다.김정은은 아버지보다도 군 기반이 취약해 지난해 9월 인민군 대장에 올랐다. 김 위원장이 김 주석 사망 2년 전에 군 최고사령관에 오른 것과 비교된다. 후견인인 고모부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도 군 출신 인사가 아니다. 김정은은 아버지 김 위원장보다 군부에서 더욱 막강한 후원자가 필요하다.김 위원장은 아들의 군부 장악을 도우려고 2009년부터 60대 전후의 젊은 군 인사를 요직에 배치했다. 이영호는 2009년 2월 평양방어사령관에서 총참모장으로 발탁되면서 대장 계급장을 달았다. 지난해 9월에는 차수로 진급했다. 현재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직도 갖고 있다.김정은에 대한 군부 고위층의 공식 지지가 언제 나올지도 관심사다. 김일철 당시 해군사령관(대장)은 김 주석이 숨진 뒤 6일 만에 군 고위인사로서는 최초로 김 위원장에 대한 충성을 공개적으로 다짐했다.이유종 기자 pen@donga.com}
정부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에 조의를 표할 것인지를 놓고 ‘묘수’를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뒤 조문 문제를 놓고 사회적 갈등 양상이 빚어진 전례를 감안할 때 정부는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먼저 지난해 천안함, 연평도 도발 이후 사과조차 하지 않는 북한에 정부가 조문단을 보내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조의를 표시하는 것조차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북한이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때 조문단을 보냈고, 냉각된 남북관계를 개선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조의 표시의 필요성을 거론하고 있다.정부 당국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언급을 피했다. 최보선 통일부 대변인은 19일 오후 6시 10분에 열린 브리핑에서 정부 차원의 조의 표명 여부에 대해 “아직까지 결정된 바가 없으며, 유관 부처 간에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북한이 김 위원장 사망을 발표한 지 6시간 만에 나온 유일한 공식 반응이다. 김 위원장 사망 뒤 청와대는 △차질 없는 대응조치 △북한 상황 예의주시 △국제사회와의 공조 등을 골자로 하는 원론적인 반응만을 발표했다.북측 장의위원회가 ‘외국 조의대표단을 받지 않겠다’고 밝힌 만큼 정부는 일단 시간을 두고 국내 여론이나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해 종합적으로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과 일본은 조의 표명을 했지만 미국에선 반응이 없다는 점도 정부의 고심을 더욱 깊게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정부 당국자들은 이날 오후 각계를 대상으로 정부의 조의 표명과 민간 조문단 방북 허용에 대한 여론을 청취했다. 다만 이렇게 복잡한 상황에서 민간 차원의 조의 표명을 허용 또는 묵인하는 것은 정부로서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훨씬 덜하다. 이 때문에 반관반민(半官半民) 성격의 단체가 애도를 표하거나 고위 공직자 출신의 민간인이 조의를 표함으로써 북한에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긍정적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임재천 고려대 교수는 “정부가 직접적으로 조의를 표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제3의 트랙’을 쓰는 방법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며 “북한과 접촉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 가운데 현 정부의 색깔을 갖고 있는 사람, 해외 동포 중 북측과 연결채널을 갖고 있는 사람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조치가 적어도 조의·조문 문제를 놓고 남북 관계가 악화되는 것은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북한 매체들이 밝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시간은 17일 오전 8시 30분이다. 매체들이 보도한 시간은 19일 낮 12시로 사망에서 발표까지 51시간 30분이 걸렸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당시 34시간 만에 발표한 데 비해 17시간 30분이 더 걸렸다. 이 시간 동안 북한 내부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4대 의문점을 정리해본다.① 달리는 열차 안에서 사망?북한 매체의 발표에서 가장 의아한 점은 “현지지도 강행군을 이어가다가 열차에서 순직했다”는 대목이다. 김 위원장 사망 당시 열차의 위치는 밝히지 않았다. 김 위원장이 2008년 가을 뇌중풍(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김 위원장의 건강관리는 북한 당국의 최우선 과제였다. 그런데도 북한 당국이 김 위원장의 건강이상을 전혀 발견하지 못하고 현지지도를 강행하도록 했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탈북자 출신인 안찬일 세계북한인총연맹 총재는 “북한 최고통치자가 이동 중 사망했다는 것은 정말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북한 내부에서 권력투쟁이 일어났거나 강경파가 일을 벌인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② 부검을 실시한 이유는?김 위원장 사망 이후 발표까지 북한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조선중앙통신이 밝힌 것은 “18일에 진행된 병리해부검사(부검)에서는 질병의 진단이 완전히 확정됐다”고 밝힌 것이 전부다. 김 위원장을 부검했다는 것은 그만큼 사망 원인에 대한 각종 설이 난무할 소지가 많다는 점을 스스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를 차단하기 위해 “완전히 확정됐다”는 강한 표현을 쓴 것으로 추정된다. 김 주석 사망 당시에도 북한은 사망 다음 날 부검을 실시한 바 있다. ③ 김정은 체제 취약 암시?전문가들은 북한이 큰 위기상황에서 의사결정이 늦어졌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이는 김정은의 권력기반이 아직 취약하다는 증거라는 것이다. 김정은은 후계자로 공식석상에 등장한 지 1년 2개월여밖에 지나지 않았고 올해 29세에 불과하다. 백승주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북한 내부적으로 권력 승계 준비가 돼 있었는데도 장례 절차 등을 결정하는 데 많은 논의가 필요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④ 급변사태 막기 위한 조치 있었나?북한 지도부가 대규모 탈북 등 급변사태를 막기 위한 조치를 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흘렀을 수도 있다. 대북 매체인 데일리NK는 “18일 오전 1시경 북한 국경경비대에 국경을 봉쇄하라는 특별경비 지시가 하달됐다. 퇴근했던 군관들이 부대에 복귀하고 평상시 2인 1조였던 근무도 4명으로 늘렸다”고 전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1994년 7월 8일 북한 김일성 주석의 사망과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은 17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발생했지만 장례 절차 등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1994년 7월 9일 발표된 북한 국가장의위원회는 공보를 통해 김 주석의 시신은 금수산의사당에 안치하고 외국의 조의대표단은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북한 국가장의위원회가 19일 발표한 공보에서도 시신은 금수산기념궁전(금수산의사당이 이름을 바꾼 것)에 안치했고 외국의 조의대표단은 받지 않기로 했다. 김 주석 사망 때에는 후계자 김정일이 장의위원장을 맡았고, 김 위원장 사망 후에는 후계자 김정은이 장의위원 명단 첫 번째에 이름을 올렸다. 두 사람의 사망원인이 심근경색이라는 점도 같다.애도기간과 장의위원단의 규모에는 차이가 있다. 김 주석의 애도기간은 1994년 7월 8∼17일로 열흘간이었고, 김 위원장의 애도기간은 12월 17∼29일(13일)로 김 주석 때보다 사흘이 길다. 또 김 주석의 장의위원단이 111명이었던 데 반해 김 위원장의 장의위원단은 232명으로 두 배 이상의 규모다.김 주석 사망 당시 민간 차원의 조문은 이뤄졌다.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1994년 7월 14일 “남한 각당, 각파, 각계각층 인사들이 조문단을 파견하려 하는 데 사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이어 송두율 독일 뮌스터대 교수, 국제태권도연맹 최홍희 총재, 재미언론인 문명자 씨, 박보희 세계일보 사장 등이 방북해 김 주석을 조문했다. 또 당시 민주당 이부영 의원이 국회 질의를 통해 정부에 조문 의사를 타진하자 보수층이 격렬히 비난하면서 ‘조문 파동’이 일기도 했다. 이번 김 위원장의 빈소에 정부가 민간의 조문을 허용할지는 결정되지 않았다.경제 영향에 따른 정부 대응은 1994년 김 주석 사망 당시와 이번 김 위원장의 사망 이후 경제 수석부처가 합동회의를 열고 금융시장 동향을 점검했다는 점에서는 같다. 하지만 1994년에는 주로 물가 급등, 사재기 단속 등을 우려했다면 이번에는 국가 신용등급 강등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69)이 ‘강성대국 진입의 해’라고 선언했던 2012년의 문턱에서 사망했다. 북한은 김 위원장의 3남인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을 처음 ‘영도자’라고 호칭하며 권력 승계를 공식화했다. 이로써 북한은 지구상 현대사에서 전례 없는 ‘3대 세습’을 공식화했다. 김 위원장의 급사로 동북아시아 정세는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격랑에 빠져들게 됐다. 조선중앙통신은 19일 낮 12시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 장병들과 인민들에게 고함’이라는 발표문을 통해 “김 위원장이 12월 17일 8시 30분에 현지 지도의 길에서 급병으로 서거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달리는 야전열차 안에서 중증 급성 심근경색이 발생되고 심한 심장성 쇼크가 합병됐다”며 “발병 즉시 모든 구급치료 대책을 세웠으나 서거했다”고 설명했다.김 위원장의 사망은 1994년 7월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권력을 승계한 지 17년 5개월 만이다. 김 위원장이 후계자로 공식 지명된 1974년을 기점으로 보면 37년 만에 북한 권력체제에 대변혁이 생기게 됐다.북한은 김 위원장의 시신을 금수산기념궁전에 안치하고 국가장(國家葬)으로 장례를 치르기로 했다. 애도기간은 29일까지로 정했다. 또 28일 평양에서 영결식을 개최하고, 29일에는 중앙추도대회를 열기로 했다. 외국 조문단은 받지 않기로 했다.북한 당국은 김정은을 포함해 232명으로 구성된 장의위원회 명단을 발표했다. 장의위원장은 별도로 표기되지 않았지만 김정은의 이름을 제일 먼저 호명함으로써 사실상 위원장 역할을 할 것임을 시사했다.발표문은 “김정은 동지의 영도에 따라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꿔 오늘의 난국을 이겨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은을 ‘영도자’로 호칭한 것은 처음이다.중국 당·정·군 지도부는 이날 김정은 지도체제를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 중국 공산당과 전국인민대표대회, 국무원, 중앙군사위 등 4개 기관 명의로 북한에 보낸 조전은 “조선 인민들이 노동당을 중심으로 단결해 김정은 동지의 영도하에 계속 전진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중국 지도부가 공식적으로 김정은을 김 위원장 후계자로 거론한 것은 처음이다.아울러 중국은 대량 탈북사태 발생에 대비해 인민해방군 2000여 명을 지린(吉林) 성 린장(臨江) 투먼(圖們) 훈춘(琿春) 등 압록강 상류와 두만강 유역에 배치했다고 홍콩과 대만 매체가 19일 보도했다. 정보센터는 특히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이 김 위원장 장례식에 참석할 것이라고 전했다.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69)이 17일 오전 8시 30분 과로로 열차에서 사망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19일 일제히 보도했다. 이로써 1994년 김일성 주석 사후 1998년 국방위원장으로 김정일 시대를 연 지 13년 만에, 1974년 후계자로 공식화된 지 37년 만에 김 위원장의 통치가 막을 내렸다.이에 따라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에 대격변이 예상된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낮 12시 ‘중대보도’를 통해 “김 위원장이 2011년 12월 17일 8시 30분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다가 겹쌓인 정신·육체적 과로로 하여 열차에서 서거하셨다”고 전했다. 조선중앙TV도 ‘특별방송’을 통해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 장병들과 인민들에게 고한다”며 김 위원장 사망 소식을 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일 동지의 질병과 서거 원인에 대한 의학적 결론서’라는 제목의 보도에서 “겹쌓인 정신 육체적 과로로 17일 야전열차 안에서 중증급성 심근경색이 발생되고 심한 심장성 쇼크가 합병됐다”며 “18일 진행된 병리해부 검사에서 질병의 진단이 완전히 확정됐다”고 전했다. 통신은 또 ‘국가장의위원회 공보’ 보도를 통해 29일까지를 애도기간으로 한다며 외국의 조의대표단은 받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통신은 “김 위원장의 시신을 금수산기념궁전에 안치하고 17일부터 29일까지를 애도기간으로 하며 28일 평양에서 영결식을 거행한다”고 알렸다. 북한은 김 위원장의 후계자인 3남 김정은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등 232명으로 장의위원회를 구성했다. 김 위원장은 올해 두 차례 중국을 방문하고 러시아도 방문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하지만 대북 소식통은 최근 “김 위원장이 휠체어를 제대로 탈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다”고 전하는 등 건강악화설이 끊이지 않았다.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이 처음 포착된 것은 2008년 9월 9일 북한 정권 수립 60주년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부터다. 당시 국가정보원은 국회 정보위원회에 “뇌졸중 또는 뇌일혈로 보이지만 하나로 특정하기는 어려운 상태”라고 보고한 바 있다. 이후 80일 만에 나타난 김 위원장은 왼팔이 부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김 위원장은 북한의 최고 실력자로 국방위원회 위원장, 노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 인민군 최고사령관, 정치국 상무위원, 최고인민회의 제10기 대의원 등의 공식적인 직함을 지녔다. 1994년 아버지 김일성 주석이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후계자로서 권력을 승계했다. 앞서 김 위원장은 1967년 노동당 핵심 부서인 조직지도부 과장을 거쳐 1971년 부부장으로 승진했고 1973년 당 문화예술부장을 거쳐 당 조직 및 선동선전 담당 비서라는 막강한 지위에 올랐다. 1974년 당 정치위원(현 정치국원)이 되면서 후계자로서의 기반을 다졌다.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류우익 통일부 장관(사진)은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에 응한다면 대북 지원을 확대할 용의가 있다는 뜻을 밝혔다. 류 장관은 18일 오전 8시 방송된 채널A의 ‘대담한 인터뷰’(진행 배인준 동아일보 주필)에 출연해 “겨울이 가기 전 이산가족들에게 따뜻한 소식을 줄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의 대가를 요구한 것에 대해 “북한은 북한 나름의 입장과 여건이 있을 테니까 우리 기준으로 일방적이고 획일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을 수 있다”며 “절차상으로 어려움이 있다면 서로 도와가면서 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북-미 간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은 상황에서 나온 류 장관의 이 같은 발언은 대북 지원을 늘려서라도 이산가족 상봉을 추진할 의사가 있음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대규모의 쌀, 비료 지원은 불가하지만 인도적 지원을 대폭 확대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류 장관은 또 북한의 천안함, 연평도 도발에 대해 “(북한이 도발을) 인정한다고 해서 한국이 비난하고 북한을 궁지로 몰거나 북한 체제에 손실을 가할 생각은 전혀 없다”며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조치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남북 정상회담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여건이 갖춰지지 않았고, 실제로 추진하는 것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의 북한 방문에 대해서는 “만약에 정치적으로 이용된다고 한다면 마땅치 않다. 남북관계의 진전이 조금 더 이뤄지면 그런 일을 하기에도 좋겠다”고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여당의 중진 의원이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강하게 비난했다. 국회 정보위원장인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3선)은 16일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주최로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전환기의 한반도, 새로운 대북·통일정책 구상’ 토론회에서 “우리 정부, 우리 당의 정부지만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상당히 아쉽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정부가 ‘원칙 있는 포용’을 이야기했지만 사실 포용은 거의 없었다. 과연 (대북정책의) 원칙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또 “국제적인 경제위기 때문에 그랬겠지만 이 정부의 우선순위에 과연 대북문제가 있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라고 지적했다. 대북정책에 대한 반성과 변화도 촉구했다. 그는 “북한의 기아나 어려운 부분을 일부 개선할 수 있는데도 개선하지 않은 상황에서 비난만 한 것이 잘한 것이냐”며 “북한에 대해 (취한 정책의) 모든 부분이 잘못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고 말했다. 그는 “(새 정부의) 새 대북정책이 시작되기 전에 이 정부가 만든 걸림돌을 조금씩 치워주고 가는 것도 현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낸 인명진 목사도 비판에 가세했다. 인 목사는 토론회에서 “억지와 억압 정책으로 4년을 보낸 것”이라고 말했다.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김황식 국무총리(사진)는 울보?’김 총리가 또 눈물을 보였다. 16일 경기 의왕시 서울소년원을 방문한 자리에서다. 김 총리는 원생들을 격려하다 마침 강당에서 연습을 하고 있던 합창반을 찾아갔다. 소년원생들이 들려준 곡은 드라마 ‘첫사랑’의 주제곡인 ‘포에버’. 애절한 멜로디를 듣던 김 총리의 눈자위는 어느새 붉어졌다. 그는 “여러 어려움 때문에 성장통을 앓고 있지만 희망과 꿈, 자신감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 총리는 눈물을 자주 보인다. 이달 4일엔 화재 진압 중 숨진 소방관들의 빈소에 경호팀 없이 조용히 찾아가 순직자의 어린 아들을 위로하다 눈가를 붉혔고, 지난달 23일 연평도 포격도발 1주년 추도식에서는 우산도 없이 장대비를 맞으며 한참 눈물을 흘렸다. 올해 1월 파라과이 아순시온의 한국학교를 방문한 자리에서는 어린이들의 전통악기 연주 등을 보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울음을 쉽게 그치지 못했다. 지난해 9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는 파독(派獨) 광원과 간호사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어찌 그 사람들을 잊을 수 있겠냐”며 울먹였다. 30년 넘게 판사로 재직하다 감사원장을 지낸 김 총리는 논리적이고 냉철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지인들은 “김 총리는 누구보다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가 눈물을 흘린 곳은 국가를 위해 희생한 이들, 사회에서 상처받은 이들 앞에서란 점에서 눈물은 많지만 가볍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소통과 위안의 아이콘’이란 별칭도 붙었다. 여권 관계자는 “불통 이미지를 갖고 있는 MB 정부에 따뜻한 소통 이미지의 김 총리가 있다는 건 다행”이라고 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