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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들이 한국에 입국하기 전 거치는 동남아 국가 중 한 곳인 태국의 한국대사관 여직원들이 탈북자들에게 반말과 욕설을 일삼아왔다는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현지 대사관은 계약직인 이 여직원들에게 불법 입국 혐의로 태국 이민국 산하 구금시설에 수감된 탈북자들의 관리를 맡겨왔다.북한 고위급 간부 출신인 한 80대 탈북자 A 씨는 12일 동아일보 기자에게 “지난해 5월 20대 중반의 여직원으로부터 ‘야, 너 여기 왜 들어와 있어’ 등의 말을 듣고 억울한 마음에 대사에게 탄원서를 보내기도 했으나 아무런 회신이 없었다”고 주장했다.같은 시기에 수감돼 있었던 50대 탈북자 B 씨는 “A 씨가 비좁은 공간에서 더위에 견디지 못해 결핵 환자가 격리돼 있던 방에 들어가자 한 여직원이 100여 명의 다른 탈북자 앞에서 A 씨에게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욕설을 퍼부었다”고 회상했다.B 씨는 “대사관 여직원들은 탈북자들을 나이 불문하고 늘 반말과 욕설로 대했다”며 “나는 감방 비품을 마음대로 옮겼다는 이유로 같은 방에 있던 아들과 헤어져 흑인 구금자 등이 수감돼 있는 외국인 감방으로 옮겨져 보름이나 있었다. 대사관 여직원으로부터 ‘대한민국이 너 같은 쓰레기를 받는 곳은 아니다’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주장했다. B 씨는 “목숨 걸고 자유를 찾아왔는데 딸 나이 정도의 여성에게서 ‘야, 너’라고 불리며 일방적으로 하대를 받아 죽고 싶었다”고 말했다. B 씨의 아내는 “수모를 견디기 힘들어 ‘차라리 한국에 안 가겠다’고 하자 ‘그럼 평생 감옥에 갇혀 있으라’는 말을 들었다”고 주장했다.이들과 다른 시기에 수감된 탈북자들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비슷한 주장을 했다. 지난해 3월 수감돼 있었던 탈북 여성 C 씨는 “여직원들이 나타나면 수백 명의 탈북자가 모두 일어나는 등 예우를 해주었다”면서 “남성 직원 2명은 탈북자들을 점잖게 대하려 노력했지만 여직원들은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한 여직원은 학력 경력 등 신상자료를 쓰는 어머니뻘의 탈북 여성에게 서류를 집어던지며 “그 나이 먹도록 글도 제대로 못 쓰냐”고 욕설을 퍼부었다고 C 씨는 주장했다. C 씨는 “이들이 왔다 가면 감방이 얼음장처럼 싸늘하게 얼어붙지만 반항하면 처벌로 한국 입국일이 늦어져 비좁은 감방에 그만큼 오래 있어야 해 어쩔 수 없이 참고 지냈다”고 말했다.▼ 탈북자 관리, 외교관 대신 계약직에 맡겨 논란▼ 전문지식-소양 의문… 대사관 “욕설 사실무근”지난해 9월 수감돼 있었던 탈북 여성 D 씨는 “한국에 가려고 어쩔 수 없이 반말과 폭언을 참고 있었고 한국이라는 나라는 원래 그런가 하고 생각했는데 한국에 와보니 정말 말도 안 되는 학대를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여직원들은 사선을 헤쳐 온 탈북자들이 만나게 되는 한국의 첫 얼굴이다. 그런데 따뜻하게 맞아줄 줄 알았던 한국의 아가씨들이 북한 보위부원 못지않은 반말과 욕설로 맞이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고 덧붙였다.탈북자 E 씨는 반말과 인격 모독이 일상화되자 탈북자들이 “이럴 바에는 차라리 북으로 다시 돌려보내 달라”고 항의했다고 주장했다.이 같은 주장에 대해 주태국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간혹 오해는 있을 수 있지만 탈북자들을 최대한 배려해주고 친절하게 맞아주려 노력하기 때문에 반말이나 욕설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부인했다.탈북자들의 이 같은 주장은 올 2월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여론이 확산되기 이전의 상황에 대한 것이다. 탈북자들은 한국에 입국해도 몇 달간의 조사와 3개월의 하나원 과정을 거쳐야 사회에 나오기 때문에 올 들어 동남아 수감시설에 있는 탈북자들을 대하는 현지 공관 직원들의 태도가 어떤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인할 수 없다.주태국 대사관 관계자는 탈북자들이 폭언 당사자로 지목한 여직원들이 지금도 근무 중이라고 말했다. 이 여직원들은 현지공관이 채용한 계약직 행정원 신분으로 준공무원의 처우를 받고 있다고 외교통상부는 설명했다. 이들이 국가 간의 민감한 외교사안인 탈북자 문제를 처리하는 데 요구되는 전문지식과 소양을 교육받았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외교관이 다뤄야 할 탈북자 처리를 계약직 직원에게 맡기는 것은 탈북자 문제에 대한 외교부의 안이한 자세를 드러내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중국을 거쳐 동남아 국가로 입국한 탈북자들은 해당 국가에서 불법 밀입국자로 이민국 구금시설 등에 잠정 억류되어 있다가 한국에 온다. 태국을 통해서도 매년 1000명 이상의 탈북자가 들어오고 있다.외교부 조병제 대변인은 “문제의 여직원들로 지목된 사람들에게 확인 조사했는데 절대로 그런 적이 없다고 한다”며 “지금까지 우리의 판단은 탈북자들이 과장된 진술을 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예수가 십자가에서 처형된 뒤 시신을 감쌌던 수의로 알려져 진위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토리노의 수의’가 중세 때 만들어진 가짜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교회 사학자 안토니오 롬바티 교수(포폴라레대)는 “토리노 수의는 수세기 동안 예수의 것으로 숭상받아 왔지만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한 지 1300년가랑 흐른 뒤인 14세기경 터키에서 만들어진 가짜”라며 “토리노의 수의는 중세 기독교 국가들에서 유포됐던 수많은 수의 가운데 하나일 뿐으로 당시에는 이런 유의 수의가 40개나 있었다”고 발표했다고 영국 데일리메일이 10일 보도했다. 롬바티 교수는 “대다수 수의는 프랑스 대혁명 때 파손됐다”며 “이들 중 일부에는 어떤 형상이 그려져 있었고 일부는 혈흔과 비슷한 얼룩도 있었지만 나머지는 순백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옥스퍼드대에서 1988년 실시한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 실험에서도 토리노의 수의는 1260∼1390년에 제작됐다는 결과가 나왔다. 1898년 이탈리아 사진가 세콘도 피아가 왕의 허락으로 이 수의를 촬영했다가 촬영 원판에 칼로 찔리거나 고문을 당한 것으로 보이는 알몸 상태로 수염이 난 남자의 앞모습과 뒷모습 형상이 나타나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수의가 진짜라고 믿는 사람들은 예수의 형상이라고 주장했다. 수의를 보관하고 있는 이탈리아 토리노성당이 2010년 44일간 공개했을 때 무려 213만 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 한편 바티칸 당국은 수의가 진품인지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언급한 바 없으며 과학자들에 한해 실험용 샘플을 제공해 왔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페루에서 한국인 8명 등 승객 14명을 태우고 비행하다 6일 실종된 헬리콥터의 위치가 페루 공군에 의해 파악됐다. 그러나 헬기를 동원한 해당 지역의 수색작업은 현지 기상 악화로 중단됐다. 주페루 한국대사관의 김완중 공사는 7일 “페루 공군이 실종 헬기에 장착됐을 것으로 보이는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장치가 보내는 신호의 좌표를 찾아냈다”며 “위치는 실종 헬기의 출발지인 마수코와 도착지인 쿠스코 사이”라고 밝혔다. 김 공사는 “7일 오전 11시경 신호를 추적하기 시작해 실종된 지 약 23시간 만인 오후 4시경 정확한 좌표를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페루 공군이 잡아낸 GPS 신호의 좌표는 ‘와야와야’로 불리는 지역으로 남부 잉카유적지인 쿠스코에서 60km가량 떨어져 있고 고도가 4725m에 달하는 고산 밀림지대다. 현지 경찰은 7일 오후 2시 50분경 헬기를 띄워 이 일대를 수색했지만 실종 추정 지역에 구름이 잔뜩 낀 데다 진눈깨비마저 내려 수색을 시작한 지 몇 시간 만에 헬기를 철수시켰다. 육상에서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는 경찰들도 30cm 이상 눈이 쌓여 있어 현장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지 기상이 8일 오전(한국 시간 8일 저녁)부터 좋아져 집중적인 수색이 재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실종 헬기에는 삼성물산 등 한국인 기업체 직원 8명과 외국인 직원 1명, 조종사 등 모두 14명이 탑승했다. 실종 헬기에 탑승한 한국인 8명은 6일 오전 마수코에서 수력발전소 건설 후보지를 시찰한 뒤 오후 4시 반경 헬기를 타고 쿠스코로 복귀하던 중 이륙한 지 1시간 만에 관제소와 교신이 끊긴 채 실종됐다. 페루 당국은 실종자들의 휴대전화로 연락을 시도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현지에서는 기체가 추락할 경우 나오는 자동신호 발사가 감지되지 않아 헬리콥터가 비상착륙을 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실종자들이 살아 있을 가능성도 보인다. 문제는 춥고, 먹을 것도 없는 고산지역에서 실종된 지 이틀이 지난 상태여서 실종자들의 생존을 위해서는 빠른 시간 안에 구조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고 헬기는 14, 15명이 탑승할 수 있는 일명 ‘시코르스키’로 불리는 ‘S-58ET’ 기종으로 1975년에 제작돼 37년이나 운행된 노후 헬기로 확인됐다. 1990년 엔진을 새것으로 교체한 전력이 있지만 그동안 사고 이력은 없다. 실종 헬기를 운용해 온 ‘헬리쿠스코’사는 1990년대 설립된 소규모 헬기 관광업체로 남부 쿠스코 등에 사무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이 헬기가 사고가 난 적은 없었던 점으로 미루어 기체 결함보다는 기상악화로 추락 또는 불시착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2009년 숨겨두었던 아들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었던 가톨릭 사제 출신의 파라과이 대통령에게 또 다른 숨겨진 자식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페르난도 루고 대통령(61·사진)의 변호사인 마르코스 파리나 씨는 5일 “루고 대통령이 과거 북부 산페드로 주에서 가톨릭 사제로 활동하던 시절 아들을 낳은 사실을 인정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외신은 전했다. 이 같은 사실은 42세의 한 여성이 “지금까지 루고 대통령으로부터 양육비를 지원받았으나 2개월 전부터 대통령 측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언론에 고발하면서 알려졌다. 이 여성은 “10년 전 남편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루고 사제를 만났다가 아들까지 낳았다”고 주장했다. ‘빈자의 아버지’라는 이미지를 업고 2008년 4월 당선된 루고 대통령은 지금까지 ‘숨겨진 자식’과 관련해 4명의 여성으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이 중 두 명은 유전자(DNA) 검사 결과 친자가 아닌 것으로 판명 났다. 하지만 루고 대통령은 2009년에 당시 26세 여성이 제기한 소송에 대해선 그녀의 두 살짜리 아들을 자식으로 인정했다. 특히 주교의 신분으로 그 여성이 미성년자였던 16세 때부터 성관계를 맺어온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더욱 커졌다. 루고 대통령은 2008년 사제직을 떠났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지난달 미국 의회에서 북한인권법을 5년 연장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2004년 제정된 이 법은 2008년에 한 번 연장된 뒤 이번에 또 한 번 연장됐다. 한국 국회에서 북한인권법안이 두 번 폐기되고 최근 3번째로 발의된 것과는 비교된다. 하지만 미국의 북한인권법이 상징적 차원을 넘어 8년간 어떤 실질적 변화를 가져왔는가를 따져보면 실망스럽기 그지없다.북한인권법 채택 이후 미국이 받아들인 탈북자는 지난달 중순까지 불과 129명. 매년 평균 20명도 안 되는 셈이다. 지난해 10월부터 올 5월 중순까지 8개월 동안 북한인권법에 따라 미국에 정착한 탈북자는 고작 5명이다. 미국은 매년 전 세계에서 수만 명의 난민을 받아들이지만 정작 탈북자에 대해서는 적대국가에서 왔다는 이유로 까다로운 난민승인 심사를 벌여 절차가 수년씩 걸리기 예사다. 이 때문에 미국으로 가려다 포기하고 한국에 온 탈북자가 허다하다. 한국은 2004년 이후 1만7000명이 넘는 탈북자를 받아들였다. 미국이 북한인권법에 따라 매년 2400만 달러씩 책정한 예산이 과연 몇 %나 쓰였는지, 북한인권특사가 어떤 성과를 만들었는지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2006년 북한인권법을 제정한 일본 역시 뭘 했다고 내세울 만한 게 없다.미국과 일본에서 떠들썩하게 북한인권법이 통과될 때 큰 기대를 가졌던 탈북자들이지만 아직도 그 기대를 품고 있는 사람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최근 새누리당의 몇몇 의원이 발의한 북한인권법도 미국과 일본의 전례를 참고해야 한다. 외교통상부에 북한인권대사를 만들면, 혹은 통일부 장관이 북한인권 기본계획을 세우면 북한의 열악한 인권이 얼마나 개선될지는 아무도 모른다.새누리당의 북한인권법에 대응해 민주통합당은 교류 협력과 인도적 지원을 강조하는 법안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렇다면 사실 해법은 그리 어렵지도 않다. 새누리당도 교류 협력과 인도적 지원은 반대하지 않는다. 민주당 인사들도 북한인권의 심각성에 대해선 공감한다. 그러면 두 당이 서로 타협해서 뺄 건 빼고, 보충할 건 보충해서 교류 협력과 인도적 지원도 하고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도 하는 법안을 만들면 되는 일이다. 타협 없이 내 것만 옳다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정쟁에 국민은 질렸다.새누리당 일각에서 북한인권법 찬성 여부를 종북 검증의 잣대로 삼으려는 움직임에 대해선 더구나 납득할 수 없다. 과거 한나라당이 북한인권법 통과에 팔짱을 끼고 있었던 사실을 국민은 망각하지 않았다.북한인권법 제정 못지않게 시급한 것은 제대로 된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설립이라고 생각한다. 이것만 제대로 운영돼도 북한 인권침해의 가해자들을 크게 위축시킬 수 있다고 본다. 북한 인권침해 사례를 최초로 기록하기 시작한 민간단체인 북한인권정보센터의 연구원들은 9년째 박봉 속에서도 고군분투하며 엄청난 자료를 축적해 놓았다. 솔직히 이런 활동을 북한인권법이 없어서 지원하지 못한 것은 아닐 것이다.국회에서 법안 하나가 통과된다고 북한인권이 갑자기 좋아질 순 없다. 정부와 민간의 의지와 다각적이고 꾸준한 실천 활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슬프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 가지 사례만 들어보자. 미국의 대통령은 여러 번 탈북자들을 백악관에 초청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남쪽에 온 탈북자가 2만4000명에 이르는 동안 그들을 만나 가슴 아픈 이야기에 귀 기울여준 대통령이 단 한 명이라도 있었던가.주성하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임수경 의원. 저는 탈북자의 한 사람입니다. 당신이 탈북자들을 향해 던진 욕설을 듣고 저도 처음엔 분노했습니다.하지만 지금은 당신을 불쌍히 여깁니다. 제가 보기엔 당신은 참 비운의 여인입니다. 세운 ‘공’에 비해 이처럼 바가지로 욕먹는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3년 전 저는 ‘’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 글에서 저는 당신을 ‘북한 주민들의 정신적 해방에 큰 기여를 한 공로자’라고 했습니다. 당신의 목적이 무엇이었든 북한 주민들은 ‘탈남(脫南)’한 당신을 통해 한국의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1980년대 말 북한 사람들이 아는 남조선은 ‘헐벗고 굶주리는 미제의 식민지’였습니다. 사람 못 살 그러한 곳에서 청바지에 면티를 입고 날아온 당신의 모든 행동과 발언은 너무나 거리낌 없었고 독재 사회에서 기죽여 살아온 흔적이란 찾을 길이 없었습니다.남한 당국이 판문점을 통해 돌아가겠다는 당신의 요구를 수용해준 것은 상상 못할 일이었습니다. 당신이 분단선을 넘는 날 북한 주민들은 슬퍼했습니다. 저 정도의 ‘대역죄인’이라면 8촌까지 멸족될 것이라는 것이 북한 주민들이 유일하게 아는 상식이었습니다. 심지어 한국을 누구보다 잘 아는 대남 담당 기자들도 서울을 방문했다가 당신의 집을 불시에 찾아갔습니다. 임수경의 가족이 무탈하게 살고 있다는 한국 언론의 보도를 그들조차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죠. 피해는커녕 북한 중앙당 간부들보다 더 풍요롭게 잘사는 당신 가족의 모습을 북한방송을 통해 지켜보면서 북한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당신이 재판을 받는다는 소식, 감옥에서 조카에게 썼다는 편지, 그리고 3년 만에 석방됐다는 소식을 신문을 통해 접하면서 북한 주민들은 남조선이 당국의 선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임을 알았습니다.당신이 감옥에서 석방된 지 2년 뒤부터 북한은 수많은 아사자를 낸 고난의 행군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수십만 명이 탈북했습니다. 사실 탈북자들을 변절자라고 한다면 당신은 그들이 변절하는 데 아주 지대한 공을 끼친 일등 공신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이 평양에 왔을 때 10대였던 저는 당신을 보면서 처음으로 당국의 선전에 의문을 품게 됐고 결국 훗날 탈북해 한국에까지 왔습니다.북한 주민들은 당신을 보면서 남조선이 파쇼독재 국가가 아님을 알았는데, 당신은 지금도 한국이 독재국가라 주장하는 이들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보고 탈북까지 했는데, 당신은 탈북자들에게 변절자라고 합니다. 이런 아이러니가 어디 있습니까. 이제 반대로 당신에게 우리 탈북자들을 보면서 생각을 바꾸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탈북자에게 입힌 상처 말로는 못 씻어 北참상에 진정 가슴 아파해야 용서받아” ▼당신은 국회에 입성하자마자 개성공단 방문 신청서를 냈지요. 꼭 북한에 가길 바랍니다. 당신에게 ‘통일의 꽃’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준 북한 대남부서는 지금까지도 남쪽을 ‘반통일 파쇼독재’라고 끊임없이 비난하고 있습니다. 파쇼독재하에서 누구보다 탄압을 받아야 할 당신이 국회의원이 되고, 반통일 정권이 당신이 국회에 입성하자마자 북에 보내주는 것을 보면 북한 당국의 백만 마디 비난이 무색하게 될 것입니다. 가서 직접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실태를 몸으로 생생히 보여주길 바랍니다.당신이 지금 대중의 비난을 받는 이유는 역사가 당신에게 부여한 사명과 다른, 서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반대쪽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박수 받아야 할 사람들을 미워하고, 함께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을 추종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라도 당신이 자기가 설자리를 깨닫는다면 당신을 포위하고 있는 한 줌의 북한 추종 세력에게서 풀려나는 대신에 남북 수천만 대중의 박수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이 그랬듯이 북한이 탈북자들도 원할 경우 판문점을 통해 돌아갈 수 있는 곳으로, 재판도 받고 감옥에서 편지도 쓰는 곳으로, 더 나아가 전근대적 연좌제가 철폐된 곳으로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은 당신에게도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탈북자들에게 입힌 상처는 미안하다는 말로 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목숨 걸고 탈북한 용기를 격려하고, 독재와 세습 아래 굶주려 죽어가는 북한 주민들의 참상에 가슴 아파하고 그들을 그렇게 만든 자들에게 함께 분노한다면 그때는 탈북자들이 당신을 용서할 수 있을 것입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현충일인 6월 6일은 북한에선 조선소년단 창립일이다. 해마다 이날이 되면 북한의 각 학교들은 체육대회를 열거나 소풍을 간다. 그런데 창립 66주년인 올해는 사상 최대 규모로 다양한 행사가 열릴 예정이어서 주목된다.조선소년단은 일반적으로 만 7세경부터 의무적으로 가입해 14세까지 활동하는 학생조직으로 목에 맨 붉은 넥타이가 상징이다. 소년단 가입을 통해 북한 어린이들은 처음으로 조직생활을 시작한다. 북한은 3일부터 8일까지 6일간 전국에서 무려 2만 명의 소년단 대표를 평양으로 불러 모아 역대 최대 규모로 소년단 창립 66주년 행사를 열 예정이다.북한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은 “나진시 소년단 대표들은 김정은 동지께서 보내주신 사랑의 특별 비행기를 타고 왔다”거나 “행사 준비가 모두 끝났다”고 연일 보도하고 있다. 열악한 북한 교통편을 감안할 때 소년단 대표 이송으로 당분간 일반 주민의 이동은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김정은이 유원지와 동물원 시찰에 나섰던 배경도 소년단 행사에 참가한 학생대표들에게 다양한 행사를 보여주기에 앞서 점검차 방문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광산 채탄공의 아들, 벌목공의 아들, 염소 방목공(목동)의 아들, 평범한 농민의 자녀와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부모를 잃은 고아들, 심지어 전과자의 자녀도 대표로 선출됐다”고 북한 매체들이 대대적으로 선전하고 있는 것은 눈에 띄는 대목이다. 이전까지는 평양에서 학생 행사를 하면 주로 간부나 부잣집 자녀들이 대표로 참가하는 것을 당연시했다. 김정은 체제가 과거에 비교적 홀대했던 학생 축제를 성대히 여는 이유는 북한 체제의 세대교체가 빨리 진행되고 있으며 신세대들의 국가와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이 과거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김정은이 계급 출신에 관계없이 차별 없는 통치를 하겠다는 의지를 선전함으로써 새 지도자는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현재 소년단원은 1998년부터 2005년 사이 태어난 학생들이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이후에 출생한 이 세대는 김일성의 통치는 경험하지 못한 세대다. ▼ 배급제 붕괴로 장마당 세대 세뇌는 힘들듯 ▼부모들이 장마당에서 장사하는 것을 보고 자라난 이들 ‘장마당세대’는 개인주의가 강하고 어느 세대보다 황금만능주의도 팽배하다. 또 교육 시스템이 붕괴된 이후에 성장했기 때문에 조직생활에도 익숙하지 않다.17세에 군에 입대하는 북한에서 현재 14세인 소년단원은 3년 뒤 입대한다. 고난의 행군 기간 성장하면서 개인주의적 성향이 커지고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이 사라진 새 세대가 군에 입대하면서 북한군의 정신무장이 점차 무너지고 있다고 탈북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걸핏하면 상관에게 대드는가 하면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것.김정은은 체제를 지탱해줄 신세대의 충성심을 이끌어내는 것과 동시에 부모들의 마음을 잡으려는 포석으로 대규모 환심성 행사를 열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국가 배급제도가 붕괴된 현 상황에서 장마당세대를 겨냥한 세뇌는 쉽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김정일 사망 6개월째를 맞고 있는 북한의 대내외적 상황이 김일성 사망 이후 100만 명 이상의 아사자가 발생했던 1994년과 여러모로 흡사하게 흘러가고 있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20년 가까이 자력갱생(自力更生)으로 살아오며 쌓아온 주민들의 내성 덕분에 아직은 그럭저럭 버티고 있지만 현재 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머지않아 대량 아사 등 심각한 위기에 맞닥뜨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 2012년과 1994년 전후 상황 3大 유사점가뭄에 2만 아사說 자연재해 대홍수로 전국적 아사유통망 장마당 위축 식량대란 장마당 활성화 안돼南-美서 지원못받아 대외고립 소련붕괴-중국과 소원○ 아사자 발생과 자연재해북한이 현재 직면한 가장 큰 위기는 식량 문제다. 초봄부터 황해도 지역을 중심으로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이 끊임없이 전해지고 있다. 아사자가 2만 명이 넘었다는 보도도 있다. 농민들이 굶주려 일을 하지 못하는 현상이 속출하고 있고 심지어 일선 군부대 장교들 사이에도 영양실조 환자가 발생하고 있지만 국가 비축미가 바닥나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2000년 이후 현재 같은 대규모 아사는 처음이라는 것이 여러 북한 소식통이 전하는 일치된 증언이다. 곡창지대인 황해도에서 아사자가 속출하고 있는 것은 지난해 홍수 피해가 심각한 데다 가을에 군부대가 농장마다 투입돼 식량을 무자비하게 걷어간 것이 주요 원인이다. 여기에 김정일 애도 기간에 식량유통망이 크게 위축되면서 중국에서 들어오는 식량이 황해도까지 도달하지 못한 이유도 있다. 황해도의 대량 아사자 발생은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직후를 연상케 한다. 그해 10월부터 구성 태천 구장 등 평안북도 산간의 군수산업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아사자가 속출하기 시작했고 이듬해 전국적인 대량 아사로 이어졌다. 이 와중에 자연재해마저 덮쳐 농사가 큰 피해를 봤다. 북한은 1995년엔 광복 이후 최대 규모라는 대홍수에 직면했고 1996년과 1997년에도 홍수와 가뭄 피해를 연이어 겪으며 식량 확보에 큰 차질을 빚었다.북한 서해 곡창지대는 올봄 50년 만의 최대 가뭄으로 신음하고 있다. 한국 기상청은 북한의 가뭄이 6월 중순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가뭄으로 올 농사를 망치면 내년 춘궁기 북한의 식량위기가 절정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악화된 대외환경과 장마당 위축식량자급이 불가능하면 해외 식량지원이라도 가능한 한 받아야 하지만 북한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대외적 고립에 처해 있다.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도발 같은 끊임없는 대남 도발로 남북 관계 개선이 요원한 데다 올 4월에도 장거리 로켓 발사를 강행해 미국이 지원하려던 비스킷 등 영양식품 24만 t을 제 발로 차버렸다. 중국의 반응도 호의적이지 않다. NK지식인연대 관계자는 “중국 세관이 20일부터 현재까지 북한 식량 반입을 전면 차단하고 있다”고 31일 밝혔다.이 같은 고립무원의 상황은 1990년대 초·중반과 유사해 보인다. 북한은 1991년 12월 소련의 붕괴와 1992년 8월 한중 수교 등의 영향으로 전통적인 사회주의권 시장을 잃었고 막대한 지원도 끊겼다. 거기에 새로운 교역시장 확보마저 실패한 채 대량 아사 사태에 직면하게 됐다. 김정일 사후 북한의 식량유통망인 장마당이 크게 위축된 것도 김일성 사후와 유사하다. 북한은 3월 말까지 애도기간, 4월 축제기간, 5, 6월 농촌총동원 등을 이어가면서 주민들의 이동과 장사활동을 통제하고 있다. 식량이 유통되지 않다 보니 북한 내 지역별 식량 가격 격차는 2000년대 이후 가장 크게 벌어지고 있다. 북한 주민들은 1994년에는 장마당이 거의 활성화돼 있지 않던 상황에서 고난의 행군을 맞았고 지금은 활성화됐던 장마당이 크게 위축된 상황에서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에는 북한이 탈북 차단을 목표로 북-중 국경을 사상 최대로 통제하고 있는 바람에 북한에 적잖은 식량을 유입시키던 중국과의 밀무역마저 함께 끊기고 있다.1990년대 중반의 김정일은 권력승계 직후의 위기 상황을 선군정치와 무자비한 숙청으로 견뎌냈다. 게다가 김정일은 권력승계 전 이미 20년 가까이 북한을 실질적으로 지배했으며 당시는 주민들의 노동당과 국가에 대한 기대와 충성심이 컸다. 하지만 현재의 김정은은 리더십이 증명되지 않았고 주민들의 충성심도 사라진 지 오래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독일의 16세 고등학생이 350여 년 동안 수많은 수학자가 풀지 못해 고심하던 문제를 어렵지 않게 풀어내 화제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29일 독일 드레스덴에 사는 쇼리야 라이 군(16·사진)이 ‘뉴턴의 법칙’을 만든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이 처음으로 제기했던 입자 역학 계산의 두 가지 난제를 수학적으로 풀어냈다고 전했다.이 난제는 발사체 또는 입자가 중력과 공기의 저항을 받는 조건에서 날아갈 때와 어떤 표면에 맞고 튕겨져 나올 때 그릴 예상 궤적을 구하는 문제로 지금까지 누구도 수학적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는 이러한 궤적을 도출하려면 엄청난 성능을 가진 컴퓨터에 의존해야만 했다.더욱 놀라운 사실은 라이 군이 이 문제들을 학교 과제주간에 간단히 풀어냈다는 것. 라이 군은 “드레스덴대를 찾았다가 교수들로부터 이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설명을 듣고 ‘못 풀게 뭐야’라는 생각으로 매달린 끝에 마침내 답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수학 천재라는 칭찬에 “안 풀리는 문제는 없다고 생각하는 학생의 천진난만함 때문에 이런 결과를 얻게 됐다”고 대답했다.라이 군은 인도 콜카타에서 태어나 4년 전 엔지니어인 독일인 아버지와 함께 독일에 왔다. 여섯 살 때부터 수학 실력이 상당한 아버지에게서 수학을 배우기 시작해 곧 아버지를 넘어섰다고 한다. 고교 과정을 또래보다 2년 앞당겨 마친 라이 군은 이번 주 고교 졸업시험을 치를 예정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28)와 이달 결혼한 프리실라 챈(27)은 중국계 베트남인 난민 가정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27일 “챈의 아버지 데니스 챈은 중국계 베트남인으로 1970년대 홍콩에서 난민보호소 생활을 하다가 미국에 건너온 뒤 다시 4년 넘게 ‘아시아 소수 난민’으로 사회보장을 받았다”고 전했다. 데니스 씨는 보스턴에 정착한 뒤 아내와 함께 식당을 하며 하루 18시간을 꼬박 일했다. 챈과 두 여동생은 할머니 손에서 성장했다.챈에게 과학을 가르쳤던 피터 스완슨 씨는 “그가 우리 학교에 입학한 13세에 내게 다가와 ‘선생님 하버드대에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라고 물었다”면서 “평생 열세 살짜리에게서 그런 질문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고 회상했다.챈은 2003년 하버드대에서 열린 한 파티장에서 화장실 앞에서 줄을 섰다 저커버그를 처음 만났다. 챈은 당시의 저커버그에 대해 “뭔가 이상한 괴짜 공부벌레 같았다”고 회상한 바 있다. 한편 저커버그 부부가 올 3월 말 중국 상하이 여행을 할 당시 중국중앙(CC)TV 다큐멘터리에 우연히 찍힌 사진이 27일 중국 웨이보(微博)에 공개돼 화제다. 경찰을 주제로 한 이 다큐멘터리에서 저커버그 부부는 거리에서 경찰을 찍는 와중에 우연히 배경으로 잡혔는데 의도치 않게 카메라에 노출된 저커버그는 멋쩍게 웃고 있다. 또 27일 이 부부가 이탈리아 로마의 한 식당에서 밥을 먹는 사진이 트위터에 올라오면서 이들이 현재 신혼여행을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한때 골수 주사파 학생운동권이었던 곽대중 전 전남대 총학생회장이 ‘옛 동지’ K 씨를 향해 인터넷에 공개리에 띄운 편지가 화제가 되고 있다. 곽 씨는 최근 ‘StoryK’에 ‘진보당 당권파 친구 K에게―전남대 총학생회실에서의 격렬한 논쟁을 기억할까?’라는 제목으로 200자 원고지 27장 분량의 글을 띄웠다. 현재 중국에 머물고 있는 곽 씨는 23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주사파가 어떤 사람들인지 널리 알리고 그들이 올바른 길에 들어서길 바라는 마음에서 편지를 썼다”고 밝혔다. 그는 “K 씨가 현재 통합진보당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으나 K 씨가 실제로 통진당에 몸담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곽 씨는 고교시절인 1989년 북한소설 ‘꽃 파는 처녀’를 읽은 뒤부터 북한을 추종해 노동당에 입당하는 것을 최대의 목표로 삼았고 힘들 때마다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부르던 골수 주사파였다. 하지만 그는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의 망명(1997년),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 씨의 전향 등을 보면서 북한 민주화운동을 자신의 목표로 삼았다. 졸업 후 북한민주화네트워크 기관지 ‘Keys’ 편집장, 북한전문 인터넷신문 데일리NK의 논설실장 등을 역임했다. 그가 쓴 편지 중 일부를 소개한다. 》K에게우리의 관계를 ‘친구’라고 표현하는 것에 대해 네가 어떻게 생각할는지 모르겠구나.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지도 벌써 1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해 여름 우리 대학 총학생회와 전북대 총학생회가 “앞으로 학생 운동권은 북한의 인권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서면서 세상의 주목을 받았고, 너는 그것을 ‘따지기 위해’ 학생회실에 찾아 왔었다. 짧은 시간 우리는 격렬한 논쟁을 주고받았지.주로 네가 물었고, 나는 답했다. 어찌하여 그런 황당한(?) 주장을 하였던 것이냐고 너는 물었고, 나는 북한의 참혹한 현실에 대해 얘기했었다. 300만 명이 굶어 죽은 끔찍한 식량난과 탈북자 문제, 가혹한 주민 통제와 인권 탄압 실태 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러한 불행의 원인이 수령 독재에 있다고 나는 설명하였다. 너는 미제(美帝)에 화살을 돌렸고, 나는 그런 식의 ‘미국 핑계’는 이제 버릴 때가 되지 않았냐고 대꾸하는 식으로 갑론을박이 계속되었다.2500만 인민은 현세의 지옥에서 고통받고 신음하고 있는데, 그런 와중에도 고급 양주와 벤츠 자동차를 사들이는 데 수백만 달러를 탕진하고 기쁨조 파티를 즐긴다는 ‘위대한’ 지도자 동지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는 흘렀다. 다른 이야기에는 비교적 담담하던 너는 김정일을 거론하니까 격렬한 반응을 보였다. 1년 365일 쉬는 날도 없이 현지 지도를 다니며 인민들과 동고동락, 풍찬노숙하시는 ‘그분’을 어떻게 그렇게 모욕할 수 있느냐며 주먹을 불끈 쥐고 나를 노려보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마지막엔 내가 질문을 던졌다.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 대해 알고 있느냐”고. 정치범수용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순순히 ‘알고 있다’고 대답하는 것에 우선 놀랐다. 그리고 이어지는 너의 답변에 더욱 놀랐다.“혁명을 하다 보면 반드시 제거해야 할 세력이 있기 마련이고, 혁명에 승리하고 나서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반혁명 세력들은 오랜 기간을 두고 제압하여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북에 정치범수용소가 존재하는 것이 당연하다 생각하고, 우리 혁명(남한에서의 혁명)이 승리하고 나서도 그런 수용소를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학생회실을 나서면서 네가 그랬다. “이제부터 우리는 동지가 아니다. 친구도 아니다. 적(敵)이다.”(중략)결국은 문제가 터졌다. 네가 속한 그룹이 사고를 쳐도 단단히 쳤더구나. … 민주주의에 대한 유치원생 수준의 인식만 있어도 감히 그렇게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일들을, 너희는 마치 부정선거의 종합 패키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듯 서슴없이 용감하게도 저질렀더구나.순진한 사람들은 아직도 의아해한다. ‘그래도 명색이 진보를 지향하는 사람들인데, 왜 그랬을까, 과연 그랬을까?’ 너희들의 실체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도 대한민국에는 많고도 많다.너 같은 사람들, 지금 네가 속해 있는 그룹의 사람들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들이라는 것을 나는 익히 알고 있었다. 세월이 지나 약간 유연해지고 노련해졌을지는 모르겠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 인식이 없는 너희는 언젠가는 그런 대형 사고를 칠 가능성이 충분히 예견되어 있었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해 못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게도 목 놓아 민주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이 실은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 개념조차 없다니!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적들의 방식대로’ ‘악랄하게 전진하여야’ 한다는 강렬한 대결의식은 너희들의 마음에서 민(民)과 주(主)라는 따뜻한 두 글자를 앗아간 지 이미 오래다. 오로지 반미주의, 남한 정권에 대한 적개심, 어떻게든 북한 정권을 살려놓아야 한다는 무한한 충성심, 실체도 없는 계급의식과 영웅의식 같은 것으로만 똘똘 뭉쳐 있겠지.이번 사건을 겪으면서도 계속하여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는 너희들의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며 ‘역시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구나’ 혀를 끌끌 찼단다. 뺏기지 않고 싶겠지. 그동안 ‘누려온 것’이 있는데 말이다. 그동안 ‘쌓아온 것’이 있는데 말이다. 여기까지 어떻게 달려왔는데, 이제 와서 그것들을 송두리째 날리고야 싶겠니. 그렇게 누려온 것, 쌓아온 것을 한자어로 뭐하고 할까? 바로 ‘기득권(旣得權)’이라고 말한다. 너희는 바로 기득권 세력이 된 거야. 너희들이 그렇게도 싫어하던 세력의 모습 그대로 된 거지.당내의 기득권을 뺏기지 않으려 그렇게 아득바득 애를 쓰는 너희들의 모습을 보면서, 너희 같은 사람들이 정권을 잡으면 과연 나라가 어떻게 될지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구나. 종북주의자들은 본질적으로 반(反)민주주의자, 독재주의자들이다. 그래서 진보진영에서 솎아내야 할 대상이라고, 그렇게 누누이 말해왔던 것이다.(중략)진보진영이 완전히 몰락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너희 같은 종북주의자들이 진보당에 더욱 오래 남아주기를 바랄 것이다. 그렇게 내버려두면 너희 그룹은 계속해서 당내에서 세력을 확장해 나갈 것이고, 시나브로 수준과 정체를 드러내 보여줄 것이고, 그러다가 언젠가는 또 한 번 초대형 사고를 치겠지. 아마도 그때는 ‘종북의 몰락’이 아니라 ‘진보의 몰락’이 될 것이다.(중략)네가 처음으로 변혁운동의 길에 뛰어들던 그날의 마음을 떠올려 봐라. 억압받는 민중에 대한 애정, 그들을 억압하는 자들에 대한 분노, 혁명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는 열정!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억압받는 민중은 북한에 있고, 인민을 가장 억압하는 세력도 북한에 있고, 네가 혁명을 위해 목숨을 바쳐야 할 시대적 과제도 바로 북한에 있다. 나중에 2500만 북한 인민으로부터 ‘독재왕조의 협력자’라는 이름으로 돌팔매질을 당하고 싶지 않다면, 이제라도 자숙하기 바란다. 네가 독재왕조와 최후를 함께하는 악어새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오랜 친구의 마지막 충고다.2012년, 여름보다 뜨거운 오월.한때는 동지였던 너의 친구가.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22일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두 단계 낮췄다. ‘A+’는 한국 중국 대만의 국가신용등급과 같다. 또 피치는 일본의 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유지해 추가 강등 가능성을 열어 놨다. 한국의 등급전망은 ‘안정적’이다. 피치가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을 강등한 것은 2002년 11월 이후 9년 반 만이다.앤드루 콜쿤 아시아태평양 국가신용등급 대표는 “공공부채 비율이 높은 데다 부채가 빠르게 늘어나는 점을 반영했다”고 강등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일본의 정부부채는 올해 말 국내총생산(GDP)의 239%에 이르러 피치가 국가신용등급을 평가하는 국가 중 가장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일본의 정부부채는 국제 금융위기 이래 61%포인트나 상승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증가율 39%포인트보다 높고, ‘A’등급 국가들의 8%포인트보다 훨씬 높다. 피치와는 달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와 무디스 등이 평가한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은 여전히 우리나라보다 두 단계씩 높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지금 주사파들을 비난하는 100개의 손가락에 제 손가락은 더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사파를 추종하며 난투극에 뛰어든 앳된 청년들을 보고 다시 생각했습니다. 이미 휘어진 나무를 바로 세우긴 어렵겠지만, 올곧게 자라나야 할 새 묘목들이 휘어지려 하니 너무 아까워서입니다.주사파를 추종해 젊은 그대들이 배우려는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사상입니까, 가치입니까, 용기입니까.혹 주체사상을 배우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차라리 제게 오십시오. 훨씬 더 잘 가르쳐줄 수 있습니다. 저는 김일성대 최고의 교수들에게서 직접 주체사상을 배운 정통파입니다. 주체사상을 만든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도 생전에 저를 ‘동지’라고 했습니다. 물론 낮엔 대학에서 시장경제를 배우고 밤에 주체사상을 독파한 이들을 주사파라 부른다면 저는 ‘시경파’, 즉 북한 시장경제파라 불려야 할 겁니다. 낮엔 대학에서 주체사상을 배우고, 밤엔 ‘국부론’과 같은 금서를 몰래 베끼면서 시장경제를 학습했으니 말입니다. 그렇더라도 주체사상을 놓고 논쟁한다면 저들에게 한 수 가르칠 자신이 있습니다.진보적 가치를 배우고 싶습니까. 그 역시 주사파들이 아주 싫어하는 저 같은 사람에게 오십시오. 저는 체질적으로 진보주의자입니다. 겉으론 만민평등을 외치지만 실제론 한줌의 기득권을 위해 인민이 무리로 굶어죽어도 아랑곳하지 않는 체제에 도저히 적응해 살 수가 없었기에 목숨 걸고 북한을 탈출했습니다. 인간의 존엄과 자유, 평등은 제가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입니다. 동아일보에서도 저는 지금껏 진보주의자로 살아왔습니다. 제가 쓰는 기사는 늘 진보적 가치를 짓밟는 북한의 독재와 3대 세습을 비판하는 것이었고 소리 없이 죽어가는 동포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독재를 비호하는 자와 비판하는 자. 저들과 나의 차이입니다. 어떤 가치를 원하십니까.용기를 배우고 싶습니까. 제가 남쪽에 와보니 여기는 정권 타도 구호는 다만 유행일 뿐이고, 심지어 법정에서 ‘김정일 만세’를 외쳐도 불구속될 뿐입니다. 하루하루 신변을 위협받는 저 같은 사람은 이런 사회에서 대단한 민주투사인 척, 엄청난 박해라도 받는 척 꼴값 떠는 인간들을 보면 우스울 따름입니다. 남쪽에는 ‘꾼’들처럼 떠들썩하지 않아도 더 위험한 곳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많습니다. 정권에 손가락질만 해도 본인과 일가가 멸족되는 북한에서 태어났다 해도 저들이 과연 지금처럼 용기 있는 ‘척’했을까요. 아마 정반대의 모습으로 둔갑했을 것입니다. 진정한 철학과 가치, 용기를 잃은 인간에게 남는 것은 부끄러움도 모르는 권력욕과 물욕뿐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사례들을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탐욕에 빠지면 인간의 초보적 양심 또한 거리낌 없이 팝니다. 독재를 독재라 말하지 못하고, 세습을 세습이라 부르지 못하고, 인권 유린을 인권 유린이라 단죄도 못하고 눈 뜬 장님 시늉을 하는 것처럼 말이죠. 하지만 주사파가 양심 판 대가를 챙길 날도 이젠 끝나고 있습니다. 주사파와 북한은 한 머리에서 나온 샴쌍둥이입니다. 궤변과 거짓으로 포장하던 실상이 만천하에 공개돼 지탄과 고립에 빠진 처지까지도 똑같네요. 이들이 살아날 길도 거덜 난 이념을 버리고 개혁개방을 하는 딱 한 가지뿐입니다. 그런데도 청년들이 주사파를 추종하겠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인계(人界)에 불량품이 오죽 많습니까.주성하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지구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 우사인 볼트(26)가 백인 여자친구와 사귄다는 소식이 퍼지자 고국 자메이카가 떠들썩하다. 자메이카는 인구의 90% 이상이 흑인으로 백인 비중이 1.2%에 불과하다. 볼트는 자메이카의 국민 영웅으로 불린다. 볼트의 애인은 두 살 연상으로 슬로바키아 출신의 패션디자이너 루비차 슬로바크 씨로 캐나다에서 대학을 나온 뒤 자메이카로 이주했다. 지난해 11월 소개로 교제를 시작한 두 사람은 지난달 키스하는 사진이 파파라치에게 찍히면서 연애 사실이 공개됐다. 자메이카 국민들은 “성공한 흑인 남성중에는 백인에 대한 열등감을 백인 여자와 사귀는 것으로 해소하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볼트도 마찬가지다” “골프 스타 타이거 우즈의 전철을 볼트가 답습하려 한다”는 등의 비난 글을 인터넷에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슬로바크 씨는 “사랑에는 흑백이 없다”고 반박했다. 한편 볼트는 5일(현지 시간) 자메이카 킹스턴에서 열린 자메이카 인터내셔널 인비테이셔널 대회 남자 100m 결승에서 9초82로 결승선을 끊어 시즌 최고기록을 올렸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암살하면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이 엉겁결에 대통령에 오를 것이며 미국은 위기를 맞을 것이다.”지난해 5월 2일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 인근 은신처에서 미군 특수부대 네이비실의 공격을 받아 사망한 오사마 빈라덴이 그렸던 계획 가운데 일부다. 미국 육군사관학교 산하 전투테러리즘센터는 빈라덴의 1주기를 맞아 그의 은신처에서 찾아낸 서류 중 일부를 3일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서류는 빈라덴 은신처에서 발견한 6000여 건의 문서 가운데 17건이며 모두 175쪽 분량이다.문서 속의 빈라덴은 사소한 부분까지 챙기는 관리자인 동시에 알카에다가 큰 테러를 한 번 더 성공하면 미국의 대(對)이슬람 정책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망상에 빠져 있는 인물이었다.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미군 아프간 주둔군 사령관과 심지어 오바마 대통령의 비행기를 격추시키고 싶어했던 빈라덴의 욕망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또 점점 세력이 약화되고 있는 알카에다에 대한 고민도 드러나 있다. 그는 상급지휘관들이 미군에게 계속 암살되는 바람에 하급지휘관들이 급하게 고위직에 진출하는 것이 작전 실패가 늘어나는 배경이라고 분석했다. 이날 공개된 문서들은 2006년 9월부터 2011년 4월 사이 작성된 것이다. 이 문서는 5대의 컴퓨터에서 나온 10여 개의 하드드라이버와 100여 개의 파일 등에 담겨 있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매년 전투를 열 번 정도는 기본으로 치러야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 중세나 먼 나라가 아닌 서울에서 불과 수십 km 떨어진 북한의 이야기다. 전투는 항상 1월 1일부터 시작된다. 새해 아침 신문방송의 공동사설이 발표되면 곧바로 ‘모두가 신년공동사설 관철 전투에로!’라는 구호가 전국에 제시된다. 전투가 가장 많은 곳은 농촌이다. ‘농촌지원전투’ ‘밭갈이전투’ ‘모내기전투’ ‘김매기전투’ ‘풀베기전투’ ‘가을걷이전투’ 등 종류도 다양하다. 기차나 차로 북한 농촌을 지나가 본 사람들은 ‘모두가 모내기전투에로!’ ‘전당 전국 전민이 가을걷이전투에로!’라는 식의 구호표지판을 어디서나 보았을 것이다. 유엔 헌장은 소년병의 참전을 금지하지만 북한 전투장에선 통하지 않는다. 나도 북한에서 인민학교에 다니던 11세 때부터 파종 전투장에서 탄창에 총알을 장전하듯이 ‘영양단지(모를 기르기 위해 영양물질이 많이 섞인 흙으로 만든 흙덩이)’에 옥수수 씨앗을 하나하나 꽂아 넣었다. 지금도 북한 농촌에선 영양단지를 들것에 올려 실어 나르는 10대 초중반 아이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제대로 돌아가는 공장 기업소는 거의 없지만 그래도 ‘100일 전투’ ‘150일 전투’가 벌어진다. 학생들은 ‘학습도 전투’라는 구호 아래 공부해야 한다. 북한에선 심지어 김치를 담글 때조차 ‘김장전투’를 벌여야 하고, 아파트 건설장에도 ‘결사대’가 등장한다. 그러니 결혼할 때쯤이면 누구나 전투를 100번 이상 치러본 베테랑 전투원이 될 수밖에 없다. 전투가 매일 이어지니 난민이 생기는 게 당연한 일. 벌써 2만3000명이 넘는 난민이 남쪽으로 피란해 왔다. 물론 남쪽의 삶도 치열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몇 년 산 탈북자는 “북한에서 여기서처럼 일했다면 아마 영웅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북한에 돌아간다면 “남쪽에선 소리 없이 ‘혈투’를 치르더라”라고 증언하지 않을까. 북한에선 민간에서도 ‘전투’와 ‘결사대’ 등의 군사용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다 보니 군인들은 ‘총폭탄’ ‘자폭정신’ 등 더 강도 높은 표현으로 차별화를 시도한다. 민간인들에게 총이나 폭탄이 있을 리 만무하니 군으로선 괜찮은 아이디어다. 북한에 있을 때도 “이렇게 온갖 수식어를 다 동원하면 다음엔 어떤 용어를 써야 할까” 걱정이 됐다. 그러나 충성심을 증명하려는 선전선동 전사들의 생존투쟁은 늘 상상을 뛰어넘는다. 몇 년 전 ‘우리의 하늘과 땅, 바다를 0.0001mm라도 침범하면 도발자들에게 무자비한 철추를 내릴 것이다’고 선포했을 땐, 소수점 아래 4자리까지 생각해낸 누군가의 창의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유행어 창작에 머리를 싸매는 남쪽 개그맨들에겐 훌륭한 본보기이다. 북한에선 요즘 남쪽을 겨냥한 ‘죽이자’ 시리즈가 한창이다. ‘쳐죽이자’ ‘찢어죽이자’ 정도는 양반. 평양 김일성광장을 비롯해 북한 전국이 ‘죽탕쳐버리자’ ‘칼탕쳐버리자’ ‘찢어말리워죽이자’ 등 수많은 ‘죽이자’ 파생단어들의 경연장이 되고 있다. 얼마 전엔 동아일보를 포함한 한국 언론들을 향해서도 ‘불이 번쩍 나게 초토화시켜 버리겠다’고 호언했다. 늘 전투만 벌이던 북한을 운 좋게도 벗어났다고 좋아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번엔 그만 북한의 전투표적이 돼버린 것이다. 시쳇말로 ‘헐∼’이다. 나는 전생에 전투 중 죽은 전사였나 보다. 어쩌다 보니 호칭마저 ‘주기자’가 돼버렸으니 말이다.주성하 국제부 기자 zsh75@donga.com}
북한이 15일 태양절 행사 열병식에서 선보인 신형 장거리 탄도미사일의 발사대 차량은 중국군 소속 기업에서 생산해 지난해 5월 북한에 수출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캐나다에 본부를 둔 중국 전문 민간 군사연구기관인 ‘칸와정보센터’는 26일 해당 차량은 중국인민해방군 산하 기업인 ‘후베이싼장항톈완산(湖北三江航天萬山)특종차량유한공사’에서 생산했으며 북한에 모두 8대를 수출했다고 주장했다. 칸와정보센터는 “해당 공장은 중국군의 미사일발사대 등 군사용 특화차량을 전문적으로 생산하고 있다”며 “이런 특수차량은 분명 민간용이 아니므로 중국 측도 군사 용도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칸와정보센터는 “이 회사는 2008년 북한 측과 교섭해 북한의 주문에 맞춰 차체를 설계했다”며 “해당 차량이 미국제 디젤엔진과 독일제 변속기를 단 사실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칸와정보센터는 “북한 장거리 탄도미사일 기술은 미완성으로 실전능력은 없다”고 평가했다. 중국의 미사일 차량 수출이 사실인 경우 이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에 해당한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탈북자단체인 ‘NK지식인연대’는 “북한이 태양절을 앞둔 3월 말∼4월 초에 중국에서 약 800대의 군용 지프를 수입해 들여갔다”면서 현지 회원이 찍은 동영상을 20일 공개했다. 단둥(丹東)에서 촬영된 동영상에는 열차에 실려 북한으로 향하는 국방색 지프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NK지식인연대는 “지프들은 태양절 100주년을 맞아 김정은이 북한군 고위 장교들에게 하사할 선물”이라고 설명했다. 동영상 속 지프는 중국 베이징에 있는 지프 생산공장인 ‘베이징 지푸치처(北京吉普汽車)’의 ‘BJ’ 시리즈로 보인다. 중국이 러시아의 사륜구동(4WD) 군용 지프인 ‘우아즈(UAZ)’를 모방해 생산하고 있는 차종이다. 북한은 냉전시기에는 옛 소련에서 우아즈를 직접 수입해 왔지만 소련이 붕괴된 뒤에는 중국으로 수입처를 바꿨다. 지프는 북한에서 군 여단장, 연대장, 민경(민정경찰)대대 대대장급의 장교가 탈 수 있으며 군사 작전용으로만 사용된다. 최근 북-중 국경을 순찰하는 지프도 모두 중국산이다. 북한의 각종 군용 트럭 상당수도 중국산이다. 17일 공개된 미 의회조사국(CRS)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에만 중국에서 3000∼4000대의 군용 트럭과 지프를 무상으로 지원받거나 수입했다. 하지만 중국과 북한의 이 같은 거래를 차단하기는 쉽지 않다. 유엔 안보리 결의 1874호는 “소형무기를 제외한 모든 무기의 북한 수출입을 금지한다”고 규정했지만 군용차량을 무기로 볼지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이 군용트럭과 지프를 ‘상업용’이라고 주장하면 막을 방법이 없는 것이다. 한편 리언 패네타 미 국방장관은 19일 미 하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중국은 북한이 미사일을 개발하는 데 도움을 줘왔다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이 어느 범위까지 북한을 지원해 왔는지를 알 수 없다”면서도 “정보의 민감성을 감안할 때 이 문제는 다른 차원에서 다뤘으면 좋겠다. 하지만 중국을 통한 지원이 있어 왔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패네타 장관은 미사일 능력과 관련해 “북한은 최소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운반할 능력을 갖추고 있어 북한의 위협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CNN과의 인터뷰에선 “북한이 밤에 나를 깨어 있게 하는 일들 가운데 가장 위에 있다”고 말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
중국 정부가 탈북자의 강제 북송을 중지했다고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18일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북-중 국경지역인 랴오닝(遼寧) 성의 당국자는 “탈북자가 북한으로 송환되면 인생이 끝난다는 걸 우리도 간과할 수 없다”며 강제 북송을 중지했음을 밝혔다. 이 신문은 언제부터 북송이 중지됐는지 확실치 않지만 지난달 말 서울에서 열린 핵안보정상회의에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탈북자에 대한) 한국 측의 입장을 존중하겠다”고 밝힌 이후로 보고 있다. 랴오닝 성 당국자는 “지난해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북한 주민이 거의 매일 중국으로 탈출하고 있으며 많을 때는 하루 30명에 이른다”고 전했다.탈북자 북송 중단 배경에 대해 또 다른 중국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당초부터 미사일 발사의 구체적 계획을 중국에 밝히지 않았다. 이는 우호국인 중국에 대한 배려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북한의 ‘괘씸죄’ 때문임을 시사한 것이다.18일 동아일보가 접촉한 중국 내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이달 1일에 창바이(長白) 현에서 3월에 체포된 꽃제비 소년 5명이 북송됐으며 3일에도 탈북자 9명이 단둥(丹東)을 통해 북송됐다. 하지만 이는 매달 수백 명이 북송되던 전례를 감안하면 적은 수이며 그 이후의 북송 사례는 아직 전해지지 않고 있다. 이달 초 북송한 탈북자의 경우 한국행 탈북자가 아니어서 북한 내 처벌 수위가 낮다고 판단해 중국이 보냈을 가능성도 있다. 유랑하던 미성년 꽃제비가 중국에 갔다 잡혀오는 경우 북한은 거의 처벌을 하지 않고 있다.이처럼 탈북자 북송이 줄어든 것이 중국 당국이 국제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이거나, 북한에 대한 불만 때문으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최근 북한이 태양절 100주년 축제를 보내느라 북송 탈북자 접수를 의도적으로 미루고 있을 개연성도 있다. 북송 중단이 일시적인 방침에 불과할 가능성도 크다.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북한이 ‘광명성 3호 위성’ 발사 실패를 4시간 20분 만에 조선중앙TV를 통해 주민들에게 신속히 공개한 것은 과거의 행태에 비추어볼 때 매우 이례적이다. 북한은 1998년과 2009년 발사했던 광명성 1호와 2호가 궤도 진입에 실패했을 때는 “위성의 궤도 진입이 성공했다”고 강변해 왔다. 하지만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왜일까. 우선 외신 기자와 전문가들을 초청해 놓고 성공했다고 주장해 국제사회의 웃음거리가 되는 것보다는 차라리 솔직히 실패를 시인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있다. 두 번째 이유는 북한이 과거와 달리 이제는 내부 정보 통제가 힘들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수 있다. 수많은 주민이 라디오를 통해 몰래 한국 방송을 전해 듣고 있는 데다 지난해 중국 공식 방문자가 15만 명이나 되는 등 외국과의 교류도 활발하다. 로켓 발사 실패 소식은 하루 이틀이면 북한 전역에 입소문으로 퍼질 수 있는 사안이다. 과거처럼 억지를 부려 정부의 신뢰를 잃기보단 차라리 솔직히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김정은 체제가 과거와 다르다는 이미지를 심는 것이 득이 된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은 “(장거리로켓이 아니라) 위성의 궤도 진입이 성공하지 못했다”고 재빨리 규정하고 사태를 수습한다면 국제사회의 추가 제재와 압력을 피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북한은 앞으로 우주 강국들도 처음엔 무수히 실패했다는 주장을 거듭 펼치면서 김정은의 리더십이 입을 타격을 최소화하려 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아침 일찍 몰래 발사한 점 등을 들어 일각에서는 이번 발사가 사실상 의도된 실패가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자신들의 우방인 중국의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까지 “북한은 미사일에 앞서 민생부터 챙기라”며 분노를 표시하는 등 예상보다 강한 반발에 부닥친 북한이 당황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미 주민들에게 발사계획을 천명했던 터라 후폭풍을 최소화하려고 어정쩡한 발사 카드를 선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인 것. 결과적으로 광명성 3호 발사 실패 소식은 북한 내부 민심에 적잖은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과거 광명성 1호와 2호 발사가 성공했다는 북한 당국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던 북한 주민들은 내심 ‘배급도 못줘 주민들이 굶어죽는데 인공위성 개발이 무슨 말이냐’는 불만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