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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한강을 따라 간다. 우리가 향하는/산에서 발원해 서쪽으로 흐르는 강./오늘 아침 그 길은 강빛을 닮아 회청색,/황금색 줄무늬에 바람결. 팔월,/비 온 후 구름 자욱한 아침. 하늘은/옅은 회색. 햇살 반짝이는 길가 웅덩이/너무나 환해 세상을 떠받들고 있는 것 같아/열심인 젊은 수도승 꼿꼿한 자세처럼.”(로버트 하스, ‘백담사행 버스’ 전문)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최근 방한한 로버트 하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석좌교수(76)가 한국을 소재로 삼아 쓴 시 3편이 22일 번역 소개됐다. 하스 교수는 ‘인간의 소망(Human Wishes·1989년)’을 비롯한 시집을 냈으며 미국에서 계관시인으로 두 차례 추대됐고 퓰리처상을 비롯한 다수의 문학상을 받았다. 그가 쓴 한국에 관한 시는 ‘백담사행 버스’를 비롯해 석굴암 가는 길을 배경으로 쓴 ‘검은 머리 댄서를 위한 옷’, 6·25전쟁을 소재로 삼은 ‘판문점, DMZ를 다녀와서’ 3편이다. 번역은 정은귀 한국외국어대 교수가 맡았다. 하스 교수는 ‘판문점…’에서 ‘적어도 공동의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는 인간들이 이러한 사실들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아무런 증거가 없어’라면서 전쟁으로 죽어간 사람들의 비극을 짚는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14일 오전 11시 45분경 박 군(고·故 박종철 씨)을 처음 보았을 때는 … 호흡곤란으로 사망한 것으로 판단됐으며 물을 많이 먹었다는 말을 조사관들로부터 들었다.”(동아일보 1987년 1월 17일자 보도에서) 서울대생 박종철 씨가 경찰의 물고문으로 숨졌음을 입증한 의사 오연상 씨의 증언이다. 6월 민주화운동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려는 언론의 노력을 조명한 책이 나왔다. 1987년 당시 5년차 기자로 동아일보 법조팀장이었던 황호택 동아일보 고문(전 논설주간)은 ‘박종철 탐사보도와 6월 항쟁’(블루엘리펀트)을 최근 출간했다.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는 양심적인 관계자들의 증언과 폭로가 결정적이었지만 언론의 역할도 적지 않았다. 저자는 당시 취재기자, 수사 관련자와 제보자들을 다시 만나고 자료를 수집해 그 과정을 치밀하게 재구성했다. 동아일보는 당국의 보도지침을 무시하고 1987년 1월 15일자에 “대학생 경찰조사 받다 사망”이라는 기사를 5단으로 키워 박 씨의 얼굴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이어 16일자에는 부검 결과 ‘폐에서 출혈반이 발견됐다’ ‘피멍이 많이 발견됐다’는 것을 전하며 진상은 ‘고문치사’임을 알렸다. 19일자에는 1면 머리기사부터 6개면에 걸친 보도로 당국의 보도지침을 부쉈다. 언론 보도는 사건 관계자가 용기를 내도록 돕기도 했다. 부검의 황적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박사는 일기에 “(16일자 동아일보를 보고)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고 판단했고, 어떤 일이 있어도 감정서만은 사실대로 기술해야겠다고 결심”이라고 썼다. 동아일보가 그해 5월 22일자에 치안감을 비롯한 상급자들이 고문치사범 축소 조작을 모의했다는 것을 폭로한 보도는 결정타가 됐다. 이날 남시욱 당시 동아일보 편집국장에게 청와대 정무수석이 전화를 했다. “남 형 축하해. 귀지(貴紙)가 이겼어. 진상을 밝히기로 결정했어.” 책은 당시 언론이 미진했던 부분에 대한 반성도 담겼다. 고문 경찰 2명이 구속된 뒤 기자들은 그 가족들이나 검찰 수뇌부를 통해 범인이 축소됐는지 알아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고, 약 3개월 동안 은폐조작의 진상이 감춰졌다. 저자는 사건과 관련된 새로운 사실도 일부 밝혀냈다. 경찰은 박 씨가 숨진 날 저녁 최환 서울지검 공안부장을 찾아와 “가족과 합의했다. 오늘 밤에라도 화장을 해서 유골 가루를 달라고 한다”고 거짓말을 했지만 당시 박 씨 가족에게는 죽음을 알리지도 않았다. 또 6월 항쟁 당시 민병돈 특전사령관이 “군이 시위를 진압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보안사령관을 통해 전두환 대통령에게 전했다는 사실도 인터뷰를 통해 처음으로 드러났다. 당시 보도는 오늘날 언론에도 가볍지 않은 메시지를 던진다. 황열헌 동아일보 기자는 다른 기자들이 ‘기사도 안 나갈 텐데, 뭐 하러 가느냐’고 하는 와중에도 박 씨의 시신을 화장하는 벽제 화장터를 취재해 ‘창(窓)―철아 잘 가그래이. 이 아비는 할 말이 없다이’(1월 17일자)라는 기사를 썼다. 이 기사는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고, 시위대의 플래카드에도 쓰였다. 남시욱 편집국장은 “만약 내가 어떻게 되더라도 박 군 사건은 끝까지 파헤쳐야 한다”고 부국장에게 당부했다. 동아일보 편집국 간부와 기자들도 보안사나 남산 국가안전기획부 지하실에서 고문과 구타를 당하던 서슬 퍼런 시절이었다. 저자 황호택 고문은 “사건 30년 만에 쓰는 후속 보도”라며 “민주화를 이룬 수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을 기록하려는 사명감으로 썼다”고 말했다. 심재철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책에 기고를 싣고 “동아일보가 당시 어떻게 한국 언론의 향도(嚮導) 역할을 했는지 파악할 수 있는 저서”라며 “언론인 고문 등 명백한 위협 앞에서 동아일보는 사인(死因)과 은폐조작의 전모를 밝히는 대특종을 했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부장인 해리가 사망자를 알려주면…내일 판 교정지를 보며 마지막 수정을 해요. ‘완곡어법’을 써가면서. 알코올중독자는 ‘풍류를 즐길 줄 알았다’, 게이는 ‘개인 생활에 충실했다’, 튀는 게이한테는 ‘사생활을 만끽했다’….” 지난달 재개봉한 영화 ‘클로저’에서 신문사에서 부고 기사를 쓰는 주인공 댄(주드 로)이 앨리스(내털리 포트먼)에게 자기를 소개하는 부분이다. 국내 언론도 부고 기사에서는 고인이나 유족이 불편하게 느낄 수 있는 대목은 완곡하게 쓰는 게 보통이다. 고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질병 명칭을 쓰지 않고 ‘노환(老患)’ ‘숙환(宿患)’이라고 쓰는 것도 그 예다. 최근 출간된 ‘부고의 사회학’(이완수 지음·시간의 물레)은 일간지 부고 기사에 담긴 사회적 가치관과 권력관계를 분석했다. 짧으면 몇 줄, 길어 봐야 200자 원고지 몇 장에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모두 담을까. 고인이 저승에서 편지를 쓸 수 있다면 기자들의 메일함은 이런 내용으로 가득할 것 같다. “내 인생에서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니까!”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전쟁으로 미쳐버린) 아들은 내 주방용 손도끼로 사람을 죽였어요… 아침에 도끼를 가져다 다시 찬장에 넣어놓았더군요. 마치 스푼이나 포크를 다시 제자리에 갖다놓은 것처럼… 나는, 아들이 두 다리 없이 돌아온 그 엄마가 부러워요… 술에 취해 엄마에게 행패를 부려도요. 온 세상을 미워하고…” 소설 등 다른 글에 이렇게 말줄임표가 많았다면 다소 촌스럽고, 조금은 덜 다듬어졌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2015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저자(69)의 이 글에서 말줄임표는 저자가 집어넣은 것이 아니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며 벌어진 전쟁에 아들을 보냈던 어머니의 호흡이다. 인터뷰 중 말을 잇지 못하는 어머니의 고통과 흐느낌이 그대로 전해진다. 벨라루스 출신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저자는 5∼10년간 수백 명을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논픽션을 써 왔다. 이 책은 대표작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에 이어 여성과 소년병의 눈으로 전쟁의 잔혹함을 담았다.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소련 병사 중 상당수가 아직 학생이었다. “사람들은 영화에서와는 전혀 다르게 죽어요. … 실제로는 머리에 총탄이 박히면 뇌가 터져 공중으로 날아가고, 머리가 터진 사람은 그걸 잡겠다고 달려가죠. 한 500m는 족히 달려요. 사람이 죽음이 구원이라도 되는 양 죽여 달라고 간청하는 걸 듣고 또 지켜보고 있느니…” 저자는 책을 내고 3년 뒤인 1992년 아프간 참전 군인과 자신이 인터뷰했던 유가족 어머니로부터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했고 일부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듬해 열린 재판에서 저자는 말했다. “오늘 이곳 법정에 나와 계시기도 한, 그 어머니가 이런 이야길 했습니다. 아연(으로 만든) 관(棺)과 아들이 쓰던 칫솔…을 돌려받았다고요. 그게 아들이 전쟁터에서 가져 온 전부였던 겁니다. … 어떻게 하면 피가 정당화될 수 있을지 방법을 찾고들 계시나요?” 23∼25일 열리는 서울국제문학포럼 참석차 방한한 저자는 19일 서울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소련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정당하다고 속였다. 아프가니스탄 주민 100만 명 정도를 사살했지만 미디어는 입을 닫은 채 병사들을 영웅이라고만 치켜세웠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문학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힘이 있다면 당연히 아프가니스탄에 가서 진실을 보고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책을 쓴 동기를 밝혔다. 저자의 책에는 영웅은 안 나온다. 작고 평범한 이들의 고통만이 그득하다. 저자는 “국가는 ‘스몰 피플(작은 사람들)’을 이용하고 죽였고 또 이들이 죽이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이들의 역사는 간과되고 있다. 이들의 역사를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쟁에서 아름다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강조했다. “아직도 소비에트 선전선동의 잔재가 남아 있어 ‘무기를 든 사람이 멋있다’는 관념이 있습니다. 전쟁은 그 자체가 살인입니다.” 저자는 23일 오전 10시 반 광화문 교보빌딩 컨벤션홀에서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피해자들을 담은 책 ‘체르노빌의 목소리’에 관한 글(‘미래에 관한 회상’)을 발표한다. “(취재할 때 만난) 나이든 여자분이 잊히지 않아요. ‘햇살도 쨍쨍하고, 꽃도 피었고, 쥐들도 멀쩡한데 내가 왜 이곳을 떠나야 하나요’라고 묻더라고요. 이건 우리가 알던 혼란스러운 전쟁이 아니고, 새로운 형태의 전쟁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이 소설을 쓰는 일을 거의 포기하려 했던 어느 날, (1980년) 5월 27일 새벽 군인들이 돌아와 모두를 죽일 걸 알면서 광주의 도청에 남았던 한 시민군, 섬세한 성격의 야학 교사였던 스물여섯 살 청년의 마지막 일기를 읽었다. …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토록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 순간 내가 쓰려는 소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어떻게든 폭력에서 존엄으로, 그 절벽들 사이로 난 허공의 길을 기어서 나아가는 일만이 남아 있다는 것을….” 소설가 한강 씨(47)가 5·18민주화운동 소재의 장편 ‘소년이 온다’(창비)를 쓰던 당시를 회고한 것이다. 출판사 창비는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인 18일을 앞두고 한 씨가 올 2월 노르웨이 오슬로의 ‘노르웨이 문학의 집’에서 했던 강연 전문을 소개했다. 한 씨는 이 강연에서 “인간의 잔혹함을 증명하는 자료들과, 다른 한편에서 인간의 존엄을 증명하는 자료들을 읽으면서 나는 분열을 겪고 내면의 투쟁을 치렀다”며 “언젠가부터 나에게 광주는 인간의 폭력과 존엄이 극단적으로 공존한 시간을 가리키는 보통 명사가 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난 한 씨는 1980년 1월 가족과 서울로 이사했지만 한 씨의 가족들은 5·18민주화운동의 의미를 당시에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고 했다. 한 씨는 “어른들은 우리 남매에게 ‘밖에 나가서 광주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며 “‘곧 무더운 여름이 끝나고 우리는 가을 속으로 들어가는데, 이 여름으로조차 끝내 넘어오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했던 걸 기억한다”고 말했다. 한 씨는 어린 시절 스웨덴 동화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읽었던 얘기를 꺼내며 강연을 시작했다.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이 쓴 이 책은 죽음을 맞은 형제가 ‘낭기열라’라는 세계에서 다시 눈을 뜨고 그 세계의 독재자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가 담겼다. 한 씨는 “‘어떻게 그들은 그토록 서로를 믿고 사랑하는가, 그들의 사랑을 둘러싼 세상은 왜 그토록 아름다우며 동시에 잔인한가’를 생각하며 오래 울었다”고 말했다. 한 씨는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절망하는 거라고, 존엄을 믿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는 것이라고, 우리의 고통이야말로 열쇠이며 단단한 씨앗이라고, 열두 살의 나에게 이제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다음은 강연 전문이다.◇여름의 소년들에게2017년 5월한강1. 오랫동안 사실과 다르게 기억하고 있던 것들을 뒤늦게 깨닫고 놀라는 때가 아마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린드그렌의 책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읽은 시기가 그런 이상한 혼돈을 주었다. 이 책을 1980년에 읽었다고 최근까지 굳게 믿어 왔는데, 이 강연 원고를 쓰기 위해 개정판을 사면서 알게 되었다. 이 책이 한국에서 처음 번역되어 출간된 것이 1983년이었다는 것을. 나의 기억이 틀렸다는 게 믿기지 않아 번역자의 서문까지 읽고 나서야 내 착각을 인정하게 되었다. 서문에 따르면 번역자 김경희는 1982년 유학생 신분으로 스톡홀름에 머물던 중 당시 일흔네 살이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아파트를 찾아갔다. 좋아하던 작가를 처음 만나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쩔쩔매는 번역자를 린드그렌은 밝고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김경희는 이렇게 그 순간을 묘사한다. <나를 린드그렌 할머니는 마치 친손녀처럼 안아 주었습니다. 겁에 질려 뛰어든 칼을 푸근히 감싸 안던 마티아스 할아버지처럼. 그리고 린드그렌 할머니는 맑고 다정한 눈으로 내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했습니다. “꽤나 멀고도 낯선 나라에서 온 이 유학생에게 웬일인지 아주 가깝고도 낯익은 느낌이 드네요. 그 나라에도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어린이들이 있거든 나 대신 얼마든지 들려줘요.”> 두 사람이 긴 대화를 나눈 뒤 김경희가 시내 공원 모퉁이의 그 아파트를 나온 것은 저녁 7시였다. 그들의 이 만남은 1982년 1월에 이루어졌고 이듬해 7월 20일 이 책이 한국에서 출간되었다. 그러니까 내가 이 책을 읽었던 것은 바로 그 여름이었다. 1980년이 아니라 1983년의 여름. 아홉 살이 아니라 열두 살의 여름. 비록 연도에는 혼동이 있었지만, 그 계절의 감각만은 또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무더운 오후에 이 책을 처음으로 손에 쥐었다. 수유리 언덕배기 집의 조그만 내 방에서, 서늘한 방바닥에 배를 대고 누워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자세가 불편하게 느껴지면 일어나 앉았다가, 땀이 흐를 만큼 더워지면 다시 차가운 바닥에 엎드려 가며, 마지막 장에 다다를 때까지 멈추지 못하고 읽어 갔다. 그러니 나에게 남은 의문은 이것들이었다. 왜 나는 그해가 1980년이었다고 철석같이 믿어 왔을까? 1980년과 1983년의 여름들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그것이 『사자왕 형제의 모험』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왜 그토록 고통스러운 열정으로 나는 이 책에 빠져들었을까? 나는 1970년 11월에 광주에서 태어났다. 내가 아홉 살이던 1980년 1월에 가족과 함께 서울로 올라왔는데, 문학 교사이자 젊은 소설가였던 아버지가 수도에서 글만 쓰면서 새로운 삶을 살겠다고 결심하며 직장을 그만둔 것이 계기였다. 나무와 흙으로 지어 검푸른 기와를 올리고 문과 창문에는 유리 대신 하얀 종이가 발라진 정든 한옥을 떠나, 서울 외곽의 수유리 언덕에 있는 양옥집으로 옮겨 갔다. 가족 모두가 새로운 삶에 차츰 적응해 가던 5월 17일에 계엄령이 선포되었다. 그 전해인 1979년 10월, 18년 동안의 군부 독재를 이끌었던 대통령 박정희가 암살되고, 민주주의를 열망하던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지 7개월 만의 일이었다. ‘서울의 봄’이라고 불린 그 시기를 틈타 또 한 번의 쿠데타를 일으킨 이른바 ‘신군부’ 세력이 마침내 권력의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불과 4개월 전, 사소하고 다소 즉흥적인 이유로 나의 가족이 떠나온 도시, 내가 태어나 유년을 보낸 바로 그곳, 그때까지 그저 작고 평범한 교육 도시였을 뿐인 그곳에서 계엄에 불복종하는 항쟁이 일어난 것은 그다음 날인 5월 18일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이틀 뒤 오후 1시, 수많은 시위 군중들이 모인 도청 앞 광장에서 군대는 집단 발포를 했고, 이후 생존을 위해 시민들이 무장하며 ‘광주 공동체’가 태어났다. 짧고 평화로웠던 시민 자치가 이루어지던 도청으로, 탱크와 기관총으로 무장한 군인들이 되돌아온 것은 5월 27일 새벽이었다. 신군부가 언론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광주를 제외한 다른 지역의 사람들은 대부분 그 일을 폭동이자 내란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나의 가족은 광주에 친지와 친척, 친구 들을 두고 왔기 때문에 그 일의 의미를 처음부터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학살이자 항쟁이었던 그 열흘의 시간. 평범한 사람들이 총상자들을 살리기 위해 끝없이 줄을 서서 헌혈을 하고, 시장에서 음식을 나누고, 무고하게 살해된 자들을 위한 장례를 날마다 함께 치르며 버텼던 절대 공동체. 어른들은 우리 남매들에게 말했다. ‘밖에 나가서 절대로 그런 말을 하면 안 된다. 광주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서는 안 돼.’ 그렇게 그 일은 나에게 영영 숨겨야 할지도 모를 무거운 비밀이 되었다. 그러나 그 생각이 자꾸 떠오르는 것을 떨칠 수는 없었다. 그해 여름이 지나갈 무렵 내가 문득 생각했던 것을 기억한다. 이제 곧 이 무더운 여름이 끝나고 우리는 가을 속으로 들어가는데, 이 여름으로조차 끝내 넘어오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것은 어떤 정치적 각성이라기보다,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순간이기도 했다. 그 후 이 년이 흐른 1982년, 아버지가 광주에서 사진첩 한 권을 가져왔다. 증언을 위해 유족들과 생존자들이 비밀리에 만들어 유통시켰던 책이었다. 이때의 기억을 나는 『소년이 온다』의 에필로그에 이렇게 썼다. <그 사진집을 아버지가 집으로 가져온 것은 이년 뒤 여름이었다. 누군가를 조문하러 그 도시에 내려갔다가 터미널에서 구했다고 했다. (…) 어른들끼리 사진집을 돌려본 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아버지는 그 책을 아이들이 보지 못하도록 안방의 책장 안쪽에, 책등이 안 보이게 뒤집어 꽂아놓았다. 내가 몰래 그 책을 펼친 것은, 어른들이 언제나처럼 부엌에 모여앉아 아홉시 뉴스를 보고 있던 밤이었다. 마지막 장까지 책장을 넘겨, 총검으로 깊게 내리그어 으깨어진 여자애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을 기억한다. 거기 있는지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내 안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졌다. (198~99면)> 그리고 다시 일 년이 지난 서울의 여름, 이상한 열정으로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읽고 있는 열두 살의 내가 있다. 그건 평범한 동화책이 아니다. 아이들을 위한 책으로서는 놀랍게도 처음부터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부엌의 침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픈 소년 칼에게, 그를 사랑하는 형 요나탄이 말한다. 네가 죽으면 하얀 새가 되어 나에게 돌아올 거야. 나는 너를 금방 알아볼 수 있을 거야. 그러나 얼마 뒤 집에 불이 나고, 칼을 업고 뛰어내린 요나탄이 먼저 세상을 떠난다. 과연 하얀 새가 되어 창가로 날아온 요나탄이 들려준 말대로, 뒤이어 병으로 숨을 거둔 칼은 낭기열라라는 아름다운 세계에서 건강한 몸으로 다시 눈을 뜬다. 그러나 그곳은 아름답기만 한 세계가 아니다. 들장미 골짜기의 텡일이라는 무자비한 독재자가 괴물 카틀라의 힘을 등에 업은 채 사람들을 지배하고 핍박한다. 이웃한 벚나무 골짜기에서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그에게 맞서는데, 요나탄은 ‘사자왕’이라는 그곳에서의 별명대로 용감하고 순정하게 자신의 몫을 다해 싸우는 중이다. 이 책에서 가장 먼저 나를 사로잡은 것은, 그 싸움의 과정에서 연약하고 겁 많은 칼이 서서히 이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 ‘사자왕 칼’이 되어 가는 모습이었다. 일인칭 화자인 칼이 너무나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으므로, 처음부터 나는 거의 무방비 상태로 그를 이해했다. 형에 대한 그의 절대적인 사랑과 믿음,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감탄, 그리고 두려움과 떨림까지. 거기에 더해, 칼이 관찰하는 독재자 텡일의 모습, 그가 조종하는 살인의 화신 카틀라, 그에 맞서 연약한 사람들이 연대하는 과정이 어째서인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이들이 결국 승리하기는 하지만, 그 싸움의 과정에서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되고 만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슬퍼한다. 그러나 오직 한 사람, 반군의 지도자 오르바르만은 울지 않는다. 그 대목을 읽으며 내가 느꼈던 불길한 예감을 기억한다. 그 어두운 예감과 폭력의 기억으로 그늘진―그러나 동시에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세계, 낭기열라에서 소년들이 다시 죽음의 형식으로 함께 떠나가는 마지막 장면을 읽다가, 어느새 해가 져서 캄캄해진 내 방의 서늘한 벽에 기대앉아 오래 울었던 것을 기억한다. 알 수 없었다. 어떻게 그들은 그토록 서로를 믿고 사랑하는가? 그들의 사랑을 둘러싼 세상은 왜 그토록 아름다우며 동시에 잔인한가? 그 후 삼십여 년이 흘러, 오슬로로의 여행을 앞두고 이 책을 다시 완독한 지금에야 비로소 내가 왜 연도를 착각해 왔는지 깨달았다. 나의 내면에서 이 책이 80년 광주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1980년 아홉 살의 내가 문득 생각했던, 그 여름을 이미 건너지 못했으므로 그 가을로도 영영 함께 들어갈 수 없게 된 그 도시의 소년들의 넋이, 그로부터 삼 년 뒤 읽은 이 책에서 두 번의 죽음과 재생을 겪는 소년들에게로 연결되어 내 몸속 어딘가에 새겨졌다는 것을. 마치 운명의 실에 묶인 듯, 현실과 허구, 시간과 공간의 불투명한 벽을 단번에 관통해서. 2. 2012년 겨울부터 『소년이 온다』를 쓰기 위한 자료를 읽으면서 나는 내면의 투쟁을 치르고 있었다. 인간의 잔혹함을 증거하는 자료들과, 다른 한편에서 인간의 존엄을 증거하는 자료들 사이에서 나는 분열을 겪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나에게 광주는 더 이상 하나의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 명사가 아니라, 인간의 폭력과 존엄이 극단적으로 공존한 시간을 가리키는 보통 명사가 되어 있었다. 신대륙의 학살, 아우슈비츠, 보스니아, 관동과 난징의 학살을 가로지르는 인간의 잔혹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그 폭력 앞에서 무엇인가를 하려고 했던 연약한 몸짓들에 대해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이 소설을 쓰는 일을 거의 포기하려 했던 어느 날, 5월 27일 새벽 군인들이 돌아와 모두를 죽일 것임을 알면서 광주의 도청에 남았던 한 시민군, 섬세한 성격의 야학 교사였던 스물여섯 살 청년의 마지막 일기를 읽었다. 기도의 형식을 하고 있는 그 일기의 앞부분은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토록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 그 순간 내가 쓰려는 소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어떻게든 폭력에서 존엄으로, 그 절벽들 사이로 난 허공의 길을 기어서 나아가는 일만이 남아 있다는 것을. 그러기 위해 먼저 이 소설의 맨 앞과 맨 뒤에 촛불을 밝히기로 했다. 할 수 있는 최선의 애도를 하고 싶었다. 촛불의 불꽃의 중심을 통과하여, 삼십여 년을 건너 우리에게 오는 넋들의 걸음걸이를 생각했다. 그 불가능한 재생을 단 한 순간이라도 가능케 하고 싶었다. 열다섯 살에 그곳에서 죽어 여름으로 건너오지 못한 소년 동호가,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으로 떠오르게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다만 애도하고 온 힘을 다해 존엄에까지 가자고 결심은 했지만, 『소년이 온다』를 써 가는 동안 나는 여전히 인간의 참혹과 존엄 사이에서 스스로 흔들리곤 했다. 4장 ‘쇠와 피’ 같은 경우에는 내가 흔들리며 회의했던 흔적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다고 느껴질 때마다, 달리 방법이 없어서 소년에게 매달렸다. 그가 나를 밝은 쪽으로 이끌고 가기를 바랐고, 실제로 그에게 끌려가듯 가까스로 앞으로 나아가는 경험을 했다. 그러므로 만일 지금 누군가 나에게 인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떤 폭력보다 먼저, 인간의 참혹보다 먼저, 6장에서 어린 동호가 엄마의 손을 잡고 밝은 쪽으로 나아가는 순간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다고 느낀다. 그 마음으로 에필로그에 이 대목을 썼다.<특별히 잔인한 군인들이 있었던 것처럼, 특별히 소극적인 군인들이 있었다. 피 흘리는 사람을 업어다 병원 앞에 내려놓고 황급히 달아난 공수부대원이 있었다. 집단발포 명령이 떨어졌을 때, 사람을 맞히지 않기 위해 총신을 올려 쏜 병사들이 있었다. 도청 앞의 시신들 앞에서 대열을 정비해 군가를 합창할 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 외신 카메라에 포착된 병사가 있었다. 어딘가 흡사한 태도가 도청에 남은 시민군들에게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총을 받기만 했을 뿐 쏘지 못했다. 패배할 것을 알면서 왜 남았느냐는 질문에, 살아남은 증언자들은 모두 비슷하게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그 도시의 열흘을 생각하면, 죽음에 가까운 린치를 당하던 사람이 힘을 다해 눈을 뜨는 순간이 떠오른다. 입안에 가득 찬 피와 이빨 조각들을 뱉으며,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밀어올려 상대를 마주 보는 순간.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전생의 것 같은 존엄을 기억해내는 순간. 그 순간을 짓부수며 학살이 온다, 고문이 온다, 강제진압이 온다. 밀어붙인다, 짓이긴다, 쓸어버린다. 하지만 지금, 눈을 뜨고 있는 한, 응시하고 있는 한 끝끝내 우리는……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목이 길고 옷이 얇은 소년이 무덤 사이 눈 덮인 길을 걷고 있다. 소년이 앞서 나아가는 대로 나는 따라 걷는다. 도심과 달리 이곳엔 아직 눈이 녹지 않았다. 얼어 있던 눈 더미가 하늘색 체육복 바지 밑단을 적시며 소년의 발목에 스민다. 그는 차가워하며 문득 고개를 돌린다. 나를 향해 눈으로 웃는다. (212~13면)>3. 고백하자면, 『사자왕 형제의 모험』과 그 소년들을 거의 잊은 채 오랜 시간을 살아왔다. 어린 시절에 가장 좋아했던 책들 중 한 권이라는 사실 외에는 실상 많은 것이 희미했다. 그러니 당연히, 『소년이 온다』를 쓰는 동안 이 오래된 책을 기억하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이제 삼십여 년이 흐른 뒤 다시 읽게 된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불꽃에 손바닥을 덴 것처럼 놀라며 깨달았다. 열두 살의 내가 어두워져 가는 방의 벽에 기대앉아 이 책을 쥐고, 무엇이 내 눈과 목구멍을 뜨겁게 하는지도 명확히 알지 못한 채 스스로에게 던졌던 질문들의 의미를. 그 질문들이 여전히 내 안에서 생생히 살아 어른어른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그들은 그토록 사랑하는가? 그들을 둘러싼 세상은 왜 그토록 아름다우며 동시에 폭력적인가? 그 열두 살의 나에게, 이제야 더듬더듬 나는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절망하는 거라고. 존엄을 믿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는 것이라고. 그러니까, 우리의 고통이야말로 열쇠이며 단단한 씨앗이라고. 한국어로 번역된 린드그렌의 평전을 이어 읽다가, 생전의 작가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과 테러의 뉴스들에 유난히 민감했으며 진심으로 고통스러워했다는 대목을 발견하고 나는 조용히 짐작했다. 인간에 대한 사랑에서 비롯되었을 그녀의 고통이 이 책 『사자왕 형제의 모험』에 배음으로 깔려 있다는 것을. 열두 살의 내가 비밀로서 품고 있었던 어렴풋한 사랑과 고통이, 먼 시간과 공간을 건너 그녀의 사랑과 고통에 잠시 맞닿았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거의 불가능한 방식으로 때로 우리가 만남을 경험하는지도 모른다고. 그 경험이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우리들의 심장과 목구멍에, 눈물이 고였던 눈에 뜨겁게 새겨지기도 하는 것이리라고.허락된다면, 린드그렌의 이 아름다운 책의 한 대목을 읽으며 나의 이야기를 마치고 싶다.<우리는 시냇가 푸른 잔디밭에 누워 있었습니다. 텡일이라든가 그 밖의 끔찍한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차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아침나절이었습니다. 햇살은 맑고 따스했습니다. 어찌나 조용한지 들리는 거라고는 약간씩 거품을 일으키며 다리 아래로 흘러가는 물소리뿐이었습니다. 우리는 푸른 하늘 군데군데 흩어진 흰 구름을 바라보며 행복한 기분으로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근심 걱정 없이 즐거운 기분이었는데 요나탄 형이 텡일 이야기를 꺼낸 것입니다. (…) “스코르판, 잠시 동안 너 혼자 기사의 농장에 남아 있어야겠어. 나는 들장미 골짜기에 다녀와야 하니까.” 요나탄 형이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나 혼자는 단 일 분도 기사의 농장에서 살 수 없다는 걸 형은 정말 모르는 걸까요? 만일 형이 텡일의 소굴로 가면 나도 따라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요나탄 형이 아주 야릇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더니 한참 만에 말문을 열었습니다. “스코르판, 너는 하나밖에 없는 내 동생이야. 나는 모든 불행이나 위험으로부터 너를 안전하게 보호해 주고 싶어. 하지만 이번엔 너를 돌볼 수가 없거든. 다른 일을 위해 있는 힘을 다 쏟아야 하니까. 그런데 어떻게 너를 데려가니? 이건 정말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야.” 나는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슬프고 화가 나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나 혼자 농장에 남아 있으라는 거야? 형은 이제 영영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르면서, 나보고 마냥 기다리기나 하란 말이지?” 나는 미친 듯이 소리 질렀습니다. (…) “바보 같은 소리 그만해. 나는 꼭 돌아올 거야.” 형은 그렇게 말을 맺었습니다. (…) 더는 화가 나지 않았지만 슬퍼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요나탄 형도 내 마음을 훤히 알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친절한 형은 새로 구운 버터 빵에다 꿀을 발라 주었습니다. 또 신기한 옛이야기도 해 주었는데 내 귀에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텡일이라는 악당만 자꾸 생각났습니다. 모든 괴물과 악당 중에서도 텡일이 가장 끔찍하고 잔인한 것 같았습니다. 나는 무엇 때문에 요나탄 형이 그처럼 위험한 일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기사의 농장 벽난로 앞에 앉아 편안히 살면 안 될 까닭이 뭐란 말입니까? 그러나 형은 아무리 위험해도 반드시 해내야 하는 일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째서 그래?” 내가 다그쳤습니다.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지. 그렇지 않으면 쓰레기와 다를 게 없으니까.” (…) 어느덧 밤이 깊었습니다. 벽난로의 불길도 잦아들었습니다. 다음 날 새벽, 나는 문간에 서서 요나탄 형이 말을 타고 안개 속으로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벚나무 골짜기는 온통 새벽안개에 휩싸여 있었습니다.형이 점점 멀어져, 안개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조종엽기자 jjj@donga.com}

“권정생은 말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글로 정착되는 시대를 경험한 작가다. 그의 문학은 말과 글이 혼재하는 커다란 저수지와 같다.”(아동문학평론가 엄혜숙) ‘강아지똥’ ‘몽실언니’를 쓴 아동문학가 권정생(1937∼2007·사진)의 10주기인 17일을 맞아 그의 문학세계를 연구한 책이 발간되고 작품이 재출간되는 등 그의 삶과 문학이 재조명되고 있다. 권정생은 1968년부터 경북 안동시 일직면의 흙담집에 살며 동화 동시 소년소설 그림책 산문 등 광범위한 작품을 남겼다. ‘권정생의 문학과 사상’(소명출판)의 저자 엄혜숙 씨는 책에서 “권정생은 전근대와 근대를 아우르며 농경사회가 돈에 의해 변모해 가는 과정을 그려냈다”며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생명을 억압하는 모든 것들을 고발하고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책은 기독교 실존주의, 기독교 아나키즘, 생태 아나키즘을 키워드로 그의 사상 변화를 분석한다.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도 8월 중에 서울 강남구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서 그의 삶과 문학을 조명하는 학술대회를 열 예정이다. 똘배어린이문학회 회원들의 추모 글을 엮은 문집 ‘그리운 권정생 선생님’(단비)도 출간됐다. 권정생의 작품들도 잇따라 재출간되고 있다. 이달에만 ‘빼떼기’(창비), ‘하느님의 눈물’(산하),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산하), ‘복사꽃 외딴집’(단비)이 발간되는 등 올해 7권의 작품이 다시 나왔다. 전시회도 열린다. 대전 중구 계룡문고는 8월 26일까지 유품과 작품을 모은 ‘보고 싶은 권정생’ 전시를 연다. 출판사 창비는 김환영 작가가 그린 ‘빼떼기’의 원화를 서울 서교동 창비서교빌딩에서 전시하고 있다. 다음 달 16일에는 권정생 연구자인 이기영 씨가 쓴 ‘작은 사람 권정생’의 북콘서트가 열린다. 권정생은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는 어린이에게 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그의 유언에 따라 설립된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은 소외지역 공부방에 책을 지원하고 북한 어린이들에게 급식을 지원하는 사업 등을 벌여왔다. 재단은 17일 오전 11시 경북 안동시 권정생동화나라에서 추모식을 열고 권정생창작기금을 동화 ‘할머니의 마지막 손님’의 작가 임정자 씨에게 수여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은 말씀을 건조하게 한다. 좋게 말하면 그렇고 미디어를 잘 모른다. 겸손함 때문인지 당신에 관해 물어봐도 본인은 자꾸 빠져 있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설명만 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새천년민주당 국민경선을 치르는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입니다’(사진)를 만든 이창재 감독은 16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노무현입니다’는 당시 경선 자료화면과 함께, 후보 시절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안희정 충남도지사 등 노 전 대통령 주변 인물 39명의 인터뷰가 담겼다. 이 감독은 “문 대통령은 인터뷰 중 눈물이 나오려 하자 한쪽 구석으로 가서 손수건으로 닦고 왔다”며 “최소한 쇼맨십이 있는 분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영화에서 노 전 대통령의 유서를 읽으며 “제가 이분의 글 쓰는 스타일을 아는데 처음부터 (이렇게) 간결하게 쓰지 않는다. 머릿속에 늘 유서를 생각하고 계신데 우리는 그를 아주 외롭게 두었다. 이게 유서를 볼 때마다 느끼는 아픔”이라고 말했다. 영화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8주기(23일) 이틀 뒤인 25일 개봉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이 세계적 차원의 시장에서 작가들은 고풍스러우면서 동시에 미래지향적인 무언가를 표현한다. 이들을 자극하는 건 태고 이전의 까마득히 먼 곳에서 온 충동적 힘이다. 과거 바빌로니아와 오세아니아, 중앙아메리카의 원시림, 그리고 한반도의 금강산에서 수많은 신화를 탄생시켰던 그 동력이다.” 200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 작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가 23∼25일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에서 열리는 ‘2017 서울국제문학포럼’에서 발표 예정인 글이다. 2011년에 이어 6년 만에 열리는 이번 포럼에는 10개국에서 세계적 작가 13명이 참석해 ‘새로운 환경 속의 문학과 독자’를 논한다. 언론에 미리 공개된 작가들의 발제문을 살펴봤다. 르 클레지오는 ‘시장 속의 문학’이라는 글에서 한국에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소설에는 신비로운 실체가 존재한다. 그것은 역사와 기억, 육체적 삶과 욕망, 그리고 꿈으로 이루어져 현실과 섞이며 현실을 변화시키는 영감”이라며 “나는 한강의 ‘채식주의자’나 김애란의 풍자적 소설 등 젊은 한국 작가들의 작품에서 이런 실체를 발견한다”고 덧붙였다. 르 클레지오는 인터넷의 확산 등 기술발전이 문학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봤다. 그는 “개인적인 창작물의 신비는 세계로 전파되며,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이로움과 즐거움, 꿈의 대상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5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방사능에 오염된 벨라루스 지역을 오랫동안 취재해 기록한 일을 발표한다. ‘미래에 관한 회상’이라는 글에서 그는 “체르노빌 지대에는 우리의 지식과 상상력을 뛰어넘는 죽음이 도처에 숨어 있었다”며 “그것은 미래에 인간이 겪게 될 공포이기에 미래로부터 온 전쟁이고, 나는 미래를 기록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번 포럼 조직위원장인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는 기자간담회에서 “그의 글은 매체와 뉴스가 발달한 세상에서도 작가들이 구체적인 체험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호소력이 큰지 알려 준다”고 했다. 폭력을 소재로 한 발표도 이어진다. 소말리아 출신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누르딘 파라는 ‘나의 인생을 만든 갈등들’에서 1945년 소말리아의 오지에서 태어나 살아온 이야기를 전하며 “소말리족 내전에서 사람들은 … 이 위기의 거대함에 개인적으로 대처할 수 없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든 국가적으로든 생존을 보장할 어떠한 일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인도 출신의 소설가 아미타브 고시는 ‘인디라 간디의 흔적’에서 인디라 간디 총리 암살과 폭동을 소재로 문학이 폭력에 관해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탐구한다. 벨기에 출신의 세계적 비평가 앙투안 콩파뇽은 문학 저널의 쇠락을 비롯해 읽기, 쓰기, 교육, 연구 등에서 디지털이 가져온 변화를 짚는다. 이 밖에 벤 오크리(세계화 시대 속의 문학, 문학과 문화의 신중첩 지대), 얀 코스틴 바그너(멀티미디어 시대 문학의 의미에 대한 소견), 로버트 하스(가격을 매길 수 없는 것: 시와 시장에 대한 몇 가지 기록), 히라노 게이치로(작가와 마케팅), 스튜어트 몰스롭, 하진, 오마르 페레스, 위화 등의 발표가 이어진다. 국내 작가 50여 명도 발제와 토론에 참여한다. 대산문화재단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는 이번 포럼은 홈페이지()에 신청하면 무료로 참관할 수 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20여 년 동안 일본의 한국 강제 병합의 불법성을 연구해 온 저자(서울대 명예교수)가 식민지배 청산을 위해 알아야 할 점과 할 일에 대한 고찰을 모은 책이다. 20세기 한국인을 질곡으로 몰아넣은 식민지화는 엉터리 조약으로 이뤄졌다. 1905년 을사늑약은 국권 이관에 관한 조약으로 원수가 발부하는 비준서가 동반돼야 하지만 외부대신 직인만 찍혔을 뿐 비준서가 없다. 1910년 ‘한국 병합조약’은 조약문의 재질뿐 아니라 한국어와 일본어로 쓴 필체가 똑같다. 일본 측이 한국이 갖춰야 할 문건들을 일방적으로 준비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세계 조약 역사상 유례가 없다. 또 순종 황제는 병합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공포 칙유(勅諭)에 서명하지 않음으로써 비준을 거부했다. 그러나 일본 신문은 한국 황제가 자진해 나라를 내놓기로 했다고 왜곡 보도했다. 저자는 일본의 근대 한국 침략의 사상적 기원으로 요시다 쇼인의 팽창주의를 꼽는다. 요시다 쇼인은 메이지 유신의 주도세력을 키운 인물로 ‘유수록(幽囚錄)’에서 일본이 서양 열강에 앞서 이웃 나라들을 선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책은 유수록의 내용을 자세히 소개한다. 당대 일본에도 평화적 해양국가로의 발전을 일본의 미래로 제시한 가쓰 가이슈 같은 인물이 있었지만 그는 팽창주의 세력에 밀려난다. 저자는 고종이 주권 수호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기에 독살됐다고 본다. 저자는 “데라우치 총리대신은 ‘이태왕(고종)에게 1905년 11월의 보호조약을 추인하는 문서를 요구하고 이를 거부하면 독살하라’는 밀명을 조선 총독 하세가와에게 내렸다”며 “1919년 1월 19일 고종은 이를 거절했고 이틀 뒤인 21일 부푼 시신으로 발견됐다”고 말했다. 저자는 여전히 우리의 역사 인식에 잘못된 점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한반도 지배의 명분을 세우려고 명성황후를 권력욕에 불타는 여성으로, 고종을 유약하고 무능한 군주로 왜곡했다. 저자는 “일본은 최근 제국 팽창의 근원인 요시다 쇼인의 사상을 미화해 추존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100년 전 역사를 실패한 역사로 간주하고 군주에게 망국의 책임을 지우고 있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암탉 깜둥이가 낳은 병아리 중 한 마리가 실수로 뜨거운 아궁이에 뛰어든다. 불에 덴 이 병아리는 부리가 문드러지고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 삐딱하게 걷게 되고, 순진이네 식구들에게 ‘빼떼기’라는 별명을 얻는다. 식구들은 어미 닭도 외면하는 이 새끼를 극진하게 보살피지만 어찌할 수 없는 이별의 순간이 닥친다. 생명이 다른 생명을 보듬을 때 생기는 온기와 생명의 숙명이 슬프면서도 아름답게 그려졌다. ‘강아지똥’ 등을 쓴 권정생 작가가 1988년 낸 작품으로 작가의 작고 10주기에 맞춰 다시 출간됐다. 김환영 화가가 시골에 내려가서 살며 본 닭의 모습이 강렬한 색감과 힘찬 붓질로 살아났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1년만 하기로 했는데 하다 보니 벌써 8년째네요. 여든 살이 넘으면 미래는 장담하지 못합니다.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할 뿐이지요.” 족보나 편지, 책, 편액, 병풍 등에 쓰인 한문의 뜻을 물어오면 풀이해주는 한국고전번역원의 ‘한문 고전 자문 서비스’가 햇수로 10년째를 맞았다. 이 서비스는 2008년 시작돼 올 4월까지 이용건수가 1만3300건을 넘었다. 고전번역원 고전정보센터에 한문을 수십 년 공부한 전문가가 있어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한문의 뜻을 풀이해주지만 그 역시 막힐 때가 있다. ‘모른다’고 답할 수는 없는 노릇. 그럴 때 찾는 이가 고전 번역의 ‘달인’ 노상복 고전정보센터 자문위원(80)이다. ‘전문가들의 전문가’인 그를 최근 고전번역원에서 만났다. “사서삼경을 오전에 배우면 밤 12시까지 100번을 읽어요. 반드시 100번을 읽고 다음 부분을 배웁니다. 그렇게 7서(書)를 배우고 난 뒤 재독을 합니다. 또 100번을 읽는 것이지요. 그리고 춘추 좌전 예기로 넘어가는데 역시 적어도 100번을 읽습니다.” 노 위원은 동아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중재(重齋) 김황(金榥·1896∼1978) 문하에서 한문을 공부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김황은 500만 자에 이르는 문집을 남긴 ‘마지막 유학자’로 스승인 면우(면宇) 곽종석(郭鍾錫·1846∼1919)과 함께 파리장서사건(유림이 1919년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독립을 호소한 사건)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노 위원은 “중재 선생님이 계시던 신고당(信古堂)에서 1961년경부터 10년 동안 한문을 배웠는데, 당시만 해도 한문 공부한다고 하면 ‘소배(笑背·비웃음과 따돌림)’당하던 시절”이라고 말했다. 노 위원은 이후 한동안 사업을 하다가 ‘민족문화추진회(민추)’를 거쳐 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한문을 가르치며 승정원일기 번역을 교감(校勘·비교해 바로잡음)했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 한문교육기관인 청계서당을 설립하기도 했다. 2010년부터 고전번역원에서 심하게 흘려 쓴 초서나 이체자(異體字) 해독을 돕는다. 일반인들을 위한 한문 고전 자문 서비스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고전을 번역하는 번역위원들도 그에게 자문한다. 노 위원은 “팽배한 물질만능주의 속에서 무너지는 윤리를 바로 세울 실마리는 고전 교육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한시 ‘신고당을 회상한다(回想信古堂)’를 들려줬다. “왕년 신고당에서(回憶往年信古堂)/언제나 밤중까지 글 읽던 시절 생각난다(讀經勉勉夜常央)/화려한 문장으로 영달을 이루려는 마음은 없었고(藻-成達無心羨)/…/여러 제자들 훈도하는 스승님은 위대하셨다(賢愚甄導傳師皇)/실컷 소배당한 세월은 길었어도(剩當笑背多時月)/맛있는 샘물 지저귀는 새소리는 잊을 수 없어라(泉비鳥鳴不可忘)”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부산 동서대 임권택영화영상예술대가 미국의 영화전문잡지 ‘버라이어티’가 선정한 ‘세계 20대 영화학교(World top 20 film schools)’의 하나로 선정됐다고 동서대가 9일 밝혔다. 100년 전통의 잡지인 버라이어티는 4월호에서 명성이 높고 경쟁력 있는 영화학교를 소개했다. 미국 컬럼비아대, 예일대, 노스웨스턴대, 채프먼대, 폴란드 국립영화학교, 인도 영화&텔레비전 인스티튜트 등과 함께 동서대 임권택영화영상예술대를 세계 20대 영화학교로 꼽았다. 동서대 임권택영화영상예술대는 부산국제영화제와 함께 아시아영화아카데미(AFA)를 운영하고 있으며, 임권택 감독(사진)이 석좌교수로 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고하 송진우(古下 宋鎭禹·1890∼1945) 선생 탄생 127주년 추모식이 8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서 열렸다. 고하 송진우 선생 기념사업회(이사장 김창식)가 주최하고 국가보훈처와 광복회, 동아일보가 후원한 이날 추모식은 선생의 장손인 송상현 유니세프한국위원회 회장을 비롯해 김황식 전 국무총리, 남시욱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 이사장, 이인호 KBS 이사장,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 이대순 전 체신부 장관, 현병철 전 국가인권위원장,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 김유후 전 대통령사정수석비서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권오곤 전 국제유고전범재판소 부소장, 나중화 광복회 부회장, 조강환 동우회장(전 방송위원회 부위원장), 윤주 효창원7위선열기념사업회 상임고문, 윤종오 서울남부보훈지청장 등 각계 인사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김 이사장은 추모사에서 “선생은 일제강점기에도 밝은 미래를 직시하고 조국 광복을 위해 애국 애족 애민운동을 실천하며 역사의 선각자로서, 큰 지도자로서 역할을 다하셨다”고 말했다. 김종필 서울 중앙고 교장이 선생에 대한 약전(略傳·간략한 전기)을 봉독했고,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고하의 희생과 대한민국의 상생’을 주제로 추모 강연을 했다. 김 교수는 “극렬하게 생각이 대립해도 선생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며 상생의 대한민국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송상현 회장은 유족 인사에서 “고하는 1940년 동아일보 강제 폐간 뒤 광복까지 일제의 엄중한 감시 속에서도 현 서울 도봉구 창5동의 아들 내외 집에서 위당 정인보, 가인 김병로 선생을 만나 국제 정세를 분석하고 일제의 필망(必亡)을 전망하면서 조국의 미래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고하 선생은 일제강점기 중앙학교 교장을 지내며 국내외 각계 지도자와 제휴해 3·1운동을 계획했고 동아일보 3대, 6대, 8대 사장을 지냈다. 광복 뒤 국민대회준비위원장, 한국민주당 수석총무로 활동하다 1945년 12월 극우 청년들에게 암살됐다. 1963년 건국공로훈장이 추서됐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아버지 어머니께 ◇시를 잊은 그대에게/정재찬 지음/휴머니스트·2015년백일장 앞두고 가족 모두 모여 시와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던 시간이 어느새 추억이 됐습니다. 어렸을 때보다 작아 보이는 아버지 어머니 모습을 뵐 때면 그 허전함을 무엇으로 채워드려야 할지 고민이 늘어납니다. ‘한 편의 시로부터 삶의 위로와 힘을 얻는다’고들 합니다. 시(詩)라는 새 가족을 맞이해보심은 어떨지요. 자주 접해 친숙할 시 46편에 저자의 해박하면서도 공감 가는 해설이 더해져 편안함을 안겨주는 책입니다. “시를 찾고, 노래를 하며, 누가 뭐래도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을 떠올려 보라”는 저자의 외침에선 더욱 부모님이 생각나네요. 워킹맘인 나에게◇타임 푸어/브리짓 슐트 지음/더퀘스트·2015년“왜 이렇게 챙길 일이 많고, 늘 해야 할 일에 쫓기는 걸까?”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까지. 이번 달 내내 잇따른 행사를 치르다 보면 이런 말이 입에서 절로 나올 거야. 엄마, 아내로서의 삶은 하루에 한 시간도 마음 편히 쉴 틈이 없는 게 현실이더라. 그래도 휴일에 잠시 짬을 내 이 책을 다시 읽어보길 권해. 퓰리처상을 수상한 유능한 기자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저자가 ‘일하는 여성들은 왜 이렇게 시간이 부족한지’ 예리한 시각으로 짚어나간 책이지. 전문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꼭 내 모습 같은 저자의 ‘워킹맘 좌충우돌기’도 함께 담겨 있어. 처음 읽었을 때, 정말 가슴을 치면서 후련하게 공감했잖아. 아내에게 ◇어른 없는 사회/우치다 타츠루 지음/민들레·2016년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동네에서는 어디에서 누구와 놀아도 동네 어른들의 시선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동네’라는 게 행정구역 이상의 의미가 없는 지금은 도시에서 어린아이 혼자 나가 놀라고 하기가 영 부담스럽네요. 이 책의 부제는 ‘사회수선론자가 말하는 각자도생 시대의 생존법’이에요. 성장을 대가로 전통적 공동체의 미덕을 희생시킨 사회, 모두가 소비의 주체가 돼 버린 사회는 성장 신화가 붕괴한 시대에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가 주제죠. 결국 “어른이 필요하다”고 하네요. 내가 버린 게 아니라도 발아래 떨어진 유리조각을 먼저 줍는 사람이, 어른인 거겠죠. 역사학도를 꿈꾸는 첫째에게 ◇하버드 중국사 남북조/마크에드워드루이스지음/너머북스·2016년아들아. 나는 네가 사료(史料)만 추종하는 역사학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가끔 아비는 역사책을 읽을 때 이른바 ‘사료 비판’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단다. 승자의 기록답게 사료엔 팩트 왜곡이 포함되기 일쑤지. 이것을 구별하려면 사료에 매몰되지 않고 거시적인 주변 연구를 통해 역사적 맥락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측면에서 아비가 최근 읽은 이 책은 퍽 흥미로웠다. 저자는 단순히 역사뿐 아니라 도교, 불교 사상사와 시(詩) 부(賦) 등의 고대 문학, 가족 제도까지 포함한 다양한 시각으로 남북조시대를 조망하고 있어. 이 책의 독특한 접근 방식을 네가 배웠으면 한다. 어머니께 ◇마음의 소리 레전드 100/조석 지음/위즈덤하우스·2016년며칠 전 저녁식사 자리에서 못난 마음에 “좋은 날이 올까요?” 여쭙는 제게 말씀하셨죠. “늘 오늘뿐이다. 오늘을 살아갈 수 있으면 감사한 일이다.”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제가 가까운 이들에게 기쁨과 도움은커녕 슬픔과 어려움만 더하는 사람임을 뒤늦게 돌아보고 있습니다. 또 꾸짖음을 듣겠지만 어머니께 어떤 자식일지, 생각하기도 두렵습니다. 왁자지껄 웃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많습니다. 저 어릴 때 만화책만 본다고 야단하시던 어머니께 그래서 이 책을 드립니다. 잠시라도 시름 잊고 가볍게 웃으시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요. 조금이라도 웃겨드려야, 아버지께도 덜 혼날 듯하고요.유원모 기자·장선희 기자·조종엽 기자·김상운 기자·손택균 기자}

“보이지 않는 손이 삶을 강하게 구부릴 때, 당신은 어떻게 하는지? 더 낮게, 더 낮게, 엎드리는 것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다. 바람이 지나갈 때까지 뿌리는 흙을 향해 더 맹렬하게 파고드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엎드렸던 흔적을 나무도 사람도 지니고 있다.” 심하게 굽은 들판의 나무 한 그루에서 누군가는 조형미를 느끼고, 또 다른 이는 이 지역의 바람이 거센 이유를 생각하겠지만 저자는 인간이 맞이하는 운명의 흔적을 본다. ‘어두워진다는 것’을 비롯한 여러 시집으로 사랑받아 온 시인의 산문 45편이 책에 담겼다. “그가 그린 어떤 길은 벌목의 상처를 지니고 있어/내 발길을 오래 머물게 하네/…/길을 그리기 위해서는/…/그 쓸쓸한 소실점을 끝까지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여는 시 ‘길을 그리기 위해서는’에서) 세계 각지의 풍경으로 걸어 들어가는 저자의 행위는 자신의 내면을 산책하는 일과 같다. 사람들의 평범한 뒷모습도 시인의 눈을 거치면 새삼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타인의 시선에 무방비로 노출된 등을 가졌다는 것. 자신이 알지 못하고 어찌할 수도 없는 신체의 영역이 있다는 것이 왠지 두렵고도 안심이 된다.” 비 오는 중국 옌지의 한 들판에서 아기를 업고 걷는 여윈 노인, 영국 런던에서 자선 가게의 계산원으로 일하는 장애인, 개에게 담요를 내어주고 책을 읽는 유럽의 노숙자, 터키의 앙카라에서 만난 한 무리의 아이들을 시인은 만난다. 카프카 고흐 안네 등 비극적인 삶을 살다 일찍 세상을 떠난 이들의 발자취를 따라나서기도 한다. 책에는 시인이 찍은 사진도 함께 담겼다. 글의 내용과 직접 관련된 사진이어서 저자가 어떤 풍경을 보고 글과 같은 생각을 떠올린 것인지 바로 다가온다. 마치 함께 산책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꼭 여행지에 관한 정보가 없어도, 심오한 철학이 담긴 게 아니라도 좋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과장 없고 따스한 시선이 담긴 문장이 독자의 가슴도 따듯하게 만든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내가 누구지?” 멋진 숲속의 작은 벌레는 나무에 등을 긁을 때마다 키가 자랐고, 털에서는 팔과 다리가 자라났지만 아주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것만 같다. 숲은 말한다. “넌 곰이잖아!” 세상과 구분된 ‘나’는 정말 존재할까, 나는 어떤 개성을 갖고 있을까? 곰은 자기가 보지 않아도 숲속의 꽃과 나무가 쑥쑥 자란다는 것을 알게 되고 도롱뇽, 펭귄, 거북 등을 만나면서 자신을 발견해 나간다. “길을 잃고 헤매는 것도 앞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도 깨닫는다. 그림은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의 작가가 그렸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한미관계는 사실 평온했던 적도, 한국이 바라는 대로 이뤄진 적도 별로 없습니다. ‘위시풀 싱킹(wishful thinking·바라는 대로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한국 외교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한미관계사 분야의 대표적인 학자인 박태균 교수(51·서울대 국제대학원 부원장·사진)의 말이다. 최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비용 분담을 요구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박 교수는 한국 정부의 외교 정책과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미국 하버드대 옌칭연구소에서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고 동 대학에서 한국현대사를 강의했으며 ‘우방과 제국, 한미관계의 두 신화’(2006년) 등의 저서를 냈다. 1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미국은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에서 한국의 손을 들 것’ ‘한중관계가 근접해도 미국은 방관할 것’ ‘중국은 북한을 포기할 것’과 같은 전망을 이른바 ‘위시풀 싱킹’의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그는 “트럼프의 최근 발언은 지지자들을 고려한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방침이 달라질 것이라고 보는 건 우리만의 착각”이라며 “지미 카터 행정부도 의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공약대로 주한미군 철수를 1976∼1979년 아주 강하게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사드 비용 분담 요구는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는 게 박 교수의 분석이다.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이 미군 주둔지 재조정을 시작했고, 아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전환한 것과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한동안 잠잠했던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트럼프 대통령이 들고나온 건 더 큰 문제의 시작”이라고 경고했다. 박 교수는 또 리처드 닉슨 행정부 당시 한미관계가 현재 상황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고 강조했다. 1969년 당선된 닉슨 대통령은 베트남전쟁으로 미국의 ‘곳간’이 비게 되자 해외 분쟁 개입을 줄이는 한편 동아시아의 긴장을 완화하겠다고 나섰다. 박정희 정부는 한국군이 베트남에 파병한 동안에는 주한미군을 감축하지 않고, 감축한다 해도 사전 협상키로 미국과 협의한 상태였다. 그러나 닉슨은 일방적으로 주한미군 감축을 통보한다. “이후 한미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던 건 닉슨의 생각을 읽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박 대통령이 닉슨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과 같은 상황이 지금도 연출될 수 있습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도 그 이상의 보호무역주의가 트럼프 재임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박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앞으로 주한미군 감축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들고나올 가능성이 크다며 새 정부의 대미 정책에 관해서도 조언했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은 한국 쪽에서 먼저 얘기를 꺼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의 바람과 관계없이 미국은 주한미군을 감축하거나 철수하고, 그에 따라 전시작전권을 이양하고자 할 것입니다. 과거 노무현 정부가 민족주의 감정에 편승해 전작권 환수가 우리 측에 이익인 것처럼 호도하고, 정치 문제화한 건 큰 잘못입니다.” 현재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전시작전권 조기 전환’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박 교수는 향후 한미동맹의 양태는 다양한 형태가 될 수 있다며 대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 우리는 미국 중국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조차 모른다는 게 정확할 겁니다. 새 정부가 탄생하면 당장 책임자를 만나 그들이 어떤 카드와 옵션을 갖고 있는지부터 먼저 봐야 합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문인 300여 명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철회를 2일 촉구했다. 염무웅 영남대 명예교수와 이시영 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등은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드 장비를 미국으로 돌려보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사드 배치를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작가들’ 명의의 성명에서 “사드가 북한의 핵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지만 그 효용성이 검증된 바도 없고 실제 상황에서 무용할 것”이라며 “사드가 지키는 건 지배자의 평화”라고 주장했다. 김종철 문학평론가, 정우영 김해자 황규관 박성우 시인, 백가흠 소설가 등이 대표 발의했으며 문인 353명이 서명했다. 이들은 또 북한에 대해서도 “한반도 비핵화 대의에 복귀하라”고 촉구했다.조종엽기자 jjj@donga.com}

“남북 학술교류가 정치·군사 상황에 관계없이 진전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합니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 공동위원장인 안병우 한신대 교수는 지난달 29일 학술대회 ‘남북한 민간 및 학술 교류의 현황과 미래 지향적 전망’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역사연구회와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등이 공동 주최한 이날 대회에서 기조발제를 맡은 안 교수는 “북한의 핵실험 등을 이유로 남북 학술교류가 전반적으로 축소됐고, 지난해 4차 핵실험 뒤에는 모든 교류와 협력 사업이 중단됐다”고 말했다. 대표적 학술 교류 사례인 겨레말큰사전 편찬은 2015년 12월 중국 다롄에서 회의를 연 것이 남북 학자들의 마지막 공동 회의였다. 2007년 시작된 개성 만월대 공동 발굴조사 사업도 일곱 차례 공동 발굴을 했지만 2015년 11월 사업단이 철수해 중단된 상태다. 안 교수는 학술 교류의 목표를 민족의 동질성 회복에 국한하지 말고 평화 정착의 수단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의 역사 왜곡이나 중국의 북한 지원 때문에 양국과 학술 교류를 중단하지 않는 것처럼 남북 학술 교류도 계속돼야 한다”며 “적극적인 교류협력의 의지를 담은 중장기 로드맵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그들은 지쳐 있었고 가난하고 더러웠지만 패배하지는 않았다. 상인, 재봉사, 랍비와 성가대 선창자의 자식들이었으며 독일군에게 빼앗은 무기로 무장을 했다.” 제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이라면 보통 홀로코스트와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연기를 떠올리지만 ‘지금이 아니면…’은 독일군과 싸웠던 러시아와 폴란드계 유대인들의 빨치산 투쟁을 그린 소설이다. 수동적 희생자가 아니라 거악과 맞서는 유대인들의 모습이 담겼다. 책에서는 마치 유격대원들과 함께 현장에 있는 것과 같은 생동감이 느껴진다. 대원들의 고뇌도 그대로 드러난다. 주인공 ‘멘델’은 독일군에게 아내를 잃고 참상을 겪은 뒤 유대인의 신은 어디에 있는지 묻는다. “그날 이후 난 사람을 죽이는 게 나쁜 일이지만 독일군은 죽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됐어.…내가 독일인을 한 명 죽여야만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다른 독일인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으니까. 하지만 우리에게는 ‘살인하지 말라’는 계율이 있어.” 반면 또 다른 낙오병 레오니드는 말한다. “차라리 독일인들 공장에 일하러 갈 거라고.…더 이상은 총을 쏘지 않을 거야.…당신도 나하고 똑같은 거 원하잖아. 집, 침대, 의미 있는 삶, 가족, 당신 고향 같은 마을.” 유격대 안에서도 유대인은 처지가 달랐다. 러시아인은 전쟁에서 이기면 돌아갈 집이 있었지만 유대인은 대학살로 마을이 사라지거나 잿더미가 돼 돌아갈 곳이 없었다. 멘델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유격대 합류를 거절당하기도 한다. 대원들의 인간적인 한계도 가감 없이 묘사된다. 유격대장 울리빈은 작은 성공에 도취돼 대원을 잃거나 경험이 없는 대원에게 지뢰를 옮기라는 무모한 명령을 내린다. 열일곱 살 난 대원이 집에 갔다가 늦게 돌아오자 총살하기도 한다. 우리 빨치산 문학이 유격대를 다소 이상화하거나 영웅적인 모습 위주로 그린 것과는 사뭇 다르다. 한국의 작품이 분단 상황에서 억눌렸던 역사 속 패배자들의 기억을 되살린 것인 데 비해 이들은 결과적으로 전쟁에서 이겼다는 차이도 아마 한 이유일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인 저자(1919∼1987)는 실제 파시즘에 저항하는 지하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돼 아우슈비츠로 이송됐다가 살아남았고, 수용소에서 겪은 일을 그린 작품 ‘이것이 인간인가’를 쓴 현대 증언 문학의 대표적 작가다. ‘지금이 아니면…’은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1982년 발표했다. 영역본을 저본으로 중역한 것이 한국에도 출간됐었지만 이번 번역본은 이탈리아어 원본을 저본으로 했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드러난 인간의 여러 면모를 군더더기 없고 힘 있는 문장으로 깊이 파고든 걸작이다. 등장인물은 오늘날 주변에서 만날 수 있을 것처럼 생생하다. 함께 발간된 ‘릴리트’는 저자의 아주 짧은 단편소설 36편이 담겼다. 표제작은 구전 유대신화 속 인물로 하와 이전에 창조된 인류 최초의 여성이지만 신의 저주로 끝없이 변신하며 사는 악마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집에는 아우슈비츠의 경험을 다룬 작품뿐 아니라 환상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 미래 세계에 관한 소설들이 묶였다. 인간 본성의 양면성에 관한 통찰이 곳곳에서 번득인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