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엽

조종엽 차장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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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종엽 차장입니다.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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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25~2025-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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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주 상인 영업자료… 한성 주민등록…

    이번 고려대 해외한국학자료센터의 조사에서는 국내 조선 상업사 연구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문서 등 고문서가 다수 발견됐다. 책으로 묶인 ‘성책본(成冊本)’ 250여 책과 낱장 문서 3500여 점 등이다. 대표적인 것이 19세기 면주(綿紬·명주)를 팔던 상인들이 남긴 자료다. 국가에 면주를 납품하던 면주전 상인과 왕실, 호조의 관계, 면주전 운영 실태 등이 드러난다. 1738∼1873년 작성된 주민등록신고서와 주민등록등본 역할을 했던 한성부 주민의 준호구도 다량 확인됐을 뿐 아니라 서울 양반의 재산 운영과 경제 규모를 볼 수 있는 분재기도 나왔다. 안승준 한중연 고문헌연구실장은 “국내에 남아 있는 고문서는 영남과 호남의 지방 양반 가문 자료가 대부분인 데 비해 ‘가와이 문고’ 고문서에는 한성부 주민 자료가 많아 사료적 가치가 크다”며 “국내에는 상업 문서가 극히 드물어 이번 발견 자료는 상업사 연구의 중요 자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조선시대 동래 왜관(倭館)의 풍속과 풍경을 일본인이 그린 두루마리 ‘조선도회(朝鮮圖繪)’도 발견됐다. 왜관 건물의 명칭이 하나하나 기록돼 있고 동래부사와 대마도 참판사의 연회, 왜관에 온 일본인이 용두산에서 호랑이를 사냥하는 모습, 시장 풍경 등이 세세하게 그려져 있다. 종옥전(宗玉傳)을 비롯해 국내에는 없는 유일본 한글 소설과 희귀 이본(異本) 소설도 발견돼 국문학 연구의 중요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연구팀은 가와이 박사가 수집했지만 가와이 문고의 현재 목록에는 빠져 있는 서적 70여 종도 새로 발견하고 서지 목록을 작성했다. 이 소설들에는 독자의 감상 등이 함께 기록돼 있어 가치가 크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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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시대 학술-예술 희귀 자료… “수십년 연구거리 나왔다”

    “조사 때마다 중요 자료가 나오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놀랐죠. 한국학 전 영역을 망라하는 귀중본들이 쏟아졌으니까요.” 박영민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는 최근 고려대 해외한국학자료센터의 일본 교토대 조사에 참여한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이 조사는 2014년 이후 3번째 진행된 것으로 ‘가와이 문고’ 등을 포함한 광범위한 자료가 대상이 됐다. 가와이 문고는 가와이 히로타미(河合弘民·1873∼1918) 박사가 수집한 것을 박사 사후 교토대가 구입한 자료다.○ 완숙한 말년 추사 글씨 “이 도끼 이 촉이 꼭 숙신(肅愼)의 것이라면/동이(東夷)들은 대궁(大弓)에 능하단 게 상상되네”(‘석노시·石노詩’ 중)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추사 김정희의 친필 시첩인 노설첩에 담긴 석노시는 도끼 등 유물을 가지고 땅의 주인이 누구였는지를 읊는 내용으로 고고학자로서의 추사의 면모를 보여준다. 시를 쓴 뒤 ‘秋史(추사)’ ‘金正喜印(김정희인)’이라고 인장을 찍었다. 서첩 소장자는 추사의 동생 김상희의 손자인 김문제(1846∼1931)로 그의 호 ‘위당(韋堂)’이 인장으로 찍혀 있다. 김문제의 손자가 김익환인데 1934년 신조선사에서 추사의 문집을 10권 5책으로 간행할 때 주도적으로 참여한 인물이다. 추사가 ‘석노시’와 ‘영백설조’를 각각 쓴 예는 있으나 두 시가 한 서첩으로 묶인 것은 없다. 서첩의 제목 노설첩도 두 시의 제목에서 한 글자씩 딴 것이다.○ 이본(異本) 등장으로 새 연구 필요 이번에 발견된 교토대 소장 경세유표는 11책 완질본으로 책 표지, 장정, 행수와 글자수, 책 상단의 주석 등이 이른바 다산학단의 기존 가장본과 일치한다. 김보름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는 “책에 구멍을 뚫는 침장 방법 등은 기존 가장본 중에서도 가장 전형적인 형태를 갖고 있다”며 “상단의 주석에 신(臣)이라는 글자가 없는 것 등을 고려하면 가장본 중에서도 이른 시기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인장을 통해 추정해 볼 때 이 책은 19세기 중후반 인물인 이겸하(李謙夏)를 통해 일본으로 건네졌고, 다시 가와이 히로타미에 의해 1919년 교토대로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번 자료는 일제강점기인 1936년 신조선사에서 다산의 전집을 간행할 때에도 참고하지 못한 자료로 추정된다. 2012년 발간된 여유당전서 정본 역시 이번 발견으로 추가 대조 작업이 필요해졌다. 조선 초기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묘법연화경도 확인됐다. 세로 약 27.9cm, 가로 950.6cm에 달하는 쪽빛 두루마리에 금니로 법화경을 쓴 것이다. 국내에 소장된 고려시대 ‘감지금니묘법연화경(紺紙金泥妙法蓮華經)’ 1, 3, 4, 6, 7권 등은 모두 보물로 지정돼 있다. 글자의 상하좌우에 흰색의 동그라미가 표시되어 있는 게 이번에 발견된 묘법연화경의 특징이다. 이는 평성, 거성 등 성조를 표시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대 규모, 최고 수준 탁본 확인 영조 시기 영의정을 지낸 김재로(1682∼1759)가 전국의 비문을 탁본해 편찬한 금석집첩(金石集帖)의 전모도 드러났다. 이번에 확인된 금석집첩은 219책으로 탁본이 2300점이 넘고, 지금은 사라졌거나 마모돼 내용을 파악할 수 없는 비문도 상당수 있다. 현재 서울대 규장각에 있는 금석집첩 39책에는 없는 탁본들로 과거 국사편찬위원회의 교토대 조사에서는 존재만 알려져 있던 것이다. 금석집첩은 왕실 종친, 정승, 고위 관료, 스님 등으로 분류하고 망라했다. 탁본의 수준이 탁월하고, 범위로 보아 국가사업으로 진행됐을 가능성이 있다. 조사에 참여한 안승준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헌연구실장은 “현존하는 금석문 탁본 중에 가장 방대하면서도 가장 정제돼 있고 체계적이다”라고 평가했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해외한국학자료센터는 2008년부터 한국학중앙연구원 지원으로 해외 소재 한국 고문헌 자료의 상세 서지정보를 정리하고, 원본 이미지를 고화질 디지털 자료로 만들어 학술 연구에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박영민 교수는 “교토대는 자료 조사 요청에 흔쾌히 응하고 서고를 개방했을 뿐 아니라 자체 비용을 부담해 훼손 자료를 수리해 촬영하도록 하는 등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며 “이 같은 협력은 유례없는 것”이라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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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인간도 날 수 있다”… 불가능에 맞선 용감한 형제

    라이트 형제만큼 ‘늘 갈망하라, 늘 우직하라(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스티브 잡스의 명언이 잘 어울리는 사람들도 드물 것이다. 라이트 형제는 잡스보다 앞선 시대의 인물이지만 그들의 삶은 유사한 점이 많다. 라이트 형제가 자전거포를 열기 전 동생 오빌 라이트는 1889년 고등학생 신분으로 집 뒤에 있는 마구간에서 인쇄소를 창업해 형과 함께 지역 신문을 운영했다. 잡스도 부모의 차고에서 스무 살 때 애플을 설립했다. 그들 모두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끊임없이 도전해 세상을 바꿨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자료에 따르면 2014년 33억 명의 승객이 비행기로 6조 km가 넘게 여행했다. 이 같은 일은 1899년 라이트 형제 중 형 윌버가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연구소에 보낸 편지에서 비롯됐다. “인간의 비행은 가능하고 또 실용적이라는 저의 확신은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이 주제에 관해서 … 논문들을 제공받기를 희망하며….” 당대 비행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괴짜나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실제로 라이트 형제가 비행에 뛰어들기 전까지 50여 년 동안 유치찬란한 비행기계들이 줄을 이으며 웃음거리가 됐다. 워싱턴 포스트는 “인간이 날아다닐 수 없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라고 했다. 동력 없이 활공하는 기계를 실험했던 독일의 오토 릴리엔탈이 실험 중 사고사한 게 1896년이다. 라이트 형제는 두려움과 조롱을 딛고 1903년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외딴 곳 아우터뱅크스의 키티호크 마을에서 첫 동력비행에 성공했다. 책 ‘라이트 형제’는 치밀하게 라이트 형제의 인간적인 면을 추적해나가면서 관련 문서, 일기, 가족간에 오간 편지 등 기록으로 드러난 사실만 호들갑 없이 기술한다. 그럼에도 거센 바람이 부는 어촌 키티호크의 모래언덕에서 고군분투하는 형제의 모습이 생생히 그려진다. 오하이오 주 데이턴의 라이트 형제의 집 구조를 묘사하면서는 “옆집과의 거리는 60cm”라고 쓰는 등 디테일을 놓치지 않는다. 저자는 미국 대통령의 전기 ‘트루먼’과 ‘존 애덤스’로 퓰리처상을 2번이나 받았다. 진취적인 당대 미국의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라이트 형제의 성공은 천재성과 성실성뿐만 아니라 주변인들의 도움에서 가능했다.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외지인들에게 도움을 아끼지 않은 키티호크의 주민들, 자신의 연구를 뒤집는 내용이 담긴 윌버의 강연문을 ‘무서울 만큼 훌륭한 논문’이라고 평가하며 도운 토목공학자 옥타브 샤누트, 일찌감치 라이트 형제의 천재성과 비행기계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허프먼 평원에서 목격한 형제의 비행을 자신의 잡지에 알린 사업가 에이머스 루트 등이다. 오늘날 한국에서 라이트 형제 같은 이들이 있다면 이런 호의를 기대할 수 있을까. 투자 조건으로 대학 졸업장을 요구한다거나(라이트 형제는 고교 졸업장이 없다), 아이디어를 도용당한다거나 하는 일을 겪지나 않을지. ‘비행의 발견’은 경영 컨설턴트였다가 어릴 적 파일럿의 꿈을 이루기 위해 비행 교육을 받고 영국 항공의 선임 부기장으로 일하는 저자의 책이다. 비행의 물리적 측면뿐 아니라 조종사로 일하며 느끼는 감성적인 세계를 담았다. 비행의 로망을 잊지 않은 이들이 흥미롭게 읽을 만하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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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성우 “독재와 싸우던 젊은 날에는 벼랑 위를 걷는 것 같았다”

    “세상을 바꾸는 싸움의 전사를 자처하며 좌충우돌 떠돌던 젊은 날에는, 그 하루하루가 마치 까마득히 높은 벼랑 위를 걷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저항시인으로 잘 알려진 양성우 시인(74)이 군부독재와 싸우던 젊은 날의 이야기를 회고록 형식으로 담은 ‘지금 나에게도 시간을 뛰어넘는 것들이 있다’(일송북·사진)를 펴냈다. 그는 1975년 자신의 시 ‘겨울공화국’을 낭송한 사건으로 교사직에서 파면됐다. 그는 22일 열린 간담회에서 “자랑거리는 없지만 독자와 다음 세대에게 이런 삶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라고 했다. 책에는 양 시인이 조선대부속고 재학 중 4·19혁명 시위를 주도했던 일과 5·16군사정변 직후 교실에서 체포돼 퇴학당한 사연이 실려 있다. 또 전남대 시절의 문학운동과 민주화운동, 고은 신경림 시인과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구성한 일, 작고한 리영희 교수와 문익환 목사와의 만남과 투쟁, 옥중에서 아내와 혼인신고를 한 일 등 민주화운동 시기의 일화가 파노라마처럼 소개돼 있다. “그 즈음의 서대문 감옥은 이미 반체제 민주인사들로 가득했다. 대표적으로 김지하 시인은… 인혁당 사건이 조작되었음을 폭로하는 글을 동아일보에 게재함으로써 다시 구속된 이래 그때까지 5년 가까이 감옥살이를 하고 있었다. … 건너편 사동의 마주보이는 감방에 갇힌 리영희 교수, 그가 거기에 있어서 나는 든든했으며 덜 외로웠고 덜 심심했다. … 우리는 발을 구르고 플라스틱 식기로 철창을 긁어대면서 ‘유신헌법 철폐하라’ ‘긴급조치 해제하라’고 소리쳤던 것이다.” 양 시인은 장편 시 ‘노예수첩’을 1977년 일본 잡지 ‘세카이’에 게재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1979년 가석방됐다. 그가 2012년 재심 중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을 한 옛 형법의 국가모독죄가 2015년 위헌 결정이 나기도 했다. 2009∼2012년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던 양 시인은 이날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한 의견도 밝혔다. “하늘이 이 풀 저 풀을 가리지 않고 비를 내려주고, 그 결과 숲이 우거지는 것처럼 문화예술에 대한 지원은 모두에게 이뤄져야 한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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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5단체 “블랙리스트 관련된 공공기관장 사퇴하라” 성명 발표

    한국작가회의를 비롯한 5대 문학단체가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문학과 예술을 지원하는 공공기관 기관장들의 사퇴를 촉구하는 성명서를 21일 냈다. 성명에 참여한 단체는 국제펜클럽한국본부, 한국문인협회, 한국소설가협회, 한국시인협회 등이다. 이들 단체는 이날 성명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한국문학번역원 등의 기관장은 블랙리스트 집행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즉시 사퇴하라”고 말했다. 또 “예술지원 공공 기관의 주요간부들은 과오를 반성하고 예술인들과 국민에게 사죄하라”며 “문화예술 정책 관계자들은 이와 같은 참사가 재발되지 않도록 객관적이고 공정한 예술지원시스템을 수립하고 이를 시행하라”고 말했다. 다음은 성명서 전문이다. 지난 몇 달 동안 우리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이 야기한 헌정질서 파괴와 탄핵정국의 혼란 속을 숨 가쁘게 헤쳐 왔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으로 대한민국은 엄청난 위기에 내몰렸으나 국민의 단결된 힘과 슬기로 숱한 난관들을 돌파해가는 중이다. 이 국정농단의 핵심에 ‘블랙리스트 사건’이 있다. 박근혜 정권은 정권에 동조하지 않을 것 같은 예술인과 예술단체들 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면서 모든 지원 과정에서 배제하고 악의적으로 고사시키려 한 것이다. 이는 국민의 사상과 정신을 통제하고 표현의 자유까지 억압하겠다는 초헌법적인 발상이며 민주주의 사회의 기본권을 침해한 중대한 범죄행위가 아닐 수 없다. 박영수 특별검사의 수사에 따르면, 청와대는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뒤 이의 집행을 지시하였고, 문화체육관광부는 각 공공기관에 관철시키도록 전달했으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비롯한 각 예술지원 공공기관들은 적극적으로 시행, 집행하였다. 마치 군대 명령체계를 따르듯이 하달되어 예술문화계 전반에 걸쳐 주도면밀하고 집요하게 작동된 것이다. 이와 같은 작태는 과거 군사독재정권에서도 차마 내놓고 시행하지 못했던 문화예술 유린 행위로서 우리 문학인들은 실로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이러한 블랙리스트 관리, 운영사례로 미루어 짐작컨대 이 정권 아래에서는 국민 누구라도 감시와 통제, 배제와 차별의 대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끔찍한 현실인가. 사안이 이렇듯 엄중함에 따라 특검은 블랙리스트 작성과 전달을 주도했던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김종덕,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정관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등을 구속하였다. 그러자, 송수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직무대행(1차관)과 실국장 등 간부들은 지난 1월 23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으며 관련 규정을 고쳐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나섰다. 하지만, 우리 문학인들은 이처럼 권력자 몇이 구속되고 문체부에서 관련 규정을 손보는 등의 미봉책으로 블랙리스트 사건이 일단락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블랙리스트가 문화예술계 전반에서 광범위하게 만들어지고 집행될 수 있었던 것은 예술지원 공공기관의 기관장과 일부 간부들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역할 수행 덕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랙리스트를 이첩 받아 직접적이고 충실하게 실천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한국문학번역원 등 예술지원 기관장과 간부들은 지금껏 최소한의 사과 표명도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블랙리스트 실행의 수족 역할을 담당한 예술지원 기관들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것은 해당 기관장과 책임자들에 대해 공식적인 수사와 그에 상응하는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 예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박명진 위원장은 국정감사 블랙리스트 관련 위증 혐의 및 예술위원회 전체회의 회의록 삭제 조작 혐의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로부터 고발당했으나 그 어떤 사과 표명도 없으며, 이에 따르는 제도적 개선조치도 내놓지 않고 있다. 잘못을 반성하고 죄과를 책임지지 않으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 문학인들이 예술지원 관계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분명한 이유이다. 우리 문학인들은 기다릴 만큼 기다렸으며 참을 만큼 참았다. 더 이상 우리는 영혼 없고 책임 없는 권력의 하수인들에게 문화예술을 맡겨 놓을 수 없다. 말과 글을 통해 우리의 정신문화를 살지게 해온 우리 문학인들은 애써 분노를 억누르며 이후의 조처들을 예의주시할 것이다. 차제에 우리 문학인들은 모든 문화예술 정책과 지원이 그 어떤 권력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이고 자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함을 밝힌다. 문화예술 창조자들, 수혜자들과 함께 끊임없이 소통하고 나누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러한 시스템이 갖춰져야 문화예술인들이 창의적인 예술세계를 펼칠 수 있으며 우리의 정신문화도 찬란한 내일을 꽃피울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문학인들은 헌법재판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탄핵 심판을 국민과 함께 엄중히 지켜보며 이 결과로 대한민국의 헌법질서가 공고해지길 기대한다. 헌법질서가 바로서야 블랙리스트처럼 곪고 썩은 여러 적폐들을 완전히 청산할 수 있다. 특히, 사상·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국민기본권이 다시는 침해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5개 주요 문학단체는 총의를 모아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한국문학번역원 등 문학과 예술을 지원하는 공공 기관장들은 블랙리스트 집행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즉시 사퇴하라. ―블랙리스트 사태에 책임이 있는 예술지원 공공 기관의 주요간부들은 과오를 반성하고 예술인들과 국민에게 사죄하라.―문화예술 정책 관계자들은 이와 같은 참사가 재발되지 않도록 객관적이고 공정한 예술지원시스템을 수립하고 이를 시행하라.2017년 2월 21일국제펜클럽한국본부 한국문인협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소설가협회 한국시인협회(가나다 순)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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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노벨상 시상 연설로 보는 116년의 현대 과학사

    과학 분야(물리, 화학, 생리·의학) 노벨상 시상 연설을 모은 책이다. ‘수상자 연설’이 아니니 착오 없길 바란다. 2014년판에 이어 3년 동안의 시상 연설을 추가한 개정판이다. 매년 12월 20일 열리는 노벨상 시상식에서 노벨위원회는 수상자 선정 사유와 업적을 알려주는 연설을 한다. 청중이 과학자만 있는 게 아닌 만큼 시상위원회는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비유와 농담을 섞어가며 연설한다. “마치 두 반구는 결혼한 지 오래된 남편과 아내처럼 보였습니다.”(1981년 대뇌 반구의 기능과 시각정보화 과정에 관한 연구에 생리·의학상을 시상하며) “그가 제안한 이 작용은 지킬 박사가 하이드로 변하는 과정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1997년 새로운 생물학적 감염물질인 프리온을 발견한 공로에 생리·의학상을 시상하며) 116년의 노벨상 과학 분야 시상 연설은 그 자체로 현대 과학사다. 물리학 시상 연설문을 보면 X선을 발견한 공로로 빌헬름 뢴트겐이 첫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후 방사선의 발견, 양자역학의 발전, 힉스 입자의 증명 등 현대 물리학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과학의 급속한 발전이 체감되기도 한다. 1901년 첫 노벨 화학상은 용액의 삼투 현상을 규명한 공로로 네덜란드의 물리화학자 호프가 수상했다. “그의 연구 결과는 돌턴 이후 원자론과 분자론 분야의 이론화학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입니다.…유기체의 생명 작용이 용액 속에서 일어나는 물질대사 과정에 의해 유지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 연구 결과가 인류에게 공헌하는 바는 막대할 것입니다.”(시상 연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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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 美 뉴욕주립대 명예박사 학위 받는다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68·사진)이 미국 뉴욕주립대의 명예 인문학 박사학위를 받는다고 한국문학번역원이 16일 밝혔다. 문학번역원에 따르면 뉴욕주립대는 “김 원장의 학문적 업적, 한국과 미국의 가교 역할 등을 높이 평가해 김 원장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한다”고 밝혔다. 김 원장은 뉴욕주립대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고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일했으며 2012년부터 문학번역원장을 맡고 있다.조종엽기자 jjj@donga.com}

    • 2017-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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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사-여성학 연구로 한평생… 정년퇴임 앞둔 두 교수의 ‘마지막 강의’

    《‘퇴직은 하지만 연구는 계속된다.’ 2월은 대학에 몸담은 교수들이 정년을 맞이하는 달이기도 하다. 평생 연구에 정열을 쏟고 퇴임하는 두 교수를 동아일보가 만나봤다.》 ●노명호 서울대 교수 “한국의 저력은 다양성에 기초… 정파간 의견 합쳤을때 강해져”고려시대 부모 봉양의 의무와 재산 상속을 비롯해 친족제도에서 남녀 차별이 없었다는 것은 역사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는 지금은 상식이다. 그러나 노명호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66)가 1980년대 연구를 통해 밝히기 전에는 고려도 그저 조선 후기처럼 종법(宗法)적인 부계중심사회라고 잘못 알고 있었다. 고려사 연구의 권위자인 노 교수를 14일 만났다. “1970년대 중반 집대성되던 인류학의 친족제도 연구를 접하고 고려시대를 들여다봤더니 일제강점기 일본 학자들의 주장과 달리 개인이 중심인 ‘양측적(兩側的) 친속(親屬)관계’였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는 동아시아에서도 한국에만 존재한 겁니다. 친족제도는 경제와 마찬가지로 사회의 근간이 되고, 어지간해서 잘 변하지 않거든요. 이게 고대, 고려, 조선이 다 다르다는 건 한국사가 일본 학자들의 시각과 달리 굉장히 역동적이라는 것을 밝힌 거지요.” 단재 신채호가 고려시대 정치사상을 국풍―화풍, 자주―사대의 구도로 봤던 것과 달리, 천하 다원론(多元論)자들이 고려의 국정을 대체로 주도했다는 사실도 노 교수가 밝혀냈다. 노 교수는 “고려시대 동아시아는 명·청이 주도했던 조선시대와 달리 현대적인 다극체제”라며 “다극체제에서 한쪽에 치우친 외교는 위험하다”고 말했다. “화이론(華夷論)자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강국 한곳에 전적으로 의존했습니다. 고려 성종 대 요나라를 무시하고 송나라에만 의존하다가 거란이 침입해오니 사실 파악도 하기 전에 북방의 영토를 떼 주자고 주장합니다. 반면 천하 다원론자인 서희는 거란의 의도를 파악하고 담판을 통해 오히려 압록강 하류 영토를 확보하지요.” 노 교수는 무리하게 금나라 정벌을 주장한 묘청 일파처럼 국수주의자들도 이념에 휘둘린 것은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천하 다원론자들은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대체로 사실 파악을 잘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노 교수는 “역동성이 한국사의 기본 흐름이고 역동성은 다양성에서 나왔다”며 “다양함 속에서도 정파 간에 아는 것, 불확실한 것, 모르는 것을 구별해 가며 의견을 합치했던 때는 위기를 잘 넘겼고, 모르거나 불확실한 것도 아는 것처럼 대응하면 국가가 굉장한 위험에 처했다”고 지적했다. 고려 태조릉인 북한 개성의 헌릉에서 나온 동상이 불상이 아니라 태조 왕건의 동상이라고 밝혀낸 일, 수십 조각으로 찢긴 석가탑 중수문서를 이론의 여지없이 복원하고 판독한 일을 비롯해 그의 연구 업적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다. 퇴임 후에도 고려 친족제도 연구서, ‘고려사와 고려사절요의 새로운 이해’ 등 당장 집필 예정인 책이 여럿이라고 했다.  ●이재경 이화여대 교수 “성희롱이란 말 생긴지 얼마 안돼… 남녀평등, 법 갖춰야 사회도 변해”‘차별’이라는 단어는 1970년대까지만 해도 보편적으로 쓰이지 않았다. 그 무렵 등장한 여성주의자들이 성차별 담론을 제기하면서 한국 사회는 ‘차별’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여성학자로 살아온 이재경 이화여대 여성학과 교수가 27일 퇴임을 앞두고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났다. “6·29 선언 이전까지만 해도 페미니스트들의 이슈는 반정부·민주화였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이 ‘민주화’에서 ‘젠더’로 관심을 집중하기 시작한 게 1990년대입니다. 그때 이화여대에 부임했는데 벌써 25년이 흘렀네요.” 이화여대 사회학과 70학번이던 그는 학부 때 한국의 1세대 여성학자 이효재 교수를 만났다. “이효재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여성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석사 논문을 ‘가족’에 관해 썼는데, 그때만 해도 여성학은 소수 학문이었습니다.” 그가 여성학 공부를 시작할 때만 해도 성희롱, 가정폭력 등과 같은 단어는 쓰이지 않을 정도였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따로 ‘범죄’로 규정하지 않아서다. “‘sexual harrassment’라는 단어가 미국에서 들어왔을 때만 해도 우리나라엔 ‘성희롱’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을 정도였어요.” 1980년 이후 여성사회학 연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각종 법과 제도가 만들어졌다. ‘남녀고용평등법’은 1989년,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1997년, 그리고 가정에서의 여성의 권리를 인정한 호주제 폐지는 2005년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다. “옛날엔 남편이 아내를 구타해도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처럼 심각성을 흐리는 말들만 오갔죠. 법과 제도를 먼저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야 교육도 되고 의식화가 됩니다.” 이 교수는 최근까지도 ‘한국 근대의 여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6·25전쟁 이후 분단, 개발독재 아래 여성들의 모습을 구술로 조명했다. 서구 이론에 따르면 여성들은 근대로 접어들고 핵가족화하면서 전업주부가 되지만 한국 여성들은 달랐다는 게 이 교수의 분석이다. “한국 여성들은 미장원, 계, 공부방 과외 등 가족 생계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경제활동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서구 이론을 뒤집는 결과죠.” 2010년부터 5년간 진행된 연구는 아카이브 형태로 정리돼 현재 이화여대 중앙도서관에 보관돼 있다. “여성 문제에 대한 거시적 연구는 그동안 많이 있었지만 실제 생활이 어땠느냐의 문제는 간과됐습니다. 여성들의 미시사가 많은 주목을 받지 못해도 여성학자이기에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연구라고 생각합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

    • 2017-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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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호승 시인 “청춘들이여, 굴비처럼 소금에 절여지더라도 비굴해지지 말라”

    시인은 등단하고 45년 동안 열두 권의 시집을 냈으면서도 여전히 자신이 나와 남을 진정으로 사랑했는지 고뇌하고 있었다. 4년 만에 새 시집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창비)를 낸 시인 정호승 씨(67)를 13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정 씨는 “그동안 나와 타자를 사랑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와서는 사랑이 조금 결핍된 게 아니라 바닷물처럼 많이 결핍돼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새 시집에도 그런 고민이 묻어난다. ‘아직 인간의 사랑을 확신해본 적이 없어/그동안 나의 키스는 다 거짓이다’(‘오늘의 혀’에서) 정 씨는 “자기기만에 빠져 있었다고 볼 수 있다”며 “욕심을 버리고 나 자신의 결핍을 인정해야 나와 타자를 진정 사랑하며 남아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별이 다 빛나지 않음으로써 밤하늘이 아름답듯이/나도 내 사랑이 결핍됨으로써 아름답다’(‘결핍에 대하여’에서) 시에서 시인 개인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하자 정 씨는 침묵과 은유를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답했다. “가능한 한 감추고 깎아내는 과정에서, 묵언과 침묵 속에서 시가 완성되는 지향을 발견하려고 지금까지 노력해 왔습니다. 독자가 자신의 삶과 연관돼 ‘나의 시’라고 느끼면서 제 시가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옷이 되는 것 같아요.” 대중의 사랑을 받는 정 씨의 여러 시 중에서도 ‘울지 마라/외로우니까 사람이다’(‘수선화에게’에서)라는 시구가 유명하다. 정 씨는 “이 한마디가 많은 사람의 가슴속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될 줄은 전혀 생각도 못 했다. 때로 이 시구가 나를 위로해줄 때도 있다”며 자리에 누워계신 어머니 얘기를 꺼냈다. “여러 인간의 본질 중에 외로움도 있지요. 95세로 죽음이 머지않은 어머니의 외로움을 제가 알지요. 얼마나 외로우시겠어요. 어머니를 사랑하는 내가 그 외로움을 어떻게 해드릴 수가 없어요. 손잡고, 이야기하고, 뽀뽀를 해드리거나 할 뿐이죠. 어머니의 인간으로서의 존재의 외로움은 어머니 자신이 감당할 수밖에 없어요.” 새 시집에는 청년들을 위해 쓴 시도 있다. “부디 너만이라도 비굴해지지 말기를/(…)꾸덕꾸덕 말라가는 청춘을 견디기 힘들지라도/(…)/돈과 권력 앞에 비굴해지는 인생은 굴비가 아니다”(‘굴비에게’에서) 청춘이 원래 아픈 것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갖는 청년이 많다고 하자 정 씨는 “이해한다”면서도 모진 3년간의 군대 생활이 자신을 ‘굴비’로 만들었다고 했다. 정 씨는 “인간의 폭력성과 이기심, 무모함으로 이뤄진 집단의 목적이 얼마나 허구적인가 하는 것을 거기서 다 배웠다”며 “천일염에 푹 절여지는 것을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했다. 시집 제목도 반어적이다. “희망이라는 나무는 절망이라는 흙 속에 뿌리를 내려서 크는데, 지금까지는 저도 절망의 가치를 폄하하거나 도외시했지요. 절망이 있는 희망이야말로 진짜 희망입니다.” 시집에는 문예지에 발표되지 않은 시가 3분의 2다. “물론 청탁을 받으면 시를 보내겠지만 이제 문단의 주요 매체에서 소외될 나이라고 봐야죠. 하하하. 그리고 저는 시집도 발표의 장이라고 봅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청춘은 미래가 다양하지만 나에게는 시인으로서의 미래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남아있는 것은 시인으로서의 죽음이겠지요.”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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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2억4000만자 ‘승정원일기’ AI로 번역한다

    올해부터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AI)으로 한문 고전이 번역된다. 첫 대상은 고전 번역의 최대 숙원 사업 중 하나인 ‘승정원일기’로, 앞으로 45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번역 기간을 AI 번역을 통해 27년가량 단축해 18년 뒤에는 마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정보화진흥원 관계자는 “미래창조과학부가 본원을 통해 진행하는 ‘2017년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공공 서비스 촉진 사업’의 과제 중 하나로 한국고전번역원의 ‘인공지능 기반 고전 문헌 자동 번역 시스템 구축 사업’을 확정했다”라고 최근 밝혔다. 예산(20억 원)도 확정돼 올 12월에는 인공지능이 한문 고전을 번역한 첫 결과물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승정원일기는 조선의 최고 기밀 기록으로 사료로서의 가치뿐 아니라 스토리텔링 활용 가능성도 무궁무진하지만 1994년 번역을 시작했는데도 번역률이 20%가 안 된다. 3243책, 2억4000만여 자에 이르는 방대함 탓이다. 고전번역원은 향후 일성록(日省錄)이나 재번역 중인 조선왕조실록, 일반 문집에까지 인공지능 번역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구글 번역기를 비롯해 우리 시대에 쓰이는 언어를 서로 번역하는 인공지능은 이미 여럿 나와 있지만 과거 문헌을 번역해 현대와 시대적 소통을 모색하는 인공지능은 이번이 세계 최초다. 중국에 옛 한문을 현대 중국어로 옮기는 서비스가 있다고 알려졌지만 기본적으로 같은 언어여서 비교 대상이 안 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고전번역원의 AI 번역에는 인공신경망번역(NMT·Neural Machine Translation) 기술이 적용된다. 스스로 학습하며 번역 수준을 향상시켜 나가는 딥러닝 방식으로 이세돌 9단과의 대국에서 승리한 인공지능 ‘알파고’와 크게 보면 같은 범주다. 물론 바둑 대국을 하는 알파고와는 다른 알고리즘이다. 번역 작업은 우선 기존에 전문 번역자들이 번역해 놓은 승정원일기의 영조 때 기록 20만∼30여만 문장의 ‘코퍼스(말뭉치)’를 인공지능에 입력한다. 한문 원문과 우리말 번역문을 함께 입력하기 때문에 이를 ‘병렬 코퍼스’라고 부른다. 이 같은 빅데이터가 구축되면 인공지능이 기계학습을 통해 번역 모델을 생성한다. 여기에 아직 번역되지 않은 다른 원문을 새로 입력하면 자동으로 번역 결과물을 내놓게 되는 방식이다. 조선시대라고 해도 500년에 걸쳐 사용된 용어 등이 시기별로 다르기 때문에 인공지능의 학습 자료가 되는 코퍼스도 시기별로 따로 입력해야 한다. 고전번역원 관계자는 다양한 자동 번역 방식 중 NMT를 선택한 데 대해 “정형화된 번역이 쉽지 않은 한문 문장의 맥락에 따라 인간의 번역처럼 유려하게 옮기는 데 적합할 것으로 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인공지능 번역이 혹시 고전번역교육원 수료생 등의 미래 일자리를 빼앗는 건 아닐까. 백한기 고전번역원 고전정보센터장은 “당장은 인공지능이 초벌 번역 수준의 결과물을 낼 것으로 보이고 주석, 원문 대조, 교감, 학술 연구 등은 지금의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라며 “인공지능은 역자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역자의 업무를 지원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의 고전 번역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보다 고전 자료의 방대함이다. 조선왕조실록 등 주요 고전 외에도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성균관대 존경각 등에 엄청난 양의 고전이 원문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국내 전문 고전 번역자는 약 200명 수준이다. 이명학 고전번역원장은 “주요 고전의 번역에만 약 10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신기술을 통해 번역 속도를 높일 필요성이 절실하다”라며 “인공지능이 우리 고전의 번역을 대폭 앞당길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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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好통/조종엽]촛불 이후엔… 오늘과는 다른 내일로

    ‘촛불 이후 한국사회를 말한다.’ 최근 동아일보가 보도한 기획 시리즈(5회)의 제목이다. ‘이후’를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독자의 질정(叱正)도 있었다. 탄핵 인용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향후 정국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지적이리라. 그러나 시민 다수가 인도에서 아스팔트로 내려서면서 재확인하고 서로 공유했을 분노는 언론이 떠들든 말든,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든 말든 다시 삼켜질 수도, 없었던 게 될 수도 없다. 이 점은 촛불집회 참여자나 태극기집회 참여자나 마찬가지다. 이번 시리즈 중 전상진 서강대 교수가 지적했듯이 불만이 누적됐다는 데는 좌우가 따로 없다. 취재 결과 학계의 고민은 깊었다. 학자들은 망설이면서도 고뇌 속에 키워 온 대안을 제시했다. ‘다당제와 의회중심주의’(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건 ‘청년의 정치세력화’(신경아 한림대 교수)건 ‘다중(多衆·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집단)의 요구 해결’(임혁백 고려대 교수)이건 결론은 같았다. 정당 정치가 민주주의 제도의 대표성, 청년·여성·노인 문제, 세대 갈등, 양극화된 이데올로기 대립 등을 해결할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대선 주자들이 사흘이 멀다 하고 등락하는 여론조사의 지지율에만 신경 쓰고 있는지,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에게 제도권 정치의 대안을 내놓으려 고민하고 있는지는 모른다. 쾌도난마와 같은 해법은 존재하지도 않겠지만, 시민들이 대선 주자들에게서 새로운 전망이 담긴 언어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4·19혁명 이후 5·16군사정변이 일어났고, 6월 민주항쟁 이후 첫 직선제 대통령으로 12·12사태의 주역이 당선됐다. 역사의 두 얼굴을 이해할 만한 경륜을 기자는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취재 중 만난 한 교수는 “시민들의 행동에 따른 정치적 성과를 의도치 않은 세력이 가져가는 ‘하이재킹’(납치)을 우려한다”면서 “정당의 역할이 중요한데, 사실 기성 거대 정당들은 별로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걱정 섞인 전망을 내놨다. 대한민국의 ‘오늘과는 다른 내일’은 어떤 모습으로 올 것인가.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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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봄을 기다리는 시인의 살가운 말씨

    “저는 이월이요,/라고 서슴지 않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눈바람이 매운 이월이 끝나면,/바로 언덕 너머 꽃피는 봄이 거기 있기 때문이지요.”(‘봄꿈을 꾸며’에서) 입춘이 지났는데 추위는 더 기승을 부린다. 봄이 오기는 오는가. 책은 오랑캐 땅에 핀 풀꽃 같은 서정시 33편을 모은 시집이다. 저자는 등단 54년 동안 700여 편의 시를 발표했고, 한국시인협회장을 지냈다. 평소 시를 잘 읽지 않는다 해도 그의 시는 낯익은 이들이 많을 게다. 낙엽 가득한 등산로 중간에서, 인파 가득한 지하철역 스크린도어에서, 영화 상영을 기다리는 극장 공익광고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곳곳에서 어렵잖게 그의 시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여/상처받지 않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추운 겨울 다 지내고/꽃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그대 앞에 봄이 있다’에서) 난해하지 않다. 읽다 보면 언 몸이 발가락 끝부터 간질간질 녹아온다. 소리 내 읽을 때 맛이 더 산다. 기다리고, 절망하고, 상처 입은 이들의 심정을 헤아리고 공감하면서 위안과 안식을 건넨다. 그의 시가 널리 사랑받아온 이유일 게다. 이남호 문학평론가는 “시의 산전수전도 다 겪은 노(老)시인은 이제 높은 뜻을 만들려고 긴장하지 않으며, 멋진 기교의 언어를 구사하려고 애쓰지도 않으며, 새로운 시의 비경을 찾아 헤매지도 않는다. 반백 년의 시력(詩歷)은 시인으로 하여금 일상의 느낌과 생각이 그대로 시가 되게 했다”고 평했다. “우산 하나로 이 빗속에서 무엇을 가리랴/…/아직 우리에게 사랑이 남아있는 한/한 번도 꺼내 쓰지 않은/하늘 같은 우산 하나/누구에게나 있다”(‘우리들의 우산’에서)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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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소설을 통해 본 조선시대 ‘길 떠난 여성’들

    여성과 길의 관계는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조선 사대부가의 여성은 ‘별일’이 있어야 길을 떠날 수 있었지만 근현대 문학은 대도시나 해외에서 활약하는 신여성을 그렸다. 고전 소설에서 길 떠나는 여성은 어떻게 그려졌을까. 정선희 홍익대 교수(47)는 8일 한국학중앙연구원과 한국고전여성문학회가 연 학술대회 ‘길 위의 여인들’에서 ‘길 떠나는 여성들: 피화(避禍)와 가출, 납치, 유배, 축출’을 발표했다. 발표에서 정 교수는 삼대록(三代錄)계 국문 고전소설을 살폈다. ‘○씨삼대록’ 같은 제목을 갖고 있는 삼대록계 소설은 할아버지부터 손자에 이르는 집안의 이야기를 다루며 17세기 후반∼18세기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소설 속 여성들은 왜 집을 떠났을까. 먼저 ‘가출’이다. ‘유씨삼대록’의 진양공주와 유세창의 아내 설초벽, 유세필의 아내 박 씨 등은 시가 어른들을 설득해 자발적으로 집을 나간다. 남편이 자신을 소외시키거나 난(亂)이 벌어졌을 때 가출해 자신만의 공간이나 친정 등에서 사는 것. 정 교수는 “친정 가문에 대한 자부심이 크고, 효심이 지극한 여성 등장인물이 이런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화(禍)를 피하기 위해 집을 나서기도 한다. ‘조씨삼대록’의 유현의 아내 정 씨, ‘임씨삼대록’의 임월혜, 주난벽 등이다. 이들은 남편이나 시부모 살해, 간통 등의 누명을 쓰고, 밤에 몰래 도망 나오거나 강에 몸을 던진다. 이 밖에 납치, 유배, 축출 등의 이유로 집을 떠난다. 집을 나선 소설 속 여성들은 주로 암자나 산 등 인적이 드물고 도승이 있는 초월적 공간에서 출산을 하거나 도술을 배우며 액운이 다하기를 기다렸다. 악녀로 규정되는 여성들은 오랑캐 땅에서 왕비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음란함을 무기로 왕들을 유혹해 권력을 잡은 뒤 자신을 축출한 가문에 복수하고자 했다. 정 교수는 “여성들이 길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이야기는 당대인들의 운명론적 세계관과 초월적 가치관을 보여 주는 한편으로 당대 여성 독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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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경아 한림대 교수 “청년에 참여기회 주는 정치마당 절실”

    “돈도 실력이야. 능력이 없으면 너희 부모를 원망해”라는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의 말이 청년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촛불집회의 정서 저간에 ‘수저계급론’이나 ‘헬조선’ ‘n포 세대’ 등으로 요약되는 청년 세대의 불만이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은 낯익다. ‘촛불 이후’ 청년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할까. 청년세대를 인터뷰하며 연구해 온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57)를 최근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만났다. 그는 먼저 “촛불집회에 나오고 싶어도 못 나오는 대학생들이 많다”는 얘기부터 꺼냈다. “많은 학생들이 수업이 없는 주말과 방학에 아르바이트를 몰아서 하며 생활비와 학비를 벌고 있어요. 호프집, 예식장, 빵집 같은 곳에서 8∼12시간씩 일합니다. 남학생은 공사 현장에서, 여학생은 공장에서 생산직 미숙련 노동자로 일하기도 합니다. 이런 젊은이들은 촛불집회 참여는 꿈도 못 꾸는 거지요. 이게 현실입니다.” 신 교수는 청년들의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청년층은 중장년층에 비해 정치에 무관심해 선거에서 표의 영향력이 작고, 이에 따라 정책의 우선순위에서도 뒤로 밀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촛불집회에서 드러난 것처럼 청년들이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라는 게 신 교수의 말이다. 실제 청년들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정치 관련 정보를 주고받으며 잘 알고 있지만, 기성 정치를 불신하고 거기서 희망을 갖지 못할 뿐이라는 것이다. 신 교수는 “‘부정축재자 재산을 몰수해 사회에 환원하자’는 주장을 하는 군소정당에 가입해 활동 중인 학생도 만났다”며 “학생은 기성 정당에는 공감하지 못했고 ‘공정’을 강조하는 그 정당의 유인물을 보고 취지에 공감해 가입했다고 했다”고 전했다. 문제는 기성 정치권이다. 신 교수는 여야를 막론하고 선거철에만 청년 세대를 이용할 뿐 실제 그들의 의견을 반영하지도, 정치적 대표자로 성장할 기회를 주지도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젊은이들이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가 활성화되면 정치 세력이 암암리에 허위 정보를 올리는 등 구성원들에게 정치적인 싸움을 건다”며 “반대하는 구성원이 나가면 특정 세력에 점령돼 ‘××빠’의 공간이 돼 버린다”고 했다. 표를 염두에 둔 접근이 아니라 청년들의 자율적인 정치적 조직화를 지원해야 한다는 게 그의 쓴소리다. 정부의 역할도 강조했다. 차기 정부가 청년을 위한 부처를 설치하는 등 청년 문제 해결에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최저임금은 수많은 비정규직 청년의 삶과 직결되지만 최저임금위원회에 2015년까지 청년은 한 명도 들어가 있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정부를 포함해 기존의 청년 고용 관련 위원회와 협의회는 회의가 몇 번 열리지도 않는 등 유명무실했다는 비판도 잊지 않았다. 공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청년을 적극 포함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청년 내부에도 다양한 집단이 각자의 문제를 겪고 있어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가장의 실직이나 가정의 해체를 겪으며 자란 청년들이 많습니다. 복지가 미비한 상황에서 사적 보호망인 가족마저 무너진 것이죠. 중간층도 한순간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괜찮은 직장에 취업한 청년들이 기업의 병영 문화를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오기도 합니다.” 신 교수는 청년들이 졸업 뒤 직장을 가지고 독립하는, 지금은 무너져가는 생애 과정의 ‘사이클’을 복원해야 한다고 했다. 그의 대안은 중소기업 육성이다. 몇 해 전 연구차 스웨덴과 덴마크를 다녀왔다는 그는 “두 나라 모두 세계적인 복지국가지만 경제가 대기업 중심인 스웨덴은 청년 실업률이 비교적 높은 반면 종업원 5인 이하 기업이 전체의 90%를 넘는 덴마크는 낮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공공 영역과 대기업의 고용 확대를 말하지만 이로써는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신 교수는 “연구개발(R&D) 예산이 일부 대기업에 집중 지원되는 등 극단적인 대기업 우선 정책 대신 중소기업을 육성해 ‘강소(强小·작지만 강한) 기업’이 많이 나오면 청년들이 취업할 양질의 일자리가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 교수는 “지금 청년들의 분노는 불평등보다도 불공정에서 나온다”며 “이들이 직장을 갖고, 결혼해 아이를 낳도록 돕는 데 전력투구해야 한국의 미래가 있다”고 강조했다.  ○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20여 년 동안 가족·젠더(gender)·노동사회학을 연구해 온 중견 사회학자다. 한국여성연구소 부소장, 한국여성단체연합 노동위원회 연구위원, 상지대 민주사회정책연구원 연구교수 등을 지냈다. 다양한 집단을 심층 인터뷰하는 질적 연구를 주로 해 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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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벨문학상 알렉시예비치 등 해외문학 거장 15명 서울 온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벨라루스의 저널리스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와 프랑스 작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를 비롯한 해외 문학 거장들이 5월 한자리에 모인다. 대산문화재단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5월 23∼25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교보빌딩 내 컨벤션홀과 세미나룸에서 ‘2017 서울국제문학포럼’을 연다고 7일 밝혔다. 올해 포럼은 ‘새로운 환경 속의 문학과 독자’를 주제로 열린다. 프랑스 파리7대학 명예교수로 정신분석 및 페미니즘의 대표적 이론가인 줄리아 크리스테바, 소말리아 작가로 아프리카 탈식민주의 문학의 거장인 누르딘 파라, 미국의 계관시인으로 두 차례 추대된 로버트 하스, 인도의 대표적 작가 아미타브 고시 등 해외 작가 15명이 참석한다. ‘허삼관 매혈기’로 국내 독자에게도 친숙한 중국의 위화(余華), 체 게바라의 아들로 쿠바에서 다수의 문학상을 받은 오마르 페레스, 일본의 대표적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최연소로 받았던 히라노 게이치로(平野啓一郞) 등도 참여한다. 한국에서는 고은 유종호 정현종 현기영 김혜순 황석영 오정희 은희경 씨를 비롯해 문인 30여 명이 참가한다. 기조강연, 부문별 발제와 토론, 문학의 밤 행사 등이 열리며, 5월부터 포럼 홈페이지에서 사전 신청하면 참관할 수 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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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이비행기]블랙리스트와 태극기 집회

    최근 발간된 북한 인권 관련 소설집 ‘금덩이 이야기’를 기획한 방민호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를 2일 만났다. “북한은 인권 논의 자체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인권이 잔인하게 유린되는 사회이기 때문에….” 대화 중 “교수님, 그런데 북한 인권을 말하시는데도 블랙리스트에 오르셨네요?” 했더니 “그러게요, 하하하” 한다. 기자도 ‘하하하’ 따라 웃었다. 근래 ‘어린 왕자’를 새로 번역한 문학평론가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와 최근 전화 통화할 일이 있었다. “교수님, 그런데 블랙리스트에 오르셨던데요?” “젊은 사람들이 피해를 많이 봤지, 나야 뭐 유신시대부터 단련이 돼서, 하하하.” 기자도 따라 웃었다. 소설가 김훈 씨는 6일 신간 ‘공터에서’ 간담회에서 ‘태극기 집회’ 참여자들의 정서에 공감하면서도 “어릴 적 박정희 대통령 해외 순방 행사에 동원돼 태극기 흔들던 자리에서 태극기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내가 너무 오래 산 것 아닌가, 어디에 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싶어서 정신을 못 차렸다”고 했다. 이번엔 웃지는 못했다. 아, 어렵다, 어려워.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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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훈 “참혹한 시대 이어온 갑질… 남루한 사람들의 고통 그려”

    “역사의 하중, 시대가 개인에게 가하는 고통을 견딜 수 없어서 도망 다니고, 시대를 부인하고, 미치광이가 돼 바깥을 떠도는, 그런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소설가 김훈 씨(69)가 2011년 ‘흑산’을 낸 지 6년 만에 장편소설 ‘공터에서’(해냄)를 발간했다. 6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이 남루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공터에서’는 1910년생으로 만주와 상하이 등지를 떠돌다 귀국해 6·25전쟁을 겪은 마동수와 가족의 삶을 그렸다. 마동수는 흥남 철수로 피란했지만 남편과 자식을 잃은 이도순을 부산에서 만나 두 아들 장세와 차세를 낳는다. 김 씨는 “돌아가신 내 아버지는 1910년 우리나라가 망해서 없어지던 해 태어났고, 나는 그 나라를 다시 만들어 정부 수립을 하던 1948년 태어났다”며 “이번 소설은 내가 살아온 시대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소설 속 마동수는 김 씨의 부친인 김광주 씨(1910∼1973)를 모티브로 형상화했다. 김광주 씨는 광복 뒤 언론사 문화부장으로 일했으며, 한국 무협지의 효시로 알려진 ‘정협지’(1961년)와 단편소설 등을 썼던 소설가다. 마동수와 김 씨는 만주 길림에서 의원을 운영하던 형이 의학 공부를 권유해 상하이로 건너갔고, 아나키스트 조직 등에 관여하면서 문예운동을 벌였다는 점에서 이력이 상당히 겹친다. 김훈 씨는 “마동수는 내 아버지와 그 시대 많은 아버지를 합성해 만든 인물”이라며 “중국에서 돌아온 그들은 크고, 몽롱하고, 가파른 말투를 사용하는 언어의 협객들이면서 현실에서는 뿌리 뽑힌 이들이었다”고 했다. 또 “그 시대 상하이에서 돌아온 이들이 한 말은 대부분 과장이고 허장성세였다”며 “아버지 역시 내가 보기에는 나라를 잃고 방황하는 수많은 유랑청년 중 하나였다”고 덧붙였다. 소설에는 말의 이미지가 많다. 주인공의 성이 마(馬)씨이고 소설 마지막 부분이나 표지에도 말이 등장한다. 김 씨는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면 늙은 말이 갈기가 눈을 덮은 채 힘없이 광야를 헤매다 터덜터덜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며 “아버지의 모습을 말에 투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설 제목에 대해서는 “공터는 역사적 구조물이 들어서지 않은, 집 사이의 버려진 땅으로 아버지가 살아온 시대를 비유했다”고 했다. 자신도 “계속 철거되는 가건물에서 살아왔다는 비애감이 든다”고 했다. 김 씨는 “이 땅에서 70년 가까이 살면서 우리 시대의 야만성과 폭력이 소름끼치게 무섭다”고 말했다. 그는 6·25전쟁을 소설에 담기 위해 당시의 신문을 읽었다고 한다. 김 씨는 “1·4후퇴 당시 고관대작들이 징발한 군용차 관용차에 응접 (가구) 세트와 피아노를 싣고 피란민 사이로 먼지를 날리며 남쪽으로 질주해 내려갔다”며 “이 같은 ‘갑질’이 악의 유습으로 지금까지도 내려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내 소설에 영웅이나 저항하는 인간은 나오지 않는다”며 “나나 부친이나 모두 시대의 참혹한 피해자”라고 말했다. 김 씨는 최근 정국에서 촛불집회와 탄핵반대 집회에 관한 물음에도 답했다. 그는 양 집회를 현장에서 관찰해 봤다고 한다. 그는 ‘태극기 집회’에 관해 “우리 세대는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가 안 되던 시절 사춘기를 보냈다. 상사 해외 주재원으로 가발을 수출하며 달러를 한국에 송금한 사람들이 내 친구들이고, 이들이 태극기 집회에 나간다”며 “이들이 집회에서 ‘우리가 쌓아온 것이 다 무너져 간다’고 한탄하는 건 기아와 적화(赤化)에 대한 두려움이 근원적인 정서가 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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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장집 교수 “다당제 등장이 촛불 성과… 中道 중심으로 경쟁하는 구도 필요”

     《 지난해 10월 29일 1차 촛불집회 이후 100일이 흘렀다. 촛불집회에 대한 찬반을 막론하고 한국 민주주의는 커다란 변화에 직면했다. 촛불은 무엇이었나? 광장의 에너지로 무엇을 개혁해 우리 사회의 새로운 구조를 각인해야 하는가? 학계와 문화계 인사 인터뷰 시리즈를 통해 촛불 100일과 이후 우리 사회의 길을 물었다. 》   “너무나 평범한 대선이 벌어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촛불 민심의 실망은 분명하다. 지금 보수 여당과 정부를 가리키고 있는 민심(民心)의 손가락질은 정권 교체 뒤 현 야당으로 향할 것이다.” 격동의 현대 한국 정치 연구에 평생을 바친 대표적 학자이자 현실 정치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해온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74).  촛불집회 100일을 앞두고 3일 서울 종로구 연구실에서 동아일보와 만난 그는 한국 민주주의의 앞날을 우려하고 있었다. 그는 “촛불이 제기했거나 잠재한 이슈와 현 정치권의 발언 사이에 굉장한 거리가 있다”며 “근본적 개혁을 함축하고 있는 촛불의 요구를 읽고, 그에 대응하는 모습을 정치권에서 발견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먼저 촛불집회를 평가해 달라. ‘촛불 혁명’이라는 표현도 있는데…. “권위주의의 복원 시도를 중단시키고 민주주의를 되찾았다는 점에서 그렇게 불러도 된다고 본다. 과거 민주화 투쟁과 달리 피를 흘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부분적으로 민주주의의 힘이기도 하다.” ―촛불집회를 이끈 동력은…. “정치적 분노뿐 아니라 사회, 경제적 불만이 깊숙이 깔려 있다. 성장을 가져온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을 실존의 차원에서 겪는 이들의 누적된 분노가 촛불의 동력이 됐다. 그런 이슈가 집회의 구체적 구호로 부각되지 않은 게 또 이번 촛불의 특징이다. 실체적 요구가 등장하면 분열될 수 있으니 일단 박근혜 대통령 탄핵, 퇴진으로 요구를 통일한 것이다. 시위대가 전략적으로 움직였다.” ―그런 분노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지금 정당이나 대권 주자들이 제시하는 어젠다, 개혁안, 정책을 보라. 너무나 평범하다. 현 야당이 선거에서 이기고 정권 교체가 됐다고 치자. 그 뒤에 무엇을 보여줄 수 있겠나. 촛불이 기껏 ‘최순실 농단’ 하나 해결하려고 온 나라를 들었다 놨을까.(선거 전 탄핵이 인용되고) 대선 정국이 펼쳐질 때부터 민심의 실망은 시작될 것이다.” 그의 연구실은 촛불집회가 매주 열린 광화문광장 인근에 있다. 넓지 않은 공간임에도 평소 성격을 보여주는 듯 깔끔했다. 양편 서가에 해외에서 발간된 정치학 서적이 가득했다. 말투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았고, 사전에 전달한 질문지와 인터뷰 내용이 사뭇 달라졌음에도 준비된 답변처럼 정돈돼 있었다. ―뭘 개혁해야 하나. “1960, 70년대 형성된 ‘박정희 패러다임’, 곧 국가와 재벌의 연합을 해체해야 한다. 재벌은 국가와 결합해 여러 특혜 속에 경제를 주도했고, 반대급부로 권력에 ‘준조세’를 내는 등 상호의존적 동맹 관계를 만들어 왔다. 이 유착을 끝내고, 대기업은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정치 제도는 어떤가. “(우리 정치사의) 양당은 사실상 같은 패러다임에 머무르면서도 과도하게 이념 대립적이고 투쟁 일변도의 정치 행태를 만들어 왔다. 내용 없는 극단 투쟁을 한 거다. 촛불의 긍정적 효과 중 하나가 다당제의 등장이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는 4개 안팎의 정당이 온건, 합리적이면서 국정 운영 능력이 있는 센터(중도·中道)를 중심으로 경쟁하는 정치 구도가 필요하다.” ―좀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내게) 맘대로 정부 형태를 선택하라면 비례대표제로 운영되는 의회중심주의(의원내각제)가 최선의 정치 구조다. 양당제가 지속되면 분단 상황에서 양극화된 이데올로기 투쟁이 재연될 거다. 촛불 이전으로 돌아가는 거다.” ―최근 ‘결선투표제’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전 상임공동대표도 비슷한 주장인데 그를 염두에 둔 것인가. “아니다. 다당제를 전제로 한 말이다. 지금 현실적으로 개헌까지 하고 대선을 치를 수 없다. 당장 의회중심주의 구현이 힘들다면 프랑스식의 ‘준대통령제’나 다당제 상황에서 대표성을 높이기 위한 결선투표제가 차선으로 필요하다. (지금과 같은) 단순다수제는 양당제로 귀결된다. 물론 결선투표제도 대선이 2, 3개월 남은 상황에서 어느 세월에 선거제도 바꾸고 하겠느냐며 반대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현실은 그냥 이대로 간다고 본다.” ―그럼 개헌은 언제 해야 하나. “다음 정권에서 다 열어놓고 해야 한다. 이번 대선에 개헌 공약이 나오고 집권했을 때 정부가 중심이 돼 개헌한다든가, 대통령 임기를 마치지 않고서라도 하든가의 방식이 있을 것이다.” ―대통령 4년 중임제 도입은…. “그런 주장이 은근히 많은데 난 동의하기 힘들다. 대통령으로 집중된 권력구조를 혁파해야 하는 상황에서 사실상 대통령 임기를 8년으로 늘리자는 것 아닌가.” 대권(大權) 주자들에 대한 평가가 궁금했지만 최 교수는 “정권 교체를 바랄 뿐이다. 후보들 간에 충분히 경쟁해야 할 시점에서 누군가를 편드는 듯한 인상을 주고 싶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그러면 당신의 생각에 접근한 후보가 있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도 특유의 진중한 태도로 고개를 저었다. 대권에 대한 전망도 물었다. 우선 그는 “이번 선거는 여당의 궤멸 속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구조적으로 어드밴티지를 갖는(유리한) 선거”라고 했다.  ―보수층 민심이 결집해 이변이 연출될 가능성도 있지 않나. “가능성이 적다. 선거마다 보이지 않아도 ‘틀’이라는 게 있다. 그러나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는 정당 정치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 좋은 보수 후보가 진보 후보와 비슷한 득표를 하기를 바란다.” ―지지율 1위인 민주당의 어깨가 무겁다. “야당이 배전의 노력을 통해 제대로 된 대안을 만들 사명이 있는데 아직은 부족하다. 사태의 본질을 꿰뚫고 실제 정책으로 만들 정치력과 결단력이 없다면, 집권한다 해도 더 큰 위기를 맞을 것이다.” ―국민의당이나 이른바 ‘중간 지대’는 어떻게 보나. “국민의당은 양당제 구조에서 온건 비판 세력으로 자기 위치를 정립하려는 의미 있는 시도를 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정당 기반이 약하다. 중간 지대는 양당 정치의 동요 과정에서 과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당장은 ‘중간 지대’가 누구를 대표하는지 정립이 안 돼 있다.” ―세대교체론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좋은 문제 제기가 아니다. 교체는 연령의 문제가 아니다. 버니 샌더스(미국 민주당의 진보 정치인으로 올해 76세)도 있지 않은가.” ―정당이 당장 해야 할 최우선 과제는 무엇인가. “지금대로라면 대선 후보들은 작은 정책 대안을 모아 패키지 선거 공약을 내세울 것이다. 집권 뒤에는 결과적으로 좁은 분야의 전문가인 관료 지배적 형태가 나타나고, 이는 어느 정당이 집권해도 별 차이는 없을 거다. 지금처럼 폐쇄적이고 당파적으로 대선 캠프를 운영한다면 새로운 인적자원을 끌어낼 수 없다. 이것부터 달라져야 한다.”조종엽 jjj@donga.com·이지훈 기자}

    • 2017-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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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빌어먹을 입자’ 힉스, ‘신의 입자’가 되기까지

     지난해 중력파 검출 발표 전까지 최근 물리학계의 최대 성과는 역시 2012년 실험으로 힉스 입자가 발견된 것이다.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피터 힉스의 이름을 딴 힉스 입자는 우주 탄생 초기 다른 기본 입자들에 질량을 부여해 입자들이 원자를 형성하도록 했다. 우주를 지금처럼 만든 입자인 셈이다. 가설로만 존재하다가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가 존재를 입증했다. “원래 내가 생각한 별명은 ‘빌어먹을 입자’(Goddamn Particle)였는데, 편집자가 언어순화를 위해 damn을 뺐고…”(리언 레더먼) 힉스 입자에 다소 선정적인 느낌이 없지 않은 ‘신의 입자’(God Particle)라는 별명을 붙인 게 1993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이다. 저자인 레더먼은 미국 페르미연구소 소장을 지냈고, ‘뮤온 중성미자’ 관련 연구로 1988년 노벨상을 받은 미국의 실험물리학자다. “신의 입자라는 별명은 떼돈을 벌고 싶어 하는 출판사의 욕망에 제가 동조한 거지요.”(2001년 노벨 재단과 레더먼의 인터뷰에서) 책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로부터 뉴턴, 패러데이, 러더퍼드를 거쳐 20세기 양자역학과 힉스 입자까지 2600년에 걸친 물리학의 역사를 풀어낸다. 노벨상 메달을 경매에 부치기도 한 괴짜 레더먼과 베테랑 과학저널리스트인 딕 테레시의 입심이 만만찮다. “반양성자는 물고기처럼 양식할 수 없고 철물점에서 팔지도 않는다”처럼 위트 있는 문장이 ‘입자 가속기는 어떻게 작동할까’ 하는 주제가 가져다주는 두통을 덜어주고, “빔의 지름은 콜라를 마시는 스트로 굵기에서 머리카락 굵기로 가늘어진다”는 표현에서 보이듯 가능하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쓰였다. “레더먼: …쿼크와 렙톤은 물질을 이루고 광자와 W, Z입자, 중력자는 힘을 매개합니다. 그런데 현대물리학에서는 힘과 입자의 구별이 확실치 않아요. 둘 다 입자로 간주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거든요. 데모크리토스: 어쩐지 내 이론이 더 낫다는 느낌이 드는군. 내 이론은 복잡하고 자네는 단순함을 추구한다더니, 결국 내 이론보다 훨씬 복잡하잖아.”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입자’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데모크리토스와 저자의 가상 대화 형식을 빌린 부분이다. 저자도 ‘표준이론’이 복잡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모양.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등 우주의 근본을 탐구한 철학자들과 현대물리학의 유사점이 놀랍다. 저자가 이론을 검증해 생명을 불어넣지만 대중적으로는 그보다 덜 알려지는 경향이 있는 실험물리학자의 비애를 털어놓는 부분은 웃음이 난다. 돼지(실험물리학자)가 애써 찾은 송로버섯(새로운 발견)은 농부(이론물리학자)의 것이 된다는 것. “이론물리학자는 해가 중천에 떠야 연구실에 나타나고…, 실험물리학자들은 늦게 출근하는 법이 없다. 비결은 간단하다. 아예 집에 가지 않으니까!” 그들은 또 실험을 위해 10t짜리 기중기가 머리 위를 오락가락하는 곳이나 방사능 위험 지역 가까이에서 일한다고. 한국 과학자들도 교양서를 심심찮게 내지만 이 책처럼 두툼하고 난해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책장이 비교적 쉽게 넘어가는 책은 별로 많지 않다. KAIST에서 이론물리학을 전공하고 30년 가까이 대학에서 물리학을 가르친 역자의 번역도 흠잡을 데가 없다.조종엽기자 jjj@donga.com}

    • 2017-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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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 통한 北인권 고발은 이 시대 작가들의 임무”

     “지원물자도 지원물자 나름이야. … 많든 적든 일단 사랑의 선물이라고 이름 붙은 걸 먹으면 그 값을 몇 곱절 해야 되거든. 글쎄 먹어 없어지지 않는 옷이나 물건 같은 거라면 받는 게 낫지. 나중에 장마당에 내다 팔아도 돈이 되니까.” 2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탈북 작가 도명학 씨(52)가 자신의 소설 ‘잔혹한 선물’을 낭독했다. 북한의 소위 ‘돌격대 공사’가 얼마나 잔혹하게 이뤄지는지를 세밀하게 묘사한 소설이다. 도 씨는 2006년 탈북하기 전 반체제작품을 쓴 혐의로 3년간 투옥됐다. 북한 인권을 소재로 남한 출신 작가 7명과 탈북 작가 6명이 쓴 소설을 모은 소설집 ‘금덩이 이야기’(예옥)가 최근 발간됐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후원으로 2015년 ‘국경을 넘는 그림자’에 이어 두 번째 발간이다.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도 씨는 “무거운 이야기들이지만 때로 해학적인 부분도 넣어 ‘슬픈 재미’를 주려 했다”고 말했다. 소설집의 표제작은 맏딸은 굶어 죽고, 작은 딸은 실종된 상황에서 아내를 남겨둔 채 정치범관리소에 수용된 노인의 비극적인 사연을 그렸다. 탈북 작가 이지명 씨(64)는 요덕 수용소에 수용됐던 탈북자 이영국 씨의 증언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다. 이 씨는 “북한에서는 김 씨 일가를 찬양하는 희곡을 써야 했다”며 “북한의 참혹한 인권 실태를 문학을 통해 한국은 물론 세계에 알려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감에 용기와 정열이 솟구친다”고 말했다. 아직은 주목을 덜 받지만 탈북 작가들의 창작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지명 씨가 이사장을 맡고 있는 국제PEN 망명북한펜센터가 문학지 ‘망명 북한 작가 PEN문학’을 2013년부터 매년 내고 있다. 개인과 사회단체 후원으로 비용을 충당한다.  이달에는 영문 번역판도 낸다. 정부 후원은 없느냐고 묻자 이지명 씨는 “없다. 대한민국은 참 멋있는 나라여서…”라며 웃었다. 남한 출신인 소설가 이경자 씨(69)는 탈북자에 관한 소설을 쓰려는 소설가와 일종의 취재원이 된 탈북자의 이야기를 담아 ‘나도 모른다’를 썼다. 이 씨는 “북한 인권과 탈북자들의 고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이 어떻게 담보되고 슬픔의 뿌리는 무엇인지 드러내는 것이 작가로서 나의 임무”라고 말했다. 이번 소설집을 기획한 방민호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52)는 “인권은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아야 할 인간의 기본 선(線)”이라며 “탈북 작가 층이 형성되고 있는 오늘날 북한 인권을 문학으로 담는 게 문학인 된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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